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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시키자 1등급 됐다, SKY도 보낸 ADHD 치료법 유료 전용
박정민 디자이너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 천재 화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화가 파블로 피카소,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 이 분들의 공통점이 뭘까요? “ADHD를 가진 아이도 잘 클 수 있냐”는 질문에 신윤미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되물었다. 정답은 모두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를 앓았다는 것. 신 교수는 “인류 역사에 획을 그은 위인 중에 ADHD를 앓은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물론 미국에서도 1957년 이후에야 ADHD를 질환으로 인식하기 시작했으니 1400~1800년대 인물에게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의 유년시절 일화를 통해 얼마든지 추측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실제로 에디슨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3개월 만에 자퇴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피카소는 학창 시절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지 못하고 창가로 가 창문을 두드리는 행동을 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어떤 일을 마무리 짓는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빌 게이츠와 마이클 펠프스는 어린 시절 ADHD 치료를 받은 바 있다. 국내에서도 ADHD 환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성인은 물론 소아·청소년 환자의 증가율도 높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ADHD 진료를 받은 소아·청소년은 4만4741명(2018년)에서 8만1512명(2022년)으로, 4년 사이 2배가량 늘었다. 실제로 주변에서 자녀가 ADHD는 아닐까 걱정하는 양육자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활동량 많은 남아를 키우는 양육자가 많다. 산만하다고 다 ADHD일까? 산만함과 ADHD는 어떻게 다른 걸까? ADHD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 지난달 13일 신윤미 교수를 찾아 ADHD 아이 키우는 법을 들었다. 신 교수는 2003년부터 20년간 아주대에서 ADHD를 치료하고 있다. 그가 진단‧치료한 아이가 10만여 명에 이르고, 지난 4월에는 『ADHD 우리 아이 어떻게 키워야 할까』도 출간했다. 신윤미 아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03년부터 20년 간 ADHD를 치료해온 권위자다. 그동안 치료한 아이 수가 10만여명에 이른다. 그는 "ADHD를 가진 아이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문제없이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 ☝ ADHD, 문제는 뇌에 있다 “물건 잘 잃어버리고, 가만히 못 있는 아이, ADHD일까요?” 맘카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질문이다. 매사 산만하고 한 가지에 집중 못 하는 아이를 보며 ‘ADHD 아닐까’하는 걱정, 양육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특히 남아를 키우는 양육자 중에는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로 관련 검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문제는 ADHD란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 양육자가 자신을 탓한다는 점이다. 신 교수는 “임신했을 때 태교에 신경을 못 쓰거나, 스마트폰을 일찍 보여줘서 ADHD가 나타난 거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며 “ADHD는 뇌의 문제일 뿐 양육자의 태도나 환경과는 관계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뇌의 문제라는 게 정확히 어떤 건가요? ADHD 아이의 뇌는 보통 사람과 정확히 뭐가 다른 건지 궁금해요. 우리 뇌는 크게 파충류뇌‧포유류뇌‧인간뇌로 나뉩니다. 세 개의 뇌는 복잡한 신경회로로 연결돼 있고, 각각 고유한 기능을 하죠. 파충류뇌는 신체 기능을 조절하고, 포유류뇌는 놀이같이 사회적 행동을 위한 역할을 합니다. ‘전두엽’이라 불리는 인간뇌는 계획 실행, 충동 억제, 집중력, 판단력 등을 담당하는데요. ADHD 아이들은 이 전두엽이 보통 아이들보다 2~3년 늦게 발달해요. 전두엽이 늦게 발달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유전적 요인이 영향을 끼칩니다. 특정 유전자 하나에 이상이 있어서 발생하는 건 아니에요. 신경전달물질 관련 유전자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부모가 ADHD일 경우 약 50~60%가 유전된다는 봅니다. 또 임신 중 음주‧흡연, 조산‧저체중 등도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이외에 후천적인 외부 환경이나 양육 태도는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아이가 ADHD일 때 양육자가 ‘내가 뭘 잘못했지?’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죠. 대표적인 증상은 뭔가요? 크게 과잉행동‧충동형과 주의력결핍형, 이 두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형으로 나타납니다. 과잉행동‧충동형은 쉽게 말해 행동 절제가 안 되는 겁니다. 손발을 잠시도 가만두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서도 몸을 꿈틀거리는 아이들이죠.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식탁 위에 올라가거나 돌아다니고, 갑자기 소리 지르며 뛰어가는 일도 잦습니다. 반면 ‘조용한 ADHD’로 불리는 주의력결핍형은 수업이나 놀이에 집중하지 못하고, 물건을 자주 잃어버립니다. 솔직히 과잉행동‧충동형보다 주의력결핍형을 더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죠? 과잉행동‧충동형은 문제행동이 겉으로 나타나다 보니 양육자나 교사들이 봐도 아이가 뭔가 다르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어요. 그만큼 병원을 찾는 비율이 높죠. 소아‧청소년 아이들의 ADHD 진료 인원을 성별로 살펴보면, 남자가 6만3182명으로 여자(1만8330명)의 3배가 넘습니다. 남자아이 중에 과잉행동‧충동형이 많다 보니 진단율이 높아서 그렇죠. 주의력결핍형은 두드러지는 문제행동이 적기 때문에 언뜻 봐서는 ADHD인지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아요. 그러다 보니 진단이 늦어져 치료 적기를 놓치는 일이 적지 않죠. 아이들 대부분이 행동을 절제하지 못하고, 산만하고, 주의력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실제로 주변에서 ‘우리 애 검사하면 ADHD일 거야’라고 말하는 양육자가 많습니다. ADHD와 그냥 산만한 아이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산만하게 행동한다고 모두 다 ADHD로 진단하지는 않습니다. ADHD 의심 행동으로 인해 학교‧유치원 등 기관생활, 가족‧친구관계, 학습 등에서 문제가 나타날 때 검사를 권하고 있어요. 학교에서 말썽꾸러기로 유명한 A와 B가 있다고 해볼게요. 둘은 수업 쉬는시간에 똑같이 복도를 뛰어다니며 거칠게 놀고, 늘 자기 얘기를 하느라 바쁩니다. 하지만 A는 수업이 시작되면 자리에 앉아서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B는 수업 중에도 여전히 교실을 돌아다닙니다. 이때 A는 장난꾸러기, B는 ADHD일 가능성이 높죠. 사실 이런 한두 가지 상황만으로 ADHD를 진단하기는 어려워요. 또 아이의 행동을 다각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문제 행동을 집이나 유치원‧학교 중 한 곳에서만 할 수도 있거든요. 사실 영유아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데, 언제부터 진단‧치료가 가능한가요? 보통 학교에 입학하는 7세를 기준으로 진단‧치료를 시작합니다. 의심증상은 보통 4세부터 나타나는데, 어릴 때는 변화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진단을 내리기 어렵거든요. 진단을 내릴 때는 일상생활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도 중요하게 판단해요. 5~6세 때도 아이가 찻길에 뛰어드는 등 위험한 행동을 자주 하거나 유치원‧어린이집에서 여러 차례 쫓겨나는 식으로 문제가 커질 때는 진단‧치료를 하죠. 박정민 디자이너 ━ ☝ 정신병? 치료 가능한 병! ‘금쪽같은 내 새끼’ 같은 육아 프로그램의 인기로 ADHD에 대한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최근 ADHD 환자 수가 크게 증가한 것도 이런 인식 변화의 영향이다. 하지만 아이 손을 잡고 정신과 병원의 문턱을 넘는 건 양육자들에게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아이에게 평생 ‘정신병’이라는 ‘주홍글씨’가 남을 거라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ADHD는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일상생활에 거의 문제가 없다”며 “괜한 걱정 때문에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치료의 골든타임은 언제인가요? 아이마다 증상이나 기질‧환경‧발달상태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시기를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또래 관계나 학교‧유치원‧어린이집 등에서 부정적인 경험을 하기 전에 치료하는 게 좋습니다. 만약 아이가 학교에서 수업 중에 돌아다녀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친구들과 대화가 잘 통하지 않아 왕따를 당한다면, 아이는 학교나 친구를 끔찍한 존재로 인식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학교에 다니거나 사회성을 기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죠. ADHD 치료를 주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약물에 대한 불안감 때문입니다. ADHD 진단을 받으면 무조건 약물치료를 실시하나요? 이것 역시 아이의 상태에 따라 다릅니다. 양육자 대부분이 약물치료는 놀이치료‧학습치료‧가족치료 등 다른 방법을 모두 시도해보고 그래도 안 될 때 쓰는 최후의 보루로 여깁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약물을 굉장히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의 경우 6세 이상이어야 약물을 처방할 수 있어요. 하지만 6세가 되지 않았더라도 주치의와 논의해 약물치료를 시작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인가요? 안전문제와 언어문제가 나타날 때예요. 쉽게 말해 ADHD로 인한 문제가 약물로 인한 부작용보다 심각하다고 판단할 때죠. 특히 안전문제는 아이 생존과 관련된 중요한 일입니다. ADHD 아이들은 어떤 것에 흥미를 느끼는 순간 본능적으로 몸부터 움직입니다. 길 건너편에 친구가 있으면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기 전에 도로로 뛰어드는 식이죠. 충동제어가 안 되기 때문에 유치원에서 급식을 먹다가 숟가락을 집어 던지는 일도 있습니다. 실제로 응급실을 찾는 아이의 50% 정도가 ADHD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예요. ADHD를 포함해 산만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라면 위험하지 않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유치원이나 학원은 가급적 1층으로 보내고, 대로변도 피하는 게 좋습니다. 집 안 베란다에도 최대한 잠금장치를 해두고요. 언어문제는 어떻게 나타나나요? ADHD 아이들의 60%가 또래보다 언어발달이 늦습니다. ADHD를 조기에 발견하려면 언어발달 정도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하는 이유죠. 언어를 익히려면 상대방이 하는 말을 듣고, 표정을 살피고, 모방하고, 재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ADHD 아이들은 주의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말의 흡수와 활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요. 정신과에서는 언어치료의 골든타임을 3~7세로 보는데요. 최소한 24개월에는 ‘아빠’‘엄마’ 같은 단어, 36개월에는 ‘엄마 밥 줘’ ‘놀이터 가’처럼 두세 단어로 된 문장을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아이의 언어 발달 수준이 조금이라도 늦다면 ADHD가 아니어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언어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필수매개체이자 인지발달의 도구니까요. 구어(口語)가 안 되면 문어(文語)는 물론, 학습에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약물치료를 하면 안전‧언어문제가 개선되나요? 약을 먹고 효과가 나타내는 비율이 70~80%에 이릅니다. 정신과 질환 중에 최고 수준이죠. 실제로 아이 문제로 매일 학교 선생님께 전화를 받다가, 약물치료 후 한 학기 동안 한 번도 전화를 안 받았다는 양육자가 있었어요. 또 단답형으로밖에 대답을 못 하던 다섯 살짜리 아이가 약물치료 후 주어‧목적어‧서술어를 정확히 구성해 답을 내놓기도 했죠. 고등학생 중에는 약물치료 후에 성적이 모두 1등급으로 오른 아이도 있고요. 완치가 어렵다고 알고 있습니다. 약을 평생 먹어야 할 수도 있나요? 초등학교 때 ADHD 진단을 받는 아이 중 50~60%는 중‧고교, 30~40%는 성인까지 이어집니다. 그렇다고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성인이 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고 하면 용량을 낮추거나 약을 중단할 수 있거든요. 전문가가 환자 상태를 보고 판단해야 하는 문제죠. 신윤미 교수는 "ADHD 진단받는 아이의 60%는 언어문제를 겪는다"며 "산만한 아이의 경우 언어발달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 ☝ 칭찬은 ADHD도 춤추게 한다 ADHD를 앓는 아이에게도 훈육은 필요하다. 일부 양육자는 훈육을 통해 ADHD를 고칠 수 있다는 생각에 아이를 더 엄하게 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ADHD는 뇌 발달의 문제기 때문에 훈육이나 행동통제로 치료하는 건 쉽지 않다. 오히려 양육자의 강압적인 태도는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신 교수는 “인내심이 부족한 아이들인 만큼 외적‧내적보상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적‧내적 보상이 뭔가요? 좋아하는 음식이나 장난감을 사주는 물질적 보상이나 게임하기‧TV보기 같은 활동적 보상이 외적보상에 해당합니다. 내적보상은 칭찬 등을 통해 스스로 보람을 느끼게 하는 거죠. 물질적 보상은 토큰법칙이 대표적인데요. 아이의 나쁜 습관을 교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때 아이가 그 행동을 고칠 때마다 쿠폰이나 돈을 주는 거예요. ‘신발 정리하기 200원’, ‘옷 제대로 벗어서 걸어놓기 300원’ 이런 식으로요. 일정 금액을 모으면 원하는 물건을 사주고요. 보상과 돈을 결합했다가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까요? ‘토큰 법칙’만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돈이 따라 와야만 양육자가 원하는 것을 수행하는 게 굳어버리면 다른 방법으로는 아이를 훈육하기가 어려워지니까요. 토큰 법칙을 여러 보상 형태 중의 하나로 활용하면 됩니다. 아이가 가고 싶은 곳 함께 가기, 아이가 하기 싫어하는 일 면제해주기, 주말은 아이 마음대로 놀게 해주기, 늦잠 자도 잔소리 안 하기 같은 활동적 보상도 병행하는 거죠. 또 ADHD 아이들에게는 보상형태만큼 보상 시점도 중요합니다. 보상 시점이요? ADHD 아이는 기다리는 일을 어려워하기 때문에 보상을 줄 때 간격을 짧게 줘야 해요. ‘일주일간 옷을 제자리에 놓으면 주말에 놀이공원 데려갈게’보다 ‘오늘 옷을 제자리에 놓으면 내일 키즈카페 데려갈게’가 효과적이죠. 미취학 아동이라면 하루나 이틀 단위로 끊어서 보상을 주는 게 좋습니다. 보상의 형태를 외적보상에서 내적보상으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해요. 돈이나 게임하기 같은 눈에 보이는 보상은 휘발성이 강한 반면, 칭찬 같은 내적보상은 아이 안에 차곡차곡 쌓이거든요. 외부 시련을 견디게 해 아이 성장을 돕는 역할을 하죠. 내적보상을 주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요. 맞습니다. 특히 ADHD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는 아이 칭찬에 인색합니다. 또래와 비교하면 혼내거나 잔소리할 건 많지만 칭찬할 일은 거의 없거든요. 아이 눈높이에서 잘하고 있는 부분을 발굴해서 격려하는 게 필요합니다. 실제로 인지행동치료를 할 때 양육자에게 칭찬거리 찾는 훈련을 시킵니다. 칭찬거리 찾는 훈련이요?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매일 울고불고 난리치는 아이가 어느 날 울지 않고 등원했다면 “오늘 하루 안 울어서 너무 좋았어. 덕분에 준비시간이 어제보다 단축됐네”라고 얘기하는 겁니다. 사실 양육자 입장에서 아이가 떼쓰지 않고 유치원에 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칭찬할 일로 만들어주는 거죠. 이때 아이가 이해할 수 있게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게 포인트입니다. 아이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시켜서 칭찬거리를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바닥에 책이 10권 정도 떨어져 있을 때 딱 한 권만 제자리에 꽂아달라고 하는 거죠. 이때 아이가 양육자 말을 따르면 “싫다는 얘기 안 하고 바로 해줘서 너무 고마워. 덕분에 거실이 한결 깨끗해졌네”라고 칭찬하고요. 칭찬이 특히 중요한 이유가 있나요? ADHD 아이들은 집 밖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존감이 낮고, 자신감도 없는 아이가 대부분이죠. 이런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우울증‧불안장애 같은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어요. 칭찬 같은 경험을 통해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워야 ADHD를 이겨낼 힘을 얻죠. 신 교수는 “특히 집을 편한 공간으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ADHD 아이들에게 집은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드러내 놓고 있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학교에서 말썽꾼 취급을 받는 아이들이 온전히 숨 쉴 수 있는 곳은 집밖에 없다. 아이를 혼내고 싶을 때 그냥 한 번 더 안아주는 게 필요한 이유다. 양육자가 아니어도 아이는 이미 학교나 유치원에서 비슷한 잔소리를 수백 번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양육자가 명심할 건 또 있습니다. 아이가 ADHD 진단을 받았다고 아이 인생이 끝난 것처럼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대부분 문제없이 성장합니다. 실제로 제 환자 중에 고교에서 전교 1등을 하거나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에 진학하는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좌절할 시간에 아이에게 칭찬 한 번 더 해주는 건 어떨까요? 신윤미 교수는 "ADHD를 겪는 아이는 문제아 취급을 받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자존감이 낮다"며 "양육자의 칭찬이 아이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워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우상조 기자 ■ 정신과 교수가 말하는 ADHD 아이 키우는 법 「 ①ADHD, 문제는 뇌에 있다. ADHD는 크게 과잉행동형‧주의력결핍형‧복합형으로 구분한다. 양육방식 문제라고 생각해 자책하는 양육자 많지만, 전두엽 발달이 늦는 게 원인이다. 양육방식이나 가정환경과 무관하다. ②ADHD는 치료 가능한 병이다. ADHD는 정신과에서 약물치료가 가능한 질환 중 하나다. 치료 꺼리는 양육자 많지만 조기 치료하면 큰 문제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무엇보다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실제로 ADHD 환자 중에 고교에서 전교 1등하거나 SKY 진학 사례 적지 않다. 조기에 발견하려면 언어능력 등 체크하는 게 필요하다. ③칭찬은 ADHD도 춤추게 한다. ADHD 아이 훈육의 키는 적절한 보상이다. 좋아하는 음식‧장난감 같은 외적보상만큼 칭찬 같은 내적보상이 중요하다. ADHD 아이는 자존감이나 자신감 낮은 경우 많은데, 방치하면 우울증‧불안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가 수행할 수 있는 일 시켜 일부러 칭찬할 일 만드는 게 필요하다. 」 관련기사 월 200만원 챙긴 ‘왕의 DNA’…교육부 5급 부모는 왜 속았나 수영황제 펠프스도 ADHD…산만한 아이 잠재울 운동 셋 책 보면 불러도 모르는 아이…근데 공부는 왜 못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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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졸 두 아들 서울대 보냈다, 중졸 막노동꾼 아빠의 전략 ⑥ 유료 전용
「 hello! Parents 특별기획 6부작 ‘그 엄마의 비밀’⑥ 」 돈 말고 시간을 투자하세요 경제력도, 정보력도, 학력도 없는 아빠가 두 아들을 서울대에 보냈다. 중졸(中卒)의 막노동꾼 출신 아빠 노태권(67)씨다. 노씨는 “어려운 환경에서 어떻게 두 아들을 서울대까지 보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양육자의 관심과 보살핌이 우선돼야 한다는 얘기다. 너무 당연한 말 아니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관심과 보살핌을 돈으로 해결하고 있진 않나요?” 노씨네 삼부자는 모두 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노씨는 난독증으로 중학교도 간신히 졸업했다. 노씨의 첫째는 게임에 빠져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고, 둘째는 아토피가 심해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했다. 노씨 삼부자가 모두 중졸이 되자 가장 속상해한 건 노씨의 아버지였다. 공무원이었던 노씨의 아버지는 자식 교육에 헌신적이었다. 노씨의 두 남동생을 연세대에 보낼 정도로 교육열이 높았다. 아버지는 “손자 둘 다 (춘천에서) 서울로 보내라. 내가 가르치겠다”고 했다. 하지만 노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빠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노씨는 춘천에서 사교육 한 번 없이 두 아들을 직접 가르쳐 서울대에 보냈다. 첫째는 2011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둘째는 2015년 서울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노씨는 “난 공부 머리를 타고난 사람이 아니다. 애들도 서울대 보내려고 공부시킨 게 아니었다”고 했다. 난독증 아빠는 공부와 담쌓은 두 아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지난 7일 그를 만나 물었다. 박정민 디자이너 ━ 🦸♂️ 행동으로 보여줬다 노씨는 자신을 “빵점도 아닌 마이너스 백점 아빠였다”고 소개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관둔 것도 자신 탓이라고 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뒤늦게 시작한 한글 공부에 정신이 팔려 정작 아이들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거다. 아이들은 무관심한 아빠를 외면했다. 첫째가 중학교 3학년 때 쓴 어버이날 카드에는 ‘우리 아빠는 무식하고 별 볼 일 없는 막노동꾼’이라고 적혀 있었다. 노씨는 “부모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학습 문제의 불씨”라고 했다. 아이를 충분히 보살피지 않으면 정서 불안이 커지고 결국 학습 의지를 꺾는다는 거다. 그가 “공부하라고 말하기 전에 좋은 관계부터 쌓으라”고 하는 건 그래서다. 두 아들이 학교를 관둔 게 아빠 탓이라고요? 아이들이 하루아침에 공부를 포기한 게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신호가 있었어요. 게임에 집착하고, 가출하고…. 친구들은 막노동꾼 자식이라고 놀리지, 엄마·아빠는 일하느라 바쁘지, 게임 말고는 의지할 곳이 없었겠죠. 게다가 제가 마흔 넘어 한글 공부를 시작했거든요. 늦깎이 공부한다고 신경을 더 못 썼죠. 부모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할 때였는데,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겁니다. 그러니 삐뚤어질 수밖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결핍을 채워 줘야죠. 그런데 돈도, 학력도, 직업도 변변치 않은 제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더군요. 제가 가진 걸 내어 주는 것 외 엔요.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고 국제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습니다. 운 좋게 절 후원하겠다는 분을 만나 수능 준비도 하고 있었고요. 그런데 다 접었어요. 애들이 꿈을 잃었는데, 제 꿈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일도, 공부도 다 내려놓고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요? 생계도 있는데요. 아이들에게는 ‘내 편’이 필요합니다. 부모가 그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저는 한참 늦었죠. 제 아버지도 그러셨어요. 글자도 못 읽는 바보란 소리를 듣고 다녔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직접 가르치셨어요. 제가 중학교까지나마 마친 건 다 아버지 덕이죠. 다만 방식이 싫었어요. 겁주고 야단치면서 가르치셨는데, 그럴수록 더 위축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절대 화내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했어요.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까요. 제 모든 걸 접은 건 그래서예요. 대신 아내가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공부와 담쌓고, 학교까지 관둔 아이들의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행동이 변화를 만든다는 게 제 신조거든요. 제가 선택한 건 걷기였어요. 아이들 데리고 소양강을 따라 왕복 24㎞, 하루 8시간을 걸었습니다. 걷기가 두 발로 하는 철학이라고 하잖아요. 걷다 보면 머릿속이 정리됩니다. 굳이 대화하지 않고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고요. 물론 애들이 순순히 안 따라나섭니다. 그래서 거래를 했어요. 하루 8시간만 함께 걸으면 게임하지 말란 말 안 하겠다고요. 그렇게 어르고 달래서 나왔지만, 막상 서먹했습니다. 말을 걸면 들은 척도 안 해요. 어쩔 땐 화가 납니다. ‘그래도 내가 아빤데’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하지만 꾹 참았어요. ‘꼰대’가 되지 않기로 다짐했거든요. 섣부르게 미안하다는 말도 안 했습니다. 기다렸어요. 아이들 마음이 풀릴 때까지요. 너무 아이 중심 아닌가요? 버릇만 더 나빠지면 어쩌죠? 모든 걸 허용했다는 건 아닙니다. 대신 아이가 스스로 판단하게 했습니다. 특히 생계와 관련된 건 투명하게 공개했어요. 아내의 식당 일만으로는 우리 네 식구 먹고살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쌀통에 쌀이 없다. 이제 아빠도 일 나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도 같이 가겠다더군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집에 남아 게임을 하는 것보다 함께 있는 게 나으니까요. 아들이랑 전국을 돌며 공사장, 주유소에서 일했습니다. 애가 학교 안 가고 일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수군거립니다. 그때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제 과거를 그대로 밟는 거잖아요.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때마다 전 아이를 더 감쌌어요. 사람들한테는 “홈스쿨링하는 중이다. 우리 애 나쁜 애 아니다”고 했고, 애한텐 “주눅들지 마라. 공부 안 해도 너만 당당하면 된다. 아빠만 따라와라” 했어요. 제가 아이에 대한 확신을 갖고 방패막이가 돼준 거죠. 행군을 시작한 지 일 년, 아빠와 두 아들은 8000㎞를 걸었다. 노씨의 절실함을 이해한 건지 “다시 공부해보겠느냐”는 노씨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노태권(67)씨는 "아이 교육에는 부모의 학벌, 재력, 직업보다 부모의 관심과 지지가 더 크게 작용한다"며 "공부의 신이 아닌 돌봄의 신이 돼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 🦸♂️ 베푸는 습관부터 길렀다 마음의 문을 연 아이들이 차츰 공부에도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노씨는 서두르지 않았다. 공부는 장기전이다. 빠르게 가는 것보다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다. 노씨가 두 아들에게 ’공부해야 하는 이유부터 찾아보자”고 한 것도 그래서였다. 노씨는 “왜 공부해야 하는지가 선명해야 어떻게 공부할지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노씨의 두 아들은 어떻게 공부의 이유를 찾았을까? 노씨는 “봉사 활동 덕이었다”고 했다.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봉사 활동이요? 게임 중독에 빠진 아이를 혼자 집에 두고 나가는 건 위험합니다. 밤낮으로 게임만 할 수 있거든요. 그렇다고 게임을 전혀 못 하게 하면 무기력증이나 우울증으로 이어질 수 있고요. 차라리 일거리를 주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봉사 활동입니다. 주말마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을 찾아가 식사, 목욕, 대소변 처리 등을 도왔어요. 봉사 활동은 제 취미였습니다. 제가 일용직이었잖아요. 일이 없는 날에 지역 봉사에 참여했는데, 뿌듯하더라고요. 자존감이 높아지고 공부도 더 잘하고 싶어지고요. 봉사를 통해 자존감이 높아지고, 학습 의욕도 생겼다는 거군요? 아무리 공부 잘하고, 좋은 학교 진학하면 뭐하나요? 내 이득만 좇으며 살면 결국 혼자 남는 걸요. 제가 바로 그런 경우였어요. 뒤늦게 공부에 재미 붙여 열심히 했는데, 돌아온 건 아이들의 외면이었죠. 오로지 제 만족만을 위한 공부였던 거예요. 아이들은 그런 실수를 안 하길 바랐어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배운 걸 어떻게 써먹을지에 대해 고민부터 하자고 했죠. 봉사 활동이 도움될 거라 생각했어요. 봉사하다 보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일반적이지 않은 일들을 겪게 되거든요. 그 경험이 타인과 어울려 사는 방법을 찾는 시발점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공부할 이유도 찾고요. 아이들이 거부하지는 않았나요? 안 간다고 하죠. 마지못해 가도 선뜻 어르신들께 다가가지 못해요. 처음에는 그냥 보라고만 했어요. 봉사라는 게 뭔지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극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아빠가 땀 뻘뻘 흘리며 어르신들 씻겨드리는 거 보면 애들도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옆에서 수건이라도 건네주고, 밥상 차릴 때 수저 하나라도 놓죠. 어르신들 말벗도 되려고 하고요. 아이들 말이 ‘날 필요로 하는데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더군요. 처음엔 어려워도 막상 하고 나면 뿌듯하고요. 봉사를 다니면서 아이들이 정말 달라졌나요? 저는 봉사의 이점을 세 가지로 꼽는데요. 먼저 공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남을 돌보다 보면 책임감이 생겨요. 내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한 사람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둘째가 간호학과에 진학한 것도 그래서예요.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다고요. 그러려면 더 공부해야겠다고 하더라고요. 봉사의 두 번째 이점은 ‘자기 돌봄’의 중요성을 깨닫는다는 겁니다. 남을 돌보다 보면 나를 돌보는 습관이 생깁니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의 하루를 챙기다 보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되죠. 게임을 한다고 안 먹고, 안 자던 일상이 부끄러워지고요. 봉사를 다녀온 다음 날이면 게임도 덜 하고 규칙적으로 생활해보려고 애쓰더라고요. 봉사 활동의 마지막 이점은 뭔가요? 공부에 좋은 감정을 갖게 돼요. 