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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700만원 대신 브라질 이민행…‘팔로어 270만’ 80대 노부부가 사는 법

중앙일보

입력 2022.05.18 06:00

업데이트 2022.05.20 15:32

여기, SNS 팔로어 270만을 자랑하는 인플루언서 가족이 있다. 주인공은 81세 동갑내기 부부 이찬재·안경자씨. 이들을 SNS에 데뷔시킨 건 52세 아들이고, 콘텐츠 기획와 발행을 돕는 건 48세 딸이다. 평균 연령 65세의 시니어 가족은 어떻게 SNS 셀럽이 됐을까?

80대 인플루언서 이찬재, 안경자 부부는 아이의 성공 비결로 아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지원하는 것을 꼽았다. 우상조 기자

80대 인플루언서 이찬재, 안경자 부부는 아이의 성공 비결로 아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지원하는 것을 꼽았다. 우상조 기자

가족의 이력은 화려하다. 이찬재·안경자씨는 인스타그램 40만(@drawings _for_my_grandchildren), 틱톡 230만(@grandpachan) 팔로어를 거느린 인플루언서다. 이들에게 인스타그램을 권한 아들 이지별씨는 페이스북의 간판 그래픽 디자이너다. 2005년 전 세계가 주목한 말풍선 광고, 이른바 ‘버블 프로젝트’ 기획자로 이름을 알렸다. 딸 이미루씨는 노부부 틱톡 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맡고 있다. 최근 틱톡에서 주목 받은 댄스 챌린지도 딸의 작품이다.

화려한 이력은 남다른 도전 덕에 만들어졌다. 서울대 캠퍼스 커플로 만난 부부는 나란히 교사가 됐다. 하지만 안정적인 삶을 뒤로 하고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그곳에서 의류 사업을 하며 중년을 보냈다. 아들과 딸도 엄마·아빠를 닮아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벌이며 각자의 일을 찾았다. 2015년, 네 가족이 함께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SNS 셀럽의 시작이다.

이찬재·안경자씨는 “각자의 재능을 믿고 쫓았던 게 우리 가족 성공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좋아하고, 원하는 게 재능”이라고도 했다. 아들과 딸도, 그리고 부부도 원하는 것, 하고 싶은 걸 쫒다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재능을 믿고 쫓으라니, 맞는 말씀이긴 한데요. 사실 그렇게 하기가 정말 쉽지 않잖아요. 
안경자 (이하 안) 많은 분들이 저희 아들이 어릴 때부터 그림 솜씨가 남달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파슨스 디자인스쿨을 나와서 페이스북에 다니니까요. 그런데 전혀 아니었어요. 그냥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을 뿐이죠. 크면서는 음악도 듣고, 영화도 찍고 그랬어요. 예술 활동에 관심이 많았던 거죠. 반대로 돈 관리에는 소질이 없어요. 아들 빨랫감을 보면 주머니 이쪽저쪽에서 잔돈이 나와요. 그때 감이 왔죠. 장사를 강요하면 안 되겠구나. 그래서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뒀어요.  
하지만 예술은 배고픈 직업이라고들 하잖아요. 아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지원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찬재(이하 이) 아이의 재능을 키워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아이가 원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우선순위에 둔 거죠. 80년대 브라질에서는 부모가 일궈놓은 사업을 물려주는 게 최고의 자식 농사였거든요. 자식이 의사·변호사 되고, 유명 기업 요직에 앉아도 결국은 다 부모 사업을 이어받았어요. 버는 돈이 어마어마하니까요. 우리도 내심 아들이 저희가 하는 사업을 하길 바랬어요. 그런데 아이가 그림 외에는 관심이 없잖아요. 그럴 땐 밀어줘야지 별 수 있나요. 당시 브라질에선 미국 유학이 흔한 일이 아니었는데, 보냈어요. 지금 보면 그 결정이 최고 잘한 일이죠.
서울대 출신 교사셨잖아요. 아이에 대한 학업 성취 기준도 높으셨을 거 같은데, 어떻게 가르치셨어요? 
이) 미술공부를 따로 시킬 여력은 없었어요. 사업 하느라 바빠서요. 학교 공부는 아이들이 알아서 했어요. 학교 앞으로 이사 간 게 전부예요. 등하굣길 편하게 해주려고요. 거기까지예요. 공부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할 것인지는 일절 간섭하지 않았어요. 미국 유학도 아들 혼자 준비했어요. 스스로 대학을 찾아보고, 작품 준비해서 포트폴리오 만들고, 어학 점수 따고, 기숙사도 알아보고요. 우리는 경제적 지원만 했어요.
아이들이 잘못된 길로 빠질까 불안하진 않으셨어요?
안) 아이 교육에 무관심했다기보다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대신 부모가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해 줬어요. 우리 가족은 늘 함께 다녔어요. 저희 부부가 참석하는 모임에도 꼭 데리고 다녔고요. 저희가 하는 걸 보고 아이들 스스로 느끼고 배우라고요. 제가 1986년부터 주말 한국학교 교장을 했고, 1999년부터는 줄곧 브라질 국제학교 문학교사를 해서 교포 사회에서 유명했어요. 이 사회에서 우리 가족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그에 걸맞은 행동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나이기도 했고요. 지금 우리 딸도 아이들이 고2, 고3인데 학원을 안 보내요. 아이들이 학원에 다녀보고 스스로 결정한 거예요. 딸은 그저 아이들이 원하는 길을 찾도록 관심을 가져주고 수시로 얘기를 나눈다고 하더라고요. 
1985년, 브라질에서 이찬재안경자씨 가족. [이미루씨 제공]

