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의 현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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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동물은 두 가지 원칙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땅에서 떠나 살든지 땅에 붙어서 살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그래서 조류는 하늘을 날아다니고 네발 가진 짐승들은 땅을 기어다닌다. 그런데 여기 예외적인 하나의 짐승이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 두발은 땅에 붙이고 나머지 두 발(손)은 허공에 떠있는 직립동물이다. 즉 인간은 하늘과 땅의 어중간한 중간지점에 서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성질이라 할 수 있다. 땅과 하늘을 동시에 살고있는 동물이기에, 인문은 인문독자의 문명을 갖게된 것이다. 생김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정신도 그렇다. 「하늘」은 이상이요, 「땅」은 현실이다. 인간이 이상만 바라보고 산다면 풍선처럼 그 문명은 벌써 터지고 말았을 것이다. 또한 현실에만 얽매여 있다면 산악처럼 한치도 그 문명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땅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상과 현실을 융합하는데서 문화의 열매는 맺어지게된다.
박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보면 우리의 미래가 이상화되어있다. 70년대에는 한국이 「풍요한 사회」가 되리라는 것이다. 미래뿐만 아니라 지나온 나날들도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다. 국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다는 면에서 「이상의 하늘에 떠있는 구름 같은 언어」를 너무 탓할 필요는 없을 줄 안다.
문제는 현실을 이상화하기는 쉬워도 이상을 현실화하기란 한층 더 힘이 든다는 것이다. 시인은 현실을 이상화하고, 정치인은 반대로 이상을 현실화하는 사람이다.
시인이나 철학자는 진리를 찾는 사람이요, 정치가는 그 진리를 증명하는 사람,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박대통령의 연두교서를 들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현실의 이상화」보다 「이상의 현실화」에 더 「액센트」를 두었더라면 싶은 아쉬움이다. 정치가의 연설문이 한편의 시가 되어서는 안되겠다. 위정자들은 물가를 올리는 그런 현실화보다, 이상의 현실화에 더 노력해주었으면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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