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기득권 총집결체 대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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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호 04면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14일 서울 서교동 ‘인문까페 창비’에서 만났다. 그가 이끄는 ‘창비’(창작과 비평사의 후신)가 올해 만든 이곳에선 문재인·안철수 측 인사들이 ‘새정치 공동선언’을 논의했다. 야권에서 그와 창비가 차지하는 위치를 보여준 풍경이다.

‘진보 진영 좌장’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번 대선을 어떻게 보나.
“낡은 시대를 새 시대로 교체할 수 있느냐가 이번 대선의 핵심이다. 박근혜 후보조차 시대교체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권교체를 안 하고 시대교체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은.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 지난 5년간 공공성이 처참하게 파괴됐다. 또 하나는 소통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에게 뼈저리게 가르쳐준 게 소통할 줄 아는 대통령이어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대한 통찰도 중요하다.”

-2013년 체제는 어때야 한다는 건가.
“2013년 이후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보자는 건 국민의 여망이다. 2013년 체제는 87년 체제에 대비되는 표현이다. 1987년 6월 항쟁 후 정치적으로 민주화되고 경제적 자유가 늘어나고 남북관계도 개선됐는데 지금 한계에 달해 혼란이 심각하다. 이걸 확 바꾸자는 뜻에서 2013 체제란 말을 썼다. 대중이 알기 쉽게 ‘희망 2013’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국민의 최대 관심사는 민생문제다. 그런데 경제민주화, 새 정치, 남북관계 개선이 모두 민생과 연계되어 있다.”

-왜 박근혜 후보는 아닌가.
“박 후보의 품위 있는 자세는 이명박 대통령과 대조된다. 그런데 소통 안 하기는 박 후보도 이 대통령 못지않다.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이념 대결을 조장한다. 원칙과 신뢰를 중시한다면서도 MBC 파업이나 민생법안 처리할 때 말을 바꾸는 등 믿기 어렵다. 박 후보가 된다면 남북관계는 지금보다 좀 나아질 거다. 하지만 개인 의지와 관계없이 새누리당은 낡은 기득권 세력의 총집결체다. 본인이 대표하는 세력이 시대 흐름에 안 맞는데, 통찰력이 부족해 스스로 속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제민주화를 한다는데 김종인 박사를 선거에 이용하고는 주장하는 핵심은 빼버렸다. 독재자의 딸이라 안 된다 말하는 게 아니다. 2013년 체제엔 안 맞는 후보다.”

-원탁회의는 왜 만들었나.
“작년 7월 여러 사람이 뜻을 모았다. 2013년 새 시대를 여는 설계를 하는 데 필수조건으로 2012년에 승리해야 하지만 선거 승리에 몰입해서는 승리마저 놓친다는 취지였다. 4·11 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한 것은 야당과 시민사회 상당수가 어떻게든 선거연대를 만드는 데만 몰두했기 때문이다. 연대를 우리가 주장하고 지원한 걸 후회하진 않지만 희망2013에 대한 인식이 모자랐다. 대선 국면에 와서도 민주당은 어떻게든 자기 쪽으로 단일화만 되면 이긴다는 게 강했다. 원탁회의는 ‘그렇게만 가선 안 된다. 단일화를 촉구하지만 단일화에만 매몰되면 또 진다’고 충고해왔다. 지금도 우리가 양쪽에 대해 다소 발언권을 갖는다면, 균형을 잡으려 노력해왔기 때문이라고 자부한다.”

-원탁회의에선 어떤 단일화를 생각했나.
“구체적 방안은 없었다. 과거 단일화 땐 정책협약과 선거운동 공조, 당선 후 협력을 동시에 발표했는데 이번엔 그런 약속 없이 안 전 후보가 일방적으로 사퇴했다. 이럴 때 위험한 건 민주당이 독식 유혹에 빠지는 건데 그러면 안 전 후보가 돕지도 않고 국민들도 염치없는 집단이라 할 거다. 원탁회의는 일찍이 ‘민주당은 안철수에게 감사한 마음이 부족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대세론을 깨줬고 정치쇄신을 하게 만든 안 전 후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방법은 민주당 스스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결국 문·안이 만나 새 정치, 선거운동 협조, 선거 후 긴밀 협의에 약속했고, 후속 조치로 문 후보가 국민정당 건설, ‘인수위부터 같이한다’ ‘대통합 내각으로 시민의 정부를 만들겠다’ 발표하면서 세력의 연합이 상당 정도 완성됐다.”

