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⑱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⑱ 유료 전용

    자녀의 성장에 부모가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2016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1000명)의 57%는 ‘부모 영향이 매우 크다’고 답했다. 8년 전 같은 조사에서는 44.7%가 같은 답을 했다. 양육자의 역할을 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80년대생 양육자는 자기 계발 세대답게 ‘부모 공부’에도 열심인 모습이었다. 전문가들의 양육서를 읽고, 동영상을 찾아보고, 상담을 다니고 있었다. 이렇게 양육에 열심인 이유는 물론 있었다. 11명의 양육자는 자녀들이 대학 입학, 취직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삶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경쟁에서 유리한 지점에 설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녀가 열정을 좇아 모험을 선택하기보다 경제적인 안정을 추구하길 바랐다.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1980년대생 양육자를 말하다’ 18번째 편에서는 이들의 자녀 양육관을 살펴봤다.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  ☝ 부모됨을 공부하다   부모란 ‘자녀를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우리 국민 다수(70.4%)는 생각한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같은 부모 역할 인식이 드러났다. 하지만 30대는 더 적극적인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부모는 자녀가 성공할 수 있도록 앞에서 이끌어줘야 한다’는 데 공감한 30대는 31.3%로, 50대 이상 중장년층의 동의율(24.8%)보다 6.5%포인트 높았다.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1980년생 양육자도 자녀를 키우는 과정에서 부모가 시의적절하게 개입하고 주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위해 육아 서적을 읽거나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참조하며 ‘부모 공부’를 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신생아를 키우고 있는 윤미래(32, 전업맘)씨는 1000쪽이 넘는 양육지식백과와 산후조리원 원장 출신 육아 코치의 유튜브를 보며 갓난아기 돌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윤씨는 “부모는 아이를 연령에 맞게 발달시켜주는 게 중요하고, 그 시기를 잘 파악해 적절한 자극을 줘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민경(35, 풀타임 워킹맘)씨와 박태우(39, 육아휴직 경험 있는 아빠)씨는 아이가 100일이 되기 전에 수면 교육을 했다. 수면 교육은 아이가 부모와 떨어져 스스로 잠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걸 의미한다. 재워주지 않아도 혼자 잠들게 하는 교육이다. 이른바 ‘쉬닥법’(아이가 누운 상태에서 입으로 쉬~쉬 소리를 내고 토닥여주면서 재우는 법), ‘안눕법’(아이를 안고 있다 잠이 들기 직전 눕히는 법), ‘퍼버법’(아이가 울다가 스스로 잠들게 하는 법) 등이 실전 육아서와 인터넷을 통해 요즘 부모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수면 교육법이다. 강민경씨는 “임신하자마자 육아 서적을 읽으며 공부한 남편이 주도해 수면 교육을 했다”며 “질식사가 우려되기도 했지만, 아이에겐 스스로 숙면을 할 수 있는 습관을 길러주고 우리 부부도 잠을 잘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라 선택했다”고 했다.   학령기 아이를 직접 가르치기 위해 특정 과목을 공부하는 열의도 보였다. 남지선(34, 전업맘)씨는 스스로를 ‘교육열이 높은 엄마’라고 칭했다. 남씨는 만 4세, 2세 아이가 잠들고 나면 영어 공부를 한다. 일반 유치원에 다니는 큰아이에게 직접 영어를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남씨는 “내가 교육을 놓아버리면 아이가 배우는 게 줄어들 것 같아 늘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며 “엄마도 잘 모르면서 아이는 학원만 보내는 건 싫다”고 했다.   만 7세, 5세 두 아이의 아빠인 장승준(40, 육아휴직 경험 있는 아빠)씨도 “부모도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두 아이에게 한국사를 가르치기 위해 직접 역사를 공부했다. 장씨는 “아이가 이제 역사 이야기는 선생님보다 아빠가 해주는 이야기가 더 재밌다고 말한다”고 했다. 장씨는 거실에 네 식구가 앉을 수 있는 커다란 책상도 놨다. 저녁을 먹고 나면 장씨네 가족은 거실 책상에 모여 책을 읽거나 대화를 한다. 장씨는 “부모가 먼저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읽을 책이나 숙제를 들고 모여 앉는다”고 말했다.    ━  ☝ 부모의 조언보단 인터넷 육아   hello! Parents가 만난 1980년대생 양육자들은 인터넷이나 미디어에서 필요한 양육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모습이었다. 박태우(39, 육아휴직 경험 없는 아빠)씨는 “또래보다 일찍 결혼하다 보니 주변에 조언을 구할 곳이 마땅히 없어 오은영 박사, 신의진 교수 등 전문가 의견을 많이 찾아봤다”고 했다. 박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고민이 되는 특정 상황을 인터넷에 키워드로 검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조사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양육에 도움이 되는 정보 제공원으로 첫째는 친구, 이웃, 보모 등(36.9%)을 꼽은 데 이어 인터넷(27.4%)과 TV 프로그램(12.7%)을 그다음으로 지목했다. 부모나 친인척이 양육 정보 제공원으로 도움이 된다는 의견은 9.6%에 불과했다. 보고서는 “남성보단 여성이, 대도시에 살고 고학력일수록, 자녀가 한 명일수록 인터넷에서 양육 정보를 더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터넷과 TV에서 찾은 육아 지식은 정보와 광고가 넘치는 탓에 혼란스러워하는 부모가 적지 않았다. TV 프로그램은 간접광고 등의 영향으로 과소비와 박탈감을 조장하고, 인터넷에서 접할 수 있는 다량의 양육 정보는 어떤 것을 믿고 따라야 할지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황준희(37, 전업주부 아빠)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유튜브에서 육아법을 조언하는 콘텐트를 찾아보는데, 육아를 잘하는 사람도 많은 데다 우리 상황으로는 지키지 못하는 것도 많아서 초라해질 때가 많다”고 했다. 박태우(39, 육아휴직 경험 없는 아빠)씨도 “‘슈퍼맨이 돌아왔다’ 같은 육아 프로그램을 보면 넓은 집에 살면서 아이에게 많은 경험을 시켜주는 걸 보여주는데, 위화감이 들 때도 있다”고 말했다.    ━  ☝ 부자 될 수 있다면, 대학·직장은 덜 중요   부모가 자녀를 잘 키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육아정책연구소가 자녀 교육에 성공했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자녀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것’ ‘자녀가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하는 것’을 그 증거로 꼽는 사람이 많았다. 자녀가 꿈을 이루고 좋은 인성을 갖추는 것은 30대를 포함해 전 연령대에서 공통적으로 지목한 성공한 자녀 교육의 지표였다.   하지만 현실적인 조건에서는 30대와 중장년층의 의견이 갈렸다. 중장년층은 ‘자녀가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일을 각각 14.3%, 9.8% 지지하며 의미를 두었다.   하지만 30대에겐 이 둘보다 ‘자녀가 경제적으로 잘사는 것’(16.1%)이 더 중요했다. 좋은 직장 취직(8.7%)은 3순위였다. 또한 명문대 진학(4.5%)보다 ‘건강하게 성장’(7.7%)하는 데 의미를 뒀다. 30대에겐 자녀가 경제적인 안정을 이룰 수 있다면, 좋은 직장이나 명문 대학 같은 ‘간판’은 덜 중요해진 것이다.     이는 hello! Parents가 만난 일부 양육자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학원강사로 일하는 최창호(38, 육아휴직 경험 없는 아빠)씨는 “아이가 공부는 못해도 되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한 자세만큼은 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황준희(37, 전업주부 아빠)씨는 “요즘 주변 사람들을 보면, 성적순에 따라 잘살고 있는 것 같진 않다”며 “공부 잘한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돈 버는 방법도 다양해졌다”고 말했다.   개발자인 이우진(35, 육아휴직 경험 없는 아빠)씨는 “범법행위가 아니라면 아이 직업은 뭐든 상관없다”고 했다. 이씨는 “개발자도 최근엔 우대받고 있지만, 몇 년 전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직업이었다”며 “아이가 사는 미래에는 인공지능 발달로 우리가 아는 일자리 자체가 확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는 재능이 없었지만 배우나 가수, 운동선수처럼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들은 특히 부모나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삶, 경쟁하는 삶을 자녀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두 아이를 키우는 오소연(34, 풀타임 워킹맘)씨는 “교육열이 높은 어머니 밑에서 공부뿐 아니라 모든 걸 다 잘하라는 압박을 받고 자랐다”고 했다. 오씨는 “엄마의 기대치만큼 해내지 못했을 때 실망한 엄마의 얼굴이 너무 싫었다”며 “나는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윤미래(32, 전업맘)씨는 올해 태어난 아이가 4세쯤 되면 도시를 벗어나 귀촌할 계획이다. 아이를 경쟁 상황에 놓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윤씨는 “공부도 열심히 했고 대학도 적당히 갔지만,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마다 괴로웠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고 했다.   만 3세 아이를 키우는 강민경(35, 풀타임 워킹맘)씨 부부는 모두 명문대를 나왔다. 그는 “나와 남편은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사회 규율에 맞춰 살아왔지만, 아이는 자기 색깔에 맞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강씨는 “미래에는 공부 잘하는 사람, 규칙과 규율을 잘 지키는 사람이 그다지 인재로 평가받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잘하는지 스스로 알고, 그 욕망과 재능을 가지고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길 바란다”고 했다.    ━  ☝ 자녀 역시 전문직이 최고   그렇다면 아이가 경쟁이나 사회적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살길 바라는 걸까?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들은 이 질문에 속 시원하게 ‘그렇다’고 답하진 못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중요하지만, 경제적 기반은 필수라는 입장이다.   산부인과 의사인 이현지(38, 파트타임 워킹맘)씨는 “자녀에게 경제적인 면을 무시하고 네 꿈을 찾으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야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에게 충실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이씨는 믿는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양육자들에게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과 열정에 따라 사는 삶, 자녀가 이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길 바라는지 물었다. 30대 응답자의 과반(50.9%)은 경제적 안정에 더 큰 가치를 뒀다. 열정에 따르는 삶을 더 중시한 비율은 25.6%에 불과했다.   자녀 삶에서 경제적 안정을 우선시하는 현상은 자녀가 전문직을 가지길 바라는 기대와도 연결된다. 자녀가 미래에 가졌으면 하는 직업으로 30대는 아들과 딸 할 것 없이 모두 전문직을 1순위로 뽑았다.   아들의 경우, 직업으로 전문직을 원하는 부모들이 42.6%로 가장 많았고, 사무기술직(37.1%), 자영업(9.9%), 예체능인(5.9%) 등이 뒤를 이었다. 딸은 선호하는 장래 직업으로 전문직(56.1%)을 꼽는 부모들이 아들보다 더 많았다. 이어 사무기술직(28.8%), 예체능인(10.7%), 자영업(2%) 등의 순이었다.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오소연씨(34, 풀타임 워킹맘)는 “의사들만의 리그가 얼마나 단단한지 너무 잘 알고 있다”면서 “강요하고 싶진 않지만, 아이가 의사나 약사가 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오씨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해도, 의사·변호사처럼 전문직 직업은 우리 세대가 죽을 때까지는 기득권을 유지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대학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남지선(34, 전업맘)씨는 “아직은 사람들이 출신 대학부터 묻고, 소위 명문대를 뽑는 직장이 여전히 많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는 “예체능 등 학업과 상관없는 재능이 뛰어나다면 굳이 대학을 가지 않아도 되지만, 교육 제도가 완전히 바뀌지 않는 이상 대학 욕심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윤자영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성장 과정에서 경제적 좌절을 경험한 1980년대생 부모들이 경제적 안정에 집착하는 건 당연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1980년대생들은 청소년기 끝자락에는 IMF 외환위기, 노동시장 진입기에는 금융위기를 겪었다. 결혼 이후 주택시장 진입기에는 집값 폭등기를 겪으며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린 소위 ‘영끌세대’이기도 하다. 윤 교수는 “80년대생 부모들은 경제 위기에도 전문직만큼은 안정적으로 높은 소득을 올린다는 걸 체감했다”며 “저성장 시대를 살아갈 자녀 역시 위기에 강한 전문직 일자리를 갖기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참고문헌] 『행복한 육아문화 정착을 위한 KICCE 육아정책 여론조사(Ⅴ)』육아정책연구소, 2021 『한국인의 부모됨 인식과 자녀 양육관 연구』, 육아정책연구소, 2016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1.08 15:08

  • 장난감 고르는 세 가지 조건…그것보다 더 중요한 ‘10분’

    장난감 고르는 세 가지 조건…그것보다 더 중요한 ‘10분’ 유료 전용

    아이들 혼을 쏙 빼놓는 장난감이 인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건 양육자를 위한 육아 도구이지 아이를 위한 놀잇감이 아닙니다. 좋은 장난감을 고를 땐 세 가지를 봐야 해요.   “좋은 장난감이 뭐냐”는 질문에 허청아 올디너리매직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허 대표가 꼽은 세 가지는 소재가 안전한지, 발달과 기질에 맞는지, 그리고 열린 장난감인지다. ‘육아템’ ‘국민장난감’이라고 불리는 놀잇감 역시 무턱대고 사기 전에 이 세 가지 기준으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단다. 그는 15일부터 발행하는 ‘국민장난감 대해부’ 칼럼을 통해 12가지 놀잇감의 활용법을 알려준다.   아동발달 전문가 허청아 올디너리매직 대표는 “좋은 장난감을 고르려면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며 “안전한 소재인지, 발달 수준과 기질에 맞는지, 능동적으로 놀 수 있는지를 확인하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서울대에서 아동학을 전공하고 박사 과정까지 수료한 허청아 대표는 2020년 11월 육아용품 스타트업 올디너리매직을 창업했다. 월령별 발달에 따라 맞춤형 놀잇감을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 ‘피카비’가 대표 상품이다. 아동학 전문가로 연구자의 길을 걷던 그가 돌연 창업을 결심한 건 엄마가 되면서다. 2019년 8월, 아이를 출산하고 맞닥뜨린 육아 현실은 이론과 너무 달랐다.   장난감 찾기가 유난히 힘들었다. 정보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아이에게 사주고 싶은 장난감 자체가 많지 않았다. 소재도 안전하지 않았고, 지나치게 자극을 주는 것들이 상당수였다. 그나마 원목 교구가 마음에 들었지만, 너무 비싸거나 해외에서만 팔았다. 허청아 대표가 ‘피카비’를 출시한 이유다. 그렇다면 허 대표가 말하는 좋은 장난감이란 무엇일까? 그가 꼽은 세 가지 기준에 대해 하나씩 물었다.    ━  질문① “안전한 소재로 만들어졌나요?”   허청아 대표는 장난감을 살 때 소재의 안전성을 가장 먼저 확인한다. 매일 물고 빠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장난감 소재에서 피해야 할 재료는 뭘까요? 플라스틱 장난감은 피하라고 말합니다. 일부 플라스틱에 쓰이는 프탈레이트란 물질 때문이에요. 프탈레이트는 우리 몸에 들어오면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켜서 생식 장애, 성장 지연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말랑말랑한 PVC(폴리염화비닐)에 주로 쓰이는데, 현재는 사용이 금지됐거나 극미량 사용만 허용된 상태입니다. 하지만 가끔 중국산 등에서 기준치를 넘는 제품이 유통돼 문제가 되고 있죠. 모든 물건을 입으로 가져가는 영아기(0~24개월)는 플라스틱을 최대한 멀리하라는 이유입니다. 대신 원목, 천, 실리콘 등 인체에 무해한 소재로 만든 장난감이 좋습니다.   허청아 대표는 모든 걸 입으로 가져가는 영아기는 플라스틱 장난감보다 원목, 천, 실리콘 등 인체에 무해한 소재로 만든 장난감을 추천했다.김상선 기자   하지만 장난감의 상당수가 플라스틱 소재예요. 완전히 차단하긴 힘들어요. 양육자가 옆에서 안전하게 갖고 놀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놀 땐 옆에 함께 있어 주는 게 좋습니다. 최대한 입에 넣지 않게 하고, 놀이 후에는 꼭 손을 씻게 해주세요. 또 제품안전정보센터의 리콜 정보도 주기적으로 확인하세요. 국가기술표준원이 시중에 유통되는 제품을 대상으로 실시한 안전성 조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품안전정보센터 홈페이지에서 ‘아동’ ‘유아’ ‘어린이’ 등의 키워드로 리콜 정보를 검색하면 문제가 된 육아용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장난감의 안전성을 확인할 방법은 없을까요? KC인증 마크를 확인하세요. 2015년 시행된 ‘어린이제품안전특별법’에 따라 국내에 유통되는 13세 이하 아동용품은 반드시 KC인증을 받아야 제조와 판매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수입 장난감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US), 유럽(CE), 영국(UKCA) 등 국가마다 안전인증제가 있지만, 어린이 제품의 경우 국내에서 유통하려면 KC인증을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KC인증 마크가 있다면 믿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간혹 SNS나 오픈마켓 등에서 KC인증 마크가 없는 장난감이 판매되기도 하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또 다른 기준이 있다면요?   영아용 장난감은 사용 연령이 ‘3세 미만’인지도 확인하세요. 장난감 상당수가 ‘3세 이상’ 안전인증을 받은 경우가 많으니 꼼꼼히 보셔야 합니다. ‘3세 미만’ 안전 인증은 통과가 어렵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입에 넣어도 유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을 충족해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소재부터 접착제까지 부속품 하나하나 안전 기준에 맞아야 합니다. 부속품 중 목에 감길 만한 끈이 있어도 안 되고, 모든 부속품의 크기는 4.5㎝를 넘어야 하고요. 그보다 작으면 입에 넣었다가 질식사할 수 있기 때문이죠.    ━  질문② “장난감이 아이의 발달 수준과 기질에 적합한가요?”     완구 시장에도 유행이 있다. 이 시기에 이 제품을 사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말하는 기업의 마케팅이 불안감을 조성한다. 허청아 대표는 “유행보다는 과학적인 이론을 믿으라”고 말했다. 아동학에서 말하는 ‘발달 수준’과 ‘기질’에 따라 장난감을 선택하면 마케팅에 휘둘리지 않고 내 아이에게 맞는 장난감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발달 수준과 기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아이는 성장 시기마다 욕구가 다릅니다. 욕구는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장난감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욕구를 해소하는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생후 7개월이 되면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던지기 시작합니다. 팔의 힘을 기르려는 욕구와 ‘던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호기심이 뒤섞인 행동이에요. 아이 입장에서는 일종의 실험인 셈입니다. 이때 소리 나는 인형을 쥐여 주면 청각까지 자극돼 성장 욕구를 놀이로 승화합니다. 아동학은 이러한 인간의 발달 과정을 실험과 연구로 검증한 학문입니다. 아이의 발달 수준과 기질에 따라 장난감을 고르라는 건 그래서입니다.   허청아 대표는 “유행타는 장난감보다 아이의 발달 수준과 기질에 맞는 장난감을 고르라”고 조언했다. 김상선 기자   양육자는 하루가 짧습니다. 아이의 발달 특성까지 고려해 장난감을 사줄 시간이 없어요.  따로 시간 내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특히 세 돌 이전의 아이라면 더욱요. 이 시기는 뇌가 급격하게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신체 성장 속도에 맞춰 흥미와 행동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죠. 아이를 유심히 지켜보다가 자주 하는 행동과 장난감을 짝지어 주세요. 예를 들어 던지는 시기에는 한 손에 잡히는 장난감을 쥐여 주세요. 던질 기회를 주는 겁니다. 안전을 생각해 실리콘 숟가락이나 가벼운 인형이 좋습니다. 책을 찢는 시기라면 신문지를 주세요. 가볍고 얇아 잘 찢어지거든요. 이렇게 아이의 행동만 잘 관찰해도 놀이에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발달 시기별 유용한 장난감, 어떻게 고르나요?   신생아부터 생후 12개월까지는 발달 속도가 가장 빠릅니다. 그래서 이 시기는 월령별 발달 사항을 알아두면 좋습니다. 발달 사항에 맞는 놀잇감을 쥐여 주면 흥미를 자극해 더 오랫동안 갖고 놀기 때문이죠. 단, 이건 평균적인 기준일 뿐입니다. 아이의 발달은 또래와 비교하는 게 아니라 내 아이의 어제와 비교해야 합니다. 어제보다 나아졌다면 아이는 열심히 발달하고 있는 겁니다. 막연한 걱정 대신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는 자신감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장난감을 고를 때 아이의 기질도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기질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고유한 행동 양식입니다. 자기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하는 유아기(24개월~6세)는 기질에 따라 선호하는 놀이와 장난감이 갈려요. 예를 들어 활동적인 아이는 퍼즐과 같은 정적인 장난감을 싫어하고, 자극을 추구하는 아이는 어떤 장난감이든 쉽게 싫증을 내는 식입니다. 그래서 아이의 기질을 알면 흥미를 끄는 장난감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아이의 기질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전문기관에서 검사를 받는 게 가장 정확하지만 간단한 테스트로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피카비도 13~36개월 아이를 위한 기질 테스트를 개발했습니다. 시중에 유통되는 기질 테스트는 보통 36개월 이상만 대상으로 해 아쉬웠거든요. 기질을 결정하는 세 가지 축(자극 추구, 위험 회피, 사회적 민감성)을 기준으로 기질을 여덟 가지 동물 유형으로 나눴습니다. 각 유형에 맞는 장난감과 놀이법도 추천합니다. (▶피카비 기질 테스트)   장난감의 색상도 발달에 영향을 미치나요?   다채로운 색을 많이 보면 아이의 시각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아이들은 온몸으로 새로운 감각을 흡수하기 때문이죠. 피카비 놀잇감을 제작할 때도 색깔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아이들의 시각 발달을 촉진하면서 흥미를 끌 수 있는 다양한 색을 쓰되, 양육자의 취향도 고려하고 싶었거든요. 요즘은 인테리어를 중요하게 생각해 장난감도 우드톤이나 베이지, 화이트 계열을 고집하는 분들이 있어요. 이건 아이들에게 매력적인 장난감이 아닙니다. 성인보다 시각이 덜 발달한 영아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질문 ③ “장난감이 열려 있나요? 닫혀 있나요?”     좋은 장난감의 마지막 조건은 아이가 장난감을 갖고 능동적으로 놀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중에서 판매하는 상당수 장난감이 그렇지 못하다는 게 허청아 대표의 생각이다. 대표적인 게 건전지가 들어가는 장난감(이하 건전지 장난감)이다. 그는 “건전지 장난감은 화려한 불빛과 요란한 소리로 아이를 사로잡는다”며 “과한 자극으로 흥미를 끌지만, 주도적으로 생각할 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버튼만 누르면 되는 건전지 장난감은 아이를 수동적으로 놀게 한다. 허청아 대표는 “모래, 블럭, 공 등 다양한 방식으로 놀 수 있는 ‘열린 장난감’을 쥐여주라”고 했다. 김상선 기자   건전지 장난감은 ‘좋은 장난감’이 아니라고요? 두 가지 이유에서 그래요. 우선 작동 원리가 단조롭거든요.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사고를 확장합니다. 딸랑이를 예로 들어볼게요. 딸랑이를 쥐고 있다가 우연히 흔들었는데 방울 소리가 났다면 아이는 ‘소리를 내려면 딸랑이를 흔들어야 한다’는 작동 원리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때 앞으로 흔들 때, 옆으로 흔들 때 미묘하게 소리가 다릅니다. 아이들은 그 차이를 찾아가며 놉니다. 반면에 건전지 장난감은 작동이 쉽습니다. 전원 버튼만 누르면 모든 게 자동으로 움직이죠. 아이는 생각할 필요 없이 버튼만 누르면 됩니다. 그러니 금세 지루해하며 오래 갖고 놀지 못하는 겁니다. 이 경험이 반복되면 장난감에만 의지해 수동적으로 놀게 되고요.   두 번째 이유는 뭐죠? 작동 원리는 단순한 데 비해 자극은 과합니다. 인간의 뇌는 큰 자극을 받으면 그보다 덜한 자극에 둔감하게 느낍니다. 사탕을 먹은 뒤 과일을 먹으면 맛이 밍밍한 것처럼요. 역치라고 하죠. 반응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가 점점 높아지는 겁니다. 뇌가 급격하게 발달하는 아이들은 자극에 더 민감합니다. 자극이 과한 장난감에 익숙해지면 일상의 건강한 자극은 심심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앉아서 블록을 만들거나, 양육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지루해하고 더 강한 자극을 찾으려 할 겁니다.   하지만 건전지 장난감을 안 사줄 수는 없어요. 이런 단점을 피하려면 장난감이 가진 기능을 따져 보세요. 기능이란 누르면 소리가 나고, 불이 들어오고, 색이 바뀌는 걸 말합니다. 이런 기능은 장난감 하나에 세 개 이하가 좋습니다. 기능이 너무 많으면 아이는 혼란을 느끼거든요. 그보다 중요한 건 각 기능을 다양한 방식으로 갖고 놀 수 있느냐입니다. 이른바 ‘열린 장난감’인지 생각해 보면 좋습니다.     열린 장난감요?   아이가 생각한 대로 조작할 수 있고, 스스로 작동법을 알아내야 하는 장난감입니다. 이와 반대로 조작이 한정적인 건전지 장난감은 ‘닫힌 장난감’에 가깝습니다. 열린 장난감은 갖고 놀기 위해 생각과 행동을 많이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창의력과 집중력이 발달하죠. 또 자극이 일방적이지 않기 때문에 건전지 장난감보다 덜 지루합니다. 노는 방법만 바꿔도 새로운 자극이 되니까요. 그래서 훨씬 더 오래 가지고 놀 수 있죠.   열린 장난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블록이나 모래가 대표적입니다. 블록은 끼우고, 바구니에 담고, 원하는 것을 만드는 등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죠. 인형이나 동물 모양의 피규어 등도 여러 방식으로 역할놀이를 할 수 있어서 좋고요. 던지고 받고 뛰어넘는 등 다양한 신체놀이를 할 수 있는 공도 추천하는 열린 장난감입니다.   아동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던 허청아 대표는 아이에게 꼭 필요한 장난감을 만들어주고 싶어 창업했다. 대표 브랜드인 ‘피카비’는 월령별 발달에 따라 맞춤형 놀잇감을 보내주는 구독 서비스다. 김상선 기자   아무리 열린 장난감이라고 해도 너무 많으면 좋지 않을 것 같아요.  장난감의 개수는 적을수록 좋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무엇을 갖고 놀아야 할지 몰라 집중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실제 미국의 한 연구팀이 장난감 개수에 따른 놀이의 질을 측정했어요. 개수가 적을수록 장난감을 갖고 노는 시간이 더 길고, 다양한 놀이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더 창의적이고 의미 있게 놀았다는 얘기입니다.   쉽게 싫증을 내는 아이에게는 자꾸 새 장난감을 사주게 됩니다. 괜찮을까요?   그럴 때는 장난감을 재배치해 보세요. 교구장 위칸과 아래칸의 장난감 자리를 바꾸는 식입니다. 또 고깔에 끼워둔 링을 풀어헤쳐 바닥에 일렬로 늘어놓는 등 위치와 모양을 바꾸는 겁니다. 이렇게 배치 방식만 바꿔도 아이는 그 장난감을 새롭게 느끼고 새로운 방법으로 놉니다.   허청아 대표는 인터뷰 말미에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장난감이 아니라 양육자와의 놀이”라며 “아무리 바빠도 매일 아이에게만 온전히 집중해 놀아주는 시간, ‘퀄리티 타임’을 꼭 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퀄리티 타임은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며 “하루 10분, 휴대전화를 끄고 오로지 아이와 노는 데만 에너지를 쏟으라”고 했다. 네 살 딸아이를 키우는 허청아 대표도 매일 10분은 반드시 퀄리티 타임을 갖는다.     어떤 장난감을 사줬느냐보다 어떻게 노냐가 더 중요합니다. 매일 아이와 집중해 놀아 보세요. 단 10분만으로도 양육에 자신감이 생기고, 아이와의 관계는 단단해집니다. 잊지 마세요, 장난감을 골랐다면 이제는 아이와 놀 차례입니다.   성소영 객원기자 ssoy419@gmail.com, lee.minjung2@joongang.co.kr   관련기사 그저 ‘뒷말’ 따라했을 뿐인데…아이에게 생긴 놀라운 변화 수업 중 벌떡, 공격적 행동까지…이런 아이 바꿨다, 놀이치료법 "아이한테 버럭하게 돼요" 실수하는 부모를 위한 조언 [오밥뉴스]

    2022.11.07 15:18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⑰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⑰ 유료 전용

        ■  「 전업주부 남성 20만 시대다. 2011년 14만7000명 수준이던 게 지난해 19만4000명까지 늘었다. 전제 전업주부의 3%에도 못 미치는 수치지만, 지난 10년 사이 32%나 늘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여성 전업주부가 27만 명가량 준 것과 대조적이다. hello! Parents가 1980년대생 양육자 중 전업주부 남성을 포함한 이유다.   만 5개월 차 전업주부인 황준희(37)씨는 변호사다. 모두가 선망하는 전문직을 가진 그는 왜 전업주부가 됐을까? 그는 커리어를 어떻게 설계하고 있을까? 인터뷰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공개된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아이 자고 나면 온라인으로 한국 대학원 수업을 들어요. 내년 9월엔 미국 법학 석사(LL.M) 과정을 시작하려고요. 커리어 공백을 메워야죠.   미국에서 7세 아들을 키우며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황준희(37)씨는 “커리어에 대한 계획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지난 6월부터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아내가 미국으로 발령을 받자, 자신은 커리어를 내려놓고 아이를 돌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미국에 오기 전 그는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 시험을 통과해 일자리를 찾던 신임 변호사였다. 로스쿨에 가기 전엔 공기업에서 일했다. 그는 “로스쿨에 늦게 가 변호사로서 나이가 많은 편이라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컸다”면서도 “아이가 현지 적응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전업주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전업주부가 되긴 했지만, 아내의 미국 근무가 마무리되면 귀국해 변호사로 일할 생각이다. 그가 한밤중에 한국 대학원 수업을 듣는 것도, 미국 법학 석사 과정을 준비하는 것도 그래서다. 전업주부로 ‘전직’한 게 아닌 만큼 그에게 이 기간은 ‘공백기’인 것이다.  ━  ☝ 고시 합격 갈렸지만, 결혼에 골인하다    황준희씨의 아내는 고위 공무원이다. 그와 아내는 고시 공부를 하다 만났다. 같은 꿈을 꾸고, 서로를 응원하며 사랑을 키웠다. 아내가 먼저 고시에 합격했다. 황준희씨는 1년 더 고시를 준비했지만, 합격하진 못했다.   “고시촌 커플은 보통 여자가 붙고 남자가 떨어지면 헤어지는데, 저희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혼까지 이를 수 있었죠. 제가 못 이룬 꿈을 아내가 대신 이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내의 커리어를 응원했고, 지원하려고 했고요.” 비록 고시엔 합격하진 못했지만, 아내가 합격한 다음 해 그는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에 합격했다. 그리고 그해 결혼했다.     황준희씨는 “장남이라 그런지 결혼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옛날 사람 같지만,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고 했다. 결혼에 긍정적이었던 만큼 취업에 성공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에 이르게 된 것이다.   ‘장남’이란 부담을 갖고 있다고 해서 가사에 무심한 ‘가부장’은 아니다. 근무 강도가 센 아내보다 그가 가사를 더 많이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난 후 휴직한 기간도 아내보다 황준희씨가 더 길 정도다. 그의 아내는 출산휴가를 포함해 총 6개월을 쉬었지만, 그는 1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아내가 복직할 무렵, 육아를 도와주던 조선족 도우미가 중국으로 돌아간 게 육아휴직의 계기였다.   “제가 남자다 보니 어린이집에서 만나는 다른 엄마들이랑은 교류하기 쉽지 않았어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100인의 아빠단’ 활동을 한 건 그래서예요. 덕분에 다양한 양육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아이와 이곳저곳 다니며 알찬 시간을 보냈죠.”   그는 “아이가 ‘아빠 껌딱지’라고 불릴 정도로 애착 형성이 잘됐고,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며 양육자로서의 행복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가 ‘전업주부’가 되는 덴 이때 경험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  ☝ ‘신의 직장’을 버리고 로스쿨에 진학하다    황준희씨는 육아휴직 기간 큰 도전에 나섰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을 활용해 로스쿨 진학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어요. 할 건 다 했으니까요. 아내가 돈을 벌고 있었고, 가정 역시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변 어른들도 제 도전을 크게 걱정하거나 만류하지 않으셨고요.”   로스쿨에 도전한 데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무엇보다 일에 대한 아쉬움과 불만이 컸다. 공기업이다 보니 주무부처에서 중요한 정책 결정이 이뤄지면 그에 따라 업무가 결정됐던 것이다. 황준희씨는 “고시를 준비했던 터라 협업하는 주무부처 업무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그게 내 일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황준희씨가 일하던 공기업이 해외 근무가 잦다는 것도 커리어를 전환하게 된 이유였다. 그의 아내 역시 해외 근무가 잦은 직업이라, 둘 중 한 사람이라도 한국에 뿌리내리는 직업을 가지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의 직장’을 포기하는 기회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전문직을 갖는 게 가정 전체로 보면 유리하다는 판단도 있었다. 2016년 8월부터 1년간 육아휴직을 하며 학업과 육아를 병행한 그는 육아휴직을 마친 다음 해(2018년) 3월 로스쿨에 입학했다. 로스쿨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장모님의 손을 빌려 아이를 키웠다. 지방에 사시던 장모님이 상경해 함께 살며 육아를 전담했고, 그는 늦게까지 공부에 매달렸다. 아내 역시 황준희씨의 빈자리를 어머니가 채워준 덕에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부모님이 육아를 도와주시면 양육 방식을 놓고 갈등이 생긴다던데, 저는 크게 괘념치 않았어요. 부모님은 체력이 저희 같지 않으니 아이에게 미디어 노출을 많이 시키셨는데, 크게 불만을 느끼진 않았어요. 저와 아내의 커리어를 위해 희생하시는 거잖아요. 감사하고 죄송했죠.”    ━  ☝ 일시적 주부, 커리어 공백과 싸우다    황준희씨의 하루는 눈코 뜰 새가 없다. 오전 7시 반쯤 일어나 아이를 먹이고 씻겨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면 오전 9시쯤 된다. 집안일을 빠르게 처리한 뒤 짬을 내 공부를 하다 오후 3시쯤 아이를 데리러 간다. 그때부터는 육아 전쟁이다. 숙제를 봐주고, 피아노 연습 같은 활동을 챙기고 저녁을 준비해 먹인 뒤 1시간 정도 놀이터에 다녀온다. 돌아와선 다시 아이를 씻기고 책을 읽거나 하다 보면 아내가 퇴근한다. 아이가 잠들면 컴퓨터를 켜고 온라인으로 국내 법학대학원 박사 과정 수업을 듣는다.    “미국에 있는 동안 공백이 생기면, 막상 일하려고 해도 일자리 잡기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죠. 코로나19 국면이 마무리돼 온라인 수업이 많진 않지만, 그래도 코로나19 덕분에 비대면으로 들을 수 있는 수업이 있어요. 다행이죠.”  미국에 오기까지 아내와 갈등도 있었다. 그가 변호사 시험을 준비하며 공부에 몰두할 무렵 아내는 “미국에 가게 될 것 같다”고 했다. 공부에 지쳤던 그는 “합격하고 같이 가면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아내를 응원했다. 변호사 시험 결과를 기다리던 올 2월, 아내는 아이와 함께 먼저 미국으로 갔다. 장모님이 정착을 도우러 함께 갔다. 그리고 4월, 황준희씨는 시험에 합격했다.   “막상 합격하고 나니 커리어가 걱정됐어요. 남들보다 늦게 변호사가 된 터라, 나이가 많은 신입이잖아요. 바로 자리 잡지 않으면, 쉽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변호사 시장도 경쟁이 치열해졌으니까요.”   합격 후 두 달 정도 여기저기 지원하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그가 선뜻 출국하지 못하고 주저하자 아내 역시 아내대로 힘들어 했다. 황준희씨는 “그때 많이 싸웠다”며 “아마 아이가 없었다면 갈라섰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가 출국을 결심한 건 아이가 현지 적응을 힘들어 해서다. 언어가 다르다 보니 할머니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가 마음을 정하고 나서도 문제는 있었다. 부모님과 지인들이 그의 커리어를 걱정하고 나선 것이다. 황준희씨는 “남녀가 똑같다고 하지만, 막상 남자가 육아하겠다고 하면 다들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말했다.   “저희 어머니는 약사였는데, 아이 셋을 키우느라 경력 단절을 겪었어요. 어머니가 30년 전 했던 고민을 제가 하고, 그 길을 제가 걷는 셈이죠. 커리어 단절이 걱정이지만, 이미 선택했잖아요. 걱정할 시간에 공백을 메울 뭔가를 하는 게 낫죠.”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1.06 15:53

