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금융당국도 책임있다

중앙일보

입력

이른바 '이용호(李容湖) 게이트' 속에서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론도 피할 수 없게 됐다.

李씨가 정.관계 로비에 '실탄' 으로 사용한 자금의 조성 및 사후관리 과정에서 감독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李씨가 로비에 활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삼애인더스 해외 전환사채(CB)의 조성 및 유통과정을 살펴보면 감독 차원의 허점이 여러 갈래로 드러난다.

李씨가 CB를 외자유치 형식만 갖춘 채 국내로 들여와 변칙 유통시킨 것부터가 석연치 않다. 불법은 아니라지만 삼애인더스가 외자유치에 성공한 것으로 알고 주식을 샀던 투자자들이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았다는 점에서 감독 차원의 문제는 제기될 수 있다.

지난해 이후 유사한 피해사례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예방 차원의 대책이 미리 마련됐어야 했다.

명백한 규정위반 사실이 파악되지 않았다는 점은 더욱 큰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상장회사 발행 전환사채 등의 지분이 5%를 넘으면 금융감독원에 보고토록 한 공시의무 규정 위반 사실이 포착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삼애인더스의 해외 CB 가운데 3백만달러어치를 인수해 5% 지분한도를 넘긴 두 사람이 지난 1월과 3월에 네차례나 보고의무를 어겼는데도 금감원은 그런 사실이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삼애인더스 CB의 발행 또는 유통과정에 개입한 것도 의혹을 사고 있다.

이 역시 불법은 아니라지만 국책은행이 신용상태가 불확실한 기업의 증권을 거래했다는 사실 자체가 CB를 발행한 쪽에 얼마든지 악용될 소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산은이 과연 삼애인더스 CB의 유통과정에만 개입했는지, 李씨측 주장처럼 70여만달러의 선이자까지 받고 발행과정에서부터 개입했는지도 밝혀야 할 대목이다.

경제규모가 커지고 개방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금융당국이 국내외를 오가는 모든 거래를 파악하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할 것이다.

당국이 개별 거래에 지나치게 개입하다 보면 유난히 규제에 민감한 금융거래를 위축시킬 위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소지가 있는 거래는 철저히 감시.단속해야 건전한 시장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삼애인더스의 해외 CB가 올 들어 국내에서 변칙 유통되고 있을 당시 증시에서는 李씨가 관련된 보물선 소동과 주가조작 시비가 한창이었다. 감독 당국이 이런 흐름을 지켜보고 있었다면 당연히 문제의 CB에 관심을 기울여야 했다.

당국이 과연 삼애인더스 CB의 변칙 유통을 몰랐느냐, 아니면 봐준 것이냐 하는 시비가 나오는 이유도 이런 의문 때문일 것이다.

검찰은 물론 감독 당국도 李씨의 금융거래에 얽힌 의혹들을 푸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금융감독원의 신뢰도나 권위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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