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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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회의 통역사 최정화씨(46)는 1978년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도불,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파리Ⅲ대학 통역번역대학원에서 국제회의 통역사 자격증과 통역번역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6년부터 2000년까지 9차례에 걸친 한·불 정상회담에서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대통령 등 한국 정상의 입장을 명쾌하게 전달했으며, 1천5백여 회에 달하는 국제회의에서 한·불·영 동시 순차 통역을 수행했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편집자 주

한국외국어대학교로 대학 진학을 결정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어려서부터 어학에 대한 매력을 느끼셨는지요.
고교성적도 꽤나 좋았는데 당시 서울대에서 처음 실시한 계열별 모집의 인문계에 응시했다 떨어졌어요. 요즈음처럼 종합대학이 아닌 한국외국어대는 당시 평판이 좋아 재수할 생각도 않고 그냥 응시했어요. 고 3 생활을 또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또 외국어, 즉 말이 좋았고 문학보다는 언어 그 자체에 끌려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았죠.

통역사를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고 결정하신 것은 언제였나요? 또한 그 결정에 영향을 미친 분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국제회의통역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후 갈수록 재미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아 활동 시작과 함께 마음먹었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신 은사 셀레스코비치 교수님의 카리스마에 압도됐던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전 세계를 통틀어 학위취득자가 34명에 불과한 파리Ⅲ대학 통역번역대학원 통역번역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셨지요. 당시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였고 무척 어려운 과정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통역번역활동을 하다보면 이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집니다. 이론과 실제를 접목시켜야 통역사로서 온전한 몫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한국어와 서양어의 차이 때문에 동시통역이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둥, 커뮤니케이션 행위로서의 통역 본질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에 '그게 아닌데' 하는 감은 오는데 제대로 된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저 자신부터 이론을 잘 알아야 했죠.

파리Ⅲ대학 통역번역대학원에서의 학습과정은 관련분야에 대한 제반 서적을 읽고 언어를 도구로 의사소통을 하는 행위 전반을 다룹니다. 인간의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인지 활동에서부터 메시지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제반 지식에 이르기까지 종합적·복합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죠.

처음 통역사로 일을 시작했을 때는 언제이며 무슨 일을 맡으셨는지요?
1979년 파리에서 아직 통역번역대학원 2학년에 재학 중일 때 어업협정을 통역했습니다. 그 당시 제 나이에는 별로 관심도 없었던 원양어업에 관해 통역하느라 어려웠지요. '어획톤수, 종업일' 등 사용되는 어휘도 생경했고요.

통·번역과 관련한 저서만 14권에 달하는 등 왕성한 저술활동을 펼치셨는데, 이번에 『최정화 교수의 통역·번역 노하우』(넥서스)를 출간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냈지만 본격적으로 이론을 다루진 않았고, 또 작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에서도 박사과정을 개설했는데 마땅한 이론서가 없었어요. 실제와 이론을 접목시킨 심도 있는 책이 필요해 1년 간 준비해서 펴냈지요.

'최정화교수의 통역 노하우'에는 사람들이 자주 혼동하는 동시통역사와 국제회의통역사의 개념, 통역사의 직업 윤리, 통역사가 갖춰야 할 기본 매너, 국제회의 통역용어에 대한 설명 등을 실었고, '최정화교수의 번역 노하우'는 번역의 본질과 성공적인 번역 방법 등을 다뤘어요. '통역·번역교육 이렇게 한다'에서는 현장에서 순차통역, 동시통역, 일반번역, 전문번역 등을 교육할 때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실용적인 부분 등 교육자 입장에서 필요한 부분을 정리했습니다.

책을 '몸통'과 '깃털' 로 구분하신 것이 흥미롭습니다. 어디에서 아이디어를 얻으신 건가요?
항상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는 것은 눈에 쉽게 보이는 깃털인데, 몸통도 제대로 알아야 되겠다고 생각해서 '몸통+깃털'로 나눴어요. 『최정화 교수의 통역·번역 노하우』의 경우 몸통은 본책에 해당하고, 깃털은 별책 미니북 『Dr. Choi's Special Gift』입니다.

별책 미니북에서는 제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Q&A' 중 통·번역사 지망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문제에 대한 답과 국제회의 통역사들이 쓰는 용어 설명을 담았습니다.

저서를 보면 김대중 대통령, 블레어 영국 총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주룽지 중국 총리 등 '통역사 친화적인 정상'들을 언급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통역하시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분을 한 분만 꼽는다면 어떤 분이신지요?
미테랑 대통령입니다. 1993년 한국을 국빈 방문하셨을 때 대전엑스포에 참석하시느라 헬기를 타야했는데, 그 시끄러운 헬기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25분 정도 독서 삼매경에 빠지시는 것을 보고 뭉클했습니다. 누구도 그 짧은 시간에 그 시끄러운 환경에서 고공독서를 할 생각은 못했었는데 말입니다.

처음 일을 시작하는 통·번역사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일을 맡게 됩니까?
학교 교수님들이나 선후배들을 통해서 알음알음 일을 받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자신의 네트워킹 관리 능력에 따라 일의 많고 적음이 좌우되지요.

'외국어→모국어' 방식의 번역서는 많지만 '모국어→외국어' 방식은 많지 않음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책을 번역하실 계획이 있는지요?
세계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려면 '모국어→외국어' 번역을 많이 해야합니다.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없지만 기회가 되면 영어로 통역·번역에 대한 생각을 출판할 생각도 갖고 있어요.

통역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순간적인 분석종합 능력, 순발력, 집중력, 적응력, 지구력, 담력 등입니다.

한국외국어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많은 학생들을 지켜보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통역사 지망생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통역 능력은 순간에 인정받는 놀라운 능력임에는 틀림없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능력을 갖추고도 겸허할 수 있어야 하고, 남을 배려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능력이 남을 위해 사용되고 상호 이해에 기여하며 발전에 일조한다는 데서 보람을 느껴야 합니다.

앞으로의 출간계획이 있다면 소개해주십시오.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체득해야할 논리적인 의사 표현에 관한 책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논리적인 의사 표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경쟁력이기 때문이죠. (고경원/ 리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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