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미국 기업인수 성공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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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디애나주 북부에 있는 인구 6천명의 작은 도시인 브레멘. 이 소도시에서 가장 크다고 하는 유니버살 베어링사(UBI)의 김윤태 사장은 최근 국내 한 기업체 사장으로부터 e-메일을 받았다.

"유익한 조언이 큰 도움이 됐으며, 아직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이르다고 판단해 투자를 당분간 보류키로 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발신인은 국내 자동차용 필터용지 제조회사인 ㈜클린&사이언스의 최재호사장. 자동차용 필터 용지 제조 회사를 인수하거나 새로 공장을 세워 북미지역 시장에 뛰어들고 싶었던 崔사장은 국내기업 해외투자의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는 UBI사를 지난 5월초 방문, '한 수'를 배웠다. 崔사장 뿐만 아니라 시카고에서 승용차로 2시간 가량 걸리는 이 곳을 찾아 UBI의 성공 비결을 묻는 국내외 기업체들이 많다.

UBI사는 어떤 회사인가.

한화그룹이 지난 1991년 2천3백50만달러에 인수한 이 회사는 당시 매출액이 1천4백만달러였으나 지난해 4천만달러로 세배가량 뛰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9백만달러를 들여 회사를 확장했고, 지분 1백%를 보유하고 있는 ㈜한화에 2백만달러의 배당금을 보내기도 했다.

국내의 많은 대기업들이 미국에 자회사를 사거나 현지 투자를 했지만 그 중에서 UBI는 아주 드문 성공사례에 속한다.

◇ 한국에서 파견된 인력은 2명 뿐=UBI에 근무하는 2백50명의 직원중 한화에서 파견된 인력은 김윤태 사장과 대(對)한국 수출업무를 담당하는 현정섭 차장 뿐이다.

한화가 이 회사를 인수했을 때의 슬로건은 '철저한 현지화를 통해 장점은 살리고 약점을 보완한다'는 것이었다. 인수당시 미국인 사장과 부사장을 그대로 두고, 양욱씨(현 한화 뉴욕지사장)를 부사장에 임명했다. 2년뒤 미국인 사장이 정년으로 회사를 그만 둔 뒤에야 양욱씨가 사장에 올랐다. 이어 97년초 사장에 취임한 金사장은 "기존의 경영진과 핵심 인력을 그대로 승계한 것이 인수 초기부터 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이었다"고 진단했다. 이 회사는 고급인력을 끌어 안기위해 가장 좋은 근로조건을 만들어 놓고 있다고 한다. 전문분야 엔지니어의 연봉은 평균 7만5천달러며, 대졸초임은 4만달러 정도며, 숙련공은 시간당 25달러 가량 된다는 것.

◇ 처음 고를 때 잘 골라야=한화 뉴욕지사가 이 회사를 선택하는데는 4년가량이 걸렸다. 뉴욕의 인수.합병(M&A) 전문 브로커들에게 2천만~3천만달러 짜리 '실속있는 회사'가 나오면 알려달라고 한 뒤 4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UBI를 발견했다.

당시 UBI는 미국 회사에 팔렸으나 연방거래위원회(FTC)의 규제에 걸려 최종 단계에서 성사되지 못했다. 한화는 이 회사에 대한 실사작업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인수했다. 매물이 나온지 6개월만이다.

당시 인수팀장이었던 이율곡 이사는 한화그룹이 과거 베어링 제조회사를 경영해 본 경험을 토대로 ▶관련제품의 미국내 시장 크기▶경쟁사의 경쟁력 ▶매출 이익규모 등 기본적인 사항을 처음부터 잘 따져 보았던 게 성공의 비결이었다고 설명했다.

◇ 미국식 직장 문화 존중="매일 출근하면서 한국적 사고방식을 버려야 한다고 다짐한다"고 UBI 金사장은 말했다. 대리-과장-부장-이사로 이어지는 관료적인 일처리 스타일을 미국 종업원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것.

지난달 11일 테러사건이 터진 날 종업원들이 일손을 멈추고 TV를 시청하며 모금을 할 때, 회사측은 종업원들이 모은 성금 만큼을 회사 성금으로 보탰다. 작업반장 스티브 함멜은 "회사가 종업원들에게 일을 알아서 하게끔 자율적으로 맡겨 일할 맛이 난다"면서 "외국인 회사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브레멘(인디에나)=김동섭 기자 don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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