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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을 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마지막 달력장 앞에 선다. 회한과도 같은 바람이 분다. 한해의 시간들이 얼어붙는다. l2월! 12월은 빙화처럼 결정한다.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결정의 달-. 1월의 기대와 2, 3월의 준비와 4월의 발열과 5, 6월의 소란과, 소나기 같던 7월의 폭력과 그리고 8월과 9월의 허탈. 불안한 10월과 여백같은 정체의 11월. 한해의 모든 것들이 마지막 결정하는 l2월속에 우리는 서있다.
12월은 말한다. 돌아다보라고- 돌아다보라고. 지나온 날들의 생을 다시 깨우는 기침소리처럼 12월은 우리들의 마음을[노크]한다. "당신은 남의 얼굴에 손톱자국을 남기지 않았는가. 남의 음식에 손대지 않았는가. 남들의 평화로운 잠을 뺏지 않았는가. 그리고 당신은 무엇을 사랑했는가. 불의앞에서 비굴하지 않았던가. 힘없는 자 앞에서 오만하지 않았는가?"
인간은 두발로 걸어 다니기 때문에 동물과 다른 것은 아니다. 과거를 돌아다 볼줄 아는 의식의 거울을 가졌기에 비로소 인간인 것이다. 인간의 목소리는 먹이를 찾아 포효하는 이리때처럼 늘 사납지만은 않다. 권력을 가진 자는 그 권력이 과연 정당하게 쓰여졌나를 생각해야할 것이고, 돈을 가진 자들은 그 돈이 과연 올바른 것을 위해 쓰여졌나를 반성할 것이고, 지식을 가진 자들은 그 지식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남겼는가를 조용히 돌아다보아야 할 것이다.
12월은 말한다. 이제 시간이 다하였음을… 한해의 것은 한해의 것으로 돌려주라고…. 호주머니속의 먼지를 털듯, 모든 것을 결산하라고, 12월은 또한 말한다.
역사란 과거의 묘지만을 위해서있는 망두석이 아닌 것이다.
내일을 살려고 어제의 짐을 내려놓으려는 자세가 있기에 역사는 비로소 역사인 것이다. 마지막 달력앞에서 한해를 결산하는 노동을 하는 바쁜 달이다. 빚을 진것을 갚아야하는 달이다. 과오의 때를 벗기는 달이다. 받은것이 있으면 주어야하는 달이다. 12월! 한해를 돌아다보고 한해를 결산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12월을 사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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