  •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⑯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⑯ 유료 전용

      ■  「 국내 육아휴직 제도는 1987년 도입됐다. 남성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된 건 그 후로도 8년이 지난 1995년부터다. 하지만 2010년까지도 육아휴직을 쓴 아빠는 매년 10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지난해 들어서야 아빠 육아휴직자는 2만7000명을 넘어섰다. 이제 육아휴직자 4명 중 1명은 아빠다.   hello! Parents는 리서치 전문회사 오픈 서베이의 도움을 받아 1980년대생 남성 양육자 중 육아휴직 경험이 있는 두 명의 아빠를 만났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2016년 직장에서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쓴 아빠들이었다. 그해 전국 남성 육아휴직자는 7600여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이 장승준(40)씨다.   워커홀릭이던 장씨는 육아휴직 중 해고당하고, 직업까지 바꿨다. 그런데도 그는 “결혼과 출산은 적극 추천한다”고 말한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가정적인 아빠가 됐을까? 인터뷰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공개된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아빠의 또 다른 이름이 희생인 것 같아요.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에요. 그 이상의 기쁨을 얻어요. 그 재미에 아빠 하는 거죠.   두 아들이 태어난 뒤 직업까지 바꾼 장승준(40)씨는 “꿈을 접은 게 아쉽지 않으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삶의 무게추를 일에서 가정으로 옮겼을 뿐”이라며 “꿈을 접은 게 아니라 꿈이 바뀐 것”이라고 했다.     장승준씨는 “아이 옆에는 무조건 아빠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육아휴직 중 퇴사를 권고받자 아예 직업을 바꾼 것도 그래서다. 재취업해도 같은 상황이 반복될 거라고 판단했다. “아빠가 중심을 잡고 가족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회사에 고용되지 않고도 일할 수 있는 전문직으로 직업을 바꿨다.   사는 곳도 옮겼다.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에 복잡한 수도권을 떠나 한적한 지방 도시로 이사했다. 아무런 연고 없는 타지 생활이 외로울 때도 있지만, “내 아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일 잘해도 소용없다”를 외치며 오늘도 아빠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  ☝ “아버지만큼만 하자”     장승준씨는 한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삼촌, 고모까지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이었다. 5남매의 맏이인 아버지는 성실한 가장으로, 맏며느리인 어머니는 정 많고 알뜰한 살림꾼으로 사셨다. 그는 부모님을 “엄격한 아버지와 사랑 깊은 어머니, 엄부자모(嚴父慈母)의 표본”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인지 장승준씨도 일찍 철이 들었다. 갓난쟁이 사촌 동생을 돌보는 건 그의 몫이었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도 “애 봐야 해”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갈 정도였단다.   “사촌 동생을 돌보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그때 알게 된 것 같아요. 아이는 가족 품에서 커야 한다는 걸요.”   가장의 무게는 아버지를 보고 배웠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분이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특별히 부족하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어릴 적에는 그런 아버지가 좋았다. 하지만 장승준씨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 아버지가 가족과 떨어져 섬에서 근무하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그는 “가족보다 일을 더 좋아하신다고 생각했고, 그래선지 아버지가 하는 말은 다 잔소리로만 들렸다”고 했다. 오해는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풀렸다. 곳곳에서 부모가 실직하고 가정 경제가 무너지고 아이가 버려졌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그래도 장승준씨네는 굳건했다. 난리 통에도 자리를 지킨 아버지 덕분이었다. 그제야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던 가장의 무게를 이해했다.   “섬 근무를 하는 3년간 마음이 어떠셨을지 상상도 못 하겠더라고요. 그제야 ‘아버지만큼만 하자’는 생각이 들었죠. 철없을 땐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아버지를 좇아 살고 있네요.”   장승준씨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다. “공부하는 아이를 원하면 먼저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친절하길 바라면 먼저 호의를 베풀면 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일에 지쳐도 매일 밤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틈날 때마다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건 그래서다. 육아도 대충 하는 법이 없다. 양육서를 읽고 또 읽었다. 아내와는 밤마다 양육을 주제로 이야기도 나눈다   “제가 책 읽고 있으면 애가 슬그머니 옆에 와서 책을 펼쳐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겠죠?”    ━  ☝ “지금에 충실하다 보면 기회는 또 온다”     아이가 생기기 전 장승준씨는 일 중독자처럼 밤낮없이 일했다. 사람을 좋아해 술자리도 빠지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아이가 태어나면서 변했다.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다. 일도, 술도 뒷전으로 밀렸다. 삶의 터전까지 옮겼다. 아이가 아내의 직장 어린이집에 다녔는데, 아내의 직장이 지방으로 이전한 것이다. 안전하고 믿을 만한 직장 어린이집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왕복 4시간을 오가며 출퇴근했다.   “모두가 말렸죠. 아내와 애만 보내고 주말 가족으로 살라면서요. 어떻게 그래요? 아빠가 옆에 있어 줘야죠.”   아내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돌아갈 무렵엔 장승준씨가 육아휴직을 했다. 아내는 일하고 싶어 했고, 아이들은 돌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규모가 크지 않았던 당시 회사에서 그의 공백은 절대 작지 않았다. 결국 휴직 5개월 차에 회사는 그에게 퇴사를 권했다. 그의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결국 퇴사했다. 맞벌이하는 아내 덕분에 당장 생계가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가장으로서 부담이 컸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 중이었기 때문이다.    “막막했죠. 남편이 돼서 아내에게 돈 달라고 손 벌릴 수도 없잖아요. 내가 중심을 잡고, 가족을 지켜야겠다 생각했죠.”   며칠 밤을 설쳤다. 취직은 할 수 있었지만, 어딜 가건 돌봄에 공백이 생길 것 같았다. 그렇다고 커리어를 완전히 놓고 싶지도 않았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전문직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행정사가 되기로 하고 수험 생활을 시작했다. 그사이 둘째가 태어났고, 그는 매일 밤 둘째의 분유를 먹이며 공부했다.   위기는 기회가 됐다. 퇴사 6개월 만에 행정사 자격증을 딴 그는 프리랜서로 일하며 아이와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로 기관이 수시로 문을 닫을 때도 걱정 없었다. 소득도 이전보다 많다.    장승준씨는 두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이 생활을 이어갈 계획이다. 지금 당장 원하는 일을 할 수는 없지만, 아이를 키우며 일했던 지금이 나중엔 커리어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는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다 보면 기회는 또 온다”며 “지금은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  ☝ “집값보다 환경이 더 중요”     수도권을 떠나 지방 도시로 이사한 게 아쉬웠던 순간이 딱 한 번 있다. 살던 집을 팔고 이주한 지역에 집을 샀는데, 매도한 집값이 매수한 집값을 넘어선 것이다.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었다. 크게 돈 욕심은 없지만, 좀 더 여유 있게 아이를 키울 기회를 놓친 게 아닌가 싶었다는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아이를 키우기에 이만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 먼저 출퇴근 시간이 반으로 줄었다. 수도권에 살 땐 출퇴근에 매일 2시간을 썼다. 콩나물 지하철에서 녹초가 된 몸으로 육아를 하는 게 고됐다. 지금은 이 모든 것에서 해방됐다.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도 늘었다. 타지에 네 식구만 덩그러니 있으니 더 똘똘 뭉친다.   산과 들이 가까운 것도 장점이다. 쉬는 날이면 밖으로 나가 몸으로 놀아준다. 에너지 넘치는 두 아들에게는 자연보다 좋은 놀잇감은 없다. 그는 “우리는 코로나19 때도 운동장에서 놀 수 있었다”며 “인구 밀집도가 높은 서울에선 꿈도 못 꿀 일”이라고 했다.     양육 환경이 좋다지만, 사교육 인프라가 부족한 건 사실이다. 학령기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로서 아쉽진 않을까? 장승준씨는 “아이들이 원치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학교 앞에 가면 인력시장처럼 아이들을 학원으로 실어날라요. 저도 고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에요. 아이들에게 학원 다니고 싶냐고 물어봤죠. 싫대요. 쉽게 답을 얻었죠.”   학원에 보내는 대신 직접 가르친다. 초등학교 1학년인 첫째가 하교하면 집이 아닌 회사로 데려온다. 사무실 책상 옆에 아이의 책상을 뒀다. 아빠는 일을, 아이는 숙제를 하다가 함께 귀가한다.     물론 회사의 양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무리 전문직이라도 일하다가 아이 데리러 나갔다 오겠다는 직원을 이해해 주는 곳은 흔치 않다. 행정사 자격증을 타고 들어간 첫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한 것도 육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서였다. 다시 회사를 찾을 때 그가 가장 우선한 조건은 아이를 키우는 데 어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거였다.   결혼 9년 차, 두 아이의 아빠로 자리 잡기까지 장승준씨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삶의 터전을 옮겼고, 직업도 바꿨다. 그 중심에 항상 아이가 있었다. 그에게 “아이들 때문에 너무 많은 걸 포기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아이들 덕분에 제 삶의 격이 높아졌죠. 그래서 저는 결혼도 출산도 강력히 추천해요. 기왕 할 거면 빨리 하세요. 아이 키우는 데 체력 소모가 엄청나거든요. 체력 넘칠 때 아이랑 놀아야 더 재밌습니다.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1.06 15:53

  •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유료 전용

      ■  「 국내 육아휴직 제도는 1987년 도입됐다. 남성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된 건 그 후로도 8년이 지난 1995년부터다. 하지만 2010년까지도 육아휴직을 쓴 아빠는 매년 10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지난해 들어서야 아빠 육아휴직자는 2만7000명을 넘어섰다. 이제 육아휴직자 4명 중 1명은 아빠다.   hello! Parents는 리서치 전문회사 오픈 서베이의 도움을 받아 1980년대생 남성 양육자 중 육아휴직 경험이 있는 두 명의 아빠를 만났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모두 2016년 직장에서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쓴 아빠들이었다. 그해 전국 남성 육아휴직자는 7600여 명이었다. 그중 한 명이었던 박태우(39)씨는 “육아휴직, 정말 힘들었다”고 했지만 “아빠라면 강하게 추천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육아휴직을 결심했고, 그 경험은 그의 삶을 어떻게 달라지게 했을까? 인터뷰에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공개된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아내가 육아휴직을 했을 때 ‘왜 이렇게 날카로워졌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아내가) 이런 기분이었구나. 힘들었겠구나’ 하고 그제야 이해했죠.   초등학생 딸을 둔 아빠 박태우(39)씨는 “육아휴직을 하고 무엇이 달라졌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6년 전 육아휴직 후 복직한 아내에 이어 10개월간 육아휴직을 썼다. 아빠 육아휴직자가 드물던 시기였다. 당시 여행업계에서 일했던 박태우씨는 회사에서 사내 남성 육아휴직자 1호였다.   육아휴직은 한마디로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깨달은 시간”이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외로움은 극에 달했다. 하지만 힘든 만큼 수확도 컸다. 아내의 고충을 이해하게 됐고, 아이와의 관계도 단단해졌다. 박씨가 “아빠라면 꼭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주변에 육아휴직을 권하는 이유다.   육아휴직은 아빠가 된 박태우씨가 아이와 가정을 위해 내린 첫 번째 결정이었다. 아이는 이후에도 그의 삶을 바꾸는 중요 변수이자 이유였다. 복직 2개월 뒤 그는 직장을 옮겼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로 여행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었고, 그는 프리랜서 대출상담사(대출 모집인)로 직업을 바꿨다. 그의 새 직업은 부부가 맞벌이하며 자력으로 아이를 키우는 데 안성맞춤이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내에 비해 근무 시간을 조율하기 쉬운 그가 딸의 등·하교와 학원 등·하원을 책임진다. 집안일도 대부분 그의 몫이다. 박태우씨는 “아이를 남의 손에 맡겨 키우지 않았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  ☝ 아이의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빠와 애착을 쌓는 게 정서적으로 좋잖아요. 아이에겐 그 시기가 돌아오지도 않고요. (육아휴직이란)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니 해보자 싶었죠.”   6년 전 박태우씨는 이런 마음으로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내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복직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갓 돌 지난 딸을 베이비 시터나 보육기관에 맡기기는 어쩐지 불안했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학대 사건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연로한 부모님에게 육아의 부담을 짊어지시게 하긴 싫었다.    그가 다니던 회사에도 육아휴직자는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여성이었다. 박태우씨가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하자, 회사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는 “주홍글씨가 찍힌 것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창 일할 직원이 빠진다고 하니까 윗분들이 안 좋아했죠. 회사에서도 뒷말이 돌았고요. 저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저희 부모님도 ‘남자가 돈을 벌어야지’ 하고 말리셨고요.”    커리어에 대한 불안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박태우씨는 “승진에 큰 욕심이 없었고, 돌아와서 잘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혹여 불이익을 받거나 적응하지 못해 퇴사하더라도, 재취업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도 있었다.    실전 육아는 만만치 않았다. 독박 육아로 인한 우울감과 외로움은 아빠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출근할 땐 늘 날이 선 셔츠를 입는 말끔한 그였다. 하지만 휴직 기간엔 머리도 안 감고, 면도도 안 한 채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살았다. 매일 아침 아내에게 ‘잘 다녀와’라고 인사한 뒤 하루 종일 말 못 하는 아기랑 집에 있다 보면 쉽게 무기력해졌다. 박씨는 “자존감이 바닥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고 했다.     그나마 문화센터가 숨통을 틔워줬다. 일주일에 사흘 집 근처 대형마트에서 하는 문화센터에 유모차를 끌고 다녀오면 서너 시간이 훌쩍 갔다. 피곤해진 아이는 금방 단잠에 빠졌고, 덕분에 그에게도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아빠는 박태우씨 혼자였다.   “친구들에게 연락하면 다들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느라 바빠 보였어요. 그런데 저는 ‘아이가 낮잠을 안 자서 쉬는 시간이 없어졌네’ 하며 속상해하고 있던 거죠. 회사에 빨리 나가고 싶었어요.”    ━  ☝ 요리 빼고 다 하는 아빠의 믿는 구석   아이가 두 돌이 되면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박태우씨도 육아휴직을 마치고 회사로 돌아갔다. 그는 “일하는 게 아이 키우는 것보다 몇 배는 수월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가 복직 후 두 달이 지나 돌연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육아휴직 썼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당한 건 아니에요. 다만 저 스스로 위축됐죠. 동기나 후배들 승진 얘기가 나오고 있었거든요. 저는 육아휴직을 했으니까 당연히 승진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무 시간도 걸림돌이었다. 당시 그는 오후 3시쯤 출근해서 그다음 날 새벽에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이런 근무 일정은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나자 다르게 다가왔다. “이러다간 아이 얼굴도 못 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태우씨는 결국 회사를 옮겼다. 아침 9시 출근해 저녁 6시면 퇴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박씨가 본격적으로 집안일을 전담하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아내의 직장 내 어린이집에 다니던 아이는 아침에 출근하는 엄마를 따라 나가 퇴근할 때 함께 집에 왔다. 박씨는 “육아에 관한 한 신경 쓸 일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고생하는 아내 대신 그는 가사를 도맡기로 결심했다. 요리를 제외하면 청소와 빨래, 화장실 청소, 설거지, 음식물 쓰레기 처리, 분리수거에 이르는 거의 모든 집안일을 다 했다. 아이 목욕시키기도 자처했다. 박태우씨는 “나도 똑같이 일하고 왔는데, 아내와 분담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진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내는 집안일을 하고 나면 체력이 떨어진 탓인지 신경이 더 날카로워지는 것 같았다. 날까로워진 아내를 마주할 바엔 박태우씨가 가사를 하는 게 마음이 편했고,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가사에 관한 한 노하우도 생겼다. 시간과 수고를 덜어주는 가전제품들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그의 집에는 가전제품 ‘3대 이모님’으로 불리는 로봇청소기와 건조기, 식기세척기 외에도 스타일러(의류 관리기), 로봇 물걸레 청소기가 있다. 이것들을 활용한 그만의 가사 노하우는 이렇다. 로봇청소기가 매일 낮 12시 청소하게 예약해 둔다. 일할 때 입는 셔츠도 세탁기에서 꺼내 건조기를 거친 뒤 바로 스타일러에 넣어둔다. 그럼 다림질을 하지 않아도 별다른 주름이 없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한다. 박태우씨는 “이런 가전은 비싸지만 돈이 아깝지 않다”며 “빚을 내서라도 사야 하는 제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박씨가 집안일을 전담하는 건 아내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기도 하다. 코로나19로 여행업계가 무너졌을 때, 아내는 박씨에게 정신적·경제적으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박씨가 대출모집인으로 새롭게 일을 시작할 때도 아내는 “돈 못 벌어도 괜찮으니 잘 해보라”며 응원해 줬다. 그런 아내에게 박씨는 “살림하지 말고 벌 수 있을 만큼 벌라”고 당부한다.   “저는 소득이 들쑥날쑥하거든요. 잘 벌 때는 회사원들은 상상도 못 할 만큼 벌지만, 한 달에 100만원도 못 버는 때도 있죠. 부부 중 한 사람이라도 안정적으로 돈이 나오는 직업을 갖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잖아요.”    ━  ☝ 아빠 육아휴직이 남긴 것들   박태우씨는 아빠가 된 후 TV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이 나오면 괴로운 마음에 제대로 보지 못한다. 운전하다가 갑자기 다른 차가 끼어들면 뒷자리에 탄 아이를 생각해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을 삼킨다. 건강을 위해 주말에는 딸과 함께 수영장에 가고, 자전거도 탄다.        그런 그도 출산을 고민하는 지인에겐 “아이는 고심해 보고 낳으라”고 말한다. 별다른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겪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아빠에겐 육아휴직만큼은 강하게 추천한다. 힘들지만 고생을 감내할 만큼 가치 있는 경험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내와의 유대관계가 끈끈해졌다. 박태우씨는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육아휴직을 완주할 수 있던 건 아내의 배려 덕분”이라고 말했다. 아내는 일이 끝나자마자 퇴근했고, 박씨에게 쉴 시간을 마련해 줬다. 그는 “먼저 휴직해 아이를 혼자 키웠던 아내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며 “나도 뒤늦게나마 아내의 고충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씨가 아이를 직접 키우다 보니 아내와 나눌 이야깃거리도 많아졌다.   딸과 사이가 돈독해진 것도 육아휴직이 남긴 큰 선물이다. 박씨는 이따금씩 주변 사람들로부터 “아이는 아빠가 육아휴직한 것도 모를 것”이라거나 “초등학교 4학년만 돼도 아빠는 아는 척도 안 한다”는 협박 섞인 말을 듣는다. 박태우씨에겐 그런 이야기를 듣고 웃어 넘길 자신감이 있다.    “딸아이한테 그 얘길 들려줬더니 “나는 절대 안 그럴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빈말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내 딸은 진짜 안 그럴 것 같기도 해서 기분이 좋았어요.”   박씨는 아내의 친구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갈 때면, 그 집 남편에게 한소리씩 듣는다고 했다.    “제가 또래 남자들보다는 (가사, 육아를) 잘하잖아요. 아내 친구 남편이 집에 가면 자기 혼난다고, 저보고 ‘적당히 하라’고 농담 삼아 얘기하는 거죠.”   그는 6년 전 육아휴직을 썼던 옛 회사의 남자 동료들의 근황도 들려줬다. 아빠가 육아휴직한다고 뒷말을 하던 남자 직원들이 모두 육아휴직을 썼다는 것이다. 박씨는 “제가 그때 아빠 육아휴직을 뚫어준 거나 마찬가지니까 뿌듯하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1.06 15:52

  •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유료 전용

      ■  「 이제 아빠도 일하며 가정을 돌봐야 하는 시대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란 아빠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hello! Parents는 리서치 전문회사 오픈서베이의 도움을 받아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1980년대생 남성 양육자들을 만났다. 육아 관여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육아휴직을 선정하고, 해당 경험이 있는 남성과 없는 남성, 가장 육아 관여도가 높은 전업주부 남성을 인터뷰했다. 가장 먼저 육아휴직 경험이 없는 아빠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우진(35)씨 부부는 아이를 낳은 후에도 맞벌이를 고수하고 있었다.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돈이 필요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부부 가운데 맞벌이는 53.3%로 절반을 넘어섰다. 이씨와 그의 아내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어떤 결정을 했을까? 인터뷰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공개된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딸아이가 태어나 감격에 겨웠는데, 다음 날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어요. 아이가 복덩이죠. (웃음)    IT 개발자인 이우진(35)씨는 2년 반 전 아이가 태어났던 순간을 이렇게 기억했다. 말 그대로 겹경사였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분양받은 아파트엔 내년 말 입주한다. 그는 “잔금을 치러야 해서 가계 소득의 60%를 저축하는 긴축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우진씨는 hello! Parents가 만난 80년대생 남성 양육자 중 육아휴직을 경험하지 않은 경우다. 그는 “육아 시스템이 잘 굴러가 굳이 육아휴직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했다. 이우진씨의 아이는 생후 13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닌다. 근처에 사는 이씨 어머니가 아이를 하원시켜 이씨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돌본다. 그는 “아내도 일하지만 시간을 유연하게 쓸 수 있다”며 “아이에게 급한 일이 생기면 아내가 대응한다”고 했다.    이우진씨와 마찬가지로 개발자인 아내는 프리랜서로 일한다. 두 사람은 직장 동료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의 아내는 임신하면서 일을 그만뒀다. 1년간 아이를 돌보다 프리랜서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우진씨는 “아내가 회사에 얽매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개발자는 프리랜서가 더 좋은 대우를 받기도 해 그렇게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  ☝지금은 돈을 모을 때      이우진씨는 아내가 회사를 그만두면서 수혜를 입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 분양에 당첨된 것이다. 만약 아내가 정규직이었다면 지원조차 못 했을 것이라는 게 이씨 얘기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에 지원하려면 가구 소득이 너무 높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청약을 노리고 그만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청약 당첨 확률이 훨씬 높아질 거란 생각은 했죠. 공교롭게도 시기가 잘 맞아떨어졌어요.”    현재 이우진씨 부부는 전셋집에 살고 있다. 3개월 전쯤 이 집으로 이사했다. 이번 거처를 마련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건 본가와의 거리다. 예전 집은 본가와 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이젠 걸어서 5분 거리가 됐다. 그는 “어머니가 아이를 하원시켜 우리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돌봐주시기 때문에 가까이 사는 게 효율적”이라고 했다.    그의 아내는 아이의 첫돌 직후 프리랜서로 업무에 복귀했다. 아이는 엄마의 복직에 맞춰 13개월부터 어린이집에 다닌다. 이씨의 어머니가 육아에 투입된 것도 그 무렵이다. 이우진씨네 ‘육아 시스템’엔 철저히 경제적인 계산이 깔렸다.    “아파트에 입주하려면 돈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맞벌이를 포기할 수 없었어요. 다행히 어머니도 흔쾌히 손녀를 돌봐주신다고 하셨고요. 하루 2~3시간 정도니 크게 부담되진 않는 수준인 것 같아요.”    “육아휴직을 고민해 본 적은 없냐”는 질문에 이씨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과 부모님 덕에 맞벌이여도 육아에 큰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메우기 힘든 보육 공백이 생긴다면 육아휴직을 고민해 볼 것 같다”고 말했다.     ━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아이 위한 결정”      돈을 모아야 하는 경제적인 이유로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이씨 가족에게 아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존재다. 부부가 돈을 모아 아파트에 입주하려는 것도 “더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어서”다.    이우진씨는 “여느 아빠보다 가사와 양육에 관심이 많다”고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아이의 월령별 발달을 꿰고 있을 정도로 공부를 많이 한다. 소아정신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의 책과 영상을 끼고 산다. 회사 동료와 대화할 때도 거리낌 없이 육아 얘기를 꺼낸다. 또래 아이들은 어떤 행동을 하는지, 무엇을 해주면 좋은지 정보를 주고받기 위해서다. 아이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지만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가 아침에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떼쓰면 마음이 아파요. 아이와 시간을 더 보내지 못하는 게 제 능력 때문인 것 같아서요. 하지만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잖아요.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조부모와 관계를 맺으면서 배우는 게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우진씨는 “아내와 함께 육아한다”고 강조했다. 주말엔 온 가족이 나들이를 가거나 쇼핑몰을 찾는 게 일상이다. 육아 관련된 지식을 찾아보고 아내에게 공유하는 경우도 많다. 이씨가 노력하지만, 아내의 육아 분담률은 70% 정도 된다. 아이가 아빠보다 엄마를 더 찾아서다. 대신 그는 가사에 더 힘을 쏟는다. 이씨는 “청소, 설거지, 분리수거나 빨래 같은 건 대부분 내가 한다”며 “육아와 가사는 당연히 부부가 같이해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육아나 가사를 무 자르듯 나눠 하는 부부를 종종 보는데, 저희 부부는 그렇게 하진 않아요. 각자 눈치껏 하는 거죠.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사는데 내 일, 네 일 나누는 게 정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하원과 저녁 육아 외엔 모든 가사와 육아를 이우진씨 부부가 직접 한다. 그는 “집 안이 지저분한 걸 못 참는 성격이라 그때그때 정리한다”면서 “가사 서비스를 이용할 필요를 잘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  ☝“돈 주고도 못할 경험” 출산 권하는 이유      이우진씨는 자신을 ‘낀 세대’라고 표현했다. 90년대생과는 달리 ‘결혼은 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2년 정도 연애한 후 자연스럽게 결혼했다. ‘아이를 안 낳겠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아이를 안 낳을 거라면 굳이 결혼할 필요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결혼과 출산을 모두 해 본 그는 두 가지 모두 추천했다. “결혼도, 출산도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이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를 보면서 느끼는 묘한 감정은 양육자가 아니고선 절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우진씨는 “나를 닮은 것도 신기한데, 어제는 못했던 행동이나 말을 갑자기 할 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쁘다”고 했다.    “자식을 낳는 게 진정한 효도 같아요. 부모님이 저를 보고는 웃지 않는데, 손녀만 보면 만면에 미소가 번지거든요. 제가 할 수 없는 종류의 효도를 우리 딸이 하는 것 같아 기특해요.”    물론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 때도 많다. 이우진씨는 개인적인 시간을 쓰기 어려운 게 가장 힘들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엔 당연하던 운동이나 게임, 드라마 시청이 지금은 큰마음을 먹어야 할 수 있는 일이 됐다. 개인시간은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주어진다. 그는 “다음 날 출근해야 하지만 자는 게 아까워 새벽 2~3시까지 버티곤 한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매사에 조심하며 자신을 검열하는 것도 육아가 어려운 이유다. 이우진씨는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느냐”며 “긍정적인 아이로 키우려면 말 한마디도 허투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양육에 대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아이에게만큼은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며 “하고 싶은 대로 못 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답답할 때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우진씨가 행동을 조심하는 건 육아가 씨앗을 뿌리고 키우는 농사, 하얀 도화지에 그리는 그림과 같다고 생각해서다. 양육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좋은 양육자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부모로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고 했다. 자신과 아내가 그런대로 괜찮은 부모라는 것이다.   결혼 전보다 결혼 후에, 아이를 낳기 전보다 낳은 후에 더 열심히 살고 있어요. 무거워진 책임감 덕분에 스스로 더 성장한 것 같고요. 제가 결혼과 출산을 권하는 이유입니다.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1.03 10:41