제가 애들 공부시키려고 꾀를 냈는데요. 어르신들 앞에 공부 자리를 펴준 거예요. 손자뻘 되는 애들이 눈앞에서 공부하니 얼마나 기특하겠어요. 애들한테 “잘한다, 잘한다” 칭찬만 해요. 물론 그 자리가 공부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에요. 집중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책 본다고 칭찬해 주는 사람을 언제 만나보겠어요? ‘공부하는 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힘을 얻습니다. 노씨는 본격적인 공부에 앞서 '베푸는 마음'을 가르쳤다. 남을 도와봐야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공부의 이유가 바로 서야 어떻게라도 찾아본다"고 했다. 김종호 기자 관련기사 "경제력도 정보력도 아니다" 서울대 보낸 엄마들의 비밀 ‘팔꿈치 쿡쿡’ 이게 통한다, 서울대 보낸 워킹맘 노하우 “초등땐 놀려라, 한달만 빼고”…‘서울대 삼형제’ 엄마의 비결 의사·판사·교수 된 서울대 삼남매…엄마의 ‘계룡산 집’ 비밀 “또 서울대 보낼 자신 있다” 목동 엄마 학원 대신 택한 것 ━ 🦸♂️ “오늘 하루만 해보자” 노씨는 “공부는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부터 공부를 놓아버린 아이들에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일 자체가 곤욕이었다. 5분도 못 버텼다. 계획 역시 3일을 넘기지 못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 노씨가 찾은 해법은 “오늘 하루만 해보자”였다. 작심삼일을 이겨내는 건 어른도 어렵습니다. 인간은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하루 정도는 참고 견디는 유일한 동물이라고 합니다. 끝이 없다고 생각하면 못하지만, 끝을 정해놓으면 버틸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 계획을 세울 때 항상 끝을 정해줬어요. “오늘 하루만 해보자”가 제일 많이 한 말이죠. 특히 어렵고 하기 싫은 일에 효과적인데요. ‘오늘만’이라는 조건을 붙이면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책상 앞에 앉았다고 해도 막상 책 펼치면 딴짓을 해요. 그래서 쉬운 내용부터 공부하게 했어요. 공부에 자신감을 붙이려고요. 우리 아이들은 18세에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쉬우니까 그만큼 빠르게 진도를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 단계씩 알고 넘어가면 성취감이 쌓입니다. 요즘 선행 학습을 많이 시키는데 내용이 너무 어려우면 아이는 학습에 흥미와 자신감을 잃어요. 이러면 포기하기 쉽고요. 쉬운 것부터 한 단계씩 올라가면 자신감이 붙어서 더 쉽게 배웁니다. 좀 어려운 내용을 나와도 부딪혀볼 용기가 생긴다는 거예요. 하지만 친구들은 이미 앞서 나가고 있어요. 마음이 조급하지는 않았나요? 제가 아이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늦게 피는 꽃은 있어도 안 피는 꽃은 없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듯 공부 성향도 제각각입니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아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하나를 열 번 가르쳐줘야 하는 아이도 있죠. 그래서 저는 절대 아이들을 비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두 가지를 강조했어요. 하나는 개념과 원리, 또 하나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는 거예요. 개념과 원리요? 흔히 고득점을 받으려면 문제를 많이 풀라고 하는데, 그보다는 개념과 원리를 정확하게 아는 게 먼저입니다. 용어 하나도 그 뜻을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큰아이가 그걸 못했어요. 한국지리 책을 달달 외워도 문제를 풀면 틀립니다. 낯선 용어의 뜻을 제대로 몰라서였어요. 예를 들어 ‘선상지(扇狀地)’는 강물에 쓸려 내려온 자갈과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부채 모양의 지형입니다. 이때 선(扇)이 부채를 의미해요. 이 의미를 알면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무작정 외우니 잘 잊어버리고, 응용력도 떨어지는 거예요. 개념과 원리는 공부의 뼈대입니다. 개념과 원리가 튼튼하면 오히려 공부 시간이 줄어듭니다. 아이만의 공부 방식은 어떻게 찾아줘야 하나요?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과 패턴을 조금만 관찰해도 보입니다. 양육자들이 실수하는 것 중 하나가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사실 그렇지 않죠. 그걸 먼저 인정하고, 끊임없이 관찰하고 대화해야 해요. 첫째는 꼼꼼하질 못해요. 책을 대충 훑어보고는 다 안다고 생각하죠. 정확히 모르니 문제를 풀면 다 틀립니다. 이런 아이들은 책 여러 권을 보는 것보다 한 권을 꼼꼼하게 여러 번 읽고, 내 말로 정리하는 게 중요합니다. 첫째에게 각 과목당 개념서 한 권씩만 사준 이유죠. 새로운 내용이나 책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않은 내용은 메모하거나 A4용지에 적어 덧붙이게 했어요. 나만의 백과사전을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반복해서 보게 했어요. 둘째는요? 둘째는 예민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합니다. 아토피 때문에 30분 이상을 못 앉아 있어요. 그래서 시간을 쪼개 쓰게 했어요. 16분 공부-4분 휴식-10분 공부, 이렇게 총 30분을 한 세트로 공부하게 했어요. 공부에 집중하다 보면 30분 이상 앉아 있을 때도 많은데요. 이러면 체력이 고갈되기 때문에 오히려 그다음 공부에 지장을 받더라고요. 타이머를 이용해 철저하게 이 시간을 지키게 했습니다. 비록 공부 시간은 짧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더 효율적이더군요. 체력이 약하고 집중력이 낮다면 이 방법을 활용해 보세요. 노씨 첫째 아들이 봤던 역사 수험서. 노씨는 대충 읽고 넘어가는 첫째에게 책 한 권만 사줬다. 한 권을 완벽하게 반복해서 읽고, 내용을 확장시켜 공부하게 했다. 김종호 기자 ‘중졸의 막노동꾼 아빠’였던 노씨는 이제 ‘벼랑 끝에서 아들을 살려낸 돌봄(care)의 신’으로 불린다. 기분이 어떨까? 노씨는 “아이가 공부한 거지 내가 한 게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아이 덕분에 내가 배웠고, 내 길을 찾았다”고 했다. 수렁에 빠진 아이들을 건져내며 남을 돌보는 일에 재능을 찾았다. 두 아들은 아빠를 ‘돌봄의 신’으로 부른다. 그가 독거노인과 중증 장애인의 생활을 돕는 ‘장애인 활동 지원사’로 제2의 삶을 사는 이유다. 아무리 잘나가는 일타강사라도 부모만 한 스승은 없습니다. 학벌·재력·직업 없어도 됩니다. 제가 산증인이잖아요. 환경 탓하지 말고, 환경 덕분에 기회를 얻었다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아이와 눈 한 번 더 맞추고 대화하세요. 그렇게 아이와 부모가 함께 성장하는 겁니다. 그게 진짜 공부입니다. ■ 중졸 두 아들 공부 의지 불태운 난독증 아빠의 전략 세 가지 「 ① “행동으로 보여줬다” 양육자와의 좋은 관계가 공부 의지도 만든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갖되,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줬다. 아이와 함께 걸으며 각자의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고, 공통의 경험을 만들었다. 양육자는 언제나 ‘내 편’이라는 확신을 만들어라. ② “베푸는 습관부터 길렀다” 공부의 이유가 있어야 방법도 찾는다. 봉사활동을 하며 베풀다보면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 그래야 내 이익만 목적으로 한 좁은 공부가 아닌, 세상을 바꾸기 위한 넓은 공부를 하게 된다. ③ “오늘 하루만 해보자” 공부의 성패는 빠르게 보다 꾸준하게가 좌우한다. “오늘 하루만~”이라는 조건부 계획은 단기간 집중력을 높여준다. 쉬운 것부터 해야 공부 자신감과 속도가 붙는다. 아이마다 공부 성향이 다르니 비교하지 말고, 각자의 공부법을 찾아라. 」 ■ hello! Parents 특별기획 ‘그 엄마의 비밀’ 「 ① “경제력도, 정보력도 아니었다” 자녀 서울대 보낸 엄마들의 비밀(9월 18일 발행) ② 계획파 엄마, 사교육보다 먼저 들인 이 습관(9월 19일 발행) ③ 욕심 많은 목동 엄마, 학원 대신 독서 선택한 이유(9월 21일 발행) ④ 바쁜 워킹맘, 아이 공부보다 신경 쓴 것은(9월 22일 발행) ⑤ 감성파 엄마, 주말마다 아이들 데리고 간 곳은(9월 25일 발행) ⑥ 난독증 아빠, 중졸 아들에 책 한 권만 사준 까닭(9월 26일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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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판사·교수 된 서울대 삼남매…엄마의 ‘계룡산 집’ 비밀 ⑤ 유료 전용
「 hello! Parents 특별기획 6부작 ‘그 엄마의 비밀’ ⑤ 」 박정민 디자이너 ‘교육(敎育)’이라는 게 가르치고 기르는 거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부모는 가르치는 것만 신경 써요. 기르는 게 더 중요한데 말이죠. 삼남매를 모두 서울대에 보낸 김정국(70)씨의 말이다. 김씨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공부는 낮에 해 떴을 때 학교에서 하는 것이고, 밤에 달이 뜨고 집에 오면 쉬어야 한다”는 지론 때문이다. 그는 교사를 학생들을 밝게 비추는 ‘해’로, 부모는 아이들을 은은하게 품어주는 ‘달’에 비유했다. 대신 아이들에게 숨 쉴 구멍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주말이면 자연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틈틈이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정서 함양에 더욱 공을 들였다. 한남대 교육학과 겸임교수로 10여 년간 강단에 섰던 그는 “학습엔 인지적 영역과 정의적 영역이 있다. 인지는 지식, 정의는 태도와 관련이 있는데 양쪽 고르게 발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부 바퀴와 감성 바퀴가 같은 크기로 자라야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한쪽만 커지면 같은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게 됩니다. 아이들이 자라서 사춘기가 되면 그 차이가 확연히 보이죠. 자기 힘으로 바퀴를 굴릴 수 있는 아이는 쭉쭉 치고 올라가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는 계속 부모가 끌고 가야 해요.” 삼남매의 서울대 진학 비결도 감성에 있다. 아이들의 성향은 다 달랐지만, 감성은 크고 작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줬다. 서울대 고고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하버드 건축·미술사학과 종신교수가 된 첫째 딸에게는 지적 호기심을 확장하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판사가 된 둘째 딸과 서울대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치과 의사가 된 막내아들에게는 지친 심신을 달래는 이완제가 되어줬다. 특히 삼수 끝에 서울대에 합격한 막내는 음악 덕을 톡톡히 봤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에게 맞는 감성 바퀴를 찾아서 키워줄 수 있을까? 김씨는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상 모든 엄마가 자녀의 첫 번째 스승이자 오랜 여정을 함께 할 동반자이기에 서로를 알아야 맞춰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6일 대전에서 그를 만나 보다 자세한 노하우를 물었다. 박정민 디자이너 ━ 🌳흙을 밟으며 자라게 하라 아이들의 어린 시절, 김정국씨 가족은 주말이면 항상 교외로 나갔다. 그러다 첫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계룡산 근처에 쉼터를 꾸렸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계룡산 화백’으로 유명한 신영국 화백이 작업실 겸 사용하던 농어촌주택이 수해로 망가지자 이를 사들여 아이들과 함께 하나씩 꾸며 나갔다. 아이들에게는 어떤 공간이 필요한가요? 남편은 경남 김해, 저는 통영 출신이에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죠. 남편이 충남대에서 근무하다 개원하면서 대전에 자리 잡게 됐지만, 사람은 자연 속에서 동식물을 벗 삼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어요. 마침 아이들이 신 화백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며 여러 번 와본 공간이라 친숙하기도 했고, 사방이 산과 천으로 둘러싸여 시야에 막힘이 없어 마음에 들었죠. 정원이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흙을 퍼다 나르고 식목일이면 함께 나무를 심었는데, 나무가 아이들과 함께 자랐어요. 여름이면 냇가로 내려가 송사리도 잡고, 가을이면 잠자리를 채집하며 사계절의 변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면 어떤 효과가 있나요? 아이들이 경험한 것이 자연스럽게 학습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당장 올해는 어떤 나무를 심을지 정하려면 식물에 대해 공부해야 하니까요. 첫째는 특히 호기심이 많았어요. 마당에 누워 있으면 별이 쏟아지는데 별자리를 보면서 저건 무슨 자리고, 언제 볼 수 있고, 어떤 전설이 있고, 이야기 보따리가 쏟아졌어요. 그럼 듣고 있던 동생들도 덩달아 관심을 가지면서 이것저것 물어봤죠. 김정국씨는 “35년 전에는 주위에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이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흙을 퍼다 나르고 나무를 심고 꾸미다 보니 여러 가지 추억으로 채워졌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전호성 첫째가 이야기꾼이네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해서 모든 걸 이야기로 풀어냈어요. 대원외고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대학원(UC버클리)에서 인도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니 영어와 산스크리트어까지 배웠는데요. 따로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 이건 주어, 저건 동사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전체 내용을 읽고 문맥을 파악해서 유추하더라고요. 다른 사람들보다 읽고 이해하는 속도가 훨씬 빨랐어요. 수학도 마찬가지예요. 공식을 모르니 풀이 과정은 달랐지만, 답은 맞았죠.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셨나요? 첫째는 책을 좋아하니까 많이 사줬죠. 저도 옆에서 읽기도 하고요. 남편은 아이가 그 많은 걸 어떻게 다 읽냐고 했는데 웬걸요. 어느새 전부 읽고는 다른 책을 찾았어요. 그런데 그것도 아이마다 달라요. 둘째와 셋째는 TV 보는 걸 더 좋아했어요. 둘째는 ‘주말의 명화’가 무슨 수능 과목인 것처럼 열심히 봤으니까요. 차 타고 다니면서 클래식도 많이 들었어요. 셋 다 악기를 배우고 연주회도 데리고 다녔지만, 음악적 재능은 막내가 가장 뛰어났어요. 같은 곡이라도 지휘자가 다른 걸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죠. 세 자녀 모두 악기를 배웠나요? 둘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어요. 추첨제로 들어가는 사립초등학교에 다녔는데, 모든 아이가 악기를 하나씩 배우도록 했거든요. 첫째도 5학년 때 그 학교로 전학을 가서 아코디언을 배웠죠. 그랬더니 중학교 가서는 첼로를 배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내심 동생이 부러웠나 봐요. 막내는 자연스럽게 피아노를 치게 됐죠. 삼남매다 보니 막연하게 피아노 트리오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음악을 전공하길 바라신 건가요? 한 명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꼭 전공하고 직업으로 삼지 않아도 다양한 예술을 접하면서 크는 게 정서 발달에 좋기도 하고요. 막내는 의외의 소득도 있었어요. 원래 스스로 공부하는 스타일이 아닌데 콩쿠르에 나가려면 피아노 연습을 해야 하잖아요. 결과적으로 상을 받았는데, 덕분에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어요. 피아노 트리오 공연은 이뤄졌나요? 첫째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대전시민회관에서 하는 공연 오프닝 무대 제안이 왔어요. 다 같이 연습할 시간도 없는데 덥석 하겠다고 했죠. 서울에 있는 첫째에게 둘째와 셋째 합주를 녹음해 들려주고 맞춰보라고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한창 공부할 애를 붙잡고 정신 나간 짓 같기도 한데 언제 그런 기회가 또 생기겠어요. 왔을 때 잡아야죠. 다행히 아이들도 즐거워했어요.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요. 대전시민회관에서 오프닝 공연을 맡아 피아노 트리오 연주를 하는 삼 남매의 모습. 첫째 딸은 첼로, 둘째 딸은 바이올린, 막내아들은 피아노를 배웠다. 사진 김정국 ━ 🌳안 맞는 건 과감히 포기해라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 정해진 시간은 동일하다. 종일 앉아서 공부만 하는 길을 택하지 않는다면 남은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김정국씨는 “입시 과정을 통틀어 유일한 전략이 있다면 ‘선택과 집중’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명문대 합격 3대 조건으로 꼽히는 할아버지의 재력이나 엄마의 정보력은 없고 아빠의 무관심만 있었다. 오죽하면 학교 선생님께 과외 권유를 받았을 정도”라며 웃었다. 아이들에게 과외를 시켜본 적이 없나요? 첫째가 대원외고에 입학하기 전까지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 줄 잘 몰랐어요. 친한 언니가 자기 아들을 보냈는데 참 좋다고 추천하길래 알게 됐죠. 중학교 3학년 때 학원을 알아보니 이미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반이 만들어져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과외를 시켜볼까 했더니 애가 잠이 너무 많은 거예요. 저녁밥 먹으면서 졸기 시작하는 애를 붙들고 어떻게 과외를 하겠어요. 그래서 떨어지면 어쩔 수 없지 하고 그냥 시험을 봤어요. 대전 집을 떠나 서울로 유학 간 셈이네요. 적응은 잘하던가요? 혼자 시장 가서 장 봐와 밥도 하고 빨래나 청소도 곧잘 하던 애라 걱정은 안 됐어요. 다만 외고라서 영어가 중요한데, 잘 못 따라가더라고요. 1학년 1학기에 ‘우’를 받았길래 과외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죠. 혼자 좀 더 해보겠대요. 그러더니 2학기엔 ‘미’를 받더라고요. 다음 해 담임 선생님이 다른 친구들은 중학교 때 성문종합영어 정도는 떼고 온다며 과외 소개를 해주더라고요. 그때 처음 과외를 받아봤죠. 그 전엔 학원도 다닌 적이 없나요? 둘째랑 셋째는 중학교 때 좀 다녔어요. 둘째도 언니 따라 대원외고 간다는데 선생님이 둘째도 보낼 거면 미리 좀 시켜서 보내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둘째는 첫째보다 공부를 잘했어요. 초·중학교 내내 1등만 하던 애가 처음 학원에 가니 주위에서 난리가 났죠. 갑자기 수강생이 급증하니까 학원에서 동생도 보내라고 하더라고요. 얘는 누나랑 다르다 해도 막무가내로요. 결국 막내는 몇 달 못 가서 ‘권고사퇴’ 당했어요. 맨 뒷자리에서 가방도 안 풀고 조용히 앉아 있다 가니까 방해는 안 되는데 원장님이 미안해서 안 되겠다고 하더라고요. 혼자서는 공부를 안 하는 아이니 결국 과외를 했죠. 아이마다 맞는 공부 방법이 다른 것처럼 삼남매의 대입 과정도 천차만별이었다. 첫째는 본고사가 부활하고 수능을 한 해에 두 번 치른 ‘마의 94학번’이었고, 둘째는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가던 해에 학생부와 절대평가가 도입되면서 혼선을 빚었다. 막내가 삼수하면서 도합 여섯 번의 수능을 치른 김씨는 “이쯤 되면 적응이 될 법도 한데 한 번도 쉽게 넘어간 해가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처음부터 목표가 서울대였나요? 아이들에게 서울대에 가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 스스로 목표를 높게 잡더라고요. 첫째 때는 1차 수능이 쉬워서 다들 모의고사보다 성적이 높게 나왔는데 얘는 아니었어요. 그런 애가 서울대를 가겠다고 하니 담임 선생님은 학교를 낮추라고 했죠. 그래서 제가 딸에게 2차 수능에서 몇 점이나 올릴 수 있겠냐고 물어봤어요. 사회·과학탐구 8과목 공부해서 7~8점 정도 올릴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수능은 접고 본고사에 집중하자고 했어요. 수능 끝나고 11월 중순부터 본고사를 준비하면 너무 늦잖아요. 두 마리 토끼 잡으려다 둘 다 놓치느니 한 마리만 쫓은 거죠. 둘째는 속 썩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매사에 차분하고 신중한 편이라 그럴 일이 별로 없었어요. 오히려 입시 정책 때문에 공부에 흥미를 잃은 케이스죠. 누구나 100점 맞을 수 있게 시험 문제를 낸다고 하니까 “이제 공부 안 해도 되겠네” 하더라고요. 대원외고 입학하고 주위에서 다들 열심히 하니까 본인도 분위기에 휩쓸려 더 열심히 했는데 안타깝죠. 1학년 1·2학기 모두 전교 1등이었는데 그 뒤로 1등은 못했어요. 첫째가 외부 자극을 수용하면서 극복한 경우라면, 둘째는 거기 걸려서 넘어진 거죠. 2005년 모래놀이 치료를 시작한 김정국씨는 ‘휴(休) 모래놀이센터’와 ‘부모자녀 교육상담 연구소’를 함께 운영해 왔다.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쉼’이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프리랜서 전호성 관련기사 "경제력도 정보력도 아니다" 서울대 보낸 엄마들의 비밀 “또 서울대 보낼 자신 있다” 목동 엄마 학원 대신 택한 것 ‘팔꿈치 쿡쿡’ 이게 통한다, 서울대 보낸 워킹맘 노하우 중졸 두 아들 서울대 보냈다, 중졸 막노동꾼 아빠의 전략 “초등땐 놀려라, 한달만 빼고”…‘서울대 삼형제’ 엄마의 비결 ━ 🌳힘들수록 유머를 잃지 마라 김정국씨는 막내아들을 두고 “많은 깨달음과 기다림을 가르쳐준 내 인생의 두 번째 스승”이라 칭했다. 스스로 공부하던 두 딸과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챙겨줘야 하는 성향이었던 탓이다. 그럼에도 김씨는 “내 사전에 비교는 없었다”고 했다. “어느 정도 비슷해야 비교를 하지 에베레스트를 바라보며 열등감의 늪에 빠진 애를 어떻게 비교를 하겠냐”고 반문했다. 김씨가 찾은 돌파구는 유머를 곁들인 대화였다. 셋째의 수험 생활은 어땠나요? 둘째가 누가 봐도 서울대 갈 애였다면, 막내는 서울대는 꿈도 꿔본 적이 없어요. 누나들 따라 대원외고 시험도 봤지만 떨어졌거든요. 서울대 치대를 나온 아빠도 서울대는 언감생심이니 전국 어느 대학이라도 좋으니 치대만 가라고 했죠. 서울대를 가려고 삼수한 게 아니라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삼수 했는데, 세 번째 시험에서 대박이 난 거예요. 삼수하면서 성적이 오른 비결은 무엇인가요? 고등학교는 대전에서 다녔으니 재수할 때는 서울에 있는 기숙학원을 보냈어요. 처음에는 밥이 맛있다고 좋아하더니 점점 힘들어하더라고요. 어딜 가든 수십 명이 똑같은 시간표에 맞춰 생활하는 게 힘들었던 거죠. 자기는 운동도 해야 하고 음악도 들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도 없고요. 그래서 삼수할 때는 대전 집 근처 5분 거리 학원에서 했어요. 그것도 1월 합격자 발표부터 4월까지 넉 달을 실컷 놀고 5월에서야 이제 노는 것도 지겨운데 공부 좀 해볼까 하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맘 편히 공부하니 성적이 오르더라고요. 본인에게 맞는 리듬이 있었던 거죠. 모의고사 성적이 꾸준히 올랐나요? 들쑥날쑥했죠. 학원에서 처음으로 반 장학금을 받더니 그다음은 전체 장학금을 받겠다며 열심히 하더라고요. 그런데 다시 뚝 떨어지니 또 고정 레퍼토리가 시작됐죠. 나는 공부하면 안 되는 사람이다, 이번 시험은 포기하겠다 등등. 그런데 저는 ‘옴마야, 다행이다’ 그랬어요. 다음번에는 다시 성적이 오를 차례인데 이제 수능이고, 이번이 수능이 아닌 모의고사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랬더니 ‘엄마도 참 대단하다’며 깔깔 웃더라고요. 힘든 상황에서 웃어넘기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저는 자녀와 대화할 때 유머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첫째 딸이 미국 유학 가서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처음으로 울면서 전화 왔을 때도 ‘옴마야, 다행이다’ 그랬어요. 네가 앞으로 교수가 될 사람인데 이제야 공부 못하는 학생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됐구나 했거든요. 그랬더니 걔도 깔깔 웃죠. 진심을 담은 말에는 힘이 있잖아요. 막내가 삼수하면서 “이 집에 나만 없으면 아무 걱정이 없을 것 같다. 죽고 싶다”고 했을 때도 김씨는 무너지지 않았다. 되려 “죽는 게 지금보다 너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 다만 당시 아들과 같이 읽던 『혼불』에서 제명에 죽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과연 죽으면 다 편안하고 행복할진 모르겠다. 그래도 여긴 떠돌지 않아도 되는 집과 너를 사랑하고 도와줄 수 있는 가족들이 있는데”라고 말했다. 그럴 땐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하나요? 일단 들어주고 같이 방법을 찾아야죠. 사실 걔가 말의 힘이 굉장히 세거든요. 첫해엔 ‘수능 전날 아프면 어쩌지’ 하더니 떡 먹고 체해서 토하고 링거 맞고 시험 보러 갔어요. 두 번째 해엔 ‘엄마, 누나들은 한 번에 갔으니 나는 누나들 몫까지 삼세 번 하는 거 아냐’ 하더니 진짜 삼수하고. 그래서 이왕이면 ‘난 서울대 갈 사람이야’라고 말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했죠. 그 정도 힘이면 이루지 못할 게 없을 것 같다면서요. 모래놀이 치료에서는 피규어를 활용해 내담자의 심리상태를 표현한다. 김정국씨는 “예전부터 여행을 가면 피규어나 미니어처를 사는 게 취미였는데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전호성 그는 서울대 간다고 끝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서울대 치의학과에 입학한 뒤에도 누나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졸업 후 치과 의사가 된 뒤에도 진로에 대한 의심을 계속하는 막내를 보면서 끝없이 자신을 다잡아야 했다. “막내로서는 이제야 길고 긴 열등감의 터널을 빠져나와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선 것이니까요. 아마 중간에 포기하고 다른 대학에 갔으면 더 이겨내기 힘들었을 거예요.” 대학 졸업 후 23년 만에 충남대 대학원에 입학해 석·박사를 마치고, 모래놀이치료센터와 상담소를 운영해 온 김씨는 “막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고백했다. “중학교에 다닌 기억이 없다”던 아들은 엄마와 모래놀이 치료를 하며 내면의 무의식을 드러냈다. “너무 무서워서” 중학생 시절 기억을 통째로 지워버린 것. 그는 “누구나 자신의 발목을 잡는 마음의 상처나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에 그것과 마주할 기회가 필요하다”며 “그래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건 아이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에요. 엄마도 마찬가지죠. 그래야 지치지 않고 레이스를 계속할 수 있어요. 제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이유도 그래서죠. 아이 때문에 내 삶을 포기하거나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마세요. ■ ‘감성파 엄마’ 삼남매 교수·판사·의사로 키운 비결 「 ①흙을 밟으며 자라게 하라. 사람은 동식물을 벗 삼아 살아야 한다. 자연에서 경험은 살아있는 공부로 이어진다. 마당에 나무를 심고 누워서 별자리를 보는데도 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흥미 있는 주제를 확장해나갈 수 있다. ②안 맞는 건 과감히 포기해라. 24시간 공부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이마다 자습, 학원, 과외 등 맞는 학습 방식을 찾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잘할 수 있는 것에 선택과 집중도 필요하다. 두 마리 토끼를 쫓다 보면 한 마리 토끼도 놓칠 수 있다. ③힘들수록 유머를 잃지 마라. 잔소리는 효과가 없지만, 진심이 담긴 말에는 힘이 있다. 유머를 곁들이면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부모는 아이를 믿고 기다리되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자기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그래야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 」 ■ hello! Parents 특별기획 ‘그 엄마의 비밀’ 「 ① “경제력도, 정보력도 아니었다” 자녀 서울대 보낸 엄마들의 비밀(9월 18일 발행) ② 계획파 엄마, 사교육보다 먼저 들인 이 습관(9월 19일 발행) ③ 욕심 많은 목동 엄마, 학원 대신 독서 선택한 이유(9월 21일 발행) ④ 바쁜 워킹맘, 아이 공부보다 신경 쓴 것은(9월 22일 발행) ⑤ 감성파 엄마, 주말마다 아이들 데리고 간 곳은(9월 25일 발행) ⑥ 난독증 아빠, 중졸 아들에 책 한 권만 사준 까닭(9월 26일 발행) 」 박정민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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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꿈치 쿡쿡’ 이게 통한다, 서울대 보낸 워킹맘 노하우 ④ 유료 전용
