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동포는 구적이 아니다|민족의식 이건호|한핏줄…애정통일부터|소수의 북한괴뢰지배층 축출이 관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우리는 매년 8월15일을 맞이할 때마다 양단된 국토와 분열된 민족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이미 20년을 지났다. 앞으로 이대로 또 20년이 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도 이러한 질문에 대하여 숙연한 마음으로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두려움에 대하여 위무가 될만한 아무런 명랑한 싹도 눈앞에는 보이지 않는다.
국토의 양단은 미·소 양국이 우리에게 갖다준 원치 않은 선물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이 두 나라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원인은 그 이전에도 전연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에는 이미 해소되기 어려운 정치적인 관념형태의 대치가 있었다. 이것은 38선의 장기화가 거의 예기되지 않았던 해방직후의 정치정세를 회상해 보아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정치적인 관념형태의 차이는 8·l5 해방과 동시에 양극단을 달릴 가능성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윽고 38선이 고정화하자 남과 북에서는 정치적인 관념형태가 빙탄불상용의 대립을 보이게 되었고 이와 같은 대립되는 관념형태를 구현하는 상이 되는 정치적 현실이 나타나게 되었다. 모든 체제와 모든 생활방식이 이질화 하였을 뿐 아니라 그것은 나아가 적대적인 의식을 유발함에까지 이르렀다. 이와 같은 적대의식은 북한괴뢰의 남침에 따른 6·25의 동족상잔을 통하여 더욱 심화하였고 더욱 비극화 하였다.
현 단계에서는 국토 통일이라는 것을 낙관적으로 볼만한 아무런 징후도 발견할 수가 없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통일 문제를 논하는 그것 자체가 극히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 조차 있으니 오히려 그것은 지금 망각의 경지에 방치해 두는 것이 안전하다고도 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혹자는 말하기를 통일 의욕에 관한 한 우리 국민들은 점점 퇴조일로를 걷고 있다는 것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일리 없는 것은 아닌성 싶다.
정치적인 관념형태의 대립이 완전히 해소되기 전에는 통일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주장도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적인 관념형태의 대립이라는 것은 세계적인 것이며 영원한 것이다. 우리의 통일 문제라는 것을 이와 같은 세계적인 것, 영원한 것에만 의계시키려는 태도는 과연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역사의 흐름속에서 민족이 고통스러운 농락을 당하느냐 스스로 명랑한 역사를 창조해 나가도록 노력 하느냐의 문제가 될 것이다.
편집자는「이대로 또 20년이 간다면」이렇게 묻는다. 이에 대하여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대로 20년이 갈수도 있고 혹은 불행하게도 2백년이 갈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잊어서는 아니 될 일이 있다. 그것은 이북의 우리 동포가 결코 구적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며, 언젠가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는 것이며, 또 다시 유혈의 참극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라는 것이다. 국토의 양단이 장기화 하면 할수록 이북 동포에 대한 우리의 애정은 냉각화 할 것이며 때로는 그들이 우리의 구적과 같이 증오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국토의 통일을 방해하는 것은 이북의 일반 동포가 아니고 북괴의 소수정치 지도자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해야 될 것이다. 우리가 이북 동포에 대한 애정을 견지한다는 것은 바로 그것이 통일의 의욕을 견지하는 소이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 마저 단념해야 할 하등의 이유도 없는 것이 아닐까.
과거에도 이 조그만 삼천리 반도가 세 나라, 네 나라로 분열 되었던 역사적 사실이 있다. 그러나 시일이 흐름에 따라 드디어 통일의 기쁨이 나타났다. 언젠가는 오늘의 국토양단도, 통일의 환희로 대치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통일의 환희를 쟁취하기 위한 방법으로 또 다시 유혈의 참극이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목적은 수단을 신성화한다는 사고방식이 성공을 거둔 예는 별로 없다. 애정과 관용의 기독교적 정신을 가지고 통일이라고 하는 것을 민족의 지상과업으로 생각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북 동포들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이 우리들의 그것과 점점 거리를 갖게 될는지 모른다.
그러나 여하한 조건하에서도 그들이 우리와 피를 같이하는 동족이라는 사실은 부정될 수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 자유 의식을 일깨워 주고 모든 면에서 우리를 동경하도록 지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멀고먼 통일에의 길을 촉진 시킬수 있는 것은 그래도 우리의 애정이 아닐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