  •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유료 전용

      ■  「 아빠는 이제 일하면서 가정도 돌본다. 일과 가정의 균형은 아빠에게도 쉽지 않은 문제다.   hello! Parents는 리서치 전문업체 오픈서베이의 도움을 받아 일·가정 사이에서 분투하는 1980년대생 남성 양육자들을 만났다. 육아 관여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육아휴직을 선정하고, 해당 경험이 있는 남성과 없는 남성, 가장 육아 관여도가 높은 전업주부 남성을 인터뷰했다.   가장 먼저 육아휴직 경험이 없는 아빠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들이 돌봄 전담 경험은 없었지만 일상에서 가사와 육아 참여도가 높은 편이었고, 외벌이 가장 최창호(38)씨는 부양 책임감도 적지 않게 느끼고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0대 부부 가운데 맞벌이는 53.3%로 절반을 넘어섰고, 맞벌이(월 평균 소득 761만원)와 외벌이(483만원)의 소득 격차는 계속 벌어지고 있다. 최씨는 일과 가정의 조화을 위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인터뷰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공개된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아들이 워터파크에 가고 싶다고 하면 데려가요. 돈이 부족해 아이가 원하는 걸 못 해준 건 없습니다. 그래도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수입이 조금 더 늘어야 하지 않을까요?   학원 강사로 일하는 외벌이 아빠 최창호(38)씨는 “괜찮은 부모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 중산층 부모로서 부족함 없이 아이를 키우려 노력하고 있다”며 “그런 면에서 나는 100점 만점에 70점 이상은 되는 아빠”라고 말했다.   최창호씨네 소득은 3인 가구 기준 대한민국 중위소득(2022년 기준 419만원)을 웃돈다. 그럼에도 그는 외벌이 가장으로서 경제적 부담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 그는 “아주 잘 벌진 못해 아이에게 많은 걸 해주지는 못한다”며 “아이가 풍족하게 자랄 수 있게 더 잘 벌고 싶다”고 말했다.    최창호씨는 결혼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전혀 받지 않았다. 전세자금을 대출받아 빌라에서 시작했다. 학원강사였던 아내는 5년 전 출산과 함께 일을 그만뒀다. 현재 최창호씨 가족은 수도권 20평대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며 인근 신도시의 아파트 청약 당첨을 노리고 있다.     그는 “아이가 없었다면 아내도 일하고 있을 테니 집도 사고 더 좋은 차도 몰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삶은 부럽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  ☝흙수저 부부가 아이를 낳기까지   대구 출신인 최창호씨는 수도권에서 대학을 나왔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학원강사 일이 적성에 잘 맞아 13년째 경력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의 아내도 한때 같은 학원에서 일했던 동료 강사다. 3년간 교제하며 ‘이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긴 했지만 결혼에 이른 결정적 계기는 따로 있었다. 당시 학원가를 떠나 대학원에서 공부 중이던 여자친구(현 아내)의 전셋집 계약 기간이 만료됐던 것이다. 마침 학위도 마무리 중이던 여자친구가 살림을 합치자고 먼저 제안했다.   “저도 오피스텔에서 월세살이 중이었거든요. 여자친구가 ‘이참에 결혼해 합치는 게 어떻냐’고 하더군요. 그게 프로포즈가 됐죠.”      신혼생활은 보증금 8000만원짜리 빌라에서 시작했다. 서른 살이던 그가 부모님의 지원 없이 마련할 수 있는 최선의 보금자리였다. 최창호씨는 “학원강사는 일정한 금액의 월급이 고정적으로 찍히는 직장인하고는 달라서 은행 대출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부부는 “먼저 돈을 벌고 아이는 천천히 낳자”고 합의했다. 아이가 생기면 돈을 모을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부부는 맞벌이로 일하며 2년간 1억원 가까이 모았다. 그 돈으로 생애 첫 집을 마련했다. 1억3000만원짜리 빌라였다. 사실 집을 살 생각은 아니었다. 신혼집 전세 연장이 어려웠던 게 문제였다. 집주인이 집을 팔려고 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전세난이 번지던 시기라 전셋집을 찾기도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산 집에서 4년간 살며 아이를 낳고 키웠다.      최창호씨는 결혼과 출산을 고민하는 지인이 있다면 둘 다 하라고 적극 권한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집을 산다거나 자산을 모으겠다는 계획 혹은 목표가 있다면 결혼해야 더 빨리 이룰 수 있다고 조언해요. 아파트를 분양받으려고 해도 혼자인 것보다는 가족과 아이가 있는 게 더 유리하잖아요.”      ━  ☝주말도 없던 아빠가 요구한 이직의 조건   최창호씨는 결혼 전 대입학원에서 일했다. 그는 출근시간보다 30분 이상 일찍 나가 수업을 준비했고, 교재도 직접 만들었다. 몸은 고됐지만 성과는 눈에 보였다. 최씨가 가르치는 학생 수는 꾸준히 늘었다.     하지만 학원 특성상 주말에 일이 몰렸다. 오전 10시에 출근하면 밤 10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왔다. 명절과 공휴일에도 쉬기 어려웠다. 쉬는 날도 2주에 하루뿐이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한동안은 이런 생활이 계속됐다.     아내는 독박 육아로 지쳐가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도 지방에 계셔서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베이비시터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신생아였을 때 썼던 산후도우미가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모처럼 맞는 휴일에도 쉴 수 없었다. 어린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 있던 아내가 그날만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장롱 면허인 아내는 운전이 서툴렀다. 집에서 쉬고 싶은 최창호씨와 근교에라도 다녀오고 싶어 하는 아내는 종종 부딪쳤다.     아이도 아빠의 빈자리를 느꼈다. 아이가 네 살 때 있었던 일이다. 토요일 열린 어린이집 행사에 가지 못했다. 친구들이 모두 아빠와 함께 있는 걸 본 아들은 “우리 아빠는 어디 갔냐”며 대성통곡했다.     “아이가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말 그대로 목놓아 울었대요. 그 얘길 듣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미안했죠. 평일 낮에 하는 어린이집 행사엔 열심히 참여했거든요. 하지만 애들한테는 한 것보다 안 한 게 더 기억에 남으니까….”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 그는 6년간 몸담았던 학원을 옮겼다. 기대만큼 연봉이 오르지 않은 게 발단이 됐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확보하고 싶었다. 연봉 외 주5일 근무를 이직의 조건으로 삼은 건 그래서다. 일주일에 이틀은 쉬되 그중 최소 하루는 주말일 것. 최창호씨의 근로계약서에는 이런 조건이 붙었다.     새로 옮긴 학원은 초·중·고등부를 함께 운영하는 곳이었다. 주말도 있고, 휴가도 있었다. 최창호씨는 “이직 후 연봉은 비슷했는데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진 느낌이었다”며 “왜 좀 더 빨리 옮기지 못했을까 후회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삶에 여유가 생겼다고 느꼈을 즈음, 코로나19가 닥쳤다. 학원가는 직격탄을 맞았다. 최창호씨의 새 학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온라인으로 수업을 이어갔지만 급여는 6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최씨는 “생활이 예전 같지 않다 보니 부부싸움도 잦아졌다”고 말했다. 학원은 결국 문을 닫았고, 최씨는 새 직장을 찾아나서야 했다. 이번에도 아빠로서 휴무 조건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옮긴 학원에선 평일 이틀을 쉬는 주5일 근무를 한다. 하지만 일요일은 오전에만 일한다. 일요일 오후엔 가족과 함께 드라이브를 하거나 산책을 하며 보낸다.      ━  ☝아침 등원 준비는 아빠가 한다     최창호씨는 아들의 유치원 등원을 직접 챙긴다. 주중엔 오후 2시부터 밤 10시까지 근무하는 그가 자처한 역할이다. 매일 아침 식빵을 굽거나 주먹밥을 만들어 아이의 아침밥을 챙긴 뒤 유치원 버스를 태워 보낸다, 집에 돌아와선 청소기를 돌린다. 그 사이 아내는 늦잠을 자거나 쉰다. 최씨는 “아내가 밤 늦게까지 혼자 아이를 봐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등원과 청소 외 요리나 설거지, 화장실 청소, 빨래 같은 집안일 상당수는 전업주부인 아내가 한다. 최창호씨는 “내가 늦게까지 일하는 걸 아내도 아니까 집안일도 더 많이 하려고 한다”며 “그래서 가사 분담에 있어선 큰 갈등은 없다”고 말했다.   아들도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최창호씨는 아침이나 저녁 여유가 있을 때 하루 30분 정도 아이와 학습지를 푼다. 그는 “아이가 내가 동그라미 쳐주는 걸(채점)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학원 수업이 없는 평일이면 아이는 유치원 버스를 타지 않고 최씨의 차를 타고 하원한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설명회에는 최씨도 아내와 함께 갔다.     최창호씨는 “부모로서 아이가 커가는 걸 지켜보는 것 자체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아들은 어렸을 적 말이 느리다고 걱정을 샀지만 지금은 한글도 깨우쳐 혼자 책도 읽는다. 그는 “공부를 꼭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했다. 아이가 무슨 일을 하든 성실하고 부지런하면 어디서든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진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최창호씨는 “아이가 없었다면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아빠 차가 경차라서 부끄럽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아마 아이가 썼을 겁니다. 속으로 ‘너 없었으면 아빠는 벤츠 탔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벤츠 타는 싱글이나 딩크(아이 없는 맞벌이 부부)가 되고 싶진 않아요. 경차를 타도 아빠가 더 좋아요.    그는 “주변에 자녀가 없는 부부가 더러 있는데, 여유있어 보이긴 하지만 부럽진 않다”고 말했다. 넓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탄다는 것만으로 의미를 찾긴 어려울 것 같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해야 할 일도 많고, 포기하는 것도 있죠. 하지만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만이 줄 수 있는 행복함과 만족감은 확실히 있어요.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1.03 10:40

  •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유료 전용

    일에서 가정으로 삶의 무게추를 옮기는 남성이 늘고 있다. 통계청의 일과 가정생활 우선도 조사를 보면 이런 변화가 여실히 드러난다. 2011년 조사에선 남성 10중 6명(62.6%)이 ‘일이 우선’이라고 답했다. 10년 후 조사에선 ‘일이 먼저’라고 한 남성은 10명 중 4명이 채 되지 않는다(38.8%). ‘일만큼 가정도 중요하다’는 남성(45%)이 가장 많았다.     1980년대생 남성 양육자들은 그 변화의 진원지에 서 있다. 아빠들은 이제 일도 하고 가정도 돌본다. 엄마만큼은 아닐지라도, 가사와 육아를 내 일로 여기는 아빠들은 분명 늘고 있다. 더 많은 아빠가 육아 휴직을 쓰고, 아이를 위해 직장을 옮기거나 그만두고 있다.      80년대생 아빠들은 얼마나, 어떻게 다를까?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1980년대생 양육자를 말하다’ 12번째 편에서는 남성 양육자를 들여다봤다. hello! Parents는 육아 관여도를 가늠하는 지표로 육아휴직을 사용해 인터뷰 대상을 선정했으며, 가장 관여도가 높은 전업주부 남성도 만났다.   ■  「  🧾 기획 목차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1.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2. 80년대생이 결혼을 추천하는 이유 3.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 우리가 일하는 세가지 이유 4. “결혼 만족하지만, 아이는 글쎄” 엄마의 속마음: 여성 양육자 6인 인터뷰 5. “남자라서 힘들고, 아빠라서 행복해”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남성 양육자 5인 인터뷰 6. “가사와 육아를 둘러싼 은은한 차별이 문제” 1980년대생이 만난 1980년대생 」     ━  ①일보다 가정을 택한 아빠들   hello! Parents가 만난 5명의 80년대생 남성 양육자도 삶에서 가정이 차지하는 중요도가 일(커리어) 못지않았다. 3명은 아이를 돌보기 위해 잠시 일을 쉬거나(육아휴직) 직장을 옮겼고, 그중 한 명은 지난 6월부터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한동안 일보다 가정을 중심에 두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장승준(40, 육아휴직한 워킹대디)씨는 아이가 생기기 전 “주말도, 명절도 없이 일하는 워커홀릭이었다”고 했다. 첫 아이가 태어나자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졌다. 장씨는 아내가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앞둔 2016년 말, 회사에 육아휴직을 냈다. 장씨는 “아이를 돌볼 사람이 마땅히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아이 옆에 무조건 아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황준희(37, 전업대디)씨는 외국으로 발령이 난 공무원 아내를 따라 이주하면서 전업주부가 된 경우다. 평소 퇴근이 늦는 아내를 대신해 황씨는 7살 아이의 등·하원과 교육, 집안일을 전담한다. 공기업에 다녔던 황씨는 아이가 6개월쯤 됐을 때 1년간 육아휴직을 쓰기도 했다. 그는 “저와 애착이 잘 형성된 아이를 두고 ‘아빠 껌딱지’라고 사람들이 말할 때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직을 한 아빠도 있다. 학원 강사인 최창호(38, 육아휴직 안 한 워킹대디)씨는 대입학원에서 일할 때 아이가 태어났다. 학원 특성상 주말, 공휴일에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아들은 주말 어린이집 행사에서 ‘우리 아빠는 어딨냐’며 울었다. 그가 일터를 옮긴 건 그래서였다. 주5일 근무, 휴일 이틀 중 하루는 주말일 것. 이 두 가지가 이직의 조건이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hello! Parents가 만난 남성 양육자들이 유별난 걸까? 육아휴직 경험이 있는 아빠 3명은 모두 2016년에 육아휴직을 썼다. 그해 남성 육아휴직자는 7600여 명이었다. 지난해엔 육아휴직을 쓴 아빠가 2만7000명을 넘어섰다. 5년 사이 3배 넘게 는 것이다. 육아휴직자 4명 중 1명(26.3%)은 아빠다.   전업 대디의 증가세는 더 극적이다. 2010년에 남성 주부는 국가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 존재였다. 지난해엔 남성 주부(만 15세 이상 비경제활동인구 중 가사육아 전담)가 20만 명에 육박한다는 수치가 발표됐다.      ━  ②“나는 ‘35%’보다 더 한다”   일만큼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아빠들은 가사와 육아에 얼마나 참여하고 있을까? 육아정책연구소가 1만5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육아정책여론조사, 2021)에 따르면, 요즘 남성들의 평균 가사·육아 분담률은 35% 안팎이다. 아빠들은 주로 아이와 함께 놀아주고 책 읽어주고, 등·하원 시키는 일에 많이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보다는 육아, 그중에서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육아를 주로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hello! Parents가 만난 워킹 대디 5명 중에는 “나는 35%보다 더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많았다. 육아휴직 경험이 없고, 아내가 전업주부여도 그랬다.   이우진(35, 육아휴직 안 한 워킹대디)씨는 “가사는 내가 60% 정도 담당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질러지는 걸 내가 더 못 참는 편이라, 내가 더 치우는 것”이라고 했다. 육아에 있어서는 아내가 70%를 담당하지만, 육아서를 읽고 양육 지식을 공유하는 건 이씨가 주로 한다. 그는 “이 일은 네 것, 저건 내 것 이렇게 칼같이 자르지는 않고 ‘우리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서로 눈치껏 한다”고 말했다.     외벌이 아빠인 최창호(38, 육아휴직 안 한 워킹대디)씨는 매일 아침 7살 아들의 아침밥을 챙겨주고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낸 뒤 간단히 집 청소도 한다. 아내가 전업주부긴 하지만 아침잠이 많아 최씨가 자처한 일이다. 최씨는 “보통 오후 2시에 출근해, 10시에 퇴근하기 때문에 아침 시간이라도 아내를 좀 쉬게 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집 걸러 한 집이 맞벌이인 요즘, 일하며 아이도 돌보고 집안일도 알아서 하는 아빠들은 어떤 점이 다른 걸까? 허수연 한양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미취학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 714쌍을 조사해 봤더니(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 시간과 분담에 관한 연구), 답은 이랬다.     남성 양육자 본인만 놓고 보면, 평등한 성 인식을 갖고 있고, 유급 노동시간이 짧을수록 가사노동 시간과 분담률이 높았다. 그 외 다른 유의미한 외부 요인은 ‘아내의 소득’이었다. 아내가 돈을 잘 벌수록, 남편이 가사노동에 적극 참여한다는 것이다.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들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5명의 남성 양육자 중 외벌이를 제외한 4명 모두 아내가 안정적인 직장인 대기업, 공공기관에 다니거나 남편보다 더 많이 벌었다.   대출상담사인 박태우(39, 육아휴직한 워킹 대디)씨의 경우가 정확히 이렇다. 박씨의 아내는 대기업에 다닌다.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아내와 달리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박태우씨가 초등학생 딸의 등·하교와 학원 등·하원을 담당한다. 그는 “요리를 제외한 가사의 거의 모든 걸 내가 한다”고 했다. 대신 그는 로봇청소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스타일러 같은 가전제품을 적극 활용한다. 박씨는 “수입이 들쑥날쑥한데, 안정적으로 벌어주는 아내가 있어 고맙고 든든하다”며 “아내에겐 벌 수 있을 때까지 벌라고 말한다”고 말했다.    ━  ③‘남자라서’ 힘들다   ‘남자는 일, 여자는 가정’이란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워킹맘보다 전업 대디가 낯선 건 엄연한 현실이다. 왜 그런 걸까? 2019년 글로벌 여론조사기관 입소스(Ipsos)가 한국을 포함해 세계 27개국 성인 1만88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입소스는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남성은 남자답지 못한가?’라고 물었다. 한국에선 76%가 그렇다고 답했다. 가정을 택한 남성 양육자들은 능력이 없다는 의심을 사고, 이해받지 못하는 것이다. hello! Parents가 만난 남성 양육자들도 이런 현실과 마주했다.    여행 업계에서 일했던 박태우씨는 사내 남자 육아휴직 1호였다. 육아휴직을 쓰는 여자 동료는 많았다. 하지만 박씨가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자 뒷말이 돌았다. 박씨는 “회사에선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았다”며 “주홍글씨가 찍힌 느낌이었다”고 했다.     황준희씨(37, 전업 대디)도 “아내 따라 외국 가서 주부 생활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의 걱정을 듣는 게 스트레스였다”고 말했다. 스스로도 커리어 공백에 대한 고민이 깊었고, 아내와의 갈등도 컸다. 황씨는 “요즘 남녀 차별이 없다고 하면서도 아빠가 일 대신 가정을 선택하는 고민을 하면 ‘남자가 왜 그러냐’고 말한다”고 했다.     황씨에 따르면, 아이 등·하원을 전담하는 아빠를 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좋은 회사에 다니거나 실업자거나. 육아휴직자로, 전업주부로 그 시선과 매일 부딪쳐온 황씨는 자신을 ‘전업주부’라고 소개하면서도 “일시적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에서 생활하는 상황임에도 한국 대학원에 등록해 비대면으로 수업을 듣고 있기도 했다.   사회적 편견 외에도 힘든 건 또 있었다. 바로 부양 책임이었다. 맞벌이하는 아내 덕분에 부담이 가벼워졌다지만, 아빠들은 여전히 경제적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무겁게 느끼고 있었다. 육아휴직 도중에 해고된 적이 있는 장승준(40, 육아휴직한 워킹대디)씨는 “(해고된 상황에서도) 아내에게 돈 달라고 손 벌린 적은 없다”고 말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아버지 역할과 관련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로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정에 돈을 벌어오는 것이다’라는 문항에 대해 남성들은 4점 만점에 평균 2.72점으로 동의했다. 여성(2.42점)보다 경제적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육아정책연구소는 지난해 발표한 연구 보고서에서 “어머니의 역할은 가정에서 사회로 점차 나와야 한다는 여론의 흐름을 읽을 수 있으나, 아버지의 역할은 여전히 직장에서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하는 데 고정되어 있거나 오히려 강화되었다는 점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전통적인 가치관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양육자들이 경제적인 문제는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남성이 육아휴직을 내는 건 여성보다 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소득 공백과 커리어에 미치는 악영향은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기피하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여러 연구에서도 남성들이 육아휴직을 썼을 때 퇴사를 유도당하거나 복귀 후 인사고과나 동료와의 경쟁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 근로자의 육아휴직은 자신의 경력 만족과 교육개발, 네트워킹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나왔다.   장승준(40, 육아휴직한 워킹대디)씨가 정확히 그랬다. 육아휴직 5개월 차에 회사로부터 퇴사를 권유받았다. 4년 넘게 다닌 비영리법인이었는데, 인력이 적다 보니 장씨의 공백이 컸다고 한다. 장씨는 “당시 아내가 둘째를 임신 중이라 밤에 잠이 안 왔다”고 말했다. 장씨는 이후 “아빠가 중심을 잡고, 가족을 지킬 수 있으려면 전문직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행정사 자격증을 딴 건 그래서다.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해야 할 일이 크게 늘어난 것도 남성 양육자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최새은 한국교원대 교수는 “좋은 아빠상이 아주 구체화됐고, 미디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바로 비교되다 보니 부담이 늘어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세대와 달리 아내는 “아이가 몇 학년 몇 반인지, 누구랑 노는지 아느냐”고 묻고, 아이는 “친구는 주말에 아빠랑 놀이동산 다녀왔는데, 우리는 안 가냐”며 요구한다는 것이다. 최창호씨(38, 육아휴직 안 한 워킹대디)가 “휴일엔 집에서 쉬고 싶지만, 아내와 아이가 나만 바라보고 있으니 드라이브라도 다녀올 수밖에 없다”고 말한 데엔 아빠들의 이런 부담감이 깔려 있다.     ④아빠라서 행복해 여전히 경제적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짊어지고,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아빠상에 부응하기 위해 분투하며, 그 와중에 전통적 남성상과 싸워야 하는 삼중고에 빠진 남성 양육자. 그렇다면 그들은 아빠가 된 걸 후회하고 있을까?   hello! Parents가 만난 5명의 아빠 중 4명은 출산을 추천했다. 남은 1명도 ‘고심해 보고 낳으라고 한다’며 출산에 아예 부정적인 건 아니었다. “아이가 없다면 삶이 어떻게 달려졌을 것 같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한결같았다. 아빠인 지금의 삶이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우진씨(35, 육아휴직 안 한 워킹대디)는 “아이가 하루하루 클수록 삶이 다채로워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최창호씨(38, 육아휴직 안 한 워킹대디)는 “아이 없이 벤츠 타는 삶과 아이가 있어서 경차를 타는 삶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후자”라고 잘라 말했다. 아이가 존재해야 돈을 벌고 쓸 의미가 생긴다는 것이다.     육아휴직 역시 유경험자 3명 모두 강하게 추천했다. 힘들지만, 꼭 한 번 해볼 만하다는 것이다. 공통으로 꼽은 장점은 ‘아빠 껌딱지’가 될 만큼 아이와 유대감이 깊어진다는 점이었다. 최새은 한국교원대 교수가 14명의 남성 육아휴직자(1978년~1985년생)를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도 남성 육아휴직자들은 아이뿐 아니라 아내와의 유대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육아휴직을 통해 아이에 대해 더 잘 알게 됐을 뿐 아니라 아내의 고충을 이해하게 됐기 때문이다.   황준희씨(37, 전업 대디)는 “부성애가 강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직접 키우면서 아들이 나를 부모로 받아들이는 걸 보며 만족감을 느낀다”고 했다. 황씨는 “아이가 없어서 도전할 수 있는 것도 있겠지만, 애가 생기면서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행복한 육아문화 정착을 위한 KICCE 육아정책 여론조사』,육아정책연구소, 2021. 『세대별 기혼 남성의 가사노동시간 연구: 베이비붐세대, X세대, Y세대를 중심으로』, 2021. 『맞벌이 부부의 가사노동시간과 분담에 관한 연구, 허수연·김한성, 2019 『남성 육아휴직이 남성 근로자와 배우자의 경력개발 활동과 경력 만족에 미치는 영향』, 곽원준, 2021. 『남자가 출산휴가를 간다면?: 아빠노동자 형성을 위한 남성육아휴직 사례 연구』,최새은·정은희·최슬기, 2019.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1.01 14:40

  • 그저 ‘뒷말’ 따라했을 뿐인데…아이에게 생긴 놀라운 변화

    그저 ‘뒷말’ 따라했을 뿐인데…아이에게 생긴 놀라운 변화 유료 전용

    우리 일상은 모두 내가 하는 말과 연결됩니다. 공부할 때도, 친구를 사귈 때도 말로 메시지를 연결하니까요. 모두에게 말 잘하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죠.   “말하기를 왜 잘해야 하냐”는 질문에 이운정 맛있는 스피치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유창한 말솜씨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기본 소양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누구나 입시·취업 등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말로 능력을 증명하고, 말로 마음을 나누며 관계를 맺는다.    TBS·EBS 등에서 다수의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운정 대표는 15년 동안 어린이에게 스피치를 가르쳐 왔다. 그가 말하는 ‘스피치’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설부터 일상적인 대화를 넘나드는 등의 말하기 활동을 아우른다. 그간 이운정 대표가 가르친 학생은 5000여 명. 남들 앞에서는 한마디도 못하던 아이가 전교 회장에 당선되고, 발표만 하면 울던 아이가 대입 면접에 합격하는 등 ‘스피치’로 성장한 아이들을 수없이 봤다. 그가 “어린 시절의 말하기 교육이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스피치 교육 전문가 이운정 맛있는 스피치 대표는 "말 잘하는 능력은 아이든 성인이든 사회 생활을 위해 모두에게 필요한 능력"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  📢“말 잘하는 아이가 인성도 좋다”   이운정 대표에 따르면 말하기 실력은 ‘공감 능력’에서 판가름난다. 말의 근간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에 있기 때문이다. 발음과 발성, 당당한 제스처는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발표를 잘하려면 청중을 알아야 하고, 면접을 잘 보려면 질문을 이해해야 한다. 공감 능력부터 배워야 하는 이유다.     공감 능력은 어떻게 키워지나요?   우선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누굴까?’ ‘어떻게 말해야 쉽게 이해할까?’를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청중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 이게 공감의 시작이거든요. 토론을 생각해 보죠. 서로의 주장을 이해하고 있어야 논점을 흐리지 않고 토론할 수 있어요. 자기주장만 하면 토론이 아니라 연설이 됩니다. 입시와 취업 등에서 면접, 토론 등 말하기 시험 비중이 커지고 있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말하는 모습을 보면 인성은 물론이고 사회와 조직에 융화하는 능력 등을 가늠할 수 있거든요.   아이들은 주로 어떤 고민을 갖고 말하기를 배우러 오나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면접 같은 시험을 앞두고 있거나 자신감이 없어서 발표를 못하는 아이들이 오죠. 또 다른 유형은 자기 말만 고집해 갈등을 겪는 아이들이에요. 고집이 센 아이들은 대화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말만 합니다. 그래서 친구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거죠. 이게 바로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예요.     말하기 수업은 '자기 소개'로 시작한다. 이 대표는 "자신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보며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게 말하기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그런 아이들은 어떤 수업을 받게 되나요?   우선 자기소개로 시작합니다. 독특한 건 그 장면을 촬영한다는 거예요. 자신의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들리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겁니다. 공감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니까요. 자신을 타자화해서 보는 거죠. 아이들은 자기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거든요. 팔을 흔들고, 목소리가 작아 안 들리기도 하고요. 그동안 몰랐던 문제들이 눈에 보입니다. 간혹 자기소개를 거부하는 아이도 있는데요, 이럴 땐 예문을 주고 억지로라도 읽게 합니다. 무성의하고 불만에 찬 얼굴을 눈으로 확인하게 하려고요. 자기 모습을 확인한 아이들은 다음 수업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무성의한 모습이 썩 예뻐 보이지 않거든요. 이렇게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말하기 수업의 시작입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어릴 때부터 양육자에게 존중받고, 많이 대화해 본 아이가 공감도 할 줄 압니다. 공감은 책이 아닌 경험으로 배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양육자의 말 습관이 중요합니다.   양육자의 말 습관이라 하니 부담되는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렵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면 됩니다. 두 가지를 말씀드릴게요. 먼저 아이의 뒷말을 따라 하세요. 아이의 말을 듣고 있다는 걸 표현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오늘 학교 끝나고 친구를 만났어”라고 말하면 “친구를 만났어?”라고 대꾸합니다. 이때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고개도 끄덕여야 합니다, 꼭요. ‘네 말에 귀 기울이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그래야 아이는 양육자가 자기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요?   ‘나(I) 화법’으로 청자의 감정을 전하는 겁니다. 아이가 “엄마는 바보야!”라고 말했다면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엄마는 상처를 받아 슬퍼”라고 말하는 식으로요. 방 청소를 시키고 싶다면 “지저분한 네 방을 보니까 엄마 마음이 답답해졌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지적을 받으면 반항심부터 생깁니다. 반면에 내 말과 행동이 타인의 감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면 말과 행동에 신중해집니다. 형제·자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가 둘째를 놀렸다면 첫째 앞에서 둘째의 기분을 물어 보세요. “형이 놀리니까 기분이 어땠어?”라고요. 이렇게 타인의 감정을 양육자가 자주 해석하고 들려주면 아이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연습을 할 수 습니다.      ━  📢“영재들은 말하기로 공부한다”     이운정 대표는 “말 잘하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고 강조한다. 말을 잘한다는 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갖췄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이 능력은 새로운 내용을 익히고 나만의 논리로 정리해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는 학습 과정과 동일하다. 그는 “수학을 공부하면 수학 성적만 오르지만, 말하기를 배우면 전반적인 학습 역량이 커진다”고 말했다.   말 잘하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어요. 우선 논리적 사고에 익숙해집니다. 말하기 수업에서는 발표 준비 6단계를 반복합니다. 계획(무슨 말을 하고, 누가 듣나요?)→조직화(어떤 흐름으로 말하나요?)→우선순위(그래서 뭐가 중요하죠?)→상세화(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응용(이해를 도울 수 있는 내용이 더 있을까요?)→모니터링(이 부분을 좀 더 보완해줘)이 그것입니다. 이 훈련은 공부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공부는 계획을 세우고, 내용을 구분하고, 중요한 내용으로 순서를 정하고, 심화 학습을 하고, 응용문제를 푼 뒤에 시험이 끝나면 오답 노트를 적는 식으로 하죠. 말하기 훈련을 하면 논리적인 사고 회로가 생겨 학습 과정이 더 쉬워집니다.   이 대표에 따르면 발표 준비 과정은 공부 과정과 동일하다. 논리적 사고에 익숙해지고, 전두엽이 활성화 되기 때문이다. 김상선 기자   두 번째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전두엽이 활성화됩니다. 공부를 잘하려면 뇌의 전두엽이 발달해야 합니다. 전두엽은 고도의 정신작용이 이루어지는 부위입니다. 예컨대 ‘나는 학교에 간다’를 ‘I go to school’이라고 영작할 수 있는 건 전두엽이 어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처리한 덕분입니다. 전두엽의 가장 큰 기능 중 하나가 바로 ‘공감’입니다. 말하기 연습으로 공감 능력을 발달시키는 건 결국 전두엽을 활성화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공감 능력이 또 나오네요.   공부도 지식에 공감하는 행위거든요. 그래서 말하기는 시험공부를 할 때도 유용합니다. 교과서를 반복해 읽기만 하는 것보다 배운 걸 말로 내뱉으며 그 의미를 떠올립니다. 한 글자 한 글자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겁니다. 최근 초등학교·중학교에서 발표 시간이 많아진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발표가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요?  발표는 청중에게 설명하는 과정입니다. 설명하려면 배운 것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지식을 내것으로 만듭니다. 외우지 않고 이해하는 단계죠.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면 그 내용과 연계된 다양한 정보를 찾아 덧붙입니다. 자연스럽게 심화학습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지층과 화석’을 주제로 발표했습니다. 교과서만 읽었다면 그 개념만 달달 외웠을 거예요. 그런데 이 학생은 청중의 흥미를 끌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다 세계 최초로 화석을 발견한 ‘메리 애닝(Mary Anning)’까지 알게 됐어요. 지구과학에서 세계사까지 범주를 넓힌 겁니다.    좋은 공부법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바쁜 시험 기간에는 부담스러운 방법일 것 같아요.   시험공부도 말하기로 할 수 있습니다. 공부한 내용을 양육자 앞에서 말로 설명하는 겁니다. 그러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메타인지죠. 다 안다고 큰소리치던 아이도 설명하라고 하면 말문이 막힐 겁니다. 정리가 허술하기 때문입니다. 말로 설명하다 취약한 부분이 발견되면 그 부분만 추가로 공부하면 됩니다. 단, ‘얼마나 공부했나 보자’는 마음으로 취조하듯 하면 안 됩니다. 아이는 평가받는다고 생각해서 입을 닫을 수 있거든요. 그래서 평소에도 아이와 자주 대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신뢰가 생기고 말도 편하게 나오는 법이니까요.   이 대표는 "아이와 공부 내용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가보자"며 "내용 정리, 확인, 심화를 한 번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단답식으로 대답하는 아이들도 있죠. 이런 아이들과 대화를 이어가기란 쉽지 않은데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에게 열린 질문을 자주 해보세요. 열린 질문이란 정답이 없는 질문을 말합니다. 반대로 “예, 아니요” 대답이 나오는 건 닫힌 질문입니다. 예컨대 “오늘 학교에서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는 열린 질문, “오늘 학교에서 재미있었어?”는 닫힌 질문입니다. 대화할 땐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육하원칙에 근거해 말을 이어가 보세요. 처음부터 육하원칙 정보를 정확하게 구사하기는 힘듭니다. 양육자가 추가로 하나씩 물어봐 주세요. 평소 양육자와 이런 식으로 대화를 나누면 상대방이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알게 되고, 조리 있게 말하는 습관이 길러집니다.    ━  📢“말하기 실력의 마지막 열쇠, 칭찬”   말하기 교육은 장기전이다. 최소 8개월에서 1년가량은 꾸준히 훈련해야 유의미한 변화가 보인다. 성공 경험이 쌓여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 경험은 자존감을 키우고, 자신 있는 아이로 만든다. 이운정 대표 말하기 교육에서 아이의 말에 대한 양육자의 반응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   어린이의 말하기와 성인의 말하기에 차이가 있나요?   성인은 대체로 자기의 문제를 알고 있습니다. “치아 교정을 한 뒤로 발음이 부정확해졌어요” “발표 때마다 너무 긴장해요”처럼 자신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 찾아오죠. 그래서 곧바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아이들은 문제부터 찾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특히 평소 양육자의 말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중심으로 봐야 합니다.   아이의 자신감과 양육자의 태도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사례를 소개할게요. 평소 친구들과 대화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단상에만 서면 울먹울먹하고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로 위축되는 겁니다. 원인을 찾아보니 칭찬받은 경험이 많지 않더군요. 오히려 아이가 신나서 무슨 말을 꺼내면 “사람 많은 곳에서는 조용히 해야지”라며 끊어버리는 식의 경험이 많았어요. 아이는 주눅이 들어 말문을 닫아버린 거고요. 아무리 말하기 교육을 받아도 칭찬과 격려가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 잘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양육자가 먼저 변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말하기는 칭찬이 중요하다"는 이 대표는 "말하기로 자존감을 높이면 새로운 도전에도 주저앉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말하기에서도 칭찬이 중요하군요.   아이들의 자존감은 양육자의 칭찬으로 자라나니까요. 다만 칭찬도 제대로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칭찬해 주어야 합니다. “운정이보다 목소리가 크더라”라는 칭찬은 상대와 비교해 얻은 칭찬입니다. 상대가 바뀌면 칭찬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구조죠. 그래서 아이들은 다른 환경에서의 도전을 두려워합니다. 반면에 “어제보다 목소리가 커졌더라. 연습하느라 고생했다”라는 칭찬은 과정을 칭찬한 겁니다. 내 노력으로 얻은 칭찬이니 더 노력하려고 하겠죠. 그래서 작고 사소한 노력이라도 칭찬해 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용기를 갖고 또 도전합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에게도 효과가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적절한 말하기 방법을 배워 반복 연습하면 됩니다. 타고난 기질을 바꿀 순 없지만 말하기가 필요한 순간 기질을 숨길 수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말하기가 생존을 위해서 꼭 배워야 하는 연극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연습하면 될까요?   하나의 주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말해 보는 겁니다. 처음에는 한마디도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땐 양육자가 열린 질문으로 이야기를 유도해 주세요.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면 아이도 말하기에 재미를 붙입니다. 이때 칭찬이 정말 중요합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는 발표에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실수한 경험이 강하게 남아 반사적으로 피하게 되는 겁니다. 이 두려움을 양육자의 칭찬으로 깨야 합니다. 반복 연습과 양육자의 칭찬이 있다면 실패 경험은 성공 경험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 장래희망 순위 상위권에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빠지지 않는 시대다. 2024년 대입부터는 자기소개서가 폐지되고 면접이 강화된다. 말 잘하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지금, 이운정 대표는 “말하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꿈을 포기하는 아이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말은 연습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hello! Parents에 〈이운정의 슬기로운 말하기 교실〉칼럼을 연재한 이유이기도 하다.     말하기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아이의 말을 최고의 답으로 만드는 건 양육자의 칭찬입니다. 이렇게 성공 경험을 쌓으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고 도전합니다. 아이와 대화하면서 서로를 칭찬해 보세요. 말하기 교육은 이렇게 시작하는 겁니다.   성소영 객원기자 ssoy419@gmail.com, lee.minjung2@joongang.co.kr 디자인=변소라 byun.sora@joongang.co.kr  관련기사 면접만 가면 “어, 그러니까…” 이 습관 2주만에 고친 방법 절대 뒤통수 보이지 마라…스티브 잡스 PT의 비밀은 발표울렁증, ‘생각 순서’ 바꾸면 달라져요…6단계 준비법

