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은퇴 50대, 불안감에 빵집 차렸다가…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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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대그룹 계열 무역회사에서 25년간 일하다 3년 전 은퇴한 김모(58)씨. 그는 해외근무 경력 등을 내세워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봤으나 잇따라 퇴짜를 맞았다. 오라는 곳은 연봉이 과거의 절반도 안 돼 포기했다. 노후생활자금과 아이들 결혼자금을 제대로 준비해 놓지 못한 데 따른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래서 선뜻 결정한 게 프랜차이즈 빵집 개업이었다. 그는 2년 전 퇴직금 등 3억원을 넣어 자영업자의 길로 들어섰다. 하지만 근근이 현상을 유지하던 차에 프랜차이즈 본사가 인테리어 보강공사를 강요했고, 200m 인근에 빵집이 2개나 더 생겼다. 김씨 빵집의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다. 하는 수 없이 가게를 내놨지만 한 달이 넘도록 새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국 베이비붐 세대 인생 2모작의 가장 큰 특징은 자영업 쏠림현상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고령자들에게 적합한 일자리 자체가 많지 않다. 고용주들은 나이 많은 사람들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작업 분위기도 해친다는 선입견에 채용을 꺼린다. 퇴직자들 도 준비된 노후자금과 연금 등 복지 혜택이 부족하다 보니 적은 보수의 일자리에 만족하지 못한다. 체면 때문에 허름해 보이거나 싼 임금의 일자리는 아예 외면하는 고령자도 많다.

  최근 몇 년 새 베이비붐 세대(1955~63년에 태어난 712만 명)의 퇴직이 본격화하면서 자영업자 수가 부쩍 늘고 있다. 한 골목에 몇 개씩 들어서는 치킨집·편의점·커피숍·호프집·밥집 등의 주인은 50대 이상이 절반을 넘어섰다. 통계청에 따르면 50대 자영업자 수는 2010년 160만8000명이었던 것이 2012년에는 175만6000명으로 2년 새 15만 명이나 늘었다. 50대가 전체 자영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25%에서 지난해 30%를 넘어 5%포인트나 증가했다.

 이처럼 자영업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지만 살아남아 돈을 벌 확률은 매우 낮다. KB금융 경영연구소의 분석을 보면 한국 자영업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3.4년, 생존비율은 네 곳 중 한 곳에 불과했다. 그렇다 보니 알토란 같은 노후자금을 단번에 날리기 일쑤다.

 현실이 이런데도 정부는 오히려 퇴직자들의 자영업을 조장하는 듯한 주먹구구식 정책을 쓰고 있다. 정부는 창업 지원을 명목으로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자영업 서민대출을 확대하도록 독려하기까지 한다. 반면 과거 직장 경험 등을 토대로 체계적인 창업이나 전직이 이뤄지도록 돕는 정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유럽 등 선진국도 자영업자들을 위한 다양한 창업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 하지만 대출과 신용보증 등 금융지원에 앞서 반드시 전문기관의 컨설팅 등을 통해 타당성 평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그 결과 될성부른 업자들만 선별 지원하는 방식이다.

특별취재팀= 김광기·김동호·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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