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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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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색다른 것, 남이 않는 것을 찾아 예술계의 젊은이들은 저마다 어딘가 줄달음질친다. 때론 전통을 부인하고 혹은 선배의 양식을 일체 거부한다. 그리곤 저마다 주의 주장을 내세운다. 남이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이래서 20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온갖 「이즘」이 범람한다. 그것이 언제 싹트고, 언제 시들어 버렸는지 분간할 수조차 없다. 저마다 산뜻한 기호와 효과적인 자극을 노리고, 새로운 명명에 궁한 나머지 이젠 접두어 「네오」가 유행할 정도다. 그렇지만 누구의 얼굴에도 만족해하는 기색은 없다. 어느 것에도 곧 싫증을 일으키고 만다.
이런 현상은 특히 미술계에 현저하다. 진부가 완전히 아리송한 상태에 빠져 작가도 관람객도 어리벙벙해 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한결같이 이같은 말을 한다. 노장의 보수적인 고집에도 일리가 있어 뵈고, 국제 무대를 향해 발돋움하는 중년층의 자세엔 새 감각이 느껴진다.
이 와중에서 제3세대는 마냥 갈팡질팡하고 있을 것인가. 양화단의 신인 전성우 (31)는 『모두 정문을 놔두고 샛문으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라고 말하면서 『자극제를 구하기 급급한 것이 아니라 밥을 취해야겠다』고 설명한다. 「이즘」이란 쳇바퀴 같은 것. 갔다간 다시 돌아오는 것인데 그걸 창시하겠다는 것 자체가 서투른 수작이다.
굳이 그림을 만들려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가운데 그림을 찾아야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전대가 해 놓은 것, 하고 있는 것이라 해서 고리 탑탑할 것도 없고 새로운 것만으로 작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태도라면 오히려 조작을 낳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현대 회화가 추상 일변도로 치우치고 있는데 대해 반기를 들지 않는다. 수학이라고 해서 반드시 숫자만 가지고 따지는게 아니고 과학이 또한 「앱스트랙트」의 경향을 띠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회색에 있어서 물체를 떠난 「느낌」을 표현하려는 혁명은 당연한 추세이기 때문이다.
다만 거기에는 단서가 필요하다. 의식적인 제작은 거짓을 낳는다는 점이다. 작가니까 불안이니 절망이니 하는 오늘날의 상투어를 더욱 절실하게 느껴야 한다는 식의 태도는 마땅치 않다고 그는 말한다.
『미국의 젊은 세대에서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①안해도 괜찮을 성싶은 고민을 일부러 하는 감이 짙으며 ②그런 사고 방법으로 말미암아 자연이 자기를 위해 존재한다는데까지 미치고 있는데 그런 풍조가 한국의 젊은 세대에도 많이 스며든 것 같다』
고민 자체가 아무리 심각한 것이라 해도 그 고민 자체가 작품에 그대로 반영돼선 안되겠다. 한국의 그림이 대체로 어두운 인상을 주는 것은 고민 자체를 여과 없이 노출하려는 작위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감정 그대로를 들어낼까 고심하는데서 불필요한 자극제가 덧붙게 마련이고 그래서 대중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힐난하게 된 것이라고.
10년 넘어 미국에서 공부한 신진 작가이지만 『세대가 바뀌었어도 작가의 제작 의식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그는 다짐한다. 다만 그가 바라는 것은 그의 화폭에서 불필요한 군더더기-곧 거짓된 것을 죄다 제거해 내는 일뿐이다. 그것이 서양화의 재료로 된 것이든 동양화의 재료로 된 것이든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가지 문제가 남아 있다. 현실이 그의 순수한 제작을 방해하는 점이다. 밥을 먹어야 하고 이웃의 눈치를 무시할 수 없고-. 이런 현실적인 문제가 작품 내용에 끼어 든다면 작품에 위험 신호가 울리는 까닭이다. 좀더 동양적인 초월한 단계에 놓일 수 없을까. 이야말로 오늘 제3세대의 고민이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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