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유료 전용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초산 연령은 32.3세. 1988년생이 2년 전 양육자가 됐다.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1980년대생들이 본격 양육자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육자는 어느 사회에서나 허리이자 주축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30대는 커리어 관점에선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도약하는 시기다. 산업 현장에서 양육자는 말 그대로 ‘허리’인 셈이다. 양육자는 자녀를 낳아 사회가 소멸하지 않도록 ‘재생산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들의 라이프스타일, 가치관은 자녀들이 사회 주축이 될 미래 한국의 모습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hello! Parents가 ‘양육자’에 주목하는 이유다.   80년대생의 양육은 과연 무엇이 다를까? 그리고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hello! Parents는 오늘부터 4주간에 걸쳐 본격 양육자 대열에 합류한 80년대생을 집중해서 들여다보고자 한다.      ■ 🧾 목차 「 1. 1980년대생은 누구인가 2.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①대세가 된 맞벌이    ②자녀에 대한 전방위적 책임감    ③높은 주거 안정성  [관련 기사] 어떻게 취재했나 3. ‘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순서 」   ━  1. 1980년대생은 누구인가   1980년대생들은 양육자가 되기 전에 어떻게 자라왔을까? 양육자로서의 면모를 들여다보기에 앞서 이들 세대를 이해하는 게 먼저다.   80년대생은 성장 과정에서 경제적 풍요의 과실을 본격적으로 맛본 한국의 첫 세대다. 1980년대 한국은 저금리·저유가·저달러로 대표되는 이른바 3저 호황을 기반으로 고성장했다. 이 시기에 한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9.7%에 육박한다. 매년 10% 안팎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사실 경제성장이 본격화된 건 1960년대부터다. 주역은 80년대생의 부모인 베이비부머 세대다. 1980년대가 이전 시대와 달라진 건 경제적 풍요 위에서 고성장했다는 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20년간 만들어온 성장의 결실을 그 자녀 세대가 누린 셈이다. 실제로 1994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렇다고 80년대생이 풍족하게만 자란 건 아니다. 1997년 12월 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이들 세대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1997년 6.2%였던 연간 경제성장률은 다음 해 -5.1%로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2.5%에서 7%로 치솟았다. 1980년대생은 부모 세대의 대량 실업으로 가정이 해체되는 경험을 했다.    이들 세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경제적으로 더 민감해졌다. 2008년 위기는 80년대생이 구직 활동을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충격이 컸다. 2008년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은 “1980년대생이 경제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자 두 번의 위기를 겪은 80년대생들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공모전에 응모하며 스펙 쌓기에 몰두했다. 안정적 일자리와 고소득을 좇아 고시촌으로, 전문대학원으로 향한 이들 역시 많았다. 자기계발 1세대는 이렇게 탄생했다.   ‘영끌’세대는 80년대생에 가장 최근 붙여진 별명이다. 80년대생이 결혼으로 주택시장에 진입한 2010년 중후반기 부동산 시장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 중간값(중위가격)은 10억9160만원. 20년 넘게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집을 사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주거 안정성과 자산 증식을 위해 80년대생은 빚을 끌어모아 집에 ‘몰빵’했다. 지난해 주택 구매자 중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40%에 육박했다.   이들 세대를 이전 세대와 가르는 또 다른 특징은 정보기술(IT) 능력이다. 80년대생은 집집마다 PC가 보급되던 시절 10대를 보냈다. PC게임, PC방 같은 컴퓨터 기반 문화를 어려서부터 향유할 수 있었고, 네이버와 옛 다음(현 카카오) 같은 IT기업과 함께 성장했다. PC를 기반으로 익힌 IT 능력은 2006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열린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는 자산이 됐다.    ━  2.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hello! Parents는 1980년대생 양육자 11명을 만나 이들의 삶을 세세히 들여다봤다. 지난 9월 13~23일 대면 또는 비대면으로 2시간 이상 심층 인터뷰했다. 이후 전화와 메일 등을 통해 추가 취재도 했다.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들은 다음과 같다.   인터뷰 범위가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에까지 미치는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hello! Parents가 만난 1980년대생 양육자들은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다.   ①대세가 된 맞벌이  11명의 양육자 중 7명(63.6%)이 맞벌이였다. 아빠도 엄마도 일하는 가정이 절반이 넘었다. 이는 대한민국 다른 가정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배우자가 있는 가구의 46.3%가 맞벌이였는데, 30대의 경우 그 비율이 53.3%였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지난해 육아정책 여론조사에서도 61.7%가 맞벌이라고 응답했다. 이 조사의 경우 전체 대상자(3020명)의 93.5%가 30대와 40대였다.   30대에서 맞벌이 가구가 과반으로 늘어난 건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의 높아진 교육 수준과 무관하지 않다. 80년대생이 대학에 진학한 2000년 이후 고등학생의 성별 대학 진학률을 보면 남성과 여성 간 차이가 크지 않다. 2000년엔 여학생의 65.4%가, 2005년엔 80.8%가 대학에 진학했다. 같은 기간 남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각각 70.4%, 83.3%였다. 80년대생 여성은 남성과 대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고 노동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자녀의 탄생은 맞벌이 가구가 외벌이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30대의 경우 무자녀 맞벌이 비중은 61.2%다. 자녀가 1명인 같은 연령대 맞벌이 비중은 46.7%로 더 낮다. 전업주부 통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과정에서 커리어를 포기하는 건 대부분 여성이라는 걸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②자녀에 대한 경제적·정서적 책임감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양육자가 공통으로 보였던 특징은 바로 자녀에 대한 경제적 책임감이다. 이들은 “자녀들이 적성과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고 싶다”며 “그러자면 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책임감은 80년대생 양육자 전반에 나타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육아정책 여론조사(2021)에 참여한 3000여 명의 양육자도 “부모가 되기 위해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경제적 준비에 대한 질문에 3.39점(4점 만점) 수준으로 동의했다. 부모됨과 관련된 다른 항목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30대 양육자가 경제적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3.44점).   경제적 책임감은 맞벌이로 이어진다.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인터뷰 대상 역시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맞벌이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일하는 엄마’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과거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던 엄마가 일터로 나가면서, 일을 해 돈을 벌어오던 아빠는 양육자 정체성이 강화됐다. 엄마의 부재를 아빠가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이다.   흥미로운 점은 소득이 높은 가구일수록 경제적 책임감을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 특징 역시 육아정책 여론조사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해당 조사에서는 월평균 가구 소득이 600만원 이상인 가구가 자녀에 대한 경제적 책임에 대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동의했다.   80년대생 양육자는 정서적 책임감 역시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11명의 양육자는 아이를 정서적으로 잘 돌보기 위해 정신과 의사이자 육아 멘토로 꼽히는 오은영,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의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자기계발 세대다운 면모다.   1980년대생 양육자의 정서적 책임감은 2018년 한국가족관계학회지에 실린 논문(『청년층 세대 비교로 살펴본 가족 건강성과 기능 요구도: 1차 및 2차 에코부머를 중심으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1979~82년생을 1차 에코부머 세대로 정의했는데, 이 세대는 가정의 기능 중 정서적인 기능을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한국 사회가 압축적 근대화를 경험하면서, 어린 시절 가족의 정서적 기능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설명했다. 80년대생들은 자신들의 결핍을 거울삼아 자녀는 정서적으로 잘 발달할 수 있도록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③높은 주거 안정성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80년대생 양육자 중 7명이 자가를 보유하고 있었다. 63.6%에 달하는 비율이다. 이 중 한 명은 아파트 청약을 위해 보유 중이던 집을 팔았는데, 이 경우까지 포함하면 8명(72.7%)이 자가 보유 경험을 갖고 있었다. 일부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집값의 70%를 담보대출 받았다. ‘영끌 세대’다운 모습이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처럼 30대를 위한 청약제도를 적극 활용해 자가를 갖게 된 이들도 두 명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30대인 가구의 주택 소유율은 40.2%였다. 전년(2020년) 대비 25%가량 늘긴 했지만, 전 연령대 중에선 뒤에서 두 번째다. 이 수치와 비교하면, hello! Parents의 인터뷰 그룹의 주거 안정성은 상당히 높은 셈이다. 이 같은 특징이 나타난 건 인터뷰 대상 선정 기준 때문으로 보인다. hello! Parents는 중산층 양육자에 초점을 맞추고, 소득 하위 그룹과 최상위 그룹을 제외했다.   그럼에도 양육자 11명의 높은 자가 비율이 평균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보통 기혼자가 미혼보다 자산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단연 부동산이다. 올해 2월 신한은행이 발행한 ‘보통 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중간층(소득구간 3구간)인 3040 미혼의 경우 전체 자산이 2억9312만원이었던 데 반해 2030 유자녀(초등생 이하) 기혼자의 자산은 총 5억8024만원이었다. 2040 무자녀 기혼자의 총자산도 4억4793만원으로, 미혼인 경우보다 컸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이 중간 이상인 경우 부동산 자산 규모가 꾸준히 커졌는데, 결혼했거나 자녀가 있는 경우 상승 폭이 더 컸다. 결혼을 하고 특히 자녀가 생기면 주거 안정성에 대한 욕구가 커져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이가 많다. 이렇게 매수한 주택이 부동산 상승기를 거치며 자산을 키운 일등 공신이 된다. hello! Parents의 인터뷰 대상 중 64%가량이 자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역시 유자녀 기혼자들이 집을 통해 자산을 키웠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관련 기사]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어떻게 취재했나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  3. ‘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순서    오늘 첫 회가 나간 ‘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기획은 주 3회(월수금) 아래와 같은 순서로 발행될 예정이다.   ■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 1.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2.80년대생 양육자가 결혼을 추천하는 이유  3.우리가 일하는 세가지 이유   4.“결혼 만족하지만, 아이는 글쎄” 엄마의 속마음   1)풀타임 워킹맘       ①강민경 씨 : “다 잘하려고 하면 다 못한다. 내가 챙기는 건 딱 한 가지”     ②오소연 씨 : “나는 결혼 후 비혼주의자가 됐다”    2)파트타임 워킹맘         ①조현정 씨 :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 내가 하면 애엄마”        ②이현지 씨 : “산부인과 전문의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이유”     3)전업맘       ①남지선 씨 : “결혼 후 날 것의 남자를 만났다”      ②윤미래 씨 “딩크족이었던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은 이유”    5.“나의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1)육아휴직 경험 안 한 워킹대디      ①최창호 씨 : “벤츠 대신 경차 타도 아빠 된 건 후회 안 한다”      ②이우진 씨 : “프리랜서된 아내, 청약 특별당첨 고려안한 건 아니야”      2)육아휴직 경험한 워킹 대디        ①박태우 씨 : “8년 전 나 육휴 쓴다고 욕했던 남자들  다 육아휴직 했다”      ②장승준 씨 : “아이를 위해서 직장도 바꿨다”    3)전업대디      ①황준희 씨 : “난 일시적 주부, 커리어 공백과 싸우다”   6. “가사와 육아를 둘러싼 은은한 차별이 문제” 1980년대생이 만난 1980년대생 」  [참고문헌] 『행복한 육아문화 정착을 위한 KICCE 육아정책 여론조사(Ⅴ)』, 박원순·최윤경·김희수, 육아정책연구소, 2021. 『청년층 세대 비교로 살펴본 가족 건강성과 기능 요구도: 1차 및 2차 에코부머를 중심으로』, 강민지·유계숙, 한국가족관계학회지, 2018. 『보통 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신한은행, 2022.

    2022.10.14 17:49

  • “수포자에게도 급이 있다, 한국이 미·영보다 뛰어나”

    “수포자에게도 급이 있다, 한국이 미·영보다 뛰어나” 유료 전용

    수학은 그 어떤 현상도 선명한 하나의 식이나 문장으로 만들어 냅니다. 그 식이나 문장이 현상의 본질이죠. 그래서 수학을 공부하면 직관이 발달해요.   지난달 13일 만난 김민형 영국 워릭대 수학과 교수는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수학을 공부하면 세상을 이해하는 직관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수학은 세상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한다. 그 결과는 명징한 식이나 문장으로 나오고, 그렇게 만들어진 식이나 문장은 원래 설명하려던 현상과 전혀 다른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본질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수학은 본질에 가 닿으려는 노력이고, 그래서 수학을 공부하면 직관이 발달한다는 얘기다.   지난달 13일 만난 김민형 영국 워릭대 수학과 교수는 “수학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상을 가장 정확하고 섬세하게 설명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김민형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를 처음으로 조기 졸업한 수재다.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 옥스포드대 수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하지만 그의 세상은 수학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수학을 역사나 삶과 엮어 풀어낸 『수학이 필요한 순간』 『역사를 품은 수학, 수학을 품은 역사』 같은 책을 냈고, 10대 아이들과 수학을 주제로 나눈 이야기를 묶어 『어서 오세요, 이야기 수학 클럽에』라는 책도 썼다. 그를 만나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와 공부법을 물었다.     ━  📢 수학 공부, 논리력과 직관력을 키운다     수학은 공식이다. 공식은 정말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하고 가장 섬세한 방법일까? 이 질문에 그는 수식 하나를 꺼내 들었다.    김민형 교수가 인터뷰 도중 식을 하나 썼다. 그리곤 “이 식이 바로 기타나 바이올린을 조율하는 원리를 설명해준다”고 했다. f는 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주파수, L는 줄의 길이, ρ는 밀도, T는 장력을 의미한다. 전민규 기자   복잡해 보이는 식을 쓰고 난 그는 뜬금없이 “기타를 조율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기타 끝에 달린 헤드머신을 조이고 풀면서 줄의 팽팽한 정도를 조정해 음을 조율하는데, 이 식이 바로 그걸 설명하는 식”이라고 그는 말했다.   공식을 좀 설명해 주세요. 기타 줄을 팽팽하게 하면 장력이 커져요. 그럼 주파수도 올라가죠. 음이 높아지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포인트는 루트(√)예요.   루트가 왜 포인트죠? 루트 덕분에 우리 같은 사람도 조율할 수 있거든요. 루트가 없었다면 현을 조이고 풀 때마다 음이 확확 바뀌었을 거예요. 정교한 기술을 가져야만 조율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루트 덕분에 대충 해도 음을 맞출 수 있는 겁니다. 루트는 제곱근이니까요. 우리가 조이거나 푸는 힘이 제곱근만큼 줄어들잖아요.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식인데, 제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네요. 수학은 그런 겁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학문이죠. 그런데 그냥 대충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주 섬세하게 설명하죠. ‘줄의 팽팽한 정도는 음의 높낮이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하지 않고, ‘제곱근만큼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하는 식이에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다양한 현상의 선후 관계나 인과관계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설명하는 게 수학이라는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좀 더 정확하고 섬세하게 파악하려다 보면 결국 수학으로 귀결됩니다. 물리학에도 수리물리학이, 경제학에도 수리경제학이, 생물학도 수리생물학이 있는 이유죠. 수학을 하다 보면 재밌는 게 하나 더 있어요.   그게 뭐죠? 수학은 어떤 현상을 만들어내는 근원적인 요인과 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잖아요. 본질을 포착해 내는 거죠. 그렇게 찾아낸 본질(수식)은 종종 전혀 달라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일례로 빛을 묘사하는 방정식은 소리를 묘사합니다. 존 내시라는 수학자가 고안해낸 내시균형 공식도 있습니다. 상대의 전략을 고려해 자신의 전략을 세운다는 일종의 게임이론이죠. 이 이론은 부부 사이의 상태를 설명할 때도 많이 쓰여요. 저희 부부는 아내가 엄격한 양육 스타일을 가졌고, 저는 반대인데 이것도 내시균형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님도 그렇고, 교수님도 그렇고 수학자인데 철학자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그래서군요. 하하. 그렇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학자 입장에서 보면 철학자분들이 수학적 언어를 사용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현상을 설명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웃음)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선후 관계나 인과관계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보면, 수학은 굉장히 논리적인 학문인 것 같아요. 수학은 아주 세밀한 수준까지 논리를 밀어붙이는 거잖아요. 이렇게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직관이 발달합니다. 문법을 정확하게 알면 더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것과 유사하죠. 수학을 공부한다는 건 논리와 직관을 더 뾰족하게 벼리는 것이죠.    ━  📢 4차 산업혁명 시대, 사방이 수학인 이유     김민형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사방이 수학”이라고 말했다. 수학을 잘하면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수학을 피해가면서 살 수는 있지만, 수학 없는 삶은 이미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저는 사회학을 전공하고 기자가 됐는데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일상이나 업무에서 수학을 써본 적이 없어요. 수학이 사방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에도 수학이 엄청나게 필요해요. 컴퓨터라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뿐 아니라 그 안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에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클릭하는 모든 행동이 다 데이터로 남잖아요. 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게 바로 수학입니다.   업계를 막론하고 데이터 사이언스가 뜨거운 건 맞아요. 마케팅만 해도 그래요. 요즘엔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율을 측정하고 전략을 세우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잖아요. 이것도 다 수학이죠.   마케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현상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그걸 데이터로 증명해 확인하는 식의 업무 방식이 자리 잡았어요. 기자만 해도, 과거엔 기사를 쓰면 끝이었는데 이제 기사가 어떻게 바이럴 되고 유통되는지 추적하거든요. 수학은 자동차 같은 겁니다. 자동차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잖아요. 수학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자동차의 구조를 알고 보닛을 열어 직접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적죠. 하지만 그런 걸 할 수 있다면 자동차에 관한 한 더 많은 기회,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죠. 수학도 마찬가집니다.   수학을 잘 알면 더 좋은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요즘엔 어떤 기업이든 수학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채용합니다. 개발자, 회계사, 마케터 어떤 직종이건 수학적 사고와 능력이 필요하니까요. 특히 한 기업을 경영하는 대표는 각 부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없어도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수학적 능력이 없어선 안 됩니다. ‘수학을 얼마만큼 공부할 것인가’는 개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에 따라 진로가 달라지고, 소득이 달라지고, 자유의 정도가 달라지는 시대가 이미 왔어요.   김민형 교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엔 사방이 수학”이라며 “수학을 얼마나 공부할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에 따라 기회의 질과 양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  📢 한국의 수포자가 미국이나 영국의 수포자보다 뛰어나다?!     수학은 중요하다. 누구나 안다. 하지만 수학을 공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수학을 가르치는 건 말해 무엇하랴. 수학이 가장 먼저 전문가에게 맡기는 과목인 이유다. 도대체 수학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는 그에게 수학 공부법에 관해 물었다.   수학,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영국에 계시니 두 나라의 학습 스타일을 비교해서 설명해 주세요. 영국과 한국은 정반대입니다. 한국은 개념을 설명해 주고 공식도 가르쳐주잖아요. 그리고 문제를 풀게 하죠. 반면에 영국은 그냥 문제를 줍니다. 문제를 혼자 힘으로 풀면서 개념에 접근해 가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 학생들이 굉장히 어려워해요. 교수가 하는 강의도 재미가 별로 없고요. (웃음)   영국은 왜 그렇게 수학을 가르치나요? 영국 수학은 상당히 실용적입니다. 뛰어난 수학자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천착하죠.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개념만 배우고 공부합니다. 영국에서 저는 개념 설명을 많이 하는 교수에 속하죠.   어떤 학습법이 더 좋은 걸까요?   뭐가 더 좋다, 나쁘다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요?   한국은 필즈상이나 노벨상 수상자가 거의 없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잖아요. 결과적으로 영국의 학습법이 더 뛰어난 것 아닐까요? 그런 상을 받은 사람의 숫자로 한 나라의 수학적 역량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건 마치 한 나라의 경제력을 평가하면서 억만장자가 얼마나 많은지 보는 것과 같아요. 억만장자가 많은 것보다 중산층이 두꺼운 게 더 좋은 상태잖아요.   그렇다면 이렇게 여쭐게요. 한국의 수학 능력은 중간층이 두꺼운 상태인가요? 그러니까 고르게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늘어난다고 다들 걱정하잖아요. 어느 나라나 아이들은 수학을 어려워합니다. 수포자도 어디든 있고요. 제 느낌엔 영국에 수포자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 수포자의 수학 실력이 영국 수포자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그건 미국과 비교해도 마찬가지고요.   왜 그렇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아요. 공부해서 소위 명문대에 가려고 하잖아요, 누구나요.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은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빈부 격차 때문인 것도 같고요. 소수의 엘리트는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교육을 받고 조밀하고 촘촘하게 경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좋은 대학에 가려는 생각조차 안 하고, 하더라도 너무 뒤늦게 결심해서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어요. 그 점에서 한국은 확실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학을 잘하는 것도 그래서이고요.   그렇다면 한국의 수학 교육은 나쁘지 않은 건가요? 더 잘해야 할 부분, 보완해야 할 부분이야 있겠죠. 저는 다만 너무 문제라고만 보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사실 교육을 놓고 서로 비판하고 갈등하는 것도 그만큼 관심이 많아서잖아요. 그 점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가르친 김민형 교수는 “한국의 수학 교육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의 전반적인 수학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한국의 수포자가 영국이나 미국의 수포자보다 뛰어나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  📢 그래도 연산은 필요하다       여기까지 들었지만, 여전히 수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혔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연산을 공부해야 하느냐고.   계산기도 있고, 컴퓨터도 있는데 연산을 반복해서 공부해야 할까요? 연산을 잘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단어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핸드폰만 열면 사전에 접근해 뜻을 검색해볼 수 있어요. 그런데도 단어를 아는 건 힘이 있습니다. 연산은 그런 겁니다. 핸드폰이, 계산기가, 컴퓨터가 계산해 주지만 여전히 계산할 줄 아는 건 힘이 되는 거죠. 기초체력 같은 겁니다.    왜 기초체력인가요? 살면서 숫자를 사방에서 만납니다. 감기 걸려 약을 지으러 가도 투약 의뢰서에 숫자가 나오고,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해도 숫자가 나오고요. 매일 마주하는 숫자에 대한 직관이 필요합니다. 그 수가 얼마나 큰지에 대한 직관이요. 코로나 19 확진자 숫자가 매일 공개되잖아요. 그걸 보면서 저 숫자가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가늠할 수 있어야 코로나 19의 확산세를 파악할 수 있죠. 그 힘을 기르는 게 바로 연산입니다.   창의력 수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스토리텔링 수학이라고도 불립니다. 실생활 장면을 포착해서 이야기 형태로 문제가 제시되고 그걸 풀어내면서 어떤 개념에 접근하는 식이에요. 이런 수학 공부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장으로 쓰인 걸 읽고 수식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상당한 사고를 필요로 합니다. 그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접근은 다들 어려워합니다. 또 처음엔 낯설어서 창의적인 사고를 끌어낼 수 있지만, 이것도 계속하다 보면 기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답 싫어하실 줄 알지만, 아이의 성향과 수준에 따라 판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 아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수학이 대표적인 과목입니다. 한 학기, 1년 치를 선행하는 걸 넘어 2, 3년 뒤에 배워야 할 것들을 미리 학습하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선행 학습이 필요한지, 효과적인지에 대해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게 있어요. 선행하더라도 지금 하는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해선 절대 안 됩니다. 선행학습을 통해 한 번 배웠기 때문에 모르는 걸 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현행 학습을 심도 있게 하면서 진짜 아는 건지 확인하면서 가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공부법 일반에 대해 여쭈었는데요, 교수님의 공부법이 궁금합니다. 서울대 수학과 조기 졸업 1호, 미국 예일대 박사 학위, 한국인 최초 옥스퍼드대 교수 등 이력이 정말 화려하신데요. 교수님은 어떻게 공부하시는 건가요? 제가 잘하는 게 있다면 그건 지속한다는 겁니다. 그게 제 공부의 비결입니다. 저는 뭔가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이해가 안 가더라도 계속 보고 또 봅니다. 같은 질문을 몇 년씩 계속 고민한 적도 있어요.   작심삼일이라고 하잖아요. 아무리 결심해도 3일을 넘기 힘든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으셨나요?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것 같아요. 오래 걸리더라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집착이 있거든요. 그래서 다시 돌아와 똑같은 문제를 마주하는 겁니다. 놀라운 건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습관이 된 것 같아요.   뭔가를 이해하려고 계속 탐구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시는 것 같아요. 요즘은 공부하기 정말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지적 자원이 사방에 있잖아요. 제가 소득 불평등에 대해 궁금하면 검색창을 열어 단어를 쳐서 넣기만 하면 됩니다. 링크를 통해 사고를 계속해서 확장할 수 있죠. 덕분에 학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지적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것 같아요. 취재 기자에게 각도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민형 교수. 그는 “세상을 어렴풋하게 아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그에겐 대학원과 대학에 재학 중인 장성한 두 아들이 있다. 첫째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물리학과 계산과학을 공부 중이고, 둘째는 경제학을 공부한다. 수학자 아버지를 둔 덕인지, 수학에서 멀리 가지 않았다. 어떻게 자녀를 교육했느냐고 묻자 그는 “가르쳤다기보다 같이 배웠다”고 말했다. 1500년대 말 프랑스가 피렌체를 공격했는데, 그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아빠도 잘 모르겠는데, 찾아보고 알려줄래?”라고 제안하는 식이다. 그럼 아이가 자신의 답을 들고 왔단다.   “세상을 어렴풋하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걸 인정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도 어른도 서로 배우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1.수학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이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수학적 결과물인 공식은 본질에 접근한다. 수학을 공부하면 논리력과 직관력이 발달하는 이유다. 2.4차 산업혁명 시대엔 사방이 수학이다. 모든 게 디지털화 되면서 데이터라는 흔적이 남게 됐기 때문이다. 수학을 얼마나 공부할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에 따라 기회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 3.필즈상이나 노벨상 수상자 숫자로 한 사회의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건 백만장자 숫자로 경제력을 가늠하는 것과 같다. 그런 수상자보다 보통 사람의 수학 실력이 일정 수준에 올라와 있는 게 중요하다. 그 점에서 한국 수학 교육은 나쁘지 않다.  」 관련기사 "구구단 외우면 바보 된다, 그려라" 깨봉수학 만든 조봉한 대표 "겨울방학 수학, 1학기 예습이면 충분" 초등생 딸 둔 수학교사 조언 “수포자·수학 1~2등급, 초1·2때가 가른다” 23년차 수학강사 팁 [오밥뉴스]

    2022.10.12 16:10

  • "책 한권 통째로 외울 수 있다"…기록전문가, 비밀의 메모장

    "책 한권 통째로 외울 수 있다"…기록전문가, 비밀의 메모장 유료 전용

    뭔가 열심히 적어 놓고 뿌듯해 하시나요? 그런 메모는 기억에 남질 않아요. 메모를 내 것으로 만들려면 되새기는 메모를 또 해야 합니다. 종국엔 메모를 안 보고 말할 수 있어야 진짜 메모를 한 거죠.     “어떻게 하면 기억에 남는 메모를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는 “메모의 본질은 요약”이라며 “궁극적인 목적은 기억을 넘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간과한다. “메모할 때 너무 많이 쓰고, 무턱대고 적고, 한번 쓰고 안 본다”고 그는 지적했다.    김익한 명지대 교수는 지난달 서울 마포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메모는 자신이 이해한 핵심을 키워드로 적어야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김 교수는 국내 국가기록관리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 받는 기록학자다. 1990년대 말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초안을 만들었고, 대통령기록관과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땐 진도로 내려가 민간 차원에서 사고를 기록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20년 넘게 정부 공식 문서와 대형 사건 기록을 담당했던 그는 최근 개인의 삶을 기록하는 메모법을 설파하고 있다.   김 교수는 “기록학은 방대한 공공 문서를 체계적으로 수집·보존·관리해 정부를 효율적으로 이끌어 나가고자 만들어졌다”며 “메모를 통해 개인도 학습과 일, 일상에서 성장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메모에 정답은 없다   김 교수에 따르면, 메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책, 수업, 대화, 경험 등 외부 정보를 이해하고 자기화해 적는 메모다. 또 다른 하나는 자기 내부에 있는 지식과 경험을 추출해 쓰는 메모가 있다. “이 두 메모가 시너지를 내며 빛을 발하는 과정이 공부”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메모가 지식의 연결과 확장을 가능하게 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메모 습관이 자리잡으면 집중력, 이해력, 암기력이 향상돼 공부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했다.     학창시절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필기도 잘 했던 것 같아요. 공부 잘 하는 필기법이 있나요?   교실에 두 학생이 있다고 해볼께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 하시는 말씀 놓칠 세라 공책에 코를 박고 열심히 필기하는 학생,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이다가 몇 마디 적는 학생 이렇게요. 둘 중 누가 더 공부를 잘할까요? 메모 능력만 본다면 후자가 공부를 잘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필기를 많이 안 하는데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다고요? 수업 내용의 핵심을 짚어내서 자기 것으로 소화 했느냐를 메모로 따져보는 거죠.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쓴 아이는 받아 적느라 맥락을 놓치고 스스로 이해하는 시간이 부족했을 거에요. 그에 반해 키워드 위주로 적은 아이는 맥락을 따라가며 듣다가 자신에게 와 닿은 단어나 문구를 적은 거죠. 이 아이가 수업 내용을 더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요. 나중에 응용 문제가 나오거나, 논술 시험을 봐도 잘 대응할 수 있습니다.     적게 적었는데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요?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요약해 놓으면, 너무 많은 걸 놓칠까 불안해합니다. 기억이 하나도 안 나면 어쩌나 하고요. 그런데 많이 적으면 오히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내가 인상 깊었던, 중요하다고 생각한 순간에 키워드만 적어야 전체 맥락이 같이 연상되거든요. 핵심만 간단히 적겠다고 생각하면 절로 맥락을 파악하려는 욕구도 커집니다.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거죠.     얼마만큼 적으면 적게 적는 걸까요? 30쪽 정도 분량의 책을 기준으로 보면, A4용지 반장 이하로 적는 걸 권합니다. 인간의 뇌가 기억할 수 있는 최대 용량이 A4용지 2장 정도라고 해요.   김익한 교수는 "핵심만 키워드로 적어야 맥락을 파악하려는 욕구가 커지고 기억에도 잘 남는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요약 능력이 관건이겠네요.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키워드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요약에 정답은 없어요. 학생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종종 제가 메모한 걸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럼 제가 말해요. “내 것이 정답이라는 보장이 없다”고요. 그 사람의 요약은 그것대로 정답이고, 내 요약은 내 것대로 정답입니다. 메모를 하는 사람이 당시 ‘아하!’ 하고 깨달은 것, 의미 있다고 느낀 부분을 단어나 문구로 적으면 됩니다. 그게 그 사람이 이해한 것이고, 자기화한 결과물입니다.     대화엔 화자의 의도, 시험에는 출제자의 의도가 분명 있을텐데요. 정보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모 습관과 경험이 쌓이다 보면 화자의 의도에 근접하게 됩니다. 일정한 양이 쌓이게 되면 어느 순간 질적인 비약이 이뤄진다는 거죠. 양질 전환의 법칙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수업 시작하기 전에 교과서 수업 목표나 책 목차라도 훑어보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핵심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아요.그보다 제가 생각하는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어요. 아예 메모할 기회를 빼앗고 생각을 틀어막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메모할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얘긴가요? 학원이나 학교에서 아예 핵심 내용을 정리 요약한 프린트물을 나눠줍니다. 실제 누군가가 노트 필기 해놓은 것처럼 정리된 참고서도 많고요. 이걸 보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무작정 보고 외우는 것 밖에 더 하겠습니까? 암기도 자기식 이해가 선행이 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생략되면 겉돌 수 밖에 없죠. ‘이거 시험에 그대로 나오니 지금부터 받아적어라’ 하는 선생님들도 계시죠. 그래선 안 됩니다. 선생님의 얘기를 10명의 학생이 듣고 있으면, 각기 다른 메모 10개가 나와야 해요. 각자 이해한 정도가 다 다를 테니까요.     요즘엔 인공지능(AI)이 회의나 대화 내용을 몇 문장으로 요약해주기도 하는데요.   AI가 정확하고 빠른 요약에선 압도적이죠. 예를 들면 판결문 요약 같은 건 AI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창의적일 필요가 없거든요. 아니, 어떤 면에선 창의적이지 않아야 하죠. 하지만 AI가 한 요약을 보고 양형과 관련된 법리적인 판단은 인간이 내리지 않습니까? 개인의 취향과 해석이 가미된 요약이나 나에게 의미있는 요약은 결코 AI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  메모장, 하나로는 부족하다   김 교수는 “메모는 한번 쓰고 끝내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순간의 기억을 키워드로 붙잡아 두었다면, 이를 다시 가다듬어 자신만의 서사로 재정리하는 2차 메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메모장도 두 종류를 쓰라고 조언했다. 먼저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이것 저것 적을 수 있는 만능노트를 쓴다. 이후 잡다한 메모를 다시 적는 만능 카드를 추가로 쓰라는 것이다. 만능 카드로는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의 링이 달린 단어카드장을 추천했다. “두 종류의 메모장을 활용하면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는 것도 가능하다”고 김 교수는 주장한다.    김익한 명지대 교수는 "두 종류의 메모장을 활용해 책 한 권을 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메모로 책 내용을 통째로 암기할 수 있다고요? 책의 한 챕터를 읽고 있다면, 만능 노트에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키워드 위주로 적습니다. 한 챕터를 다 읽고 나면 그 키워드들끼리 연결하고 자신만의 논리 구조를 만들어서 만능 카드에 적습니다. 2차 메모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챕터별로 카드가 한장씩 만들어지겠죠. 다섯 장의 챕터가 있다면 다섯장의 카드가 있을 텐데, 이걸 다시 쭉 보고 머릿속으로 책 내용을 상기하는 거죠. 학생들에게는 과목별로 이런 카드를 만드는 걸 추천해요.   단어 카드를 써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일단 한 손에 들어오는 카드를 쓰다 보면 적게 쓸 수 밖에 없어요. 공간 제약 때문에라도 축약을 하게 되는 거죠. 카드를 한장씩 완성해서 차곡차곡 쌓일 때 마다 지적 성취감도 느낄 수 있어요. 자신이 원하는 순서로 카드를 바꿔 끼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책에서는 1장부터 5장까지 순서대로 나와있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5장을 처음으로 앞세울 수 있어요. 그리고 시간이 날 때 다시 되새기는 작업을 하기에도 편리하고요.     되새김이요? 메모한 내용을 반복적, 의식적으로 각인시키는 거죠. 이때 그림, 이미지로 기억하는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자기만의 약속을 만들어서 표식이나 색깔을 입혀보세요. 단어 카드를 복기하면서 형광펜이나 색연필로 다시 중요 부분을 칠하고 표시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동그라미나 핑크색은 더 중요한 키워드에, 노란색은 부연 설명할 때 쓰는 식으로요. 이렇게 하면 특정 단어를 떠올리면 카드 한 장이 머릿속에 이미지 한 장으로 떠올라요. 그 단어가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그 옆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납니다.       김익한 명지대 교수는 평소 만년필과 색연필을 사용해 메모를 한다. 김 교수는 "종이 위에 사각사각 쓰고, 부들부들 색칠하는 느낌이 좋아 메모하는 맛이 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그렇게 메모하고 되새기면 시간이 많이 들지 않나요?  책 내용이나 문장을 베끼기 때문에 힘들고오래 걸리는 겁니다. 키워드 위주로 적으면 시간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몸에 익으면 A4용지 삼분의 일에서 반장 정도 적는 수준에서 메모할 수 있죠. 그 단계에 이르면 하루에 10~15분 정도만 투자하면 됩니다.     요즘엔 메모 앱도 다양하고, 디지털 메모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손 글씨 메모를 추천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디지털 메모는 휴대성이 좋아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휘리릭 적어두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어요. 하지만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손 글씨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생각하면서 내 안의 지식을 끌어내는 메모일수록 손으로 쓰길 권합니다. 손가락 움직이는 것보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내려가는 손 글씨가 뇌와 더 가깝거든요.      ━  메모를 말하다   김 교수가 메모 공부법에서 생각하기만큼 강조하는 게 있다. 말하기, 글쓰기 활동이다. 그는 15년간 대학원에서 ‘기록학 연구와 발표’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매주 논문 3편을 외워 한 편당 5분 내로 요약 발표하고, 그 내용을 대여섯장의 프레젠테이션용 문서로 정리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처음 한달간은 매우 힘들어 하지만, 두 달째부터 익숙해진다. 그리고 마참내 강의 후반부에는 요약 정리한 프레젠테이션용 문서를 보지 않고도 논문 내용을 말할 수 있게 된다. 공부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말하고 쓰는 과정이 필수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김 교수는 양육자들에게 “자녀와 함께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라”고 권했다.     집에서 발표를 하라고요? 20년 전 제가 제 아이들에게 실제로 했던 방법입니다. 그 당시 저는 소위 학군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 지역에 살았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던 첫째가 일기장에 ‘학원에 불이 났으면 좋겠다’고 썼더라고요. 일주일에 영어 단어를 500개씩 외우게 하던 학원이었어요. 고민한 끝에 경기도 여주로 이사를 갔어요. 단독주택을 짓고 살았는데, 1층에 작은 방을 하나 만들었어요. 가족 강의실을 만든 거죠.     가족 강의실이요? 큰 화이트보드 칠판도 놓고, 의자와 책상도 넣어서 진짜 강의실처럼 꾸몄어요. 일요일 주말 연속극 끝나는 시간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서 발표를 했어요. 먼저 엄마나 아빠가 강의를 해야 해요. 주제는 교과 과목이 되도 좋고, 새로 배운 요리법이나 일상 습관, 인생에 관한 이야기 등 뭐든 좋아요. 아이에게 강의를 듣고 메모를 해보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나선 메모 내용을 발표해보라고 했어요. 아이가 듣고 이해한 걸 적어 보고 말해보는 기회를 주는 겁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되면 자신의 언어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쯤부터 시도해봐도 좋아요.   김익한 교수는 "자녀가 배우고 이해한 걸 메모하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김상선 기자   아이에게 강의를 한다고 하면 거부하지 않을까요? 양육자도 어색하고요.   공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족만의 문화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부모가 공부라고 여기는 순간 아이가 먼저 귀신같이 알아차려요. 양육자가 먼저 강의, 발표 시간을 의식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즐겨야합니다. 3일 전부터 무슨 강의를 하겠다고 안내하기도 하고요. 주의해야할 점은 아이가 무엇을 메모하고, 무엇을 발표하든 존중하고 칭찬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절대로 평가하려 들지 마세요. 아이의 생각을, 아이의 세계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해석하고 배운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거든요. 발표가 끝나면 서로 “너는 그렇게 이해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겁니다.     강의나 발표를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막막할 것 같아요.   그럴 때 저는 무엇이든 세 가지로 말해보라고 추천해요. ‘333의 법칙’인데, 한 항목에 대해 세 가지로 가지치기를 해 나가는 겁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정리해보라고 하면, 한 두 개는 너무 적고 네 다섯 개는 좀 많은 느낌이잖아요. 셋은 안정적이기도 하고, 기억도 잘 납니다. 생각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어요. 보통 한 두 가지는 떠오르게 마련이거든요. 나머지 한 가지를 채우기 위해서 깊은 곳에 있는 생각까지 끌어올려야만 하죠.     그렇게 발표를 하면 어떤 효과가 있나요? 유대인들은 경전을 말하면서 공부한다고 해요. 경전을 공부하는 도서관(예시바)은 엄청 시끄러워요. 자기가 읽고 해석한 것에 대해서 옆 사람하고 계속 토론하면서 공부하는 겁니다. 이런 습관과 문화가 자리잡고 있으니 똑똑하고 창조적인 민족이 될 수 있었죠. 발표하기의 또 다른 효과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된다는 겁니다. 소위 메타인지가 가능해지는 거죠.     발표를 하면 메타인지가 가능해진다고요? 메모와 말하기는 자신의 능력이 바깥으로, 객관적으로 표출되는 것이거든요. 메모를 하지 못하고, 또 말하지 못하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동시에 모르는 걸 알려고 하는 욕구도 생겨납니다. 공부하려는 동기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겁니다.     김 교수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원칙이 있다. “메모의 중심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나의 해석과 이해가 없는 메모는 의미가 없다”며 “메모를 하는 주체가 분명히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주장하는 메모 공부법의 목적을 이해하면 그 원칙이 이해가 간다.      공부는 지식을 넘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해요. 그래야 비로소 자기다운 삶을 선택해서 살 수 있으니까요. 메모를 하는 이유도 자기다운 삶을 잘 선택하기 위해섭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짧게 적으세요. 많이 쓰면 오히려 기억에 안 남아요. 나에게 인상 깊고 중요한 걸 키워드로 적으세요. 내가 이해한 핵심이 더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메모 두 번 하세요. 이것 저것 만능 노트에 적고, 이걸 재정리해 만능카드(단어카드장)에 다시 메모하세요. 자주 되새기면 책 한 권도 외울 수 있어요.  ·메모한 걸 말해보세요. 메모 안 보고도 말할 수 있어야 진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내가 뭘 모르는지도 깨달을 수 있어요. 」 관련기사 '광클교수'에 물었다…100세 시대 '혼공'으로 성장하기, 조건 셋 "자녀들 선행학습은 시대착오" 서울대 교수가 권한 공부법이송원 기자 lee.songwon@joongang.co.kr

