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위해 이라크 가는 김영주심판

중앙일보

입력

" '유종의 미' 라는 말이 자꾸 떠오르네요. "

축구 국제심판 김영주 (44) 씨가 지난 25일 이라크를 향해 떠나며 한 말이다. 김씨는 28일 이라크의 바그다드에서 벌어지는 2002 한.일 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A조 이라크와 바레인 경기의 주심을 맡았다.

그러나 그는 직접 바그다드로 가지 못하고 시리아의 다마스커스행 비행기를 탔다. 바그다드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 테러에 대한 보복의 타겟에 아프가니스탄과 함께 이라크도 포함되면서 비행기표 구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김씨는 "심판 생활 20여년 동안 세계 곳곳을 가봤지만 이번처럼 걱정된 경우는 없었다" 며 "이제 1년후면 은퇴하는데 괜히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고 말했다.

김씨가 국제축구연맹 (FIFA) 으로부터 이라크전 주심 배정 소식을 전달받은 때는 지난 달. 당시만 해도 평범한 예선중 하나려니 생각하고 수첩에 출국일 표시만 해놓고 지나쳤다.

그런데 지난 11일 미국 테러가 터진 다음에는 TV나 라디오에서 국제뉴스, 특히 중동지역 뉴스가 흘러나오면 긴장한 채 귀를 기울이는 버릇이 생겼다. 이라크도 테러의 배후로 지목되면서 곧 공습이 있을 거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 21일 이라크가 공습당했다는 보도에 갑자기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경기가 연기되거나 장소가 바뀌는 게 아닌가 했는데 알고보니 이라크 남부의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합동 공습이었다.

김씨는 "명색이 월드컵 개최국의 심판인데 가지 않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사지 (死地) 로 뛰어들자니 마음이 별로 내키지 않는다" 는 고민을 토로했다.

김씨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국내 프로축구 심판은 맡지 않지만 지금까지 국가대표팀간 경기 (A매치) 40여회를 비롯, 일본.중국 등에서 국제경기 주심을 1백60회 이상 맡은 베테랑이다.

한.일 월드컵 예선에서는 아시아는 물론 북중미.오세아니아에도 달려가 주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장혜수 기자 <hsc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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