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사람들] 클럽 수리 전문가 엄광진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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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헤드가 골고루 마모되고 그립이 깨끗하다면 틀림없이 차분한 사람입니다."

30여년 동안 골프 클럽만 전문적으로 수리해온 서울 청파동 청파골프수리소 엄광진(50)사장은 골프 클럽만 봐도 주인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엄사장이 골프 수리를 처음 시작한 건 1968년.

일본에서 골프숍을 운영하던 할아버지가 "일찌감치 기술을 배워놓는 게 돈버는 길"이라며 엄씨를 일본으로 불러들였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선 골프클럽 한번 구경하기도 힘들 만큼 골프는 생소한 스포츠였지만 무작정 일본으로 건너가 골프클럽 제조와 수리 기술을 일본 기술자들에게 배웠다.

2년 뒤 귀국해 의욕적으로 시작한 골프 클럽 제조공장은 내수가 워낙 없는 데다 수출길도 뚫지 못해 몇개월 못가 정리해야 했다.

그 후 몇년 동안 골프숍 AS 기술자로 일하던 엄사장은 70년대 말 부인 박정순씨와 함께 청파골프수리소를 개업, 골프 클럽 수리에 전념했다. 요즘에는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골퍼들이 찾아와 골프 클럽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고 한다.

엄사장은 "몇몇 선수들은 내가 클럽을 손질해주고 나면 공이 잘 맞는다며 슬럼프 때마다 찾아온다"고 말했다.

95년부터는 아들 홍기(28)씨도 수리소에 나와 수업을 받고 있다. 홍기씨는 처음에는 6~7평 남짓한 좁고 칙칙한 공장에서 하루 종일 클럽만 만지작거리는 일을 하기엔 너무 젊었던지 내키지않아 했지만 요즘은 웬만한 수리는 직접 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자가 됐다.

골프 실력이 80대 후반인 엄사장은 "아들이 가업으로 이 일을 이어받는다고 해도 사업을 확장할 생각은 없다"며 "이 일로 큰 돈 벌 뜻은 없고, 단골 골퍼들의 골프 클럽 의사 역할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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