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한 세계 무대서 큰 경험… 실패는 지독할수록 좋은 것 같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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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1호 19면

“너무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더 큰 무대를 향해 계속 도전하겠습니다.”

한국프로골프대상 상금왕 김비오

지난 10일 2012 한국프로골프대상 시상식이 열린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상금왕 트로피를 받아 든 김비오(22·넥슨·사진 오른쪽)는 복잡한 심정이 담긴 수상 소감을 밝혔다. 많은 사람이 그의 성공적인 시즌을 축하하며 박수를 보냈지만 김비오는 가슴 한편으로 쓰라린 기분을 느꼈다.

김비오는 올 시즌 5월 한국프로골프투어(KGT) GS칼텍스 매경 오픈과 SK텔레콤 오픈에서 2주 연속 우승했다. 지난 9월에는 채리티 하이원 리조트 오픈에서 공동 4위에 오르면서 누적 상금 4억4400만원을 기록해 상금왕에 올랐다. 올 한 해 미국프로골프(PGA) 2부 투어인 웹닷컴 투어에 전념하느라 김비오가 출전한 국내 대회는 단 3개. 그 3개 대회만으로 상금왕을 차지한 건 KGT 사상 처음이었다.

그러나 김비오는 국내 무대에서는 상금왕에 올랐지만 정작 올인했던 웹닷컴 투어에서는 ‘실패의 쓴잔’을 마셨다. 2부 투어 상금 순위 25위 안에 들어 PGA 투어 출전권 획득을 노렸지만 24개 대회에 출전해 12차례나 컷 탈락했다. 결국 상금 순위 77위에 그쳐 목표했던 PGA 투어행 티켓은 얻지 못했다. 2년 연속 거듭된 실패였다.

김비오는 미국 무대에서 지독한 시련을 겪었다. 2010년 PGA 투어 퀄리파잉(Q) 스쿨을 4위로 통과하며 지난해 PGA 투어에 데뷔했다. 2010년 KGT에 데뷔해 대상과 신인왕, 최저타수상을 휩쓴 스무 살 신예에 대한 기대는 컸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김비오는 2011년 PGA 투어 25개 대회에서 단 10차례 컷을 통과했을 뿐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시드를 잃었다.

얼마 전 실패는 또 있었다. 김비오는 지난달 PGA 투어 Q스쿨에 다시 도전했다. Q스쿨는 올해를 끝으로 없어지기 때문에 김비오에게는 더 절실한 기회였다. 그러나 꿈의 무대는 또다시 그를 외면했다. 김비오는 Q스쿨 2차 예선에서 합계 10언더파로 공동 22위에 머물면서 공동 20위까지 주어지는 최종전 진출 기회를 날려버렸다.

그러나 스물둘의 꿈 많은 청년은 좌절하지 않았다. 배우면서 성장하는 과정일 뿐 걱정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비오는 “아무리 큰돈을 지불해도 얻을 수 없는 경험을 했다. 실패는 지독할수록 좋은 것 같다. 잔인하리만큼 냉정했던 세계 무대를 직접 느껴보니 얼마나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비오는 지난 11월 필 미켈슨(42·미국)과 벌인 대결을 2012년 최고의 순간으로 꼽았다. 미켈슨에게 배운 게 많아서다. 김비오는 유러피언 투어와 아시안 투어로 겸해 치러진 싱가포르 오픈에서 미켈슨과 같은 조에서 경기했다. 실력 차이는 컸다. 미켈슨이 최종 합계 5언더파로 공동 14위에 오른 반면 김비오는 7오버파로 공동 61위에 그쳤다. 김비오는 “어퍼컷을 한 대 크게 맞은 것처럼 충격이 컸다. 나도 골프를 하고 미켈슨도 골프를 하는데 너무 달랐다. 극도로 정교한 플레이와 상대 선수를 대하는 매너, 또 경기를 즐기는 자세까지 미켈슨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며 “앞으로 어떤 선수가 돼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비오는 2013년 시즌 웹닷컴 투어에 재도전한다. 목표는 상금 순위 25위 안에 들어 PGA 투어에 재입성하는 것이다. 김비오는 요즘 한국에서 체력 훈련과 샷 정확도를 높이는 연습에 집중하고 있다. 김비오는 “엄마가 해 주시는 해물탕을 실컷 먹으면서 힘을 내고 있다. 내년에는 실패를 통해 뭘 배우고 어떻게 성장했는지 성적으로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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