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 30%도 안하고 “글 써라”…서울대 교수의 이상한 수업 ④

    강의 30%도 안하고 “글 써라”…서울대 교수의 이상한 수업 ④ 유료 전용

    유엔 교육·과학·문화기구인 유네스코는 문해력을 ‘최소문해력’과 ‘기능적 문해력’으로 나누어 정의한다. 최소문해력은 글자를 읽고 글씨를 쓰는 기초 능력을 뜻하고, 기능적 문해력은 글자로 이뤄진 의미 덩어리, 즉 글을 읽고 이해하고, 쓰고 활용하는 능력을 뜻한다. 두 가지 문해력 모두 ‘읽기’만큼 ‘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hello! Parents가 만난 4인의 전문가들은 문해력을 ‘커뮤니케이션 역량’으로 정의했다. 이 정의에 비춰보아도 쓰기는 읽기만큼 중요하다. 읽기가 누군가가 쓴 글을 읽고 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라면, 쓰기는 누군가를 이해시킬 목적으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해야 소통하고 협업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 문해력 논의는 아직 ‘읽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hello! Parents 문해력 집중 해부 4편에서는 충분히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쓰기’를 본격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 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를 만났다. 박 교수는 서울대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 모임의 일원으로, 9년간 글쓰기 중심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래픽=박정민 디자이너 park.jeongmin@joongang.co.kr   글쓰기는 종이 위에서 생각하는 행위다.   “글쓰기 수업도 아닌데 왜 매시간 학생들에게 글을 쓰게 하냐”는 질문에 박주용 교수는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교육자인 윌리엄 진서의 말을 인용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글을 써오라고 하는 것은 너의 생각을 가져오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박주용 교수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매 수업 주어진 읽을거리를 읽고 글을 써 제출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친구의 글에 A·B·C 등의 학점을 부여해 평가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이 될지 제안도 해야 한다. 그럼 친구는 그 제안이 글을 고치는 데 도움이 됐는지 다시 평가한다. 고강도 글쓰기 수업 같지만 심리학 전공 수업이다.   박주용 교수가 서울대 한 강의실에서 자신의 수업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9년 전부터 학생들에게 매 수업 글쓰기 과제를 제출하게 하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현동 기자   배워야 할 개념이 많은 전공 수업을 굳이 이렇게 운영하는 이유가 뭔가요? 굳이 교수한테 그런 개념을 배워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러려고 대학 온 거 아닌가요? 인터넷만 있으면 누구나 온갖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요. 과거엔 전문가만 접근할 수 있던 지식이나 정보도 마찬가지입니다. 문해력이 최근 ‘경제 문해력’ ‘과학 문해력’ 등으로 세분화되는 것도 바로 이런 변화 때문이고요. 혼자서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걸 굳이 교수한테 배울 필요가 없죠.   그럼 학교에서는, 그리고 교사나 교수로부터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요? 읽고, 이해하고, 생각하고, 쓰는 방법요. 이게 곧 문해력이고, 스스로 공부하는 힘이죠. 제 수업은 바로 이걸 위해 설계됐어요.   교수가 제시하는 읽을거리를 읽는 건 이해가 갑니다. 어떤 개념이나 핵심 내용을 알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왜 꼭 글쓰기를 해야 하나요?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글을 써야만 정확하게 알 수 있어요. 내가 어디까지 이해했고, 어떤 부분을 모르는지도 글을 써야만 알 수 있죠. 읽기만 했을 땐 아는 것 같지만, 막상 써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학문론』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독서는 지식이 많은 사람을, 글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학생들에게 어떤 개념이나 핵심 내용을 설명하는 글을 쓰게 하는 건가요? 글을 쓴다는 건 생각한다는 겁니다. 내용을 파악하는 글을 쓴다는 건 글쓴이의 생각을 이해하는 수준의 생각을 하는 거예요. 한 차원 더 높은 생각은 뭘까요? 글쓴이의 생각에 대한 나의 생각이죠. 그래서 저는 글의 핵심 내용이나 주장을 비판하거나 발전시키라는 쓰기 과제를 냅니다. 너의 생각을 가져오라는 겁니다.   비판하거나 발전시키는 글을 쓰라고 요구하면 자기 생각을 가져오나요? 어떤 내용이나 주장을 비판하려면 왜 그게 말이 안 되는지 설득해야 해요. 왜 비판하는지, 그 이유가 자기 생각이죠. 글쓴이의 생각을 발전시키려면 그걸 긍정하는 이유와 발전 방향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자기 생각이고요.   읽기에서 끝나지 않고 글쓰기도 해야 하는 이유는 알겠어요. 그런데 저는 학교에서 글쓰기를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어요. 신문사에 들어와서야 글쓰기를 배웠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글쓰기를 왜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건가요? 지금까지는 굳이 나의 생각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패스트 팔로잉 전략으로 충분했거든요. 이미 만들어진 지식을 더 많이, 더 빨리 아는 게 더 중요했죠. 강의 중심 교육이 이뤄진 이유예요. 하지만 이제 달라졌어요. 퍼스트 무빙 전략이 필요해졌으니까요. 그러려면 생각을 해야 해요. 미국에선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전 교육과정에서 글쓰기를 하게 합니다. 프랑스에선 엄청난 예산을 써서 일주일간 100% 논술형 대학입학 자격시험(바칼로레아)을 치르게 하고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  글 잘 쓰려면, 자료 조사할 시간에 ‘이것’ 해야   박주용 교수는 “글을 잘 쓰려면 자료 조사에 시간을 쓰기보다 생각하는 데 시간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을 쓰는 건 종이 위에서 생각하는 행위”라고도 했다. 김현동 기자   쓰지 않는 읽기는 반쪽짜리 공부라는 걸 알았다 해도 막상 쓰려고 하면 써지지 않는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국어교육 역시 독해 중심으로 이뤄지는 게 현실이다. 하얀 컴퓨터 화면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그저 바라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박주용 교수가 글쓰기 중심의 수업을 진행하면서 만난 학생들도 같은 질문을 했다.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이 줄 만한 교재를 백방으로 찾아봤지만, 마음에 드는 걸 찾지 못했다. 작문 중심의 쓰기 방법론이 아니라 자신이 배운 내용이나 그에 대한 생각을 논리적으로 펼치는 방법을 담은 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직접 쓴 책이 『생각은 어떻게 글이 되는가』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장 중요한 건 태도입니다. 실제로 글쓰기 태도 검사에서 글쓰기 능력이 타고난다고 답한 사람일수록 글쓰기 능력을 발전시키지 못합니다. 배우고 노력하면 좋아진다는 생각을 갖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그리고 꾸준히 써야 합니다. 앞서 인용한 윌리엄 진서는 ‘글쓰기를 배우는 유일한 방법은 강제로 일정한 양을 정기적으로 쓰는 것’이라고까지 했어요. 운동선수가 훈련하듯 의식적으로, 의도적으로 연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주로 쓰는 글은 논픽션, 주장하는 글이에요. 이걸 잘 쓰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요?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그 사람이 자기주장을 어떻게 전개하는지 분석해 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하면 논리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어요. 또 하나, 글쓴이의 주장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보는 겁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읽을거리를 주고, 핵심 내용을 파악해 그에 대해 비판하거나 발전시키라는 글쓰기 주제를 주는 이유죠.    글을 쓰려면 자료 조사가 필수적인데요, 얼마나 해야 할까요? 저는 학생들에게 글쓰기 과제를 낼 때 제가 제시한 읽을거리만 읽고 쓰라고 합니다. 다른 자료를 찾아보는 게 나빠서가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글을 쓰는 시간을 확보하라는 취지죠. 자료 조사를 많이 한다고, 많이 읽는다고, 많이 안다고 꼭 좋은 글을 쓰는 건 아니에요. 많이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생각을 하는 겁니다.   좋은 글을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한다고 조언하는 사람이 많아요. 기자들도 좋은 글을 쓰려면 취재를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자료 조사를 많이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낯설어요. 자료 조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기죠. 제 미국 유학 시절 얘기가 도움이 될 듯하네요. 지도교수가 논문을 쓰다 ‘이런 연구 있지 않나?’ 하고 물으면 열 번에 아홉 번은 제가 답을 했어요. 그것도 몇 년에 누가 썼다고 정확하게요. 연구실의 구글이었죠. 그런데 논문을 쓸 때가 됐는데, 저만 못 쓰는 거예요. 대답 한 번 못하던 미국인 친구들은 주제를 잡고 들이 파더니 성과를 막 내는 데 말이죠. 뭐가 문제였을까요?   너무 많이 알아서 궁금한 게 없었던 걸까요? 제가 알던 지식은 ‘생기 없는 지식’이었던 겁니다. 활용하지도 않고, 검증하지 않고, 참신한 생각과 결합하지도 않은 그저 주입한 지식요. 『교육의 목적』을 쓴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노스 화이트헤드는 ‘박식함에 그치는 사람은 지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제가 자료 조사보다 생각하고 글쓰기를 강조하는 건 그래서예요. 생기 없는 지식에 얽매이지 말라는 겁니다.   한 번에 완성되는 글은 없습니다. 글을 다듬는 교수님만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제가 쓴 글의 내용을 누군가에게 말해 보거나 직접 보여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얻기 위해서죠. 내용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 좋겠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어요.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혼잣말처럼 중얼거려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또 하나는 누군가가 자신의 글에 대해 피드백을 요청하면 최대한 받아주는 거예요. 그래야 내 글에 대한 피드백도 요청할 수 있으니까요(웃음).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글을 피드백하면서 글 쓰는 방법도 배울 수 있거든요.    ━  강의 대신 토론을 하는 이유   박주용 교수는 “수업 전에 미리 공부하고, 수업 시간엔 토론하는 수업은 결국 문해력과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기르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동 기자   박주용 교수의 수업에선 ‘공부’라 부를 만한 활동이 모두 수업 전에 일어난다. 읽을거리를 읽고, 글을 쓰고, 친구의 글을 평가·피드백하고, 그 피드백을 또 평가하는 전 과정이 수업 전 온라인 공간에서 진행된다. 그럼 수업 시간엔 도대체 뭘 하는 걸까? 박주용 교수는 “대부분의 시간을 토론하고, 강의는 전체 수업의 3분의 1을 넘지 않게 한다”고 말했다.   강의를 전체 수업의 3분의 1을 넘지 않게 한다고요? 개념이나 지식을 습득하는 건 혼자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학창 시절 저 역시 토론 수업을 들어봤지만, 유익했다는 기억이 별로 없어요.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미리 공부하지 않고 하는 토론은 잡담과 다르지 않아요. 제 수업에서 학생들은 충분히 공부하고, 자신의 입장이나 생각까지 정리해 오기 때문에 완전히 다릅니다.   제가 했던 토론은 진짜 토론이 아니었네요. 제대로 토론하면 어떤 점이 좋죠?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접할 수 있습니다. 애매하거나 복잡한 사안에 대한 이해와 관용 역시 높아집니다.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의견을 덧붙이면서 공감 능력도 향상되죠. 다양한 생각을 종합하고 통합하는 기술도 늘고요. 무엇보다 학습 효과도 높습니다.   토론하면 학습 효과가 높다고요? 실험 얘길 하나 들려드리죠. 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한 그룹은 동영상 강의를 듣고 혼자 공부하게 했어요. 또 다른 그룹은 동영상 강의를 듣고 토론하게 했죠. 마지막 그룹은 동영상 강의를 필사해 텍스트로 만든 후 그걸 가지고 혼자 공부하게 하고 토론했어요. 그리고 얼마 간의 시간을 두고 세 그룹 모두 학습 내용에 관한 시험을 봤죠. 결과가 어땠을까요?   토론한 그룹이 더 좋은 성적을 받았나요? 토론을 한 2개 그룹의 성적이 혼자 공부한 그룹보다 좋았어요. 두 그룹 중에선 혼자 공부하고 토론한 그룹이 더 높은 점수를 받았고요.   왜 토론하면 학습 효과가 더 좋은 거죠? 토론하면 상호작용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으로 학습 내용과 관련된 상호작용이 많으면 성취도 역시 높아집니다. 다양한 측면에서 입체적으로 생각하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죠. 토론을 한 2개 그룹의 토론 장면을 녹음해 분석했더니, 혼자 공부하고 토론한 그룹이 더 많이 상호작용했어요. 이 그룹이 가장 높은 성적을 받은 이유죠.   교수님 수업에선 토론 주제를 어떻게 선정하나요? 제가 글쓰기와 함께 학생들에게 부여하는 과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질문이죠. 한 사람당 최소 3개의 질문을 제출하게 합니다. 그 질문 중에서 토론 주제를 꼽기도 하고, 학생들이 쓴 글에서 추출하기도 합니다. 적당한 게 없으면 제가 만들기도 하고요.   한국인은 유독 질문을 안 하는 걸로 유명한데요, 학생들이 질문을 많이 하나요? 2010년 G20 서울 정상회의 폐막식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줬는데, 아무도 질문하지 않은 게 회자됐을 정도잖아요. 질문하지 않는 데엔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권위적인 문화 때문이기도 하고, 강의 중심의 대형 수업에선 질문을 받을 여유가 없기도 하고요. 그런데 제가 수업하면서 느낀 건 바로 이거였어요. ‘몰라서 못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질문할 수 없습니다. 알아야 그제야 궁금한 게 생기는 법이에요.   박주용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글을 쓰면 창의력도 생긴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창의력은 가장 좋은 결과물에 바치는 일종의 찬사다.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선 그걸 만들 때까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창의력을 키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계속 생각하세요.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글쓰기입니다.      ■ 9년 간 글쓰기 중심 교육 실천한 박주용 교수의 쓰기론 「 ① 읽기는 반쪽짜리 공부다. 글을 써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글을 쓸 때는 핵심 내용을 설명하는 걸 넘어 그것에 대한 나의 입장과 생각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지식을 주입하는 걸 넘어 뭔가를 만들어내는 생각을 할 수 있다. ② 글을 잘 쓰려면 꾸준히 써야 한다. 그것 외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고 그 사람이 자기 주장을 전개하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각하는 것이다. 자료 조사보다 중요하다. ③ 읽고 생각해서 써왔다면 강의할 필요가 없다. 강의를 안 해서 생긴 시간엔 토론을 해야 한다. 토론을 통해 다양한 생각과 관점을 접하고, 이들 의견을 종합하는 기술을 갖게 된다. 」   ■ hello! Parents 문해력 집중 해부 시리즈  「 ① “문해력, 읽고 쓰는 능력이 전부 아니다” 문해력 전문가 4인의 진단 ② “냉장고에 붙인 단어카드, 소용없다” 최나야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③ “문해력 부진 주범은 사교육” 12년 논술 강사 출신 『공부머리독서법』 저자 최승필 ④ “글 잘 쓰려면, 자료 조사할 시간에 ‘이것’ 하라” 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⑤ “책 읽어주기와 소리 내 읽기부터 시작하라” 『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 저자  홍인재 전주 신동초 교장(4월 3일 발행) 」    관련기사 요즘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문해력 부진, 범인 밝혀졌다 ① 8세까지가 문해력 골든타임…“냉장고서 단어카드 떼세요” ② “문해력 키우려면 학원 끊어!” 12년 대치동 논술강사 일침

    2023.03.29 10:09

  • “문해력 키우려면 학원 끊어!” 12년 대치동 논술강사 일침 ③

    “문해력 키우려면 학원 끊어!” 12년 대치동 논술강사 일침 ③ 유료 전용

    초기 문해력의 골든타임이 만 8세(초2)까지라면 초등학교 6년은 이를 한 단계 발전시킬 기회다. 학령기 문해력의 핵심은 ‘독서’다. 하지만 학령기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다. 2021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은 연간 66.6권의 책을 읽었다. 2년 전보다 20.3권 감소한 수치다. 학생들이 꼽은 독서 방해 요인 1위는 ‘스마트폰, 텔레비전, 인터넷, 게임 등을 이용해서’였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문해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hello!Parents는 문해력 집중 해부 시리즈 기획을 하면서 두 번째로 최승필 독서전문가를 만났다. 2018년 베스트셀러였던 『공부머리 독서법』의 저자인 그를 지난 8일 만나 ‘학령기 읽기’를 중심으로 문해력 높이는 법을 물었다. 그래픽=박정민 디자이너 park.jeongmin@joongang.co.kr 아이 문해력을 키우려면 사교육부터 그만둬야 해요. 학원 강의는 듣는 공부거든요. 독서논술 학원에 다녀도 문해력이 늘지 않는 건 그래섭니다. 그 시간에 책을 읽게 해야 문해력이 높아져요.   “초등학생 자녀를 둔 양육자가 아이의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뭘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최승필 저자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우리 국민이 쓴 사교육비는 26조원을 기록했다.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7년 이래 최고치다. 사실 이런 통계가 아니어도 사교육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건 누구나 안다. 이런 상황을 모를 리 없는 데도 그는 주저 없이 사교육을 문해력 부진의 주범으로 꼽았다. 더구나 그는 2006년부터 강남 대치동에서 12년간 아이들을 가르친 논술강사 출신이다.    ━  📢‘듣는 공부’ 시키는 사교육 그만둬라   최 저자는 논술학원에서 일하던 초기 ‘요즘 애들 정말 똑똑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초등학생이 중학교 과정 수학 문제를 술술 풀고,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우수하던 아이들 대부분이 중학교에 올라가 성적이 떨어졌다. 예외가 없었다. 주변 강사들은 “원래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는 ‘도대체 왜 그럴까?’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유를 알게 됐다. 문제는 사교육이었다.   문해력 부진과 사교육이 무슨 관계인가요? 학교 공부가 뭔가요? 기본적으로 교과서라는 책을 읽고 이해하는 거예요. 책에 담긴 지식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 게 수업이고요. 아이들은 선생님 설명을 ‘듣고’ 교과서를 ‘읽으며’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그럼 사교육은 뭘까요? 교과의 내용을 일일이 설명해 주는 서비스입니다. 사교육을 받으면 읽고 이해할 필요가 없어요. 강사의 설명을 듣고, 문제를 풀고, 틀린 문제에 대한 설명을 다시 듣고, 다시 문제를 풀면 되니까요. ‘읽고’ 이해하는 게 아니라 ‘듣고’ 이해하는 공부를 하는 데 익숙해지는 거죠.   듣고 이해하는 게 문제인가요? 이해하는 게 중요한 거 아닐까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일단 시간이 너무 많이 듭니다. 교과서를 읽으면 20~30분이면 끝날 내용도 강사의 설명을 들으면 1시간이 걸리죠.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학습해야 할 지식의 양이 적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됩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내용이 많아지고 어려워져요. 초등 고학년만 돼도 전 과목을 설명해 주기 버겁습니다. 실제로 듣는 공부법이 비효율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MIT미디어랩에서 한 대학생에게 교감신경을 측정하는 기기를 부착한 후 활성화 여부를 관찰했어요. 교감신경이 가장 활성화되지 않은 때가 언제였을까요? TV 시청할 때랑 수업 들을 때였어요. 강의를 들을 때 사람의 뇌는 잠을 잘 때보다 더 멍한 상태에 빠진다는 겁니다.   또 다른 문제는 뭔가요? 사교육을 많이 받으면 책 읽을 시간이 줄어듭니다. 학원 안 가는 시간에는 놀아야 하니까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책을 좋아하던 아이도 고학년이 돼 ‘학원 뺑뺑이’를 돌다 보면 책 읽을 시간이 없어집니다. 독서는 자연스레 학원‧숙제‧스마트폰에 밀려 뒷전이 되죠. 이런 아이는 중학생이 되면 대부분 성적이 떨어집니다.   책 안 읽고도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는 애들도 있지 않나요? 일부 특이한 경우입니다. 호기심이 많고, 집요한 아이들이요. 이런 아이들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볼 때 이해되지 않는 걸 대충 넘어가지 않고 집요하게 탐구합니다. 항상 ‘왜 그럴까’라는 의문을 품고 살기 때문에 일상생활이나 학교 공부만으로 언어능력이 향상됩니다. 쉽게 말해 평소 생각을 많이 하는 아이죠.    지금 당장 사교육을 끊고 혼자 공부하게 해야 한다는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 의존도가 높은 아이들은 혼자 공부하는 습관이 없습니다. 학원을 그만둔다고 바로 스스로 공부하지 않아요. 더구나 문해력이 낮기 때문에 혼자서 교과서나 참고서를 읽고도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니 공부가 잘 될 리 없고, 다시 사교육의 문을 두드리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죠. 학원을 끊기에 앞서 문해력부터 키워야 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학원에 의존해선 안 됩니다. 학원에서 강사의 설명을 들으면 그 자리에선 이해가 됩니다. 공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죠. 하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아요. 『공부머리 독서법』을 쓴 최승필 저자가 지난 8일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운영 중인 서점 ‘공독서가’에서 책에 둘러싸인 채 웃고 있다. 그는 “사교육이 아이들의 문해력을 저하시키는 주범”이라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  📢권장도서 목록부터 갖다 버려라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할 수 있을까? 그의 답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재밌게 읽으면 된다는 것이다. 얼핏 쉬워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말 속엔 아이가 ‘주도적’으로 ‘몰입독서’를 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읽을 책을 고르는 것부터 아이에게 맡겨야 한다. 최 저자는 “아이에게 학년별 권장도서를 건네는 것부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권장도서를 주는 게 왜 잘못됐나요? 양육자가 아이가 읽을 책을 정해준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게 왜 문제인가요? 양육자가 양서(良書)를 권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직접 고르지 않은 책이니까요. 결과적으로 독서에 대한 아이의 흥미와 주도성을 떨어뜨려요. 읽고 싶지도 않은 책을 줘놓고 안 읽는다고 다그치면 누가 책을 읽고 싶을까요? 독서와 문해력에서 더 멀어지는 길이죠. 책을 보고 있어도 글자만 읽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해하지 않은 채로요. 독서의 핵심은 ‘재미’예요. 아이 스스로 ‘어? 재밌네’라고 느끼게 해줘야 합니다. 독서를 놀이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거죠. 그러려면 모든 행위의 주체가 아이여야 합니다. 책을 고르는 것도 마찬가지죠. 책 고르기는 독서의 시작입니다. 이 책 저 책 고르면서 독서와 더 가까워지고 이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을 파악할 수도 있거든요. 그러다 진짜 재밌어서 ‘몰입’해 읽는 책을 만나면 게임 끝이죠.   ‘몰입’해 읽을 수 있는 책은 어떻게 찾으면 될까요? 우선 권장도서 목록부터 갖다 버리세요. 그다음 아이와 손잡고 도서관에 갑니다. 양육자와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같이 빌리고 함께 읽습니다. 양육자가 책을 읽는 게 아이에게 가장 좋은 독서 환경입니다. 만약 아이가 재미없다고 하면 끝까지 읽으라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책을 사지 않고 빌려 읽어야 하는 이유죠.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아이가 푹 빠질 수 있는 ‘인생책’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생책’을 못 찾고 시간만 낭비하면 어쩌죠? 양육자가 조급해하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재밌는 책을 발견할 수 있어요. 낚시와 비슷합니다. 낚싯대를 던진 다음 물고기가 덥석 물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려야 하잖아요. 참지 못하고 낚싯대를 일찍 건져 올리면 그 어떤 물고기도 낚을 수 없죠. 인생책도 마찬가지예요.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고르는 게 낚싯대를 던지는 겁니다. 한두 번은 허탕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양육자가 기다려주면 언젠가 ‘비단잉어’ 같은 인생책을 낚을 수 있죠. 그러려면 아이가 책에 흥미를 느낄 때까지는 독서를 최우선 순위로 둬야 해요.   그러다 성적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요? 문해력을 키우지 않고는 절대 좋은 성적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지금 좋은 성적을 받는다 해도 사상누각에 불과합니다. 문해력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독서고요. 믿고 가셔야 해요. 최승필 저자는 “아이가 책에 흥미를 갖게 하려면 권장도서 목록부터 갖다 버리라”고 조언했다. 우상조 기자  ━  📢딱 한 권만 ‘제대로’ 읽게 하라   독서를 통해 문해력을 키우려면 책을 얼마나 많이 읽어야 할까? 최 저자는 “딱 한 권만 읽어도 된다”고 말했다. 단서가 하나 있다.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거다. 책을 본 뒤 줄거리는 물론 구체적인 장면도 몇 개 기억한다면 제대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 그 정도는 대체로 기억하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대다수 아이들이 독서와 관련해 안 좋은 습관을 하나 갖고 있어요. 바로 속독(速讀)입니다. 우등생의 읽기 방법으로 한때 유행했었죠. 책을 많이 읽는데도 언어능력이 낮은 아이들은 대부분 속독을 해요. 책을 빨리 읽는 건 문해력이나 사고력을 키우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저 ‘책을 빨리 읽었다’는 만족감만 얻을 뿐입니다. 실제로는 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고요. 같은 맥락으로 다독(多讀)하는 것도 권장하지 않아요. 책을 많이 읽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제대로 읽기 어렵거든요. 수준에 맞지 않게 어려운 책을 읽는 것도 문해력 키우는 데는 도움이 안 됩니다. 제대로 읽지 않고 대충 볼 가능성이 크니까요. 이건 독서가 아니라 도서 목록 수집이죠. 저는 학습만화나 전집도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소리 내 읽는 속도로 정독(精讀)해야 합니다. 등장인물의 관계와 그 인물이 처한 상황, 주요 사건과 줄거리를 충분히 파악하면서 읽어야죠.   얼마나 읽어야 할까요? 책을 읽는 게 익숙하지 않다면 많이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일주일에 2~3시간, 2주에 한 권만 읽으면 됩니다. 학교 쉬는 시간이나 자기 전에 30분만 투자해도 되죠.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아이 수준보다 낮은 책을 주는 게 좋아요. 그래야 흥미를 느낄 테니까요. 최승필 저자는 “책을 통해 문해력을 키우려면 딱 한 권만 제대로 읽어도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아이가 책을 제대로 읽는지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요? 초등학교 1~3학년이라면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세요. 도서관에서 『외딴 집 외딴 다락방에서』나 『내 배가 하얀 이유』 같은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책을 빌리세요. 아이가 읽어 본 적 없고, 흥미를 느끼는 책으로요. 양육자가 먼저 책을 읽은 뒤 아이에게 건네주세요. 아이가 책을 읽고 나서 줄거리를 물어봤을 때 얼마나 상세하고 정확히 얘기하는지 확인하면 됩니다. 줄거리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거나 내용이 단순하면 책을 제대로 읽었다고 볼 수 없죠. 독서퀴즈를 내는 것도 방법입니다.   독서퀴즈는 어떻게 내면 되나요? 아이가 볼 책을 양육자가 먼저 읽은 뒤 질문을 10개 정도 정리해 물어보세요. 문제를 낼 때는 줄거리와 직접 연관이 있는 핵심적인 내용을 다뤄야 합니다. 『외딴 집 외딴 다락방에서』를 예로 들면 ‘에마가 사흘 동안 쓸 방은 원래 누구의 방이었나’ ‘동생이 에마에게 다락방에 대해 한 얘기는 뭔가’ ‘다락방 선반 위 작은 도자기 인형은 어떤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었나’ 같은 질문이죠. 책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0.1초 만에 나와야 합니다. 만약 10개 질문 중에 3문제 이상 틀렸다면 문해력이 낮다고 봐야 합니다. 2~3문제만 맞혔다면 문해력이 심각한 상태고요.   문해력이 낮은 아이들은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양육자가 읽어주는 게 좋아요. 아이의 언어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서 일주일 동안 매일 초반 3분의 1을 읽어주는 거죠. 이런 아이들은 책을 읽지 않아 독서하는 행위 자체를 부담스러워 합니다. 또 도입부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뒷부분도 궁금해 하지 않고요. 책의 앞부분을 읽어주면 핵심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돼 호기심을 갖습니다. 나머지 부분은 자발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되죠. 일주일 동안 반복한 뒤에는 10개 정도 핵심 질문을 던져 아이가 제대로 읽었는지 점검하면 됩니다. 4~5권을 반복하다 보면 아이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책이 나옵니다. 그때 다음 단계로 올라가면 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혼자 힘으로 읽게 해야죠. 단계별 독서와 반복독서가 있는데요. 단계별 독서는 자기 수준에 맞는 책을 학년별로 읽어 나가는 겁니다.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문해력을 가졌다면 초등학교 3학년 대상 책 10권을 읽고, 독서퀴즈를 봅니다. 이때 세 권 이상 만점이 나오면 초등학교 4학년 책으로 넘어가는 식이죠. 반복독서는 자기 연령에 맞는 책을 여러 번 반복해 읽는 겁니다. 문해력이 떨어지면 자기 연령대의 책을 버거워 합니다. 글의 논리와 분량·정보량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한두 번 읽어서는 수박 겉핥기밖에 안 됩니다. 반복독서는 이 악순환을 끊어주죠. 독서퀴즈를 다 맞을 때까지 몇 번이든 반복해 읽으면 다음부터는 수월해집니다. 이야기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죠.   최승필 저자의 ‘문해력 높이기’는 책으로 시작해서 책으로 끝난다. 그가 매력 없는 정답 같은 주장을 하는 건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구구단도 못 외운 채 반에서 꼴찌를 하던 ‘열등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플란더스의 개』를 읽고 독서의 매력에 푹 빠졌고, 1년간 300권의 책을 읽었다.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고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해 내신성적 9등급이었던 그가 수능에서 1등급을 받은 비결도 독서다.   독서는 저의 인생을 바꿔놨습니다. 책을 제대로만 읽으면 누구나 저처럼 ‘기적 아닌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아이와 함께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같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요? 최승필 저자는 “아이가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려면 독서퀴즈를 내보면 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 최승필 저자가 말하는 아이 문해력 키우는 법 「 ①‘듣는 공부’ 시키는 사교육 그만두세요. 요즘 아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을 다닌 탓에 교과서를 ‘읽으며’ 학습하기보다 강사의 설명을 ‘들으며’ 이해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문해력이 길러지지 않고 학습량이 많아지는 중학교부터 성적이 하락합니다.  ②권장도서목록부터 갖다 버리세요. 문해력을 높이는 비결은 ‘좋아하는 책을 재밌게 읽는 것’입니다. 아이 주도적으로 ‘몰입독서’를 하게 도우려면 권장도서목록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가 혼자 힘으로 재밌는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느끼게 해주세요. ③딱 한 권만 ‘제대로’ 읽게 하세요. 줄거리는 물론 구체적인 내용까지 기억할 수 있어야 책을 제대로 읽은 것입니다. 양육자가 퀴즈를 내서 확인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책과 담 쌓은 초등 저학년이라면 양육자가 초반 3분의 1정도를 읽어주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   ■ hello! Parent 문해력 집중 해부 시리즈 「 ① “문해력, 읽고 쓰는 능력이 전부 아니다” 문해력 전문가 4인의 진단(3월 20일 발행) ② “냉장고에 붙인 단어카드, 소용없다” 최나야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3월 23일 발행) ③ “문해력 부진 주범은 사교육” 12년 논술 강사 출신 『공부머리독서법』 저자 최승필 ④ “내가 매 수업 글쓰기 과제를 내는 이유” 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3월 30일 발행) ⑤ “책 읽어주기와 소리 내 읽기부터 시작하라” 『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 저자  홍인재 전주 신동초 교장(4월 3일 발행) 」 관련기사 요즘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문해력 부진, 범인 밝혀졌다 ① 8세까지가 문해력 골든타임…“냉장고서 단어카드 떼세요” ② “독서나무와 체크리스트, 2가지면 끝” 성효쌤의 특급 독서전략

    2023.03.26 11:05

  • 8세까지가 문해력 골든타임…“냉장고서 단어카드 떼세요” ②

    8세까지가 문해력 골든타임…“냉장고서 단어카드 떼세요” ② 유료 전용

    문해력은 단숨에 키워지지 않는다. 빠르면 엄마 배 속부터 움트기 시작해 노년까지 전 생애에 걸쳐 발달한다. 평생 익히고 다져야 한다는 얘기다. 다만 결정적인 시기는 있다. 출생 후부터 만 여덟 살(초등학교 2학년)까지의 아동기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가 문해력 성장의 골든 타임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때 기초를 다져놓지 못하면 전 생애에 걸쳐 학습, 업무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기초 문해력이 튼튼하면 학업 성취부터 진로 선택까지 탄력을 받는다.   문해력 집중 해부 기획을 시작하며 hello!Parents가 아동 문해력 전문가인 최나야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를 가장 먼저 만난 이유다. 문해력 발달의 첫 단추는 어떻게 끼워야 하는 걸까? 문자를 읽고 쓰기 시작한 아이들에게 문해력의 뿌리를 단단하게 내려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10일 만난 최 교수에게 ‘읽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에 두고 문해력 발달 가이드를 물었다.   그래픽=박정민 디자이너 park.jeongmin@joongang.co.kr   문해력을 위해 한글 학습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아이에게 말을 충분히 들려주는 겁니다. 일상에서 쓰는 적절하고 의미 있는 말들요.   “아이의 문해력을 키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최나야(아동가족학)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글을 읽기 전 말의 소리와 의미를 처리하는 능력부터 잘 길러놓아야 한다는 얘기다. 문해력의 핵심이 되는 이해력은 그렇게 자란다.    최나야 교수는 아동 언어·인지 분야 전문가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로서 아이의 문해력 성장을 직접 도운 실전 경험도 있다. 그런 지식과 노하우를 담아 『문해력 유치원』『초등 문해력을 키우는 엄마의 비밀』 등의 책을 썼다.   최 교수는 “이해력은 문자를 배우기 훨씬 전부터 생기기 때문에 아이와 나누는 대화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글은 일찍, 빨리 뗀다고 능사가 아니다. 글을 읽을 줄 안다고 아이 혼자 책을 읽도록 하는 것도 문해력 발달에는 바람직하지 않다. 최 교수는 아이의 문해력 성장을 위해 읽기 단계에 따라 세 가지 질문을 던져 보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최나야 교수는 “아이들이 한글을 읽기 전부터 일상 속에서 적절하고 의미있는 말소리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  ① 읽기 전 아이: 충분히 대화하고 있나요?   최나야 교수는 “영·유아기야말로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평생 가져가야 할 문해력의 바탕을 만드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 문해력 발달에 필요한 건 듣고 말하는 경험, 즉 일상 대화다.   글자도 모르는 영·유아기가 문해력 발달에 왜 중요한가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말소리를 듣고 처리하는 데서 시작돼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문해력은 놀랍게도 엄마 배 속부터 시작되죠. 태아도 소리를 들으니까요. 익숙한 목소리로 들려오는 짤막하고 반복적인 말을 아이들은 잘 기억합니다. 영·유아기에는 듣고 말하는 경험을 충분히 해야 해요. 어른과 상호작용하면서 구어(口語)로서의 언어가 입력돼야 해요. 대화가 질적으로 수준 높은 언어로 이뤄졌다면 더 좋죠. 음식도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어야 건강에 좋은 것처럼요.   아이와 어떻게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아이가 잘 모르는 단어나 구문을 알게 해주면 됩니다. 일부러 유아어를 쓰거나, 쉬운 단어만 반복해 쓰는 건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중요한 건 아이가 보고 듣고 만지고 먹는 오감과 일상을 언어와 결합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밥을 줄 때 ‘오늘은 밥이 고슬고슬하게 잘 됐다’고 하거나, ‘너는 진밥이 좋아, 된밥이 좋아?’라고 물어보는 거죠.   아이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아무 맥락 없이 생뚱맞게 어려운 단어나 표현을 쓰면 혼란스럽겠죠. 그런데 상황적 맥락이나 대화의 흐름 같은 단서가 있다면 충분히 뜻을 파악할 수 있어요. 어른이 부연해서 쉽게 뜻을 풀어서 말해줄 수도 있고요. 누구나 언어 습득 능력을 타고나요. 특별히 가르쳐주지 않아도 특정 상황에서 단어가 어떻게 쓰이는지 접수하고, 처리해서 활용할 줄도 알죠. 이렇게 경험, 맥락 속에서 알게 된 단어일수록 기억에도 오래 남아요.   아이와 수준 높은 대화를 나눈다는 걸 어렵게 느끼는 사람이 많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림책을 읽어 주세요.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내용에 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거든요. 사건의 전후 관계나 이야기 흐름도 이해할 수 있고, 문자에도 익숙해져요. 다양한 단어와 표현도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어휘력을 늘리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특히 아이가 다섯 살 무렵에 어휘력이 극적으로 발달하고 개인 차도 벌어지기 때문에 이때 그림책을 읽는 게 정말 좋습니다.   유아 때부터 어휘력 차이가 나기 시작하나요? 다섯 살 정도면 평균 6000개 단어를 이해하고, 2200개 정도의 단어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해요. 어휘력은 이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유아 때 어휘력 차이가 학령기에 더 크게 벌어진다는 겁니다. 이미 아는 단어가 많은 아이는 새로운 단어도 쉽게 학습하거든요. 폭넓은 어휘력을 토대로 독해 능력도 심화시킬 수 있고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그림책 읽기와 대화를 통해 의미 있는 단어를 알려주는 게 중요해요.    단어 카드나 낱말 사전 책을 보여주는 건 어휘력 발달에 도움이 될까요? 그렇게 하면 아이가 단어를 많이 아는 것처럼 보여요. 하지만 이렇게 습득할 수 있는 단어엔 한계가 있어요. 낱말 카드 속 ‘서랍’이라는 글자는 어떤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게 아니죠. 또 실제 서랍에 ‘서랍’이란 글자를 붙여 놓는 것도 인위적이고 어색합니다. 집 안 사물마다 그 이름을 붙여 놓는 경우는 없잖아요. 실제로 상황 속에서 배우는 게 학습의 본질적인 방식인데, 그런 방법과 동떨어져 있어요. 은연중에 글자를 빨리 익히라는 압력으로 작용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랍에 ‘서랍’ 카드를 붙이는 건 맥락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 카드를 보면서 “아, 서랍이라는 말은 저런 모양의 글자를 가졌구나” 하고 이해할 수도 있고요.  만약 서랍마다 ‘양말’ ‘속옷’ 이런 글씨를 붙인다면 그건 이야기가 다릅니다. 일상이란 맥락이 있어요. 서랍마다 가족들의 이름을 적어두는 것도 마찬가지죠. 각각의 서랍에 든 물건의 종류, 소속을 알려주는 상황과 이유가 존재하니까요. 하지만 그냥 ‘서랍’이라고 붙여두는 건 아이에게 ‘서랍’이라는 글자를 알려주려는 목적 외엔 아무런 맥락이 없습니다. 이런 방법은 길게 갈 수도 없고, 큰 효과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맥락이 있는 좋은 방법이 있나요?  동네를 산책하면서 자주 가는 가게의 간판을 함께 읽고 써보는 것, 장 보러 가서 마트 전단 속에서 좋아하는 식품 이름을 찾고 읽어 보는 것 같은 활동이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들은 일상의 맥락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 그대로를 배울 때 가장 재미있고, 능동적으로 배울 수 있어요.    ━  ② 읽기 시작한 아이: 한글 스스로 배울 기회를 주고 있나요?   문해력은 말 그대로 글자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읽으려면 한글을 알아야 한다. 요즘 이르면 만 3세 전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늦어도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습득하고, 읽고 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나야 교수는 “한글은 문해력을 키우다 보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며 “일찍 한글을 깨쳐야 한다는 조급함과 불안함부터 버리라”고 했다.   최나야 교수는 “한글은 듣고 이해하는 기초 이해력이 있다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충분히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한글 언제 시작해서 언제까지 떼는 게 좋을까요? 기본적으로 글자라는 상징 기호가 영·유아가 습득하기 어렵다는 걸 아셔야 해요. 여러 나라에서 만 6세,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 들어갈 때 문자를 가르치라고 국가 교육과정으로 정해놓은 건 그래서죠. 듣고 이해하는 기초 문해력이 있다면 입학해서 한글을 배워도 충분히 빨리 익히고 따라갈 수 있어요.   한글을 일찍 떼면 읽기도 수월해지고, 공부하는 데도 유리하지 않나요? 너무 어렸을 때 한글을 공부하면 득보다 실이 클 수 있어요. ‘엄마는 내가 이 글자를 읽기 원하는데, 어렵네’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러면 학습 자체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어요. 한글은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문자예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때가 오면 너무 쉽게 배울 수 있어요.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면서 고난의 길을 갈 필요는 없잖아요. 문해력 논란이 일었던 사건을 생각해 보세요. 한글을 못 읽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해를 못 하는 게 문제였잖아요. 불안해하지 마세요. 아이가 문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도 절대 늦지 않습니다.   한글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는 건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나요?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 어떤 대상에 대한 설명을 외계어 같은 문자로 끼적이는 시도를 할 거예요. 이걸 ‘마킹’이라고 하는데요, 마킹이 나타나면 글자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 겁니다. 친구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하는 것도 신호일 수 있겠죠.   그렇다면 한글 어떻게 가르치는 게 좋을까요? 영·유아 때 모음과 자음을 쪼개서 가르치거나, 교재를 사용해 명시적으로 학습하는 건 발달에 맞지 않아요. 시키면 할 수야 있지만, 절대 좋은 방식은 아니죠. 아이들은 어떤 문자를 익힐 때 먼저 덩어리로 인식합니다. 한글이든, 영어든요. 그러고 나서 통계적 학습을 합니다. ‘저렇게 생긴 모양은 항상 저런 소리가 나는구나’ 하고 깨닫는 거죠. 그래서 어떤 말소리에 해당하는 단어를 자꾸 눈에 보이도록 해주시는 게 좋아요. 다시 말하지만, 단어 카드를 보여주라는 게 아니에요. 맥락 안에 맞는 인쇄물이 좋죠. 같이 읽는 그림책, 아이에게 쓴 쪽지 같은 거요. 중요한 건 아이들이 스스로 그 원리를 파악할 기회를 주는 겁니다. 가르쳐 주면 그 기회를 빼앗는 겁니다. 그럼 스스로 배우는 학습자가 되기 어려워요.   한글을 읽을 수 있다면 문해력 발달을 위해 무엇을 하면 될까요? 읽기는 크게 해독과 이해라는 두 과정으로 나뉘어요. 해독은 문자를 인식하고 거기에 소릿값을 적용하는 과정이고, 이해는 그 뜻을 파악하는 단계죠. ‘서랍’이라는 글자를 보고 소리를 내 읽는 게 해독이고, 실제 서랍을 떠올리는 게 이해예요. 한글을 뗀다는 건 해독에 익숙해진다는 의미예요. 그런 측면에서 해독은 초등학교 2학년까지 유창하게 만들 필요가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부터는 배우는 지식의 양도 늘고 수준도 높아지거든요. 교과서만 봐도 글이 많아요. 글자를 보고 소릿값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해독이 자동화돼야 남은 에너지를 뜻을 이해하는 데 쓸 수 있어요. 결국 문해력 차이는 이해력에서 오기 때문에, 읽는 것보다 이해하는 데 방점을 찍어야 합니다. 최나야 교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소리 내어 읽는 연습을 통해 한글 소리값을 읽는 해독 과정을 자동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초등학교 2학년까지 해독을 자동화할 정도로 익숙하게 하려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나요? 초등학교 1~2학년까지는 낭독을 꾸준히 하세요. 소리 내 읽는 거죠. 낭독은 유아에게 하게 하면 안 됩니다. 아이가 글을 읽느라 이해하지 못하거든요. 유아는 어른이 유창하게 느낌을 살려 읽는 걸 들으면서 그림책을 보는 게 훨씬 더 좋습니다.   한자도 배워야 할까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배우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책 펴놓고 한자 형태와 음, 뜻을 외울 필요가 없다는 얘기예요. 대신 한자어에 대한 ‘감’은 있어야 해요. 우리 말의 50~60%가 한자어라 그런 감이 없으면 어휘를 습득하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거든요. 한자어에 대한 감각은 일상 대화를 통해 충분히 키워줄 수 있어요. 어떤 한자어에 대한 뜻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 주고, 같은 글자가 들어가는 단어들의 군집을 만들어서 설명해 주는 거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명하죠? 물고기 ‘어(魚)’를 예로 들어 볼게요. 저녁 반찬으로 생선이 나오면 ‘어(魚)’로 끝나는 물고기 이름 대기 게임을 하는 겁니다. 그럼 나중에 아이가 ‘연어’ ‘병어’ 같은 단어를 처음 들어도 머릿속에 생선이란 의미가 떠오를 겁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비슷한 단어를 연결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언어에 대한 감각, 상위 언어 인식이 발달합니다. 한자도 그렇고, 우리말 단어도 배우려면 끝이 없잖아요. 언어에 대한 감이 생기면 하나의 단어를 들어도 열을 아는 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  ③ 읽고 이해하는 아이: 함께 책을 읽고 있나요?   한글 읽기, 즉 해독이 능숙해지면 이해력을 본격적으로 키워야 한다. 책을 읽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문제는 클수록 점점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나야 교수는 “책을 꾸준히 읽게 하려면, 재미있는 책부터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민규 기자 독서가 유익한 건 알지만, 아이들이 책을 영 읽지 않습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교과서도 글밥이 많아지고 호흡이 길어지죠. 해독 과정이 미숙하거나 이해력이 떨어지면 책 읽기가 버거워집니다. 점점 독서와 멀어지고, 결과적으로 이해력이 클 기회도 얻지 못하죠. 이해력, 문해력을 키우려면 결국 책을 꾸준히 읽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러려면 일단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 해요. 특히 초등 저학년 때는 읽기 어렵거나 따분하게 만드는 책이라면 과감하게 내려놓는 게 좋아요. 설령 그 책이 필독서나 권장도서라고 해도요. 아이의 관심사, 흥미를 끄는 책이 좋습니다. 그런 책을 아이가 먼저 발견하게 하거나 양육자가 찾아서 추천해 줄 수도 있겠죠.    학습 만화도 괜찮을까요? 만화를 읽는 데도 문해력이 필요해요. 수준 높은 학습만화도 많고요. 특히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루는 학습만화라면 읽는 게 나쁘지 않아요. 다만 아이들이 다른 책은 전혀 읽지 않고 학습만화만 본다면 그건 문제입니다. 읽기에도 균형이 필요해요.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의 학습만화를 읽게 하고, 같은 주제를 다룬 책 중 재미있는 걸 골라서 읽도록 해 주세요.   독해 문제집을 푸는 건 도움이 될까요? 이해력은 어떤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낼 때 제대로 발달합니다. 문제집에는 전체 글 중 일부만 발췌하거나 짧은 글만 실리죠. 문제를 맞혀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요. 결국 문제 풀이를 위한 얕은 이해에 그치고 맙니다. 문제집을 풀어서는 폭넓은 이해력을 기르기 힘들어요. 책 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는 게 훨씬 도움이 됩니다.   아이의 이해력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워요. 아이가 책을 읽고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알아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이가 읽는 책을 양육자도 같이 읽는 겁니다. 책을 다 읽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가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파악할 수 있어요. 아이의 사고력, 어휘력 수준도 알 수 있고요. 아이의 취향과 관심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꼭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돼요. 유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초등학생 때는 한 달에 두 번 정도 읽는 걸로 충분해요. 중요한 건 꾸준히 읽는 거죠.   아이 스스로 책 읽기를 시작하는 건 언제가 좋을까요? 같이 읽는 과정이 부드러워야 혼자 읽는 단계로도 잘 나아갈 수 있어요. 아이가 한글을 읽게 됐다고 혼자 읽으라고 하는 건 좋지 않아요. 이제 막 혼자 걷기 시작한 아이에게 달리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적어도 초등학교 1~2학년 때는 양육자가 읽어 주는 게 필요해요. 혼자 읽는다고 해도 질문도 하고, 관심도 표현하면서 적절히 개입해 주는 게 좋습니다.   최나야 교수는 “문해력이 성장 가도를 달리려면 스스로 책을 찾아 읽는 독자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이 주어졌을 때 아이가 다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책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미있게 책을 읽은 경험이 많은 아이일수록 책을 집어 들 확률이 높다”고 최 교수는 말했다.   아이가 재미있어하는 책을 같이 읽으세요. 즐겁게 읽고 또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을 차곡차곡 쌓으세요. 그런 일상이 모여서 문해력이 자라는 큰 힘이 됩니다.   ■ 최나야 교수가 던지는 읽기 단계별 질문 「 ① 읽기 전 아이, 충분히 대화하고 있나요? 글을 이해하는 능력은 말소리를 듣고 처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일상 대화와 그림책 읽기로 적절하고 의미 있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충분히 들려 주세요. ② 읽고 시작한 아이, 한글 스스로 배울 기회를 주고 있나요? 한글을 일찍 떼는 데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한글 떼기보다 언어에 대한 감을 키우는 게 문해력 발달에 효과적입니다. ③ 읽고 이해하는 아이, 함께 책 읽고 있나요? 문해력의 핵심은 이해력입니다. 이해력은 꾸준한 책 읽기를 통해 길러집니다. 꾸준히 읽으려면 무조건 재미있는 책을 읽어야 해요. 초등학교 저학년이라면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됩니다. 」   ■ hello! Parent 문해력 집중 해부 시리즈 「 ① “문해력, 읽고 쓰는 능력이 전부 아니다” 문해력 전문가 4인의 진단(3월 20일 발행) ② “냉장고에 붙인 단어카드, 소용없다” 최나야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 ③ “문해력 부진 주범은 사교육” 12년 논술 강사 출신 『공부머리독서법』 저자 최승필(3월 27일 발행) ④ “내가 매 수업 글쓰기 과제를 내는 이유” 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3월 30일 발행) ⑤ “책 읽어주기와 소리 내 읽기부터 시작하라” 『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 저자  홍인재 전주 신동초 교장(4월 3일 발행) 」 관련기사 요즘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문해력 부진, 범인 밝혀졌다 ① 4자녀 ‘영어 영재’ 만든 비법 “모르는 단어 뜻 찾지마라” “문해력 키우고 싶은가? 그럼 종이접기 시켜라”