    2022.10.03 06:00

  • "더하라고요? 덜 배워야 합니다" 큰별쌤 최태성의 역사 공부법

    "더하라고요? 덜 배워야 합니다" 큰별쌤 최태성의 역사 공부법 유료 전용

    역사는 옛사람의 흔적입니다. 수천 년 동안 쌓인 흔적과 현재 나의 삶을 연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에 관심이 생기고, 공부할 이유가 생깁니다    지난 1일 만난 최태성 한국사 강사는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놨다. 나와는 동떨어진 시대의 먼 이야기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역사도 쓸모가 있다는 얘기다.   최태성 한국사 강사는 "역사를 재미있게 배우려면 내 삶과 연결시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큰별쌤’. 한국사에 관심 좀 있다면 한 번은 들어봤을 별명이다. 별명의 주인공은 최태성(51) 한국사 강사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였던 그는 2001년 EBS 수능 강의를 하며 ‘스타 강사’로 이름을 알렸다. 그의 강의는 입시생만 듣는 게 아니다. 한국사검정능력시험을 준비하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한국사를 다시 들여다보려는 중장년층까지 그의 강의를 찾는다.     그에게는 “역사는 전문가의 연구 영역이 아닌, 대중의 일상에 스며들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 철학이 있다. 2017년 교단을 떠나 TV와 온오프라인 강의로 활동 영역을 넓힌 이유다. 역사의 대중화를 꿈꾸는 그는 모든 강의를 무료로 공개한다. 유튜브 무료 강의 채널만 3개(최태성 1·2TV, 역사의 쓸모i)다. 최근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인문학 도서 『어린이를 위한 역사의 쓸모』도 출간했다. 역사와 일상을 연결하는 실천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그는 “역사 공부는 옛사람의 경험과 내 삶을 연결하는 훈련”이라며 “쓸모는 역사 속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역사 속에서 사람을 만난다’, 무슨 의미일까요?     ‘사람’은 역사에서만 다룰 수 있는 주제입니다. 문학 속 인물과는 달라요. 그건 허구지만, 역사 속 사람은 실존 인물이죠. 역사는 한 시대를 이끈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돼요. 예를 들면 고려의 호족, 신라의 귀족,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등이 있죠. 이들이 일군 업적과 사건을 연관 지어 배우는 게 역사입니다. 실존 인물을 중심에 두고 서사를 풀어가는 학문은 역사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역사를 뒷담화라고 부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얘기니까요. 뒷담화 할 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밌잖아요. 사람 이야기하는 역사가 그래서 재밌는 겁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굳이 옛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을까요? 과거 사람들의 경험이 곧 삶의 지혜니까요.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 하죠. 옛사람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배우는 겁니다. 역사를 배우면 시대가 변해도 사람 사는 방식은 다 똑같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들도 위기를 겪고, 고민하고, 선택하며 그 시대를 보냈거든요. 이순신 장군이라고 달랐을까요? 그도 어떻게 하면 이기나 고민했고, 상사와 갈등도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완벽주의를 택합니다. 그 선택이 23전 23승이란 결과를 만들었고요. 우리는 그를 통해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길을 가야 할지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역사의 쓸모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고요.     아이들이 역사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알려줘야 합니다. 역사 속 사람의 경험과 내 삶을 연결하는 방법은 질문입니다.   질문이요?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나요? 역사 속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서재필에게 ‘명문가 양반 출신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먹고 살았을 텐데, 왜 그런 선택을 했나요?’라고 물을 수 있죠. 반대로 역사 속 사람에게 ‘당신이라면 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가요?’라고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팩트를 근거로 답을 상상해 봅니다. 이렇게 질문을 하다 보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나의 나침반이 되는 겁니다.   선생님도 질문을 던지시나요? 어떤 질문인지 궁금해요.   저도 역사 속 사람들에게 질문합니다. 수십 년을 공부했지만, 공부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든요.(웃음) 제 질문은 하나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최태성 강사는 역사를 배우는 방법의 하나로 독서를 추천했다. 단 정보가 빽빽한 학습만화보다 여백이 있는 책을 고르라고 했다. 그는 "여백이 있어야 상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상조 기자   너무 철학적인데요? 답을 찾으셨나요?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표현을 쓰는데요,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어요. 같은 말이지만 후자로 생각하면 하루가 더 소중합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죠. 저는 그 답을 ‘관계’에서 찾았습니다. 결국 삶이란 함께 사는 것이더군요.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게 제 인생의 화두입니다. 저는 아이들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와 닿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생각 거리를 줘야 합니다.   생각 거리라…,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록되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겁니다. 상당수 아이가 고구려 하면 광개토 태왕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권력자의 입장에서만 상황을 바라보죠. 시각의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이럴 땐 “광개토 태왕이 정복한 지역의 시점에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정복 당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심정을 상상해보고, ‘그들이 광개토 태왕에게 편지를 쓴다면?’ 같은 활동도 할 수 있어요. 생각을 확장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누군가의 성공 뒤엔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역사적 사고도 중요합니다.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해 판단하는 걸 말합니다. 역사적 사고를 할 줄 알면 신중해집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익히는 겁니다.    ━  “덜 배우고 더 생각하자”   한 나라의 흥망성쇠, 승자와 패자의 차이…. 그의 말처럼 역사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 호기심을 꺾는 게 있다. 바로, ‘암기’다. 최태성 강사는 “역사의 단편적인 사실을 나열하고, 외우는 데 몰두하는 공부 방식이 역사를 고통스러운 과목으로 만들고 있다”며 “역사가 쓸모 있어지려면 덜 배우고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5000년 역사 다 보려면 부지런히 배워야 할 거 같은데요.     접근 방식을 바꾸자는 겁니다. 처음부터 한 번에 다 보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느슨히 훑어보는 거로 시작해야 합니다. 역사는 흐름이 중요합니다. 시대를 구분하고, 각 시대의 주요 인물과 사건을 연결할 줄 알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첫 수업 때 구석기부터 배우는 거 추천하지 않습니다.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삼국시대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의 뼈대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유물의 이름, 연표 보지 말라는 걸까요?     완벽히 외우려고 애쓰지 말라는 겁니다. 적어도 초등학생 때 만큼은요. 어차피 초등학교 때 배운 내용, 중학교 가서 또 배우고, 고등학교에서 또 배웁니다. 초등학생 때 외운 유물 이름 중학생 때 다시 외웁니다. 중요한 건 유물과 시대를 연결하는 거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의미’를 아는 겁니다.   의미를 안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의 속뜻을 찾아보는 겁니다. 이건 정답이 없습니다. 찬찬히 생각할 시간을 주면 됩니다. 다만 역사 곳곳에 스며있는 ‘연대와 협력’의 정신은 반드시 찾아보고, 그 의미를 느껴봤으면 합니다.     연대와 협력이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아마 홍익인간 하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가 자동으로 떠오르실 겁니다. 입에 붙을 때까지 반복해서 외우거든요. 여기서 제가 돌발 질문 하나 할게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가 무슨 뜻일까요?   최태성 강사는 "역사에는 지금 삶의 문제에 대한 해법이 담겨 있다"며 "한 번 뿐인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슴에 품고 역사를 배워보라고 조언했다. 우상조 기자 선뜻 답이 안 나오는데요.     답부터 말하자면 ‘다른 사람을 도와 함께 잘 살아가겠다’는 국가의 소망입니다. 이게 바로 ‘연대와 협력’입니다. 민족정신의 뿌리죠. 그런데 우리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를 속사포로 외우기만 했지 잠시 멈춰서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못 찾고, 감흥도 없는 겁니다. 사실 홍익인간 정신은 우리나라가 힘들 때마다 구심적 역할을 했어요. 그래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의 맥락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어요.   감이 잘 안 와요.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세요.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중 〈나의 소원〉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김구 선생은 우리나라,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하는 마음으로 독립운동에 임했습니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과 맥을 같이 하는 거죠. 저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그 정신이 발휘됐다고 봅니다. 확산 초기 우리에겐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닌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필요했어요. 이때 K방역이 빛났죠. 저는 그 뿌리에 연대와 협력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 역사 속에서 홍익인간 정신을 배웠다는 걸 방증한 거죠. 그런데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점점 그 정신이 사라져가고 있거든요. 개인의 이득만 챙기려는 이기적 행동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역사를 통해 연대와 협력을 일깨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내 시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세요.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가 과연 정당한 건가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최초의 패배자와 희생자를 만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초등학교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어요. 과거엔 국민학교였고, 그 이름은 황국신민학교의 약자였어요. 황제의 나라, 신하인 백성을 줄여서 국민이라고 부른 거죠. 이 뜻을 알면 초등학교에 대한 느낌이 달라집니다. 그 이름을 얻기까지 국권을 잃고 억지로 신민학교를 다녀야 했던 이들의 설움,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깨닫게 되거든요.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까지 생기면 더 좋고요. 생각을 통해 의미를 찾으라는 게 이런 겁니다.      ━  “생각의 성장을 믿어라”     최태성 강사가 말하는 역사의 쓸모 세 번째는 생각의 성장이다. 그는 역사의 교육적 가치는 상상할 기회에 있다고 말한다.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상상하다 보면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생각도 성장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아이의 생각이 성장하고 있다는 걸 믿어야 한다”며 “상상하고, 생각하는 힘을 빼앗아 버리면 숫자만 쪼아 먹는 닭장 속 독수리로 자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닭장 속 독수리요? 내 생각을 펼칠 힘도 의욕도 없이 그저 성적에만 목매는 모습을 비유한 겁니다. 이 시대 아이들은 상처가 많습니다. 입시 위주의 경쟁 속에서 점수로만 존재를 입증해야 하거든요. 1등만 인정받으니 싸워야 해요. 마음 급한 양육자들은 더 빨리, 더 많이 배우라고 채근하다 못해 학습 주도권을 빼앗습니다. 지친 아이들은 성장의 동기를 잃고, 수동적이 되어 버려요. 그래서 전 이 시대 청년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청년들의 상처가 보이시나요? 젊은이들이 외부로부터 치유와 힐링을 얻으려고 하잖아요.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데, 자꾸 의지하고 기대려고 합니다. 역사에서 청년은 치유와 힐링을 주는 쪽이었어요. 일제강점기 3·1운동,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모두 학생이 자발적으로 일으켰어요. 1980년대 민주화운동도 10대와 20대가 중심이었습니다.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변화와 혁신을 꿈꾸는, 비상하는 독수리였죠. 다시 아이들의 성장 동력을 깨워야 합니다. 고민하고,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힘을 길러줘야 해요. 이때 역사를 도구로 이용하세요.   최태성 강사의 역사 공부 철학은 "덜 배우고, 더 생각하자"다. 그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의미를 음미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어떻게요? 역사 속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갈 기회를 주세요. 저는 역사책과 박물관을 자주 활용하라고 합니다. 여백이 많거든요. 상상할 기회가 많죠. 독서는 글자를 보고, 박물관은 유물을 보고 그 시대를 떠올립니다. 이때는 정답을 강요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학습만화를 지양합니다. 정보가 너무 많아 상상할 여지가 없거든요. 박물관에서도 정보를 알려주지 마세요. 대신 물어보세요. “이건 누가 만들었을까?”, “왜 만들었을까” 하고요.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그냥 놔두세요. 스쳐 지나가며 다 봅니다. 그때의 느낌을 기억하는 거로 충분합니다. 그 생각과 느낌을 양육자와 주고받으면 더 좋고요.   그렇게 하다 잘못된 생각이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버릴까 봐 걱정돼요. 편견이 생기는 것도 역사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편견도 생각이고, 생각은 변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생각을 접하며 신념을 깰 필요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로잡는 법을 배우고, 가치관도 형성하는 겁니다. 틀려도 됩니다. 역사적 사실은 때가 되면 다 알게 되고, 깨우칩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역사 속 경험을 발판으로 유연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아이와 역사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최태성 강사는 인터뷰 말미에 두 가지를 당부했다. 하나는 “아이의 말을 묵살하지 말라”, 두 번째는 “많이 들어주라”는 것이다. 최고가 아니어도, 생각이 달라도 괜찮다는 걸 느끼게 하라는 얘기다. 그래야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만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남기는 사람으로 성장한다고 했다.     조선시대 말, 사람들은 최고의 인재 한 명이 나라를 구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완용을 국가 세금으로 가르쳐 엘리트로 키운 이유였죠. 하지만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버립니다. 이완용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이런 선택을 했나요?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뼈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역사 속 사람을 만나라” 역사에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해답이 있습니다. 역사 속 사람을 만나 질문을 던져보세요.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그들의 대답을 상상하다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 길이 보입니다.  ·“덜 배우고 더 생각하자” 역사는 흐름이 중요합니다. 고조선의 건국 이념이 김구의 독립운동, 코로나 시대 K방역으로 이어지는 맥락을 이해해보세요. ‘연대와 협력’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생각의 성장을 믿어라” 치열한 입시 경쟁에 이 시대 청년은 성장 동력을 잃었습니다. 빛나는 독수리가 되려면 성장력을 키워야 합니다. 역사를 이용하세요. 깨지고, 고쳐가며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주세요.  」 관련기사 사실도 아닌 신화, 왜 읽혀야 하나…네 아이 키운 서울대 교수 답 피아노 학원 전에 ‘이 능력’부터…클래식 음악 쉽게 듣는 3단계 접근법 "세균부터 우주, 괴물에서 AI까지" 소설 쓰는 과학자, 상상력의 원천은?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2022.09.19 06:00

  • "일단 해!" 39살에 삼성 최연소 임원, 그녀가 돌연 사표 쓴 이유

    "일단 해!" 39살에 삼성 최연소 임원, 그녀가 돌연 사표 쓴 이유 유료 전용

    제가 두 아이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일단 해! 아님 말고! 그래도 아무 일도 안 생기거든!’ 제 인생을 관통하는 말이에요.   지난달 31일 만난 김지영 대표는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는 요청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김 대표에게 그런 질문한 데엔 이유가 있죠. 그는 39세에 삼성물산(옛 제일모직) 최연소 여성 임원이 된, 이를테면 입지전적인 여성입니다. 그런데 7년 후 유기농 생리대를 만드는 작은 스타트업 라엘에 합류하죠. 거기서 기껏 회사를 키워놓고는 3년 뒤 또 회사를 나옵니다. 그러더니 스타트업을 차려버렸죠. 과학학습 키트 구독 서비스 똑똑하마를 만든 이큅입니다.   일에 올인하는 화려한 싱글일 것 같지만, 그는 워킹맘입니다. 그것도 쌍둥이 아들(8세)을 키우는 워킹맘이요. 여성 창업자도 드문 스타트업 판에서, 기혼 유자녀 여성 창업자라니. 그는 왜 삼성 임원 자리를 버리고 고생을 자처한 걸까요? ‘이모님’ 구하기도 힘들다는 아들 쌍둥이는 대체 누가 키울까요? 김 대표야 말로 다양한 양육 서사를 발굴하는 미션을 가진 hello! Parents가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양육자죠.   김지영 이큅 대표는 입지전적인 여성이다. 하버드 MBA 출신으로 삼성물산(옛 제일모직) 최연소 여성 임원을 지냈다. 그런 그의 선택은 스타트업이었다. '일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서다. 김현동 기자  ━  Part1.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   김지영 대표가 “일단 해!”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건 MBA(경영전문대학원) 경험 때문입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삼성물산에 들어갑니다.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마케팅이었습니다. 4년을 일했죠.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죠. 더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버드 MBA로 떠나죠.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 학기가 다 지나가는데, 발표 한 번을 안 한 거예요. 당연한 거라서, 다 아는 거라서 말을 안했더니 그렇게 돼버렸죠. 큰 맘 먹고 손을 들까 말까 하는데, 제가 하려던 말을 딴 애가 해버리는 거예요. 그때 결심했어요. 그냥 말하자! 아니면 말지, 뭐! 아니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고요. 오히려 말 안하면 바보인 줄 알고 말이죠.   사실 그는 한국에선 그다지 ‘다소곳한 여성’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자 너무 전형적인 ‘아시아 여성’이 되어 있었죠.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치길 반복한 끝에 깨달았습니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요.   그 정신은 그의 커리어를 관통합니다. MBA를 마친 후 그는 보스톤컨설팅(컨설턴트)을 거쳐 메릴린치(애널리스트)에 갑니다. 그 뒤 야후코리아에서 전략 및 인수합병(M&A) 담당 임원을 했어요. 그리고 마침 삼성물산(옛 제일모직)에서 합류 제안을 받고 이직하죠. 글로벌 회사의 한국 법인은 결정권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게 아쉽던 차에 삼성이 손을 내민 거죠. 삼성물산에선 여성으로 처음으로 남성복 사업부문장을 맡아 적자던 사업부를 흑자로 돌려놓습니다. 덕분에 최연소 여성 임원이 됐고요. 그렇게 잘 나가던 어느날, 돌연 사표를 내고 이름도 낯선 스타트업에 합류합니다. 유기농 생리대를 만드는 라엘로요.   삼성은 합리적이고, 체계적이고, 발전하는 회사에요. 많이 배웠죠. 그런데 제 미래는 상상이 가더라고요. 저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일하고 싶거든요. 그건 못하죠, 삼성에선. 그래서 스타트업으로 갔어요.   말은 쉽게 하지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겁니다. 크지 않은 것도 막상 내려놓으려면 커보이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하물며 그가 내려놓으려던 건 삼성의 임원 자리였습니다. 그가 내년 재계약을 걱정하는 임원도 아니었고 말이죠. 하지만 그는 늘 그랬듯,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기로 합니다.   결혼도 그랬습니다. 사실 그는 MBA 시절부터 결혼하고 싶었다고 해요. 팍팍한 외국 생활에 지쳐 안정된 가정을 갖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MBA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하고 싶진 않았대요. 거기서 만난 소위 ‘잘나가는’ 남자들은 배우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죠. 귀국 후 일을 하다 보니 세상이 말하는 ‘혼기’를 놓쳤지만, 그는 늘 안정된 가정을 바랐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자 6개월만에 속전속결로 결혼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섭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니면 그때 가서 해결하고, 일단 해보자’고 생각했죠.   요즘엔 출산도 기피하잖아요. 육아, 힘들죠. 저는 뒤늦게 시작해 더 힘들지만, 그래도 가장 잘 한 일이 아이를 낳은 거예요. 출산하지 않았다면 똑똑하마를 창업하지도 않았겠죠. 모든 일엔 장점과 단점, 기회와 리스크가 있어요. 그래서 전 뭐든 하자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김지영 대표는 만든 건 하버드 MBA 경험이다. 거기서 그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걸 배웠고, "일단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김현동 기자  ━  Part2. 강점을 레버리지 삼아 약점을 메운다   김지영 대표는 “일단 해보는 것 말곤 별 게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의 커리어를 들여다 보면 늘 강점을 레버리지 삼아 약점을 메우는 선택을 해왔습니다.   그가 첫 직장으로 컨설팅사를 선택한 건 MBA 출신이라는 강점을 레버리지 삼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하면서 내내 숫자에 약한 게 아쉬웠습니다. 메릴린치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 장고하지 않은 건 그래서죠. 컨설턴트의 분석력을 레버리지 삼아 애널리스트가 되어 재무 감각을 익혔습니다. 애널리스트를 해보니 시장 상황과 기업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걸 넘어 직접 운영해보고 싶어졌대요. 사원·대리였지만, 삼성물산에서 마케터로 프로젝트를 굴리던 때가 자꾸 생각도 나고요. 야후로 옮긴 이유입니다. 야후에서 그는 전략과 인수합병(M&A)을 담당했는데, 지사의 한계가 뚜렷했죠. 삼성에서 불렀을 때 주저하지 않은 건 바로 그 경험 때문입니다.   MBA에 간 것도, 적지 않게 이직을 감행한 것도 사실은 제 약점이 뭔지 너무 잘 알겠어서에요. 그 자리에 가면 약점을 메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저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일하고 싶으니까, 길게 보고 옮긴 거죠.   누구나 자신의 약점은 그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래서 어떤 기회와 왔을 때 주저하죠. “내가 저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겁니다. 그럴 때 김지영 대표는 “잘하는 걸 하면서 약점을 메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그가 하버드 MBA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살면서 깨달은 ‘일단 하자’ 정신과도 닿아 있죠. 남들도 다 아는 거라서, 별 거 아니라서 조용히 있으면, 어느 누구도 내 역량을 알아챌 수 없으니까요. 내가 아는 그 걸로 누군가는 칭찬 받고 인정 받고 말입니다.   김지영 대표의 경험은 메타의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셰릴 샌드버그의 경험과도 닮았습니다. 샌드버그는 여성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린인(lean in, 달려들다)’하지 않고 ‘린백(lean back, 물러서다)’한다고 말합니다.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요. 샌드버그가 『린인』이란 이름의 책을 쓴 이유가 바로 거기 있죠. 그래선 결코 기회를 잡을 수 없으니까요.   김지영 대표는 여러 회사를 거치며 일했다. 그의 이직 노하우는 "잘하는 걸 레버리지 삼고, 이직해서 약점을 메우는 것"이었다. 김현동 기자  ━  Part3.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삼성물산(옛 제일모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남성복 사업부문장 시절입니다. 그는 남성복 사업부문장이 된 삼성물산 최초의 여성이었죠. “옷도 못 입어보는데 어떻게 남성복 사업을 이끄냐”는 얘길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사업부문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상황이 안좋아서죠. 당시 남성복 사업부는 매출이 하락 중이었거든요. 김지영 대표 역시 유리절벽(glass cliff)에 섰던 겁니다. 유리절벽은 조직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여성을 대표나 리더로 세워 책임을 지게 하는 걸 뜻하는 말입니다. 유리절벽에 선 그가 제안한 건 로드샵 진출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양복을 안 입기 시작했어요. 온라인에서 사는 식의 구매 패턴도 생겨났고요. 백화점에만 목을 메고 있어선 안된다고 판단했죠. 고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드샵 판매자와 소비자에겐 “백화점 브랜드가 나왔다”고 마케팅했고, 백화점 상품기획자(MD)와 소비자에겐 “라인업이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두 매장에 들어가는 라인을 차별화했고요. “브랜드 가치를 깎아 먹는 미친 짓”이라는 반발이 거셌지만, 그가 맞았습니다. 남성복 사업부의 매출은 반등했고, 덕분에 그는 최연소 여성 임원 자리를 꿰찼죠.   다 맞는 말이에요. 전 남성복은 못 입죠. 남성복 부문에서 잔뼈 굵은 남자 MD들이랑 ‘형 동생’ 하는 것도 못하고요. 못하는 건 포기했어요. 대신 전 제가 할 수 있는 걸 했어요. 데이터를 보고, 현장에 가고, 그걸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했죠.   로드샵을 내기로 한 것도 로드샵 유통 시장의 가능성이 숫자(성장률)로 증명됐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성복 로드샵 시장의 1등 업체가 하는 점주 설명회마다 쫒아다니며 노하우를 배웠고요.   하지 않는 것도 선택입니다. 그는 늘 그래왔죠.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는 건 깔끔하게 인정하고 포기했어요. 대신 할 수 있는 것에 전력을 다했죠. 양육자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사도, 육아도 다 잘할 순 없어요. 전 가사는 포기했어요. 음식도, 청소도 젬병입니다. 대신 전 육아에 집중해요. 특히 만들기 같은 걸 하면서 놀아주는 데 온 힘을 쏟아요. 사실 과학학습 키트가 가장 필요했던 건 바로 저죠.   김지영 대표는 "안되는 건 포기했다"고 말했다. 대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양육자로서도, 가사보단 육아에 집중한다.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김현동 기자  ━  Part4. 결국 내 삶이다. 그러니까 내 스타일대로   그는 1972년생, 만 50세입니다. 아이는 이제 8살이고요. 일하다 보니 결혼도, 출산도 늦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늦어서 포기한 적도 없고, 늦어서 문제라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체력이 달리는 건 아쉽죠.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없는 것도요. 하지만 제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걸 알아요. 커리어에 있어서 끝까지 밀어붙여 봤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일엔 일장일단이 있고, 나는 그저 내 입장에서 선택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엔 유난히 해야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대학을 나오면 대기업에 입사해야 하고요. 어디, 그게 끝인가요? 적당한 나이에 늦지 않게 결혼도 해야 하고, 결혼 하면 “애는 왜 안 낳느냐”는 지청구를 들어야 합니다. 1972년생인 김지영 대표는 아마 그런 압력을 더 많이 받았을 테고요. 그런데도 그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유학가려고 할 때였어요. 추석 때 만난 친척 어른이 ‘지영이 시집 가야 하는데, 웬 유학이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저희 부모님이 그러셨죠. ‘지영이는 공부해야 한다’고요. 부모님 덕분인 것 같아요. 사실 저희 아버지도 뒤늦게 유학을 가셨거든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요.   그의 부모님은 그가 삼성을 나와 라엘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도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미래가 밝다”며 응원해주었다고 합니다.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일단 해보자”는 그의 생각은 어찌 보면 대책 없어 보입니다. 그가 그런 대책 없는 생각을 하는 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 믿음 덕분에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지 않았을 테고요. 김지영 대표는 “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어서, 나를 더 믿을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 믿음은 부모님으로부터 온 건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직 영어학원도 다니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살아서 그런지,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하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제 삶을 돌아보면 스스로 필요할 때 해야 진짜로 하는 것 같더라고요.   김지영 대표는 “학습에 있어선 잘 챙기는 편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 역시 자신의 부모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   김지영 대표가 자신의 속도대로, 자신의 스타일대로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님 덕분이었다. 그 역시 그의 아이들에게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현동 기자 마지막으로 김지영 대표가 인터뷰 말미에 했던 말을 소개합니다. 그의 말이 어떤 기회 앞에서 “내가 저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주저하는 양육자에게 힘이 되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라엘은 1980년대생 여성 3명(아네스 안, 백양희, 원빈나)이 만든 회사였어요. 아네스 안 대표는 쌍둥이를 키우는 양육자였는데, 리더십이 정말 훌륭했죠. 곁에서 일하며 저도 창업에 도전할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잘나지도 않은 제가 제 이야기를 떠드는 이유입니다. 누구나 다 닥치면 할 수 있거든요. 관련기사 두 번 창업한 워킹맘 조언 "버티면 된다, 아이는 금세 큰다" "천재여야 살 가치 있는 건가요" '우영우' 신드롬이 불편한 이유 연금700만원 대신 브라질 이민행…‘팔로어 270만’ 80대 노부부가 사는 법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2022.09.12 06:00

  • "세균부터 우주, 괴물에서 AI까지" 소설 쓰는 과학자, 상상력의 원천은?

    "세균부터 우주, 괴물에서 AI까지" 소설 쓰는 과학자, 상상력의 원천은? 유료 전용

    제 상상력은 만들어졌어요. 뭘 좀 써봐야 하나, 뭐가 재미있을까 하는 고민을 24시간 하다 보니 세상만사에 궁금함을 가지는 게 삶의 태도로 굳어졌어요. 그게 제 상상력의 원천이라면 원천이죠.   ‘괴물로 소설 쓰는 공학박사’ 곽 재식 작가에게 상상력의 원천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특유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타고난 게 아니라, 목적이 있는 꾸준한 노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곽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듯하지만 실은 잘 모르는 것들이야말로 자연스레 궁금함을 자극하고 더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다”며 “우리 역사 속에서 잊힌 괴물을 발굴, 수집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곽재식 작가는 "역사 소설을 쓰기 위해 기록 속에서 괴물을 수집해 자료를 모으는 일을 계속하다 보니 토종 괴물 전문가가 되었다"고 말했다. 사진은 신간『크리처스』표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곽 작가의 모습. 장진영 기자   곽 재식 작가는 10년 넘게 한국 역사 기록과 민담 속에서 괴물 280여종을 발굴해 온 토종 괴물 전문가다. 『한국 괴물 백과』,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등의 책이 그 결과물이다. 최근에는 해적이 활개 쳤던 신라 시대를 배경으로 괴물이 출몰하는 청소년 판타지 소설 『크리처스』를 썼다.     전공과 본업은 따로 있다. KAIST(카이스트) 출신의 공학박사로 지난 16년간 화학 회사에 다녔고, 현재 숭실사이버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낮에는 ‘K-직장인’, 밤에는 소설가로 십수 년을 살면서 그가 써낸 책이 30권이 넘는다. 그의 상상은 보이지 않는 세균부터 광활한 우주까지 닿고, 청동기 시대와 로봇이 지배하는 미래를 넘나들며, 지구를 뒤흔드는 기후변화와 요리하는 일상까지 그려낸다.      ━  소설을 쓰겠다는 집념, 괴물을 만나다   괴물은 그중에서도 곽 작가가 천착해온 분야다. 그가 토종 괴물에 꽂힌 이유는 분명했다.  “재미있는 소설을 쓰려다 보니” 찾게 된 게 옛이야기 속 괴물이라고 했다. “사극에 부드럽게 녹이려다 보니” 실제 기록 속 괴물을 활용했다고 한다. 뻔하고 어설픈 괴물을 만들어내느니, 잊힌 이야기 속 괴물을 발굴해 선보이는 게 더 신선하게 먹힐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토종 괴물이 참신하다고요?   사람들이 보통 옛날이야기 속 우리 괴물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게 뭘까요? 구미호, 뿔 달린 도깨비 정도에요. 생각보다 참신하지 않죠. 그런데 우리 역사 기록 속에 의외로 신선한 게 꽤 있거든요.   토종 좀비 ‘재차의’(왼쪽)와 서양의 반인반수 괴물 ‘판’에 해당되는 한국형 ‘녹족부인’. 곽재식 작가의『한국 괴물 백과』에 실린 삽화다.[사진 워크룸프레스]   예를 들면 어떤 신선한 괴물이 있을까요? 신라 시대와 관련된 역사 기록을 조금만 뒤져보면 ‘장인(長人)’이라는 거인이 나와요. 키가 일반 사람의 대여섯배는 크고 온몸이 털로 뒤덮이고 갈고리 같은 발톱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종족이죠. 신라 동쪽 변방에 사는데, 사람을 산 채로 잡아먹는다는 내용입니다. 신라 사람들이 이 무시무시한 종족이 쳐들어오는 걸 막기 위해 철 관문을 설치하고 활 쏘는 커다란 기계를 설치해서 항시 경계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어요. 여기저기 많이 언급된 괴물인데, 의외로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이번에 낸 『크리처스』에서도 중심 소재로 다뤘고요(장인에 관한 기록은 삼국사기, 조선 시대 동사강목 등에 나온다).   신라 시대에 ‘진격의 거인’(식인 거인을 소재로 한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괴물이 나온다니, 새롭네요.   옛날 사람들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잊어버린 거죠. 조선 시대 ‘어우야담(설화집)’에는 ‘악어’ 괴물도 나와요. 남해안 바다에서 전복을 따던 해녀들을 공격했는데 입과 덩치도 상당히 크고 한입 물면 사람 하반신이 없어진다고 해요. 우리나라엔 악어가 안 살고, 바다에 살 리도 없잖아요. 우리가 아는 그 악어는 아닌 거죠.     그럼 대체 악어는 뭘까요? 이 악어가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를 싫어해서 해녀들이 방울 같은 것을 딸랑딸랑 흔들면서 작업을 했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소리에 민감한 걸 보면 돌고래, 상어 같은 종류가 아닌가 추측해볼 수는 있겠죠. 악어라는 이름은 실제 악어가 사는 중국에서 이름이 전해져서 붙은 거라고 생각해요. 영화 ‘조스’, ‘앨리게이터’처럼 거대 식인상어, 악어 같은 괴수 아류작은 이제 식상하잖아요. 그런데 조선 시대에 악어도, 상어도 아닌 정체 모를 괴물이 나와 문제를 일으킨다? 신선하거든요. 물론 제가 한국 작가라서, 한국 사람들이 읽는 이야기라서 더 생생하게 다가오는 감도 있긴 할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괴물이 나타난 과거 시대 상황, 분위기를 상상하기 수월하긴 하겠네요. 그럼 토종 괴물들은 다른 나라, 문화권 괴물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나요? 한때 ‘한국 괴물은 다른 나라 괴물보다 덜 잔인하고, 친근하고 해학적이다’ 이런 식의 해석이 유행한 적이 있었어요. 저는 그게 두드러지는 특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들이 유독 특이한 민족은 아니잖아요. 중국 괴물이 해학적인 특징이 없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도 굳이 꼽자면 난잡함, 자유분방함을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본, 유럽에서는 괴물 이야기가 종교와 융합돼서 발전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천사와 악마가 있는데, 악마는 이런저런 괴물들을 거느리고 있다는 식의 ‘계통’이 있죠. 그에 반해 한국 괴물들은 종교적,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고 앞뒤 없이 등장해서 갑자기 유행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족보 없는 토종 괴물을 10년 넘게 모으고 정리하신 거네요.   자료 수집 목적으로 대충 정리하다가 나만 알고 있기 아까워서 인터넷 블로그에 공개하기 시작한 거죠. 사람들이 ‘이런 괴물도 있었어?’하고 관심을 보이고, 잘한다 잘한다 하니 조금씩 자료를 더 덧붙이게 됐어요. 그렇게 자료가 쌓이다 보니 괴물 이야기로 책도 쓰고 강연도 하게 되고 시간이 흘러 한국 괴물 전문작가가 돼 있더라고요.      ━  틀에 얽매이지 마라   곽 재식 작가의 이야기는 단순히 역사 속 괴물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과학자의 시각에서 당시 이 같은 괴물이 등장하게 된 과학적인 해석을 곁들이곤 한다. 예를 들어 바다에 재앙을 몰고 온다는 ‘천구성’이란 조선 시대 괴물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놓는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이 괴물은 바다에 떨어지면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바닷물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 곽 작가는 이에 대해 천구는 ‘하늘의 개’라는 뜻으로, 혜성, 유성이 지나갈 때 생기는 빛나는 꼬리를 뜻하는 것으로 추측한다. 과거 운석이 지구, 바다에 떨어졌다면, 당시 벌어졌을 이상 현상에 대해 인간이 느꼈을 혼란과 두려움을 상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곽재식 작가는 "역사와 과학은 밑바닥부터 통한다"고 말했다. 사진 속 '백룡'은 『크리처스』에 등장하는 흰색 용으로, 물가에 살며 엄청난 위력의 돌풍을 일으킨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장진영 기자   역사 속 괴물을 과학으로 풀어내는 접근법이 절묘한 것 같아요. 역사와 과학은 개별적인 학문처럼 느껴지는데, 서로 통하는 점이 있나요?  역사와 과학은 절대 동떨어진 학문이 아닙니다. 이 둘이 상관없다는 건 완전히 잘못된 편견이에요. 밑바닥부터 서로 통할 수밖에 없어요. 고조선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 검 유물을 연구한다고 해볼게요. 이걸 당시 고조선 사람들이 만든 건지, 다른 나라에서 물 건너온 건지, 왜 만든 것인지 여러 가지가 궁금하겠죠. 이때 (과학이) 성분을 분석해 이게 언제, 어느 지역에서 나온 건지 따질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광물일 가능성이 높다면, 당시에 이 정도 칼을 직접 만들고 사용할 만한 정치 세력이 있었다고 유추할 수 있겠죠. 고고학자나 과학사를 연구하는 사람, 아니면 이쪽 분야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역사와 과학은 항상 같이 간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와 과학이 본래 함께 가는 학문이라는 말씀인데, 저를 포함한 일반 사람들에겐 잘 이해되지 않는데요. 역사나 과학을 입시를 위한 과목으로 여기고 끝났기 때문에 갖게 된 이상한 고정관념입니다. 문과는 역사 과목을 선택하고, 이과는 과학 과목을 선택하고 끝난 거죠. 자칫하면 입시 위주의 교육이 사회를 보는 눈까지 휘어 놓을 수 있어요. 역사 연구를 위해서 과학 기술 관련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고 가정해 볼게요. 이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이해와 공감이 없으면 역사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수 있거든요.     우리가 흔히 이질적이라고 생각하는 두 학문이 통한다고 말씀하시니 ‘융합인재’라는 말이 떠올라요. 인문학적 상상력과 과학기술 창조력을 갖추고 새로운 지식과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이 융합인재죠. 우리 아이들을 융합 인재로 키워야 한다고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융합 인재라는 말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미 우리 현실이 융합이거든요. 사회에서 소위 일 잘한다고 하는 사람들이나 사업을 이끌어가는 분들은 이미 융합형 인재라고 봐요.     현실이 이미 융합이고, 융합형 인재가 주위에 많다고요? 영문학과, 국문학과 나온 분들이 화학 회사에 취직해서 국어, 영어만 쓸 수 있나요? 영업도 하고 회사 사정을 알려면 우리 제품 품질은 어떻고, 어떤 공정으로 제조되고 어떤 특징이 있는지 알아야겠죠. 영문과 나왔다고 화학 기술에 대해 알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먹고 살 수 있겠어요. 숙명적으로 융합으로 살 수밖에 없고, 많은 분들이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거죠. 융합인재라는 말이나 융합인재 교육과정들이 이 전공은 문과, 저 전공은 이과라고 처음부터 구분 지어 놓은 상황에서 만들어낸 틀 같다는 거예요. 책상머리에서 나온 환상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문과생이 이과의 학문을 깊이 파고들어 이해하는 건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닥치면 또 열심히 하게 되어있습니다. 자신이 왜 그 공부해야 하는지 이유를 깨닫는다면 말이죠. 그보다 전 입시 위주의 교육이 자신을 이상한 틀에 몰아넣는 것 같아요. 어떤 대학에 합격하기 좋고 점수 잘 받는 과목을 취사선택하다 보면, 어떤 과목과 지식은 나와 상극이다, 과학은 나와 안 맞는다, 숫자를 보면 경기를 일으킨다는 식으로 규정짓는 거죠.    ━  갈지자(之) 과학자 인생에서 찾은 별의별 일들   곽 작가는 회사원 아버지, 주부 어머니를 둔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책 좋아하고 공부를 잘했던 평범한 아이였다고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고등학교 때는 문과(부산 외고)였고, 대학교는 KAIST로 갔다. 이후 화학, 환경공학을 전공한 과학자이자 회사원으로 살면서 소설을 써 왔다. 그는 “과학자 외길 인생은 아니었다”면서 “소설가로서는 겨우 버티고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오늘의 곽 재식을 만든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그건 성공한 사람들에게나 하는 질문 아니냐’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 어렸을 때는 무엇이 되고 싶었나요?   초등학생 때부터 과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과학에 대해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고 유달리 또래보다 호기심이 많다거나 튀는 아이는 아니었어요. 책은 많이 읽은 축에 속했어요. 특히 아르신 루펭 시리즈를 좋아했고, SF소설과 영화도 수백편 봤죠. 고등학교 때 소설을 쓰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소설가’라고 불러도 부끄럽지 않게 글을 써 온 건 2006년부터예요.     외고를 거쳐 KAIST에 간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셨잖아요. 고등학교 때 문과였다가 이과로 전향하신 건데, 과학자의 꿈을 포기하지 못하셨던 건가요? 어릴 적부터 ‘난 과학자가 아니면 안 된다’ 했던 건 아니었어요. 공부는 그래도 곧잘 하는 편이어서 외고를 갔죠. 매번 1등을 한 건 아니고, 가끔 1등 하면서 2~3등 하는 수준이었죠. 고등학교 시절엔 역사와 문학을 좋아했어요. 과학, 수학도 못지않게 좋아하긴 했는데, 제가 고등학교 시절 때 IMF 외환 위기를 겪었어요. 대학을 어디 가야 취업을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게 됐죠. 역사도 재미있지만, 과학 전공이 앞으로 취업하기 좋다고 생각했어요 곽재식 작가는 "과학은 세상만사와 맞닿아 있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어찌 됐든 결국엔 과학자의 꿈을 이루신 거네요? 과학자로서 잘 활동을 해야 꿈을 실현한 거겠죠. 바라던 직업의 일을 하게 됐다고 해서 꿈을 이뤘다는 건 고시 공부 같은 발상이에요. 변호사가 되고 싶어 한 사람이 변호사 자격증을 땄다고 꿈을 이뤘다고 볼 수 있을까요? 무엇인가 되는 거보다 이후 어떤 보람찬 일을 하면서 성장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이게 진짜 꿈을 이루는 거죠.     그럼 작가님은 어떤 꿈을 이루고 싶으세요? 환경공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재미있는 연구도 하고, 학생들에게 좋은 지식도 전달해주면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죠. 소설가로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서 책도 많이 팔리면 좋겠죠(웃음).   과학 분야에서도 세균, 생물학, 우주, 인공지능, 화학 등 다양한 소재로 글을 쓰셨어요.     제가 쓴 책의 다수는 대단한 전문 지식을 갖춘 책이 아닙니다. 특히 생물학, 달에 관한 책 같은 경우 과학에 관한 재미있는 지식과 이야기들을 잘 풀어놓고,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쓴 대중서에 가깝죠. 과학자라기보단 소설가의 글쓰기에서 파생된 작품들이 많습니다. 환경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보면, 기후변화에 관한 책이 진지하게 정론을 담아 쓴 책입니다.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에 관한 책,『공부하는 이유: 과학』도 내셨잖아요. 과학, 왜 공부해야 하나요?   아니, 과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정말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현대 사회가 과학기술 사회인데 먹고 살려면 공부 당연히 해야죠. 책에 아예 한 챕터를 할애해서 (먹고 살라면 해야 한다고) 대놓고 썼어요.     곽 재식 작가는 지난해 발간한 이 책에서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 13가지 중 하나로 ‘직업을 구하기에 좋다’라고 썼다. 그 외 ‘병뚜껑을 잘 열 수 있다’, ‘느긋하게 살 수 있다’, ‘높으신 분의 분노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초능력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등이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라고 했다.   과학은 그렇게 특별하고 어려운 학문이 아닙니다. 세상만사하고 다 맞닿아 있거든요. 별의별 일을 다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제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어설프게 만든 것보다 잊힌 게 신선하다": 곽재식 작가는 소설에 구미호, 도깨비처럼 뻔하거나 어설픈 괴물을 상상해 만드느니, 기록 속 잊힌 괴물들을 찾아 쓰는 편이 더 신선하고 생생하게 느껴졌다고 합니다. ·"문·이과 틀에 얽매이지 마라": 곽 작가는 역사 속 괴물의 존재를 과학적 지식을 곁들여 설명합니다. 역사와 과학을 넘나드는 접근법이죠. 처음부터 문과,이과 구분 짓고 자신을 그 틀에 몰아 넣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조언합니다. ·"과학을 배우면 별의별일 다 본다”: 외고, KAIST를 나온 곽 작가는 과학자 외길 인생은 아니었습니다. 소설 쓰는 과학자로 살아보니 "과학은 세상 만사와 닿아 있고 별의별 일 다 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 관련기사 "신기하다" 애들에게 머리칼 뜯긴 과학자…정재승 바꾼 그 사건 [오밥뉴스] "지적대화를 위해선 이것이 필요" '지대넓얕' 채사장이 말하는 진짜 지식 사실도 아닌 신화, 왜 읽혀야 하나…네 아이 키운 서울대 교수 답     이송원 기자 lee.songwon@joongang.co.kr