    2022.10.31 14:28

  •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유료 전용

      ■  「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사와 육아를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전업주부 여성은 694만3000명으로 1년 새 4만9000명 줄었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업주부인 남성(19만4000명)에 비하면 여전히 여성이 다수를 차지한다. 전업 대디보다는 전업맘이라는 용어가 더 친숙한 이유다. 전업 양육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전업맘은 결혼과 출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hello! Parents는 리서치 전문회사 오픈서베이의 도움을 받아 1980년대생 여성 양육자 중 두 명의 전업주부를 만났다. 그중 ‘딩크족’이었던 윤미래(33)씨는 돌연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정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인터뷰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공개된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저희 부부는 ‘비자발적’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이었어요. 경제적 이유 때문이에요. 딩크로 살기로 해놓고 계속 아이를 고민하는 저를 보고 결심을 바꿨지만요.    결혼 7년 차, 현재 생후 한 달 된 딸을 키우는 전업맘 윤미래(33)씨는 이렇게 말했다. 윤미래씨는 “딩크족으로 계속 살았다면 이렇게 예쁘고 신비로운 존재를 못 만났을 것 아니냐”며 눈을 반짝였다.    사실 윤미래씨 부부는 원래 아이를 좋아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아이를 갖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돈 걱정하며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미래씨는 “대학교 캠퍼스 커플로 만난 동갑내기 남편과 7년 연애 끝에 결혼했다”며 “양가의 도움도 거의 받지 않고 시작하다 보니 경제적으로 부담이 돼 아이 낳을 엄두가 안 났다”고 말했다.    딩크를 결심했지만 계속 아이를 고민하는 자신을 보면서 마음을 바꿨다. 딩크족 카페에 올린 글이 계기가 됐다.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다시 생각해 보라’는 댓글이 달린 것이다. 그는 “댓글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아이를 좋아하는지 깨달았다”며 “낳아보니 예전에 했던 고민이 사소하게 느껴질 만큼 행복하다”고 말했다.     ━  ☝동갑내기 딩크족, 출산 결심하다    윤미래씨가 딩크족이 되기로 마음먹은 건 결혼 4년 차 때다. 아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부부는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었다. 자상하고 집안일도 도맡아 하는 남편은 좋은 아빠가 될 게 분명했다. 양가 부모님도 “필요하면 언제든 육아를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윤미래씨는 자신이 없었다. 이유는 단 하나, 돈 때문이었다.    윤미래씨 부부는 둘 다 취업을 늦게 한 편이라 결혼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넉넉하지 못했다. 인천의 작은 빌라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는데, 대출로 집을 얻었다. 2년 뒤 더 좋은 조건의 임대주택으로 옮겼지만, 여전히 대출을 갚고 있는 상태다.    “남편이랑 놀러 가고 외식할 정도는 됐어요. 하지만 대출 때문에 금전적으로 여유롭다고 느껴본 적은 없죠. 둘이 살기엔 나쁘지 않았어요. 하지만 아이가 있으면 쪼들릴 게 분명했죠. 그래서 딩크가 되기로 한 거예요.”    하지만 왠지 뒤끝이 썼다. 아이 낳으면 고생인 걸 알았지만, 아쉬움이 늘 있었다. 미련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남편도 비슷한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자주 가던 딩크족 카페에 글을 올린 건 그래서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싶었다.     ■  「 아이를 낳으면 좋아할 양가 부모님과 남편이 눈에 선해요. 그걸 보는 저도 정말 행복할 것 같고요. 그런데 스트레스 받으면서 아등바등 사는 게 싫어요. 남편과 “로또 1등 당첨되면 아이를 낳자”고 얘기한 적이 있네요. 딩크 선택, 잘 한 거 맞겠죠? 」  윤미래씨가 쓴 이 게시물에는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다들 “다시 생각해 보라”고 권유했다. 댓글을 보며 아이를 낳은 자신을 상상하자 말할 수 없이 설렜다. 가족과 친구들이 해준 이야기도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완벽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았지만, 우리도 이렇게 잘 컸잖아’라고요. 저희 아버지도 ‘너무 이것저것 고민하느라 정작 행복을 놓치는 것 같다’고 하셨고요. 남편도 자기가 많이 돕겠다고 나섰어요. 이런 얘기를 들으니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  ☝전업 택했지만, 반드시 돌아간다    결혼 7년 차, 윤미래씨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가 태어난 지 이제 한 달, 윤씨는 “잠도 제대로 못 자지만 정말 행복하다”며 웃었다. 남편도 헌신적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도 가사에 적극적이었지만, 지금은 남편이 거의 모든 가사를 도맡아 한다. 행복한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싶은 마음에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전업주부로 살 생각이다. “오랜 시간 아이를 만나고 싶었던 만큼 아이가 커가는 걸 옆에서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둘 생각은 아니다. 윤미래씨는 “여전히 우리 부부에겐 경제적 문제가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렵게 적성을 찾은 만큼 반드시 복귀할 생각”이라고도 했다.    윤미래씨는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지만, 관련 분야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취미로 하던 제빵이 더 재미있었다. 결혼 후 윤씨는 제빵 업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격증도 따고, 제빵사로 취업도 했다. 그는 “돈을 벌 생각이었다면 다른 일을 했을 것”이라며 제빵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가 “100% 복귀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  ☝가치관 바꾼 암, 부부가 그리는 미래는   윤미래씨는 2시간여에 걸친 인터뷰 동안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다”라거나 “경쟁 상황을 싫어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행복하고 싶다”는 말도 많이 했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대학교 3학년 때 암 진단을 받고 나서다. 그는 “암 환자가 되고 나서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투병하고 나니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고 싶지 않더라고요. 암이 재발해 내 삶이 끝나버리면 다 부질없는 일이잖아요. 사실 딩크로 살려고 결심한 것도 아이를 낳으면 돈을 벌기 위해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게 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에요.”    윤미래씨는 아이 역시 경쟁에 내몰고 싶지 않다. 그는 “경쟁하며 살았던 학창 시절엔 공부를 잘해도, 못해도 괴로웠다”며 “아이는 그렇게 살게 놔두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남편도 윤미래씨와 같은 생각이다. 부부가 아이가 4~5세쯤 되면 귀촌하기로 결심한 건 그래서다. 귀촌하면 경제적 부담도 덜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렸다.    “중학교 3학년 때 가족이 다 같이 시골로 이사했어요. 아버지 일 때문이었죠. 대학도 지방 소재 4년제를 나왔고요. 그땐 시골이 갑갑하고 불편해서 싫었어요. 어떻게든 서울로 가고 싶었죠. 그런데 이젠 풀이며 꽃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전원생활이 그리워요. 창문 밖으로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 게 좋아요. 아이도 자연에서 뛰어놀게 하고 싶고요.”    둘에서 셋이 되면서 부부는 각자의 역할에 더 충실히 임한다. 남편은 사업을 안정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애쓰고 있고, 윤미래씨 역시 전업맘으로서 쪽잠을 자며 수유하는 틈틈이 양육 공부를 하고 있다. 그의 최근 관심사는 월령별 발달에 맞는 놀이법과 놀잇감이다.    아팠을 때 옆을 지켜주던 남자친구가 남편이 됐죠. 10점 만점에 10점을 줘도 부족한 남편과 아이를 낳은 지금, 저는 정말 행복해요. 아니 행복하다는 말로는 부족해요. 눈물이 날 정도로 벅차거든요. 남편은 아이에게 가장 친한 친구가 돼주고 싶대요. 남편이라면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 가족의 미래가 너무 기대된답니다.(웃음)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0.28 16:23

  •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유료 전용

      ■  「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사와 육아를 이유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은 전업주부 여성은 694만3000명으로 1년 새 4만9000명 줄었다. 여성의 노동시장 진입이 활발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전업주부인 남성(19만4000명)에 비하면 여전히 여성이 다수를 차지한다.   전업 대디보다는 전업맘이라는 용어가 더 친숙한 이유다. 전업 양육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전업맘은 결혼과 출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hello! Parents는 리서치 전문회사 오픈서베이의 도움을 받아 1980년대생 여성 양육자 중 두 명의 전업주부를 만났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전업주부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남지선(34)씨는 스스로를 ‘자발적 전업주부’로 소개했다. 그는 왜 자발적으로 커리어를 포기했을까? 인터뷰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공개된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아이 크는 거 순간이잖아요. 지금 아니면 영영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일분일초가 아깝더라고요.   네 살 딸, 두 살 아들을 키우는 남지선(34)씨는 “퇴사를 결심한 계기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7년간 간호사로 근무했다. 2018년 첫째를, 2020년 둘째를 낳았다. 첫째 때 낸 2년의 육아휴직을 2년 연장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해 말 복직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퇴사를 선택했다. 아이 맡길 곳이 없었던 게 아니다. ‘아이는 엄마가 봐야지’ 같은 사회적 압력 때문도 아니다. “내 아이는 내 손으로 키우겠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전업주부가 됐다. 그는 “일을 관둔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지선씨는 아이가 태어나고 하루 24시간을 잃었지만, 온전한 가족을 얻었다고 말한다. “결혼은 선택이지만, 결혼했다면 아이는 꼭 낳아야 한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진짜 가족이 된다”는 거다. 남지선씨는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부 싸움을 멈췄고, 가족이라는 지키고 싶은 가치가 생겼다”며 “아이를 갖는다는 건 축복”이라고 말했다.    ━  ☝남편, 이제 연인 아니라 가족   남지선씨는 친구 모임에서 남편을 만나 5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긴 시간을 만나며 서로에 대해 알 만큼 알았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같이 살자 몰랐던 모습이 하나둘 드러났다. “청소를 왜 매일 해야 하느냐?”는 남편의 질문이 가장 당혹스러웠다. 남편이 “한 번도 방을 닦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던 순간도 잊히지 않는다. 남지선씨는 “날것의 남편을 보았다”고 표현했다.    “몰랐죠. 연애할 땐 멀끔하게 입고 다니니, 집에서 청소를 하는지 마는지 알 턱이 없었죠.”   생활 방식도 정반대였다. 보이는 건 곧바로 치우는 남지선씨와 달리 남편은 뭐든 미뤄뒀다. 남편에게 집안일은 언제나 뒷순위였다. “나중에 할게”라며 집안일을 외면하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속이 터졌다. “주말에라도 좀 청소하라”고 하면, “주말이라도 좀 쉬자”고 받아쳤다. 신혼 초, 가사 문제를 놓고 남편과 매일 싸웠다. 남지선씨는 “회사에 간 사이 누군가는 집에서 청소, 설거지, 빨래를 해왔다는 걸 전혀 모르더라”며 “왜 매번 나만 움직여야 하는지 억울했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일은 늘어났다. 예민한 첫째는 손이 많이 갔고, 그 와중에 둘째가 생겼다. 친정은 멀고, 시댁은 바빠 도움받을 곳도 없었다. 첫째 아이의 손을 잡고 산부인과에 다녔다. 그런데도 남편은 천하태평이었다. 억울함이 극에 달했지만, 화내지 않았다. “아이 앞에선 싸우지 말자”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이 바뀌자 행동도 변했다. 남지선씨는 “말 꺼내면 싸움이 되니까 서로에게 불만이 생겨도 말하지 않게 되더라”며 “남편이 아니라 아이를 먼저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냥 화를 참다가는 화병에 걸릴 것 같았다. 남지선씨는 그때마다 산책을 했다.   “싸울 것 같을 땐 밖으로 나갔어요. 어느 순간 깨달았죠. 남편에게 제 방식을 강요하고 있더라고요. 제 욕심이었죠. 그 뒤로 억지로 요구하지 않았어요.”   의도치 않게 코로나19 덕도 봤다. 재택근무가 늘면서 남편이 가사·육아 현장을 목격할 기회가 생겼다. 24시간이 모자라 늘 종종거리는 아내를 본 건 처음이었다고 한다. 남편은 자연스럽게 가사와 육아에 합류했다. 남편은 “집안일을 왜 해야 하는지 이제 알겠다”며 “집안일이 중요하다는 걸 정말 몰랐다”고 고백했다.   부부가 뜻을 맞추니 모든 일이 수월하게 굴러갔다. 특히 “집안일로 스트레스 받느니 돈을 쓰자”는 데 합의하고, 가사 서비스를 쓰기 시작한 게 큰 도움이 됐다. 아직 집을 장만하지 못해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지만, 의미 있는 지출이라고 생각한다. 가정의 평화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이제 남지선씨 부부는 집안일로 싸우지 않는다.    남지선씨는 “내가 힘든 만큼 남편도 힘들 거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며 “존재 그대로 이해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가족이라면 각자의 개성과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다. 그는 “우리 부부는 이제 연인을 넘어 가족이 됐다”고 했다.    ━  ☝“아이, 낳아서 키워볼 만합니다”   신혼 초, 남지선씨는 아이를 낳는 게 두려웠다. 좋은 엄마가 될 엄두가 안 났다. 결혼 후 곧바로 아이를 갖지 않은 건 그래서다. 결혼하고 2년이 지나니 아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 아이들이 너무 예뻐 보이는 거예요. 마음이 흔들렸죠. 용기 냈는데, 바로 아이가 찾아왔어요. 축복이었죠.”   갓 태어난 아이와 마주한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환희·감격·희열, 온갖 감정이 뒤섞였다. 그 경험이 복직을 망설이게 했다. 사실 남지선씨는 육아휴직 중 여러 번 복직 제안을 받았다. 휴직 전보다 더 좋은 위치에서 일할 기회였다. 하지만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싶지 않았다. 고민하는 그에게 친구는 “커리어 쌓느라 육아 포기한 걸 후회할지, 육아하느라 커리어 포기한 걸 후회할지 덜 후회하는 쪽을 택하라”고 조언했다. 답은 명확했다. 그의 선택은 ‘아이’였다. 매달 들어오는 돈보다 하루가 다르게 크는 아이가 주는 행복이 더 컸다. “영·유아 시기엔 엄마의 역할이 크다”는 것도 그의 결정에 힘을 보탰다. 실제로 아이는 예민했고, 남편보다는 남지선씨가 더 잘 돌봤다. 그는 “알람이 울리지 않아도 새벽에 일어나 아이를 먹이고, 뜬눈으로 아픈 아이를 챙긴 건 나였다”며 “좋아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남지선씨는 아이들이 스스로 씻고, 먹고, 입을 수 있을 때까진 곁을 지키기로 했다.    원해서 택했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다. 육아는 양육자의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아이에게 내주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 책임을 무겁게 느낄수록 남지선씨가 ‘남지선’으로 설 자리는 줄었다. 내가 먹을 약은 잊어도, 아이의 영양제는 잊지 않았고,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밀어놓고 동화책을 읽어주는 게 당연해졌다.   “매일 밤, 아이들이 잠들면 무력감이 몰려왔어요. ‘오늘 나는 나를 위해 무엇을 했나’ 싶어져서요. 일상이 허무하게 느껴지죠.”   그는 가사와 육아를 “소모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회사 일은 보상도 인정도 받는데, 가사와 육아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다. 그런데도 남지선씨는 “일이 아닌 아이를 택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를 키우는 게 더 가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아이는 꽃”이라고 했다.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듯 아이를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일을 완전히 접은 건 아니다.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면 일을 시작할 계획이다. 간호사인 그는 재취업도 그리 어렵지 않다. 전 직장만큼의 대우를 받진 못하겠지만, 보건교사 등 일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새로운 커리어에 도전해 보고 싶기도 하다. 그는 “일할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다”며 “그래서 밤마다 온라인으로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영어 공부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뭉쳐 살아야 가족이죠”   남지선씨는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런데도 그의 부모님은 두 자녀를 꼼꼼하게 챙겼다. 아이들의 등·하교 시간만큼은 집을 지켰다. 두 분 다 일했지만 늘 “보호받고 있다”는 안정감을 느낀 이유다.    다만 한 가지, 과묵한 부모님은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게 부모의 미덕이라 여기셨다. 남지선씨는 그 점이 늘 아쉬웠다. 남지선씨는 “가족과 여행도 가고, 부모님과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며 “우리 아이들에게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공유할 수 있는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은 모든 관계의 중심이잖아요. 기쁠 때든 힘들 때든 뒤엔 늘 가족이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어요. 언제든 달려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가족이 되고 싶어요.” 그가 엄마표 교육에 힘을 쏟는 것도 그래서다. 아이와 함께 공부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엄마와 함께 보낸 시간이 ‘스스로 찾아서 배우는 습관’을 길러줄 거라 믿는다. “학원에만 맡기지 않고, 나도 함께 배우려고 한다”는 남지선씨는 매일 밤 아이가 잠들면 영어 공부를 한다.   ‘교육열 높은 엄마’라고 자처하지만 그렇다고 유명 학군지까지 갈 마음은 없다.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사례를 여럿 봤기 때문이다. “가족은 뭉쳐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그에게 ‘기러기 가족’은 있을 수 없다. 교육하기 좋은 동네보다 안전한 동네를 선호한다.   “아빠는 돈 버느라 허리가 휘고, 아이는 공부 부담에 스트레스 받고. 누구 하나 행복하지 않잖아요. 안정적인 가족만큼 좋은 교육 환경은 없다고 생각해요.”   남지선씨는 아이가 평균 이상은 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대학은 반드시 가야 한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이 선택의 자유를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모든 걸 지지해줄 마음은 없다. 도전적으로 살기보다 안전하고 평탄하게 살길 바란다.   아이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싶어요. 제가 가족에게 힘을 쏟는 이유예요. 실패해도 다시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 나잖아요. 훗날 우리 아이도 자기 아이에게 건강한 가족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꿈을 꾼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0.28 16:23

  •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유료 전용

      ■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파트타임 근로자(25~54세)는 162만3000명. 이 중 66.2%(107만5000명)가 여성이다. 최근 10년간 파트타임 근로자 10명 중 약 7명(평균 67.4%)은 여성이었다. 왜 이렇게 많은 여성이 파트타임으로 일할까?   파트타임 여성 근로자가 많은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바로 여성에게 쏠린 임신과 출산, 육아 부담 때문이다. 김기승 부산대(경제학부) 교수 역시 ‘파트타임과 풀타임 고용형태 전환의 결정요인 분석’에서 “남성과 비교하면 임신·출산·육아 부담 등으로 인해 경력 단절을 겪을 가능성이 큰 여성이 자발적 혹은 비자발적으로 파트타임 근로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hello! Parents가 1980년대생 여성 양육자 중 파트타임 워킹맘을 따로 만난 이유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이현지(38)씨의 경우가 그랬다. 그는 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을까? 인터뷰가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담은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의사로서 성공하고 싶다는 욕심이 크진 않았어요. 일과 삶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싶어서 의사가 됐으니까요. 하지만 파트타임으로 일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일주일에 3.5일 일하는 산부인과 전문의인 이현지(38)씨는 “커리어에 대한 욕심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경력을 파트타임으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전공의 때 첫 아이를 낳고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서다.     스스로 원해 택한 길이지만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도전해보고 싶은 게 있어도 24시간이 꽉 짜여 있어 짬을 낼 수 없다. 이현지씨는 “우연히 TV 건강 프로그램에 출연할 기회가 생겼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며 “그런데 두 아이의 스케줄을 생각하면 다시 출연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결혼은 추천하지만, 출산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  선택 ① 일과 삶의 균형을 좇아 의학전문대학원에 가다     사실 그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반,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했다.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고시를 보는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는 이과생들이 많이 가는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에 가기로 한다.     “합격까지 10년이 걸릴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고시는 접었어요. 변호사가 되면 로펌에 가든 사무소를 열든 너무 일이 힘들 것 같았고요. 그런데 의사는 되기까진 힘들지만 되고 나면 여유 있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이현지씨는 자신을 잘 알았다. 일하고 싶었지만, 개인적인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소득도 높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삶’. 그게 이씨가 원한 삶이었다. 변호사나 고시 출신 공무원보다는 의사가 적합해 보였다. 문과생이 의전원에 진학한 이유다.   산부인과 전문의가 된 것도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그는 임상과 연구를 병행하는 교수가 될 생각도, 개원해 큰돈을 벌 생각도 없었다. 수술도 해야 하고 응급상황에도 대처해야 하는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것도 원치 않았다.   “여자인 게 장점인 전공이 많지 않아요. 산부인과가 거의 유일하죠. 산부인과 개원가에선 여자 의사를 선호해요. 그래서 산부인과를 선택했어요.”   생각대로 그는 개원가에서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것도 원하는 만큼 일할 수 있는 자리로 말이다.     ━  선택 ② 주 3일 당직하던 전공의, 결혼을 선택하다     의과대학이나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보면 일반의가 된다. 종합병원에서 인턴과 레지던트로 일하며 일정한 수련 기간을 거치고(전공의), 전문의 자격시험을 보면 전문의가 된다. 전문의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시기는 전공의 때다. 이현지씨는 가장 힘들다는 전공의 2년 차 말에 결혼했다. 일주일에 이틀, 많으면 사흘 당직을 서던 때다.   “당직 선 다음 날 낮에 계속 근무해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오늘 출근하면 내일 저녁에 퇴근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결혼하고 싶었어요. 안정적이고 안락한 내 공간과 내 편인 사람이 있는 가정이 갖고 싶었거든요.”   전공의 2년 차에 접어들면서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무렵 대학 시절 동아리 선배였던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였던 만큼 속전속결로 결혼했다. 연인으로 만남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식을 올렸다.   아이도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도 그녀가 그리던 가정의 한 부분이었다. 이씨는 “아이가 있으면 삶이 더 풍요로워질 것 같았다”고 말했다. 고된 당직의 시절 별다른 피임 없이 바로 임신한 것도 그래서다. 2017년 첫째가 태어났다.   22개월 터울로 둘째도 낳았다. “그 힘들다는 전공의 시절, 임신을 두 번이나 했다”며 치켜세우자 그는 “첫째를 친정엄마가 길러줘서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랐다”며 웃었다. 이현지씨의 친정어머니는 여전히 육아의 가장 큰 버팀목이다. 그가 일하는 날엔 친정어머니가 아이들을 기관에서 하원 시키고 저녁을 먹인다. 일하지 않는 평일이면 친정어머니와 식사하거나 쇼핑을 하는 등 시간을 많이 보내는 건 그래서다. 그는 “엄마껜 늘 고맙고, 그보다 더 많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  선택 ③ 아빠만 찾던 첫째, 파트타임을 선택하다     이현지씨는 “첫째가 어렸을 때 기억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출산휴가 3개월 외엔 쉴 수도 없었고, 복직해선 일주일의 절반을 오늘 출근해 내일 퇴근하며 살았다. 대기업 연구원인 남편은 주 40시간 근무를 칼같이 지킬 수 있었지만, 젖먹이를 혼자 돌보는 건 역부족이었다. 결국 아이는 일요일 저녁 친정 부모님 댁에 가 금요일 저녁 집으로 오는 삶을 살았다. 그나마 주말에 당직이 걸리면 남편 혼자 아이를 돌봤다. 그는 “첫째가 어릴 때는 남편이 화장실만 가도 울었다”며 “반면에 나는 찾지 않았다”고 말했다.   무사히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도 딴 뒤 1년을 쉬며 아이들을 챙겼다. 첫째는 그러지 못했지만 둘째만큼은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1년 뒤, 그는 주 4.5일(토요일 오전 근무 포함) 일하는 파트타임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또다시 1년 뒤 주 2.5일 일할 수 있는 병원으로 옮겼다가 최근 근무를 하루(주 3.5일 근무) 늘렸다.   “육아 때문이죠. 주 4.5일 근무하던 병원은 집에서 멀기도 했고, 야간 근무를 해야 해서 힘들었어요. 1년을 채우고 난 뒤 근무일도 적고 집에서 멀지 않은 병원으로 옮겼죠. 그 무렵 첫째 아이가 영어유치원에 입학했는데, 적응하는 데 힘들어했어요. 제가 챙겨주고 싶어서 주 2.5일 근무를 한 거죠. 다행히 곧 적응해서 근무일을 하루 늘릴 수 있었어요.”   이현지씨의 의학전문대학원 여자 동기 4명 모두 그처럼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서다. 그는 “주변에 부부 의사가 많은데, 대부분 남편이 개원하고 아내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아이를 돌본다”고 말했다. 이현지씨는 “개원을 하든 교수가 되든 커리어에 본격적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시기가 출산 시기와 얼추 맞물리면 결국 부부 중 한 사람은 커리어를, 한 사람은 가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이 순간 가정을 책임지는 건 대체로 여성”이라고 말했다. 이 점에선 회사원이건 전문직이건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  선택 ④ “결혼은 추천, 출산은 비추”     이현지씨의 육아 환경은 양육자로선 ‘금수저’라 부를 만하다. 일하는 날 낮엔 친정어머니가, 퇴근 후엔 남편이 육아를 전담하다시피 한다. 이씨가 일하는 토요일 오전엔 아이들이 일어나면 남편과 함께 할머니·할아버지 댁으로 간다. 이현지씨는 아이들과 남편이 있는 시댁으로 퇴근해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가 일하는 날, 기관이 갑자기 문을 닫거나 아이가 감기로 하원 해야 하는 상황이면 대체로 남편이 대응한다. 외래가 시작되면 옴짝달싹 못 하는 그와 달리 남편은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저희 부부의 육아 분담률을 굳이 따지자면 제가 55% 정도예요. 하지만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제가 대타가 된 적은 거의 없어요. 남편이 대응하거든요. 남편이 육아의 45%를 담당하지만, 불만이 없는 건 그래서예요.”   그런데도 그는 “출산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포기해야 하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행 같은 필수적이지 않은 소비는 아무래도 자제하게 돼요. 아이가 나중에 크면 돈 들어갈 데가 많을 테니까요. 개인적으로 뭘 배우거나 하는 것도 시간이 없어서 못 하고요. 아이가 없다면 훨씬 여유 있고 풍요롭게 살 것 같아요.”   하지만 결혼은 권하고 싶단다. 이현지씨는 “무슨 일이 생겨도 배신하지 않는 내 편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0.27 15:20

  •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유료 전용

      ■  「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2021년 한국의 파트타임 근로자(25~54세)는 162만3000명, 이 중 66.2%(107만5000명)가 여성이다. 최근 10년간 평균 파트타임 근로자의 67.4%가 여성이었다. 왜 이렇게 많은 여성이 파트타임으로 일할까?   전문가들은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부담이 여성에게 쏠리면서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고 봤다. 김기승 부산대 경제학부 교수는 논문 ‘파트타임과 풀타임 고용형태 전환의 결정요인 분석’에서 “파트타임 근로를 선택하는 건 임신, 출산, 육아 부담 등으로 인해 남성보다 여성이 많다”고 분석했다. hello! Parents가 1980년대생 여성 양육자 중 파트타임 워킹맘을 구분해 만난 이유다.   누군가는 파트타임이 육아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 형태라고 말한다. 하지만 육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파트타임을 선택했다는 이도 있다. 프리랜서 조현정(35)씨는 후자다. 인터뷰가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을 담은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  남편이 아이 등하원시킨다고 하면 다들 ‘정말 대단하다’고 해요. ‘라떼파파’(커피를 손에 들고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육아에 적극적인 아빠) 얘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죠. 그런데 똑같은 걸 제가 하면 애엄마가 할 일을 한 것뿐이에요.    조경 관련 교육 프로그램의 기획자이자 매니저로, 프리랜서 형태로 일하는 조현정(35)씨. 그는 “가사와 육아에 적극 참여하는 남편이 고맙지만 가끔 화나는 순간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양육은 엄마의 몫’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그는 “주 양육자는 엄마라는 전제 아래 쓰인 양육 서적에는 손이 안 간다”고도 말했다.    조씨는 외부의 도움 없이 만 3세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이유다. 하지만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 풀타임으로 전향할 생각이다. “전업을 고민해 보진 않았느냐”는 질문에 조씨는 “그럴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커리어에 대한 욕심도 많고 경제력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다.   그는 아이에 대한 모순적인 감정도 내비쳤다. 아이가 좋지만 싫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기적인 나를 참고 견디게 만드는 단 하나의 존재”라면서도 “아이가 없었다면 경제적으로나 물리적·정신적으로 더욱 풍요롭게 살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조씨는 “결론적으로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  ☝내가 하면 애엄마,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      조씨는 “남편의 가사·육아 참여도가 높은 건 맞다”고 했다. 그의 남편은 지난해 회사에서 처음으로 남성이 육아휴직을 썼다. 남편의 회사는 남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육아휴직을 쓰는 데 큰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를 위해 결심했고, 실행했다. 당시 계약직으로 일하던 조씨는 재계약 문제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까지 기승을 부리며 어린이집이 수시로 문을 닫자 남편이 육아휴직을 한 것이다. 그는 “휴직 기간이 한 달여로 짧긴 했지만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그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보기 드문 남편이라는 걸 알지만 가끔 남편이 얄미워진다. 조씨는 “엄밀히 말하면 남편이 아니라 사회적 시선에 화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똑같이 해도 조씨가 하면 그냥 ‘애엄마’인데,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로 보는 시선이 싫다는 얘기다.    “제가 일하고 남편이 육아휴직했을 때, ‘그런 남편이 어딨느냐’고 치켜세우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들었어요. 아이 등하원시킬 때 사람들 눈빛이 다르다는 걸 남편도 느낀대요. 그런데 여자가 육아휴직하고 아이를 등하원시키면 대단하다고 하나요? 하는 건 당연한 거고, 안 하면 나쁜 엄마 되는 거죠. 억울할 만하지 않나요?”   엄마의 육아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시선이 싫지만, 조씨 역시 그런 인식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혹시 아이가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까 봐 걱정돼 일에 달려들지도 못한다. 최근 몇몇 엄마와 친해졌는데, 조씨를 빼면 다 전업주부였다. 그는 “만약 내가 풀타임으로 일하면 엄마들과 교류하기 힘들 텐데, 그럼 아이도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는 기회를 잃는 게 아닌가 걱정된다”고 했다.    “요즘엔 혹시 데리고 있다가 사고가 날까 봐 다른 집 아이를 맡아주는 것도 꺼리거든요. 놀이터에 가면 엄마는 엄마들끼리 모이고, 이모님은 이모님들끼리 모이고요. 제가 풀타임으로 일하면 결과적으로 아이의 기회를 빼앗는 게 될까 봐 망설여져요.”    조씨 부부는 외부의 도움 없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 친정 부모님은 아직 일하시는 데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 시부모님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라”고 하지만 선뜻 손을 내밀기가 쉽지 않다. 임신 당시 “부모님 신세를 지기보단 돈을 쓰자”고 남편과 합의했다. 그러나 막상 마음에 맞는 ‘이모님’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쓰는 돈은 크게 느껴졌고, 남이 아이를 돌봐주는 건 어딘지 모르게 아쉬울 것 같다고 느꼈다.    “저보다 잘 버는 남편이 일하고, 저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아이가 없었다면 프리랜서로 일하지 않았을 거고, 일과 가정(육아) 사이에서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았겠죠.”     ━  ☝“전업 NO” 파트타임이라도 붙드는 까닭      “육아에 집중하려고 한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그럴 생각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없던 그가 프리랜서가 된 건 코로나19 때문이었다. 다니던 회사에서 인원을 감축하면서 재계약이 성사되지 않은 것이다. 다시 일을 구하기까지 약 6개월간 전업주부였다. 그는 “나는 즉흥적인 성격인 데 비해 남편은 꼼꼼한 스타일이라 돈 쓸 때 남편 눈치를 보게 되더라”며 “그래서 스트레스가 컸다”고 말했다.    조씨는 또 “전업주부이던 당시 남편에 대해 묘한 경쟁심과 박탈감을 느꼈다고”도 했다. 두 사람이 원해 아이를 낳았는데, 자신만 희생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단 거다. 그는 “남편은 부부이면서 경쟁자”라면서 “나도 남편처럼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부부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 돈 같은 자원을 놓고 협력과 경쟁을 하는 사이라는 의미다.   그는 “결혼과 출산은 다른 문제”라고 했다. 조씨 부부는 임신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심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꼭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난임시술을 하면서까지 낳진 말되, 생기면 낳자”는 생각이었다. 아이가 없다면 경제적으로 더 여유 있을 거란 생각도 했다.     2019년 말 아이가 태어나자 조씨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조씨는 자신만의 시간과 취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전시회나 공연장을 가는 게 그의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아이를 낳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런 활동을 하지 못하자 나를 잃어버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는 “아이가 잠들면 남편이 산책이라도 다녀오라며 시간을 주는데, 막상 나가도 금방 집에 돌아오게 되더라”며 “이제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를 얻는 나만의 방법도 잊어버렸다”고 하소연했다.    “아이를 놓고 손익을 따지면 안 되는 거 압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는 데 최소 20년의 세월이 필요하잖아요. 30년이 될 수도 있죠. 그 기간 동안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많은 기회비용이 발생해요. 아이를 보면 정말 예쁘고 행복하죠. 하지만 아이 낳으라고 권유는 절대 하지 못하겠어요.”    계약직이었던 조씨는 임신과 출산이 얼마나 큰 불이익이 될 수 있는지 몸소 경험하기도 했다. 임신 당시 상사로부터 “이럴(임신할) 줄 알았으면 안 뽑는 건데”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계약 연장 시점과 맞물리자 육아휴직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3개월(출산휴가)만에 복귀한 건 그 말 때문이었다. 휴직한다고 했다가 퇴직하게 될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    ━  ☝출산 권하지 않는 이유가 곧 결혼 추천하는 이유     조씨는 출산을 추천하지 않지만 결혼은 추천했다. “내 편이 생겨 든든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가 결혼을 추천하는 건 심리적 안정감 때문만은 아니다. 경제적 안정감과 혜택도 큰 몫을 했다.    2018년 결혼한 조씨 부부는 신혼집을 구하는 데 신혼부부 우대 대출 제도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괜찮은 집을 구했고, 5년째 거주 중이다. 이 집을 내년엔 떠날 예정이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기 때문이다.     “결혼해 보니 결혼한 부부를 지원하는 정책이 많더라고요. 전세금 대출을 받을 땐 이자도 정말 적게 냈어요. 신혼부부 특별공급 덕에 아파트 분양도 받았고요. 혼자 사는 친구들 보면 아무리 노력해도 돈 모으기가 힘들어 보이더라고요. 돈 모으는 덴 확실히 결혼하는 게 유리해요.”    조씨가 결혼을 추천하는 이유는 출산을 추천하는 않는 이유와 맞닿았다.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경제적인 욕망 때문이다. 그가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출산하는 순간 그는 ‘일해서 돈을 벌고 싶은 욕구’와 ‘엄마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했다. 그는 “일하면 아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힘들고, 일하지 않으면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 우울하다”며 “출산과 동시에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기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출산하면서 얻은 것도 있다. 그는 “아이 덕분에 성장했고, 또 성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나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가 생기면서 세상을 보는 관점도 넓어졌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나서 확실히 달라졌어요. 예전엔 ‘노키즈존’에 찬성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노키즈존에 찬성하는 쪽도, 반대하는 쪽도 이해가 가요. 이게 논란이 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출산율이 계속 떨어진다는 뉴스를 보면 아이를 이해하는 사람도 줄고 우리 아이가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도 늘겠다 싶어요. 그렇다고 아이를 낳으라는 건 아닙니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니까요.”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0.27 15:19

