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바람-왜 「정치」가 없나? 서울 밖의 소리를 듣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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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호남>
한·일 회담 타결의 기류를 타고 밀려드는 일본바람은 어느새 남해안 중소도시의 생활 속에 「일본 색」을 불어넣고 있다.
유치원 애들에게까지 일본노래를 가르쳐야 한다는 성급한 일본「무드」는 비단 서울에만 있던 이야기가 아닌지…
여수시내 어떤「레코드」상의 얘기로는 일본가요를 찾는 손님들이 올해 들어 부쩍 늘었다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일본상품의 밀수입 「루트」가 늘어났는지 국산품의 매상고가 줄었다』는 목포의 한 화장품상의 말이다.
일본 색은 국민들의 정신 속에도 차츰 기어드는 것 같다. 해방 전부터 줄곧 어업회사에서 잔뼈가 굶어 지금은 선주가 된 한 50대는 옛날 웃사람으로 모시던(?) 일본인 선주가 지금은 만만찮은 재벌이 되어있다는 풍문에 그 일본인과 손잡아 한몫 단단히 보려고 연줄 찾기에 분망하고 있다는 얘기고, 또 일본 행 희망자가 늘어난 탓인지 그 밖의 다른 꿍꿍이속이 있는지 목포시내 내에는『대여섯 군데에 간판 없는 일어 강습소가 있는데 유독 여학생들이 기를 쓰고있다』는게 한 시 직원이 말하는 서글픈 실정이다. 그뿐 아니다. 목포·여수·순천·군산 등 해안지방 어민들은 일본배가 해안4, 5마일까지 들어와 마음대로 잡아간다』면서 어장을 잃었다고 한탄한다. N수산의 한 실무자는『기선 저인망 어선 1통(60톤 급 10여 척)을 수리하는데 1억 원이 든다』면서 어선장비의 현대화는 실상 「그림의 떡」밖에 안 된다고 통탄했다.
이런 반갑잖은 새 유행 그리고 눈앞에 다가든 일본 어선들의 위세에 대해 조선대학 법과 3년 생 K군은 『주체성 확립이란 구호만으로 일본의 경제적·정신적 침입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일본의 침략성에 대한 대책이 없이 성급하게 한·일 국교를 타결시켰기 때문에 한·일 협정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30대, 40대로 올라 갈수록 한·일 국교 정상화에 대한 반응은 차츰 열이 식어지면서 『어차피 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방관적 태도들이 많다. 다만 외교문제를 다투는 여·야의 정치적 자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국민의 눈을 현혹시키면서 연출된「쇼」와 같았다』면서 여·야 본연의 자세를 더 아쉬워했다.【목포= 본사 윤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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