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미래 식량은 셀룰로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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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재고량이 천만섬을 넘게 되었다니 이 기회에 귀한 생명을 가진 가축을 잡아먹는 일을 그만두고 완전한 채식을 시작하면 어떨까? 채식만으로도 모든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광우병도 무섭고 축산 폐수에 의한 오염도 심각하다니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사람은 단 맛이 나고 물에 잘 녹는 포도당을 흡수해 간이나 근육에 글리코겐으로 저장해 두었다가 에너지가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잘라서 쓴다. 포도당은 녹색식물이 광합성으로 만들어내는 물질이다.

식물이 만든 포도당의 대부분은 뿌리와 줄기와 잎을 만드는 셀룰로오스가 되고, 극히 일부만이 후손을 위해 씨앗, 뿌리 또는 줄기에 녹말의 형태로 저장된다. 자연에서 생산되는 셀룰로오스의 양은 녹말의 10배가 훨씬 넘고,전체 식물성 물질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녹말을 몸 안으로 흡수할 수 있는 포도당으로 분해하려면 침에 들어있는 아밀라아제, 췌장에서 나오는 아밀롭신, 십이지장에서 나오는 말타아제와 같은 소화 효소가 필요하다. 그러나 쌀이나 밀처럼 단단하게 뭉쳐진 녹말은 소화효소만으로는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튼튼한 치아가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그래서 곡식을 가루로 빻아 죽을 끓이거나, 밥처럼 뜸을 들여 부드럽게 만들거나,효모를 이용해 부분적으로 분해시킨 후에 구워서 빵을 만드는 조리법을 이용한다. 그러니까 음식을 불로 익혀 먹는 일은 단순히 입맛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이 준 녹말이라는 단단한 천연 고분자 식량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묘책인 셈이다.

인류는 더 많은 녹말을 생산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왔고, 화학비료와 농약을 이용한 20세기의 녹색혁명으로 녹말 생산량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기록적인 가뭄에도 불구하고 풍년을 노래할 수 있을 정도로 농업기술이 발달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세계의 식량사정은 넉넉지 못한 형편이다.

한편 지천으로 널려 있는 나무토막이나 잡초는 셀룰로오스가 주성분이다. 섬유소라고도 부르는 셀룰로오스도 녹말과 똑같이 포도당 분자가 결합된 천연 고분자지만 적당한 소화효소가 없는 인간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그런데 자연에는 그런 셀룰로오스를 먹고 사는 생물이 있다. 버섯이나 곰팡이가 바로 그런 예고, 소나 양과 같은 초식동물의 위나 흰개미의 소화관에도 그런 미생물이 살고 있다. 그러니까 풀을 뜯어먹고 사는 가축은 그런 미생물을 이용해 남아도는 셀룰로오스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좋은 고기와 젖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초식동물을 길러서 잡아먹는 일은 단순히 문화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모자라는 녹말을 보충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의 결과다. 가축은 사람의 단백질 수요의 35%를 채워주고 있다. 만약 우리가 육식을 포기하려고 한다면 셀룰로오스를 먹고 사는 가축에서 얻고 있는 만큼의 식량을 확보할 수 있는 확실하고 현실적인 대책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가축 사료로 쓰는 옥수수와 같은 곡물은 품질이 낮아서 사람이 먹기에 적당하지 않다. 완전한 채식을 위해서는 셀룰로오스를 분해해 질 좋은 식품으로 가공하는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일시적으로 쌀이 남는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아직도 무력한 존재일 뿐이다.

李悳煥 <서강대 교수.이론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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