    2022.09.05 06:00

  • “암기 필요 없다? 암기가 시작이다”…공부 잘 하기 위한 세 가지 비법

    “암기 필요 없다? 암기가 시작이다”…공부 잘 하기 위한 세 가지 비법 유료 전용

    공부는 양보다 질이라고요? 질은 일정한 양을 쌓고 난 후에 고민하세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짜 공부’ 시간을 확보하는 겁니다.   9월 새 학기와 함께 학습도 다시 시작됐다. 방학 동안 무너진 학습 패턴을 다시 잡는 게 숙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초3보다 중요한 학년은 없습니다』, 『아홉 살 공부 습관 사전』의 저자이자 현직 교사인 이상학씨는 “학습의 기본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아홉 살 공부 습관 사전』의 저자이자 현직 교사인 이상학 선생님은 2학기 학습 전략 첫 번째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을 꼽았다. 김상선 기자 유튜브와 블로그에서 ‘해피 이선생’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상학 교사는 실용적 학습법을 알려주기로 유명하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나는 수포자”라고 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억장이 무너졌다고 한다. 유튜브와 블로그 활동을 시작한 것도 학습 무기력에 빠진 아이들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중2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학습 전략은 지금 당장, 누구나 실천할 수 있을 만큼 쉬워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아이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은 전략은 오히려 학습 무기력을 키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을 결정적 시기로 꼽는다. 학습량이 늘고, 내용 역시 급격히 어려워지는 때라서다. 이상학 교사는 “3학년 2학기부터 학습에 흥미를 잃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가 늘어난다”고 경고했다.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2학기,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교과서 같은 얘기지만, 그는 “기본에 집중해야 한다”며 “‘진짜 공부’ 시간부터 만들라”고 조언했다.    ‘진짜 공부’가 뭔가요? 학습은 지식을 입력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입혀 출력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겁니다. 제가 말하는 진짜 공부는 이 중 후자, 그러니까 배운 내용을 자기 생각으로 정리하는 걸 뜻해요. 진짜 공부를 하려면 수업 내용을 혼자 읽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그럴 시간이 없어요. 학원에선 지식을 넣기 바쁘고, 남는 시간에는 게임과 영상 같은 즉각적이고 강렬한 자극을 좇거든요. 그러다 보니 진득하게 생각하기를 싫어해요. 진짜 공부 시간이 줄어드는 거죠. 그 결과 학업 성취도도 낮아지고요.   아이들의 학업 성취 수준이 심각할 정도로 낮은가요?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제 경험에 비춰보면 수학 단원 평가를 보면 25개 문제 중 5개도 못 맞는 아이가 한 반에 7, 8명에 달합니다. 코로나19 이후 절반도 못 맞는 아이가 정말 많아졌어요. 수학만 그런 게 아닙니다. 국어도 심각해요. 교과서에 나오는 어휘는 그 연령대 알아야 하는 건데도 모르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제한된 시간 안에 제시문을 읽고 생각을 적는 문제를 손도 못 대는 아이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럼 진짜 공부를 하면 학업 성취도가 올라가는 건가요?  적어도 초등학생 때 배워야 할 기초 지식은 탄탄히 쌓을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의 ‘진짜 공부’는 어렵지도 않아요. 두 가지만 챙기면 되거든요.   두 가지만 챙기면 된다니 너무 궁금하네요. 첫 번째는 뭘까요? 교과서 꼼꼼하게 보기입니다. 교과서가 중요하다고 다들 말하지만, 제대로 보는 아이는 드물어요. 요즘 교과서엔 여백이 많아요. 아이들이 채워 넣어야 하는 게 그만큼 많다는 겁니다. 교과서가 깨끗하거나, 낙서가 많다면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아이 교과서가 어떤지 꼭 체크하세요. 공부한 교과서를 다시 보면 수업 내용이 더 잘 기억나요. 필기한 걸 보면서 자기 생각을 더 잘 꺼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요즘엔 교과서를 사물함에 놓고 다니는 경우도 많죠. 그렇다면 교과서를 추가로 구매해 집에 비치해 놓는 것도 좋습니다. 교과서를 매일 보기 힘들다면,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반드시 들여다봐야 해요.    두 번째는요? 복습 중심 학습입니다. 학습량이 적고, 내용이 어렵지 않은 4학년까지는 선행보다는 후행, 복습에 시간을 쓰세요. 그래야 기초 지식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거든요. 오래 기억한다는 말입니다.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 이론’(Ebbinghaus’s Forgetting Curve)에 기초한 3단계 복습법을 권합니다. 3번에 걸쳐 복습하는 겁니다. 당일 저녁(1단계), 일주일 후(2단계), 학기 말(3단계) 이렇게요. 종합해서 한 번에 복습하는 것보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해야 훨씬 더 오래 기억할 수 있거든요. 이렇게 세 번 반복하면 초등학생 때 습득해야 할 기초 지식을 완벽히 익힐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하루에 몇 시간씩 공부하면 되는 걸까요? 아이의 집중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저학년은 매일 30분~1시간, 고학년은 1~2시간 정도 공부하는 걸 추천합니다. 20분(1학년)으로 시작해 매년 20분씩 늘려가는 겁니다. 6학년이 되면 최소 1시간 30분~2시간은 스스로 공부해야 합니다. 독서나 인터넷 강의, 학교나 학원 숙제 제외하고 순수하게 본인이 공부하는 시간이 이 정도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공부는 하는 데 집중을 못 하는 경우도 많죠.   학습은 계획 없이 시작하면 방향을 잃습니다. 얼렁뚱땅 훑어보고는 다 안다고 착각하거든요. 그래서 매일 무엇을, 얼마나 공부할지 계획이 필요합니다. 계획은 연간→학기→월간→주간→하루 순으로 세분화해서 짭니다. 장기 계획은 양육자가 도와주되, 하루 계획은 아이가 스스로 정하게 하세요. 그리고 계획은 포스트잇 등에 적어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에 붙여놓으세요. 매일 밤 하루 실천 정도를 확인하고, 반성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주말에는 밀린 내용을 보충하고요. 이렇게 계획→실천→반성하는 학습 루틴을 익혀야 스스로 학습하는 힘도 길러집니다.      ━  “평가와 암기 무시하지 마라”   이상학 교사는 “학습 전략을 짜기에 앞서 아이의 학업 성취 수준부터 점검하라”고 했다. 아이가 또래 집단 내에서 중간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에 따라 해야 할 공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공부를 곧잘 한다면 아이의 성향에 따라 심화 또는 선행 학습을 지원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부족한 부분을 찾아 보충해야 한다. 아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를 알려면 평가를 해야 한다. 이상학 교사가 평가를 강조하는 이유다.   평가에 예민한 아이도 있는데요, 평가 꼭 해야 할까요?   평가의 목적은 비교가 아닙니다. 아이가 모르는 것, 더 해야 하는 걸 확인하기 위한 거죠. 그걸 아이에게 알려주세요. 초등학교에선 중간·기말고사가 없는데요, 그래서 초등 공부는 대충 훑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12년 학습을 넘어 전 생애에 걸쳐 반드시 필요한 기본 소양입니다. 정확하게 익히고, 오래도록 기억해야 해요. 그래서 각 학년마다, 단원마다 배워야 할 걸 잘 익혔는지 정기적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상학 교사는 "초등학교 일제 고사가 사라지면 평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며 "평가는 줄 세우기가 아닌 아이의 학업 성취 수준을 점검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김상선 기자   유심하게 살펴봐야 할 평가는 뭐가 있을까요? 지역마다 다르지만, 상당수 지역에서 학기 초에 기초학력 진단검사를 봐요. 아이의 수준에 맞게 지도할 기회를 주기 위한 건데요, 그래서 결과를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 평가에서 과목별 60점 이하의 점수를 받았다면 기초학력 미달로 보죠. 양육자가 원하면 개별 성적은 알려주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하세요. 이 평가와 더불이 중요한 게 단원 평가예요. 한 단원이 끝날 때 담임교사가 재량껏 보는 시험이죠. 단원 평가는 교과서 내 기본 문제를 중심으로 출제하기 때문에, 80점 이상은 맞아야 합니다. 특히 아이가 단순 실수로 틀렸는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틀렸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50점 이하라면 학습 결손으로 보고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집에서도 평가해야 할까요? 받아쓰기, 문제집 풀기, 영어 단어 확인 정도면 됩니다. 단, 수학은 반드시 문제 풀이를 점검해 주세요. 수학은 개념을 이해하는 걸 넘어 관련 문제를 풀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교과서 문제는 모두 완벽하게 풀 수 있어야 해요. 수학 교과서와 익힘책을 한 권 더 구해 집에서 풀게 하세요. EBS 만점왕 등 기본 문제집을 활용해도 좋고요. 한국교육학술정보원에서 운영하는 ‘에듀넷’이나 17개 시도 통합 온라인 학습 서비스인 ‘e학습터’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난이도별로 문제를 분류해 놓아, 수준에 맞춰 다운로드 받아서 풀면 됩니다.   아이의 학습 부진이 확인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뭐부터 짚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는 핵심 개념과 용어, 어휘의 뜻을 다시 암기하라고 합니다. 창의력, 응용력을 우선해 암기를 무시하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그런데 창의력과 응용력을 발휘하려면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기본 지식은 개념에 대한 이해와 암기를 바탕으로 하고요. 교과서를 보면 각 단원 뒷부분에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내용을 박스로 묶어 정리해놓았어요. 수학은 도형이나 분수의 정의, 사회는 영토 같은 용어를, 과학은 실험 용어 같은 걸 정리해두었죠. 그것만큼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핵심 개념 노트를 만들어 직접 쓰면서 정리하는 것도 좋습니다.   핵심 개념과 용어를 이해한 다음엔 뭘 해야 하나요?   구조화하는 연습도 필요합니다. 특히 사회와 과학에서 중요하죠. 지금 공부하는 내용이 대단원, 중단원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파악하는 겁니다. 3학년 1학기 사회 시간에 교통·통신 수단의 변화를 배우는데요, 첫 시간엔 옛날 교통수단을, 두 번째 시간엔 현대 교통수단을 배우거든요. 그 맥락을 이해해야 합니다.   학습 내용을 구조화하려면 어떻게 공부해야 하나요? 목차 학습법과 백지 복습법을 추천합니다. 목차 학습법은 목차를 보면서 배운 내용을 기억하고, 설명해보는 겁니다. 백지 복습법은 하얀 종이 위에 그 단원의 핵심 개념들을 써보며 연결 짓는 거고요. 이렇게 공부하면, 이해 못 하는 부분이 보입니다. 그럼 교과서를 꺼내 해당 부분 내용을 다시 공부합니다. 그래야 중·고등학교에 진학해도 머릿속에 핵심 개념들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수학만큼 ‘한국사’도 챙기자”   이상학 교사는 “한 과목만 몰입해서 학습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국·영·수에만 집중하느라 사회나 과학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가 유독 강조하는 과목은 한국사다. 아이들 입장에선 수학만큼 어려운 과목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한국사를 수학만큼 어려워한다고요? 기본적으로 사회는 암기할 내용이 많습니다. 그래서 인기가 없죠. 게다가 한국사는 5학년 2학기에 몰아서 배웁니다. 한 학기 동안 신석기부터 한국 전쟁기까지 배우니 부담이 큽니다. 시대마다 정치와 사회, 종교 등 전 분야에 걸쳐 주요 사건과 인물을 파악해야 해서 포기하기 쉽고요.    한국사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배경 지식을 쌓는 게 중요합니다. 초등 저학년 때부터 관련 도서를 읽게 하세요. 사실 전 학습만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요, 한국사만큼은 예외입니다.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현세의 만화 한국사 바로 보기』, 『리더를 위한 한국사 만화 세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세트』 등을 추천합니다. 만화책 아닌 책으로는 『한국사 읽는 어린이 세트』, 『큰 별샘 최태성의 초등 별별 한국사 세트』 , 『용선생 교과서 한국사』등도 좋아요. 시대적 이해를 바탕으로 위인전을 읽으면 훨씬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사회과 부도를 옆에 두고 읽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이상학 교사는 인터뷰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한국사는 초등 저학년부터 관련 도서를 읽어 배경 지식을 쌓아야 한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사회과 부도요? 흔히 사회과 부도에는 지리만 나와 있다고 생각하시는 데 아닙니다. 한국사 관련 내용, 지도, 사진, 통계 자료 등 사회 전반적 내용이 정리되어 있어요. 특히 연표에는 외세와의 관계까지 정리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사로 눈을 넓혀 역사를 폭넓게 다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내용이 방대해서 잘 잊어버려요.   그래서 독후 활동이 필요합니다. 독서 기록장이나 독후감을 쓰는 것도 좋지만, 몸으로 체험하는 게 더 중요해요. 전 교실에서 독서 퀴즈 대회나 빙고 게임 같은 놀이를 주로 합니다. 책 속 등장인물이나 내용을 주제로 게임을 하면 더 꼼꼼하게 신경 써서 읽거든요. 얼마 전 유행한 '소울리스 좌' 노래 기억하시죠? 전 그 음률에 맞춰 역사적 사건을 가사로 만든 노래를 만들고 있어요. 아이들에게 알려주려고요. 이렇게 소리 내어 읽고, 몸으로 익히면 오래도록 기억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한국사 외에 반드시 미리 공부했으면 하는 과목 있을까요? 국어는 예습을 권합니다. ‘생각 머리’를 키워야 하거든요. 자료를 보고, 스스로 생각해서 내용을 파악하는 능력이 생각 머리에요. 이게 가능하려면 어휘력, 이해력, 표현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요, 독서만 한 공부법이 없습니다.    독서에도 방법이 있을까요?  평소 책을 읽을 때 천천히 소리 내어 읽고, 국어사전을 자주 찾아보면 좋습니다. 특히 낱말의 뜻뿐만 아니라, 동사·명사 등 어휘의 형태도 익혀야 합니다. 마지막은 표현력입니다. 일기 쓰기가 좋지만, 아이가 부담스러워한다면 ‘두 줄 쓰기’를 권합니다. 오늘 있었던 일 한 줄, 그에 대한 내 느낌과 생각 한 줄이면 됩니다. 지식을 내 생각으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훈련이 됩니다.   이상학 교사는 “학습의 기본으로 돌아가려면 먼저 아이에게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시켜야 한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배운 지식이 자신의 꿈과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기초 체력이 된다는 걸 알려주라는 얘기다. 그래야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자신만의 학습 전략도 세워진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학습을 포기한 아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공부를 못하면 아이들은 위축됩니다. 쉬운 것부터 시작하세요. 그러면 누구나 꿈과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공부, 질보다 양이다" 초등생의 진짜 공부는 교과서 복습 중심 학습입니다. 매 저녁 1학년 20분부터 학년마다 20분 씩 늘려가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하세요. 계획-실천-반성의 학습 루틴도 만드세요. ·"평가와 암기 무시 마라"  학업 성취 수준을 점검해야합니다. 기초학력 진단검사와 단원 평가를 통해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익혔는지 확인하세요. 암기는 응용력의 바탕이니 핵심 개념과 용어의 뜻을 정확히 숙지하세요. ·"수학만큼 '한국사'도 챙겨라" 한국사는 5학년 2학기 한 번 배우기 때문에 예습이 필수입니다. 독서로 배경지식 쌓으세요. 국어도 예습이 필요합니다. 천천히 읽고, 두 줄 쓰기 습관으로 ‘생각 머리’를 기르세요.  」 관련기사 '광클교수'에 물었다…100세 시대 '혼공'으로 성장하기, 조건 셋 "초등 4학년까진 선행 말라" 15년 교사출신의 도발 제안 "우리 애가 산만해서요" 이런 솔직함, 득일까? 현직 교사의 답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2022.08.30 06:00

  • '광클교수'에 물었다…100세 시대 '혼공'으로 성장하기, 조건 셋

    '광클교수'에 물었다…100세 시대 '혼공'으로 성장하기, 조건 셋 유료 전용

    처음부터 혼자 공부(혼공)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양육자가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옆에서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은 아이와 양육자 간의 신뢰가 있어야 길러진다는 얘기다.     학생들의 심리를 분석하는 신종호 서울대 교수의 수업은 언제나 인기가 높다. 그는 "학습은 양육자와의 신뢰 관계에서 시작된다"며 "아이와 양육자가 서로를 전적으로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신 교수는 서울대에서 ‘교육 심리’를 주제로 20년간 강의해 온 전문가다. 공부할 때 아이들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연구해왔다. 즐겁게,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을 찾는다. 덕분에 학생들 사이에선 ‘광클 교수’로 불린다. 그의 수업이 ‘빛’의 속도로 ‘클릭’해야만 수강신청에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인기가 있어서다.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서울대생들의 엉덩이 힘 공부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 어떤 훌륭한 공부법도 오래 앉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이길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다만 “학습 습관을 기르기까지는 양육자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아이와 양육자,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  혼공 조건1. 양육자와의 신뢰 관계가 먼저다.   아이의 공부와 신뢰 관계, 무슨 관련이 있는 걸까요? 초등 시절을 되돌아보죠. 처음부터 혼자 공부하셨나요?   글자 읽기, 수읽기 등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학습은 걷기와 같아서 처음에는 손잡아주는 길잡이가 필요합니다. 아이와 가장 가까운 양육자가 그 역할을 해야 하고요. 마라토너가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도록 경기장 밖에서 함께 뛰어주는 페이스메이커인 셈이죠. 그런데 선수와 페이스메이커가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될까요? 그 경기는 엉망이 됩니다. 아이의 혼공 습관이 양육자와의 신뢰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건 그래서예요.    신뢰를 쌓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본 원칙은 간단합니다. 경험을 공유하는 겁니다. 자기 주도성은 사회적 협력에서 시작하거든요. 우선 아이와 함께 책상 앞에 앉으세요. 그리고 책을 펴고 같이 공부하세요. 혼자 할 줄 아는 아이들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양육자와 함께한 경험이 있습니다. 함께 책 읽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여행하는 등이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늘 양육자가 함께합니다. 그러다가 혼자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싹틉니다. 양육자는 아이가 혼자 해보겠다고 할 때, 서서히 손을 떼면 됩니다.   하지만 학습을 유독 거부하는 아이가 있어요. 달래고 얼러서 책상 앞에 앉혀놔도 공부를 억지로 시킬 수는 없는데요. 공부에 소질이 없는 건 아닐까요? 학습은 호기심에서 시작합니다. 호기심 없는 아이는 없어요. 학습에 대한 부담 때문에 회피하는 겁니다. 이럴 땐 성공 경험을 통해 ‘나도 할 수 있구나’하는 ‘자기효능감’을 키워줘야 합니다. 저는 하루 한 가지 계획 실천하기를 추천하는데요. 하루 3페이지 책 읽기 등 작고 쉬운 일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이때 양육자는 “숙제는 언제 시작할 수 있을까?”, “얼마나 걸릴까?”라는 식으로 계획을 구체화해 성공 가능성을 높여주세요. 점검도 필요합니다. “잘했다”, “못했다” 평가하지 말고, “어렵지는 않았니?”, “무엇이 가장 힘들었니?” 등으로 개선점을 찾아주세요. 이렇게 성공 경험이 쌓이면 재미가 생기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직접 찾아 나설 겁니다.   2018년 방영한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의 한 장면. 부모와 갈등을 빚던 영재(왼쪽)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뒤 잠적해버린다. [사진 JTBC] 그런데 아이 공부하는 걸 보면 답답해요. 그러다 보니 자꾸 다그치게 되고, 감정싸움 하게 되고요.   조급하니까요. 걷기도 전에 뛰라고 하고 싶거든요. 하지만 지식을 익히는 과정은 누구나 어렵고, 시간이 걸립니다. 이제 막 학습을 시작한 아이가 받는 압박은 더 크겠죠. 그래서 아이의 심리적 부담을 이해하고,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또 아이의 결정력과 상황 통제력을 믿고, 기회를 주세요. 예를 들어 참고서를 사고, 학원을 선택하는 일 등이요. 학습의 주도권을 쥐면, 공부는 내 일이 됩니다. 공부에 책임감이 생긴다는 얘기예요. 이렇게 아이의 생각과 결정, 경험을 인정하면 아이도 양육자를 믿게 됩니다.   굉장한 인내심이 필요하겠는데요. 양육자는 늘 성찰해야 합니다. 성적을 우선하는 ‘학부모’인지, 아이를 우선하는 ‘부모’인지 돌아보세요. 성적에만 집착하면 아이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양육자가 원하는 걸 아이에게 요구합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의 영재 가족(배우 김정난 가족)이 그랬죠. 아들이 의대에 갔지만, 그건 부모의 바람이었어요. 결국 아들은 가출하고, 가족은 해체되죠. 허구가 아닙니다. 흔히 아이와 책상 앞에 앉으면 공부에 대한 질문부터 나옵니다. “진도 나갔니?”, “다 이해되니?” 라고요. 이러면 아이는 자신이 공부로만 평가받는다고 생각해 공부를 부담스러워합니다. 아이의 일상과 마음에 관심을 가지세요. 오늘 기분, 학교생활 등을 서로 물어보며 관계를 쌓으세요. 그러면 아이가 먼저 도움을 요청합니다. 양육자는 필요하다는 걸 도와주면 되고요. 스스로 학습은 그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  혼공 조건 2. 공부에도 목표가 필요하다.     두 번째 조건은 공부 목표다. 어떤 일이든 열정만으로는 안 된다. 공부도 그렇다. 공부해야 하는 타당성이 없으면 쉽게 포기하기 마련이다. 반면 이루고 싶은 일, 꿈이 있다면 끝까지 완주할 힘이 생긴다는 게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주도성은 가야 할 방향을 알 때 생긴다”며 “아이가 공부 목표 없이 ‘보여주기식’ 공부를 하는 건 아닌지부터 점검해보자”고 했다.     보여주기식 공부란 뭘까요? 평가와 평판을 위한 공부요. 서울대 입학생을 대상으로 ‘공부를 왜 하는가’를 물었더니 10~20%는 “좋은 대학 다니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답했어요. 남을 위한 공부를 했다는 거예요. 이렇게 답한 학생들은 뒤늦게 사춘기를 겪습니다. 서울대에 오긴 왔는데, ‘내가 여기 왜 왔지?’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서울대는 최종 목표가 아니에요. 핵심은 대학에서 어떤 공부를, 왜 할 것이냐입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나만의 생각이 있어야 해요.   목표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제가 말하는 최종 목표란 ‘하고 싶은 일’을 말합니다. 하고 싶은 일은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양육자는 평소 아이의 관심사를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몰입할 기회를 줘야 해요.   몰입이요? 운동이면 운동, 게임이면 게임, 과학이면 과학, 한 가지 일에 깊이 있게 빠져보는 경험이요. ‘덕질’이라고 하죠. 좋아하는 일에 몰입해 봐야 왜 좋은지, 몰입할 때 나는 어떤 모습이고, 어떤 마음인지 들여다볼 수 있거든요. 그 과정에서 학습 목표도 생깁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계속 도전하고, 배워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동물을 좋아하면 ‘동물과 공존하는 일’이 목표가 됩니다. 이 목표에 닿는 방법 중 하나가 ‘수의사’인 거고요. 이렇게 목표가 생기면 아이는 필요한 공부를 찾아서 합니다. 미쳐봐야 미칠 수 있다는 게 이런 겁니다.    신 교수가 말하는 '학습 목표'란 '하고 싶은 일'을 말한다. 그는 "몰입한 경험이 없다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라고 했다. 장진영 기자   그런데 학습할 땐 목표를 세워도 실천이 쉽지 않아요.    두 가지 팁을 알려드릴게요. 첫째는 ‘구체적으로 세운다’입니다. 연구 하나를 소개할게요. 미국에서 초등 5·6학년에게 작문 과제를 퇴고하게 했어요. A 집단은 ‘신중하게 보완하라’고 했고, B 집단은 ‘부족한 3가지를 찾아 보완하라’고 했어요. 그 결과 B 집단의 점수가 월등히 높았어요. ‘3가지’라는 뚜렷한 목표를 생각하면서 수정하다 보니 행동에 차이가 생긴 거죠. 학습 목표도 마찬가지예요. ‘이번 시험에서 수학 90점을 받겠다’는 목표보다 ‘연산 문제는 다 맞겠다’는 식으로 접근해야 해요. 그래야 그에 맞는 학습 계획과 전략을 세울 수 있어요.   두 번째 팁은 뭔가요?   공부하는 이유를 성과가 아닌 성장에 두는 겁니다. 교육 심리에선 ‘숙달 목표’라 부르는데요.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를 예로 들어 볼게요. 경기 목표에 대해 김연아는 “즐기면서 타겠다”, 아사다 마오는 “김연아를 이기고 싶다”고 했어요. 전자는 목표를 ‘나의 성장’에, 후자는 ‘내 능력을 증명’하는데 둔 겁니다. 결과는 아시는 대로입니다. 성과만 집착하면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집중력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성장을 목표로 두면 과정에 집중하게 되고, 배움의 포인트도 찾을 수 있어요. 저절로 재밌어지죠. 그러려면 양육자가 먼저 숫자(성적)로 평가하고, 비교하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대신 배울 내용을 미리 얘기해보고, 학습 뒤 어떤 변화가 생길지 함께 상상해보세요. 이때 목표 수행 중 겪을 어려움을 예측하면 더 좋습니다.    어려움을 미리 알려주라는 걸까요? 과정이 녹록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겁니다. 장애물을 함께 고려하면 현실 가능성이 커지거든요. 예를 들어 ‘지난 시험보다 점수를 높이겠다’고 목표를 세웠다면 취약 과목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많이 보는 습관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봐야 합니다. 통제력이 커지면, 실수와 실패도 배우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다시 도전할 힘이 생깁니다.    ━  혼공 조건 3. 정리와 문제로 공부하라   공부는 평생 해야 하는 장기전이다. 신 교수는  “장기 레이스는 지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전략과 기술로 접근해야 완주할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기술은 효율적인 공부법을 말한다. 제한된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꼼꼼하게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단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배운 내용을 나만의 방식으로 정리할 수 있을 때, 스스로 학습에 속도가 붙는다”고 했다.   ‘학습 정리’는 누구나 할 줄 아는 것 아닌가요? 제가 말하는 학습 정리란 지식을 나만의 말로 재구조화하는 걸 말합니다. 그러려면 배운 내용을 이해하고, 체계화하고, 나만의 언어로 다시 써야 합니다. 보통 아이들은 책에 밑줄을 긋고, 선생님 말을 받아 적으면 정리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건 복사지 정리가 아닙니다. 자기 생각을 추가하고, 공책에 다시 정리해야 해요. 나만의 교과서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적을 높이는 정리법도 있을까요? 저는 숲형 정리법을 추천합니다. 숲형 정리란 내용의 구조, 개념과 개념 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걸 말합니다. 줄글도 좋지만, 표나 마인드맵(개념도)을 이용해서 한 눈에 들어오게 정리하길 추천합니다. 먼저 핵심 단어를 5개 내외로 종이에 적어봅니다. 그리고는 각 단어의 관계를 점선, 화살표 등으로 구분해 표시합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도식화하는 거예요. 여기서 한 단계 더 들어가 각 단어의 뜻, 연관된 예시 등을 포스트잇에 적어 그 옆에 붙여주세요.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을 부차적으로 적어주면 지식 구조를 먼저 훑고, 관련 내용을 꼼꼼히 챙기는 습관을 기를 수 있어요. 한 단원을 마칠 때마다 마무리 활동으로 해보세요. 신 교수는 "장기 레이스인 공부는 목표에 맞는 학습 전략과 학습법이 필요하다"며 지식 구조를 보는 '숲형' 학습법을 추천했다. 사진은 비인가 실험학교로 거꾸로 캠퍼스 학생들이 만든 마인드맵. 우상조 기자      하지만 개념 정리를 잘해도 자동으로 성적이 오르지는 않습니다. 제대로 알고 있는지 ‘확인 작업’을 거쳐야죠. ‘메타인지’라고 하죠. 알고 있는 것과 모르고 있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합니다. 저는 ‘문제 중심 학습법’을 권합니다. 어렵지 않아요. 기본서 문제집 한 권이면 됩니다. 정리를 마친 뒤 문제를 풀어보는데, 처음에는 많이 틀릴 겁니다. 괜찮습니다. 틀린 이유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내용을 잊어버리건 지, 잘못 이해한 건지, 기억이 왜곡된 건지요. 기억을 교정하고, 다시 문제를 푸는 과정을 반복하세요. 이때 자신의 풀이 방법을 타인에게 설명해보면 더 좋습니다. 정확히 이해하고, 기억해야만 설명할 수 있거든요. 이 과정을 반복하면 출제자의 의도까지 파악하게 되고, 응용력도 생깁니다. 이렇게 기본 문제집 한 권만 완벽히 풀어도 내신에서 80점 이상은 받습니다. 초등 5학년부터는 이런 공부법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본격적으로 학습이 시작되는 시기거든요. 그래야 중학교에 가서도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헤매거나 방황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열심히는 하는데도 성장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취약한 부분을 찾아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학습은 위계적입니다. 기존에 내가 이해한 지식 체계를 기반으로 새로운 내용을 쌓아서 구조화하는 게 공부거든요. 그래서 초기 학습이 허술하면 새로운 걸 배워도 이해하지 못하고 흔들립니다. 반면 기초가 탄탄하면, 계속 새로운 지식이 쌓이면서 지식 체계가 확장하고요. 학습에 부익부 빈익빈이 생기는 겁니다. 만약 열심히 하는데도 이해가 쉽지 않거나 실수가 잦다면 이전 학년 내용부터 다시 점검해보세요. 취약한 부분을 찾았다면 그 내용을 다시 익히는 시간을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신 교수는 아이의 학업 성취 수준을 점검할 결정적 시기로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꼽았다. 학년이 오를수록 학습 격차를 줄일 기회는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의 학습 수준에 빈틈이 보인다면 거꾸로 돌아가 다시 배울 기회를 만들어주라고 했다. 그는 “아이가 부끄러워하지 않고, 배우는 과정에 집중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라톤이든, 학습이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하지만 아이 혼자서는 힘듭니다. 그 옆에 양육자가 항상 응원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세요.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스스로 성장할 힘을 얻습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서로를 전적으로 믿으세요” 학습 주도성은 양육자와의 신뢰 속에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아이와 함께 공부하세요. 작은 성공 경험을 늘려주고, 아이의 통제력과 결정력을 믿어주세요.  ·“공부 목표를 세우세요” 가야할 방향이 있어야 실천력도 생깁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게 몰입할 기회를 주세요. 목표는 구체적으로, 성과보단 과정에 집중해 목표를 정하세요.   ·“정리와 문제로 공부하세요” 효율적으로 공부하는 법을 익혀야합니다. 지식 구조, 개념간 관계를 볼 수 있도록 마인드맵으로 정리하세요, 문제 풀이로 알고 모르는 건 정확히 짚고 넘어가세요.  」 관련기사 "하늘 왜 파란 거야?" 묻는 아이…스탠퍼드대 교수 의외의 대답 "창의력? 열린 질문 그리고 이 2가지 기억하라" 경제학자의 비결 김정주·이해진·김범수가 만든 '혁신 학교' 졸업생, 치킨집 차린 까닭은?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2022.08.22 06:00

  • "천재여야 살 가치 있는 건가요" '우영우' 신드롬이 불편한 이유

    "천재여야 살 가치 있는 건가요" '우영우' 신드롬이 불편한 이유 유료 전용

    천재여야만 존중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걸까요? 사실 지적장애를 동반한 자폐인이 많고, 그래서 자립이 불가능한 경우가 더 많거든요. ‘우영우’가 반가우면서도 마냥 좋지 않은 건 그래서죠.   지난 9일 만난 김효진 작가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10살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웹툰으로 그려 연재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낌꼬’라는 필명으로 연재 중인 그의 웹툰 제목은 ‘쪼꼼한 일기장’이다.   김효진 작가는 “주인공의 동생이 장애인으로 설정되는 등 주인공의 불행 서사를 강화하는 장치로 등장하던 것에 비하면 많이 앞으로 나아갔다”면서도 “그럼에도 현실과 달리 천재로 설정되는 걸 보면 쓸모를 증명해야만 인정받을 수 있나 싶어 씁쓸하다”고 말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일상을 웹툰으로 그리고 있는 김효진 작가가 자신의 웹툰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그가 웹툰을 그리기 시작한 건 아이의 존재를 세상에서 지우고 싶지 않아서다. 장진영 기자    ━  Part1. 장애로 주목받지 않는 인물이 보고 싶어요   김효진 작가는 “장애, 특히 자폐스펙트럼 장애가 전면에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잘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적나라한 장면 묘사에 가슴이 무너져내리기도 하고, 현실과 거리가 먼 설정을 보고 있으면 박탈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용기를 내 보는 편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에겐 드라마를 보는 일마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 천재라는 설정이 마음을 아프게 하는군요. 장애아 양육자를 위한 교육에 간 적이 있어요. 강사로 오신 분이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여기 오신 부모님 대부분이 우리 아이가 크면 우체국이나 공장에 취직하거나 바리스타나 파티쉐로 일할 거라고 생각하시죠?”. 다들 “네” 했죠. 그런데 이러시는 거예요. “그런 아이들은 엘리트입니다”라고요. 대부분은 취업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죠.   그럼 어떻게 지내나요? 양육자들의 고민이 바로 그거에요. 학교 다닐 때는 상황이 나아요. 갈 곳이 있잖아요. 학교가 울타리가 되어주는 거죠. 곁에서 도움 주는 사람이 없어 7년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은 장애인도 있었다고 해요. 그런 상황이 지속하면 지적 장애인은 장애가 더 악화할 수밖에 없죠.   보통 어떻게 하죠? 그날 교육에서 알려준 게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 지였어요. 그럴 때 다닐 수 있는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을 알려주더라고요. 지적 장애인의 현실이 이래요. 그런데 미디어에선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졌지만, 서울대 로스쿨을 수석 졸업한 천재 변호사가 나오잖아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만 그런 게 아니에요. ‘굿닥터’에선 자폐인이 천재 의사로 나왔고, 영화 ‘증인’에서도 지능이 높은 거로 설정됐어요. ‘내 아이가 천재여야만 존재를 인정받을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불편한 마음이 들어도 챙겨 보려고 하신다고요? 그 드라마가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사회가 우리 아이가 살아갈 사회니까요. 그래도 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장애인이 주인공을 더 불쌍하고 힘들게 만드는 존재로 등장했거든요. 장애를 가진 동생이 등장함으로써 주인공의 역경이 강화되는 식으로요. 그런데 지금은 주인공이긴 하잖아요. 사건을 해결하고, 사랑도 하고요. 다만 조금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에 이렇게 불편한 점을 말하는 거예요.   어떻게 등장하면 좋을까요? 저는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싫어하거나 꺼리지 않았으면 해요. 그렇다고 귀여워 해주거나 예뻐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냥 아무렇지 않게 봤으면 좋겠어요.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등장하길 바라요. 주인공 친구 같은 거로요. 조연인데, 장애가 있는 거죠. 장애는 직업처럼 그저 그 인물의 한 요소일 뿐 주목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아이가 장애로 주목받는 걸 원치 않거든요. 그게 좋은 방식이든, 나쁜 방식이든요. 김효진 작가가 그리고 있는 웹툰 '쪼꼼한 일기장'의 한 장면. 그는 장애가 있는 아이가 그저 있는 그대로 인정 받고 받아들여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웹툰을 그리기 시작했다. ⓒ김효진    ━  Part2. 쳐다보지 말아 주세요    김효진 작가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기 전까진 우리 사회에 이렇게 많은 장애인이 있는 줄 몰랐다”고 했다. 그가 장애인을 주로 마주치는 곳은 늘 복지관이나 병원, 치료센터였다.   이렇게 장애인이 많은데, 왜 거리엔 안 보이는 걸까?   아이가 크면서 그의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풀렸다. 아이가 아직 아기였을 땐 소리를 지르거나 특정한 손짓을 반복해도 사람들이 쳐다보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가 크면서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느냐?”는 질문을 듣기도 한다. 그는 “어떨 땐 그냥 편하게 집에만 있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용기를 내 아이와 밖으로 나가는 건 “우리 아이가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어서다. 웹툰을 그리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그렇게 쳐다보나요? 아무래도 아이가 눈에 띄는 행동을 하니까요. 엘리베이터에서 모르는 사람의 가방에 예쁜 열쇠고리가 달려 있으면 아무렇지 않게 만지기도 하고요,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과자를 먹고 있으면 다가가서 “나도 과자 줘”라고 말하기도 해요. 모르는 아이인데도요. 카페에서 사람들이 뭘 먹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가서 집어 먹기도 하죠.   아이들이 다 그렇죠. 맞아요. 아이는 누구나 사회에 나가기 위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허용되지 않는 행동을 배우기 위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한 거죠. 하물며 장애가 있는 아이는 어떻겠어요? 비장애 아이보다 더 많은 시간과 경험이 필요해요. 그런데 요즘은 비장애 아이의 어리숙한 행동도 민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노키즈존’ 같은 게 생길 정도로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애아를 키우는 양육자들은 더 외부활동을 꺼리게 됩니다.   “아이가 장애가 있다”고 설명하면 이해하는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그런 분들도 많아요. 하지만 매번 그렇게 설명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양육자로서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말은 아픈 말이잖아요. 그런 말을 백번 천번 하는 게 어떻게 쉽겠어요? 그렇게 말했다가 호기심 어린 시선이나 질문을 받기도 하고요.   호기심 어린 시선이나 질문이요? 한 번은 이런 적도 있어요. 하교 중이었는데, 학습지 선생님이 따라 오면서 학습지를 권유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이가 특수교육 대상자라서 괜찮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이러시더라고요. “왜 특수교육 대상자예요? 멀쩡해 보이는데?” 결국 자폐성 지적장애라고 말하고 나서야 상황이 끝났죠. ‘멀쩡해 보인다’는 말도 사실 ‘장애인은 멀쩡해 보이지 않는다’는 편견에서 나온 말이잖아요. “아유, 참 예쁘게 생겼는데…” 같은 말도 듣기 싫어요. 안타까운 마음에 하는 말인 걸 알지만,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 찬 말이잖아요. 장애인은 예쁘면 안 되나요? 그런 말을 들으면 길 가다 뺨 맞은 기분이 들어요.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훅하고 들어오는 거라 방어도 할 수 없거든요.   그런 상황을 계속 마주하면 ‘외출 안 하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렇게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이라는 존재가 지워지는 거죠. 그러지 않으려면, 세상이 제 아이의 존재를 지우게 두지 않으려면 제가 더 강해져야 하는데, 저 역시 사람인지라 그러지 못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죠.   작가님이 아이와 더 자주 외출할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양육자라면 비장애 아이를 키우더라도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내 아이가 다른 사람이 불편할 만한 행동을 하는 순간이요. 그럴 때 모르는 척해주면 너무 고맙죠. 저도 그래요. 의식적으로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 너무 감사하죠. 그런 분들이 늘어나면 좋겠어요. 문신을 했든, 외국인이든, 특이한 옷을 입었든 신경 쓰지 않는 그런 분위기였으면 좋겠어요.  김효진 작가는 "쳐다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만나면 고맙다"고 말했다. "이상한 듯, 신기한 듯 쳐다보는 시선이 장애인들을 거리에 나서지 못하게 만든다"고 그는 말했다. 장진영 기자    ━  Part3. 저도 맥주 좋아해요    제품 디자이너로 일했던 김효진 작가는 결혼 후 이직을 위해 회사를 그만뒀다가 아이를 갖게 됐다. 많은 여성 육아인처럼 출산이 경력 단절의 계기가 된 셈이다. 다시 취업하더라도 금세 쉬어야 하는 상황이라 “아이가 좀 클 때까지만 참자”고 생각한 게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그 사이 ‘쪼꼼한 일기장’의 주인공 쪼꼬미가 태어났고, 6년 후 둘째도 낳았다.   많은 여성 육아인처럼 그 역시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서 “다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니 그림을 그려보라”며 태블릿PC를 선물한 남편의 격려 덕에 지난해부터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그려 올리기 시작했다. 악플이 무서워 웹툰 도전을 꺼리다 올해 들어서야 네이버 웹툰 사이트에 연재를 시작했다. 아직 정식으로 연재하는 작가가 되진 못했지만, ‘베스트도전’에 선정되면서 정식 연재에 바짝 다가갔다.   오랫동안 일하지 않다가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제품 디자인을 하다가 웹 디자인으로 전환하고 프리랜서로 간간이 일하긴 했지만, 육아 때문에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 그림을 그리려고 했을 때, 생각처럼 쉽게 잘 안 되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그리고 싶은 이야기는 제 이야기, 그리고 제 아이의 이야기였으니까요. 작품을 넘어 저와 제 아이에 대한 악플이 달릴 수 있잖아요. 그래서 용기 내기가 더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결국 시작하셨죠. 정말 이야기 하고 싶었거든요. 장애를 가진 아이의 이야기를요. 육아툰이나 일상툰은 정말 많잖아요. 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더 하고 싶었어요. ‘장애를 가진 아이가 여기 있다’고 말할 사람이 저밖에 없잖아요. 사람들이 제 아이의 장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길 정말 바랬거든요. 그런데 막상 그림을 그리면서 제가 아이를 더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작가님이 아이를 받아들인다고요? 이미 받아들이신 거 아닌가요? 그래서 아이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수 있으셨던 거고요. 사실 아직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아이의 장애 사실을 안 건 언제인가요? 돌 무렵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불러도 반응이 별로 없었거든요. 느린 거길 바라면서도 혹시나 하는 그런 상태였죠. 그러다 5살 무렵에 본격적으로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땐 진단에 집착했죠. 중요한 건 아이의 상태인데, 의사가 “장애가 아니다”라고 말해주길 바랐던 것 같기도 해요. 진단에 따라 치료가 달라질 테고, 그러면 호전될 거라는 기대도 있었고요. 그러다 7살 무렵에 자폐스펙트럼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언어 발달이 잘 안 되면, 이제 더는 지연이 아니라 장애라고 봐야 한다더라고요.   장애 진단을 받은 지 3년이 넘은 셈인데, 아직도 받아들이는 중이시라고요?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이제 좋아진다는 희망이 사라졌으니까요. 그러고 나서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장애 등록을 하고 복지카드를 받았어요. 복지카드 받는 날도 눈물이 펑펑 나더라고요. 평소엔 씩씩하게 지내다가도 문득 아이의 장애를 마주하면 무너져요.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건, 어쩌면 평생 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르죠.   양육자, 특히 여성 양육자는 ‘엄마’가 되면 이런저런 역할과 의무가 부여되잖아요. 희생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도 생기고요.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에겐 그런 압력이 더 클 것 같아요. 주변에 자폐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가 많은데요, 한 분이 이런 말을 하시더라고요. “비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얼마나 열심히 사는 줄 아느냐. 힘들어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너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요. 장애아를 키우는 양육자들은 그런 시선과 압력에 시달리는 게 사실이에요. 조금이라도 쉬거나 늘어져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생각을 스스로 갖기도 하고요.   하지만 어떻게 늘 긴장한 상태로 살겠어요. 누구든 그렇게 살기 쉽지 않아요. 장애아를 키우는 다른 양육자분께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이건 장기전이라고요. 한두 해 재활하고 끝나는 거 아니라고요. 마라톤인데, 단거리 달리기하듯 달리면 끝까지 못 간다고요. 아이가 크면서 저도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됐어요. 좋다는 병원이나 센터를 찾아 차로 한두 시간씩 다니는 걸 이젠 하지 않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지속해서 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비단 아이를 키우는 것만 그런 게 아니라 삶이 그런 것 같아요.   엄마가 되면 욕망하는 것도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어요. ‘애 엄마가 왜 저래’ 하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면 더하죠. 저도 예쁜 옷 입고, 화장도 하고, 맥주도 마실 수 있어요. 그런데 제가 그러면 ‘아이가 장애가 있는데 엄마가 저런다’는 식의 시선을 피하기 어렵죠. 하지만 저는 엄마이기도 하지만 저이기도 해요. 제가 웹툰을 그리는 것 역시 저 이려는 몸부림이기도 하고요.   김효진 작가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영화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를 본 이야기를 꺼냈다. 돌연변이인 에릭이 “사회가 널 받아들이길 바라면서 네 자신도 (돌연변이인 너를) 받아들이지 못하잖아”라고 한 말이 아프게 들렸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그걸 요구하고 있는 게 아닐까” 스스로 질문했단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으니까요. 제 아이가 그렇듯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저 자신을, 그리고 제 아이의 장애를 조금씩 받아들이며 앞으로든 옆으로든 나아가듯 우리 사회도 천천히 그렇게 되길 바라요.   김효진 작가는 그렇게 용기를 내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우리가 그 손을 잡을 차례다.  김효진 작가의 '쪼꼼한 일기장' 주인공 쪼꼬미가 hello@ Parents 독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김효진 관련기사 두 번 창업한 워킹맘 조언 "버티면 된다, 아이는 금세 큰다"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2022.08.16 06:00

  • “우리는 왜 서른, 마흔에 가방 하나 메고 산티아고 가게 됐을까?"

