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자전거 여행기 인터넷 생중계한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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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동안 뉴질랜드 섬을 자전거로 종단

손성훈·김혜영 부부는 오로지 두 대의 자전거만으로 지난 3월 27일부터 97일 동안 뉴질랜드 섬을 여행했다. 세계의 여러 나라 중에서 뉴질랜드를 선택한 것은 평지가 많아 자전거 여행에 가장 적합한 지형이기 때문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초원과 숨막힐 듯 아름다운 산세 등 볼 것이 많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유였다.

손씨 부부의 이 단출한 여행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자신들의 여행 일지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네티즌과 함께 공유하는 ''24OnAir.com'' 프로젝트 때문이다. http://www.24OnAir.com 프로젝트는 여행 중 겪은 갖가지 경험담과 향후 일정 등 여행의 전 과정을 현지에서 직접 전달하는 일종의 인터넷 중계 방송이다.

결혼 전에도 자전거를 통해 국내외 여행을 자주 다녔던 손성훈 씨는 국내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외국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 같은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에 60∼80km를 이동하면서 보통 8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고 다녔어요. 길을 달리다가 눈에 띄는 풍경이 나타나면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하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도 메모해 놓았지요. 매일 저녁 제가 하루의 일정을 정리하면 아내가 웹에 올리는 식으로 여행 일지를 기록했습니다."

여행의 묘미는 무엇보다 예고 없이 발생하는 다양한 에피소드일 것이다. 손씨 부부도 여행 첫날부터 사고가 발생하는 바람에 자칫 여행이 중단될 위기를 겪기도 했다. 자전거를 타고 신나게 내리막길을 내려가던 손성훈 씨가 마침 아스팔트 도로 위를 지나던 족제비를 피하려다 넘어져서 어깨뼈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일주일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프로젝트 포기를 두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다행히 여행에는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에 여행을 강행하게 되었다.

손씨 부부가 이번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에피소드는 자전거를 도난당한 사건이다. 뉴질랜드는 세계적인 관광국인만큼 치안이 확실하고 범죄율도 낮은 편이다. 손씨는 이번 여행 이전에도 여러 차례 뉴질랜드를 찾은 경험이 있지만 한 번도 물건을 잃어버린 적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만 방심한 탓인지 숙소에 고이 모셔놓은 자전거를 도둑맞고 만 것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지만 자전거 없이 자전거 여행을 계속할 수는 없는 일. 다행히 여행 막바지라 도보와 대중 교통을 이용해 여행 목적지까지 도달할 수는 있었지만 식은땀이 절로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인터넷 여행 일지 작업의 가장 큰 장애는 통신 속도

손씨 부부가 ''인터넷을 통한 여행 생중계''라는 아이디어를 직접 실행하기로 합의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성훈 씨는 웹 기획자로, 그의 아내 김혜영 씨는 디자이너로 모두 IT 업계에서 근무하고 있다.

인터넷의 토양 위에서 살아가는 손씨 부부가 자신들의 여행을 웹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기로 한 것은 어찌 보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여행이 좋더라도 결혼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번듯한 직장을 그만두고 부부가 함께 장기 여행을 떠나는 모험을 감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몇 해째 이어진 경제난으로 샐러리맨들이 하나같이 가슴 졸이던 시기에 여행을 떠나겠다는 남편을 말리기는커녕 함께 따라나선 아내라니! 대체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여행을 계획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통해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싶어하면서도 생활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나이가 들고 세상에 길들여질수록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더 늦으면 용기를 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여행을 결심했지요."

손씨 부부의 이야기가 입소문을 통해 점차 퍼져나가면서 이들의 여행 일정과 새로운 여행담을 보기 위해 날마다 사이트를 찾는 고정 팬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국내처럼 인터넷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뉴질랜드에서 날마다 방대한 용량의 데이터를 웹에 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손씨 부부는 주로 뉴질랜드 곳곳에 위치한 PC방을 이용해 작업을 했다. 다행히 뉴질랜드에는 읍 단위 규모의 마을에서도 PC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놀라운 점은 이 PC방 주인들이 모두 우리 나라 교포였다는 것. 이 곳에서는 스타크래프트처럼 국내에서 인기 있는 게임을 즐기는 유학생이나 현지 교포들을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개중에는 PC에 글이 깔려 있는 곳도 있을 정도다. 덕분에 손씨 부부는 10분에 1,500원이라는 비싼 이용료와 56K 모뎀 수준의 낮은 통신 속도 때문에 다소 불편을 느꼈을 뿐, 여행 일지 제작과 업로드 작업을 무난히 수행할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삶의 여유와 지혜 배워

자전거 타기에 서툰 김혜영 씨는 여행 중에 특히 고생이 많았다. 어떨 때는 괜한 고생을 한다는 생각에 후회도 들었지만, 여행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좀더 잘해야겠다는 욕심 때문에 늘 무언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는데, 여행을 다녀와서는 일이나 성공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세상을 한 발 비켜서서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게 자전거 타는 실력만은 아닌 듯싶다.

김혜영 씨에게는 이번 여행이 회화 실력을 쌓는 데도 좋은 기회가 되었다. 여행 중에 겪은 다양한 경험 덕분에 영어 교본에 나와 있는 상황에 따른 예제들을 실습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손성훈 씨는 "결혼하고 나서, 앞으로 집사람과 함께 넘어야 될 수많은 산들을 생각했습니다. 우리 앞에 다가올 시련들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고, 좀더 넓은 세상에서 진지한 삶을 고민해 보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이번 여행의 소감을 밝힌다.

이들 부부는 인터넷이 단순한 도구의 개념을 벗어나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온 후 방치되어 있는 24OnAir.com 홈페이지를 다른 여행자들에게 분양할 생각이다. 인터넷이나 PC 지식이 없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행을 하면서 텍스트와 이미지만 손씨 부부에게 메일로 보내면, 내용을 정리하고 디자인한 뒤 홈페이지에 올려줄 계획이다. 24OnAir.com의 메인 페이지에 펼쳐진 세계 지도는 누구에게든 개방되어 있다. 세계 지도의 한 부분에 입주하고 싶은 사람은 손성훈 씨에게 메일(lland@24OnAir.com)을 보내면 된다.

글·윤신철 기자 believer17@howo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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