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기부, 착해서가 아녜요, 오래 일하고 싶어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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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장석원씨가 전북 완주군 봉동읍사무소에 마련된 북카페에서 벽화 그리기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장석원

“재능기부, 착해서 하는 거 아닙니다. 오래오래 내 전문성을 지키며 돈 벌고 싶어서 하는 거죠.”

 2009년부터 전국 40여 곳의 벽화 프로젝트에 재능기부로 참여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장석원(42·필명 ‘밥장’)씨는 자신의 봉사활동을 굳이 ‘선행’이라고 하지 않았다. “지속가능한 생계 유지 차원에서 하는 일”이라며 “기업이 사회공헌사업을 하는 것처럼 개인도 사회에 기여해야 사회적·경제적 수명이 늘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재능기부를 하면서 그림 실력이 늘었고, 인맥이 확대됐고, 좋은 이미지를 얻게 돼 일거리가 더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가 재능기부로 그린 벽화는 전국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다. 완주·양산·부산·청주·안성 등의 도서관과 공부방, 이주여성 북카페, 마을회관 등에 그의 작품이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서울 구산동 아파트 벽에는 동네 아이들의 얼굴을 넣어 벽화를 그렸다. 그의 재능기부 활동은 벽화 외에도 티셔츠 일러스트, 포스터·소식지 제작까지 이어져 총 100여 건에 이른다.

 그가 첫 벽화를 그린 전북 완주군은 이제 그에게 제2의 고향이 됐다. 사람들이 좋고, 밥이 맛있어 자주 들르게 된 동네. 지금까지 완주의 5개 공공건물에 벽화를 그렸고, 지난 8월엔 ‘명예 완주군민증’까지 받았다.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 명문대(연세대 경제학과)·대기업(SK텔레콤)으로 이어진 엘리트 코스에서 스스로 빠져나와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계기는 이혼이었다. “모범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돌싱’이 돼버리고 나니 그동안 가치있다고 여겼던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가 돌연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을 때 격려해준 사람은 딱 한 명, 단골 술집 주인밖에 없었다. 다들 “예중·예고 나온 애들을 어떻게 이기겠냐” “미술이 얼마나 돈 안 되는 일인지 아냐”며 말렸다.

 주변의 우려와 달리 그의 그림은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KB국민카드 CF, 할리스커피 일러스트, 부천판타스틱 영화제 포스터 등을 그렸다. 2007년부터 그림 그리기로 자립이 가능해졌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 에너지 소모가 적어 덜 지친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 이야기는 강연 소재로도 인기다. 최근엔 강연 역시 그의 재능기부 항목이 됐다. 그는 “이제 재능기부를 빼곤 내 가치를 이야기 할 수 없다”며 “많은 사람들이 재능기부를 할 수 있도록 연결시켜 주는 프로그램이 다양하게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씨처럼 농어촌 지역에 재능기부를 하려는 이들을 위해 농림수산식품부는 스마일재능뱅크(www.smilebank.kr)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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