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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사과할 용기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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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문재인 후보는 3.6% 졌다. 자신이 2% 더 얻었으면 박근혜 후보 표가 2% 줄어들어 결국 0.4% 이겼을 것이다. 그가 이를 놓친 건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선거에는 말없는 다수가 있다. 이들은 품성을 중요한 판단기준으로 여긴다. 인권·예의·배려 같은 인간적 가치를 얼마나 잘 지키는지 조용히 보는 것이다. 문재인은 이 대목에서 졌다.

 문재인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를 막강한 후보였다. 그런 인물이 TV처럼 공개적인 곳에서 특정 개인을 공격하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그런 일이 실제로 노무현 정권 때 있었다. 대통령이 공격하자 남상국 대우건설 사장이 한강에 뛰어내려 자살한 것이다.

 비극은 2004년 3월 11일 일어났다. 남 사장은 대통령 형에게 3000만원을 주고 사장 유임을 청탁한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TV 생중계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우건설 사장처럼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시골에 있는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 가서 머리 조아리고 돈 주고, 그런 일 이제는 없었으면 좋겠다.”

 남 사장은 TV를 보고는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이름이 생방송에 나와 범죄자가 됐는데 어떻게 낯을 들고 살겠나. 내가 모든 걸 책임지고 가겠다.” 문재인은 청와대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쉬고 있을 때 사건을 겪었다. 문재인은 나중에 노 대통령에게 남 사장 실명을 거론한 건 잘못이었다고 지적했다. 노 대통령은 매우 후회했다고 한다.

 실명 거론 이전에 대통령의 언급 자체가 근거 없는 것이라고 유족은 주장한다. 노 대통령이 자살하기 수개월 전 유족은 고소했다. 남 사장이 김해로 대통령 형을 찾아간 적도, 직접 돈을 건넨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문재인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다. ‘근거 없이 당하는 억울함’을 생생히 목격했을 것이다.

 국정원 여직원 사건은 근거가 없는 것이었다. 박지원 전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어떠한 증거가 없이 단순한 제보를 가지고 했다. 감금하고 가해를 한 것은 옳지 않다.” 뒤늦게 나온 이런 고백은 정말이지 충격적이다. 이 고백에 따르면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후보’가 근거도 없이 많은 국민이 보는 앞에서 28세 여성을 ‘피의자’로 몰아붙인 셈이다.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문재인은 대통령이 됐을지도 모른다. 당원들이 여직원 오피스텔을 봉쇄했을 때 문재인은 긴급 성명을 발표했어야 했다. “국정원 여직원이라고 해서 제보만 가지고 이런 일을 하는 건 부당합니다. 당원들에게 촉구합니다. 철수하세요. 그리고 경찰은 신속하고 공정하게 수사해 줄 것을 당부합니다.” 이렇게 했으면 1%가 올랐을 것이다.

 수사 결과 여직원 컴퓨터에 비방 댓글 흔적이 없는 것으로 경찰이 발표했다. 문재인은 바로 수사결과를 인정하고 여직원에게 사과했어야 했다. 당에서 경찰을 비난해도 그는 부모를 찾아가 큰절로 사과했어야 했다. 그러면 또다시 1%가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정반대로 갔다. 국정원과 검찰 그리고 언론이 결탁해 정권을 연장하려 한다고 외쳤다. 그는 외계인이었다.

 이는 가장 문재인답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인권변호사 출신이다. 얼마나 많은 이가 억울함으로 고통 받는지 그는 잘 알 것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그가 ‘28세 미혼여성’의 인권을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눈앞에 어른거리는 봉황 그림에 취했던 것이다. 이는 국가지도자는 차치하고 변호사 자격조차 의심스러운 행동이었다.

 지도자의 진면목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다. 설사 수십만 표를 얻지 못해도 ‘28세 여성의 인권’ 편에 섰다면 문재인에게는 100만 표가 왔을지 모른다. 말없는 다수는 인권변호사 출신 대통령 후보가 이 사건을 어떻게 대하는지 지켜보았다. 근거도 없이 젊은 여성을 피의자로 몰아붙이는 대통령 후보를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문재인은 여직원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에게 그런 용기가 있는지 많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