1985년, 브라질에서 이찬재안경자씨 가족. [이미루씨 제공]

학원 안 보내는 수험생 엄마라니 별종 취급을 받을 법 한데요, 딸의 교육 방식 답답하지 않으세요?
안) 주변에서 안타까운 눈초리로 보긴 한대요. 브라질에서 와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고요. (웃음) 저는 자녀 교육은 아이들 몫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무슨 얘기를 하겠어요. 세대도 변했고요. 지금 시대에 맞는 육아와 교육에 대한 철학이 있어요. 간섭하면 안 되죠. 간섭하려 들면 불화만 생겨요.

“부모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

스물여섯, 서로가 너무 좋아 결혼했다. 부부 모두 교사 생활을 한 덕분에 살림도 넉넉했다. 그런데 왜 브라질 이민을 선택했던 걸까? 안경자씨는 “가슴 뛰는 일을 좇았을 뿐”이라고 답했다. 우울증을 겪은 뒤 깨달은 교훈이었단다.

우울증이요?
안) 제가 둘째 낳고 교사 생활을 관뒀었어요. 출근만 하려면 큰 애가 자지러지게 우는 거예요. 집에서 아이를 돌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잘할 줄 알았죠. 그런데 엄마 노릇이 제일 어렵더라고요. 친구들은 잘 나가는데 나만 뒤처지는 것 같고요. 애 보고, 살림하는 게 답답했어요. 이것저것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 많은 사람이었던 거예요.
안경자씨는 "부모가 아이만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아닌, 부모도 가슴 뛰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상조 기자.

안경자씨는 "부모가 아이만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 아닌, 부모도 가슴 뛰는 일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상조 기자.

어떻게 벗어나셨어요?
안) 70년대 말 한국에 사교육 바람이 불었어요. 입시학원에서 연락이 오는 거예요. 요즘 말로 하면 경단녀, 경력 단절된 교사들을 모셔간 거죠. 파트 타임으로라도 일을 하니까 숨통이 트이더라고요. 때마침 친정아버지가 브라질 이민을 제안하셨어요.저희 친정 식구들이 먼저 브라질에 이민 가 있었거든요. 저는 “옳다구나!” 했어요. 매일 아침 “무슨 큰 특별한 일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했는데, 소원이 이뤄진 거예요. 고민도 않고 따라나섰어요. 처음에는 혼자 갔어요. 비자가 안 나와서 칠레의 산티아고, 볼리비아의 라파스 거쳐서 브라질로 밀입국했어요.
애들은요?
안) 애들이랑 남편은 시댁에 맡겼죠.
시댁에요? 눈치 안 보이셨어요?
안) 시댁 식구들이 외려 도와주신걸요. 제가 교사 일 관두고 힘들어 봤잖아요. ‘내가 먼저 즐겁고 행복해야 가족 모두가 편안해지는구나’ 그때 알았어요. 브라질 이민 생활도 마찬가지였어요. 애들은 애들대로, 부부는 부부대로 각자의 일에 집중했어요.  
교사 하다 장사라니, 성격이 완전 다른 일이잖아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이) 전혀요. 옷을 떼다 팔았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장사라는 게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거랑은 또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새로운 일이잖아요. 열심히 하니까 돈도 모이고요. 돈이 모이니까 신바람이 나서 더 열심히 하게 되고.(웃음)

안) 가끔 아이들 공부 뒷바라지하려고 주말도 없이 일하는 부모들이 있어요. 그렇게 아이를 위해 일하면 길게 못 가요. 우리 부부는 희생이 아니었어요. 재미있어서 한 일이었죠. 아침에 나가서 일하다 점심때 들어와서 애들 밥 해먹이고 다시 나가요. 부부는 부부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산 거예요.

