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 헌법은 누더기가 되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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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언론개혁 문제를 둘러싼 지식인들의 논의를 비판하며 "나이 오십에 싸움닭이 될 결심을 했다" 고 밝혔던 영남대 법대 박홍규 교수가 신간 『그들이 헌법을 죽였다』로 자신의 전공인 법학계에도 선전포고를 했다.

주 표적은 '헌법학 교과서' 로 여겨지는 네 권의 책 - 『헌법학원론』(권영성) .『헌법학개론』.(김철수) .『신헌법학원론』(박일경) .『한국헌법론』(허영) 이다.

"문제는 살헌(殺憲) 이 이미 무감각하리만큼 일상화해 있다는 점이다. 정치가들은 곧잘 헌법에 어긋나는 위헌 법률을 만들고 위헌 정치를 하며 심지어 헌법 개정을 주장한다. 재판관들은 헌법을 왜곡해 위헌 재판을 한다. 학자들도 헌법을 멋대로 해석해 위헌적인 책을 쓰고 역시 헌법 개정을 주장하곤 한다. "

박교수는 특히 생소한 독일학자들 이름과 의미없는 말로 우리 헌법을 멋대로 칼질하고 있는 헌법학책들이 학생들을 "말장난이나 일삼는 헌법의 망나니로 재생산" 하고 있다고 개탄한다.

노동법 연구자인 박교수가 그간 내온 전공 관련서 중 이 책처럼 도전적인 내용을 담은 경우는 없었다. 게다가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저서들, 즉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내 친구 빈센트』.『오노레 도미??등이나 번역서 『오리엔탈리즘』(에드워드 사이드) 을 기억하는 독자들이라면 거칠게까지 느껴지는 신간의 문체는 낯설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모든 저작에서부터 이 책까지 관통하는 하나의 맥이 있다. 바로 박교수의 인간에 대한 사랑, 인권을 모든 것의 우위에 놓는 생각이다.

이를테면 그는 헌법을 '인민이 인민을 위해 만든 인민의 법' 이라고 규정한다. "서로 다른 인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공생을 보장하기 위한" 우리 헌법의 총 10개 장 가운데 그가 가장 중요한 내용이라고 보는 부분도 '인권' 에 관한 2장이다.

그런 맥락에서 박교수는 "유신헌법이 싫었듯이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박탈하는) 북한 헌법이 싫다" 면서, "아무리 통일이 시급해도 현재의 북한정권을 인정하는 통일은 거부한다" 고 밝힌다.

공격적인 그의 글에 다소 거부감을 느낄 독자라도 "완벽한 헌법은 없다. 부족하면 그 내용을 법률.재판.학설로 보충해 완벽하게 만들자" 며 헌법 사랑을 강조하는 그의 주장은 한번 귀기울여 볼 만하다.

그의 말처럼 우리 헌법은 개정하기가 힘든 '경성' 헌법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난 반세기 동안 무려 아홉번이나 '죽음' 을 당해오지 않았던가.

그것도 내력은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직선제냐 간선제냐, 임기를 두번.세번, 아니면 영원히 허용할 것이냐, 4년.5년.7년으로 할 것이냐 등 주로 권력 담당자를 어떻게 바꿀까 하는 문제로 말이다. 이 책에 언급된 학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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