    “우리는 왜 서른, 마흔에 가방 하나 메고 산티아고 가게 됐을까?" 유료 전용

    혹시 뭔가를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지 말고, 아이의 생각을 꺼내려고 해보세요. 그렇게 하면 그림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 1일 만난 이현아 교사는 “어떻게 하면 아이가 그림책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이 이렇게 답했다. 2015년부터 그림책을 가지고 수업을 해온 베테랑 교사다. 그림책 수업 노하우를 담아 책(『그림책 한 권의 힘』)을 쓰기도 했고, 2017년부터는 교사를 대상으로 그림책 수업 연수도 진행 중이다.   이현아 교사는 “가르치는 건 이미 기존 수업 시간을 통해 충분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부족한 건 지식을 넣는 게 아니라 생각을 꺼내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그런데 막상 아이에게 생각을 말해보라고 하면 잘 안 한다”면서 “그럴 때 그림책을 활용하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림책 수업 베테랑인 이현아 교사는 "아이의 생각을 꺼내는 데 그림책을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아이가 자연스레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진영 기자  ━  생각 꺼내기, 포스트잇 한장이면 된다   ‘집어넣지 말고 생각을 꺼내야 한다’는 말, 너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생각을 물어보면,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림책) 어땠냐”는 질문에, 열에 아홉은 “좋았다”고 답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뭐가 좋았냐”고 한 번 더 물어보자. 그래도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 좋았다”는 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매개로 생각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아요. 어땠느냐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대부분 ‘좋았다’고 단답형으로 말하지 않나요? 정말 그렇죠. 그래서 질문이 중요해요. 구체적으로 묻는 겁니다. 제가 그림책을 읽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방법이 있어요. 먼저 가장 인상적인 장면, 좋았던 장면을 고르게 합니다.   그런 뒤엔요? 그리고 4가지를 물어요. 경험, 오감, 생각 그리고 질문에 관한 질문이죠. 경험은 인상적인 장면을 보고 떠오른 경험이 있는지 묻는 겁니다. 오감은 그 장면에서 떠오르는 색깔이나 촉감, 냄새에 관해 이야기해달라고 하는 거고요. 생각은 그 장면에서 어떤 생각이나 기분이 들었는지를, 질문은 그 장면에서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질문을 한 가지만 떠올려서 말해달라고 하는 거죠.   그 4가지 질문을 모두 다 하나요? 상황에 따라서요. 고학년을 가르칠 땐 다 하지만, 저학년은 그중에서 한두 개만 합니다.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질문하고 답을 듣고 끝인가요? 질문을 던지고 아이에게 포스트잇을 주세요. 거기에 질문에 대한 답을 쓰게 하고, 답을 쓴 포스트잇을 아이가 인상적이라고 말한 그 장면에 붙이는 거죠. 여러 명이 이 장면 저 장면에 붙이거든요.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 그 답을 쓴 친구가 이야기합니다. 저마다 마음을 움직인 장면이 다 다르고, 같은 장면을 보고도 떠오르는 경험이나 생각이 다 다릅니다. 아이들이 이 활동을 좋아하는 이유죠.   책에 따라 활동지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그런 부담이 줄겠어요. 교사 연수 때 만난 선생님이나 강연에서 만난 양육자분들도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어떤 그림책을 읽어도 아이와 활동할 수 있다고요. 그림책을 미리 정할 필요도 없죠. 책장 앞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림책을 고르는 거예요. 그리고 그 책을 가지고 경험과 오감, 생각, 그리고 질문에 관해 묻고 포스트잇 활동을 해보세요. 저는 이런 그림책 독후 활동법을 ‘통(通) 그림책 감상법’이라고 불러요. 나랑 통했던 그림책, 통했던 장면을 가지고 생각을 확장하는 거죠.  이현아 교사는 그림책을 가지고 아이들과 수업한 이야기를 모아 책을 썼다. 책에는 그의 그림책 수업 노하우도 담겼다. 장진영 기자  ━  다 큰 어른, 왜 산티아고까지 갈까   자신만의 그림책 활동법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그림책 수업에 열정을 가진 그도 사실 ‘교사가 내게 맞는 걸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5년 차 교사였던 2014년, 아이들과 매일 같이 있는데, 아이들과 있는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아이들이 영혼을 집에 두고 오는 것 같았다. 울림 없는 교실에서, 그 역시 ‘교사로 평생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학교 도서관에서 제시 클라우스마이어 작가가 쓰고 이수지 작가가 그린 『이 작은 책을 펼쳐 봐』을 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언 듯 한참을 서 있었다.   『이 작은 책을 펼쳐 봐』가 어떤 책이었길래요? 이 책 안엔 작은 책 여러 권이 있어요. 책을 펼치면 좀 더 작은 책이, 그 책을 펼치면 더 작은 책이 나와요. 그런데 가장 작은 책을 거인이 펼쳐야 해요. 손이 너무 커서 펼칠 수도, 넘길 수가 없죠. 거인은 어떻게 했을까요? 책을 결국 못 봤을까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친구들이 대신 펼쳐줬거든요.   그 책이 왜 통했을까요? 교사인 제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어요. 거인이 작은 책을 펼칠 수 없듯이요. 아이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는 거죠. 교실에서도요. 그걸 깨닫고 나니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겠더라고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교실 책장에 꽂아두고 아이들과 읽었어요. 그런데 책보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더 좋았죠. 그렇게 말을 하라고 해도 말을 안 하던 아이들이 말을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말을 하라고 하면 잘 안 하나요? 생각할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친구들이 자길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도 싫고, 선생님이 쓸데없는 얘기나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싫고요. 아이들이 좀 크면 알아요. 어떻게 대답해야 빨리 끝나는지를요. 그래서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아요.   그림책을 가지고 하면 다른가요? 누구나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다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 말할 계기가 없을 뿐이에요. 그림책을 읽는 행위가 그걸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공부하는 긴장감 없이 편안하게 책을 읽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니까요.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왜 중요한가요? 아이는 학교에서 12년을 보내요. 그 12년간 들숨만 쉰다고 생각해보세요. 넣기만 하지, 꺼내는 걸 하지 않는다고요. 들숨과 날숨을 함께 해야 숨을 쉴 수 있어요. 건강하게 잘 자라려면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해요. 들숨만 쉬다가 사회에 나온 어른들이 어떻게 사나요? 다 커서 산티아고에 가죠. 나이 서른, 마흔에 '나'를 찾겠다고요.    자기 이야기를 하게 하는 여러 매개체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왜 그림책인가요? 그림책은 유연한 매체인 것 같아요. 그림도 있고, 이야기도 있고, 그 둘이 함께 만들어내는 호흡도 있고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요. 그리고 할 수 있는 활동도 많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고요. 연극이나 음악 감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죠. 이야기 치료라고, 치료의 매개체로 사용하기도 하고요.  이현아 교사는 "책을 좋아하려면 좋아하는 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홈런북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홈런북을 찾게 하고, 읽게 하는 게 그가 아이들과 책을 읽는 노하우다. 장진영 기자  ━  홈런북을 찾아라    그림책에 관한 양육자들의 궁금증은 대체로 이 두 가지로 모아진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림책 수업 베테랑 교사는 아이들과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까?   책이 정말 많아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책 고르는 선생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홈런북, 그러니까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을 찾아보세요. 저는 2시간 정도의 시간을 확보해서 아이들과 학교 도서관에 가요. 1시간은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보면서 자기만의 홈런북을 찾아요. 원래 좋아하던 책을 가져오는 친구도 있고, 그날 그 자리에서 맘에 드는 책을 골라오는 아이도 있어요. 나머지 1시간은 둘러앉아서 자기가 찾은 홈런북을 소개하는 겁니다. 앞서 알려드렸던 바로 그 방법, 포스트잇 활용법을 써서요.   아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책을 읽게 하고, 활동도 그걸 가지고 하는 거군요? 해보시면 책을 정해주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아이와 함께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직접 책을 고르게 해보세요.   아이가 직접 좋아하는 책, 홈런북을 고르다 보면 책을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아이가 책을 많이 읽길 바라시잖아요. 그러려면 좋아해야 해요. 아이가 책을 좋아하려면, 자기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읽나요? 선생님이 읽어주시나요? 교실에서 수업할 때는 책이 한 권, 많아도 두 세권 밖에 없으니까요. 보통 제가 책을 아이들을 향해 펼쳐서 보여주면서 소리 내 읽습니다. 첫 번째 읽을 때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그냥 읽습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요. 두 번째는 나만의 한 장면을 찾아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읽어요. 그리고 나서는 책을 돌려요. 아이들이 직접 책장을 넘겨보면서 읽게 하는 거죠. 그리고 나면 포스트잇을 꺼내게 하고, 그 장면이 왜 좋았는지, 경험과 오감, 생각, 질문을 주제로 쓰게 해요.   선생님 교실에 있는 책은 포스트잇 때문에 금세 뚱뚱해지겠네요. (웃음) 빵을 구우면 반죽이 부풀잖아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 빵 굽듯 책이 부풀어요. 저는 그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아이들과 책을 읽을 때 특별히 유념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많이 읽으라고 하지 않아요. 저는 가능하면 천천히 여러 번 읽으라고 해요. 책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찾으라고 하고, 그 장면에 멈춰서 생각하도록 하는 것도 천천히 읽는 방법의 하나에요.   포스트잇 쓰기를 하다 보면,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도 늘 것 같아요. 막상 생각을 글로 써보면, 생각처럼 잘 안 됩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포스트잇 활동을 꾸준히 하다 보면 확실히 학기 초보다 쓰는 실력이 좋아져요. 생각하는 힘도 그만큼 커졌다는 뜻일 겁니다.    이현아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 속에 있는 ‘문장’과 ‘이야기’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기 시작한 이유다. 그는 아이들의 그림책을 혼자 보는 게 아까워 온라인 그림책 도서관 ‘통로’를 만들기도 했다.   “작품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가 완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을 가지고 아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건 궁극적으로 원작을 더 풍성하게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에요. 양육자나 교사뿐 아니라 그림책을 둘러싼 많은 어른이 어린이를 좀 더 존중했으면 좋겠어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 그림책을 읽고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그림책을 가지고 아이의 생각과 이야기를 끄집어내세요. 그래야 아이가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② “책 어땠니?”, “뭐가 좋았니”라고 묻지 마세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고르게 하고, 그 장면에서 떠오른 아이의 경험과 생각(느낌), 오감을 물어보세요. 그리고 어떤 질문을 하고 싶은지 묻는 것도 좋습니다.   ③ 책을 골라주지 마세요. 아이에게 시간을 주고 책을 둘러보게 하고, 그중 마음에 드는 책을 직접 고르게 하세요. 그래야 더 적극적으로 읽고, 활동합니다. 」 관련기사 “독서나무와 체크리스트, 2가지면 끝” 성효쌤의 특급 독서전략 [오밥뉴스]"코로나 이후 한 반에 20% 읽기 어려워 해"… 내 아이의 문해력 수준은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2022.08.08 06:00

  • 피아노 학원 전에 ‘이 능력’부터…클래식 음악 쉽게 듣는 3단계 접근법

    피아노 학원 전에 ‘이 능력’부터…클래식 음악 쉽게 듣는 3단계 접근법 유료 전용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신가요? 피아노 학원에 보낼 게 아니라 듣는 귀부터 열어주세요. 귀를 열려면 단계적인 듣기 훈련이 필요합니다.   “클래식 음악(이하 클래식)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나성인 음악 칼럼니스트는 이렇게 답했다. 클래식과 친해지려면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책상 앞에 앉아서 계이름을 외우고, 악보를 읽고, 악기를 배우라는 게 아니다. 그가 말하는 클래식 공부는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나성인 음악 칼럼니스트는 어린이에게 클래식 권하는 '클래식 인문학' 전문가다. 그는 "클래식은 악기 연주보다 귀 기울여 듣는 법부터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나 칼럼니스트는 클래식과 문학을 연결지어 소개하는 ‘클래식 인문학’ 전문가다. 서울대에서 아동학을 전공한 그는 독일 시(詩)로 석사 학위를 받고, 독일에서 음악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는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위한 클래식 감상 교육에 발 벗고 나섰다. 학업과 친구 문제 등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서란다.    그는 “클래식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클래식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이 담겨 있는데, 감상을 통해 감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어린 시절 뇌성마비를 앓은 그 역시 클래식으로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다. 그는 “클래식 카세트테이프를 건네며 함께 들어준 삼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양육자가 먼저 듣고, 이해하고, 좋아하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듣는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듣기 좋은 클래식과 배경 지식을 담은 책『어른이 먼저 읽는 어린이 클래식』(풍월당,2022)을 펴낸 것도 그래서다.   나 칼럼니스트는 “‘클래식은 어렵다’는 편견부터 깨야 한다”며 “양육자와 아이가 함께 클래식에 귀 기울이는 습관을 들이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말했다. (나 칼럼니스트의 추천곡을 함께 소개합니다. 링크를 눌러 음악을 들으며 함께 기사를 읽어보세요)   귀 기울여 듣기, 무엇을 말하나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우리 주변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죠. 차량 후진할 때 들리던 음악 기억나시나요? 이 음악인데요, 들려드릴게요. (링크를 눌러 감상해보세요)   익숙한 멜로디에요! 곡명이 뭐죠?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에요.     들으니 알겠어요. 그런데 왜 클래식은 뒤돌아서면 잊힐까요? 이름을 묻지 않아서예요. 처음 만난 친구의 이름을 묻듯 클래식도 듣고 나면 이름에 관심을 가져야 해요. 사실 클래식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비발디의 「봄」은 지하철 종착역에서 들을 수 있고,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은 장학퀴즈 오프닝으로 쓰였죠. 그런데 듣고도 이름을 묻지 않으니 기억에 남지 않는 거예요. 곡명과 작곡가의 이름을 아는 것에서 클래식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법이거든요. 달달 외우라는 게 아닙니다. 음악을 듣고 난 뒤 ‘곡명이 뭐지?’라는 생각을 갖는 게 첫걸음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무엇인가요?   듣기는 가장 쉬운 동시에 가장 어렵습니다. 누구나 들을 수 있지만, 잘 듣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경청’을 연습해야 합니다. 본디 형태가 없는 음악은 쉽게 잊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록 매체가 없던 과거에는 음악을 기억하기 위해 대(代)를 이어 그 곡을 연주했어요. 200~300년 이상 연주되고 있는 클래식은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받으며 살아남은, 검증된 음악을 뜻하죠. 게다가 클래식에는 작곡가와 연주가의 장인정신, 작품을 기록하려는 학구열이 들어있죠. 그런 노력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고요. 그래서 들을 가치가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가치를 아는 건 하루아침에 되지 않아요. 오랜 시간 몸과 마음에 자연스럽게 익혀야 해요. 제대로 듣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 그래서예요. 화가 조세프 카를 스타일러가 1820년 영웅적으로 그려낸 베토벤. [중앙포토]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클래식을 알아가는 법을 아이의 연령에 따라 3단계로 설명해 드릴게요. 3단계 모두 중요합니다. 다만 듣기는 발달 단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연령별 과업이 달라요. 1단계부터 시작해보죠.     ━  클래식 듣기 1단계 “아침 시간, 음악으로 몸을 깨워주세요”       나 칼럼니스트는 클래식을 알아가는 단계를 친구 사귀기에 비유했다. 서로를 알아가기 위해 자주 보고 만나듯 음악도 자주 듣고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릴수록 클래식을 들을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면 좋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 듣기를 권장하는 이유는 왜인가요?    음악과 친숙해지는 과정은 언어 발달 과정과 비슷합니다. 때가 되면 말을 하듯 클래식도 자주 들으면 자연스럽게 몸에 새겨집니다. 특히 청각은 연령이 어릴수록 민감한데요. 청각에 가장 민감한 시기가 0~7세예요. 그래서 클래식과 친해지게 하고 싶다면, 이 시기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나 칼럼니스트는 "듣기는 언어 발달과 비슷하다"며 "0~7세 청각이 예민한 시기에는 클래식을 자주 많이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언제, 어떻게 들려주면 될까요?   아침 기상 시간, 식사 시간 때 클래식을 틀어놓고 함께 듣는 겁니다. 처음에는 짧게 3분짜리 클래식을 추천합니다. 그 시간만큼은 가만히 음악에 귀 기울이는 거예요. 중요한 건 양육자가 먼저 듣는 모습을 보이는 겁니다. “이제부터 음악 감상 시간이야, 딴짓 말고 집중해서 들어”하고는 방으로 가시지 말고, 양육자부터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아이들은 모방 심리가 강해서 양육자를 따라 클래식에 서서히 관심을 보일 겁니다. 그런데 이때 주의할 게 있어요. 감상이 끝난 뒤 아이에게 느낌을 물어보지 마세요.    대화를 나누지 말라는 걸까요?   반응을 강제로 유도하지 말라는 거예요. 흔히 클래식을 듣고 나면 “어땠어?”라고 묻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얼마나 배웠는지 확인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형태가 없는 음악을 언어로 표현한다는 건 어른도 어렵습니다. 언어 표현이 미숙한 0~7세는 더욱 더요. 들리는 건 많은데 언어가 준비되지 않아 말로 꺼내놓지 못하는 거죠. 그래서 부모가 자꾸 묻고 조바심을 내면 아이는 대답하기 어려워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다 듣고, 다 느낍니다. 슈베르트 을 듣고 나면 기쁨 감정을, 모차르트 「밤의 여왕의 아리아」을 듣고 나선 분노의 감정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아이가 감상 후 느낌을 마음에 담고 있다는 걸 믿어야 해요.   그럼, 음악을 듣고 난 뒤에는 어떻게 해주어야 하나요? 반응을 보일 때까지 기다리세요. 아이가 호기심을 보일 때 대화를 시작하세요.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됩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저희 집도 기상 시간에 클래식을 틀어 놓는데요. 어느 날 아이가 곡명을 물어봐요. 생상스 「화석」이란 곡이었는데요. 제가 “이 곡은 제목이 화석이래. 우리 박물관 갔다가 화석 봤었지?”라고 답합니다. 그럼 아이가 “박물관에 공룡도 있었어”라며 떠오르는 대로 말을 이어가요. 클래식을 통해 기억을 공유하는 겁니다. 아이는 앞으로「화석」을 들을 때면 아빠와 함께 나눈 이야기, 음악이 흐르던 공간, 순간의 감정 등이 떠오르겠죠. 이 곡이 아빠와 함께한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고요.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 음반.   하지만 양육자도 바빠요. 클래식을 찾아서 들려주는 게 쉽지 않습니다.   제가 『어른들이 먼저 읽는 어린이 클래식』을 집필한 이유인데요. 클래식을 낯설어하는 양육자를 돕기 위해 아이와 함께 들으면 좋을 클래식 141곡을 QR코드로 담아놨습니다. 상당수가 3~5분짜리 곡이에요. 하루에 한 곡씩, 한 학기 정도면 모두 들어볼 수 있습니다. 이마저도 힘들다면 매일 아침, 연속 재생으로 틀어놓으세요. 집중해서 들으면 좋지만, 자연스럽게 접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 됩니다. 이 시기는 클래식에 익숙해지는 단계라는 걸 기억하세요.      ━  클래식 듣기 2단계 “소리를 구분해서 들어보세요”     익숙해졌다고 다 아는 건 아니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상대의 개성을 알아야 한다. 음악도 그렇다. 나 칼럼니스트는 “어떤 음악이든 소리를 구분할 줄 알면 입체적으로 들을 수 있다”면서 “악기 소리부터 구분해보자”고 말했다.     구분해서 듣기란 무엇을 말하나요? 각 악기의 고유한 소리를 알아차리는 겁니다. 다음 곡들을 들어보면 이해 가실 거예요. 먼저 들어보시죠. 어떠신가요? ①파가니니 , ②비외탕「솔로 비올라를 위한 카프리치오」, ③바흐: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전주곡, ④생상스 「코끼리」.    점점 음역이 낮아지네요.   1번 곡부터 바이올린→비올라→첼로→더블베이스(합주곡) 순입니다. 모두 현악기인데요. 같은 방식으로 소리를 내지만, 악기마다 음역에 차이가 난다는 걸 알 수 있죠. 악기는 저마다의 소리가 있습니다. 감상할 때 그 소리의 차이를 찾을 수 있다면 여러 악기 소리가 어우러지는 오케스트라를 듣는 묘미가 생기는데요, 약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먼저 각 악기의 고유한 소리를 듣게 해주세요. 이후 오케스트라를 들으며 그 소리를 찾아보는 거예요. 악기 소리를 구분할 줄 알면 박자, 강약 등에도 예민해지고, 연주자의 스타일까지 구분할 수 있게 되죠.     소리를 구분해서 듣는 게 왜 중요할까요?   그래야 기억에 남거든요. 형태가 없는 음악을 형태가 있는 악기로 인지하기 때문인데요. 특히 ‘구체적 조작기’라 불리는 7~11세 아이들에게 효과가 큽니다. 사물을 구분하고, 분류하는 능력이 폭발적으로 발달하거든요. ‘빨갛다’는 개념을 빨간 공이나 빨간 사과를 보여주며 설명하는 식이죠. 클래식도 악기라는 사물과 매칭하면 더 잘 기억되는 이유입니다. 또 악기 소리를 구분해서 들으면 집중력도 길러져요. 집중해서 꼼꼼히 듣는 습관은 수업 태도에도 도움이 되고요.  2003년 체코의 스메타나 현악 4중주단의 내한공연 모습. [중앙포토]   클래식을 자세히 안다고 해도 여전히 음악을 기억하는데 한계가 있어요. 클래식의 이름을 나만의 언어로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저는 클래식 노트를 만들어 ‘작곡가·연주자·곡명’ 이 세 가지 기록하고 청후감 쓰기를 추천하는데요. 이름을 기록한다는 건 악상을 떠올려 악보로 남긴 일, 악보를 귀에 들리는 소리로 만들어낸 일의 가치를 되새기는 겁니다. 여기에 그 곡에 대한 내 느낌과 생각을 연결지으면 나만의 곡으로 재탄생합니다. 청후감을 쓸 땐 정보가 아닌 느낌을 기록하세요. 한 줄이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악보를 읽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도 클래식을 구체적으로 아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악보와 악기를 가르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감상이 먼저라는 겁니다. 곡의 가치와 의미를 알고 연주하는 것과 모르고 연주하는 건 감흥에 차이를 만듭니다. 감상은 아이의 자발성도 자극해요. 마음에 울림이 생기면 이 곡의 작곡 배경은 무엇인지, 나도 똑같은 소리를 낼 수 있을지 등 궁금한 게 많아지죠. 그래서 아이의 감흥을 불러일으킬 곡을 찾는 게 우선이라는 겁니다.     ━  클래식 듣기 3단계 “듣기를 읽기로 연결하세요”   마지막 단계는 깊이 있게 알기다. 나 칼럼니스트는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곡을 만났을 때야말로 음악에 대한 지식을 확장할 때”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지식이란 클래식에 담긴 역사와 예술적 가치, 즉 교양을 말한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이나 작가의 생애 등을 책을 통해 알아간다는 얘기다. 그는 “듣기가 읽기로 연결됐을 때, 비로소 클래식의 가치를 알게 된다”고 했다.    듣기를 읽기로 연결시키라는 게 무슨 말인가요?   클래식을 매개로 배경 지식을 쌓는다는 얘기입니다. 11세 이후 ‘형식적 조작기’에 접어든 아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개념적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인데요. 음악을 정보와 연결하는 겁니다. 독서를 통해서요. 이때 양육자는 아이의 지적 호기심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나 칼럼니스트는 "양육자가 클래식 감상의 길잡이가 되어주라"고 강조했다. 양육자가 먼저 클래식을 듣고, 배경 지식을 읽고 아이에게 알려주라는 얘기다. 장진영 기자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요?   아이가 베토벤과 카라얀의 「유럽 찬가」를 듣고 베토벤의 생애에 관심을 보였다고 가정해볼게요. 이 곡을 들은 아이가 이렇게 물을 수 있어요. ‘도대체 유럽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곡이 나온 건가요?’ 라고요. 어떻게 도와주시겠어요?   당황스러운데요. 사실 잘 모르거든요.  어렵지 않습니다. 두 가지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우선 아이에게 베토벤 위인전 한 권을 건네주세요. 아이가 자발적으로 지식을 찾도록 안내하면 됩니다. 두껍고 어려운 책 말고, 초등 5~6학년용으로 나온 위인전이면 충분해요. 위인전을 읽다 보면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궁금해지면서 서양사나 음악사로 관심이 넓어집니다. 그때 또 다른 책을 찾게 되고요.    서양사가 꽤 방대해요. 책을 읽을 때도 도움을 줘야 할까요?    두 번째 방법이 클래식을 마중물로 이용해서 양육자가 알려주는 겁니다. 초등학생이 서양사를 배우기에는 장벽이 많습니다. 일단 이름과 명칭이 어려워요. 서양사 교양서로 유명한『먼나라 이웃나라』도 글밥이 많아서 중학생은 되어야 이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서양사를 공부하기 전에 클래식을 통해 배경 지식을 알려주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베토벤의 일대기를 읽다 보면 그의 고향인 독일, 주활동지였던 오스트리아,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프랑스까지 뻗어갑니다. 처음부터 독일사, 프랑스사 책을 읽는 건 무리입니다. 그런데 베토벤이 피난을 떠난 후원자인 루돌프 대공과의 이별을 가슴 아파하며 쓴「고별 소나타」, 전쟁 중에도 도망가지 않고 완성한「황제」협주곡 등과 연결지으면 쉽게 접근할 수 있어요. 듣기를 읽기로 연결해 지식을 확장하라는 게 이런 겁니다.    양육자가 미리 공부할 게 많을 거 같아요.   길잡이가 먼저 알아야 합니다. 양육자가 먼저 들어보고, 읽어보길 당부하는 이유인데요. 음악적 전문 지식을 공부하라는 게 아닙니다. 곡이 쓰인 시대와 작곡의 배경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를테면 “「엘리제를 위하여」는 베토벤이 엘리제에게 쓴 선물이었는데, 정작 엘리제가 누구인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등의 짤막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면 됩니다. 클래식은 공부 없이는 가까워질 수 없습니다. 시간이 없다면 아이와 함께 공부해도 좋습니다.     양육자의 노력과 바람에도 아이가 클래식 듣기를 거부하면 어쩌죠? 끄시면 됩니다. 아이가 BTS 곡을 듣고 싶어하면 그 음악 틀어주세요. 억지로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대신 양육자는 계속 들으셔야 합니다. 거실에서 클래식이 흐르면 아이 방에서는 작게 들리겠죠. 그 작은 소리에 아이의 귀가 열립니다. 그러면서 클래식이 품고 있는 다양한 감정에 익숙해지고요. 이것이 클래식을 즐길 줄 아는 ‘감상자’를 향한 첫걸음입니다.     나 칼럼니스트는 “아이들에게는 클래식을 음미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처음 3분 듣기에서 5분, 7분, 한 악장, 한 곡 듣기로 늘려가면, 감정과 시간을 다루는 힘도 길러지기 때문이다. 그는 “클래식을 들을 줄 알면 불안과 고통, 두려움 등 부정적 감정을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양육자가 동행할 때 아이의 힘은 더 커진다”고 했다.   클래식을 들을 때 아이의 반응을 살피고, 감정을 나누고, 경험을 공유하세요. 이야깃거리를 만드세요. 클래식은 그렇게 함께 듣는 사람과 경험을 공유하며, 함께 알아가는 겁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아침 시간, 음악으로 깨워주세요” 클래식에 자주 노출시켜주세요. 양육자가 먼저 듣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3분짜리 짧은 곡부터 함께 들으면 좋습니다. 청각이 예민한 0~7세 시기에는 더욱 더요.  ·“소리를 구분해서 들어보세요” 악기 소리를 구분할 줄 알면 오케스트라를 듣는 재미가 생깁니다. 합주곡에서 악기 소리를 찾아보고, 곡명·작곡가·연주자 이름을 기록하고, 청후감도 써보세요. ·“듣기와 읽기를 연결하세요”. 클래식을 매개로 지식을 넓히는 단계입니다. 클래식 본고장인 유럽, 음악가를 주제로 책을 찾아 읽도록 유도해주세요. 서양사를 알아가는 마중물이 됩니다.   」 관련기사 수업 중 벌떡, 공격적 행동까지…이런 아이 바꿨다, 놀이치료법 애들 학원 왜 보내? 그 돈 아껴 해외여행…10년 놀아본 이 가족 "미룬다고요? 게으른 게 아니라 완벽하려는 것" 완벽주의와 함께 사는 법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2022.08.02 06:00

  • 수업 중 벌떡, 공격적 행동까지…이런 아이 바꿨다, 놀이치료법

    수업 중 벌떡, 공격적 행동까지…이런 아이 바꿨다, 놀이치료법 유료 전용

    김수경 놀이치료상담사가 1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중앙M&B 사옥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유아기에 많이 놀아본 아이들이 학교생활과 공부도 잘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놀이치료를 받으러 오는 아이의 약 60%가 초등학생이에요. 학습을 많이 해서 인지(認知) 능력은 뛰어난데, 사회성이나 자기조절력은 떨어지고 충동성이 높은 경우가 많죠.    “유아기에 잘 노는 게 왜 중요하냐”는 질문에 김수경 놀이상담심리사가 말했다. 아이들은 놀면서 인지, 언어, 신체 등 여러 영역을 발달시킨다. 나아가 친구에게 공감하고, 승패를 인정하고, 힘들어도 참는 법을 연습한다. 4~7세 유아기에 충분히 놀아야 하는 이유다. 이 시기에 질적으로 잘 놀지 못하거나 놀이보다 공부에 더 매달리느라 고른 발달이 이루어지지 못한 경우 초등학교 때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본격적인 단체생활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김수경 놀이상담심리사는 해바라기 아동센터, 병원, 아동·청소년 상담센터에서 2만 시간 이상 놀이치료를 진행한 베테랑이다. 양육자들이 아이와 올바르게 상호작용하며 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hello! parents에 칼럼 〈놀잇감 사용설명서〉를 연재하고, 『4~7세 아이는 놀이로 자란다』를 펴냈다. 8회를 끝으로 〈놀잇감 사용설명서〉 연재를 마친 그는 인터뷰에서 양육자가 흔히 하는 세 가지 오해를 바로잡았다. ‘①놀이와 학습은 별개다 ②아이에게 맞춰 놀아야 한다 ③놀이는 단순한 활동일 뿐이다’가 그것이다.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고, 온종일 아이와 함께해야 잘 놀아주는 양육자일까? 그는 “양이 아니라 질이 좋은 놀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경 놀이치료상담사는 “놀이는 궁극적으로 뇌 발달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  오해① 놀이와 학습은 별개?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      많은 양육자가 놀이와 학습의 경계를 나눈다. 평소 놀이를 중요하게 생각하던 양육자도 아이가 6~7세쯤 되면 조급해진다. 또래 친구들은 한글과 파닉스를 떼고 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데,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건 아닐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김수경 놀이상담심리사는 유아기에는 경험하는 모든 것이 공부라며 “4~7세 시기에 많이 논 아이들이 학교생활과 공부를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놀면서 배운다는 말이 막연하게 들려요. 놀이가 어떻게 공부가 되나요?   놀이와 학습은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에요. 4~7세 아이들은 몸과 감각으로 직접 경험한 것을 머릿속으로 생각하기 때문이죠. 실제로 놀이는 아이의 다양한 영역을 발달시킵니다. 자연물을 가지고 놀면 관찰력과 상상력이 생기고, 블록을 쌓으면서 공간 지각 능력과 창의력을 키울 수 있죠. 공놀이하고 뛰어놀면 신체 조절력이 길러지고요. 보드게임은 규칙을 지키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면서 문제 해결력을 키울 수 있어요. 역할놀이는 사회성, 인지 능력, 언어 능력을 발달시키고요. 궁극적으로 놀이는 뇌 발달에도 유의미한 효과가 있습니다. 놀면서 손을 자꾸 움직이면 소근육에 자극이 가는데, 이게 뇌 신경까지 전달되거든요.    그렇다고 학습을 안 시킬 순 없잖아요. 또래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고, 학습지 하는 모습을 보면 불안하거든요.   유아기는 단순히 지식을 많이 쌓는 게 아니라 아이의 공부 그릇을 키워줄 시기예요. 그래야 학령기 때도 공부를 잘할 수 있죠. 놀이로 배움을 즐겁게 경험하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배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공부하다 보면 힘들고, 하기 싫을 때가 있잖아요. 그래도 참는 공부를 지속하는 힘은 자기 조절력에서 나와요. 살면서 생기는 여러 갈등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려면 자기 감정과 행동을 조절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필요하고요. 이 모든 게 공부 그릇이죠. 많이 놀았다는 건 이런 능력을 갖추기 위해 많이 연습했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어린 시절에 잘 놀아주지 않고, 갑자기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라고 하면 말 안 듣죠. 연습한 적이 없으니까요.    그럼 취학 전까지는 놀기만 해야 하나요?   그것도 오해예요. 시대적 흐름이 있는데, 학습을 전혀 안 시킬 수는 없죠. 6~7세부터는 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고, 연필로 끄적일 수 있어야 하거든요. 문제는 학습이 아니에요. 주객이 전도된다는 게 문제죠. 유아기에는 반드시 놀이가 우선시 되어야 해요. 또 놀아줄 때는 학습을 신경 쓰지 말고 아이와 충분히 상호작용하면서 질적으로 좋은 놀이를 해야 하죠. 놀아준다고 해놓고 장난감 색깔을 영어로 맞춰보게 하거나, 수를 세라고 하는 건 놀이가 아니에요.    놀이치료실을 찾는 아이들은 초등학생이 가장 많다고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취학 전까지는 양육자가 아이의 문제를 발견하기 어려워요. 유아기 아이들은 원래 미숙하니까요. 어린이집 선생님도 대부분 “잘 지내요. 크면서 점점 나아질 거예요”라고 말씀하시거든요. 그런데 학교에 가면 달라져요. 이때부터는 선생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생활하고, 친구와 관계를 맺어야 하죠. 게다가 초등학생이 되면 40분간 한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듣잖아요. 발달상 문제가 있는 경우 다른 아이들과의 차이가 확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5월이면 심리상담센터, 소아·청소년 정신과 등에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검사를 하러 굉장히 많이 와요. 그쯤 1학기 학부모 상담이 있기 때문이죠.    주로 어떤 문제로 전문 기관을 찾나요?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가 가장 흔해요. 평소 산만하다는 말을 들어온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문제가 크게 드러나 보이는 거죠. 착석이 안 되고, 수업 시간에 갑자기 엉뚱한 말을 하거든요. 쉬는 시간이 아닌데 화장실을 여러 번 다녀오기도 하고요. ADHD가 아니라면 타인과 관계 맺기를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친구와 놀면서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하거나, 공격적인 행동을 해서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보통 3월 한 달은 담임 선생님도 적응 기간이라고 생각해서 넘어가는데요. 3개월가량 지켜봐도 나아지지 않으면 학부모에게 전문 기관을 찾아갈 것을 권유하죠.    학교에 입학해서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늦은 건가요?   아니에요. 이제라도 잘 놀아주면 충분히 나아질 수 있어요. 이 시기의 아이들은 보드게임을 많이 하면 좋은데요. 규칙을 지켜 공정하게 게임을 하고, 지더라도 인정하는 경험 등을 통해 타인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이어가는 힘을 기를 수 있어요. 아이가 저학년이라면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는 장을 만들어주는 방법도 추천해요. 친구들 사이에 있을 때 어떤 모습인지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아이가 고학년쯤 되면 양육자가 개입할 여지가 줄어듭니다. 친구와 놀더라도 문을 닫아버리니까요. 그래서 어릴 때의 놀이가 중요한 거예요.    김수경 놀이치료상담사는 “아이에게 맞춰 놀아주라는 건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라는 게 아니라, 놀이하는 순간 만큼은 아이와 제대로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다. 김경록 기자  ━  오해② 아이에게 다 맞춰라? “아이도 양육자에게 맞출 수 있어야 한다”     김수경 놀이상담심리사를 찾는 양육자들이 공통으로 토로하는 고민이 하나 있다. 아이와 놀아주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는 세 돌 무렵부터 양육자와 심리적 분리를 시도하고 자아를 키운다. 이때부터 ‘놀이’에 대한 양육자의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김수경 놀이상담심리사는 “놀이는 반짝 끝나는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라며 양육자에게 힘든 놀이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죄책감을 내려놓고, 힘을 빼도 된다는 뜻이다.    놀이가 중요하다는 건 아는데, 어려워요. 재미도 없고요.   재미없는 게 당연해요. 양육자가 아무리 정신 연령을 낮춰도, 아이 수준까지 낮아질 수는 없으니까요. 양육자의 성향, 직업에 따라서도 어려운 정도에 차이가 있죠. 예를 들어 목표지향적인 성향이거나 가르치는 직업을 가진 양육자는 블록 쌓기, 색칠하기, 만들기 등 일정한 규칙이 있는 놀이를 선호해요. 공감 능력이나 유연성이 필요한 역할놀이는 힘들어하고요. 그럼 놀이 치료사인 저는 어떨까요? 집에서 아이와 얼마나 잘 놀아줄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너무 궁금해요. 선생님은 어떠세요?   치료실에서 만난 아이들과 놀이를 하면 흠뻑 빠져들거든요. 완전히 몰입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요. 그런데 집에서는 잘 안 돼요(웃음). 물론 보통의 양육자보다는 훨씬 잘 놀아주는 편이지만, 치료실에서처럼 몰입하기는 힘들죠. 환경이 방해하기 때문이에요. 가스레인지에는 저녁 반찬이 끓고 있고, 밀린 집안일이 자꾸 눈에 보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하죠? 매번 밖으로 나갈 수는 없잖아요.   타이머를 활용해 보세요. 20분이든, 30분이든 아이와 집중해서 놀 시간을 정하고 타이머를 맞추는 거예요. 단 그 시간만큼은 다른 생각하지 않고 놀이에만 몰입해야 하죠. 아이에게도 “이 타이머가 울릴 때까지 함께 놀 거야”라고 말하고요. 이때 주변 환경을 미리 정리하고 놀이를 시작하면 집중도가 더 높아져요. 집을 깨끗하게 정돈하라는 게 아니에요. 바닥에 흩어진 장난감과 옷가지 등을 한쪽에 밀어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달라지죠.    마음과 체력도 문제예요. 집이 아무리 깨끗해도 신경 쓸 일이 많거나 피곤하면 아이와 놀아주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럴 땐 놀이를 회피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아이에게 솔직하게 말하세요.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놀아줄 수 없을 것 같다고요. 그래야 아이도 ‘사회적 눈치’를 배울 수 있어요. 우리가 직장에 출근했는데 상사의 기분이 안 좋으면 알아서 긴장하고 행동을 조심하잖아요. 이런 게 사회적 눈치인데요. 아이도 거절을 당해봐야 ‘아무리 놀고 싶어도 다른 사람이 힘들 때는 조금 참고 배려해야겠구나’라는 걸 깨달아요. 아이는 왕이 아니라 가족의 구성원이잖아요. 전문가들이 “아이에게 맞춰주세요, 아동 중심으로 놀아주세요”라는 말을 주로 하기 때문에 오해하시는데요. 이건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주라는 말이 아니라, 놀이하는 순간만큼은 아이에게 집중해서 제대로 상호작용해야 한다는 의미예요. 아이도 양육자에게 맞출 수 있어야 해요. 엄마가 힘들면 혼자서 놀 줄도 알아야죠. 단, 평소 잘 놀아준다는 전제 하에요.    그래도 놀아달라고 매달리면요? 더 힘들어질 것 같은데요.   불안해서 매달리는 거예요. 아이들은 말 속에 숨은 의도를 잘 모르거든요. 또 유아기는 자기중심적인 시기이기 때문에 일의 원인을 늘 자기 탓으로 돌려요. ‘나 때문에 화가 났구나. 영영 안 놀아줄 것 같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최대한 명확하고 쿨하게 말하는 게 좋아요. “엄마가 지금은 피곤해서 좀 쉴게. 대신 긴 시곗바늘이 8에 가면 같이 놀자”라고요. 상황을 예측할 수 있게 해주면 아이도 기다릴 수 있어요.    맞벌이 양육자는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데요. 조금이라도 매일 놀아주는 것과, 주말에 집중해서 놀아주는 것 중 무엇이 더 나은가요?   아이들은 양육자와 놀고 싶은 욕구를 일주일간 참을 수 없어요. 힘들더라도 하루 20분 정도는 아이와 눈 마주치고 상호작용하는 놀이 시간을 꼭 가지는 게 좋죠. 그런데 퇴근 시간이 늦으면 20분 놀기도 사실 어렵잖아요. 양육자가 너무 바쁘다면 상황을 고려해서 놀이 시간을 정해보세요. 일주일에 2~3일, 20~30분씩만이라도요. 이때도 아이가 예측할 수 있어야 해요. 약속한 날은 반드시 함께 놀아야 하죠. 어떤 날은 잘 놀아주고, 어떤 날은 피곤해서 못 논다고 하면 아이가 혼란스럽거든요.    관련기사 애들 학원 왜 보내? 그 돈 아껴 해외여행…10년 놀아본 이 가족 "하늘 왜 파란 거야?" 묻는 아이…스탠퍼드대 교수 의외의 대답 “절대 개입하지 말라, 그래야 멘탈갑 된다” 김수경 놀이치료상담사는 “언어가 서툰 아이들에게 놀이는 마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  오해③놀이는 놀이일 뿐? “놀이는 아이의 의사소통 수단이다”     김수경 놀이상담심리사는 “아이들에게 놀이는 언어와 다름없다”고 말한다. 어른들이 생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면, 아이들은 놀이로 이야기한다는 의미다. 놀이를 매개로 심리치료가 가능한 건 그래서다. 아이들은 일상의 사소한 경험뿐 아니라 마음속 깊이 자리한 불안,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까지 놀이로 표현한다. 특히 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아이와 잘 노는 게 더욱 중요해졌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이들 마음에 불안감이 생겼고, 타인과의 상호작용 기회 또한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놀이로 어떻게 마음을 알 수 있나요?   아이들은 언어로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요. 그래서 경험하고 본 것, 느꼈던 것들을 놀이로 표현하죠. 그러면서 불안과 스트레스를 스스로 조절하기도 해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병원 놀이 모습이 바뀌었다는 게 하나의 방증이에요. 요즘은 아이들이 청진기, 주사기만 가지고 노는 게 아니라 고글과 마스크를 끼고 PCR 검사하는 시늉을 하거든요.    그냥 따라 하는 거 아닐까요? 놀이로 불안과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죠?   억압되어 있던 감정을 놀이로 표출하면서 자연스럽게 해소되는 부분이 있거든요. 어른들도 힘들었던 경험을 말하고 나면 후련해지잖아요. 미국에서 911테러가 일어났을 때도 아이들의 자유 놀이 시간을 살펴봤더니 앰뷸런스가 오고,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을 구하는 내용의 놀이를 주로 전개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주변 어른들의 반응, 분위기 등을 보면서 마음속에 막연히 피어오른 두려움이 놀이로 나타난 거죠.    코로나19로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에게서 관찰되는 놀이의 양상도 있나요?   기질적으로 불안도와 긴장도가 높은 아이들의 경우, 코로나19를 더 예민하게 받아들여요. 그래서 계속 누군가를 구출하는 놀이를 하곤 하죠. 실제로 놀이치료실을 찾은 6세 아이가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는 놀이를 단순 반복하고, 자기가 블록으로 세팅해 놓은 구조물을 아무도 만지지 못하게 하는 등 강박적으로 행동했는데요. 일상에서도 외출할 때는 꼭 비닐장갑을 끼고, 밖으로 가져갈 수 있는 물건과 집에 두는 물건을 철저히 분리하는 등 불안해하는 모습이 보였어요. 물론 ‘구출’은 아이들이 역할놀이에서 즐겨 하는 설정이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어요.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아이가 갑자기 특정한 놀이를 반복한다면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죠.    그런 모습이 보일 때, 양육자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아이가 그 놀이를 실컷 할 수 있도록 따라가 주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자기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고 나면 괜찮아질 수 있거든요.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면, 양육자가 놀이를 확장해주는 게 좋죠. 놀이 안에서 제3의 인물을 등장시켜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돕는 거예요. 아이보다 나이가 좀 더 많은 어린이나, 선생님 등의 역할을 만들어서 말하는 거죠. “와 누군가 위험에 처했구나.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등의 질문을 던지는 식으로요.    양육자가 해결할 수 없는,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심리적 문제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요?   100% 단정 지을 수 있는 기준이 아니라서 조심스러운데요. 아이가 특정한 놀이를 단순 반복하고, 양육자가 놀이를 아무리 확장해주려고 해도 매번 지리멸렬하게 진행된다면 도움이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 있어요. 폭력, 사고 등 부정적인 경험이 인상적으로 마음에 남았을 때 그에 관련된 놀이만 계속할 수 있거든요. 발달 지연인 아이들도 놀이를 확장하지 못하고 같은 놀이를 반복해요. 이 경우에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죠.    구체적인 사례가 있을까요?   양육자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이의 경우, 역할놀이를 할 때마다 엄마가 없는 설정을 만들었어요. “엄마는 어디 가셨어?”라고 물으면 “회사 가서 없어요”라고 말하거나, 갑자기 교통사고가 나서 죽었다는 식이었죠. 평소 부모에게 쌓였던 감정, 무의식 속의 갈등을 놀이로 표현한 거예요. 같은 패턴의 놀이가 단순 반복되고, 양육자의 노력에도 놀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전문 기관을 찾아보시길 조심스레 권합니다. 원인을 명확히 파악하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김수경 놀이상담심리사는 “놀이는 아이의 마음을 보여주고, 발달을 촉진할 뿐 아니라 문제행동까지 교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이와 노는 건 단순히 권장할만한 활동이 아니라, 아이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이라는 의미다.    놀이는 아이에게 난 창문이에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이의 마음이 보일 겁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놀이와 학습은 양자택일의 개념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다양한 영역을 발달시키고 세상 사는 법을 배우니까요. 이때 잘 놀지 못하면 단체생활이 시작되는 초등학교 때 문제가 불거질 수 있는 이유죠.   ·“아이에게 맞춰서 놀아주세요”라는 말은 아이가 원할 때마다, 원하는대로 놀이를 다 해줘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이는 왕이 아니라 가족구성원이에요. 양육자가 바쁠 땐 혼자 놀게도 해야 ‘사회적 눈치’가 자랍니다.   ·놀이는 언어가 서툰 아이들의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아이들은 경험하고 느낀 것을 놀이로 표현하고, 그 과정에서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합니다. 만약 아이가 하나의 놀이를 단순 반복하거나, 확장하지 못하면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  성소영 객원기자 ssoy419@gmail.com, jung.sunean@joongang.co.kr  

