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릴열도 꽁치조업위기] 정부 손놓고 있다 뒤통수

중앙일보

입력

한국의 꽁치 원양어업이 심각한 파산위기에 몰렸다.

일본과 러시아의 '밀약' 에 의해 연간 꽁치 원양 어획량의 40%를 차지하는 쿠릴열도 남부수역에서의 꽁치조업이 내년부터 전면 중지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우익역사교과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에 대해 백배 양보해 최근 고이즈미의 방한 요청을 수용했던 한국 정부로서는 엄청난 뒤통수를 맞은 셈이 돼 한.일관계가 전례없이 악화될 전망이다.

이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지난달부터 제기됐음에도 한국 외교당국은 수수방관한 것으로 밝혀져 대일 외교전선에 이상이 있음이 드러났다.

◇ 과정〓쿠릴열도 남부수역에서의 꽁치분쟁은 지난해 12월 한국.러시아가 어업협정으로 한국 어선의 꽁치조업(1만5천t)을 합의하자 일본이 항의하면서 벌어졌다.

한국은 "한국 민간업체들은 1991년 일본이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발표한 후에도 러시아 민간업체들과 계약을 하고 이 지역에서 꽁치조업을 해왔으며 정부차원으로 바꾼 것에 불과할 뿐 일본.러시아간 영토분쟁과 무관하다" 고 주장했다.

또 일본도 17년 전부터 어업자원 보존금 명목으로 매년 돈(지난해 3억엔)을 내고 이 지역에서 꽁치조업하고 있는 점을 강조했다.

일본은 "영토 침범" 임을 주장하며 한.일간에 합의했던 산리쿠(三陸)에서의 한국 어선 꽁치조업을 금지하는 보복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북한.대만에도 조업권을 주자 고이즈미는 지난달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일본과 러시아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다" 는 친서를 보내는 등 강력하게 반발해 왔다.

◇ 배경.파장〓일본은 외교적 채널을 통한 타결이 어려워지자 돈을 내세운 해결책을 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에 보상을 해주고 다른 나라에 조업권을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러시아는 일본과의 외교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내년 이후에는 조업을 허가하지 않기로 기본방침을 정했다" 고 보도했다.

그러나 러시아와 일본이 사실상 밀약에 의해 결정함에 따라 외교적 파문이 클 전망이다.

◇ 외교 문제점〓이 문제가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달 주일 한국대사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외신에 보도된 내용을 처음 밝히면서다.

의원들은 외신보도를 인용해 "한국 등이 일본에 주는 조업료를 일본이 대신 주고 러시아가 조업권을 주지 않기로 했다는데 사실이냐" 고 따졌다. 주일 한국대사관측은 이에 대해 "확인하겠다" 고 응답했으나 수수방관하다 결국 당한 셈이 됐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day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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