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 체육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서울 남산. 새벽 다섯시. 불빛 촘촘한 장안이 깊은 단잠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어둠 밑으로 같은 빛깔 안개가 잠잠하게 흐르는 산에서도 꼭대기-팔각정. 10월 하순의 새벽은 벌써 차다.
『하나! 둘! 셋!』
힘찬 기합소리가 미덥다.
청해 체육회-.「트레이닝」차림의 청소년들이 몸을 단련하고 있다. 역기를 들고, 아령 쥔 손에 힘을 주고…줄넘기는 경쾌하고, 철봉에 매달려 허공을 맴도는 모습은 시원하다.
작년 9월 이상호(51·후암동335) 씨는 남산 팔각정 옆 빈터에 역기 두개를 마련해 놓았다.
새벽이면 남산 길을 걷는 산책객들이 한둘씩이 역기를 들어보았다. 하루하루 모이는 사람의 수가 늘어갔다.
역기 두개로는 모자랐다. 수평대와 철봉대를 세웠다. 아령을 사들이고 역기도 더 장만했다.
1년이 지난 이제, 기구만 해도 25만여 원 어치. 매일 아침 이곳을 들러가는 산책객은 평균 3백 명. 국민학교 꼬마로부터 환갑이 지난 노인들까지-.
동대문시장에서 양복지 도매업을 하던 이씨는 3년 전 위장병으로 고생했다. 술·담배를 끊고 10여년간 정들인 남산길을 매일 아침 오르내렸다. 건강을 생각했다. 체력을 기르는 새 방법이 없을까?
팔각정 옆 빈터가 머리에 떠올랐다. 숱한 산책객들-그들과 함께 새벽 운동을 해보자.
이제 그는 완전히 건강을 회복했다. 그는 역기를 들면서 하루하루 체격에 변화를 가져오는 학생들을 볼 때 흐뭇했다.
희부연 아침이 어둠을 밀어내면 팔각정 밑으로 짙은 잿빛 안개가 장안을 덮는다. 서울은 그대로 큰 바다. 불빛조차 안개 속에 가렸다. 듬성긋 보이는 산들은 섬(도)인가?
이때쯤 되면 「청해」에 모인 사람들은 백 명에 가깝다. 옷차림도 갖가지. 이씨에게 한결같이 반가운 인사다.
남산을 찾는 새벽 산책객 치곤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운동에 열중하던 사람들은 안개 속에서 붉은 해가 떠오르면 모두 운동을 쉬고 해맞이를 한다. 장관! 맑은 아침 공기를 폐 속 깊이 들이마신다. 「이곳에 체육관을 세웠으면 합니다 .한국의 젊음을 튼튼하게 키우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이상호씨의 바라진 체구는 그대로 「힘」 이었다. <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