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죄송합니다"|교도소에서 쓴 「17세」의 참회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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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5일 법정 최하형을 받고 풀려 나온 황재희 양은 재판을 받기에 앞서 교도서 안에서 쓴 『생활고에 지친 어머니와 동생 중완이를 위해 어린 두 동생을 죽이고 자살하려고 한 것은 철모르고 한 짓이었다.』는 내용의 반성문을 담당계 손우영 검사에게 냈었다. 원고지 약 60장에 달하는 이 반성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제가 6학년이던 1961년 음력 7월28일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어요.
어머니는 우리들을 살리려는 욕심으로 겨울에 추운지도 모르시고 15명이라는 많은 하숙을 쳤습니다.
저도 엄마의 일을 조금씩 도와 드리고 싶어서 중학교도 그만두고 조그마한 공장에 다니면서 한달에 6백원이라는 월급을 타오면 엄마는 반가 와서 어찌할 줄을 모르며 저를 붙들고 통곡을 하시고는 하셨어요.
저는 그럴 때마다 조금 더 엄마를 기쁘게 해 드리고 또 동생들의 앞날을 생각해서라도 나는 굳세게 살아야겠다고 또 한번 결심을 했어요. 그후 나는 다른 공장으로 옮겨 월급을 좀 더 받게 됐어요. 그후 얼마 안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하시던 어머니는 병석에 누우셨어요. 저는 있는 힘을 다해서 어머니 병환을 간호하면서 동생의 수업료까지 해내자니 정말 나에게는 힘에 겨웠습니다.
회사에서 가불을 해다가 동생 수업료를 내고 월급을 타니 정말 쌀값도 안 나왔어요. 한달 동안은 죽으로 끼니를 메우면서 살자니 정말 사람 같지 않더군요.
작년 8월31일 월급을 타니 겨우 3천5백원인데 제가 아파서 병원엘 다녀오니 겨우 1천원이 남았지요.
쌀값과 동생 수업료 때문에 「달러」 빚을 내니 한달에 6백원이라는 이자는 정말 기가 막힐 정도였어요. 추운 날씨에 「버스」도 못타고 손을 불면서 학교에 가는 동생들을 보니 자존심은커녕 내 자신이 미워만 졌습니다.
나는 죽기로 결심했지요. 11월분 월급을 타서 5백원을 떼어놓고는 나머지를 집에 들여놨어요. 그러나 4남매가 다 죽으면 어머니는 아무런 낙도 없을 것 같아서 남동생 중완이 만을 남겨 놓기로 마음먹었습니다. 3일 날은 저의 소지품을 깨끗이 챙겨 놓고 동생들을 데리고 『「포키트」에 가득찬 행복』이라는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면서 친구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그러나 할 말이 없어요. 내일이면 어머니와 영원히 이별한다는 것을 생각하니 베개를 적시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는 아침 일찍 목욕을 갔어요.
어머니께 이모님 댁에 다녀오시라고 하니 제가 집에 있는 날만은 같이 있고 싶다면서 거절하셨어요. 가만히 생각하니 단돈 1원이 새로운 이때 차비 때문에 안 가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문득 머리칼 생각이 났어요. 머리를 잘라 판 4백원으로 어머니와 중완이를 나가게 하고는 유서를 쓰고 두 동생에게 과자를 사주고 약을 먹였어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살아가려고 아무리 애써도 저의 힘으로는 도저히 더 이상 지탱해 나갈 수 없군요…. 엄마 손에 힘이 없어서 더 못쓰겠어요…. 그리고 엄마 우리 셋을 화장해서 아버지 묘 앞에 나란히 뿌려 주셔요. 그러면 엄마가 아버지를 보러 오실 때 저희들도 엄마와 중완이를 볼 수 있겠지요…』 저의 유서 내용이어요. 동생들에게 천주님께 기도를 드리자고 하니 어지러워 못 일어나겠다고 하여 누워서 기도를 드렸어요. 『천주님 우리들은 착한 어린이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동생들의 기도문을 들으면서 정신을 잃어 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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