「 hello! Parents 특별기획 6부작 ‘그 엄마의 비밀’ ④ 」 워킹맘의 아이들은 상위권을 유지할 수는 있어도 극상위권을 꾸준히 유지하기 어렵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드라마 ‘SKY 캐슬’ 첫 화에서 김주영 선생님은 학부모 4명을 앉혀놓고 이렇게 말한다. 1년간 지도할 학생 2명을 뽑는 자리에서 이 말을 들은 워킹맘은 탈락했다. 그의 말은 사실일까?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운 워킹맘 유정임(59)씨는 “공부하고 싶은 마음만 들게 하면 못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공부는 아이가 하는 것이지, 엄마가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라디오 PD였던 그는 두 아이가 한창 공부할 시기 아침 프로그램 연출을 맡아 무려 5년간 새벽 5시에 출근하는 삶을 산 ‘열혈 워킹맘’이다. 이모님 손을 빌려 키운 두 아들은 각각 KAIST 물리학과와 서울대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그라고 좌절했던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학원 설명회에 갔다 학습 진도를 훤히 꿰며 송곳 같은 질문을 하는 엄마들을 보면서 “나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사나” 싶었던 날도 있고, “일한다고 아이 잠재력 다 깎아 먹는 건 아닌가” 자책하던 순간도 많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늘 같았다. ‘공부는 대신해줄 수 없다.’ 그렇다면 양육자는 뭘 해야 할까? 그가 찾은 답은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자”였다. 육아야말로 제대로 하자고 들면 끝이 없다. 하루 8시간은 직장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는 워킹맘에겐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유정임씨가 두 아들을 키운 방법을 잘 들여다보면 물리적 한계를 인정하고 찾은 노하우가 보였다. 지난 6일과 8일 두 차례에 걸쳐 부산과 서울에서 그를 만나 비결을 물었다. 박정민 디자이너 ━ 📂 학습이 아니라 학습 동기를 챙겼다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도, 책을 사줄 수도, 책상에 앉힐 수도 있다. 하지만 공부하게 할 수는 없다. 유정임씨의 말대로 공부는 자기가 해야 한다. 공부를 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대체 어떻게 하면 될까?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기, 그게 가장 어려운 일 아닌가요? 2008년에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 애틀랜타 CNN 본사에 견학을 간 적이 있어요. 초등학교 3학년이던 둘째가 방송국 규모에 놀랐는지 “엄마, 언젠가 나도 여기서 일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묻더군요. 기자님은 뭐라고 답하시겠어요? 아마 이렇게들 말할 거예요. “물론이지. 그러려면 영어 잘해야겠다. 열심히 공부하자.” 공부 얘기로 끝나면 반감만 생길 거예요. 그래서 저는 “네 자리를 하나 골라보자”고 했어요. 아이가 정중앙에 있는 커다란 책상을 가리켰죠. 전 이렇게 말했어요. “오늘부터 저 자리는 네 거야. 매일 저 자리에 앉은 너를 상상해 보자. 그럼 정말 꿈을 이룰 수 있어!” 꿈을 찾아주라는 건가요? 공부해야 할 이유를 찾아주자는 겁니다. 목표가 있고, 이유가 있으면, 시키지 않아도 하거든요. 그게 어떤 직업이나 일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어른도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쉽진 않아요. 전용덕 드림웍스 촬영감독을 강연에 초대한 적이 있어요. 빌 다마슈케 드림웍스 부사장 인터뷰 영상을 가져오셨더군요. 그분 부모님은 트럭 기사와 식당 종업원이었대요. 두 분은 항상 “뭘 하건 네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면 된다”고 말씀하셨대요. 아빠처럼 운전이 하고 싶으면 미국 최고의 트럭 기사가 되고, 엄마처럼 식당에서 일하고 싶으면 미국 최고의 웨이터가 되라고요. 그 말을 마음에 품은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결국 드림웍스 부사장이 됐죠. 일이나 직업에 갇히지 마세요. 목표를 높게 잡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최고를 꿈꾸게 할 필요는 있지만, 구체적인 목표를 잡을 땐 그럴 필요는 없어요. 예를 들어 매일 학습지 5장을 하자는 목표를 세웠어요. 그런데 그 목표가 아이에겐 너무 높다면 아이는 매일 실패를 경험하겠죠. 저는 아이에게 먼저 물어봤어요. 몇 장 하고 싶은지요. 결코 많이 하겠다고 안 하죠. 기껏해야 2장이에요. 마음에 안 차도, 일단 칭찬했어요. “대충 많이 하는 것보다 꼼꼼하게 2장을 푸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제가 먼저 긍정적으로 피드백하면, 어느 날 아이도 그렇게 변합니다. “내일은 한 장 더 할게요”라고 말하죠. 동기 부여하는 또 다른 노하우가 있을까요? 꼭 추천하고 싶은 방법이 있어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뒤 매년 3월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서점에 가서 좋아하는 잡지를 구독해 줬어요. 과학을 좋아하는 첫째는 과학 잡지를, 만화를 좋아하는 둘째는 만화 잡지를 골랐죠. 그럼 제가 하나씩 더해줬어요. 수학과 과학만 파는 첫째에겐 논술 잡지를, 영어를 좋아하는 둘째에겐 영문 경제지를요. 이미 자기들이 좋아하는 걸 하나씩 선택했으니, 엄마의 제안도 너그럽게 받아들이죠. 그렇게 매달 자기 이름으로 잡지가 오면 뜯지도 않고 아이 이름이 써 있는 그대로 책상 위에 올려뒀어요. 아이들은 매달 잡지 올 날을 기다리며 즐겁게 읽어내려 가더군요.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리차드 탈러는 자신의 저서 『넛지』에서 ‘팔꿈치로 쿡쿡 찌르다’는 뜻의 ‘넛지(nudge)’를 소개한다. 사람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되 선택의 자유는 개인에게 주는 상태를 뜻한다. 유정임씨가 아이들에게 쓴 방법은 바로 이 넛지와 닮았다. 결코 강요하지 않지만 스스로 공부를 선택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넛지를 활용해 동기 부여를 한다 해도 공부는 공부다. 자발적으로 한다고 공부가 즐겁고 좋기만 할 리 없다. 유정임씨에겐 또 다른 노하우가 있었다. 바로 보상이다. “우리 집엔 제가 만든 ‘폐인(廢人)데이’가 있어요. 시험이 끝나면 말 그대로 ‘폐인’이 되는 날이죠. 온종일 만화책만 보고, 게임만 해도 나무라지 않았어요. 학원을 빠져도, 햄버거나 피자, 치킨을 시켜서 먹어도 그냥 뒀습니다. 며칠 동안 폐인데이를 할지도 아이들이 정하는 대로 따랐어요. 이날은 할머니 집에 다녀와야 한다거나 학원은 가야 한다는 식으로 토 다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특히 보상할 때는 기대보다 크게 하고, 반드시 지킨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는 “1시간 공부했으면 1시간20분 놀라고 했다”며 “그렇게 보상하면 그 보상을 얻기 위해서라도 집중해서 제대로 공부한다”고 말했다. 워킹맘으로 두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운 유정임씨는 “공부는 엄마가 대신 해줄 수 없다”며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까지다. 워킹맘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 📂 아이를 파악하고, 그에 맞춰 키워라 아이들에게 시간을 많이 쏟을 수 없었던 유정임씨는 메모를 활용했다. 아이의 성향이나 특징, 친구 관계, 진학 정보는 물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싶은 깜찍한 순간이나, 엄마보다 더 철든 것처럼 보였던 대화 등을 휴대전화에 수시로 적어뒀다. 그걸 한 번씩 보면서 아이의 성향뿐 아니라 숨겨진 능력을 파악했다. 유씨는 “내 배로 낳은 아이들이지만 아이가 클수록 엄마가 모르는 모습이 더 많다”며 “기록을 하면서 아이를 더 열심히 관찰했고,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메모 덕에 기질이 완전히 다른 두 아들을 각각의 성향에 맞게 키울 수 있었다. 나중에 아이들이 컸을 땐 메모가 생각지 못한 힘을 발휘하기도 했다. 아이가 진로를 고민하거나 자신의 재능을 부정할 때면 메모를 뒤적이며 “이런 일도 있었잖아!” 하면 금세 자신감을 회복하곤 했다. 두 아이의 기질이 그렇게 달랐나요? 첫째는 내향적이에요. 꽂히면 끌로 파는 스타일이고요. 제가 혼내면 울면서도 끝까지 듣고 “잘못했어요” 하는 성격이었죠. 반면에 둘째는 어디에 떨어뜨려놔도 살아남을 붙임성 좋은 성격이에요. 첫째와 달리 책 읽기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누군가와 말하면서 정리하고 이해하는 스타일이었죠. 제가 혼내면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씩씩대면서 듣고요. 좋아하는 과목도 완전히 달랐죠. 첫째는 어릴 때부터 수학이나 과학을 좋아했고, 둘째는 그쪽엔 영 관심이 없는 대신 영어를 좋아했어요. 어떻게 다르게 키우셨나요? 유치원부터 따로 보냈어요. 저는 두 아이 모두 영어 유치원에 보냈어요. 영어를 공부가 아니라 언어로 배우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거든요. 첫째는 영어로 말하는 걸 힘들어했어요. 그래서 말하기를 너무 강요하지 않는 곳을 찾아 보냈죠. 반면에 둘째는 영어를 너무 좋아했어요. 영어를 써서 칭찬을 받으면 더 열심히 했죠. 그래서 말도 많이 하고 활동도 다양하게 하는 곳으로 보냈어요. 유치원 이후에도 쭉 다르게 교육하셨나요? 첫째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으니까 그쪽 중심으로 활동을 짰어요. 과학 실험을 주로 하는 학원에 보내기도 하고, 지역교육청의 영재원도 보내고요. 교육청 영재원 선생님 추천으로 KAIST와 포스텍에서 운영하는 영재기업인교육원에 다니기도 했죠. 첫째는 꽂히면 남은 신경 안 쓰고 자기 것만 하는 성향이라, 학원을 보낼 때도 큰 데 작은 데 가리지 않고 보냈어요. 반면에 둘째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학원도 소규모 동네 학원만 쭉 다녔죠. 1등 하고 칭찬 받아야 신이 나서 더 열심히 하는 성격이었으니까요. 영어 캠프나 리더십 캠프, 마인드 캠프 같은 활동 중심으로 접근했고요. 첫째가 해서 좋았다고 둘째도 시킨 건 거의 없어요. 첫째와 달리 둘째는 책 읽기를 싫어했다고요. 공부하는 데 문해력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보완했나요? 대화를 정말 많이 나눴어요. 아이가 하는 말은 무조건 끝까지 들어주려고 애를 썼어요. 벌어진 상황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저한테 말로 전해주도록 유도하고요. 이 과정에서 언어적 논리성이 자란 것 같아요. 말을 많이 한다고 논리성을 키울 수 있나요? 말을 많이 하는 것과는 달라요. ‘어떻게 상대를 설득할 수 있을까’를 궁리하다 보면 말에도 구조와 논리가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그 덕에 둘째가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도 공부를 잘한 게 아닐까 싶어요. 메모하면서 아이를 파악하다 보면 장점만 보이는 게 아니라 단점도 보이잖아요. 단점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가 어린이집 다닐 때 일이에요. 어느 날 선생님이 전화가 와서 ‘아이가 콩밥을 너무 잘 먹는다’고 칭찬하는 거예요. 점심에 완두콩밥이 나왔는데 친구들 콩까지 다 먹어줬다면서요. 집에선 어르고 달래야 겨우 몇 알 먹는 정도였거든요. 저녁에 아이에게 물었죠. ‘완두콩밥을 그렇게 잘 먹었다며? 엄마는 몰랐네. 언제부터 콩이 좋았어?’ 하고요. 그랬더니 아이가 이러는 거예요. ‘친구가 싫어하는 걸 해주는 게 좋은 친구니까요. 좋은 친구가 되려고 참고 먹었어요. 먹어준다고 하니 아이들이 다 콩을 제 식판에 쏟더라고요.’ 착하네요. 그런데 엄마 입장에선 속 터질 때가 있죠. ‘모자란 거 아냐?’ 싶은 순간도 있고요. 저도 그랬어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선배에게 고민을 털어놨죠. 그랬더니 타고난 성품은 못 바꾼대요. 선배 아들도 친구가 아이 운동화를 창 밖으로 던져 버린 적이 있대요. 근데 아이가 화도 안내고 내려가서 주워왔다는 거예요. 선배가 화를 내며 “너도 똑같이 해줘!” 했더니 “왜 화를 내세요, 엄마. 제가 그냥 주워오면 되잖아요” 하더래요. 그런데 그 고운 심성을 장점으로 키워줬더니 인간성 좋다는 말을 듣고 산대요. 단점을 장점으로 생각하라는 거군요? 첫째는 중·고등학교에 다닐 땐 아이들이 물어보는 거 가르쳐 주느라 자기 시험 공부를 못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소심하고 착한 천성 덕에 정말 좋은 친구가 많아요. 그렇게 친구들과 어울려 이런 저런 활동을 하다 보니 지금은 외향적이고 유머 넘치는 성격이 됐고요. 단점을 단점으로 보면 그냥 단점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장점이 단점이고, 단점이 곧 장점이죠. 양육자가 어떻게 보느냐, 이게 가장 중요해요. 하루에 8시간은 직장에 매여 있어야 하는 워킹맘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유정임씨는 아이에 관해 생각나는 모든 걸 휴대폰에 메모했다. 그는 “기록하면서 아이를 더 면밀히 관찰할 수 있었고, 아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 📂 혼내고 싶으면 안아줬다 라디오 PD 시절 유정임씨는 1년간 50명이 넘는 소위 ‘영재’ 엄마들을 취재한 적이 있다. 이들 사이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관심과 격려다. 특히 공부를 잘할 때보다 오히려 좌절할 때 더 격려했다. 워킹맘인 유씨도 ‘중단 없는 격려’만큼은 절대 놓치지 말자고 다짐했다. ‘중단 없는 격려’가 말처럼 쉽진 않아요. 양육자도 사람이잖아요. 힘들고 짜증 나는 순간이 있죠. 첫째가 수학경시대회에 나간 적이 있어요. 시험 끝나고 전화가 왔어요. 너무 어려워서 문제를 많이 못 풀었다고요. 사실 예상했어요. 대회가 코앞인데도 공부는 안 하고 빈둥거리더라고요. 퇴근해서 한마디 해야겠다 싶었죠. 퇴근길에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했어요. 그랬더니 “너부터 다스려야 돼” 하는 거예요. 절대 그냥 들어가지 말고, 차 안에서 음악 한 곡 들으면서 커피 한잔 마시고 가래요. 안 그러면 퍼붓는다고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냥 한 번 안아주라고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그렇게 하래요. 선배의 조언을 따르셨나요? 정말 차에서 명상하듯 30분을 보냈어요. 그리고 들어갔더니 첫째가 제 눈치를 보고 서 있더라고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꼭 안아줬어요. 그랬더니 서러웠는지 눈물을 쏟더라고요. 다음엔 더 열심히 하겠다고, 죄송하다고요. 그게 뭐가 죄송할 일인가요? 덩달아 저도 코끝이 시큰해졌죠. 늘 그렇게 안아주고 격려할 수만은 없잖아요. 훈육이 필요한 순간도 있습니다. 훈육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훈육도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있어야 먹힙니다. 워킹맘이 가장 걱정하는 게 바로 그 부분이죠.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으니까 정서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하는 거요. 애정과 신뢰가 단단하다면 결코 문제가 되지 않아요. 그걸 쌓기 위해 아이를 한 번 더 안아주라는 겁니다. 아무 조건 없이요. 공부 잘해서, 말 잘 들어서 안아주는 게 아니라 설령 잘못했을 때마저 안아줘야 해요. 워킹맘은 엄마의 빈자리가 아이 정서에 나쁜 영향을 끼치진 않을지 늘 걱정하게 되죠. 하교 후 빈집에 들어갈 아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지고요. 저희는 두 아이 모두 기숙사 고등학교에 다녔어요. 집에 가는 날이면 친구들끼리 이런 얘길 주고받는대요. ‘부모님이 성적표 보면 실망하실 텐데 집에 가기 싫다. 그냥 기숙사에 있을까?’라고요. 집에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보다 중요한 건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아요. 아이도, 어른도 종일 전쟁터에서 지내잖아요. 상처도 받고 영광도 얻어서 집에 오는데, 집이 편하지 못하다고 생각해 보세요. 다친 마음을 치유해 다음 날 다시 전쟁터에 나갈 수 있을까요? 늘 집에서 아이를 맞아주진 못했지만 ‘가고 싶은 집’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아이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려고요. 어떻게 가고 싶은 집을 만들었나요? 아이들이 집 하면 떠오르는 음식 하나는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솔 푸드(soul food)’라고 하죠. 제가 가사를 잘 못하는데, 요리는 좀 하거든요.(웃음) 집 안 배치에도 신경을 썼죠. 저희 부부는 안방을 두 아이에게 내줬어요. 책상 두 개를 나란히 두고 침대도 같이 넣어줬죠. 둘이 서로 대화도 많이 하고 의지하길 바랐으니까요. 컴퓨터나 TV는 거실에 두고, 거실이 늘 북적이게 했어요. 각자 할 일이 있으면 각자의 공간을 이용했지만, 대개는 거실에서 많은 걸 함께 했죠. 집중해서 공부해야 할 때를 제외하곤 아이들 방문도 늘 열어두게 했어요. 자기 일을 사랑하는 열혈 워킹맘이지만, 그는 일만큼 아이도 세심하게 살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스스로 ‘10년’이라는 시간을 정해놨기 때문이다. 그는 "끝을 정해놓으면 버틸 수 있다"고 했다. 송봉근 기자 유정임씨는 “딱 10년만 신경 쓴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했다. 고등학생 땐 양육자의 말을 듣지도 않거니와 스스로 할 수밖에 없으니, 중학교 3학년까지를 마지노선으로 봤다. 보육에서 교육으로 양육의 테마가 바뀌는 초등학교 입학 1년 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가 딱 10년이기 때문이다. 그는 “끝이 없다고 생각하면 지치지만, 끝을 정해 놓으면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게 하나 있다. 미안해하지 않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는 이 말은 꼭 하고 싶다고 했다. 저도 아이들에게 미안해했어요. 그런데 몇 살까지 키우면 그 마음이 안 들까요? 걸을 때까지만, 말할 때까지만, 유치원까지만, 초등학교까지만, 중학교까지만, 고등학교까지만…. 끝이 없죠. 우리는 각자 삶을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럴 때마다 그냥 한 번 더 안아주세요. ■ 5년 새벽 출근한 워킹맘, 두 아들 키운 노하우 「 ①학습이 아니라 학습 동기를 챙겼다. 공부는 결국 본인이 해야 한다. 양육자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다. 꿈을 찾아주면 공부할 이유가 생긴다. 목표는 너무 높지 않게 설정해 성취감을 느끼게 했다. 보상할 때는 확실하게 해서 보상을 얻기 위해서라도 공부하게 만들었다. ②아이의 성향에 맞게 키웠다. 워킹맘은 아이에게 쏟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작은 것까지 메모하며 아이를 살폈다. 성향을 파악하면 거기에 맞게 활동을 제안했다. 꼼꼼하고 수학·과학을 좋아하는 첫째와 활달하고 영어를 좋아하는 둘째를 유치원부터 따로 보냈다. 첫째가 해보니 좋았다고 둘째에게 시킨 적은 없다. ③혼내고 싶을 때 더 꼭 안아줬다. 잘할 때나 못할 때나 늘 격려했다. 그래야 양육자와 자녀 사이에 애정과 신뢰가 형성된다. 그게 있으면 워킹맘의 빈자리도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가구 배치에서 음식까지, 아이가 집을 편안하게 느끼도록 배려했다. 」 ■ hello! Parents 특별기획 '그 엄마의 비밀' 「 ① “경제력도, 정보력도 아니었다” 자녀 서울대 보낸 엄마들의 비밀(9월 18일 발행) ② 계획파 엄마, 사교육보다 먼저 들인 이 습관(9월 19일 발행) ③ 욕심 많은 목동 엄마, 학원 대신 독서 선택한 이유(9월 21일 발행) ④ 바쁜 워킹맘, 아이 공부보다 신경 쓴 것은(9월 22일 발행) ⑤ 감성파 엄마, 주말마다 아이들 데리고 간 곳은(9월 25일 발행) ⑥ 난독증 아빠, 중졸 아들에 책 한 권만 사준 까닭(9월 26일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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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서울대 보낼 자신 있다” 목동 엄마 학원 대신 택한 것 ③ 유료 전용
「 hello! Parents 특별기획 6부작 ‘그 엄마의 비밀’ ③ 」 전 아이들 공부 욕심이 있는 엄마였어요. 그래서 독서를 선택했어요. 학원은 빼더라도 책 읽는 시간은 지켜주려 했죠. 두 딸을 서울대와 KAIST에 보낸 엄마 이미향(53)씨는 “어릴 때 책을 좋아하던 아이도 학원과 숙제에 치이다 보면 독서와 멀어지는 게 현실”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좋은 학원 많은데, 왜 욕심이 안 났겠냐”면서도 “그럼에도 독서를 우선순위로 둔 것이 내 자녀 교육의 소신이자 비결”이라고 했다. 이씨는 서울 3대 학원가로 꼽히는 목동에서 두 딸을 키웠다. 그의 딸들이라고 학원을 안 다닌 건 아니다. 모두 영어유치원을 나왔고, 초등학교 저학년 땐 일주일에 한 번씩 수학·과학 학원에 갔다. 하지만 이씨가 언제나 중심에 둔 건 책 읽기였다. 어렸을 때부터 매일 2시간 이상 ‘그만 좀 읽어라’고 말려야 할 정도로 독서를 즐기는 딸들이었다. 이씨는 아이들 책 읽기에 학원이 방해된다 싶으면 횟수를 줄이다 관뒀고, 숙제가 짐이 되면 ‘하지 말라’고 했다. 독서 덕분이었을까. 큰딸은 고등학교 때 학원 하나 안 다니고도 전교 1등으로 서울대 건축학과에 갔다. 둘째는 한국과학영재고를 거쳐 KAIST에 입학,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있다. 이씨는 “아이 성적을 내는 데 당장 학원이 효과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게 하고 실력 차이를 벌리는 건 결국 독서”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 펴낸 『독서가 사교육을 이긴다』는 제목의 책에서 “다시 아이들 어렸을 때로 돌아간다면 학원 없이도 온전히 독서로만 입시를 이끌 자신이 있다”고도 했다. 전국권 학군지에서 자녀를 키운 이씨가 학원보다 책을 선택한 이유는 뭘까? 사교육을 뛰어넘어 공부, 그리고 입시까지 잡으려면 책은 어떻게 얼마나 읽어야 할까? 지난 7일 이씨를 만나 물었다. 박정민 디자이너 ━ 📖학원을 가지치기 했다 “그래서 딸들은 어떤 학원 얼마나 다녔나요?” 이씨가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는 “남들만큼은 아니지만 다닐 만큼은 다녔다”며 “책을 강조한다고 사교육 받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그가 강조하는 건 적어도 초등학생이라면 학원에 돌리느라 책 읽을 시간이 모자라게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건 소탐대실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씨는 “책으로 공부하는 전략은 어떤 학원을 빼느냐에 성패가 달렸다”며 “학원·활동 욕심을 버리고 적절히 가지치기를 하는 게 포인트”라고 조언했다. 이미향씨는 "독서 위주로 공부하는 전략은 어떤 학원을 빼느냐에 성패가 달렸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학원 안 다니거나 그만두면 아이가 뒤처질까 걱정될 것 같아요. 일주일에 두 시간 수업하는 국어 학원을 다닌다고 해볼게요. 지문 몇 개 읽고 문제 푸는 공부를 할 거예요. 이동 시간에 쉬는 시간, 숙제 시간까지 잡으면 네 시간 정도 걸리겠죠. 같은 시간에 아이가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요? 더 많은 양의 글을 읽으며 다양한 어휘를 접할 거예요. 읽는 속도도 빨라져요. 하나의 완결된 문맥이 있는 이야기를 따라가며 이해력, 문해력도 커지고요. 그러면 국어뿐 아니라 영어, 사회, 과학 다른 과목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길러집니다. 더 좋은 건 아이가 집에서 편안하고 즐겁게 책을 읽으면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는 거죠. 하지만 독서만으로는 아이의 실력과 수준을 확인하기 어렵잖아요.불안하지 않으셨나요? 그래서 전 객관적으로 아이 실력과 수준을 측정하려 했어요. 테스트비를 내고 영어나 수학 학원에 가서 레벨 테스트를 봤죠. 경시대회 같은 대외 시험도 보고요. 학교 시험은 족보닷컴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기출 문제를 구해 풀어보게 했어요.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 준비됐는지 확인해볼 수 있고, 조바심도 덜 나거든요. 공부를 별로 안 하는 것 같아 보여도 점수가 잘 나오면 안심할 수 있으니까요. 딸들이 수학, 과학은 학원을 다녔어요. 특별히 수학과 과학은 사교육을 받게 한 이유가 있나요? 제가 깊이를 제공해줄 수 없으면 학원의 도움을 받았어요. 특히 수학은 단순 문제 풀이보다 개념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확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문제 하나를 풀어도 심화, 확장이 가능한 사고력 수학 학원에 다녔죠. 과학 같은 경우 아이들이 워낙 관심이 많았어요. 집에서 실험까진 못해줄 것 같아서 실험 하는 곳으로 다녔죠. 아이가 원하는 활동을 위해서라면 학원에 보내도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다른 애들이 다 한다고 이것저것 시키는 건 반대예요. 독서에 집중하려면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고 가지치기를 해야 하거든요. 학원에 거리를 두신 반면 두 자녀 모두 영어 유치원에 보냈어요. 둘째가 초등학교 가기 전까지 회사에 다녔어요. 집에 오면 아이들에게 한글 책 읽어줄 시간도 부족했죠. 영어 책까지 읽어줄 자신이 없었어요. 그러면서도 영어도 책으로 배웠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고요. 그래서 영어 유치원의 도움을 받았어요. 딸들이 다닌 영어 유치원은 숙제가 많지 않은 놀이식 유치원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이 크게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어요. 유치원 졸업 후엔 학원 대신 영어 책으로 공부했어요. 제가 퇴사 후 영어 책 읽기를 중심으로 한 교습소를 운영했거든요. 그렇다고 영어 유치원을 꼭 나와야 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운영하는 교습소에도 일반 유치원 나오고도 영어 잘하는 아이가 많거든요. 워킹맘은 말씀하신 것처럼 독서를 챙기기 버거워 보여요. 사실 그래서 학원에 보내기도 하고요. 워킹맘이라면 학원에 보내시라고 얘기해요. 엄마가 피곤하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조급한 마음이 들어요. 아이를 채근할 수밖에 없고요. 결국 아이와 관계만 나빠지죠. 그러면 득보다 실이 커요. 다만 학원에 보내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있어요. 학원 선생님께 아이가 잘 하는 부분은 뭔지, 또 취약한 부분은 무엇인지, 이걸 보완하려면 집에서 어떤 걸 하면 좋은지 여쭤봐야 해요. 아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학원도 신중하게 고르셨을 것 같아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셨나요? 남들이 다 좋다고 해도 내 아이에겐 안 맞을 수 있어요. 좋은 학원은 내 아이 성향과 수준에 맞는 학원입니다. 첫째가 정말 꼼꼼하고 집요한 성격이었어요. 사소한 거라도 모르는 게 있으면 절대 넘어가는 법이 없었죠. 그래서 숙제를 많이 안 내주는 학원에 골라 보냈어요. 학교 숙제 하기도 벅차하는 아이에게 학원 숙제까지 하라고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학원 측에도 아이 성향을 미리 알려드리고 숙제로 아이를 너무 압박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죠. ━ 📖다독(多讀)으론 부족, 교과와 연계해 읽었다 이미향씨의 방법엔 두 가지 맹점이 있다. 하나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고 해도, 그 시간에 아이가 책을 읽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아이에게 어떤 책을 얼마만큼 읽게 해야 공부에 도움이 될지 감을 잡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씨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풀기 위해 선행돼야 할 게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아이 스스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다독만으로는 부족하다. 교과목과 연계해 계획적으로 읽어야 학업에 도움이 된다. 이미향씨는 "초등 입학 전에 아이가 책 읽는 재미에 빠져 스스로 책을 찾아 읽으면 자연스레 많이 읽게 된다"며 "두 딸에겐 어릴 적부터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건가요? 정확히 말하면 습관보다는 취미로 접근하는 게 좋습니다. 책을 읽는다고 학원 안 가는데, 하루에 몇 쪽씩 10분만 읽어선 안 되겠죠. 책에 빠져서 읽어야 해요. 책 읽기가 취미가 되면 자연스럽게 많이 읽습니다. 저희 아이들도 매일 2시간 이상은 읽었어요. 특히 초등 입학 전에 책 읽는 재미를 깨닫는 게 유리해요. 초등 공부는 자신감 게임에 가깝거든요. 책에서 읽은 내용이 수업 시간에 나오면 더 관심이 생기고, 선생님 질문에도 답할 수 있잖아요. 칭찬 받으면 더 잘하고 싶어지고요. 자녀가 책을 즐겨 읽길 바라는 양육자는 많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바람처럼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비법이 있었나요? 전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적부터 책 읽기가 즐거운 일이라는 인상을 심어주려 했어요.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어주려고 애를 썼죠. 목소리도 좀 과장해서 읽어주고, 의성어·의태어며 몸짓도 써 가면서요. 그러면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면서 이야기에 빠지는 게 눈에 보였어요. 여기에 더해 책 읽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했어요. 책 읽기 좋은 환경이란 게 어떤 거죠? 큰아이가 태어난 뒤 거실에서 TV를 치웠어요. 그리고 벽 한 면에 책장을 두고, 아이들 눈높이에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뒀어요. 이미 충분히 봤거나 관심이 없어진 책, 철 지난 책들은 미련 없이 치웠고요. 학교를 다닐 땐 방학식 다음 날 집 근처 서점에 가서 방학 중에 읽을 책들을 전집 위주로 두세 세트씩 샀어요. 아이들이 직접 고른 책으로요. 그리고 저희 부부도 거실에서 책을 많이 읽었고요. 어느 날 첫째가 다가와서 ‘엄마는 그림도 없는 책이 재미있어요?’ 하고 묻더라고요. 그러더니 자기도 글자를 가르쳐 달라고 하더군요. 어떤 책을 읽는지도 중요할 것 같아요. 책 읽기로 잘할 수 있는 과목을 꼽자면, 단연 국어겠죠. 영어도 언어기 때문에 독서를 안 한 아이보다 좀 더 쉽게 익힐 수 있어요. 다만 수학, 사회, 과학 같은 과목은 그렇지 않아요. 과목에서 익히는 내용을 미리 파악하고 관련 내용을 담은 책을 계획적으로 읽게 하는 게 좋습니다. 계획적으로 읽게 한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걸까요? 수학만 해도 그림책에서부터 수학 동화까지 수준별로 다양합니다. 이런 책을 활용하면 수학에 대한 호기심, 흥미를 가지고 재미있게 개념을 배울 수 있죠. 저희 아이들은 청소년 동화인 『수학 귀신』이라는 책을 여러 번 읽었어요. 수학을 너무 싫어하는 아이가 꿈속에서 수학 귀신을 만나서 여러 가지 수학 개념을 하나씩 배워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에요. 이런 책을 통해 수학 개념이나 용어를 접하면서 선행, 복습, 심화 학습하는 효과를 톡톡히 봤죠. 책 외에도 ‘어린이 과학 동아’ 같은 잡지도 즐겨 봤어요. 아이가 책 읽기를 싫어하면 어떡하죠? 특정 분야·과목 책을 읽기 거부할 수도 있고요. 먼저 아이에게 왜 책 읽기가 싫은지, 특정 책은 왜 읽고 싶지 않은지 물어보세요. 그 책이 재미가 없어서일 수도 있고, 내용이 어려워서일 수도 있고, 피곤해서일 수도 있잖아요. 그 이유부터 파악해야 하죠. 원인에 맞게 다른 책을 골라 권해주기도 해보고요. 사실 엄마가 무조건 ‘이 책 읽어’ 하고 강요할 수는 없어요. 스스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책도 제대로 읽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책을 골고루 읽히고 싶다면 아이와 대화를 해보고 협상해 보세요. ‘네가 읽고 싶은 책 2권 읽고, 1권은 엄마가 골라준 책 읽어보자’ 하는 식으로요. 전략적으로 처음에는 아이 수준보다 쉬운 책이나 학습 만화, 관련 영상을 보여주면서 호기심과 흥미를 자극하는 게 좋아요. 그리고 아이가 읽기 싫어하던 책을 읽었다면 적극적으로 칭찬하세요. 아이들은 엄마가 칭찬하는 쪽으로 가게 마련이거든요. 관련기사 "경제력도 정보력도 아니다" 서울대 보낸 엄마들의 비밀 ‘팔꿈치 쿡쿡’ 이게 통한다, 서울대 보낸 워킹맘 노하우 중졸 두 아들 서울대 보냈다, 중졸 막노동꾼 아빠의 전략 “초등땐 놀려라, 한달만 빼고”…‘서울대 삼형제’ 엄마의 비결 의사·판사·교수 된 서울대 삼남매…엄마의 ‘계룡산 집’ 비밀 ━ 📖엄마의 정보력 더하고 아이의 정서에 공들였다 이씨는 사교육 반대론자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독서 만능주의자도 아니다. 독서를 기반으로 공부를 잘할 순 있지만, 입시까지 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이씨의 생각이다. 그가 학군지인 목동에서 각종 교육, 입시 정보를 챙긴 이유다. 그는 “자녀에게 맞는 입시 전략을 짜려면 양육자도 입시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아이 학습에 도움을 줄만한 정보뿐 아니라 입시 관련 책과 동영상을 틈틈이 찾아보고 입시 관련 학원 설명회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정보보다 더 공을 들인 건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자녀의 정서였다. 학군지가 교육 정보를 얻는 데 유리한가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독서 위주로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러자면 상대(학원)를 알아야 대응 전략을 짤 수 있겠더라고요. 요즘 학원에서는 어떤 내용을, 어느 정도 수준으로 가르치는지 알아야 독서로 채워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도 많이 흔들렸어요. 목동 교육열이 워낙 높다 보니 모임이나 학원 설명회를 다녀 오면 특히 그랬죠. 다른 아이들은 학원이며 경시대회며 워낙 하는 게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일부러 아이 공부 얘기를 거의 하지 않는 엄마들과도 어울렸어요. 아이들과 함께 연극, 뮤지컬을 보러 다니고, 여행도 가면서 놀 거리를 찾았죠. 사실 제가 아이들 키우면서 가장 신경 썼던 건 정서였거든요. 정서요? 왜죠?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 그 기억에서 나온 풍요로운 마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 가장 큰 힘이잖아요. 정서가 불안정하면 독서도, 공부도 잘 하기 어렵고요. 아이의 정서 안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뭘까요? 부모와의 관계예요. 아이가 부모를 믿고 따르면 엄마가 잔소리를 좀 해도 진심 어린 조언으로 듣죠. 엄마가 권하는 책이나 학원 같은 것에 더 마음을 잘 열 수 있고요. 반대라면 엄마가 권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싫어할 수도 있죠. 엄마의 조언은 그저 듣기 싫은 잔소리일 뿐이고요. 관계가 망가지면 엄마의 정보력도 아무 의미가 없어요. 오히려 마이너스 효과가 날 뿐이죠. 게다가 설령 아이가 남들 부러워하는 대학에 가서 남들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졌다고 해도 부모와 사이가 좋을 수 있겠어요? 부모와 자녀 사이가 틀어지면 부모와 자녀 인생 모두 불행해질 수밖에 없잖아요. 이미향씨는 어린 두 딸과 집에 있는 상자를 활용해 악기를 만들며 놀았다. 그가 자녀 양육에서 가장 신경 쓴 건 아이들의 정서였다. 사진 이미향씨 아이들과의 관계를 위해 특별히 신경 쓴 게 있나요? 특별할 건 없어요. 일상에서 아이가 행복하길 바랐죠. 엄마·아빠와 노는 시간이 즐거웠음 해서 택배 상자로 이런저런 걸 만들기도 하고, 벽에 커다란 종이 붙여 놓고 마음껏 그림을 그리게도 했어요. 세숫대야를 북처럼 두드리면서 집 안 물건들로 악기 놀이를 한 것도 기억이 나네요. 스킨십도 많이 했습니다. 주말이면 나들이도 많이 갔고요. 또 하나는 아이들의 취미 만큼은 지켜주려고 했어요. 아이가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면, 취미가 가장 먼저 뒷전으로 밀리지 않나요? 첫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태권도를 시작했는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했어요. 중학생 때도 주 3회, 고등학교 때도 주 1회는 갔죠. 제가 먼저 제안해 시작한 활동이지만 아이도 땀을 빼는 느낌이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둘째는 그림 그리기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초등학교 내내 방과후 활동으로 만화 캐릭터 그리기를 했어요. 제 책 표지 일러스트도 둘째가 그려줬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독서는 두 딸 모두에게 정말 훌륭한 취미였죠. 정서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공부에도 도움이 됐으니까요. 이미향씨는 “대학생이 된 두 딸을 보면서 독서 중심의 교육을 더 확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두 딸 모두 “책 읽기 덕에 학원에 의지하지 않고 덜 힘들게 공부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아 말하기 때문이다. 이씨 역시 “딸들의 책 읽기 덕에 가족 해외여행도 가고, 부부가 노후 준비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학원비를 아꼈기 때문이다. 학원에 더 보냈다면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학과에 갔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랬다면 제가 딸들과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요? 저와 제 아이들은 저희의 선택과 삶에 만족합니다. 충분히 행복하고요. ■ '학원보다 독서' 욕심 많은 목동 엄마의 전략 세 가지 「 ①학원을 가지치기했다. 두 딸이 매일 2시간 이상 몰입해 독서할 수 있는 시간적·체력적 여유를 갖도록, 학원은 선별해 다녔다. 시험으로 아이의 실력과 수준을 객관적으로 측정했더니, 학원 덜 다녀도 조바심이 덜 수 있었다. ②‘다독’만으론 부족, 교과와 연계해 읽었다. 어려서부터 책 읽기가 취미가 될 수 있도록 신경썼더니 다독으로 이어졌다. 또한 수학, 사회, 과학 등의 교과와 연계해 읽어서 학습에서도 선행, 복습, 심화 효과를 봤다. ③엄마의 정보력 더하고 아이의 정서에 공들였다. 학군지에서 학습, 입시 정보를 꼼꼼히 챙겼다. 하지만 가장 신경 쓴 건 아이의 정서였다. 태권도, 그림 등 아이들의 취미도 지켰다. 정서가 안정되면 독서,공부도,부모와 관계도 순조롭게 흐를 가능성이 높다. 」 ■ hello! Parents 특별기획 '그 엄마의 비밀' 「 ① “경제력도, 정보력도 아니었다” 자녀 서울대 보낸 엄마들의 비밀(9월 18일 발행) ② 계획파 엄마, 사교육보다 먼저 들인 이 습관(9월 19일 발행) ③ 욕심 많은 목동 엄마, 학원 대신 독서 선택한 이유(9월 21일 발행) ④ 바쁜 워킹맘, 아이 공부보다 신경 쓴 것은(9월 22일 발행) ⑤ 감성파 엄마, 주말마다 아이들 데리고 간 곳은(9월 25일 발행) ⑥ 난독증 아빠, 중졸 아들에 책 한 권만 사준 까닭(9월 26일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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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땐 놀려라, 한달만 빼고”…‘서울대 삼형제’ 엄마의 비결 ② 유료 전용