    2023.03.22 15:14

  • 요즘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문해력 부진, 범인 밝혀졌다 ①

    요즘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문해력 부진, 범인 밝혀졌다 ① 유료 전용

    ‘사흘 논란’(2020년)에서 ‘무운 논란’(2021년)을 거쳐 ‘심심한 사과 논란’(2022년)까지, 문해력 논란을 촉발한 해프닝은 최근 2~3년간 반복됐다. 그리고 그때마다 관련 시장은 커졌다. 독서교육업체인 한우리열린교육의 2021년 매출은 426억5000만원으로, 전년 대비 30% 넘게 늘었다. 문해력 시장의 가능성을 알아본 디지털대성은 2020년 이 회사를 인수해 버렸다. 대치동에서 시작한 독서논술학원이 전국에 지점을 내는가 하면, 1년을 대기해도 들어가기 어려운 유명 학원까지 생겼다.   문해력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뜨거운 감자가 되었을까? hello! Parents는 지난 7일부터 15일까지 4명의 문해력 전문가를 직접 만났다. 문해력의 정의에서부터 주목받는 배경, 한글 떼기부터 창의력 교육까지 아우르는 문해력 열풍의 실체에 대해 직접 물었다. 문해력이 높을수록 고소득 직업을 가질 가능성이 큰 거 아셨나요? 한 사회의 문해력은 그 사회가 얼마나 잘사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범죄율도 문해력과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기도 하고요.   최나야(아동가족학) 서울대 교수는 “문해력은 문자와 글을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하지만, 단순히 읽고 쓰는 능력으로만 볼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최나야 교수뿐이 아니다. hello! Parents가 만난 4명의 문해력 전문가 모두 같은 얘기를 했다. 문해력을 정의하는 범위는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문해력이 여러 역량의 바탕일 뿐 아니라 다른 성취로도 확장될 여지가 큰 능력”이라는 데는 뜻을 같이했다. 문해력이 대체 뭐길래 한 사람의 소득, 한 사회의 범죄율, 나아가 얼마나 잘사는지까지 결정하는 걸까?    ━  ① 문해력은 무엇인가 : 읽고 쓰는 역량 그 이상   · 듣기 말하기를 아우르는 커뮤니케이션 역량이다 : 최나야 서울대 교수는 “읽기와 쓰기뿐 아니라 듣기와 말하기를 포함한다”며 “결국 상호작용과 관련된 기술이라는 점에서 우리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을 아우른다”고 말했다. 문해력 부진을 정면으로 다룬 『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의 저자 홍인재 전주신동초 교장 역시 “듣기와 말하기를 포함하는 개념”이라면서 “음가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듣기)이 문해력의 첫 단추”라고 강조했다. 홍인재 교장이 문해력 부진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소리 내 읽기’를 권하는 것도 그래서다. 읽으면서 그 소리를 자기 귀로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사고력과 학습력으로 이어진다 : 12년 경력의 논술 강사 출신으로 『공부머리 독서법』을 쓴 최승필 저자는 “문해력은 곧 사고력이자 학습 능력”이라고 말했다. 언어를 이용해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언어의 수준이 높고 복잡할수록 사고력도 깊어진다는 얘기다. “언어가 학문을 수행하는 핵심 도구라는 점에서 문해력은 학습 능력”이라고도 했다.   · 경제부터 과학까지, 특정 지식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다 : ‘서울대 창의성 교육을 위한 교수 모임’의 일원인 박주용(심리학) 교수는 “읽고 쓰는 능력인 문해력이 세분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 문해력’ ‘과학 문해력’ ‘미디어 문해력’ ‘디지털 문해력’처럼 영역별 문해력이 등장한 것이다. 사회가 세분화되고 정보의 양이 늘면서 영역별로 필요한 문해력과 접근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  ② 왜 열광하나 : 더 중요해졌다   · 중요해져서 : 박주용(심리학) 서울대 교수는 “인터넷 발달로 접근 가능한 정보의 양이 급격하게 늘면서 문해력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과거엔 일반인은 과학이나 경제 관련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한글뿐 아니라 영어로 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더 수준 높은 문해력이 필요해졌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 문해력, 과학 문해력 등으로 세분화된 것도 정보 접근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것이다. 박주용 교수는 “인터넷 덕에 문해력은 중요해졌지만, 인터넷 덕에 즐길 게 너무 많아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가 열렸다”고 일갈했다.    · 스토리텔링 수학과 입시의 변화 : 최승필 저자는 “2015년 전면 도입된 스토리텔링 수학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단순히 제시된 수식을 푸는 게 아니라, 긴 글을 읽고 문제를 이해한 뒤에야 풀 수 있는 수학 문제가 대거 등장한 것이다. ‘국어를 잘해야 수학을 잘한다’는 말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입시 변화도 영향을 끼쳤다.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른 논술형 수능, 대학별 고사 확대 가능성이 문해력 교육 시장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고 최 저자는 설명했다. 2025년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고등학생도 대학생처럼 몇몇 필수 과목을 제외한 모든 과목을 선택해 들을 수 있다. 학생들이 듣는 교과목이 다양해지면, 지금처럼 일괄적으로 상대평가를 하는 게 불가능하다. 고교학점제는 내신 절대평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특목고나 자사고의 인기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대학 입장에선 고등학교 성적을 신뢰하기 어려워지면서, 대학별 자체 평가도 생길 수 있다. 바로 이런 흐름이 심화 교육에 대한 수요를 만들고, 이게 결국 문해력 교육 열기로 이어지고 있다. 최승필 저자의 말처럼 고교학점제에서 시작된 입시의 변화가 문해력 교육 시장 확대로 번지고 있는 셈이다.   · 문해력 저하에 주목한 언론 : 최나야 교수는 “최근 2~3년 사이 문해력에 대한 관심이 과도하게 늘어난 게 의아하다”고 말했다. 문해력은 인류가 문자를 쓰고 살기 시작하면서 존재해 온 개념이라고 할 만큼 오래된 것이고, 원래부터 중요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언론이 주목한 영향인 것 같다”고 했다. 최나야 교수의 주장에 대부분의 전문가가 동의했다. 홍인재 교장도 “교육 현장에서 문해력 부진 얘기가 나온 건 10년도 더 된 일”이라면서 “언론이 주목하면서 관심이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승필 저자 역시 “문해력이 최근 부진해졌다기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의해 최근에야 현상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대로 문해력 논란을 촉발한 해프닝은 대체로 인터넷상에서 일어났다. 박주용 교수도 “문해력이 부상한 건 유행 같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③ 진짜 부진한 건가 : 그렇다   · 전국 초등학생 15~20%는 문해력 부진 : 아동 문해력을 주로 연구하는 최나야 교수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한 반의 15~20%는 평균보다 문해력 수준이 낮다”고 말했다. 이들의 문해력은 얼마나 낮을까? 최 교수는 “실제 데이터가 평균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가 표준편차인데, 이들 그룹은 평균보다 표준편차 2배 수준으로 문해력 수준이 낮다”고 말했다. 하위 15~20%의 문해력 수준이 평균 그룹과 적잖은 차이가 나는 셈이다. 홍인재 교장도 같은 의견이었다. 그는 “체감하기로 학교 전체 학생의 20% 정도는 문해력 부진 상태인 것 같다”고 말했다.   · 문해력 부진, 10년 넘은 현상 : 교육 현장에서 문해력 부진이 이슈가 된 건 10년도 넘었다는 데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홍인재 교장은 “대중의 관심을 받은 건 2~3년이지만, 교사들 사이에서 한글 학습이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한 건 2010년”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차원에서 학습 클리닉과 교사 대상 한글 교육 연수 등을 시작한 것도 2013년부터다.  2006년부터 대치동 등에서 12년간 논술 강사를 한 최승필 저자 역시 “학원가에선 내가 초임 강사 때부터 아이들의 읽기 수준이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책 싫어하는 아이도 독서에 재미를 붙이게 하는 ‘마법의 책’ (『화요일의 두꺼비』 『조금만, 조금만 더』 『멋진 여우씨』)이 있는데, 이게 먹히지 않던 게 2010년 초반”이라고 했다. 그는 “이 아이들이 크니 교과서 내용도 이해하지 못하는 중학생이 되더라”고도 했다.   · 정확하게는 어휘력 부진 : 박주용(심리학) 서울대 교수는 “논란이 됐던 해프닝만 봐도 알 수 있듯, 문해력 부진의 핵심은 어휘력”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학생들을 가르치는 그 역시 “대학생들의 어휘력 수준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특히 문어체에서 많이 쓰이지만 구어체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한자어에 취약하단다. 그는 “영어가 우리 말 깊숙이 침투하면서 영어 어휘력은 크게 늘었다”고 평가했다. 문해력만 해도 ‘리터러시’라는 단어로 널리 쓰인다.    ━  ④ 왜 저하됐나: 주범은 스마트폰   · 주범은 스마트폰 : 4명의 전문가 모두 스마트폰을 주범으로 꼽았다. 무엇보다 스마트폰이 책 읽기에서 멀어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박주용 교수는 “심심해야 책을 읽는데, 스마트폰 때문에 심심할 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초·중·고교 학생들은 입시 공부에 치여 책 읽을 여유가 없는데, 그 와중에 스마트폰이 끼어들어 더 책을 읽지 않게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최승필 저자 역시 “스마트폰이 보급돼도 인터넷망이 좋지 않으면 책을 읽는데, 우리나라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잘되어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최나야 교수도 “인터넷이 발달한 이 시대엔 디지털 읽기도 달성해야 할 중요한 과업”이라면서도 “지금은 너무 그쪽으로만 쏠려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빡빡하게 많은 양의 글을 읽는 경험, 중간중간 넘기면서 후루룩 읽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읽는 경험은 아날로그 미디어인 종이책을 통해 길러진다”면서 “이런 경험이 줄면서 인터넷상에서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오해해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홍인재 교장은 “스마트폰으로 인해 상호작용이 준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아동 시절부터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가족 간 대화가 줄었다는 것이다. 그는 “식당에 가면 젊은 부부가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여주고 자기들끼리만 대화하는 장면을 자주 본다”면서 “상호작용이 줄면 문해력이 발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 코로나19, 양극화 키웠다 :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가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면서 전반적인 학습 결손이 생긴 건 맞지만, 그 영향은 계층과 상황에 따라 달랐다고 설명했다. 최나야 교수는 “학교에서 일정 시간 공부를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한데, 일정 기간 그 시간이 뭉텅이로 사라진 만큼 영향이 없을 수 없다”면서도 “그렇다고 모든 아이가 문해력이 저하된 건 아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온라인 학습으로 인한 학습 결손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이라 해도 학교의 부재로 인해 생긴 시간을 다른 활동이나 콘텐트로 채울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면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오히려 학교의 부재 기간을 효율적으로 보냈다고 할 수 있는 아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주용 교수 역시 “코로나19로 인한 문해력 저하는 저소득 취약계층일수록 더 컸을 것”이라고 했다. 최승필 저자는 “온라인 학습과 실내활동 증가로 스마트 기기 노출이 전반적으로 늘었다”면서 “코로나19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로 인해 스마트폰 노출이 늘어난 게 문제”라고 말했다.   · 교육 과정도 문제 : 홍인재 교장은 7차 교육과정 개정을 문제 삼았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한글 해득 과정이 초등학교 1, 2학년 과정에 충분히 있었던 게 이후 급격히 줄었다는 것이다. 홍 교장은 “1, 2학년 국어 교과가 독해와 추론에 집중되면서 격차를 더 벌렸다”며 “1학년 때는 의성어나 의태어뿐 아니라 어휘와 문장 표현, 그리고 정확하게 글씨 쓰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7차 교육 과정 이후 한글 해독이 사교육 시장에 완전히 맡겨지고 말았다”며 안타까워했다. 최나야 교수도 2021년 hello! Parents와의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입학 이후 명시적이고 체계적인 문자 교육이 시작되는데, 1학년 1학기 때 문자 해독을 완료한다”며 “진도가 빠른 편”이라고 말한 바 있다.   hello!Parents는 3주간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4명의 문해력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문해력을 집중 조명하고자 한다. 2023년 우리 사회 문해력 현주소를 진단하고, 한글 학습부터 읽기, 쓰기, 창의력 교육으로 이어지는 문해력 향상 방법론을 다룰 예정이다.    ■ hello! Parent 문해력 집중 해부 시리즈  「 ① “문해력, 읽고 쓰는 능력이 전부 아니다” 문해력 전문가 4인의 진단(3월 20일 발행) ② “읽었는데 모르겠다는 아이들, ‘이것’ 없었다” 최나야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3월 23일 발행) ③ “문해력 부진 주범은 사교육” 12년 논술 강사 출신 『공부머리독서법』 저자 최승필(3월 27일 발행) ④ “내가 매 수업 글쓰기 과제를 내는 이유” 박주용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3월 30일 발행) ⑤ “책 읽어주기와 소리 내 읽기부터 시작하라” 『읽고 쓰지 못하는 아이들』 저자  홍인재 전주 신동초 교장(4월 3일 발행)  」 관련기사 ‘아버지가 통닭을 사 오셨다’ 이 문장에 문해력 힌트 있다 4자녀 ‘영어 영재’ 만든 비법 “모르는 단어 뜻 찾지마라” [오밥뉴스]"코로나 이후 한 반에 20% 읽기 어려워 해"… 내 아이의 문해력 수준은

    2023.03.19 14:59

  • 4자녀 ‘영어 영재’ 만든 비법 “모르는 단어 뜻 찾지마라”

    4자녀 ‘영어 영재’ 만든 비법 “모르는 단어 뜻 찾지마라” 유료 전용

    영어책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왔어요. 뜻을 찾아봐야 할까요? 아닙니다. 문맥으로 내용을 대강 파악할 수 있으면 넘어가세요. 그래야 이야기를 즐길 수 있어요.   “영어책, 어떻게 읽어야 하냐”는 질문에 고광윤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정확한 읽기가 아니라 즐거운 읽기가 유창한 영어 실력의 비결이란 얘기다. 고광윤 교수가 8일 대전 중구 슬로우 미러클 센터에서 영어책 읽기의 힘에 대해 말하며 웃고 있다. 그는 “영어책을 재미있게 읽는 즐독이 유창한 영어 실력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성태 기자   고 교수는 영어책 읽기가 영어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주장한다. 단서가 하나 있다. ‘느리게’ 읽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즐겁게, 많이, 잘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고 교수의 표현대로 ‘즐·다·잘’(즐독, 다독, 잘독)을 제대로 하면 영어 실력은 저절로 따라온다. 그의 네 자녀가 별다른 사교육 없이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춘 비결이다. 비단 자녀뿐이 아니다. 그는 수많은 아이를 느리게 읽기를 통해 즐겁게, 많이, 잘 읽게 만들었다. 그 경험을 담아 『영어책 읽기의 힘』과 『영어그림책 느리게 100권 읽기의 힘』을 썼다. 매일 영어 그림책을 한 권씩, 총 100권을 함께 읽는 온라인 북클럽 ‘슬로우 미러클’을 이끌고 있기도 하다.   속도에 열광하는 이 시대에 느리게 읽는 건 정말 먹힐까? 한글도 아닌 영어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을까? 이달 초 고 교수를 만나 직접 물었다.    ━  📢읽기는 ‘귀’에서 시작된다   고광윤 교수는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 한다”고 말했다. 읽기를 위한 1순위 과업은 파닉스 떼기가 아니다. 시작은 듣기부터 해야 한다. 그것도 넘치도록 충분히 들어야 한다. 귀로 넘치게 들은 영어는 눈과 입으로 새어 나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고광윤 교수는 “영어책 읽기는 파닉스가 아니라 듣기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태 기자 영어책 읽으려면, 알파벳과 소릿값을 매칭하는 소위 파닉스부터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흔히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읽기가 되려면 ‘father’라는 단어가 ‘파더’라는 소리와 함께 아빠라는 의미로 머릿속에 먼저 입력돼 있어야 해요. 알파벳 기호와 소릿값을 매칭할 수 있으면 ‘father’라는 단어를 ‘파더’ 하고 읽을 순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의미를 모르겠죠. 그럼 다시 아빠라는 뜻을 그 소리와 매칭시키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파닉스를 하기 전에 어떤 단어가 구어 형태로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충분히 넘치게 들어야 합니다.    얼마나 들으면 충분히 넘치게 듣는 건가요? 사람이 태어나서 말이 트이기까지 약 3000시간이 걸린다고 해요. 이민 간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외국어로 말문이 터지는데, 빠르면 1500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하고요. 충분히 언어가 입력되는 데 최소 1500시간 정도는 필요하다는 얘기죠. 하루에 2시간씩 들으면 2~3년 정도 걸려요. 하지만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얼마나 들어야 충분한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습니다. 적게 들으면 오래 걸리고, 많이 들으면 짧게 걸리겠죠. 절대적인 시간보다 중요한 건 부모의 기다림이에요.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조급해하지 말고, 아이가 오랜 시간이 걸려도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해요.   듣기가 중요한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해요. 정확히는 ‘보고 듣기’를 추천합니다. 오디오만 있는 것보다는 그림이나 영상이 함께 있는 영어 동영상을 활용하는 겁니다.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눈으로 보이는 장면, 상황을 보고 귀로 들려오는 영어가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거든요. 특히 영어를 처음 접하고 전혀 모른다면 더더욱 보고 들어야 해요.   어떤 영어 동영상을 보여주면 좋을까요? 영어 동영상이라고 해도 너무 자극적이고 현란하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어요. 느리고 소박하고 잔잔한 동영상이 좋습니다. 디즈니 극장용 영화보다는 TV용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이 좋아요. 아이 영어 수준에 맞는 프로그램을 고를 수도 있고, 한 편당 시간도 길지 않습니다. ‘Blue’s Clues’(블루스 클루스), ‘Dora the Explore’(도라 디 익스플로러), ‘Arthur’(아서) 등을 추천해요.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나 분야라면 즐겨 보면서 푹 빠지게 될 거예요.   영어를 배우는 건 좋은데, 동영상을 너무 많이 보게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됩니다,  영어 동영상을 볼 때는 두 가지를 꼭 지켜야 해요. 첫째는 절제를 가르치고 실천해야 합니다. 영어보다 중요한 건 생활의 균형을 지켜나가는 일이죠. 시청 시간을 제한하고, 학교 숙제처럼 꼭 해야 할 일을 한 후에 영어 동영상을 시청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또 한 가지는 영어책 읽기를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는 겁니다. 동영상을 충분히 보고 들어서 입에서 영어로 조금씩 나오는 상황에서 책을 안 읽는다면 가다가 마는 겁니다. 이렇게 영어를 접하면 동영상은 좋아하는데 책은 싫어하게 될 수도 있고요. 독서의 가치와 즐거움을 맛볼 수 있도록 반드시 꾸준히 책을 읽어주세요.    ━  📢책에 꿀을 발라라   고광윤 교수가 영어책 읽기에서 가장 강조하는 건 ‘즐독’이다. 일단 영어책에 푹 빠져서 재미있게 읽다 보면(즐독) 많이 읽게 되고(다독) 영어 실력과 이해력도 늘어 잘 읽게 된다(잘독). 일명 ‘즐독, 다독, 잘독’의 선순환 구조다. 하지만 책을 즐겨 읽게 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고광윤 교수는 “영어책 읽기가 영어 공부, 학습이라는 생각과 부담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태 기자 영어책을 즐겁게 읽으려면, 일단 영어를 잘해야 하지 않을까요? 돌도 안 된 어린아이에게, 심지어 태아 때부터 한글책을 읽어주잖아요. 아이가 내용을 이해하라고 읽어주나요? 그냥 좋은 책이니까 읽어주잖아요. 내용을 몰라도 아이는 좋아하죠. 그림을 보면서 상상하고 이해하기도 하고요. 영어책도 똑같아요. 영어책이 아니라 그냥 책을 읽어준다고 생각하세요. 아니, 책을 읽어준다기보다는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을 함께 보면서 즐기고 교감하고 대화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려면 영어 그림책 읽기가 영어 공부, 학습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읽어줘야 할까요?  영어 단어 알고, 구문 익히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책이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고 책을 읽고 싶다는 열망을 갖도록 하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느리게 가야 합니다. 아이의 속도에 맞게 천천히 가야 한다는 거죠. 빨리 가려다 보면 양과 속도에 욕심을 내게 돼요. 조바심도 납니다. 그러면 즐길 수 없습니다. 영어책 읽기가 스스로 즐기는 것이 아닌 학습이 되면 어느 순간 멈춥니다. 영어 난도가 높아지는 순간, 아이들이 영어책을 읽지 않게 되죠. 그런데 느리게 가면서 즐기면 어느 순간 읽는 속도가 붙어요. 결국엔 빨리 더 많이 읽을 수 있죠. 눈덩이 효과입니다.   느리게 읽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세요. 일단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차분한 목소리로 읽어주세요. 아이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의 그림책을 골라 옵니다. 처음에는 그림만 보고 내용을 짐작할 수 있는 쉬운 책이 좋습니다. 아이가 책 페이지를 직접 넘기게 하거나, 쉬운 표현은 함께 읽어보면서 적극적으로 읽기에 참여하도록 하세요. 한 권을 읽더라도 아이가 그 책의 내용을 탐험하고 즐길 수 있어야 해요. 책을 읽고 난 후 아이와 부모가 서로 느낀 점을 말하면서 수다도 떨어보고요. 아이가 아무리 엉뚱하고 황당한 이야기를 해도 칭찬하고 격려해 주세요. 책에 나오는 중요한 표현이나 단어는 발음, 의미가 낯설지 않게 그림이랑 매칭하면서 살펴보는 거로 충분합니다.   모르는 단어나 표현은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책에 나오는 모든 단어와 표현을 알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모르는 단어, 표현이 나올 때마다 일일이 번역하고 해석해 주면 안 됩니다. 매번 우리말 해석으로 뜻을 알려 하면 영어식으로 사고하고 표현하기 어려워져요.   아이가 영어 단어 뜻을 물어보면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요? 아이가 ‘I’m sorry’의 뜻을 궁금해한다고 해볼게요. ‘미안해’란 말이라고 직접 뜻을 말해주기보단 어떤 상황에서 사용되는지 설명해 주세요. ‘미안해’라고 알려주면 그 뜻에만 갇혀요. 실제로 ‘I’m sorry’는 상대방의 말을 잘 못 들었을 때 ‘다시 한번 말해 달라’는 뜻으로도 쓰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상대에게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쓰는 말이야’ 정도로 쓰임을 풀어주는 게 좋습니다. 정확한 단어, 표현을 몰라도 전체 흐름과 분위기, 맥락을 파악할 수 있으면 됩니다. 스토리도 충분히 즐길 수 있죠.   책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도 있는데, 어떻게 하면 책 읽기를 즐겁게 만들 수 있을까요? 책에 꿀을 바르세요. 말 그대로 책 읽는 게 달콤하게 느껴지게 하는 거죠. 그러려면 영어책 읽기와 좋은 기억을 최대한 많이 연결해야 합니다. 아이가 기분이 좋고 편안한 시간에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세요. 맛있는 간식을 곁들여도 좋겠죠. 그리고 아이가 자신의 상상과 생각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세요. 책 읽는 시간을 가장 사랑하는 엄마, 아빠로부터 사랑과 관심, 칭찬을 받는 시간으로 만들어주는 겁니다. 전 ‘안뽀사’를 많이 하라고 해요. 책을 읽으면서 아이에게 ‘안고, 뽀뽀하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겁니다. 고광윤 교수는 “책을 즐기게 만들려면 책 읽기를 즐거운 경험과 결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태 기자   요즘엔 영어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정말 많은데, 그런데도 영어책을 꼭 읽어야 할까요? 본질은 책 읽기입니다. 영어로 쓰여 있을 뿐이죠. 책 속에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통찰이 담겨 있잖아요. 챗(chat)GPT 같은 인공지능이 많은 걸 쉽게 대신해 주는 시대지만, 그럴수록 인간이 해야 하는 역할은 더 명확해요. 창의적으로 어떤 일을 기획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건 사람의 몫이죠. 이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더 깊이 통찰하고 사고해야 해요. 이런 힘은 책 읽기를 통해 나옵니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보면 우리말보단 영어로 쓰인 책이 훨씬 많습니다. 모든 책이 번역되는 것도 아니고, 번역된다고 한들 본래 완벽한 의미를 그대로 옮기기도 어려워요. 그런 면에서 영어책은 책 읽기의 노다지예요. 영어책을 읽으면 영어는 추가로 따라오는 거고요. 이걸 놓친다는 건, 엄청난 배움의 경험과 기회를 놓치는 거죠. 그리고 책 읽기에서 인공지능이 대신해줄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또 있습니다.   어떤 일인가요? 실천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배우고 깨달은 바를 나누고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실천은 어떤 인공지능도 대신해줄 수 없어요. 저는 제가 가진 영어책 읽기의 지식과 경험을 지식과 희망 나눔이라는 행동으로 실천하고 싶어요. 영어 그림책 읽기 모임을 만든 것도 그래서죠.    ━  📢인생이란 책을 빛내자   고 교수가 말한 영어책 읽기 모임은 ‘슬로우 미러클(Slow Miracle)’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영어책을 느리게 읽으면서 지식과 희망을 나누고 기적을 만든다는 의미다. 2020년 7월부터 고 교수가 직접 모임을 이끌고 있다. 그가 인터넷 카페를 통해 매일 읽을 영어 그림책을 글로 써서 추천하면, 참가자들이 각자 책을 읽고 난 느낌과 생각을 올리거나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홈런 문장)을 필사해 올린다. 매일 한 권씩, 100권을 함께 읽는 게 목표다. 지난 2년여간 이런 영어책 읽기에 참여한 참가자들이 1만 명이 넘는다.    슬로우 미러클엔 참가비가 있는데, 참가비는 전액 기부된다. 그동안 슬로우 미러클 이름으로 장애인 복지관 11곳에 운송 차량을 기부했고 미혼모, 한부모가정, 이주여성 시설 등에 책과 필요한 물품을 전달했다. 온라인 책 읽기 모임 운영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들도 있다. 지난해 12월엔 고 교수가 사는 대전에 작은 영어 도서관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공간(슬미센터)도 마련했다. 이곳에선 누구나 무료로 영어 그림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고, 고 교수가 하는 영어책 읽기 강좌도 들을 수 있다.   고 교수는 “돈과 관련된 잡음에서 벗어나야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고 느리게 책 읽기 활동을 오래 이어갈 수 있다”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영어책을 느리게 100권 읽는 슬로우 미러클을 범국민운동으로 발전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고광윤 고수는 영어그림책 느리게 읽기 모임인 슬로우 미러클을 3년째 이끌고 있다. 김성태 기자   느리게 100권 읽기에 1만 명 넘게 참여했어요. 주로 어떤 분들이 참여하나요? 대부분은 처음에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려고, 엄마·아빠표 영어를 해보려는 마음으로 시작한 30대, 40대가 많습니다. 그런데 매일 책을 꾸준히 읽다 보니 엄마·아빠가 영어책 읽는 재미에 빠진다고 말해요. 저는 아이 말고 엄마·아빠 먼저 책 읽기의 재미와 가치를 느껴 보라고 말하죠. 책 읽기에 대한 열정은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전염병 같은 겁니다. 아이를 전염시키려면 부모가 먼저 그 병을 앓아야 해요. 엄마·아빠가 먼저 책에 빠지면 아이는 그걸 알아보고 자연스레 책을 읽습니다. 아, 그리고 제가 특별히 영어책 읽는 재미를 함께하고 싶은 분들이 있어요. 바로 50~70대 ‘젊은 언니·오빠들’이에요.   50~70대요? 은퇴를 앞두거나, 이미 한 분들이죠. 이분들 중엔 삶의 기쁨을 찾기 힘들어하는 분들이 적지 않아요. 방황하기도 하고요. 전 이분들의 인생 후반부가 더 빛났으면 좋겠어요. 영어책 읽기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책 읽기에 대한 애정과 열망이 있는 분들도 있을 거고, 학창 시절이나 젊은 시절 못 했던 영어 공부를 하고 싶은 분들도 있을 거예요. 이런 분이라면 영어책을 읽으면서 재미와 감동도 얻고 자기 삶을 돌아보는 기회도 가질 수 있습니다. 『미스터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책 여행』(The Fantastic Flying Books of Mr. Morris Lessmore) 표지   고광윤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미스터 레스모어의 환상적인 책 여행』(The Fantastic Flying Books of Mr. Morris Lessmore)이라는 책을 소개했다. 책과 이야기를 사랑하는 주인공(모리스 레스모어)이 책과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책을 나누어 주며 세상을 밝힌다는 내용이다. 고 교수는 이 책의 주제를 설명하면서 “우리의 인생은 각자가 직접 써 내려 가는 한 권의 책”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매일 인생이란 책의 한두 페이지를 쓰는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인생의 책을 쓰고 싶으신가요? 인생 책을 쓰는 데 영어책 읽기가 도움을 줄 겁니다. 아이와 부모에겐 많은 재미와 성공의 기회를, 장년과 노년층은 인생을 멋지게 정리할 기회를 줄 테니까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영어책 읽기를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충분히 넘치게 듣기다. 알파벳과 소릿값을 매칭하는 파닉스 학습에 매달리지 말아라. 단어의 소리와 의미가 머릿속에 자리 잡아야 파닉스 학습도 효과가 있다. 충분히 넘치게 듣는 방법으로, 영어 동영상 보기와 영어 그림책 읽기를 추천한다. 포인트는 이 둘을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는 거다. ②영어책을 읽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에 꿀을 바르는 것이다. 아이가 가장 편안해 하는 시간에,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어야 한다. 좋아하는 간식을 곁들이는 것도 좋다. 영어책을 통해 학습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아이가 책 읽기를 좋아하게 만들어라. 그러면 오래 읽을 수 있다. ③아이 영어책 읽어주려고 시작했다가, 책 읽기에 빠진 엄마·아빠가 많다. 엄마·아빠가 책 읽기에 빠지면 아이는 저절로 책 읽기를 좋아하게 된다. 그럼 책 읽으라고 잔소리할 필요가 없다. 」 관련기사 영어 유치원 다니는데도…영어 안 느는 아이의 공통점 무조건 많이 읽어주면 좋다? 책 좋아하는 아이 키우는 법 “책 많이 읽으면 수학 잘한다? 천만에요” 독서·글쓰기 오해 셋

    2023.03.12 15:53

  • “사촌이 땅 사게 도와줘라” 뇌과학자가 본 ‘미래 리더’

    “사촌이 땅 사게 도와줘라” 뇌과학자가 본 ‘미래 리더’ 유료 전용

    사회는 점점 예측이 불가능해질 겁니다. 변화의 속도와 양상, 모든 측면에서요. 빠르게 적응하는 뇌만이 살아남을 거예요. 다양한 환경에 노출해 적응하는 뇌를 만들어야 해요.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챗GPT와 함께 성큼 다가온 인공지능(AI) 시대, 인간은 과연 어떻게 생존해야 할까? 김대수 KAIST 생명과학과 교수에게 이 질문을 한 데엔 이유가 있다. 평소 “타고나는 뇌는 바꿀 수 없지만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삶을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뇌과학자이기 때문이다. 그는 “정해진 방법으로 정답을 찾는 뇌는 이제 더는 쓸모없다”며 “변화에 적응하며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뇌과학자 김대수 KAIST 교수는 “뇌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어떤 삶을 살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김 교수는 유학 한 번 다녀오지 않은 토종 학자로 『네이처』와『사이언스』 같은 세계적 학술지에 이름을 올린 한국의 대표 뇌과학자다. 그의 주요 관심사는 뇌의 능력과 한계. 뇌를 잘만 가르치면 욕망 조절부터 노화 억제까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 교수가 말하는 ‘뇌 가르치기’는 많은 지식을 저장하는 게 아니다. 지식을 다루는 뇌의 능력을 키우는 걸 말한다. 김 교수는 “뇌가 필요로 하는 건 정보가 아니라 정보를 다루는 역량”이라며 “그 역량을 갖춘 뇌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아는 게 많아야 써먹을 것도 많지 않나요? 아무리 많은 정보를 입력해도 뇌는 필요한 정보만 기억해 처리합니다. 이게 바로 뇌의 ‘정보 최소량 법칙’이죠. AI와 차별화되는 지점이에요. AI는 많은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해 움직이지만, 우리 뇌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면 신경회로가 과열돼 뇌세포가 죽거든요. 주어진 에너지로 최선의 결과를 얻어야 하는 게 뇌의 숙명인 거죠. 그래서 우리 뇌는 오로지 목표만을 추구합니다.   지식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훈련이 중요한 이유가 그래서군요.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훈련을 해야 하나요?  시행착오를 겪어야 해요. 도전하고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거죠. 이 과정에서 뇌는 발달합니다. 실제 실험 쥐의 뇌를 보면 먹잇감을 놓치는 순간 창의성을 담당하는 부위가 가장 활성화됩니다. 실패한 뒤에야 성공 방법을 깨닫는 겁니다. 아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그 경험 속에서 실패를 맛보고, 그 순간 뇌가 성장하니까요. 그런데 시행착오를 통해 뇌가 성장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해요.    어떤 조건인가요?  실패에 대한 ‘좋은 기억’이 저장돼야 해요. 뇌는 부정적 경험은 회피하고, 긍정적 경험은 되살리려는 특징이 있거든요. 그래서 실패한 아이를 혼내면 안 됩니다. 그럼 시행착오 자체를 피하거든요. 시도 자체를 칭찬하면 뇌는 다시 도전하려고 합니다. 또 다른 조건은 실패를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교육은 실패에 대한 ‘나쁜 기억’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영재원, 영어유치원 등 이른 나이부터 경쟁하며 패배감을 얻습니다. 규율이 엄격한 학교에서는 실패를 통해 배울 기회를 박탈당하고요. 시대는 시행착오를 통해 뇌를 더욱 훈련하도록 요구하는데, 우리 사회는 뇌를 정반대로 만들고 있어요.    실패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낮은 목표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작은 성공을 맛봐야 뇌가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제가 놀라운 사실을 알려드리죠. 개구리를 잡을 때 사용하는 신경회로와 큰 기업을 일굴 때 사용하는 신경회로는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러니까 개구리 잡기 같은 작은 목표에 도전하면서 신경회로를 발달시키면 나중엔 기업을 일구는 큰 목표에도 도전해 성공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아이에게 적용해 볼까요? ‘명문대 가기’ 같은 거대한 목표를 설정하지 마세요. ‘하루에 한 개 영단어 확실히 알기’ 같은 작은 목표를 세우세요. 그리고 작은 성공을 통해 뇌를 훈련하세요. 테슬라를 창업한 일론 머스크 아시죠? 그 사람을 보면 뇌의 이 같은 특징이 선명하게 보여요. 처음에는 전기자동차를 만들겠다고 말하고 다녔는데, 요즘은 전 세계 친환경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거대 담론으로 커졌죠. 그의 뇌는 이제 화성 개척을 바라봅니다.   도전 앞에서 멈칫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도전 의지가 없는 아이는 없어요. 더 깊이 생각하고 천천히 행동할 뿐이죠. 제 딸도 그랬어요. 수줍어서 놀이터에서 제대로 놀지 못했죠. 같이 놀이터에 가서 철봉에 매달리는 걸 도와줬어요. 싫어할 줄 알았는데,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매일 철봉에 매달리게 하고, 매달리는 시간을 스케치북에 그래프로 그려서 보여줬어요. 성장을 눈으로 확인시켜준 겁니다. 칭찬도 해주고요. 제 딸이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매일 그렇게 도전하더니, 동네 철봉 스타가 됐어요(웃음). 스스로 만든 결과와 칭찬이 아이의 자신감을 키워준 겁니다. 실패했다는 건 도전했다는 거잖아요. 도전은 칭찬받아 마땅하죠. 한 가지 주의할 건, 무조건 칭찬해선 안 된다는 거예요. 스스로 실패의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사실에 근거한 정보를 줘야 합니다. 아이가 수학 문제를 틀렸다면 “이 문제는 함정을 파놨더라. 문제를 꼼꼼히 읽으면 함정도 피해갈 수 있을 거야”라는 식으로요. 제가 매달리는 시간을 그래프로 만들어 보여준 것도 그래서죠.    ━  📢 멈출 때를 알아야 살아남는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2020~2022학년도) 의대 합격자 중 재수생 이상의 비율은 78.7%였다. 삼수 이상 장수생 비율은 40%를 넘겼다. 김대수 교수는 “습관적인 학습이 불러온 결과”라고 지적한다. 사회가 정한 목표에 갇혀 보상도, 의미도 없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그런 뇌로는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없다”며 “습관을 멈추고 내 생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뇌의 관찰자 의식을 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뇌의 관찰자 의식이라니, 그게 무엇인가요? 요즘에 유행하는 메타인지입니다. 내 생각을 제3자의 관점,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바라보는 겁니다. 우리 뇌는 의식적으로 나라는 존재와 나의 생각을 분리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을 분리해 냈다면, 이제 그 생각을 바라봅니다. 그러면 그 생각과 그걸 만들어 낸 외부 자극을 분리할 수 있어요. 생각 안에는 사실 두 가지가 있는 셈이죠. 어떤 자극, 그리고 자극을 가지고 생각해서 얻은 결과물(판단)요. 이렇게 생각을 들여다보는 훈련을 하다 보면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어요. 뇌의 관찰자 의식이 깨어난 거죠.    뇌의 관찰자 의식이 약하면 어떻게 되죠?  보이는 대로, 습관대로 행동합니다. 다수의 판단을 내 판단으로 착각하고 휩쓸려 행동하기도 하고요. 이걸 동조화(conformity)라고 하는데, 쉽게 말해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겁니다. 의대에 갈지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한 게 아니라 남들이 좋다니까 가는 거죠. 예측할 수 있는 시대엔 동조화가 생존 전략이었어요. 답이 선명히 보이니까 대세를 따르는 게 안전했죠. 여러 사람이 검증한 방법이 정확한 방법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제 아닙니다. 변화의 속도는 엄청나게 빠르고, 양상은 복잡하잖아요. 예측할 수 없어요. 그럴 땐 친구 따라 강남 가면 같이 망할 수 있어요.    뇌의 능력 중 하나는 나의 생각을 관찰할 수 있다는 거다. 김 교수는 “뇌의 관찰자 의식을 깨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멈출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뇌의 관찰자 의식을 깨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안다는 느낌’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뇌는 갖고 있는 지식이 부족하거나 뇌의 역량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안다는 느낌이 들게 해요. 그래야 최소한의 정보로 빠른 의사결정을 내리니까요. 아이들이 교과서에서 줄 친 부분만 읽고는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게 대표적이에요. 사실 줄 치지 않은 곳에 모르는 내용이 많습니다. 제가 학생들에게 줄 치지 않은 곳을 더 세심히 살피라고 하는 건 그래서예요. 또 한 가지 팁은, 알고 있는 걸 정리해 적어 보는 겁니다. 안다고 생각했던 것도 막상 적어 보면 모르는 게 많았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세요. 결정하고 판단하려면 정보를 찾고, 질문을 하게 되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여행을 추천해요. 아이에게 직접 여행 계획을 세우게 하고, 그 계획대로 떠나는 겁니다. 여행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여행지부터 날짜, 이동 경로 등 주어진 정보를 가지고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죠. 이때 중요한 건 우선순위입니다. 시간도, 예산도 정해져 있으니 모든 걸 다 할 수 없잖아요. 맛집에 가는 게 더 중요한지, 특별한 활동을 하는 게 더 중요한지 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내 취향을 발견합니다. 여행을 계획하는 건 창업과도 비슷합니다. 여행도, 창업도 상상하고 목표를 세우고 정보를 찾아 실행에 옮기는 일이니까요.   여행 계획은 아이에게 맡길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인생 계획을 맡기기엔 좀 미덥지 않아요. 뒤처질까 봐 불안하고요. 양육자도 마찬가지로 동조화되기 때문이에요. 내 결정이 내 의지에 따른 것인지 매 순간 점검해야 합니다. “영어 유치원에 가면 영어를 잘 할까?” “명문대 가면 다 잘 살까?” 질문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세요. 교과서적인 얘기 같지만 뇌과학적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뇌는 정보를 넣거나 뭔가를 하지 않는 순간에도 학습하거든요. 실패의 순간을 분석하고, 원인을 찾아내고, 다음 전략을 계획합니다. 자는 동안에도 뇌는 보고 들은 걸 정리해요. 이렇게 뇌는 늘 학습하지만 처리 양에 한계가 있다 보니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기다려 주세요.    ━  📢 남을 성공시킬 줄 알아야 리더다   김대수 교수에 따르면 뇌는 본디 이기적이다. 뇌는 모든 에너지를 나를 위해 쓰도록 조정한다. 범죄도 그래서 일어난다. 뇌의 속성대로라면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그것이 사람의 목숨을 해치는 일이라도. 그런 뇌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어떻게 타인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걸까? 김 교수는 “가족과 동료 그리고 내가 속한 집단 등을 나의 일부로 인식하기 때문”이라며 “남도 나의 일부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미래 인재”라고 말했다.    남을 자신의 일부로 인식한다, 무슨 의미인가요? 뇌가 인식하는 ‘나’는 확장이 가능합니다. 조종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면 나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내 몸에 달린 팔, 다리 등을 통해 나를 인식합니다. 그러다가 최초로 관계를 맺는 양육자와 가족으로 자아 개념을 확대합니다. 이후 사회생활을 하며 동료, 지역, 국가 등 내가 소속돼 영향을 주고 받는 집단까지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죠. 동료애, 애국심 등이 그 결과물이고요.    미래엔 왜 이 능력을 필요로 하나요?  나와 남을 연결할 줄 안다는 건 다른 사람의 뇌를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니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 하나 해볼게요. 남을 성공시켜 본 경험이 있나요? 김 교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미래에는 타인의 생각을 빠르게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며 “공감력 높고 배려할 줄 아는 능력이 미래에 필요한 리더 자질”이라고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글쎄요, 안타깝게도 딱히 떠오르는 장면이 없어요.  이 질문은 구글의 면접 질문이에요. 내가 아닌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가를 알아보려는 문제입니다. ‘상대가 원하는 성공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도움을 원했을까?’ ‘도움을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등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한 답을 듣고 싶었을 겁니다. 이렇게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자기의 일부로 여겨 읽을 줄 아는 것, 이게 바로 ‘공감’입니다. 공감 능력이 뛰어나면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쉽게 간파할 수 있어요. 비즈니스에서 너무 필요로 하는 능력이죠. 고객에게 공감하는 능력이니까요. 특히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고 양상이 복잡해지면 사람들의 생각도 그렇게 됩니다. 그걸 빠르게 잡아낼 수 있어야 인재인 셈이죠. 여기서 주의할 게 있어요. 공감력이 높다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공감 능력이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게 있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공감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해요. 공감력을 악용한 게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에요. 상대가 자신의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게 하는 거죠. 이기적인 뇌가 나의 이익을 위해 남의 생각을 이용하는 겁니다. 반대로 공감력을 잘 활용한 게 바로 배려입니다. 내가 손해를 좀 보더라도 타인의 성공을 돕고, 그 사람의 고통을 나눠 갖는 거예요. 뇌의 이기적 속성에 정반대되는 행동이죠. 4차 산업혁명 시대인 이런 사람이 성공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배려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왜죠?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키워드는 ‘연결’이거든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플랫폼 기업을 보세요. 이 기업들은 소비자에게는 좋은 상품을, 공급자에게는 타깃에 맞는 소비자를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소비자와 공급자의 이익이 높아질수록 플랫폼 기업의 이익도 함께 상승하죠. 남이 성공할 때 나도 성공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진 겁니다. 제가 오늘 이 인터뷰에 응한 것도 저의 이익만 놓고 보면 손해입니다. 제 연구 시간이 그만큼 줄 뿐이죠. 하지만 저는 인터뷰에 흔쾌히 응했어요. 인터뷰를 통해 과학과 교육이 바뀌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그렇게 과학과 교육이 바뀌면 분명 제 연구와 제 삶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미칠 거고요. 남이 성공해야 나도 성공하는 시대라는 걸 명심하세요.   김대수 교수는 자아를 확장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능력은 태어나 처음으로 관계 맺는 양육자와의 연결 경험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타인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활성화되는 거울신경이 아동기에 가장 활발하기 때문이다.   양육자는 아이가 세상을 보는 창입니다. 아이의 배려심을 키우고 싶다면 양육자가 먼저 배려해야 하고, 아이를 창의적으로 키우고 싶다면 양육자부터 창의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뇌는 전략가입니다. 목표에 맞는 최소한의 정보만 습득해 처리합니다. 지식의 양보다 시행착오를 통한 지식 활용 훈련이 필요합니다. 실패에 의연해져야 합니다. 낮은 목표에서 시작해 작은 성공 경험을 늘리고, 사실에 기반한 칭찬으로 자신감을 높여 주세요.  -습관화된 뇌는 창의성이 떨어집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멈출 줄 아는 뇌가 필요합니다. ‘안다는 느낌’에 속지 말고 관찰자 의식(메타인지)을 깨워 주세요. 여행 계획 세우기 등 아이 스스로 결정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세요. 뇌는 자는 동안에도 학습합니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 주세요.  -‘공감’은 21세기 리더의 자질입니다. 4차산업 혁명 시대의 키워드는 연결입니다. 남의 성공을 도와 나 그리고 사회 전체의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하죠. 공감과 배려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아이는 양육자와의 연결을 통해 세상을 배웁니다. 양육자가 먼저 아이와 공감하고 배려해 주세요.  」 관련기사 "신기하다" 애들에게 머리칼 뜯긴 과학자…정재승 바꾼 그 사건 [오밥뉴스] "창의력? 열린 질문 그리고 이 2가지 기억하라" 경제학자의 비결 "세균부터 우주, 괴물에서 AI까지" 소설 쓰는 과학자, 상상력의 원천은?

