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뚝이 2012 ③ 사회] 위안부 비석 대신 소녀상 제안 … 역사를 오늘로 불러낸 조각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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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성(왼쪽)·김서경씨 부부가 20일 시민들이 소녀상에 씌워 놓은 귀마개를 가다듬고 있다. [김도훈 기자]

올해 한국 사회는 대통령 선거로 요동쳤다. 그 여파로 삶은 때론 힘겨웠다. 민생은 팍팍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엔 꿈과 희망과 감동을 주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삶에 활력을 주는 사람들이다. 위안부 소녀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운성·김서경씨 부부, 난해한 대학논술 문제를 교과서에서 쉽게 출제하도록 견인한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공동대표, 14년간 모은 돈을 환자 치료비로 기부한 환경미화원 이연수씨를 ‘2012년 새뚝이’로 뽑았다.

2012년 한국인들은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과 함께 울고 웃었다.

 지난 6월 일본 극우주의자 스즈키 노부유키(47)가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고 쓴 말뚝을 소녀상 앞에 꽂았을 때 다같이 분노했다. 7월 여름비를 맞는 소녀상에 우산을 씌워준 한 경찰관의 소식을 접하고선 모두의 가슴이 찡해졌다. 겨울이 오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소녀상에 털모자와 목도리를 둘러줬다.

 ‘평화의 소녀상’이 정식 명칭이지만 지금은 ‘위안부 소녀상’으로 더 자주 불린다. 소녀상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 1000회째를 맞은 지난해 12월 설치됐다. 조각가 김운성(48)·김서경(47) 부부가 공동 제작했다. 중앙대 조소학과 84학번 동기인 김씨 부부는 그동안 사회 참여적 작업을 많이 해 왔다. 김운성씨는 현재 민족미술인협회 부회장이다.

 지난해 5월 김운성씨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실을 찾은 게 제작 계기다. 당시 정대협은 집회 1000회를 기념하기 위해 비석 건립을 추진 중이었다. 김씨 부부는 “한국인으로서 위안부 할머니들께 도움이 된 적이 없어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며 “다시는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라며 소녀상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조각 작업은 쉽지 않았다. 몸보다 마음이 더 괴로웠다고 한다. 김운성씨는 “작업에 집중할수록 그 당시 소녀였던 할머니들의 고통이 그대로 머릿속으로 들어왔다”며 “너무 화가 나서 욕설이 저절로 튀어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각가의 감정은 작품에 그대로 반영됐다. 디자인 초안에 두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 있었던 소녀상은 움켜쥔 주먹을 무릎에 놓은 자세로 바뀌었다. 김서경씨는 “당시 일본 측이 소녀상 설치를 반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화가 나서 주먹을 쥔 모습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소녀상 제작에는 딸 소흔(11)양의 아이디어도 들어갔다. 김운성씨는 “동상의 그림자를 할머니 모습으로 형상화했는데 그건 당시 아내와 얘기를 나누던 중 소흔이가 아이디어를 내 채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 부부는 내년 중에 미국·독일·싱가포르 등에도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 전시할 계획이다. 8월에는 ‘위안부’를 주제로 100여 명의 미술인이 참가하는 대규모 전시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연다. 김씨 부부는 “피해자가 먼저 평화를 얘기하는데, 그들(일본 측)은 오히려 역사의 시곗바늘을 뒤로 돌리는 일만 하고 있다”고 지적한 뒤 “우리 정부도 할머니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노력을 더 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새뚝이=기존의 장벽을 허물고 새 장을 연 사람을 말한다. 독창적인 활동 으로 사회를 밝히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다. 중앙일보는 1998년부터 매년 연말 스포츠·문화·사회·경제·과학 분야에서 참신하고 뛰어난 성과를 낸 인물들을 새뚝이로 선정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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