정치가와 유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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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국에서 의회주의가 발달하게 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서 사람들을 흔히 「센스·오버·유머」를 손꼽고 있다. 영국인들에겐 「유머」의 기질이 풍부해서 문학이나 정치에도 그것이 그대로 반영되어있다.
정부끼리 싸우는 긴박한 자리에서도 핏방울이 아니라 웃음의 꽃이 핀다. 영국 의회의 황금기를 장식했던 「디즈레일리」와 「글래스턴」의 대결을 보면 한편의 흐뭇한 「유머」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
『「디즈레일리」군! 아마 그대의 최후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거나, 그렇지 않으면 몹쓸 병에 걸려 죽게되거나 둘 중의 하나일 걸세』정적인 「글랫스턴」이 이렇게 독설을 퍼부었을 때, 「디즈레일리」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그렇고 말고! 내가 만약 당신 편에 붙는다면 말야! 그래서 당신의 주의를 따르게 된다면 단두대에서 죽게될 것이며, 또 당신의 연인과 사랑을 하게되면 그 몹쓸 병에 걸려 죽게 되겠지….』
이러한 정치가의 「유머」는 오늘날에도 건재하고 있다. 3월 31일 총선을 앞두고 「윌슨」수상은 지금 자당의 선거 유세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윌슨」은 연설장소에서 두 번이나 봉변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윌슨」수상은 자기에게 폭력을 가하려던 청중의 하나를 경찰이 잡아냈을 때, 『그냥 두게. 그건 자네들 소관이 아니라, 보건성에서 다스릴 문제야…』라고 웃어넘겼다. 즉 폭도가 아니라 정신병자일 것이라는 「유머」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슬로」에서 연설 중 소년 하나가 돌을 던져 눈에 상처를 입기까지 했다. 그 자리에서도 「윌슨」수상은 『그 소년에게 「크리켓」(영국의 야구)을 시켜보게. 소질이 많아 보이는군』이라고 우스개 소리를 했다고 한다.
엄벌에 처하라거나, 뿌리를 뽑아버리라고 호통을 치는 것보다도 그런 여유있는 「유머」는 훨씬 자신이 있어 보이고 믿음직스럽게 보인다. 한국인에게도 옛날엔 「유머」가 풍부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요즈음의 정치가들은 메마르고 조급하며 각박하기만 하다. 살벌한 극한투쟁이 「유머」가 있는 싸움으로 옮겨갈 때, 우리의 의회정치도 본궤에 오르는 것이 아닐까? 「윌슨」의 「유머」를 수입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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