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 테이블] 외국기업 CEO들 국내기업 경쟁력 확보책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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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경제 환경이 혼란스럽다. 세계경제가 침체되는 가운데 미국 테러사태로 인해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주한 외국기업들은 외환위기 때에도 튼튼한 경영기반을 바탕으로 흔들림 없는 성장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외국기업에 근무하는 한국인 최고경영자(CEO)들이 중앙일보에 모여 국내 기업이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는 경쟁력 확보 방안을 논의했다.

좌담회에는 이재희 유니레버코리아 회장, 김효준 BMW코리아 사장, 김종광 한국바스프 사장, 한영철 볼보트럭코리아 사장이 참석했다.

▶사회 : 외국 기업은 한국 기업과 기업문화 등 여러 점에서 다른 것 같은데.

▶김종광 사장 : 외국 기업은 대부분 전문 업종을 고집한다. 바스프의 경우 연간 매출액이 작년 기준 43조원인데 화학 관련 업종 뿐이다. 한국은 큰 재벌 그룹 중 한 분야에 전문화된 업체가 없다. 전문 업종별로 거대 기업을 키워야 할 때다.

또 바스프는 설립된지 1백36년이나 됐다. 그런데도 '창업자가 누구냐' 보다는 '누가 회사를 키워왔냐' 를 더 묻는다.

이런 분위기는 회사의 직원 중에 영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이 어려울 때일수록 영웅을 만들면서 회사가 사람을 키운다.

이런 방식은 결국 나라 경제에도 기여를 하게 된다. 바스프도 암모니아를 만든 연구원, 블루진 청바지의 염료를 처음 합성한 사람 등을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 밖에 한국기업은 회의를 할 때 말하는 사람은 적고 대부분 듣기만 한다. 그러나 바스프는 어떤 회의건 참석자들이 모두 한마디씩은 하면서 아이디어를 낸다. 이같은 열띤 회의 분위기가 경쟁력의 근원이다.

▶김효준 사장 : 국내 기업들은 아직 선진형 주식회사의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외국 기업은 자유시장주의와 주식회사로서의 체질에 익숙해 있다. 주주의 권익을 최대한 존중하고 보호하는 경영을 한다.

또 외국기업은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개인주의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한국기업은 여전히 위계 질서에 뿌리를 두고 권위주의.집합주의.온정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한영철 사장 : 외국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회사 경영에서 현금과 수익성 흐름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이는 CEO 뿐 아니라 외국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다 피부로 느끼는 점이다. 말로는 한국기업도 이를 강조한다.

그러나 각 조직단 위에서 행동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외국기업들은 모든 의사결정 단계에서 현금과 수익성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다.

▶사회 : 인사.재무.영업시스템 등에서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간 경쟁력 차이를 찾는 사람도 많던데.

▶이재희 회장 : 전세계에 30만명의 직원이 있는데 같은 직급에 있는 사람이면 어떤 나라의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똑같은 일을 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고 있다. 또 회사가 젊은 직원의 능력 개발에 신경을 많이 쓴다. 대리급만 되면 사장 재목인지를 미리 알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영업에서는 이익이 나지 않으면 절대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마케팅도 한국 기업들이 주로 쓰는 'me too(따라 가기)전략' 은 쓰지 않는다.

창의력 없이 다른 회사의 제품을 쫓아가기만 해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회계부문에서도 한국 기업은 대부분 월말 결산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외국 기업은 다음달 10일 이전에는 전 달의 재무제표가 완벽하게 나온다. 이는 회계 제도가 그만큼 철저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김종광 : 한국 기업은 의사 결정이 즉흥적이나 외국 기업들은 충분한 준비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사업부장처럼 중요한 자리라면 오래전부터 후보자들을 관리한다.

후보자에게는 각종 교육.업무 연수 등을 통해 언제든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준비를 시킨다.

재무 관리는 더 철저하다. 바스프의 경우 한국 기업을 인수할 때 들어간 돈보다 그 이후에 더 많은 돈을 투입해 재무 상태를 건전하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외국기업들은 외환위기 때에도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또 시장점유율 보다 우량 거래처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는 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는 재무건전성을 중시하는 분위기와도 일맥상통한다.

▶김효준 : 최근 포춘지가 선정한 세계 5백대 기업을 보면 최고경영자를 외부에서 영입한 사례가 20%가 넘었다.

우리나라는 외부 영입 CEO가 10대 그룹 계열사 중 6%에 불과하다는 조사가 있다. 기업이 타성에 젖지 않도록 하려면 외부 전문가를 영입할 필요가 있다.

▶한 : 외국 기업에 처음 들어갔을 때 재무담당 경영자(CFO)가 영업 활성화를 위해 돈을 더 쓰라고 제안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었다. 한국 기업의 재무 담당자들이 '비용을 줄이라' 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사회 : 노사관계에 대해서도 의견이 많을 텐데.

▶김효준 : 해외에선 '한국 기업의 노.사는 대결.반목하는 관계' 라는 인식이 아직 남아 있어 안타깝다.

BMW의 경우 이사회 이외에 감독위원회를 두고 있다. 그런데 감독위원회 위원 20명 중 10명이 근로자 대표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회사의 중역을 선임하는 결정에도 참여하고 있다.

▶한 : 내가 만나본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의 노사문화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 등에서는 너무 낙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사회 : 현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해야할 일도 많을 텐데.

▶이 : 요즘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 대해 주로 묻는 것은 ▶한국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한가▶한국의 노사 문제는 어떤가▶국내 기업들의 관행이 얼마나 국제화되고 있는가▶북한과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등이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기업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김효준 : 우리는 경제 활동에 대해 아직도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 수출은 선(善)이고 수입은(惡)이라는 시각이다. 이런 기본적인 경제의 패러다임을 정부가 나서 먼저 바꿔야 한다.

▶사회 : 외국기업에서 CEO의 덕목은 뭔가.

▶김종광 : CEO의 가장 큰 덕목은 인재를 키우는 일이다. 적재 적소에 누구를 쓰는 것이 좋은 지를 CEO가 가장 잘 알아야 한다. 기업이 어려울 때일수록 사람을 잘 써야 한다.

사회.정리=김시래 기자 sr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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