미국에 거주하는 막내 손주 루아를 그린 그림. 할아버지는 그림으로, 할머니는 편지로 손주를 향한 마음을 표현했다. [인스타 @drawings _for_my_grandchildren 캡처]

미국에 거주하는 막내 손주 루아를 그린 그림. 할아버지는 그림으로, 할머니는 편지로 손주를 향한 마음을 표현했다. [인스타 @drawings _for_my_grandchildren 캡처]

한국에서 계속 교사 생활했다면 지금보다 윤택하게 사셨을 텐데요, 후회는 없으세요?
안) 젊을 때는 그런 생각 못 했어요. 그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었어요. 우리 부부가 정년 채우고 퇴직했으면 연금이 월 700~800만원 될 거예요. 요즘 옛 동료들 보면 어찌나 부러운지…. (웃음) 그런데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을지언정, 애들을 잘 키우진 못했을 거예요.

이) 한국에 있었다면 대학은 보냈겠죠. 하지만 우리 가족이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요? 이렇게 도전하고,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도전하고, 경험했잖아요. 더 큰 수확이죠. 아들이 그래픽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뒤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부모님 덕분에 한국의 얼, 브라질의 감성, 미국의 정신을 갖게 되어 너무 감사하다”고요, 사실 아이들에게 우리가 더 고마워요. 우리를 믿고 따라와 줘서요.

부모도 가슴 뛰는 일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가네요.  
안) 나이가 들어도 즐거운 일을 찾아야 해요. 나이 들수록 배움에 흥미를 잃고, 의욕이 떨어지거든요. 귀찮음을 극복해야 해요. 100세 시대잖아요.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라도 무엇이든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부모님이 어려워하면 자식이나 손주가 나서서 도와드리세요. 그렇게 함께 성장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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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를 놓아야 진짜 격대교육이다”

노부부도 여느 할아버지 할머니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브라질에서는 바쁜 딸 내외를 대신해 손주들을 돌봤다. 2017년 딸 가족을 따라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10분 거리에 살며 손주들과 자주 시간을 보낸다. 조부모여서 가능한 ‘격대교육’을 실천하는 중이다.

이찬재씨는 손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에 아내 안경자씨의 글이 더해진 인스타그램 게시글이 주목 받으며 시니어 인플루언서로 이름을 알리게됐다. 우상조 기자

이찬재씨는 손주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그림에 아내 안경자씨의 글이 더해진 인스타그램 게시글이 주목 받으며 시니어 인플루언서로 이름을 알리게됐다. 우상조 기자

격대교육이요?
안) 말 그대로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부모를 대신해 손자와 손녀를 맡아서 교육하는 것이요. 격대교육은 과거부터 내려오는 전통이에요. 조선 시대 명문 사대부 이문건이 쓴 ‘양아록’이 대표적이에요. 손자를 직접 돌보면서 육아일기를 쓴 건데, 그저 먹이고 입히는 보육이 아니에요. 교육이에요. 조부모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는 걸 가르치는 거죠.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주시나요?
이) 브라질에 거주할 땐 우리가 두 손주를 돌봤어요. 딸이 일해야 하니까, 우리가 등하교를 시켰거든요. 등하굣길 차 안에서 우리 식으로 놀아줘요. 예를 들어 퀴즈를 내요.A로 시작하는 낱말 맞히기 등이요. 손주 한 번, 할아버지 한 번. 번갈아가며 얘기해요. 자연스럽게 대화도 하고, 공부도 하는 거죠. 이때 권위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면 안됩니다.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해야 해요.