    2022.07.26 06:00

  • 애들 학원 왜 보내? 그 돈 아껴 해외여행…10년 놀아본 이 가족

    애들 학원 왜 보내? 그 돈 아껴 해외여행…10년 놀아본 이 가족 유료 전용

    이지영 작가는 10년 동안 가족과 해외 여행을 다닌 경험을 모아 책을 쓴 '별난 양육자'다. 그는 "여행을 통해 우리 가족은 진짜 원팀이 됐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큰 애가 중3 때 홍콩 여행을 가려고 했어요. 고등학교 가면 당분간 여행 다니기 힘드니까요. 그런데 출국 전 남편이 갑자기 열이 나면서 많이 아픈 거예요. 항공권이랑 숙박 모두 환불이 안 되는 상황이었죠. 어떻게 하시겠어요?    학원비 모아 가족끼리 해외 여행 가기 10년, 그 경험을 모아 책까지 쓴 ‘엄마’가 있다.『학원 대신 시애틀, 과외 대신 프라하』의 저자 이지영(48) 작가다. “사교육비를 모아서 왜 하필 여행을 떠났나”라는 질문에 이 작가는 역으로 이렇게 물었다. 한동안 여행을 가기 힘든 데다 환불도 안 된다니 고민이 깊어졌다. 이 작가의 가족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저희는 결국 홍콩 여행을 포기했어요. 그런데 이게 우리 가족이 그 동안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진짜 ‘원팀(One Team)’이 됐거든요.    두 아이, 남편과 10년 간 해외 곳곳을 여행한 이 작가는 “가족 여행의 진짜 의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의 편이 되어줄 커뮤니티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기획한 여행은 넉넉한 예산으로 별 걱정 없이 하는, 그런 여행이 아니었다. 학원비를 한 푼 두 푼 모아 1년, 2년에 한 번씩 가는 여행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여행을 멈추지 않았다. 왜였을까? 지난 14일 이 작가를 만나 왜 그렇게 가족 여행을 다녔는지, 4명의 가족이 큰 갈등 없이 타국 여행을 하는 노하우는 무엇인지 물었다.    사교육비를 모아 가족과 해외 여행을 떠난 이지영 작가는 “남들은 모르는, 우리 가족 넷만이 공유하며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끈끈한 유대감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  가족끼리 해외여행, 심리적 안정감 쌓다   여행을 다니면 원팀이 된다고요?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요. 모든 게 낯설고요. 그럴 때 가족이 있다는 건 정말 든든하거든요.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죠. 그게 저는 심리적 안정감이라고 생각해요. 가족 해외 여행을 통해 우리 가족은 그걸 얻었습니다. 가족끼리 정말 강력한 지지자가 돼 주는 거요. 그런 의미에서 홍콩 여행을 포기하는 건 별 문제가 아니었어요.    아이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나요? 홍콩 여행을 포기하자고 했을 때 아이들이 당연하다는 듯 따라줬어요. 그만큼 가족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유대감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런 심리적 안정감이 있었기에 아이들이 밖에 나가서 뭘 하든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일단 도전해보는 거죠. 실패해도 상관 없어요. 아무리 깨지고 다쳐도 돌아갈 곳이 있잖아요. 보듬어줄 가족이 있고요.    아이들이 그렇다는 걸 어떻게 느끼시나요? 첫째는 대학교 2학년이고, 둘째는 고등학교 3학년이에요. 아직 어리다면 어린 나인데, 하고 싶은 게 선명해요. 큰 아이는 음악 교사를, 작은 아이는 간호사를 꿈꾸고 있죠. 어려서부터 이런저런 걸 시도해보고 도전해보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뭘 좋아하는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덕분에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그걸 위해 뭘 해야 하는지를 빨리 알고 알아서 그걸 하고 있고요.    큰 아이 초1, 작은 아이 6세(만 5세) 때 미국 워싱턴주 올림피아 공원에서. 이지영 작가 제공 아이들 말고 작가님 부부는 어떻게 달라졌나요?  서로에 대한 신뢰가 더 공고해졌어요. 한 번은 미국 여행을 갔는데, 제가 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어요. 렌터카를 찾으러 갔는데, 제가 직원의 설득에 넘어가 예약했던 차종을 바꾸어 버린 거죠. 할인 중이라고 해서 그런 건데, 나중에 메일로 날아온 청구서를 보니까  400만원 정도가 청구됐더라고요. 빠듯한 예산에 적은 금액이 아니었죠. 그런데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제가 착각한 덕에 좋은 차 타봤다고요. 질책했을 법한 상황인데, 두고두고 고마웠어요.    아무리 여행이 좋았다고 해도 학원 대신 여행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보통은 여행을 포기하고 학원을 선택하잖아요.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저는 여행을 선택할 거예요. 학원을 보냈다면 아이 성적이 좀 올랐을 수 있죠. 하지만 그렇게 성적이 좀 올라가면 뭐가 좋을까요? 저희는 여행을 선택한 덕에 우리 가족만의 역사와 추억을 쌓았어요. 그 시절 아니면 절대 만들 수 없는 거죠.    가족의 추억과 역사, 소중하죠. 하지만 여전히 교육이 아니라 여행을 선택한 게 낯설게 느껴집니다. 사실 저는 아이가 자라는 데 학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는 왜 아이를 학원에 보낼까요? 학업 성취도가 높아지길 바라서죠. 그럼 왜 그걸 바랄까요? 좋은 대학 가길 바라서죠. 그런데 좋은 대학에 꼭 가야 할까요? 저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뭔가요?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중요한 건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함께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면 무슨 소용 있겠어요? 일이라는 건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사람은 결국 도태되고 말 겁니다. 아이가 시험에서 한 문제 더 맞는 것보다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사람들과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양육자로서 아이들이 그 능력을 갖출 수 있길 바랐죠.    큰 아이 초2, 작은 아이 7세(만 6세) 때 태국 방콕 왕국에서. 이지영 작가 제공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아이를 낳고 보니 ‘좋은 양육자’가 되는 건 너무 어렵더라고요. 특히 둘째를 낳기 전까지 일했거든요. 간호사였어요. 3교대로 일하면서 좋은 엄마가 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죠. 그래서 그때 결심했어요. 좋은 엄마가 되는 건 내려놓기로요. 대신 좋은 어른이 되기로 했어요.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일까요? 저는 아이가 같이 있고 싶은 사람, 그리고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이 좋은 어른이라고 생각했어요. 닮고 싶다고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고요. 저는 그렇게 되어 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마음먹으니 뭘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그럼 전혀 사교육, 그러니까 학원은 안 보내신 거예요?  첫째가 고등학교 진학 때까지는 전혀 안 시켰어요. 아이가 중학생 때 일이에요. 아이 성적이 좀 안 좋았는데, 그래서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학원에 가보면 어때?” 하고 물었어요. 알아봐서 보내줄 생각으로요. 그런데 아이가 안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학원에 안 다녀서 성적이 나쁜 게 아닌 것 같다면서요.    아이가 어떻게 했나요? 자기 공부하는 걸 돌아보더니 문제가 뭔지 파악해내더라고요. 그러더니 그걸 보강해서 다음 시험을 준비해보겠다고 하는 거예요. 저는 그런 태도가 기특했어요. 그래서 아이 하자는 대로 했고요. 사교육을 전혀 안 시킨 건 아니에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아이가 학원에 보내달라고 먼저 얘길 하더라고요. 학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요. 그때 보내줬어요.    큰 아이 초4, 작은 아이 초2 때 중국 상하이 예원 정원에서. 이지영 작가 제공  ━  두 가지만 지키면 안 싸운다      아무리 사이가 좋은 가족이라도 24시간 붙어 있으면 싸우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 공간이 낯선 타국 땅이라면 예민해지기 십상이다. 그런데 이 가족, 신기하게도 큰 불화 없이 매번 꼬박꼬박 여행을 다녔고, 다음 여행을 준비했다. 비결이 뭘까?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여행 가면 싸울 일이 생기지 않나요?  그럼요. 그런데 즐겁자고 여행 가서 싸우면 속상하잖아요. 시간 들여, 돈 들여, 힘들여 갔는데 거기까지 가서 싸우면 더 속상하죠. 그래서 안 싸우려고 두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그 원칙이 여행을 다니면서 얻은 노하우라면 노하우겠네요.    그 원칙이 뭔가요? 가장 중요한 건 그 누구에게도 양보와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여행지에서 저녁을 먹어요. 4명 중 3명이 한식을 먹고 싶대요. 그런데 1명은 여기까지 와서 무슨 한식이냐고, 현지 음식을 먹자고 해요. 저희는 이럴 때 그 1명에게 “다수결이니까 네가 양보해”라고 하지 않았어요. 그날은 일단 다수결로 한식을 먹더라도, 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오면 그때는 현지 음식을 먹기로 하는 거죠. 그러면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아도 “나만 늘 양보해” 하는 식의 억울한 마음이 생기지 않아요. 비단 여행에서만 그럴까요? 가족이 함께 사는 데 있어서 이 원칙은 늘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원칙은 뭔가요? 공부시키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이들이랑 여행을 가면 꼭 가르치려고 하거든요. 하다못해 유명한 건축물에 가면, 거기 쓰여 있는 설명문이라도 읽게 하려고 하죠. 저희는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럼 여행 가서 뭘 하셨어요? 같이 구경하고, 그리고 난 후엔 느낌이나 감정을 공유했죠. 이 성당은 몇 년에 누가 어떻게 지었는지 등의 얘기를 하지 않고, 대신 “엄청 유명한 성당인데, 스테인드글라스가 예쁘다. 종소리도 엄청 크네”라는 식으로요. 그랬기 때문에 아이들이 제법 커서까지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아서요.    큰 아이 초6, 작은 아이 초4 프랑스 파리 에펠탑 앞에서. 이지영 작가 제공 아이와 여행을 가면 정말 준비해야 할 일이 많잖아요. 해외 여행이라면 더 그럴 것 같아요. 어떻게 준비하셨어요? 일단 적금을 들었어요. (웃음) 경비가 있어야 여행을 가잖아요. 사실 우리 가족이 10년 간 다닌 나라는 그렇게 많진 않아요. 6개국이요. 넉넉해서 다닌 여행이 아니었거든요. 여행을 가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경비를 따로 모았어요. 한 달에 아이 학원비로 50만원 정도 쓴다고 생각하고, 그 돈을 따로 모았습니다. 아시아 지역에 갈 때는 그렇게 1년을 모아서 떠났어요. 미주나 유럽으로 갈 땐 2년을 모았고요.    4인 가족이 움직이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아요. 비용을 아끼는 작가님만의 비법이 있을까요? 예산에서 가장 비중이 큰 건 항공권과 숙소죠. 이 부분을 아끼면 활동하는 데 쓸 예산이 늘잖아요. 그래서 직항보다는 경유하는 항공편을 이용했어요. 숙소도 안전한 곳을 최우선으로 하되, 굳이 좋은 곳에 묵진 않았어요. 다만 숙소는 꼭 호텔로 잡았어요. 에어비앤비 같은 곳에서 아파트 같은 걸 빌리면 비상 상황에 대처하기 힘드니까요.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요. 반면 호텔엔 24시간 우리를 도와줄 누군가가 있고, 상대적으로 안전하죠. 아이와 함께 다니는 만큼 안전 부분은 양보하지 않았어요.    아이와 여행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게 바로 안전 문제에요. 갑자기 아프거나 사고를 당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저는 여행을 떠나기 전엔 안전 교육을 꼼꼼하게 했어요. 그래선 안 되지만, 혹여 아이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대처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이름과 연락처 등을 적은 이름표를 따로 만들어 달아주기도 했고요. 아이에게도 혹시 엄마 아빠를 잃어버리면,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고 백만 번도 더 말했죠. 아이들이 좀 크고 나서는 대사관을 찾는 방법을 알려줬고요.    아무리 철저히 대비해도 피해갈 수 없는 게 사고잖아요. 여행하면서 사고가 난 적은 없나요?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어요. 프랑스에서 다른 사람이 소매치기를 당하는 걸 본 적은 있죠. 아이들도 이때 기억이 매우 충격적이었는지 오랫동안 얘기하더라고요. 사실 소매치기 같은 일은 아무리 안 당하려고 애써도 완전히 피할 수만은 없잖아요.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대처할지 아는 게 중요하죠. 여권을 잃어버렸을 때 임시 여권을 만들 수 있도록 여분의 여권용 사진을 준비한다거나, 현금은 한곳에 모아두지 않고 여러 곳에 분산해서 보관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런 걸 아이들에게도 늘 이야기해줬어요.    큰 아이 중2, 작은 아이 초6 체코 프라하에서. 이지영 작가 제공 아이와 여행을 갈 때, 여행지를 고르는 것도 일이잖아요. 해외 여행은 더 그런데요, 노하우를 좀 알려주세요.  아이의 나이가 가장 중요하죠. 첫 가족 여행지는 미국이었는데, 그때 작은 아이가 만 5세였거든요. 걸어 다니기 정말 힘들어하더라고요. 아이가 어리면 관광보단 휴양지가 나은 것 같아요. 사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도 관광은 버거울 수 있어요. 여행 동선도 아이의 체력을 고려해서 짜야 하죠. 또 아이와 갈 때는 보는 관광보다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체험 위주로 코스를 짜는 게 좋아요.    아이가 좀 크면 달라질 것 같아요.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말을 안 듣기 시작하잖아요. 계속 휴대전화만 붙잡고 있고요. 여행 가서도 마찬가지예요. 이럴 땐 가르치기보단 “저기 뭐가 있네?”라는 식으로 흥미를 유도하며 대화를 물꼬를 터보세요. 또 이 시기에 아이들은 시각적으로 예민해요. 멋지고 예쁜 것을 좋아해요. 관광지 선택할 때도 눈요기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하세요. 아이에게 사진기 주면서 사진도 찍어달라고 해보시고요. 그 지역만의 아기자기한 아이템을 사주면 아주 좋아할 거예요.    더 큰 아이들, 그러니까 청소년기의 아이와 여행할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여행의 주도권을 줘보세요. 아이들 검색 능력이 부모보다 낫거든요. (웃음) 아이에게 맛집을 직접 찾아보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 가족의 마지막 여행지가 홍콩이었거든요. 그때 저희 부부가 ‘우리는 저물고 아이들은 이제 시작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아이들이 어디 갈지 척척 찾아서 제안 하는 거예요. 머지않아 아이들이 우리의 보호자가 될 거란 생각이 들자 대견하면서도 서글프더라고요. (웃음)    큰 아이 고1, 작은 아이 중2 홍콩 리펄스베이에서. 이지영 작가 제공 이지영 작가는 “왜 안 되겠어(why not)?”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아무리 큰 일이 생겨도 이 말을 하고 나면 별일 아닌 게 된다는 것이다. “이 말 덕분에 새로운 것, 남들이 안 하는 걸 도전할 때 주저하지 않고 소신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했다.    학원 대신 여행 다녔다고 하면 다들 놀라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하거든요. ‘왜 안 되겠어(why not)?’ 저희 부부가 여행을 통해 아이에게 주고 싶었던 게 바로 이 말인지도 모르겠어요. ‘왜 안 되겠어(why not)?’  관련기사"미룬다고요? 게으른 게 아니라 완벽하려는 것" 완벽주의와 함께 사는 법“육아, 쌀·물·불 이 세가지만 집중하면 된다"…존스홉킨스 의대 교수 밥짓기 육아론"자녀들 선행학습은 시대착오" 서울대 교수가 권한 공부법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가족들과 해외 여행 가서 ‘두 가지’만 지켜도 갈등 막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희생 강요하지 않기와 아이에게 지식 주입하지 않기입니다. 이것만 지켜도 즐거운 여행이 됩니다.  ·여행 계획을 짤 땐 아이의 연령을 고려하세요. 어린 아이들은 걷기 힘들어 하니 동선이 짧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점점 클수록 주도권을 줘보세요. 부모보다 검색 능력도 나을 겁니다.  ·‘왜 안 되겠어(why not)?’라는 말은 도전할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사교육 대신 여행 ‘왜 안 되나요(why not)?’ 가족이 ‘원팀(One Team)’으로 뭉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잖아요.  」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2022.07.20 06:00

  • "미룬다고요? 게으른 게 아니라 완벽하려는 것" 완벽주의와 함께 사는 법

    "미룬다고요? 게으른 게 아니라 완벽하려는 것" 완벽주의와 함께 사는 법 유료 전용

    아이가 실수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기록하게 도와주세요. 실수를 마주할 용기를 가질 때 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도 사라집니다.   “완벽주의형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 따로 있느냐”는 질문에 정신과 전문의 윤동욱 YD퍼포먼스 인지행동치료연구소장은 이렇게 답했다. 윤 소장은 시험·발표 불안, 번아웃, 무대 공포증, 강박 장애 등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변화를 돕는 인지행동치료 전문가다. 그를 찾는 사람들은 청소년부터 대기업 임원, 변호사, 연예인까지 다양하다. 증상은 모두 다르지만, 이들에겐 공통된 원인이 있었다. 바로 ‘완벽주의’다. 정신과 전문의 윤동욱 YD퍼포먼스 인지행동치료연구소장은 완벽주의는 조절하기에 따라 변화를 추구하며 성장에 힘쓰는 '건강한 완벽주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그는 “완벽주의는 조절하기에 달렸다”고 말한다. 완벽해지려는 마음만 잘 조절하면 자신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비현실적 완벽주의자'가 아닌, 변화를 추구하며 성장하는 ‘건강한 완벽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려면 “완벽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고 했다. 그가 윤닥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며, 『나는 왜 남들 앞에만 서면 떨릴까?』에 이어『오늘도 시작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를 저술한 이유다. 윤 소장은 “아이가 공부나 숙제를 앞에 두고 어렵다는 이유로 시작을 미룬다면 완벽주의에 가까울 수 있다”며 “미루려는 행동 뒤 자리 잡은 실수에 대한 두려움부터 깨야 한다”고 말했다.   시작을 미루는 것과 완벽주의, 무슨 관계가 있나요? 마감 기한이 있는 일을 미뤄야 하는 경우를 떠올려보죠. 왜 미루나요?   해결법을 잘 몰라서 막막할 때요, 부담되거든요. 완벽주의형은 학업·업무, 대인 관계, 외모·건강, 성공·행복 등 모든 면에서 무결점을 추구합니다. 무엇이든 완벽하게 잘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완벽하지 못할 바에야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말하는 “어렵다”에는 ‘내가 생각하는 목표가 있는데, 그만큼 잘 못 할 것 같다’는 의미가 숨어 있어요. “모르겠어”, “무서워”, “부담돼”, “엄두가 안 나”,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실수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완벽주의를 잘 조절하려면 실수에 대한 두려움부터 극복해야 한다는 건 그래서예요.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실수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해요. 실수를 기록해보세요. ▶자신이 한 실수 ▶그때 들었던 생각 ▶당시 대처법 ▶실수를 통해 배운 것 ▶앞으로의 대처법을 적는 거예요. 이때 중요한 건 ‘실수를 통해 배운 것’을 찾는 겁니다. 예를 들어 ‘발표 내용을 잊어버리는’ 실수를 했다면 ‘임기응변으로 말하는 법’을 배웠다고 쓸 수 있어요. 이러면 실수는 실패가 아닌 기회가 됩니다. 그래야 다시 시도할 명분도 생겨요. 오답 노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완벽주의형은 오답 노트를 만들고도 보지 않을 거예요. 자신의 실수를 마주하는 게 고통스럽거든요. 대신 자신의 어떤 생각이 실수를 유발했는지 적어두고, 반복해서 보면 같은 유형의 문제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실수는 단박에 고쳐지지 않아요. 아이가 더 크게 좌절하고, 도전을 더 회피하지 않을까요? 도전 목표를 ‘성과’에만 둬서 그래요. 양육자 상당수가 아이에게 늘 좋은 결과를 요구합니다. 시험에서, 경기에서 ‘1등’을 했을 때만 웃어주죠. 아쉬운 결과를 내면 말은 “괜찮다”고 해도 표정은 굳어 있어요. 소셜미디어(SNS)와 유튜브도 마찬가지예요. 외모에서 성품까지 모든 걸 다 갖춘 완벽한 인간상만 보여줍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좋은 성과를 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연스럽게 더 완벽해지려고 애쓰게 되는 거고요.    그럼 목표를 어디에 둬야 하나요?  저는 도전 목표를 항상 ‘성장’에 맞추라고 합니다. 양육자는 “몇 개 맞았니?”라고 묻기보다 “이번 시험을 통해 무엇을 배웠을까?”, “이번 시험은 지난번과 무엇이 달랐을까?”라고 물어보면 됩니다. 그래야 도전을 준비하고, 임하는 과정에 집중하게 되고, 실수해도 다시 해 볼 마음이 생기니까요. 또 하나, 아이들에게 실수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윤 소장은 "아이에 대한 과잉 보호로 실패와 좌절할 경험을 뺏고 있다"며 "실패에 대처하는 힘이 있어야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실패를 권장하라는 건가요? 실패와 좌절을 경험할 기회를 막지 말라는 겁니다. 교우 관계가 대표적이에요. 아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양육자가 나서서 중재하는 일 등이요. 이건 아이가 대인관계를 맺는 경험을 뺏는 겁니다. 최근 학교 가기 두렵다는 아이들이 늘었어요. 코로나19로 약 3년간 친구와 직접 만날 기회가 줄어들다 보니 어떻게 친해져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예요. 완벽주의형은 모든 친구와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문제는 피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부딪혀서 넘어지고, 실수도 해 봐야 대처할 힘이 길러집니다. 실수 기록지에 당시의 대처법과 앞으로의 대처법을 기록하라는 건 그래서입니다.    ━  4가지 오류에서 벗어나라   윤 소장은 ‘건강한 완벽주의자’를 대표하는 인물로 스티브 잡스를 꼽았다. 완벽주의자 특유의 꼼꼼함을 발휘해 완벽하고 한발 앞선 제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변화에 민감한 잡스의 성격은 시대를 선도하는 트렌드 리더의 자양분이 됐다고 그는 말한다. 윤 소장은 “같은 능력을 갖추고도 누구는 트렌드 리더로 성장하고, 누군가는 번아웃에 시달리다 포기한다”며 그 차이를 만드는 요인 중 하나로 ‘왜곡된 생각’을 꼽았다. 예민함이 부추긴 생각의 오류를 알아차리고, 끊어낼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네 가지 생각의 오류, 어떤 걸 말하나요? 완벽주의자는 ‘흑백논리, 지나친 일반화, 재앙화, 당위성’의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우선 흑백 논리의 오류부터 보죠. 쉽게 말해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성공 아니면 실패, 친구 아니면 적 이런 식으로요. 완벽주의형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오류인데요.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생각에 문제가 생기면 포기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한 번 싸운 친구와는 관계를 끊어버려요. 관계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보는 거죠. 또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에도 잘 빠집니다. 한 번 일어난 일이 계속 반복될 거라고 믿는 건데요. 선생님께 혼나면 앞으로 미움받을 거라 믿습니다. 여기서 생각이 더 깊어지면 반 친구 모두가 나를 나쁘게 볼 거라고 생각하죠.   재앙화와 당위성은요? 재앙화는 미래에 대해 현실적인 고려 없이 부정적으로 예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약에’, ‘혹시’ 같은 단어를 써서 최악의 상황, 극단적 결과만 생각합니다. 수학 시험에서 한 문제 틀리면, 평생 백수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식이에요. ‘전체 평균이 깎인다→내신이 나빠 좋은 대학에 못 간다→취업에 실패해 못난 인생을 산다’, 이렇게요. 마지막으로 당위성은 ‘무조건’, ‘반드시’를 붙여서 자신을 압박해요. ‘반장이니까 반드시 상위권에 머물러야 해’, ‘첫째니까 무조건 좋은 이미지를 보여줘야 해’ 이런 식으로요.   말만 들어도 피곤한데요. 완벽주의가 부추긴 왜곡된 생각은 자신을 압박해 과한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걱정과 불안, 우울과 슬픔, 죄책감과 수치심 등 부정적 감정이 극대화돼요. 또 과하게 타인의 눈치를 본다거나 반대로 주변 사람에게 완벽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인지행동치료는 이렇게 완벽주의를 극단으로 몰고 가는 왜곡된 생각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생각이 바뀌면 부정적 감정이 줄어들고, 행동까지 바뀐다고 보거든요. 하지만 무조건 긍정적으로만 생각한다거나 단순 위로를 통해 순간적으로 생각을 바꾸라는 게 아닙니다. 장기적으로 보고, 합리적으로 바꿔야 해요. 윤 소장은 완벽주의자가 빠지기 쉬운 네가지 생각의 오류 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동사고기록'를 제안했다. 장진영 기자   어떻게요? 왜곡된 생각을 자각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자동사고기록이라고 부르는데요. 감정을 유발하는 생각을 찾는 겁니다. 행동을 기록하고, 그때 어떤 감정과 생각이 떠올랐는지를 적는 거예요. ▶특정 상황▶당시의 기분▶떠오른 생각▶떠오른 이미지▶예상된 최악의 상황▶이 모든 걸 종합한 나의 자동사고, 이 순서로 기록하시면 됩니다.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아요. 예를 들어주세요. 발표불안에 대한 자동사고를 예로 들어보죠. ‘팀을 대표해 발표한다→불안하고 초조하다→말을 버벅거리면 부끄럽다→떨고 있는 나와 쑥덕이는 친구들→팀 성적이 나빠 나는 비난받고, 영원히 놀림당할 것이다→발표 때 실수하면 사람들이 날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니 발표는 하지 말아야 한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 재앙화의 오류, 흑백 논리의 오류가 보입니다. 실수 한 번으로 왕따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실수할 경우 앞으로 발표하지 않겠다고 포기해버리죠. 이렇게 어디서 오류가 발생했는지 찾으면 생각을 교정하는 데 수월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어려울 것 같아요. 더 쉬운 방법이 있을까요? 비디오 피드백 기법을 추천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면 더 쉽게 이해하거든요. 발표 불안이 있는 아이들은 보통 ‘발표할 때 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예를 들어 손을 30초에 10번 떨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막상 영상으로 보면 2번밖에 안 떨어요. 내 생각과 실제가 다르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거예요. 그러면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닫게 되고 불안은 낮아집니다. 비디오 피드백 때는 아이의 장점도 함께 말해주세요. ‘입을 크게 벌리니 발음이 정확하네’, ‘손동작이 자연스럽다’는 등 객관적 증거를 앞세워서요. 그렇게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다만, 아이들 스스로 하기엔 어렵습니다. 양육자가 옆에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셔도 좋고요.    ━  과정을 칭찬하라     윤 소장은 “완벽주의형 아이 키우는 노하우의 마지막 열쇠는 양육자가 쥐고 있다”고 했다. 완벽주의 성향은 기질보다 양육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얘기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할 경우 자신의 완벽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 특히 내 아이까지 완벽해지길 원한다. 그래서 높은 기준으로 아이를 평가하고, 아이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화를 낸다. 윤 소장은 “완벽주의는 경직된 양육 환경에서 대물림된다”며 “양육자부터 완벽주의를 내려놓으라”고 했다.   ‘완벽주의의 대물림’이라니, 덜컥 겁이 나는데요.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완벽함을 강요받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양육자부터 자신의 완벽주의 성향을 파악합니다. 양육자가 완벽해지려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면, 그 성향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가되거든요. 양육자도 아이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겁니다. 먼저 아래 질문을 보고 양육자의 완벽주의 수준을 체크해보세요.  발췌=『오늘도 시작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 (한빛비즈). 디자인=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인정했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아니잖아요, 완벽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법이 궁금해요. 우선 완벽함에 대한 기준을 낮추세요. 아이와 양육자 모두 각자 완벽의 기준을 정해보세요. 크게 학업·업무, 대인 관계, 외모·건강, 성공·행복 분야로 나눠 완벽의 기준을 세웁니다. 이때 아이들은 비현실적이거나 추상적인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늘 상위권을 유지해야 한다’, ‘모두가 날 좋아해야 한다’ 등이죠. 그런데 전자는 모호하고, 후자는 불가능하죠. 차라리 ‘이번 시험에서 다섯 과목 5등 안에 들기’,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먼저 인사하기’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기준을 정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이 기준을 달성했든 안 했든, 아이의 노력에는 언제든 칭찬해 주세요.   칭찬이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 들어요. 그런데 칭찬을 해줘도 아이가 만족스러워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칭찬법이 잘못됐으니까요. 흔히 양육자들은 아이를 칭찬할 때 ‘결과’를 칭찬합니다. 몇 점 받았는지, 몇 등 했는지 등이요. 결과는 완전한 통제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공부했어도 시험 당일 배탈이 나면 시험장조차 못 가잖아요. 변수가 많죠. 결과 중심 칭찬이 아이 성장에 큰 도움이 안 되는 이유예요. 대신 아이가 통제할 수 있는 걸 칭찬해주세요. 그게 ‘과정’입니다. “덧셈 공부를 열심히 하더니 실력이 늘었더라”. “침착하게 끝까지 문제를 풀었네, 대단해”라는 식이죠. 노력을 인정받으면 ‘자기 효능감’이 높아집니다. 이 영역에서만큼은 내가 잘해낼 자신 있다고 생각하게 되죠. 또 하나 팁을 드리면 양육자의 기대를 칭찬에 담지 마세요.    기대를 칭찬에 담는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양육자의 바람을 칭찬으로 둔갑시키는 거예요. 예를 들어 90점을 받았으면 “90점이나 받았네, 잘했다. 다음에 10점마저 받으면 진짜 100점 받겠다”. 어떠세요?   부담스러운데요. 못 받은 10점에 미련이 남아요.    이건 칭찬이 아닙니다. ‘10점을 왜 못 채웠니’라는 압박입니다. 이런 유형을 조건적 인정이라고 합니다. 양육자의 기준에 부합할 때만 인정하는 거예요. 아이는 양육자의 눈치를 보게 되고, 평가 주체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맞춥니다. 타인의 평가에 민감해진다는 얘기죠. 그러면 실수를 두려워하게 되고, 도전을 회피하고, 생각의 오류에 쉽게 빠지고, 불안·우울 등의 증상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양육자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노력에 대한 칭찬 한마디로 아이는 ‘건강한 완벽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윤 소장은 아이의 높은 긴장감을 낮추려면 양육자의 부족함을 먼저 공개하라고 했다. 엄마·아빠도 실수할 수 있고, 실수가 두렵다는 사실을 표현하라는 얘기다. 그래야 경직된 분위기가 깨지고, 아이 스스로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힘을 빼세요. 완벽함에서 힘을 뺄 때, 진짜 완벽해집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실수를 기록하세요” 실수를 통해 배운 것을 찾는 게 포인트입니다. 그래야 실수해도 좌절하지 않고 또 도전합니다. 도전은 성과가 아닌 성장을 위한 일이라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4가지 오류에서 벗어나세요” 완벽주의형 아이는 흑백논리·일반화·당위성·재앙화의 오류에 쉽게 빠집니다. 자기 객관화법인 자동사고기록과 영상 기록 등을 통해 왜곡된 생각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세요.  ·“과정을 칭찬하세요” 완벽주의는 양육 환경으로 대물림됩니다. 양육자부터 완벽주의를 인정하고, 칭찬법부터 바꿔야 합니다. 결과 아닌 과정을 칭찬하고, 양육자의 기대를 칭찬에 넣지 마세요.  」 관련기사 "창의력? 열린 질문 그리고 이 2가지 기억하라" 경제학자의 비결 “육아, 쌀·물·불 이 세가지만 집중하면 된다"…존스홉킨스 의대 교수 밥짓기 육아론 “절대 개입하지 말라, 그래야 멘탈갑 된다”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2022.07.12 06:00

  • "창의력? 열린 질문 그리고 이 2가지 기억하라" 경제학자의 비결

    "창의력? 열린 질문 그리고 이 2가지 기억하라" 경제학자의 비결 유료 전용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을 던지는 게 핵심입니다. 다음은 토론입니다. 학생들 자신의 답, 아이디어를 가지고 토론을 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평가는 여러 명의 전문가가 해야 합니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 대표적인 거시경제학자다. 그런 그가 경제 외 꽂힌 분야가 있다. 바로 교육이다. 그는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경제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김현동 기자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어떻게 하면 창의력을 키우는 수업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한 학기 수업만으로도 학생들은 자신의 창의력이 커졌다고 평가한다”며 “창의력을 키우는 일은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손꼽히는 거시경제학자다. 세계적 석학으로 꼽히는 미 시카고대 로버트 루카스 교수로부터 사사 받았고, 박사학위를 받은 후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로도 일했다. 그런 그가 경제 문제만큼이나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교육이다.     그가 특히 꽂혀 있는 건 바로 ‘창의 교육’. 그는 ‘서울대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 모임’ 소속으로, 모임 교수들과 함께 자신의 창의 수업 노하우를 담은 『창의 혁명』을 써내기도 했다. 2021년 한국 경제를 진단하며 쓴 책 『모방과 창조』 역시 후반부는 교육에 할애했다. 경제학자가 왜 교육에 꽂혔을까? 2006년부터 자신만의 방법으로 창의 수업을 해오고 있는 그만의 창의 수업 노하우는 뭘까? 지난달 말 그를 만나 직접 들어봤다. 김세직 교수는 2016년 한국의 장기경제성장률이 5년에 1%포인트씩 꼬박꼬박 하락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장기경제성장률 5년 1% 하락의 법칙이다. 창조형 인재가 퍼스트무빙 전략을 써야 하는 순간에 모방형 인재들이 패스트팔로잉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김현동 기자  ━  제로성장 시대 진입 중인 한국 경제, 교육이 문제다   김세직 교수가 교육에 꽂힌 건 “교육이 바뀌지 않으면 한국 경제에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은 제로 성장 시대에 진입 중이다”고 판단한 그는 “시간이 많지 않다”고 말한다. 당장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다.     장기경제성장률이 그를 이런 생각에 이르게 했다. 장기경제성장률은 한 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장기경제성장률은 기준년으로부터 앞뒤로 5년, 총 11년의 경제성장률의 평균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1990년대부터 30년간 장기경제성장률이 5년에 1%포인트씩 하락 중이다. 그가 발견한 ‘장기경제성장률 5년 1% 하락’의 법칙이다.   딴지를 거는 질문 같은데요, 이 점을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경제는 왜 성장해야 하나요? 반드시 성장해야만 하는 걸까요?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 행복하다고 느낄까요? 경제학자들은 소비할 때 행복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비를 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닙니다. 소비가 늘어나야죠. 왜냐면 줄어들면 불행하다고 느끼거든요. 그럼 소비를 늘리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소득이 늘어야죠. 그러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충분히 소비할 만큼의 소득을, 그것도 계속해서 증가하는 소득을 보장해주는 일자리요. 그러려면 경제가 성장해야 합니다. 경제학자들이 경제성장률에 주목하는 건 그게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복과 직결되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경제성장률이 아니라 장기경제성장률을 봐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연간 경제성장률은 단기적인 경기변동의 영향을 받아요. 코로나19 같은 외부 요인의 영향도 받고요. 장기경제성장률은 그런 요인의 영향을 걷어내고, 그 나라 경제의 진짜 기초체력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중요한 장기경제성장률이 5년에 1%포인트씩 하락하고 있다고요? 제가 이 법칙을 논문을 통해 보고한 게 벌써 2016년입니다. 이 추세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됐는데,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가 겪고 있는 여러 사회 문제도 바로 이것 때문일 가능성이 높죠.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취업이 어려워지고,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소위 흙수저와 금수저 간 격차가 커졌습니다. 청년들의 분노와 좌절은 다 여기서 시작된 겁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추세에 따라 제로 성장 시대 진입이 임박했다는 사실이에요.   장기경제성장률이 0%가 되는 게 왜 그렇게 문제인가요? 연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되는 역성장이 50%의 확률로 나타난다는 의미거든요. 그러니까 2년에 한 번꼴로 경제가 성장하는 게 아니라 반대로 쪼그라든다는 겁니다. 월급이 느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어드는 거죠. 월급 몇 % 주는 게 큰 문제로 안 느껴질 수 있는데요, 평균적으로 그렇게 표현된 것일 뿐 사실 누군가는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1997년 외환위기를 떠올려 보십시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경제성장률은 -5.1%였습니다. 그때 우리 사회의 혼란과 고통은 엄청났죠. 사실 외환위기는 경제성장률을 11% 이상 하락시키는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장기경제성장률이 6% 정도였기 때문에, 그나마 -5%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거죠. 장기성장률이 0%에 가까워진 지금 그런 위기가 온다면, 그 충격은 외환위기의 몇 배는 될 거란 뜻입니다.   왜 이렇게 된 건가요? 장기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원인이 궁금합니다. 비밀의 열쇠는 특허에 있습니다. 특허권은 20년간 보장됩니다. 20년이 지나면 특허의 효력이 사라지고 해당 기술을 베낄 수 있게 되죠. 1990년대부터 장기경제성장률이 하락하기 시작한 이유는 우리나라와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가 20년 안쪽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그 전엔 기술격차가 20년보다 컸기 때문에, 이미 공개된 선진국의 기술을 빠르게 모방하는 전략을 써서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었어요. 그런데 1990년대 이후 더는 모방할 기술이 없어진 거죠. 이때부터 우리 스스로 전에 없던 걸 만들어 내야 했어요. 그런데 우린 그럴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겁니다.   뭐가 문제였던 걸까요? 어떤 준비가 필요했죠? 인적 자원의 대전환이 이뤄져야 했어요. 그런데 그러지 못했죠. 아이러니하게도 장기경제성장률 5년 1% 하락의 법칙이 작동하기 직전 우리나라는 전세계가 주목할만한 8~10% 수준의 고도성장을 무려 30년간 계속해왔어요. 전세계 경제학자들이 그 비결을 연구했을 정도입니다. 로버트 루카스 시카고대 교수가 찾은 그 비결은 바로 ‘인적 자본’이었어요. 잘 교육 받은 인력이 산업에 풍부하게 공급됐다는 겁니다.   교육을 잘 받은 인력이 늘어나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하죠? 생산은 투자(기계)와 노동(사람)이 결합해 일어납니다. 생산량을 증대시키려면, 기계와 사람의 투입량을 늘리거나, 효율을 높여야 하죠. 그런데 기계 투자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적 자본(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생산 증대 효과가 더 큽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똑같은 컴퓨터라도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쓰면 생산성이 향상합니다. 그런데 컴퓨터에 능숙한 사람이 투입되면, 노동 효율만 높아지는 게 아니라 컴퓨터의 생산성도 높아집니다. 고성능 컴퓨터를 사달라고 요구하기도 하고요. 그 결과 기계 투자까지 증가하여 생산이 더 많이 늘게 됩니다. 그래서 인적 자본이 중요합니다.   1960년대부터 30년간 고도성장을 이끌어온 건 결국 ‘사람’이었다는 건데요, 같은 사람이 왜 이후 30년은 성장의 발목을 잡게 된 건가요? 그 시절 고도성장을 이끈 건 모방형 인재였어요. 선진국과의 기술격차가 컸으니까, 공개된 기술을 빠르게 습득하고 비슷하게 따라 하는 걸로 엄청난 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그 시기 초등학교 의무 교육을 실시하면서, 오전반 오후반을 나눠가며 그야말로 맹렬히 교육했거든요. 그런데 19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패스트 팔로잉 전략이 아니라 퍼스트 무빙 전략이 필요해졌어요.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모방형 인재만 길러내고 있었고, 안타깝게 지금도 그러고 있죠. 창조형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면 장기경제성장률 하락 추세는 절대 꺾이지 않을 거예요.   김세직 교수가 2021년 쓴 『모방과 창조』는 한국 경제를 진단하는 책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의 장기경제성장률은 5년에 1%포인트씩 따박따박 하락 중이다. "이 늪에서 빠져나오려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현동 기자  ━  창의력을 키우는 수업엔 세 가지가 있다   ‘시간을 그림으로 그려보시오.’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한 새로운 유토피아를 상상하고, 그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콩트로 묘사해 보시오.’   김세직 교수가 자신의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과제로 제시한 질문이다. 학생들은 일주일간 고민해 질문에 대한 답을 써 수업에 들고 온다. 3시간짜리 이 수업의 전반부는 학생들이 자신의 답을 발표하고 질문을 받고 답하는 토론으로 이뤄진다. 후반부는 김 교수가 해당 질문을 던지게 한 경제학 개념을 설명한다. 이때 김 교수가 특히 신경 쓰는 건 전반부 토론 시간에 학생들이 던졌던 의문이나 주요 생각이 경제학자들이 고민했던 것들이고, 그 끝에 경제학의 주요 개념과 법칙으로 나왔다는 사실이다. “누구나 열심히 생각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얘기가 하고 싶어서다.    김 교수가 수업을 끌어가는 중심엔 ‘질문’과 ‘토론’이 있다. 질문을 통해 학생들에게 먼저 생각하게 한 뒤 주요 개념을 학생들의 고민과 연결해 설명해주는 것이다. 김 교수는 2006년부터 이런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워주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 끝에 찾은 방식이다.   질문이 어려운 것 같아요. 생소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학생들은 더 그렇죠. 저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제가 던지는 질문의 핵심은 정답이 없다는 겁니다. 열린 질문이라고 하죠. 중요한 건 자신만의 생각을 적어내는 것이죠. 누군가의 생각을 가져오거나 베끼는 건 안 됩니다. 과제를 평가할 때 창의성, 논리성, 유용성(실현 가능성)이라는 3가지 기준을 적용하는데, 그중 창의성의 비중이 70%나 되죠.”   정답이 없는 질문의 효용이 뭔가요? 이 시대 먹고살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들이 다 그렇거든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는 이제 더는 빠르게 습득하고 따라 할 기술이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직접 풀어내야 해요. 그리고 그 문제들은 정해진 답이 없습니다. 새로운 답을 찾아내야 하죠. 그게 바로 창의력입니다. 열린 질문의 효용은 창의력을 키워준다는 거고요.   학생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질문을 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교수님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오래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제 질문에 학생들이 일주일 생각해서 답을 가져오잖아요. 저 역시 어떤 질문을 할지 학생들이 생각하는 만큼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비현실적인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 중에 ‘세상에 없는 화폐를 생각해보라’는 게 있어요. 사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수업을 처음 시작한 건 2006년이죠. 비트코인이 처음 나온 게 2008년입니다. 만약 그 수업에서 ‘세상에 없는 화폐’라는 개념을 가지고 좀 더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면, 우리가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마지막으로 극단적인 상황을 설정하려고 해요. 중간고사에 ‘1년 내내 섭씨 30도가 넘는 불나라가 있다. 이 나라에서 얼음을 화폐로 도입하는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문제를 낸 적이 있어요. 극단적인 상황에서 생각하면 복잡한 현실에 가려진 근본적 원리를 통찰할 수 있거든요. 바로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많은 교사들이 토론을 하면 학생들의 만족도는 높아지지만, 수업의 질은 낮아진다고 토로합니다. 토론 수업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으신가요? 준비 없이 토론하면 ‘아무 말 대잔치’가 됩니다. 어디선가 들은 걸 반복할 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죠. 그렇게 토론하면 도출되는 결론도 새로울 게 없습니다. 그럴 바엔 그 시간에 책 한 줄 더 읽는 게 낫죠. 직장인들이 이런 토론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퇴근하고 술자리에서요. 생산적이지 않은, 그저 잡담에 불과한 토론보다는 의미 있는 토론을 해보셨으면 해요. 그러려면 각자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와야 합니다. 제가 수업 일주일 전에 열린 질문을 하고,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정리해오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열린 질문에 대한 답을 평가하는 게 쉽지 않을 듯해요. 평가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거든요. 학생들이 교수님의 주관적인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는 없나요? 논문이 학술지에 게재되는 것도 이와 유사해요. 어떤 논문이 게재될 만큼 충분히 가치 있는지는 정량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우니까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요? 전문가 여러 명이 게재 여부를 심사합니다. 전문가 평가와 다수의 평가를 결합해 주관적 평가라는 문제를 극복한 겁니다. 이를 상호주관적 평가라고 부르는데요, 저 역시 수업에서 이 방법을 사용합니다. 저와 조교가 평가하고, 여기에 함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상호 평가를 더해서 평가합니다.   그래도 결과에 불만을 품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이 있을 것 같아요. 놀라운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게요. 상위 10%의 평가를 받는 아이디어는 어떤 평가자가 평가하든 높은 점수를 받는다는 겁니다. 상호주관적 평가 방식이 굉장히 주관적일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죠.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기 위해 입시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습니다. 5개의 보기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쓰는 형식의 문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주장 자체에 대해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지만,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을 거란 불안감이 큽니다. 입시가 바뀌어야 한다는 데 크게 동의합니다. 사실 1960년대부터 30년간 고도성장을 구가한 데엔 입시 제도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수준 높은 모방형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하는 기제가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선행 중심의 모방형 인재를 기르는 시대착오적인 교육을 부채질하는 입시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건 문제입니다. 열린 문제를 내고, 자기 생각과 아이디어를 쓰게 하는 형태의 입시로 전환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다만 제도만 바뀌어선 안 됩니다. 창의성을 평가 기준으로 명확히 해야 합니다. 이 기준이 서지 않으면, 5개의 보기 중 하나를 고르는 시험과 다를 바가 없어요. 다양한 지식을 자랑하는 글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면, 다들 자기가 아는 걸 하나라도 더 쓰려고 공부하겠죠. 지금의 입시보다 더 치열하게 모방형 인재가 되기 위해 애를 쓸 겁니다. 창의성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상호주관적으로 평가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   한국 경제를 진단하고, 교육 문제를 이야기할 때 김세직 교수는 '닥터 둠' 같아 보였다. 그는 그만큼 비관적인 전망을 서슴없이 내놓았다. 하지만 암담한 현실을 바꾸려고 애쓰는 그에게 '닥터 둠'이란 별명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모방과 창조』를 쓴 건 암울한 현실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김세직 교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닌 걸 알고 있다”면서 “시대착오적인 시스템에서 승자가 될 것인가, 인공지능(AI) 시대에 살아남을 유일한 능력인 창의성을 키우는 길로 갈 것인가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창의성을 키우는 방법을 하나 제안했다.   “저녁 식탁에서 아이들에게 ‘열린 질문’을 던져보세요. 이때 주의할 게 있어요. 절대 틀렸다고 해선 안 됩니다. 어떤 답을 하든 격려하세요. 생각해본 적 없는 무언가를 생각했다는 그 자체로 창의적인 것이니까요. 그리고 여러분도 의견을 내고 생각을 나누세요. 저는 비록 그렇게 못했지만, 젊은 양육자 여러분은 하실 수 있고 해야만 합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한국의 장기경제성장률은 5년에 1%포인트씩 꼬박꼬박 하락하고 있습니다. 한국과 선진국의 기술 격차가 20년 안쪽으로 좁혀졌기 때문입니다. 특허가 보장받는 기간이 20년입니다. 이제 더는 선진국 기술을 빠르게 습득해 비슷하게 만드는 패스트 팔로잉 전략이 먹히지 않습니다.   ②퍼스트 무빙 전략의 핵심은 창조적 인재입니다. 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양질의 모방형 인재를 길러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이를 수 있었죠. 그러나 이제 더는 5개 중 하나의 답을 고르는 교육은 의미가 없습니다. 선행 중심의 시대착오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창의력을 길러야 합니다. ③창의력을 기르는 수업의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먼저 교사가 답이 없는 열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학생이 이 질문을 일정 시간 고민해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수업에 오면, 그걸 기반으로 토론을 벌여야 합니다. 토론해야 아이디어가 고도화됩니다. 평가가 주관적이라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 전문가 평가와 다수 평가를 혼합한 상호주관적 평가를 도입해야 합니다. 」 관련기사 "자녀들 선행학습은 시대착오" 서울대 교수가 권한 공부법 "하늘 왜 파란 거야?" 묻는 아이…스탠퍼드대 교수 의외의 대답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2022.07.05 06:00

