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도 홈런, 서울대 새내기 이정호의 당찬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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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한 이정호. 야구방망이를 힘차게 휘두르며 “대학에선 투수로도 뛰고 싶다”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덕수고 졸업반 이정호(19)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간의 관심이 쏟아졌다. 2012년 고교야구 주말리그와 대통령배 등 5개 대회에서 타율 0.310을 기록한 야구 선수가, 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 수시 전형으로 서울대 체육교육과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그는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특기생으로 대학에 진학하기엔 모자람 없는 기량을 갖고 있다. 그의 서울대 입학은 ‘운동 선수와 학업은 거리가 멀다’는 일반적 인식을 깨버리는 ‘사건’으로 평가 받았다.

 3주 전 이슈의 중심에 섰던 당사자는 담담했다. 그러면서도 새해, 꿈많은 새내기 대학생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어떻게 공부를 했을까. “관심을 가져주시는 게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생긴다”는 그는 “의지를 한 번도 놓지 않았다”고 했다. 중학교 시절 공부를 잘했던 그는 고교 진학 후에도 공부와 야구를 병행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비법은 따로 없었던 거다. 성실하고 우직했을 뿐이다.

 야구부 훈련 때문에 학원에 갈 수 없었던 그는 수업시간에 더 집중했다. 훈련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잘 시간을 아껴가며 복습을 했다. “시험과 경기가 겹칠 때는 머리 속이 하얗게 됐다”고 했다. 이럴 때마다 서울대에 입학하겠다는 목표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수시 원서도 특기자 전형이 없는 서울대에만 넣었다.

 2학년부터 시작된 고교야구 주말리그제도 도움이 됐다. 1학년 때는 성적이 많이 떨어졌지만 주말에만 경기를 하는 주말리그가 시행되자 전교 9등까지 석차가 올랐다. 때문에 이정호는 “주말리그제를 확대해 더 많은 학생들이 학업과 운동을 함께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서울대 입학은 혼자 힘만으로 할 수 없었다. 학업과 운동을 같이할 수 있게 배려해 준 정윤진 야구부 감독, 공부의 끈을 놓지 않게 도와 준 부모님, 그리고 필기 노트를 빌려주는 등 격려를 아끼지 않은 친구들이 모두 은인이었다.

 이정호는 어느덧 그를 바라보는 후배 선수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됐다. 그는 “내 운동능력이 아주 뛰어난 건 아니다. 그래서 공부도 같이 해야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하지만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주변 환경이 따르지 않았다면 서울대 입학은 불가능했다”고 강조했다. 야구부 친구들이 기초를 쌓아놓지 않아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 그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는 “내가 유니폼을 입고 선수로 뛰어본 만큼 나중에 선수 입장에서 체육 행정을 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야구 선수의 꿈도 접지는 않았다. 합격하자마자 13학번 중 처음으로 서울대 야구부에 가입 원서를 냈다. 이달에는 제주도로 전지훈련도 떠난다. 덕수고에서 주로 우익수를 맡았던 이정호는 “대학에서는 투수로도 뛸 수 있다”고 기대했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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