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영화배우 안성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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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흑수선' 촬영으로 바쁜 요즘, 그나마 추석 연휴 덕분에 오랫동안 미뤄놓은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도서관 콘텐츠 확충과 책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본부' 의 홍보 포스터를 지난 일요일 찍은 것이다. 영화 외의 사회활동은 유니세프쪽 일만 조금 돕고 있는데, 이번 일은 그 취지가 워낙 좋아 요청을 흔쾌히 승낙했었다.

책의 재미를 발견한 건 군대 시절이다. 1974년부터 2년간 강원도 금화지역의 산꼭대기 OP(전방관측초소) 에서 복무하면서 경계근무 틈틈이 여유가 좀 있었다. 마침 당시는 문고판의 전성기였다.

김동인.염상섭 등 우리나라 작가들의 단편소설부터 카뮈.사르트르의 장편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독파하기 시작했다.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은 것도 그 무렵이다. 사관학교를 지원했다가 실패한 '나' 와 부잣집 아들인 대학원생 '안' , 그리고 아내의 시체를 팔고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하고 마는 '아저씨' 등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그의 문학세계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또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읽으며 조국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입장에 공감했었는데, 지금도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흑백논리 속에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 작품을 떠올리곤 한다.

아무래도 내 감성엔 소설이 맞는 것 같다. 영화일과도 관련이 많다. 영화 '고래사냥' 등을 찍으며 인연을 맺은 원작자 최인호씨와는 호형호제하며 지낸다. 최근에 나온 그의 소설 『상도』(여백미디어) 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후배들에게 특히 단편소설들을 많이 읽어보도록 권하는데, 기승전결의 구도가 명확해 시나리오를 보는 안목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나 역시 문학사상사에서 나오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은 매년 빠짐없이 찾아 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책 읽는 시간이 줄고 있다. 그래도 이번 홍보사진이 잘 나와 우리 사회에 독서바람을 일으키는데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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