  • “육아, 쌀·물·불 이 세가지만 집중하면 된다"…존스홉킨스 의대 교수 밥짓기 육아론

    “육아, 쌀·물·불 이 세가지만 집중하면 된다"…존스홉킨스 의대 교수 밥짓기 육아론 유료 전용

    쌀, 물, 불만 잘 맞춰주면 밥이 되잖아요. 양육에도 세 가지만 있으면 됩니다. 쌀은 아이의 잠재력, 물은 부모의 사랑과 보호, 그리고 불은 가치와 마음자세예요.   지나영 존스 홉킨스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양육은 좋은 재료를 최대한 많이 넣어야 하는 만두 만들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양육의 궁극적 목적은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성인을 길러내는 것”이라며 “양육자가 많이 넣어 주려고만 하면 의존적인 성인으로 자라기 쉽다”고 했다.     지나영 존스홉킨스대 소아정신과 교수는 독립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한 양육의 원칙을 밥 짓기에 비유해 소개했다. [사진=지나영 교수 개인 소장] 지 교수는 미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한국인 최초의 소아정신과 교수로 유명하다. 대구에서 나고 자라 의대를 졸업한 그는 20대 중반에서야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레지던트 시험에 낙방한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가 영어가 부족하다는 약점을 이겨내고 세계 최고의 의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5년 전 발병한 난치병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지 교수가 앓고 있는 병은 자율신경계 장애와 만성피로증후군으로 혈압, 맥박, 체온 조절 등이 불규칙적이고 어지러움과 실신 전 증상이 자주 발생하는 병이다.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의 고통을 겪으면서 그는 “마음이 가는 대로 사는 것의 소중함을 배웠다”고 한다. 특히 아이의 정신적 독립과 성장을 돕는 일에 마음이 향했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양육법 강연과 저술 활동에 힘을 쏟는 이유다. 지 교수는 “지식과 정보를 밀어 넣어 양육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키우려는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양육의 본질은 크게 3가지에만 집중하면 된다”고 말했다.      ━  밥 짓기 원칙 ① 쌀이 가장 중요하다. 아이의 잠재력을 꺼내라    밥을 지을 때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쌀이 가진 고유한 맛이다. 품종은 골라도, 고유의 맛을 바꿀 순 없다. 양육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타고난 기질을 양육자의 입맛에 맞게 바꾸기는 어렵다. 지 교수는 “양육자가 원하는 재능을 주입해 키워주겠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아이가 가진 잠재력이 양육자가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뜻대로 바꿀 수 없다”며 “물고기에게 나무 타기 훈련을 시키는 조련사 대신 더 잘 헤엄칠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가 되라”고 조언했다.     아이에게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도와주죠? 아이의 잠재력은 관심과 흥미로 나타납니다. 아이가 무엇을 할 때 집중력이 높아지는지 관찰해보세요. 눈빛이 달라진다고 하죠. 관심 있고, 잘하는 일을 하면 집중력과 에너지가 커집니다. 반대로 하기 싫은 일 억지로 하면 표정이 어두워지죠. 그래서 아이의 반응을 잘 살펴야 합니다. 이때 기억해야 할 건 적절한 호응입니다. 아이가 관심과 흥미를 보일 때 반겨줘야 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우선 아이의 첫 마디에는 무조건 맞장구를 쳐주세요.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이런 식으로요. 아이가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때도 있어요. 다 씻고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모래 놀이를 하고 싶다는 식으로요. 양육자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죠. 하지만 “뭐? 이 시간에?”라고 말해선 안 됩니다. “아, 그래! 모래 놀이가 하고 싶구나” 라고 첫 마디는 맞장구 쳐주어야 해요.     하지만 그런 요구를 다 들어줄 순 없잖아요   요구를 들어주라는 게 아닙니다. 그 후에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면 돼요. 첫 마디 맞장구는 경청과 존중의 메시지입니다. 이렇게 생각과 의견이 존중받고, 피드백을 주고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는 건강한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건강한 자존감은 새로운 분야로 관심사를 넓혀가며 도전하고 모험하는 근간이 됩니다.  자율신경계 장애로 인한 병을 얻기 전, 지 교수는 세계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사진=지나영 교수 개인 소장]   자존감이 높다고 새로운 걸 경험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양육자가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중요합니다. 그런데 경험을 교육으로만 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피아노를 배우고, 수학 문제집을 푸는 것처럼요. 이 경험은 주입식이 되기 쉬우니까요. 대신 영감(inspiration)을 자극하세요. 음악을 듣는다거나 위인전을 건네는 식으로요.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면 휴대전화 하나만 쥐여주세요. 아이가 직접 이리저리 찍어보며 어떤 차이가 있는지 경험해 볼 수 있게요. 영감을 얻으면 스스로 행동하고 스스로 배웁니다.      ━  밥 짓기 원칙 ② 물은 쌀이 푹 잠기게. 조건 없이 사랑하고, 존중하라   지 교수의 어린 시절은 그리 풍족하지 않았다. 그의 기억 속 부모님은 늘 바빴다. 아이를 돌보는 것보다 먹고 사는 게 우선이었다. 그의 부모는 그렇게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부모의 사랑이 부족하지 않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함께 한 시간은 짧았지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 교수는 “밥 지을 때 물이 적으면 고두밥이 되고 물이 너무 많으면 죽이 된다”며 “사랑받고 존중받는 것은 모든 인간의 기본 욕구이자 필요조건이다. 그런데 양육자가 사랑을 잘못된 표현 하면 아이는 그 사랑을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가 사랑을 의심한다”는 말이 아프게 다가와요. 양육자의 어떤 말이 문제일까요?      사랑에 조건을 다는 겁니다. ‘공부 잘해야’, ‘심부름 잘해야’, ‘말 잘 들어야’ 처럼요. 물론 아이를 향한 부모의 사랑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말 한마디로 사랑이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사랑하는 지영아, 아이스크림 사놨어. 먹고 힘내서 공부 열심히 해.” 두 번째는 “지영아,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놨어. 우리 딸 사랑해.” 어떤 감정이 드나요?    전자는 어깨가 무거워지고, 후자는 뭉클하네요.   첫 번째 말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들리죠. 공부를 열심히 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줍니다. 반면 두 번째 말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아이의 존재 가치를 인정한 겁니다. 무조건 사랑하라는 건 이런 거예요. 무엇을 해야만이 아닌 그 존재만으로 가치 있다는 거죠. 지 교수는 양육자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20초 허그요법을 제안했다. 그는 ″하루 20초 아이를 껴안고 사랑과 인정의 메시지만 줘도 아이의 자존감은 높아진다″고 말했다. 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쉽지 않은데요, 교수님이 추천하는 사랑 표현법 없을까요?   제가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20초 허그 요법이에요. 아이와 양육자가 서로 밀착해 20초 동안 폭 안기는 거예요. 그리고는 사랑과 인정의 메시지를 전하세요. 예시를 드릴게요. “보석 같은 우리 OO이 사랑해”, “혜성 같은 우리 OO이 사랑해”,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잘 지내줘서 고마워”, “힘들 때도 있었는데 꿋꿋이 자라줘서 고마워”. 이렇게요.    취지는 좋은데, 쑥스러워요.    어색하죠? (웃음) 들어본 경험이 별로 없어서예요. 그래서 아이에게 더 자주 해줘야 합니다. 아침저녁으로 해 주시길 권합니다. 이런 말이 아이의 삶에 큰 차이를 만듭니다. 어린 시절 양육자에게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는 성인은 기본적으로 자존감이 높아요. 이들의 머릿속에는 “난 참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래서 실패를 경험해도 단단한 회복 탄력성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성인은 문제 앞에서 쉽게 자책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번 좌절하면 회복이 어렵고요.     하지만 무조건 아이를 예뻐할 수만은 없어요. 아이의 단점을 지적하고, 고칠 수 있게 이끄는 것도 중요할 텐데요. 자신의 단점을 아는 건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거든요. 그런데 지적하는 건 주의하세요. 단점조차도 나의 일부이고, 그럼에도 나는 가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게 중요하죠.     어떻게요?  내 단점을 두껍고 단단한 껍질 속에 숨기는 게 아니라 내놓고 당당하게 인정하는 겁니다. 저는 ‘호두 까기 요법’이라고 부르는 데요. 완벽하지 않아도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거죠. 호두 까기 요법은 양육자가 먼저 실천해야 합니다. 양육자는 아이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양육자 스스로 단점을 부끄러워하면, 아이들도 자신의 단점을 창피해합니다. 이러면 자신의 단점이 드러났을 때 자존감이 무너집니다.   구체적인 사례가 궁금합니다.    한국은 유독 키에 민감해요. 키가 작으면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우리 지영이는 다 좋은데, 키만 좀 더 크면 좋겠다”고 말해요. 이건 ‘작은 키=부끄러운 일’이라는 개념을 심어주는 말이에요. 이때는 “키가 작은 건 흠이 아니야. 키와 상관없이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말해주세요. 또 하나의 예로 틱 증상을 들 수 있는데요, 학령기에 틱은 흔한 증상입니다. 그런데 양육자가 증상을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아이도 수치심을 느끼고 움츠러듭니다. 아이가 틱 증상을 보이면 이렇게 말해주세요. “우리 몸은 가끔 재채기할 때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때가 있대. 걱정하지 않아도 된대”라고요.   관련기사 "나쁜 생각, 해도 괜찮아. 모두 너란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는 법    ━  밥 짓기 원칙③ 다 있어도 불 없으면 꽝. 나만의 가치와 마음자세를 가르쳐라   양육의 밥 짓기 원칙 마지막은 불, 가치와 마음자세다. 지 교수가 말하는 마음자세와 가치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원칙이다. 나만의 원칙이 있다면 선택의 순간마다 흔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 교수가 “독립적인 성인으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배워야 할 가치와 마음자세가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지 교수는 수많은 가치와 마음자세 중에서도 진실, 성실, 기여, 배려, 그리고 긍정적 마음자세를 핵심으로 꼽았다. 그 역시 선택의 순간마다 이 다섯 가지를 발판 삼아 성장했다.     난치병을 이겨내고 평범한 삶을 살아낸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교수님만의 가치와 마음자세가 어떤 역할을 했나요? 저는 대체로 긍정적이에요. 그렇다고 상황을 무조건 낙관적으로 본다는 건 아닙니다. 세상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죠. 긍정적인 마음자세는 모든 일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예요. 5년 전 병을 얻었을 때도 그랬어요. 비록 일상이 무너지긴 했지만,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었죠. 실제로 경험을 바탕으로 책도 쓰고 강연도 하면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고요. 고백하자면, 병 때문에 아이 갖는 것도 포기해야 했어요. 저는 아이를 정말 갖고 싶었거든요. 그렇지만 덕분에 더 많은 아이들을 애정을 갖고 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병으로 제 삶이 완전히 무너질 뻔했지만 긍정적인 마음자세 덕분에 저는 무너지려는 삶을 일으킬 수 있었어요. 지 교수는 ″생각은 감정을, 감정은 행동을 변화시킨다″며 ″생각을 바꾸기 위한 긍정적인 핵심 신념을 심어주는 게 양육자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자료=지마음연구소.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byun.sora@joongang.co.kr   아이들에게 긍정적 마음자세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하루아침에 길러지지 않아요. 어릴 적부터 꾸준히 가르쳐줘야 해요. 저도 부모님을 통해 배웠어요. 두 분 모두 긍정적이고, 유쾌하시거든요. 제가 무슨 실수를 해도 크게 혼내기보다는 “그럴 수도 있어”라고 말씀하셨어요. 집에 비가 새서 양동이를 받쳐놓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언제 또 이런 집에서 살아보겠니”라고 말씀하셨죠. 불평하기보다 해결 방안을 찾으셨어요. 아이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속상해하면 이렇게 말해주세요. “당장은 어렵고 괴롭지만, 좋은 점이 숨어 있을 거야. 찾아볼까?” 그래야 어려운 상황에도 배울 거리부터 생각하는 습관이 길러집니다.     진실, 성실, 기여, 배려도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중요할 것 같은데, 너무 추상적인 개념들이에요 진실은 솔직한 걸 말해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거예요. 자신에게 진실하지 않으면 삶의 만족감이 떨어져요. 세상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하고, 항상 무언가 부족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죠. 저절로 자신감이 떨어지고, 타인과 신뢰를 쌓기 힘들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진실한 마음을 강조하는 겁니다. 성실도 중요해요. 맡은 바 책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거죠. 당연한 것 같지만 쉽게 놓치는 가치입니다.       기여와 배려는요?   기여는 내가 속한 집단에서 구성원으로서 보탬이 되어야 한다는 걸, 배려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걸 말해요. 두 가지 모두 사회성의 토대입니다. 인간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에 이 두가지가 없으면 많은 걸 성취하기 어렵습니다. 특히 미래에 가장 필요한 능력으로 꼽히는 4가지 능력, 소통(Communication), 협력(Collaboration), 창의력(Creativity),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중 두 가지(소통과 협력)는 기여와 배려가 없으면 불가능해요. 진실과 성실이 나를 위해 가르쳐야 하는 가치라면, 기여와 배려는 타인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가르쳐야 하는 가치죠.   진실, 성실, 기여, 배려. 어떻게 알려줘야 하나요?     훈육할 때 상황과 가치를 연관 지어 말해주세요. 말귀를 알아듣는 3~4세부터 시작하셔야 해요. 예를 들어볼게요. 아이가 답을 베껴서 숙제하고는 거짓말을 했어요. 그럴 땐 진실성과 연관 지어 이렇게 말하세요. “엄마가 아이스크림이 있는데 없다고 하면 네 마음이 어떨까? 진실하지 못하면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고 상처를 주게 돼”. 기여와 배려를 가르치기 위해선 책임과 역할을 부여하면 좋습니다. 밥상에 수저 놓기, 청소하기, 강아지 배변 치우기 등등 소소한 집안일을 맡기는 거예요. 이를 통해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보탬이 되는 일의 가치를 배우게 되죠. 훈육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아이가 거실을 엉망으로 만들었을 때 “치워”라고 명령하기보다 “거실이 더러우니 다른 가족들이 불편하네. 그룹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라고 했지?”라는 식으로 기여와 배려를 상기시켜주면 좋습니다.     지 교수는 아이의 머릿속에 “난 참 괜찮은 사람이야”, “난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있다면 올바른 방향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것이 자신에 대한 핵심 신념으로 자리잡아 긍정적인 생각의 전환으로 이어지고, 생각은 감정을, 감정은 행동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본질에 충실하세요.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주저앉지 않고 일어나 다시 걸어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세요. 그게 양육자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아이의 잠재력을 꺼내주세요. 아이의 잠재력은 관심과 흥미로 나타납니다. 아이의 의견에는 무조건 맞장구치며 호응해주세요. 의견을 존중받아야 자존감이 높아지고, 모험심도 생깁니다.  ·조건 없이 사랑하세요. 아이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고 표현해주세요. 매일 20초 동안 아이를 껴안고 사랑과 인정의 말을 해주세요. “보석 같은 우리 OOO, 사랑해” 라고요.   ·가치와 마음자세를 가르쳐 주세요. 세상을 대하는 나만의 태도와 신념을 갖게 해주세요. 진실·성실·기여·배려, 그리고 긍정적 마음가짐은 반드시 알려주세요. 생각은 감정을, 감정을 행동을 변화시키니까요. 」 관련기사 "지적대화를 위해선 이것이 필요" '지대넓얕' 채사장이 말하는 진짜 지식 "자녀들 선행학습은 시대착오" 서울대 교수가 권한 공부법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2022.06.30 06:00

  • "지적대화를 위해선 이것이 필요" '지대넓얕' 채사장이 말하는 진짜 지식

    "지적대화를 위해선 이것이 필요" '지대넓얕' 채사장이 말하는 진짜 지식 유료 전용

    많이 안다고 좋은 게 아닙니다. 어려운 걸 아는 게 핵심도 아니고요, 좁고 깊은 전문 지식보다는 넓고 얕은 지식, 바로 교양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여기, 보통 사람들의 지식에 관한 책을 줄지어 내놓은 작가가 있다.『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하 지대넓얕·전 3권)을 쓴 채사장 작가다. 2014년 출간된 채 작가의 지대넓얕은 세 권 모두 100만 권 이상 팔린 밀리언셀러에 올랐다. 지난해 말 출간한 어린이판 인문 교양 만화 『채사장의 지대넓얕』도 밀리언셀러의 기세를 이어가고 있다.    밀리언셀러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쓴 채작가는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몸에 체화된 지식이 진짜 지식"이라고 말했다 . 장진영 기자   채 작가가 얕지만 넓은 지식, ‘교양’을 강조하는 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소통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는 “차를 몰기 위해 운전면허증이 필요하듯, 교양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격”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채 작가는 이 자격을 충분히 갖췄다. 그는 역사부터 정치·경제·사회·예술까지 방대한 지식을 이야기꾼처럼 쉽게 풀어낸다. 그래서 아이들도 어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지식이 ‘보통 사람을 위한 현실 인문학’으로 통하는 이유다. 지난 13일 채 작가를 만나 이 시대 필요한 지식, 교양을 습득하는 방법을 물었다.    ━  “많이 안다고 다 아는 게 아니다”   채 작가는 “많은 양의 지식을 쌓기보다 체화된 지식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식을 쌓는 건 중요하다. 지식이 많으면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쌓기만 하는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채 작가는 “지식을 훈장으로 여기고, 트로피처럼 모으려는 사람이 있다”며 “지식을 체화해야 한다. 그게 진짜 지식이고, 지혜다”라고 했다.    체화한다는 게 뭔가요?  아는 걸 넘어 사용할 줄 알아야 해요. 예를 들어 어떤 어휘를 아는 걸 넘어 일상생활에서 적재적소에 사용한다면 진짜 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저 의미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고민하고 곱씹으며 내 것으로 만들었다는 얘기거든요. 체화한 거죠. 지혜로운 이들의 말이나 글에는 버릴 게 없는 이유는 바로 이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울림이 있는 거고요.    지식을 체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식을 얻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계속 지식을 수집하고 고민할 수 있죠. 특히 아이들은 처음 지식이라는 걸 접하는 거잖아요. ‘와! 이런 게 있대’라는 희열을 느껴야 해요. 재미있게 배우려면 공부가 아니라 놀이로 접근해야죠. 이미 우리 아이들은 지식을 재밌게 수집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이미 재미있게 지식을 접한다고요? 공부나 독서를 힘들어하는 애들이 태반인데요.    그건 어른들의 오해입니다. 『지대넓얕』을 어린이 책으로 기획할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어요. 사실 저도 아이들이 이 책을 좋아할까 싶었어요. 내용이 방대하기도 하고, 아이들에겐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독자 리뷰를 받아보니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어한다는 겁니다. 오히려 양육자들은 어렵다고 하고요. 심지어 학습 만화로 기획됐는데도 말이죠. 왜일까요? 인문 교양 스토리 만화 『채사장의 지대넓얕』은 출간과 동시에 어린이 필독 교양서로 자리잡았다. 장진영 기자   아이들은 그림을 중심으로 보고, 어른들은 텍스트를 중심으로 읽어서일까요?   비슷합니다. 아이들은 서사를 보고, 어른들은 정보를 봐서 그렇습니다. 어린이 책에는 불멸의 신 ‘알파’가 주인공으로 나오는데요, 아이들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집중해요. 이야기에 나오는 역사·정치·경제·사회 지식은 흐름을 따라갈 뿐이죠. 이해가 안 되면 물어보기도 하지만 그냥 넘어가기도 해요. 심각하게 생각 안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특정 개념과 사건에 집중해요. 수요공급, 세계 경제 대공황 등 그 내용을 정리해둔 페이지만 꼼꼼히 들여다봐요. 외울 듯이 달려드는 거죠. 그러니 어렵죠. 아이들이 공부를 힘들어한다면 비슷한 이유일 겁니다. 지식을 즐겁게 수집하는 게 아니라 강제로 주입하는데 즐거울 리가요.   꼼꼼히 읽지 않으면 머릿속에 남는 게 없어요. 이야기를 따라 훑으면 읽는 게 제대로 읽는 걸까요?  아이잖아요. 세계 경제 대공황을 설명할 줄 모른다고 문제 될 게 없죠. 『지대넓얕』은 아이들이 당장 몰라도 되는 내용이에요. ‘생산수단이 중요하구나’, ‘프랑스 대혁명이 이런 과정에서 발생했구나’ 이 정도로 훑어만 봐도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호기심을 자극하는 거예요.   그래도 한 번을 읽더라도 제대로 읽는 게 더 효과적인 거 아닐까요? 한 번 보고 안다는 건 대단한 착각이에요. 하나의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반복이 필요해요. 무엇인가 알고자 하는 욕구는 아이의 마음에 지식의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은 반복을 통해 선명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지워질 건 지워지면서 진짜 지식만 남아요. 이게 정리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꺾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호기심은 수집하게 하고, 반복은 정리하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잊으려고 해도 잊히지 않는, 진짜 지식이 쌓여가죠.     ━  “지식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채 작가는 “남보다 빨리 배워야 한다”는 믿음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공부보다 나에 대한 탐구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이가 자신의 내면을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시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그래서다. 아이들의 말로 하면 ‘심심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배워야 할 게 많아요. 남들 공부하는데 우리 아이만 심심해하라고 하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닙니다. (웃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나를 모르고선 절대 지식을 습득할 수 없어요.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깨닫는 게 먼저라는 얘기예요. 어른도 쉽지 않아요. 사회의 요구를 내 요구라고 착각하고 타인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잖아요. 청소년기에는 좋은 대학을 목표로, 청년기엔 대기업을 목표로, 장년기엔 좋은 동네, 좋은 아파트를 목표로 달리죠. 이런 삶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회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길을 걸을 수 있게요. 그러려면 하루를 긴 호흡으로 사는 경험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채작가는 "책과 대학에만 지식이 있다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일상에서 지식을 습득하는 습관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하루를 긴 호흡으로 사는 경험은 어떤 걸까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요즘 아이들은 하루를 10분 단위로 잘게 쪼개 씁니다. 학교 다녀오면 30분 간식 먹고 학원 가고, 학원 끝나면 15분 이동해서 다른 학원 가는 식으로요. 시간을 알차게 쓰면 빨리, 더 많이 배울 거라고 생각해서 소위 ‘굴리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조각조각 나뉘어 빈틈없이 굴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배운 것을 정리하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의 의미를 이해할 겨를이 있을까요? 시간을 비워둘 필요가 있어요. 심심할 정도로요.   하지만 심심한 시간을 만들어 주면 정작 아이들이 게임에만 빠져요.   ‘심심하다’의 의미를 오해하면 안 됩니다. 양육자분들은 보통 평일에는 공부를 시키고, 주말에는 게임도 하면서 쉬게 한다고들 하세요. 이건 긴 호흡이 아니에요. 제가 말하는 ‘심심함’이란 ‘여유로운’ 태도입니다. 10분 단위로 쪼개져 있던 시간이 사라지고, 아이가 여유를 갖고 안도할 때를 말해요. 그때야 비로소 자극적인 게임을 내려놓을 수 있어요. 책을 읽고,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도 가질 수도 있고요. 여유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요. 그래서 양육자부터 삶의 형태를 바꿔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재수생 때 지하철 2호선 순환선 열차에서 공부를 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공부를 꽤 잘하는 녀석이었죠. 이유를 물으니까 다른 곳에서는 공부가 잘 안되고, 그 자리에서 해야 잘 되더래요. 자신만의 공부법을 찾기 위해 계속 환경을 바꿔봤던 거예요. 집에서도 해보고, 독서실도 가보고, 카페도 가보고요. 그랬더니 백색 소음이 있을 때 집중력이 높아지고, 저절로 공부가 되더라는 거예요. 이 친구처럼 우리도 환경을 바꿔볼 필요가 있어요. 심심한 시간을 마련하기 위해 휴대 전화나 TV를 꺼놓거나 아예 없애는 방법이 있을 거예요. 아이를 압박하는 환경과 거리를 두는 방법도 있을 거고요. 양육자가 먼저 삶을 느슨하게 하고 여유를 가지면 아이들의 삶도 그렇게 될 겁니다. 그렇게 가족 모두 긴 호흡으로 사는 법에 익숙해지는 거고요.   이렇게 저렇게 환경을 바꿔보라는 건가요?  삶의 형태는 의지로 바뀌는 게 아니니까요. 독서 습관을 기르겠다며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몇 페이지씩 읽겠다’는 다짐으로는 안된다는 거예요. 오래 가지 못하죠. 환경이 바뀌어야 의지도 생깁니다.     ━  “좁고 깊게? 넓고 얕게 보자”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식을 많이, 그리고 빨리 쌓으려고 하는 걸까? 채 작가는 “전문 지식을 맹신하는 걸 넘어 맹목적으로 찬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성만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명문대와 고학력에 집착하고 그걸 얻기 위해 입시에 몰입하는 것도 전문 지식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에서 비롯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채 작가는 “전문 지식에 대한 사회적 맹신이 아이들을 병들게 했다”고 일갈했다.   전문 지식 찬양이란 말이 아프게 들리네요. 솔직히 작가님도 ‘좋은 대학’ 나오셨잖아요?   고백하자면 저도 전문 지식에 집착했어요. 저는 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는데, 형이상학을 다루는 이상적인 지식만이 진짜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명망 있는 철학자나 지식인의 저서만 찾아 헤맸었죠. 추상적인 질문에 집착했고요. 내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들요. 철학과라 더 그랬을 겁니다. (웃음) 그 답을 찾겠다고 과학부터 예술까지 파고들었죠. 그런데 이상적인 지식을 쫓는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왜요?  마음이 평온하지 않았거든요. 누군가는 그 덕분에 성공한 작가가 되지 않았느냐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늘 고단했어요. 하늘 올려다보느라 정작 내 대지의 정원이 망가지는 줄 몰랐던 거죠. 이걸 깨닫고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게 보이더라고요. 대단한 학식이나 물질적 성공과 무관하게 하루하루를 단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요. 이들은 일상에서 배우고, 일상에 충실해요. 그들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렇게 얻는 지식이 바로 넓고 얕은 지식이거든요. 바로 교양이죠.   일상에서 배운다는 게 잘 와 닿지 않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지식을 말하는 건가요?    잠자리를 정리하고, 내가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방을 정리하고, 맑은 날 산책을 하는 것 같은 일상적인 것들을 하면서 나를 배우는 겁니다. 무엇을 할 때 충만한지, 반대로 무엇이 나를 각박하게 하는지 알아야 해요. 관계도 중요해요. 친구한테 양보하고, 동네 어르신께 인사하며 함께 사는 법을 익히는 거예요. 반대로 상처도 받고, 혼도 나면서 사회 규칙을 배우고요. 이렇게 하면 내가 발 딛고 사는 ‘세계’를 이해하게 되고, 세계를 이해하면 그 세계 속에 발 딛고 서 있는 ‘나’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채작가는 "공부보다 나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야 한다"며 "여유를 느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좋다"고 조언했다. 장진영 기자   얕지만 넓은 지식이 이 시대에 더 필요한가요? 교양은 늘 중요한 덕목이잖아요. 지금 한국 사회엔 더 필요합니다. 전문 지식을 맹신하는 걸 넘어 찬양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문 지식도 중요해요. 좋은 대학 가서 전문 지식을 습득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대학에 가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지식을 다양한 방법으로 접하자는 거예요. 과거에는 책과 수업으로만 전문 지식을 배울 수 있었어요. 저는 ‘올드미디어’라고 부르는데요. 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서 어느 시대든 올드미디어를 뉴미디어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중세시대에 소설이라는 형식은 낮게 평가되었어요. 허구라는 이유로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예요.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책보다 저평가되죠. 하지만 이건 어른들의 선입견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매체에서 새로운 지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습득하고 있습니다. 소설이 학문의 한 분야로 자리 잡았듯, 미래에는 유튜브와 SNS도 지식을 쌓는 좋은 방법으로 평가받을 수도 있습니다. 대학에만, 책에만 전문 지식이 있다는 선입견을 내려놓자는 겁니다.   유튜브에는 거짓 정보도 넘쳐나요, 괜찮을까요?     거짓이 섞이지 않은 매체는 없습니다. 책에도 100% 진실만 담긴 건 아니죠. 그래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안목을 길러야 해요. 자신이 가진 지식의 맥락 안에서 모순은 없는가, 정합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크로스체크하는 습관도 도움이 될 거예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건지, 한 사람만의 주장인 건지 확인해보는 거예요. 그러려면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라는 다양한 매체를 균형 있게 활용할 줄 알아야 해요. 교차해서 확인하다 보면 자신만의 평가 기준이 생기고, 지식을 가려내는 안목이 생깁니다.     채 작가는 인터뷰 내내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러 매체를 통해 지식을 얻고, 외적 탐구만큼 내적 탐구에도 시간을 투자하고, 정신 건강과 신체 건강을 함께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균형의 중심엔 내가 있어야 합니다. 타인의 욕망을 따르지 않고 나의 욕망에 귀 기울여야 해요. 아이가 그렇게 자라길 원한다면 양육자부터 그래야 합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지식은 사용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식은 호기심을 갖고 수집하고, 반복해서 정리해 체화할 때 진짜 내 것이 됩니다. 많이 안다고 지혜로운 게 아닙니다. 암기를 강요하지 말고, 호기심을 자극해 주세요. ·지식은 속도보다 방향입니다. 공부보다 나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시간을 쪼개지 마세요. 여유를 갖고 안도할 수 있게 시간을 비워주세요. 환경을 바꿔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지식은 일상에서 쌓아야 합니다. 전문 지식만이 최고라는 선입견을 내려놓으세요. 방을 청소하고, 침대를 정리하고, 산책을 하는 일상에서 지식을 쌓아야합니다. 그래야 세계와 나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습니다. 」 관련기사 "하늘 왜 파란 거야?" 묻는 아이…스탠퍼드대 교수 의외의 대답 "자녀들 선행학습은 시대착오" 서울대 교수가 권한 공부법 방이 돼지우리니? 이 말 나올 상황에 부모가 대신 해야할 말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2022.06.21 06:00

  • "자녀들 선행학습은 시대착오" 서울대 교수가 권한 공부법

    "자녀들 선행학습은 시대착오" 서울대 교수가 권한 공부법 유료 전용

    선행학습은 시대착오적입니다. 4차산업 혁명 시대 인재로 키우고 싶다면 심화학습 하게 하십시오.   지난 7일 만난 서울대 재료공학부 황농문 교수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학습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식을 넣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끄집어내는 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능력인데,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그가 심화학습을 강조한 건 그래서다.   황농문 교수는 몰입 전문가로 유명하다. 그가 연구 과정에서 습득하고 활용한 몰입법을 담은 책 『몰입』은 100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다. 그는 “몰입은 생각하는 힘”이라며 “몰입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학습자를 길러내는 학습법”이라고 강조했다.   황농문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는 "생각을 하는 힘이 중요한 시대"라면서 "선행학습이 아니라 심화학습을 해야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  ◇ ‘work hard’에서 ‘think hard’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왜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심화학습을 해야 하나요?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하니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답이 있는 문제를 풀었습니다. 이미 어떤 문제를 풀어서 시장을 지배하고 이끄는 기업이나 국가가 있었고, 우리는 그들을 빠르게 따라가면 됐어요. 소위 패스트팔로잉(fast-following) 전략이 먹혔죠. 이때 필요한 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겁니다. 노동자들은 ‘워크 하드(work hard)’ 전략을 썼어요. 하지만 이제 더는 그렇지 않습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고 하죠. 더는 따라갈 기업도, 국가도 없으니까요. 그럴 때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워크 하드 전략이 여전히 유효할까요?   여전히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뭘 열심히 해야 하죠? 생각이요. ‘싱크 하드(think hard)’ 전략이 필요해요. 뭘 해야 하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못하니까요. 왜냐면 그 누구도 모르니까요. ‘주어지는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니 생각해야죠.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뭘 해야 할지부터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심화학습을 하면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나요? 수학 문제를 받았어요. 보는 순간 풀 수 있으면 바로 풀겠죠. 생각하지 않고요. 그런데 어려운 문제를 받았어요.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요. 그럼 어떻게 하죠? 생각하겠죠. ‘이걸 어떻게 풀지?’ 이러면서요. 제가 심화학습을 강조하는 건 그래서예요.   양육자로서 심화학습보다 선행학습에 대한 부담을 더 크게 느끼거든요. ‘선행을 세 번은 돌려야 한다’는 식의 선행 괴담도 많고요. 선행학습은 주어진 학습 진도를 먼저 하는 거잖아요. 전형적인 워크 하드 전략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절대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없어요. 주어진 학습량을 집어넣고 습득할 뿐이지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끄집어내는 학습이 아니니까요. 선행학습이 아니라 심화학습의 시대입니다.   어려운 문제는 말 그대로 풀기가 쉽지 않은데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계속 생각하라고 하세요. ‘이걸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하고요. 결국은 풀어냅니다.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하면서요. 양육자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아이가 모르는 문제가 양육자 눈엔 쉬워 보일 거예요. 절대 재촉해선 안 됩니다. ‘이것도 못하냐’고 면박 주어서도 안 되고요. 알려주는 것도 물론 안 됩니다. 시간은 얼마가 걸려도 상관없으니 생각해보라고 하십시오. 결국은 풀어냅니다.   그저 생각하기만 하는 거로 충분하다고요? 믿기지 않네요. 2007년에 한 방송에서 중학교 학생 10명을 강당에 데려다 놓고 2박 3일 동안 단 하나의 문제를 풀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미분 문제였는데, 뉴턴이 최초로 해결한 문제였죠. 학생들은 아직 미분을 배우지 않았고요. 제가 아이들에게 당부한 건 딱 하나였습니다. 이 문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니까, 평소 수학 문제 풀 듯 급하게 풀어선 안 된다고요. 느긋하게 마음의 산책을 하듯 천천히 생각하라고요.   그 문제를 아이들이 풀어냈나요? 놀랍게도 시작한 지 2시간 30분 만에 한 학생이 풀어냈습니다. 다음날 또 다른 한 학생이 문제를 해결했고요. 그 뒤로 마지막 날 오전까지 문제를 푼 학생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점심 식사 후에 방향을 좀 틀어줬어요. 정확한 답을 구하려 하지 말고 비슷한 답을 구한 뒤 정확한 값에 가까워지는 식으로 생각해보라고요. 이 힌트를 듣고 한 명이 또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가며 힌트를 두 번 더 주자 마침내 모든 학생이 문제를 풀었어요. 생각은 힘이 셉니다.   황농문 교수는 "워크 하드가 아니라 싱크 하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주장하는 몰입이 바로 집중해서 생각하는 싱크 하드다. 우상조 기자  ━  ◇몰입하고 싶다면, 천천히 생각하라     황 교수가 소개한 미분 문제 실험은 그의 책 『몰입』에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는 책에서 “이 실험은 타고난 고도의 집중을 통한 몰입적 사고가 문제 해결에 더 큰 작용을 한다는 걸 증명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가 말하는 ‘몰입’이라는 것은 결국 생각인 셈이다. 그런데 생각은 누구나 하는 게 아닌가? 생각과 몰입은 같은 것이라면, 왜 모든 사람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되지 못하는 걸까?   몰입이 결국 생각하는 건가요? 집중해서 생각하는 거죠. 여기에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해집니다. 바로 시간이죠. 몰입은 장시간 집중해서 생각하는 겁니다. 신경 정신과적으로 설명하자면 다량의 시냅스가 오랜 시간 활성화된 상태죠. 어떤 문제에 집중해서 장시간 생각하면 아주 많은 양의 시냅스가 활성화됩니다. 우리 뇌의 기량이 커지는 거죠. 그래서 몰입하면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몰입이 생각하는 것이라면, 자료를 읽고 강의를 듣는 건 몰입이 아닌가요?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는 우리 뇌에 뭔가를 입력하는 겁니다.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죠. 주로 이런 건 단기 기억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습득된 것 중 일부가 장기 기억으로 옮겨가고요. 생각을 한다는 건 장기 기억으로 옮겨진 걸 끄집어낸다는 겁니다. 입력이 아니라 인출인 거죠. 입력, 그러니까 기억을 저장하는 건 각성 상태에서 활성화됩니다. 그런데 인출, 기억을 꺼내는 건 이완 상태에서 더 잘 돼요. 그래서 생각할 때는 너무 긴장해선 안 됩니다. 제가 중학생 10명을 모아놓고 미분 문제를 풀라고 할 때 한 말을 기억해보세요.   마음의 산책을 하듯 천천히 생각하라고 하셨죠? 이완 상태에서 몰입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겁니다. 몰입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슬로싱킹(slow thinking)’을 쓰라고 조언하곤 하는데요, 같은 맥락입니다. 실제로 저는 어떤 문제에 몰입할 때 ‘몰입의자’를 써요. 편안한 상태에서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 선잠을 자기도 하고요. 잠은 궁극의 이완 상태에요. 그래서 저는 집중해서 생각하다가 졸음이 오면 그 자세 그대로 잡니다. 보통 20분이면 깨어나죠. 그리고 나면 문제가 더 잘 풀립니다.   아이에게 충분히 시간을 주고, 급하게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말해야 하는 거군요. 비단 공부할 때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더 어린아이들도 집중하는 순간이 있어요. 모래 놀이에 빠져서 불러도 모르는 순간, 고개를 박고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하는 순간 같은 게 바로 그런 순간이에요. 집중해서 퍼즐을 맞추거나 그림책을 보기도 하겠죠. 그런 순간을 잘 포착하세요. 아이가 언제 몰입하는지요. 그런 환경을 조성해주고, 아이가 몰입해 있을 때 그걸 깨지 마세요. ‘밥 먹어’ 하고 부르기 전에 5분만 시간을 더 줘보십시오.    황농문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 있는 '몰입의자'에 앉았다. 그는 연구를 할 때 이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무릎 위에 두고 생각을 이어간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노트북에 메모한다. 우상조 기자  ━  ◇몰입도 가르칠 수 있다? 세 가지를 기억하라     꼭 풀어야 할 절실한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삶을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 성인이라면 몰입을 통해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실한 문제나 강한 의지를 갖기 어려운 아이들은 어떻게 몰입을 경험할 수 있을까? 양육자 입장에서는 이런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하다.   황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험뿐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클럽을 통해 성인뿐 아니라 초등학생에게도 몰입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다. 서울대 산학협력 프로젝트로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몰입 캠프를 연 적도 있다. 그에게 몰입을 가르치는 노하우를 물은 이유다.   아이에게 몰입을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몰입이라는 개념을 창시한 헝가리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명확한 목표 ^실력에 맞는 과제 난이도 ^빠른 피드백을 몰입의 3요소로 꼽았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활용하면 몰입을 경험하게 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세요. 저는 첫째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전국 수석을 해보자고 목표를 제시했어요. 그 얘기만 했을 뿐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어요. 공부하라고 채근하거나 공부를 했는지 확인하거나 하지 않고 그저 매일 아침 차로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목표를 환기하기만 했어요. ‘전국 수석 하면 기자들이랑 인터뷰해야 할 텐데, 준비는 하고 있니?’ 이런 식으로요.   그저 목표를 제시하는 것만으로 몰입하던가요? 처음엔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게임을 하고 TV 보고 그랬죠. 그런데 한 달쯤 지나니까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면 짜증을 내더라고요. 그 행위가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거죠.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달 뒤부터는 게임을 하고 TV 보는 걸 안 하고 공부를 하더군요.   목표에 대한 부담 때문에 오히려 긴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수능 시험 전날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충분히 최선을 다했고, 그걸로 칭찬받아 마땅하다고요. 결과는 내 통제력 밖의 일이라고요. 그러니 그저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목표를 제시하되 목표를 달성하라고 압력을 줘선 안 됩니다. 그저 그 목표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거로 충분해요. 목표를 통해 몰입을 이루어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실력에 맞는, 적절한 난이도의 과제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요? 너무 쉬운 문제를 주면 생각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 문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어려운 문제도 곤란해요. 아이가 처음부터 강도 높은 몰입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처음엔 5분 생각하면 풀 수 있는 문제를 주는 겁니다. 그리고 점점 난이도를 높여서 30분, 1시간을 생각해야 풀 수 있는 문제를 줘야 해요. 제가 2년째 몰입법으로 지도하고 있는 중학생이 있어요. 당진에 사는 친구인데, 그 친구는 2년간 훈련한 덕에 10시간 넘게 생각해서 풀 수 있는 어려운 수준의 문제를 풀어냅니다. 그 친구도 처음엔 5분, 10분 몰입하는 걸로 시작했습니다.   피드백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제를 풀었냐고 묻지 마세요. 생각하고 있다면, 더 생각하라고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답을 찾아내면 칭찬해주시고요. 뭔가를 질문하면, 함께 생각도 해주시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아이가 답을 풀어내도록 힌트를 주는 게 아닙니다. 생각을 멈추지 않도록 격려하는 거죠.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몰입을 통해 뇌의 기량이 올라가는 게 핵심입니다. 어떤 문제를 풀어내거나 개념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요.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결국 풀어낸다는 걸 경험으로 아니까요. 문제 앞에서 주눅 들지 않죠. 황농문 교수는 대학생이나 성인 뿐 아니라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중 자신이 2년 간 몰입법으로 지도해온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영상 속에서 학생은 스스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황농문 교수는 “심층적 학습자를 길러내는 시대를 초월한 학습법이 몰입”이라면서도 “그 어떤 시대보다 지금 필요한 학습법”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답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잖아요. 몰입하는 법을 깨우치게 도와주세요. 그게 선행학습을 다섯 여섯번 돌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 4차산업 혁명 시대엔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문제를 먼저 풀어낸 사람도 없죠. 퍼스트 무버가 되어야 합니다. 이전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워크 하드(work hard)’ 전략이 먹혔다면,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내는 ‘싱크 하드(think hard)’ 전략이 필요합니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려면 선행학습이 아니라 심화학습을 시키세요. ② 장시간 집중해서 생각하는 게 몰입입니다. 몰입하려면 긴장한 각성 상태보다 이완 상태가 유리해요. 천천히 마음의 산책을 하듯 생각해야 합니다. 슬로 싱킹(slow thinking)해야 몰입할 수 있습니다. ③ 아이에게 몰입을 가르치고 싶다면 몰입의 3요소를 활용하세요. 먼저 명확한 목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실력에 맞는 적절한 난이도의 문제를 줍니다.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 안 됩니다. 마지막으로 피드백하세요. 계속 생각하도록 격려하는 게 피드백의 핵심입니다.  」 관련기사 "하늘 왜 파란 거야?" 묻는 아이…스탠퍼드대 교수 의외의 대답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2022.06.14 06:00