    2023.03.05 14:09

  • “문해력 키우고 싶은가? 그럼 종이접기 시켜라”

    “문해력 키우고 싶은가? 그럼 종이접기 시켜라” 유료 전용

    방관은 한자로, 곁 방(傍)에 볼 관(觀)을 써요. 아이가 혼자 할 수 있게 지켜보는 거죠. 필요하면 전략적으로 개입하고요. 아이 혼자 내버려 두는 방치와는 다릅니다.   출간 한 달 반 만에 1만 부 넘게 팔린 『자발적 방관 육아』 저자이자 12년차 초등교사 최은아(36)씨. 그에게 “방관 육아가 대체 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저 놔두는 게 아니라 지켜보다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육아라는 것이다. 포인트는 지켜보는 기다림에 있다. 초등학교 교사이자『자발적 방관육아』저자 최은아씨는 “방관육아는 아이가 혼자할 수 있게 돕고, 필요할 때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며 “방치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김성룡 기자 그는 현재 프랑스에서 8세‧5세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남편의 해외 발령 때문에 시작된 해외살이로 아이들은 특별한 사교육 없이 스스로 공부하고 있다. 여덟 살 첫째는 일곱 살 때 자발적으로 시작한 영어로 현지 학교의 수업을 큰 어려움 없이 따라가고 있다. 다섯 살인 둘째는 샤워도, 화장실 뒤처리도 혼자 한다. 양육자의 방관이 아이의 자립적인 생활습관을 만들고, 결국 자기주도학습으로 이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어떻게 하면 자립적으로 생활하고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아이를 기를 수 있을까? 지난 15일 최씨를 만나 직접 물었다.    ━  📢방관은 방치가 아니다   평범한 교사였던 최씨가 유명해진 건 한 방송에 그의 집이 소개되면서부터다. 2017년 남편의 회사가 경북 김천으로 이전하면서 거주지를 옮기게 된 그는 집 한가운데 중정이 있는 전원주택을 지었다. 중정에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다. 이런 집을 지은 데는 최씨의 방관 육아 철학도 한몫했다.   전원주택과 방관 육아가 어떤 관련이 있나요? 집에서 신나게 놀아야 학교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공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파트에서 아이가 뛰어놀려면 놀이터나 키즈카페를 가야 하죠. 안전 등의 문제로 양육자가 함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일하면서 아이들을 매일같이 놀이터나 키즈카페에 데리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집 한가운데에 마당을 만들었어요.   ‘방관 육아’를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초등학교에 있다 보니 생활습관이나 학습 태도가 좋은 아이들이 눈에 띄었어요. 학부모 상담 때 그런 아이의 부모님들께 비결을 물었죠. 공통된 특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 ‘별거 안 했는데, 아이가 혼자 잘 컸다’고 하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열이면 열 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양육자가 별거 안 하는 것’이 노하우란 생각이 들었어요. 양육자의 자발적 방관이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를 키운다는 결론에 이른 거죠.   방관과 개입, 방치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두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게 방관이에요. 거리로 표현한다면 1m 정도 떨어져 있는 거죠. 아이가 뭘 하는지 지켜보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에는 나서지 않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면 언제든 손을 내밀고요. 개입은 독서‧숙제 같은 아이의 생활이나 학습을 양육자가 A부터 Z까지 계획하고 주도하는 걸 말해요. 방치는 뚝 떨어져서 아이가 뭘 하는지도 알지도 못하고, 도와주지도 않는 상태고요.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사람에게는 누구나 학습 욕구가 있습니다. 한창 말을 배우는 아이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을 보세요. 이 욕구를 어떻게 발현시키느냐가 중요해요. 양육자가 방관하면 아이는 혼자 이것저것 탐색하면서 배우는 것에 흥미를 갖게 돼요.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 깨닫죠. 하지만 양육자가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아이들의 학습 동기는 ‘부모’가 되어 버립니다. ‘엄마가 시켜서’ 문제집을 풀고 ‘아빠가 시켜서’ 책을 읽는 식이죠. 이런 애들은 학교에 와서도 교사들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물어봐요. 초등 저학년 때는 성적이 잘 나올 수 있어도 오래가지 못합니다. 반대로 방치하면 아이가 뭘 원하는지, 뭐가 필요한지 알 수 없어서 문제고요.   방관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욕심을 내려놓는 게 가장 중요해요. 사실 결혼 전부터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다고 마음먹었지만, 흔들릴 때가 많았어요. 우리 애만 뒤처질까 불안했고, 주변에서 ‘아이의 기회를 뺏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죠. 하지만 결심을 굳힌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어요.   그게 뭔가요? 첫째가 네 살 때, 육아에 지친 나머지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고 심하게 대한 적이 있어요. 그때 아이의 겁먹은 표정이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나요. 스트레스 때문인지 아이의 아토피가 심해지더라고요.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어요. 그저 아이가 건강하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자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그러자 방관 육아를 실천할 힘이 생기더군요. 12년차 초등교사인 최은아씨는 “모범생 아이들의 공통점이 양육자의 자발적 방관육아였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  📢프랑스 유치원생은 스스로 뒤처리한다   프랑스에서는 유치원을 다니려면 아이 혼자 대소변 뒤처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유치원 때까지 교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한국과 다른 점이다. 프랑스 육아의 핵심이 자율과 통제이기 때문이다. 신발 신기, 옷 입기 등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교사가 절대 돕지 않는다. 아이와 적당히 거리를 두는 최씨의 양육법과 통하는 부분이다. 그는 “아이들이 아주 짧은 기간에 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던 건 방관 육아 덕분”이라며 “혼자 생활할 수 있어야 자기주도학습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자립적인 생활 습관과 학습이 어떤 관계가 있나요? 생활과 학습은 동떨어진 게 아니에요. 걸어야 뛸 수 있는 것처럼 자립적인 생활 습관이 잡혀 있어야 학습도 스스로 할 수 있어요.   자립적인 생활습관을 어떻게 길러줄 수 있을까요?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양육자가 해주지 마세요. 저희 집 첫째는 5개월 때부터 이유식을 혼자 먹었어요. 유아 식사용 의자에 앉혀놓고, 쌀미음과 숟가락을 줬죠. 흘리는 게 반이었고, 손에 잡히는 걸 다 집어던져 숟가락을 5개나 썼어요.   그냥 먹여주는 게 더 편했겠네요. 초반에는 아주 힘들었지만, 포기할 수 없었어요. 이유식부터 실패하면 아이의 주도성을 키워줄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화장실에서도 먹여보고, 의자 주변에 전부 횟집 비닐을 깔기도 했죠. 한 달 정도는 먹이는 것보다 치우는 게 더 일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흘리는 것보다 입으로 들어가는 양이 늘었어요. 돌쯤 됐을 때는 식당에서도 혼자 의자에 앉아 식사할 수 있게 됐죠.   이유식 습관에 특별히 신경 쓴 이유가 있나요? 혼자 하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제가 밥을 좀 편하게 먹고 싶었어요. 초반에는 양육자가 이유식을 먹여주면 얌전히 잘 받아먹지만 돌쯤 되면 음식을 던지고 식판을 뒤집는다고 들었어요. 결국 먹이고 치우느라 이중으로 에너지를 써야 하는 셈이죠. 저는 치우는 것만 하자고 마음먹은 겁니다. 아이가 음식을 흘리든 먹든 신경 안 쓰니 저도 밥 먹을 여유가 생겼어요. 아이 먹는 동안 마음 편히 식사하고 나서 아이가 흘린 음식을 치웠죠.   아이가 음식 흘리는 걸 두고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초반에 부모님이 보시고는 ‘왜 애를 개밥 먹이듯 하느냐’고 언짢아하셨어요. 음식이 담긴 그릇에 손을 넣어서 조물조물하고, 그 손을 얼굴이나 몸에 갖다 대니 엉망진창이었죠. 하지만 아이가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해주셨어요. 외식하러 가서 옆 테이블은 아이 밥 먹이느라 부모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는데, 저희는 부모와 아이 모두 편하게 밥을 먹었거든요.   아이 스스로 하게 한 일이 또 있을까요? 위험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일을 제외하고 전부 아이 혼자 하게 했어요. 2~3세부터 야채 필러를 이용해 과일을 깎아 먹었을 정도예요. 식사 시간이 되면 자신이 쓸 수저‧젓가락을 가져왔고요. 놀다가 다치면 약 바르고 밴드 붙이는 것도 스스로 했죠. 그렇게 습관을 들이다 보니 둘 다 다섯 살 때부터 스스로 샤워를 하기 시작했어요.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숙제나 준비물을 알아서 챙겨갔습니다.   숙제를 안 해가거나, 준비물을 빠뜨릴까 봐 걱정되진 않았나요? 아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내준 과제를 까먹고 안 했다면 선생님께 혼나야겠죠. 준비물을 잊고 안 가져갔어도 마찬가지고요. 이 과정을 통해 아이는 ‘앞으로 더 잘 챙겨야겠다’는 생각을 할 거예요. 자기 주도성이 더 강화되는 거죠. 양육자가 하나부터 열까지 해주면 아이는 성장할 수 없어요. 프랑스에 와보니 이런 생각에 더욱 확신이 들었어요.   프랑스에서는 아이를 자립적으로 키운다고 들었어요. 초등학교 1학년 간식으로 오렌지가 나왔어요. 한국이었다면 오렌지가 한입에 먹기 좋게 잘려서 나왔겠죠.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껍질을 까지 않은 오렌지와 칼‧컵‧포크를 제공했어요. 아이들은 칼로 오렌지 껍질을 까 컵에 담은 다음 포크로 찔러서 즙을 내 먹어야 했죠. 교사는 아이가 요청하기 전까지는 도움을 주지 않고요. 한국과 달리 유치원생도 대소변 뒤처리를 혼자 해야 합니다.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최씨는 “아이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야 자기주도학습도 가능하다”며 “자율과 통제를 중요시하는 프랑스 교육이 방관육아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서울 마포구 한 공원에서 두 딸과 산책하는 모습. 김성룡 기자  ━  📢“문해력 키우려면 종이접기 시켜라”   최씨는 아이들에게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았다. 수학은 물론 한글도 아이들이 관심 보이기 전에는 가르치지 않았다. 사교육은 피아노‧미술학원 몇 달 다닌 게 전부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조기교육의 문제점을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하려면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중요한데,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은 익숙한 것을 안다고 착각했다. 그런 그가 국어‧수학‧영어 대신 열심히 시킨 게 있다. 바로 줄넘기와 종이접기다.   줄넘기‧종이접기를 시키셨다고요? 줄넘기는 자기 조절력, 종이접기는 문해력을 키울 수 있어요.   무슨 의미인지 선뜻 이해가 안 됩니다. 공부 잘하는데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바로 학교 수업을 잘 듣는 거예요. 그러려면 수업시간에 앉아서 교사 설명에 집중해야겠죠. 이때 필요한 게 자신의 몸을 통제하는 ‘자기 조절력’이에요. 수업시간에 재밌는 얘기가 생각나도 친구와 떠들지 않고, 줄을 서기 싫어도 참고 가만히 있는 거죠. 이런 자기 조절력이 단체생활에서 가장 중요해요. 사실 1학년 입학 첫날 줄을 세워보면 어떤 애가 공부를 잘할지 눈에 보여요. 실제로 반에서 줄넘기를 가장 오래 하는 애가 수업 태도가 좋고요.   언제부터 줄넘기를 시켰나요? 다섯 살 때부터요. 줄넘기 규칙은 간단합니다. 줄을 넘어야 하고, 넘지 못하면 다시 시작해야 하죠. 스스로 줄을 돌리며 뛰어넘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몸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체득할 수 있어요. 또 어떻게 하면 줄을 잘 넘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실패와 성공을 경험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기 조절력이 생기죠. 축구‧농구‧태권도 같은 운동도 좋지만, 줄넘기가 가장 간단해서 추천합니다.   종이접기는 문해력과 무슨 관계인가요? 문해력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잖아요. 학습의 기본 중의 기본이죠. 최근 들어 ‘문해력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표현만 달라졌을 뿐 결국 ‘국어 잘해야 공부 잘한다’는 의미입니다. 종이접기는 ‘반으로 접었다 펴라’ ‘가위로 선을 따로 오려라’ ‘양쪽 날개를 편 뒤 3.5㎝ 지점에 표시하라’ 같은 글을 보고 입체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잖아요. 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완성품을 만들 수 없어요. 종이접기가 문해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종이접기를 가르쳤나요? 돌이 됐을 때 함께 서점에 가서 종이접기책이랑 색종이를 사줬어요. 아이가 ‘도저히 못 하겠다’고 하면 살짝 도와주고요. 결과물을 제대로 만들면 박수를 치면서 ‘잘했다’고 칭찬했죠. 좀 더 체계적인 방법이 필요하면 ‘종이접기 급수 자격증’을 추천해요. 3급부터 1급까지 아이 혼자 종이접기를 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거든요. 책 속 과제를 모두 접어 작품을 제출하면 종이접기협회에서 심사해 자격증과 메달을 줍니다. 문해력과 성취감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일석이조의 기회죠.   이쯤에서 안 물어볼 수가 없는데요. 정말 한글도 먼저 안 가르쳤나요? 책육아가 한창 유행이었지만 제대로 된 전집을 사준 적도 없어요. 애들한테 책 한 번 제대로 읽어주지 않았고요. 한글을 배울 수 있는 학습 벽보도 안 샀죠. 하지만 다섯 살 정도 되니까 자기 이름이나 친구들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천천히 알려줬어요. 예컨대 친구 이름 ‘지수’를 궁금해하면 쓰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길 가다 ‘수학학원’ 간판을 보고 ‘지수의 수’라고 이해하는 식이었죠. 한글학습에 신경 안 쓴 건 조카를 보고 느낀 바가 있어서기도 해요. 돌 때 완성된 문장 형태로 말할 정도로 언어능력이 뛰어났는데, 세 살 때 학습지를 시작하면서 완전히 흥미를 잃었거든요. 최씨는 “국어‧수학보다 줄넘기‧종이접기 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며 “줄넘기는 자기 조절력, 종이접기는 문해력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성룡 기자 최씨는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두는 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양육자가 아이에 대해 A부터 Z까지 신경 쓰다 보면 기대하는 게 많아지고 실망도 커진다. 자연스레 잔소리도 많아진다. 하지만 방관하면 양육자는 정신적‧육체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아이와 관계는 저절로 좋아진다.   학교에서 유독 보건실을 자주 가는 아이들이 있어요. 애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 겁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하게 두고, 그 시간에 더 많이 사랑해 주세요. 그럼 공부는 알아서 합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방관은 방치가 아닙니다. 방치가 아이를 내버려두는 것이라면, 방관은 아이를 지켜보다 필요하면 전략적으로 개입하는 거죠.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이 바로 양육자의 자발적 방관이었습니다. ②자기주도학습의 출발은 자립적인 생활 습관입니다. 이유식 먹는 것부터 과일 깎기, 식탁 차리기 등 아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만들어주세요. 프랑스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이 오렌지껍질을 까먹고, 유치원생이 혼자 대소변 처리를 합니다. ③문해력 키우려면 종이접기 시키세요. 만드는 방법을 설명한 걸 읽고 종이를 접으면서 문해력이 향상됩니다. 신체 조절능력을 키워주는 줄넘기도 추천합니다. 」 관련기사 거실 TV 빼면 공부 잘할까? 공간 전문가가 콕 집은 단점 우리 아이 성적 올리려면…회복탄력성 전문가의 조언 ‘아버지가 통닭을 사 오셨다’ 이 문장에 문해력 힌트 있다

    2023.02.26 13:55

  • 종이 전체를 검게 칠한 아이, 당신이 부모라면 어떤 생각?

    종이 전체를 검게 칠한 아이, 당신이 부모라면 어떤 생각? 유료 전용

    아이는 힘들면 어떤 방식으로든 신호를 보내요. 이걸 놓치면 아이는 ‘나는 혼자구나’ 하고 느끼고, 상처는 깊어질 겁니다. 아이가 말을 안 한다고요? 그럴 땐 그림을 보세요. 그림으로 아이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30년 임상 경력의 미술치료 전문가 김선현(디지털치료임상센터장) 연세대 원주의과대학 교수는 미술 치료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르고 지나칠 뻔한 아이의 구조 신호를 그림으로 포착해 제때 적절한 도움을 건넬 수 있다는 것이다.   베테랑 임상미술치료사인 김현선 교수는 “그림은 아이의 마음을 대신 말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김 교수는 세계미술치료학회장, 대한임상미술치료학회장 등을 역임한 자타 공인 국내 최고의 미술 치료 권위자다. 그는 30년간 마음의 병을 안고 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가족과의 이별, 성폭력 등으로 마음의 문을 닫은 사람부터 세월호 사고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등 트라우마를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가늠하기 힘든 상처를 입은 이들이 많았다. 김 교수는 그림으로 이들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고, 다양한 미술 프로그램을 통해 상처를 치유했다.   그런 그가 hello! Parents와 함께 ‘그림으로 하는 마음 상담’을 시작한다. 그림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분석하고, 양육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미술 활동도 소개한다. 김 교수는 “코로나19로 오랜 사회적 격리 기간을 거치면서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늘어났다”며 “지금이야말로 아이들의 심리 건강 상태를 되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  미술로 치료가 될까? 된다!   김 교수는 상담 칼럼을 시작하기에 앞서 ‘미술이 얼마나 큰 치료 효과가 있겠나’ 하는 의구심부터 떨쳐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그 의심이 미술 치료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미술 치료가 친근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정확히 어떤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효과에 대한 의심이 드는 것 같아요. 미술 치료는 미술 활동을 통해 감정과 내면을 표현하게 하고, 심신의 안정을 찾아주는 치료법이에요. 그림 그리기 외에도 만들기, 부수기, 쌓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하죠. 일상 속에서는 꺼내기 힘든 자신의 감정, 갈등, 공격성까지도 마음껏 표출합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알게 되고 마음의 짐을 더는 심리적인 치료 효과가 분명히 있어요.   미술 치료를 통해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건 아니잖아요. 예를 들어 암환자에게 미술 치료가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암환자는 죽음과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억울함 등으로 인해 마음이 매우 복잡합니다. 미술 치료에선 먼저 ‘당신이 암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의 생각과 감정을 그려 보라’고 해요. 그림을 보면 환자가 상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가 드러나죠. 암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정의 단계인지, 화를 내는 분노의 단계인지, 아니면 모든 걸 다 받아들인 수용의 단계인지요. 이를 토대로 각 상황에 맞는 미술 치료가 들어갑니다. 치료 과정에서 자기의 감정을 마주하고 그림에 쏟아내면서 심리적으로 치유되는 분이 많아요. 이렇게 정신적으로 안정을 찾으면 생존율, 완치율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장애 아동에겐 미술 치료가 어떤 효과가 있나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어요. 그림도 자기가 관심 있는 한 가지 주제만 계속 그리는 경향이 있죠.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만 그리는 식으로요. 그런데 1년 동안 미술 치료를 받으면 엘리베이터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요.   어떤 변화가 보이던가요? 처음에는 문도 안 열리는 답답한 엘리베이터를 그리죠. 그러다 엘리베이터 안에 문이나 버튼 같은 것도 생기고, 마침내 사람도 그려요. 자폐증 아이에겐 그게 큰 변화고 발전입니다. 미술이 자기 안에 갇혀 있던 관심을 밖으로 돌리는 역할을 한 겁니다. 자폐증 아이에겐 그림 그리기뿐 아니라 점토 같은 부드러운 재료로 스트레스를 풀게 하기도 하고, 다양한 재료를 접하게 함으로써 변화에 대처하는 힘을 기르는 치료도 많이 합니다.    트라우마를 남기는 큰 사건을 겪은 사람에게도 미술 치료가 효과가 있을까요? 성폭력 피해 아동을 상담한 적이 있어요. 싫어하는 사람을 그려보라고 했죠. 처음에는 짝궁, 그다음에는 이혼해 따로 사는 아빠를 그리더니 세 번째 만났을 땐 치마 입은 남자를 그렸어요. 누구냐고 물었더니 가해자라고 하더군요. 그 사람에게 치마를 입힌 건 아이의 바람 때문이었어요. 가해자가 여자처럼 힘이 약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요. 미술 치료를 통해 사건을 마주하는 힘을 길렀기 때문에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거죠. 이후에 저는 점토로 사람을 만들고 난 후 망가뜨리게 하거나 점토 칼로 찍고 후벼 파고 식으로 분노를 표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어요.   코로나19로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위태로워졌다고들 합니다. 그림을 통해 본 아이들의 상태는 어땠나요? 가장 두드러지는 건 그림 속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거죠. 그 외엔 얼굴을 찡그리거나 혼자 있는 사람 그림이 많아요. 학교도 못 가고 친구도 못 보니 답답하고 외로운 마음이 나타난 겁니다. 그런데 행복해 보이는 그림들도 있어요. 코로나에 걸리면 가족이 다 모여 지내게 되잖아요. 격리해야 하니까요. 그 격리 시간이 아이들에겐 즐거운 시간이었던 겁니다. 맞벌이 가정의 경우 그렇게 가족이 모여 있기도 어려우니까요. 아이들이 경험한 세상은 이렇게 우리 생각과 다르기도 해요.   김선현 교수는 “미술 치료는 일상 속에서 꺼내기 힘든 감정과 갈등을 표출해 내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는 치유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  그림이 모든 걸 말해주진 않는다   미술 치료에서는 상담자가 그린 그림의 각 요소를 분석해 심리 상태를 진단한다. 수많은 임상 사례를 토대로 그림으로 나타난 무의식적인 심상을 해석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천편일률적인 분석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장의 그림이 모든 걸 말해주진 않는다는 얘기다.   그림을 통해 심리를 분석하려면, 어떤 걸 그리게 해야 하나요? 그림에는 한 사람의 감정, 생각, 경험 등이 담겨 있어요. 그림 심리검사에서는 특정 상황을 주기도 하고, 자유롭게 그림을 그려보라고도 해요. 특정 대상을 그리라고 지시할 때는 집, 나무, 사람, 가족, 학교생활 모습, 빗속에 서 있는 사람, 사과 따는 사람 등을 그리라고 해요. 검사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건 한 장의 종이에 집, 나무, 사람을 함께 그리는 KHTP 검사(Kinetic House Tree Person)예요. 종이에 집과 나무 한 그루를 그리고, 뭔가를 하는 사람을 그려보라고 지시합니다. 아이가 집, 사람, 나무 중 무엇을 가장 크게 그렸고, 나무는 집과 사람에게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등 각각 요소의 관계를 살펴봅니다.   나무, 집, 사람 각각은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있나요? 집 그림에선 가정을 포함해 물리적인 생활 환경과 대인관계에 대한 태도를 살펴볼 수 있어요. 나무를 통해선 무의식에 잠재된 심리적, 신체적 자아상을 엿볼 수 있고, 사람을 보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느끼는지 짐작해 볼 수 있죠. 집 그림의 예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볼게요. 창문은 아이가 대인관계에서 겪는 경험과 느낌을 상징합니다. 아이가 그린 집에 창문이 없다면 외부에 무관심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폐쇄적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죠.   각각 그림을 분석할 땐 어떤 사항을 주의 깊게 보나요? 그림의 전체적인 인상부터 세부적인 요소까지 다 고려합니다. 일단 무엇을 그렸는지 봅니다. 그 대상을 종이의 어디에 배치했는지, 각 대상 간의 구도와 거리도 따져 봅니다. 어떤 색을 쓰고, 얼마나 굵은 선으로 그렸는지도 살피죠. 그림을 그리는 과정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해요.   그리는 과정도 고려하는군요. 어떤 걸 먼저 그리는지, 생략하거나 지운 것은 없는지, 그림을 그리다 망설여서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는지 보는 겁니다. 제일 먼저 그린 대상은 가장 관심이 있는 대상을 나타내요. 그 대상을 그리는 데 자신이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하고요. 무언가를 그렸다 지웠다 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숨기고 싶다는 걸 뜻하죠. 예를 들어 성폭력을 당했던 아이들은 하반신 성기 부분을 그렸다 지웠다 하는 모습을 보이곤 합니다. 그래서 그림 심리 검사를 할 때는 그리는 과정도 관찰하고, 그림에 대해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그림과 관련해서 어떤 대화를 하나요? 가족 그림을 그렸다면 각각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이런 모습이 일상의 흔한 모습인지 등을 물을 수 있어요. 그림에서 자신의 기분은 어떤지, 가족이 함께 있으면 기분이 어떤지 묻죠. 어떤 가족 구성원을 그리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 없지만 무엇을 하는지도 물어봐요. 그림을 어떤 생각과 의도로 그렸는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아이가 별다른 의도 없이 그림을 그렸거나 표현력이 부족할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럴 가능성도 있죠. 그래서 그림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그린 그림에는 다 이유가 있거든요. 상담했던 부모님 중에 아이가 종이 전체를 온통 검은색으로 칠했다면서 걱정하시던 분이 있었어요.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요. 아이에게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물으니 ‘김’을 그렸다는 거예요. 언젠가 아침에 엄마가 구워줬던 고소한 참기름 냄새 풍기는 윤기 나는 김이 너무 맛있었다면서요(웃음). 아이 그림에 담긴 마음과 경험을 이해하는 게 이렇게 중요합니다.   김선현 교수는 “그림으로 심리 검사를 할 때는 단편적, 일률적 해석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  ‘그림 육아’의 핵심 준비물, 이것이다   김 교수는 미술이 치료 도구이기에 앞서 소통의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전문 미술 치료사가 아니더라도 양육자가 가정에서 그림을 통해 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소통하는 일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림 육아’에 가장 필요한 준비물은 아이의 그림에 공감하려는 자세라고 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낙서처럼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잖아요. 아이의 그림에도 정상 발달 단계가 있나요? 아이들은 첫돌부터 만 3세 정도까지 아무렇게나 잡히는 대로, 목적 없이 선을 그려요. 그리는 행동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러다 원 형태를 그리게 돼요. 이후 반복적이고 원근이 무시된 형태의, 자기가 중심이 되는 그림을 그리죠. 그림 속에 아이의 마음과 세계관이 드러나는 건 자아 개념이 생기기 시작하는 만 3세부터입니다. 만 5세가 지나면서 좀 더 정확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심리 분석이 가능해요. hello! Parents와 하는 ‘그림으로 하는 마음 상담’을 만 5세 이상 아이로 제한한 이유죠. 그림 실력도 늘고, 말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능력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거든요. 다만 공격적이거나 우울한 느낌의 그림을 6개월 정도 계속해서 그린다거나 오랜 기간 한 가지 색만 고집해서 사용한다면 전문적인 상담 치료를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그림 그리는 걸 즐기지 않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림 그리기를 거부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경우 강요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림 그리기 대신 아이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다른 미술 활동을 제안해 보세요. 무언가를 끄적이고 그리는 건 인간의 본능입니다. 만약 아이가 그림 그리기를 즐기지 않는다면 양육자가 무의식적으로 아이의 그림을 평가하진 않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아이가 그림에 대해 핀잔을 들었다면 잘 못 한다고 생각해 안 하려고 할 수 있거든요. 다만 가정에서도 어느 정도의 미술 교육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정 미술 교육요? 양육자가 전문적으로 아이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사람 정도는 본래 제 형태대로 그릴 수 있도록 도와주셔야 해요.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아이들이 사람 그리는 걸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만약 그쯤에도 사람을 동그라미에 막대 모양으로만 그리고 있다면, 사람의 형태를 제대로 그릴 수 있도록 알려주어야 한다는 거죠. 얼굴, 목, 몸통, 손, 발, 다리를 제 위치에 그릴 수 있도록요. 그리고 한 가지, 만 2~3세 나이라면 색칠 놀이는 권하지 않아요.   색칠 놀이가 왜 안 좋은가요? 색칠 놀이에는 도안이 그려져 있죠. 아이가 먼저 대상을 관찰하고, 상상하고 자기 방식으로 표현할 기회를 앗아가는 거예요. 색칠 놀이에 익숙해지면 아이만의 고유한 그림체가 사라집니다. 그저 도화지에 색연필, 크레파스 정도면 충분합니다. 자유롭게 그리는 게 창의성 발달에도 더 좋습니다.   김선현 교수는 “자아 개념이 생겨나는 만 3세 이후부터 아이의 그림에 자신만의 생각과 세계가 나타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김 교수는 “아이 그림 수준과 완성도에만 관심을 가지거나 평가하려 들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이의 그림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기질과 개성도 모두 다르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양육자의 잣대와 시선으로 아이 그림을 바라보면 그림 속 아이 마음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림으로 표현된 아이의 경험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들어 주세요. 엄마, 아빠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아이의 진짜 마음도 보입니다. 공감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죠.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 미술, 치료가 됩니다. 그림엔 그 사람의 생각과 마음, 경험이 담겨 있어요. 숨겨진 마음을 그림이 말 대신 전해줄 수 있죠. 미술 활동을 통해선 일상에서 꺼내기 힘든 감정과 갈등, 분노를 표출하며 치유가 이뤄져요. ② 그림이 모든 걸 말해주진 않아요. 그림 심리 검사에선 대상과 위치, 구도, 거리, 색 등 다양한 요소를 살핍니다. 그린 순서와 지운 것 등까지 입체적으로 봐야 해요. 그림을 두고 대화도 나눠야 합니다. ③ 미술 치료의 핵심은 소통입니다. 가정에서도 양육자가 아이와 그림을 통해 대화를 나눠 보세요.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그림 육아가 가능합니다. 이때 아이 그림을 평가하기보단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세요. 」 관련기사 “서울대생은 경주마 같았다” 그 교수가 가천대 간 이유 아이 폰 중독 막을 두 습관…‘디지털 지능’ 창시자의 픽 6가지 중 2가지 골라보세요…일과 육아, 둘 다 할수 있어요

    2023.02.22 15:05

  • 3040이 급격히 늙어간다, 이젠 병상서 환갑 맞을 판

    3040이 급격히 늙어간다, 이젠 병상서 환갑 맞을 판 유료 전용

    노화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누군가는 한 번에 0.5초씩, 누군가는 2초씩 흐르죠. 이 속도를 늦춰야 합니다. 당신의 하루에 달렸어요. 오늘, 무엇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돌아보세요. 하루하루가 노화 속도를 결정합니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3040세대의 성과와 소비를 지향하는 삶이 계속되면 부모 세대보다 빠르게 늙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강정현 기자   나이 들어도 아프지 않고, 활기차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희원(39) 서울 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노년을 팔팔하게 보낼 수도, 병상 위에서 보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가 가능한 젊은 시기부터 ‘성공적인 나이 듦’을 과업으로 여겨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지속가능한 나이 듦』 『당신도 느리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를 쓰고, 노화 예방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도 그래서다.   정희원 교수는 ‘노화’(Frailty)를 연구하는 노년내과 전문의다. 그가 몸담은 노인 의학에서는 나이를 숫자가 아닌 신체 기능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아직 숫자로는 청년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노년에 가까운 젊은 환자들도 만난다. 정 교수에 따르면 지난 몇 년 사이 젊은 성인의 건강 지표가 눈에 띄게 나빠졌다. 신체 질량지수 등의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정 교수는 “지금 우리의 삶은 가속 노화를 부추기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며 “가속 노화를 방치하다가는 지금의 3040 세대는 죽을 때까지 오랜 시간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노년을 맞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속 노화가 대체 뭔가요? 실제 나이보다 신체가 빠르게 늙는 겁니다. 노화 시계의 흐름이 시간의 흐름보다 빠르게 가는 건데요. 노화가 진행되면, 처음에는 만성 질환들이 생기면서 점차 기능이 떨어집니다. 기능이 떨어진다는 건 곧 보호자가 필요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기능이 저하되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노화 속도가 빠르면 60대에 이미 90대의 기능을 갖게 될 수 있고, 속도가 느리면 90대에도 60대의 기능을 가질 수 있습니다.   3040에게 노화는 아직 먼 얘기로 들립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렇지 3040 세대의 가속 노화는 이미 곳곳에서 엿볼 수 있어요. 30~40대에 50~60대에서 나타나는 질병을 겪는 분이 통계적으로도 점점 늘고 있습니다. 치매에 걸린 듯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이유 없이 기력이 떨어져서, 이곳저곳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다며 노년내과를 찾습니다. 이 환자들은 나이에 비해 몸과 마음이 부쩍 나이 들어 있습니다. 저는 3040 세대의 가속 노화가 더 빨라질 것으로 보는데, 우리나라 국민의 비만 유병률 추이가 그 근거입니다.   비만율이요? 비만은 당뇨병, 고혈압, 혈관 질환 등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입니다. 2020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비만 유병률이 48%에 이릅니다. 그중에서도 30대, 40대 남성이 각각 58.2%, 50.7%로 2000년대 초반(30%대)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아졌습니다. 여성의 경우 ‘마른 비만’이 많습니다. 마른 비만은 겉으로 보기엔 말랐지만, 근육량이 부족합니다. 근육량이 부족하면 근골격계가 급속도로 나빠지죠. 허리와 목의 통증으로 이동성이 떨어지면서 당뇨·고지혈증 등 대사 질환이 연쇄적으로 찾아옵니다.   하지만 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대수명은 오히려 늘었어요.  기대수명은 늘었지만, 건강 수명은 지금도 잘 늘지 않고 있습니다. 100세까지 살지만 건강하게 사는 기간은 오히려 줄었다는 겁니다. 미국의 연구를 보면 1990년대 노인보다 2020년 같은 연령대 노인의 건강 상태가 더 나쁩니다. 이 현상이 우리나라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봅니다. 실제 ‘국민건강영향조사’ 결과를 보면 노인의 건강 상태가 2014년 이후로 좋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금의 30~40대는 가속 노화를 부추기는 환경에 노출돼 있습니다. 초가공식품(식품첨가물 함량이나 당도가 매우 높고 원재료를 알기 어려운 가공식품) 같이 비만을 유발하는 식품을 자주 먹고, 자동차와 스마트폰 등 활동량을 줄이는 기계를 끼고 살죠. 이대로 가다간 지금의 30~40대는 부모 세대보다 더 빨리 늙고, 기대수명도 짧아질 수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가속 노화가 개인이 아닌 사회문제로 커질 수 있다는 거예요. 저는 가속 노화가 한국 최고의 위기라고 봅니다.    개인의 가속 노화가 국가에 위기라고요? 상상이 안 가는데요. 지금의 30~40대가 빠르게 늙으면, 일찌감치 돌봄이 필요해집니다. 20년 뒤 80~90대를 돌봐야 할 50~60대도 함께 병상에 눕게 된다는 얘기죠. 극단적으로 들리겠지만, 국민의 절반이 온갖 병치레를 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한국은 아이도 낳지 않잖아요. 20년 뒤 노년 인구를 부양할 20~30대 수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가속 노화는 의료비와 돌봄 비용 증가를 높여 국가 전체를 위기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는 얘깁니다. 2020년대 30~40대는 의지할 곳 없이 병상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당 떨어져” 믹스커피 한잔…이게 내 집중력 도둑이었다 어릴 때 살이 키로 안 간다…다이어트 금물, 아침 먹여라 "성조숙증 걸리면키 안 큰다? 그 걱정 유일하게 한국만 합니다"    ━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가속 노화에 불을 붙이다   정희원 교수에 따르면 노화는 시간과 유전자, 그리고 누적된 삶의 방식의 영향을 받는다. 시간과 유전자는 어쩔 수 없지만, 삶의 방식은 바꿀 수 있다. 그래서 이미 가속 노화가 진행됐을지라도 관리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거다. 단, 운동과 식단만으로는 안 된다. 삶의 유지 기능을 떠받들고 있는 ‘네 가지 기둥(4M)’을 관리해야 한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흔히 건강하려면 운동과 식단만 떠올리는데, 이건 반쪽짜리 예방법”이라며 “네 가지 기둥을 입체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 가지 기둥은 무엇인가요?  이동성(Mobility), 마음 건강(Mentation), 질병으로부터의 건강(Medical issues), 나에게 중요한 것(What Matters to me)을 말합니다. 이 네 가지를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설계해야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기능을 지키고, 노화 시계도 늦춥니다. 중요한 건 이 네 가지를 동시에 관리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몸은 복잡적응계입니다. 신체와 정서, 사회적 요인 등 여러 요소가 서로 영향을 미쳐 선순환 또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그래서 아픈 증상을 볼 때도 여러 가지를 함께 들여다봐야 해요. 근골격계의 가속노화라고 할 수 있는 목·허리·어깨 통증의 경우 아픈 부위만 볼 게 아니라 평소 앉는 자세, 관절의 가동 범위, 스트레스 지수 등도 함께 봐야 합니다. 나쁜 자세가 굳어진 이유도 찾아야 하고요. 저는 그 기저에 어떤 즐거움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쾌락 중독’도 있다고 봅니다.   정희원 교수는 노화를 늦추기 위해 이동성, 마음가짐, 질병으로부터의 건강, 내게 중요한 것 네 가지를 다면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강정현 기자 쾌락 중독이요? 우리의 뇌가 쾌락에 중독된 상태를 말합니다. 뇌는 강한 자극이 들어오면 처음에는 큰 즐거움을 느끼지만, 점차 뇌가 느끼는 즐거움의 수준을 낮춥니다. 자극으로부터 뇌를 보호하기 위한 적응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자극을 받으면 처음에는 즐겁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시시해집니다. 결국 쾌감을 느끼기 위해 더 강한 자극을, 더 자주 찾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마시는 술의 양이 늘고, 동영상도 점차 짧고, 강한 자극의 것을 자주 찾게 됩니다. 이런 과한 자극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높여 몸과 마음을 고장내며, 가속 노화로 이어집니다.   SNS를 하면 스트레스가 풀리지 않나요?  SNS는 스트레스를 유발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SNS 사용에 따라 스트레스와 우울감이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남과의 비교’가 원인 중 하나로 보이는데요. 다른 사람이 올린 비싼 옷, 멋진 차, 호화로운 여행을 보면 부러움과 질투심이 생깁니다. 한발 더 나가 자신이 초라해지죠. 이런 상태가 되면 집중력과 판단력이 떨어지고, 초라함을 잊게 해줄 더 큰 쾌락과 자극을 좇게 됩니다.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고, 그걸 위해 일에 집착하고요. 술·담배 등 건강에 유해한 행동을 할 가능성도 커집니다. 스스로 에너지를 써가며 가속 노화의 악순환에 빠지는 겁니다.   여기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의식적으로 욕심을 줄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일종의 ‘마음 챙김’된 상태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쾌락의 총량은 자극에 비례해 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게 중요한 것’(What matters to me)을 찾으세요. 그래야 외부 자극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어요. 운동과 식사, 수면 등 건강한 생활습관을 오래도록 유지할 힘도 생기고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고의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내 주변을 낯설게 보고, 새롭게 바라보세요.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사기 전에 정말 필요한지, 과시를 위해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보세요. 내 생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행동과 변화를 시각화하는 겁니다. 내가 먹은 음식, 걸친 옷, SNS 활동 등을 기록하고 그 뒤에 일어난 내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알아차리세요. 그래야 무엇이 욕심을 부추기는지 알아챌 수 있습니다. 찾아낸 자극원을 덜어내면 쾌락 중독에 억눌려 있던 건강한 활동들, 예를 들어 운동, 독서, 풍경 보기 등에 눈이 갈 겁니다. 그렇게 노화 지연 선순환을 시작하는 겁니다.    ━  📢 젊을 때 불편해야 노년이 편하다   꾸준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단, 충분한 수면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챙겨야 한다. 알지만 실천이 쉽지 않다. 정희원 교수는 우리 사회의 편리함을 이유로 꼽았다. 몇 년 전만 해도 10분 거리는 걸어 다녔는데, 요즘은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다닐 수 있다. 노화를 늦추려면 편리함을 버리고 움직여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특히 그는 “운동과 이동을 분리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일부러 운동하려 애쓰지 말고, 걸어 다니라는 얘기다.    운동이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시간 내는 게 어려워요.  헬스클럽에 가야만 운동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운동할 기회는 많습니다. 택시나 킥보드를 타는 대신 걸으면 되고,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면 됩니다. 많은 사람이 시간을 벌기 위해 다양한 수단을 이용한다고 하지만, 따져보면 오히려 더 시간을 쓸 때가 많습니다. 길은 늘 막히고, 엘리베이터를 부르면 늘 15층에서 내려오죠. 사람의 근골격계는 성능 좋은 ‘교통기관’으로 설계돼 있습니다. 애초에 설계된 보폭과 걷는 속도에 따르면 사람은 1㎞ 가는 데 빠른 걸음으로 10분 이내면 충분합니다. 하루 20㎞를 걷고 뛰어도 문제가 없죠. 그렇다고 걷기만 해선 안 됩니다. 전반적인 이동성을 높이려면 다양한 운동으로 여러 신체 기능을 골고루 강화해야 합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걷기에 최적화돼 있다. 운동과 이동성을 분리하지 않고, 평소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강정현 기자   어떤 운동으로, 어떤 신체 기능을 강화해야 할까요?  고관절과 견관절, 대퇴부 등은 스트레칭으로 관절 가동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스트레칭은 자기 전과 기상 직후에 챙겨주는 것이 좋습니다. 코어 근육이나 둔근을 강화하는 운동도 해야 합니다. 평소 생활에서 코어 근육을 강화하고, 스트레칭을 꾸준히 해서 긴장 없고 자연스러운 자세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이 밖에 요가와 같은 균형 운동, 근력과 유산소 운동을 각각 해줘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번에 할 수 있는 운동은 없습니다. 한 가지 운동만 하면 자세가 굳어질 수 있거든요. 각 기능을 높이는 운동을 번갈아가며 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충분한 수면과 균형 잡힌 영양도 중요하고요.   현대인은 필요 이상으로 영양을 섭취한다는 주장도 있어요. 먹는 걸 줄여야 한다고요. 잘못된 접근 방식입니다. 문제는 단순 당과 정제 곡물입니다. 설탕, 과일 주스, 빵, 파스타 등이 이 두 가지를 이용해 만든 음식에 속해요. 단순 당과 정제 곡물은 혈당을 빠르게 올려요. 그럼 우리 몸은 혈당을 낮추기 위해 인슐린이란 호르몬을 분비하고요.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에너지가 근육이 아니라 지방과 간에 쌓입니다. 근육에 쌓인 에너지는 사용되지만, 지방과 간에 쌓인 에너지는 비만으로 이어지죠. 비만은 혈당과 혈압 조절에 문제를 일으키고, 노화 체형을 만들고요. 단순 당과 정제 곡물을 피하는 것이 건강한 식사의 기본입니다.   건강한 식사란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혈당 변동성이 크지 않은 식사를 말해요. 흰 쌀밥 대신 잡곡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습니다. 하루 정도 당분이 없고 탄수화물 함량이 낮은 식사를 실험적으로 해봐도 좋습니다. 단, 이런 식사는 장기간해선 안되고 3일 정도 해보면 좋습니다. 그동안 느꼈던 ‘식욕’이 ‘식탐’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겁니다. 이렇게 식욕 중추가 정상화되면 하루 동안 에너지를 섭취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총 에너지 섭취량이 자연스럽게 줄어듭니다. 또 한 가지, 식단과 함께 근육도 단련해야 합니다. 근육은 혈당의 흡수율을 높여줘 혈당 변동성을 완만하게 유지하게 합니다. 평소 활동량이 적고, 근육이 없으면 흡수되는 혈당이 적어 마른 비만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아요. 외식도 많이 하고, 술도 마시게 되고요.  건강한 식단만 고집하기란 쉽지 않아요. 그렇지 않은 식사, 해도 됩니다. 다만 다시 돌아와야 해요. 그러려면 건강한 식사가 습관이 돼야 합니다. 식단 매뉴얼을 만들어 보세요. 예를 들어 평소보다 더 많이 먹은 날은 운동 시간을 늘린다거나 과식한 다음 날은 절식하는 식의 규칙을 만드는 겁니다. 제 경우 햄버거를 좋아했는데, 이런 방식으로 한 달을 조절하니 패스트푸드의 자극에 무던해지더군요.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도 더 강한 자극을 찾지 않게 됐다는 겁니다.   정희원 교수는 자신도 한때 가속 노화의 악순환에 빠졌었다고 말했다. 취미로 호른 연주를 시작했는데, 잘하려고 하다 보니 매일 4시간씩 밤낮없이 연습하며 몸을 혹사하고 있더란다. 그때 떠오른 게 “나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연주를 잘하기보다 연습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연습 시간은 1시간으로 줄이고 네 가지 기둥(4M)을 챙겼다. 몰입된 상태로 연습할 수 있는 마음 챙김, 회복 수면, 근력 운동, 좋은 식사 말이다. 그랬더니 호른 연주 실력이 더 좋아졌단다. 정 교수는 “우리는 늘 더 좋은 대학,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같은 걸 좇아왔는데, 정말 손에 얻었는지 돌아보자”고 말했다. “결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나에게 중요한 것을 찾고, 삶의 여러 요소를 두루 둘러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가 수렁에 빠졌을 때, 바퀴 하나만 꺼내면 되나요? 네 바퀴가 모두 나와야 하죠. 노화도 그렇습니다. 한두 가지 약을 먹는다고 늦출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삶의 방식 전반을 개선해야 합니다. 노화를 막는 데 요행은 없어요. 바로 지금 움직이세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3040 세대가 부모보다 빨리 늙고 있어요. 이들 세대의 가속 노화 현상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비만율입니다. 20년 전보다 크게 늘었죠. 기억력저하·만성통증 등 노쇠 증상 환자도 증가했고요. 이대로면 30~40대는 부모 세대보다 더 빨리 요양병원에 가야 할 겁니다.  ②가속 노화는 불균형한 생활 습관에서 비롯됩니다. 쾌락 중독이 만든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악순환을 끊으려면 술이나 SNS 같이 쾌락을 유발하는 자극원을 제거하고, 내게 정말 중요한 것(What matters to me)을 찾아야 합니다. ③젊을 때 몸이 불편해야 노년이 편합니다. 운동하세요. 이동과 운동을 분리하지 말고, 걸어다니십시오. 여기에 더해 유산소·근육·코어·균형감 운동을 골고루 하고요. 식사는 단당류와 정제곡물만 피해도 효과가 큽니다.  」    ※ ‘hello! Parents’ 연재 콘텐트는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인 The JoongAng Plus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23.02.19 14:24

