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생의 애서『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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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너무 높지도 않고, 너무 얕지도 않고, 너무 늦지도 않고, 그렇다고 이르지도 않고… 바로 그래야 할 순간에 꼭 발을 드는 것! 그 적중!』
무희는 이 아름다운 순간을 창조한다. 지선의 극치! 박종홍 박사(철학·서울대대학원장)는 『멋들어졌다!』고 표현한다.『중용』의 뜻을 그는 이렇게 비유하는 것이었다.
비나 부슬부슬 내리고 바람이 썰렁한 날은 으레 무릎에 책 한권을 펴놓는 박교수다. 표지는 바랬지만, 묵향은 깊은 채. 그『중용』을 박교수는 10살 때부터 손 가까이에 하고 있다. 「귀찮은 일」,「거북한 일」을 당할 때『중용』을 펴면『속이 시원해 진다』는 그였다.
도대체 중용이란 무엇인가? 가령 여도 야도 아니면, 그것은 중용인가? 「아니다」 박종홍 박사는 단호히 거부한다.『-그렇다, 뜨뜻미지근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중용의 정체는?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것, 기뻐할 때, 슬퍼할 때를 옳게 가리는 것. 지극한 선, 지선, 지극』이라고 박교수는 설명한다.『희노애락지미발, 위지중. 발이계중절, 위지화』(중용·주희장구 제1장)
『희노애락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을「중」이라 하고, 나타나서 다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 한다….』
미처 알아 듣지도 못하게 한문 구절을 줄줄 외우며, 우리말 주해를 달며… 그는 얘기를 편다.
『지선은 뭐냐? 「절」, 바로「마디」에 맞는 것.「철부지」라는 말이 있다. 절기를 모른다는 뜻이다. 그저 굽신대면 예는 아니다.「마디」에 맞아야지. 그때 그때의 변화하는 사태에 적응할 중 아는 것. 멋들어 짐도 마찬가지. 시간과 공간에 꼭 맞는 그 순간의 참 발견. 중절의 극치다. 인간생활의 지선한 길도 그런 것이다. 객관적·주관적 조건에 딱 맞아 들어가는 것.』
박교수는 문득 실존주의를 화제로 삼았다. 2천수백여년전, 자사(BC 492∼432)의 사상은 오늘의 그것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중용]을 성취하려면 어떻게 하나?『홀로 삼가라. 늘 경건하게-. 내면적인 충실은「실존」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엷은 얼음을 밟듯이 늘 경건하게-. 그 밑바탕은 오로지「성」이다 참되려고 노력하는 것….』박교수의 조용한 설파다.
그는 [중용]을 음미하며 동양철학에 마음을 묻었다고 고백한다. 철학으로 학문에의 길을 연 것도 이것이 씨앗이었다. <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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