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점화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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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그이를 알게된지 만 2년. 이제 간신히 마련한 얼마의 돈으로 가파른 산길 위에 삭월셋방 하나를 마련했다.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짐이라곤 책 몇 권, 솥 하나, 남비 하나, 그릇 서너 개가 담긴 사과궤짝 두 개와 김칫독하나.
치마저고리 한 벌과 버선 한 켤레를 꾸려 주시며 어미라고 여기지 말라고 울기만 하시던 어머니를 뒤로 두고 밀어온 「리어카」를 그가 끌고 내가 밀며 찬바람이 몰아치는 비탈길을 오르면서도 추운 줄 몰랐다. 『가난한 애인들을 위해서 새로운 풍습하나를 만들자구. 첫 살림을 시작하는 기념으로 첫 연탄에 불을 붙이는 점화식 말이야. 인류문명이 불로 이루어 졌으니까. 지나간 괴로움을 남김없이 태워버리고 새로운 희망에 마음을 태우는 의미에서. 자, 연탄을 들어요.』
나는 연탄을 들고 그는 쏘시개에 성냥을 그어댔다.
『생각나? 우렁찬 「팡파르」가 울리고 이제 막 성화를 들고 뛰어온 주자가 성화대를 향해 힘차게 계단을 올라가는 「올림픽」개막식 광경 말이야. 우리도 모든 걸 이제 시작한다. 그리고 이 불꽃처럼 활활 타오를 거야.』
꼭 어린애 같기만 한 그이.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정말 우리 앞날도 불처럼 일어나라, 불처럼…. <김옥·23·서울 성북구 삼선3동 111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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