  • 만 3세, 뽀뽀 전 동의 구해라…이게 성교육의 시작입니다

    만 3세, 뽀뽀 전 동의 구해라…이게 성교육의 시작입니다 유료 전용

    성교육은 인권 교육이에요. 왜냐고요? 성(性)은 관계잖아요.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건강하게 관계 맺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인권 교육이죠.   한국의 1세대 성교육 전문가로 꼽히는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는 성교육의 의미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성교육은 행위를 중심으로 논의된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피임이나 혼전순결 같은 ‘안전교육’에 머물러 있다. 성폭력‧성희롱 예방처럼 성의 부정적인 부분에만 치우쳐 있기도 하다. 배 교수가 나서서 성교육에 대해 말하고 다니는 이유다. 그는 “잘못된 성교육을 바로잡고 싶다”고 말했다. 1세대 성교육 강사로 꼽히는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그는 “성교육은 인권교육”이라고 일갈했다. 김현동 기자 대한성학회 명예회장이기도 한 그는 올해로 26년 차 성교육 강사다. 『유쾌한 남자, 상쾌한 여자』 『십 대를 위한 자존감 성교육』 등 관련 책도 여러 권 썼다. 성교육 시작은 우연한 기회였다. 둘째 출산 후 경력이 단절됐던 1997년 한 센터에서 성 상담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오랫동안 성교육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성을 공부할수록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스스로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성교육이 인권 교육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한 사람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성교육이 왜 한국에선 이렇게 부정적인 이미지의 교육이 된 걸까? 지난 6일 그를 만나 직접 물었다. 타인을 존중하고 건강하게 관계 맺도록 가르치는 방법도 물어봤다.    ━  “행위와 안전을 넘어 가치관·권리까지 가르쳐야 성교육”   우리 사회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에 대한 이중 잣대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성을 금기시하고 언급하는 것을 꺼리지만, 한쪽에선 버젓이 성매매가 이뤄지고 룸살롱에 가는 문화가 만연하다는 것이다. 성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는 사회 곳곳에서 드러난다. 성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책이나 영상 같은 콘텐트는 없는데, 미디어에선 성폭행이나 성희롱, 조건만남 같은 부정적인 뉴스가 흘러넘치고 인터넷 플랫폼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불법 촬영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이 이래서 더 성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배 교수는 주장한다. 특히 그는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포괄적 성교육이 뭔가요? 성과 관련해 인지‧감성‧신체‧사회적 측면과 관계 맺기를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걸 의미합니다. 행위‧안전‧위생 교육을 넘어 가치관과 권리, 문화 등을 폭넓게 가르치는 거죠. 2018년 유네스코가 발표한 ‘국제 성교육 가이드’엔 신체적 건강 외에 관계‧가치관‧권리‧문화‧발달 같은 내용이 포함돼 있어요. 성교육을 통해 자신과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하며 건강한 관계를 맺는 방법을 가르치라는 거죠. 바로 ‘섹슈얼리티 교육’입니다.   ‘성(sex)’이 아니라 ‘섹슈얼리티(sexuality)’ 교육이라고 부르는군요? 섹슈얼리티는 신체의 건강과 가치‧태도‧행동까지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원래 ‘성(sex)’은 성별이나 성행위‧관계 등을 포괄하는 의미였어요. 하지만 언제부턴가 성행위로서의 의미로만 사용되기 시작했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요. 그래서 세계성학회에서도 섹슈얼리티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2011년부터요. 행위를 넘어 신체와 관계의 건강, 문화, 권리를 포괄하는 의미로 성을 넓게 정의한 것이죠. 우리만 아직 과거에 머무르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만 유독 뒤처진 이유가 있을까요? 성교육이 성행위를 부추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 콘돔을 이용한 피임 교육을 하려고 하면 학부모가 반대합니다. 괜히 알려줘서 더 하게 되는 거 아니냐는 거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조기에 성교육을 하면 오히려 첫 성 경험 나이가 늦춰지죠. 성교육은 행위뿐 아니라 건전한 가치와 태도도 함께 가르치니까요. 네덜란드에서는 만 4세부터 성교육을 시작하는데, 처음으로 성 경험을 갖는 평균 나이가 17세입니다. 세계 평균(13.6세)보다 늦죠.   어려서부터 정보(?)를 충분히 줬는데, 정작 첫 경험은 세계 평균보다 늦다니 놀랍네요. 성교육을 통해 진지하게 성에 대해 고민하니까 호기심이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겁니다. 게다가 섹슈얼리티 교육, 포괄적 성교육을 하면 안전이나 위생, 행위를 넘어 권리와 가치관‧문화까지 폭넓게 다루잖아요. 나와 관계를 맺는 타인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그 사람의 권리는 얼마나 중요한지, 두 사람의 권리가 존중된 상태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겁니다. 네덜란드의 사례는 성교육의 의미와 효과를 아주 잘 보여주죠.   그래서 성교육은 인권교육이라고 주장하시는군요? 성교육을 제대로만 받는다면, 자존감도 높아져요. 나도, 타인도 소중하다는 걸 알고, 이해하고 존중하게 되니까요. 우리나라에 유독 성폭력이나 성희롱 사건이 많잖아요. 저는 그것도 다 성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엔 20대 남성과 여성의 갈등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는데요, 여기에도 제대로 된 성교육이 정말 필요합니다.   이대남과 이대녀의 젠더 갈등이 성교육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요? 너무 멀리 가신 거 아닐까요? 물론 젠더에 대한 왜곡된 시각,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 같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죠. 하지만 저는 문제의 저변에 성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있다고 생각해요. 돈만 주면 여성의 성을 살 수 있는 사회에서 여성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는 건강한 생각이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반대로 여성은 그런 분위기에서 남성을 신뢰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성교육만 제대로 이뤄졌어도 갈등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불거지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배정원 교수는 중·고교 보건 교육과정에서 이미 수십 년간 사용해 오던 ‘섹슈얼리티’라는 용어가 삭제되고 ‘성 평등’이나 ‘성 소수자’ 같은 단어가 다른 단어로 대체된 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섹슈얼리티나 성 소수자 같은 말이 왜곡된 성 인식을 심어준다는 건 오해”라며 “성을 건강하게 드러내고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시기에 오히려 피해 가려는 결정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피하기보다 드러내되, 관계와 권리라는 관점에서 폭넓게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성교육은 인권교육이라는 그의 철학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는 “룸쌀롱으로 대표되는 성을 상품화하는 문화가 남녀 갈등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  “만 3세, 뽀뽀하기 전 동의 구해야”   배 교수가 주장하는 ‘포괄적 성교육’은 가정에서도 할 수 있고, 해야 한다. 스스로 소중한 존재라고 인식하도록 돕는 게 시작점이다. 그는 “아이에게 스킨십을 하기 전 동의를 구하는 것부터 하라”고 조언했다.   아이를 안거나, 아이에게 뽀뽀하기 전에 해도 되냐고 물어보라는 건가요? 아이의 동의를 구하면, 아이는 자신의 의사가 존중받는 경험을 합니다. 아이가 싫다고 하면 하지 말아야죠. 아이가 거절했을 때, 아이를 불편하게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의 결정이 엄마나 아빠에게 상처를 줬다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그럼 다음에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상대가 상처를 받을까 봐 원치 않는 스킨십을 할 수도 있어요.   스킨십을 사랑을 표현하는 수단이기도 하잖아요. 하지만 상대가 원치 않는다면 하지 말아야 하죠. 부모 자식 사이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아이가 싫다고 거절했을 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그럼 OO이가 하고 싶을 때 알려줘”라고 하세요. 아이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양육자마저도 내 의사에 반해 만질 수 없다는 걸 알려주는 게 가장 강력한 교육입니다. 엄마, 아빠도 함부로 못 만지는데, 다른 사람이 만지게 둘까요? 친구나 선생님도 마찬가지라고 알려주세요. 특히 성기는 병원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에게 보여주거나, 남의 걸 보려 해서도 안 된다고 명확하게 알려주세요.   스킨십 전에 동의를 구하는 건 몇 살부터 해야 하나요? 대화가 통할 때부터요. 아이마다 발달이 다르지만, 보통 만 3세 정도부터가 아닐까요?   너무 빠른 거 아닌가요? 어렸을 때부터 거절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어요. 부모니까, 친구니까, 사랑하니까 같은 이유로 원치 않는 스킨십을 허용하게 하지 마세요. ‘상대방이 원하면 응해줘야 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에 파트너의 요구 때문에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고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고 주도성을 갖는 경험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갖는 데 영향을 끼칩니다.   원치 않는 스킨십을 거절하는 게 만 3세부터 훈련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건가요? 거절하는 게 쉽지 않아요. 특히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더 그렇죠. 청소년 성교육을 할 때 해보는 역할극이 있어요. 두 명씩 짝을 지어 아이 한 명이 “네 어깨에 손 좀 올려도 돼?”라고 물어보고, 다른 아이는 “아니”라고 거절하는 역할극이죠. 역할극에 참여한 아이들은 모두 상황을 미리 알고 참여하는데도, 마음이 불편하다고 합니다. 사소한 일이라 오히려 거절하기 더 어려운 거죠. 거절하는 게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 합니다. 반대로 거절당하는 게 자신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는 점도 설명해줘야 하고요.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는 “성교육은 결국 아이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존감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며 “3세가 된 아이에게도 스킨십을 하기 전에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  “2차 성징 시작하면 성행위에 대해 알려줘야”   지난 2018년 교육부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6만명 중 5.7%(3422명)가 성관계 경험이 있다. 성관계 시작 평균 연령은 만 13.6세. 2011년에 비해 성관계 경험은 늘고(3.2%→5.7%), 첫 경험 연령은 낮아졌다(15.6세→13.6세). 배정원 교수가 “10대가 되면 본격적으로 성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이때 핵심은 2차 성징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변화부터 성관계하면 임신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알려주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니 여쭐게요. 어디까지 알려줘야 할까요? 질문부터 잘못됐습니다. ‘어디까지’라는 건 수위가 있다는 거잖아요? 성기‧섹스 중심으로 성을 바라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럼 뭘 알려줘야 하죠? 몸과 마음의 변화, 성관계, 성관계에 따른 문제, 원치 않는 임신과 성병·피임·성범죄 등에 대해 알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양육자가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도 할 수 있는 상대’가 돼야 해요. 아이가 성에 관해서 물어봤을 때 당황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죠. 양육자라면 아이에게 이런 질문 받아보셨을 거예요. “나는 어디서 태어났어?”, “엄마의 아기씨랑 아빠의 아기씨는 어떻게 만나?”, “엄마 아빠도 섹스해?” 같은 거요. 이런 질문에 당황하거나 불편해하면 아이는 다시 이 질문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겠죠.   아이가 질문하기 전에 먼저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성교육 계획표’를 짜보세요. 책을 읽고 연령대별로 아이가 궁금해할 내용과 답을 써보는 거죠. 성별‧연령에 따라 질문과 답이 다를 겁니다. 아이가 물었다고 가정하고 소리 내 답변도 해보는 게 좋습니다. 머릿속으로 답을 알고 있어도 입 밖으로 내기는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언제부터 성에 대해 알려주면 좋을까요? 9살부터요. 여아는 11~12세, 남아는 12~13세에 2차 성징을 시작합니다. 아이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정보를 줘야죠. 그래야 아이가 당황하지 않고 성장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1단계는 성기를 포함해 남녀 신체 부위에 대해 알려주는 겁니다. 남자는 음경‧고환‧귀두, 여자는 질‧소음순‧대음순 등 각 부위 명칭을 명확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사실 성기의 정확한 명칭은 4~5살부터 알려주는 게 좋아요. 혹시라도 성폭행당했을 때 교사‧의사‧경찰과 소통하는 데 필요하죠, 성기를 ‘소중이’ ‘예쁜이’라고 부르는 것도 추천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표현일 수 있지만, 오히려 성에 대한 왜곡이 일어날 수 있어요. 우리 몸은 다 소중하니까요. 아이가 궁금해한다면 혼자 거울을 이용해 자신의 성기를 보도록 하는 것도 좋아요. 잘 씻는 법도 가르치고요. 성기가 부끄럽고 숨겨야 할 게 아니라 눈‧코‧귀처럼 우리 몸의 일부고 잘 관리해야 한다는 걸 알리는 거죠.   다음에 뭘 가르치죠? 변성기‧발기‧사정‧몽정‧초경‧생리처럼 2차 성징으로 인한 몸의 변화를 알려줘야 합니다. 이런 변화가 일어나는 이유도 함께요. 2차 성징은 신체적‧정신적으로 큰 변화인데, 양육자가 알려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이 과정이 무섭고 두렵게 느껴질 겁니다. 어느 날 갑자기 몸에서 피가 나거나(초경), 잠을 자는 중에 꿈을 꾸면서 사정(몽정)한다면 놀랄 수밖에 없겠죠.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설명해주면 당황하지 않겠죠. 아이가 그만큼 성장한 것이니까요. 아이가 원하면 가족끼리 축하를 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이가 자신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거기서 끝은 아닐 것 같아요. 성관계 같은 스킨십과 임신의 위험성에 대한 얘기도 나눠야 합니다. 2차 성징이 나타났다는 건 임신할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 뜻이니까요. 좋아하는 사람의 몸을 만지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하지만 성관계는 원치 않는 임신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다고 알려주는 거죠.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아이와 솔직히 대화를 하세요. 호기심이나 분위기에 휩쓸려 이뤄지는 성관계가 아이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리는 거죠. 아이를 낳는다면 학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 대학이나 꿈을 포기하는 게 가능할지 등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거죠. “성관계를 절대 해선 안 된다”고 강요하는 게 아니라 아이 스스로 자기 인생에 유리한 게 뭔지 깨닫게 도우세요.  배정원 교수는 “양육자가 회피하면 안된다”며 “일상에서 성을 가르치라”고 조언했다. 김현동 기자 배 교수는 “설령 아이가 성관계를 했더라도 혼내거나 다그쳐선 안 된다”고 당부했다. “아이를 망치는 건 성관계 자체가 아니라 부모의 태도”라는 거다. 그는 “아이를 문제아 취급하면 점점 더 숨게 되고, 부모가 안 보이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이뤄질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양육자가 겁먹거나 회피하면 안 됩니다. 일상에서 성을 가르치세요. TV 보다가 키스 장면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거나 민망해하지 말고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요. 명심하세요. 성은 우리의 삶 그 자체입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줄 요약 「 ① 성교육의 핵심은 안전이나 위생, 행위를 넘어 관계와 권리, 문화를 포함해 가르치는 것입니다. 성에 대한 인지‧감성‧신체‧사회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가르치는 포괄적 성교육이 이뤄져야 해요. ②올바른 성교육은 스킨십 전에 동의 구하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아이가 3살이 되면 스킨십을 할 때 “뽀뽀해도 돼?”라고 물어봐야 합니다. 억지로 뽀뽀하면 자신의 성적 결정권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모르게 되죠. 성인이 돼서도 원치 않는 성관계를 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③2차 성징 시작 전에 임신 위험성 알려야 합니다. 9살이 되면 성기 명칭, 초경‧몽정 같은 2차 성징으로 인한 신체 변화, 성관계‧임신 등에 대해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성장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 관련기사 "샤워 후 발가벗고 나오지 않는 것부터"…양육자가 알아야 할 성교육의 모든 것 "성조숙증 걸리면키 안 큰다? 그 걱정 유일하게 한국만 합니다" 거실 TV 빼면 공부 잘할까? 공간 전문가가 콕 집은 단점

    2023.02.12 14:55

  • 거실 TV 빼면 공부 잘할까? 공간 전문가가 콕 집은 단점

    거실 TV 빼면 공부 잘할까? 공간 전문가가 콕 집은 단점 유료 전용

    공간은 사람을 담는 그릇입니다. 그릇에 따라 물의 모양이 달라지듯 공간에 따라 사람도 변합니다. 사는 곳을 정할 땐 ‘내 아이를 어떤 아이로 키우고 싶은가’를 먼저 질문해 보세요.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의 답은 거기 있습니다.   공간 디자이너 김경인(57) ㈜브이아이랜드 대표는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은 어딜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추구하는 삶의 목표에 따라 아이 키우기 좋은 공간도 달라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좋은 학군지, 최고급 내장재로 꾸민 집만을 쫓지 말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 15년 간 학교 공간 바꾸기에 앞장서온 김경인 (주)브이아이랜드 대표는 “어떤 공간에서 자라느냐에 따라 아이의 삶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김경인 대표는 학교 공간을 탈바꿈하는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천편일률적인 모양의 학교를 개성을 살린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게 그의 일이다. 서울 강동중학교와 명덕초등학교 등 39개 학교가 김 대표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태어났다.   처음부터 학교 디자인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모두 똑같은데, 한 사람이 짓는 거예요?”라는 아들의 질문이 발단이었다. 김 대표는 “공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면서 정작 내 아이는 네모투성이의 회색빛 공간에서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고 했다. 더군다나 창의적인 활동을, 자유롭게 해야 할 학교는 통제와 감시를 위한 감옥과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학교 문화 바꾸기에 발 벗고 나선 지 15년. 그는 수십 곳의 학교와 도시 공간을 바꿨다. 최근에는 『공간이 아이를 바꾼다』  『공간은 교육이다』도 펴냈다. 학교를 넘어 집과 도시, 문화 공간으로 변화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다. 김 대표는 “책은 읽어야 지식이 되지만, 공간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삶에 스며드는 교육 그 자체”라며 “아이가 자라는 환경에서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부터 점검하자”고 말했다.   ‘공간 자체가 곧 교육이다’, 무슨 의미인가요? 공간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신경건축학’에서는 공간이 인간의 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있어요. 실제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집 주변에 녹지가 많을수록 정보처리 능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어요. 자신이 보고 자란 환경이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고, 장기적으로는 삶의 태도까지 결정한다는 게 증명된 셈입니다. 사는 곳에 따라 아이의 삶이 달라질 수 있어요. 집 내부는 물론이고 동네 등 사는 도시의 환경도 모두 따져봐야 하는 건 그래서고요. 김경인 대표가 총괄 디렉터를 맡아 변화 시킨 서울 강동중학교의 도서관(왼쪽)와 서울 명덕초등학교의 야외공간. 디자인 디렉터·사진 송상환 공유건축 대표   학교 가깝고 다양한 학원이 많은 소위 ‘학군지’가 아이 키우기 좋지 않을까요? 학습만 따진다면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도시 환경은 학교나 학원의 양이나 질에 비례하지 않습니다. 도시는 건물을 비롯해 가로수·가로등·간판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지는 공간이거든요. 그래서 도시를 만드는 요소의 모양, 위치, 조화 등도 세심하게 살펴야 하죠. 흔히 교육 기관이 많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교차로는 늘 차로 뒤엉켜 있고, 거리는 아파트와 상가 등 콘크리트 건물뿐이죠. 다닥다닥 붙은 건물 사이에서는 으슥한 공간이 생기기 마련이고요. 주변 환경까지 신경 쓴 좋은 도시 환경 사례를 소개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찾지 못했네요.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교육 인프라를 포기할 순 없습니다. 당장 짐 싸 들고 교육 시설 하나 없는 곳으로 떠나라는 게 아닙니다. 같은 동네라도 ‘가족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위치를 찾아보자는 겁니다. 그러려면 우리 가족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에 대한 우선순위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의 1순위는 ‘안전’이었어요. 워킹맘으로서 평소 아이를 자주 살필 수 없다 보니 학교를 오갈 때 안전이 보장돼야 했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선호하는 학교와 가까운 곳을 우선순위에 뒀어요. 이때는 학교 가는 길에 유해 시설이 있는지, 가로등과 신호등은 필요한 곳에 설치돼 있는지 등 도시 환경도 함께 고려했어요. 2순위는 녹지 공간이었어요. 우리 가족 모두가 산을 좋아했거든요. 아마 아이의 성적, 집의 투자 가치까지 생각했다면 학원과 가까운 곳을 택했을 겁니다. 이 밖에 도서관·미술관·박물관 등 문화 접근성이 높아 아이 혼자서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지까지 고려해 집의 위치를 선정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조건을 걸면 선택지가 제한적이지 않을까요? 우리 가족에게 맞는 집을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저도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여건과 위치 등을 고려해 집을 몇 군데 정해놓고 수년을 기다렸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집에서 20여 년 가까이 살고 있고요.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초·중·고 최소 12년을 한 동네에 머물기 마련입니다. 아이는 그렇게 한 동네에서 이웃과 섞이며 성장합니다. 아이의 삶을 결정하는 토양이 되는 시간이죠. 가족이 추구하는 삶을 실현할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집이 잠만 자는 곳이 아닌, 가족의 추억이 담긴 장소가 됩니다. 김경인 대표에 따르면 주거 환경의 녹지율이 높을 수록 아이들의 인지 능력과 집중력이 향상된다는 결과가 보고 되고 있다. 우상조 기자    ━  📢 “거실 공부방 만들면, 어디서 쉴 건가요?”   ‘육아와 인테리어는 공존할 수 없는 걸까?’ 아이 있는 집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집 안 곳곳이 장난감으로 채워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어른들의 공간은 사라진다. 아이를 위해 공간마저 희생해야 하는 걸까? 김경인 대표는 “집은 어느 한 사람만을 위한 곳이 돼서는 안 된다”며 “공간의 쓸모는 아이와 양육자 모두가 만족할 때 빛을 발한다”고 말했다.   아이 중심의 공간 사용은 왜 문제가 될까요? 공간은 사용자의 필요에 맞게 쓰여야 가치가 높아집니다. 그래서 공간을 디자인할 땐 가장 먼저 사용자의 성향을 파악합니다. 집의 사용자는 가족 구성원 모두입니다. 구성원 모두의 만족을 충족해야 하는데, 최근 그 원칙이 종종 깨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거실 공부방’이 대표적이에요.   요즘 거실 공부방 인테리어에 관심이 높아진 것 같아요. 거실 공부방의 핵심은 ‘공용 공간’이라는 거실의 기능을 활용한 학습 분위기 조성입니다. TV와 소파를 치우고 큰 책상을 두어 모르는 것은 빨리 물어보고, 해결할 수 있게 하자는 겁니다. 양육자와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그런데 거실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단점도 있습니다. 공용 공간이 아이 차지가 되어 버리니 누군가는 소외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예를 들어 주말 가족의 경우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는데, 거실에 책상만 놓여 있다면 어디서 쉬어야 할까요? 자연스럽게 가족 간 소통과 유대감을 형성할 기회도 사라지죠. 또 소음 문제도 있어요.   소음 문제요? 학습 공간은 소리가 어느 정도 차단돼야 합니다. 그래야 학습자도 그 외 구성원도 활동에 제약이 없죠. 그런데 우리나라 거실은 각 방, 화장실, 주방을 오가는 구심점에 있기 때문에 생활 소음을 차단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흔히 일본의 사례가 소개되는데, 일본의 집 구조는 한국과 다릅니다. 일본의 주택은 복도식 구조여서 현관에서 거실까지 거리가 있고, 거실에도 문이 달려 있습니다. 거실이 하나의 방인 셈이죠. 소음이 차단되기 때문에 공부방으로도 쓸모가 있던 겁니다.  김 대표는 최근 ‘거실 공부방’에 대해 “학습 분위기 조성에서 좋을 수 있지만, 가족 구성원의 니즈가 일치하지 않는다면 똑같이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그럼에도 거실 공부방을 꾸미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가족 구성원의 요구사항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저희 집도 아이가 거실 공부방을 원했어요. 그런데 저와 남편은 원치 않았습니다. 저는 소음 문제가 걸렸고, 남편은 쉬는 공간을 빼앗긴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세 사람의 의견을 종합해 작은 방을 서재로 만들기로 했습니다. 거실보다는 좁지만 함께 공부할 책상을 놓을 수 있었고, 문이 있어 시각·청각적 자극도 차단됐어요. 덕분에 거실은 그대로 보존할 수 있었죠. 만약 아이가 폐쇄된 방이 답답하다고 했다면, 차선책으로 베란다 또는 주방을 선택했을 겁니다. 대신 소음 차단을 위한 칸막이 등을 추가로 설치했겠죠. 거실 공부방이라고 해서 무조건 거실 공간만을 활용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가족의 요구와 집의 구조를 따져가며 융통성 있게 공간을 활용해야 합니다.   방이 좁거나 방의 개수가 부족해 공간 사용이 제한적인 경우가 있어요. 공간을 분리해 보세요. 접이식 가구나 바퀴 달린 이동형 가구를 추천합니다. 책상의 경우 공부할 때는 펼쳐서 모두가 넓게 사용하고, 안 쓸 때는 부엌이나 거실의 한쪽에 세워둘 수 있어요. 키 낮은 책장을 칸막이으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책상 옆쪽으로 책장을 두면, 아이의 책을 보관하는 동시에 책장 너머는 1~2인용 소파를 두어 작은 거실도 만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거실은 부모가 아이에게 좋은 본보기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입니다.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아이에게만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면 책상이 놓여도 의미가 없습니다. 책상 위에 책이나 신문을 놓아 둔다거나 먼저 무언가를 읽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큽니다. 결국 공간의 쓸모는 사용자에 의해 결정되는 법이니까요.    ━  📢 “인테리어, 컵 하나로 바꿀 수 있다”   김경인 대표에 따르면 공간도 주기적으로 변화가 필요하다. 그래야 공간에 생기가 돈다. 하지만 도시의 아파트는 제약이 많다. 당장 20평대를 40평대로 바꿀 수 없고, 계절마다 벽지와 바닥재를 바꿀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큰 변화 없이 사는 게 다반사다. 큰 품을 들이지 않고도 공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김경인 대표는 “집을 바꿀 수 없다면 작은 소품만으로도 공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며 “집의 콘셉트부터 정하자”고 했다.   집의 콘셉트라는 게 뭘까요? 집의 이미지를 말해요. 클래식, 모던, 내추럴 등이 대표적이죠. 집의 콘셉트는 가구와 소품의 색, 패턴, 재질을 고르는 기준이 됩니다. 공간을 같은 계열의 소품으로 배치하면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 수 있거든요.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집을 꾸밀 때는 최대한 넓어 보이고, 안정감을 주는 걸 원칙으로 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콘셉트가 좋을까요? 아쉽게도 아파트에서는 내가 원하는 콘셉트를 모두 구현할 순 없습니다. 콘셉트는 집의 크기에 영향을 받거든요. 무난한 콘셉트인 ‘내추럴’을 추천합니다. 예를 들어 벽지는 ‘베이지’, 바닥은 그보다 어두운 색을 쓰는 건데요. 공간은 바닥에서 천장으로 갈수록 밝은 색을 써야 넓어 보이는 법이거든요. 또 문양은 큰 무늬보다 작은 무늬로, 띄엄띄엄 있는 게 좋습니다. 특히 원목 바닥의 경우 나무 무늬가 적은 걸 골라야 합니다. 벽지와 바닥은 쉽게 바꾸기 힘든 요소 중 하나입니다. 계절마다 바꿀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유행을 좇지 말고 가장 기본적인 걸 택하는 게 좋습니다.   김 대표는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라도 그릇, 러그, 커튼 등 작은 소품을 주기적으로 바꿔주면 공간에 생기가 돈다”고 조언했다. 우상조 기자 내추럴이 너무 식상하게 느껴질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본격적으로 소품을 이용해 변화를 줘야 합니다. 그림과 액자, 커튼, 쿠션, 꽃, 그릇, 침대보, 러그 같은 작은 소품을 이용하는 거예요. 소품은 색, 패턴, 재질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저만의 비법을 소개하자면, 저는 여름과 겨울마다 컵과 그릇에 변화를 줍니다. 얇고, 투명한 컵과 둔탁한 컵을 계절에 따라 바꿔 주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느껴집니다. 월별로 그림을 바꿔주는 것도 좋습니다. 유명하고 의미 있는 작품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요즘은 그림 구독 서비스도 많아졌습니다. 우리 집 테마에 맞는 그림을 골라 정기적으로 바꿔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집에 생기가 돕니다. 매일 사용하는 소품일수록 작은 변화도 더 크게 느껴집니다.   전체 테마에 맞춰 각 공간도 똑같이 만들어야 할까요? 거실과 각 방, 주방, 화장실까지 테마를 맞추면 좋겠지만 공간의 사용자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죠. 그래서 공간 사용자에 따라 방 테마를 달리하는 것도 방법인데, 이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아이 방 연출도 온전히 아이에게 맡겨 보라는 겁니다.   아이 손에 맡기면 엉망진창이 될 것 같아요. 공부방을 꾸밀 때 ‘아이가 뭘 알겠어?’라는 생각으로 부모가 알아서 만든 후 보여주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면 안 됩니다. 아이가 공간 꾸미기에 참여해 봐야 내 방에 애정이 생기거든요. 아이 스스로 직접 벽지 색과 가구를 고르고 위치를 정하게 하세요. 이때 색종이나 도화지를 이용해 방과 가구를 축소해 만들어 보세요. 축적을 이용해 정확한 모형을 구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과정은 아이의 공감각과 색감을 발달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특히 아이들은 빨강, 파랑, 초록, 노랑 등 사원색을 자주 보고 접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지할 수 있는 색의 스펙트럼이 넓어집니다. 색을 조합하고, 적절한 곳에 사용하는 능력도 향상됩니다. 이렇게 내 손으로 방을 꾸며본 경험은 나에게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어떻게 공간을 분리해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등 공간을 활용하는 눈이 길러집니다.   ■ 아이방 꾸미기 tip 「 ① 의자는 바퀴 없는 고정식으로. 의자는 아이의 키 성장에 맞춰 바꿔주세요. 회전형 의자는 작은 움직임에도 쉽게 자세가 흐트러지기 때문에 산만해지기 쉽습니다. 반면 고정식 의자는 흔들림이 없기 때문에 집중하기도 좋고,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아이의 키가 한 뼘 자랄 때마다 의자를 바꾸면 기분 전환도 되고, 인테리어 효과도 있습니다.   ② 흰색은 피하세요. 공부방은 내추럴 콘셉트가 좋습니다. 기본적으로 벽지는 베이지, 조명은 색온도 조절이 가능한 LED의 자연광을 추천합니다. 이때 한쪽 벽을 다른 색으로 칠해 포인트를 줄 수 있습니다. 올리브그린은 심리적 안정을, 파랑 계열은 집중력을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핑크 계열은 힘을 빼는 색이니 진한 톤은 지양하세요. 흰색은 사람을 밀어내는 색이어서 안정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공부방에 흰색 벽지와 백열등은 사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③ 책상은 눈부심과 체온을 고려해 놔주세요.  책상의 위치는 집중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출입문과 등지게 배치하면 심리적 불안감을 유발하니 주의해야 합니다. 창가에서 멀리 떨어트릴 필요도 있습니다. 햇빛이 들어오는 남쪽 창가는 눈을 자극해 집중력과 시각 저하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또 체온 변화가 잦으면 졸음을 유발할 수 있으니 창가 자리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책상 위 유리판도 빼주세요. 유리의 차가운 성질이 체온 변화를 일으키고, 빛을 반사 시켜 쉽게 눈에 피로감을 줍니다.   」    김경인 대표는 마지막으로 아이에게 최대한 다양한 공간을 경험하고, 느끼게 해주라고 당부했다. 집이나 도시를 떠나 여행, 미술관, 박물관 등을 다니며 그 공간을 관찰하고, 공간을 사용했던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라는 것이다. 공간에 사용자의 추억이 쌓여 의미 있는 장소가 되는 과정을 몸소 깨달으면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도 찾아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공간은 사용자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아이에게도 자신이 원하는 공간을 상상하고, 만들고, 관리할 기회를 주세요. 공간에 책임질 수 있는 주인의식을 심어줘야 합니다. 사는 곳의 가치는 쓰는 사람이 높여가는 법이니까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집 고를 땐 가격보다 라이프스타일” 공간은 그 자체로 교육입니다. 보고 자란 환경이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사는 곳을 정할 땐 아이 공부나 집값에 연연하기 보다 ‘가족이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먼저 생각하세요. ·“거실공부방 만들면, 어디서 쉴 건가요” 공간의 쓸모는 사용자에 의해 결정됩니다. 아이만을 위한 공간 사용은 옳지 않습니다. 거실공부방도 가족구성원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고, 공간 분리를 통해 기능을 늘려주세요.  ·“인테리어, 컵 하나로 바꿀 수 있다” 인테리어는 평수에 맞는 콘셉트를 정해 통일감 있게 바꾸는 게 기본 원리입니다. 컵이나 조명, 침대보 등 작은 소품으로 개성 살리세요. 단, 아이 방은 직접 꾸미게 믿고 맡겨 주세요.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 관련기사 피아노 학원 전에 ‘이 능력’부터…클래식 음악 쉽게 듣는 3단계 접근법 "책 한권 통째로 외울 수 있다"…기록전문가, 비밀의 메모장 "더하라고요? 덜 배워야 합니다" 큰별쌤 최태성의 역사 공부법

    2023.02.03 18:03

  • 명함에 아이 이름도 적는다, 尹도 반한 ‘100% 재택’ 회사

    명함에 아이 이름도 적는다, 尹도 반한 ‘100% 재택’ 회사 유료 전용

    일본의 젊은 엄마들 사이에 ‘국민 육아템’이라고 불리는 아기띠가 있습니다. ‘코니’ 아기띠입니다. ‘일본 엄마 3명 중 한 명이 착용한다’고 알려진 제품이죠. 가볍고 편한데다 세련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일본과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74개국에서 지난 5년간 100만 개 넘게 팔렸습니다.    이 글로벌한 아기띠를 만든 건 국내 스타트업 ‘코니바이에린’입니다. 지난해 7월엔 윤석열 대통령이 ‘제1회 여성기업주간’ 행사에서 아기띠를 직접 착용해 화제가 되기도 했죠. 회사는 동갑내기인 임이랑(38) 대표, 김동현(38) 이사가 6년 전 공동 창업해 이끌고 있습니다. 이들은 스타트업계에선 드문 창업자 부부로 유명합니다.  코니바이에린 임이랑 대표(오른쪽)와 김동현 이사가 지난 17일 서울 성동구 자택에서 각각 자사제품인 아기띠와 후드타올을 착용하고 있다. 부부는 2017년 회사를 창업해 4년만에 매출을 80배로 늘렸다. 장진영 기자 코니바이에린이 또 유명한 건 ‘전원 재택근무’ 방식입니다. 임 대표, 김 이사 부부를 포함한 전 구성원 40명이 모두 각자의 집에서 일을 합니다. 코로나19 발생 훨씬 전, 회사 문을 연 이후부터 고수한 근무 방식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부와 마찬가지로 양육자가 많은 직원들이 일을 하며 아이도 볼 수 있게 만든 겁니다.    임 대표는 “출산·육아가 없었다면 창업도 없었다”고 말합니다. 육아를 하며 몸에 맞지 않아 불편했던 기존 아기띠를 써본 경험이 지금의 코니 아기띠를 탄생시켰기 때문이죠.   지난 17일 임 대표와 김 이사를 서울 성동구에 있는 부부의 자택에서 만났습니다. 공동 창업자이자 부부로 운명의 한배를 탄 두 사람은 어떻게 일과 가정을 동시에 꾸려나가고 있을까요? 그것도 24시간 한 집에 붙어 있으면서 말입니다. 두 사람이 사비 1000만원을 들여 시작한 회사는 어떻게 4년 만에 243억원(2021년)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7월 5일 여성기업주간 행사에 참여해 코니바이에린 아기띠를 매어보고 있다. 중앙포토  ━  PART1. “좋아하는 일을 잘 하자”     임신‧출산‧육아로 직장을 잃은 여성을 ‘경단녀’(경력단절 여성)라고 부르잖아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 양육자는 인내심‧절제력‧리더십 등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돼요. 그런데 이런 능력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죠. 육아를 왜 경력으로 인정해 주지 않을까요?   임이랑 대표와 김동현 이사는 “육아는 경력단절의 원인이 아니라 새로운 경력의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이들 부부도 한때 경단녀‧경단남(경력단절 남성)이었습니다. 하지만 ‘경력단절’이라는 위기를 기회 삼아 창업에 성공했죠.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국내 최초의 소셜커머스 기업 ‘티몬’에서였습니다. 김 이사는 티몬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입니다. KAIST 졸업 전 티몬에 뛰어들었고, 국내 영업을 담당해 소셜커머스 1위 업체로 만들었죠. 그는 티몬 합류가 결정되기도 전에 자주 가는 카페 앞 미용실에 무작정 들어가 영업을 시도할 만큼 저돌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임 대표는 그를 “마치 불덩이 같다”고 표현하죠.   김 이사와 달리 임 대표는 모든 일에 신중하고 차분한 편입니다. 서울대 졸업 후 바로 취업하지 않고 경영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진로를 제대로 고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던 중 방학 기간을 이용해 티몬에서 무급 인턴으로 일했는데, 비슷한 또래와 함께 회사를 성장시키는 데 큰 재미를 느꼈습니다. 학교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설렘이었죠. 당시 2030에게 티몬은 정말 ‘힙’한 기업이었으니까요. 임 대표는 대학원 졸업 대신 티몬에 정직원으로 입사해 브랜드마케팅을 담당하게 됩니다. 코니바이에린 임이랑 대표(왼쪽)와 김동현 이사는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야 잘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티몬의 성장과 함께 이들도 승승장구할 것 같았지만, 시련은 머지않아 다가왔습니다. 소셜커머스가 하향 곡선을 그리면서 두 사람이 몸담고 있던 티몬플러스(티몬 자회사)가 매각됐기 때문이죠. 첫째 지용군이 태어난 지 4개월 만의 일입니다. 임 대표는 당시 육아휴직 중이었는데, 부부가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된 거죠.   아이가 태어난 상황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자 막막했어요. 주변 사람들은 창업하거나 취업해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자신감만 잃지 않으면 어떻게든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몰입해서 일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었어요.(김 이사)   명문대 출신인 부부는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해 안정적인 길을 걸어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직장 생활 초반에는 경험 삼아 스타트업에 몸담았어도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다른 선택을 고려했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두 사람의 선택은 이번에도 창업이었습니다.   남들이 이미 닦아 놓은 길을 걸어가는 게 재미없게 느껴졌어요. 시계의 부속품처럼 일하기는 싫었거든요. 티몬에서 몰입하며 일한 경험을 한 뒤라 더 그랬겠죠. ‘편한 길 두고 왜 어려운 길로 가느냐’는 분도 있는데, 진짜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어서입니다. 회사의 성장을 눈으로 확인하고, 함께 커가는 기쁨을 느끼고 싶거든요.(임 대표)   올해 7세가 된 첫째 지용군에게 부부가 “숙제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도 자신이 원할 때 해야 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뒀지만, 학습을 위한 영어‧수학학원 하나 보내지 않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죠.   아이가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억지로 머릿속에 지식을 넣는 게 아무 소용없다는 사실을 저희는 잘 알고 있거든요. 대신 아이가 가슴 뛰는 일을 찾았을 때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김 이사)    ━  PART2. “불편함을 참지 말자”   사실 첫아이를 낳고 임 대표에겐 실직보다 더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2년 전 급성 파열됐던 목 디스크가 고된 육아로 다시 한번 말썽을 일으킨 거죠. 출산한 지 40일 만의 일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입원을 권유했지만, 젖먹이를 두고 집을 비울 수 없어 통원치료를 받았습니다.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집에 와서 모유 수유와 육아를 하는 강행군이 시작된 거죠.   목 디스크가 파열된 상태에서 아기를 안아야 하기 때문에 ‘아기띠’가 필수품이었습니다. 주변의 추천을 받아 시중에 나온 아기띠를 9개 정도 구매해 사용해 봤지만, 썩 마음에 드는 제품을 찾지 못했습니다. 어깨‧목이 아프거나 착용이 불편하고, 디자인이 촌스러웠죠. 임 대표는 “당시 매일같이 남편에게 아기띠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냈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은 남편이 제 얘기가 듣기 귀찮았는지 ‘그럼 네가 한번 만들어 봐’라고 제안했어요. 첫째 100일 때쯤의 일일 거예요. 남편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한동안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나처럼 육아로 고생하는 양육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죠.(임 대표)   여러 아기띠를 쓰면서 경험한 불편은 이상적인 아기띠를 구상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무게가 가벼워서 어깨와 목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아기를 안고도 양육자 혼자서 착용할 수 있는 제품, 바로 지금의 코니 아기띠 모습입니다.  임이랑 대표가 아기띠를 준비하면서 모눈종이에 그린 패턴. 사진 코니바이에린 하지만 디자인의 ‘D’자도 모르는 임 대표가 아기띠를 제작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습니다. 원하는 아기띠 모양은 머릿속에 있는데, 어디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요. 매일같이 동대문 시장을 돌아다녔습니다. 무턱대고 세탁소에 가 “디자인대로 아기띠를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문의한 적도 있죠.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안고 인터넷으로 원단 가공법 등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어렵게 수소문해 알아낸 샘플실에서 “패턴과 원단을 가져오라”고 하자 모눈종이에 패턴을 그려 갖고 가기도 했습니다. 패턴이 원단을 대고 자르는 도면인 것도 몰랐으니까요. 이렇게 만들어진 샘플만 6~7종류였는데, 그는 각각의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보면서 자신만의 아기띠를 구체화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용군이 돌이 막 지났을 무렵 코니 아기띠가 세상의 첫선을 보이게 되죠. 이후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면서 아기띠 사이즈도 2XS부터 5XL까지 다양화했고, 오리지널 제품은 색깔·패턴이 18종류나 됩니다. 아기띠에 나를 맞추는 게 아니라 나에게 맞는 아기띠를 선택할 수 있는 ‘나다운 육아’를 위해서였습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불편함을 참지 않는 성격이었어요. 고교 시절 학생회장일 때 급식 제공업체 교체를 위해 학생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죠. 학생들 사이에서 기존 업체가 잔반을 활용한다는 의혹이 계속 불거졌었거든요. 결국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급식 업체가 바뀌었습니다.(임 대표) 코니바이에린은 전 직원이 100% 재택근무를 한다. 임이랑 대표(왼쪽)와 김동현 이사는 집의 방 세 칸 중 한 곳을 사무실로 만들었다. 장진영 기자  ━  PART3. “육아도 경력이다”   첫째가 돌이 조금 지난 무렵 창업을 한 부부는 아이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회사 초창기부터 재택근무를 도입하게 된 배경이죠. 일과 육아를 함께 하고 싶었던 두 사람의 바람을 담았습니다.   임 대표는 “근무시간에는 아이에게 전적으로 집중할 수 없지만, 부모와 한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를 안심시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임 대표는 2020년 둘째 지헌군이 태어났을 때 산후조리원에서 원격 근무를 하기도 했죠.   보통 어린이집‧유치원 등원 시간과 직장인 출근 시간이 모두 오전 9시잖아요. 부모가 회사에 늦지 않고 출근하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죠. 양육자가 아이를 마음 편히 등원시키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임 대표) 코니바이에린 직원이 한 달에 한번씩 화상회의 하는 모습. 사진 코니바이에린 부부와 마찬가지로 구성원 40명 모두 집에서 일합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직원도 있습니다. 부부도 집의 방 세 칸 중 한 칸을 사무실로 씁니다. 임 대표는 제품 생산과 브랜드마케팅, 김 이사는 광고·재무·인사를 담당합니다. 요즘에는 각자 맡은 회의가 많아 각방에서 일할 때도 많죠. 김 이사는 “전 직원과는 한 달에 한 번씩 화상회의를 통해 소통하며 유대를 이어간다”고 말했습니다.   부부가 일과 육아를 한 공간에서 이어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스위치를 ‘껐다‧켰다’ 하는 것처럼 두 가지를 철저히 분리하기는 어려우니까요. 그래서 두 사람은 원칙을 정했습니다. 공식적인 회의 등에서는 서로 “이랑님” “동현님”이라고 부르지만 근무가 끝나면 서로 편하게 이름을 부른답니다. 오후 6시에는 ‘칼퇴’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남은 업무는 아이들이 잠든 뒤에 해결하기로 한 것도 일과 가정을 구분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그러다 보니 오후 10~11시에 아이들을 재우고 난 뒤, 자정이 넘어서까지 일할 때도 적지 않습니다. 또 청소나 요리 같은 집안일은 가사도우미의 도움을 받기로 했죠.   24시간 붙어 있어도 불편하지 않은 건 첫 만남부터 같은 회사에서 일한 경험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 갈등도 생기기 마련인데, 단점은 딱히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회사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파트너와 24시간 붙어 있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고 부부는 말했습니다.   이 회사는 채용 과정에서 임신‧출산‧육아 경험을 우대합니다. 명함에도 아이들 이름을 넣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부부의 명함에도 각각 ‘지용 지헌 엄마’ ‘지용 지헌 아빠’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다른 직원들도 원하면 아이 이름이나 태명을 넣을 수 있습니다. 명함이 그 사람의 스펙을 보여준다고 했을 때 ‘부모’로서의 경험도 중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  PART4. “세상에 공짜는 없다”   자본금 1억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창업 4년 만에 매출이 80배로 늘었습니다. 투자하고 싶다는 회사도 생겨났죠. 이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만한 곳도 있었지만 부부는 모든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대부분 스타트업이 투자를 통해 회사를 한 단계 성장시키고, 투자 자체를 회사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지표로 활용하는 것과 반대의 선택을 한 겁니다.     투자를 받으면 회사를 키우는 데는 도움이 되긴 하죠. 하지만 외부 자본이 유입되는 순간 이 회사는 우리만의 회사가 아니게 됩니다. 그러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어려워지겠죠. 이해관계가 얽히고 의사결정 구조가 복잡해지다 보면 이것저것 눈치 볼 일도 많아질 겁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요. 이런 이유로 투자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을 예정입니다. 자금이 부족해져도 대출을 먼저 고려할 거예요.(임 대표) 임이랑 대표(오른쪽)와 김동현 이사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이를 알려주기 위해 ‘규칙 지켜 용돈 벌기’를 한다. 부부 사이에 붙어있는 종이에 첫째 지용군이 지켜야 할 규칙 목록이 적혀 있다. 장진영 기자 자녀 교육에서도 부부의 이런 철학이 엿보입니다. 대표적인 게 첫째 지용군과 하는 ‘규칙 지켜 용돈 벌기’입니다. 한살 한살 나이를 먹을수록 갖고 싶은 게 많아지는 아이들에게도 돈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었던 게 시작이었습니다. 첫째 지용군이 ‘포켓몬 카드’를 사달라고 조를 때를 기회로 삼아 “규칙을 잘 지키면 용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죠.   집 거실 한쪽에는 규칙 목록을 적은 종이가 붙어 있습니다. 쓰레기 버리기, 식탁 치우기, 바닥 정리하기, 밥 남김없이 먹기, 옷 스스로 입기 등 12가지가 넘죠. 규칙을 지킬 때마다 용돈이 적립되고, 지용군은 이 돈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살 수 있습니다. 평소에 밥을 자주 남기던 아이는 늦더라도 밥그릇을 싹싹 비우게 됐고, 자기 옷은 스스로 입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 이제는 육아도 한층 수월해졌지만, 어렸을 때는 하루하루가 고행의 연속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출산‧육아 과정에서 자아가 사라지는 걸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부부는 일주일에 1~2번 각자 좋아하는 운동을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은 가족 여행을 가면서 쉬는 시간을 갖고요. 인터뷰 내내 임 대표가 가장 많이 한 말도 “나답게” “나다움”이었습니다. 코니바이에린의 캐치프레이즈도 ‘나다운 육아의 시작’이죠.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건 우주를 키우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정말 힘들다는 얘기죠. 오죽하면 ‘신이 내 뜻대로 안 되는 걸 알게 하려고 아기를 보낸다’는 말이 있겠어요. 저희가 하는 일이 양육자의 삶을 조금 더 쉽고 멋지게 만들기를 바랄 뿐입니다.(임 대표, 김 이사) 임이랑 대표(오른쪽)와 김동현 이사가 돌 무렵 지용군과 함께 웃고 있다. 부부는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나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사진 코니바이에린   ■ 바쁜 당신을 위한 네 줄 요약 「 ①“좋아하는 일을 잘 하자” 임이랑 대표와 김동현 이사는 대학 졸업 후 안정된 길보다는 재밌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자녀들도 스스로 원하는 걸 찾을 때까지 기다려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②“불편함 참지 말자” 코니아기띠의 시작은 임 대표가 느낀 ‘불편함’이었습니다. 목디스크 파열로 아기띠가 필요했는데, 시중에서는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하지 못했거든요.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가볍고, 착용이 쉽고, 색깔이 다양한 아기띠를 만들었죠.   ③“육아도 경력이다” 40명의 직원은 모두 100% 재택근무를 합니다. 일과 육아를 동시에 하고 싶은 부부의 바람이 회사의 근무방식으로 이어졌죠. 채용과정에서 임신‧출산‧육아 경험도 우대합니다.   ④“세상에 공짜는 없다” 창업후 4년 만에 매출이 80배 상승하자 투자 제안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부부는 “투자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겠다”고 합니다. 외부 자본이 유입되는 순간 ‘나답게’ 일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죠. 」 관련기사 아이에게 집안일만 가르쳤다…부족 같은 이 가족이 사는 법 "일단 해!" 39살에 삼성 최연소 임원, 그녀가 돌연 사표 쓴 이유 두 번 창업한 워킹맘 조언 "버티면 된다, 아이는 금세 큰다"

