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울고 파는 수입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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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수입차 전시장이 밀집한 서울 강남의 도산대로. 이곳에서도 가장 중심인 도산공원 사거리를 7년간 지켜온 일본차 브랜드 인피니티 전시장이 최근 문을 닫았다. 이 전시장과 송파 전시장을 운영하며 인피니티 국내 판매량의 약 40%를 실적으로 올리던 대형 딜러(전문판매상) SS모터스가 딜러권을 닛산코리아에 자진 반납하고 사업을 접은 것이다.

권기연 SS모터스 대표는 “최근 몇 년간 판매량이 뚝 떨어져 실적 부진이 너무 오래갔다”면서 “엔고 때문에 가격 경쟁력을 잃었고, 이 때문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됐다”고 말했다. 인피니티는 올 들어 10월까지 누적 판매 896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대수(2152대)의 절반을 밑돌았다. 월평균 판매량은 89대. 국내에서 사업을 시작한 2005년의 월평균 88대와 같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프랑스 시트로앵의 메인 딜러였던 CXC모터스도 최근 서울 강남 딜러 권한을 반납했다. 시트로앵은 올 4월 10년 만에 한국 시장에 재진출했다. 하지만 10월까지 누적 판매량 185대로 수입차 시장 점유율 0.17%에 그쳤다. 앞서 지난여름엔 폴크스바겐의 서초 지역 딜러인 메트로모터스가 영업권을 내놨다. 아직 후임이 선정되지 않아 서초라는 황금시장이 무주공산이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한 업체가 딜러권을 반납하면 그 사업을 하겠다는 업체가 줄을 섰지만 요즘엔 이익을 내기 어렵다는 계산에 선뜻 나서지 않을 때도 있다”고 말했다.

 수입차 구매는 늘어나는데 수입차 딜러사업은 고전하고 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해져서다. 한국 수입차 시장이 커지자 글로벌 업체들이 새 모델을 들고 쏟아져 들어오면서 생긴 일이다. 올 들어 시트로앵과 미쓰비시가 국내 시장에 다시 뛰어들어 수입차 브랜드는 28개로 늘었다. 고객의 눈길을 끌기 위해 차종을 다양화하다 보니 미쓰비시 파제로, BMW 액티브하이브리드 7과 같이 올해 수입차 신차 350여 종 가운데 단 한 대도 팔리지 않은 차도 있다.

 워낙 차종이 많아지다 보니 전체 시장이 크는 가운데서도 일부 브랜드는 판매가 위축되고 있다. 차량 판매가 늘어난 브랜드 역시 딜러 이익은 확 줄었다. 경쟁이 치열해져 할인 판매가 일상화됐기 때문이다.

 국내 수입차 시장은 BMW·메르세데스벤츠·폴크스바겐·아우디·도요타 5개 브랜드가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30%를 놓고 20여 브랜드가 각축을 벌인다. 독일 브랜드가 우세하고, 일본계가 약세라는 브랜드 간 격차가 있지만 딜러업체의 저조한 실적은 메이저와 마이너를 가리지 않는다. BMW를 판매하는 도이치모터스는 올 들어 9월까지 순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33억원에서 20억원으로 39% 줄었다. 매출은 13% 늘었지만 외형이 성장한 만큼 실속이 따르지 못했다. 메르세데스벤츠 국내 판매량의 60%를 차지하는 한성자동차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4% 늘어날 때 영업이익은 55% 감소했다. 폴크스바겐을 판매하는 클라쎄오토도 영업이익이 55% 줄었다. 도요타·렉서스·혼다 등 일본 브랜드 차를 수입하는 한국법인과 판매하는 딜러업체들은 대부분 적자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딜러업체는 어렵지만 외국 완성차 업체의 한국법인은 성장세를 이어갔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지난해 매출이 2010년 대비 15%, 영업이익은 48% 늘었다.

 ‘딜러 불황’은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는다. 수도권은 경쟁 자체가 치열하다. 지난해 한성자동차는 경쟁 딜러인 더클래스효성이 운영하는 강남 전시장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전시장을 열면서 영업권역 설정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지방 딜러들은 “수도권에 고객을 빼앗기고 있다”면서 애를 태운다. 수도권 딜러들이 차를 한 대라도 더 팔기 위해 할인 경쟁을 한다는 소문이 지방 고객에게까지 흘러 들어가 원정 쇼핑을 온다는 것이다. 전화 몇 통 돌려 가격을 흥정한 뒤 가장 싼 곳에서 구매하는 것이다. 인터넷 게시판에 “수입차 사려는데 견적 보내보라”는 글을 띄우면 딜러들이 각자 줄 수 있는 가격을 보내며 ‘구애’하는 경우도 있다. ‘역경매’식 판매다.

‘수입차 제 값 주고 사면 바보’라는 말도 나온다. 한 지방 딜러업체 관계자는 “약 5~7%인 딜러 마진을 아예 포기하고 파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인센티브를 못 가져가는 달엔 아이 분유 값을 걱정하는 직원도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판매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이 박해지자 부품판매와 정비 매출을 높이는 딜러업체도 생겨나고 있다. 딜러업체 매출에서 정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안팎. 하지만 최근에는 매출의 4분의 1을 정비 부문이 차지하는 곳도 있다. 지난해 매출액에서 정비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혼다를 판매하는 일진자동차(27%)와 D3모터스(27%)가 높았다. 일부 딜러는 차 판매 매출 증가율보다 정비 매출 증가폭이 더 크다. BMW를 판매하는 도이치모터스의 경우 2010년 대비 2011년에 자동차 판매는 27% 늘었는데 정비 매출은 47% 증가했다.

 딜러업체들은 “수입차가 많아지고, 또 구매한 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자연히 정비 수요가 늘어 이쪽 사업이 커지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소비자의 시각은 다르다. 수입차를 보유한 문모(37)씨는 “수입차 업체들이 정비에서 수익을 올리고 있다니 수입차 수리비가 지나치게 비싸다고 의심할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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