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 뮤직박스] '품행제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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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다룬 최근의 청춘영화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음악은 80년대 '나이트'에서 단골로 흐르던, 가볍고도 비트가 강한 곡들이다. '친구'에 나오는 '배드 케이스 오브 러빙 유'라든가 '품행제로'(사진)의 '밤비나' 같은 것들 말이다.

80년대의 배경음악으로 적당한 것은 그렇게 번들거리고 약간 달뜬 노래들이다. 제이 가일스 밴드의 '센터폴드'처럼 유치하나 자극적이고 그러면서도 한 웅큼의 슬픔이 배어있는….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몽정기''품행제로'에 이르는 80년대 배경 청춘영화의 목록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조금 묘해진다. 이 영화들은 80년대에 성장기를 보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적 코드들로 가득하다.

막 보급되기 시작한 비디오 테이프, 청계천의 '빽판'과 금지곡, 나이트와 롤러장 등. 그건 의심할 여지없는 80년대의 풍경이고 그 시절의 청춘들이 때로 목숨을 걸었던 것들이다.

그런데 왜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의 주제곡을 아카펠라 그룹인 리얼 그룹이 불러야 하는 것일까. 그건 이 영화가 80년대의 풍경을 차용한 팬터지로 만족함을 자인하는 것은 아닐까.

80년대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면 80년대의 주제곡은 당연히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가 돼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쨌거나 그들의 노래에는 당대의 시대정신이 담겨 있었으니. 그런데 '품행제로'를 보고 있으면 그런 고정관념에 조금 금이 간다. DJ DOC의 이하늘과 제이가 맡은 '품행제로'의 음악은 대체로 힙합에 기울어져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정통은 아니고, 한국적인 '양아치' 힙합이다. 한 마디로 잡탕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침 80년대 문화의 특징도 잡탕이고, 잡탕의 묘미를 만끽했던 시절이었으니 그걸 느끼기에는 요즘 10대의 음악인 힙합이 더욱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다.

힙합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했던 80년대지만, '품행제로'를 보면 힙합은 천상 80년대의 배경음악이라는 생각이 든다. 힙합은 거리의 음악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이탈해 거리에서 만들어낸 그들만의 문화.

한국의 80년대는 그런 문제아들이 대중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시대였다. 엔딩 타이틀곡인 '즐거운 생활'이나 김진표의 '품행제로-싸가지가 바가지(진표생각)'는 그런 80년대의 혼돈과 무질서가 갖고 있던 에너지를 전해준다. 게다가 DJ DOC과 김진표는 '한국적 랩'에서는 선구자라고 불러도 좋을 뮤지션이다.

이하늘과 김진표가 부르는 랩은 꽤 직설적이고 공격적이면서도 '쿨'하다. 80년대에는 없었지만 그런 그들의 태도는 80년대에 잉태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과감하게 '품행제로'를 외치면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태도 같은 것 말이다.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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