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있어 사는 것이 행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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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에' 영화의 묘미를 듬뿍 선물한다.관객을 행복하게 하는 힘이 대단하다.일상의 잡다함을 그리면서도 너저분하지 않고,환상적인 화면을 빚어내면서도 두 발은 이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다.

종교적 용어를 빌리면 성(聖) 과 속(俗) 의 변증법이라고나 할까.유쾌한 상상력으로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하고,삶에 대한 각별한 애정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데운다.


'아멜리에'는 올해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을 살린 영화다. 관객 8백여만명을 동원하며 프랑스 영화의 자국 시장 점유율을 50%대로 끌어올렸다. 대중적으로 크게 성공한 영화라는 얘기다.

그런데도 '아멜리에'는 전혀 대중적이지 않다. 숱한 흥행대작들이 안식처로 기대는 상투성을 찾아볼 수 없다. 예컨대 빈약한 줄거리를 현란한 화면으로 메꾸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색깔부터 다르다.

뤽 베송으로 대표되는 프랑스 흥행감독들이 할리우드의 스펙터클을 원용해 성공한 적이 있지만 '아멜리에' 같은 풋풋한 감동을 전한 적은 많지 않았다.

전대미문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우리 영화계도 내친 김에 이처럼 아기자기한 작품을 만들었으면 하는 부러움마저 인다.

'아멜리에'는 단순한 영화다. 목석 같은 아버지와 히스테리가 강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멜리에(오드르 토투) .

어린 시절을 외롭게 지내며 공상만을 낙으로 알고 자랐던 그가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카페에 취직한 후 주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작은 모험을 펼친다. 남에겐 기쁨을 선물하는 천사 같은 소녀지만 정작 자신의 행복 앞에선 주저주저했던 그의 사랑찾기로 막을 내린다.

반면 영화적 장치는 매우 정교하다. 평범한 내용을 비범하게 꾸려가는 연출력이 주목된다.

아멜리에의 출생을 설명하는 도입부부터 그렇다. 부모의 성격, 아이의 성장 과정을 스타카토식으로 딱딱 끊되, 향후 아멜리에의 행로를 짐작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같은 긴장감은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아멜리에의 선행을 추적하다 보면 절로 엔돌핀이 발생한다.

벽장에서 발견한 장난감을 40년만에 주인에게 찾아주고,담배 파는 카페의 우울증 여종업원과 스토커 남성을 맺어주고, 어머니를 잃고 외롭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위로하고, 40년 전에 도망간 남편을 원망하는 아파트 관리인 아줌마에게 남편이 보낸 것처럼 꾸민 가짜 편지를 전달하고 등등.

출세하지 못한 3류 소설가, 방에만 틀어 박혀 그림을 그리는 무명화가 등 몽마르트 주변의 묘사도 정겹다.

부박한 유머, 덜익은 농담이 아닌 삶에 대한 온축에서 뿜어나오는 상상력이 일급이다. 환상과 현실의 아름다운 만남을 보여준다.

감독은 '델리카트슨''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일리언4'등을 연출한 장 피에르 주네.전작들의 우울한 분위기를 말끔하게 씻어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두근거리는 심장,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연인 앞에서 물기둥처럼 무너지는 몸 등의 특수효과도 익살스럽다. 아멜리에가 그리워하는 괴짜 남성으론 감독으로도 유명한 마티유 카소비츠가 출연한다.

단발머리에 톡 튀어나온 코, 쑥 들어간 눈의 오드르 토트는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19일 개봉. 18세 관람가.

■ '아멜리에' 커플 시사회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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