  •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유료 전용

      ■  「 일하는 엄마가 그렇지 않은 엄마와 비등해졌다. 통계청 데이터뿐 아니라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 사이에서도 그 특징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일하지 않는 엄마들도 ‘일’을 인생에서 완전히 지운 건 아니었다.   1980년대생 여성 양육자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이유다. 엄마로서의 책임과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과연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hello! Parents는 리서치 전문 회사 오픈서베이의 도움을 받아 풀타임 워킹맘, 파트타임 워킹맘, 전업맘을 각각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9월 두 번째로 만난 풀타임 워킹맘 오소연(34)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뷰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공개된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결혼은 비합리적이에요. 똑같이 공부해서, 똑같이 일해도 여성한테 가사·육아가 더 쏠리거든요. 동등한 분담요? 포기했어요. 애걸복걸하면 병나요.   결혼 8년 차, 여섯 살 딸과 세 살 아들을 키우는 오소연(34)씨는 “남편과의 가사·양육 분담률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중견 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그는 일에 치여 사는 남편을 대신해 가사와 양육을 전담한다. 그의 결혼 생활은 기대가 분노로, 분노가 체념으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결혼 후 비혼(非婚)주의자가 됐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경제적, 정서적 안정을 찾아 결혼했지만, “남의 집 아들(남편) 팬티 접어주고 양말 짝 찾아주는 게 현실”이라는 거다.   오소연씨는 아이를 낳은 뒤 살기 위해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가사 분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놨고, 일과 가정 모두 완벽하게 해내겠다는 꿈도 접었다. 그는 “상황을 바꿀 순 없다”며 “문제를 최대한 잘 해결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오소연씨는 하루를 철저하고 치밀하게 계획한다. 그래야만 워킹맘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  ━  ☝ “우리, 정말 사랑했을까?”    오소연씨는 남부럽지 않게 자랐다. 공부도 곧잘 했고, 대학 입학에서 취업까지 대체로 순탄했다. 워킹맘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오소연씨의 교육에 아낌없이 지원했다. 오소연씨는 “엄마가 반드시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혼자서도 멋지게 살 수 있다는 말을 자주하셨다”며 “하지만 그 말을 들을 땐 의미를 몰랐다”고 했다.   어머니의 말을 이해하게 된 건 결혼하고 나서다. 아르바이트하다 남편을 만난 오소연씨는 3년간 연애했다. 두 살 연상인 남편은 일에도, 연애에도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만났고, 매일 밤 헤어지는 걸 아쉬워했다. 둘은 “그러지 말고 빨리 결혼해 안정적으로 살자”고 마음을 모았다.   “어렸고, 너무 성급했어요. 결혼하면 경제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안정을 찾을 거라고만 생각했지, 희생이 따른다는 걸 몰랐어요.”   오소연씨는 바쁜 남편을 대신해 가사와 육아를 모두 떠안았다. 5급 공무원인 남편은 늘 일에 치여 살았다. 자정 퇴근은 기본이고, 집에 아예 오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아이가 생겨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입덧할 때도, 태교할 때도 남편은 옆에 없었다. 아이가 태어난 날도 남편은 상사에게 “아내가 방금 출산했다. 곧 출근하겠다”고 전화부터 했을 정도다.  양가 부모님 모두 일을 하고 있어 도움을 구할 처지도 못 됐다. 오소연씨는 1년 3개월씩 두 번의 육아휴직을 냈다. 외향적인 오소연씨에게 힘든 시간이었지만, 책임감으로 버텼다. 하지만 성인과의 대화가 사라지면서 오는 우울감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럴수록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나는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육아휴직 기간을 꽉 채우고 복직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복직이었지만, 환영받지 못했다. 회사는 ‘엄마’가 되어 돌아온 그에게 싸늘했다. 남자가 많아 조직문화가 군대 같았던 옛 직장 동료들은 “너만 애 키우냐” “이래서 여자는 안 된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했다. 중요 업무에서도 배제됐다. “복직만 하면 내 인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오소연씨는 “워킹맘이 되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며 “직급이 높아질수록 남성 비율이 높은 이유를 그제야 알겠더라”고 말했다.   그럴 때 남편이 힘이 되어주면 좋으련만, 그렇지 못했다. 물론 남편이 복직을 만류한 건 아니다. 하지만 오소연씨의 출근 시간이 앞당겨지자 남편은 이렇게 물었다. “그럼 애들 등원은?” 결국 오소연씨는 이직했다. 새 직장을 선택할 때 가장 우선한 조건은 정시 출퇴근. 대신 연봉을 줄였다.   “남편도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거니까 이해해 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체념이죠.”   오소연씨는 가사·양육 분담 문제로 더는 남편과 싸우지 않는다. 말해 봤자 바뀌는 게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이 문제가 거론될 때면 “내가 회사를 관두겠다”고 큰소리친다. 하지만 그는 안다. 남편이 자기 일을 좋아한다는 걸 말이다. 오소연씨는 “남편의 직업은 미워하되, 남편은 미워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이게 8년의 다툼과 갈등 끝에 얻은 교훈이다.    ━  ☝ “아이는 저절로 크는 줄 알았다”   오소연씨는 계획해서 임신했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아야 완벽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하지만 그는 “육아가 어떤 건지 제대로 몰랐다”고 말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애 낳고 곧장 밭매러 갈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아니더라고요.”     오소연씨는 출산하면서 “한 마리의 짐승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힘주면 쑥 나오는 줄 알았던 아이는, 단전에서부터 올라온 소리를 지르고서야 나왔다. 아이를 낳고 찾아온 신체 변화도 절망적이었다. 대표적인 게 치질이다. 그는 “출산한 여성이 치질이나 요실금으로 고통받는다는 걸 아이를 낳고 나서야 알았다”며 “정말 무지했다”고 고백했다.   산후도우미를 부르지 않은 것도 무지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 충분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몸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한 산부(産婦)가, 그것도 첫 아이를 도움 없이 돌보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버티다 못해 고모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는 “첫째가 외로워 보여서 둘째를 낳았는데, 너무 용감했다”고 자조했다. 한 번 해봐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단다. 하지만 두 번째는 더 힘들었다. 몸이 힘든 것만 몰랐던 게 아니다. 돈이 이렇게 많이 드는 일인지도 몰랐다.     “첫 아이 낳자마자 통장에서 1000만원이 사라졌어요. 돈 나가는 걸 보니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돈을 벌기 시작하자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오소연씨가 일하러 간 사이 누군가는 청소하고, 아이를 돌봐야 했다. 또 돈이 필요했다. 정시 출퇴근하던 두 번째 직장에서 다시 한번 이직을 한 이유다. 야근도 많지 않으면서 더 좋은 연봉을 제시하는 회사로 옮겼다.    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회사라고 해도 회사는 회사다. 갑자기 야근할 일도, 예정에 없던 회식도 있게 마련이다. 오소연씨는 이런 식의 야근 혹은 회식은 거의 못 한다. 예정된 야근이나 회식은 어린이집에 연장 보육을 신청해 참석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이럴 때면 또 남편이 원망스럽지만, 그런 마음은 문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혼자 육아를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 미안한 점도 많다. 집에서 그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미안한데, 엄마가 일해야 해”이다. 급히 퇴근하느라 마치지 못한 업무를 싸 들고 오는 날이 많아서다. 투정 한 번 안 부리는 아이들을 보면 오히려 속이 더 상한다. 그는 “늘 바쁘다 보니 아이들의 감정을 읽을 시간이 없다”며 “나는 늘 재촉하고 화내는 엄마라는 게 싫다”고 말했다. 싫지만, 방법이 없다. 그는 “매일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밤마다 후회한다”며 “정서적인 면에서 나는 빵점짜리 양육자”라고 말했다.    ━  ☝ “엄마의 출근길을 사수해야 하는 이유”   오소연씨는 많은 걸 포기했다. 남편과의 동등한 가사·양육 분담도, 완벽한 엄마도 포기했다. 하지만 단 하나 포기하지 못한 게 있다. 바로 일이다.     “아무도 제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아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직업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어요.”   오소연씨의 첫째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에겐 더는 남은 육아휴직도 없다. 퇴사할 생각도 물론 없다. 일을 관두는 건 곧 경력 단절을 의미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마케터는 전문직이 아니라 재취업하기 쉽지 않다”며 “둘 중 한 명이 그만둬야 한다면 남편이 그만두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남편이 재취업하는 게 더 쉽다는 이유에서다. “경제력이 있어야 남편에게 왕왕거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다. 남편이 가사와 육아에 기여하지 못하는 만큼 오소연씨가 불만을 표시하고 싸울 수 있는 건 돈을 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생활비는 내가, 저축과 투자는 남편이 담당한다”며 “경제적 기여가 선명한 만큼 나도 원하는 걸 강하게 요구하거나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육아휴직 기간 얘기를 꺼냈다. 소득이 없다 보니, 배달 음식 하나를 시킬 때조차 주저하게 되더란다.   돈을 벌기 때문에 나를 위한 투자도 할 수 있다. 사실 그는 개인적으로 쓰는 돈이 거의 없다. 누구보다 꾸미길 좋아했지만, 이제 색조화장품도 하나 없다. 옷을 산 건 1년도 더 넘었다. 그런데도 그가 꼭 쓰는 돈이 있다. 바로 승마다. 3개월에 60만원 정도 드는 ‘고급 취미’지만 이건 양보할 수 없었다. 이것도 시간이 여의치 않아 자주 빼먹긴 하지만 말이다.   물샐틈없는 24시간, 언제 행복하냐고 물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출근할 때”라고 말했다.     출근길 40분이 하루 중 유일하게 혼자 있는 시간이에요. 지하철에서 밀린 드라마도 보고, 뉴스도 읽죠. 그렇게 스트레스 풀어요. 그래서 일을 더 관둘 수 없어요.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0.25 15:30

  •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유료 전용

      ■  「 일하는 엄마가 그렇지 않은 엄마와 비등해졌다. 통계청 데이터뿐 아니라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 사이에서도 그 특징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일하지 않는 엄마들도 ‘일’을 인생에서 완전히 지운 건 아니었다.   1980년대생 여성 양육자들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이유다. 엄마로서의 책임과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역할 사이에서 과연 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hello! Parents는 리서치 전문 회사 오픈서베이의 도움을 받아 풀타임 워킹맘, 파트타임 워킹맘, 전업맘을 각각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9월 첫 번째로 만난 풀타임 워킹맘 강민경(35)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뷰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이 공개된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    워킹맘이 왜 힘든 줄 아세요? 다 잘하려고 해서예요. 다 잘하려다 하나도 제대로 못 하죠. 그래서 전 선택했어요.   대기업 계열사 경영전략실에서 근무하는 워킹맘 강민경(35)씨는 “육아는 남편이 맡고, 나는 가사를 주로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가 하는 가사엔 요리는 포함돼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강씨와 남편은 각자 식사를 해결하고, 아이는 친정어머니가 챙겨 먹인다. 그런 그가 매주 꼭 하는 요리가 하나 있다. 바로 국이다. 강씨는 “매주 한우와 돌미역을 넣고 미역국을 한 솥 끓여 얼려 놓는다”며 “국 끓인다는 자부심은 있다”고 말했다. 국을 제외한 음식은 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해준 것들이다.     강씨의 목표는 ‘밥 잘해 주는 엄마’가 아니다. 그의 표현은 빌리자면 ‘사회적으로 든든한 엄마’가 목표다. 그는 스스로 “인정받고 싶고, 성장하고 싶다”며 “입신양명하고 싶은 욕망이 큰 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엄마라는 역할도 어느 정도 하고 싶다. 한우와 돌미역을 넣어 매주 미역국을 끓이는 이유다. 야망이 큰 직장인과 엄마, 그 사이에서 강씨가 찾은 타협점이자 해결책이 바로 미역국인 셈이다.   강씨는 일을 시작하고, 엄마가 된 후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여러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여성으로 성공하고자 진로를 완전히 바꾸었고, 아이를 낳고 나선 직장도 옮겼다. 인적자원 역시 총동원했다. 강씨의 커리어를 지원하겠다는 사람과 결혼했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으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그리고 그런 결정들이 빚어낸 현재 자신의 삶 구조를 ‘이상적’이라고 표현하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  선택 하나. 공대 나와 컨설턴트가 되다   강씨는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10명 중 8명이 남자인 학과였다. 그래도 학교에선 성차별을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유리 천장의 현실을 직시한 건 ‘현장’이었다. 대학교 2학년, 건설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때였다. 공사 현장에서 강씨가 기본적인 안전 규율에 대해 지적해도 잔뼈 굵은 공사판 아저씨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내가 몇십 년을 굴렀는데, 네가 뭘 알아’ 그런 식이었어요. 인턴이라 더 그랬겠지만, 남자였다고 해도 그 정도였을까 싶더라고요. 앞으로도 이런 식이면 여자로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어요.”   강씨는 이후 “나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곳에 가자”고 결심했다. 컨설턴트로 진로를 정하고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는가 하면 관련 동아리 활동도 했다. 졸업 후 원하는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다.     강씨가 유별난 게 아니다. 그의 학과 동기 중 전공을 살려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여성은 한 두 명뿐이다. 보통은 연구소에 가거나 공기업으로 ‘빠진다’. 강씨는 “그나마 일하고 있으면 다행”이라고 했다. 여자 선배 중엔 전업주부가 많다. 그래선지 그 역시 무심결에 마흔쯤 되면 일 그만두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컨설턴트는 확실히 건설업계에 비하면 여성이라서 겪는 어려움은 적었다. 하지만 일 자체가 녹록지 않았다. 매일 새벽까지 일하는 강행군이었다.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할까” 의구심이 들었다. “일이고 뭐고 그냥 시집 잘 가 편하게 사는 게 최고 아닌가” 싶어지기까지 했다. 컨설팅회사를 나와 일이 좀 편하다는 대기업 지주사 전략실로 이직했다. 강씨는 이 시기를 ‘방황기’라고 표현했다.   흔들리던 그 무렵 소개팅으로 남편을 만났다. 호수 같은 남자였다. 이벤트 같은 소소한 재미는 없지만, 예측 가능한 잔잔한 사람. 장손이긴 했지만,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도 마음에 들었다.   “연애할 때 남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커리어에 있어서 같이 성공하자고요. 저를 지원하겠다고요. 그 점이 믿음직했어요.”   1년 반 연애 끝에 결혼했다. 아이를 안 낳을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강씨는 “아이를 통해 나의 부족한 뭔가를 완성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  선택 둘, 육아휴직 2개월 만에 회사로 돌아가다   2019년 여름 강씨는 아이를 낳았다. 1년 동안 육아휴직을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5개월여 만에 회사로 돌아갔다. 출산휴가 석 달을 포함하면 육아휴직은 두 달여만 쓴 것이다. 강씨는 “아이를 낳고 커리어에 대한 열망이 더 불타올랐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가 생기고 나니까, 멋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어요. 더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싶은 책임감이 커졌다고 할까요? 그런데 그 책임감엔 돈이 필요하잖아요.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복직하고 곧바로 이직 자리를 알아봤다. 더 많은 연봉을 주는 곳을 찾았다. 지금 직장으로 옮긴 건 그래서다.   강씨는 육아휴직은 ‘내가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깨달은 기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이는 사랑스러웠다. 남편은 가능하면 야근하지 않고 일찍 퇴근하려고 애썼다. 친정 부모님도 일주일에 두세 번씩 드나들었다. 그런데도 남편이 보기 싫었다. 매일 아침 깨끗이 씻고 말끔히 차려입고 출근하는 남편이 꼴 보기 싫었다. 남편이 “점심 약속이 있다”고 말하면 짜증이 밀려왔다. 강씨는 “나도 깨끗하게 차려입고 이 공간(집)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고 한다.     어른의 대화가 그리워 나간 동네 엄마들 모임에서도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한 엄마가 “요즘, 아이를 참 많이 낳는다”고 했는데, 강씨는 출산율 통계를 들이밀었단다.     “저도 웃기죠. 그냥 넘어가도 될 걸 거기다 대고 출산율 통계를 들이밀었으니…. 컨설턴트라 숫자에 민감하거든요. 그런데 통계를 들이밀어도 그 엄마가 아니라고 우기는 거예요. 주변을 보라면서요. 이 집도 낳고, 저 집도 낳는다고요. 대화가 안 통하는 느낌이었어요.”   강씨도 전업주부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세 자녀를 키우느라 주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씨는 그런 엄마를 보며 ‘왜 우리 엄마는 ‘엄마’로서의 정체성밖에 없지?’하는 의문이 들었다. 회사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여자 선배들이 아이를 낳고 일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드는 걸 보면서 엄마가 떠올랐다.       “33살에 아이를 낳았어요. 서른셋, 아직 충분히 젊잖아요. 일에서 승부를 보고도 남을 만큼요. 실제로 일하면 성과도 잘 나왔거든요. 해볼 만큼 다 해보고 싶었어요. 아이가 있다고 포기하거나 체념하고 싶지 않았죠.”   회사로 돌아간 강씨의 빈자리는 시어머니가 채웠다. 지방에서 마다치 않고 올라오신 시어머니 덕에 강씨는 “남의 손 빌리지 않고 아이를 키웠다”며 “시어머니 덕에 안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일했다”고 말했다.    ━  선택 셋, 저녁밥 대신 홈 트레이닝하다   퇴근 후 강씨는 일주일에 두세 번 ‘홈 트레이닝(집에서 하는 간단한 근력 운동)’을 한다. 그는 결혼 전부터 헬스나 요가·필라테스 등으로 꾸준히 운동했다. 퇴근한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거나 책을 읽어주면 강씨는 그 틈에 운동을 하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있는 워킹맘이 하기 힘든 저녁 운동이 가능한 건 두 가지 덕분이다. 무엇보다 ‘밥 문제’가 없는 게 크다. 강씨는 저녁을 먹지 않는다. 남편은 알아서 챙겨 먹는다. 아이의 저녁은 강씨가 퇴근하기 전 친정어머니가 챙긴다. 강씨는 “우리 부부는 밥 차리고, 먹고, 설거지하는 시간에 아이와 나 자신을 챙기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씨가 “육아의 7할을 담당한다”고 소개한 남편의 덕도 크다. 남편은 매일 아침 아이의 등원을 책임진다. 퇴근 후 아이를 씻기고, 잠들 때까지 책을 읽어주는 등 놀아주는 것도 남편이 담당한다. 남편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오은영 박사의 책을 읽으며 육아를 공부했다. 강씨는 “본인 자식 돌보는 건 당연하지만, 그만큼 하는 남편이 드물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며 “그래서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편이 육아하는 동안 강씨 역시 노는 건 아니다. 육아 말고도 해야 할 가사는 차고 넘친다.    “청소·빨래는 제가 해요. 아이 어린이집 준비물 챙기는 것, 생필품 체크해서 주문하는 것 같은 일도 다 제가 하고요. 남편보다 제가 더 깔끔한 편이라 이런 일에 더 잘 맞아요. 남편은 조심성이 많고 세심한 편이라 아이 돌보는 게 더 속 편하다고 했고요.”      강씨는 “육아가 물리적으로 힘든 것보다 심적으로 힘들다”고 했다.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때문이다. 그는 “제가 일하고, 성장하기 위해 부모님이 희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로 5분여 거리에 사는 강씨의 부모님은 매일 오후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데려와 강씨 부부가 퇴근할 때까지 돌본다. 강씨는 “아이 낳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있으면 근처에 친정이나 시댁이 있는지부터 물어본다”고 했다. 육아를 돕는 사람이 없으면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강씨가 둘째 생각을 접은 것도 부모님께 더 이상의 부담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다.     “저만 놓고 보면 70점짜리 엄마 같아요. 하지만 아이 잘 돌보는 남편과 늘 도와주는 부모님까지 생각하면 95점 이상은 될 것 같아요. 워킹맘으로서 아이와 보내는 절대적 시간이 적으니 100점은 안 될 것 같고요.”   강씨는 “150억원 정도 하는 돈이 생기면 모를까, 평생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50억원’이란 비현실적인 금액을 말한 건 결코 일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싶어서다. 강씨에게 일은 그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고 인정받는 수단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강씨는 “만약 그만둔다면, 아이 때문이 아니라 회사에서 원하는 만큼 인정을 받지 못해서일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를 봐야 해서’라며 양해를 구하면 스스로 물러서는 기분이에요. 회사가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저한테 기회가 덜 주어질 테고, 뒤처질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저를 애 엄마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0.25 15:29

  •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유료 전용

    hello! Parents가 만난 1980년대생 여성 양육자 6명 중 절반이 출산을 추천하지 않았다. 모두 워킹맘이었다. 출산을 추천한 여성 양육자는 2명(33.3%)에 불과했다. 나머지 한 명은 “양가 부모님이 가까이 살 거나 이모님을 고용할 만큼 돈이 많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서야 출산을 추천했다.    결혼에 대해선 그나마 좀 관대했다. 결혼을 추천하지 않은 건 1명뿐이었다. 결혼을 추천한 사람은 출산과 마찬가지로 절반이었고, 2명은 조건을 달아 추천했다. 80년대생 여성 양육자의 속마음은 한 마디로 “결혼은 추천하지만, 아이 낳는 건 글쎄…”인 셈이다.    왜 여성들은 출산을 권하지 않는 걸까?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 1980년대생 양육자를 말하다’ 다섯 번째 편에서는 여성 양육자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 🧾 기획 목차 「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1.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2. 80년대생이 결혼을 추천하는 이유 3.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 우리가 일하는 세가지 이유 4. “결혼 만족하지만, 아이는 글쎄” 엄마의 속마음 5. “나의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6. “가사와 육아를 둘러싼 은은한 차별이 문제” 1980년대생이 만난 1980년대생  」   ━  1. 결혼은 추천, 아이는 글쎄      통계청에 따르면 맞벌이 가구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육아 시간은 54분으로, 남편이 외벌이 하는 가구의 남성(53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아내가 일하든 안 하든 남편은 하루에 1시간도 가사 노동을 하지 않는 셈이다. 그럼 맞벌이 가구 여성은 가사·육아에 얼마나 시간을 쓸까? 남편의 6배 가까운 187분이었다. 놀라운 건 아내가 외벌이 하는 가구마저 여성의 가사 시간(156분)이 남성(119분)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육아정책연구소가 2017년부터 5년간 총 1만5000여 명을 조사해 발행한 『육아정책 여론조사(2021)』에서도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의 양육 분담률은 33%로, 여성(67%)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가사 분담률(35.5%)도 큰 차이가 없었다.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양육자 중 유일하게 결혼도, 출산도 권하지 않은 오소연(38·풀타임 워킹맘)씨의 경우 남편이 가사와 육아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5급 공무원인 그의 남편은 늘 일에 치여 산다. 일이 바쁠 땐 집에 아예 오지 못하는 날도 많다. 첫째를 낳던 날도 남편은 상사에게 “아내가 방금 출산했다. 조만간 출근하겠다”는 전화를 했을 정도다. 주말에도 오소연씨 혼자 아이 둘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는 게 일상이 됐다.    포기했어요. 더 말해봤자 바뀌는 게 없으니까요. 이 문제로 서로 스트레스 주는 것도 힘들고요. 남편도 살려고 바둥거리는 거니까 이해해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체념이죠. (오소연)    남편이 가사·육아에 높은 수준으로 관여하고 있다고 말한 양육자 역시 “출산은 여성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조현정(35·파트타임 워킹맘)씨가 결혼은 추천하면서도 출산은 절대 권하지 않는 이유다. 조현정씨의 남편은 2020년 초 한 달간 육아휴직을 쓰기도 했다. 회사에서 최초의 남성 육아휴직자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남편이 부부이기도 하지만 경쟁자기도 하다”고 말했다. ‘커리어’라는 목표를 위해 시간이란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라는 것이다.    출산을 추천하지 않은 마지막 양육자 이현지(38·파트타임 워킹맘)씨도 “육아는 아무래도 엄마가 더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있더라”고 말했다. 산부인과 전문의로 개인 병원에서 일하는 이씨는 외래가 시작되면 자리를 비우기 힘들다. 의사가 3명뿐인 작은 병원이다 보니 당일날 연차를 쓰는 것도 불가능하다. 아이가 아파 갑자기 하원 하는 등의 돌발 상황에 주로 대처하는 건 연구원인 남편이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의 마음을 세심하게 알아주는 정서적인 돌봄은 엄마가 더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아이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이유다.    강민경(35·풀타임 워킹맘)씨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춰진 경우에만 출산하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그는 “양육을 도와줄 양가 부모님이 근처에 살 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육아를 전담할 도우미를 쓸 수 있을 만큼 돈이 많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7년 출산한 강민경씨는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을 계획했다가 5개월 만에 복직했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돈을 더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과 집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아침에 씻고 옷을 말끔히 입고 나가는 남편이 꼴 보기 싫었어요. 저도 정말 출근하고 싶더라고요. 잘 차려입고 이 공간(집)을 탈출하고 싶었죠. 아이는 예쁘지만, 나 혼자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은 너무 힘들었어요. (강민경)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심의 40여 개국을 대상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 남성 육아 분담률 등과 출산율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전미경제연구소(NBER) 『출산의 경제학: 새로운 시대(2022)』보고서에 따르면 남성이 가사와 육아를 덜 하는 나라일수록 출산율이 낮았다. 이 연구에서 한국은 일본·폴란드와 함께 남성의 가사·육아 분담률이 가장 낮은 3개국 중 하나였다. 2019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92명으로,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1명 아래로 추락했다. 지난해엔 0.81명까지 떨어졌다.     ━  2. 육아의 핵심은 ‘온콜(on-call) ’     지난해 한국은행이 내놓은 『코로나19와 여성 고용: 팬데믹 vs 일반적인 경기침체 비교를 중심으로』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 이후 여성 취업자 수는 남성에 비해 훨씬 큰 폭으로 줄었다. 남성 취업자 수는 코로나19 이전 대비 2.4% 준 반면 여성은 5.4% 준 것이다. 줄어든 여성 취업자의 95.4%는 30~45세 기혼 여성이었다. 오삼일 한국은행 조사국 고용분석팀 차장은 보고서에서 “방역대책의 일환으로 학교와 어린이집이 폐쇄되면서 육아 부담이 늘었고, 이 부담의 상당 부분이 여성에게 전가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육과 관련한 돌발사태 대응 부담으로 여성이 취업시장을 떠났을 거란 얘기다.    이 보고서는 육아의 ‘온콜(on-call) ’ 부담이 여성에게 지워지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온콜은 경찰이나 의사가 긴급 사태에 대비해 대기 상태에 있는 걸 일컫는 말이다.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아이를 돌보는 노동의 핵심이 온콜”이라며 “온콜 부담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만큼 여성 양육자가 체감하는 가사·육아 부담은 통계로 드러나는 수치보다 훨씬 클 것”이라고 말했다.    hello! Parents가 만난 여성 양육자들도 온콜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전업맘인 남지선(34)씨는 “코로나19로 양육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는데 내가 대응할 수밖에 없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온콜 부담의 무게를 가장 잘 보여준 건 이현지씨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육아의 상당 부분을 맡고 있지만, 남편의 육아 기여도에 90점이란 후한 점수를 줬다. 이유는 남편이 온콜 부담을 지고 있어서다. 이현지씨는 “일하는 날만큼은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내가 대타가 된 적은 없다”며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에 남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여성이 온콜에 대응하게 되는 걸까? 미국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인 클라우디아 골딘은 자신의 저서 『커리어 그리고 가정: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에서 “여성의 임금은 남성보다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적게 버는 여성이 온콜에 대응하는 게 금전적 손실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란 얘기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여성가족부가 올해 2300여 개 상장기업의 임금을 조사한 결과 여성의 평균 임금(5829만원)은 남성(9413만원)의 61.9%에 불과했다.     ━  3. 남성은 하지 않은 고민, 커리어      hello! Parents가 만난 80년대생 여성 양육자 6명은 모두 커리어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일하는 엄마들은 “커리어를 포기하면서까지 아이를 키우는 건 하고 싶지 않다”고 했고, 전업주부인 엄마 역시 “일을 잠시 쉬는 것일 뿐 아예 놓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남편이 가사와 육아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는 오소연씨는 “힘들지만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전투’하듯 살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않는 건 재취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오소연씨는 “인정 욕구가 커 전업주부는 안 맞는데, 자격증 있는 전문직도 아니라 그만둬선 안 된다”고 말했다. “부부 중 한 명이 육아 때문에 그만둬야 한다면 남편이 그만두는 게 맞다”라고까지 말했다. 남자가 여자보다 재취업하기 수월하기 때문이다.    조경사로 일하다 관련 강의를 하는 강사로 전업한 조현정씨는 “중간에 커리어를 전환하면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지만, 풀타임으로 일할 기회가 온다면 언제든 일하고 싶다. 조씨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현지씨는 커리어와 양육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전문직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그가 법학전문대학원이 아니라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파트타임으로 일하기엔 변호사보다 의사가 유리할 것 같아서다. 그는 “일과 가정, 그리고 삶의 균형을 찾기 위해 의사가 됐다”며 “당직이나 응급 상황이 없는 개인 병원에서 소위 ‘페이닥터’로 일하는 것도 그래서”라고 말했다.    커리어 컨설팅을 하는 김나이 커리어액셀러레이터는 “상담을 의뢰하는 30대 기혼 여성의 99%는 아이를 키우면서 커리어를 어떻게 유지하고 펼쳐야 하는지 고민한다”며 “반면 커리어와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30대 기혼 남성은 1%도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사와 육아에 대한 부담을 그만큼 여성이 많이 느끼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여성 양육자들은 ‘커리어’를 놓치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전업맘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출산 전 제빵사로 일했던 윤미래(32·전업맘)씨는 “당장 일할 생각은 없지만, 아이가 좀 자라면 반드시 다시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간호사로 일하다 전업주부가 된 배소영(34)씨 역시 “일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아이들이 자고 나면 유튜브를 보며 캘리그래피를 배우는 등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 덕분에 일을 그만두면서 오히려 다른 삶을 꿈꿔보게 됐다”며 “기회가 되면 사업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혼인상태별 및 맞벌이상태별 가사노동시간』, 통계청, 2019.   『행복한 육아문화 정착을 위한 KICCE 육아정책 여론조사』, 육아정책연구소, 2021.   『출산의 경제학: 새로운 시대』, 전미경제연구소(NBER), 2022.   『코로나19와 여성고용: 팬데믹 vs 일반적인 경기침체 비교를 중심으로』, 한국은행, 2021. 『커리어 그리고 가정 : 평등을 향한 여성들의 기나긴 여정』, 클라우디아 골딘, 2021.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0.21 15:40

