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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사회|이만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근대화에 관해서 지금까지 많은 논의가 전개되어왔다. 그러는 동안에 사람들의 생각이 퍽 정리되고 또 각자의 의견이 어떤 점에 있어서는 훨씬 접근해 가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이 토론은 앞으로도 꾸준히 전개되어야 합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근대화는 끝없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이 말해서 최근 떠드는 「근대화」는 마치 마약의 효능을 선전하는 문구처럼 들리기도 하고 혹은 공허한 정치적 주문 같기도 하여 그러다가 「훌라후프」모양으로 시들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이제부터는 근대화를 전제하면서 세계의 움직임과 그 안에 놓여 있는 우리의 현실을 다면적으로 세밀히 분석·구명하는 작업이 긴요하지 않을까 느껴진다.
일례를 들어 최근 정치지도자들은 중산계급의 위치와 역할을 극히 중요시하기 시작하여 그를 정당의 계층적 기반으로 삼으려는 뜻을 요란스러운 어조로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중산계급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 나라의 인구 층을 그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에 따라 상·중·하로 크게 나누어 볼 때 중에 속하는 층이 여론형성의 기반이 되고 있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더 깊이 파고 들어가서 보면 중에 속하고 있는 층은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문제에 따라 그들 안에 있어서도 상당히 상반되는 입장에 서게 되는 일이 적지 않다고 짐작된다. 직업과 수입 그리고 교육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구성하는 요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인이겠지만 그 세 가지 요인에서만 해도 중간에 속하고 있는 층은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단 중산계급이라고 하나로 묶어서 말하지만 실제에 있어서 봉급생활자, 개인적인 점포의 경영자, 「서비스」업자, 농촌의 자립적인 농민은 서로 다른 생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요소들이 각각 어떤 생리를 갖고 어떤 상황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가를 모르고 근대화 작업을 위한 보다 세밀한 계획을 추진할 때 경우에 따라서는 엉뚱한 반응이나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러므로 근대화에 관해서 더 실질적인 내용을 갖는 토론을 의도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근대화의 실효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극히 유동적이다. 계층의 이동성만 보더라도 그렇다.
현재 사회의 상층에 앉아 있는 사람도 그들의 대부분은 한국전쟁 후에 중의 계층으로부터 상승한 사람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 중의 어떤 부분이 다시 본래의 계층으로 하강하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만큼 그들은 불안정한 상태에 있다.
그리고 중의 계층에 있는 사람도 상으로 올라가려는 강한 의욕을 가지고 있으면서 현재의 불안정한 상태에서 심한 불안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 하의 계층은 대충 잡아서 6, 7할을 넘는 두터운 인구층 이지만 실제로 여론형성에 아직 기여하고 있지 못한 층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보다 높은 계층으로 올라가려는 의욕은 더 강해질 것이다. 사실상 하위계층의 사람들 중에서는 중산계층의 그것과 별로 차가 없는 의식수준에 도달해 가는 사람이 급격히 증대하고 있다. 그러한 사람에게 물질적인 혜택이 주어지지 않으면 사회불안이 더 증대할 것은 뻔한 일이다.
대통령은 연두교서에서 퍽 낙관적인 전망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 성장만 보면 통계숫자 는 그런 낙관적인 견해를 가능케 하는지 모른다. 그리고 경제적인 성장은 경제의 틀이 어느 정도 잡히고 유용한 요소를 적절히 배합해서 시동하기 시작하면 의외에 빠른 속도로 진행하는 것 갈다.
그러나 과연 그처럼 틀이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잡혀있다고 할 수 있는가가 문제다. 혹은 경제성장을 위한 악착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다나은 생활을 갈구하는 인구의 급증으로 말미암아 불만 의도는 더 증대하게 될는지 모른다. 지금의 중요한 사회적 갈등은 전체 인구의 20여%되는 중산층의 불만에서 주로 야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당장 호구지책에 급급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등한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물론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더 긴요한 것은 지도자들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대중과 같은 입장에 서서 고난을 이겨 나갈 기개와「모럴」그리고 성공적인 방책을 확립하여 실천에 옮길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구체적으로는 그것을 집행하게 될 행정적 관료체제를 싱싱하고 능률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된다. 모든 유용한 자원과 권력, 기타의 중요한 수반을 쥐고 있는 행정기구가 썩고 빈곤한 두뇌를 가지고 있다면 그 나라의 근대화가 촉진될 리가 없다.<서울대 문리대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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