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한 고객 감성 읽어내면 대박 예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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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3호 22면

서울우유는 우유시장 특유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소비자를 세심하게 관찰한 덕분에 2009년 대박을 냈다. 고객 감성을 간파해 제품에 적용함으로써 업계 경쟁구도를 바꾼 것이다. 서울우유의 당시 하루 판매량은 평균 800만 개 정도였다. 유통기한에 더해 제조일자까지 선명하게 새겨 넣은 뒤 판매가 13% 급증했다. 많이 팔리는 날은 25% 매출 상승률을 보이기도 했다. 제조일자를 추가하는 평범한 듯한 아이디어가 소비자 신뢰도를 급상승시킨 것이다. 더 이상 차별화 포인트가 없어 보이던 우유업계에서 이런 바람을 불러일으킨 것은 고객을 열심히 관찰한 덕분이었다. 대형마트에서 우유를 장바구니에 담는 주부들을 마케팅 직원들이 유심히 살펴보니 흥미로운 광경이 반복되고 있었다. 여러 가지 우유제품 포장을 유심히 살피면서 들었다 놓았다 하는 것이었다. 좀 더 신선한 우유를 고르기 위해 나온 지 얼마나 오래됐는지 유통기한을 열심히 확인한 것이다. 제조일자 표기는 판단을 빨리 내릴 수 있게 만들었다.

[맥킨지 컨설팅] 고객 인사이트 기반 제품 개발

이처럼 고객의 잠재욕구(needs)와 직관(insight)을 제대로 파악하면 기대 이상의 보답을 가져다줄 때가 많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파악하느냐다. 고객이 어떤 제품이 필요하고 어떤 서비스를 바란다는 걸 기업에 요구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소비자는 구매제품과 서비스를 향유하는 데 골몰할 뿐이지 기업에 대한 건설적 제언을 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 기껏해야 불편사항이라도 생기면 환불이나 반품을 요구하는 정도다. 그래서 설문조사나 포커스그룹(표적집단) 인터뷰 같은 전통 조사기법보다 문화기술법(Ethnography) 등 심층 조사기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고객의 일상생활이나 구매환경 속에서 고객을 열심히 관찰하고 고객과 긴밀히 소통함으로써 그들의 인사이트를 수집해야 한다.

고객 마음을 읽어서 성공한 사례는 적잖다. 표준화와 평준화가 고도로 진전된 PC는 이제 차별화가 거의 불가능한 제품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HP는 PC에도 디자인이 먹힌다는 고객 심리를 읽어 냈다. 이에 따라 상감(In-mold) 기술을 적용해 비주얼과 느낌(Look and feel)이 확 다른 제품 시리즈를 내놓아 성공을 거뒀다. 레노버는 중국시장의 절반인 학생·게이머 고객군의 욕구를 포착해 그래픽카드를 강화한 Y450을 출시해 성과를 거뒀다. 상대적으로 비쌌지만 노트북 시장에서 단일 모델로 4% 점유율을 달성했다.

범용기술이 확산되는 추세에서 고객이 가장 원하는 기능과 사양을 최적화한 제품을 재빨리 개발해 시장에 내놓는 것이 중요해졌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엔지니어링과 제조 부문의 입김이 강한 한국 기업들은 고객 마음을 읽는 데 약한 편이다. 고객 인사이트를 모으고 해석하기보다 경쟁기업 제품 출시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성향이 강했다.

제품 기획단계부터 고객 마음을 반영하려면 조직의 변화가 수반돼야 한다. 원통형 곡물 저장창고 모양인 사일로(Silo)형 조직 구조로는 관련 부서가 협업할 수 없다. 각자 열심히 일하지만 부서 간 장벽이 높아 매출·원가·손익 목표 어느 것 하나 제도로 달성하지 못하기 일쑤다. 상품 기획과 개발, 마케팅 전 과정을 틀어쥐고 일관된 의사결정을 내릴 주도자(ownership)가 필요하다. 그래서 제록스 같은 회사는 한 제품의 기획에서 출시까지 총괄하는 프로그램 매니저 제도를 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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