「 hello! Parents 특별기획 6부작 ‘그 엄마의 비밀’ ② 」 부모님이 모두 서울대 나오셨나요? 고교 때 학원은 어디를 다녔나요? 삼형제를 모두 서울대에 진학시킨 뒤 윤인숙(60)씨가 자주 받는 질문이다. 한 명도 보내기 어려운 서울대를 세 명이나 보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부모의 유전자가 남다르거나, 아이들이 유명 학군지에서 물샐틈없는 사교육을 받았을 거라 추론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4년(2019~2022학년도)간 서울대 정시전형 합격생 5명 중 1명이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출신이란 조사 결과도 있다. 하지만 윤씨가 삼형제를 키워온 과정은 이런 고정관념과는 거리가 멀다. 강남은커녕 비수도권인 충남 서산, 그것도 바닷가에 인접한 산업단지에서 외벌이로 아이들을 키웠다. 학원에 가려면 차를 타고 30분~1시간은 나가야 했다. 고등학생 땐 학원에 보낼 수도 없었다. 아이들이 기숙사 학교인 공주 한일고에 진학해 석 달에 한 번씩 집에 왔기 때문이다. 윤씨 부부 역시 내로라하는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다. 삼형제는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다. 인문계열 중에서도 최상위권 학생이 진학하는 과다. 첫째 여호섭(33)씨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현재 로스쿨에 다니고 있고, 쌍둥이인 호원‧호용(31)씨는 각각 서울대 자유전공학부(경영학‧컴퓨터공학)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함께 교육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윤씨가 한 명도 아닌 삼형제를 모두 서울대에 보낸 비결은 뭘까? 그는 ‘습관’을 꼽았다.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힌 공부 습관이 클수록 힘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그는 눈사람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초반에 눈을 단단하게 뭉쳐야 눈덩이를 크게 굴릴 수 있듯 어렸을 때 공부 습관을 잘 만들어 놓으면 클수록 실력이 커진다는 얘기다. 자신의 양육‧교육 노하우를 담아 펴낸 책을 『서울대 삼형제의 스노볼 공부법』이라고 제목 붙인 것도 그래서다. 습관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모든 양육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좋은 습관을 갖게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지난 7일 충남 서산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 비결을 물었다. 박정민 디자이너 ━ 👨🎓비결① 초등 땐 실컷 놀려라. 단, 할 일부터 하고 6시간49분 vs 49분. 한국 초등학생의 하루 평균 학습시간과 여가다. 공부시간이 놀이시간보다 6시간이나 더 많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아동종합실태조사’). 굳이 이런 조사 결과가 아니어도 대다수 초등학생이 방과 후에 ‘학원 뺑뺑이’를 돈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지난해 사교육비가 26조원으로 2007년 조사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고, 초‧중‧고교생 중 초등생의 사교육 참여율이 85.2%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윤씨는 “초등학생 때는 실컷 놀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등 때부터 학습에 몰입하면 정작 공부에 몰입해야 할 시기에 지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대입은 장기전”이라고 잘라 말했다. 실제로 윤씨는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까지 사교육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뛰어놀게 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학교 숙제와 학습지는 먼저 끝낼 것. 그는 “이 습관이 공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습관을 갖게 한 이유가 있나요? ‘습관이 인생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인생에서 좋은 습관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잘하게 하는 게 목표가 아니었어요. 이렇게 공부를 잘할 거라고 기대하지도 않았고요. 그냥 자신이 맡은 일을 성실하게 잘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크길 바랐죠. 어떻게 습관을 길러주셨나요? 처음에는 그냥 지켜봤어요. 아이들은 하교 후 낮 12시30분쯤 집에 와서 밥 먹고 나가 놀기 바빴죠. 당시 사택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동네에 또래 친구도 많고, 저녁 늦게까지 안전하게 놀 수 있었거든요. 해 질 녘에 온몸이 땀 범벅이 된 채 돌아와서는 씻고 밥 먹은 후 숙제를 시작하더군요. 5~6시간 뛰어놀아 피곤한데 집중이 잘될 리가 있나요? 졸음이 쏟아지는지 꾸벅꾸벅 졸면서 하고, 글씨도 삐뚤빼뚤 썼죠. 숙제도 하는 둥 마는 둥 해갔고요. 그렇게 한 2주 정도 지켜보다 ‘안 되겠다’ 싶어서 결단을 내렸어요. 어떤 결단인가요? 아이들을 불러 모아놓고 얘기했어요. 앞으로는 ‘할 일부터 하고 놀자’고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니까 할 일이라고 해봐야 학교 숙제, 학습지 3장 정도였어요. 1~2시간이면 충분히 끝낼 양이었죠. 아이들이 바로 수긍하던가요? 반발이 심했죠. ‘놀고 와서 자기 전에 무조건 하겠다’고 조르더군요. 하지만 그렇게 될 리가 없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습니다. 물러서지 않았어요. ‘2주 동안 너희들이 원하는 대로 했는데, 숙제가 제대로 안 됐다. 이제 엄마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자’고 했죠. 잘됐나요?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온 뒤에도 나가 놀려고 하길래 ‘안 된다’고 했죠. 이제부터는 숙제와 학습지를 해야 놀러 나갈 수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오늘까지만 놀고 내일부터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하더군요. ‘나가 놀고 싶으면 할 일을 하라’고 했어요. 말로는 설득이 안 될 것 같았는지, 아이들은 전략을 바꿔서 애원 작전을 펴기 시작했어요. 베란다 가서 밖에서 노는 친구들 한 번 보고, 제 앞에 와서 제 얼굴 한 번 보고, 컴퓨터 한 번 보고, 제 얼굴 한 번 보고를 반복했죠. 엄마가 말은 그렇게 해도 조르면 나가 놀게 해줄 거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2주간 아이들과의 힘겨루기가 이어졌죠. 아이들이 심하게 반항하지는 않았나요? 강압적으로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라고 한 건 아니었어요. 할 일을 안 했으니 나가 놀 수 없었을 뿐이죠. 사실 아이들이 애원의 눈빛을 보낼 때마다 나가 놀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어요. ‘놀고 오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죠. 이제 겨우 초등학생인데 너무 과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이들이 원하는 걸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컸거든요. 흔들리는 마음을 어떻게 잡으셨나요? 지금 습관을 제대로 잡아놓지 않으면 앞으로 아이들과 숙제 갖고 계속 갈등이 생길 것 같았어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하면 숙제를 제대로 못 할 테고, 저는 그때마다 잔소리를 할 테니까요. 제 잔소리에 아이들은 또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결국 어떻게 됐나요? 2주가 지나자 아이들이 먼저 ‘앞으로 할 일부터 하고 놀겠다’고 하더군요. 그날부터 진짜 그렇게 했어요. 버텨봐야 본인들만 손해라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엄마가 생각을 바꾸지 않을 테니까요. 결과적으로 2주 동안 나가 놀지도 못하고 숙제만 한 셈이 됐잖아요. 그 뒤론 학습지랑 숙제를 하면 마음 편히 놀 수 있다는 게 ‘내적 동기’로 작용한 것 같아요. 쉽게 말해 놀기 위해 공부한 겁니다. 그 일이 있은 후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정말이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윤인숙씨가 삼형제의 서울대 졸업사진 앞에서 자신의 저서를 들고 웃고 있다. 그는 삼형제의 서울대 진학 비결로 "어렸을 때부터 공부하는 습관을 기른 게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최지훈 ━ 👨🎓비결② 초1부터 계획 세우고 지키게 하라 삼형제 서울대 진학의 또 다른 비결은 목표와 계획 세우기다. 윤씨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날 할 일을 적고, 완료하는 습관을 길러줬다. 또 중학교 때부터는 시험 스케줄에 맞춰 연간‧월간‧주간‧일간 계획을 세운 뒤, 지키게 했다. 그는 “목표와 계획을 세운 덕분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체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게 왜 중요한가요? 차를 타고 이동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뭔가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길 안내를 받는 거잖아요. 무작정 가다 보면 목적지에 가지 못할 수도 있고, 한참을 돌고 돌아 도착할 수도 있죠. 공부도 마찬가지예요. 목표와 계획을 세워야 헤매지 않고 실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분명한 목표와 계획이 없으면 필요한 내용을 빠뜨리거나 시간에 쫓겨 해야 할 공부를 제대로 못 할 수 있어요. 목표를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중학생이라면 특목고 입학, 고등학생이라면 대학 입학이 목표가 될 수 있겠죠. 그다음 시기별‧과목별로 어떤 공부를 할지 정해야 해요. 입시에서 자유로운 초등학교 4학년을 예로 들면 올해는 수학 과목에서 4학년 심화 과정과 5학년 기본과정을 끝내고, 내년에는 5학년 심화 과정과 6학년 기본과정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세울 수 있을 겁니다. 연 단위 로드맵을 세웠으면 관련 목표를 분기‧월‧주‧일별로 세분화해야 해요. 이때 중요한 건 아이와 논의하면서 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큰 그림을 알면 동기 부여가 될 수 있거든요. 엄마가 일방적으로 목표를 잡으면 반발심이 생길 수도 있고요. 계획은 어떻게 세우면 되나요? 목표에 따라 할 일을 정하면 됩니다. 계획은 무엇을 언제 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1~2개월 정도 짧은 기간에 대해 세우는 게 좋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초5 아이가 겨울방학 두 달간 공부 계획 세우는 걸 예로 들어볼게요. 우선 노트의 좌측에 국어‧수학‧영어처럼 공부할 과목을 쓰고, 우측에는 교재나 자료, 공부할 단원을 적습니다. 그럼 방학 동안에 해야 할 공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그다음은 이를 월간‧주간‧일간으로 구체화하는 거예요. 방학 동안에 최상위 수학 교재 한 권(1~6단원)을 다 풀기로 목표를 세웠으면, 월간 계획에는 1주 차에 1단원, 2주 차에 2단원을 풀어야겠죠. 그다음에 한 단원을 또 쪼개서 하루에 할 분량을 정하고, 일간 계획표에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할지 정하면 됩니다. 계획대로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아이가 집중하는 시간 등을 고려해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30분밖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한테,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공부하라고 해서는 안 되겠죠. 지킬 수 없는 계획을 세우는 건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한두 번 안 지키기 시작하면 세우나 마나 한 계획이 되니까요.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보충하는 날’을 넣고, 할 일을 다 마친 뒤에는 반드시 자유시간을 줘서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보충하는 날은 뭔가요? 주간 계획을 세울 때 일주일에 1~2일 정도는 비워놓는 거예요. 계획이 밀릴 경우 보충하는 날에 밀린 공부를 끝낼 수 있게 하는 장치죠. 계획 세우기는 시간 관리뿐 아니라 스스로 실력을 점검하는 기회도 됩니다. 만약 어떤 부분에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면 본인이 그 부분에 취약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윤인숙씨는 "어렸을 때부터 목표와 계획을 세우는 습관을 기르면, 공부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프리랜서 최지훈 ━ 👨🎓비결③ 공부 알아서 한다? 방법 알려줘야 한다! 윤씨는 아이들을 옆에 끼고 직접 공부를 가르치는 ‘극성 엄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아이들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준 게 있다. 바로 ‘공부하는 법’이다. 윤씨가 아이들에게 알려준 공부법은 수업 듣는 법, 노트 필기하는 법, 자투리 시간 활용법, 문제집 푸는 법처럼 세세하다. 그는 “대부분 양육자는 아이들이 초등학생 정도 되면 스스로 공부법을 깨달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A부터 Z까지 알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공부법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수업 열심히 들으면서 선생님 얘기를 빠짐없이 받아 적으면 되는 건가요? 학교 수업을 집중해 듣는 게 기본이긴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듣는지가 중요해요. 삼형제에게 강조한 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들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결국 학교 수업은 교육과정이라는 큰 틀 안에서 아이들이 그 시기에 익혀야 할 내용을 가르치는 거잖아요. 교과서를 살펴보면 항상 특정한 주제에 대한 질문이 있고, 선생님은 그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하고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면서 수업을 들으면 집중도 잘되고 이해도 쉬워지죠. 선생님이 수업 중에 강조하는 내용을 교과서에 적고, 표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수업을 들은 다음은요? 그날 배운 내용을 복습해야 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선생님이 강조한 내용을 중심으로 교과서를 다시 읽는 정도면 충분해요. 하지만 초등 고학년 때부터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나만의 언어로 노트에 다시 정리하는 ‘노트 필기 복습법’이 필요하죠. 쉽게 말해 복습을 두 번 하는 겁니다. 눈으로 교과서를 읽으면서 한 번, 이해한 내용을 노트에 적으면서 두 번 하는 거죠. 노트 왼쪽에 대단원‧소단원을 적은 뒤, 핵심 질문이나 키워드에 대한 설명을 써 나가면 됩니다. 이때 교과서 내용을 ‘줄글’로 그대로 옮겨 적기보다는 기호‧도형을 이용하는 게 좋아요. ‘속력은 물체가 이동한 거리를 시간으로 나누어 구한다’보다 ‘속력=이동 거리÷걸린 시간’이 한눈에 들어오고 외우기도 쉬우니까요. 수업 잘 듣고 복습하는 건 너무 당연한 얘기 같아요. 그 당연한 걸 하는 애들이 얼마나 될까요? 많지 않습니다.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려운 법이에요. 특히 사교육이 성행하면서 학교수업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서울대 합격생 중에 학교 수업 제대로 안 들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을 거라고 확신해요. 집을 지을 때도 뼈대를 튼튼하게 세워야 하잖아요. 공부의 기본을 지키지 않고는 실력을 키울 수 없습니다. 이 외에 아이들에게 알려준 공부법은 또 뭐가 있나요? 초등학교 5학년 때 수첩을 활용한 ‘자투리 시간 활용법’도 알려줬어요. 이 시기부터 공부가 어려워지거든요. 문해력의 기본이 되는 한자어는 물론 영어 단어, 수학‧과학 개념·공식 등 암기할 게 많아지죠. 바지 주머니에 들어갈 크기의 수첩을 사준 뒤 이런 내용을 적어서 학교 쉬는 시간이나 이동 시간에 보게 했어요. 집에서 공부할 내용을 자투리 시간에 끝내면 자유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에 아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했죠. 저학년 때 이미 공부하는 습관이 잡혀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신 이유가 있나요? 양육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호원·호용이의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 계기가 됐습니다. 학교에서 단원평가 시험을 본다고 해서 문제집을 사서 풀게 했어요. 그때 집에 행사가 있어 애들 공부를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었죠. 시험 전날에야 아이들이 푼 문제집을 살펴봤는데, 채점까지는 했는데 틀린 문제가 그대로 있었어요.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정답 확인도 안 했더라고요. 문제 풀고 채점한 뒤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몰랐던 거죠. 그때부터 공부법을 알려주는 데 더 신경 썼어요. 윤인숙씨가 삼형제의 교과서를 모아놓은 책장 앞에서 웃고 있다. 그는 "초등학생이 알아서 공부하기는 쉽지 않다"며 "양육자가 수업 듣는 법이나 필기법 등을 세세하게 알려주면 좋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최지훈 제임스 클리어가 쓴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 따르면 습관은 복리로 작용한다. 돈이 복리로 불어나듯이 습관도 반복되면서 그 결과가 곱절로 불어난다는 의미다. 윤씨의 삼형제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할 일 먼저 하고 놀고, 사소한 계획을 세우는 아이들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12년간 이어진 공부 습관은 결국 서울대 진학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대부분 양육자가 아이가 어렸을 때 좋은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 아이와의 ‘밀당’에서 이기지 못합니다. ‘내일부터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아이에게 져주죠. 하지만 내일은 또 내일이 됩니다. 초1 때 한 달만 독한 마음을 먹으면, 남은 12년을 편하게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 윤인숙씨가 말하는 삼형제 서울대 진학 비결 「 비결①초등 때 할 일부터 하는 습관 길렀다. 윤씨의 세 아들 모두 초등학교 때는 사교육을 최소화하고 실컷 놀았다. 다만 초등 1학년 때부터 ‘숙제‧학습지 끝내고 논다’는 조건이 있었다. 습관을 제대로 들이지 않으면 학창시절 내내 갈등이 불거질 거란 생각으로 원칙을 지켰다. 비결②초1부터 계획 세우고 지키게 했다. 삼형제 서울대 진학의 또 다른 비결은 목표와 계획 세우기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날 할 일을 적고, 실행하는 습관을 길러줬다. 중학교 때부터는 시험 스케줄에 맞춰 연간‧월간‧주간‧일간 계획을 세운 뒤, 지키게 했다. 덕분에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체계적인 학습이 가능했다. 비결③A부터 Z까지 공부법을 알려줬다. 그는 아이들에게 수업 듣는 법, 필기하는 법, 자투리 시간 활용법 등 다양한 공부법을 알려줬다. 수업목표에 대한 답을 찾아가면서 선생님 말씀에 집중하고, 기호를 활용해 필기하고, 수첩에 영단어나 기본개념을 적어 이동시간에 보는 식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양육자가 A부터 Z까지 알려줘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 ■ hello! Parents 특별기획 '그 엄마의 비밀' 「 ① “경제력도, 정보력도 아니었다” 자녀 서울대 보낸 엄마들의 비밀(9월 18일 발행) ② 계획파 엄마, 사교육보다 먼저 들인 이 습관(9월 19일 발행) ③ 욕심 많은 목동 엄마, 학원 대신 독서 선택한 이유(9월 21일 발행) ④ 바쁜 워킹맘, 아이 공부보다 신경 쓴 것은(9월 22일 발행) ⑤ 감성파 엄마, 주말마다 아이들 데리고 간 곳은(9월 25일 발행) ⑥ 난독증 아빠, 중졸 아들에 책 한 권만 사준 까닭(9월 26일 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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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도 정보력도 아니다” 서울대 보낸 엄마들의 비밀 ① 유료 전용
「 hello! Parents 특별기획 6부작 ‘그 엄마의 비밀’ ① 」 아이의 학습 고민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만 2세 후반엔 ‘영어유치원이냐, 일반 유치원이냐’를 선택해야 하고, 만 3세면 한글과 알파벳을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만 4세엔 사고력 수학, 만 5세엔 독서와 논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본 경기가 시작된다. 수학은 몇 년이나 선행해 가르쳐야 할지, 영어는 언제 내신 대비로 전환해야 할지, 역사는 어떻게 공부하게 해야 할지 등 결정할 것들이 차고 넘친다. 이 와중에 학군지로 이사 고민까지 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더 많은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결국 대학이라는 걸 말이다. hello! Parents가 자녀들을 서울대에 보낸 양육자들을 만난 건 그래서다.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려면, 정말 만 2세에 영어유치원을 보내고 수학은 2~3년씩 선행을 해야 할까? 적당한 때를 골라 학군지로 이사를 해야만 하는 걸까? 오늘부터 총 6회에 걸쳐 발행될 hello! Parents 특별기획 ‘그 엄마의 비밀’. 1회에선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 5명의 공통점을 들여다본다. 양육자의 경제력과 학력보다 중요한 건 관심과 지원이었다. 2명 이상의 자녀를 기르며 자녀 모두 서울대에 보낸 양육자 5명을 집중 인터뷰한 뒤 hello! Parents가 내린 결론이다.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들은 사는 지역도, 학력도, 직업도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이들 가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 있었다. 아이들의 학습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 5명의 양육자는 과연 어떻게 관심을 표현하고, 어떤 방식으로 지원했을까?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양육자 5명은 두 자녀 혹은 세 자녀를 키우며 전원을 서울대에 보냈다. 이들의 자녀 10명 중 2명은 카이스트에 진학했는데, 이에 준하는 학력으로 보고 예외로 인정했다. 인터뷰 대상을 선정할 때 자신의 양육 철학이나 방법을 정리해 책을 낸 저자로 기준을 정했다. 자신이 아이를 키운 과정을 되짚어 보며 정리해본 경험이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노하우를 전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 경제력·학력 달랐지만, ‘이것’은 같았다 ①공부에 대한 관심과 지원 미국 사회학자 제임스 콜먼은 「교육 기회의 평등(Equality of Educational Opportunity)」에서 자녀 학습에 대한 양육자의 관심과 지원을 ‘사회적 자본’이라 칭했다. 양육자의 사회적 자본이 경제적 자본이나 인적 자본(양육자의 학력)만큼이나 자녀의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걸 밝혀내면서 일명 ‘콜먼 보고서’로 유명해졌다. 콜먼은 양육자의 학력이 아무리 높아도 자녀의 학업에 관심과 지원을 쏟지 않으면 아이가 공부를 잘하기 힘들다고 봤다. 한발 더 나아가 학력은 높지만 아이의 학업에 관심이 없는 양육자보다 학력이 낮아도 아이의 학업에 관심이 많은 양육자를 둔 자녀가 공부를 더 잘한다고 주장했다. 양육자의 학력보다 자녀 학습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더 중요한 변수라는 것이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경제력 역시 사회적 자본을 통해 자녀의 학습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양육자가 학원 등 다양한 사교육을 지원함으로써 자녀의 학업 성취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과 지원 없이는 경제력 역시 힘을 쓰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콜먼의 주장은 hello! Parents의 취재 결과에서도 그대로 증명됐다. ‘그 엄마의 비밀’ 기획을 취재하며 만난 5명의 양육자와 그 배우자(총 10명) 중 서울대 졸업자는 단 2명뿐이었다. 연세대나 고려대 출신 양육자는 없었고, 서강대를 나온 양육자가 한 명 있었다. 고졸, 중졸 학력의 양육자도 있었다. 학력만큼 직업 스펙트럼도 넓었다. 회사원이 많긴 했지만, 치과 의사(김정국씨 배우자)나 대학교수(유정임씨 배우자)부터 일용직 노동자(노태권씨)까지 있었다. 사는 지역 역시 제각각이었다. 그럼에도 이들 가정은 공통적으로 자녀의 학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뚜렷했다. 양육자가 가진 사회적 자본의 영향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건 노태권씨 가정이다. 노씨는 난독증으로 중학교를 졸업한 게 전부다. 그는 두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한 뒤 학교를 떠나자 하던 일을 모두 정리하고 직접 홈스쿨링에 나섰다. 초등학교 1학년 과정부터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하다 잠드는 생활을 수년간 지속했다. 그 결과 첫째는 2년7개월 만에 서울대 경영학과에, 둘째는 4년여를 공부한 끝에 서울대 간호학과에 합격했다. 많은 연구에 따르면 학력이 높지 않은 부모는 아이가 공부를 못해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노태권씨의 반응은 달랐다. 이유가 뭘까? 노씨의 부모에게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부산시청 공무원이었던 노씨의 아버지는 세 아들의 교육에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다. 노씨의 두 남동생은 연세대를 나왔다. 노태권씨의 첫째가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자 그의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시킬 테니 (춘천에서) 서울로 보내라”고 했을 정도다. 라디오 PD였던 유정임씨는 두 아들이 어렸을 때 아침 프로그램을 맡아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했다. 아이들이 ‘아침’을 주제로 학교에서 그린 그림엔 엄마 대신 ‘이모님’이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는 학원 상담이며, 영재원이나 고교 입학 설명회 등을 빠뜨리지 않고 쫓아다녔다. 한일고에 가고 싶어 하던 둘째를 위해 업무 시간 중간에 PC방으로 달려가 설명회 신청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바빠도 매일 저녁 소리 내 책을 읽어줬고, 주말이면 아이들과 도서관에 다녔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딱 10년은 확실하게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윤인숙씨는 세 아들의 시험 기간이면 밤늦도록 아이들 곁에서 책을 읽었다. 독서실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던 아이들을 위해 남편 역시 TV도 켜지 않았다. ‘공부는 대신해줄 수 없지만, 공부하는 법은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윤씨는 세 아들에게 공부법을 알려주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직접 도서관에서 학습법 관련 책을 읽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팁을 말해 주곤 했다. 이미향씨 부부는 아예 거실에서 TV를 치워버렸다. 두 딸에게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다. 부부는 틈만 나면 거실에 앉아 책을 읽었고, 그 모습을 보던 아이는 자연스럽게 “글자를 알려 달라”고 말했다. 김정국씨의 경우 스스로 공부하던 두 딸과 달리 아들은 공부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 책가방을 놓고 빈손으로 덜렁덜렁 오는 날도 있었을 정도다. 그래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았던 김씨였지만, 숙제만큼은 반드시 챙겼다. 그는 “언제든 공부하려고 마음먹었을 때 따라갈 수 있으려면 기본은 해야 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②상호 존중하는 유대감과 신뢰 콜먼이 강조한 사회적 자본에는 의사소통과 유대감, 신뢰도 포함된다. 양육자와 자녀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학습에 대한 양육자의 기대나 개입은 자녀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반대의 경우라면, 양육자의 기대와 관심은 학습에 대한 동기를 불러일으킨다.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 5명 역시 자녀와 양육자 사이의 유대감과 신뢰를 강조했다. 이미향씨는 “양육자와 자녀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공부에도 실패한 사례를 주변에서 많이 봤다”고 말했다. 관계를 망치는 주범은 양육자의 잔소리였다. 이미향씨는 “잔소리를 안 할 순 없지만,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항상 애썼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와 관계가 좋으면 좀 싫은 게 있어도 참고 엄마 말을 들어주지만, 관계가 나쁘면 엄마가 시켰다는 이유로 공부를 안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유정임씨 역시 “초등학교에 다닐 6년 동안 정말 진하게 데이트하는 마음으로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공부에 몰입할 시기에 엄마의 말을 듣게 하려면, 어렸을 때부터 신뢰를 쌓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관계가 나쁘면 엄마가 아무리 좋은 정보를 가져오고, 아무리 좋은 학원을 보내도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고교 진학을 포기한 첫째와 자퇴를 선택한 둘째를 서울대에 보낸 노태권씨 역시 “공부가 아니라 마음을 들여다보고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먼저였다”고 했다. 그가 일을 그만두고 가장 처음 한 일도 아이들과 함께 걸으며 봉사활동을 다니고, 공사장이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한 것이다. 그렇게 1년을 지내자 아이들이 먼저 “공부할게요”라고 말을 꺼냈다고 했다. ━ 공부보다 먼저 챙긴 두 가지를 꼽자면 ①책과 가까이, 즐기게 만들어라 5명의 양육자는 예외 없이 문해력을 강조했다. “학습은 문해력에 달렸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책과 친해지도록 애쓴 이유다. 