    2023.01.29 16:14

  • 어릴 때 살이 키로 안 간다…다이어트 금물, 아침 먹여라

    어릴 때 살이 키로 안 간다…다이어트 금물, 아침 먹여라 유료 전용

    어렸을 때 살이 키로 간다는 건 옛말입니다. 먹을 게 없던 시절 이야기죠. 지금은 영양 과잉 시대예요. 과체중이거나 비만인 아이는 도리어 키가 안 클 가능성이 높습니다. 커서도 비만인 경우가 많고요. 문진수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 비만인 아이에게 식사량을 줄이는 다이어트는 역효과만 난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문진수 서울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소아 비만이 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 찐 살이 키로 간다’는 항간의 속설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문 교수는 “아이가 비만이라고 해서 몸무게를 줄이는 식사 다이어트를 하면 역효과만 난다”며 “삼시 세끼 챙겨 먹고 현재 체중에서 더 늘어나지 않게 관리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문 교수는 소아·청소년의 영양과 성장을 다루는 전문가다. 아이들이 ‘먹고 싸는’ 일과 관련한 모든 것을 살핀다. 영양분이 체중·신장으로 이어지는 성장 문제도 다룬다. 소아과에 가면 볼 수 있는 소아·청소년 성장 곡선을 개발한 주역이 문 교수다. 성장 곡선은 신장‧체중 등 신체계측치의 분포를 곡선으로 제시해 비만‧저신장‧저체중과 같은 아이들의 성장 상태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그는 영유아 건강검진과 학생 건강검진 개발에도 참여했다.    겨울방학을 맞아 아이의 건강·성장 문제에 관심이 많은 양육자를 위해 hello!Parents는 이달 초 문 교수를 만났다. 밤에 일찍 자야 키가 크는 건지, 우유는 언제까지 얼마나 먹으면 좋을지, 어린이 영양제는 챙겨 먹어야 하는지 같은 먹고 자는 것과 관련된 속설과 세세한 궁금증을 꺼내 물었다.     문 교수는 “코로나19 유행으로 최근 비만·과체중인 아이들이 크게 늘었다”며 “양육자와 아이가 함께 먹고 자는 문제를 놓고 대화하고 기록해 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맛에 빠진 아이가 간식을 줄일 수 있도록 돕는 4단계 솔루션도 제시했다.     ━  📢어렸을 때 살, 키로 안 간다   지난해 11월 공개된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초‧중‧고 학생 가운데 비만‧과체중인 비율은 30.8%였다. 5년 전인 2016년(22.9%)보다 7.9%포인트 늘었다. 그중에서도 초등학생의 비만·과체중 비율(31.4%)이 가장 높았다. ‘주 1회 이상 패스트푸드를 먹는다’고 답한 초등학생 비율도 같은 기간 10% 가까이 늘었다.    원인이 뭘까요? 먹거리가 풍부해지고 생활 습관이 달라진 게 가장 큰 이유입니다. 영양 과잉 시대가 됐는데, 상대적으로 신체 활동은 줄었거든요. 60~70세 어르신 중에 “10리 학교를 걸어 다녔다”고 하는 분이 적지 않죠. 10리가 4㎞ 정도니까 매일 8㎞ ‘걷기 운동’을 한 셈입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어떤가요. 100m 거리 학교도 부모가 차를 태워주는 경우가 많죠. 맞벌이 부부 증가로 외식하는 가구가 늘었고, 놀이 방식도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가 많았지만, 지금은 대부분 가만히 앉아서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보잖아요. 특히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소아 비만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문진수 서울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아침을 먹으면 뇌 활동이 활발해지고 폭식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어렸을 때 살이 키로 간다’는 말도 있는데, 믿으면 안 되는 말인가요? 1960~70년대 이야깁니다. 지금은 ‘어렸을 때 찐 살’에 대한 개념이 아예 다르죠. 먹을 게 부족했던 시절에는 아이가 살이 쪘다고 해도 지금 기준으로 평균 이상 체중 정도였을 거예요. 그런 아이 중에 일부가 급성장하면서 키가 크니까 그런 말이 나온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 과체중‧비만 아동은 커서도 비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인은 살이 쪄도 지방세포의 크기만 커지지만, 아이들은 지방세포 개수도 증가합니다. 오히려 소아 비만인 경우 성호르몬 변화로 성장판이 빨리 닫혀 키가 덜 클 가능성이 있습니다.   비만·과체중인 아이들은 체중 감량을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 할까요? 식사량을 줄여서 몸무게를 감량하는 다이어트는 권하지 않아요. 현재 체중에서 더 증가하지 않도록 관리하면 됩니다. 먹는 걸 줄이면 자칫 영양 불균형이 돼 클 키도 안 크고, 뼈에도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소아 비만이라고 해도 하루 세끼 식사를 정상적으로 하되 간식을 줄여야 합니다. 특히 아침을 챙겨 먹는 게 중요해요.   아침 먹는 게 왜 중요한가요?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뇌는 쉬지 않아요. 기억을 저장하고 꿈을 꾸는 활동을 하죠. 이런 뇌에 에너지를 주기 위해 아침을 챙겨 먹어야 합니다. 아침 식사를 거르고 학교에 가는 건 자동차가 연료 없는 상태에서 달리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돼요. 뇌에 혈액 공급이 되지 않아서 기억력·집중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학교 수업에 집중하기도 어렵죠. 또 아침밥을 거르면 살이 찔 가능성도 커집니다.    아침밥을 안 먹는 아이가 비만이 될 가능성이 크단 건가요?  우리 몸은 저혈당에 저항하게 돼 있어서 식사를 거르면 에너지를 저장하는 몸으로 바뀌거든요. 쉽게 말해 ‘물만 마셔도 살찌는 체질’이 되는 거죠. 아침에 밥‧국‧반찬같이 제대로 된 식사를 챙기기 어렵다면, 삶은 달걀이나 닭가슴살 샐러드 등을 간단하게 먹으면 됩니다. 그것도 어려우면 우유 한 잔이라도 마시는 게 좋아요. 아침에 고단백을 먹으면 식욕 증가 호르몬을 낮춰 점심까지 포만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우유는 꼭 챙겨 먹여야 할까요? 성장기 아이는 매일 하루 두 잔(400mL)씩 먹는 것을 권장해요. 우리 뼈에 칼슘을 쌓아 뼈를 튼튼하게 만들 수 있는 시기가 딱 사춘기까지입니다. 그 이후에는 우유‧멸치를 아무리 먹어도 뼈에 쌓이지 않아요. 대부분 20대 초반에 인생 최대 골밀도를 찍은 뒤 하향 곡선을 그립니다. 우리 아이들이 100세까지 산다고 했을 때 소아·청소년기에 형성된 뼈로 80년을 살아야 하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우유를 무리해 많이 먹일 필요는 없어요. 우유를 너무 많이 먹으면 위장 장애나 철 결핍, 빈혈이 생길 수 있어요. 우유를 싫어한다고 설탕이 들어간 딸기‧초콜릿 우유 먹이는 것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플레인 요구르트나 치즈를 먹이는 게 더 낫죠.   칼슘제 같은 영양제는 먹이는 게 좋을까요? 소아 대상 영양제는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아직 부족합니다.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모른다는 거죠. 가능하면 안 먹는 게 좋다는 게 제 의견입니다. 성인의 경우에도 만성질환에 일부 효과를 봤다는 데이터가 있지만, 영양제를 많이 먹었더니 사망률이 올라갔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다만 칼슘 흡수를 돕는 비타민D는 챙겨 먹는 게 좋습니다. 밖에서 햇빛을 쐬면서 뛰어놀면 비타민D가 자연스럽게 생기지만, 아무래도 야외 활동이 줄다 보니 결핍 문제가 생기고 있거든요. 문진수 서울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아이가 간식을 입에 달고 산다면 간식일기를 쓰면서 개선해 나가는 게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  📢“‘설탕 중독’ 아이, 간식 줄이려면 해야 할 네 가지”   문 교수는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주범으로 설탕으로 대표되는 ‘당’을 지목했다. 설탕이 나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이미 과자‧젤리‧탄산음료 같은 단맛에 길들여진 아이가 설탕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건 쉽지 않다. 문 교수는 간식을 줄일 수 있는 4단계 해결책을 제시했다. 첫 단계로는 ‘간식 일기’를 쓰라고 조언했다.     간식 일기는 뭔가요? 부모와 아이가 함께 매일 먹은 간식을 모두 기록해 보는 겁니다. 냉장고에 A4 용지를 하나 붙여 놓거나 수첩을 만들어 보세요. 심각한 분위기를 만들어서는 안 되고 놀이처럼 하는 게 좋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점심 먹기 전, 점심과 저녁 사이, 저녁 먹고 잠들기 전까지 시간을 구분해 식사를 제외하고 먹은 과자‧초콜릿‧사탕‧젤리‧음료수를 모두 적는 식이죠. 그러면 하루에 간식을 얼마나 먹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군것질을 많이 하는 아이는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할 수도 있는 거죠.   그런다고 아이가 간식을 덜 먹을까요? 아이 입장에서 하루아침에 간식을 줄이기는 당연히 힘들 거예요. 어른도 다이어트 한다고 야식 끊는 게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두 번째로 간식을 왜 먹었는지 분석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쉽게 말하면 ‘간식 대화’를 해야 하는 거죠. 양육자가 간식 일기를 펼쳐 놓고 아이와 그 간식을 왜 먹었는지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갖는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아이가 학교 쉬는 시간에 초콜릿 하나를 먹었다고 했을 때 다양한 이유가 있을 수 있어요. 선생님이 심부름을 잘했다고 주거나, 친구 한 명이 가져와서 여럿이 나눠 먹었을 수도 있겠죠. 또래 문화가 한창 중요한 시기에 친구와 함께 먹는 간식을 안 먹기는 어렵겠죠. 이런 식으로 꼭 먹어야 했던 간식과 먹지 않아도 됐던 간식을 구분하는 게 세 번째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부모와 아이가 논의해서 간식을 얼마나 먹을지 정하는 게 마지막 단계입니다. 꼭 먹어야 하는 간식은 그대로 두고, 안 먹어도 되는 간식을 서서히 줄여나가는 거죠. 이때 부모가 강압적으로 강요하면 안 됩니다. 대화를 통해 아이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절제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해요. 이미 많은 양의 간식을 먹고 있던 아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설탕에 중독됐을 수 있어요. 이때 하루아침에 간식을 끊으면 뇌가 당을 강하게 요구해 폭식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조금씩 천천히 줄여나갈 수 있게 돕는 게 중요합니다.  문진수 서울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잠을 자는 것도 중요하지만,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  📢잠자기 한 시간 전, 스마트폰 쓰면 안 되는 이유   잠은 만병통치약이라고 불린다. 특히 성장기 아이에게 있어서 수면은 키 성장뿐 아니라 학업 능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인자다. 하지만 아이들의 수면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최근 여성가족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은 하루 평균 8.7시간을 잔다. 미국 수면재단에서 제시한 6~13세 아동의 적정 수면 시간( 9~11시간)에 못 미친다. 스마트폰이나 미디어 노출로 인해 늦게 자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찍 자야 키 큰다는 말은 사실인가요. 절반만 사실입니다. 키는 유전적 요인이 커요. 부모 키가 작은데 잠만 일찍 잔다고 180㎝ 넘게 자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하지만 일찍 자야 키 클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사실입니다. 초등학생은 오후 9~10시에는 잠자리에 들게 해야 해요. 오후 10시부터 오전 2시까지 성장호르몬이 왕성하게 분비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찍 잠자리에 눕는 것보다 중요한 건 잠을 깊이 잘 수 있게 돕는 겁니다.   왜 그런가요? 수면은 보통 4단계로 이뤄집니다. 얕은 수면과 깊은 수면이 번갈아 나타나는데, 성장호르몬은 3‧4단계 깊은 수면을 할 때만 나옵니다. 수면의 질을 높이려면 그날 할 일을 그날 끝내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중요합니다. A‧B 두 아이가 똑같이 오후 9시에 잠자리에 들어도 할 일을 다 마무리한 A가 숙제를 못해 걱정하다 잠든 B보다 숙면을 취할 가능성이 높아요. 성장호르몬도 많이 나올 것이고요.   숙면을 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즘엔 초등학생도 스마트폰으로 밤늦게까지 SNS를 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이게 숙면을 방해하는 가장 안 좋은 습관이에요. 스마트 기기에서 방출되는 블루라이트는 뇌에서 수면 유도 호르몬인 멜라토닌이 분비되는 것을 막아요. 우리 몸의 생체 시계를 늦추는 거죠. 최소 잠들기 한 시간에 전에는 스마트 기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습관을 길러서 몸이 기억하게 만드는 게 좋습니다.   스마트 기기 제한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부모가 먼저 스마트 기기를 꺼야 해요. 부모는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면서 아이에게만 보지 말라고 하면 절대 습관을 바꿀 수 없죠. 오후 8시나 9시로 시간을 정해 가족들의 스마트 기기를 눈에 잘 띄는 거실 한 가운데 모아 놓고 안 쓰는 생활을 해야 해요. 그리고 잠들기 전에 책을 보거나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 각성 상태를 줄여 숙면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잠을 잘 자는 게 학습에도 영향을 끼치나요? 뇌는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학습한 내용을 저장하고 정리합니다. 결국 잠을 잘 자야 기억력이 향상된다는 얘기죠. 2021년 서울대 환경보건센터가 6세 아동을 대상으로 수면 시간과 지능지수(IQ)의 연관성을 분석한 적이 있어요. 수면 시간이 길수록 IQ 점수가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아는 차이가 없었지만, 남아의 경우 8시간 이하로 잠을 잘 때보다 10시간 이상 잤을 때 IQ 점수가 10점 높았어요. 문진수 서울대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자녀의 바른 생활습관을 길러주려면 부모가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동 기자 문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아이가 바른 습관을 가질 수 있는데 색다른 방법은 없다”며 “정답은 우리가 아는 뻔한 얘기 속에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아는 사실도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게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부모가 솔선수범을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부모는 밤에 ‘치맥’(치킨+맥주)하면서 아이에게 간식을 먹지 말라고 하면, 따를까요? 가족을 뜻하는 한자어 ‘식구’(食口)를 그대로 풀이하면 ‘밥을 같이 먹는 입’이라는 뜻입니다. 내 아이가 건강하게 먹고 크길 바란다면, 양육자부터 그리고 가족 모두가 식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비만 예방하려면 아침 먹이세요” 어렸을 때 살 찌면 키도 안 크고 성인이 되서도 비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침 먹으면 뇌 활동에도 도움이 되고, 살찌지 않는 체질이 됩니다. 성장기에는 하루 우유 두 잔 마시길 권합니다. ·“간식 줄이려면 기록해보세요” 아이와 함께 매일 먹은 간식을 일기처럼 기록하세요. 간식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꼭 먹어야 하는 간식만 골라보세요. 아이가 간식 양을 스스로 줄이도록 도와주세요. ·“잠들기 한 시간 전, 스마트 기기 치우세요” 초등학생은 오후 10시 전엔 자는 게 좋습니다. 성장호르몬이 오후 10시~오전 2시에 활발하게 나오거든요. 그날 할 일도 다 끝낼 수 있게 해주세요. 걱정거리가 있는 상태에서 잠들면 얕은 잠만 자서 성장 호르몬이 안 나옵니다. 잠들기 한 시간 전에는 온 가족이 스마트폰을 멀리하세요. 」 관련기사 못하는 것만 결심했나요? 이러면 올해도 ‘작심삼일’ 우리 아이 성적 올리려면…회복탄력성 전문가의 조언 화 좀 그만 내고 싶다고요? 이 말 한마디면 됩니다 아이 폰 중독 막을 두 습관…‘디지털 지능’ 창시자의 픽

    2023.01.15 14:41

  • 못하는 것만 결심했나요? 이러면 올해도 ‘작심삼일’

    못하는 것만 결심했나요? 이러면 올해도 ‘작심삼일’ 유료 전용

    ‘안 해서 그렇지 일단 하면 잘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올해 결심도 말만 하고 끝날 가능성이 큽니다. 쉬운 길로 가세요. 그래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소장은 결심을 지키기려면 쉬운 과제, 감정 조절, 적절한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새해 결심은 왜 지키기 어렵냐”는 질문에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연구소장은 이렇게 답했다. 당찬 한 해 포부가 작심삼일(作心三日)에 그치는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최 소장은 “결심을 현실로 만드는 건 의지력만의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심도 전략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새로운 습관을 몸에 배게 한다는 건 뇌에 형성돼 있는 사고의 네트워크를 바꾸는 일”이라며 “매일 반복된 행동을 통해 조금씩 변화를 일으키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마음 경영’을 알려주는 정신과 의사로 불린다. 그는 다른 학문의 관점에서 사람의 마음을 분석해 보고 싶어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땄다. 기업 경영을 위해 전략이 필요하듯, 마음도 여러 기제를 활용한 합리적 운영 방식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런 그의 마음 경영법은 계획을 미루는 마음을 들여다보고 달성 가능한 실천 방향을 제시하는 데 주력해 왔다. 최 소장은 그런 내용을 담아 『게으름도 습관이다』 『결심만 하는 당신에게』 등을 썼다.    ━  📢 “못하는 것만 결심하지 않았나요?”   공부는 아이든, 성인이든 새해에 결심하는 단골 목표다. 성적과 커리어 향상을 꿈꾸며 새벽 학원을 등록하고 학습 스케줄을 짠다. 하지만 이 계획을 꾸준히 지켜 공부 습관으로 만드는 사람은 1000명 중 한 명에 불과하다고 최 소장은 말한다. 무엇이 차이를 만드는 걸까. 최 소장은 “결심을 지키고 못 지키고는 첫 번째 과제가 무엇이냐에 달렸다”며 “의지력은 못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에 집중할 때 최고로 발현된다는 점을 이용해 과제를 선정하라”고 말했다.    못하는 걸 반복해야 새로운 걸 익히는 거 아닌가요? 질문 하나 드릴게요. 당장 새벽에 일어나 공부해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때 잘하는 과목과 못하는 과목,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떤 걸 선택하겠나요?   잘하는 과목요. 아침부터 못하는 거 붙들면 기운 빠지니까요. 자신이 잘하는 일에 더 끌리는 건 인간의 본능입니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일에 에너지를 쏟으려는 심리 때문이죠. 반대로 실패 가능성이 높으면 되도록 피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본능을 거스릅니다. 늘 자신이 못하는 걸 새해 결심으로 내세워요. 방학 때는 못하는 과목 위주로 공부 계획을 세우고, 다이어트한다며 식사량을 평소의 절반으로 줄입니다. 하루이틀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성공 확률이 떨어집니다. 실패할 거란 생각이 드니 점점 하지 않으려 들거든요.    하지만 잘하는 것만 할 수는 없습니다. 못하는 것도, 새로운 것도 배워야죠. 오해하지 마세요. 못하는 걸 포기하라는 게 아닙니다. 효율성을 따져보자는 겁니다. 결심을 꾸준히 이어가려면 습관이 돼야 합니다. 습관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이뤄지는 ‘암묵적 기억’의 영역이죠. 자전거 타기처럼요. 그런데 암묵적 기억에 저장되려면 수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이때 ‘못하는 일’을 앞세우면 반복은커녕 한 번 실행하기도 힘듭니다. 끝내 포기하고, 좌절하고, 자책하게 됩니다. 잘하는 일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요. 반대로 ‘잘하는 일’을 앞세우면 부담이 줄어듭니다. 반복하게 되고, 더 잘하게 됩니다. 자신감이 붙으며 ‘자기효능감’이 높아져요. 내가 이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겁니다. 자기효능감이 결국 새로운 걸 해나가는 원동력이 되죠.   자기효능감이 결심을 유지하는 데 어떻게 작용하나요?   내가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자신을 ‘쓸모있다’ ‘유능하다’고 느낍니다. 이 자신감이 못하는 일에도 도전하게 합니다. 평소 잘하던 과목, 예를 들어 언어에만 집중해 안정적인 점수를 만들면 공부에 대한 자기효능감이 올라갑니다. 그러면 평소 못했던 수학도 공부해 보고 싶어집니다. ‘나는 공부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하니 웬만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방학 기간에는 못하는 과목을 보충하기보다 잘하는 과목을 더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공부 계획을 세우라고 합니다. 그래야 공부가 결심이 아니라 습관으로 발전하거든요. 다이어트도 마찬가지예요. 먹는 걸 줄이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에너지를 쓰는 게 효과적입니다. 걷기를 좋아한다면 산책 시간을 늘리는 식이죠.  최명기 소장에 따르면 자신이 잘하는 일은 자기효능감을 높여 내적 동기를 유발한다고 한다. 김현동 기자   그런데 아이들은 자기가 무엇을 잘하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양육자의 도움이 어느 정도는 필요합니다. 막연하게 결심부터 세울 게 아니라 ‘맛보기 경험’을 해보도록 하는 겁니다. 특히 방학 때는 공부나 게임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단, 새로운 경험은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호기심과 흥미가 생기는 법이니까요. 또 무엇을 경험해 볼지는 양육자가 일방적으로 정하지 말고 아이와 의논해 선택하세요. 그래야 스스로 과제를 성취하고 싶다는 ‘내적 동기’도 커집니다. 호기심 때문에 시작한 일은 그 어떤 보상보다 강력한 의지력을 만듭니다. 적어도 방학 계획만큼은 아이 스스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나 스스로 선택’해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  📢 “감정에 휘둘리고 있지는 않나요?”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성실한 사람일지라도 장애물 앞에서는 주춤하는 법이다. 한번 무너진 결심은 다시 다지기가 어렵다. 최 소장은 목표 달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변수로 ‘감정’을 지목했다. 그는 “중도에 포기하는 건 성격 때문이라기보다는 감정이 만드는 문제”라며 “감정의 실체를 파악하고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심을 무너뜨리는 감정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결심이 무너지는 순간을 떠올려보죠. 아이들은 흔히 게임 시간을 줄이겠다고 다짐합니다. 며칠간은 잘 지킵니다. 그런데 시험 기간이 다가오며 다시 게임에 손을 댑니다. 성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이어트를 위해 일주일간 식단을 조절했어요. 그런데 월요일 출근을 앞두고 일요일 야식에 무너집니다. 두 사례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시험’과 ‘출근’에서 만들어진 ‘불안’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실패에 대한 걱정, 평가에 대한 두려움에 무릎을 꿇은 셈이죠. 그래서 우리는 외로울 때, 허전할 때, 우울할 때, 불안할 때 등 감정이 취약해지는 순간을 관리해야 합니다.   보통 불안하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지 않나요? 생각은 그렇지만 마음은 그렇게 움직이지 않습니다. 불안하면 과제를 회피하려는 마음이 더 강해지거든요. 책상 앞에 앉아 문제집을 펴놓고 딴짓을 한다거나, 일하려고 컴퓨터를 켜고는 온라인 쇼핑으로 시간을 보내는 식이죠. 이렇게 과제를 외면하면 당장은 불안을 떨칠 수 있지만 결심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이렇게 불안과 스트레스가 악순환하며 계획했던 일이 도미노처럼 무너집니다.   최 소장은 “결심과 습관은 외로움, 두려움, 불안감 등 감정에 취약하다”며 ‘감정 관리’를 강조했다. 김현동 기자   그렇다면 이 불안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저는 ‘흥분 상태’를 유지하라고 말합니다. 약간의 흥분 상태일 때 아드레날린이란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피는 ‘각성’ 상태를 만들어요. 이렇게 각성은 됐지만 ‘스트레스’가 낮은 상태일 때를 흥분 상태라고 해요. 이때는 일의 집중력이 높아져 생산성이 높아집니다. 반면에 각성과 스트레스 수준이 동시에 높아지면 극도의 불안에 빠집니다. 또 각성은 낮고 스트레스만 높다거나, 둘 다 낮은 수준일 때는 지루하고 졸린 상태에 빠져듭니다. 이때는 오히려 눈앞의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일을 찾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과제에 흥미를 갖고 꾸준히 해나가려면 흥분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적절한 자극이 필요합니다. 저는 두 가지 방법을 제안해요. 우선 계획을 세울 때 재미있는 일과 지루한 일을 교대로 배치하는 겁니다. 이때는 지루하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먼저 하세요. 재밌는 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일에 속도가 붙거든요. 예를 들어 단순 연산 문제와 게임식 문제가 있다면 연산 문제를 먼저 푸는 게 효과적입니다. 이렇게 두 가지 성격의 일을 교차 병행하다 보면 일정 부분 흥분이 유지됩니다.     두 번째 방법은 뭔가요? 자신의 결심이 중단되는 시점을 찾아보는 겁니다. 일과를 시간대별로 기록하는 거예요. 기상해서 외출 전까지 분 단위로 적어 본다거나, 오늘 먹은 음식을 시간대별로 빠짐없이 기록하는 겁니다. 이렇게 일지를 써 보면 내가 결심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가 눈에 보입니다. 거울 앞에 서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지각을 하게 되고, 외출에서 돌아온 뒤 단 음식을 많이 먹다 보니 다이어트가 힘들어지는 식이죠. 이때 자신이 느낀 감정을 함께 적어 보세요. 외부 시선에 대한 부담감과 스트레스 등이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결심이 무너지는 순간의 감정을 알아차렸으면 그 순간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봅니다. 외출 전 거울 앞에 설 땐 제한시간에 맞춰 알람을 켜둔다거나, 집에 들어오기 전 단 음식 대신 다른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귀가하는 겁니다.      ━  📢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지 않나요?”   최 소장은 결심을 지키기 어려운 마지막 이유로 ‘자기 객관화’를 꼽았다.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나 과소평가가 결심을 지키지 않을 핑곗거리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특히 아직 자기 객관화가 쉽지 않은 초·중등 시기는 더욱 그렇다는 게 최 소장의 설명이다. 그는 “내 아이가 마음만 먹으면 잘할 거라는 기대는 내려놓으라”며 “아이 스스로 결심을 지킬 것이라고 믿기보다 결심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게 더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했다.      자기 객관화가 왜 중요한가요?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왜곡해서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자신을 과대평가하면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처리하고 낙관적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면 실행을 미루는 건 물론이고, 그 이유를 남 탓으로 돌리기 쉽습니다. 내가 할 일을 그르친 원인이 나에게 있다고 하면 마음이 불편하거든요. 이러면 개선의 기회를 놓칩니다. 반대로 자신을 과소평가하면 늘 자신감을 잃어 도전할 의지를 상실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의지력을 믿지 말라는 거군요.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 포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판단하지 못하니 결심과 계획도 쉽게 합니다. “내일부터는 절대 과자를 먹지 않겠다” “게임에는 손도 대지 않겠다” 등 실현 가능성은 제쳐놓습니다. 약속에 대한 책임감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약속에는 그걸 어겼을 때 벌어질 결과를 감내하겠다는 동의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직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이 덜 발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약속을 어겼을 때 상대가 느낄 실망감과 배신감도 이해하기 어렵고, 부채감도 덜한 겁니다. 아이가 계획과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화낼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아이가 최대한 결심을 지킬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 주면 좋겠죠.     최 소장은 “자기객관화가 힘든 경우 적절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라”고 조언했다. 김현동 기자   어떤 장치를 마련하면 되나요? 우선 결심과 계획을 세울 때는 실행 기간을 최대한 짧게 잡도록 하세요. 장기 계획보다는 단기 계획이 효과적입니다. 아이가 지키기 어려워 보이는 계획을 세웠다면 우선 하루만 해보자고 제안하세요. 하나라도 제대로 끝마치는 경험이 중요하니까요. 이후 결심을 실행하는 기간을 조금씩 늘려갑니다. 만약 중간에 한계에 부닥치면 실패를 인정하고, 빨리 다른 결심으로 넘어가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 못 푼 문제는 내일 이어서 풀지 마세요. 내일은 내일의 문제를 풉니다. 또 매일 다섯 장씩 풀기로 한 결심이 지키기 어렵다면 두 장 풀기로 계획을 변경하세요. 이렇게 기간을 짧게 잡고 수정 보완해 나가는 겁니다.   집중력이 약한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결심을 실행으로 옮길 때는 시간에 민감해야 합니다. 흔히 시간 단위로 9~12시 아침 공부 이렇게 적고 마는데, 시간이 마냥 주어지면 게으름을 피우기 쉽습니다. 시간을 쪼개세요. 처음에는 과제를 3~4시간 단위로 나누고, 그 안에서 다시 20분 하고 5분 쉬는 식으로 나눕니다. 그러고는 또다시 1분, 5분, 10분 단위로도 쪼갭니다. 10분 읽기, 10분 쓰기 식으로요. 이때 알람을 켜두면 도움이 됩니다. 저도 집중할 때 한 시간마다 알람이 울리게 해요. 딴짓하다가도 깜짝 놀라 다시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알람 소리를 정기적으로 바꾸는 것도 좋습니다. 소리에 익숙해지면 효과가 떨어지거든요.   아무리 장치를 해놔도 효과가 없을 때는 어쩌죠? 때로는 환경을 통제해 변수를 차단해야 합니다. 아침마다 아이가 TV를 보느라 꾸물거린다면 TV를 틀어주지 않아야 합니다. 밥 먹는 속도가 느리다면 아침식사만큼은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편한 방식으로 줘야 하고요. 그렇게 변수를 하나씩 줄여가는 겁니다. 아이의 성향에 따른 조절도 필요합니다. 성격이 급한 아이들은 일주일 용돈을 하루에 다 쓰는 경우가 많아요. 이 아이들에게는 일주일 용돈을 매일 나눠서 줘야 합니다. 군것질을 좋아한다면 간식을 사다 놓지 말아야 하고요.     최 소장은 결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통제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양육자에겐 아이가 원하는 걸 막을 권리도, 그렇다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의무도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단, 통제는 야단과 체벌 등 강한 훈육으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이것이야말로 아이와 양육자의 관계를 끊고, 새로운 결심에 도전할 의지를 꺾는 일이라고 했다.   결심을 지키지 못했다고 질책하지 마세요. 스스로 결심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겁니다. 아이의 생각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칭찬해주세요. 아이의 의지력을 키우는 건 양육자의 따뜻한 말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못하는 것만 결심하진 않았나요?” 인간은 성공이 보장된 일을 할 때 의지력이 상승합니다. 잘하는 걸 첫 과제로 삼으세요. 자기효능감이 상승해 반복하게 되고, 습관으로 굳어집니다. 방학 땐 잘하는 과목 위주로 계획을 짜고 맛보기 경험으로 호기심을 자극하세요. ·“감정에 휘둘리고 있지 않나요?” 의지력은 걱정 등 감정에 약합니다. 불안을 관리하세요. 약간의 흥분 상태를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지루한 일과 재밌는 일, 반복하면 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행동을 기록해 내 감정이 약해지는 때를 알아차리세요.  ·“자기를 과대평가하고 있지 않나요?” 결심을 유지하려면 적절한 통제도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자기객관화가 익숙지 않아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책임감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결심 기한은 짧게 잡으세요. 결심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아예 차단하는 것도 좋습니다.  」 관련기사 "미룬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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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8 15:11

  • 우리 아이 성적 올리려면…회복탄력성 전문가의 조언

    우리 아이 성적 올리려면…회복탄력성 전문가의 조언 유료 전용

    ‘돈 많이 벌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성적 오르게 해주세요.’   새해를 맞을 때 이런 소원 하나쯤은 빈다. 사람마다 바라는 건 가지각색이지만 궁극적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수많은 전문가는 행복해질 수 있는 열쇠로 ‘회복탄력성(resilience)’에 주목하고 있다. 원래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을 말하는 회복탄력성은 심리학에서는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을 의미한다. 인생에서 크고 작은 역경은 피할 수 없다. 이때 크게 상처 입지 않고 회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행복에 이르는 현실적인 비결이라는 이야기다.  김주환 교수는 “긍정성이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회복탄력성이 높으면 행복해진다”며 “결국 선순환”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hello! Parents는 양육자와 아이의 행복을 위해 ‘회복탄력성’ 전문가인 김주환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를 만났다. 그는 뇌과학에 기반해 긍정의 힘을 연구해 온 커뮤니케이션 학자다. 2011년 그는 회복탄력성이란 개념을 국내에 처음으로 널리 알렸다. 같은 해 그가 집필한 책『회복탄력성: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근력의 힘』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다.    책에서 그는 긍정성이 회복탄력성을 높이고, 회복탄력성이 높으면 행복해지는 선순환 구조를 파헤친다.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에게 인기, 학업 성적, 성취, 그리고 행복이 따라오는 이유를 뇌과학과 다양한 연구 결과를 들어 설명한다.    다음 달 신간 출간을 앞둔 김주환 교수를 만나 새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물었다. 김 교수는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하는 게 핵심”이라며 “운동해서 근육을 단련하듯 긍정적 정서도 단련해서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나아가 행복해지는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했다. 그 중심에는 자신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김주환 연세대 교수는 “행복해지려면 긍정적 정서를 단련해 습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  ☝회복탄력성의 첫걸음, 스스로 선택하기      회복탄력성을 높이기 위해선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바로 ‘자기조절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이다. 자기조절 능력은 스스로 감정을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이다. 감정과 충동을 통제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을 정확히 진단해 내는 능력까지를 포함한다. 김주환 교수는 이런 자기조절 능력을 키우는 첫걸음으로 ‘자율성’을 제시했다.     자기조절 능력과 자율성은 어떤 관계가 있는 거죠? 아이의 자율성을 키워주면 결과적으로 자기조절력이 높아집니다. 뇌과학으로도 증명된 사실이죠. 스스로 결정하고, 돌이켜보는 과정에서 뇌의 전두엽 일부인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기 때문이죠. 전전두피질은 충동과 감정을 조절하는 뇌 부위거든요.   자율성이 자기조절력을 키운다는 구체적 예시도 있나요?   유아교육계에서 유명한 ‘페리 프리스쿨’ 프로젝트라는 연구가 있어요. 1962년 미국에서 시작돼 40년 넘게 추적조사한 연구죠. 연구는 다음과 같이 진행됐어요. 만 3~5세의 취약계층 아동 128명을 두 그룹으로 나눴어요. 2년 동안 두 그룹 간에 딱 한 가지 차이만 뒀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 반 정도의 시간을 두 그룹 아이들이 다르게 보냈다는 거예요.    각각 어떤 시간을 보낸 거죠?   A그룹은 평소처럼 선생님이 이끄는 수업에 아이들은 참여하는 식이었어요. 반면에 B그룹은 두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스스로 말하게 했죠. 선생님이 “넌 뭘 하고 싶니?” 물어서 아이에게 계획할 기회를 주는 겁니다. 어떤 아이가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고 가정합시다. 두 시간 정도 지난 뒤에 선생님은 아이들을 다시 모아요. 그리고 “넌 오늘 뭘 했니?”라고 다시 묻는 거예요. 다그치는 게 아닙니다. 무엇을 했는지 스스로 돌이키도록 한 거죠.    이런 활동이 어떤 의미가 있죠?   그림 그리겠다고 한 아이가 그림 그리는 대신 만화책을 봤다고 합시다. 이 아이는 선생님이 뭘 했느냐고 물었을 때 ‘아, 내가 그림을 그린다고 했는데 만화책을 봤네’라며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점검하는 경험이 쌓이다 보면 ‘앞으로 그러지 말아야지’라는 자기조절력과 함께 ‘다음엔 이렇게 해야지’라는 실행력도 생기게 되죠. 40년간 두 그룹 아이들을 추적 조사했더니 자율시간을 가진 아이들이 소득이나 교육 수준도 높고 범죄율도 매우 낮았죠.   KRQ-53 테스트의 전체 문항과 해석은 저서 『회복탄력성: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근력의 힘』(2011)에 소개돼 있습니다. 총 53문항에 대한 답변으로 개인의 긍정성, 대인관계 능력, 자기조절 능력을 종합 평가해 점수로 냅니다.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흥미로운 연구네요. 하지만 양육자 입장에서 아이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게 옳기만 한 일일까요? 아이의 판단력이 아직 미숙하다면 위험하거나 그릇된 결정을 할 수도 있잖아요.   많은 양육자가 하는 오해인데 자율과 방임을 착각해선 안 됩니다. 선택의 범위는 양육자가 교육 방침에 따라 정해줘야 해요. 그 안에서 여러 선택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거고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날씨가 추운데 아이가 반소매를 입고 나가겠다고 떼쓴다고 가정할게요. 이때 반소매를 입고 나가는 건 안 된다고 해야죠. 대신 양육자가 강제로 “이 패딩을 입어라” 해서도 안 됩니다. 대신 아이에게 “이 패딩이 좋아, 저 코트가 좋아?” 선택지를 주세요. 아이가 만약 코트를 골라 입고 나가면 추위를 더 느낄 수 있겠죠. 하지만 아이는 깨달을 겁니다. ‘이렇게 추운 날은 패딩을 입어야겠다’고요. 핵심은 아이에게 계속 선택할 기회를 주라는 겁니다. 아이가 자신의 삶은 본인의 선택으로 이뤄진다는 느낌을 지속해서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아이가 그래도 반소매를 입겠다고 떼쓰면 어떡하죠?   자꾸 떼쓴다는 건 불안하단 겁니다. 자신을 조절하지 못하는 거죠. 이런 아이들의 뇌를 보면 편도체가 활성화돼 있어요. 편도체는 불안, 공포와 관련된 영역입니다. 떼쓴다는 건 결국 양육자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몸부림으로 보아야 해요.    떼쓰는 아이에게 자기조절력을 길러주려면 사랑해 주면 된다는 건가요?  사랑도 중요하지만 아이를 ‘존중’해 줘야 합니다. 아이에게 선택권을 준다는 것도 그런 태도에서 비롯되죠. 왕실·귀족 교육을 적용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이런 교육의 핵심은 아이의 자기가치감, 자기존중감을 높이는 겁니다. 어려서부터 자기가치감을 높여 주면 스스로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됩니다. 평소에 “너는 참 귀한 사람이야”라고 대우해 주면 아이는 귀한 사람처럼 행동하기 마련이거든요.     어떻게 대우해 줘야 하는 거죠?   아이가 떼쓸 땐 “전하가 어떤 분이신데 어찌 이런 행동을 하십니까”라는 식으로 대응해 보세요. “네가 어떤 아이인데 이런 행동을 하니”라고 알려주는 거죠. 자기 가치감이 높은 아이들은 ‘그렇지, 내가 어떤 사람인데 부끄러운 행동을 해’라고 생각합니다. 나아가 거짓말 같은 비도덕적인 행동도 멀리하게 되고요. 모두 자기조절력이 높아진 결과입니다.  김주환 교수는 “대인관계가 좋은 아이가 성적도 좋다”며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방침은 아이의 자기가치감을 매우 떨어뜨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성룡 기자 관련기사 화 좀 그만 내고 싶다고요? 이 말 한마디면 됩니다 “서울대생은 경주마 같았다” 그 교수가 가천대 간 이유 아이에게 집안일만 가르쳤다…부족 같은 이 가족이 사는 법  ━  ☝인기 많은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     회복탄력성에 필요한 또 하나의 요소는 대인관계 능력이다. 상대에게 공감하며 소통하는 능력을 넘어 나와 타인이 연결돼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김주환 교수는 “회복탄력성을 지닌 아이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어린 시절에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사랑해 주고 기댈 언덕이 돼 주는 어른이 적어도 한 명은 있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시절 사랑받은 경험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길래 대인관계 능력, 나아가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걸까요?  사랑받고 자란 아이들은 다른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능력도 지니게 됩니다. 이런 능력이 회복탄력성의 원동력이 되고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거나 외로운 상황에 놓이면 쉽게 나약해지죠. 특히 심한 경쟁이나 폭력·폭언 등 사람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기가치감이 떨어집니다. 자기가치감이 저하되면 성적도 떨어지고, 결국 학교폭력, 청소년 자해나 자살 같은 심각한 문제의 원인도 되죠. 이럴 때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힘이 되어 주는 든든한 지원자가 필요한 겁니다.    무조건적인 사랑 외에도 양육자가 해야 할 일이 또 있지 않을까요? “남에게 양보하고 베풀며 살라”고 아이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인생은 남을 위해 사는 것이라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려주는 거죠. 다른 사람의 것을 많이 빼앗아 오는 것이 성공이 아니라, 많이 주는 것이 성공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하세요. 퍼주는 사람(giver)이 다른 사람 것을 가져오려는 사람(taker)보다 훨씬 더 성공하게 된다는 것은 이미 사회과학적 연구로 입증된 사실입니다. 남에게 베푼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친구 관계가 좋아지는 건 물론이고 자연스레 시험도 잘 보게 되어 성적이 오릅니다.    남에게 베풀면 성적도 좋아진다고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회복탄력성이 더 높습니다. 회복탄력성이 높으면 끈기 있게 노력하는 힘도 나오죠. 중요한 시험과 같은 결정적 순간에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게 됩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실패에 관대하기 때문에 불안감이 낮아지거든요.    실패에 관대한 게 좋은 건가요?  제 딸 얘기를 해드릴게요. 아이가 중학교 때 시험만 보면 200등대였어요. 공부는 곧잘 하는 것 같은데, 시험 불안증이 심했죠.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요.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해선 전교 1등을 했죠. 중학교 마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아이에게 늘 “남을 위해 살아라” 강조했거든요. 꾸준히 운동(검도)도 하게 하고요. 그래야 전전두피질 신경망이 강화됩니다. 편도체는 안정화되고요. 자연스럽게 시험 불안증은 없어졌답니다.    ‘남을 위해 살아라’는 말 때문에 전교 1등을 했다고요? 믿기지 않아요.  딸아이에게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들을 물어봤나 봐요. 아이가 친절히 알려준 거죠. 친구를 도와준다는 마음으로요. 그랬더니 쉬는 시간마다 모르는 문제를 들고 오는 친구들이 줄을 잇게 되었다고 해요. 아이는 본인이 아는 걸 가르쳐주며 다시 한번 익히고, 모르는 건 자신도 공부해서 알게 됐죠. 친구들과 사이가 좋아지니 스트레스도 줄어들었고요. 이후 수능도 아주 잘 봐서 원하는 대학에 갔어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인기도 많은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인기가 많아서 공부를 잘하는 겁니다.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건 결국 대인관계력이 높다는 것이고, 즉 정서 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된 상태라는 것이지요. 친구나 가족과 사이가 좋아야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게 됩니다. 아이가 공부를 잘하게 하려면 점수나 진도를 확인할 게 아니라 불안도나 대인관계부터 점검해 봐야 하는 거죠.    김주환 교수는 “회복탄력성은 긍정적 정서에서 나온다”며 “긍정적 정서는 마치 근육과도 같아 3개월 이상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룡 기자  ━  ☝행복을 단련하라      회복탄력성은 긍정적 정서에서 나온다. 그런데 긍정성은 일종의 근육과 같아서 꾸준하고 체계적인 단련이 필요하다고 김 교수는 주장한다. 그런 의미에서 긍정성을 ‘마음근력’이라고 김 교수는 칭한다. 그는 “마음근력을 단련하면 행복한 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음근력 훈련으로 뇌도 행복하게 바뀐다고요? 그렇습니다. 행복한 뇌 상태란 공포와 공격성의 기반이 되는 편도체는 안정화되고, 정서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은 활성화하는 거예요. 전 이걸 줄여서 ‘편안전활’이라고 불러요. 편안전활 훈련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하면 긍정적 뇌로 바뀝니다. 결국 행복해지고요.    긍정적 뇌는 어떻게 만드나요?    여러 방법이 이미 개발돼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쉬운 건 감사일기 쓰기와 운동하기일 겁니다. 일단 이 두 가지를 꾸준히 하세요. 뇌에 습관을 들이려면, 즉 마음근력을 향상하려면 3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감사일기는 어떻게 쓰죠?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그날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보며 감사할 만한 일 다섯 가지를 수첩에 기록하세요. 막연하게 말고 구체적으로요.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반드시 글로 적으세요. ‘무엇’에 대해 감사한다는 것과 ‘누구’에게 감사한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도록 써야 합니다. 이걸 며칠 하다 보면 우리의 뇌는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감사한 일을 찾기 시작합니다. 나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감사하게 바라보는 습관이 생기고요. 감사하기는 자신 그리고 타인에 대한 긍정을 동시에 할 수 있어 마음근력의 기반이 되는 전전두피질이 강하게 활성화됩니다. 그래서 행복해지는 능력도 향상됩니다     운동은 긍정성과 어떤 연관이 있나요?   유산소와 근력 운동, 스트레칭을 골고루 해주는 게 좋습니다. 땀을 약간 흘릴 정도요. 이때 뇌의 혈액순환이 잘 되고, 인지능력도 향상됩니다. 즉 스트레스는 낮추고, 사고력은 높이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 번 세 시간씩 몰아서 하는 것보다는,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을 하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또 친구와 함께 하는 걸 추천해요. 즐겁고 지속해서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스포츠맨십이나 리더십 등 대인관계를 기르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김주환 교수는 “새해를 맞아 운동하기와 감사일기 쓰기를 꼭 실천해볼 것”을 권했다. 이어 “무엇보다 행복해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성룡 기자 이런 걸 사치라고 느끼는 양육자도 있을 것 같아요. 아이 챙기는 것만 해도 진이 빠지니까요.   아이 행복에 있어 정말 중요한 건 바로 양육자 본인부터 행복해야 한다는 겁니다. 부정적 감정은 상대가 무조건 알아채고 전염되죠. 양육자의 분노나 두려움, 불안은 아이에게 그대로 다 전달된다고 보면 됩니다. 양육자가 불안하고 짜증나는 상태가 되면 나름대로 아이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고스란히 그 감정이 전염되거든요.   김주환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 스스로 계획을 세워볼 것”을 추천했다. 계획을 실천하면서 느끼는 성취감이 회복탄력성을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 계획에 “운동하기와 감사일기 쓰기도 포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의 계획으로 시작된 행복 프로젝트로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나의 행복은 권리가 아닙니다. 가족이나 회사, 학교 등 자신이 속한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의무라고 봅니다.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도 행복해지니까요. 불행은 전염됩니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 의무감을 갖고 행복해지세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회복탄력성을 높이려면 ‘자기조절력’과 ‘대인관계능력’이 필요해요. 이중 자기조절력은 자율성으로부터 시작돼요. 아이 스스로 결정하고, 돌아보는 과정에서 전전두피질이 활성화하기 때문이죠.  ②”남에게 베풀고, 양보하며 살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럼 대인관계도, 회복탄력성도 좋아질 거예요. 학업 경쟁을 부추기는 행동은 아이의 자기가치감을 떨어뜨릴 수 있으니 하지 마세요.  ③ 회복탄력성은 긍정적 정서에서 발현되죠. 뇌의 공포와 공격성을 처리하는 편도체는 안정화하고, 감정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은 활성화하세요. 감사일기 쓰고 운동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 관련기사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③ 초등생이 ‘고교 수학’ 끝낸다…입학시험에 5000명 몰린 학원 ②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①   ‘hello! Parents’ 연재 콘텐트는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인 The JoongAng Plus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06