  • "하늘 왜 파란 거야?" 묻는 아이…스탠퍼드대 교수 의외의 대답

    "하늘 왜 파란 거야?" 묻는 아이…스탠퍼드대 교수 의외의 대답 유료 전용

    아이의 질문을 기록하세요. 그리고 관찰해보세요. 질문을 보면 아이의 숨겨진 역량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폴 김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교육대학원 부학장은 “어떻게 해야 질문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아이에게 좋은 질문을 끌어내려면 우선 아이의 관심사부터 파악해야한다는 얘기다. 그는 “질문이 없으면 답도 없다”며 “생각을 주입하지 말고,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유도하라”고 강조했다.   지난 5월 31일 줌으로 만난 폴 김 스텐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은 ″질문 잘 하는 아이를 키우려면 아이의 질문을 잘 관찰하라″고 조언했다. [사진=한빛비즈] 폴 김 부학장은 질문을 가르치는 교수로 유명하다. 학창시절 하위 1% 그룹 학생이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컴퓨터공학과 교육공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학생들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게 도와주는 교수가 됐다. 공부 못한다고 주눅 든 아이를 보면 동병상련을 느껴서란다. 숨겨진 역량을 발견해 줄 코치가 옆에 있다면 누구든 자신처럼 성장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지금도 그는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며 배우고 있다. 배움의 과정에서 반드시 물어야 할 질문을 모아 『다시, 배우다』도 썼다. 그는 “누구나 변화를 꿈꾸며, 변화는 질문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그가 질문 안에 아이의 역량이 숨어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아이의 질문과 역량,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거꾸로 질문을 드려볼게요. 아이들은 언제 질문할까요?     궁금할 때겠죠?  질문이 생긴다는 건 관심이 있다는 겁니다. 관심이 생기면 궁금하고, 알고 싶고, 자꾸 생각나죠. 질문은 아이의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질문이 아이의 역량을 개발할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아이가 오늘 하루 무슨 질문을 했나 들여다보라고 하는 건 그래서죠.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우선 아이의 질문을 기록하세요. ‘질문 일기’를 써보는 겁니다. 아이가 오늘 하루 어떤 질문 했는지, 몇 개의 질문을 했는지요. 질문을 보면 아이의 관심과 생각의 패턴을 찾을 수 있어요. 그리고 아이의 관심사를 연결해 보세요. 예를 들어 아이가 주로 동물에 연관된 질문을 한다. 그런데 질문의 어휘력이 남다르다. 그럼 그 두 가지를 연결해서 ‘동물 언어학’이라는 키워드를 만드는 겁니다. 그럼 아이에게 이렇게 물을 수 있겠죠. “동물들은 평소에 무슨 말을 할까?” 장기적으로 보면 동물의 언어학, 동물 신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까지 개척할 수 있고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수많은 질문 속에서 숨어 있는 생각을 끌어내야 하거든요. 그걸 부모가 도와줘야 합니다.   질문이 없는 아이들도 있어요. 입을 꾹 다물고 있죠. 이런 아이들은 호기심이 없는 걸까요?    질문 없는 아이는 없습니다. 묻고 싶지만, 못할 뿐이에요. 환경이 생각할 힘을 억압하고 질문하지 못하게 하는 거죠. 제가 살아있는 증거잖아요(웃음). 학창시절 저는 궁금한 게 많았어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질문을 못 했어요. 물어보면 맞았거든요. 질문하기가 두려워서 늘 입을 다물고 앉아만 있었죠. 그런데 집에 오면 돌변해요. 부모님이 독립적으로 키우셨거든요. 스스로 생각하고, 찾아보고, 결정하게 하셨어요. 자율적으로 생각하면서 성장한 거예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질문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드셨으면 해요. 거창한 게 아니에요. 아이가 학교에서 오면 “오늘 뭐 했어?”라고 묻기보다 “오늘은 무슨 질문 했어?”라고 물어본다거나 아이 스스로 하루 계획표를 짜게 하는 거예요. 스스로 해 본 경험을 통해 주체적으로 생각할 힘을 길러주라는 겁니다.    폴 김 부학장은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없는 오지에 물자를 실어나르기 위해 경비행기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이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배우며 성장하는 학생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한빛비즈]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런데 부모 입장에서는 여행이나 캠핑 같은 체험 학습을 시키라는 말로 들려요. 부담되는 게 사실입니다.    경험이라는 게 반드시 특별한 장소에서 몸으로 체험해보라는 게 아닙니다. 질문을 떠올릴 경험을 늘리라는 얘기입니다. 종이 한 장으로도 가능해요. ‘종이는 어떻게 만들지?’ ‘어떻게 하얀색이 됐을까?’ ‘물에 젖지 않는 종이는 어떻게 만들까?’ 등 아이와 앉아서 수십 가지의 과학 현상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일방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는 것, 이게 경험이에요.    부모가 공을 많이 들여야 한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아이는 공짜로 크지 않습니다. 질문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으면, 아이한테 관심을 갖고 시간을 투자해야 합니다. 돈 주고 맡긴다고 될 일이 아니에요. 학원에서 아이가 어디에 관심을 보였는지, 어떤 질문을 했는지 모르죠. 기억하세요, 부모가 귀찮아할 수록 좋은 질문은 나올 수 없습니다.      ━  질문에도 급이 있다   폴 김 교수는 지구촌을 돌아다니며 ‘국경 없는 교육’을 실천하는 교육자로 유명하다. 케냐, 르완다, 탄자니아 등 개발도상국 400만 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스마일(SMILE) 프로젝트’는 2016년 유엔 미래교육혁신기술로 선정되기도 했다. 열악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질문하는 능력을 키워주자는 게 그의 목표다. 폴 김 교수는 “학생의 질문을 통해 배움의 수준과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라며 “수준 높은 질문을 할 수 있어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마일(SMILE)’은 어떤 프로젝트인가요? ‘Stanford Mobile Inquiry-based Learning Environment’의 약자예요.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프로그램인데요. 아이들이 직접 질문을 만들고, 공유하고, 풀어보고, 질문을 서로 평가하고, 수정하는 과정으로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산수 문제를 만들라’고 과제를 줍니다. 그러면 각자 질문을 만들어 기기에 입력해요. 학생이 30명이면 질문 30개가 생기죠. 아이들은 서로의 질문에 답을 찾은 뒤 질문을 평가합니다. 이 친구 질문은 5점, 저 친구 질문은 3점 이런 식으로요.    스마일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탄자이나 학생들. 아이들이 폴 김 부학장이 개발한 '스마일 플러그'라는 기기를 이용해 질문을 공유, 평가하고 있다. [폴 김 교수 제공] 질문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나요?   얼마나 새로운 생각을 떠오르게 하였느냐에 달렸어요. 좋은 질문을 구별하려면 우선 미국의 교육 심리학자 벤자민 블룸의 사고 체계를 이해해야 합니다. 블룸은 우리의 사고 과정을 기억→이해→응용→분석→평가→창조 단계로 나눴어요. 이에 근거해 질문의 수준도 나뉩니다. 암기한 정보를 확인하기 위한 질문은 가장 낮은 수준이에요. 흔히 단답형이라고 부르죠. 그다음 2단계는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질문, 3단계는 새로운 지식이나 환경을 적용해 생각하게 하는 질문, 4단계는 또 다른 범주의 개념과 비교 분석해 차이점을 찾게 하는 질문, 5단계는 주어진 정보를 기준으로 어떤 현상을 평가하게 하는 질문으로 구분하죠.   그럼 마지막 최상위 질문은 어떤 질문인가요?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는 질문이에요. 예를 들어 ‘대한민국 대통령은 누구인가?’가 1단계 하위 질문이라면 ‘새 대통령의 임기 5년 뒤 한국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는 최상위 질문입니다. SMILE 프로젝트가 추구한 건 스스로 문제점을 찾아 질문을 끌어내고 그 질문에 대한 해결책과 방안을 생각하게 하는 거였어요. 실제 에티오피아에서 이 수업을 6개월 동안 해봤더니 아이들의 질문이 점점 향상돼요. 예를 들어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침공한 해는?’이라는 단답형 질문을 하던 아이가 6개월 뒤 ‘에티오피아 여성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만들어요. 주어진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했던 아이가, 정보를 이해·응용·분석·평가해서 창조하는 단계에 다다른 거예요.      수준 높은 질문을 하기까지 어떤 연습을 한 건가요?  『교육의 미래, 티칭이 아니라 코칭이다』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데요. 질문을 까다롭게 만드는 거예요. 예를 들어 SMILE 프로젝트에서는 주로 객관식 선택형 질문을 만들라고 했는데요. 선택지를 만들 때 단답형의 확실한 답이 아니라 복수의 답을 만들게 했어요. 답인 것 같으면서 답이 아니고, 답이 아니지만, 답 같은 것들을 선택지로 넣으라 했죠. 질문과 답을 자꾸 유추하다 보면 주어진 주제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거든요. 비교하고, 분석하고, 평가하는 과정을 거치는 거예요. 무엇보다 그 안에서 개념과 개념을 연결하는 능력도 자라고요. 코스타리카에서 모바일 교육 중인 폴 김 스텐퍼드대 교육대학원 부학장. [사진=한빛비즈]   연결성이요? 조합을 통해 새로운 걸 창조하는 거예요. 질문하는 훈련이 되어 있으면 유연한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연결성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이것과 저것을 연결하면 어떻게 될까’이런 식으로요. 더 나아가 새로운 직업도 만들어 낼 수 있는데요. 역량 하나를 'n'이라고 해볼게요. 배움을 통해 두 가지 n을 섭렵했다고 해서 2n이 되는 게 아니에요. n 제곱이 돼요. 역량끼리 연결되면서 시너지를 내는 거예요. 결국 연결할 수 있는 능력은 4차산업시대의 핵심이 될 거예요. 미래에는 현재의 직업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계속 생겨난다는 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때 질문하고, 조합할 줄 알면 미래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핵심 역량을 갖추게 되는 거죠.    ━  질문에는 질문으로 답해라     창의적 질문을 할 줄 알면 연결할 줄 알고, 연결할 줄 알아야 창조와 혁신할 수 있다는 것이 폴 김 교수의 주장이다. 하지만 모든 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다. 수준 높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질문하는 습관부터 형성해야 한다. 폴 김 교수는 “어려워할 것 없다”고 했다. 그저 “부모부터 질문에 익숙해지라”고 했다.     질문은커녕 어떻게 답해줘야 할지 막막한 게 사실이에요.   그럴 필요 없어요. 정답을 말해야한다는 부담부터 내려놓으세요. 아이가 “하늘은 왜 파란색이야?”라고 물으면 대답하지 마세요. 아이에게 되물으세요.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라고요.   그다음은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주고받는 겁니다. 아이의 질문에 계속 질문으로 답해주는 거예요. 이게 바로 ‘코칭’입니다. 아이의 질문에 과학적 지식으로 답해주는 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티칭’이에요. 정보를 주입하는 거죠. 질문을 던지는 건 생각을 유도하는 거예요. 잘 가르치는 교사는 질문도,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같이 생각해 볼까?”가 전부예요. 학생이 묻고, 학생이 답하고, 학생이 서로 평가하게 ‘브레인스토밍 파트너’가 되어 주면 됩니다. 폴 김 교수가 탄자니아에서 '스마일 프로젝트' 수업을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2016년 유엔 미래교육혁신기술로 선정됐다. [사진=한빛비즈]   하지만 막상 아이가 질문을 던지면 막막해요. 빨리 답을 줘야 할 것 같아요. 질문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요. 학창시절을 떠올려보면 질문 잘 안 했잖아요. 그저 대학 하나만 바라보며 외우기 급급했죠. 그 틀을 깨야 해요. 질문하는 습관을 기르기 위한 세 가지 게임을 제안할게요. ‘업앤다운(Up&Down)’, ‘왜냐하면(Because)’, ‘만약에(IF)’ 게임이에요. 업앤다운 게임부터 설명하죠. 한 가지 주제를 갖고 아이가 먼저 올라가거나 늘어나는 상황을 이야기 하면, 부모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내려가거나 줄어드는 상황을 제시하는 거예요. ‘성적이 올랐다 → 공부하라는 소리가 줄어든다 → 내(아이) 기분은 좋아진다 → 엄마의 걱정은 줄어든다’, 이런 식으로요. 다음은 ‘왜냐하면(Because)’ 게임이에요. 앞사람이 한 말에 대한 근거를 뒷사람이 말하는 거예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졌어 → 왜냐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위협적으로 느껴서야 → 왜냐하면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러시아의 유럽 내 입지가 좁아지기 때문이야 → 왜냐하면 입지가 줄어들면~’, 이런 식으로요.    ‘만약에(IF)’ 게임은 뭔가요?  말 그대로 상상이에요. ‘만약에 학교에 못 간다면 어떨까? → 친구들이 보고 싶을 거야 → 만약에 친구들을 영영 못 만난다면 어떨까? → 외로울 거야 → 만약에 외롭지 않으려고 매일 채팅만 하면 어떨까?’. 이렇게 질문하기 시작하면 주제를 분석할 시간이 많아져요. 분석적 사고는 창의적인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수준 높은 질문도 수월해지고요. 이런 게임을 통해서 아이들이 생각을 이어가고, 끊임없이 묻게 하는 액셀러레이터가 되어야 합니다. 한 가지 더 당부하고 싶은 건 부모도 아이와 함께 똑같이 스스로 질문을 던지라는 겁니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질문, 성찰 질문을요. 관련기사 방이 돼지우리니? 이 말 나올 상황에 부모가 대신 해야할 말   성찰 질문이요? 부모 스스로 어느 위치에 있는지 항상 체크하셔야 해요. 아이를 키우는데 완벽한 조건과 환경은 없습니다. 돈과 명예도 관련이 없고요. 그렇다면 아이의 성장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부장적이지는 않은지, 아이 스케줄을 쥐락펴락하는 헬리콥터 맘은 아닌지, 아이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고 판단할 기회를 줬는지 등등 자신에게 물어보셔야 합니다. 내가 어떤 성향의 부모인지 그걸 관찰하지 않고서는 아이를 코치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는 아이든, 어른이든 ‘내가 올바른 위치에 있느냐(Am I at the right place)’를 되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지금보다 한발 더 나아가 배우고 성장하겠다는 목표와 용기가 생긴다는 것이다. 폴 김 교수는 “아이가 질문이 많다면 복 받은 거고, 황당한 질문을 한다면 아이한테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질문은 귀하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부모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만약에 앞으로 내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이 딱 3년뿐이라면, 무엇을 가르칠 건가요? 내 아이만의 엄청난 역량 3가지가 있다고 한다면, 어떤 경험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살게 할 건가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 아이의 질문 일기를 써보세요. 오늘 하루 아이가 무슨 질문을, 몇 개 했는지 기록하는 겁니다. 질문을 보면 아이의 관심과 생각의 패턴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숨어 있는 아이의 역량을 관찰해 키워주세요.  · 수준 높은 질문을 유도해 주세요. 학습 후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보게 하세요. 정보를 확인하는 수준의 하위 질문보다 혁신적이고, 창의적 생각을 하게 만드는 상위 질문이면 좋습니다. 생각을 유추하게 하는 질문을 만들다보면 아이의 사고도 유연해집니다.   ·질문에는 질문으로 답해주세요. 부모도 질문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아이의 질문에 답하지 말고, 똑같이 질문으로 받아치세요. 질문 습관을 들이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질문 게임을 추천합니다.   」 관련기사 사실도 아닌 신화, 왜 읽혀야 하나…네 아이 키운 서울대 교수 답 "학교 관두기 전 체크해야 할 3가지는?"…자퇴생 출신 홈스쿨링 전문가의 조언 “메타인지 키우고 싶다면, 채점 해주지 마라” 리사 손 버나드대 교수이민정기자lee.minjung2@joongang.co.kr

    2022.06.07 06:00

  •  “절대 개입하지 말라, 그래야 멘탈갑 된다”

    “절대 개입하지 말라, 그래야 멘탈갑 된다” 유료 전용

    절대 개입하지 마세요. 영원히 해결해줄 수 없잖아요. 그렇다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르게 해야죠.   “OOO 때문에 학교 가기 싫다”라거나 “친구가 없다”고 호소하는 아이에게 양육자는 무엇을 해줘야 할까? 『초등자존감수업』의 저자이자 17년 차 교사인 윤지영 씨는 “개입해선 아이의 문제해결력을 기를 수 없다”고 했다.     『초등자존감수업』을 쓴 윤지영 교사는 "친구 문제로 고민하는 아이를 위해 양육자가 해야 할 일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감정 해결"이라고 말했다. 제주=우상조 기자 교실 내 갈등이 불거지기 시작하는 건 4~5월이다. 한 달여 간의 탐색기를 마친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관계를 맺고 교류하기 때문이다. 알림장이나 학습안내문에 ‘친구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하지 않기’ 같은 말이 등장하는 게 바로 이 시기다. 올해는 코로나19로 3월 한 달간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그 시기가 한 달 정도 늦어졌다.   윤지영 교사는 “(성향이) 맞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아이들은 그걸 모르기 때문에 갈등이 빈번하게 생긴다”며 “갈등 해결 역시 미숙해 절교하는 아이와 전학 가고 싶어 하는 아이가 매일 생기는 게 초등학교 교실”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관계 맺기에도, 갈등 해결에도 미숙한 아이들을 위해 양육자가 해야 할 일은 뭘까?    ━  ①문제를 해결하지 말고 감정을 해결하라     윤지영 교사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상처받은 아이의 감정을 어루만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회복탄력성을 키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해야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갈등이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면 자신에 대한 자긍심과 효능감이 높아져 자존감이 수직상승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친구 문제 때문에 학교 가기 싫다고까지 하는데 개입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요? 아이들 사이에 일어난 문제에요. 엄밀하게 말하면 부모는 제삼자죠. 양육자가 문제를 해결해주는 건 부부싸움에 양가 부모가 나서는 것과 같아요. 아이를 존중해주세요.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거로 충분합니다.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요? 5학년 담임을 할 때 일이에요. 한 아이가 1학년 때 엄마한테 서운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친구하고 갈등이 있어서 얘기했는데 엄마가 ‘어떻게 엄마가 모든 걸 해결해줘? 엄마 일하잖아. 안 맞으면 그 친구랑 놀지 않아도 돼’라고 했대요. 엄마가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랐던 거냐고 물었더니 아니래요. 그냥 속상해서 말한 거래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속상했겠다”라고 해주면 되는 거였나요? 그게 바로 감정해결입니다. 아이가 친구 문제로 힘들다고 말했을 때 양육자가 해주어야 하는 건 속상한 감정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거예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요.   위로해준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요. 아이는 계속 그 문제 때문에 고통받을 텐데요? 속상한 그 순간 아이가 어떻게 해야 했는지 알려주세요. 자꾸 놀리는 친구 때문에 속상해하면, 친구가 놀릴 때 ‘기분 나쁘니까 놀리지 말아 달라’고 말하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요. 그냥 당하는 거죠. 그래서 계속 억울한 기분이 드는 거고, 그래서 엄마한테 얘기하는 거예요. 이때 아이를 놀린 친구 부모에게 전화해서 “사과하게 해달라”고 요구해선 안 됩니다. 아이에게 그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줘야죠.   문제에 개입해서 해결해주지 말고, 아이의 멘탈을 단단하게 만들라는 건가요? 결국 그 문제 속에 있는 건 아이니까요. 스스로 그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돕는 게 양육자가 할 일이에요.   그래도 아이가 계속해서 힘들어하면 어쩌죠? 아이 문제에 개입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 아이를 힘들게 하는 친구 부모에게 연락하는 겁니다.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죠. 그럴 땐 담임 교사와 상담하세요. 양육자는 모르는 아이의 사회생활을 아는 사람이 담임 교사입니다. 혹시 내 아이의 행동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갈등하는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아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할 수 있는 사람이죠. 아이가 문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현장에서 도울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아이가 “나는 친구가 없다”고 호소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워킹맘들의 고민이에요. 코로나19로 쉬는 시간이 줄면서 학교 밖에서 친구와 만나서 노는 게 관계를 만드는 데 중요해졌다고 하더라고요. ‘엄마 친구=아이 친구’라는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엄마가 나서서 친구들과 노는 자리를 만들어주면 확실히 관계 맺는 데 유리하죠. 하지만 그건 길어봐야 3~4년이에요.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그렇게 친구를 만들어줄 수 없어요.   그럼 워킹맘은 그 3~4년을 어떻게 버텨야 하죠? 아이가 ‘친구가 없다’고 할 때 심각해지지 마세요. 양육자가 큰일 난 것처럼 굴거나 아이보다 더 걱정하면 아이의 문제는 비극이 되어 버립니다. 해결도 못 해주면서 문제를 키우는 꼴이죠. 다음날 가방을 메고 비극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 양육자가 아니라 아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그럴 수도 있는 일이고, 친구는 없다가도 생기는 거라고 알려줘야 합니다. 친구가 없을 때 쉬는 시간에 놀 수 있는 방법을 권하는 것도 좋아요. 읽을 책을 가져가거나 그림 그릴 걸 가져가는 식으로요. 그러면 그것에 관심 있는 다른 아이가 “그 책 뭐야?”라고 물어오면서 친구가 생길 수도 있고요. 윤지영 교사는 지난 24일 비대면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가 비대면으로 이뤄진 건 그가 아이들과 함께 제주에서 2년 째 살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 문제로 힘들어 하지 않으려면 부모와의 단단한 관계가 중요하다"는 그답게 아이들과의 시간을 더 많이 갖기 위해 휴직을 선택했다. 제주=우상조 기자    ━  ②싸우지 마라? 잘 싸워라!     윤지영 교사는 “아이에게 싸우지 말라고 말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어른도 싸움을 피할 수 없는데,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초등학생에게 싸우지 말라는 건 숨 쉬지 말라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잘 싸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잘 싸우라니, 도대체 어떻게 싸우는 게 잘 싸우는 건가요? 친구를 때리거나 욕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말로 전달하면 됩니다. 싸우지 말라는 건 불편하거나 억울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말라는 의미에요. 양육자 편하려고 하는 말이죠.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랑 싸우면 피곤하잖아요. 싸움을 피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설혹 조금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더라도 내가 불편하고 억울한 감정을 느낀다면 표현할 줄 알아야죠.   불편한 감정이 들 때 친구에게 그걸 표현해서 싸웠어요.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싸우고 화해할 때 자존감이 높아집니다. 갈등 상황을 해결했잖아요. 스스로 유능하다는 생각이 들죠. 그래서 싸웠다면 꼭 화해하게 하는 게 중요합니다.   어떻게 화해하게 하죠? 3월 첫날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싸워도 된다고요. 다만 때리거나 욕을 해선 안 된다고요. 그리고 반드시 화해하라고 해요. 만약 친구들끼리 해결이 안 되면 저한테 오라고요. 화해하도록 만드는 알고리즘이 있습니다. 화해 의향이 있는지 먼저 물어요. 양쪽 모두 의향이 있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됩니다. 한쪽만 의향이 있어도 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요. 사과해야 하는 아이가 의향이 있다면 사과하게 합니다. 용서하라고 강요하진 마세요. 바로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하루 뒤에 한 번 더 물어요. 그럼 대부분 받아들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누그러지니까요. 그래도 안 되면 부모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대부분 도와주세요. 열이면 열 ‘친구가 그렇게 사과하는데 한 번 용서해주라’고 하시죠. 만약 사과해야 하는 아이의 의향이 없다면, 상황을 설명해줘요. 오해를 푸는 거죠. 그럼 대부분 사과하겠다고 합니다.   둘 다 화해할 의향이 없으면 어떻게 하죠? 상황과 그 상황에서 두 아이가 느꼈을 감정을 충분히 설명해줍니다. 그러면 대개 문제가 풀려요. 그래도 두 아이 모두 화해할 생각이 없다면 둘을 분리하고 시간을 주면 됩니다.   말씀하신 화해의 알고리즘은 교사만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양육자는 뭘 해야 하죠? 교사에게 도움을 청하세요. 교사가 적극적으로 중재해준다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겁니다. 그런데 모든 교사가 그러지 않을 수 있어요. 교사마다 교수법과 학급 운영법이 다르니까요. 그럴 땐 더는 아이가 불편하지 않게끔, 그러니까 갈등이 더 생기지 않게 도와달라고 요청하십시오. 많은 문제는 시간이 해결하니까요. 윤지영 교사가 추천한 화해의 알고리즘. 양육자가 직접 이 알고리즘을 실천하긴 힘들지만, 교사의 도움을 얻어 갈등에 직면한 아이가 반드시 화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③따돌림당한다면 반드시 개입하라     “절대 개입하지 말라”고 강조하던 윤지영 교사가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고 말한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따돌림이다. 그는 “따돌림은 피해 아이가 잘못해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아이가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할 수도 없다는 얘기다. 부모가 개입해야 하는 이유다.   왕따 문제를 보면, 정도가 심한 경우는 아주 많진 않은 것 같아요. 오히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는 경우가 많죠. 은근한 따돌림, ‘은따’라고 하죠. 아이는 표 안 나게 은근히 배제당해요. 친구들끼리 속닥거리기도 하고요.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느끼는 괴로움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하지만 대처하기 힘들어요. 오히려 따돌린다고 지목받은 아이가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하고요. 이런 현상은 초등학교 고학년 교실에선 별로 일어나지 않아요. 오히려 저학년 교실에서 빈번히 일어나죠.   저학년 교실에서요? 초등학교 고학년 교실에서 일어날 것 같은데, 의외네요.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도덕성 수준이 높아져 따돌림은 나쁘다는 걸 알거든요. 혹시 누군가 특정 아이를 따돌려도 동조해선 안 된다는 걸 압니다. 그런데 저학년은 그렇지 못해요. 친구를 따돌리는 게 잘못된 행동이라는 인식이 없어 더 잔인할 수 있죠. 주동하는 친구를 쉽게 따라 하고요.   아이가 친구들로부터 은근히 따돌림을 당할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반적인 갈등과 마찬가지로 개입부터 하려 들면 안 됩니다. 섣불리 개입했다가 가해 학생이 상황을 부정하면 피해 아이만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고 상황이 끝날 수 있거든요. 상황을 충분히 관찰하고, 확실한 물증이 있을 때만 개입하는 게 좋습니다.   개입하기보다 일단 관찰하라는 건가요? 저절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학년이 올라가고 새롭게 반이 편성되면 모든 관계가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니까요. 갈등하는 친구와 헤어지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니 조급하지 말라는 겁니다. 또 한가지, 왜 아이에 따돌림을 당하는지 원인을 파악해야 해요. 만약 다른 아이들의 질투심 때문이라면 그 심리를 설명해주세요. 질투하는 심리를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피해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요. 혹시 내 아이가 아이들이 싫어할 만한 행동을 한다면, 그걸 교정해주세요. 저학년 때는 코를 파는 식의 사소한 행동으로도 누굴 배제할 수 있거든요.   만약 그렇게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면요? 담임 교사에게 상황을 알리는 게 먼저입니다. 아이가 놀림을 당하고 배제되는 이유가 뭔지 확인하고, 따돌리는 집단의 범위를 확인하는 것도 필요해요. 반 전체가 그러는지, 특정 집단이 그러는지에 따라 대처법도 달라지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동자가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만약 주동자가 있다면 교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해야 해요. 양육자도 그렇게 요구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가해 학생 부모와도 대화해야 하고요.   따돌림 때문에 상처받은 아이에겐 어떻게 해주어야 할까요? 아이에게 문제 상황을 정확하게 알려주는 게 우선입니다. 아이가 혹시 친구들이 싫어하는 특정 행동을 한다면 교정하게 하고, 그런 게 없다면 친구들의 질투심 때문이라는 걸 알려주어야 해요. 그리고 상황이 반복될 때 대처하는 방법도 알려주세요. 괴롭히는 상대에게 싫다는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하라고요. 무엇보다 아이 곁에 엄마 아빠가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소외감이 시달리는 아이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친구와의 갈등 문제에 개입해선 안된다"고 강조한 윤지영 교사가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고 한 문제가 있다. 바로 따돌림 문제다. 제주=우상조 기자   윤지영 교사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친구는 생존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때 아이가 친구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지키려면 부모와의 관계가 단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가정에서 정서적인 안정감을 느끼면 또래 그룹으로부터 독립되어 자신만의 영역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바쁜 시간을 쪼개 『초등자존감수업』을 쓴 이유도 그래서다. 그는 “아이와 단단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 양육자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말했다.   “차가 달려들면 몸을 던져 아이를 구하잖아요. 아이의 감정도 그렇게 돌봐주세요. 양육자가 불같이 화를 내거나 불편해하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말하지 못해요. 단단한 관계가 만들어질 수 없죠. 물리적 안전만큼 중요한 게 정서적 안전입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문제를 해결하지 말고 감정을 해결하라. 아이가 친구 문제로 힘들어 할 때 절대 개입해선 안된다. 상처받은 아이의 감정을 어루만져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게 먼저다. 그래야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②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지 마라. 아이에게 잘 싸우는 법을 알려줘라. 불편한 감정을 느낄 때 불편하다고 말할 줄 아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단 친구를 때리거나 욕하는 건 절대 안된다. ③따돌림당한다면 반드시 개입하라. 따돌림은 피해 아이가 잘못해서 일어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교사에게 도움을 청하고, 필요하다면 가해 아이의 부모와도 대화하라. 」 관련기사방이 돼지우리니? 이 말 나올 상황에 부모가 대신 해야할 말"우리 애가 산만해서요" 이런 솔직함, 득일까? 현직 교사의 답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2022.05.31 06:00

  • 방이 돼지우리니? 이 말 나올 상황에 부모가 대신 해야할 말

    방이 돼지우리니? 이 말 나올 상황에 부모가 대신 해야할 말 유료 전용

    ①아이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②아이에게 내가 생각한 정답을 강요하곤 한다. ③아이와 대화할 때 주로 내가 말한다.   양육자가 아이와 대화하는 노하우를 묻자 서울여대 아동학과 남은영 교수는 3가지 체크 리스트를 들이밀었다. 대화법에 앞서 평소 아이에게 하는 말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이 세 가지 사항에 대해 선뜻 ‘아니요’라고 답하지 못한다면 “잔소리 좀 하는 양육자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남은영 서울여대 아동학과 교수는 "부모-자녀 간 갈등은 양육자의 말에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며 "양육자의 말부터 점검해보라"고 조언했다. 김현동 기자 남은영 교수는 부부 상담 및 감정 코칭의 대가로 꼽히는 미국 워싱턴대 존 가트맨 명예교수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로 유명하다. 2007년부터 대학에서 아동심리학과 교수로 강의하며 부모와 자녀 간 관계 및 정서를 주로 연구해왔다. 지난17일 방영한 'EBS 다큐프라임-아동인권'에서는 제작진과 함께 부모의 잔소리와 아이의 말대꾸를 주제로 8쌍의 부모·자녀 대화 실험을 진행했다. 남 교수는 “양육자는 자신의 정답을 강요하는 식으로 말하고, 아이는 변명하는 방어형 대화 패턴이 주를 이뤘다”고 말했다. 양육자의 말하는 방식이 자녀와의 대화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아이와 대화하는 법을 묻는 말에 체크 리스트를 내민 이유다.    남 교수는 “대화법을 배우기 전에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한다”며 “말은 관계 맺기 위한 도구인 만큼 말 속에 숨겨진 정서부터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험 결과 양육자가 답을 강요하는 식의 대화를 한다고 하셨는데요, 소리치고 윽박지른다는 얘긴가요? 이런 대화법을 지배하기 형 대화라고 해요. 양육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이끌려는 대화죠. 양육자의 주장을 반복해서 주입하고, 강요하는 거예요. 윽박지르고, 공포감을 조성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아이가 행동과 생각을 바꿀 때까지 지속해서 설득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머리로 잘 그려지지 않네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하는 걸까요? 학원 문제를 놓고 양육자와 아이가 충돌한 사례를 들어볼게요. 아이는 집 근처 학원으로 옮기고 싶다고 해요. 친구들이 많이 다니는 학원이라면서요. 양육자는 “네 말은 ‘친한 친구들이 다니니까 가고 싶다’는 말로밖에 안 들려. 어떻게 생각해?”라고 묻습니다. 어떤 감정이 드세요?    기분이 썩 좋지 않은데요? 양육자가 듣고 싶은대로 듣고 해석한 거 같거든요.  양육자는 아이의 말을 무시했죠. 아이는 긴장합니다. 그리고 방어하죠. “어… 학원 일찍 끝나면 시간이 남아요, 인터넷 강의로 보충하면 될 거 같아요”라고요. 두 번째 이유를 찾은 거예요. 이번에는 양육자가 이렇게 말해요. “‘될 것 같아’ 잖아. 구체적인 계획은 없잖아”.    말문이 막히는데요?   양육자는 애당초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었어요. 흔히 벽하고 얘기한다고 하죠. ‘내 말은 맞고 네 말은 틀렸어’라는 걸 전제로 아이의 말은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반복해서 본인 생각을 강요합니다. 이게 바로 잔소리예요. 무시당한 아이는 멋쩍어하면서 긴장합니다. 그리고는 일단 반박합니다. 양육자는 그걸 말대꾸라고 부르고요. 아이는 어느 순간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입을 닫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 잘되라고 하는 말이잖아요. 아이가 부모를 믿고 따라와 주면 좋을 텐데요.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 그런데 걱정과 강요는 달라요. 강요는 상대의 행동을 통제하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되죠. 특히 한국 문화에는 아이를 내 소유물, 내 분신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 결과 양육자가 원하는 방식의 삶을 아이에게 강요하곤 해요. 그래서 양육자가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고 있는지 점검해보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이를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인격체로 바라본다면 말하는 방식도 달라지겠죠.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면, 말하는 방식도 달라진다는 건가요?   고운 말을 하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니까요. 팁을 하나 드릴게요. 거울을 들여다보세요. 아이에게 했던 말을 거울 앞에서 똑같이 해보세요. 그리고 여러분의 표정과 목소리를 관찰해보세요. 동영상으로 찍어봐도 좋습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아이가 느꼈을 감정에 공감해보세요. 아이의 표정도 잘 들여다보시고요. 아이가 어떤 말을 들었을 때 표정이 어두워지는지요. 거울 앞에서 아이에게 했던 말을 똑같이 재현하며 말 습관을 고칠 수 있다. 김현동 기자   제 모습을 보면 부끄러울 거 같아요. 오히려 아이에게 말 걸기가 조심스러워지면 어쩌죠?     부끄럽다는 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인지했다는 겁니다. 그럴 땐 솔직하게 사과하세요. “미안해”라고요. 대화 실험에서 양육자가 사과하자 아이가 닫았던 입을 열었어요. 양육자의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었고, 자신이 왜 반박했는지 설명을 하는 거죠. 이때 양육자가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라고 하니, 아이가 웃어요. 자신의 말을 수용하고 인정해주니까 마음이 풀린 거예요. 여기서부터 긍정 대화가 시작되는 거죠. 양육자가 자신의 잘못,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관계의 문이 열린 겁니다. 실험을 설계한 사람으로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말에는 화자(話者)의 정서가 숨어 있어요. 서로의 정서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기 위해 대화하는 거고요. 양육자가 지배하기 형 말을 하면 아이도 똑같이 대꾸합니다. 반대로 양육자가 수용하고, 인정하고, 관심을 보이면 아이도 양육자의 말에 똑같이 대응하고요. 말은 정서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는 도구라는 걸 기억하세요.    ━  "정답을 말하지 말고, 감정에 호응해주세요"     남 교수는 부모와 자녀 간 대화를 분석하기 위해 젠가 게임 교육을 고안했다. 젠가는 제한된 시간 안에 나무토막을 쌓아야 하므로 참여자의 스트레스를 자극한다. 연구팀은 게임에 참여한 아이의 감정에 양육자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분석해 부모 자녀 관계가 어떤지 상태를 진단했다. 그 결과 한국 양육자의 특징이 발견됐다. 성취지향형 대화가 그것이다.    성취지향형 대화, 어떤 대화인가요? 양육자가 감독·코치가 되어 게임을 진두지휘하는 거예요. “여기로 옮겨봐”, “이렇게 쌓아봐”가 대표적이죠. ‘양육자는 게임에 직접 참여하지 마세요’라는 게임 법칙이 있었지만, 성공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 게임에 개입합니다. 정답을 알려주려는 거죠. 반면 미국 양육자들은 달랐어요. 그저 지켜봅니다. 아이가 나무토막을 쌓을 때마다 “잘했네”하고 칭찬하는 게 전부였죠.   부모 말 들어서 나쁠 것 없다고 하잖아요. 조언을 해줬을 뿐인데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양육자의 도움을 받은 아이는 성공 확률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게임을 온전히 즐기지 못했어요. 양육자의 지시에 짜증을 냈고, 성공에 대한 성취감도 낮았습니다. 혼자 힘으로 성공한 아이가 느낀 성취감의 절반 수준이었는데요. 아이가 자신이 성공한 건 양육자의 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눈에 띈 건 실패하고도 웃는 아이들이었어요.     실패하면 속상해하기 마련인데, 웃는 아이들은 왜 그랬던 거죠? 양육자의 반응이 달랐어요.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고, 공감하는 말을 해줬죠. 아이가 나무 조각을 이동할 때 “아이고, 떨린다”, “엄마·아빠도 손에서 땀이 나네” 같은 말을 하면서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을 함께 느껴줬어요. 그 말에 아이는 웃기도 하고, 여유도 부리며 불안을 스스로 조절했어요. “잘 좀 해봐”라는 말보다 “너무 떨리겠다”는 말 한마디가 아이의 성취 동기를 높인 겁니다.    하지만 감정을 읽어준다는 게 생소해요. 어른도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양육자도 자신의 내면에 쌓여 있는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특정 감정과 관련한 양육자의 신념을 ‘상위정서’라고 부르는데요. 어떤 상위정서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특정 상황에서 무의식중에 드러내는 반응이 달라집니다. 특히 한국 문화에서는 화나 슬픔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불편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요. 부정적 감정을 터부시하면 아이의 짜증과 분노를 무시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울고 화낸다는 건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예요. 그런데 부정적인 감정을 인정하지 않으면 아이를 도와주기보다 큰소리로 억압하고 혼을 내죠.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에 이런 식으로 대응하면 아이는 감정을 다루는 데 서툴러집니다. 어른이 되어도 스트레스에 취약해지고, 쉽게 좌절하게 되고요. 남은영 교수는 "말은 정보를 주고받기 위한 행위가 아닌 관계 맺기를 위한 도구"라며 "서로의 감정을 읽고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감정을 읽어주는 대화는 어떻게 실천하면 좋을까요? 양육자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거로 대화를 시작하세요. “휴대폰을 몇 시간째 들여다보고 있는 거니!” 대신 “엄마(아빠)는 네가 휴대폰 보는 시간이 많아져서 걱정돼. 성적이 떨어지면 네가 속상할까 봐 걱정이 앞서네” 식으로요. 아이는 자신의 행동이 양육자의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능동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렇게 나와 상대의 감정을 이해한 아이는 사회생활에서도 말을 가려 할 줄 압니다. 상처 주는 말을 피하게 되고 상대를 배려하려고 노력하죠.    ━  “비난과 경멸 대신 아이에게 말할 기회를 주세요”   남 교수는 공부 잘하는 학생과 양육자의 대화를 분석한 적이 있다. 분석 결과 양육자와 관계가 좋은 아이들은 성취동기가 높고, 주도적으로 행동했다. 남 교수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관계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양육자의 말이었다”며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자율성을 인정하는지가 관계의 질을 좌우했다”고 말했다.      자율성을 억압하는 말과 높여주는 말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전자의 경우 비난과 경멸의 말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엄마(아빠) 말 안 듣더니 그럴 줄 알았다”, “네가 뭘 할 줄 안다고 그래?” 이런 식으로요. 이건 인격 모독에 가까운 말들입니다. 시작부터 아이를 비난하고 모욕해 아이의 부정 정서를 유발하는 거죠. 반면 아이의 자율성을 인정한 가정에서는 비난과 경멸, 모욕하는 말은 거의 관찰되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아이의 생각을 물어봤죠.   제3자가 들어도 충격적인데요, 이런 말을 들은 아이는 어떤 반응을 보였나요? 아이도 참고만 있지 않습니다. “엄마는 왜 매번 그런 식으로 말을 해요?”라고 대들어요. 눈물까지 글썽이고요. 가장 가깝게 의지한 양육자에게 배신당했으니 분노와 서운한 감정이 올라온 거죠. 그렇게 관계는 무너집니다. 문제는 아이의 자존감입니다. ‘우리 엄마가 규정하는 내 모습이 이거밖에 안 되는구나’ 싶은 마음에 자책합니다. 자신감과 자존감을 잃으니 모든 걸 쉽게 포기하고, 성취 동기도 낮아지죠.    그래서 양육자의 말이 공부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거군요.  공부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분야에서든 목표를 달성하려면 높은 성취동기와 목표를 이룰 때까지 어려움을 이겨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양육자와의 관계가 좋으면 동기가 강해질 수 있어요. 회복탄력성도 마찬가지예요. 회복탄력성은 실패하더라도 다시 그 일에 도전하는 내면의 힘, 용기를 말하는데요. 어떤 상황에도 나를 사랑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회복탄력성이 키워지는 거죠.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해요. 관계가 좋다고 해서 무조건 성적이 좋다는 얘기는 아니니까요. 핵심은 아이에게 공부 잘하라고 하기 전에 좋은 관계부터 맺으라는 겁니다. 아이의 자율성을 높이는 말을 하는 게 먼저라는 얘깁니다. 남은영 교수는 부모자녀 관계 및 정서 분석 전문가다. 김현동 기자   그렇다면 어떻게 말해야 아이의 자율성이 높아질까요? 입을 닫고 귀를 여세요.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요. 아이 방이 지저분해요. 이럴 때 보통 뭐라고 하죠? “방 좀 치워”, “방이 돼지우리니?” 같은 말을 합니다. 아이에겐 비난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죠. 이럴 땐 이렇게 말해보세요. “네 방이 이렇게 더러우면 온 집안에 먼지가 굴러다녀. 다른 가족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 사실을 중심으로 말하라는 겁니다. 그럼 공이 아이에게 넘어가죠. 아이는 자신만의 대책과 계획을 세웁니다. 중요한 건 양육자가 아이의 계획을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수용하고, 인정해야 해요.   아이들이 얼토당토않은 계획을 들고 올 때도 있는데, 그런 것도 받아줘야 하나요?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세요. 아이는 나름의 논리로 계획을 세웠으니까요. 그리고 아이가 그 말에 책임질 수 있게 한 번 더 물어봐 주세요.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떤 벌칙을 받을 건지 같은 걸 묻는 겁니다. 그럼 아이는 스스로 문제를 깨닫습니다. 그래야 자신의 말에 책임도 질 줄 압니다. 이렇게 대화를 통해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거고요.   남 교수는 가능한 아이의 말을 수용하겠다는 마음으로 대화에 임하라고 당부했다. “그건 말이 안 돼”라던가 “네 생각은 아닌 것 같아” 같은 단정 짓기는 금물이라는 얘기다. “아이가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더라도 아이의 생각에서부터 출발해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양육자가 아이의 인생에 정답을 줄 수 없습니다. 아이와 마음을 터놓고 좋은 관계를 맺으세요. 아이와 함께 대화를 통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세요. 그게 부모와 자녀 사이에 필요한 대화의 기술입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아이를 내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나요?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겠다는 마음에 잔소리를 하는 겁니다. 아이는 양육자의 분신이 아닙니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여기고, 아이의 말을 수용하고 인정해 주세요.  ·정답만 강요하고 감정은 무시하고 있지 않나요? 말은 관계를 맺는 도구입니다. 정답만 강요하지 말고 말 속에 담긴 감정에 주목하세요. 양육자의 감정을 먼저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도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웁니다.  ·아이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있나요? 양육자와 좋은 관계를 맺은 아이는 주도적으로 삶을 꾸려갑니다.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말에서 좋은 관계가 시작됩니다. 비난과 경멸, 단정 짓는 말은 하지 마세요. 아이의 생각을 물어보고 들어주세요. 」 관련기사 연금700만원 대신 브라질 이민행…‘팔로어 270만’ 80대 노부부가 사는 법 홈스쿨링으로 다섯 아이 키운 제주엄마, 하루 4시간 이상 공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메타인지 키우고 싶다면, 채점 해주지 마라” 리사 손 버나드대 교수이민정기자lee.minjung2@joongang.co.kr