이 부분에 가장 방점을 찍은 건 이미향씨다. 그는 학습에 관한 의사결정을 할 때 독서를 가장 우선순위에 뒀다. 아이들이 체력적으로, 심리적으로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가장 먼저 확보하려고 했다. 학원에 가는 대신 아이들은 매일 짧으면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이상 책을 읽었다. 책을 읽고 나면 아이들끼리 그림을 그리거나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그는 “책을 읽으면 여러 과목을 심화 학습하는 효과를 낸다”며 “교과와 연계된 책을 읽을 수 있게 계획적으로 책을 읽게 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매일 자기 전 15분씩 책을 읽어줬다는 워킹맘 유정임씨에겐 독서에 관한 ‘철학’이 있었다. 그는 책을 좋아하지 않은 둘째에게 책을 강요하지 않았다. 유씨는 “책을 통해서만 문해력을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문해력을, 문장을 이해하고 전체 내용에서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라고 봤다. 그래서 둘째와는 사소한 일상부터 사회적 이슈까지 쉬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유씨는 “문해력이나 구해력이나 본질은 같다”며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대화를 통해 문해력을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윤인숙씨는 쌍둥이인 둘째와 셋째에겐 책을 많이 읽어주지 못했다고 한다. 두 살 터울의 첫째와 쌍둥이, 세 아들을 키우는 것만으로 벅찼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둘째와 셋째는 책 읽기에 영 취미가 없었다. 쌍둥이를 중학교 3학년 때 수학학원 대신 속독학원에 보낸 건 그래서였다. 그는 “당시 두 아이의 책 읽는 수준은 초등학교 5학년 정도였다”며 “6개월 이상 학원에 보내며 책 읽는 법을 익히고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②학습보다 학습 동기가 중요하다 부모가 아이를 공부하게 만들 순 있지만, 공부를 대신해줄 순 없다. 많은 양육자가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는 건 그래서다. 5명의 양육자도 이 점을 잘 알았다. 하지만 이들은 잔소리할 시간에 학습 동기를 부여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 부분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쓴 건 워킹맘 유정임씨다. 하루 대부분을 회사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그는 아이들의 학습 상황을 세세하게 챙길 수 없었다. 학원 설명회에 갔다가 수학 진도를 꿰고 있는 다른 엄마들을 보며 좌절한 적도 많다. ‘나 때문에 아이가 잠재력을 다 펼치지 못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그는 학습이 아니라 동기를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동기 부여에 사용한 방법은 목표 설정과 보상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 CNN 본사에 견학을 간 적이 있어요. 둘째가 ‘나도 여기서 일할 수 있을까?’라고 묻더라고요. 전 ‘영어 공부 열심히 해야 해’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어떤 자리가 가장 마음에 들어? 이제 그 자리는 네 자리가 될 거야’라고 해주었죠. 둘째는 아직도 가끔 그 얘길 해요.” 또 시험이 끝나면, 원하는 만큼 게임을 하거나 만화책을 볼 수 있는 일명 ‘폐인(廢人)데이’를 정하기도 했다. 특히 아이가 정한 목표를 달성했을 땐 기대한 것보다 더 큰 보상을 해주는 전략을 썼다.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책을 구하려고 보수동 책 골목을 몇 시간씩 뒤지는 수고로움도 마다치 않았다. 그는 “약속해 놓고 보상을 미루거나 어기는 일은 절대 없었다”고 말했다. 이미향씨는 아이들이 스스로 시작하게끔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을 썼다. “자기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은 놀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책도 아이들이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읽도록 했고, 한글이나 알파벳도 놀이처럼 가르치려고 했다. 사과를 깎아 먹을 때 껍질에 ‘A’를 새기고 “누가 A 먹을래?” 하는 식이었다. 둘째 출산 100일 전 숫자 포스터를 사다가 첫째에게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 ‘디데이(D-day)’를 역으로 세어가며 숫자를 가르치기도 했다. 윤인숙씨는 아이들이 공부를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도록 분위기를 조성했다. 아빠는 회사를 가고, 엄마가 집안일을 챙기는 것처럼 아이들은 공부를 자신들이 해야 할 일로 생각하게 한 것이다. 그는 “동기 부여를 위해선 목표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목표를 설정할 땐 높게 잡는 걸 추천했다. 해보지도 않고 목표를 낮추기보다, 되든 안 되든 높은 목표를 잡고 도전해 보게 하라는 것이다. 윤씨는 셋째가 고등학교 진학 후 “서울대는 안 될 것 같아”라고 했을 때 얘기를 들려줬다. “서울대 진학 후 비결을 물으니, ‘엄마·아빠가 목표를 낮추지 않는 모습을 보고 한 번 해보자 싶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뒤로 밥 먹으면서도 메모하고, 자투리 시간에도 공부하다 보니 어느 순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보였다면서요.” ━ ‘그 엄마’가 강조한 두 가지 노하우는 ①기질과 성향 맞춰 아이마다 다르게 ‘한 어미 자식도 아롱이 다롱이’라는 말은 정말 맞았다. 5명의 양육자는 각각 2명 혹은 3명의 아이를 키웠는데, 단 한 명도 “아이들의 성향이 비슷했다”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아이들을 면밀하게 관찰해 기질과 성향을 파악했고, 그에 맞춰 각기 다른 방식으로 양육했다. 교육학 석·박사 학위를 받고 성격 유형 검사인 MBTI 강사 자격증을 딴 김정국씨는 “자녀들을 하나의 자로 재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첫째는 마음이 따뜻한 호기심 천국 ENFP, 차분하고 자로 잰 듯 정확한 둘째는 ISTJ, 내성적이고 마음이 여린 막내는 ISFP”라고 소개했다. 재미없는 일엔 집중하지 못하고, 늘 새로운 것을 탐색하던 첫째는 하버드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집안의 크고 작은 분쟁에서 판사 노릇을 했던 정확한 둘째는 정말 판사가 됐다. 스스로 ‘잘난 누나들’과 비교하며 힘들어하던 마음 여린 셋째는 삼수 끝에 치과 의사가 됐다. 김씨는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하니, 내 관점에서 다그치거나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었다”며 “아이를 믿고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유정임씨는 첫째와 둘째를 유치원부터 따로 보냈다. 첫째는 혼자 앉아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엔 한없이 몰입하는 성격이었고, 둘째는 무대에 서는 것도,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각각 아이 성향에 맞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유치원으로 보냈다. 외부 환경이나 분위기에 영향을 잘 안 받던 첫째는 필요한 학원은 어디든 보냈다. 반면에 인정받아야 자신감이 생기는 둘째는 규모가 작은 동네 보습학원만 보냈다. 1등 경험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미향씨는 “첫째는 쑥스러워서 친한 친구에게조차 전화하지 못할 정도로 내성적인 아이였다”고 말했다. 행동은 느리지만,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 모르는 걸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했다. 그는 아이가 학원에 가면 모든 선생님께 “숙제 부담을 너무 주지 말고, 발표하기 힘들어하면 강요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다녔다. 두 아들을 직접 가르친 노태권씨 역시 두 아들의 성향을 정확하게 파악해 각기 다른 공부법을 제시했다. 꽉 짜인 걸 좋아하지 않던 첫째는 문제집 하나를 여러 번 반복해 풀게 했다. 한 번만 보면 설렁설렁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토피가 심하고 성격이 예민했던 둘째는 30분 이상 집중하지 못했다. 앉았다 하면 한 시간은 너끈했던 첫째와 달리 앉아 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했던 것이다. 그는 둘째를 위해 16분 공부하고 4분 쉰 뒤 다시 10분 공부하는 맞춤형 학습 패턴을 제시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②초등학교 때까진 놀게 하라 5명의 양육자 모두 자녀들이 어렸을 때는 학습을 강요하거나 학습에 몰입하게 하지 않았다. 특히 초등학교 때부터 여러 학원에 보내며 선행 학습을 시키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윤인숙씨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숙제와 정해진 학습지만 하면 나머지 시간은 대부분 밖에서 놀았다”고 했다. 당시 윤씨 가족이 살던 사택이 바닷가라 세 아들 모두 바다에서 노는 시간이 많았다. 윤씨는 “아이들도 자신이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부에 몰입해야 할 시기에 억울한 마음 없이 공부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어릴 때 충분히 놀아야 공부할 체력과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 자녀 중 둘을 대원외고에 보낸 김정국씨는 “첫째가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야 학원을 알아봤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이미 반이 만들어져 있었다”며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없어 결국 학원엔 보내지 못했다”고 했다. 김씨가 학원 대신 아이들을 데리고 다닌 곳은 ‘자연’이었다. 대전에 사는 그는 계룡산 근처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수시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그는 “삼남매가 냇물에서 수영하고 송사리 잡으며 자연에서 뛰놀던 추억 덕에 이후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를 잘 버텨낸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둘째는 사법고시 공부하던 시절 방에서 작은 화분을 여럿 키우며 지친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다른 양육자들도 자녀가 초등학생 때는 특별히 학습을 강요하지 않았다. 이미향씨는 아이들에게 책 읽을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학원은 한두 개만 보냈고, 유정임씨 역시 4학년이 되어서야 수학 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 hello! Parents가 만난 5명의 양육자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을 중심으로 자기만의 방법을 찾았다. 이를 바탕으로 아이들의 학업에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hello! Parents 특별기획 ‘그 엄마의 비밀’ 2회부터는 양육자 5명의 이야기를 하나씩 들여다보고자 한다. ■ hello! Parents 특별기획 ‘그 엄마의 비밀’ 「 ① “경제력도 정보력도 아니다” 서울대 보낸 엄마들의 비밀 ② “초등땐 놀려라, 한달만 빼고”…‘서울대 삼형제’ 엄마의 비결 ③ “또 서울대 보낼 자신 있다” 목동 엄마 학원 대신 택한 것 ④ ‘팔꿈치 쿡쿡’ 이게 통한다, 서울대 보낸 워킹맘 노하우 ⑤ 교수·판사·의사로 큰 삼남매…엄마의 ‘계룡산 화백집’ 비밀 ⑥ 중졸 두 아들 서울대 보냈다, 중졸 막노동꾼 아빠의 전략 」 박정민 디자이너 [참고문헌] 「학업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가족 배경과 사회·문화적 자원의 다중상호작용방식」, 김현주, 한국사회학, 2007. 「자녀의 학업 성취에 미치는 가족 배경, 사회자본 및 문화자본의 영향」, 김현주·이병훈, 한국인구학, 2007 「가족 내 자본이 자녀의 학업성취에 끼치는 영향: 사회자본과 문화자본을 중심으로」, 이진희, 한국사회학회 사회학대회 논문집,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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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수줍음이 많아요” 부모의 이 생각은 틀렸다 유료 전용
‘아이가 예민해서 불안이 많다’고 절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어요. 예민하지만, 불안을 크게 느끼지 않는 경우도 많거든요. “불안이 많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다랑 그로잉맘 대표는 “아이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먼저”라면서 이렇게 답했다. ‘예민한 아이’와 ‘불안이 많은 아이’를 대하는 법은 다르다는 것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육아상담 전문기업 그로잉맘의 창업가인 이다랑 대표는 아동발달심리 전문가다. 대학에선 아동학을, 대학원에선 아동발달심리를 공부했고, 이후 여러 기관에서 상담사 혹은 놀이치료사로 15년간 일했다. 그는 불안이 많은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기도 하다. 그가 유독 ‘불안이 많은 아이’에 꽂힌 이유다. 불안이 많은 아이는 “무섭다”는 말을 많이 한다. 자극이 불안과 두려움이란 감정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반면에 예민하다는 건 자극에 민감하다는 의미다. 주로 호소하는 감정도 불편함에 가깝다. 자극을 제거하거나 최소화하면 문제도 해결된다. 하지만 불안을 야기하는 자극은 실체가 없거나 상황을 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아이에게 불안한 감정을 조절하는 법을 알려줘야 하는 이유다.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지난 7일 이 대표를 직접 만나 물었다. ━ 🧐불안의 정체를 파악하라 양육자는 ‘아이가 불안이 많다’고 하지만 아이가 느끼는 불안감은 다양하다. 이다랑 대표는 “불안이 많은 건 기질이라 바뀌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평생 불안을 다스리며 살아가기 위해선 아이가 안고 가야 할 불안이 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다랑 그로잉맘 대표는 불안이 많은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다. 그가 불안 기질에 천착하는 이유다. 이 대표는 "아이가 느끼는 불안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불안에도 종류가 있나요? 불안은 4가지 요인으로 구성됩니다. 각각 예기불안과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낮은 에너지 효율이에요. 예기불안은 막연한 걱정을 의미해요.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는 겁니다. 엄마가 죽을까 봐, 아빠가 안 올까 봐, 사고가 날까 봐 불안해하죠.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거예요. 이 불안이 높은 아이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적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요. 또 처음 하는 것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고, 거부하는 경향을 보이죠.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뭔가요? 불안 성향이 사람과 관계에 대한 긴장으로 나타나는 경우입니다. 이웃에게 인사를 잘 하지 않거나, 놀이터에 가서 잘 어울리지 못하고 구경만 한다면 이 경우라고 할 수 있어요. 보통 ‘아이가 수줍음이 많다’고 하는데요. 아이는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겁니다. 에너지가 낮은 건 어째서 불안의 요소인가요? 불안이 많은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쉽게 잘 지치는 특성이 있어요. 에너지 효율이 낮은 것이죠. 이런 특성을 가진 아이는 ‘이 또래는 이 정도 활동은 하니까’라는 생각으로 특정 활동을 강요해선 안 됩니다. 운동을 통해 체력을 키우는 게 도움은 될 수 있지만 쉽게 지치는 특성이라는 걸 이해하고 서두르지 않아야 합니다. 박정민 디자이너 사람에 따라 이 네 가지 요소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나요? 이 중 한두 가지 특성만 가진 사람도 있고, 네 가지 특성을 모두 보이는 사람도 있어요. 여러 개의 특성이 보이더라도 각 특성의 강도가 다르기도 하고요. 그래서 잘 관찰하는 게 중요합니다. 아이가 어떤 불안을 호소하는지,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요. 이 네 가지 특징만 알면, 아이의 불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불안도 하나의 기질이잖아요. 그런데 사람은 하나의 기질만으로 설명할 순 없어요. 다양한 기질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보통이죠. 다른 기질과 불안 기질이 만나면, 아이는 또 다른 불안과 두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안 외엔 어떤 기질이 있나요? 그로잉맘에서 기질을 분석할 땐 불안 외에 4가지 기질을 더 봅니다. 각각 자극 추구 기질과 성취 완벽 기질, 사회적 민감 기질, 감각 민감 기질입니다. 자극 추구 기질은 새로운 자극이나 환경에 호기심이 많고 에너지도 많습니다. 성취 완벽 기질은 지속하고 몰두하는 기질이에요. 사회적 민감 기질과 감각 민감 기질은 예민한 아이예요. 전자는 관계나 사람에 민감하고, 후자는 촉각이나 청각, 후각 등 감각에 민감하고요. 이런 각각이 기질이 불안 기질과 함께 있으면 또 다른 불안과 두려움을 만들어낸다고요? 불안 기질의 아이가 자극 추구 기질도 함께 갖고 있으면 새로운 걸 하고 싶으면서도 불안을 느낍니다. 이런 아이들은 새로운 활동을 해보고 싶어 해요. 그런데 막상 그 활동을 하러 가면 문 앞에서 안 하겠다고 하죠. 양육자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입니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국 “이럴 거면 다음부턴 하고 싶다고 하지 마!” 하고 버럭 화를 내버리고 말죠. 하고 싶으면서도, 막상 하려니 무서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야 해요. 예민한 기질과 불안한 기질이 함께 있는 경우는 어떤가요? 인정과 관계에 대한 민감함이 함께 높은 아이는 사람 때문에 불안해하기도 하지만, 사람 덕분에 빠르게 안정을 찾기도 해요. 새로운 어린이집을 거부하다가도 다정한 선생님을 만나면 빠르게 적응하는 식으로요. 감각 민감이 함께 높은 아이는 자극에 불편함을 느끼는 걸 넘어 불안을 느껴요. 특히 감각이 예민한 아이를 키우면 양육자는 육아 초기부터 많이 지쳐 있는데요. 그래서 아이의 반복되는 요구에 “그냥 입자” “참아봐” “그냥 좀 먹어봐” 하고 거절하는 경우가 많아요. 거절부터 먼저 하면 아이는 더욱 과격한 방식으로 불편과 불안을 호소하고, 못 이긴 양육자는 아이가 원하는 걸 결국 들어주고요. 결과적으로 아이의 잘못된 요구 방식을 강화하고 말죠. 마지막으로 성취 완벽 기질을 동시에 가졌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죠? 성취 완벽 기질을 가진 아이들은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해요. 하지만 자기 뜻대로 되지 않거나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얻으면 쉽게 화를 내거나 좌절합니다. 특히 불안 기질이 강한 경우 완벽하게 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 시작 자체를 못하죠. 잘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까 봐 불안한 마음이 큰 겁니다. 사람은 하나의 기질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러 기질이 복합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다랑 대표는 "불안 기질이 다른 네 가지 기질과 만나면 새로운 불안과 두려움이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 🧐일단 신뢰부터 만들어라 이다랑 대표는 “불안은 모든 사람이 가지는 정상적인 정서이자 자기 자신을 보호하는 힘의 근원”이라며 “불안이 많다는 걸 문제라고 생각하거나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불안이 많은 건 기질의 하나기 때문에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아이는 평생 불안과 함께 살아야 한다”며 “그런 자신의 성향을 잘 이해하고 다룰 수 있는 힘을 길러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자신의 불안을 잘 다룰 수 있게 하려면 뭘 해야 하나요? 불안을 다루는 방법은 많아요. 하지만 그런 방법을 알려주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아이와의 관계에서 신뢰를 쌓는 겁니다. 양육자와 아이 사이엔 기본적인 신뢰가 있지 않나요? 불안이 많은 아이를 키우는 건 힘든 일이에요. 양육자가 그만큼 지치기 쉽고요. 지친 양육자는 아이가 불안을 호소하거나 뭔가를 요구할 때 부정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크고요. “좀 참아봐”라거나 “대체 어떻게 해달라는 거야”라는 식으로요. 이게 반복되면 신뢰는 형성되기 어렵습니다. 그럼 양육자가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아무리 가르쳐 줘도 먹히지 않죠. 신뢰를 쌓는 게 첫걸음이에요. 신뢰를 쌓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가 양육자는 내 편이라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야 하잖아요. 그러자면 아이의 감정을 공감해 줘야 해요. 그리고 기다려줘야 해요. 불안이 많은 아이는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마냥 공감하고 기다려줘야 하나요? 공감하고 기다려주는 건 결국 아이가 불안을 조절하고 새로운 환경에 도전하게 하기 위한 거예요. 감정엔 공감해 주되 안 좋은 행동은 제한하고, 해야 하는 행동은 제안하세요. 불안이 많은 아이일수록 이런 ‘밀당’(밀고 당기기)이 더 필요합니다. “공감하라”고 하면 언제부턴가 양육자 분들이 힘들어하세요. 공감에 지치신 것 같아요. 훈육하기 위해 공감하는 거라는 걸 잊지 마세요. 훈육을 위해 공감하는 방법이 혹시 있나요? 공감할 때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거나 과도하게 감정이입 할 필요는 없어요. 아이가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게 무서워”라고 하면 ‘그랬구나. 네가 무섭다고 하니 엄마도 걱정되네’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반응은 아이를 더 불안하게 합니다. 공감은 담백하게 차분하게 해주세요.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게 무서울 수 있어” 정도면 충분합니다. 아이가 느끼는 불안에 공감해 주고 싶지만 떼를 부리거나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하기도 해요. 우리가 받아줘야 할 건 감정입니다. 불안을 느꼈다고 어떤 행동이든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럴 땐 훈육해야 합니다. 감정은 받아주되 행동은 제한하세요. 무섭다고 땅바닥을 뒹굴며 떼를 쓴다면 “무서웠구나. 그럴 수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떼를 부려선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해주세요. 양육자도 사람이잖아요. 지치면 공감하기 쉽지 않아요. 불안이 많은 아이를 키운다면 더 그럴 겁니다. 늘 징징대는 아이를 상대하다 보면 지치는 것도 사실이고요. 진심으로 공감하기 어려울 땐 익혀두었던 공감의 말 몇 가지를 사용해 보세요. 공감이 정 어렵다면 적어도 이것만은 지켜주세요. 아이의 불안과 두려움을 비난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겁니다. 어떤 비난의 말이죠? “너는 대체 왜 매번 그러는 거니?” “다른 애들은 다 하는데 뭐가 그렇게 무섭다는 거야?” “이렇게 계속 겁쟁이가 될 거야?” 같은 말이요. 실제로 많은 양육자가 쓰는 말인데요. 이런 말은 아이의 행동을 나아지게 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아이와 양육자 간 신뢰마저 해칩니다. 불안이 많은 아이에겐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그런데 그게 먹히려면 아이와 양육자 간의 신뢰가 있어야 한다. 이다랑 대표가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줘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김현동 기자 ━ 🧐불안을 표현하고, 조금씩 도전하며 성공하라 아이의 불안과 두려움에 공감하고 기다리면서 충분히 신뢰를 쌓았다면 이제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줄 차례다. 이다랑 대표는 “내가 느끼는 불안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조금씩 도전하면서 성공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자신이 느끼는 불안이나 두려움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필요하다. 불안한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한다고요? 아이는 보통 “무서워”라고 합니다. 하지만 초조한 걸 수도 있고, 조마조마한 걸 수도 있고, 망설이는 걸 수도 있고, 낯선 걸 수도 있어요. 불안이나 두려움을 표현하는 단어는 25가지나 됩니다. 막연하게 무섭다고 하는 것보다 내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그 감정을 더 잘 조절할 수 있어요. 박정민 디자이너 표현하는 것만으로 그렇다고요? 키르칸스키라는 심리학자가 타란툴라 거미를 보여준 뒤 실험을 했어요. 첫 번째 그룹은 다른 생각을 하게 했고, 두 번째 그룹은 ‘이 거미는 위험하지 않다’고 되뇌게 했습니다. 세 번째 그룹엔 더 많은 타란툴라를 보여줬고, 네 번째 그룹엔 타란툴라를 보고 느낀 감정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했어요. 어떤 그룹이 두려움을 가장 잘 조절했을까요? 네 번째 그룹입니다. 이 그룹은 같은 자극에 다시 노출됐을 때 더 빠르게 진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죠. 자기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했다면, 이제 뭘 해야 할까요? 흔히 특정한 자극이나 상황이 두려움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닙니다. 학기 초 어린이집에 안 가려고 떼를 쓰는 아이에게 물어보세요. 이때 팁은 “왜 무서워”가 아니라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라고 묻는 겁니다. 그럼 아이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선생님이 무서울 것 같아”라거나 “엄마가 지금 가면, 안 올 것 같아”라고요. 새로운 상황이 선생님이 무섭다거나 엄마가 안 올 거라는 생각을 만든 겁니다. 이럴 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려줘야 해요.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걱정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 주고요. “선생님이 무서울 줄 알았는데, 참 친절하시다”거나 “엄마가 다시 안 올 거 같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났네” 하는 식으로요. 불안이 많은 아이는 새로운 환경 앞에서 더 많이 주저할 수밖에 없잖아요. 어떻게 도전하게 할 수 있을까요? 아이가 새로운 상황 앞에 놓였을 때 최대한 자세히 이야기해 주세요. 전학을 가야 한다면 새로 갈 동네에 미리 가보거나 전학 갈 학교의 활동 사진이나 동영상을 검색해서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간접경험을 할 수 있도록요. 또 다른 노하우는 없나요? 새로운 걸 하나씩만 추가해 주세요. 새로운 게 너무 많으면 아이가 거부할 테니까요. 익숙해지면 하나 더, 또 익숙해지면 하나 더, 이렇게 확장해 가는 겁니다. 이 전략을 뒤집어 보면, 이렇게 응용할 수 있어요. 아이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있을 때 다른 것들은 그대로 유지해 주는 거죠. 저도 학기 초엔 학원이나 다른 일상에 변화를 주지 않아요. 새 선생님, 새 친구만으로 충분히 힘들 테니까요. 그렇게 하나씩 도전하고 성공하면, 다음엔 불안한 감정이 들어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게 바로 성공 경험을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 성공 경험을 저장해 주는 것까지 하세요. “처음엔 걱정하더니 너무 잘하고 있네?”라고 말해주는 겁니다. “용기 내서 해낸 거야”라고 도전을 칭찬해 주고 “OO이는 처음엔 무서워하지만 막상 하면 참 잘해”라고도 해주세요. 그럼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거든요. 불안은 다스릴 수 있다. 그러자면 불안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조금씩 경험하고 도전하면서 성공 경험을 쌓는 게 필요하다. 이다랑 대표는 "아이는 평생 불안과 함게 살아야 한다"며 "아이가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을 배우는 데 양육자의 역할이 너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양육자 역시 아이처럼 불안이 많을 수 있다. 그런 경우라면 아이의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아이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아이가 느낄 불안이 고스란히 느껴져서다. 반대로 양육자가 불안에 둔감하다면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는 것도 힘에 부친다. 이해하기 어려우니 공감하기는 더 어렵다. 불안이 많은 아이에겐, 어떤 양육자가 더 나을까? 이다랑 대표는 “각각의 상황 모두 최상의 조합일 수 있다”고 말했다. 양육자가 불안이 많다면 아이에게 불안을 잘 다스리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는 최고의 롤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엄마도 그랬다고 공감해 주고, 엄마가 찾은 대응법을 알려주는 거죠. 반대의 경우도 너무 좋은 조합이에요. 아이의 불안에 양육자가 먼저 압도되거나 휘둘리는 일이 없으니까요. 이런 양육자는 아이의 감정에 공감해 주는 법만 익히면 불안이 많은 양육자에 비해 훨씬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 불안이 많은 아이를 키운다면, 이렇게 하세요 「 ①어떤 불안을 느끼는지 파악하라=불안이란 감정엔 다양한 특성이 있다. 아이가 느끼는 불안이 막연한 불안인지,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인지, 낯선 사람에 대한 불안인지, 특별히 쉽게 지키는지 관찰하라. 불안 기질이 다른 기질과 만나 새로운 불안이 생기진 않는지도 파악해야 한다.②일단 신뢰부터 만들어라=불안이 많은 건 바꿀 수 없다. 아이는 평생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한다. 양육자는 불안을 다스리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와 양육자 간 신뢰가 기본이다. 신뢰를 쌓으려면, 아이의 불안에 공감해야 한다. ③불안을 표현하고, 조금씩 도전하며 성공하라=불안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 다룰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조금씩 작은 것에 도전하며 성공 경험을 쌓으면, 불안을 딛고 도전할 힘이 생긴다. 불안을 만드는 건 자극이 아니라, 자극으로 인한 생각이다. 그게 뭔지 파악하고,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다. 」 관련기사 스티브 잡스와 머스크의 공통점은? 예민한 엄마를 위한 조언 내 아이 예민할까 둔할까, 생후 5분 만에 알아보는 법 “민감한 아이, 표적이 된다” 그때 부모가 반드시 할 일 "미룬다고요? 게으른 게 아니라 완벽하려는 것" 완벽주의와 함께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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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랑 오늘 2000원 썼지롱” 이걸로 매출 15억 만든 아빠 유료 전용