  •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유료 전용

    1980년대생 양육자가 일터로 향하고 있다. 일하는 아빠, 전업주부 엄마는 옛말이다. 이제 한 집 걸러 한 집이 맞벌이 가구다. hello!Parents가 만난 80년대생 양육자 11명 중 7명(63.6%)이 맞벌이였다. 무엇이 이들을 일터로 향하게 했을까?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 🧾 기획 목차 「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1.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2. 80년대생이 결혼을 추천하는 이유 3. 80년대생 양육자, 그들이 일하는 세 가지 이유 4. “결혼 만족하지만, 아이는 글쎄” 엄마의 속마음 5. “나의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6. “가사와 육아를 둘러싼 은은한 차별이 문제” 1980년대생이 만난 1980년대생 」   ━  1. 낳아 놓으면 알아서 큰다? NO!   72만1000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가족과 출산 조사(2021)’에 따르면, 자녀 1명을 한 달간 키우는 데 필요한 돈이다. 또 다른 조사를 보자. 육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6세 미만 영유아 자녀가 있는 가구의 월평균 생활비는 287만4000원으로, 2인 가구(215만원)에 비해 72만원 더 들었다. 1년으로 따지면 864만원, 20년간 키운다고 생각하면 총 1억7280만원이나 된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만큼 큰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양육자 역시 양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로 ‘돈’을 꼽았다. 이들은 하나같이 “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과 더 좋은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녀에 대한 경제적 책임감, 80년대생 양육자가 일하는 첫 번째 이유다.   대기업 전략팀에서 근무하는 강민경(35·풀타임 워킹맘)씨는 출산 후 일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다. 아이를 낳고 보니 잘 키워야겠다는 책임감이 커졌는데, 그 책임을 다하자면 결국 돈이 필요하더란 것이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책임감을 ‘자본주의적 책임감’이라고 불렀다. 강민경씨는 “먹고 입히는 걸 넘어 교육비까지 생각하면 돈이 정말 많이 들겠더라”며 “그래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경제적 부담 때문에 딩크(Double Income No Kids, 맞벌이 무자녀)족이 되려고 했던 양육자도 있었다. 윤미래(32·전업맘)씨는 “아이가 생기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야 할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윤미래씨 부부는 고민 끝에 결국 아이를 낳았다. 100일도 안 된 아이를 보고 있으면 한없이 행복하지만, 앞으로 닥칠 경제적 부담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는 “그저 남편의 사업이 잘되길 바랄 뿐”이라며 “여의치 않으면 시골로 내려가 살 생각도 있다”고 말했다.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해 양육자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문항에 3.39점(4점 만점) 수준으로 동의했다. 다른 항목과 비교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동의한 것이다. 특히 30대 양육자는 3.44점으로, 다른 연령보다 더 크게 경제적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오소연(34·풀타임 워킹맘)씨는 “일을 관둘 생각이 전혀 없다”고 했다. 오소연씨 가구의 월 평균소득은 1000만원에 달한다. 게다가 일찌감치 집을 마련해 생활비를 제외하면 크게 돈 쓸 데도 없다. 부동산이 폭등하기 전에 집을 산 덕에 주택담보대출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외벌이가 된다 해도 가계에 큰 타격이 없는 셈이다. 그런데도 맞벌이를 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전투’를 멈출 생각이 없다. 그는 “많이 벌수록 선택지가 많아지고 넓어진다”며 “하고 싶은 걸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하기 위해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계숙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80년대생의 부모인 베이비부머 세대의 교육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는 연평균 8% 이상의 고성장 시대였다. 그 덕분에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 가능했다. 그래서 베이비부머는 자녀 교육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유계숙 교수는 “부모의 전폭적인 교육 지원을 받은 만큼 자신들도 양육자로서 그렇게 지원하고자 하는 양육 태도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997년 외환위기의 상흔도 영향을 미쳤다. 유계숙 교수는 “청소년기 IMF 위기로 부모가 실직하고 가정 경제가 무너지는 경험을 한 세대인 만큼 부모의 경제적 역할에 대해 더 큰 무게를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  2. 돈도 벌고 커리어도 쌓고, 결론은 전문직   80년대생 양육자에게 일은 돈을 버는 수단이기만 한 게 아니다. 성장과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자아실현의 기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들은 일을 ‘커리어’라고 부른다. 전 성애에 걸쳐 더 높이 성장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기 때문이다. 일은 사회에 들어가는 입장권이자 존재를 증명하는 티켓이다. 양육자가 됐다는 이유로 일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창호(38·육아휴직 안 한 워킹대디)씨는 13년차 대입학원 강사다. 대입학원 강사는 주말이 더 바쁘다. 학생들이 온종일 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때가 주말뿐이라서다. 그래서 그는 아이와 함께한 기억이 별로 없다. 한번은 네 살짜리 아들의 주말 어린이집 행사에 아빠 중 유일하게 못 갔는데, 아이가 “왜 나만 아빠가 없냐”며 서럽게 울었다. 이런 일이 반복돼 주말 근무가 적은 초·중등 학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다시 대입학원으로 왔다. 대입학원에서 더 큰 성취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제는 주 5일 근무도 가능하다. 그는 “큰돈이 생겨 돈 벌 필요가 없더라도 일은 그만두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상황이면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아이와 시간을 더 쓰긴 하겠지만, 일 자체는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일이 주는 만족감과 성취감 때문이다.   전업주부라고 일에 대한 열망을 접은 건 아니다. 대학병원 간호사였던 남지선(34·전업맘)씨도 “일을 포기한 건 절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육아휴직 종료 후 복직 대신 퇴사를 선택했다. 아이를 키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해서다. 그렇다고 평생 아이만 키우겠다는 건 아니다. 2020년생(만 2세)인 둘째가 어린이집에 가면 일을 할 계획이다. 그는 “간호사나 보건교사를 할 수도 있지만 새로운 커리어에 도전해 보고 싶어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영어 공부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장하려면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양육에도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80년대생 양육자들이 늘 시간에 쫓기는 건 그래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가족과 출산 조사(2021년)’에 따르면, 유자녀 기혼자가 미혼보다 일과 생활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유자녀 기혼자의 30.7%가 일과 생활 사이 균형을 잡는 게 어렵다고 답했지만 미혼은 13.5%만이 어려움을 호소했다.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 양육자도 이 문제를 겪고 있었다. 이들이 찾는 해결책은 ‘전문직’이었다. 11명 중 3명(27.2%)이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었다. 행정사까지 포함하면 4명(36.3%)으로 는다. 이들이 전문직을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일과 생활 사이의 균형 때문이었다. 개인 병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산부인과 전문의 이현지(38·파트타임 워킹맘)씨는 “일과 삶 사이에서 일에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직업을 찾아 의사가 됐다”고 말했다. 인문대학 출신인 그가 법학전문대학원이 아니라 의학전문대학원을 선택한 것도 “변호사는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게 어려울 것 같아서”다. 전공의 시절 결혼·임신·출산을 모두 한 그는 만삭의 몸으로 당직을 서고, 출산 휴가 100일 만에 복직했다. 힘들었지만 5년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지금 균형 잡힌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장승준(40·육아휴직 한 워킹대디)씨도 유연하게 일하며 생활을 지키고 싶어 행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행정사가 되기 전 정책연구소 연구원이었던 그는 육아휴직 5개월차에 퇴사 권고를 받았다. 그때 바로 재취업하는 대신 자격증 취득을 택했다. 덕분에 그는 아내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하며 일하고 있다.    장승준씨는 “코로나19 때 자격증 덕을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기관이 수시로 문을 닫았는데, 그때마다 아이들을 돌볼 수 있었다. 그는 행정사로서 자기 일에 대해 “양육자로서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력과 커리어 측면에서도 만족한다”고 말했다.    ━  3. 설거지는 이모님, 아이는 조부모님   80년대생 양육자는 아이에 대해 아낌없이 지원하고 싶다. 그러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일해야 한다. 게다가 일을 통해 자신을 증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아니, 불가능한 일이다. 아이가 있으면 가사와 돌봄 노동을 안 할 수 없다. 그렇다면 누가 그 일을 해야 할까?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들이 이 부분을 메우는 데 특징이 하나 있었다. 가사는 각종 기계와 서비스, 이모님의 도움을 받아 메우고 있었고, 육아는 부모님의 손을 빌리고 있었다. 11명의 양육자가 가사를 맡기는 건 ‘이모님’(가사도우미)이었다. 오소연(34·풀타임 워킹맘)씨는 “이모님은 가사 전문가”라며 “가사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그 시간에 돈을 버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남지선(34·전업맘)씨도 “가사 분담 문제로 남편과 싸우느니 돈을 쓰기로 했다”며 “내가 힘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의 여유마저 생기더라”고 했다.   실제로 통계청에 따르면 가사서비스 시장은 2017년 기준 연간 약 7조5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시장이 커지면서 직업소개소 중심의 중개가 주를 이루던 게 온라인 서비스로 확장됐다. 청소연구소, 미소 등 서비스 업체도 많아졌다. 이들 업체는 최신 전자기가 사용법과 매너 교육 등을 통해 가사도우미의 전문성을 높이기도 했다.   ‘이모님 가전’으로 불리는 식기세척기·로봇 청소기·빨래건조기를 쓰는 양육자도 많았다. 박태우(39·육아휴직 한 워킹대디)씨는 “식기세척기, 로봇 청소기, 빨래건조기가 없으면 안 된다”며 “내가 쓴 돈 중에 가장 잘 쓴 돈이 이 기기를 사는 데 쓴 돈”이라고 말했다.    가사는 적극적으로 외주화했지만, 육아는 그렇지 않았다. 11명의 양육자는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조부모가 등장한 이유다.  강민경(35·풀타임 워킹맘)씨는 부모님의 손을 빌리고 있었다. 부모님이 강민경씨 집 근처에 살며 38개월 손주를 돌본다. 그는 “부모님이 없었다면 일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둘째를 낳고 싶지만, 부모님께 부담을 더 지워드릴 수 없어 포기했다. 그는 “부모님에게서 노년의 삶을 즐길 기회를 빼앗은 것 같아 늘 죄송하다”고 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이현지(38·파트타임 워킹맘)씨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친정집과 15분 거리에 산다. 이현지씨가 일하러 가는 날엔 어머니가 와서 아이를 돌본다. 그는 “키워주신다는 엄마의 말에 겁 없이 둘째까지 낳았지만,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말했다.   유계숙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육아를 외주화하지 않는 건 육아를 단순히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걸 넘어 심리적 안정감과 정서적 지원까지 하는 일로 느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에 대한 심리적·정서적 책임감은 90년대생 양육자로 갈수록 더 강해진다”며 “경제적 책임감을 넘어 정서적 책임감까지 느끼면 더 출산에 신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참고문헌] 『가계동향조사: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 부문』, 통계청, 2021 『가족과 출산조사』, 박종서·임지영 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1   『청년층 세대로 살펴본 가족 건강성과 기능 요구도: 1차 및 2차 에코부머를 중심으로』, 강민지·유계숙 한국가족관계학회지 제23권 3호, 2018   『행복한 육아문화 정착을 위한 KICCE 육아정책 여론조사(Ⅴ)』, 박원순·최윤경 외 육아정책연구소, 2021 『KICCE 소비실태조사: 양육비용 및 육아서비스 수요 연구(Ⅳ)』, 최효미·이정원 외 육아정책연구소, 2021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

    2022.10.20 14:50

  •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유료 전용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 시대, 80년대생 양육자들은 왜 결혼이라는 선택을 했을까?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80년대생 양육자는 대체로 “하지 않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결혼을 권유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혼자보다 둘이 경제적으로 유리한 지점이 많다”며 권유하는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많았다.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 1980년대생 양육자를 말하다’ 두 번째 편에서는 이들의 결혼관을 살펴봤다.      ■ 🧾 기획 목차 「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1.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2. 80년대생이 결혼을 추천하는 이유   3. 우리가 일하는 세가지 이유 4. “결혼 만족하지만, 아이는 글쎄” 엄마의 속마음 5. “나의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6. “가사와 육아를 둘러싼 은은한 차별이 문제” 1980년대생이 만난 1980년대생 」   ━  1. “결혼, 안 한다고 생각한 적 없다”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80년대생 양육자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안 하겠다’)으로 인식하기보다 긍정적(‘하겠다’)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일정 기간 연애를 하고 자연스럽게 결혼에 이르게 됐다.     11명의 인터뷰 대상이 결혼한 시기는 2013~2018년 사이였다. 이때만 해도 미혼남녀의 결혼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부정적이진 않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년마다 진행하는 『가족과 출산 조사(구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만 해도 남성과 여성 모두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10%가 채 안 됐다. 이 수치는 2018년엔 남녀 각각 10.3%, 16%로 늘었다. 결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더 큰 폭으로 줄었다.  결혼을 원했던 구체적인 이유로 양육자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이유는 ‘안정성’이었다.     풀타임 워킹맘으로 두 자녀를 키우는 오소연(38)씨는 “안정적이고 싶어서 결혼했다”며 “어차피 자주 만날 거면 집 사서 같이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 오랫동안 혼자 살아왔던 남지선(34·전업맘)씨 역시 “늘 가족이 그리웠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결혼했다”고 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이현지(38·파트타임 워킹맘)씨는 일주일에 2, 3일씩 당직을 하던 전공의 2년 차 때 결혼했다. 그는 “일이 힘들어서 안락한 가정을 더 원했다”고 말했다. 결혼해야겠다고 결심한 무렵,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동아리 선배를 우연히 다시 만났고, 연애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결혼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결혼을 원한 경우도 있었다. 최창호(38·육아휴직 안 한 워킹대디)씨가 그런 경우다. 그가 결혼한 계기는 당시 여자친구였던 현 아내가 살던 집의 전세계약 만료였다. “‘다시 집을 구해야 하는데, 결혼할 거면 지금 하는 게 어떻겠냐’고 아내가 먼저 제안했다”고 한다.    ━  2. 결혼은 추천, 그게 더 유리해서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 11명 중 7명(63.6%)은 결혼을 추천했다. 조건부 추천을 한 사람까지 포함하면 10명(90%)이나 된다. 이들이 결혼을 추천한 이유는 경제적인 요인이 많았다. 결혼하면 돈을 모으기도 더 쉽고, 신혼부부 특별공급 분양 같은 정책적 지원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개발자 부부로 2020년생 딸을 키우고 있는 이우진(35·육아휴직 안 한 워킹대디)씨는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청약에 당첨된 케이스다. 그는 “결혼을 통해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다”며 “경제적으로도 유리할 뿐 아니라 더 성실해졌고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   프리랜서로 일하며 2019년생 아들을 키우는 조현정(35·파트타임 워킹맘)씨도 신혼부부 특별공급으로 청약에 당첨됐다. 그 역시 “독립해서 혼자 사는 친구들을 보면 돈 모으기 쉽지 않더라”며 “결혼하면 경제적으로 안정될 뿐 아니라 다양한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현정씨는 “결혼 만족도는 8점(10점 만점)”이라며 “원래 9점이었는데 최근 육아가 힘들어 1점 뺐다”고 했다.   2017년생 아들을 키우고 있는 최창호(38·육아휴직 안 한 워킹대디)씨는 “집을 산다거나 하는 계획이 있다면 결혼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혼해야 돈이 모이고, 신혼부부나 유자녀 가정에 대한 여러 지원을 누릴 수 있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한 게 안 한 것보다 낫다”고 했다. 신혼을 인천의 한 빌라에서 전세로 시작한 그는 계약이 만료된 시점에 근처 빌라를 매수했다. 전세난에 집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지금은 아파트 청약 당첨을 노리고 보유하고 있던 집을 매도한 상태다.   풀타임 워킹맘으로 2019년생 아들을 키우는 강민경(35)씨 역시 “직업이나 자산이 탄탄해 자립할 수 있다면 혼자 살라고 권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혼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배우자라는 존재가 경제적·심리적 안전망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hello! Parents가 만난 80년대생 양육자들은 모두 애정에 기반해 결혼했지만, 결혼 후 느낀 가장 큰 효용은 경제적인 이점이었던 셈이다.   결혼의 경제적 효용은 데이터로도 확인할 수 있다. 신한은행이 지난 2월 발행한 ‘보통 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나이가 어려도 자녀가 있는 기혼 가정이 나이 많은 비혼 가정보다 자산이 많았다. 비혼 가정은 자녀 없는 기혼 가정에 비해서도 자산이 적었다. 자산의 크기를 가른 건 부동산(주택)이었다. 경제적인 파트너를 넘어 육아라는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팀을 꾸리는 데서 결혼의 효용을 찾는 양육자도 있었다. 남지선(34·전업맘)씨는 “아이를 낳는다면, 배우자가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배우자가 자신이 하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굳이 결혼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며 “연애로도 충분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성별에 따라 결혼을 추천하는 정도가 달랐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 조건부 추천까지 포함하면 남성 양육자 전원이 결혼을 추천했다. 남성의 경우 5명 중 4명이 결혼을 추천했고, 1명도 “좋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한다”고 했다.    반면에 여성은 6명 중 3명만 결혼을 추천했다. 조건부 추천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66.6%(5명)까지 오르긴 하지만, 전체 인터뷰 대상 중 유일하게 결혼을 추천하지 않은 사람이 여성이었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일하게 결혼을 추천하지 않은 오소연(38·풀타임 워킹맘)씨는 인터뷰에서 “결혼하고 비혼주의자가 됐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성별에 관계없이 똑같이 공부하고 일하는데 여자가 더 많이 육아와 가사의 책임을 지고 있다”며 “여자에겐 결혼도, 출산도 손해”라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는데 결국 남의 집 아들(남편) 팬티 접어주고 양말 짝 찾아주고 있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결혼에 대한 추천 여부는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한 만족도와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가족자원경영학회지에 소개된 논문『맞벌이 부부의 가사 분담이 남편과 부인의 결혼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여성의 결혼 만족도는 두 가지에 영향을 받는다. 여성은 남편의 육아·가사 참여가 높으면 결혼 만족도가 높았고, 자신과 남편이 육아·가사에 공평하게 참여하고 있다고 인지할수록 결혼 생활에 만족하는 경향을 보였다. hello! Parents 인터뷰에서도 이 사실은 확인됐다. 여성 양육자(6명) 중 배우자의 육아·가사 참여도가 낮다고 말한 이들은 결혼을 추천하지 않거나(오소연·풀타임 워킹맘),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며 조건부로 추천(남지선·전업맘)했다.     ━  3. 아이는 선택, 성별 차이 컸다    11명 중 7명(63.6%)이 결혼을 추천한 데 반해 출산을 추천한 건 5명(45.5%)에 지나지 않았다. 절반이 채 안 되는 것이다. 조건부 추천을 포함해도 54.5%(6명)밖에 되지 않았다.     출산에 대해 부정적인 정도는 여성 양육자가 더 강했다. 여성 인터뷰 대상의 절반(3명)이 아이 낳는 걸 추천하지 않았다. 포기하고 희생해야 하는 게 너무 많다는 이유였다. 희생과 포기의 대상은 커리어와 개인적인 자유였는데, 여성의 경우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산부인과 전문의지만 육아를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이현지(38)씨는 “부부 의사는 한 명이 개원하고 한 명이 육아에 시간을 쏟는 결정을 많이 하는데, 개원하는 쪽은 여지없이 남성”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수가 되거나 개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파트타임으로 일할 생각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현지씨는 육아로 인해 주 2.5일 근무하다, 최근 3.5일로 근무일을 늘린 상태다.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조현정(35·파트타임 워킹맘)씨는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컸는데, 아이를 낳고 힘들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계약직이던 그는 임신하고 직장에서 “임신할 줄 알았으면 계약직으로 안 뽑았을 것”이란 말을 들어야 했다. 그는 결국 출산휴가(3개월)만 쓰고 복직했다. 남편이 한 달 육아휴직을 내며 지원했지만, 코로나19로 회사 인원을 감축하면서 지난해 12월 계약이 연장되지 않았다. 그는 “아이 낳는 건 절대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출산에 대해 여성의 부정적인 인식이 커진 건 사회 전반적인 흐름이긴 하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5년과 2018년 『가족과 출산 조사』를 비교해 보면, 결혼해도 자녀는 낳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기혼 여성이 크게 늘었다.  흥미로운 점은 여성 양육자 6명 중 출산을 추천한 2명이 모두 전업맘이란 사실이다. 두 사람 모두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대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워킹맘들이 주변에 출산을 추천하지 않은 점은 본인들이 커리어와 가정을 동시에 꾸려 나가면서 느꼈을 고충과 분투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남성이 경우 아이 낳는 걸 추천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5명의 인터뷰 대상 중 2명이 “추천하지도, 비추천하지도 않는다”는 뜻을 밝혔을 뿐이다. 그들이 중립 의견을 표한 건 육아를 하는 데 적잖은 시간과 돈을 써야 하는 만큼 각자가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라서다. 중립 의견을 표한 남성은 육아휴직을 하며 전담으로 아이를 돌본 경험이 있는 박태우(39)씨와 지난 6월부터 전업주부로 살고 있는 황준희(37)씨였다.     그렇다면 출산을 추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양육자들은 ‘아이가 주는 행복감’을 주된 이유로 꼽았다. 육아는 힘들지만,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딩크(Double Income No Kids, 맞벌이 무자녀)족으로 살 계획이었다가 아이를 낳은 윤미래(32·전업맘)씨는 결혼은 조건부 추천을 했지만(‘좋은 사람이 있으면 추천한다’), 아이를 낳는 건 적극적으로 권했다. “행복감이 너무 크다”는 이유였다. 그는 “저희 부부처럼 딩크족으로 살면서 출산을 고민하는 부부가 있다면, 너무 고민하지 말고 낳으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남지선(34·전업맘)씨 역시 “아이가 주는 행복감은 다른 데서 얻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다”며 출산을 권했다.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참고문헌] 『전국 출산력 및 가족보건복지 실태조사』, 이소영·김은정·박종서·변수정·오미애·이상림·이지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분담이 남편과 부인의 결혼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 유계숙·강수향·오아림·이주현, 한국가족자원경영학회지 2011.  『보통 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신한은행, 2022.

    2022.10.18 15:07

  •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유료 전용

    hello! Parents가 1980년대생 양육자를 들여다보는 방법으로 대규모 설문조사 대신 1:1 심층 인터뷰를 택했다. 대규모 설문조사를 통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통계나 설문조사 결과로 특정 세대를 설명하려는 접근은 이미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런 접근은 결과적으로 분석 대상을 타자화한다는 점도 고려했다.   인터뷰는 학계에서도 널리 쓰이는 질적 연구 방법의 하나다. 질적 연구는 대규모 설문이나 데이터를 활용한 양적 연구에서 다루기 힘든 질적 측면에 주목한 연구 방법이다. 연구 대상의 특징 중 수치화되지 않는 부분에 주목해, 인터뷰나 관찰 결과, 그림, 역사 기록 등을 활용해 연구하는 방법론으로, 사회학이나 심리학, 인류학 등에서 자주 사용된다. 기획 및 인터뷰 대상 선정 단계에서는 가족학 전문가인 이재림 서울대 생활과학대 교수의 조언을 받았다. 이재림 교수는 인터뷰 대상인 밀레니얼 양육자를 성별로 나눠 접근하라고 조언했다. 여성 양육자와 남성 양육자의 경험과 생활의 차이가 크다는 이유였다.     여성은 가사와 양육을 전업으로 하는지 아닌지를 기준으로 세분화했다. 워킹맘이냐 전업맘이냐에 따라 생활과 가치관이 크게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재림 교수는 특히 워킹맘을 풀타임 워킹맘과 파트타임 워킹맘으로 나눌 것을 권했다. 그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여성 양육자가 많다”며 “특히 전문직 여성 중에 이런 선택을 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의 조언에 따라 파트타임 워킹맘 인터뷰이를 섭외할 때는 전문직 여성을 포함했다.     남성의 경우 육아 관여도에 따라 그룹을 세분화했는데, 관여도를 보여주는 지표로 육아휴직을 채택했다. 육아휴직을 한 남성의 숫자가 2010년 이후 꾸준히 증가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남성 육아휴직자는 2017년 전체 육아휴직자의 10%를 넘어섰고, 지난해엔 그 비중이 26.3%까지 늘었다. 전체 육아휴직자 4명 중 1명은 남성인 셈이다.     육아휴직을 경험한 아빠와 그렇지 않은 아빠에 더해 전업주부 아빠도 인터뷰 대상에 포함했다. 사실 전업주부인 남성은 전체 전업주부의 2%에 불과하긴 하다. 그러나 전업맘의 대척점에 있는 전업주부 아빠의 이야기를 듣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숫자가 워낙 적은 만큼, 다른 그룹 인터뷰이는 각각 2명씩 섭외했지만, 전업주부 아빠는 1명을 섭외했다.   인터뷰 대상을 섭외하는 데엔 전문 리서치 기업인 오픈서베이의 도움을 받았다. 오픈서베이는 설문 및 인터뷰 패널이 총 100만 명으로, 활성 패널만 21만 명에 달한다. 성별과 연령, 거주지역, 소득 등이 다양해 원하는 대상을 정확하게 섭외할 수 있어 기획의 정밀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다만 밀레니얼 양육자의 평균적인 모습을 반영하고자 가구 소득이 너무 낮거나 너무 높은 그룹은 제외했다. 전문직 파트타임 워킹맘의 경우가 예외적으로 가구 소득이 높았지만, “양육을 위해 파트타임 형태로 일하는 전문직 여성이 많다”는 이재림 교수의 조언에 따라 인터뷰 대상에 포함했다. 이 교수는 “전문직의 경우 일반적인 회사원에 비해 재취업이 용이할 뿐 아니라 유연한 근무 형태가 가능해 양육 이슈에 파트타임으로 대응한다”고 설명했다.   지역적 차이가 변수로 작용하는 걸 막기 위해 인터뷰 대상의 거주지는 수도권으로 제한했다. 전업주부 아빠로 섭외된 인터뷰 대상자의 경우 서울에 거주하다 배우자의 직장 문제로 미국으로 이주한 상태였으나, 원거주지가 서울이었던 만큼 인터뷰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았다.   오픈서베이 측은 자체 인터뷰 대상 풀 가운데 출생연도와 양육 여부, 일하는 형태, 거주지 등을 기준으로 26명의 인터뷰 대상을 추천했으며, 이들의 인터뷰 참여 동기 등을 받아 11명을 추렸다.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2022.10.16 16:27

  •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유료 전용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초산 연령은 32.3세. 1988년생이 2년 전 양육자가 됐다.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1980년대생들이 본격 양육자 대열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육자는 어느 사회에서나 허리이자 주축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30대는 커리어 관점에선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도약하는 시기다. 산업 현장에서 양육자는 말 그대로 ‘허리’인 셈이다. 양육자는 자녀를 낳아 사회가 소멸하지 않도록 ‘재생산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들의 라이프스타일, 가치관은 자녀들이 사회 주축이 될 미래 한국의 모습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hello! Parents가 ‘양육자’에 주목하는 이유다.   80년대생의 양육은 과연 무엇이 다를까? 그리고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hello! Parents는 오늘부터 4주간에 걸쳐 본격 양육자 대열에 합류한 80년대생을 집중해서 들여다보고자 한다.      ■ 🧾 목차 「 1. 1980년대생은 누구인가 2.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①대세가 된 맞벌이    ②자녀에 대한 전방위적 책임감    ③높은 주거 안정성  [관련 기사] 어떻게 취재했나 3. ‘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순서 」   ━  1. 1980년대생은 누구인가   1980년대생들은 양육자가 되기 전에 어떻게 자라왔을까? 양육자로서의 면모를 들여다보기에 앞서 이들 세대를 이해하는 게 먼저다.   80년대생은 성장 과정에서 경제적 풍요의 과실을 본격적으로 맛본 한국의 첫 세대다. 1980년대 한국은 저금리·저유가·저달러로 대표되는 이른바 3저 호황을 기반으로 고성장했다. 이 시기에 한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9.7%에 육박한다. 매년 10% 안팎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한 것이다.   사실 경제성장이 본격화된 건 1960년대부터다. 주역은 80년대생의 부모인 베이비부머 세대다. 1980년대가 이전 시대와 달라진 건 경제적 풍요 위에서 고성장했다는 점이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20년간 만들어온 성장의 결실을 그 자녀 세대가 누린 셈이다. 실제로 1994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섰다.   그렇다고 80년대생이 풍족하게만 자란 건 아니다. 1997년 12월 닥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는 이들 세대에게 깊은 상흔을 남겼다. 1997년 6.2%였던 연간 경제성장률은 다음 해 -5.1%로 곤두박질쳤다. 같은 기간 실업률은 2.5%에서 7%로 치솟았다. 1980년대생은 부모 세대의 대량 실업으로 가정이 해체되는 경험을 했다.    이들 세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경제적으로 더 민감해졌다. 2008년 위기는 80년대생이 구직 활동을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충격이 컸다. 2008년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은 “1980년대생이 경제적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고 보고했다. 한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취업시장이 얼어붙자 두 번의 위기를 겪은 80년대생들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공모전에 응모하며 스펙 쌓기에 몰두했다. 안정적 일자리와 고소득을 좇아 고시촌으로, 전문대학원으로 향한 이들 역시 많았다. 자기계발 1세대는 이렇게 탄생했다.   ‘영끌’세대는 80년대생에 가장 최근 붙여진 별명이다. 80년대생이 결혼으로 주택시장에 진입한 2010년 중후반기 부동산 시장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 중간값(중위가격)은 10억9160만원. 20년 넘게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집을 사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주거 안정성과 자산 증식을 위해 80년대생은 빚을 끌어모아 집에 ‘몰빵’했다. 지난해 주택 구매자 중 3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40%에 육박했다.   이들 세대를 이전 세대와 가르는 또 다른 특징은 정보기술(IT) 능력이다. 80년대생은 집집마다 PC가 보급되던 시절 10대를 보냈다. PC게임, PC방 같은 컴퓨터 기반 문화를 어려서부터 향유할 수 있었고, 네이버와 옛 다음(현 카카오) 같은 IT기업과 함께 성장했다. PC를 기반으로 익힌 IT 능력은 2006년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열린 모바일 시대에 적응하는 자산이 됐다.    ━  2.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hello! Parents는 1980년대생 양육자 11명을 만나 이들의 삶을 세세히 들여다봤다. 지난 9월 13~23일 대면 또는 비대면으로 2시간 이상 심층 인터뷰했다. 이후 전화와 메일 등을 통해 추가 취재도 했다.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들은 다음과 같다.   인터뷰 범위가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에까지 미치는 만큼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hello! Parents가 만난 1980년대생 양육자들은 다음의 세 가지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다.   ①대세가 된 맞벌이  11명의 양육자 중 7명(63.6%)이 맞벌이였다. 아빠도 엄마도 일하는 가정이 절반이 넘었다. 이는 대한민국 다른 가정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배우자가 있는 가구의 46.3%가 맞벌이였는데, 30대의 경우 그 비율이 53.3%였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지난해 육아정책 여론조사에서도 61.7%가 맞벌이라고 응답했다. 이 조사의 경우 전체 대상자(3020명)의 93.5%가 30대와 40대였다.   30대에서 맞벌이 가구가 과반으로 늘어난 건 여성 경제활동 참여율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여성의 높아진 교육 수준과 무관하지 않다. 80년대생이 대학에 진학한 2000년 이후 고등학생의 성별 대학 진학률을 보면 남성과 여성 간 차이가 크지 않다. 2000년엔 여학생의 65.4%가, 2005년엔 80.8%가 대학에 진학했다. 같은 기간 남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각각 70.4%, 83.3%였다. 80년대생 여성은 남성과 대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고 노동시장에 진입한 것이다.    자녀의 탄생은 맞벌이 가구가 외벌이로 전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30대의 경우 무자녀 맞벌이 비중은 61.2%다. 자녀가 1명인 같은 연령대 맞벌이 비중은 46.7%로 더 낮다. 전업주부 통계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과정에서 커리어를 포기하는 건 대부분 여성이라는 걸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②자녀에 대한 경제적·정서적 책임감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양육자가 공통으로 보였던 특징은 바로 자녀에 대한 경제적 책임감이다. 이들은 “자녀들이 적성과 재능을 발견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고 싶다”며 “그러자면 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 같은 책임감은 80년대생 양육자 전반에 나타난다. 육아정책연구소의 육아정책 여론조사(2021)에 참여한 3000여 명의 양육자도 “부모가 되기 위해 경제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들은 경제적 준비에 대한 질문에 3.39점(4점 만점) 수준으로 동의했다. 부모됨과 관련된 다른 항목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30대 양육자가 경제적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었다(3.44점).   경제적 책임감은 맞벌이로 이어진다.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인터뷰 대상 역시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맞벌이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일하는 엄마’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과거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던 엄마가 일터로 나가면서, 일을 해 돈을 벌어오던 아빠는 양육자 정체성이 강화됐다. 엄마의 부재를 아빠가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이다.   흥미로운 점은 소득이 높은 가구일수록 경제적 책임감을 강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이 특징 역시 육아정책 여론조사에서 동일하게 나타났다. 해당 조사에서는 월평균 가구 소득이 600만원 이상인 가구가 자녀에 대한 경제적 책임에 대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동의했다.   80년대생 양육자는 정서적 책임감 역시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11명의 양육자는 아이를 정서적으로 잘 돌보기 위해 정신과 의사이자 육아 멘토로 꼽히는 오은영,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의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이었다. 자기계발 세대다운 면모다.   1980년대생 양육자의 정서적 책임감은 2018년 한국가족관계학회지에 실린 논문(『청년층 세대 비교로 살펴본 가족 건강성과 기능 요구도: 1차 및 2차 에코부머를 중심으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1979~82년생을 1차 에코부머 세대로 정의했는데, 이 세대는 가정의 기능 중 정서적인 기능을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연구진은 한국 사회가 압축적 근대화를 경험하면서, 어린 시절 가족의 정서적 기능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점을 특징으로 설명했다. 80년대생들은 자신들의 결핍을 거울삼아 자녀는 정서적으로 잘 발달할 수 있도록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③높은 주거 안정성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80년대생 양육자 중 7명이 자가를 보유하고 있었다. 63.6%에 달하는 비율이다. 이 중 한 명은 아파트 청약을 위해 보유 중이던 집을 팔았는데, 이 경우까지 포함하면 8명(72.7%)이 자가 보유 경험을 갖고 있었다. 일부는 내 집 마련을 위해 집값의 70%를 담보대출 받았다. ‘영끌 세대’다운 모습이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처럼 30대를 위한 청약제도를 적극 활용해 자가를 갖게 된 이들도 두 명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30대인 가구의 주택 소유율은 40.2%였다. 전년(2020년) 대비 25%가량 늘긴 했지만, 전 연령대 중에선 뒤에서 두 번째다. 이 수치와 비교하면, hello! Parents의 인터뷰 그룹의 주거 안정성은 상당히 높은 셈이다. 이 같은 특징이 나타난 건 인터뷰 대상 선정 기준 때문으로 보인다. hello! Parents는 중산층 양육자에 초점을 맞추고, 소득 하위 그룹과 최상위 그룹을 제외했다.   그럼에도 양육자 11명의 높은 자가 비율이 평균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보통 기혼자가 미혼보다 자산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단연 부동산이다. 올해 2월 신한은행이 발행한 ‘보통 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중간층(소득구간 3구간)인 3040 미혼의 경우 전체 자산이 2억9312만원이었던 데 반해 2030 유자녀(초등생 이하) 기혼자의 자산은 총 5억8024만원이었다. 2040 무자녀 기혼자의 총자산도 4억4793만원으로, 미혼인 경우보다 컸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이 중간 이상인 경우 부동산 자산 규모가 꾸준히 커졌는데, 결혼했거나 자녀가 있는 경우 상승 폭이 더 컸다. 결혼을 하고 특히 자녀가 생기면 주거 안정성에 대한 욕구가 커져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이가 많다. 이렇게 매수한 주택이 부동산 상승기를 거치며 자산을 키운 일등 공신이 된다. hello! Parents의 인터뷰 대상 중 64%가량이 자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 역시 유자녀 기혼자들이 집을 통해 자산을 키웠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관련 기사]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어떻게 취재했나    관련기사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80년대생 양육자 11명 누구 ② “집 사려거든 결혼해라” 80년대생 양육자들의 결론 ③ “아웃백? 콜! 에버랜드? 가자!”…그들이 일하는 세가지 이유 ④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본인·남편·부모 다 희생했다…어느 ‘야망의 워킹맘’ 하루 ⑥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준다” 결혼 후 비혼주의 된 워킹맘 ⑦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고, 내가 하면 그냥 애엄마냐” ⑧ “의사 부부면 남편이 개원한다” 파트타임 여의사의 직격 ⑨ “연애 땐 멀끔했으니 몰랐죠” 남편이 연인서 전우가 될 때 ⑩ 딩크족 카페 올린 글 하나에…89년생 딩크족, 전업맘 되다 ⑪ “‘아빠 껌딱지’ 들을때 행복” 그 육아대디 울리는 한마디 ⑫ “아빤 어디 갔어” 통곡한 아들…흙수저 외벌이 아빠의 이직 ⑬ “딸 태어난 다음날 청약 당첨” 어느 개발자 부부가 사는 법 ⑭ “빚 내서라도 3가지는 사라” 육아휴직 아빠의 필수 가전 ⑮ 육아휴직 중 해고당한 아빠 “결혼도 출산도 강력추천” 왜 ? “커리어 단절 걱정되지만…” 변호사 아빠, 전업주부 되다 ? “자녀 명문대 간판 의미 없다” 30대 부모가 가장 원하는 것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  ━  3. ‘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순서    오늘 첫 회가 나간 ‘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기획은 주 3회(월수금) 아래와 같은 순서로 발행될 예정이다.   ■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 1.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2.80년대생 양육자가 결혼을 추천하는 이유  3.우리가 일하는 세가지 이유   4.“결혼 만족하지만, 아이는 글쎄” 엄마의 속마음   1)풀타임 워킹맘       ①강민경 씨 : “다 잘하려고 하면 다 못한다. 내가 챙기는 건 딱 한 가지”     ②오소연 씨 : “나는 결혼 후 비혼주의자가 됐다”    2)파트타임 워킹맘         ①조현정 씨 : “남편이 하면 라떼파파, 내가 하면 애엄마”        ②이현지 씨 : “산부인과 전문의가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이유”     3)전업맘       ①남지선 씨 : “결혼 후 날 것의 남자를 만났다”      ②윤미래 씨 “딩크족이었던 우리 부부가 아이를 낳은 이유”    5.“나의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      1)육아휴직 경험 안 한 워킹대디      ①최창호 씨 : “벤츠 대신 경차 타도 아빠 된 건 후회 안 한다”      ②이우진 씨 : “프리랜서된 아내, 청약 특별당첨 고려안한 건 아니야”      2)육아휴직 경험한 워킹 대디        ①박태우 씨 : “8년 전 나 육휴 쓴다고 욕했던 남자들  다 육아휴직 했다”      ②장승준 씨 : “아이를 위해서 직장도 바꿨다”    3)전업대디      ①황준희 씨 : “난 일시적 주부, 커리어 공백과 싸우다”   6. “가사와 육아를 둘러싼 은은한 차별이 문제” 1980년대생이 만난 1980년대생 」  [참고문헌] 『행복한 육아문화 정착을 위한 KICCE 육아정책 여론조사(Ⅴ)』, 박원순·최윤경·김희수, 육아정책연구소, 2021. 『청년층 세대 비교로 살펴본 가족 건강성과 기능 요구도: 1차 및 2차 에코부머를 중심으로』, 강민지·유계숙, 한국가족관계학회지, 2018. 『보통 사람 금융생활 보고서』, 신한은행, 2022.

