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나’를 보여줄 때 청춘은 빛이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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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형관
성균관대 사학
신문방송 4학년

불꽃 같은 열정을 지닌 친구가 있다. 하지만 성적 관리, 대학 진학 등에는 열정이 조금 부족했다. 구슬 아이스크림을 먹기 위해 왕복 세 시간의 거리를 나선다든지, 좋아하는 밴드의 노랫말을 완벽히 통달한다든지. 남들이 보기엔 쓸데없는 일을 사랑했다. 만일 그녀가 입시에 이러한 열정을 쏟았다면 지금쯤 모두가 부러워하는 명문대에 다녔을지 모른다.

 똑같은 교육과정을 거쳤지만 배움이 달랐던 것도 그래서다. 내가 ‘수학의 정석’ 기본편과 실력편을 순서대로 보는 동안 그녀는 지도를 펼쳐 다음 등산 코스를 표시했다. 나는 입시를 배웠고, 그녀는 산을 배웠다. 장래가 걱정돼 “공부 좀 해라”라며 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삽질한다고 비웃지 마라.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삽질 중이다”며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20대 중반이 된 지금, 그녀는 ‘서바스(SERVAS)’에 가입해 전 세계를 여행 중이다. ‘서바스’는 전 세계 여행자 네트워크로 회원끼리 무료로 숙박을 제공하는 단체다. 지금은 페루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대한민국 지도 위에 다음 등산 코스를 표시했던 어린 시절처럼 세계 지도를 펼치고 다음 국가에 동그라미를 치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삽질녀’다.

 혹자는 그녀에게 ‘어리석다’고 말할지 모른다. 어차피 돌아오면 팍팍한 취업전선에 뛰어들 게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없는 자유가 있다. 꽉 짜여 있는 일정표와 함께 바쁘게 스펙을 쌓는 우리와 다르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기준에 맞추기 위해 상품가치를 높이는 모습이 우리라면,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정체성을 찾는 게 그녀다. 나는 그래서 내 친구가 멋있다.

 인정투쟁(認定鬪爭). 한 대학교수는 청춘을 이렇게 표현했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시선을 욕망한다는 말이다. 실제로 그렇다. 부모님에게, 친구에게, 나아가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자신을 하나의 ‘캐릭터’로 잘 포장해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정작 중요한 ‘내’가 빠졌다. 독일의 철학자 벤야민의 말대로 끊임없이 전시된 아케이드를 걷는 하나의 상품이 지금의 청춘인 셈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대학생이 많다. 여태껏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춰 살아왔기 때문은 아닐까. 눈치 보지 말자. 타인의 시선을 벗어나면 비로소 ‘내’가 보인다. 이제부터라도 ‘남’이 아닌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 “Be yourself. No matter what they say(너다워져. 남들이 뭐라고 하든).” 스팅의 노래 ‘Englishman in New York’의 가사다. 노랫말처럼 ‘나다움’을 보여주는 청춘이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이 형 관 성균관대 사학·신문방송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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