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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고지를 점령하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7일 제3대대 9중대는 「베트콩」 진술에 따라 남방 15「킬로」 해안선 B지역 동굴 수색에 나섰다. 커다란 선인장과 이름 모를 가시나무로 뒤엉킨 산악사이에 암석으로 엉킨 바위틈을 뒤지기 6시간, VC (VIET CONG)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VC가 활개치던 인적 끊긴 텅 빈 마을을 들어서면 아군의 식량이 될까봐 두려워서인지 VC가 사살 (?)한 돼지가 네다리를 하늘로 뻗친 채 썩어가고 있었다.

<마을은 지킬 것>
마을에서 산으로 뻗어간 계곡에는 지나간지 얼마 안 되는 맨발 자국이 있었건만 나뭇가지를 스치는 바닷바람만이 스산할 뿐.
중대원들은 썩어 가는 돼지를 보며 지고 가던 배낭을 툭툭 쳤다. 『C「레이션」으로 공복을 채울 망정 마을에 있는 것에는 손가락 하나 다치지 않는게 해병의 신조』라고 빙긋 웃었다.
마지막 수색 목표인 고지 앞에서 야간에 잠복 근무 할 1개 분대가 능선에 진을 쳤다. 하오 4시 「헬리콥터」가 날아와 몸을 2대대로 옮겼다. 끊어진 철교 옆에 자리잡은 참호 속에 제2대대장 오윤진 중령이 통신기를 귀에 댄 채 시선을 Y고지로 옮기고 있었다. 제2대대 제5중대는 정예를 자랑하는 산악 중대-사람의 발길조차 들어놓지 않은 것 같은 험준한 산악 Y고지 정상을 5중대는 향하고 있었다.
『앞으로 몇분이면 정상에 도달하는가? 고만』-대대장. 『15분이면 도달하겠습니다. 고만』 -5중대 CP.


정확하게 15분 후 멀리 Y고지 정상에서는 정복을 올리는 오색 연막탄이 구름으로 덮여 어두워진 하늘로 피어올랐다. 하오4시 반. 망원경에서 눈을 뗀 오 중령은 나의 손을 잡고 뜨거운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1월1일 작전 개시일부터 부하의 생명을 뺏어간 Y고지-원한에 사무친 산이기에 정복했다는 신호탄이 올라가는 순간 강철같은 사나이의 가슴에도 뭉클한 감회가 솟아 올랐나보다.

<태극 고지 명명>
대대 CP로부터 곧 「헬리콥터가 날아와 고지 정복을 축복하는 「크라운」 맥주 상자를 싣고 올라갔으나 착륙할 장소가 없었다. 「헬리콥터」는 태극기 한 폭을 던져주어 Y고지 정상에 게양하도록 하고 귀로에 올랐다. Y고지는 처음으로 한국 해병의 손에 의해 정복되어 「태극 고지」가 된 것이다.
이날 하오 비가 쏟아지는 1번 도로는 피난민의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베트콩」 점령 지역에 「비라」를 공중 살포하여 백기를 들고 하오 6시까지 안전지대로 나오라는 것.
「투이·호아」 남방로 17「킬로」「하오·손」 (HOASON) 부락에서만 2백90여명이 제한시간 이후의 폭격을 피하여 1번 도로를 따라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들이 맨 광주리에는 쌀, 돼지, 닭, 개, 어린이들이 매달려 있었다.

<잘려나간 도로>
8일 상오 적의 수중으로부터 되찾은 l번 도로를 따라 Y고지 밑까지 20「킬로」를 「드리쿼터」에 몸을 싣고 달려갔다. 「베트콩」의 소행으로 도로는 군데군데 톱니모양 잘려져 흙으로 보수한 자리가 보였다. 고요한 정적만이 무기미하게 도로를 덮고 있었다.
지나면서 보이는 마을은 폐허. 전쟁의 참혹한 발톱이 사정없이 할퀴고 간 자국만 남아 있었다. 그렇게도 해병의 뒤만 따라다닌다고 눈총을 받던 월남 정부군만이 마을에서 잡은 닭을 걸머지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뿐이었다.

<8일만의 휴식>
1번 도로 작전을 수행한 제2대대 6중대는 여단 CP 남방에 나와 8일만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봉출 여단장이 맥주 상자를 싣고 중대를 찾아갔을 때 마중 나온 중대장 장순규 대위는 계급장을 보고 나서야 중대장이라고 알아볼 수 있을 정도. 붉어진 눈은 수면부족에서 오는 것인지 이 자리를 같이 못한 부하들을 생각해서인지….

<빗발치는 적탄>
하오 3시 제3대대 10중대는 B지역 「푸혹·지앙」 6지역 동굴을 수색하고 있었다. 갑자기 제2소대 정면 동굴로부터 적이 사격을 가해왔다. 총탄은 좌우 고지로부터도 쏟아졌다. 기습을 당한 소대원이 그 자리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2명이 치명상을 입고 쓰러졌고 1명이 경상. 총탄은 「정글」에서부터 무수히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베트콩 비명만>
적은 어느 곳에 있는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날카로운 소리가 머리 위를 지나가고 주의의 논에서는 총탄이 떨어져 물이 튀고 있었다. 아군의 총구도 일제히 불을 뿜었다. 찌푸린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밀림 속에서는 아군의 총탄을 받고 쓰러지는 적의 단말마적인 비명이 들려왔고 호각소리도 나고 있었다.
좌측으로 우회하던 1소대는 2소대가 포위기습 된 것을 알고 급히 적의 후방으로부터 공격해 나왔다. 소대장 김영언 소위가 선두-고지 꼭대기로 치달려 올라왔다. 불의에 후방을 교란 당한 적은 총기를 사방에 대고 난사하는 듯했다. 1소대 한기호 1병이 총상을 입었다.

<원수는 갚는다>
땅거미가 진 후 중대 CP로 돌아온 부하의 시체를 보고 중대장 한국도 대위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자리에서 야영- 내일은 원수를 갚자』-쉰 목소리로 입을 갈듯이 튀어나왔다.
전사자의 주머니에서는 몇번이고 되새겨 읽었을 것 같은 편지뭉치, 그리운 사람들의 사진 등이 나왔다. 고향에 돌아가면 하고픈 말도 하고픈 일도 많았으련만 이제는 이름모를 벌레들의 울음소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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