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국 인터넷 처벌 엇갈려

중앙일보

입력

서울경찰청 사이버 범죄수사대는 지난달 말 최모(44.무직) 씨를 구속했다. 최씨는 인터넷에 있는 남을 비방하는 글을 복사해 다른 사이트의 게시판에 옮겨놓았다가 이른바 '사이버 명예훼손'혐의를 받은 것이다.

최씨에게는 정보통신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가 적용됐다. 최씨는 지난달 1일 모 신문 인터넷 독자란에서 다른 사람이 올려 놓은 글을 보았다.

"모 구청 관내에서 건축공사를 하려면 고급술집에서 구청장을 접대하고 뇌물을 줘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최씨는 이를 퍼와 해당구청의 인터넷 게시판에 게재한 혐의를 받은 것이다.

인터넷의 글을 처음 유포한 사람에게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적용된 적은 있으나 이를 퍼나른 행위에 대해 처벌하기는 처음이다.

그만큼 인터넷과 관련된 명예훼손죄를 엄격하게 적용.해석하겠다는 것이다. 법원은 일단 구속영장을 발부했으나 향후 판결이 주목된다.

이에 반해 미국의 법원은 인터넷 이용자의 익명성까지 보호해 주고 있다.

ZDNet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대법원은 지난 8월10일 "야후의 게시판에 메시지를 남긴 사람의 신원을 밝힐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야후 게시판에는 법률회사 프리페이드 리갈서비스를 비난하는 메시지가 떴다. 프리페이드는 회사의 무역기밀을 누설한 사람의 신원을 밝혀달라고 야후에 요청했다. 야후는 인터넷은 익명성이 보장돼야 한다면서 이를 거절했다. 법원은 이에 야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야후를 대변한 EFF는 '업체를 비난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첫 번째 수정안'을 근거로 내세워 승소했다고 설명했다.

익명성을 부정하는 미 판사들도 있다. 지난 4월 미 법원은 인포스페이스에 익명으로 글을 올린 사람의 신원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뉴저지 항소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온라인 상에 글을 올리는 사람은 익명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유사한 소송은 미국에서 계속되고 있어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의 메머슨과 뉴저지의 의원 2명이 게시판에 자신을 비방한 글을 올린 사람과 게시판 관리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두고 있다.

한미의 사례는 물론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쪽은 경찰이 익명의 신원을 밝혀내 처벌했다는 것이다.한쪽은 인터넷 회사가 이용자의 신원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한쪽은 명예훼손의 문제고 미국의 판결은 익명성보호의 문제다. 하지만 이들 중 익명성의 문제가 더 포괄적이고 우위에 있는 영역의 문제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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