    2023.01.01 15:27

  • 화 좀 그만 내고 싶다고요? 이 말 한마디면 됩니다

    화 좀 그만 내고 싶다고요? 이 말 한마디면 됩니다 유료 전용

    아이에게 화내고, 후회하고, 돌아서서 또 화내는 양육자가 많습니다. 이때 ‘부족한 부모’라고 자책하지 마세요. 분노 뒤에 다른 감정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화가 난 진짜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버럭’ 하지 않고 화를 잘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권수영 연세대 상담코칭학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분노는 양육자의 탓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보다는 감정이 만들어지는 과정,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끝에 감춰졌던 내 약점을 인정하고, 고백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화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 교수는 “감정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내면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게 먼저”라며 “그래야 아이의 내면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권수영 연세대 상담코칭학 교수는 “화를 조절하기 위해 화 이면에 숨어 있는 감정을 먼저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연세대에서 상담코칭학을 가르치는 권수영 교수는 그동안 마음의 상처를 입은 양육자와 아이들을 수없이 만났다. 양육자는 감정이 일어나는 과정을 몰라 화의 악순환에 허우적거렸다. 그 사이 아이는 아이대로 상처를 받았다. 그 모습이 애처로워 권 교수가 부모 상담에 앞장섰다. 『치유하는 인간』『아이 마음이 이런 줄 알았더라면』 등 여러 권의 책을 쓰고, 강연에 나서는 것도 그래서다.    ━  📢 “조급해 마라, 부모는 해결사가 아니다”       화는 순식간에 불쑥 나타나는지라 한번 휘말리면 조절이 쉽지 않다. 당장 바닥에 드러누워 떼쓰는 아이를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순간만 참으면 되는데, 끝내 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올라온 화를 가라앉힐 방법은 없을까? 권 교수는 “문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조급한 마음부터 내려놓자”며 “양육자는 해결사가 아니다. 아이에게 호기심을 갖고 학습자처럼 상황을 바라보라”고 말했다.   학습자가 되라뇨, 이미 육아 공부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육아 상식을 쌓는 것만큼 아이를 탐구하는 태도를 가지라는 의미입니다. 양육자는 문제가 생기면 해결에 급급합니다. 그래서 미리미리 대처법을 배워둡니다. 양육서, 강연, 육아 커뮤니티 등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주고받죠. 배운 대로 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에서요. 배우는 자세는 좋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크게 간과한 게 있습니다. 아이는 절대 책대로, 예상대로, 틀에 맞춰 자라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양육에 답을 정해 놓지 말고, 내 아이를 탐구하라는 겁니다.     어떻게 탐구하면 될까요? 우선 판단을 멈추세요. 양육자의 경험에 비춰 아이의 행동과 마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첫째가 둘째를 괴롭히면 큰아이가 질투한다고 생각하고 다그치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이때 큰아이의 마음에는 ‘나는 이제 보호받지 못하는 건가?’라는 불안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안감을 괴롭힘으로 표현한 거죠. 이렇게 아이의 행동을 일으키는 요인을 궁금해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아이를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고 찬찬히 물어봐야 합니다. 권수영 교수에 따르면 화나는 순간 판단을 멈추고, 무엇이 아이를 화나게 했는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김상선 기자 이해는 가는데, 대화 시작부터 어렵습니다.   질문을 ‘왜(why)’가 아닌 ‘무엇이(what)’로 바꿔 보세요. 우리는 흔히 화가 난 순간 “왜 그렇게 눈을 떠?” “넌 왜 그렇게 고집이 세니?”라고 말합니다. 왜는 판단하는 사람의 단어예요. 상대가 잘못했다고 단정짓고 추궁하죠. 반면에 ‘무엇이’는 상대의 욕구와 감정을 이해하겠다는 태도입니다. 질문이 “무엇이 우리 아이를 화나게 했을까?” “무엇을 이렇게 간절하게 원하는 걸까?”로 바뀝니다. 판단자가 아닌, 학습자의 태도로 상대의 정서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격해진 감정도 차분하게 만듭니다. 아이가 차분해지면 양육자도 화를 가라앉힐 여유가 생기고요.   감정이 너무 격해져 아무 생각이 안날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쉬운 건 눈을 감고 바다 위 배를 상상해 보는 거예요. 그러고는 ‘부~’ 뱃고동 소리를 내며 숨을 길게 내쉬세요. 7초간 들이마시고, 10초 이상 내뱉는 7UP(세븐 업) 호흡법도 좋습니다. 길게 날숨을 쉬면 교감신경의 흥분 상태가 낮아지고, 혈관이 넓어지며 혈압을 낮춰 감정을 차분하게 만듭니다. 이때 편안했던 기억을 떠올리면 더 좋아요. 무엇보다 무조건 화를 잠깐 멈추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눈을 감고 노란 정지판을 떠올린다거나 손목에 찬 고무줄을 튕기는 식이죠. 내가 화났다는 걸 알아차리고, 화난 이유, 아이를 거슬리게 하는 건 무엇일까를 생각할 수 있는 쉼표를 주는 겁니다.      ━  📢 “착각하지 마라, 착한 아이는 환상이다”     권 교수에 따르면 화 뒤에는 수많은 감정이 뒤엉켜 있다. 화내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화 이면에 숨은 감정부터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화의 원인도 찾을 수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권 교수는 ‘착한 아이는 환상’이라는 것부터 알아차리자고 했다.   착한 아이가 환상이라고요? 우리는 늘 아이들에게 착하라고 요구합니다. 부모 말 잘 듣고, 잘 웃고, 진실되라고 하죠. 그런데 아이도 사람입니다. 거짓말하면 안 되나요? 화내면 안 돼요? 어른들은 화내고 거짓말도 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는 안 된다? 가능한 얘기일까요?   듣고 보니 무리한 요구 같네요. 환상이란 너무 간절히 원하는데 결국 이뤄질 수 없는 걸 말합니다. 우리는 아이가 늘 착하길 바라지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착한 아이는 환상’이라는 말은 ‘착한 아이란 없다는 걸 받아들이라’는 걸 의미합니다. 권수영 교수에 따르면 화는 자기를 향해 느끼는 구심력 감정인 ‘부끄러움’을 숨기려 애쓰다가 아이에게 ‘화’라는 원심력 감정으로 표출한 것이다. 김상선 기자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양육자의 화가 가라앉을 수 있나요?   일단 준비는 된 겁니다. 화가 일어난 진짜 이유를 찾을 자세가 됐다는 뜻이거든요. 환상의 중심에는 ‘나의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착한 아이는 내가 간절히 바라는 아이라는 얘기죠. 그렇다면 나는 왜 그토록 착한 아이를 원하는 걸까요? 내 진짜 바람(want)은 무엇일까요? 화를 쏟아내는 방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화를 쏟아내는 방향요? 환상에 빠지면 화는 아이를 향합니다. “네(아이)가 게임 그만하라는 말 안 들어서 화나” “네(아이)가 제대로 앉아서 밥 먹지 않아서 화나” 이런 식이죠. 저는 이걸 ‘원심력 감정’이라고 부릅니다. 상대 탓을 하며 다른 사람에게 분출하는 감정을 말합니다. 분노, 원망, 미움 등이 대표적이죠. 그런데 착한 아이란 없다는 걸 깨달으면 화의 방향이 바뀝니다. 화의 원인이 아이가 아니니까요. 결국 이 화는 처음부터 나, 양육자 자신을 향하고 있던 겁니다. 이런 나를 향한 감정을 저는 ‘구심력 감정’이라고 불러요. 이때 중요한 건 구심력 감정의 실체는 화가 아니라는 겁니다. 분노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감정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화난 상황으로 돌아가 보죠. “게임 그만하라”는 말을 어기고, 아이가 또 게임에 손을 댑니다. 내 통제에서 벗어난 거예요. 바꿔 말하면 ‘나의 통제 능력이 떨어졌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는 아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부족한 부모’가 됩니다. ‘부족한 부모’란 인식 안에는 여러 감정이 섞여 있습니다, 부끄러움, 한심함 등요. 이게 구심력 감정의 실체입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한심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거죠. 또 이 감정 안에는 내 바람도 담겨 있습니다. 내 뜻대로 아이를 통제하는 ‘완벽한 부모’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이게 화를 일으킨 진짜 원인입니다. 원래는 아이를 통제하고 싶다는 내 바람이 좌절되면서 일어난 ‘부끄러움’을 표현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건 약한 감정이라 표현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게 어려우니 ‘화’라는 원심력 감정을 아이에게 쏟아낸 겁니다.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감정의 메커니즘을 알고 나니 내 감정에 아이가 상처받았을까 걱정되네요. 마음을 다해 사과하면 됩니다. 단, 원심력 감정이 아닌 내 바람(want), 그리고 바람과 연결된 구심력 감정을 털어놔야 합니다. 저는 ‘want 대화법’이라고 불러요. 예를 들어 “엄마·아빠는 너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 싶었는데(want), 그렇지 못한 것 같아서 속상했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대사도 참고해 보세요. 아버지 성동일씨가 제대로 된 생일상 한번 받아보지 못해 서운해하는 둘째 딸 덕선이에게 한 말이에요. 둘째 딸에게 아버지는 양육자로서 자녀를 잘 키우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자신에게 느낀 부끄러움을 솔직하게 말합니다. 내 약점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이 한 마디가 양육자의 감정에서 시작된 화, 그 화에 상처받은 아이의 감정을 풀어주는 열쇠입니다.   “아빠·엄마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래. 첫째 딸은 어떻게 가르치고, 둘째는 어떻게 키우고, 막둥이는 어떻게 사람 만들어야 할지 몰라서. 이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잖아. 아빠도 아빠가 처음인데, 그러니 우리 딸이 조금 봐줘.” 2015년 방영한 드라마 ‘응답하라1988’의 한 장면. 아버지 성동일은 양육자로서의 바람과 바람이 좌절되면서 느낀 부끄러움을 둘째 딸에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사과한다. [사진=tvn 드라마 응답하라1988 화면 캡처]    ━  📢 “부끄러워하지 마라, 화는 성장 신호다”     나를 향하는 감정, ‘구심력 감정’을 알아차린다는 건 중요하다. 내 존재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 교수는 구심력 감정을 ‘존재감’이라고 부른다. 존재감이 낮아지면 우리는 자신감을 잃고, 자기 비하에 빠지기 쉽다. 그럴수록 하찮은 자신을 더 인정하기 싫어지고, 원심력 감정에 쉽게 휘말린다. 권 교수가 “화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존재감이 튼튼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그는 “지금 아이의 사소한 몸짓 하나, 말 한마디에 쉽게 분노한다면 내 존재감을 점검할 때”라고 했다.   화를 통해 내 존재감을 되돌아볼 수 있다고요? 조절이 어렵다는 건 뿌리가 흔들린다는 얘기니까요. 감정의 뿌리는 ‘존재감’입니다. 그래서 자주 화낸다는 건 내 존재감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자기 자신을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의미예요. 존재감이 떨어질수록 상대방을 향한 분노는 더 쉽게 일어납니다. 아이가 또래보다 작고, 잘 먹질 않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볼게요. 처음에 양육자는 주변의 걱정에 “나아지겠죠”라며 웃어넘깁니다. 여유 있어 보이죠. 그런데 어느 날 배우자가 “OO이 오늘은 우유 많이 먹었어? 별일 없는 거지?”라고 어제와 똑같이 묻는데 갑자기 화를 냅니다. “그럼, 당신이 먹이던가!” 하고요.   배우자가 당황스럽겠는데요. 이 양육자는 그동안 여러 사람에게 평가받으며 존재감이 떨어지고 있었던 거예요. 처음엔 존재감이 어느 정도 뿌리내리고 있으니, 스스로 ‘괜찮아’ ‘나는 소중해’라며 자신을 긍정적으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이때는 어떤 말에도 타격이 크지 않아요. 하지만 계속해서 지적받고, 상황이 뜻대로 안 되면 존재감이 서서히 떨어진 겁니다. ‘나 때문에 아이가 아픈가’라는 생각은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될까’라는 자기 비하로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다가 바닥을 친 존재감이 건드려졌다고 느끼는 순간, 더는 참지 못하고 상대에게 화로 감정을 분출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화내고 나면 부끄럽습니다. 후회도 되고요. 자책하지 마세요. 양육자의 잘못이 아닙니다. 분노가 나쁜 감정도 아니고요. 대신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스스로 인정하지 않고 있구나’를 깨닫고, 성장과 자기 돌봄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상담(couselling)은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기르게 하는 게 목표다. 상담학의 시초인 연세대에서 ‘상담’이란 전공명에 ‘코칭’을 붙인 이유라고 권 교수는 설명했다. 김상선 기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선 ‘참 자기(true self)’를 받아들이세요. ‘참 자기’란 강점과 약점이 공존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말합니다. 반대로 거짓 자기(false self)는 타인을 위해 존재하는 자기입니다. 가면을 쓰는 거죠. 예를 들어 몰라도 아는 척, 속상해도 상처받지 않는 척하죠. 이건 내 약한 모습을 방어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잠시라도 방어를 멈추고 가면을 벗고 견뎌보는 연습을 권합니다. 제가 추천하는 방법은 ‘감정 일기’를 쓰는 겁니다.   감정 일기요? 나 자신에게 느꼈던 감정을 일기장에 솔직하게 털어놓는 겁니다. 일기장에는 부끄러운 감정도 마음껏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요. 이때 ‘나는 이 감정에서 무엇을 원했던 걸까?’도 함께 생각해 봐야 하죠.   하지만 감정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감정을 하나의 인격체로 생각하며 다양하게 표현하면 도움이 됩니다. 애니메이션 영화 ‘인사이드 아웃’의 다섯 가지 감정처럼요. “짜증난다”는 말을 불쾌하다, 언짢다 등으로 바꿔 보는 거예요. 나에게 느끼는 감정과 그 뒤에 숨은 내 바람(want)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죠. 이렇게 존재감에 계속 관심을 갖다 보면 나에게 동정심이 생깁니다. 수치심, 비참함, 자괴감 등 약한 감정에 연민을 갖고 토닥토닥 돌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다 용기가 생기면 마음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대상도 만들어 보고요.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참 자기를 공개하라는 걸까요? 내 존재 그대로를 수용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존재감의 뿌리는 강해집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주니까요. 양육자에게 가장 든든한 파트너는 배우자입니다. 하지만 상대의 감정을 평가하지 않고 “그래, 그럴 수 있어”라며 무조건 공감해 주기란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일단 저는 상담사를 찾기를 권합니다. 흔히 상담이라고 하면 정신의학에서 말하는 정신(심리)치료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상담학에서 말하는 상담(counselling) 서비스는 내담자를 고객으로 보고,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기르도록 돕습니다. 건강을 위해 매일 운동하듯 내 마음을 평소에 돌보는 겁니다. 상담 서비스를 활용한다면 양육자의 존재감은 얼마든지 적절히 관리할 수 있습니다.   권 교수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자신도 여느 양육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을 지키려고 애써 왔다는 거다. 자녀들은 이제 다 큰 20대 성인이 됐지만, 여전히 애가 탄다고 했다. 당장 전공 선택을 앞두고 천하태평인 대학생 둘째를 보면 답답하고 불안하단다. 하지만 “부모가 답해 줄 수 없는 영역”이라고 권 교수는 잘라 말했다. 그저 아이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고 있다고 했다. 권 교수는 “둘째가 새로운 전공을 만들어 또 다른 길을 개척할지 누가 알겠냐”며 “‘아이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열릴까?’ 궁금해 하고, 상상하면 양육만큼 재밌는 일도 없다”고 말했다.   아이와 양육자는 활과 활시위의 관계입니다. 활시위가 뻣뻣하면 활은 날지 못하죠. 활시위도 부러집니다. 유연해 지세요.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찾아 날아갈 수 있다고 믿으세요. 그래야 아이와 양육자 모두가 여유 있게 함께 웃고, 함께 성장합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부모는 해결사가 아니다.” 아이는 책대로 크지 않습니다. 아이에게 호기심을 갖고 탐구하세요. 내 경험에 비춰 아이를 판단하지 말고 왜(Why)가 아닌 무엇이(what)로 물어보세요. 감정이 격해졌을 땐 긴 날숨이 도움이 됩니다. ·“착한 아이는 환상이다.” 화(火)의 이면에 감춰진 감정을 이해해야 합니다. 착한 아이란 ‘완벽한 부모’가 되겠다는 바람(want)이 만든 환상이라는 걸 알아차리세요. 바람이 꺾였을 때 느끼는 나에 대한 감정이 화나는 진짜 이유입니다. ·“화는 성장의 기회다.” 화는 내 가치를 결정하는 ‘존재감’이 떨어졌다는 신호입니다. 존재감을 자기 돌봄, 성장의 기회로 삼으세요.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존재하는 ‘참 자기(true self)’를 인정하고, 감정 일기를 통해 내 약점과 마주하세요. 」 관련기사 “화났구나 그랬구나” 이 말만 하면, 떼쓰는 아이에겐 '독' 방이 돼지우리니? 이 말 나올 상황에 부모가 대신 해야할 말 “육아, 쌀·물·불 이 세가지만 집중하면 된다"…존스홉킨스 의대 교수 밥짓기 육아론  

    2022.12.25 15:54

  • 아이 폰 중독 막을 두 습관…‘디지털 지능’ 창시자의 픽

    아이 폰 중독 막을 두 습관…‘디지털 지능’ 창시자의 픽 유료 전용

    코딩 교육, 필요합니다. 디지털 인재 양성도 중요하죠. 하지만 여기서 놓치고 있는 게 있어요. 첨단 기술을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지는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4차 산업 혁명시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느냐는 질문에 글로벌 싱크탱크 ‘DQ 연구소’ 대표 박유현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박 박사는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속도를 법과 규제가 따라잡을 수 없고, 부모가 일일이 아이의 디지털 뒤꽁무니를 쫓아다닐 수도 없다”며 “결국 아이들이 온라인 세상에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역량이 바로 ‘디지털 지능(DQ, Digital Quotient)’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하버드대 출신의 통계학자인 박유현 박사는 세계 최초로 ‘디지털 지능’ 개념을 창안해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었다. 사진 박유현 박사   디지털 지능은 박 박사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창안해 글로벌 표준으로 만든 개념이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의 총체적 역량을 뜻한다. 코딩 같은 기술 활용 능력뿐만 아니라 이를 안전하고, 책임감 있게, 윤리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줄 아는 시민 의식까지 포함한다.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통계학자인 박유현 박사가 디지털 지능이란 개념을 만들게 된 건, 10여년 전 접한 일련의 사건이 발단이 됐다.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 사건을 보도한 뉴스 하단에 미성년자를 앞세운 음란 광고가 실린 웹사이트를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이듬해 그는 디지털 공해로부터 아이들을 지키자는 사회 운동(인폴루션 제로)에 뛰어들었다. 이후 학문적으로 디지털 지능(DQ) 개념을 정립하고, 2017년 DQ연구소를 세웠다. DQ는 2020년 세계 최대 규모 학술표준화 단체인 IEEE(국제전기전자학회) 표준협회로부터 디지털 역량, 디지털 리터러시의 국제 표준으로 공인됐다.   박 박사는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의 존재를 넘보고, 메타버스의 등장으로 현실의 나와 디지털 자아(自我)의 물아일체가 일어나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한다. 때문에 “인간이 기술의 노예가 아니라 지혜로운 주인이 되려면 DQ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급속도로 변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DQ를 키우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스마트폰에 빠진 아이를 둔 양육자에게 DQ는 어떤 해결책을 줄 수 있을까? 지난 9일 싱가포르에 거주하는 박 박사를 화상으로 만나 인터뷰했다.    ━  📌코딩보다 중요한 이것   박유현 박사는 “코딩을 가르치기 전에 디지털 시민 의식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이런 주장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DQ에 대한 오해와도 관련이 깊다. 대표적인 것이 디지털 지능을 코딩, 소프트웨어, 빅데이터 같은 디지털 지식에 관한 이해와 활용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디지털 지식과 기술을 콘텐츠나 사업으로 확장하는 능력, 즉 창의력도 디지털 지능으로 보기엔 한계가 있다고 박 박사는 말한다. 모두 디지털 지능의 일부이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디지털 지능의 핵심이자 기본 토대인 ‘시민 의식’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민 의식이 뭐길래 그렇게 중요한가요? 온라인 세상에서 잘 살아가려면 기술을 안전하고, 책임감 있게, 윤리적인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해요. 디지털 세상에서도 현실과 마찬가지로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들이 있잖아요. 자신의 정체성, 시간, 재산, 지식, 생명, 가족과 타인, 사생활 같은 가치들이요. 이런 것들이 존중받기 위해 필요한 핵심 역량이 바로 디지털 시민 의식입니다. 우리가 디지털 세상의 해악, 위험이라고 말하는 온라인 따돌림, 해킹, 게임 중독, 악성 댓글 같은 문제들이 사실 디지털 시민 의식이 부족해서 생겼다고 봐요.   박유현 박사는 “디지털 시민 의식은 디지털 지능의 기본적인 토대가 되는 핵심 역량”이라며 “세부적으로는 균형잡힌 기술 사용 능력 같은 여덟가지 역량이 있다”고 설명한다. 사진 박유현 박사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디지털 시민 의식에 필요한 역량을 여덟 가지로 규정했어요. 예를 들어, 자제력을 발휘해서 스마트폰을 적절한 시간 동안만 사용하려면 ‘균형 잡힌 기술 사용 능력’이 필요합니다. 넘쳐나는 정보나 가짜 뉴스를 분별하고 평가할 수 있으려면 ‘미디어 및 정보 리터러시 능력’이 중요하죠. 내가 올린 사진과 포스팅이 나의 평판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판단하는 건 ‘디지털 발자국 관리 능력’에 달렸습니다. 이런 여덟 가지 역량을 저는 ‘디지털 DNA’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디지털 DNA를 장착할 수 있을까요? 자녀에게 그런 역량을 갖게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양육자들이 많잖아요. 디지털 시민 역량은 학교 교육이 가장 효과가 좋아요. 교실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피드백을 받았을 때 가장 잘 습득할 수 있습니다. 제가 디지털 시민 교육이 초등학교 교육 과정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그래섭니다. 문제는 정규 교육과정으로 들어가려면 지금부터 빨라도 3~4년이 걸린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만든 게 ‘DQ월드’라는 초등학생 대상 교육 프로그램이었어요.   DQ 월드가 뭔가요? 아이들이 직관적이고 주도적으로 디지털 시민 역량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교육 프로그램이에요. 만화 캐릭터에 스토리텔링을 입혀서 마치 게임을 하듯 재미있게 만들었죠. 평범한 아이가 영웅이 되어 여정을 떠난다는 설정이에요. 디지털 위험으로 상징되는 괴물들을 무찌르고, 디지털 시민 역량을 상징하는 파워를 얻게 된다는 내용이죠. 초등학교 3, 4학년 학생들이 10시간 정도 걸리는 프로그램을 이수하면, 간단한 테스트를 치르고 그 결과를 토대로 선생님, 부모님과 상담도 합니다.   ‘DQ월드’ 교육 프로그램은 캐릭터에 스토리텔링을 입혀 게임을 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이 쉽고 재미있게 디지털 시민 역량을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사진 박유현 박사   그 교육을 받고 아이들이 달라지던가요? 인도 남학생의 이야기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이 친구가 같은 반 여학생의 신체 사진을 찍어서 온라인 음란 커뮤니티에 팔았다고 해요. 그래서 번 돈을 친구들과도 나눴죠. 이 학생에게 디지털 시민 교육 프로그램을 받게 했는데요, 받고 나서 하는 말이 “그 전에는 이런 행동이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이에겐 기술을 활용하고 수익을 창출, 분배하는 능력도 있었지만, 디지털 시민 역량이 없었던 거죠. 교육을 통해 디지털에도 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 거고요.    ━  📌조기 교육 필요한 디지털 시민 역량   디지털 시민 교육은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특히 이 교육이 필요한 건 8~12세 어린이라고 박유현 박사는 말한다. 그는 이 연령대를 디지털 시민 교육의 ‘골든 타임’이라고 표현했다.   8~12세가 왜 특별한가요?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어요. 디지털 사용 시기와 아이 발달 단계 측면에서요. 이쯤 되면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신 소유로 된 디지털 기기를 갖게 되고, 소셜 미디어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만큼 디지털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커지고요.   연구소에서 ‘아동 온라인 안전 지수’도 발표하시던데, 요즘 아이들이 디지털 세상에서 얼마나 위험한가요? 지난 11월에 발표한 결과를 말씀드릴게요.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00개국에서 33만명의 8~18세 어린이, 청소년을 조사했어요. 응답자의 73%가 지난 1년간 적어도 한 종류의 사이버 위험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어요. 온라인 괴롭힘, 음란물, 성적 접촉, 게임 중독 같은 문제들 가운데 최소 한 가지는 이미 겪어봤다는 거죠. 이런 위험에 본격적으로 노출되기 전에 아이들에게 미리 대처 방안을 알려줘야겠죠.   박유현 박사는 “8~12세가 디지털 시민 역량 교육의 골든 타임”이라고 주장한다. 사진 박유현 박사   교육 시기와 아이 발달은 무슨 상관이 있나요? 이 연령대가 되면 아이들은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판단하려는 경향이 생깁니다. 어떤 태도나 행동에 대한 규범을 형성하는 거죠. 이때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친구 같은 또래인데요. 요즘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미디어, 디지털 기기가 강력한 또래 역할을 하죠. 그러다 보니 디지털 미디어에서 나오는 걸 모두 적절하고 좋은 행동이라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구글 검색에서 가장 위에 나온 정보, 알고리즘이 추천한 콘텐츠가 모두 진실이거나 가장 좋은 정보라고 믿는 겁니다.   그런 알고리즘 추천의 폐단을 피할 방법이 있을까요? 디지털 시민 역량의 중심에 저는 분별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올바른 가치관을 토대로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역량 말입니다. 온라인 세상에선 어떤 정보와 사람이 믿을만 한지, 나의 행동이 나와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분별력을 키우려면 동시에 디지털 세상의 작동방법도 알아야 해요. 내가 보는 이 유튜브 콘텐츠가 나의 과거 경험을 기반으로 인공지능(AI)이 추천해준 것이라는 사실부터 알고 봐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 정보가 자기한테 왔는지 알고 보는 것과 아닌 것은 그 정보의 가치를 판단하는 데 큰 차이를 만드니까요. 더 쉬운 방법도 있습니다. 그냥 유튜브에서 알고리즘 추천 기능을 끄면 됩니다.    ━  📌스마트폰 중독 막을 수 있다   자녀에게 휴대전화를 언제, 얼마만큼 허용할 것인지는 양육자들에겐 초미의 관심사다. 박유현 박사도 인터뷰 때마다 늘 이런 질문을 빼놓지 않고 받는다고 한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DQ 창시자로서의 공식적인 답변과 중학생 아들과 딸을 키우는 양육자로서의 개인적인 조언을 오갔다.   요즘엔 초등학생 대부분이 휴대전화를 갖고 있습니다만, 불안합니다. 언제부터 휴대전화를 쓰도록 하는 게 좋을까요? 객관적 기준으로는 디지털 지능(DQ) 점수를 기준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50여개 문항으로 구성된 테스트인데, 디지털 시민 의식을 이루는 여덟 가지 역량에서 각각의 준비 수준을 평가해 수치화한 거예요. 개인의 디지털 습관이나 준비 정도를 점수로 가늠해볼 수 있죠. 글로벌 평균은 100점이에요. 85점 미만이면 디지털 사용 습관이 건강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115점 이상이면 DQ 역량이 비교적 뛰어나다고 봅니다. 저는 아이의 DQ점수가 100점을 넘을 때 스마트폰을 주라고 권고합니다. 제 아들에게는 DQ점수가 115점을 넘어야 휴대전화를 사주겠다고 했어요. 그 점수를 넘은 열세 살 때 휴대전화를 갖게 됐고요.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DQ점수가 높은 아이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 안심해도 되는 걸까요? DQ 점수가 높다고 모든 디지털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건 아닙니다. DQ 테스트는 하나의 기준선일 뿐이에요. 제가 우려하는 건 DQ 테스트가 그 자체로 목적이나 만능이 되는 현상입니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얻기 위해 어떻게든 점수를 높이려고 한다거나, DQ점수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부모나 교사가 방치하는 일들이 생기면 안 된다는 겁니다. DQ 테스트는 처음부터 디지털 시민 교육을 받고 난 후 그 이해 수준을 파악하고 피드백을 주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졌어요. 디지털 역량의 강점, 약점을 파악해서 교사, 부모가 아이와 앞으로 어떤 걸 보완하면 좋은지 대화를 나누기 위한 자료인 거죠. 점수만 받고 끝난다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디지털 기기 사용 시간을 정하는 구체적인 지침이 있을까요? 가정마다 처한 상황이나 아이의 성향이 다르니 하나의 지침이 모두 통한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다만 관련된 과학적인 연구 결과, 학회 가이드라인 같은 건 참고해볼 수 있겠죠. 예를 들어, 24개월 미만 아이에게는 미디어 노출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권고 사항 같은 것들이죠.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가정마다 미디어 룰(rule)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언제 어떤 경우에 미디어를 쓰고, 또 쓰지 않는다는 원칙 말입니다. 아이도 지키고, 부모도 지켜야죠. 가급적이면 자녀가 어릴 때부터 이런 규칙을 세우고 당연하게 지켜나가는 집안 문화를 만들면 좋겠죠.   박사님 댁에는 어떤 미디어 룰이 있나요? 저희 집에는 최소한의 두 가지 원칙이 있어요. 밥 먹을 때 그리고 잠잘 때는 스마트폰, 컴퓨터를 쓸 수 없다는 겁니다. 잘 때는 스마트폰을 자기 머리맡에 두지 않고 거실에 두죠. 미디어 룰을 세울 땐, ‘그만해’, ‘뺏는다’ ‘없앤다’ 는 말만 하면 안 돼요. 특정 상황에서 디지털 기기를 과하게 쓰면 자신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 나타나는지도 같이 설명해 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취침 전 스마트폰을 보게 되면 잠을 제대로 푹 자기 힘들고, 건강과 일상이 무너지잖아요. 이런 식으로 아이들에게 디지털 기기와 세상이 나의 건강과 정신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일단 인지시켜야 해요. 이후에 아이들이 그 영향을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게 끔요.   박유현 박사는 “가정마다 미디어 룰이 있어야 한다”며 “적어도 잠 잘 때와 식사할 때는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라”고 조언했다. 사진 박유현 박사   자녀들이 그런 약속을 잘 지키려 할까요? 당연히 처음엔 아이들이 불평할 거고 반항하겠죠. 저희 집도 그랬어요. 그래도 저는 이 원칙은 지켜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분명히 얘기했어요. 이때 양육자가 해야 되는 건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겁니다. ‘네가 어떤 점에서 불만인지 들어보겠다’는 대화하고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그러다 어떤 경우에는 합의를 보기도 하겠죠. 어찌 됐든 기본적인 전제를 세우고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쉽지는 않죠. 엄마, 아빠가 말 한마디 했다고 아이들이 잘 지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 아닌가요? 아이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해요. 오늘 실패하면, 내일 또 하면 됩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 보는 거죠. 부모님들이 너무 좌절하지 않았으면 해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디지털 지능은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난 아이들이 온라인 세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다. 각종 사이버 위험에 노출되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덩달아 커졌다. 이에 대해 박유현 박사는 “디지털 세상에서 아이들이 무방비로 위험에 처해있는 상황은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도 있었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아이들이 처한 디지털 현실을 가까이에서, 자세히 볼 수 있게 되면서 경각심이 높아진 것”이라며 “코로나19는 그런 면에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준 것”이라고 말했다.   제가 디지털 지능이란 개념을 만든 건 아이가 사는 온라인 세상을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됐어요. 그 교육의 중심에는 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지금부터라도 집, 학교, 사회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합니다. 나와 내 아이가 디지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길 바라시나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코딩보다 디지털 시민 의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급변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기술을 안전하고, 현명하게 사용하는 능력을 길러줘야 해요. 그래야 기술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시민 교육은 빠를 수록 좋습니다: 8~12세가 골든 타임입니다. 아이들이 디지털 위험에 본격 노출되기 전, 미디어가 판단력을 흐리기 전에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야 해요.    ·스마트폰 중독 막을 수 있습니다: 집마다 미디어 원칙을 세우세요. 최소 잠 잘 때, 밥 먹을 때는 디지털 기기 쓰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죠.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더라도 포기 마세요. 계속 대화하고 설득하세요.      」 관련기사 “서울대생은 경주마 같았다” 그 교수가 가천대 간 이유 "더하라고요? 덜 배워야 합니다" 큰별쌤 최태성의 역사 공부법 아이들이 ADHD 검색 시작했다…'코로나 2년' 충격의 뇌폭동    

    2022.12.18 11:26

  • ‘아버지가 통닭을 사 오셨다’ 이 문장에 문해력 힌트 있다

    ‘아버지가 통닭을 사 오셨다’ 이 문장에 문해력 힌트 있다 유료 전용

    문해력 높으면 공부 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 잘한다고 문해력이 높은 건 아닙니다. 문해력은 단순히 글자를 읽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의미를 확장할 줄 알아야 해요. 내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정보 과잉 시대, 문해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조병영(48) 한양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문해력은 간단하게 정의하면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다.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행위뿐만 아니라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타인과 소통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조병영 교수는 “주어진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읽지 말고, 배경 지식을 활용해 자신만의 의미로 이해하고, 지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그게 바로 ‘진짜 읽기’이자 문해력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국어교육전문가 조병영(48) 한양대 교수는 “문해력을 단순히 글자를 읽어내려가는 능력이 아니라, 글을 읽고 의미를 확장해 내 삶과 연결시키는 능력을 말한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조병영 교수는 15년간 리터러시(literacy·문해력)를 연구하고, 가르친 국어교육학자다. 그가 주목하는 분야는 문해력 가운데서도 ‘읽기’다. 고등학교 교사 출신인 그는 학교에서 아이들의 읽기 역량이 무너지는 걸 목격했다. 아이들은 오로지 시험과 성적을 위해 문자를 읽고, 외우고, 잊어버리길 반복하는 ‘가짜 읽기’를 하고 있었다. 계속 글자 읽기에만 머무른다면, 서로의 말과 생각을 이해하지 못해 소통이 힘들어질 것 같았다. 최근 그 불통(不通)의 신호가 곳곳에서 보인다. 온라인상에서 ‘심심한 사과’가 불러일으킨 소란이 대표적이다. 그가 올해 들어 연달아 『읽는 인간』과 『읽었다는 착각』을 펴낸 것도 그래서다. 실생활에서 ‘진짜 읽기’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하루라도 빨리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지난 2일 만난 조병영 교수는 “가짜 읽기만 가르친다면 우리는 인공지능(AI)보다 못한 인간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서로 다른 정보를 연결해 의미를 만들고, 새로운 지식으로 만들어내 일상에 적용할 줄 아는 읽기 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디지털 환경에서의 읽기 전략 세 가지를 소개했다.     ━  📢 “진짜 읽기는 대화로 시작한다”   조병영 교수가 말하는 ‘진짜 읽기’는 4차 산업시대와 맞닿아 있다. 미래 사회의 화두인 ‘융합’이 곧 연결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가 유독 ‘연결 짓는 능력’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이제는 읽은 글들을 연결하고 통합해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보와 지식을 결합해 새로운 걸 창조하는 시대임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읽기가 서툰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다.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조병영 교수는 “생각하는 과정을 대화로 알려주면 된다”며 “자녀에게 양육자의 생각을 관찰할 기회를 주라”고 했다.   생각을 관찰할 기회를 주라고요? 먼저 이 문장을 읽어보죠. “아버지가 통닭을 사 오셨다.” 무엇이 떠오르나요?   축구? 퇴근길?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떠오르네요.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의 경험과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이해하니까요. 이게 우리가 글을 이해하는 방식, 즉 생각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글을 읽을 때 배경 지식을 활용해 의미를 이해합니다. ‘가방’이라는 글자를 보고, 학교 갈 때 메는 책가방, 엄마가 드는 손가방 등을 떠올리는 식이죠. 그런데 아직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는 읽는 동시에 생각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떠오른 생각을 인지하는 것도 서툴고요. 그래서 양육자의 생각 과정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겁니다.   양육자의 생각을 어떻게 보여주나요?   ‘생각 말하기(Think Aloud)’를 하면 됩니다. 생각의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말로 표현하면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통닭을 사 오셨다”를 읽을 때 “축구 중계하는 날인가?” “퇴근길에 샀겠지?” 등 떠오른 생각을 말로 내뱉는 식입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축구 볼 때 먹었던 통닭과 이 글의 통닭이 같은 거구나”라고 깨닫습니다. 배경 지식을 활용해 글을 이해하는 법을 배운 겁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도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시기가 오는데요. 이때 비로소 연결 짓기가 시작됩니다.  조병영 교수에 따르면 읽기의 시작은 생각과 생각을 연결 짓는 경험, 대화에서 시작한다. 김상선 기자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대화를 통해서요. 생각과 생각이 연결되거든요. 대화 순서가 이렇습니다. 아이가 생각을 말로 꺼내면, 양육자가 반응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양육자의 반응에 또다시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말을 주고받으면서 생각이 연결되는 경험을 합니다. 이때 한 가지 팁이 있어요. 대화거리를 과거 경험에서 끌고 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백설 공주를 읽다가 “어제 읽은 신데렐라는 언니들이 있었는데”라든가 “OO이처럼 친구들이 7명이나 있네”처럼요. 읽고 있는 글에서 벗어나 전에 읽었던 이야기, 직접 체험했던 사례를 빗대어 보는 겁니다. 이렇게 대화를 하면 내 경험을 새 정보와 연결 지어 이해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런데 자칫 잘못된 생각을 주입할까 봐 조심스러워져요.   생각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생각의 과정을 보여주는 겁니다. 저는 너무 말을 가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봐요. 양육자 스스로 책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단, 아이의 말을 먼저 인정하는 건 중요합니다. “그 생각 좋은 생각이다” 이 말을 반드시 해주세요. 그다음에 “이런 생각도 있어”라며 대화를 이어가세요. 그래야 세상에는 다양한 생각이 공존한다는 걸 알고, 그 생각을 비교도 하고, 추론도 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자기주장이 강한 아이들이 있어요. 대화는커녕 언쟁이 되곤 하는데요.   그래서 대화가 정교해져야 합니다. 참고 자료를 활용하는 습관을 기르면 좋은데요. 내 주장의 근거를 찾는 거예요. 어떤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짚어주면 좋습니다. 생각의 근거를 의식적으로 확인하는 겁니다. 근거를 찾는 습관은 가짜뉴스를 선별하는 방법이자, 내 생각만 맞다고 주장하지 않는 습관을 기르는 방법입니다.    ━  📢 “읽기 전후 생각의 변화를 찾아라”   ‘진짜 읽기’는 억지로 가르칠 수 없다. 생각의 과정은 누군가의 강요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조병영 교수가 디지털 읽기 전략 두 번째로 ‘능동적 태도’를 꼽는 이유다. 특히 정보가 넘치는 디지털 시대에는 정보를 탐색, 판단, 선택해서 읽으려는 의지가 더욱 필요하다. “교과서처럼 주어진 정보만 읽는 시대는 끝났다”는 얘기다. 조병영 교수는 “읽기에 대한 좋은 경험이 쌓이면 나도 잘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며 책과 친숙해지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책 읽어주기’를 꼽았다.    책 읽어주기가 중요하다는 말은 익히 들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신생아에게도 책을 읽어줍니다. 책을 손에 쥐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것에 친숙해지도록요. 이렇게 어릴 때부터 책을 읽어주면 아기들은 그 모습을 보고 말과 글자를 배웁니다. 영유아 앞에서 책을 읽어주면 시선이 책이 아니라 양육자의 입을 향해요. 글자를 따라가며 입을 움직이는 게 신기하거든요. 그걸 따라 하며 말과 글자를 익히는 거예요. 또 읽는 소리를 들으며 맥락을 이해합니다. 단어의 의미에 따라 강세, 억양 등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아빠가 통닭을 사 오셨다”를 읽을 때 통.닭.을 힘주어 읽는 식이죠. 직관적으로 이 단어가 중요하다는 걸 압니다. 책 읽어주기가 중요한 건 아이에게 의미 있고 다양한 자극을 주기 때문이에요. 그 자극이 쌓여 ‘나도 혼자 읽고 싶다’는 마음으로 자라는 거고요.    하지만 어떻게 읽어줘야 할지가 늘 고민이에요.   실감 나게 읽어야 한다는 부담은 내려놓으세요. 그저 양육자가 먼저 몰입해서 읽으면 됩니다. 그래야 진짜 감흥이 나오는 법이거든요. 내용에 집중하면 나도 모르게 추임새도 넣고, 웃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반응이 나오는데요. 이 모든 게 언어 자극입니다. 하지만 매일 책을 읽어준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땐 오디오북을 틀어줘도 좋습니다. 단, 이때는 양육자도 함께 책을 봐주세요. 양육자와 함께 읽으며, 감정을 나누는 게 중요하니까요.   조병영 교수가 읽기의 능동성을 깨우기 위해 제안한 건 두 가지다. 책 읽어주기와 읽기 전후 정보, 생각의 변화를 포스트잇에 써보는 것이다. 김상선 기자   글자를 익혔다면, 혼자 읽도록 해야 할까요? 저는 가능한 한 오래도록 읽어주라고 말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라도요. 책 읽어주기를 멈추는 시기는 아이의 의지에 달렸습니다. 저 역시 중학교 2학년 아들이 요구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주곤 하는데요. 책을 읽어주진 않지만, 아이가 어떤 책을 어떻게 읽는지 여전히 관심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아이가 스스로 읽고 싶어 하거나 눈으로만 읽기를 원할 땐 책 읽어주기를 잠시 멈추세요. 그땐 그냥 놔둬야 합니다. 혼자 책 읽는 경험을 쌓는 시간이거든요. 그렇다고 관심을 완전히 끄라는 건 아닙니다. 아이가 다시 책 읽어 달라면 그때 또 읽어주세요. 책 읽어주기는 단칼에 끊는 게 아니라 서서히 멀어져야 합니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하다고들 해요. 교과서 읽기도 바쁘거든요.   교과서라도 제대로 읽으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교육 과정에서는 교과서조차 제대로 읽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시험에 집중되어 있어서요. 그러니 수동적으로 읽고, 문제의 보기 다섯 개만 이해하고 끝납니다. 국어 점수에 비례해 문해력이 높다고 볼 수 없는 이유예요.     문해력과 교과 학습을 동시에 높일 방법은 없을까요?   교과서를 넘나들며 지식을 연결해야 합니다. 교과서와 연계된 글을 아이 스스로 찾아 읽어야 하는데, 읽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힘들죠. 그래서 저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을 추천합니다. 읽기 전과 후 생각과 감정의 변화를 포스트잇에 적어 명시하는 거예요. 읽기 전 제목·목차·이름 등을 보고 떠오른 생각과 감정을 적어보고, 다 읽은 뒤 똑같은 방식으로 써보는 겁니다. 몰랐던 것과 잘못 알고 있던 것, 새롭게 알게 된 것, 그로 인한 내 생각과 감정의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죠. 내가 알고 모르는 것을 깨닫는 것, 이게 메타인지입니다. 메타인지 능력이 높으면 읽기의 능동성도 살아납니다. 궁금하거든요.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알아보려고 노력합니다. 이게 바로 능동적 읽기입니다.        ━  📢 “보이지 않는 걸 발견하라”   조병영 교수에 따르면, 디지털 환경에서는 읽기가 더 어렵다. 검증되지 않은 공간에서 정보를 접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진실인지 허위인지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디지털 매체에 떠도는 글을 읽을 땐 “더욱 의식적으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조병영 교수가 말하는 비판이란 비난이 아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을 말한다. 조병영 교수는 “비판적 읽기는 ‘내가 아는 게 반드시 정답은 아니다’라는 것, 그리고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완벽한 글은 없다는 생각을 갖고, 글에 드러나지 않은 목소리, 상황 등을 찾아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판적 읽기는 어른도 어렵습니다.  의식을 갖고 읽으려면 시간과 훈련이 필요한 법이죠. 두 가지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첫 번째는 글에 없는 목소리를 찾아보는 겁니다. 『NO, David!』라는 책을 예로 들어볼게요. 손만 대면 엎지르고, 깨트리는 데이비드의 모습과 “No, David”라는 글자만 나오는 책입니다. 마지막은 “No, David! Love, Daivd”로 훈훈하게 끝나는 그림책인데요. 이 책을 비판적으로 읽는다면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지금 누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누구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까?”라고요. 두 번째 질문에 “데이비드”라는 답이 나온다면 드러나지 않은 걸 볼 줄 안다는 겁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질문할 수 있어요. “그럼, 지금 데이비드의 기분은 어떨까?” 조병영 교수는 “비판적 읽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걸 생각하는데서 출발한다”며 “글에서 드러나지 않는 목소리를 찾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네요.   보이지 않는 인물과 그의 목소리, 생각, 감정을 생각해 보는 것, 이게 비판적 읽기의 기초입니다. 이건 ‘공감’과도 연결되는데요. 공감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을 읽는 능력이거든요. 최근 아이들의 공감력이 떨어진다는 얘기가 많이 들립니다. 저는 글의 근거와 이면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요약된 정보만 읽으려는 습관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파편적인 정보만 읽으니, 맥락 속에서 다각도로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나아가 내 경험을 엮어서 새로운 지식, 내 앎으로 만들지도 못하게 돼죠. 저는 이걸 “읽었다는 착각”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착각에 빠지지 않기 위해 글을 읽을 때 의식적으로 세 가지 질문을 던지길 당부합니다.     세 가지 질문이 무엇인가요?   ‘글쓴이는 이 글을 왜 썼을까?’ ‘이 글은 특정 사건과 인물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나?’ ‘이 글에 드러나지 않은 사람은 누구일까?’입니다. 이 질문을 의식하며 글을 읽으면 정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확하게 그리고 깊이 있게 읽으려고 합니다.      비판적으로 읽는 또 다른 방법은 무엇인가요? 한 가지 주제를 다른 관점에서 쓴 글을 여러 편 읽는 겁니다. 상반된 입장의 글을 비교하면 각자 같은 사건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어떤 근거를 내세우는지 등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거든요. 사건을 맥락에서 이해하는 눈도 길러지고요. 미국에서 리터러시를 주제로 연구한 결과, 두 개의 상충하는 글을 읽을 때 훨씬 몰입도가 높아지는 거로 나왔어요. 더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더 정교하게 읽었다는 얘기입니다.     조병영 교수는 “편향된 읽기를 경계하라”고 강조했다. 한쪽의 입장에서 쓴 글들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해의 폭이 제한되고, 정보를 연결하는 고리도 약해진다. 연결이 핵심인 디지털 시대에 도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얘기다. 조병영 교수는 “사람은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과 비슷한 내용으로 마음이 기울게 마련이다. 익숙하다 보니 이해하는 데 큰 노력이 필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양육자가 먼저 다양한 논조의 글을 읽고, 아이에게 추천하세요.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는 거죠. 그 경험이 쌓이면 아이는 능동적이고, 비판적으로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겁니다. 읽고 싶다는 마음에서 진짜 읽는 인간이 탄생합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진짜 읽기는 대화로 시작한다” 4차산업혁명 키워드는 ‘연결’입니다. 읽을 때 배경 지식을 활용하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생각과 생각을 잇는 대화로 진짜 읽기를 시작하세요. 경험을 연결해보고, 생각의 근거를 찾아 봅니다. ·“읽기 전후 생각의 변화를 찾아라” 진짜 읽기는 읽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읽기에 대한 ‘좋은 경험’과 모르는 걸 인지하는 ‘메타인지’로 읽기에 대한 ‘능동성’을 깨워주세요. 책 읽어주기와 포스트잇을 활용한 읽기 전후 정보 비교가 도움이 됩니다. ·“보이지 않는 걸 발견하라” 검증되지 않은 디지털 환경에서는 비판적으로 읽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주어진 글이 유일한 답이 아니고,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는 걸 의식하며 읽어야 합니다. 책에 없는 목소리를 찾고, 다양한 논조의 글을 함께 읽어보세요.  」 관련기사 “독서나무와 체크리스트, 2가지면 끝” 성효쌤의 특급 독서전략 “책 많이 읽으면 수학 잘한다? 천만에요” 독서·글쓰기 오해 셋 [오밥뉴스]"코로나 이후 한 반에 20% 읽기 어려워 해"… 내 아이의 문해력 수준은