안) 요즘에도 시험 때만 되면 손주들이 번갈아 찾아와요. 제가 국어교육을 전공했잖아요. 문학·역사·한문을 가르쳐주는데, 애들이 국어 교과서 들고 오면, 책에 담긴 문학 작품을 놓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눠요. 시대적 배경부터 국어 문법까지 설명해 주죠. 저도 즐겁고, 손주도 재밌어 해요. 구전동화처럼 이야기 들으며 배우니까요. 그러면서 우리만의 추억도 쌓이고요.

아들·딸뿐 아니라 손주까지, 젊은 세대와 격 없이 지내시는 것 같아요. 친구처럼요. 
이) 아이들이 뭘 제안하면 “싫다”, “안 한다” 이런 말 잘 안 해요. 아이들도 나름 이유가 있어서 얘기를 꺼냈을 거잖아요. 일단 “OK!” 합니다. 인스타그램도, 틱톡도 다 아들·딸이 먼저 제안한 거예요. 저희는 그냥 “해보자” 한 게 다죠. 
고등학생이 된 두 손주는 시험 때만 되면 할머니를 찾아온다. 안경자씨는 ″국어교육 전공자로 손주들에게 문학 역사 한문을 가르쳐줄 수 있는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인스타 @drawings _for_my_grandchildren 캡처]

고등학생이 된 두 손주는 시험 때만 되면 할머니를 찾아온다. 안경자씨는 ″국어교육 전공자로 손주들에게 문학 역사 한문을 가르쳐줄 수 있는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인스타 @drawings _for_my_grandchildren 캡처]

사진·영상 찍고, 글 쓰고 하는 게 쉽지 않거든요. 거절하실 법도 한데….
이) 아들딸이 우리를 위해서 제안한 건데, 어떻게 거절해요. 일단 해보는 거죠. 인스타그램은 아들이 제안했어요. 딸 가족이 서울로 가고 나서 적적했거든요. 아들이 그림을 그려서 인스타그램에 올려보라는 거예요. 처음에는 어려웠죠. 그런데 자꾸 하다 보니 익숙해져요. 할아버지가 손주를 위해 그림을 그리고, 할머니는 거기 담긴 이야기를 쓰고. 그 내용을 아들은 영어로, 딸은 포르투갈어로 번역해서 올리니 가족 합작품이 된 거예요. 몸은 멀리 있지만, SNS에서 만날 수 있는 거죠. 2019년에 웨비상 받은 것도 가족의 협업을 인정받은 거예요. 웨비상이 ‘인터넷의 오스카상’이라 불린다네요.

안) 틱톡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코로나19로 집에만 갇혀 있는 게 안쓰러웠나 봐요. 딸이 그때 유행하던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를 가르쳐줬어요. 부부가 따라 해 봤는데 손주들이 박장대소를 했어요. 얼마나 재미있어요. 그 뒤로 딸이랑 틱톡 춤 따라 하기 챌린지를 했어요. 딸이 능력이 많아서 안무도 만들고 춤도 가르쳐 주고, 영상으로 찍고, 편집까지 해서 올려요. 손주들도 곧잘 도와주고요. 싫단 소리 않고 잘 참여해요. 우리 영상 보면 자주 보실 거예요. 춤 동작 외우는 게 정말 어렵거든요? 그런데 치매 예방도 되고, 손주들이랑 친구도 되고 얼마나 좋아요.

부부는 21세기 뜨거워진 교육열 속에서 아이를 낳았다면 어떻게 키우셨겠냐는 말에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50년 전 아이들을 키울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마음을 주고, 가족 모두가 최고로 성장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손주랑 소통하는 비결이요? 별거 없어요. 아이들이 다섯 살이면 내가 다섯 살이 되고, 애들이 열 살이면 내가 열 살이 되고 그런 거예요. 그냥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세요, 그럼 다 친구가 돼요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아이의 재능을 믿으세요. 좋아하는 일을 할 때면 아이의 표정이 달라집니다. 아이가 배우고 싶어하는 분야에 지원을 아끼지 마세요. 간섭은 금물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보세요.

·부모도 가슴 뛰는 일을 찾으세요. 부모가 즐겁고 행복해야, 아이도 긍정적으로 자랍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부부는 부부대로 각자의 하루에 집중할 때 가족 간 시너지가 발휘됩니다.
·권위를 내려놓고 아이와 친구가 되세요. 세 살 아이와 이야기할 때는 세 살 아이가, 다섯 살 아이와 이야기할 때는 다섯 살이 되어 보세요. 그래야 서로 배우고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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