우리 아빠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요. ‘애기야가자’ 오세정(35) 대표 아들은 아빠의 직업을 이렇게 표현했다. 애기야가자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갈 만한 공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한때 인기였던 “우리 아빠는 지구를 지켜요”라는 친환경 보일러 광고처럼 아이 눈에는 아빠가 수퍼맨처럼 보였던 것이다. 지난달 14일 만난 오 대표는 “집에서 웃자고 한 말이었는데 아이가 유치원에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그 말을 꼭 지킬 수 있는 회사로 키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애기야가자는 여러모로 독특한 기업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에 불과한 대표적 저출생 국가인 한국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키즈 액티비티 플랫폼인 것도 그렇고, 부산에서 출발해 서울과 제주에 지사를 두고 있는 것도 그렇다. 대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오 대표는 명문대 출신 일색인 스타트업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한데 실적은 제법 탄탄하다. 앱 출시 3년 만에 이용자 수 140만 명을 돌파하고, 매출은 2019년 400만원에서 지난해 15억원까지 올랐다. 사람이 모이고 투자는 받아도 돈은 못 번다는 여느 키즈 스타트업과 달리 착실하게 몸집을 불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잇따른 사업 실패에 일용직을 전전하던 오 대표는 어떻게 이 험지에서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박정민 디자이너 ━ 📢가족에게 필요한 것부터 살펴봐라 오세정 대표가 처음부터 키즈 사업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부산에서 IT 기업에 다니고 있던 그는 신사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창업을 결심한 케이스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빌딩 구역 청소권을 사서 청소를 하며, 창업을 꿈꾸기도 했었다. “특별한 기술은 없지만, 발표 하나는 자신 있었거든요. 남들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해서 대학 때도 줄곧 학생회장을 했어요. 광고대행사 영업직으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도 했고요. 영업에 특화된 덕에 빠르게 실적이 올랐죠. 팀장이 돼 서비스를 기획하고 운영해 보니 이럴 거면 내 사업을 해보자 싶었어요.”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2년 동안 예비창업패키지 과정에 네 번이나 지원했지만, 줄줄이 고배를 마셨다. 퇴직금이 떨어지자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건설 공사부터 택배 상하차, 호텔 객실 청소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어딜 가도 내가 일할 자리 하나 없겠나 생각했어요.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정말 많이 했거든요. 친구 할아버지 농장에 가서 일을 돕기도 하고, 친구 아버지 이벤트 회사를 따라다니며 일하기도 하고요.” 이런 경험을 토대로 일용직 근로자와 이용자를 매칭하는 서비스를 기획했지만, 현장 반응은 차가웠다. 양측 모두 직접 눈으로 보고 일하는 방식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다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일할 때 어딜 가나 있던 자판기였다. 자판기 문화가 활성화된 일본을 보면서, 한국 자판기에 디스플레이를 설치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광고를 보면 음료를 무료로 주는 방법을 떠올렸다. 실제 자판기를 만들기 위해 도안도 그리고 견적도 뽑아봤지만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사업을 하겠다는 욕심만 앞섰지 어떻게 하겠다는 방법을 몰랐던 탓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반은 억지였던 것 같아요.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시장에서 어떻게 새로운 걸 만들어낼 수 있겠어요. 한국은 자판기보다 편의점을 더 많이 이용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시간만 흐르던 어느 날 가족과 외식을 하면서 또 다른 아이템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남포동에 갔는데 밥만 먹고 집에 가기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과 갈 만한 곳을 찾아봤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어요. 몇 살부터 갈 수 있는지, 입장료는 얼마인지, 주차는 되는지, 유모차는 빌려주는지, 궁금한 것투성인데 관련 정보를 찾기가 너무 어려웠어요. 결국 찾다 찾다 포기하고 예전에 갔던 영도 국립해양박물관에 다시 갔어요. 입장료도 무료고 주차비도 싸고 수유실도 잘돼 있거든요. 그때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배달하는 식당을 모아 놓은 앱은 많은데 왜 아이랑 갈 만한 장소를 모아 놓은 앱은 왜 없냐’고요. ‘아, 이건 진짜 내가 잘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이전 아이템과 달리 빠르게 진도가 나갔다. 머리로 시작한 게 아니라 실제 삶에서 길어 올린 탓이리라. 마케터 출신인 아내는 드라마 ‘파리의 연인’(2004)의 명대사 ‘애기야, 가자’를 서비스명으로 제안했다. “한 번 들으면 까먹진 않겠구나 싶었어요. 우리 세대라면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드라마고, 그 세대가 양육자로 진입하고 있는 시기였으니까요.” 그렇게 상표 출원 여부를 확인하고 인스타그램에 첫 게시물을 올리기까지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설픈 포토샵으로 ‘나 오늘 4시간에 2000원 썼지롱’이라고 적어서 해양박물관에서 찍은 사진과 양육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함께 올렸어요. 우리 부부가 육아를 하고 있고, 우리 가족이 실제 고객이 되니 모든 게 쉬워지더라고요.” 다섯 번의 도전 끝에 예비창업패키지 과정에 선발되면서 본격적으로 첫발을 내딛게 됐다. 오세정 애기야가자 대표는 “로고나 포스터 만드는 작업을 좋아한다”며 “로고를 언뜻 보면 무지개 같지만 아빠, 엄마, 아이가 뒤에서 안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봉근 기자 ━ 📢아이와 서비스, 함께 키울 수 있다 애기야가자는 주소를 설정하면 아이의 연령을 고려해 근처에서 갈 만한 곳을 추천해 준다. 오 대표는 키즈카페부터 공략했다. 2019년 당시 부산에 있는 키즈카페가 204곳이었는데, 일일이 전화하고 방문한 끝에 182곳을 무료로 소개하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듬해 앱을 출시하고, 전시ㆍ체험ㆍ관람 등 카테고리를 하나씩 늘려 나갔다. 지역도 부산에서 전국으로 점차 확대하면서 ‘키즈판 야놀자’ 같은 플랫폼이 됐다. 수도권 중심인 다른 서비스와 달리 지역 정보를 탄탄하게 채워 차별화에 성공했다. 유료 시설뿐 아니라 공원 등 무료 시설이나 병원·약국 등 ‘아이가 아플 때’ 찾아볼 수 있는 정보나 ‘예스키즈존’ 같은 정보도 깨알 같이 담았다. “처음엔 수수료도, 광고도 안 받았어요. 사람들이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죠. 저희도 경주 황리단길에 놀러 갔다가 식당이 ‘노키즈존’이어서 못 들어갔던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서울 경리단길을 비롯해 전국의 ‘OO단길’을 다 조사해서 올렸더니 회원들의 제보가 이어지더라고요.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직계약한 곳이 많아졌고, 그 덕분에 가격 경쟁력도 생겼어요. 피크닉 갈 때 필요한 물품 등 콘텐트와 커머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니 거부 반응도 적은 편이었고요. 지난해 말 광고를 시작한 것도 어차피 고객이 사야 할 물건이나 티켓이라면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보자는 취지였어요.” 사업의 단초를 제공한 2015년생과 2018년생 두 아들은 사업 영역을 확장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것이 ‘아기주민증’과 ‘애가패스’다. “아이가 어릴 땐 외출할 때 준비물이 많잖아요. 나들이 가는 곳에 24개월 미만, OO구민 무료입장 혜택이 있어도 주민등록등본까지 챙기기가 쉽지 않죠. 사진을 찍어둬도 찾기 어려울 때도 많고요. 그래서 증빙 서류를 등록하고 아기주민증을 만들어 제시하면 애가패스로 등록된 장소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어요. 키즈카페 1시간 연장, 키즈 음료수 제공 같은 실질적 혜택이 있다 보니 발급 회원 수가 20만 명이 넘어요. 반복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는 동인이 되기도 하고요.” “원래 애기야가자 타깃은 3~7세 미취학 아동이었어요. 그런데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니까 두 아이가 같이 즐길 수 있는 곳이 점차 줄어들더라고요. 저희 고객들도 비슷한 고민을 할 테고요. 첫째가 요새 축구에 엄청 빠져서 울산으로 K리그 경기를 보러 자주 가는데 스포츠도 저희가 접목할 수 있는 영역인 것 같아요. 종목별로 경기장도 있고, 체험장도 있고, 학원도 있으니까요.” 오 대표는 키즈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아이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됐다고 말했다. “사실 회사를 다닐 땐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해서 아이들 얼굴 보기도 힘들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곧 제 일이잖아요. 재미있는 얘기를 할 때면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두기도 하고, 새롭게 알게 된 곳에 답사 겸 함께 가보기도 해요.” 연례행사로 자리 잡은 크리스마스 기부는 첫째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유튜브에서 굿네이버스 광고를 보던 아이가 “저 동생한테 내가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주고 싶다”고 말하면서다. 애기야가자 회원들이 함께 참여하면서 지난해는 5000여 개의 장난감을 300가구에 전달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이랑 서비스가 같이 크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제가 배우는 것도 많고요.” 오세정 대표는 “서서 일하면 집중력이 좋아진다고 해서 의자를 없앴다”며 “몇 년째 해보니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 📢약점은 곧 강점이 될 수 있다 오 대표가 부산에 터전을 잡은 건 이유는 일자리 때문이다. 대학 선후배 사이로 만난 오 대표 부부는 호주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 거주지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 “저는 밀양, 부인은 대구 출신인데 다시 대구로 가자니 일자리가 마땅치 않았어요. 서울은 집값도 비싸고 연고도 전혀 없으니 제2의 도시인 부산으로 가보자 싶었던 거죠.” 이들의 전략은 주효했다. 호주에서 구직 활동을 하면서 귀국과 동시에 재취업에 성공했고, 본가가 멀지 않아 자주 왕래한 덕에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것도 그리 힘들지 않았다. 부산은 스타트업하기에도 좋은 도시였다. 지역 거점으로서 스타트업 육성에 대한 수요가 있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원도 많기 때문이다. “수영구 공유오피스에서 3명이 처음 시작했는데 너무 좋았어요. 지하였지만 인테리어도 예뻤거든요. 이후 직원이 늘어나면서 광안리해수욕장 근처 상가 1층으로 옮겼어요. 간판도 달고 볕이 드는 건 좋은데 막상 나와 보니 임대료는 물론 책상이며 의자며 다 돈이더라고요. 초기 스타트업에 사무실 지원 효과가 얼마나 큰지 실감했죠. 지난해 부산 스타트업이 모여 있는 센텀 스카이비즈로 옮겼는데 여기도 좁아져서 또 이사 가야 할 것 같아요.(웃음)” 지난해 서울, 올 초 제주 사무실을 열 때도 각 지자체의 지원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엔데믹으로 접어들면서 실내·외 활동에 대한 수요가 높아져 지사 설립을 검토하고 있던 터라, 상주 직원 채용 같은 각 지자체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거의 매주 서울 출장을 가는 것 같아요. 투자사도, 플랫폼도, 제휴사도 대부분 서울에 있으니까요. 저를 대신해 외부 기관과 회의하고 미팅할 사람이 필요한데 마침 잘 됐다 싶었죠. 서울에 상주하는 직원들이 있으니 확실히 다양한 기회도 더 많이 생기더라고요. KTX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긴 했지만, 저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어디든 가야죠.” 그런데도 그는 본사를 서울로 이전하는 걸 고려조차 하지 않는다. “부산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얻은 게 더 많으니까요. 애기야가자는 키즈 스타트업인 동시에 관광 스타트업이잖아요. 부산에 있어서 더 특별하게 느껴지거나 기억하기 쉽기도 하고요.” 애기야가자는 2020년 한국관광공사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선정되고, 2021년 부산 기술창업기업과 부산우수공유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부산을 대표하는 스타트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 대표는 “사옥을 건설하게 된다면 1~2층은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것”이라며 “부산에 아이와 함께 온다면 꼭 들러야 하는 랜드마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에도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 저출생으로 한국에서 모집단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면 해외 시장을 함께 개척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와 구글플레이가 함께 하는 창구 프로그램에 선정돼 인도네시아 시장조사를 진행하게 되면서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졌다. “인도네시아는 인구수가 2억7753만 명으로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을뿐더러 0~14세 아동 인구가 25%가 넘어요. 한국처럼 인스타그램 계정부터 개설했는데 1년 만에 7만 명이 넘게 모이더라고요.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한국 가족 단위 여행객이 많이 찾는 곳부터 진출할 계획입니다.” 오세정 대표는 “한국 양육자들은 정보가 빠르고 눈높이가 높기 때문에 해외에서 키즈 서비스를 선보일 때도 강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그는 학벌이, 지역 출신인 게 도움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약점인 적도 없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업계엔 KAIST 출신 3명만 모이면 아이템도 안 보고 투자한다고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저한텐 그렇게 쉽게 기회가 온 적은 없었다”며 웃었다. 하지만 스스로 기회를 만들 순 있었어요. 구글 창구 프로그램도 세 번 떨어졌지만 4기 때 1위로 선정됐고, 시드 투자도 두 번 실패하고 세 번째에 받았어요. 한번에 된 게 하나도 없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사업도, 양육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관련기사 할부로 비싼 책상부터 질렀다…회사 나와 연봉 2배 뛴 비결 명함에 아이 이름도 적는다, 尹도 반한 ‘100% 재택’ 회사 "일단 해!" 39살에 삼성 최연소 임원, 그녀가 돌연 사표 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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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와 머스크의 공통점은? 예민한 엄마를 위한 조언 유료 전용
예민한 건 나쁜 게 아니에요. 바꿀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활용하세요. 특별한 능력이 생깁니다. “어떻게 해야 예민한 성격을 고칠 수 있냐”는 질문에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타고난 예민함은 바꿀 수 없지만, 잘만 관리하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전 교수는 우울, 불안, 무기력 등 기분과 감정을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다. 그를 찾는 사람은 우울증을 앓는 환자부터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까지 다양하다. 각기 다른 이유로 전 교수를 찾았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예민하다는 사실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예민한 성격 탓에 우울증에 빠진 사람과 예민한 성격 덕에 성공한 사람.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까? 전 교수는 “자신의 예민함을 얼마나 일찍 알아차리고 얼마나 잘 관리했는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예민함이 섬세함과 통찰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특히 “아이 마음에 공감하고, 아이가 살아갈 먼 미래까지 내다봐야 할 양육자에게 예민함은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자면 예민함을 잘 관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가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에 이어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쓴 이유다. 지난달 31일 그를 만나 예민함을 이용해 ‘만렙의 육아 고수’가 되는 법을 물었다. ━ 📢 자극,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모든 것의 출발은 나 자신이다. 예민함을 관리하는 것의 첫걸음도 “나 자신이 예민하다는 걸 알아차리는 것”이다. 전홍진 교수는 “대화할 때 상대의 눈을 피하려 한다면 예민한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왜일까? 눈 맞추는 걸 못하면 예민할 수 있다고요? 예민한 사람은 고성능 카메라와 마이크를 장착한 컴퓨터와 같아요.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도 듣습니다. 받아들이는 자극과 정보가 그만큼 많을 수밖에 없어요. 대화할 때도 마찬가집니다. 눈을 통해 다른 사람은 읽지 못하는 상대의 감정까지 읽어내죠. 거기에 표정과 말투 같은 다른 정보까지 받아들입니다. 이렇게나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오니 긴장이 높아질 수밖예요. 그래서 눈을 맞추질 못하는 겁니다. 회피하고 싶은 거죠.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과잉 자극을 조절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 힘을 기를 수 있나요? 우선 생체 리듬에 맞춘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만드세요. 특히 같은 시간에 자고 깨는 ‘수면 패턴’이 중요합니다. 생체 리듬은 하루 24시간 주기로 움직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에 따라 분비되는 호르몬이 에너지 유지에 도움을 주거든요. 그래서 숙면하면 기분도 좋고, 판단력도 좋아지죠. 생체 리듬이 원활하면 자극이 많거나 반복되더라도 자극에 무뎌지는 일명 ‘소거(extinction)’가 일어납니다. 반대로 생체 리듬이 무너지면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자극을 잘 조절하려면 규칙적으로 자고, 규칙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특히 잠드는 시간보다 깨는 시간이 일정해야 합니다. 예민하면 쉽게 잠들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요. 일정한 시간에 몸을 깨우면 생체 리듬이 자동으로 시작됩니다. 오전 오후에 에너지를 소비하니 밤에 잠들기 쉽죠. 하지만 아이 키우면서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는 건 쉽지가 않아요. 수면 패턴이 아직 잡히지 않은 신생아를 키울 땐 규칙적으로 생활하기 힘들죠. 그래서 온 가족이 도와야 하는데, 특히 배우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여성은 출산 후 호르몬 변화로 인해 예민하지 않던 사람도 쉽게 예민해집니다. 이 시기엔 그 무엇보다 충분한 숙면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출산 후 6개월간은 덜 예민한 사람, 그러니까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자는 게 좋습니다. 또 부부끼리 각자의 일정을 공유해 갑작스러운 상황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하세요. 예측 가능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예민함을 관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또 다른 자극 조절법은 무엇인가요? 자극은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점진적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해요. 자극의 단계를 서서히 올려 긴장감을 낮추고 둔감하게 만드는 겁니다. 타인과 눈 맞추기를 힘들어하는 것도 이 방법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선 거울을 보고 내 눈을 마주 보는 연습을 합니다. 이후 배우자나 부모님, 친구처럼 편안한 사람과 시선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아이와 눈 맞추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이는 양육자와 시선을 맞추고, 웃음을 지어보면서 대인 관계를 배워가거든요. 양육자가 예민하다는 이유로 아이와 눈을 맞추려 하지 않으면 아이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읽지 못하게 됩니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예민한 성격은 나쁜 게 아니다"며 "예민한 사람만이 가진 섬세함과 통찰력을 발현하려면 규칙적인 생활 습관부터 기르라"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 📢 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을 쌓아라 전홍진 교수는 예민한 성격의 강점 중 하나로 ‘연결 짓기’를 꼽는다. 예민한 사람은 하나의 현상을 여러 관점에서 해석하고, 생각에 생각을 더해 다른 사람은 떠올리지 못하는 창의적인 생각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전 교수가 예민한 사람을 ‘아이디어 뱅크’라고 부르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그는 “연결 짓기가 독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연결 짓기가 독이 될 수 있다고요? 예민한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은 과거 경험과 감정에 기반하는데, 예민하면 편안한 경험보다 긴장과 불안한 경험이 많습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지죠. 문제는 예민함이 만들어낸 부정적인 연결 짓기가 생각의 왜곡을 만들어낸다는 거예요. 예민함이 만들어낸 생각의 왜곡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관계 사고’가 대표적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 또는 현상을 무조건 자신과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영아 돌연사 뉴스를 봤다고 해볼게요. 예민한 사람은 뉴스를 보고 아이의 행동을 모두 돌연사 사고와 연결 지어 생각합니다. 예민한 양육자 중엔 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게 자신을 힘들게 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어요. 관계 사고로 인해 피해 의식이 생긴 겁니다. 이 생각들을 끊어내고 긍정적인 사고로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자동적 사고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자동적 사고란 의식하거나 의도하지 않아도 생각이 자연스럽게 특정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말해요. 자동적 사고는 평소 연결 짓기를 어떤 방향으로 하느냐에 따라 습관으로 굳어집니다. 그래서 평소 의식적으로 긍정적인 방향, 발전적인 방향으로 생각하는 연습을 해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내 생각을 객관적으로 봐야 해요. 머리로는 알겠는데, 내 생각에 매몰되면 객관적으로 보는 게 쉽지 않습니다. 두 가지 팁을 알려드릴게요. 먼저 부정적 사고를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인 걱정을 제거해야 합니다. 머릿속에만 있던 걱정 거리를 종이에 적어보는 거예요. 내가 갖고 있는 걱정을 네 항목으로 나눕니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 피할 수 없는 일, 닥쳐서 걱정해도 될 일,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일, 이렇게 네 항목으로요. 그리고 각각의 걱정을 정도에 따라 1~5점으로 점수화합니다. 이렇게 걱정을 분류해 보면 해결책이 선명해집니다.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도움이 필요한 일로요. 이렇게만 해도 해결법이 보이죠. ‘일어날 가능성이 낮은 일’은 가짜 걱정이에요. 안 해도 되는 필요 없는 걱정이죠. 이런 걱정은 지워버립니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걱정을 한 번씩 분류해 대책을 세워 보세요. 대책을 찾았다면 즉시 행동으로 옮기고요. 걱정은 품고 있을 수록 커지니까요. 두 번째 팁은 뭔가요? 이렇게 걱정을 제거했다면, 이번엔 나만의 좋은 자동적 사고를 만들어보는 겁니다. 한 가지 상황을 놓고 좋은 방향과 나쁜 방향의 사고를 써보세요. 그럼 두 사고가 완전히 다르게 전개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간 상황을 예로 들어볼게요. 의사는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말했어요. 좋은 방향으로 사고한다면 내용에 집중합니다. ‘큰 병이 아니라 다행이다’라고요. 반면에 나쁜 방향으로 사고한다면 엉뚱한 것에 주목해요. ‘의사의 표정이 안 좋은데, 내가 혹시 무슨 말실수라도 했나?’ 하는 식이죠. 전혀 상관없는 두 가지(의사의 표정과 나의 말)를 연결하는 바람에 부정적인 방향으로 사고가 이어진 겁니다. 이렇게 양방향의 자동적 사고를 써보면 문제의 지점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럼 부정적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죠. 아무리 생각을 객관화해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안 좋은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어요. 그래서 나쁜 기억을 덮을 만큼 좋은 기억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특히 청각을 이용해 좋은 기억을 쌓으라고 권하는데요. 예민한 사람은 청각에 가장 민감합니다. 고음과 큰 소리를 들으면 교감신경이 흥분해 긴장이 높아지고 나쁜 감정이 쌓이기 쉽죠. 그래서 가족 중 예민한 사람이 있다면 ‘중저음의 작은 목소리’로 말해주세요. 또 양육자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준다거나 여행지에서 소리 내어 웃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좋은 감정이 담긴 소리는 뇌에 좋은 기억으로 새겨져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을 편안하게 만듭니다. 전 교수에 따르면 예민한 사람은 유독 소리에 민감하다. 그는 "예민한 가족이라면 고음의 큰 목소리보다 중저음의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습관을 가지라"며 "좋은 목소리가 좋은 기억으로 연결될 때 예민성은 낮아진다"고 했다. 강정현 기자 ━ 📢 양육자도 안전기지가 필요하다 전홍진 교수는 예민한 성격으로 성공한 대표적 인물로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를 꼽는다. 예민한 사람이 가진 섬세함과 집요함을 100% 활용해 자신만의 분야을 일궈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같은 예민함을 갖고도 어떤 사람은 전문가로 성장하고, 또 다른 사람은 불안에 시달리며 도태된다”며 “차이를 만드는 건 안전기지의 존재 여부”라고 했다. 안전기지가 뭔가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대상을 말합니다. 그 대상이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어요. 안전기지는 충전소 역할을 합니다. 방전되기 전에 틈틈이 즐거움과 휴식을 주어 에너지를 충전해주는 식이죠. 안전기지는 양육자와의 애착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양육자와의 정서적 유대감이 안정감을 줘 사회로 나가는 발판이 되죠. 성인이 되어서는 좌절과 시련을 겪을 때마다 안전기지를 통해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데요. 안전기지에도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그게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몰입할 수 있어야 해요. 안전기지에 있을 때 예민성이 제로 수준으로 떨어져야 합니다. 그러려면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오랜 친구, 직장 동료, 주치의 등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갖고 내 상황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좋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안전기지는 배우자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웃음). 앞서 안전기지가 반드시 사람일 필요는 없다고 했는데요. 직업이나 취미, 반려 동식물 등 내 마음을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대상이면 됩니다.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는 ‘일’을 안전기지로 삼았어요. 스트레스를 잊고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일에만 집중했고, 그 시간을 통해 에너지를 얻은 거죠. 그 결과 성공으로 이어진 거고요. 이렇게 나만의 안전기지를 만들려면, 우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근데 쉽지 않을 거예요.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걸 파악할 수 있나요? 내 주변 사람을 관찰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났을 때 편안한 사람과 불편한 사람을 구분해 보는 거예요. 인간관계는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거든요. 만나면 편안한 사람과 불편한 사람을 나눠 이름을 적고, 그 사람의 말, 말투, 표정, 태도를 5점 척도로 점수화해 보세요. 그 사람이 왜 편안하고, 불편한지 이유를 찾아보는 거예요. 편안한 사람은 대개 나와 비슷하고, 불편한 사람은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좋아하는, 싫어하는 이유를 통해 내가 어떤 요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도 파악할 수 있고요. 불편한 사람과는 어떻게 해야 하죠? 불편한 사람이라고 해서 배척해선 안 됩니다. 늘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지낼 순 없으니까요. 인간관계에도 노력이 필요해요. 그러려면 내가 예민한 부분을 알아채고, 예민함을 유발하는 상처를 드러내면서 먼저 다가가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 상처를 먼저 드러내라고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흔히 상처를 감춰야 예민함이 낮아진다고 생각하는데요. 정반대입니다. 선천성 안면기형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연구를 해보니, 오히려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다닌 사람들이 스트레스 지수가 낮았어요. 상처와 약점을 감추느라 써야 할 에너지를 오히려 발전적인 방향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상처와 약점을 감춘 사람들은 내 약점이 들킬까 전전긍긍하며 괴로워했고요. 전 교수는 예민한 성격으로 성공한 인물로 스티브 잡스와 일론 머스크를 꼽았다. 그는 "잡스와 머스크는 자신의 예민감을 '0'으로 낮출 '안전기지'를 가지고 있었다"며 "아이에게 올인하기보다 양육자도 안전기지를 만들어 에너지를 관리하라"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전홍진 교수는 예민한 양육자라면 아이에게 오히려 약점을 드러내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그래야 아이도, 양육자도 서로의 예민함을 자극하지 않고 한발 물러서 서로를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고슴도치 가족이 약간 물러서 서로의 가시로부터 서로를 보호하듯 말이다. 예민할수록 아이가 다칠까, 아플까 전전긍긍하기 쉽습니다. 이러면 정작 나의 예민함을 돌보지 못합니다. 자녀에게 올인하지 말고 양육자의 안전기지를 찾으세요. 그래야 양육자의 예민함도 관리할 수 있습니다. ■ 전홍진 교수가 전하는 예민한 양육자를 위한 조언 「 ①“자극, 피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예민함 관리의 시작은 알아차리기입니다. 예민하면 과잉 자극을 소거하지 못해서 과한 긴장을 만들고, 급기에 회피합니다. 자극은 피하지 말고 관리해야 합니다.충분한 숙면과 규칙적인 생활로 생체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 하고, 점진적으로 자극의 수준을 높이는 연습으로 받아들이세요. ②“나쁜 기억은 지우고, 좋은 기억을 쌓아라” 연결 짓기는 예민함의 강점이지만, 나쁜 기억이 개입돼 부정적 사고로 빠지기 쉽습니다. 걱정을 종이에 적어보고, 자동사고기록지를 통해 내 생각을 객관적으로 보세요. 가장 중요한 건 좋은 기억을 쌓는 겁니다. 고음의 큰 목소리는 예민함을 자극해 자쁜 기억이 됩니다. 중저음의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세요. ③”양육자도 안전기지가 필요하다” 예민감을 제로 수준으로 만들어주는 ‘안전기지’를 만드세요. 예민해지는 상황에 즐거움과 휴식을 주어 예민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람 뿐 아니라 직업, 반려동식물, 취미 생활 등 몰입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대상이면 됩니다. 또 내 약점을 드러내고 먼저 다가가 관계 맺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 관련기사 "미룬다고요? 게으른 게 아니라 완벽하려는 것" 완벽주의와 함께 사는 법 “화 치솟아 내 밑바닥 봤다”…정신과 의사의 번아웃 탈출법 "안해서 그래, 하면 잘해"…꿈 깨라, 당신의 작심삼일 이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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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더 낳으면 행복해질까? 獨연구소가 밝힌 ‘둘째의 효용’ 유료 전용