    2022.12.11 14:56

  • “아이가 ‘용돈 액수’ 정하고, 부모는 지출내역 보지마라”

    “아이가 ‘용돈 액수’ 정하고, 부모는 지출내역 보지마라” 유료 전용

    아이에게 용돈을 주기로 했다면 가장 먼저 ‘협상’을 해야 합니다. 부모가 액수를 정해 주지 마세요. 아이가 먼저 얼마의 용돈이 필요한지, 얼마 만에 한 번씩 받을 건지 스스로 생각해 보고 부모와 이야기해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이성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경제교육실 교육기획팀장은 “아동기와 청소년기 경제 교육의 핵심은 재무 목표 달성, 즉 용돈 관리”라면서 “여기서 중요한 건 양육자가 너무 관여해선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태 기자   아동·청소년 경제 교육 전문가인 이성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보센터 경제교육실 교육기획팀장은 “용돈 관리는 살아 있는 경제 교육의 핵심”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연구원은 “아이들이 용돈 관리를 통해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재무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는 경험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이 과정에 양육자가 너무 관여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교육학 박사 출신인 이성신 연구원은 지난 20년간 국책연구기관인 KDI에 몸담으며 10년 넘게 청소년에게 특화된 경제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주력해 왔다. 2017년엔 기획재정부의 요청에 따라 국민이 실생활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경제 교육 교재 등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과제도 다른 연구진과 함께 수행했다. ‘생애주기별 핵심 경제역량 연구: 경제교육 수요자의 의견을 중심으로’라는 보고서가 그 결과다. 이 연구는 현재 기획재정부가 운영하는 경제 교육 포털(경제배움e)과 KDI 종합교육연수원 등 공공 영역이 제공하는 경제 교육 자료의 근간이 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 교육에는 크게 세 가지가 없다. 경제 교육을 받는 사람의 생애 주기에 대한 고려가 없고, 스스로 경제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주체성을 길러내는 데 대한 관심도 적다. 교실에서 이론 중심 교육에 치우쳐 있다 보니 개인의 실생활과 밀착성도 떨어진다. 이성신 연구원은 “경제, 경제 교육을 어렵게 생각하거나 내 생활과는 관련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이유”라고 말했다.      ━  📌잃어버린 물건을 찾지 않는 아이들       지난달 28일 만난 이성신 연구원은 “아동·청소년·청년·중년 등 생애 주기에 따라 개인이 맞닥뜨리는 경제 문제와 관심사는 달라진다”고 했다. “특정 시기에 필요한 경제적인 역량이 다른 만큼 교육의 방점과 접근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이 연구원은 5년 전 연구 당시에도 아동기(초등학생), 청소년기(중·고등학생)에 각각 필요한 경제 교육을 찾기 위해 교사·학부모 76명을 심층 면접했다. 요즘 아이들이 가진 경제적 특성부터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부모와 교사에게서 공통으로 나온 말은 “아이들에게 경제 관념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경제 관념이 떨어진다는 건 어렴풋이 짐작이 가요. 그게 어떤 식으로 나타나던가요? 요즘 아이들은 과거에 비해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세대잖아요. 그렇다 보니 물건을 아껴 쓰지 않는 경향이 공통으로 나타나요. 자기 물건을 잃어버려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죠. 학교 분실물함이 물건으로 넘친다고 해요. 분실물에 자기 이름이 쓰여 있는데도 자기 것이 아니라고 찾아가지 않는 경우도 있대요. 잃어버려도 엄마가 다시 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이런 경향은 초등학생이건, 고등학생이건 마찬가지로 나타났어요.   물건을 막 쓰는 습관은 도덕이나 환경 교육으로 바로잡으면 되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자기가 구매한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걸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방법도 모르고요. 경제 교육을 통해 물건의 가치를 깨닫고 관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겠죠. 아이들은 이미 가진 물건을 ‘관리’하는 방법도 잘 몰랐지만 어떤 물건을 사는가 하는 ‘소비’ 패턴에도 특이점이 있었어요.   어떤 건가요?   필요보다는 욕구에 이끌려 같은 종류의 물건을 반복해 구매하는 행태입니다. 초등학생들은 취미생활을 한다고 유사한 상품을 지속해서 사 모으는 경향이 나타났어요. 이미 가진 물건이거나 사놓고도 안 쓴 물건이 있는데도 비슷한 걸 또 산다는 거예요. 물건을 사고 나면 그걸로 끝이고, 모셔두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친구가 갖고 있으면 자기도 꼭 가져야 하고요. 중·고등학생이 되면 스마트폰처럼 고가의 신제품이 출시되면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갖고 싶다’는 이유로 구매했죠.    그 외에도 아이들의 경제 활동에서 최근 들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성도 있나요?   요즘 아이들에겐 온라인 공간이 중요한 세계가 됐잖아요. 온라인 마켓,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물건을 사고파는 경우도 많죠. 특히 온라인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게임 아이템 매매가 빈번하게 일어나요. 게임 결제나 아이템 거래 등 가상 공간에서 거래하는 걸 대수롭지 않게 인식해요. 개인정보를 노출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청소년기로 가면 큰돈을 들여 사행성 오락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으니 주의가 필요해요.    아동기와 청소년기 경제 교육은 어떤 점에서 달라야 하나요? 경제 주체라는 관점에서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구분하는 주요 기준 중 하나는 ‘일해서 직접 돈을 벌 수 있느냐’입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 수 있죠. 그러면 아동기에는 없었던 ‘소득’이란 개념을 피부로 접하게 됩니다. 내가 번 돈을 합리적으로 소비하고 ‘운용’할 수 있는 역량이 추가로 필요하게 되는 거죠. 또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어쩌다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어요. 이럴 때를 위해 노동권에 대한 이해와 대처 능력에 대한 교육도 필요하게 되는 거죠.    이성신 연구원은 “학부모와 교사를 심층 면접했더니, ‘요즘 아이들은 경제 관념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고 말했다. 김성태 기자  ━  📌용돈 기입장을 확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이성신 연구원은 “경제 교육에서 아이의 주도성이 중요하다”며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에게 용돈 관리를 시켜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가 실생활에서 자신의 벌이에 맞게 소비를 조절해 본 경험이 나중에 성인이 돼서도 재무 목표를 세우고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 용돈 관리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양육자가 많아요. 학년별로 용돈은 얼마가 적당한지, 용돈은 언제부터 줘야 하고 용돈 기입장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같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있을까요? 정해진 건 없어요. 가정마다 상황이 다르고, 아이의 성향도 제각각일 테니까요. 다만 가장 중요한 건 적은 액수라도 아이가 스스로 용돈을 관리하게 하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돈을 관리하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체득할 거고요.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재무 목표를 달성하는 습관이 자리 잡게 되는 거죠.    그럼 양육자는 뭘 해야 하나요? 용돈을 주기로 결정했다면 아이와 일단 협상부터 하세요. 얼마의 용돈이 필요한지, 용돈 받는 주기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등을 아이 스스로 정하게 하고 이후 조율하는 겁니다. 큰 틀을 정하면 아이가 용돈을 한도에 맞게 쓰는지 정도만 지켜보시고요.    용돈을 주고 나면 어떻게 쓰든 관여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세부적으로 아이가 어디에 돈을 쓰는지는 자율에 맡기는 게 좋아요. 용돈 기입장 검사 같은 건 하지 않는 게 좋죠. 아이가 직접 선택하고 판단할 기회를 주는 게 중요하니까요. 처음엔 어설퍼도 봐주세요. 용돈을 받은 초반에 돈을 막 써버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도 있을 거예요. 꾸준히 하다 보면 자기만의 용돈 관리 노하우가 쌓일 겁니다.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돈을 쓰는 것도 그냥 지켜봐야 하나요? 양육자 입장에선 불안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게임이 취미라면 취미 활동을 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요. 어른도 취미생활을 하면 삶이 윤택해지는 것처럼 아이도 마찬가지죠. 중요한 건 아이가 본인의 시간과 재정 상태를 고려해 취미생활을 즐기는 겁니다. 게임을 하느라 다른 일들이 뒷전이 되면 안 되겠죠. 이런 걸 조율하는 것 역시 경제 교육입니다. 이걸 선택하면 저걸 포기해야 하는 기회비용의 개념이 적용되니까요. 아이의 취미생활에 대해서도 너무 심한 관심보단 지켜보면서 아이와 적절한 선을 찾을 것을 권합니다.     용돈 관리 차원을 넘어 자녀에게 어렸을 때부터 주식 투자법을 가르치고 싶어 하는 양육자도 적지 않습니다. 투자라는 건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영역인데, 아이들에게 쉽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저희 집도 남편 주도로 소액이지만 아이들에게 종목을 선택하도록 해서 투자하게 했어요. 아이들은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니 엔터테인먼트 종목을 고르더라고요(웃음). 오르면 얼마가 올랐네, 떨어지면 얼마가 떨어졌네 아빠와 아이가 얘기하더라고요. 시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하는 수준이면 충분히 좋다고 봐요.    이성신 연구원은 “사람들이 경제를 어렵게 느끼는 건 경제 교육이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제 활동을 직관적으로 알게 하는 게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태 기자  ━  📌경제, 직관적으로 알게 하라     이성신 연구원은 대다수의 사람이 경제를 어렵게 느끼는 건 경제 교육이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경제란 우리 삶과 뗄 수 없는 것이란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경제 교육을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른들도 경제 자체를 어렵게 느끼잖아요. 왜 그런 걸까요?   현 교육 과정은 경제 교육의 필요성을 느끼기 어려운 구조라고 생각해요. 경제 과목은 고등학교에 가서야 비로소 나오는데, 이마저도 필수가 아닌 선택 과목이죠.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선 경제를 사회나 실과 과목을 통해 배워요. 하지만 그 비중이 아주 적죠. 그리고 보통 ‘경제’나 ‘경제 교육’이란 말을 들으면 경제학을 떠올리죠. 경제학엔 그래프나 수식도 많이 나오잖아요. 교과 과정도 여기에 기반해 설계되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려 해도 어렵게 느껴지는 한계도 있어요.    경제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나요?   교과서 속 경제 이론 공부에서 벗어나야 해요. 우리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지 깨닫는다면 경제를 보다 친근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보다 직관적으로 알 수 있도록 경제 교육이 이뤄져야 하고요.    직관적인 경제 교육은 어떤 걸까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미국에 경제교육협의회(CEE) 비영리기관이 있어요. 이 기관이 소개한 활동의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초등학교 교실에서 한 동네의 과일가게 주인, 병원 의사, 피아노학원 선생님 등 각자 다른 경제 주체들에 해당하는 카드를 만들어요.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 카드를 나눠주면서 빙 둘러서라고 해요. 그러면서 실뭉치를 한 아이에게 쥐여줬어요. 자신이 물건을 샀거나 서비스를 받은 상황을 가정하면서 실을 던지라고 했어요. 예를 들어 만약 의사 역할을 맡은 아이는 “전 오늘 과일을 샀어요”라면서 과일가게 주인에게 실을 던지는 거예요. 이를 넘겨받은 과일가게 주인은 피아노학원 선생님에게 “어제 저희 아이가 피아노학원에 갔죠”라면서 실을 던지는 식이죠.    실뭉치요? 교실에서 가짜 화폐를 가지고 경제 교육을 하는 이야기는 들어봤는데, 왜 실이 필요한 걸까요? 이게 열 번만 실이 왔다 갔다 해도 실이 막 엉키거든요. 그만큼 주변에서 경제 활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사실을 시각화하는 거죠. 또 아이들은 상황에 따라 자신이 생산자가 될 수도, 소비자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고요. 경제 주체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점을 직관적으로 깨달을 수 있는 수업인 거죠.     이런 활동이 정말 경제 교육이 될 수 있는 건가요? 생각보다 사소하다고 느껴져서요.   아동기에는 경제 교육의 소재를 일상생활 가까이에서 찾아야 합니다. 아이가 경험할 수 있는 테두리 안에서 이해시켜야 해요. 우리 삶 속에서의 경제 생활을 직관적으로 아는 게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합니다. 본인이 경제 주체라는 걸 체험해 보면서 돈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고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개념 중심적 교육은 거부감을 부를 수 있잖아요.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그리고 직관적으로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합니다.    실뭉치 활동처럼 가정에서 할 수 있는 경제 교육 활동은 또 어떤 게 있을까요? 마인드맵을 통해 재무 목표를 세워보는 활동을 추천합니다. 가정에서 양육자와 아이가 각각 단기(1개월 뒤), 중기(1년 뒤), 장기(5년 뒤) 재무 목표를 세워보는 거예요.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한 예산을 검색해 보고, 예산을 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포트폴리오를 짜보는 거죠. 그리고 이걸 그림으로 그려서 시각화해 집에 붙여 두는 거죠.    이성신 연구원에게 만약 재무 목표가 중간에 바뀌거나 사라지는 경우를 물었다. 그는 “목표를 조정해 나가는 것도 하나의 경험이자 훈련”이라고 말했다. 바뀐 상황에 맞게 당장의 소비나 저축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유연함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재무 목표를 달성하려면 어떻게 돈을 벌고 모을 것인지 고민하게 돼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어떤 일을 잘하고, 잘할 수 있고 즐기는지 생각해 보기도 하죠. 자신의 미래 직업, 꿈 같은 키워드와도 연결되는 거죠. 우리가 아이에게 경제 교육을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 아닐까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 요즘 아이들은 경제 관념이 떨어진다는 게 교사와 학부모의 공통된 의견이에요. 물건을 함부로 쓰고 잃어버려도 안 찾죠. 있는 물건을 또 사기도 하는 패턴이 나타난다고 해요.  ② 경제 교육에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에게 용돈 관리를 시켜보는 것이에요. 아이가 재무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되, 지나치게 관여하는 건 금물입니다. 자율성이 핵심이에요.  ③ 경제를 어렵게 느끼는 건 경제 교육이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경제 활동을 직관적으로 알게 하는 게 사소해 보이지만 중요해요.  」 관련기사 '광클교수'에 물었다…100세 시대 '혼공'으로 성장하기, 조건 셋 "더하라고요? 덜 배워야 합니다" 큰별쌤 최태성의 역사 공부법 “수포자에게도 급이 있다, 한국이 미·영보다 뛰어나”

    2022.12.04 14:58

  • “서울대생은 경주마 같았다” 그 교수가 가천대 간 이유

    “서울대생은 경주마 같았다” 그 교수가 가천대 간 이유 유료 전용

    요즘 똑똑한 학생들은 취업보다 창업을 하려고 합니다. 사업에서 성공하려면 지능이 높아야 할까요? 아뇨, 공감 능력이 더 중요해요. 사업 아이디어도 결국 타인의 불편과 고통을 먼저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데서 나오거든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느냐?”는 질문에 장대익 가천대 석좌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장 교수는 인간의 본성, 그중에서도 공감능력을 깊이 탐구해 온 진화학자이자 과학철학자다. 『다윈의 식탁』 『울트라 소셜』 등의 책을 썼고 최근엔 『공감의 반경』을 출간했다.   장대익 교수는 10여년간 몸 담았던 서울대를 떠나 지난 9월 가천대가 새롭게 문을 연 창업대학의 초대학장이 됐다. 지난 15일 가천대 창업대학 코코네스쿨에서 인터뷰 중인 장 교수 뒤로 학생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우상조 기자   인간성의 본질을 찾는 학자로 살던 그의 삶 역시 최근 창업의 길로 진화했다. 10년 넘게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로 재직한 그는 지난 8월 가천대 창업대학의 초대 학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20년엔 실시간 화상 교육 플랫폼 스타트업(트랜스버스)을 설립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장 교수는 가천대 창업대학의 모토를 ‘인간의 본성이 깃든 비즈니스’로 정했다. 학생들에겐 진화학, 인지과학 등을 통해 인간 본성을 과학적으로 이해토록 하는 강의를 한다. 사업의 성패 역시 결국 인간의 본능에 닿았느냐, 그리하여 상대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왜 명예와 안정을 보장하는 서울대 교수를 박차고 서울 밖의 사립대로 갔을까? 안 해도 되는 창업에 도전해 사서 고생한 이유는 뭘까? 지난 15일 장 교수를 만나 직접 물었다. 그의 답은 2022년을 사는 우리가 공감력을 키워야 하는 이유와도 닿아 있었다.    ━  반쪽짜리 아이들이 늘고 있다   장대익 교수는 “공감의 반경을 넓혀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공감이야말로 ‘호모 사피엔스’만이 갖고 있는 탁월한 능력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을 읽고 행동하게 만드는 능력이야 말고 인간이 거대한 조직을 이끌며 단시간에 지구를 장악할 수 있게 한 가장 강력한 무기다.   장 교수는 “최근 공감의 역습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공감이 널리 뻗어나가지 못하고 내 편에게만 쏠리는 현상이 만연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공감이 도리어 타인을 배척하는 혐오와 분열의 불씨가 됐다”고 진단했다. 갈등이 첨예한 사회에서 개인은 행복해질 수 없다. 게다가 감정은 전염된다. 주변 사람들이 고통스럽고 불행하면 혼자만 행복할 수 없는 게 인간의 숙명이다. 결국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야 한다. 공감이 널리 뻗어 나가야 하는 이유다.   요즘 아이들은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이태원 참사 이후에 ‘왜 우리가 저들을 추모해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 교실에서 이태원 참사를 모방하는 압사 놀이가 유행하는 것도 공감능력이 떨어져서예요. 타인의 고통에 얽히고 싶지 않아 하는 겁니다. 내 생각과 다른 생각은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장대익 교수는 “디지털 소셜미디어 세상이 나와 같은 집단에만 공감하는 편향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상조 기자   왜 그렇게 된 걸까요? 과거엔 사회성은 저절로 길러진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공감 능력을 어느 정도 타고난다는 면에서는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공감력은 사회적·문화적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되거든요. 기본적으로 한국 사회는 나와 같은 생각, 배경을 가진 내 집단에 대해서는 정을 듬뿍 주지만, 조금만 생각이 다르면 불편해하고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기에 디지털 소셜미디어가 널리 퍼지면서 내 집단에만 공감하는 편향이 강화되고 있는 겁니다.   디지털 세상이 공감 능력을 편협하게 만든다는 건가요? 오히려 다양한 의견을 만나고 교류할 기회가 느는 건 아닐까요? 알고리즘 기술만 봐도 그래요. 내 취향에 맞는 콘텐츠만 골라 추천하잖아요. 게다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현실 세계에서 여러 사람과 만나고 부대낄 기회가 줄어들었죠. 반쪽짜리 아이들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거죠. 요즘 아이들에게 문제가 되는 건 인지적 공감능력입니다. 타인의 시각과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기회와 경험이 제한돼 있어요.   인지적 공감능력은 공감능력과 다른가요? 공감능력엔 두 가지가 있어요. 인지적 공감능력과 정서적 공감능력. 정서적 공감능력은 감정이입입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그런 거죠. 인지적 공감능력은 어떤 사람의 관점과 입장을 이해하는 거예요. 지금 우리 사회에 부족한 공감능력은 인지적 공감능력입니다.   어떻게 하면 인지적 공감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다양성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 인종을 만난 아이와 단일한 인종만 보고 자란 아이는 자신과 다르게 생긴 존재를 받아들이는 차원이 다를 겁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다르게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 본질적으로 나와 같은 인간이라는 걸 깨닫게 되죠. 타인과 다른 집단에 대한 편견은 줄고 이해의 폭은 넓어지는 겁니다.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한다는 건데, 어디서 어떻게 할지 막막합니다. 교육을 통한 접근법이 있어요. 학교에서 수학, 영어, 과학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공감력을 늘리려는 교육을 하는 겁니다. 상상력을 발휘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해 보는 경험의 시간을 늘리는 거죠.   장대익 교수는 “공감의 반경을 넓히려면 다른 사람의 입장과 생각을 상상해 이해해보는 역지사지를 의식적으로 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캐나다의 교육자 메리 고든이 만든 ‘공감의 뿌리’라는 프로그램을 예로 들 수 있어요. 유치원, 초등학교 교실에 엄마와 어린 아기를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하고, 엄마와 아기가 상호작용하는 걸 어린 학생들이 보고 듣고 느끼게 하는 겁니다. 단순히 엄마와 아기를 관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때 아기가 왜 화를 냈을까?’ 생각해 보고 학생들끼리 서로 무엇을 느꼈는지 이야기를 나누고 그림도 그려 보는 다양한 활동을 하는 거죠.   그런 수업이 효과가 있던가요? 학생들의 협력, 도움 행동이 늘어나고 학교폭력이 크게 줄었다는 증거, 연구 결과들이 15년 넘게 쌓여 있습니다. 인지적 공감력이 의식적인 교육과 훈련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걸 입증한 거죠.   아이의 공감력을 키우기 위해 양육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뭔가요? 어렸을 때 많이 놀아야 합니다. 놀이는 다른 사람과의 애착, 신뢰, 배려, 유대를 촉진하는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엄마·아빠 놀이, 병원 놀이 같은 역할 놀이를 하면서 아이는 자연스럽게 감정이입과 역지사지를 체득하죠. 디지털 세상에 매몰되지 않도록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도 필요하고요. 독서도 훌륭한 수단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이나 작가의 입장에 서 보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요. 책 속의 등장인물에 공감을 더 잘할수록 다른 사람을 더 잘 도와준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  부모가 다시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   장대익 교수는 우리 사회의 공감력을 갉아먹는 또 다른 주범으로 치열한 입시제도를 꼽았다. 한국 사회에서 학생 대부분은 명문대 입학이란 같은 목표를 보고 달린다. 어렸을 때부터 수년간 시간과 돈, 에너지가 대입을 향한 길에 쏠리고, 그럴수록 경쟁은 극심해진다. 좁은 입시의 문을 통과하려다 보니 주변 다른 사람의 처지나 고통은 돌아볼 여유가 없다. 장 교수는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그 피라미드의 정점인 서울대에 입성한 아이들을 ‘경주마’라고 표현했다.   서울대 학생들이 경주마 같았다고요? 입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온 아이들이죠. 어떻게 보면 친구가 아프거나 힘들다고 해도 학원에 가야 해서, 시험이 임박해 친구를 위로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아이들이 많았을 거예요. 아름다운 소설을 읽고 싶어도 미뤄뒀을 거고요. 경주마들은 제가 무엇을 가르치든 사실 열심히 달리고, 결국은 잘 달려요. 어떻게 해서든요. 서울대에선 학생들에게 상담을 해주겠다고 해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어요. 다 잘하니까요. 굳이 상담하러 교수를 찾아올 필요가 없는 거죠.   장대익 교수는 “모두가 대학 입학에 올인하는 입시 제도는 공감이 뻗어나갈 여지를 앗아간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가천대 학생들은 다르던가요? 학생 상담 기간에 끊임없이 학생들이 찾아옵니다. 가천대 학생들은 공부에 있어서만큼은 집요함이 좀 부족했던 아이들이에요.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면 같이 밥 먹으면서 얘기를 좀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재미있는 클럽 활동이 있는데 그걸 해보는 게 어떨까 고민한 학생이 더 많았을 겁니다. 입시라는 관점에서 이 아이들이 일류는 되지 못했지만 공부 말고도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 거죠. 가치와 관심사가 다양한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을 제공해서 잠재력을 터뜨리도록 만드는 게 교육자로서는 더 큰 보람이 있다고 생각해요. 가천대로 온 이유 중 하나도 그래섭니다.   교수님 지적대로라면 입시 제도를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요원해 보입니다. 그래서 제가 우회 전략으로 제시하는 해결책이 하나 있어요. 40대 이상을 위한 학교를 만드는 겁니다. 그쯤 되면 자녀를 둔 부모들이 많겠죠. 부모도 다시 교육을 받고 공부해야 한다는 거죠.   중년을 위한 학교가 왜 필요할까요? 20대 초반에 대학을 가게 만드는 데 우리 교육의 방점이 찍혀 있어요. 이건 500년 전, 인간의 평균 수명이 40세, 50세가 안 될 때 유럽에서 만들어낸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고령화로 지금은 인간이 평균 80세 정도까지 살 수 있고, 아마 우리 아이들은 100세까지 살 거예요. 이렇게 되면 한 사람이 평생 평균 20개 정도의 일을 하게 될 겁니다. 대학의 역할은 인생의 첫 번째 일을 찾게 해주는 데 그치겠죠. 변화가 이토록 빠르게 일어나는데, 20대에 공부한 걸 평생 써 먹을 순 없습니다. 20대 초반에 가는 대학의 중요도가 떨어져야 해요. 그리고 40대 이후에 받는 재교육에 투자해야 하고요.   안 그래도 시간과 체력이 빠듯한 40대가 다시 공부할 수 있을까요? 40대쯤 되면 커리어에 대한 고민도 생기고 ‘이렇게 사는 게 맞나’ 같은 질문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때 하는 공부는 10대, 20대 때 대학에 가기 위해서 또는 취업을 위해서 해야 했던 공부와는 달라요. 배움에 대한 목마름이 다릅니다. 자기 삶의 의미와 연결을 짓고, 찾아서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죠. 부모들이 먼저 공부해야 하고, 시야를 넓혀야 해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부모가 재교육을 받지 않으면 부모의 기준은 그들이 청년이던 시절 가장 선망받았던 직업들에 고정될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이미 바뀐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부모가 입시만 바라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보고 있는 미래를 이해할 수 없죠.    ━  다양한 삶의 선택이 존중받는 사회   공감은 장대익 교수의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기도 하다. 그는 2년 전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 창업 관련 수업을 하며 직접 화상 교육용 플랫폼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장 교수는 “창업해 보니 학생들의 애환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정적인 서울대 교수직을 뒤로하고 가천대의 창업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데도 선명한 이유가 있다.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은 학생들일지라도 스타트업 창업을 통해 성공하는 다양한 삶을 응원하고 싶어서다. 장 교수는 “인생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사는 다양한 삶의 선택이 존중받을 때 공감은 널리 뻗어나갈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장대익 가천대 교수는 “내가 직접 창업을 해보니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애환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교수로 일하다 창업을 하셨어요. 평가하는 사람에서 평가를 받는 입장이 되신 건데, 어떻던가요? 제 공감력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걸 느꼈죠(웃음). 이제 스타트업 2년 차인데, 투자자들 앞에서 발표하면 쓴소리도 듣습니다. 우리 서비스 사용자와 고객은 뭘 원할까 늘 생각하죠. 스타트업을 하니 대학에서 1년 동안 겪을 감정의 부침을 2주에 한 번 정도씩 겪는 것 같아요. 그래도 좋아진 건 전보다 회복 탄력성이 커졌어요. 이제 웬만한 일에는 크게 출렁이지 않습니다.   서울대를 떠나 가천대에 오고 나선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얼마 전에 ‘2022 중앙일보 대학 평가’ 순위가 발표됐는데요, 사실 예전에는 이런 거 보지 않았어요. 매번 1등 하는 대학에 있었으니까, 그러려니 한 거죠. 하지만 새로운 곳에 오고 나니 관심도 없던 게 신경이 쓰이더라고요. 이 지표를 만들기 위해서 또 끌어올리기 위해서 많은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도 눈에 들어오고요. 제 공감의 지평이 그만큼 넓어진 거죠.   서울대를 떠난다고 했을 때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이 말리지 않던가요? 가천대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았을 때 서울대 동료 교수들에게는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어요. 가지 말아야 할 이유와 이런저런 우려를 이야기할 게 뻔했거든요. 대신 대학생, 고등학생인 두 딸에게 제 비전을 얘기했어요. ‘좋은 대학이라는 건 학생들이 들어왔을 때와 비교해 나갈 때 큰 차이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마침 그런 곳에서 일할 기회가 왔고 해보고 싶다’고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특히 대학 입학을 앞둔 둘째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뭐라고 하던가요? ‘모든 교수님이 아빠처럼 생각했으면 좋겠다’고요. 둘째가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에요. 자기 그리고 자기와 비슷한 친구들의 입장을 생각했을 거고, 그래서 제 열정에 더 깊이 공감한 것 같아요. 저의 선택이 제 딸과 같은 많은 아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겠더라고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데 대한 불안감 같은 건 없으셨나요? 창업할 때도, 서울대를 떠날 때도 ‘왜 사서 고생하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새로운 일을 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더 성장하고 싶거든요. 기왕에 스타트업을 시작했으니 제대로 하고 싶기도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빠르고 유연하게 혁신의 길을 가는 가천대 창업스쿨에서 함께하는 게 좋을 것 같았고요. 서울대 교수가 제 꿈의 끝이 아니에요. 그랬으면 창업을 하지도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겠죠.   장 교수에게 그럼 그의 꿈은 무엇인지 되물었다. 그는 ‘10년 주기설’로 말문을 열었다. 10년 정도마다 그의 인생이 전환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첫 10년 정도는 공부를 했고, 이후 10년가량은 대학교수로 일했다. 장 교수는 “앞으로 10년은 학생들을 잘 키워서 전도유망한 스타트업을 배출하고 동시에 내가 운영하는 스타트업도 성공시키는 시기로 잡았다”고 말했다.   “저는 살면서 새로운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다양한 경험을 하려고 해요.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아보는 거죠. 지금 하는 일도 재미있게, 열심히 하고 있죠. 사람들이 행복해 보인다, 생기가 넘친다고 말해요. 제가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반쪽 짜리 아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은 나와 같은 집단에만 더욱 공감하게 만들고 있죠. 다양한 사람과 경험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의 입장도 이해하고 포용하는 역지사지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부모도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입시 제도는 공감의 발목을 잡습니다. 100세 시대에 20대 때 가는 대학은 첫 직장 정도를 보장해줄 뿐이겠죠. 부모도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부모가 시야를 넓히면 자녀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사는 삶은 존중 받아야 합니다: 새로운 도전을, 다른 이들은 잘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삶도 응원해야합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공감 반경도 넓어지죠. 삶의 다양한 선택을 존중하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 관련기사 "일단 해!" 39살에 삼성 최연소 임원, 그녀가 돌연 사표 쓴 이유 "세균부터 우주, 괴물에서 AI까지" 소설 쓰는 과학자, 상상력의 원천은? 아이에게 집안일만 가르쳤다…부족 같은 이 가족이 사는 법

    2022.11.25 16:56

  • 6가지 중 2가지 골라보세요…일과 육아, 둘 다 할수 있어요

    6가지 중 2가지 골라보세요…일과 육아, 둘 다 할수 있어요 유료 전용

    일과 아이(육아) 사이에서 고민하신다고요? 둘 다 할 수 있어요. 그러려면 뭘 포기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일이냐, 가정이냐. 양육자라면, 특히 여성 양육자라면 이 고민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커리어 액셀러레이터 김나이 커리어랩 대표는 “둘 중 하나를 포기하려 하지 말고, 일에 있어서 어떤 걸 포기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 김나이 커리어랩 대표는 “컨설팅으로 만난 여성 양육자들은 예외 없이 일과 가정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김나이 대표가 2018년 이후 1:1로 만난 직장인은 4000명이 넘는다. 이 중 40%가량이 양육자였는데, 남성과 여성 사이에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 여성은 예외 없이 일과 육아 사이에서 고민했는데, 남성은 그런 경우가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고 했다. 김나이 대표는 “기혼 여성은 아직 자녀가 없어도 향후 육아로 인해 생길 커리어 손실을 걱정했다”고 말했다. 그가 hello! Parents와 함께 ‘김나이의 커리어 클리닉’을 시작하는 이유다.   김나이 대표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양육자가 찾아오면, 세 가지를 묻는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답하다 보면, 어느새 커리어에 대한 방향이 찾아진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첫 번째 질문이 바로 ‘일에 있어서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다.    ━  질문 ①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다.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김나이 대표는 컨설팅을 받으러 오는 모든 상담자에게 6장의 카드를 준다. 각 카드엔 ‘성장’ ‘의미’ ‘재미’ ‘인간관계’ ‘돈’ ‘워크 라이프 밸런스’가 적혀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 중에서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를 골라보세요.”   카드에 적힌 여섯 가지가 뭘 의미하나요? 일하며 얻는 가치들이에요. 중요한 건 이 모든 가치를 다 얻을 수 있는 그런 일은 없다는 겁니다. 그건 아이가 있든, 없든 마찬가지예요. 결국 중요한 건 내가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걸 선택하는 것이죠.   두 가지를 선택한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죠? 포기할 수 없는 두 가지를 고른다는 건 나머지 네 가지를 기회비용으로 지불하는 겁니다. 하지만 선택하지 않은 것들도 완전히 포기할 순 없습니다. ‘돈’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잖아요. 그럼 그건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을까요? 그걸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가치는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지 하나하나 생각해 봐야 해요. 아주 구체적으로요.   김나이 대표 역시 커리어를 크게 전환했다. 커리어 액셀러레이터가 되기 전 그는 외국계 증권사인 JP모건에서 파생상품 마케팅을 했다. 연봉으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만큼 돈을 벌기도 했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정부가 규제에 나서면서 시장이 얼어붙었다. 시장의 미래도 불투명했지만, 무엇보다 삶 대부분을 바친 일이 ‘투기’처럼 비춰지자 일하는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증권사를 그만둘 때 대표님이 선택한 가치는 뭐였던 건가요? ‘의미’를 찾고 싶었어요. 내 삶에도, 그리고 내가 속한 사회에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죠. 그리고 ‘재미’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신나고 재밌어야 하고 싶어지잖아요. 그리고 하나 더 있어요. 아이와 좀 더 시간을 쓰고 싶었어요. 출산휴가 3개월을 제외하면 아이가 자라는 걸 근거리에서 지켜보지 못했거든요.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사무실에 매이지 않고, 시간을 주체적으로 쓰고 싶었죠. 제 스타일의 ‘워크 라이프 밸런스’를 찾고 싶었던 거죠.   일에 있어서 포기할 수 없는 가치와 기회비용으로 지불할 수 있는 가치를 골랐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이제부터 ‘커리어’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시작된다. 어떤 일을 하면서 이 가치를 얻을 것인가? 그 질문을 위해선 두 번째 질문이 필요하다.   김나이 커리어랩 대표는 “일과 가정 사이에서 하나를 포기하려고 하지 말고, 일에서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일과 가정, 둘 다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상조 기자  ━  질문 ② 그 어떤 제약도 없다면, 뭘 하고 싶은가?   ‘워크 라이프 밸런스’ 그리고 ‘의미’를 선택했던 김나이 대표. 그렇다면 이제 무슨 일을 하면서 이 가치를 얻어야 할까?     증권사를 그만둘 때, 커리어 액셀러레이터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셨나요? 그만둘 땐 무슨 일을 하겠다는 계획까진 없었어요. 시장에 큰 위기가 찾아오면서, 일을 통해 내가 반드시 얻고 싶은 가치를 찾은 거죠. 그 가치를 당시 제가 하던 일에선 찾을 수 없었으니까, 그만둔 것이고요.   그럼 무슨 일을 할지는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아무 제약이 없다면,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세요. 저 역시 그걸 찾아다녔습니다.   일을 그만둔 첫 한 달은 ‘전업주부’로 살았다. 무엇보다 아이 곁에 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깨달았다. 자신은 아이 곁에 있는 것으론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 길을 찾아볼 생각으로 졸업한 경영전문대학원(MBA)에 청강을 다니다 수업을 함께 듣던 학생들의 커리어 고민을 상담해 주기 시작했다. 그게 계기가 돼 경력개발센터에서 강의와 상담을 하기 시작했고, 입소문이 나면서 다른 대학으로, 직장인 대상으로 무대를 넓혔다.   왜 커리어 상담이었나요? 처음엔 제 경험을 나눠주는 거였어요. 하다 보니 적성에도 잘 맞았고, 저 역시 일에 재미를 느꼈죠. 무엇보다 누군가의 성장을 돕는 일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어요. 증권사에서 찾지 못했던 ‘의미’를 찾은 겁니다.   직업을 창조해 냈다는 점에서 ‘창직’을 하신 건데요, 롤모델이 있었나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커리어 컨설팅’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지 못했어요. 있긴 했지만,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죠. 저는 한 사람의 커리어 성장을 지속해 돕고 싶었어요. 그 점에선 롤모델이 없었던 셈인데요, 저는 스타트업계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회사를 찾았어요. 와이콤비네이터요.   와이콤비네이터는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자문하는 투자사잖아요. 와이콤비네이터는 자신들이 하는 일을 투자라고 하지 않아요. ‘액셀러레이팅’한다고 하죠. 기업의 성장에 가속 페달을 밟게 해준다는 의미로요. 더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돈과 네트워크, 자문 등 다양한 일을 하죠. 저도 그렇게 돼야겠다고 생각해서, ‘커리어 컨설턴트’가 아니라 ‘커리어 액셀러레이터’라고 불렀어요.   뭘 하고 싶은지, 대표님도 처음엔 모르셨군요.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많을 거예요. 잘 모르겠다면, 시간이 있을 때 내가 무엇을 하는지를 보세요. 그간 내가 해온 ‘덕질’(어떤 일을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걸 뜻하는 말)이 뭐가 있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찾을 때,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 하는 건가요? 그래야 오래 할 수 있거든요. 일에 큰 애정이 없으면 지속하기 정말 어렵죠. 양육자는 더해요. 양육자의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게 일 말고 하나 더 있으니까요. 육아 말입니다. 육아하면서도 일을 지속하려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중에서 좋아하는 일을 골라야 하나요? 교과서 같은 대답일 수 있지만, 좋아하는 걸 잘하게 만들어야죠(웃음). 그런데 좋아하는 일은 결국 잘하게 되어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그만큼 많이 쓰게 되니까요. 김나이 커리어랩 대표가 상담자와 컨설팅을 하는 모습. 그는 hello! Parents와 함께 양육자의 커리어 고민을 해결하는 컨설팅을 시작한다. 기사는 12월 1일부터 발행된다. 김나이 제공  ━  질문 ③ 정말 시간이 없을까?   뭘 포기할지, 어디까지 포기할지 결정했다. 그리고 무엇을 할지도 찾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이제 쭉 하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업주부라면 육아와 가사만으로도 24시간이 부족하고, 워킹맘이나 워킹대디는 시간을 내기에 빠듯한 ‘타임푸어’다. 김나이 대표는 이렇게 물었다. “정말 시간이 없을까요?”   정말 시간이 없어요. 아시잖아요. 너무 알죠. 전업맘이건 워킹맘이건 월화수목금은 업무로 바빠요. 전업맘은 가사와 육아를 잠자는 시간 빼곤 계속하잖아요. 워킹맘은 업무시간엔 회사 일을, 퇴근 후엔 육아와 가사를 하고요. 그래도 시간을 만들어야 해요.    없는 시간을 어떻게 만드나요? 엑셀을 열어서 일주일을 시간 단위로 그려보세요. 그러면 보일 겁니다. 이름을 다시 붙여줄 수 있는 시간 말이에요. 예를 들어 출퇴근 시간을 관심 분야 콘텐츠를 읽고 소비하는 시간으로 이름을 바꿀 수 있죠.   실제로 그는 양육자들의 죽은 시간을 찾는 시도를 해봤다. 지난해 초 두 시즌에 걸쳐 진행한 ‘번뇌하는 언니들’ 모임에서다. 이 모임은 도서문화재단 씨앗 엄윤미 최고전략책임자(CSO)와 김나이 대표가 의기투합해 만든 워킹맘 모임이었다. ‘워킹맘’으로 조금 먼저 산 두 사람이, 워킹맘으로 사는 여성들에게 응원과 지지 그리고 약간의 노하우를 주고 싶어 만들었다. 거기서 김 대표는 양육자들에게 ‘엑셀에 일주일 그리기’를 하게 했다.   그리면, 이름을 다시 붙일 수 있는 시간이 정말 보이나요? 어떤 분은 왕복 3시간 걸리는 출퇴근 시간을 활용해 하고 싶은 일에 관한 리서치를 시작했고, 또 다른 분은 일주일에 한 번 점심시간을 내서 해보지 않은 걸 해보기로 했죠. 안 가본 식당에 가거나,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을 만나는 식으로요. 육퇴하고 누워 핸드폰 보는 시간을 독서 시간으로 만든 분도 있고요.   그렇게 시간을 만들어서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 보라는 거군요?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면요. 아직 찾지 못했다면, 죽은 시간을 찾아내 온전한 ‘내 시간’으로 만들어 보세요. 나를 불러내는 시간이요.   나를 불러내는 게 중요한가요? 양육자가 되면 ‘나’를 잃어버려요. 출근하면 회사의 직책으로 살고, 퇴근하면 누구 엄마로 살죠. 주말엔 누구의 아내, 누구의 자식이나 며느리 같은 거로 살죠. 내가 없어지니, 하고 싶은 것도 사라지는 겁니다. 그럼 어느 순간 커리어도 놓아버리게 되고요. 나를 불러내는 게 가장 중요해요. 김나이 커리어랩 대표는 “남들과 똑같이 하려 하지 말고, 잘하는 걸 더 잘하려고 하라”고 조언했다. “양육자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김나이 대표는 “아이가 없는 사람과 똑같이 일하려 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체력적으로도 불가능할 뿐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똑같이 하지 않으면 결국 뒤처지게 되는 것 아닐까? “애 엄마라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아이 없는 사람, 특히 젊은 사람과 경쟁해선 이길 수 없어요. 비단 체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엑셀이나 데이터 능력 같은 거로는 절대 못 이기죠. 그런 것만 역량이 아니에요. 리더십, 협상력, 분석력, 의사소통 같은 역량은 양육자를 못 이깁니다.”   김나이 대표는 “못하는 걸 평균 수준으로 만드는 것보다 잘하는 걸 더 잘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혹시 일터에서도, 가정에서도 1인분을 못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기본적으로 기준이 높은 분들이거든요. 그런 생각을 할 시간에, 지금 잘하고 있는 걸 더 잘하게 하세요.”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 일과 가정 사이에 하나를 포기하려 하지 마세요. 일에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포기할지 고민하세요. ‘성장’, ‘의미’, ‘재미’, ‘인간관계’, ‘돈’, ‘워크 라이프 밸런스’ 중 두 가지만 골라보세요. 그리고 포기한 나머지는 어디까지 포기할지 생각해보세요. ② 일에서 얻을 것과 포기할 걸 정했다면, 이제 무엇을 할지 생각합니다. 이때 중요한 건 내가 하고 싶은 걸 찾는 겁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 무엇을 덕질했는지 생각해보세요. 그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요.   ③ 하고 싶은 것도 찾았다면, 이제 시간을 만드세요. 시간, 없으시죠? 압니다. 엑셀에 일주일을 시간 단위로 그려보세요. 그리고 죽은 시간을 찾아내세요. 시간은 만들 수 있습니다. 」 관련기사 회사 최초 육아휴가 쓴 남편…그래도 아내는 "애 낳지마라" 왜 ⑤ "일단 해!" 39살에 삼성 최연소 임원, 그녀가 돌연 사표 쓴 이유 두 번 창업한 워킹맘 조언 "버티면 된다, 아이는 금세 큰다"

