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위석 칼럼] 심리전 경제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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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지금 초가을의 채 단풍도 들지 않은 낙엽이 우수수 지면서 겨울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설상가상격으로 미국이 전쟁에 들어가고 있다.

그럴수록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남북관계보다는 내정(內政)에, 정치보다는 경제에 정공법으로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이상보다는 현실을 추구해야 한다. 인민에게 가장 절실한 현실은 경제다. 인민은 밥으로써 하늘을 삼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金대통령은 좋게 말해 현실은 제쳐두고 자기 개인의 이상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보인다.

*** 현실 놔두고 이상만 좇아

시장경제에는 '많은 자유와 적은 세금' 이 생명수다. 그런데 이 정부는 자유 대신에 규제와 작위로 시장을 적대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국제적 능력과 국내적 상황에 비춰 공정성에 관련된 기업 규제로는 정보를 얻는 데 불리한 입장에 있는 소비자.예금자.증권투자자에게 시간에 맞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투명성 규제 하나만 있으면 족할 것이다.

이런 정보를 참고해 시장 참여자들이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이런 행동의 합계가 시장의 시장에 대한 가장 쓸모 있는 규제가 된다.

30대 기업 지정이니 총액 출자제한이니 하는 것은 정권과 관료들이 기업을 가렴주구(苛斂誅求)하는 데 쓰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래저래 이미 조로(早老)에 들어간 한국 경제는 이런 가렴주구에도 불구하고 시설투자를 계속하던 왕년의 패기가 없다.

정부의 작위(作爲)는 시장에 대한 작해(作害)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정부가 금융기업에 압력을 넣어 특정 취약기업이 발행한 채권을 인수하도록 하는 것 등이다. 전체 의료업을 건강보험조합 독점 아래로 편입시킨 것, 노사정위를 설치한 것, 거기서 노동조합과 정치권이 합세해 사용자측을 압박하는 것은 시장에 대한 작해의 다른 예다.

교육을 행정부와 교사노동조합이 재단과 학부모를 배제하고 전횡하는 것도 시장에 대한 작해다. 시장은 기업의 것인 듯 보이나 실은 철저하게 소비자의 것이다. 소비자의 이익에 가장 철저히 봉사하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점에서 소비자는 기업을 지배할 세력으로 노동조합보다는 자본가가 더 책임감이 있다고 보아 그들을 더 신뢰한다.

1997년의 경제위기를 당하여 정부는 실직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필요론을 들고 나왔다. 사회안전망 구축과 재정에 의한 경기자극은 어떤 이유로든 경제에 공황적 수요부족 증상이 발생하면 필요하다. 그러나 케인스적 좌파나 사회주의 정부들이 하는 것처럼 평상시에도 고세율로 큰 정부를 유지하는 구실이 돼서는 안된다.

김대중 행정부는 사회안전망을 구실로 사회주의적 개혁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런 金대통령에게는 법률과 국회가 자기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을 직접 상대로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취임 초기처럼 국회와 법률을 우회하는 포퓰리즘 정치에 기대어 이 방해를 극복하겠다는 뜻인 듯하다.

그는 자유 시장경제의 정공법인 규제완화.투명화.민영화.세율 인하.노동 유연화.정부 작위 자제 대신 '심리전' 을 주로 건설경기와 주식시장을 부추기기 위해 펴고 있다.

언제 실시될지 기약이 없는 제주도 자유무역지대, 부산 자유관세지역, 은행 민영화, 그린벨트 해제 등 발표가 그렇다.

*** 정부의 규제.作爲 줄여야

소형 상가와 주택 건설만은 최후의 심판 날 현상 같은 낮은 금리 때문에 반짝경기를 타고 있다. 그러나 곧 팔리지 않은 연립주택과 빈 사무실이 쌓일 것이다.

김대중식 순무(巡撫)고무(鼓舞)형 심리전 꼼수나 케인스적 재정유인이 오히려 더 큰 작해가 되고 있다는 인식이 내년 봄께엔 옛날의 보릿고개를 회상시키면서 개나리와 진달래 꽃처럼 만발할 것이다.

은행을 민영화하는 액션 플랜을 만들어 곧 착수하고 언론기업의 자본 소유제한이나 노동조합에 편집권을 떼어주는 입법은 없다는 것을 선언하는 정공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시장을 누르는 것도 받드는 것도 아니라 세금을 줄이고 정부의 규제와 작위를 줄이는 정치가 돼야 경제가 회복될 수 있다. 그래야 기업이 투자를 시작할 테니까 말이다.

강위석 <월간 emerge새천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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