-문·안 두 사람은 만나봤나.
“문 후보는 안 지 꽤 됐다. 노무현 정부 때 두어 번 만났고, 그는 원탁회의 창립 멤버다. 그러다 이해찬 전 총리 등과 ‘혁신과 통합’을 거쳐 민주통합당을 만들면서 나갔다. 그래서 안 캠프에선 원탁회의가 ‘친문(文)’이라고 오해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래도 중심 잡아준 건 원탁회의’라고 인정하는 걸로 안다. 안 전 후보를 만난 건 8월 중순, 출마 선언(9월 19일) 전이다. ‘나가서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는데 나와 봐야 알지 아무도 미리 말해줄 수 없다’‘다만 지금 와서 당신이 그만두겠다고 하면 민주당에는 도움이 안 될 거다’라고 했다. 은근히 출마를 권유한 셈이다.”

-안 전 후보의 패인은 뭘까. 원탁회의는 단일 후보가 될 거라 봤나.
“사람마다 의견이 달랐다. 안 전 후보가 대통령 못할 게 없다는 분과 아직은 아니다라고 하는 분이 다 있었다. 나는 안 전 후보가 어떤 식으로든 문 후보를 꺾는다면 실력이 있는 거고, 못 꺾으면 아직은 준비가 부족한 거라 봤다. 안 전 후보는 조직이 없었지만 규모에 비해 정책 생산력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정책이 좋고 인기가 있다 해서 정치싸움에서 승리하는 건 아니다. 거대 정당의 벽도 정치현실의 일부다.”

-안 전 후보가 총력을 다해 돕는 것 같진 않은데. 그는 향후 어떤 길을 가야 하나.
“노란 점퍼를 입고 선거운동 하는 게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자기 식으로 별개의 부대를 이끌며 연대하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안 전 후보가 임명직을 안 맡겠다고 하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다. 독자 세력을 이끄는 사람이 벼슬 하나 얻어 갖는 건 좀 그렇잖나. 그러나 문 후보로서는 안 전 후보 지지세력을 성의를 다해 배려해야 한다. 중요한 건 다음 정부의 국정 윤곽을 잡는 인수위부터 함께하겠단 대목이다.”

-북한 미사일 발사는 어떻게 보나. 공동대표로 있는 한반도 평화포럼에서는 “다음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재조사해야 한다”고도 했는데.
“핵심은 로켓이 아니라 핵무기다. 핵을 가진 상태에서 로켓을 발사하니 문제가 되는 거다. 이명박 정부가 비핵 개방 3000을 내세우며 봉쇄에 나섰지만 북의 핵 능력은 더 커졌다. 북핵 폐기는 복잡한 문제인데 소리 질러 욕만 하는 게 정치는 아니다. 천안함의 진실은 과학의 문제지 정치 문제가 아니다. 난 과학자가 아니지만 국방부 발표와 그에 대한 비판들을 나름으로 검토했는데 정부 결론을 믿기 어렵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건 아니다. 나는 차기 정부에서 재조사하고 결론이 나올 때까진 5·24 조치의 ‘이행을 보류’하자, 그리고 북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나오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말자는 입장인데 문 후보는 안 받은 걸로 안다.”

-김지하 시인이 쑥부쟁이라고 공격했다.
“많은 사람이 내가 상심할까봐 걱정해주었다. 하지만 나도 저 잘난 맛에 사는 인간이라 크게 개의치 않는다.”

-원탁회의를 비판하는 이도 있다. 대선 후 계획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발표하는 것뿐이다. 집회와 결사의 자유가 있지 않나. 대선 후에는 존속할지 말지부터 원점에서 검토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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