    2022.11.23 15:07

  • 영어 유치원 다니는데도…영어 안 느는 아이의 공통점

    영어 유치원 다니는데도…영어 안 느는 아이의 공통점 유료 전용

    혹시, 학습을 강요하느라 말하려는 의지를 꺾고 있지는 않나요? 언어는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는 도구입니다. ‘대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야 말이 트여요. 영어도 마찬가지예요.   영어유치원을 다녀도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를 묻자 조지은 영국 옥스퍼드대 언어학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언어는 책상 앞에 앉아서 배울 게 아니라 말하고 싶은 상황에 놓이는 게 먼저라는 얘기다.   조지은 교수는 아이들과 함께 작업한 백희나 작가의 『달샤베트』 영문판으로 지난 6월 ‘보스턴 글로브 혼북’ 명예상을 탔다. 왼쪽부터 큰 딸 사라, 조지은 교수, 둘째 딸 제시. 사진 조지은 교수   조지은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한국학과 언어학을 가르친다. 서울대에서 아동가족학과 언어학을 전공한 그는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말을 배울까?’에 대한 호기심에 영국으로 건너가 언어학 박사까지 섭렵했다. 유독 관심 있는 분야는 이중 언어 관련 주제들이다. 큰딸 사라와 둘째 딸 제시가 살아 있는 연구 대상자다.   아이들은 영국에서 나고 자랐는데도 한국말로 입을 뗐고, 영어를 잘 못하는 채로 영국의 유치원에 갔다. 그런데도 한두 달 만에 능숙하게 영어를 해냈다. 언어 습득은 이론대로만 흘러가는 게 아니란 얘기였다. 언어학자가 봐도 경이로웠다고 한다. 그 과정이 너무 신기해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이중 언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몇 해 전 펴낸『언어의 아이들』,『영어의 아이들』에도 그 내용을 담았다.   지난 15일 화상으로 만난 조지은 교수는 “조기 유학, 영어 유치원, 엄마표 영어, 어떤 방법으로 배우든 언어 실력은 말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판가름난다”며 소통 욕구를 일으키는 세 가지 열쇠를 제시했다.    ━  📢 열쇠1. 뿌리 언어가 있나요?   조지은 교수에 따르면, 영어 습득은 시기가 아니라 상황이 좌우한다. 언제 처음 접했느냐보다 중요한 건 언어 학습을 위한 기초가 잘되어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언어 학습을 위한 기초는 바로 ‘뿌리 언어’다. 조지은 교수는 “뿌리 언어가 튼튼해야 언어에 대한 흥미가 생긴다”며 “제2언어를 배우기 전 뿌리 언어부터 정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뿌리 언어란 무엇인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우는 말, 모국어를 말합니다.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가장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죠. 자기 정체성을 결정하기 때문에 생각의 언어라고도 부르는데요. 뿌리 언어가 튼튼하면 제2, 제3언어도 쉽게 습득할 수 있어요. 뿌리 언어를 기준으로 각국 언어의 차이와 특징을 이해하기 때문이죠. 말에 대한 자신감이 있으니, 언어 습득을 주저하지 않고요.   말을 떼기 전 여러 언어를 동시에 접하면 안 되는 걸까요? 이제 막 한국어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 많은 언어를 들려주면 언어 혼동을 겪습니다. 이러면 뿌리 언어가 흔들립니다. 뿌리 언어가 약하다는 건 자기를 표현할 적절한 언어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자신을 명쾌하게 정의하고 표현할 수 없으니 정체성이 흔들리고, 자신감도 없죠. 교우 관계도 힘들어집니다. 실제로 신생아 때부터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라 다중 언어 구사자인 분을 아는데, “나를 표현할 언어는 없다”고 하시더군요. 말하는 게 어려우니, 사회생활도 쉽지 않았다고 해요. 뿌리 언어 없이 다중 언어에 노출된 단적인 사례죠.   뿌리 언어가 정착하는 시기가 따로 있나요? 인간의 언어발달 단계에 따르면 평균 만 3세 전후입니다. 흔히 2~3세를 언어폭발기라고 하죠. 이때 아이들은 들리는 말을 수집해 머릿속에 저장하고, 말하기를 시도합니다. 중요한 건 이 시기에 뿌리 언어를 습득하지 못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배울 수 없다는 겁니다. 다른 언어를 배우는 데도 한계가 있고요.   뿌리 언어를 제대로 습득했는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나요? 말문이 트인다고 하죠. 사용하는 어휘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납니다. 하루 종일 종알종알 떠들죠. 이렇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면, 뿌리 언어가 잘 자리 잡았다는 의미입니다. 또 말하기를 즐거워하는 이때가 새로운 언어를 접하기 좋을 때이기도 합니다. 뿌리 언어를 뼈대로 가지치기가 일어나거든요. 다만 말을 안 한다고 뿌리 언어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아니니 걱정하진 마세요. 다 듣고 있습니다. 말을 내뱉는 시기가 다를 뿐이니 말이 늦다고 조급할 필요 없습니다.   아이들의 언어 습득을 도와줄 필요는 없나요? 인간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자연스럽게 언어를 습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태어납니다. 다만 이 능력을 발현하려면 자극이 필요한데, 그건 사람과의 ‘대화’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양육자와의 상호 작용이 중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화해야 하나요? 가장 쉬운 건 아이 말에 맞장구치는 겁니다. 양육자가 긍정적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누군가는 듣고 있구나” “말로 표현하면 생각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구나”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양육자와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겁니다. 이 경험이 “말하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켜요. 양육자와의 대화가 즐겁다면 또 말이 하고 싶어지고,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표현력을 익혀갑니다. 소통 욕구를 일으키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건 그래서입니다.    ━  📢 열쇠2. 언어의 창의성이 살아 있나요?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아이와 쉼 없이 대화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에서 영어로 대화한다는 건 더욱 어렵다. 양육자들이 영어 유치원이나 조기 유학을 고민하는 건 그래서다. 장시간 영어에 노출되면 자연스럽게 배울 거라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조지은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억지로 노출하는 건 의미 없다”며 “언어 습득에서 노출의 양보단 질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 무슨 말일까요? 영어를 재밌게 접해야 한다는 겁니다. 신나고, 즐거운 언어로 받아들이는 게 우선이거든요. 언어란 습득과 학습의 조합입니다. 습득이 특별한 노력 없이 얻는 단계라면, 학습은 규칙을 인지하고, 반복·적용해서 익히는 활동이죠. 습득이 없으면, 학습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습득은 재밌어야 합니다. 특히 언어 습득의 골든타임으로 여겨지는 3~9세에는 영어에 대한 긍정 경험을 심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언어의 창의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습니다.   언어의 창의성요? 예를 들어보죠. “도착하자마자 항상 커피를 마신다”는 의미를 표현해 볼까요? “도착하면 언제나 커피를 마신다” “도착해서 커피부터 마신다”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어요. 언어라는 게 이렇습니다. 어떤 의미를 새로운 문장으로 끊임없이 만들 수 있죠. 아이의 말은 더욱 그렇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표현을 할 때가 있잖아요. “봄에는 새싹이 뿅뿅 튀어 나오니, 스프링(Spring, 봄과 용수철이란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인가 봐요”처럼요. 아이가 이렇게 창의적인 표현을 할 수 있는 건 자신이 들은 수많은 말을 조합해 자신만의 말로 창조해 내기 때문입니다. 3~9세는 이런 언어의 창의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양과 속도에 집착해 습득이 아닌 학습을 강요합니다. 하루 종일 영어 방송을 듣게 하고, 어려운 단어를 외우게 하죠. 이러면 영어는 어렵고, 지루한 것이 됩니다.   조지은 교수와 둘째 딸 제시가 ‘보스턴 글로브 혼북’ 명예상 수상 소감을 전하고 있다. 사진 조지은 교수   언어의 창의성을 펼치려면, 어떤 활동을 해야 하나요?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마음이 편안할 때 솟아납니다. 뇌는 기억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을 때 새로운 언어를 맞을 준비를 하거든요. 자연스러운 상황에서 접하면 어느샌가 그 언어로 말하게 됩니다. 언어학에서는 이런 활동을 과제중심학습법(TBLL)이라고 부릅니다. 공부인 줄 모른 채 활동하다가 습득하는 거죠, 아이들은 자유롭게 놀 때, 가장 편하고 즐겁습니다.   영어로 놀게 하라는 말인가요? 신기하고, 관심 있는 활동을 할 때 영어를 노출하라는 겁니다. 야구 좋아하면 공을 주고받으면서, 그림을 좋아하면 그리면서 영어를 접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ball 던진다” “꽃은 Yellow로 칠했네”처럼 영어를 섞어서 읊어주세요. 영어 그림책 보기도 좋습니다. 중요한 건 연령이 아닌 아이의 관심사로 책을 골라야 합니다. 아이에게 보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르라고 하세요. 수준 높은 책을 골라도 괜찮습니다. 텍스트를 모두 읽어줄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보단 책 표지나 주제에 관심을 보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사실 영어책 읽어주는 게 부담스러워요. 잘못된 발음을 가르칠까 봐서요. 영어를 할 때 양육자는 선생님이 아니라 대화 상대가 되어야 합니다. 어차피 아이는 양육자의 말을 100% 따라 하지 않아요. 그래서 영어 그림책도 단어를 하나하나 짚어가며 완독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그림, 주인공, 장면을 보고 상호작용하는 게 핵심입니다. 텍스트를 읽는 것 외에 대화는 한국어로 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주변의 양육자들을 보면, 영어책 읽기를 정말 많이 하긴 합니다. 영어 공부시킨다는 욕심으로 영어 그림책만 봐선 안 됩니다. 한국어 그림책과 영어 그림책을 골고루 봐야 해요. 양쪽에서 익힌 어휘를 연결해야 어휘력과 표현력이 높아지거든요. 그림책 한 권에 영어와 한국어가 함께 표기된 책을 읽거나, 같은 책을 영어와 한국어로 모두 읽을 필요도 없어요. 영어 그림책을 읽는 한 가지 팁은 양육자가 미리 훑어보는 겁니다. 영어로 읽어줄 부분과 한국어로 설명할 부분을 나누는 등 미리 읽기 전략을 세우면 이야깃거리가 더 풍성해지니까요.    ━  📢 열쇠3. “틀렸다”는 말에 주눅 들지 않을 배짱이 있나요?   영어 실력에 차이를 만드는 세 번째 열쇠는 ‘자신감’이다. 조지은 교수는 “유독 한국에서 영어에 정답을 강요한다”며 문법과 파닉스(Phonics)를 영어 말문을 닫는 걸림돌로 지목했다. 아이의 말을 고정된 틀에 끼워 맞추고, 평가하지 말라는 거다. 조지은 교수는 “틀려도 의미만 통하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배짱이 있어야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요즘 영어 교육에선 문자를 보고 소리를 매칭하는 파닉스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파닉스 학습의 목표는 글자의 기본 소리와 소리 변형 원리를 가르치는 겁니다. 파닉스가 영어 습득에 도움이 되긴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절대적인 법칙은 아닙니다. 국가와 지역에 따라 발음은 천차만별이에요. 같은 글자를 보고 전혀 다른 소리를 내기도 하고요. 미국과 영국도 파닉스 교육의 중요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어요.   그럼 발음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요? 한글 공부가 먼저입니다. 한글은 말소리를 기호로 나타낸 표음문자이기 때문에 말소리의 기본을 이해할 수 있어요. 한글 읽기에 익숙하면 파닉스 학습도 수월합니다. 파닉스 학습은 소리가 나는 기본 원리을 이해한 뒤 감각을 길러야 해요. 알파벳 소리와 한글 소리가 어떻게 다른지, 소리와 소리가 만나 어떤 규칙으로 변화하는지 찾아보는 겁니다. 파닉스 책 한 권과 인터넷만으로도 기초를 다질 수 있어요. 먼저 파닉스 책에 나온 단어를 구글 등에서 찾아 소리를 들어보세요. 그리고 아이들의 발음을 녹음해 비교해 봅니다. 또 앞뒤 철자에 따라 소리가 어떻게 변하는지 규칙을 찾아보면 좋습니다.   지적하신 대로, 영어 파닉스엔 예외가 많은데요. 모든 걸 한 번에 다 익히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러니 완벽하게 발음하겠다는 생각은 버리셔야 해요. 특히 아이들에게 “발음이 이상해”라든가, “틀렸어”라는 등의 말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도 잘못된 발음은 교정해야 하지 않나요? 영어엔 정답이 없습니다. 발음은 지역마다 다르고, 문장으로 표현하는 방법도 무궁무진합니다. 콩글리시도 틀린 게 아닙니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써도 되고요. 이건 자연스러운 ‘창조물’이지, 결코 교정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보통 “틀렸어”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들은 “나는 영어를 못하는구나”하고 생각해요. 자신감을 잃고 영어를 두려워 하죠. 언어적 창의성도 꺾이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칭찬하고 격려하세요. 그래야 자신감이 생기거든요. 교정이 필요할 때도 “그렇게도 말할 수 있지만, 이런 표현도 있네”라고 긍정적으로 호응해 주세요. 또 하나 중요한 건 아이가 능동적으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아이가 호기심을 갖고 자발적으로 접근해야 나만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 말하는 법이니까요.   조지은 교수의 두 딸 사라와 제시가 말을 배울 시기 그림책을 읽고 독후 활동을 하는 모습. 그림 그리기와 인형극 등을 통해 말로 표현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 조지은 교수   문법이 중요하지 않다는 덴 많은 사람이 동의합니다. 하지만 문법을 알면 더 쉽게 언어를 배우는 건 사실이지 않나요? 문법은 언어의 규칙, 즉 패턴입니다. 패턴은 쓰면서 익숙해지는 거예요. 문법을 먼저 배우는 건 거꾸로 하는 겁니다. 특히 말이란 국가, 지역, 개인마다 스타일이 다릅니다. “long time no see(오랫만이야)”라는 말은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인데도, 인사말로 자리 잡았죠. 구어(口語)를 모든 문법에 완벽하게 끼워 맞추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럼 문법 대신 뭘 공부해야 할까요?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맥락에 맞게 낱말의 짝궁을 익혀 보세요. 연어(連語·collocation)라고 하는데요. 예를 들면, ‘전화를 받는다’고 한국어로 표현하는데, 영어로는 ‘answer the phone’이라고 표현하죠. 전화에 ‘대답하다’는 동사를 쓰는 거예요. ‘phone’의 짝궁으로 ‘answer’를 익히라는 말입니다.   조지은 교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쳤을까? 그는 “늘 참여할 기회를 줬다”고 했다. ‘코끼리’라는 낱말 카드를 보여준 뒤 뒷면의 글자를 보여주어 기억하게 하기보다, 코끼리를 그리거나 흉내 내게 하는 식이다. 책을 읽고 난 후엔 ‘표현 노트’를 만들어 느낌을 그림으로 그렸다. 최근에는 백희나 작가의 『달샤베트』를 아이들과 함께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이 책은 지난 6월 ‘보스턴 글로브 혼북’ 명예상을 탔다. 이게 영국에서 한국어를 뿌리 언어로, 영어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게 만든 조지은 교수의 노하우다.   옆집 아이와 비교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가 오늘 한 새롭고 참신한 말에 감탄하고, 박수 쳐주세요. 그래야 “말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깁니다.   ■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 ①뿌리 언어가 있나요? 모국어는 내 생각·감정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뿌리 언어가 잘 정착해야 자기 정체성이 명확해지고, 말하기 자신감도 생깁니다. 3세 전후까진 대화를 통해 “말로 표현하면 반응이 온다”는 신뢰 관계를 쌓아주세요. 영어는 말이 트인 후 접해도 늦지 않습니다.  ②언어의 창의성이 살아 있나요? 아이들은 언어를 끊임없이 창조합니다. ‘양’과 ‘암기’에 집착한 영어 학습이 창의성을 말살하죠. 5~7세 창조성을 길러야 할 시기에는 ‘호기심’에서 출발해 영어에 대한 ‘긍정 경험’을 쌓아주세요. 놀면서 영어를 섞어쓰면 좋습니다.  ③틀릴 배짱이 있나요? 영어 잘하는 열쇠는 자신감입니다. 영어는 정답이 없습니다. 언어의 구조와 발음 규칙을 강조하는 문법과 파닉스를 맹신하지 마세요.“문법에 어긋나”, “발음이 틀렸어”는 영어 두려움증을 유발합니다. 소통 욕구를 일으키는 건 양육자의 칭찬과 격려입니다.   」 관련기사 [오밥뉴스]"코로나 이후 한 반에 20% 읽기 어려워 해"… 내 아이의 문해력 수준은 영어만 보면 울던 초등 2학년…4년 뒤 수능영어 만점 비결 그저 ‘뒷말’ 따라했을 뿐인데…아이에게 생긴 놀라운 변화

    2022.11.18 16:57

  • 아이에게 집안일만 가르쳤다…부족 같은 이 가족이 사는 법

    아이에게 집안일만 가르쳤다…부족 같은 이 가족이 사는 법 유료 전용

    우리 가족은 인스타그램이랑은 안 맞아요. 자랑할 만한 성취를 이룬 사람도 없고, 찍을 만한 화려한 식탁도 없거든요. 대신 각자 나가 경쟁에서 이기고, 그 결과 대단한 걸 가지고 와야 할 의무도 없어요.   지난달 말 만난 박혜윤(47)씨는 가족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의 가족은 부부와 자녀 2명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핵가족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 빼면 전형성이라곤 찾을 수 없다. 우선 구성원 중 정규직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남편이 주 3일 수영장에서 안전요원으로 아르바이트하고, 부부가 각자 글을 써 번 돈으로 생활한다. 부부는 양질의 음식을 제때 먹이고, 입히며, 안전을 책임지는 것 외엔 양육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학원에도 보내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도 공부를 잘해야 할 의무가 없다.   인스타그래머블한 것과 거리가 멀다는 박혜윤 씨답게, 사진 촬영이 있는 인터뷰에도 평소와 별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다. 권혁재 기자   미국 시애틀에서 차로 1시간 거리 시골에 사는 이 가족은 여러모로 독특하다. 거실에 모여 각자 자기 일을 하고, 먹고 싶은 메뉴가 있는 사람이 요리해 함께 식사한다. 각자 먹은 그릇은 각자 씻는다. 주방엔 전자레인지도 없다. 냄비도, 접시도 4개뿐이다.   ‘인스타그래머블’한 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 ‘궁상맞게’ 살아가는 이 가족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박혜윤씨의 일상을 담은 책 『숲속의 자본주의자』는 2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 가족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욕망이 이끄는 2022년을 사는 사람들은 왜 이들의 이야기를 읽었을까? 신간 『도시인의 월든』을 내고 한국을 찾은 박혜윤씨를 지난달 말 직접 만났다.    ━  Part1.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다   박혜윤씨는 이 독특한 가족의 뿌리이자 중심이다. 사실 그는 이력만 놓고 보면 뭐라도 한자리 했어야 한다. 서울대를 나온 미 워싱턴대 박사 출신으로, 주요 일간지 기자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미국 시골에 사는 ‘무직자’다. 가정주부라 하기에도 적절치 않다. 이 가정에서 가사는 가족 모두의 일이지, 박혜윤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정해도 갖추기 힘든 커리어를 가지고도, 별다른 직업 없이 사는 이유는 뭘까?   “살면서 포기한 걸 사소한 것까지 쓰면 책 한 권은 족히 될 거예요.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재미가 느껴진 순간 대학원 진학을 포기했어요. 기자가 됐지만 취재하는 법을 알 즈음 그만뒀고, 교수가 되려고 미국 유학까지 왔지만 정작 학위를 따고 나선 교수를 포기했죠. 농사를 짓겠다고 시골에 왔는데 농사도 접었고요.(웃음)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엔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역시 그런 자신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약하고 게을러서 그러는 건지, 실패가 무서워 승부를 봐야 할 때 도망가는 건지 분석도 해봤고, 고치려고도 해봤다. 하지만 뭘 하건 늘 마지막엔 그 어떤 것도 원하지 않게 됐다. 그래서 포기할 때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그냥 살았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말이다. 그런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도 열심히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목적이나 꿈이 없어도 일상을 살면서 그저 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나 성공을 만나기도 해요. 많이 팔겠다거나 유명해지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쓴 게 아닌데, 이렇게 연달아 책을 내고 있잖아요. (웃음)”   그러면서 그는 둘째 아이 얘기를 꺼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가 그리스·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책 『퍼시 잭슨과 올림포스의 신』에 한창 빠져 그 책에 나오는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펼친 적이 있다. 아이는 3초 만에 책을 덮어버렸다. 결말이 궁금해서, 그걸 알기 위해 책을 읽는 아이에게 시는 그 어떤 재미도 주지 못했다. 박혜윤씨가 “시는 뭘 알려고 읽는 게 아니라 그저 거기 머무르면서 느낌으로 읽는 것”이라고 말해줬더니, 이틀 뒤 아이가 “느리게 읽는 것도 재밌는지 몰랐다”고 하더란다.   결말을 알겠다는 목적이 없어도 읽다 보면 재미를 발견하듯, 박혜윤씨도 그렇게 사는 게 목표다.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은 그에게 가장 잘 맞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는 “내게 주어진 하나의 삶이 내 멋대로 펼쳐지는 걸 보고 느끼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박혜윤씨는 자신의 삶을 그 누구에게도 권하지 않는다. 모두 각자에게 맞는 자기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원하는 게 없는, 그저 열심히 사는 걸로 충분한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고 나자 박혜윤 씨의 삶은 온전히 그의 것이 되었다. 권혁재 기자    ━  Part2. 원시 부족 같은 가족이 되다   박혜윤씨에겐 올해 대학생이 된 첫째와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가 있다. 두 아이 모두 학교 외 별다른 사교육은 받지 않았다. 학원만 안 보낸 게 아니다. 그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한 번도 숙제 검사를 해본 적이 없다. 준비물을 챙겨본 적도 없다. 아이의 공부는 박혜윤씨 부부의 의무도, 책임도 아니기 때문이다.   박혜윤씨 가족은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책임도 지우지 않는다. 부부는 아이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우지만, 그 이상의 것을 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그걸 하기 위해 더 오래, 더 열심히 일하는 삶은 그들이 선택한 삶이 아니었다. 아이가 공부하고 싶어 하면 하게 내버려 두고,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돕지만,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게 지원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다. 아이들에게도 공부를 잘해야 할 의무는 없다.   “제가 자란 가정은 각자 의무에 충실했어요. 아빠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열심히 돈을 벌었고, 엄마 역시 헌신적으로 가족을 돌봤죠. 저랑 제 동생도 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했고, 멀쩡하게 컸어요. 지극히 모범적인 가족이었는데, 저는 그 안에서 불행했어요. 저만 불행한 게 아니었죠. 모두가 공평하게 지옥을 살았어요.”   불행한 가정에 흔히 등장하는 가정 폭력, 음주와 도박, 사치, 사업 실패, 고부 갈등, 무관심 등 그 어떤 것도 없었던 그의 가족은 왜 불행했을까? 그는 “훌륭한 4인 가족을 만들기 위해 각자 했던 ‘헌신’이 문제였다”고 말했다. 자신을 억누른 채 행한 헌신과 희생이 분노를 만들었고, 각자의 분노가 서로에게 향했다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지거나, 더 채우거나, 더 좋은 무엇이 돼야 한다는 기대와 의무 없이 현재의 나로도 충분한 관계로 가족이 지속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박혜윤씨가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다.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는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잘하는 게 아이들에게 정말로 좋은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혜윤씨는 “공부하느라 잠 못 자는 게 아이에게 좋은 건가요?”하고 되물었다.   “저는 근본적으로 발전을 믿지 않아요. 변화를 발전이 아니라 복잡성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손빨래보단 세탁기를 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발전이라곤 생각하지 않는 겁니다. 세탁기를 개발하는 게 무조건 좋은 일은 아니라는 거죠. 공부해서 발전에 기여하고, 그 결과 인정받고 돈을 벌어야만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변화를 발전이 아니라 복잡성”이라고 생각하면 양육자가 아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조언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발전은 예측할 수 있지만, 복잡성은 예측할 수 없으니까. 그가 아이의 숙제 검사조차 하지 않은 건 그래서다.   그는 서로에게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가족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는 가족이 되고 싶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인스타그래머블한 가족’이 아니라 ‘원시 부족 같은 가족’이다. 그의 가족이 시골에서, 별다른 직업도 없이, 별다른 사교육도 없이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사는 이유다.   박혜윤 씨는 그 어떤 의무와 헌신도 요구하지 않는, 존재 자체로 충분한 관계의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 너무 당연한 건데, 그의 가족은 독특하다는 소릴 듣는다. 각자 나가 경쟁에 이겨 뭔가를 이루길 요구 받는 시대라서다. 권혁재 기자    ━  Part3. 내가 가르친 유일한 한 가지, 집안일   숙제 검사도 하지 않는 그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게 딱 하나 있다. 바로 집안일이다. 박혜윤씨는 “가사를 통해 자존감과 정서적 안정, 삶에 대한 기쁨,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학습 동기, 타인에 대한 배려 등 모든 것을 확실하게 가르칠 수 있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가사만큼 고된 일이 없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데, 안 하면 바로 티가 난다. 그래서 성취감도, 재미도 찾을 수가 없다. 어른에게도 힘든 가사를, 아이가 그것도 주도적으로 하는 게 가능할까? 그는 “노동이 아니라 놀이가 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살림이 간소해요. 소박하고 실용적이다 못해 지질하죠. 한마디로 소꿉장난이에요. 그릇도 각자 하나뿐이니 어떤 걸 놓아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잘하길 기대하지도 않는다. 아이들은 만 3세가 되면서 빨래 개기를 시작했는데, 각자 원하는 형태로 개면 된다. 그러다 귀찮으면 낄낄거리며 서랍에 그냥 마구 구겨 넣는다. 양말을 신는데 짝이 없으면 술래잡기하듯 짝을 찾든가, 엉뚱한 짝의 양말을 신으면 그만이다. 박혜윤씨는 “실험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것 자체가 놀이”라며 “우리 집에선 바로 그게 가사”라고 말했다. 그가 가사를 통해 모든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가사를 가르치는 또 다른 효과는 어떤 일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유는 가사가 귀찮고, 또 하찮은 일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본질은 먹고, 싸고, 자는 거잖아요. 그런데 먹고, 싸고, 자는 데 이렇게 많은 준비와 정리가 필요하다니요. 그게 다 가사고, 그런 점에서 가사는 존재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일이죠. 그런데 존재의 본질에 가까운 그 일이 너무 자잘하고 귀찮고, 어떨 땐 하찮기까지 합니다.”   박혜윤씨는 “인간이란 존재도 사실은 하찮은 것이란 걸 깨달았다”고 했다. 여기까지 이르자 대단한 걸 성취하고, 엄청난 지위를 얻는 것도 가사와 마찬가지로 하찮게 볼 수 있게 됐다. 그러자 그것에 더는 헌신하거나 매달리지 않고 그저 순간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그가 가사를 통해 아이들에게 진짜 가르치고 싶은 건 바로 이것이다.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건 제겐 이런 거예요. 당장 큰돈이 걸린 일이나 중요한 시험이 코앞에 있어도 무심하고 덤덤하게 내가 쓴 컵 하나를 냉큼 씻는 것이요. 그것도 아주 열심히요. 사실은 별것 아닌 삶을 가볍게, 그러나 충실하게 하는 것 바로 이걸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어요.”   1.지천에 블랙베리라 여름마다 열심히 따고 얼려 반 년간 아침마다 온 가족이 한 줌씩 먹는다. 냉장고가 늘 비어 있으면 언제든 블랙베리 같은 것들로 채울 수 있다. 2. 지인이 돼지감자 모종을 주어 놀고 있는 앞뜰에 심었다. 노동이 아니라 놀이로 느낄만큼만 심었다. ⓒ박혜윤   박혜윤씨를 만난다고 하자, 그의 책을 읽은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미국이어서 그렇게 사는 거지, 한국이었다면 못 하지 않았을까?” 정말 그럴까?   “한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을 거 같아요. 다만 지금과 똑같은 방식은 아닐 거예요. 한국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한국이란 환경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이 되는 실험을 할 테니까요.”   박혜윤씨가 전형적인 방식으로 남들과 비슷하게 살든, 독특하게 남들과 완전히 다르게 살든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어떤 모습이건 그 삶은 스스로 탐구하고 실험하면서 찾아낸 ‘박혜윤의 삶’이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일단 해!" 39살에 삼성 최연소 임원, 그녀가 돌연 사표 쓴 이유 "천재여야 살 가치 있는 건가요" '우영우' 신드롬이 불편한 이유

    2022.11.11 14:26

  •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⑲

    80년대생 양육자 취재 후기 “90년대생 엄마 생길까요?” ⑲ 유료 전용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취업했는데 어느 순간 보면 남성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이 격차는 어디서 비롯된 걸까?   1980년대생 여성 기자 4명이 80년대생 양육자 11명을 인터뷰하고 내린 결론은 ‘출산’이었다.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기획을 준비하면서 만났던 전문가와 읽었던 논문 등 각종 자료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hello! Parents가 만난 11명의 인터뷰 대상 중 워킹맘은 모두 출산을 추천하지 않았던 것도 그 증거다.    그래픽=변소라 디자이너 byun.sora@joongang.co.kr   19편에 걸쳐 발행된 ‘일하는 엄마, 가정적인 아빠의 탄생: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기획은 “hello! Parents를 보는 이 시대 양육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취재하는 한 달여는 가사와 육아를 둘러싼 환경과 구도가 여전히 성차별적이라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다. 이 차별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지극히 평등해 보이는 화목한 가정 안에 은밀히 자리 잡고 있었다.     지난 7일, hello! Parents 기자들이 모인 건 그래서다. 취재하면서 느낀, 그렇지만 기사에 다 담지 못한 ‘은밀한 차별’ 이야기를 담기 위해서다. 은밀한 차별은 여성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남성에게도 존재했다. 양육자인 정선언(40·이하 정)·이송원(36·이)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양육자들의 삶이 곧 내 삶이었다”며 “고정관념과 편견에 맞서며 일상을 살아내는 스스로와 배우자, 그리고 가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혼인 이민정(37·민)·김지혜(33·김) 기자는 “결혼·출산으로 인한 행복과 고충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며 “결혼과 출산에 대해 더 깊이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  ☝여성 경력 단절의 주범은 출산        한국경제연구원의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변화 분석과 시사점』(2021)에 따르면 전체 여성의 68.1%는 결혼 당시 일하고 있다. 이 수치는 결혼 이후 떨어지기 시작해 5년 차엔 최저치(40.5%)를 기록했다. 반면에 기혼 남성의 고용률은 92.3%로 미혼 남성의 고용률 69.7%보다 높았다. 보고서는 기혼 여성의 취업 유지율이 떨어진 원인으로 출산을 꼽았다.    김) 경력 단절의 피해는 남성보다 여성이 주로 겪잖아요. 남성과 여성 간 커리어 격차를 줄이려면 어떤 장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 남성에게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쓰게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유럽에선 이미 일반화돼 있죠. 부부가 1년의 육아휴직을 쓴다면 반드시 절반은 남성이 써야 해요. 일을 쉬면 커리어 손상은 불가피해요. 일을 그만두지 않더라도 말이죠. 실제로 저희 남편이 최근 1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복직했는데, 처음으로 커리어 걱정을 하더라고요. “누구는 자격증 땄대” “누구는 승진했대” 하면서요. 사실 저는 이미 했던 걱정이거든요. 육아휴직을 남녀 모두에게 동일하게 쓰도록 의무화하면 노동 시장에서의 차별도 없어질 거예요. 고용주 입장에서도 출산으로 인한 휴직이 성별에 상관없이 동일해야 가임기 여성을 기피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 육아휴직을 했을 때 남성과 여성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논문(『남성 육아휴직이 남성 근로자와 배우자의 경력개발 활동과 경력 만족에 미치는 영향』, 곽원준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을 읽었는데요. 남성도 육아휴직을 할 때 경력 불이익을 예상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재미있었던 건 남편이 육아휴직을 쓴 여성 양육자는 자신의 자원을 직장에 더 많이 투입할 수 있게 돼 만족도가 올라가더라고요.    정) 저도 그랬어요. 남편이 휴직하고 육아를 전담하니까 업무 효율이 정말 높더라고요. 아이가 하원은 잘했나, 버스는 잘 탔나 이런 걱정도 전혀 없고, 아이의 하루 스케줄을 짜서 누군가에게 맡기고 체크하는 관리 업무가 완전히 사라졌거든요. 아내가 전업주부인 남성들이 이렇게 일하는구나 싶어서 ‘현타’가 오기도 했어요. 저랑 옆에 앉은 외벌이 가구 남자 동료랑 동등한 경쟁을 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아내가 전업주부인 남성들은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지 모를 거예요.   민) 남성이 육아휴직을 하면 육아의 어려움을 더 뼈저리게 느낄 것 같기도 해요. 박태우(39·육아휴직 경험한 워킹대디)님이 육아휴직을 했을 때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는 게 이런 거구나”를 느꼈다고 했잖아요. 매일 깔끔하게 차려입고 출근하다 육아휴직을 하고 나선 씻지도 않았다고요. 온종일 말도 안 통하는 아이와 있으니 답답했다고도 했죠. 성별과 관계없이 아이를 전담해 키우면 다 똑같은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김) 그런데 남성이 육아휴직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지점이 있을 것 같아요.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평균 임금은 남성의 60%밖에 되지 않잖아요. 가정 경제를 놓고 보면 여자가 휴직하거나 퇴직하고 남자가 일하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이에요. 클라우디아 골딘의 『커리어 그리고 가정』도 이 문제를 지적했잖아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여성이 이 부담을 짊어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 남편이 휴직해도 가정의 경제적 손실이 덜 일어나게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하겠죠. 사실 지금도 이런 장치가 있긴 해요. 남자가 받는 육아휴직 급여가 여성의 급여보다 많거든요. 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남자가 버는 게 가정 경제에 더 유리한 판단인 상황이니까 남성 휴직자가 적은 거겠죠. 고령화가 심각한 일본의 출산율이 최근 반등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15년간 엄청난 예산을 투입한 결과가 이제야 나오는 거죠.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정책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아이 낳는 순간부터 돈이 줄줄 나가죠. 오소연(34·풀타임 워킹맘)님이 “애를 낳으니 통장에서 1000만원 없어지더라”고 한 말이 괜한 게 아니에요. 산후조리원 비용이 2주에 500만원에 육박해요. 좋은 데가 아니라 평균적인 곳이 그래요. 좋은 곳은 1000만원 하는 데도 있더라고요. 그게 다인가요. 분유 사야죠, 기저귀 사야죠. 국민 육아템은 또 왜그렇게 많은 건지요…. 이러니 애를 안 낳죠.    ━  ☝여성 중심 커뮤니티, 남성의 육아 참여 걸림돌       어렵게 남성이 육아에 나서도 힘든 게 많다. 육아하는 아빠는 좋은 회사에 다니거나 실업자라는 인식에 맞서야 한다. 정보와 위로가 오가는 양육 커뮤니티 역시 여성 중심으로 이뤄져 있어 남성이 참여하기 쉽지 않다.    최새은 한국교원대 가정교육학과 교수는 『육아휴직제를 사용한 남성의 가정 및 직장에서의 경험 연구』(2019)에서 “아이와 소통하기 어려운 만큼 양육자는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는데, 이런 감정을 나눌 커뮤니티에 아빠는 들어가지 않거나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다.    김) 남성이 육아휴직을 망설이는 게 꼭 돈 때문은 아닌 것 같아요. 아직도 양육자 하면 엄마를 떠올리잖아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치원이나 학교·학원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왜 아빠가 아닌 엄마한테만 연락하느냐”고 반문하셨어요. 남성 휴직자가 늘어나는 만큼 이런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요. 제가 남자여도 온통 여자뿐인 커뮤니티에 끼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정) 윤자영 교수의 말씀에 정말 공감해요. 남편이 휴직하고 육아를 전담했었잖아요. 그런데도 무슨 일 생기면 기관에서 다 저한테 연락하는 거예요. 제가 회의 중이어서 전화를 못 받으면, 남편은 왜 자기한테 빨리 전달 안 했느냐고 볼멘소리를 하더라고요. 선생님도 여자다 보니 아무래도 저한테 연락하는 게 편하셨던 거 같았어요. 평일 낮에 놀이터 나가보세요. 아빠 찾기 어려워요. “다른 엄마들에게 말 걸기도, 그냥 있기도 어색해”라는 남편의 말이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어요.    민) ‘아빠의 육아’를 주제로 뉴스레터를 보내는 ‘썬데이파더스클럽’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인터뷰이 5명 중 4명이 육아휴직을 했는데요. 그중 한 분이 학부모 모임에 나갔더니 선생님이 “다음엔 어머님이 와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는 거예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아빠도 민망하고 상처받을 것 같아요.    이) 이번에 인터뷰한 황준희(37·전업 대디)님이 서울시가 운영한 ‘100인의 아빠단’ 활동을 한 것도 비슷한 고민을 해서였대요. 어딜 가나 엄마인데, 엄마랑 교류하는 게 어색했다고요.    김) 엄마들이 이런 커뮤니티를 놓지 못하는 것도 이유가 있어요. 내가 활동을 안 하면 우리 아이에게 피해가 돌아갈까 봐서죠. 파트타임 워킹맘인 조현정씨가 “풀타임으로 일하고 싶지만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게 다른 엄마들과의 교류가 줄어들면 아이가 또래 무리에서 소외될까 봐 걱정”이라고 했거든요.    민) 아이가 소외되지 않았으면 하는 양육 방식의 일환으로 가족 대 가족이 만나는 ‘플레이 데이트’가 요즘 유행이라고 하던데요.    정) 맞아요. 우리는 부모가 아이의 친구를 만들어주는 세대가 아니었잖아요. 저도 다른 집과 교류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거든요. 좀 과하다고도 생각했고요. 그런데 선생님들이 그런 시간을 꼭 만들어 주라고 하시더라고요. 코로나19 때문에 학교나 유치원에서 아이들끼리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고요. 그런데 커뮤니티가 여성 위주로 돌아가다 보니 아빠가 그런 모임을 주선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  ☝전통적 성 역할 ‘은은하게’ 요구하는 사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자료 『성 역할 가치관과 결혼 및 자녀에 대한 태도』(2022)에 따르면 ‘엄마와 아빠는 같은 비중으로 자녀 양육에 참여해야 한다’는 문항에 남성의 89.2%, 여성의 93.9%가 동의했다. 연령별, 혼인 상태별 차이도 크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이처럼 우리 사회는 평등한 성 역할을 지향하는 듯하다. 하지만 여성들이 현실에서 체감하는 건 다르다. ‘아이는 엄마가 돌봐야 한다’는 전통적 성 역할을 ‘은밀하게’ 요구하는 순간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일하는 여성이 “그럼 애는 누가 봐?”라는 질문을 들었을 때다.    김) 양육 커뮤니티가 여전히 여성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전통적 성 역할이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이런 성 역할이 요즘은 예전처럼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죠. 은밀하게 깔린 것 같아요.    정) 제가 우리 사회에 은은한 성차별이 있다고 느꼈을 때가 언제인 줄 아나요? 바로 육아휴직을 하고 복귀했을 무렵이에요. 보는 사람마다 “그래서 애는 누가 봐?”라고 물어봤어요. 대답을 하다 하다 지쳐 정말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니고 싶은 심정이었죠. 남편한테 이런 얘기 들어봤냐고 물어보니, 한 번도 없대요.    김) 출산을 겪은 여성들의 결혼과 삶의 만족도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은 결국 ‘남편과의 분담’인 것 같아요. 80년대생 양육자를 봐도 남편의 가사·육아 기여도에 따라 여성의 만족도가 확연히 나뉘었죠. 윤미래(33·전업맘)님은 “남편이 너무 많이 도와줘 미안할 정도”라면서 10점 만점에 10점이라고 치켜세웠어요. 반면 오소연(34·풀타임 워킹맘)님은 “나도 똑같이 공부하고 직업이 있는데, 남의 집 아들 팬티 접어주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고요. 오소연씨 남편은 일이 바빠 거의 가사와 육아를 챙기지 못하는 편이었죠.    정) 윤미래씨가 “남편이 너무 많이 도와줘 미안할 정도다”는 문장을 보고 문득 든 생각인데요. 남성이 양육이나 가사를 하면 ‘도와준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여성이 할 땐 돕는다고 하지 않죠. 이것도 ‘은은한 성차별’의 일종인 것 같아요. 원래 양육과 가사는 함께해야 하는 일이잖아요.    이) 최새은 한국교원대 가정교육학과 교수가 그와 관련해 해주신 말이 떠오르네요. 보통 남성들이 “나같이 집안일 많이 도와주는 남자 없어”라고 하잖아요. 그 자신감의 근원이 양육·가사 분담과 관련해 남성들은 준거집단을 남성 친구나 동료로 삼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내 주변 사람들보다 내가 더 많이 하니까 난 괜찮은 남자야’ 이렇게 생각한대요. 반면 여성은 비교 대상을 남편으로 삼아서 ‘왜 내가 더 많이 하지?’ 여기에서 불만이 시작되는 거고요.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다시 로크먼이 자신의 저서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에서 말하길 남성들은 그렇게 길러진다고 했어요.     정) 가정 교육이 중요하겠네요.     민) 남편 입에서 ‘집안일을 돕는다’는 표현이 나온다는 자체가 가사를 자기 일로 여기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최새은 교수가 말씀하셨죠. 네 일 내 일 따지지 않고 그냥 몸이 움직여야 진짜로 가사를 본인의 일로 받아들이는 거래요. 예를 들어 “기저귀 챙겼어?” 묻는 게 아니라, 그 말을 할 시간에 본인이 직접 기저귀를 챙기면 진짜 자기 일로 생각하는 거죠.     정) 저도 “기저귀 챙겼어?”라는 말 듣고 분노했었거든요. “그 말에는 ‘기저귀 챙기는 사람이 나’라는 속뜻이 담긴 게 아니냐”면서 남편을 쏘아붙였던 기억이 나네요. 남편은 “그런 의도가 없는데 왜 혼자 급발진하느냐”며 반발했어요.    민) 80년대생들은 아직 규범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남지선(34·전업맘)님도 “아이가 도전적으로 살기보다 평균 이상의 대학을 가 평탄하게 살길 바란다”고 한 것처럼요.    김) 여러 통계를 보면 19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결혼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들 하잖아요. 80년대생은 사회적 의무처럼 결혼을 받아들인 마지막 세대일 것 같아요. ‘내 부모님과는 다르게 살겠다’면서 남녀가 각자 일과 가정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의 고정관념에 맞서 분투하는 게 우리 80년대생의 현주소 아닐까요?    지난해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81명. 역대 최저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합계 출산율이 1명이 채 안 되는 건 한국이 유일하다. 80년대생 양육자들의 삶 속에 그 이유가 있었다.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어느 기자가 한 질문은, 80년대생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80년생 여성, 특히 일하는 양육자가 출산을 권하지 않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우리가 이런데 과연 90년대생 여성 양육자가 존재하기는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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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0 1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