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는 거짓말 안 해… 지배구조 뛰어나면 주가 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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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9호 20면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1956년 설립되었다. 사람 나이로 치면 아직 환갑이 채 안 된 셈이다. 미국 주식시장은 1863년 세워졌으니까 우리나라보다 역사가 100년 가까이 길다. 기업이 몇 대에 걸쳐 승계되면서 쌓인 경륜이 우리보다 훨씬 깊다. 한국은 주식시장과 기업의 역사가 짧다 보니 미국과 상황이 다르다. 한국 상장기업의 90% 이상은 아직도 창업주나 그 후손이 직접 경영한다. 이에 비해 미국은 그 비율이 20%에도 못 미친다. 오랜 자본시장의 역사 속에 지배구조가 진화하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짧은 역사의 우리 자본시장은 경제민주화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이제 막 상장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 시작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증시고수에게 듣는다

환갑 안 된 주식시장, 기업지배구조 진화 중
그렇다면 좋은 지배구조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정의하면 기업경영이 이해관계자, 특히 주주의 이익을 위해 이뤄지도록 감시·통제 기능을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지배구조 개선작업은 사외이사제도 도입, 감사의 독립성 제고, 회계제도의 선진화, 주주 권리의 강화, 금융감독 체계 정비 등을 기본 골격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선진국, 특히 미국에서는 우수한 기업지배구조가 지속가능경영(Sustainability)의 원천이며,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제 성장의 기본요건이라는 인식이 확산돼 왔다. 펀드매니저 입장에서 지배구조가 좋은 기업은 장기적으로 높은 주주가치를 창출해 주는 곳이다. 지배구조개선 펀드를 운용하는 필자 입장에선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주주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회사에 열광하게 된다. 좋은 회사를 찾기 위해 전문가들이 쓰는 기준이나 지표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기업 성과를 측정하는 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표가 바로 경제적 부가가치(Economic Value Added·EVA)다.

경제적 부가가치란 특정 회사가 주주·채권자 등 투자자의 요구 수익률, 즉 가중평균자본비용(Weighted Average Cost of Capital·WACC) 이상으로 창출해 낸 경제적 이익을 뜻한다. 회사 자산이 효율적으로 활용되면 투하자본순이익률(Return on Invested Capital·ROIC)이 높아지는데 이럴수록 경제적 부가가치가 커진다. 전문 용어가 좀 딱딱하다면 이렇게 바꿔 이야기할 수 있다. 주주와 채권자들이 투자한 자금을 회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고 이익을 냈는지를 측정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지배구조가 양호한 기업들은 오너 자신을 위한 의사결정보다 주주 전체를 위한 의사결정을 하고, 그러한 결정들이 누적되면서 결과적으로 회사가 창출하는 경제적 부가가치가 커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내 기업들 중에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가장 많이 창출한 기업은 어디일까. 지난 30년간의 주식시장을 분석해 보면 삼성전자라는 결론이 나온다. 일반의 통념과도 부합한다. 전문가들의 분석 방법이 아니더라도 삼성전자의 경제적 부가가치가 얼마나 급증했는지 보여주는 손쉬운 평가 잣대가 있다. 바로 주가 상승률이다. 주가가 꾸준히 올라 주주 이익을 제고했다는 측면에서 지배구조를 평가할 때 후한 점수를 줄 만하다. 삼성전자는 현재 유가증권 시장의 우량기업지수인 코스피200 소속 200개 기업 중에서 30년간 주가가 가장 많이 올랐다. 30년 동안 무려 300배 이상 올랐다. 필자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장기적 관점에서 주가와 기업 가치는 비례한다. 주가가 거짓말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기업 지배구조에 대한 관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게 마련이다. 최근 대선 정국에서 새롭게 화두로 떠오른 경제민주화를 논의할 때도 이런 점이 고려돼야 한다. 과거의 성장과정을 잣대로 현재의 지배구조를 평가하는 것은 시대착오이자 편견일 수 있다.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필자는 지금까지의 성장 중심 경제 체제에서 가장 큰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한, 그리고 주가가 가장 많이 뛴 삼성전자의 지배구조가 가장 뛰어나다고 본다.

지속가능경영 3요소 중 지배구조 으뜸
향후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변화의 큰 물결을 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판단하는 근거는 1세대 창업주와 기업인들의 고령화와 2선 후퇴가 가속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1960, 70년대 창업해 기업을 일구어 낸 창업주들은 이제 은퇴를 했거나 이를 고려하고 있다. 이미 2세 혹은 3세 가업 승계가 속속 이뤄지고 있다. 새로운 리더의 등장은 지배구조에 가장 큰 변화를 몰고 오는 요인이다.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 지형도가 상당히 바뀔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2세, 3세 기업인들은 투자자들로부터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인식 전환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크다.

지배구조를 평가하는 척도가 경제적 부가가치 창출이나 주가 상승률 이외에도 다양해질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사회책임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SRI)가 부각되고 있다. 특히 지속가능경영의 3대 요소인 ‘ESG’, 즉 환경·사회·지배구조(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가 중시될 것이다.

필자는 8년여 동안 지배구조개선펀드와 사회책임투자펀드를 운용하면서 지배구조가 이 세 가지 요소 중 가장 중요하며, 향후 20년간 고령화·저성장·경제민주화·인수합병(M&A) 등과 함께 우리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한국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가 10~20년 후에도 자본시장의 진화와 시대 변화에 부합하는 한국 최고 지배구조 기업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 필자를 비롯한 많은 펀드매니저가 주목한다.



이원일(53) 대신증권 애널리스트, 미국계 살로먼스 미스바니 리서치센터장을 거쳤다. 독일계 알리안츠 자산운용의 최고투자책임자(CIO) 시절인 2004년 국내 첫 지배구조개선펀드 ‘알리안츠 기업가치향상펀드’를 출시했다. 2005년 대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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