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5세기 기와 속 시대 넘는 해학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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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주먹만한 코, 울룩불룩한 볼, 함지박처럼 찢어진 입, 지렁이 같이 굼틀거리는 눈썹, 두꺼비 눈 저리가랄 눈망울…. 묘사를 하다보니 귀신 모양새라기보다 하회탈이나 어릿광대의 얼굴이다.

평양시 대성구역 안학궁터에서 출토된 '귀면판와(鬼面板瓦)'는 5세기께 만들어진 기와라 하기에는 시대를 뛰어넘는 해학미가 물씬하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눈꼬리가 간지러워 싱긋 웃게 만드는 익살이 풀풀 풍긴다.

귀면판은 지붕 마루나 처마 마루 끝에 달던 기와다. 건물의 위용을 높이고 집안을 해치려는 나쁜 잡귀들을 막는 기능을 지녔다. 험악한 귀신 얼굴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면 감히 아무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란 옛 어른들 생각은 순진하면서도 상징적이다.

고구려는 불교.유교.도교가 공존하는 외에 신선사상 등 다양한 신앙이 퍼져있던 자유로운 공간이었다. 이 '귀면판와'가 보여주는 도상도 그런 신선사상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신라 시대의 귀면이 선각으로 얇게 떠 빚은 부조(浮彫)라면, 이 고구려 귀면판은 입체감이 도드러져 탈이라 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춤무덤(무용총)' 등 무덤벽화에서는 아직까지 탈춤 형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선이 굵고, 이미지가 강렬해서 고구려인들 자신의 성정과 생활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안학궁터에서는 13점의 귀면판이 발굴됐는데 보존 상태가 완벽해 고구려 시대의 기물 제작이 얼마나 정교하고 튼실했는가를 엿보게 한다. 점토 중에서도 모래를 걸러낸 고운 흙을 써 토기를 빚는 솜씨로 기와를 만들었으니 그 정성이 대단하다.

처마 마루 끝에 버티고 서 외부의 적을 물리치며 껄껄 웃고 있었을 '귀면판화'를 상상하면, 당장 떡 벌어진 고구려 장수가 우리 품으로 달려온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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