    2022.05.24 06:00

  • 연금700만원 대신 브라질 이민행…‘팔로어 270만’ 80대 노부부가 사는 법

    연금700만원 대신 브라질 이민행…‘팔로어 270만’ 80대 노부부가 사는 법 유료 전용

    여기, SNS 팔로어 270만을 자랑하는 인플루언서 가족이 있다. 주인공은 81세 동갑내기 부부 이찬재·안경자씨. 이들을 SNS에 데뷔시킨 건 52세 아들이고, 콘텐츠 기획와 발행을 돕는 건 48세 딸이다. 평균 연령 65세의 시니어 가족은 어떻게 SNS 셀럽이 됐을까?     80대 인플루언서 이찬재, 안경자 부부는 아이의 성공 비결로 아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지원하는 것을 꼽았다. 우상조 기자   가족의 이력은 화려하다. 이찬재·안경자씨는 인스타그램 40만(@drawings _for_my_grandchildren), 틱톡 230만(@grandpachan) 팔로어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다. 이들에게 인스타그램을 권한 아들 이지별씨는 페이스북의 간판 그래픽 디자이너다. 2005년 전 세계가 주목한 말풍선 광고, 이른바 ‘버블 프로젝트’ 기획자로 이름을 알렸다. 딸 이미루씨는 노부부 틱톡 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맡고 있다. 최근 틱톡에서 주목 받은 댄스 챌린지도 딸의 작품이다.   화려한 이력은 남다른 도전 덕에 만들어졌다. 서울대 캠퍼스 커플로 만난 부부는 나란히 교사가 됐다. 하지만 안정적인 삶을 뒤로 하고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그곳에서 의류 사업을 하며 중년을 보냈다. 아들과 딸도 엄마·아빠를 닮아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벌이며 각자의 일을 찾았다. 2015년, 네 가족이 함께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SNS 셀럽의 시작이다.    이찬재·안경자씨는 “각자의 재능을 믿고 쫓았던 게 우리 가족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좋아하고, 원하는 게 재능”이라고도 했다. 아들과 딸도, 그리고 부부도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걸 쫒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재능을 믿고 쫓으라니, 맞는 말씀이긴 한데요. 사실 그렇게 하기가 정말 쉽지 않잖아요.  안경자 (이하 안) 많은 분들이 저희 아들이 어릴 때부터 그림 솜씨가 남달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나와서 페이스북에 다니니까요. 그런데 전혀 아니었어요. 그냥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을 뿐이죠. 크면서는 음악도 듣고, 영화도 찍고 그랬어요. 예술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거죠. 반대로 돈 관리에는 소질이 없어요. 아들 빨랫감을 보면 주머니 이쪽저쪽에서 잔돈이 나와요. 그때 감이 왔죠. 장사를 강요하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뒀어요.     하지만 예술은 배고픈 직업이라고들 하잖아요.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지원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찬재(이하 이) 아이의 재능을 키워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둔 거죠. 80년대 브라질에서는 부모가 일궈놓은 사업을 물려주는 게 최고의 자식 농사였거든요. 자식이 의사·변호사 되고, 유명 기업 요직에 앉아도 결국은 다 부모 사업을 이어받았어요. 버는 돈이 어마어마하니까요. 우리도 내심 아들이 저희가 하는 사업을 하길 바랬어요. 그런데 아이가 그림 외에는 관심이 없잖아요. 그럴 땐 밀어줘야지 별 수 있나요. 당시 브라질에선 미국 유학이 흔한 일이 아니었는데, 보냈어요. 지금 보면 그 결정이 최고 잘한 일이죠.   서울대 출신 교사셨잖아요. 아이에 대한 학업 성취 기준도 높으셨을 거 같은데, 어떻게 가르치셨어요?  이) 미술공부를 따로 시킬 여력은 없었어요. 사업 하느라 바빠서요. 학교 공부는 아이들이 알아서 했어요. 학교 앞으로 이사 간 게 전부예요. 등하굣길 편하게 해주려고요. 거기까지예요. 공부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일절 간섭하지 않았어요. 미국 유학도 아들 혼자 준비했어요. 스스로 대학을 찾아보고, 작품 준비해서 포트폴리오 만들고, 어학 점수 따고, 기숙사도 알아보고요. 우리는 경제적 지원만 했어요.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빠질까 불안하진 않으셨어요? 안) 아이 교육에 무관심했다기보다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대신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해 줬어요. 우리 가족은 늘 함께 다녔어요. 저희 부부가 참석하는 모임에도 꼭 데리고 다녔고요. 저희가 하는 걸 보고 아이들 스스로 느끼고 배우라고요. 제가 1986년부터 주말 한국학교 교장을 했고, 1999년부터는 줄곧 브라질 국제학교 문학교사를 해서 교포 사회에서 유명했어요. 이 사회에서 우리 가족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그에 걸맞은 행동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나이기도 했고요. 지금 우리 딸도 아이들이 고2, 고3인데 학원을 안 보내요. 아이들이 학원에 다녀보고 스스로 결정한 거예요. 딸은 그저 아이들이 원하는 길을 찾도록 관심을 가져주고 수시로 얘기를 나눈다고 하더라고요.    1985년, 브라질에서 이찬재안경자씨 가족. [이미루씨 제공] 학원 안 보내는 수험생 엄마라니 별종 취급을 받을 법 한데요, 딸의 교육 방식 답답하지 않으세요? 안) 주변에서 안타까운 눈초리로 보긴 한대요. 브라질에서 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요. (웃음) 저는 자녀 교육은 아이들 몫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무슨 얘기를 하겠어요. 세대도 변했고요. 지금 시대에 맞는 육아와 교육에 대한 철학이 있어요. 간섭하면 안 되죠. 간섭하려 들면 불화만 생겨요.    ━  “부모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스물여섯, 서로가 너무 좋아 결혼했다. 부부 모두 교사 생활을 한 덕분에 살림도 넉넉했다. 그런데 왜 브라질 이민을 선택했던 걸까? 안경자씨는 “가슴 뛰는 일을 좇았을 뿐”이라고 답했다. 우울증을 겪은 뒤 깨달은 교훈이었단다.   우울증이요? 안) 제가 둘째 낳고 교사 생활을 관뒀었어요. 출근만 하려면 큰 애가 자지러지게 우는 거예요.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잘할 줄 알았죠. 그런데 엄마 노릇이 제일 어렵더라고요. 친구들은 잘 나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요. 애 보고, 살림하는 게 답답했어요. 이것저것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많은 사람이었던 거예요. 안경자씨는 "부모가 아이만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아닌, 부모도 가슴 뛰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상조 기자.   어떻게 벗어나셨어요? 안) 70년대 말 한국에 사교육 바람이 불었어요. 입시학원에서 연락이 오는 거예요. 요즘 말로 하면 경단녀, 경력 단절된 교사들을 모셔간 거죠. 파트 타임으로라도 일을 하니까 숨통이 트이더라고요. 때마침 친정아버지가 브라질 이민을 제안하셨어요. 저희 친정 식구들이 먼저 브라질에 이민 가 있었거든요. 저는 “옳다구나!” 했어요. 매일 아침 “무슨 큰 특별한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했는데, 소원이 이뤄진 거예요. 고민도 않고 따라나섰어요. 처음에는 혼자 갔어요. 비자가 안 나와서 칠레의 산티아고, 볼리비아의 라파스 거쳐서 브라질로 밀입국했어요.   애들은요? 안) 애들이랑 남편은 시댁에 맡겼죠.   시댁에요? 눈치 안 보이셨어요? 안) 시댁 식구들이 외려 도와주신 걸요. 제가 교사 일 관두고 힘들어 봤잖아요. ‘내가 먼저 즐겁고 행복해야 가족 모두가 편안해지는구나’ 그때 알았어요. 브라질 이민 생활도 마찬가지였어요. 애들은 애들대로, 부부는 부부대로 각자의 일에 집중했어요.     교사 하다 장사라니, 성격이 완전 다른 일이잖아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이) 전혀요. 옷을 떼다 팔았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장사라는 게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거랑은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새로운 일이잖아요. 열심히 하니까 돈도 모이고요. 돈이 모이니까 신바람이 나서 더 열심히 하게 되고.(웃음)안) 가끔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하려고 주말도 없이 일하는 부모들이 있어요. 그렇게 아이를 위해 일하면 길게 못 가요. 우리 부부는 희생이 아니었어요. 재미있어서 한 일이었죠. 아침에 나가서 일하다 점심때 들어와서 애들 밥 해먹이고 다시 나가요. 부부는 부부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산 거예요. 미국에 거주하는 막내 손주 루아를 그린 그림. 할아버지는 그림으로, 할머니는 편지로 손주를 향한 마음을 표현했다. [인스타 @drawings _for_my_grandchildren 캡처]   한국에서 계속 교사 생활했다면 지금보다 윤택하게 사셨을 텐데요, 후회는 없으세요? 안) 젊을 때는 그런 생각 못 했어요. 그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우리 부부가 정년 채우고 퇴직했으면 연금이 월 700~800만원 될 거예요. 요즘 옛 동료들 보면 어찌나 부러운지…. (웃음) 그런데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을지언정, 애들을 잘 키우진 못했을 거예요.이) 한국에 있었다면 대학은 보냈겠죠. 하지만 우리 가족이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요? 이렇게 도전하고,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도전하고, 경험했잖아요. 더 큰 수확이죠. 아들이 그래픽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뒤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부모님 덕분에 한국의 얼, 브라질의 감성, 미국의 정신을 갖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고요, 사실 아이들에게 우리가 더 고마워요. 우리를 믿고 따라와 줘서요.   부모도 가슴 뛰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가네요.   안) 나이가 들어도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해요. 나이 들수록 배움에 흥미를 잃고, 의욕이 떨어지거든요. 귀찮음을 극복해야 해요. 100세 시대잖아요.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부모님이 어려워하면 자식이나 손주가 나서서 도와드리세요. 그렇게 함께 성장하는 겁니다. 관련기사 두 번 창업한 워킹맘 조언 "버티면 된다, 아이는 금세 큰다"  ━  “권위를 놓아야 진짜 격대교육이다”   노부부도 여느 할아버지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브라질에서는 바쁜 딸 내외를 대신해 손주들을 돌봤다. 2017년 딸 가족을 따라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10분 거리에 살며 손주들과 자주 시간을 보낸다. 조부모여서 가능한 ‘격대교육’을 실천하는 중이다.    이찬재씨는 손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에 아내 안경자씨의 글이 더해진 인스타그램 게시글이 주목 받으며 시니어 인플루언서로 이름을 알리게됐다. 우상조 기자 격대교육이요? 안) 말 그대로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부모를 대신해 손자와 손녀를 맡아서 교육하는 것이요. 격대교육은 과거부터 내려오는 전통이에요. 조선 시대 명문 사대부 이문건이 쓴 ‘양아록’이 대표적이에요. 손자를 직접 돌보면서 육아일기를 쓴 건데, 그저 먹이고 입히는 보육이 아니에요. 교육이에요. 조부모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걸 가르치는 거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주시나요? 이) 브라질에 거주할 땐 우리가 두 손주를 돌봤어요. 딸이 일해야 하니까, 우리가 등하교를 시켰거든요. 등하굣길 차 안에서 우리 식으로 놀아줘요. 예를 들어 퀴즈를 내요. A로 시작하는 낱말 맞히기 등이요. 손주 한 번, 할아버지 한 번. 번갈아가며 얘기해요. 자연스럽게 대화도 하고, 공부도 하는 거죠. 이때 권위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면 안됩니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해야 해요. 안) 요즘에도 시험 때만 되면 손주들이 번갈아 찾아와요. 제가 국어교육을 전공했잖아요. 문학·역사·한문을 가르쳐주는데, 애들이 국어 교과서 들고 오면, 책에 담긴 문학 작품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요. 시대적 배경부터 국어 문법까지 설명해 주죠. 저도 즐겁고, 손주도 재밌어 해요. 구전동화처럼 이야기 들으며 배우니까요. 그러면서 우리만의 추억도 쌓이고요.   아들·딸뿐 아니라 손주까지, 젊은 세대와 격 없이 지내시는 것 같아요. 친구처럼요.  이) 아이들이 뭘 제안하면 “싫다”, “안 한다” 이런 말 잘 안 해요. 아이들도 나름 이유가 있어서 얘기를 꺼냈을 거잖아요. 일단 “OK!” 합니다. 인스타그램도, 틱톡도 다 아들·딸이 먼저 제안한 거예요. 저희는 그냥 “해보자” 한 게 다죠.  고등학생이 된 두 손주는 시험 때만 되면 할머니를 찾아온다. 안경자씨는 ″국어교육 전공자로 손주들에게 문학 역사 한문을 가르쳐줄 수 있는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인스타 @drawings _for_my_grandchildren 캡처]   사진·영상 찍고, 글 쓰고 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거절하실 법도 한데…. 이) 아들딸이 우리를 위해서 제안한 건데, 어떻게 거절해요. 일단 해보는 거죠. 인스타그램은 아들이 제안했어요. 딸 가족이 서울로 가고 나서 적적했거든요. 아들이 그림을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려보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어려웠죠. 그런데 자꾸 하다 보니 익숙해져요. 할아버지가 손주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할머니는 거기 담긴 이야기를 쓰고. 그 내용을 아들은 영어로, 딸은 포르투갈어로 번역해서 올리니 가족 합작품이 된 거예요. 몸은 멀리 있지만, SNS에서 만날 수 있는 거죠. 2019년에 웨비상 받은 것도 가족의 협업을 인정받은 거예요. 웨비상이 ‘인터넷의 오스카상’이라 불린다네요.안) 틱톡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코로나19로 집에만 갇혀 있는 게 안쓰러웠나 봐요. 딸이 그때 유행하던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를 가르쳐줬어요. 부부가 따라 해 봤는데 손주들이 박장대소를 했어요. 얼마나 재미있어요. 그 뒤로 딸이랑 틱톡 춤 따라 하기 챌린지를 했어요. 딸이 능력이 많아서 안무도 만들고 춤도 가르쳐 주고, 영상으로 찍고, 편집까지 해서 올려요. 손주들도 곧잘 도와주고요. 싫단 소리 않고 잘 참여해요. 우리 영상 보면 자주 보실 거예요. 춤 동작 외우는 게 정말 어렵거든요? 그런데 치매 예방도 되고, 손주들이랑 친구도 되고 얼마나 좋아요.   부부는 21세기 뜨거워진 교육열 속에서 아이를 낳았다면 어떻게 키우셨겠냐는 말에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50년 전 아이들을 키울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마음을 주고, 가족 모두가 최고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손주랑 소통하는 비결이요? 별거 없어요. 아이들이 다섯 살이면 내가 다섯 살이 되고, 애들이 열 살이면 내가 열 살이 되고 그런 거예요. 그냥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세요, 그럼 다 친구가 돼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아이의 재능을 믿으세요. 좋아하는 일을 할 때면 아이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아이가 배우고 싶어하는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마세요. 간섭은 금물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보세요.  ·부모도 가슴 뛰는 일을 찾으세요. 부모가 즐겁고 행복해야, 아이도 긍정적으로 자랍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부부는 부부대로 각자의 하루에 집중할 때 가족 간 시너지가 발휘됩니다.  ·권위를 내려놓고 아이와 친구가 되세요. 세 살 아이와 이야기할 때는 세 살 아이가, 다섯 살 아이와 이야기할 때는 다섯 살이 되어 보세요. 그래야 서로 배우고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 관련기사 "육아휴직도 했는데, 왜 아내가 화낼까요" 라테파파가 놓친 것 처음 떼는 말, 평생 쓰는 말…'엄마' 이 한 단어로만 쓴 그림책   이민정기자lee.minjung2@joongang.co.kr

    2022.05.18 06:00

  • “책 많이 읽으면 수학 잘한다? 천만에요” 독서·글쓰기 오해 셋

    “책 많이 읽으면 수학 잘한다? 천만에요” 독서·글쓰기 오해 셋 유료 전용

    책 많이 읽으면 공부 잘할까요? 글쎄요. 그런 아이도 있죠. 하지만 책이라면 학을 떼게 되는 아이도 있어요. 그럼 공부에서 손을 놓아 버리죠.   지난 11일 만난 박민근독서치료연구소 박민근 소장은 "읽는 양에 집착하는 독서 교육은 절대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음식도 소화할 수 있는 만큼 먹어야 하듯 책도 그렇다"며 "책을 소화할 수 있으려면 좋아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그는 이걸 '독서애호감'이라고 불렀다.     박민근 소장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독서 치료를 공부한,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심리상담가다. 그가 주로 상담하는 이들은 학습 과정에서 상처를 얻어 마음을 닫아버린 학생들이다. 공부를 잘해도 '공부상처'가 있다. 점수 중심의 과열 경쟁으로 90점 맞은 아이도 100점 받은 아이를 보며 상처를 받기 때문이다. 그는 “잘못된 독서 교육도 공부 상처를 만든다”며 “독서에 대한 오해가 잘못된 독서 교육을 부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양육자들이 가진 독서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는 뭘까?    박민근 소장은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좋아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아무리 읽어도 좋아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제대로 읽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상선 기자  ━  오해 ① 많이 읽으면 공부 잘한다   박민근 소장이 꼽은 가장 보편적이고 흔한 오해는 ‘많이 읽으면 공부 잘한다’는 믿음이다. 2018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공부머리 독서법』의 주장이기도 하다. 이 책은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렇지 않지만, 중학교 이후엔 독서와 학습 간의 상관관계가 뚜렷해진다”며 “공부를 잘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박민근 소장은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라며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책을 좋아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책을 많이 읽으면 공부를 잘하는 것 아닌가요? 지식이라는 게 문자로 정리되고 축적되니까요. 책을 ‘진짜로’ 읽는다면 그렇죠. 그런데 억지로 읽게 하는데, 아이들이 진짜로 읽을까요? 말을 우물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요. 물도 떠줄 수 있고요. 하지만 물을 마시는 건 대신해줄 수 없죠. 책도 마찬가지예요. 책을 아무리 쌓아놓고 읽혀도, 아이가 읽는 시늉만 한다면 소용없어요. 특히, 입학도 안 한 아이에게 하루 30분 이상 책을 읽게 하는 건 아동학대입니다. 효과도 없고요. 어릴수록 신체 활동을 하고, 친구를 만나서 노는 게 책보다 뇌에 더 많은 자극을 주거든요.   책 읽기에 앞서 책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건가요? 그래야 스스로 읽으니까요. 읽는다는 건 굉장히 적극적인 행위에요. 문자, 텍스트는 암호잖아요. 1단계는 문자를 읽고 소리와 매칭하는 디코딩입니다. 말 그대로 읽는 거죠. 2단계는 읽은 내용이 무슨 뜻인지 의미를 이해하는 겁니다. 어릴수록 디코딩에 에너지를 많이 쏟기 때문에 ‘읽기’라는 행위가 어렵습니다. 많이 읽으면 디코딩에 쓰는 에너지가 줄면서 해석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되죠.   디코딩, 그러니까 문자를 읽는 걸 수월하게 하고 해석에 에너지를 더 많이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법을 배운다고 바로 수영을 잘하는 게 아니듯 한글, 문자를 배운다고 읽기를 바로 잘하는 건 아니거든요. 읽기 훈련을 견디려면 책 읽는 게 즐거워야죠.   말씀하신 대로, 읽는 것에 숙달되려면 훈련이 필요하잖아요. 많이 읽게 하는 건 훈련의 과정 아닐까요? 『책 읽는 뇌』, 『다시 책으로』를 쓴 인지 신경학자 매리언 울프에 따르면 인류가 만들어낸 최고의 능력은 깊이 읽기 능력입니다. 깊이 읽는 행위를 통해서 비판적 사고, 반성과 공감, 이해 등이 가능하죠. 그런데 우리는 훑어 읽기를 합니다. 대충 빠르게 읽는 거죠.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지 않고요. 디지털 매체가 우리 뇌를 그렇게 만들었다고 매리언 울프는 주장하는데요, 저는 읽는 양에 집착하는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제대로 읽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매리언 울프가 말하는 깊이 읽기를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이 읽어도 소용없어요. 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 수 없죠.   그럼 깊이 읽기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나요? 우리 뇌에 읽기를 관장하는 영역은 없어요. 8~9개의 영역이 발달하면서 연결되어 만들어진 능력이 읽기 능력이죠. 뇌의 이 영역들을 발달하게 하는 방법은 바로 자발적인 독서입니다. 자발적으로 읽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을 좋아하면 됩니다. 책 읽기보다 좋아하는 게 먼저인 이유에요.   아이가 깊이 읽고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비판적 사고와 반성, 공감과 이해 등이 깊이 읽기의 결과물입니다. 아이가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다양한 생각을 끌어낼 수 있다면 제대로 읽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박민근 소장이 독서에 관해 가장 바로 잡고 싶은 오해는 '많이 읽으면 공부 잘한다'는 믿음이다. 그는 "공부 잘한다는 걸 성적으로 좁게 해석한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  오해 ② 읽다 보면 좋아하게 된다   두 번째 오해는 “읽다 보면 좋아하게 된다”는 생각이다. 박민근 소장은 “읽다 보면 좋아하게 되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걸 찾아야 읽게 된다”고 말했다. 아이가 자신의 독서 취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양육자가 도와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책을 읽게 하는 것보다 좋아하게 하는 게 먼저라고 하셨잖아요. 어떻게 하면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될까요? 상담을 해보면, ‘많이 읽으면 좋아하게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도록 도와줘야 해요. 좋아하면 많이 읽게 되는 거지, 많이 읽는다고 좋아하게 되는 게 아닙니다.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게 해준다고요? 누구에게나 취향이 있잖아요. 옷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고요. 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향적인 아이와 외향적인 아이가 좋아하는 책이 다릅니다. 감성적인 아이와 지성적인 아이의 책 취향이 다르고요. 아이의 성격을 파악하는 게 먼저입니다. 감성적인 아이는 관계에 몰입하고, 그래서 놀이도 인형놀이 같은 걸 하죠. 이런 아이는 이야기책을 거쳐 『제인 에어』 같은 명작 소설로 갈 겁니다. 지성적인 아이들은 좀 다르죠. 사물에 관련된 백과사전식 책을 좋아할 거예요. 체계화 지능이 높은 친구들이 그렇죠.   아이에게 맞을 법한 책을 권하면서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도록 해야 한다는 거군요? 그렇게 하다 보면 ‘홈런북’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홈런북’은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을 쓴 짐 트렐리즈가 제시한 개념이에요. 일종의 애착책입니다. 이런 책은 아이가 반복해서 읽을 거예요. 10번이고 20번이고 계속요. 홈런북이 변곡점입니다. 이제 아이는 자발적인 독서가가 될 수 있는 상태가 된 거죠. 아이가 홈런북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책을 무작정 많이 읽으라고 할 게 아니라요.   소장님이 쓰신 『시냅스 독서법』을 보면 책 읽기에서 시작해 공부법으로 이어집니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공부를 다 잘하는 건 아니라고 하셨는데 말이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모든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에요. “책을 많이 읽으면 수학을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믿지 마세요. 거짓말이니까요. 수학을 잘하려면 수학 공부해야 해요. 영어를 잘하려면 영어 공부해야 하고요. 게다가 공부 잘한다는 의미를 대입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거로 좁게 해석한다면, 독서와 공부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말하기 더 어렵습니다. 스무 살까지의 학습 성과에는 부모의 경제력, 출신 학교, 아이의 성격 등 너무 많은 요소가 영향을 미치거든요. 하지만 마흔 이후의 학습 성과를 놓고 보면 독서가 확실히 영향을 미칩니다. 독서가 결국은 공부하는 태도와 방법을 익히게 한다는 점에서,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만든다는 얘깁니다.   책을 제대로, 많이 읽으면 공부하는 태도와 방법을 익히게 된다고요?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특정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물론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부차적인 효과입니다. 독서가 학습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은 바로 몰입 경험입니다. 독서를 통해 몰입을 훈련하는 것이죠. 여기에 더해 독서가 학습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기제는 바로 동기부여입니다.   책을 읽는 행위가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준다는 건가요? 독서치료가 심리상담에서 중요하게 활용되는 이유는 책을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책 속에서 발견하기도 하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영감을 얻기도 하고요. 물론 그러려면 좋은 책을 읽어야겠죠. 학습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통해 공부해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얘기에요.   책을 읽으면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 독서 교육 때문에 상담 오는 분들께 권하는 게 있어요.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명작을 읽게 하라는 겁니다. 『제인 에어』 나  『빨간 머리 앤』, 『데미안』 같은 고전이요. 이런 책들의 주인공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노력하고 공부합니다. 처참한 환경이라 할지라도 공부를 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죠. ‘공부는 중요하다’고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요. 이런 이야기를 읽으면 자기 시스템(self-system)이 작동합니다. 어떤 걸 할지 말지 결정하는 시스템이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으로 인지하면, 그때부터는 하라고 말 안 해도 합니다. 아주 강한 동기부여가 이뤄진 셈이죠. 많은 분이 아이가 공부를 잘하려면 메타인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데요, 메타인지는 자기 시스템이 작동한 다음에 필요합니다. 메타인지보다 더 중요한 건 자기 시스템이죠.   박민근 소장은 "양육자들이 독서와 관련해 꼭 해야 할 일은 홈런북을 찾아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반복해서 읽는 애착책을 찾는 게 수준 높은 독서가가 되는 데 변곡점이라는 것이다. 김상선 기자  ━  오해 ③ 글쓰기는 테크닉이다   박민근 소장이 최근 양육자 사이에서 독서와 함께 주목받고 있는 글쓰기에 관해서도 “하고 싶은 말이 많다”고 했다. 그가 『시냅스 독서법』에 이어 『시냅스 초등 글쓰기』를 저술한 이유이기도 하다. 박민근 소장은 “글쓰기에 관한 오해 중 가장 보편적인 건 ‘글쓰기는 테크닉’이라는 믿음”이라고 말했다.   글쓰기는 주제, 그러니까 무슨 말을 할지 결정하고,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한 논리적은 구조를 짜는 것인데요.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어느 정도 테크닉이 필요한 게 사실입니다. 중급자 이상의 실력을 갖춘 사람이 글을 쓸 때는 그 말이 맞아요. 글을 어떻게 구성할지, 주제는 어느 위치에 놓아야 할지, 논거는 어떻게 제시하는 게 좋은지 같은 기술적인 게 필요하죠. 하지만 글을 처음 쓰는 아이들에게는 그것부터 가르쳐서는 안 됩니다.   그럼 아이들에겐 무엇부터 가르쳐야 하나요? 상담하러 오는 분들께 자주 하는 질문이 있는데요, 그 질문을 드려볼게요. 아이들이 왜 글을 써야 할까요?   ‘4차산업 혁명’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읽기만큼이나 쓰기가 중요하다는 흐름이 생긴 것 같아요. 5개 선택지 중에 하나의 답을 고르는 게 아니라 열린 문제를 보고 답을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는 듯해요. 문해력의 시대가 아니라 문장력의 시대라고 하죠. 앞으로는 읽기보다 쓰기가 중요할 겁니다. 심리학 분야 석학으로 불리는 로버트 스턴버그는 미래를 지배하는 성공 지능으로 창의성과 실용지능을 꼽았어요. 창조적이며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지능이 필요하다는 거죠. 창의성은 수렴적 사고와 확산적 사고 두 가지가 모두 발달해야 꽃을 피울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 아이들이 부족한 게 바로 확산적 사고입니다.   수렴적 사고와 확산적 사고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글쓰기와의 상관관계도 궁금합니다. 수렴적 사고는 주어진 자료를 분석하고 추리해서 정답을 찾는 겁니다. 확산적 사고는 하나의 주제에서 다른 주제로 사고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고요. 우리나라 교육은 전자에 강한 인재를 만듭니다. 반면 후자엔 취약고요. 글쓰기도 마찬가지로 수렴적 글쓰기와 확산적 글쓰기가 있는데요, 수렴적 글쓰기에는 기술이 필요해요. 저는 이건 고등학교 가서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15세까지는 확산적 글쓰기를 충분히 해야 해요.   확산적 글쓰기는 어떤 건가요? 아이가 아끼는 장난감이나 인형에 이름을 지어주는 이름 짓기, 그림책 만들기, 편지 쓰기, 문집 만들기, 끝말잇기 같은 게 다 확산적 글쓰기입니다. 형식이나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아이가 그림 그리듯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모든 활동을 포함하죠.   확산적 글쓰기로 추천하는 활동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제가 글쓰기 1단계에서 가장 많이 추천하는 활동이 감사 일기와 감사 편지에요. 감사 일기는 매일 감사한 것 3가지를 쓰는 겁니다. 감사 편지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편지를 쓰는 것이고요.   감사 일기와 감사 편지가 확산적 사고에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창의성의 밑바탕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입니다. 이게 높은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창의적이죠. 낙관성을 키우는 글쓰기부터 시작하는 건 그래서예요. 자기 분야에서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성공 노하우를 담은 책 『타이탄의 도구들』을 보면, 그들 역시 감사 일기를 썼어요. 자기 긍정, 낙관성이 성공에 있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죠. 글쓰기의 첫 단계는 바로 이걸 키우는 겁니다. 테크닉을 배우는 게 아니고요.   박민근 소장은 글쓰기에 관해서도 할 말이 많다고 했다. 독서만큼 글쓰기에 대한 오해가 많다는 것이다. 그가 가장 바로 잡고 싶은 오해는 '글쓰기는 테크닉'이라는 믿음이었다. 김상선 기자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박민근 소장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발췌했다며 문장 하나를 보여줬다. ‘당신의 운명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요. 언젠가 그것은 완전히 당신 것이 될 겁니다. 당신이 꿈꾼 대로요. 당신이 변함없이 충실하면요.’   “좋은 책을 만난다는 건 이런 겁니다. 운명은 네 편이라고, 그러니까 충실하라고 말해주는 인생의 멘토를 만나는 것 같은요. 멘토가 우리 옆집에 살 확률은 낮잖아요. 하지만 우리집 책장에 늘 있을 순 있죠. 아이가 홈런북을 넘어 인생책을 만나도록 도와주세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 많이 읽는다고 공부 잘하게 된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대로 읽어야 합니다. 대충 훑어 읽는 게 아니라 몰입해서 깊이 읽어야죠. 그러려면 스스로 읽어야 합니다. 책을 좋아해야 스스로 읽을 수 있고요. · 읽다 보면 좋아하게 된다? 절대 그렇지 않아요. 좋아하는 걸 찾아야 읽습니다. 책 읽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양육자가 해야 하는 일은 '홈런북'을 찾아주는 일이죠. 아이의 성향에 맞는 책을 추천하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발견하도록 도와주세요.   · 글쓰기는 테크닉이다? 중급자라면 그렇습니다. 하지만 글을 막 쓰기 시작하는 아이에겐 해당하지 않는 얘기죠. 형식이나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아이가 그림 그리듯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 해주세요. 」 관련기사 사실도 아닌 신화, 왜 읽혀야 하나…네 아이 키운 서울대 교수 답 “독서나무와 체크리스트, 2가지면 끝” 성효쌤의 특급 독서전략 [오밥뉴스]"코로나 이후 한 반에 20% 읽기 어려워 해"… 내 아이의 문해력 수준은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2022.05.17 06:00

  • 사실도 아닌 신화, 왜 읽혀야 하나…네 아이 키운 서울대 교수 답

    사실도 아닌 신화, 왜 읽혀야 하나…네 아이 키운 서울대 교수 답 유료 전용

    옛날 사람들이 인간과 세상을 이해했던 방식, 그러니까 고대 인류의 지식이 축약된 게 신화에요. 신화는 인류가 지식을 전달하는 가장 오래된 도구죠.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김헌 교수는 “아이들에게 왜 신화를 읽혀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신화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신화는 세상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철학적 노력”이라며 “그래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로마 신화 전문가인 김헌 서울대 교수는 "누구보다 아이들이 신화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김헌 교수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주제로 서울대에서 18년 동안 강의를 진행해온 전문가다. 강의 경험을 집대성해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고대 그리스의 시인들』, 『그리스 문학의 신화적 상상력』 등을 쓰기도 했다.     세상을 이해하려는 철학적 노력의 결과물이 신화라고요? 신화가 철학이라는 얘긴가요? 인문학은 문학과 역사, 철학으로 나뉩니다. 문·사·철이라고 불리죠. 문학은 ‘특정 상황이나 조건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까?’ 하는 상상의 결과물입니다. 삶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상상하는 거죠. 역사는 실제 벌어진 일을 통해 인간을 탐구하는 거고요. 둘 다 개별적입니다. 특정 상황, 인물 등에 대한 이해니까요. 이런 걸 모아서 보편화하고 일반화하는 게 철학이에요. 철학의 시작점은 실제 일어나거나 혹은 상상한 이야기인 거죠. 신화가 철학이라고 말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교수님의 설명도 철학적이네요. (웃음) 좀 더 쉽게 설명해주실 순 없을까요? 신화는 왜 만들어졌을까요? 고대엔 자연현상을 설명할 길이 없었어요. 번개가 쳐서, 사람이 죽었어요. 바다에 폭풍이 쳐서 배가 뒤집히고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사람들은 궁금합니다. 이해할 수 없으니 더 무섭고요. 원리를 모르니, 대응 방법도 없죠. 그래서 만들어진 게 신화에요. 번개의 신 제우스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화가 나서 번개가 치고 폭풍이 인다고 이해한 거죠. 이제 대응할 수 있어요.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됩니다.   신화는 사실이 아닌 셈인데요, 그래도 여전히 유효한가요? 지금 보면 사실이 아니죠. 하지만 당시엔 그렇게 믿었어요. 그러니 힘을 발휘합니다. 신화를 통해 공동체가 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결속하고, 힘을 모아 대응하니까요. 제사라는 행위를 통해서 공동체는 하나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옛날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신화라는 말씀이 이제 이해가 가요. 그런데 그 신화가 철학이라는 건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해석하는 과정에서 철학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제우스는 바람둥이로 유명하죠. 제우스는 왜 그렇게 바람둥이였을까요? 사실 그건 인간의 본성이자 욕망이에요. 2022년에도 많은 사람이 불륜을 저지르잖아요. 그걸 제우스라는 인물을 통해 담은 거죠.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어요. 제우스가 바람을 피우는 건 자신이 통치하는 데 필요한 인재를 얻기 위해서예요.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고, 세상을 통치하는데 그러자면 협력자가 필요하잖아요. 가장 믿을만한 협력자는 누굴까요? 혈연으로 엮이는 거죠. 그래서 바람을 피우는 겁니다. 통치를 위해서 윤리는 저버리는 거죠. 그게 바로 통치자의 윤리입니다.   신화가 철학이라는 게 이제 이해가 가네요. 인간의 본성, 그러니까 이기적 유전자가 DNA를 널리 퍼지게 하려는 힘을 이해시키는 게 쉬울까요? 통치자의 윤리는 설명하는 게 쉬울까요? 지금처럼 문자가 있는 시대라면 그게 가능해요. 개념을 설명하고, 논리를 풀어내서 책으로 남겨 놓으면 다른 사람이 그걸 보고 공부하고 이해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인류 역사에서 문자가 있는 시기보다 그렇지 못한 시기가 더 길어요.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어떻게 인류의 경험과 정보, 지식이 전달됐을까요? 구전이죠.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겁니다. 오롯이 기억력에 의존해서요. 구전으로 전해지면 유실되는 정보가 많습니다. 인간의 기억력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식을 기억하기 가장 좋은 형태로 축적해야 했어요. 그게 바로 이야기에요. 이야기에 음률을 붙여 노래로 만들기도 하고요.   신에 대한 개념, 철학이 아니라 신에 대한 이야기, ‘신화’가 발달한 이유군요. 태초에 이야기가 있었죠. (웃음)   김헌 교수는 "이야기의 힘은 강렬하고 직관적인 것에 있다"며 "이야기가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  플라톤도 말했다, 이야기가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김헌 교수는 어린이 책에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학습만화인  『그리스 로마 신화』를 감수했고, 그리스·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쓴 동화 『신통한 책방 필로뮈토』 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누구보다 신화를 읽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아이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이야기야말로 교육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이야기로 교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건가요? 이야기는 재밌고, 강렬하니까요. 이야기를 들으면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요. 이미지만큼 강력한 게 없죠. 그럼 진짜 이미지, 그림이 더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그림에는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이 적어요. 반면 이야기는 그렇지 않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야기, 신화를 읽혀야 해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이야기나 신화를 충분히 읽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워요. 요즘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바쁘잖아요. 하지만 저는 이야기야말로 진짜 공부라고 믿습니다.   이야기를 읽는 게 진짜 공부라는 말씀이 인상적이네요. 교수님 말씀대로 요즘 아이들은 정말 바쁘잖아요. 그래서 이야기를 읽을 시간이 충분하지 못한 것 같거든요. 그래서 교수님 말씀이 좀 한가하게 들리기도 해요. 제 주장이 아닙니다.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였던 플라톤이 주장한 게 바로 ‘이야기 교육론’이에요. 플라톤의 저서 『국가』는 고전으로 꼽히는 책인데요, ‘이상적인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질까’가 그의 고민이었어요. 이상적인 국가는 결국 훌륭한 사람이 만드는 거잖아요. 그의 고민은 자연스럽게 교육으로 확장됩니다. 어떻게 교육해야 좋은 사람을 길러낼 수 있을까, 플라톤은 그 출발점이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어린이 교육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죠.   플라톤 같은 대사상가도 아이를 가르치는 일은 어려웠던 모양이네요. (웃음) 그러니 재밌는 이야기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겠죠? 누구나 처음 살아보잖아요. 어린아이는 경험의 폭도 좁고, 삶의 영역도 좁아요. 경험의 폭, 삶의 폭을 넓혀주는 게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게 어른이 되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과정이죠. 그런데 경험해보지 않은 세상을 이해시키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그러니 재미있고, 강렬한 이야기를 통해 아이에게 간접 경험을 하게 하는 거죠. 이야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리스·로마 신화는 도덕적이지만은 않잖아요. 앞서 제우스가 바람둥이였다고 하신 것만 봐도 그렇고요. 누굴 죽이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고요.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읽히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어른이 읽으면 모를까요. 인간의 본성을 그리스·로마 신화만큼 잘 보여주는 신화는 찾기 어려워요. 신인데도 불쾌한 일이 생기면 분노하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요. 용서도 잘 안 해주죠. 다른 신화 같으면 신은 완벽하고 무결한 존재인데 말이에요. 그런데도 저는 이런 이야기를 아이들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인간을 위로하니까요. 아이들도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그걸 부끄러워하고 자책하기보다 받아들이는 게 건강해요. 그렇다고 해도 된다는 건 아닙니다. 그리스·로마 신화 역시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부정적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나쁜 선택을 한 신이나 영웅들은 결국 파멸하고 불행을 겪게 되죠. 그런 이야기를 통해 부정적인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잘 다스려야 한다는 걸 배울 수 있어요.   김헌 교수는 서울대 불어교육과를 졸업하고 10년간 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석사 학위를 따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힘들면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올까 봐 휴직이 아니라 사직까지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교사로 일한 10년간의 경험 때문에 그는 교육에 남다른 애정이 있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신 경험이 있으시잖아요. 실제로 이야기를 많이 읽은 아이들이 공부를 더 잘하나요? 이야기 교육으로 기초가 다져진 아이들은 개념화, 추상화 작업도 잘합니다. 더 나아가선 보편적인 진리를 찾는 데까지 이르죠. 인류가 문학(이야기)에서 시작해 철학에 이르렀듯 아이들도 그 과정을 겪는 겁니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읽으려고 하고, 이야기를 찾아가는 사람은 궁극적으로 지혜를 사랑하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더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탐구합니다.   이야기를 읽는 게 중요하다는 데 공감이 가는데요, 좋은 이야기와 나쁜 이야기가 따로 있나요? 그 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재미만 있으면 되는 건가요? 재미가 없다는 건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주인공에게 몰입이 안 되는 것도 그래서죠.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고단하고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한다는 겁니다. 여행하는 것과 같죠.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고 나면 뭔가 다른 세상에 갔다 온 것 같은 기분이 든 적 있으시죠? 그리고 나면 다시 삶을 살아낼 활력을 얻잖아요. 아이도 마찬가지예요. 이야기를 통해 일상에서 떨어져 쉬는 경험은 아이의 인생을 살아가는 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겁니다. 그러니 아이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는 걸 독려하세요. 공부해야지 하면서 책을 빼앗지 마시고요.   김헌 교수는 네 아이를 키워낸 양육자이기도 한 그는 "넷 중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없지만, 다들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고 시도하는 주도적인 아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  답보다 질문이 중요한 이유   김헌 교수는 “인문학의 효용을 찾기 어려운 시대”라고 말했다. 기술이 발달하고 분화되면서 전문성을 갖추는 게 중요한 시대에 문학과 역사, 철학의 직접적인 효용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인문학을 전공한 학생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그는 “같은 기술을 가진 전문가라도 인간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은 사람이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든다”고 말했다. 경영자들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일 것이다.   인문학의 직접적 효용을 찾긴 어렵다지만, 여전히 인문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인문학의 효용은 뭘까요? 인문학은 질문하는 학문이에요. 답은 틀릴 수 있지만, 질문은 그렇지 않아요. 답은 달라질 수 있지만, 질문은 그렇지 않고요. 언제나 질문은 유효합니다. 예를 들어, 누구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합니다. 어렸을 땐 이런 질문을 하면 공부나 하라는 답을 하죠.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그게 그 시절의 답인 거에요. 하지만 공부를 해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또다시 질문하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뭘 해야 행복할까’ 하고 말입니다. 질문은 영원합니다.   인문학은 질문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건가요? 문학도, 역사도, 철학도 ‘왜’와 ‘어떻게’란 질문의 총합이죠. 인문학은 답을 찾는 학문이 맞아요. 그런데 답을 찾는다는 건 질문을 한다는 겁니다. 답보다 중요한 건 질문입니다.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가요? 질문이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유효하고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가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그럼 어떤 질문이 유효하고 중요한 질문이냐, 계속해서 떠오르는 질문이요. 근원적인 질문이죠. 누구나 그런 질문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죠. 어떤 사람에겐 ‘뭘 먹어야 맛있을까?’가 근원적인 질문이에요. 이 질문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엄청난 미식가가 되거나 요리사가 되겠죠. 자신만의 질문을 끝까지 가지고 가면 누구나 분야의 톱이 되는 겁니다.   이야기를, 신화를 읽으면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되나요? 이야기를 읽는다는 건 의문을 가지고 이야기를 따라간다는 겁니다. 왜 그렇지? 어떻게 될까 하면서요. 다 읽고 나면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고 또 질문하게 되겠죠. 이야기, 신화가 인문학에 이르는, 그러니까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단 하나의 길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앞서 강조했듯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는 아주 강력한 방법이죠.   1992년생, 1994년생, 2000년생, 2001년생 네 아이를 키운 양육자이기도 한 그는 인터뷰 말미에 두 가지를 당부했다. 아이가 평생 두고 읽을 책을 옆에 둘 수 있게 하라는 것과 독서를 통해 삶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하라는 것이었다.   “인생이 외로운 건 평생 가져갈 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게 맞는 책은 따로 있고요. 그걸 찾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그 책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제 인생의 책 중 하나가 『햄릿』인데, 20대의 『햄릿』과 50대의 『햄릿』은 다릅니다. 그걸 이야기할 수 있다면, 삶이 더 풍성하고 단단해질 수 있어요.”   ■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신화는 고대 인간이 세상을 설명하고 이해하기 한 노력의 결과로 만들어졌다. 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의 방식, 그러니까 고대의 지식을 읽는 것이다. 2022년에도 신화는 읽어야 할 가치가 있다. ②교육의 출발점은 이야기다. 이야기만큼 강력하고 직관적인 게 없기 때문이다. 경험이 적고 이해의 수준이 높지 않은 아이에게 이야기만큼 강한 교육은 없다. 그리스의 대사상가 플라톤 역시 이야기 교육론을 주창했다. ③인문학은 질문을 하고 답을 찾는 학문이다. 답보다 중요한 건 질문이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끝까지 하면 누구나 자신만의 분야에서 톱이 될 수 있다. 」 관련기사 “메타인지 키우고 싶다면, 채점 해주지 마라” 리사 손 버나드대 교수 [오밥뉴스]"코로나 이후 한 반에 20% 읽기 어려워 해"… 내 아이의 문해력 수준은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2022.05.11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