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처벌 가벼워 불공정 거래 부추겨

중앙일보

입력

지난 8월말 미국 법원은 주식 불공정거래 사건에 대해 주목할만한 판결을 내렸다.

그 내용은 제조업체 칠테크인더스트리가 '냉각캔'관련 첨단제조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는 허위사실을 유포시켜 부당이득을 챙겼다는 것. 국내 투자자들의 귀에 익은 내용이다.

지난해 검찰 수사를 받았던 ㈜미래와 사람이 추진했던 바로 그 기술이었다.

미 법원은 리 가르 대표이사에게 회사 주식을 팔아 남긴 부당이득 24만6천달러를 토해 내는 것은 물론 같은 금액을 벌금으로 내라고 명령했다.

최근 국내 법원도 허위사실을 유포해 주가를 5배이상 끌어올린 미래와사람 전이사 H씨에게 2천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비슷한 사안을 놓고 한.미 양국의 사법부가 내린 처분은 사뭇 달랐던 것이다.

비단 미래와 사람뿐만이 아니다.

최근 주식 불공정거래가 부쩍 늘었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턱없이 가볍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가 지난 1998년 1월 이후 올 7월말까지 금융감독원이 검찰에 고발(89건).통보(2백10건).수사의뢰(42건)한 불공정거래 사건 중 법원 판결이 끝난 14건의 검찰기소내용과 판결 내용을 비교한 결과,부당이득을 토해낸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대부분 불공정 행위에서 얻은 시세차익에 한참 못미치는 벌금만 냈을 뿐이다.

지난해 문제가 됐던 삼부파이낸스 사건의 경우 대표이사 등 내부거래자들이 재무제표 허위표시 등으로 투자자들을 현혹시켜 90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 그러나 법원은 회사와 대표이사에 각각 3천만원 및 2천만원의 벌금형만을 선고했다.

외자유치 실적 등의 허위사실을 유포해 주가를 조작, 27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테라의 대표이사 등에 대해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하지만 시세조작 관련자들은 부당 이득금을 한 푼도 반납치 않았다.

대신증권의 한 관계자는 "주가조작으로 수십억을 벌었는데도 몇천만원 벌금을 내는 현실이 불공정거래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사법당국이 이처럼 불공정거래를 하는 사람에게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내릴수 밖에 없는 것은 이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수사기술의 문제 때문이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금감원이 확보한 혐의가 범죄사실을 구성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어서 기소자체가 어려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법원이 주식 불공정거래에 대해서는 다른 경제사범에 비해 비교적 관대한 자세를 보이는 것도 문제라고 그는 덧붙였다. 실제로 증권거래법에는 불공정거래 행위와 관련, '취득한 부당이득(또는 회피한 손실)의 3배에 달하는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다'고 돼있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발 빠르고 강도 높게 불공정거래를 응징하는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신한증권 정의석부장은 "미국.영국 처럼 감독 당국이 필요할 경우 불공정행위자에 부당이득 전체를 과징금으로 징수시킬 수 있도록 '민사제재금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제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제도 처럼 증권감독당국이 불공정행위를 포착하면 사법당국에 통보하지 않고 막바로 부당이득금과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임봉수.이희성기자 lbso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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