    2022.10.14 17:49

  • “수포자에게도 급이 있다, 한국이 미·영보다 뛰어나”

    “수포자에게도 급이 있다, 한국이 미·영보다 뛰어나” 유료 전용

    수학은 그 어떤 현상도 선명한 하나의 식이나 문장으로 만들어 냅니다. 그 식이나 문장이 현상의 본질이죠. 그래서 수학을 공부하면 직관이 발달해요.   지난달 13일 만난 김민형 영국 워릭대 수학과 교수는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수학을 공부하면 세상을 이해하는 직관이 발달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수학은 세상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한다. 그 결과는 명징한 식이나 문장으로 나오고, 그렇게 만들어진 식이나 문장은 원래 설명하려던 현상과 전혀 다른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본질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수학은 본질에 가 닿으려는 노력이고, 그래서 수학을 공부하면 직관이 발달한다는 얘기다.   지난달 13일 만난 김민형 영국 워릭대 수학과 교수는 “수학은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상을 가장 정확하고 섬세하게 설명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김민형 교수는 서울대 수학과를 처음으로 조기 졸업한 수재다.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영국 옥스포드대 수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하지만 그의 세상은 수학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수학을 역사나 삶과 엮어 풀어낸 『수학이 필요한 순간』 『역사를 품은 수학, 수학을 품은 역사』 같은 책을 냈고, 10대 아이들과 수학을 주제로 나눈 이야기를 묶어 『어서 오세요, 이야기 수학 클럽에』라는 책도 썼다. 그를 만나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와 공부법을 물었다.     ━  📢 수학 공부, 논리력과 직관력을 키운다     수학은 공식이다. 공식은 정말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하고 가장 섬세한 방법일까? 이 질문에 그는 수식 하나를 꺼내 들었다.    김민형 교수가 인터뷰 도중 식을 하나 썼다. 그리곤 “이 식이 바로 기타나 바이올린을 조율하는 원리를 설명해준다”고 했다. f는 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주파수, L는 줄의 길이, ρ는 밀도, T는 장력을 의미한다. 전민규 기자   복잡해 보이는 식을 쓰고 난 그는 뜬금없이 “기타를 조율해 보았느냐”고 물었다. “기타 끝에 달린 헤드머신을 조이고 풀면서 줄의 팽팽한 정도를 조정해 음을 조율하는데, 이 식이 바로 그걸 설명하는 식”이라고 그는 말했다.   공식을 좀 설명해 주세요. 기타 줄을 팽팽하게 하면 장력이 커져요. 그럼 주파수도 올라가죠. 음이 높아지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포인트는 루트(√)예요.   루트가 왜 포인트죠? 루트 덕분에 우리 같은 사람도 조율할 수 있거든요. 루트가 없었다면 현을 조이고 풀 때마다 음이 확확 바뀌었을 거예요. 정교한 기술을 가져야만 조율할 수 있었겠죠. 하지만 루트 덕분에 대충 해도 음을 맞출 수 있는 겁니다. 루트는 제곱근이니까요. 우리가 조이거나 푸는 힘이 제곱근만큼 줄어들잖아요.   굉장히 복잡해 보이는 식인데, 제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 있네요. 수학은 그런 겁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학문이죠. 그런데 그냥 대충 설명하지 않습니다. 아주 섬세하게 설명하죠. ‘줄의 팽팽한 정도는 음의 높낮이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하지 않고, ‘제곱근만큼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하는 식이에요.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다양한 현상의 선후 관계나 인과관계를 정확하고 섬세하게 설명하는 게 수학이라는 말씀이 이해가 갑니다.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좀 더 정확하고 섬세하게 파악하려다 보면 결국 수학으로 귀결됩니다. 물리학에도 수리물리학이, 경제학에도 수리경제학이, 생물학도 수리생물학이 있는 이유죠. 수학을 하다 보면 재밌는 게 하나 더 있어요.   그게 뭐죠? 수학은 어떤 현상을 만들어내는 근원적인 요인과 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잖아요. 본질을 포착해 내는 거죠. 그렇게 찾아낸 본질(수식)은 종종 전혀 달라 보이는 현상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일례로 빛을 묘사하는 방정식은 소리를 묘사합니다. 존 내시라는 수학자가 고안해낸 내시균형 공식도 있습니다. 상대의 전략을 고려해 자신의 전략을 세운다는 일종의 게임이론이죠. 이 이론은 부부 사이의 상태를 설명할 때도 많이 쓰여요. 저희 부부는 아내가 엄격한 양육 스타일을 가졌고, 저는 반대인데 이것도 내시균형으로 설명할 수 있어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님도 그렇고, 교수님도 그렇고 수학자인데 철학자 같은 느낌이 드는 건 그래서군요. 하하. 그렇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학자 입장에서 보면 철학자분들이 수학적 언어를 사용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현상을 설명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웃음)   어떤 현상이나 사물의 선후 관계나 인과관계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보면, 수학은 굉장히 논리적인 학문인 것 같아요. 수학은 아주 세밀한 수준까지 논리를 밀어붙이는 거잖아요. 이렇게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직관이 발달합니다. 문법을 정확하게 알면 더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것과 유사하죠. 수학을 공부한다는 건 논리와 직관을 더 뾰족하게 벼리는 것이죠.    ━  📢 4차 산업혁명 시대, 사방이 수학인 이유     김민형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사방이 수학”이라고 말했다. 수학을 잘하면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고, 선택의 폭도 넓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수학을 피해가면서 살 수는 있지만, 수학 없는 삶은 이미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저는 사회학을 전공하고 기자가 됐는데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일상이나 업무에서 수학을 써본 적이 없어요. 수학이 사방에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지금 쓰고 있는 노트북에도 수학이 엄청나게 필요해요. 컴퓨터라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데뿐 아니라 그 안에서 돌아가는 소프트웨어에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클릭하는 모든 행동이 다 데이터로 남잖아요. 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게 바로 수학입니다.   업계를 막론하고 데이터 사이언스가 뜨거운 건 맞아요. 마케팅만 해도 그래요. 요즘엔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율을 측정하고 전략을 세우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잖아요. 이것도 다 수학이죠.   마케팅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현상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그걸 데이터로 증명해 확인하는 식의 업무 방식이 자리 잡았어요. 기자만 해도, 과거엔 기사를 쓰면 끝이었는데 이제 기사가 어떻게 바이럴 되고 유통되는지 추적하거든요. 수학은 자동차 같은 겁니다. 자동차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잖아요. 수학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자동차의 구조를 알고 보닛을 열어 직접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적죠. 하지만 그런 걸 할 수 있다면 자동차에 관한 한 더 많은 기회, 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죠. 수학도 마찬가집니다.   수학을 잘 알면 더 좋은 기회를 더 많이 가질 수 있다? 요즘엔 어떤 기업이든 수학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채용합니다. 개발자, 회계사, 마케터 어떤 직종이건 수학적 사고와 능력이 필요하니까요. 특히 한 기업을 경영하는 대표는 각 부문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없어도 그걸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수학적 능력이 없어선 안 됩니다. ‘수학을 얼마만큼 공부할 것인가’는 개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에 따라 진로가 달라지고, 소득이 달라지고, 자유의 정도가 달라지는 시대가 이미 왔어요.   김민형 교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엔 사방이 수학”이라며 “수학을 얼마나 공부할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에 따라 기회의 질과 양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  📢 한국의 수포자가 미국이나 영국의 수포자보다 뛰어나다?!     수학은 중요하다. 누구나 안다. 하지만 수학을 공부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수학을 가르치는 건 말해 무엇하랴. 수학이 가장 먼저 전문가에게 맡기는 과목인 이유다. 도대체 수학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는 그에게 수학 공부법에 관해 물었다.   수학,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요? 영국에 계시니 두 나라의 학습 스타일을 비교해서 설명해 주세요. 영국과 한국은 정반대입니다. 한국은 개념을 설명해 주고 공식도 가르쳐주잖아요. 그리고 문제를 풀게 하죠. 반면에 영국은 그냥 문제를 줍니다. 문제를 혼자 힘으로 풀면서 개념에 접근해 가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 학생들이 굉장히 어려워해요. 교수가 하는 강의도 재미가 별로 없고요. (웃음)   영국은 왜 그렇게 수학을 가르치나요? 영국 수학은 상당히 실용적입니다. 뛰어난 수학자도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거기에 천착하죠.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개념만 배우고 공부합니다. 영국에서 저는 개념 설명을 많이 하는 교수에 속하죠.   어떤 학습법이 더 좋은 걸까요?   뭐가 더 좋다, 나쁘다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요?   한국은 필즈상이나 노벨상 수상자가 거의 없지만, 영국은 그렇지 않잖아요. 결과적으로 영국의 학습법이 더 뛰어난 것 아닐까요? 그런 상을 받은 사람의 숫자로 한 나라의 수학적 역량을 평가할 수 있을까요? 그건 마치 한 나라의 경제력을 평가하면서 억만장자가 얼마나 많은지 보는 것과 같아요. 억만장자가 많은 것보다 중산층이 두꺼운 게 더 좋은 상태잖아요.   그렇다면 이렇게 여쭐게요. 한국의 수학 능력은 중간층이 두꺼운 상태인가요? 그러니까 고르게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수포자’(수학 포기자)가 늘어난다고 다들 걱정하잖아요. 어느 나라나 아이들은 수학을 어려워합니다. 수포자도 어디든 있고요. 제 느낌엔 영국에 수포자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 수포자의 수학 실력이 영국 수포자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그건 미국과 비교해도 마찬가지고요.   왜 그렇죠?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 같아요. 공부해서 소위 명문대에 가려고 하잖아요, 누구나요.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은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빈부 격차 때문인 것도 같고요. 소수의 엘리트는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교육을 받고 조밀하고 촘촘하게 경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좋은 대학에 가려는 생각조차 안 하고, 하더라도 너무 뒤늦게 결심해서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어요. 그 점에서 한국은 확실히 경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학을 잘하는 것도 그래서이고요.   그렇다면 한국의 수학 교육은 나쁘지 않은 건가요? 더 잘해야 할 부분, 보완해야 할 부분이야 있겠죠. 저는 다만 너무 문제라고만 보지는 말았으면 합니다. 사실 교육을 놓고 서로 비판하고 갈등하는 것도 그만큼 관심이 많아서잖아요. 그 점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과 미국, 영국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가르친 김민형 교수는 “한국의 수학 교육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의 전반적인 수학 수준이 결코 낮지 않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한국의 수포자가 영국이나 미국의 수포자보다 뛰어나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  📢 그래도 연산은 필요하다       여기까지 들었지만, 여전히 수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잡혔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연산을 공부해야 하느냐고.   계산기도 있고, 컴퓨터도 있는데 연산을 반복해서 공부해야 할까요? 연산을 잘하는 게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건 단어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핸드폰만 열면 사전에 접근해 뜻을 검색해볼 수 있어요. 그런데도 단어를 아는 건 힘이 있습니다. 연산은 그런 겁니다. 핸드폰이, 계산기가, 컴퓨터가 계산해 주지만 여전히 계산할 줄 아는 건 힘이 되는 거죠. 기초체력 같은 겁니다.    왜 기초체력인가요? 살면서 숫자를 사방에서 만납니다. 감기 걸려 약을 지으러 가도 투약 의뢰서에 숫자가 나오고,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해도 숫자가 나오고요. 매일 마주하는 숫자에 대한 직관이 필요합니다. 그 수가 얼마나 큰지에 대한 직관이요. 코로나 19 확진자 숫자가 매일 공개되잖아요. 그걸 보면서 저 숫자가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 가늠할 수 있어야 코로나 19의 확산세를 파악할 수 있죠. 그 힘을 기르는 게 바로 연산입니다.   창의력 수학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스토리텔링 수학이라고도 불립니다. 실생활 장면을 포착해서 이야기 형태로 문제가 제시되고 그걸 풀어내면서 어떤 개념에 접근하는 식이에요. 이런 수학 공부법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문장으로 쓰인 걸 읽고 수식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은 상당한 사고를 필요로 합니다. 그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접근은 다들 어려워합니다. 또 처음엔 낯설어서 창의적인 사고를 끌어낼 수 있지만, 이것도 계속하다 보면 기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답 싫어하실 줄 알지만, 아이의 성향과 수준에 따라 판단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행학습을 하지 않는 아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수학이 대표적인 과목입니다. 한 학기, 1년 치를 선행하는 걸 넘어 2, 3년 뒤에 배워야 할 것들을 미리 학습하기도 하는데요. 어떻게 보시나요? 선행 학습이 필요한지, 효과적인지에 대해선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주의할 게 있어요. 선행하더라도 지금 하는 학교 공부를 소홀히 해선 절대 안 됩니다. 선행학습을 통해 한 번 배웠기 때문에 모르는 걸 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현행 학습을 심도 있게 하면서 진짜 아는 건지 확인하면서 가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공부법 일반에 대해 여쭈었는데요, 교수님의 공부법이 궁금합니다. 서울대 수학과 조기 졸업 1호, 미국 예일대 박사 학위, 한국인 최초 옥스퍼드대 교수 등 이력이 정말 화려하신데요. 교수님은 어떻게 공부하시는 건가요? 제가 잘하는 게 있다면 그건 지속한다는 겁니다. 그게 제 공부의 비결입니다. 저는 뭔가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이해가 안 가더라도 계속 보고 또 봅니다. 같은 질문을 몇 년씩 계속 고민한 적도 있어요.   작심삼일이라고 하잖아요. 아무리 결심해도 3일을 넘기 힘든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으셨나요?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강한 것 같아요. 오래 걸리더라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는 집착이 있거든요. 그래서 다시 돌아와 똑같은 문제를 마주하는 겁니다. 놀라운 건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서 습관이 된 것 같아요.   뭔가를 이해하려고 계속 탐구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시는 것 같아요. 요즘은 공부하기 정말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지적 자원이 사방에 있잖아요. 제가 소득 불평등에 대해 궁금하면 검색창을 열어 단어를 쳐서 넣기만 하면 됩니다. 링크를 통해 사고를 계속해서 확장할 수 있죠. 덕분에 학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인 지적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진 것 같아요. 취재 기자에게 각도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민형 교수. 그는 “세상을 어렴풋하게 아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그에겐 대학원과 대학에 재학 중인 장성한 두 아들이 있다. 첫째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물리학과 계산과학을 공부 중이고, 둘째는 경제학을 공부한다. 수학자 아버지를 둔 덕인지, 수학에서 멀리 가지 않았다. 어떻게 자녀를 교육했느냐고 묻자 그는 “가르쳤다기보다 같이 배웠다”고 말했다. 1500년대 말 프랑스가 피렌체를 공격했는데, 그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아빠도 잘 모르겠는데, 찾아보고 알려줄래?”라고 제안하는 식이다. 그럼 아이가 자신의 답을 들고 왔단다.   “세상을 어렴풋하게 파악하고 이해하는 건 어른이나 아이나 마찬가지잖아요. 그걸 인정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도 어른도 서로 배우며 나아갈 수 있습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1.수학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정확하고 섬세하게 이해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수학적 결과물인 공식은 본질에 접근한다. 수학을 공부하면 논리력과 직관력이 발달하는 이유다. 2.4차 산업혁명 시대엔 사방이 수학이다. 모든 게 디지털화 되면서 데이터라는 흔적이 남게 됐기 때문이다. 수학을 얼마나 공부할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 선택에 따라 기회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 3.필즈상이나 노벨상 수상자 숫자로 한 사회의 수학 능력을 평가하는 건 백만장자 숫자로 경제력을 가늠하는 것과 같다. 그런 수상자보다 보통 사람의 수학 실력이 일정 수준에 올라와 있는 게 중요하다. 그 점에서 한국 수학 교육은 나쁘지 않다.  」 관련기사 "구구단 외우면 바보 된다, 그려라" 깨봉수학 만든 조봉한 대표 "겨울방학 수학, 1학기 예습이면 충분" 초등생 딸 둔 수학교사 조언 “수포자·수학 1~2등급, 초1·2때가 가른다” 23년차 수학강사 팁 [오밥뉴스]

    2022.10.12 16:10

  • "책 한권 통째로 외울 수 있다"…기록전문가, 비밀의 메모장

    "책 한권 통째로 외울 수 있다"…기록전문가, 비밀의 메모장 유료 전용

    뭔가 열심히 적어 놓고 뿌듯해 하시나요? 그런 메모는 기억에 남질 않아요. 메모를 내 것으로 만들려면 되새기는 메모를 또 해야 합니다. 종국엔 메모를 안 보고 말할 수 있어야 진짜 메모를 한 거죠.     “어떻게 하면 기억에 남는 메모를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김 교수는 “메모의 본질은 요약”이라며 “궁극적인 목적은 기억을 넘어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점을 간과한다. “메모할 때 너무 많이 쓰고, 무턱대고 적고, 한번 쓰고 안 본다”고 그는 지적했다.    김익한 명지대 교수는 지난달 서울 마포구 자신의 사무실에서 “메모는 자신이 이해한 핵심을 키워드로 적어야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김 교수는 국내 국가기록관리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 받는 기록학자다. 1990년대 말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초안을 만들었고, 대통령기록관과 국사편찬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세월호가 침몰했을 땐 진도로 내려가 민간 차원에서 사고를 기록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20년 넘게 정부 공식 문서와 대형 사건 기록을 담당했던 그는 최근 개인의 삶을 기록하는 메모법을 설파하고 있다.   김 교수는 “기록학은 방대한 공공 문서를 체계적으로 수집·보존·관리해 정부를 효율적으로 이끌어 나가고자 만들어졌다”며 “메모를 통해 개인도 학습과 일, 일상에서 성장하는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메모에 정답은 없다   김 교수에 따르면, 메모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책, 수업, 대화, 경험 등 외부 정보를 이해하고 자기화해 적는 메모다. 또 다른 하나는 자기 내부에 있는 지식과 경험을 추출해 쓰는 메모가 있다. “이 두 메모가 시너지를 내며 빛을 발하는 과정이 공부”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메모가 지식의 연결과 확장을 가능하게 하고 창의적인 생각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메모 습관이 자리잡으면 집중력, 이해력, 암기력이 향상돼 공부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했다.     학창시절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필기도 잘 했던 것 같아요. 공부 잘 하는 필기법이 있나요?   교실에 두 학생이 있다고 해볼께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 하시는 말씀 놓칠 세라 공책에 코를 박고 열심히 필기하는 학생,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이다가 몇 마디 적는 학생 이렇게요. 둘 중 누가 더 공부를 잘할까요? 메모 능력만 본다면 후자가 공부를 잘 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필기를 많이 안 하는데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다고요? 수업 내용의 핵심을 짚어내서 자기 것으로 소화 했느냐를 메모로 따져보는 거죠.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쓴 아이는 받아 적느라 맥락을 놓치고 스스로 이해하는 시간이 부족했을 거에요. 그에 반해 키워드 위주로 적은 아이는 맥락을 따라가며 듣다가 자신에게 와 닿은 단어나 문구를 적은 거죠. 이 아이가 수업 내용을 더 생생히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커요. 나중에 응용 문제가 나오거나, 논술 시험을 봐도 잘 대응할 수 있습니다.     적게 적었는데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요?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요약해 놓으면, 너무 많은 걸 놓칠까 불안해합니다. 기억이 하나도 안 나면 어쩌나 하고요. 그런데 많이 적으면 오히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내가 인상 깊었던, 중요하다고 생각한 순간에 키워드만 적어야 전체 맥락이 같이 연상되거든요. 핵심만 간단히 적겠다고 생각하면 절로 맥락을 파악하려는 욕구도 커집니다.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게 되는 거죠.     얼마만큼 적으면 적게 적는 걸까요? 30쪽 정도 분량의 책을 기준으로 보면, A4용지 반장 이하로 적는 걸 권합니다. 인간의 뇌가 기억할 수 있는 최대 용량이 A4용지 2장 정도라고 해요.   김익한 교수는 "핵심만 키워드로 적어야 맥락을 파악하려는 욕구가 커지고 기억에도 잘 남는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요약 능력이 관건이겠네요.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한 키워드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요약에 정답은 없어요. 학생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종종 제가 메모한 걸 보여 달라고 합니다. 그럼 제가 말해요. “내 것이 정답이라는 보장이 없다”고요. 그 사람의 요약은 그것대로 정답이고, 내 요약은 내 것대로 정답입니다. 메모를 하는 사람이 당시 ‘아하!’ 하고 깨달은 것, 의미 있다고 느낀 부분을 단어나 문구로 적으면 됩니다. 그게 그 사람이 이해한 것이고, 자기화한 결과물입니다.     대화엔 화자의 의도, 시험에는 출제자의 의도가 분명 있을텐데요. 정보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메모 습관과 경험이 쌓이다 보면 화자의 의도에 근접하게 됩니다. 일정한 양이 쌓이게 되면 어느 순간 질적인 비약이 이뤄진다는 거죠. 양질 전환의 법칙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수업 시작하기 전에 교과서 수업 목표나 책 목차라도 훑어보라고 권합니다. 그러면 핵심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아요.그보다 제가 생각하는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어요. 아예 메모할 기회를 빼앗고 생각을 틀어막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메모할 기회를 빼앗고 있다는 얘긴가요? 학원이나 학교에서 아예 핵심 내용을 정리 요약한 프린트물을 나눠줍니다. 실제 누군가가 노트 필기 해놓은 것처럼 정리된 참고서도 많고요. 이걸 보고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무작정 보고 외우는 것 밖에 더 하겠습니까? 암기도 자기식 이해가 선행이 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생략되면 겉돌 수 밖에 없죠. ‘이거 시험에 그대로 나오니 지금부터 받아적어라’ 하는 선생님들도 계시죠. 그래선 안 됩니다. 선생님의 얘기를 10명의 학생이 듣고 있으면, 각기 다른 메모 10개가 나와야 해요. 각자 이해한 정도가 다 다를 테니까요.     요즘엔 인공지능(AI)이 회의나 대화 내용을 몇 문장으로 요약해주기도 하는데요.   AI가 정확하고 빠른 요약에선 압도적이죠. 예를 들면 판결문 요약 같은 건 AI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창의적일 필요가 없거든요. 아니, 어떤 면에선 창의적이지 않아야 하죠. 하지만 AI가 한 요약을 보고 양형과 관련된 법리적인 판단은 인간이 내리지 않습니까? 개인의 취향과 해석이 가미된 요약이나 나에게 의미있는 요약은 결코 AI가 대신할 수 없습니다.      ━  메모장, 하나로는 부족하다   김 교수는 “메모는 한번 쓰고 끝내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순간의 기억을 키워드로 붙잡아 두었다면, 이를 다시 가다듬어 자신만의 서사로 재정리하는 2차 메모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메모장도 두 종류를 쓰라고 조언했다. 먼저 항상 들고 다니면서 이것 저것 적을 수 있는 만능노트를 쓴다. 이후 잡다한 메모를 다시 적는 만능 카드를 추가로 쓰라는 것이다. 만능 카드로는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의 링이 달린 단어카드장을 추천했다. “두 종류의 메모장을 활용하면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우는 것도 가능하다”고 김 교수는 주장한다.    김익한 명지대 교수는 "두 종류의 메모장을 활용해 책 한 권을 외울 수 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메모로 책 내용을 통째로 암기할 수 있다고요? 책의 한 챕터를 읽고 있다면, 만능 노트에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키워드 위주로 적습니다. 한 챕터를 다 읽고 나면 그 키워드들끼리 연결하고 자신만의 논리 구조를 만들어서 만능 카드에 적습니다. 2차 메모를 하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챕터별로 카드가 한장씩 만들어지겠죠. 다섯 장의 챕터가 있다면 다섯장의 카드가 있을 텐데, 이걸 다시 쭉 보고 머릿속으로 책 내용을 상기하는 거죠. 학생들에게는 과목별로 이런 카드를 만드는 걸 추천해요.   단어 카드를 써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일단 한 손에 들어오는 카드를 쓰다 보면 적게 쓸 수 밖에 없어요. 공간 제약 때문에라도 축약을 하게 되는 거죠. 카드를 한장씩 완성해서 차곡차곡 쌓일 때 마다 지적 성취감도 느낄 수 있어요. 자신이 원하는 순서로 카드를 바꿔 끼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책에서는 1장부터 5장까지 순서대로 나와있지만,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5장을 처음으로 앞세울 수 있어요. 그리고 시간이 날 때 다시 되새기는 작업을 하기에도 편리하고요.     되새김이요? 메모한 내용을 반복적, 의식적으로 각인시키는 거죠. 이때 그림, 이미지로 기억하는 방법이 효과적입니다. 자기만의 약속을 만들어서 표식이나 색깔을 입혀보세요. 단어 카드를 복기하면서 형광펜이나 색연필로 다시 중요 부분을 칠하고 표시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동그라미나 핑크색은 더 중요한 키워드에, 노란색은 부연 설명할 때 쓰는 식으로요. 이렇게 하면 특정 단어를 떠올리면 카드 한 장이 머릿속에 이미지 한 장으로 떠올라요. 그 단어가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그 옆에는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도 기억이 납니다.       김익한 명지대 교수는 평소 만년필과 색연필을 사용해 메모를 한다. 김 교수는 "종이 위에 사각사각 쓰고, 부들부들 색칠하는 느낌이 좋아 메모하는 맛이 있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그렇게 메모하고 되새기면 시간이 많이 들지 않나요?  책 내용이나 문장을 베끼기 때문에 힘들고오래 걸리는 겁니다. 키워드 위주로 적으면 시간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아요. 몸에 익으면 A4용지 삼분의 일에서 반장 정도 적는 수준에서 메모할 수 있죠. 그 단계에 이르면 하루에 10~15분 정도만 투자하면 됩니다.     요즘엔 메모 앱도 다양하고, 디지털 메모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손 글씨 메모를 추천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디지털 메모는 휴대성이 좋아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휘리릭 적어두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어요. 하지만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손 글씨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생각하면서 내 안의 지식을 끌어내는 메모일수록 손으로 쓰길 권합니다. 손가락 움직이는 것보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내려가는 손 글씨가 뇌와 더 가깝거든요.      ━  메모를 말하다   김 교수가 메모 공부법에서 생각하기만큼 강조하는 게 있다. 말하기, 글쓰기 활동이다. 그는 15년간 대학원에서 ‘기록학 연구와 발표’ 수업을 진행했다. 학생들이 매주 논문 3편을 외워 한 편당 5분 내로 요약 발표하고, 그 내용을 대여섯장의 프레젠테이션용 문서로 정리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처음 한달간은 매우 힘들어 하지만, 두 달째부터 익숙해진다. 그리고 마참내 강의 후반부에는 요약 정리한 프레젠테이션용 문서를 보지 않고도 논문 내용을 말할 수 있게 된다. 공부한 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말하고 쓰는 과정이 필수라고 확신하는 이유다. 김 교수는 양육자들에게 “자녀와 함께 발표하는 시간을 가져라”고 권했다.     집에서 발표를 하라고요? 20년 전 제가 제 아이들에게 실제로 했던 방법입니다. 그 당시 저는 소위 학군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 지역에 살았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던 첫째가 일기장에 ‘학원에 불이 났으면 좋겠다’고 썼더라고요. 일주일에 영어 단어를 500개씩 외우게 하던 학원이었어요. 고민한 끝에 경기도 여주로 이사를 갔어요. 단독주택을 짓고 살았는데, 1층에 작은 방을 하나 만들었어요. 가족 강의실을 만든 거죠.     가족 강의실이요? 큰 화이트보드 칠판도 놓고, 의자와 책상도 넣어서 진짜 강의실처럼 꾸몄어요. 일요일 주말 연속극 끝나는 시간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서 발표를 했어요. 먼저 엄마나 아빠가 강의를 해야 해요. 주제는 교과 과목이 되도 좋고, 새로 배운 요리법이나 일상 습관, 인생에 관한 이야기 등 뭐든 좋아요. 아이에게 강의를 듣고 메모를 해보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나선 메모 내용을 발표해보라고 했어요. 아이가 듣고 이해한 걸 적어 보고 말해보는 기회를 주는 겁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되면 자신의 언어로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그쯤부터 시도해봐도 좋아요.   김익한 교수는 "자녀가 배우고 이해한 걸 메모하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했다. 김상선 기자   아이에게 강의를 한다고 하면 거부하지 않을까요? 양육자도 어색하고요.   공부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족만의 문화를 만든다고 생각해보세요. 부모가 공부라고 여기는 순간 아이가 먼저 귀신같이 알아차려요. 양육자가 먼저 강의, 발표 시간을 의식적으로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즐겨야합니다. 3일 전부터 무슨 강의를 하겠다고 안내하기도 하고요. 주의해야할 점은 아이가 무엇을 메모하고, 무엇을 발표하든 존중하고 칭찬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절대로 평가하려 들지 마세요. 아이의 생각을, 아이의 세계를 인정해줘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해석하고 배운 것을 자랑하고 싶어하거든요. 발표가 끝나면 서로 “너는 그렇게 이해했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겁니다.     강의나 발표를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막막할 것 같아요.   그럴 때 저는 무엇이든 세 가지로 말해보라고 추천해요. ‘333의 법칙’인데, 한 항목에 대해 세 가지로 가지치기를 해 나가는 겁니다. 어떤 주제에 대해 정리해보라고 하면, 한 두 개는 너무 적고 네 다섯 개는 좀 많은 느낌이잖아요. 셋은 안정적이기도 하고, 기억도 잘 납니다. 생각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효과도 있어요. 보통 한 두 가지는 떠오르게 마련이거든요. 나머지 한 가지를 채우기 위해서 깊은 곳에 있는 생각까지 끌어올려야만 하죠.     그렇게 발표를 하면 어떤 효과가 있나요? 유대인들은 경전을 말하면서 공부한다고 해요. 경전을 공부하는 도서관(예시바)은 엄청 시끄러워요. 자기가 읽고 해석한 것에 대해서 옆 사람하고 계속 토론하면서 공부하는 겁니다. 이런 습관과 문화가 자리잡고 있으니 똑똑하고 창조적인 민족이 될 수 있었죠. 발표하기의 또 다른 효과는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게 된다는 겁니다. 소위 메타인지가 가능해지는 거죠.     발표를 하면 메타인지가 가능해진다고요? 메모와 말하기는 자신의 능력이 바깥으로, 객관적으로 표출되는 것이거든요. 메모를 하지 못하고, 또 말하지 못하면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죠. 동시에 모르는 걸 알려고 하는 욕구도 생겨납니다. 공부하려는 동기가 끊임없이 생겨나는 겁니다.     김 교수가 인터뷰 내내 강조한 원칙이 있다. “메모의 중심에 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나의 해석과 이해가 없는 메모는 의미가 없다”며 “메모를 하는 주체가 분명히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가 주장하는 메모 공부법의 목적을 이해하면 그 원칙이 이해가 간다.      공부는 지식을 넘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포함해요. 그래야 비로소 자기다운 삶을 선택해서 살 수 있으니까요. 메모를 하는 이유도 자기다운 삶을 잘 선택하기 위해섭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짧게 적으세요. 많이 쓰면 오히려 기억에 안 남아요. 나에게 인상 깊고 중요한 걸 키워드로 적으세요. 내가 이해한 핵심이 더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메모 두 번 하세요. 이것 저것 만능 노트에 적고, 이걸 재정리해 만능카드(단어카드장)에 다시 메모하세요. 자주 되새기면 책 한 권도 외울 수 있어요.  ·메모한 걸 말해보세요. 메모 안 보고도 말할 수 있어야 진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내가 뭘 모르는지도 깨달을 수 있어요. 」 관련기사 '광클교수'에 물었다…100세 시대 '혼공'으로 성장하기, 조건 셋 "자녀들 선행학습은 시대착오" 서울대 교수가 권한 공부법이송원 기자 lee.songwon@joongang.co.kr

    2022.10.03 06:00

  • "더하라고요? 덜 배워야 합니다" 큰별쌤 최태성의 역사 공부법

    "더하라고요? 덜 배워야 합니다" 큰별쌤 최태성의 역사 공부법 유료 전용

    역사는 옛사람의 흔적입니다. 수천 년 동안 쌓인 흔적과 현재 나의 삶을 연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역사에 관심이 생기고, 공부할 이유가 생깁니다    지난 1일 만난 최태성 한국사 강사는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놨다. 나와는 동떨어진 시대의 먼 이야기 같지만, 잘 들여다보면 역사도 쓸모가 있다는 얘기다.   최태성 한국사 강사는 "역사를 재미있게 배우려면 내 삶과 연결시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큰별쌤’. 한국사에 관심 좀 있다면 한 번은 들어봤을 별명이다. 별명의 주인공은 최태성(51) 한국사 강사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였던 그는 2001년 EBS 수능 강의를 하며 ‘스타 강사’로 이름을 알렸다. 그의 강의는 입시생만 듣는 게 아니다. 한국사검정능력시험을 준비하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한국사를 다시 들여다보려는 중장년층까지 그의 강의를 찾는다.     그에게는 “역사는 전문가의 연구 영역이 아닌, 대중의 일상에 스며들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 철학이 있다. 2017년 교단을 떠나 TV와 온오프라인 강의로 활동 영역을 넓힌 이유다. 역사의 대중화를 꿈꾸는 그는 모든 강의를 무료로 공개한다. 유튜브 무료 강의 채널만 3개(최태성 1·2TV, 역사의 쓸모i)다. 최근에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인문학 도서 『어린이를 위한 역사의 쓸모』도 출간했다. 역사와 일상을 연결하는 실천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그는 “역사 공부는 옛사람의 경험과 내 삶을 연결하는 훈련”이라며 “쓸모는 역사 속 사람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고 했다.     ‘역사 속에서 사람을 만난다’, 무슨 의미일까요?     ‘사람’은 역사에서만 다룰 수 있는 주제입니다. 문학 속 인물과는 달라요. 그건 허구지만, 역사 속 사람은 실존 인물이죠. 역사는 한 시대를 이끈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돼요. 예를 들면 고려의 호족, 신라의 귀족,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 등이 있죠. 이들이 일군 업적과 사건을 연관 지어 배우는 게 역사입니다. 실존 인물을 중심에 두고 서사를 풀어가는 학문은 역사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역사를 뒷담화라고 부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사람에 대한 얘기니까요. 뒷담화 할 땐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재밌잖아요. 사람 이야기하는 역사가 그래서 재밌는 겁니다.   시대가 변했습니다. 굳이 옛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을까요? 과거 사람들의 경험이 곧 삶의 지혜니까요. 경험을 통해 배운다고 하죠. 옛사람들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배우는 겁니다. 역사를 배우면 시대가 변해도 사람 사는 방식은 다 똑같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들도 위기를 겪고, 고민하고, 선택하며 그 시대를 보냈거든요. 이순신 장군이라고 달랐을까요? 그도 어떻게 하면 이기나 고민했고, 상사와 갈등도 겪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완벽주의를 택합니다. 그 선택이 23전 23승이란 결과를 만들었고요. 우리는 그를 통해 지금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길을 가야 할지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게 바로 역사의 쓸모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이고요.     아이들이 역사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다는 게 쉽지 않을 텐데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방법을 알려줘야 합니다. 역사 속 사람의 경험과 내 삶을 연결하는 방법은 질문입니다.   질문이요?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나요? 역사 속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갑신정변의 주역인 김옥균·서재필에게 ‘명문가 양반 출신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먹고 살았을 텐데, 왜 그런 선택을 했나요?’라고 물을 수 있죠. 반대로 역사 속 사람에게 ‘당신이라면 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건가요?’라고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팩트를 근거로 답을 상상해 봅니다. 이렇게 질문을 하다 보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나의 나침반이 되는 겁니다.   선생님도 질문을 던지시나요? 어떤 질문인지 궁금해요.   저도 역사 속 사람들에게 질문합니다. 수십 년을 공부했지만, 공부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든요.(웃음) 제 질문은 하나입니다.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최태성 강사는 역사를 배우는 방법의 하나로 독서를 추천했다. 단 정보가 빽빽한 학습만화보다 여백이 있는 책을 고르라고 했다. 그는 "여백이 있어야 상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상조 기자   너무 철학적인데요? 답을 찾으셨나요?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표현을 쓰는데요, 반대로 생각하면 우리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어요. 같은 말이지만 후자로 생각하면 하루가 더 소중합니다.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죠. 저는 그 답을 ‘관계’에서 찾았습니다. 결국 삶이란 함께 사는 것이더군요.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게 제 인생의 화두입니다. 저는 아이들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직 와 닿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생각 거리를 줘야 합니다.   생각 거리라…,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록되지 않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겁니다. 상당수 아이가 고구려 하면 광개토 태왕을 떠올립니다. 그래서 권력자의 입장에서만 상황을 바라보죠. 시각의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이럴 땐 “광개토 태왕이 정복한 지역의 시점에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할 수 있습니다. 정복 당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심정을 상상해보고, ‘그들이 광개토 태왕에게 편지를 쓴다면?’ 같은 활동도 할 수 있어요. 생각을 확장하는 겁니다. 이를 통해 ‘누군가의 성공 뒤엔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역사적 사고도 중요합니다.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해 판단하는 걸 말합니다. 역사적 사고를 할 줄 알면 신중해집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법을 익히는 겁니다.    ━  “덜 배우고 더 생각하자”   한 나라의 흥망성쇠, 승자와 패자의 차이…. 그의 말처럼 역사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가득하다. 그런데 이 호기심을 꺾는 게 있다. 바로, ‘암기’다. 최태성 강사는 “역사의 단편적인 사실을 나열하고, 외우는 데 몰두하는 공부 방식이 역사를 고통스러운 과목으로 만들고 있다”며 “역사가 쓸모 있어지려면 덜 배우고 더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5000년 역사 다 보려면 부지런히 배워야 할 거 같은데요.     접근 방식을 바꾸자는 겁니다. 처음부터 한 번에 다 보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느슨히 훑어보는 거로 시작해야 합니다. 역사는 흐름이 중요합니다. 시대를 구분하고, 각 시대의 주요 인물과 사건을 연결할 줄 알면 충분합니다. 그래서 첫 수업 때 구석기부터 배우는 거 추천하지 않습니다.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삼국시대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의 뼈대부터 설명해야 합니다.    유물의 이름, 연표 보지 말라는 걸까요?     완벽히 외우려고 애쓰지 말라는 겁니다. 적어도 초등학생 때 만큼은요. 어차피 초등학교 때 배운 내용, 중학교 가서 또 배우고, 고등학교에서 또 배웁니다. 초등학생 때 외운 유물 이름 중학생 때 다시 외웁니다. 중요한 건 유물과 시대를 연결하는 거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의미’를 아는 겁니다.   의미를 안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의 속뜻을 찾아보는 겁니다. 이건 정답이 없습니다. 찬찬히 생각할 시간을 주면 됩니다. 다만 역사 곳곳에 스며있는 ‘연대와 협력’의 정신은 반드시 찾아보고, 그 의미를 느껴봤으면 합니다.     연대와 협력이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 이념인 ‘홍익인간’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데요. 아마 홍익인간 하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가 자동으로 떠오르실 겁니다. 입에 붙을 때까지 반복해서 외우거든요. 여기서 제가 돌발 질문 하나 할게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가 무슨 뜻일까요?   최태성 강사는 "역사에는 지금 삶의 문제에 대한 해법이 담겨 있다"며 "한 번 뿐인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가슴에 품고 역사를 배워보라고 조언했다. 우상조 기자 선뜻 답이 안 나오는데요.     답부터 말하자면 ‘다른 사람을 도와 함께 잘 살아가겠다’는 국가의 소망입니다. 이게 바로 ‘연대와 협력’입니다. 민족정신의 뿌리죠. 그런데 우리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를 속사포로 외우기만 했지 잠시 멈춰서 의미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그러니 역사의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못 찾고, 감흥도 없는 겁니다. 사실 홍익인간 정신은 우리나라가 힘들 때마다 구심적 역할을 했어요. 그래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의 맥락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쉽게 깨달을 수 있어요.   감이 잘 안 와요. 구체적으로 소개해주세요.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중 〈나의 소원〉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이라는 우리 국조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김구 선생은 우리나라, 나아가 전 세계의 평화를 위하는 마음으로 독립운동에 임했습니다. 고조선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과 맥을 같이 하는 거죠. 저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 때도 그 정신이 발휘됐다고 봅니다. 확산 초기 우리에겐 한 사람의 열 걸음이 아닌 열 사람의 한 걸음이 필요했어요. 이때 K방역이 빛났죠. 저는 그 뿌리에 연대와 협력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 모두 역사 속에서 홍익인간 정신을 배웠다는 걸 방증한 거죠. 그런데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점점 그 정신이 사라져가고 있거든요. 개인의 이득만 챙기려는 이기적 행동이 곳곳에서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역사를 통해 연대와 협력을 일깨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네요.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내 시간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세요.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가 과연 정당한 건가 생각해 보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최초의 패배자와 희생자를 만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초등학교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어요. 과거엔 국민학교였고, 그 이름은 황국신민학교의 약자였어요. 황제의 나라, 신하인 백성을 줄여서 국민이라고 부른 거죠. 이 뜻을 알면 초등학교에 대한 느낌이 달라집니다. 그 이름을 얻기까지 국권을 잃고 억지로 신민학교를 다녀야 했던 이들의 설움,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깨닫게 되거든요.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겠다는 마음까지 생기면 더 좋고요. 생각을 통해 의미를 찾으라는 게 이런 겁니다.      ━  “생각의 성장을 믿어라”     최태성 강사가 말하는 역사의 쓸모 세 번째는 생각의 성장이다. 그는 역사의 교육적 가치는 상상할 기회에 있다고 말한다.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상상하다 보면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생각도 성장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아이의 생각이 성장하고 있다는 걸 믿어야 한다”며 “상상하고, 생각하는 힘을 빼앗아 버리면 숫자만 쪼아 먹는 닭장 속 독수리로 자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닭장 속 독수리요? 내 생각을 펼칠 힘도 의욕도 없이 그저 성적에만 목매는 모습을 비유한 겁니다. 이 시대 아이들은 상처가 많습니다. 입시 위주의 경쟁 속에서 점수로만 존재를 입증해야 하거든요. 1등만 인정받으니 싸워야 해요. 마음 급한 양육자들은 더 빨리, 더 많이 배우라고 채근하다 못해 학습 주도권을 빼앗습니다. 지친 아이들은 성장의 동기를 잃고, 수동적이 되어 버려요. 그래서 전 이 시대 청년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청년들의 상처가 보이시나요? 젊은이들이 외부로부터 치유와 힐링을 얻으려고 하잖아요.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데, 자꾸 의지하고 기대려고 합니다. 역사에서 청년은 치유와 힐링을 주는 쪽이었어요. 일제강점기 3·1운동, 6·10 만세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모두 학생이 자발적으로 일으켰어요. 1980년대 민주화운동도 10대와 20대가 중심이었습니다. 사회 문제를 고민하고, 변화와 혁신을 꿈꾸는, 비상하는 독수리였죠. 다시 아이들의 성장 동력을 깨워야 합니다. 고민하고,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힘을 길러줘야 해요. 이때 역사를 도구로 이용하세요.   최태성 강사의 역사 공부 철학은 "덜 배우고, 더 생각하자"다. 그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의미를 음미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상조 기자   어떻게요? 역사 속 인물과 사건에 대한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갈 기회를 주세요. 저는 역사책과 박물관을 자주 활용하라고 합니다. 여백이 많거든요. 상상할 기회가 많죠. 독서는 글자를 보고, 박물관은 유물을 보고 그 시대를 떠올립니다. 이때는 정답을 강요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학습만화를 지양합니다. 정보가 너무 많아 상상할 여지가 없거든요. 박물관에서도 정보를 알려주지 마세요. 대신 물어보세요. “이건 누가 만들었을까?”, “왜 만들었을까” 하고요.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그냥 놔두세요. 스쳐 지나가며 다 봅니다. 그때의 느낌을 기억하는 거로 충분합니다. 그 생각과 느낌을 양육자와 주고받으면 더 좋고요.   그렇게 하다 잘못된 생각이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굳어져 버릴까 봐 걱정돼요. 편견이 생기는 것도 역사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편견도 생각이고, 생각은 변합니다. 나와 다른 사람, 다른 생각을 접하며 신념을 깰 필요도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을 바로잡는 법을 배우고, 가치관도 형성하는 겁니다. 틀려도 됩니다. 역사적 사실은 때가 되면 다 알게 되고, 깨우칩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역사 속 경험을 발판으로 유연하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아이와 역사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최태성 강사는 인터뷰 말미에 두 가지를 당부했다. 하나는 “아이의 말을 묵살하지 말라”, 두 번째는 “많이 들어주라”는 것이다. 최고가 아니어도, 생각이 달라도 괜찮다는 걸 느끼게 하라는 얘기다. 그래야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만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를 남기는 사람으로 성장한다고 했다.     조선시대 말, 사람들은 최고의 인재 한 명이 나라를 구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이완용을 국가 세금으로 가르쳐 엘리트로 키운 이유였죠. 하지만 이완용은 나라를 팔아버립니다. 이완용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이런 선택을 했나요? 그리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뼈 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역사 속 사람을 만나라” 역사에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해답이 있습니다. 역사 속 사람을 만나 질문을 던져보세요. “왜 그런 선택을 했는가”. 그들의 대답을 상상하다보면 “어떻게 살 것인가” 길이 보입니다.  ·“덜 배우고 더 생각하자” 역사는 흐름이 중요합니다. 고조선의 건국 이념이 김구의 독립운동, 코로나 시대 K방역으로 이어지는 맥락을 이해해보세요. ‘연대와 협력’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생각의 성장을 믿어라” 치열한 입시 경쟁에 이 시대 청년은 성장 동력을 잃었습니다. 빛나는 독수리가 되려면 성장력을 키워야 합니다. 역사를 이용하세요. 깨지고, 고쳐가며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주세요.  」 관련기사 사실도 아닌 신화, 왜 읽혀야 하나…네 아이 키운 서울대 교수 답 피아노 학원 전에 ‘이 능력’부터…클래식 음악 쉽게 듣는 3단계 접근법 "세균부터 우주, 괴물에서 AI까지" 소설 쓰는 과학자, 상상력의 원천은?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2022.09.19 06:00

  • "일단 해!" 39살에 삼성 최연소 임원, 그녀가 돌연 사표 쓴 이유

    "일단 해!" 39살에 삼성 최연소 임원, 그녀가 돌연 사표 쓴 이유 유료 전용

    제가 두 아이에게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일단 해! 아님 말고! 그래도 아무 일도 안 생기거든!’ 제 인생을 관통하는 말이에요.   지난달 31일 만난 김지영 대표는 “삶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달라”는 요청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김 대표에게 그런 질문한 데엔 이유가 있죠. 그는 39세에 삼성물산(옛 제일모직) 최연소 여성 임원이 된, 이를테면 입지전적인 여성입니다. 그런데 7년 후 유기농 생리대를 만드는 작은 스타트업 라엘에 합류하죠. 거기서 기껏 회사를 키워놓고는 3년 뒤 또 회사를 나옵니다. 그러더니 스타트업을 차려버렸죠. 과학학습 키트 구독 서비스 똑똑하마를 만든 이큅입니다.   일에 올인하는 화려한 싱글일 것 같지만, 그는 워킹맘입니다. 그것도 쌍둥이 아들(8세)을 키우는 워킹맘이요. 여성 창업자도 드문 스타트업 판에서, 기혼 유자녀 여성 창업자라니. 그는 왜 삼성 임원 자리를 버리고 고생을 자처한 걸까요? ‘이모님’ 구하기도 힘들다는 아들 쌍둥이는 대체 누가 키울까요? 김 대표야 말로 다양한 양육 서사를 발굴하는 미션을 가진 hello! Parents가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양육자죠.   김지영 이큅 대표는 입지전적인 여성이다. 하버드 MBA 출신으로 삼성물산(옛 제일모직) 최연소 여성 임원을 지냈다. 그런 그의 선택은 스타트업이었다. '일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서다. 김현동 기자  ━  Part1.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   김지영 대표가 “일단 해!”라고 아이들에게 말하는 건 MBA(경영전문대학원) 경험 때문입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삼성물산에 들어갑니다. 그에게 주어진 업무는 마케팅이었습니다. 4년을 일했죠. 재밌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아쉬웠죠. 더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하버드 MBA로 떠나죠.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 학기가 다 지나가는데, 발표 한 번을 안 한 거예요. 당연한 거라서, 다 아는 거라서 말을 안했더니 그렇게 돼버렸죠. 큰 맘 먹고 손을 들까 말까 하는데, 제가 하려던 말을 딴 애가 해버리는 거예요. 그때 결심했어요. 그냥 말하자! 아니면 말지, 뭐! 아니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더라고요. 오히려 말 안하면 바보인 줄 알고 말이죠.   사실 그는 한국에선 그다지 ‘다소곳한 여성’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가자 너무 전형적인 ‘아시아 여성’이 되어 있었죠.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치길 반복한 끝에 깨달았습니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고요.   그 정신은 그의 커리어를 관통합니다. MBA를 마친 후 그는 보스톤컨설팅(컨설턴트)을 거쳐 메릴린치(애널리스트)에 갑니다. 그 뒤 야후코리아에서 전략 및 인수합병(M&A) 담당 임원을 했어요. 그리고 마침 삼성물산(옛 제일모직)에서 합류 제안을 받고 이직하죠. 글로벌 회사의 한국 법인은 결정권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게 아쉽던 차에 삼성이 손을 내민 거죠. 삼성물산에선 여성으로 처음으로 남성복 사업부문장을 맡아 적자던 사업부를 흑자로 돌려놓습니다. 덕분에 최연소 여성 임원이 됐고요. 그렇게 잘 나가던 어느날, 돌연 사표를 내고 이름도 낯선 스타트업에 합류합니다. 유기농 생리대를 만드는 라엘로요.   삼성은 합리적이고, 체계적이고, 발전하는 회사에요. 많이 배웠죠. 그런데 제 미래는 상상이 가더라고요. 저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일하고 싶거든요. 그건 못하죠, 삼성에선. 그래서 스타트업으로 갔어요.   말은 쉽게 하지만,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을 겁니다. 크지 않은 것도 막상 내려놓으려면 커보이는 게 인지상정이니까요. 하물며 그가 내려놓으려던 건 삼성의 임원 자리였습니다. 그가 내년 재계약을 걱정하는 임원도 아니었고 말이죠. 하지만 그는 늘 그랬듯, 안 하고 후회하느니 하고 후회하기로 합니다.   결혼도 그랬습니다. 사실 그는 MBA 시절부터 결혼하고 싶었다고 해요. 팍팍한 외국 생활에 지쳐 안정된 가정을 갖고 싶었던 겁니다. 그런데 MBA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하고 싶진 않았대요. 거기서 만난 소위 ‘잘나가는’ 남자들은 배우자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이죠. 귀국 후 일을 하다 보니 세상이 말하는 ‘혼기’를 놓쳤지만, 그는 늘 안정된 가정을 바랐습니다.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자 6개월만에 속전속결로 결혼할 수 있었던 건 그래섭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니면 그때 가서 해결하고, 일단 해보자’고 생각했죠.   요즘엔 출산도 기피하잖아요. 육아, 힘들죠. 저는 뒤늦게 시작해 더 힘들지만, 그래도 가장 잘 한 일이 아이를 낳은 거예요. 출산하지 않았다면 똑똑하마를 창업하지도 않았겠죠. 모든 일엔 장점과 단점, 기회와 리스크가 있어요. 그래서 전 뭐든 하자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김지영 대표는 만든 건 하버드 MBA 경험이다. 거기서 그는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모른다"는 걸 배웠고, "일단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김현동 기자  ━  Part2. 강점을 레버리지 삼아 약점을 메운다   김지영 대표는 “일단 해보는 것 말곤 별 게 없었다”고 말했지만, 그의 커리어를 들여다 보면 늘 강점을 레버리지 삼아 약점을 메우는 선택을 해왔습니다.   그가 첫 직장으로 컨설팅사를 선택한 건 MBA 출신이라는 강점을 레버리지 삼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하면서 내내 숫자에 약한 게 아쉬웠습니다. 메릴린치에서 영입 제안을 받았을 때, 장고하지 않은 건 그래서죠. 컨설턴트의 분석력을 레버리지 삼아 애널리스트가 되어 재무 감각을 익혔습니다. 애널리스트를 해보니 시장 상황과 기업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걸 넘어 직접 운영해보고 싶어졌대요. 사원·대리였지만, 삼성물산에서 마케터로 프로젝트를 굴리던 때가 자꾸 생각도 나고요. 야후로 옮긴 이유입니다. 야후에서 그는 전략과 인수합병(M&A)을 담당했는데, 지사의 한계가 뚜렷했죠. 삼성에서 불렀을 때 주저하지 않은 건 바로 그 경험 때문입니다.   MBA에 간 것도, 적지 않게 이직을 감행한 것도 사실은 제 약점이 뭔지 너무 잘 알겠어서에요. 그 자리에 가면 약점을 메울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저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일하고 싶으니까, 길게 보고 옮긴 거죠.   누구나 자신의 약점은 그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래서 어떤 기회와 왔을 때 주저하죠. “내가 저 자리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는 겁니다. 그럴 때 김지영 대표는 “잘하는 걸 하면서 약점을 메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그가 하버드 MBA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살면서 깨달은 ‘일단 하자’ 정신과도 닿아 있죠. 남들도 다 아는 거라서, 별 거 아니라서 조용히 있으면, 어느 누구도 내 역량을 알아챌 수 없으니까요. 내가 아는 그 걸로 누군가는 칭찬 받고 인정 받고 말입니다.   김지영 대표의 경험은 메타의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셰릴 샌드버그의 경험과도 닮았습니다. 샌드버그는 여성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린인(lean in, 달려들다)’하지 않고 ‘린백(lean back, 물러서다)’한다고 말합니다.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요. 샌드버그가 『린인』이란 이름의 책을 쓴 이유가 바로 거기 있죠. 그래선 결코 기회를 잡을 수 없으니까요.   김지영 대표는 여러 회사를 거치며 일했다. 그의 이직 노하우는 "잘하는 걸 레버리지 삼고, 이직해서 약점을 메우는 것"이었다. 김현동 기자  ━  Part3.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삼성물산(옛 제일모직)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남성복 사업부문장 시절입니다. 그는 남성복 사업부문장이 된 삼성물산 최초의 여성이었죠. “옷도 못 입어보는데 어떻게 남성복 사업을 이끄냐”는 얘길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사업부문장이 될 수 있었던 건 상황이 안좋아서죠. 당시 남성복 사업부는 매출이 하락 중이었거든요. 김지영 대표 역시 유리절벽(glass cliff)에 섰던 겁니다. 유리절벽은 조직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여성을 대표나 리더로 세워 책임을 지게 하는 걸 뜻하는 말입니다. 유리절벽에 선 그가 제안한 건 로드샵 진출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양복을 안 입기 시작했어요. 온라인에서 사는 식의 구매 패턴도 생겨났고요. 백화점에만 목을 메고 있어선 안된다고 판단했죠. 고객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드샵 판매자와 소비자에겐 “백화점 브랜드가 나왔다”고 마케팅했고, 백화점 상품기획자(MD)와 소비자에겐 “라인업이 다르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두 매장에 들어가는 라인을 차별화했고요. “브랜드 가치를 깎아 먹는 미친 짓”이라는 반발이 거셌지만, 그가 맞았습니다. 남성복 사업부의 매출은 반등했고, 덕분에 그는 최연소 여성 임원 자리를 꿰찼죠.   다 맞는 말이에요. 전 남성복은 못 입죠. 남성복 부문에서 잔뼈 굵은 남자 MD들이랑 ‘형 동생’ 하는 것도 못하고요. 못하는 건 포기했어요. 대신 전 제가 할 수 있는 걸 했어요. 데이터를 보고, 현장에 가고, 그걸 가지고 사람들을 설득했죠.   로드샵을 내기로 한 것도 로드샵 유통 시장의 가능성이 숫자(성장률)로 증명됐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성복 로드샵 시장의 1등 업체가 하는 점주 설명회마다 쫒아다니며 노하우를 배웠고요.   하지 않는 것도 선택입니다. 그는 늘 그래왔죠. 모든 걸 다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는 건 깔끔하게 인정하고 포기했어요. 대신 할 수 있는 것에 전력을 다했죠. 양육자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사도, 육아도 다 잘할 순 없어요. 전 가사는 포기했어요. 음식도, 청소도 젬병입니다. 대신 전 육아에 집중해요. 특히 만들기 같은 걸 하면서 놀아주는 데 온 힘을 쏟아요. 사실 과학학습 키트가 가장 필요했던 건 바로 저죠.   김지영 대표는 "안되는 건 포기했다"고 말했다. 대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했다. 양육자로서도, 가사보단 육아에 집중한다. 하지 않는 것도 선택이다. 김현동 기자  ━  Part4. 결국 내 삶이다. 그러니까 내 스타일대로   그는 1972년생, 만 50세입니다. 아이는 이제 8살이고요. 일하다 보니 결혼도, 출산도 늦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늦어서 포기한 적도 없고, 늦어서 문제라고 생각한 적도 없어요.   체력이 달리는 건 아쉽죠. 비슷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없는 것도요. 하지만 제 선택이 최선이었다는 걸 알아요. 커리어에 있어서 끝까지 밀어붙여 봤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결혼하고 출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일엔 일장일단이 있고, 나는 그저 내 입장에서 선택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엔 유난히 해야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하고, 대학을 나오면 대기업에 입사해야 하고요. 어디, 그게 끝인가요? 적당한 나이에 늦지 않게 결혼도 해야 하고, 결혼 하면 “애는 왜 안 낳느냐”는 지청구를 들어야 합니다. 1972년생인 김지영 대표는 아마 그런 압력을 더 많이 받았을 테고요. 그런데도 그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유학가려고 할 때였어요. 추석 때 만난 친척 어른이 ‘지영이 시집 가야 하는데, 웬 유학이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때 저희 부모님이 그러셨죠. ‘지영이는 공부해야 한다’고요. 부모님 덕분인 것 같아요. 사실 저희 아버지도 뒤늦게 유학을 가셨거든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요.   그의 부모님은 그가 삼성을 나와 라엘에 합류한다고 했을 때도 “대기업보다 스타트업이 미래가 밝다”며 응원해주었다고 합니다.   “아니면 어쩔 수 없고, 일단 해보자”는 그의 생각은 어찌 보면 대책 없어 보입니다. 그가 그런 대책 없는 생각을 하는 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 믿음 덕분에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에게 내어주지 않았을 테고요. 김지영 대표는 “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어서, 나를 더 믿을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 믿음은 부모님으로부터 온 건지도 모릅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 아직 영어학원도 다니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 살아서 그런지,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하라고 강요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제 삶을 돌아보면 스스로 필요할 때 해야 진짜로 하는 것 같더라고요.   김지영 대표는 “학습에 있어선 잘 챙기는 편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 역시 자신의 부모처럼 아이들이 스스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있는 게 아닐까요?   김지영 대표가 자신의 속도대로, 자신의 스타일대로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님 덕분이었다. 그 역시 그의 아이들에게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고 했다. 김현동 기자 마지막으로 김지영 대표가 인터뷰 말미에 했던 말을 소개합니다. 그의 말이 어떤 기회 앞에서 “내가 저걸 감당할 수 있을까?” 하고 주저하는 양육자에게 힘이 되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라엘은 1980년대생 여성 3명(아네스 안, 백양희, 원빈나)이 만든 회사였어요. 아네스 안 대표는 쌍둥이를 키우는 양육자였는데, 리더십이 정말 훌륭했죠. 곁에서 일하며 저도 창업에 도전할 용기를 낼 수 있었어요. 잘나지도 않은 제가 제 이야기를 떠드는 이유입니다. 누구나 다 닥치면 할 수 있거든요. 관련기사 두 번 창업한 워킹맘 조언 "버티면 된다, 아이는 금세 큰다" "천재여야 살 가치 있는 건가요" '우영우' 신드롬이 불편한 이유 연금700만원 대신 브라질 이민행…‘팔로어 270만’ 80대 노부부가 사는 법정선언 기자 jung.sunean@joongang.co.kr

    2022.09.12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