공공 아파트 청약 특별공급 자격 부여에 자동차 취득세 면제까지, 최근 정부가 자녀가 둘인 가정에도 제공하기로 한 혜택입니다. 그동안 아이가 셋 이상이어야 받을 수 있던 다자녀 혜택을 둘이어도 받을 수 있게 한 겁니다. 둘째가 점점 귀해지는 방증이죠. 지난해 태어난 아이 중 첫째 아이의 비중은 62%를 넘어 역대 가장 많았지만, 둘째 비중은 계속 줄어 30.5%에 머물렀습니다. 결혼한 여성이 기대하는 자녀 수(이미 낳은 자녀와 추가로 계획하고 있는 자녀의 수의 합)도 2020년 1.68명으로 두 명이 채 되지 않습니다. 아이를 낳아본 양육자는 육아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잘 압니다. 일회성 지원금과 혜택만으로 생활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추가 출산을 감행하기란 쉽지 않죠. 그럼에도 ‘한 명 더’를 고민하는 양육자가 적지 않은 건 아이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도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hello! Parents는 낳아야 끝난다는 둘째 고민을 집중 해부합니다. 둘째는 정말 사랑일까요? 첫째에게 동생이 생긴다는 건 어떤 득과 실을 안겨줄까요?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양육자가 아이 둘을 키우려면 무엇이 얼마나 필요하고, 무엇을 얼마나 포기해야 할까요? 개인적 경험담에 기댔던 둘째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여러 연구와 전문가, 양육자의 목소리를 통해 검증해 봅니다. 개인 정보가 담겨져 있어 양육자들의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박정민 디자이너 ■ 목차 「 1.둘째를 고민하는 이유 ◦ 한 명 더 낳으면 행복해질까? ◦ 혼자면 외로울까? 2.둘째 낳는 엄마, 이것이 달랐다 ◦ 엄마의 나이, 학력, 일에 대하여 3.둘째를 원한다면 해야 할 일 ◦ 아빠 참여 늘리고, 사교육비 줄여라 」 ━ Part1. 둘째를 고민하는 이유 첫아이가 커서 양육이 좀 수월해지면, 둘째 고민이 시작됩니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는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둘이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둘째 계획을 놓지 못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아이가 형제자매 없이 외롭지는 않을지, 혹시 사회성이 부족하진 않을지 걱정되기도 한다는 게 양육자들의 공통된 목소리입니다. ①한 명 더 낳으면 더 행복해질까 자녀가 많을수록 양육자가 느끼는 삶에 대한 만족도는 더 높아질까요? 지난 7월 발간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고서 ‘일-생활 균형과 삶의 만족: 결혼·가족 특성에 따른 차이를 중심으로’를 살펴보겠습니다. 연구진은 18세 이하 자녀를 둔 취업자에게 삶의 만족도를 물었는데요(7점 만점). 자녀가 한 명인 사람의 만족도는 4.48점이었습니다. 자녀가 두 명 이상인 경우는 4.56점이었고요. 두 자녀 이상인 사람이 좀 더 행복하다고 답했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았죠. 아이가 몇 명이든 삶의 만족도는 ‘보통’ 수준이라는 얘기입니다. 기존 연구들에 따르면, 자녀 수와 양육자의 행복도는 비례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녀 한 명’이 주는 만족감은 확실한 편입니다. 한스 피터 콜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 등의 연구진이 2005년 발표한 연구(‘배우자와 출산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남녀 모두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삶의 만족도가 전반적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둘째부터는 엄마와 아빠가 느끼는 행복감이 달랐죠. 여성의 경우 둘째 아이가 생기면 삶의 만족도가 낮아졌습니다. 남성의 경우는 둘째라는 존재가 행복감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고요. 독일 막스플랑크 인구 통계연구소도 ‘행복: 아이를 낳기 전과 후’(2012년)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이 연구에서도 첫아이를 낳으면 양육자는 전보다 더 행복감을 느낀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둘째를 낳으면 얼마나 더 행복해지는 걸까요? 첫아이 출산과 비교했을 때 절반 정도의 행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셋째의 경우에는 행복감은 전혀 늘지 않았습니다. ②혼자면 외로울까? 지난 2월 둘째 아이를 출산한 이지영(39)씨는 “맞벌이다 보니 엄마·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늘 혼자 있어야 할 첫째가 외로울 것 같아서 둘째를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전씨처럼 많은 양육자는 첫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둘째를 고민합니다. ‘외동은 이기적이고,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항간의 얘기도 마음에 걸립니다. 외동아이는 외로움에 시달리고, 대인 관계에서도 어려움이 느낄까요?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더글러스 다우니 교수가 2010년 미국 청소년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유치원 때까지는 다소 사회성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이런 모습은 사라지죠.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친구 수 등에서 차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미국 텍사스대 토니 팔보 교수의 연구 결과도 비슷합니다. 외동아이와 형제자매가 있는 아이의 특성을 사회성, 리더십, 외향성, 성숙도, 유연성, 안정성 등 16가지 측면에서 분석했더니 두 집단 간 큰 차이가 없었죠. 오히려 외동은 성취동기와 자존감 측면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한 아이의 성격이 이기적이거나 버릇이 없는 건 형제자매의 유무보다는 부모의 양육 방식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합니다. 기존의 연구 결과들은 외동 아이가 외롭고,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은 선입견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아이의 성격은 형제자매의 유무보다 부모의 양육 방식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고 합니다. 연합뉴스 ③둘이면 뭐가 좋을까? 서울 마포구에서 8세, 6세 남아를 키우는 직장인 정미연(37)씨는 주말 나들이를 갈 때 두 아들에게 똑같은 티셔츠를 입혀 사진 찍는 일이 취미입니다. 그는 “둘이 서로 잘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고 말했습니다. 두 자녀 양육자들이 ‘둘 낳길 잘했다’고 공통적으로 꼽은 순간은 ‘아이들이 같이 잘 놀 때입니다. 초등 1, 2학년 남매를 둔 임미진(37)씨는 “아이가 학교에서 또래와 잘 협력하고 배려한다는 평가를 받으면, 두 아이를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한스 피터 콜러 교수는 앞선 연구 논문에서 “첫아이 출산은 부모가 가족의 지위와 개인의 기대 역할을 공고히 하고, 정서적으로 보상받는 동기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둘째 출산에 대한 동기는 첫아이에게 동료(파트너십)를 제공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밝혔습니다. 양육자가 아이를 둘 낳은 걸 후회하는 건 반대의 경우입니다. 기대와 달리 형제자매가 갈등하고 경쟁할 때, 그리고 그로 인해 자주 싸울 때죠. 『형제자매 효과』를 쓴 미국 작가 제프리 크루거에 따르면, 아이들은 시간당 6.3회 싸운다고 합니다. 성별이 같고, 두 살에서 세 살 터울인 경우 가장 많이 싸운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형제자매의 친밀도는 생에 주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독일 언론인인 니콜라 슈미트는 저서 『형제자매는 한팀』(2019)에서 “유년기엔 형제자매가 ‘놀이 친구’로 친밀한 관계를 보이다 청소년, 성인기를 거치며 소원해진다. 하지만 다시 노년기에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회복한다”고 밝혔습니다. ■ 한 명도 좋다! 그리고 최선이다! 「 한 자녀 양육자들은 둘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체력적, 시간적 ‘여유’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외동의 장점으로 꼽습니다. 7세 여아 양육자로 맞벌이를 하는 직장인 이형석 (37)씨는 “아이가 한 명이면 부부가 돌아가면서 아이를 보고, 한 명은 쉬거나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 “부모로부터 집중 투자를 받는다는 측면에서 외동 양육이 아이에게 더 유효할 것 같다”고도 말했습니다. 7세 남아를 키우는 정호진(37)씨는 정서적 친밀도를 꼽았습니다. “밀착 케어로 자녀와의 관계가 빈틈없이 탄탄해지고, 부부 관계도 끈끈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 언론인 로렌 샌들러는 『똑똑한 부모는 하나만 낳는다(2014)』는 책에서 “커리어도 쌓고 싶고, 엄마도 되고 싶은 여성들이 최선이자 절충안으로 자녀를 한 명 낳는 선택을 한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가 먼저 행복한 어머니가 되어야하고, 그려려면 우선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현실적 제약 안에서 선택을 내려야 하는데, 둘째가 있으면 그런 일이 가능할 지 상상할 수 없었다.” 」 ━ Part2. 둘째 낳은 엄마, 이것이 달랐다 하나 키우기도 쉽지 않은 시대, 둘 낳은 집들은 무엇이 달랐을까요? 저출산의 원인에 주목한 연구는 많지만, ‘둘째’ 저출산을 조명한 연구는 많지 않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낸 ‘둘째 자녀 출산제약 요인분석과 정책방안’(이하 ‘둘째 출산 제약 보고서’)은 10여 년 전이긴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 국내 연구입니다. 연구진은 이미 자녀를 한 명 둔 45세 미만의 기혼 여성 648명(여성가족패널)을 대상으로, 둘째를 낳은 이들(250명, 38.6%)과 그렇지 않은( 398명)이들의 차이점을 밝혀내려 했습니다. 그 결과, 둘째 임신·출산과 유의미하게 관련된 요인은 크게 다섯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엄마의 연령, 교육수준, 취업 상태, 결혼만족도 및 자녀 교육에서의 남편과의 소통, 사교육비 지출이 이에 해당합니다. 먼저 엄마의 사정부터 살펴봅니다. ①엄마의 나이: 나이가 많은 엄마일수록 둘째를 가질 확률이 낮았습니다. 젊은 여성이 상대적으로 추가 출산을 고려하거나, 임신에 성공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으로 풀이됩니다. 만혼과 그에 따른 고령 임신 출산은 실제 저출산의 주범으로 지목됩니다. 지난해 아이를 낳은 여성의 평균 연령은 33.5세. 첫아이를 낳은 엄마의 나이로 좁혀봐도 33세입니다. 2012년엔 서른이 갓 넘은 엄마(30.5세)가 첫아이를 낳는 게 평균이었지만, 산모의 나이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의학의 발달로 늦은 나이에도 임신 자체가 어렵진 않습니다. 문제는 추가 출산에 대한 심리적 부담까지 해결해 주진 못한다는 거죠. 의학적으로 만 35세부터 고령 임신에 들어갑니다. 평균적으로 형제자매 간 터울이 2~4년 정도 벌어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대부분 산모가 둘째부터는 고령 임신에 해당하게 됩니다. 2년 전 첫 아이를 낳은 김민지(39)씨는 “35세가 임신의 데드라인처럼 느껴져서 첫아이 때도 압박을 느꼈다”며 “둘째를 낳자면 마흔이 넘을 텐데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산모가 고령이면 임신성 당뇨, 고혈압, 조산 등 각종 질환의 가능성이 커집니다. 생물학적으로 둘째 갖기가 부담스럽고, 갖고 싶어도 난임이 될 가능성도 커지고요. ②학력: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둘째를 낳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아이를 둘 낳은 여성은 14년 교육을 받았고, 하나인 여성은 13.6년을 교육받은 걸로 나타났죠. 큰 차이는 아니지만, 두 자녀 여성이 한 자녀 여성보다 교육 기간이 긴 경향을 보인 건 주목할 만합니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학력은 출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가방끈이 길수록 늦게 결혼을 하는 경향이 있고, 출산 시기도 늦어졌기 때문이죠. 19~49세 여성 6000여 명을 조사한 ‘2021년 가족과 출산 조사’(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도 대학 졸업 이상으로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자녀가 없거나 한 명 두는 비중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반대로 자녀가 셋 이상인 경우는 고졸 이하 여성들의 비중이 크고요. 통념에 배치되는 결과가 나온 이유는 뭘까요? 계봉오(사회학) 국민대 교수는 “과거엔 고졸 이하 학력 여성이 결혼도 빨리 하고 아이도 많이 낳는 경향이 있었지만 2010년 이후 양상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교육수준이 높은 여성일수록 혼인율·출산율이 더 높은 경향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다만 “본격적으로 아이를 낳는 세대인 1980년대생 이후 여성들은 상당수가 대학을 졸업할 정도로 교육수준이 상향됐기 때문에 출산에 미치는 영향력 있는 변수로 보기엔 애매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③취업 상태: 워킹맘은 전업주부보다 둘째를 낳을 가능성이 작았습니다. 아이를 낳아본 여성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압니다. 게다가 임신·출산에 따른 경력단절과 승진 누락 등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출산은 여성의 임금에도 타격을 줍니다. 출산한 여성의 임금이 자녀가 없는 여성이나 남성과 비교해 낮은 현상을 일컬어 ‘모성 불이익(motherhood penalty)’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죠. 한 연구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자녀 1명당 엄마의 임금이 평균 3.6% 하락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022 부산 여성 취창업박람회'에서 여성들이 구직 활동을 하는 모습. 중앙포토 자녀가 한 명일 때와 비교하면 둘, 셋일 때 타격이 더 큽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5년 펴낸 한 ‘모성 임금 격차’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아이가 한 명일 때는 여성의 임금 하락 정도가 작았지만 두 자녀, 특히 세 자녀를 둔 경우 상당한 임금 격차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양육자 절반 이상(53%)이 맞벌이: 자녀가 늘면 양육 부담이 늘기 때문에 누군가는 일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치기도 합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자녀(18세 미만)가 있는 가구 중 맞벌이 비중은 절반을 넘어선 53.3%를 차지했습니다. 자녀가 1명(53.9%), 2명(53.3%), 3명 이상(49.5%) 순이었죠. 자녀가 늘어날수록 맞벌이 가구 비중은 줄어드는 겁니다. 자녀 돌봄 역할을 맡는 건 대체로 여성입니다. 일하는 엄마가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어난 상황에 비춰보면, 둘째 출산을 주저하는 집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죠. ◦단, 공무원이면 둘째 확률 높아: 맞벌이라고 해도 둘째를 낳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 엄마가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경우죠. 고용이 안정적이고, 육아휴직, 단축근로 같은 제도가 잘 갖춰진 일터라면 여성들이 둘째를 더 많이 낳는다는 얘깁니다. 둘째로 인해 직장에서 받는 불이익이 그만큼 크지 않다는 의미기도 하죠. 2021년 신자은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여성의 직장 유형(민간 기업, 공공 부문, 정부기관)이 자녀 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봤습니다. 그 결과, 여성 공무원의 경우 공기업이나 민간 기업에 다니는 여성에 비해 둘째를 가질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공기업에 다니는 여성이 민간 기업에 고용된 여성보다 둘째 출산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친정엄마 믿고 둘째?: 맞벌이라 해도 양질의 보조 혹은 대리 양육자가 있는 경우 둘째를 낳았습니다. 친정어머니 혹은 시어머니가 함께 살거나 근거리에 사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첫아이의 경우에는 신혼집이 친정집과 가까울수록 빨리 출산을 하는 경향이 밝혀졌습니다. 성균관대 한창근 교수팀이 2000년 이후 결혼한 894가구를 대상으로 친정집과 신혼집 거리와 결혼 후 첫째 아이를 낳을 때까지 걸리는 기간을 비교 분석한 결과죠. 이 연구에선 둘째 출산과의 관련성에 대해선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임미진씨는 차로 10분 거리에 사는 친정 부모님이 초등 1, 2학년인 아이들을 저녁까지 돌봐줍니다. 임씨가 아이를 둘 낳을 수 있었던 이유죠. 그는 “엄마가 결혼할 때부터 “아이는 내가 키워주겠다”고 말씀하신 게 큰 힘이 됐다”며 “엄마가 안 계셨다면 아이 둘을, 그것도 연년생으로 낳을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그는 부모님이 지방에 계시는 여자 후배들에겐 “아예 아이를 낳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조력자가 없으면 아이 하나도 힘들고 둘은 감당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둘째를 꺼리게 하는 제약 요인에 대한 보고서들을 살펴보면 친정어머니 혹은 시어머니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은 기혼 유자녀 여성이 둘째 자녀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둘째를 출산하는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맞벌이 부부인 정호진(37)씨는 장인·장모님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며 7세 아이를 돌봐주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둘째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이유는 “둘째까지 안겨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거였습니다. ━ Part3. 둘째 원한다면 해야 할 일 나이를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고, 맞벌이를 포기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둘째라는 존재를 기대해선 안 되는 걸까요?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두 가지만 좋아져도 둘째를 낳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거든요. ①사교육비는 줄이고 둘째 출산 제약 보고서에 따르면, 첫아이에 대한 사교육비 지출이 높을수록 둘째 출산 가능성은 작았습니다. 젊은 세대가 출산을 기피하는 주요 원인은 단연 경제적인 부담인데요. 양육비 중 교육비는 상당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지난해 아이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은 평균 월 41만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서울의 경우엔 60만원에 육박했죠. 고등학생 자녀의 경우 70만원이 넘었습니다. 이 수치도 ‘평균치’입니다. 양육비엔 교육비뿐 아니라 보육비, 식비, 의류, 보험료 등 포함되는데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만 5세 이하의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양육비는 2021년 기준 한 달 97만6000원이었습니다. 가구 평균 소득의 19%에 해당하는 수준이죠. 어린 자녀가 한 명 있는 집은 86만3000원을 썼고, 둘이면 130만4000원이 들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교육비가 치솟고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아이가 경쟁력을 갖도록 적극 지원해 줘야 한다는 양육자들의 불안과 부담이 커진 겁니다. 하지만 “초등학생 아이를 별다른 프로그램이 없는 방과후 돌봄교실에만 둘 수 없어 학원 뺑뺑이를 돌린다”는 양육자들도 하소연도 적지 않습니다. ②아빠 참여는 늘리고 교육 문제를 남편과 상의하고 결정하는 여성일수록, 또 결혼 만족도가 높을수록 둘째를 낳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남편의 육아·가사 참여가 높을수록 추가 출산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의 ‘여성노동-출산 및 양육행태와 정책과제’(2015년)에 따르면, 아이가 한 명 있는 가정에서 남편의 육아·가사 분담률이 10% 증가할 때 둘째 출산 확률은 1.1%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엄마가 독박육아하면 둘째는 없다.’ 마티아스 돕케(경제학)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와 파비안 킨더만(경제학) 독일 레겐스부르크대 교수가 ‘아기를 둘러싼 협상’(2014)이라는 논문에서 밝혀낸 사실입니다. 유럽에서 출산율이 낮은 국가는 여성이 육아를 전담하고 남성의 참여가 낮다는 공통점을 보였는데, 이런 곳일수록 여성이 재출산을 거부할 확률이 높았다는 겁니다. 반면에 북유럽처럼 출산율이 높은 국가는 남성이 더 많은 육아를 분담하고 있었고요.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떨까요? 통계청의 맞벌이 부부 생활시간 조사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아내는 남편보다 3배 많은 시간을 육아와 집안일에 쓰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54분을, 아내는 3시간7분을 썼습니다. 2014년과 비교하면, 남편의 투입 시간이 13분 늘어나긴 했지만, 아내의 시간은 6분 줄어드는 데 그쳤죠. 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엄마에게 쏠린 부담을 일터와 가정에서 모두가, 특히 배우자인 아빠가 함께 짊어지는 게 저출산을 타개할 수 있는 근본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주장합니다. 최 교수는 그러면서 “현금성 지원으로 출산처럼 삶의 큰 변화를 가져오는 행동을 바꾸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hello! parents는 “어떤 조건이 충족되면 둘째를 낳겠느냐”고 한 자녀 양육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경제적 여유’를 꼽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7세 여아를 키우는 이형석씨는 한 가지 조건을 더 덧붙였습니다. 첫째 아이도 돌봄 걱정 없이 마음 놓고 키울 수 있고, 그 아이가 행복할 거란 보장이 있다면요. 그럼 둘째도 낳고 싶어지지 않을까요? 관련기사 필리핀 이모님 100명 온다? ‘뭐 어쩌라고’ 엄빠의 반문 매일 회사서 2.5시간 버렸다…‘멀티’ 된다는 능력자 착각 요즘 엄마·아빠는 □□□가 다르네 [19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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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많이 읽어주면 좋다고? ‘세 딸 명문대’ 엄마는 달랐다 유료 전용
‘책육아’요? 너무 좋죠. 그런데 마냥 읽어주기만 해서는 안 돼요. 아이가 책을 매개로 경험하고, 놀고, 소통하는 게 핵심입니다. 세 딸을 별다른 사교육 없이 소위 명문대에 보낸 서안정(48) 작가에게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의 첫째는 원광대 한의대, 둘째는 포항공대, 셋째는 고려대에 재학 중이다. 더 흥미로운 건 학원에서 따로 준비해도 떨어진다는 영재교육원을 세 딸 모두 합격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첫째는 인천국제고 인문영재원과 인천북부교육청 희망인재교육 수학반, 둘째는 인천북부교육청 수학·과학통합영재원, 셋째는 인천대 과학영재원 출신이다. 사교육의 도움 없이 하나도 아닌 세 자녀를 영재교육원에 명문대까지 보낸 비결로 그는 책을 꼽았다. 어휘력을 기반으로 이해력과 사고력‧문제해결력‧창의력이 향상되는데, 어휘력을 키우는 데 독서만큼 효과적인 도구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양육 노하우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아이 위대한 힘을 끌어내는 영재레시피』『결과가 증명하는 20년 책육아의 기적』『아이가 버거운 엄마 엄마가 필요한 아이』 등을 썼다. 또 유아교육 전문 사이트에서 20년 넘게 육아 멘토로 활동했다. 독서가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언젠가부터 양육자 사이에서 ‘책육아’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어준다고 모두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크는 것도, 명문대에 진학하는 것도 아니다. 책육아를 제대로 하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25일 서 작가를 만나 책 좋아하는 아이 만드는 법을 물었다. 박정민 디자이너 ━ 📖“책 속 ‘활자’를 ‘현실’로 만들어라” 경험과 놀이. 서안정 작가가 책육아를 할 때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다. 책을 매개로 놀다 보면 독서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책을 읽는 게 ‘활자’를 읽는 따분한 일이 아니라 새로운 놀이를 발견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서안정 작가가 “독서는 눈과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온몸으로 독서를 하라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글을 읽지 못하는 영유아들은 양육자가 책을 읽어 주면 귀로 듣죠. 아이가 좀 더 자라 읽기 독립이 이뤄지면 책을 눈으로 읽고요.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이가 책 내용을 직접 경험하게 하고, 책을 매개로 놀 수 있어야 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영유아 때는 책 내용을 흉내내거나 간단하게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어요. 날씨 관련 책을 읽었으면 비 오는 날 실제로 비를 맞아보고, 과일 관련 책을 읽었으면 사과‧귤‧포도 같은 과일의 모양을 살펴보고 먹어볼 수 있게 돕는 식이죠. 매번 뭔가를 사는 게 부담스러우면 마트에 가서 책에서 본 야채‧과일을 구경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토끼가 깡충깡충 뛰어갑니다’는 문장이 있으면 실제로 두 손으로 토끼 귀 모양을 만들어서 뛰는 모습을 흉내내 보고, 또 동물원에 있는 토끼도 구경하러 가보고요. 이게 바로 ‘책놀이’가 되는 거죠. ‘책놀이’는 뭔가요? 책을 매개로 놀이하는 걸 말합니다. 쉽게 말하면 독후활동이죠. 독후활동을 어렵게 생각하는 양육자가 많은데, 책 내용으로 논다고 생각하면 쉽습니다. 이때 초점을 사고력‧이해력‧표현력을 키우는 데 맞춰서는 안 됩니다. 책을 통해 아이와 양육자가 즐거운 경험을 하고 추억을 쌓는 게 핵심이니까요. 그래야 아이가 책을 더 좋아하고 즐길 수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면 읽게 되고, 이 과정에서 어휘력·문해력·사고력 등은 저절로 따라오는 거예요. 독후활동 초반에 아이가 좋아하는 책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책 내용으로 논다는 게 쉽게 상상이 안 됩니다. 『구리와 구라의 소풍』『소풍가기 좋은 날』『알밤 소풍』 같은 소풍에 대한 책을 읽었다면 소풍 관련 활동을 해보는 겁니다. 소풍갈 때 필요한 준비물이 뭔지 고민해 보고, 아이들과 함께 가방을 챙겨 보세요. 김밥에 들어갈 재료에 대해 얘기를 나누고, 실제로 김밥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고요. 돗자리를 챙겨서 아이들과 집 근처 공원으로 소풍을 떠나는 것도 훌륭한 놀이가 됩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나 주제를 토대로 하면 더욱 효과가 있습니다. 작가님의 아이들도 특별히 선호하는 책놀이가 있었나요? 딸이 셋이라 그런지 공주 파티가 인기가 많았어요. ‘신데렐라’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미녀’ 같은 책을 읽고 실제 동화 속 주인공이 돼 보는 거죠. “공주처럼 파티해 보자”는 말만으로도 애들의 입이 귀에 걸렸죠. 파티하려면 드레스와 장신구가 필요한데요, 완성품을 사주기보다 집에 있는 물건으로 아이와 함께 만들어보는 것을 추천해요. 보자기나 안 입는 옷을 활용하면 되거든요. 자신의 욕구를 주변의 물건을 이용해 채우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사고력과 응용력‧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같은 이유로 집 한쪽에 우유팩‧스티로폼‧빨대 같은 재료를 모아놨어요. 아이들이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스스로 뭔가를 만들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죠. 이 외에는 어떤 독후활동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책 내용을 아이가 직접 경험하게 했어요. 달팽이 관련 책을 읽은 뒤에는 직접 달팽이를 기르거나, 『꽃은 왜 피어요?』를 읽고 실제 씨앗을 키워보는 식이죠. 『소금이 온다』는 책을 읽고 집에서 ‘염전 체험’을 한 적도 있고, 『아기 곰의 생일 케이크』를 읽고 케이크를 만들어 보기도 했어요. ‘지구별 문화여행’ 전집을 읽다가 인도인들처럼 커다란 식물 위에 밥과 반찬을 담아 손을 사용해 먹어본 적도 있죠. 서안정 작가는 "독서는 눈과 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해야 한다"며 "책 속 '활자'를 '현실'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 📖“책을 매개로 아이와 소통하라” 아이와 책 관련 얘기를 나누는 것도 책육아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책을 매개로 한 경험이나 놀이가 어렵다면 대화만으로도 훌륭한 독후활동이 될 수 있다. 그는 “책을 아이와 즐겁게 소통하는 수단이자 도구로 만들려면 주의할 게 있다”고 당부했다. 정답이 있는 ‘닫힌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요? 대다수 교육전문가가 오지선다형 객관식 시험이 챗GPT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과 궤를 같이합니다. 정답이 있는 질문으로는 아이의 사고력이나 창의력을 키울 수 없어요.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을 해야 합니다. 책을 다 읽은 뒤 ‘주인공이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묻는 식이죠.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백설공주’의 앞부분을 예로 들어 볼게요. ‘흰 눈이 솜사탕처럼 쌓이던 겨울이었어요. 눈처럼 하얗고 예쁜 공주가 태어났어요. 왕비는 아기를 백설공주라고 불렀어요. 하얀 눈이라는 뜻이지요.’ 이 4개 문장을 토대로 5~7세 아이에게 다양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공주 이름이 왜 백설공주야?” “백설공주는 어느 계절에 태어났지?”와 같은 질문은 각각 ‘눈처럼 하얗고 예뻐서’ ‘겨울’이라는 정답이 있어요. 반면에 ‘겨울이 아니라 봄이나 여름‧가을에 태어났으면 공주 이름을 뭐라고 지으면 좋을까?’ ‘눈처럼 하얀 건 또 뭐가 있어?’ ‘겨울 하면 눈 외에 뭐가 생각나?’ 같은 질문은 정답이 없죠. 이런 질문에 답하면서 아이는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요. 정답이 없으니 양육자는 아이가 뭐라고 대답해도 칭찬하는 게 가능하죠.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는 자신감까지 얻을 수 있고요. 사실 그냥 책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꼭 체험이나 대화가 필요한가요? 단순히 듣고, 읽는 것보다 실제 체험하는 게 소위 학습 효과가 좋아요. 미국 교육연구소(NTL‧National Training Laboratories)가 발표한 ‘학습 효과 피라미드’ 연구에 따르면, 교사의 설명을 듣는 강의식 공부를 한 학생들은 24시간 후 5%밖에 기억을 못 했어요. 효과가 가장 떨어졌죠. 반면에 직접 해보거나 체험한 학생은 배운 내용의 75%를 기억했습니다. 양육자가 책 읽어주는 게 강의 듣는 것과 비슷하다는 건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이외에 책을 읽거나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는 수동적인 학습법도 평균 기억률이 30%를 넘지 못했어요. 반면에 능동적으로 학습에 참여한 학생들은 배운 내용을 더 오래 기억했어요. 배운 걸 다른 사람에게 가르친 경우 90%까지 머릿속에 남았죠. 인간에게 다양한 감각이 있고, 이를 잘 활용하는 게 효과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책을 읽은 뒤 체험하거나, 책 내용으로 대화하는 게 중요한 이유죠. 그렇다고 양육자 욕심에 아이가 원하지 않는 활동을 억지로 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왜죠? 아이와 양육자가 즐거운 게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횟수도 일주일에 1~2번이면 충분해요. 양육자 혼자 독후활동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책을 싫어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어요. 이건 제 경험담이기도 해요. 작가님은 아이를 키우면서 3000권의 책을 읽으셨다고 들었어요. 원래 독서를 좋아하셨던 거 아닌가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책을 좋아하는 아이가 ‘될 뻔’했죠. 아버지 욕심에 책과 담을 쌓게 됐지만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친구네 집에 갔다가 ‘신데렐라’ ‘백설공주’ 같은 명작동화를 봤어요. 세상에 이렇게 예쁜 책이 있다는 걸 처음 알고 충격을 받았죠. 공주님과 왕자님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내용은 어린 저를 설레게 했어요. 그 책을 읽으려고 매일 친구네 집에 놀러 갔으니까요. 부모님께 ‘책을 사 달라’고 졸랐는데, 아쉽게도 명작동화가 아니라 위인전을 사주셨어요.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세종대왕’ ‘이순신’ 같은 책을 읽으면서 또 재미를 느꼈죠. 하지만 어느 날 아버지께서 독후감을 써내라고 하셨어요.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확인하겠다고요. 그 뒤로 첫째 낳을 때까지 사실상 책에서 손을 놨어요. 제가 책육아에서 아이 흥미와 성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서안정 작가는 "책을 매개로 아이와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책 내용과 관련해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을 하라"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 📖“전집보다 단행본? 잘만 활용하면 가성비 甲” 책육아에서 중요한 일은 또 있다. 바로 책을 고르는 일이다. 아이의 흥미를 유발하는 책을 잘만 골라도 절반은 성공이다. 하지만 초등학생은 물론 영유아 대상 책이 넘쳐난다. 양질의 책을 선별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전집과 단행본 사이에서 고민하는 양육자가 많다. 전집과 단행본 중 어떤 걸 선택하는 게 좋을까. 그는 “전집을 아이 취향을 파악하는 기회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전집과 단행본의 장단점이 뭔가요? 10~100권으로 된 전집은 책 구성이나 내용이 체계적이고 다양한 도서를 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에요. 하지만 한 번에 큰 비용이 들고, 아이가 모든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게 문제죠. 반면에 단행본은 양질의 도서를 선별해 구매할 수 있고, 가격 부담이 적어요. 하지만 양육자가 책 한권 한권을 살펴보고 골라야 하기 때문에 품이 많이 들죠. 다양한 책을 접하지 못하는 것도 단점이고요. 어떤 게 좋은가요? 정답은 없습니다. 아이 성향과 기질에 따라 다르니까요. 가장 좋은 책은 아이 수준에 맞고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책이에요. 옆집 애가 좋아한다고 우리 애가 잘 본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책을 많이 접하지 않은 영유아라면, 또 ‘책 편식’이 없는 아이라면 전집을 추천해요. 하지만 구매 전에 매장에 가서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지 살펴보는 게 필요합니다. 효과적인 건 전집과 단행본을 병행하는 거고요. 어떤 식으로 병행하면 될까요? 전집으로 아이의 취향을 파악한 뒤 단행본으로 확장해 나가면 됩니다. 전집은 한글‧과학‧수학‧동화‧자연관찰‧창작‧생활처럼 같은 분야의 책 수십 권으로 구성돼 있어요. 그중 아이가 흥미를 보이는 책이 적어도 한두 개는 있을 겁니다. 예컨대 그림책 전집을 사줬는데, 아이가 다른 책은 안 보고 ‘자동차’ 관련 책만 본다고 할게요. 그럼 양육자는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알게 된 겁니다. 취향을 파악하면 이후는 쉬워요. 관련 주제를 중심에 두고 확장해 나가면 되니까요. 주제 확장요? 자동차를 좋아하면 자동차의 종류나 구조‧역사 관련 단행본을 사주는 식이죠. 그뿐 아니라 자동차 종류에서 오토바이‧비행기‧배‧우주선 같은 탈 것의 종류와 구조‧역사로도 확장이 가능합니다. 자동차 역사에서 한국‧세계 역사로 분야를 뻗어 나갈 수도 있고요. 독서를 즐기지 않는 아이도 좋아하는 분야 책에는 관심을 보입니다. 그렇게 한 단계씩 넓혀 나가면 됩니다. 사실 그가 ‘책육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었다. 비수도권 대학 출신이라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때 극심한 취업난을 겪었고, 체벌이 당연한 시절에 자란 탓에 자존감도 낮았다. 그래서였을까. 갓 태어난 첫 아이를 안고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살게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방법을 몰랐다. 아이가 100일 때 바람 쐴 겸 찾아간 동네 서점에서 만난 책이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일본의 권위 있는 교육학 박사인 시치다 마코토가 쓴 『0세 교육의 비밀』『기적이 일어나는 0세 교육』이 바로 그 책이다. 서 작가는 시치다 마코토의 저서를 모두 읽고, 책 속에 나온 다른 저자들의 책도 구해 읽으며 아이를 잘 키우는 방법을 배워 나갔다. 그렇게 읽은 책이 총 3000권 정도 된다. 세상에 책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재밌게 읽을 책을 아직 못 찾은 것뿐이지요. 독서에 늦은 때는 없습니다. 오늘 당장 책육아를 시작해 보세요. 서안정 작가는 "세상에 책을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며 "지금 당장 '책육아'를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김현동 기자 ■ 세 딸 명문대 보낸 엄마의 책육아법 「 ① “책 속 ‘활자’를 ‘현실’로 만들어라.” 독서는 눈‧귀가 아니라 온몸으로 해야 한다. 책 10권을 그냥 읽어주는 것보다 책 한권 읽고 독후활동을 하는 게 중요하다. 독후감 쓰기처럼 거창한 게 아니라 ‘날씨 관련 책 읽고 비 맞아보기’ ‘사과 관련 책 읽고 사과 만져보고 먹기’처럼 책 속 이야기를 실제로 경험하게 하자. ② “책을 매개로 아이와 소통하라.” 아이와 책 관련 얘기를 나누는 것도 중요하다. 대화만으로도 훌륭한 독후활동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는 ‘주인공은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백설공주가 봄에 태어났다면 이름을 뭐로 짓는 게 좋을까?’처럼 정답이 없는 ‘열린 질문’을 하는 게 중요하다. ③ “전집보다 단행본? 잘만 활용하면 가성비 甲.” 대부분 양육자가 전집과 단행본 사이에서 고민하는데, 전집을 아이의 취향을 파악하는 도구로 활용하면 좋다. 전집 중 관심을 보이는 주제와 관련한 단행본을 구입해 읽히는 식이다. 아이가 자동차를 좋아하면 그림책에서 자동차 종류‧구조‧역사로 확장하고, 비행기‧배‧우주선으로 뻗어나가면 된다. 」 관련기사 아이가 책 거꾸로 들고 보나요? 그럼 아주 잘하고 있는 겁니다 4자녀 ‘영어 영재’ 만든 비법 “모르는 단어 뜻 찾지마라” 집안일 안 해도 이건 꼭 했다, 세 딸 하버드 보낸 ‘母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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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다 안떼도 된다”던 교사, 첫째는 입학 전 가르친 이유 유료 전용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글을 떼야 하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그럼 전 이렇게 묻습니다. 아이의 기질이 어떠냐고요. 2017년생의 초등학교 입학까지 남은 시간은 채 190일이 안 된다. 예비 학부모의 마음도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18년 차 초등 교사인 하유정씨는 “질문이 잘못됐다”고 잘라 말했다. 아이의 성향과 기질에 따라 초등 입학 준비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외향적이라면 좀 모르고 입학해도 큰 문제가 안 되지만,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라면 그렇지 않단다. 박정민 디자이너 하유정 교사는 『두근두근 초등 1학년 입학 준비』『초등 공부 습관 바이블』『1학년 한글 떼기』 등의 저자로, 최근 4년간 초등 1학년 담임을 맡았다. 초등 6학년, 4학년 두 딸을 키우는 양육자기도 하다. 지난 17일 만난 그는 “초등 입학에 대한 막연한 오해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카더라 통신’ 때문에 양육자는 불안하고, 아이는 학교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1학년 담임 경험이 많은 베테랑 교사에게 초등학교 입학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물었다. ━ 오해① 한글 다 떼고 학교 가야 한다? 예비 학부모가 맞닥뜨리는 가장 시급하고 구체적인 고민은 한글이다. 한글을 모른 채 입학하는 아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 교사는 “그렇다고 읽기와 쓰기에 완벽한 아이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막상 교실에서 만난 아이 10명 중 4명은 이제 본격적으로 한글을 익혀야 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글을 전혀 모르는 채 입학하는 건 자신감이나 적응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어느 정도 읽고 쓸 줄 알아야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없을까요? ‘모자’처럼 자음과 모음을 결합한, 받침 없는 글자 정도 읽고 쓸 수 있다면 충분합니다. 실제 입학 후 3개월 동안 이 정도 배웁니다. 이 수준이면 한글을 다 떼고 온 아이들과 비교해 크게 뒤처진 느낌도 받지 않아요. 게다가 현재 1학년의 경우 한글 수업에 57시간이 배정돼 있는데, 내년에는 91시간으로 크게 늘어납니다.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아이가 못 따라간다고, 조급하거나 불안할 필요도 없어요. 그보다 강조하고 싶은 건 아이의 성격과 기질입니다. 기질에 따라 진도가 달라져야 하거든요. 기질이 한글 학습 진도와 무슨 상관이죠? 한글을 너무 많이 알아서 곤란한 아이도 있습니다. 아는 걸 또 배우면 흥미를 잃는 아이도 있어요. 이런 아이는 ‘시시하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잖아도 한글 수업이 늘어나는데, 학교생활 자체를 지루하게 느낄 수 있겠죠. 아이가 하고자 한다면 굳이 말릴 필요야 없겠지만 무리해서 한글을 공부시킬 필요도 없다는 얘깁니다. 하유정 교사는 "초등 입학 전, 자음과 모음을 결합한 받침 없는 글자를 읽고 쓰는 정도로 한글을 익히면 학교생활 적응에 어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아이가 활달하긴 한데, 읽고 쓸 때 실수가 잦다면 더 꼼꼼하게 가르쳐야 할까요?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활발한 아이는 사실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아이들은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잘 묻거든요. 자음, 모음을 구별하고 낱글자 소릿값을 아는 수준 정도면 크게 지장이 없어요. 학교 수업만 잘 따라오면 짧으면 3개월, 길면 1년 내 한글을 뗄 수 있습니다. 소심하고 예민한 아이는 어떤가요? 그런 아이라면 한글을 충분히 익히고 입학하는 게 좋아요. 그래야 자신감을 잃지 않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거든요. ‘부엌’ ‘꽃’ ‘있다’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받침 글자를 읽고 쓸 줄 아는 게 좋습니다. 양육자로서 저도 첫째는 입학 전에 한글 공부를 많이 시켰어요. 예민한 기질이거든요. 반면에 무던한 둘째는 받침 없는 기본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정도만 깨치고 학교에 갔고요. 다시 말하지만 한글은 완벽하게 익힐 필요는 없어요. ‘왜’ ‘웨’ 같은 이중모음이나 ‘밝다’ ‘앉다’ 같은 겹받침 등 정교한 맞춤법은 2학년까지 충분히 학습할 시간이 있어요. 아이의 인지 능력이 발달하면 더 빨리 배우고, 틀린 부분도 스스로 잘 찾아냅니다. 한글을 어느 정도 익힌 아이라면 독서 외에 어떤 활동이 도움이 될까요? 쓰는 경험을 많이 하게 해주세요. 쓰기를 하게 하려면 멍석도 깔아줘야 하고 지도도 필요해요. 그런데 학교 수업만으로는 쓰기를 충분히 경험하기 힘들어요. 특히 1학년 1학기에는 학교에서 받아쓰기나 일기 쓰기 같은 쓰게 활동을 하지 못합니다. 안 그래도 적응하느라 힘든 아이들에게 부담을 줄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학년이 올라가면 쓰기 활동이 크게 늘어난다는 겁니다. 집에서 쓰기를 충분히 경험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상당히 어려워할 수밖에 없어요. 양육자분들이 책은 많이 읽어주는데 쓰기엔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일기 쓰기를 추천해요. 집에서 부담 없이 하기 쉬운 쓰기 활동이거든요. 아직 쓰는 게 익숙하지 않은데, 어떻게 일기를 쓰죠? 한글을 모른다면 그림을 그려도 좋습니다. 아이에게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말로 하게 하고, 엄마 아빠가 대신 글로 써주셔도 되고요. 입말이 문장, 글로 바뀌는 과정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되거든요.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요. 그날 라면을 끓여 먹었다면 ‘보글보글 라면 맛있었어’ 같은 문장 하나만 써도 그만입니다. 중요한 건 일기를 숙제나 의무처럼 느끼지 않아야 한다는 거죠.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벼운 일과처럼 느끼게 해주세요. 그러려면 엄마, 아빠도 같이 일기를 쓰는 게 좋아요. 서로 일기를 바꿔도 보고요. 저도 첫 아이가 여섯 살부터 거의 매일 일기를 썼는데요. 7년 가까이 아이가 쓴 일기장이 수북합니다. 처음에는 이게 글씨인지 알아보지도 못하는 수준이었는데, 나중엔 ‘데굴데굴’ 같은 표현도 나오더라고요. 일기장이 아이의 성장 기록이자 역사예요. ━ 오해② 엄마 손 많이 탄다?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은 워킹맘에겐 경력단절의 최대 고비로 꼽힌다. 정오면 하교해 생기는 돌봄 공백도 문제지만, 전반적으로 양육자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준비물이며 숙제 등 챙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하 교사는 “아이가 준비물을 놓고 가더라도 절대 가져다주지 말라”고 조언했다. 어째서일까? 워킹맘은 아이를 곁에서 세세하게 챙겨줄 수 없으니 더 불안해요.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요. 교사가 아이를 보면 엄마가 워킹맘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까요? 전혀요. 걱정할 필요도,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어요. 워킹맘들께 위안이 될 수 있는 사실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오히려 엄마가 일하는 아이 중엔 뭐든지 스스로 알아서 야무지게 하는 아이가 많아요. 중요한 건 엄마가 일하느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아이가 스스로 잘할 수 있느냐죠. 초등학생은 유치원생과 달리 혼자, 스스로 해야 할 일이 늘어나니까요. 하유정 교사는 "자녀가 스스로 잘하는 아이가 될 수 있도록 생활 습관을 잡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호 기자 스스로 잘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렇게 만들려면 잔소리만 늘 것 같아요. ‘이제 혼자 해야지’라고 말면서도 아이 일을 대신해 주는 양육자가 많습니다. 스스로 잘하려면 그런 경험이 많아야 해요. 지금부터라도 잠자리 정리나 책상 정리 같은 작은 일은 스스로 하게 하세요. 시행착오도 겪고, 실패도 해봐야 다음엔 어떻게 해야겠다는 경험치가 쌓입니다. 그러면 더 잘할 수 있고요. 어떤 일부터 혼자 해보도록 하면 좋을까요? 아이가 입을 옷부터 직접 고르게 하세요. 지나치게 춥거나 덥게 입는 게 아니라면 아이의 선택을 존중해 주시고요. 만약 아이가 불편했다면 다음엔 그 옷을 입지 말아야겠다는 걸 깨닫겠죠. 아이가 혼자 힘으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경험이 꼭 성공 경험만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준비물도 마찬가지예요. 아이가 빠뜨린 준비물을 학교로 가져다주는 양육자분들이 종종 있는데요. 그냥 두세요. 준비물 안 가져왔다고 아이가 불편하거나 주눅들지 않을까요? 리코더가 준비물인데, 안 가져왔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기껏해야 40분 리코더 수업 한 번 못 하는 겁니다. 아이는 연필이라도 꺼내 리코더처럼 꼼지락 대볼 거고요. 이런 적당한 불편함도 감수해 보고 이겨내는 경험을 아이도 할 필요가 있어요. 그러면 ‘다음번엔 잊지 말고 리코더를 챙겨야겠다’고 다짐하겠죠. 그런데 그때마다 준비물을 매번 가져다주면 어떨까요? 준비물을 챙기는 건 ‘아이 일’이 아니라 ‘엄마 일’이 되는 거예요. 실제로 아이들이 준비물 까먹고 왔을 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엄마가 안 챙겨줬어요’예요. 매번 엄마가 준비물 챙겨주면 아이가 중학생 때도 챙겨줘야 해요. 하유정 교사는 "거실에 메모판을 두고 아이를 포함해 가족이 일정, 할 일을 메모하고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라"고 조언했다. 김종호 기자 아이가 매번 깜빡하거나 자기 할 일을 안 하면 어떻게 하죠? 거실처럼 온 가족이 모이는 공간에 작은 칠판형 메모판을 두세요. 그리고 각자 챙길 일의 목록을 메모하는 겁니다. 아이도 숙제, 준비물, 주요 일정 등을 적게 하고요.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지 스스로 계획하고 챙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등교 전이나 하교 후에 리스트를 확인하고 완수하는 습관도 들일 수 있고요. 주의할 게 하나 있어요. 이게 아이를 감시하는 용도가 돼선 안 된다는 겁니다. 가족끼리 일상을 공유하고 서로를 챙겨준다고 느껴야 해요. 그러려면 엄마, 아빠도 함께 메모해야 합니다. 양육자부터 맡은 일을 완수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아이 스스로 하도록 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일단 때와 장소를 지정해 구체적으로 말해주세요. ‘학교 다녀오면 가방 제자리에 둬라’ 대신 ‘집에 오자마자 가방은 책상 옆 고리에 걸어놓자’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 양육자가 먼저 시범을 보여주세요. 아직 정리·정돈이 서툰 아이라면 같이 정리하면서 어떻게 하는지 몸소 보여주는 겁니다. 습관이란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죠. 그래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지금부터라도 서서히 일상에 스며들게 만들어야 해요. ━ 오해③ 친구가 중요하다? 자녀를 처음 학교에 보낸 양육자의 최대 관심은 단연 친구 관계다. 새로운 환경에서 친구는 잘 사귈지, 혹시 왕따나 학교폭력 문제에 휘말리진 않을지 걱정이 많다. 하 교사는 “또래 관계가 걱정된다면 아이의 평소 말 습관부터 점검해보라”고 말했다. 말 한마디가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하고, 원만한 관계를 맺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말 습관이 있나요? 짜증을 내거나 울면서 말하는 아이가 정말 많아요. 말보다 먼저 몸이 나가는 경우도 많고요. 감정을 가라앉히고 담백하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친구가 놀리는 상황에서 ‘하지 마’하고 울어선 안 됩니다. ‘네가 놀리니까 기분 나빠. 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말아줘’라고 또박또박 말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사람보다 행동에 초점을 맞춰서 말하는 게 좋습니다. 하유정 교사는 "아이가 '사람'보다 '행동'을 중심에 두고 말하는 연습을 시키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행동 중심으로 말한다는 게 어떤 거죠? 앞뒤 상황 없이 ‘너 나빠’ ‘너 싫어’ 이런 식으로 말하는 아이가 많습니다. 이럴 때 ‘네가 새치기한 행동은 나빠’ ‘네가 나를 놀리니까 기분이 나빠’라고 말해야 해요. 행동 중심으로 말하는 거죠. 사람을 중심에 두고 말하면 그 사람 자체에 탓하는 것처럼 들을 수 있어요. 관계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크죠. 그리고 양육자분들께 당부하고 싶은 게 있어요. 갓 입학한 아이에게 ‘오늘 누구랑 놀았어?’라고 묻지 말라는 겁니다. 왜죠? 아이가 누구랑 친하게 지내는지 궁금할 것 같은데요.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있다면 괜찮아요. 그런데 만약 아이가 ‘혼자 놀았다’고 하면 어떨까요? 그때부터 문제가 커져요. 누구랑 놀았냐는 질문엔 친구랑 놀아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죠. 혼자 노는 걸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합니다. 막상 저학년 아이들은 누구랑 놀았는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놀이나 활동 중심으로 어울려 놉니다. 누군가 게임을 하고 있으면 그쪽으로 우르르 가서 놀다가 또 누군가 술래잡기를 하자고 하면 그쪽에 가서 노는 식이죠. 아이 학교생활이 궁금하다면 ‘뭐 하고 놀았어?”라고 물어보세요. 아이가 누군가랑 놀아야 한다는 강박에도 벗어날 수 있고, 좋아하는 활동에 따라 맞는 친구를 찾기도 수월합니다. 친구가 없다고 하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어요. 친구를 만들도록 도와줘야 할 것 같고요. 친구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학기 초는 아이들도 관계 맺기에 굉장히 예민해요. 탐색과 관찰에 시간을 많이 써야 하는 아이도 있고, 혼자 있는 걸 편하게 느끼는 아이도 있고요. 그런 아이에게 지나치게 친구 관계를 강조할 필요는 없다는 얘깁니다. 물론 소속감과 안정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라면 한두 명 마음 맞는 친구가 있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아이라면 친구와 직접 약속을 잡게 하고, 각자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놀이터나 서로의 집에서 놀게 하는 게 좋습니다. 하유정 교사는 "갓 입학한 아이에게는 '누구랑 놀았어?'보다 '뭐 하고 놀았어?'라고 묻는 게 좋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하 교사는 “아이 친구 문제도 아이 몫”이라고 말했다. 엄마가 만들어 준 친구는 오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뷰 내내 그가 강조한 “문제의 당사자인 아이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과 사실은 같은 얘기다. 그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대신해 주는 건 아이가 잘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잘해냅니다. 불안해하지 마세요. 결국 해결되지 않는 고민은 없습니다. 아이들은 자라고요. ■ 현직 교사가 말하는 초등 입학에 관한 오해 셋 「 ①한글 다 떼고 학교 간다? 한글 아예 모르면 곤란해요. 받침 없는 기본 글자 읽는 정도면 학교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만약 아이가 예민하면 받침 있는 글씨 읽고 쓰면 정도면 충분해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②엄마 손 많이 탄다? 스스로 잘 하는 아이가 되는 게 핵심입니다. 일상 생활에서도 혼자 해보는 경험을 늘려가야 해요. 아침에 옷 골라 입고, 가방 정리하는 일부터요. 혼자 하면서 불편함도 견뎌보고 실패해봐야 더 잘 할 수 있어요. ③친구가 중요하다? 감정을 가라앉히고 자기 생각과 의사를 분명히 전달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람보다 행동을 중심으로 두는 화법도 훈련해보세요. 아이의 말 습관이 친구와 관계 맺기, 학교 생활 적응력을 높이는 열쇠가 됩니다. 」 관련기사 “아이 바꾸려고 하지 마라” 예민한 아이와 대화하는 법 “문해력 키우고 싶은가? 그럼 종이접기 시켜라” 할부로 비싼 책상부터 질렀다…회사 나와 연봉 2배 뛴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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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이모님 100명 온다? ‘뭐 어쩌라고’ 엄빠의 반문 유료 전용
필리핀 이모 100명 온다. 박정민 디자이너 지난달 31일 고용노동부가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가 열리자 쏟아진 기사 제목입니다. 연내 정부 인증을 받은 서비스 제공 기관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비전문 취업(E-9) 비자를 발급받은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해 해당 기관과 계약을 맺은 가정으로 보내겠다는 거예요. E-9 비자가 적용되는 고용허가제 외국인력 송출 국가인 동남아시아 16개국 중 필리핀이 대표 격으로 지목된 것입니다. 필리핀의 경우 자국 직업훈련원에서 6개월간 교육을 받고 수료증까지 발급받아야 외국에서 일할 수 있거든요. 홍콩·싱가포르 등 이미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를 도입한 국가에 가장 많은 인원을 파견하는 나라이기도 하죠. 하지만 정작 시범사업 도시인 서울에서 아이를 키우는 20~40대 맞벌이 부부, 한 부모, 임산부 등은 시큰둥한 반응입니다. 지금도 일할 사람이 없어서 가사·육아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정마다 필요한 조건에 부합하는, 믿을 만한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이 문제인데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는 거죠. 가격 인하 효과도 미미합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출퇴근하는 통근형의 경우 월 200만원가량의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고용부 관계자는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을 토대로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다”며 “현재 수요조사를 진행 중이며 결과가 나오면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hello! Parents는 양육자의 입장에서 필요한 가사근로자의 모습을 들여다봤습니다. 8명의 양육자에게 지금 이용하는 서비스는 무엇이고, 가장 불편을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개선되길 바라는지 물어봤습니다. 고용부는 이달 초 해당 직종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가사관리사’라는 새로운 호칭을 제안했지만, 현장에서는 ‘이모님’ ‘아줌마’ ‘도우미’ 등 다양한 호칭을 혼용해 쓰고 있었는데요, 호칭만큼이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컸습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에게 진짜 도움이 되는 제도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이번 사업에 관해 양육자가 궁금해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봤습니다.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어 양육자의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 목차 「 Part 1. 육아·가사 다 된다고요? : 글쎄요 Q1. 육아 말고 가사만 써도 되나요? Q2. 통근형만 쓸 수 있는 건가요? Q3. 2주에 한 번만 써도 되나요? Part 2. 외국인, 믿을 수 있나요? : 검증은 했어요 Q4. 어떤 정보를 확인하나요? Q5. 다른 나라 분이 오면 어쩌죠? Q6. 영어 학습 효과 있을까요? Part 3. 비용, 더 싸지긴 하나요? : 기대만큼은 아니에요 Q7. 최근에 왜 더 비싸졌나요? Q8. 홍콩·싱가포르는 왜 싼가요? Q9. 가사근로자의 공급이 느는 건 확실한가요? Part 4. 양육자, 뭘 원하는지 알고 있나요? : 그러게요 Q10. 공공 서비스 늘려줄 수 있나요? Q11. 지원금 소득 기준 완화 되나요? Q12. 근무시간 정말 줄여도 되나요? 」 ━ Part 1. 육아·가사 다 된다고요? : 글쎄요 10명 중 6명. 2021년 고용부에서 맞벌이 여성 5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조사에서 현재 가사서비스를 이용하고 있거나(26.8%), 과거 이용해본 적이 있다고(36.8%) 응답한 사람의 비율입니다. 특히 자녀 등 돌봄 대상이 있는 경우는 75.1%가 이용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고용부가 이번 사업을 저출생 대책으로 들고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들은 “외국인 이모님을 쓸 수 있다고 해서 아이를 낳진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되레 “가사부터 육아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허상에 가깝다”는 지적입니다. Q1. 육아 말고 가사만 써도 되나요? 가사근로자라는 통칭과 달리 가사·돌봄 노동은 점차 세분화·전문화되고 있습니다. ‘산후관리사’는 출산 직후 산모와 100일 이내의 신생아 돌봄에 특화돼 있습니다.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만 6세 미만 영유아를 돌보는 ‘시터 이모님’과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데려다주거나 데리고 오는 ‘등하원 도우미’는 또 다릅니다. 돌봄 대상에 따라 일의 범위도 달라집니다. 산후관리사는 산모를 위한 요리와 빨래, 청소 등을 도와주지만 시터 이모님이나 등하원 도우미는 아이 간식을 챙기고 장난감을 정리하는 식으로 아이와 관련된 일만 합니다. 2015년 ‘대리주부’ ‘미소’ 등 청소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청소는 이들 서비스에 맡기고, 반찬은 ‘컬리’ ‘쿠팡’에서 배달시키고, 빨래는 ‘런드리고’ ‘세탁특공대’에 맡기는 등 여러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게 됐죠. 6개월 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강지원(41)씨는 “설거지나 화장실 청소는 남의 손에 맡겨도 아이는 내 손으로 키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강씨는 “집이 아무리 난장판이라도 애를 돌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산 후 6주간 300만원짜리 산후관리사 서비스를 이용하고, 한 달간 300만원에 종일제 육아 전담 이모님을 고용해 본 뒤 내린 결론입니다. 무엇보다 비용 문제가 컸습니다. 산후관리사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소득 수준에 따라 일부 비용을 지원해 주지만, 육아 전담 이모님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그는 주 1~2회 가사서비스만 이용할 계획입니다. 무엇보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최대한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강씨와 같은 양육자에게 외국인 청소 도우미는 몰라도 육아 전담 이모님은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이 아이를 돌보며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Q2. 종일형만 쓸 수 있는 건가요? 현재 도입 예정인 통근형·종일형 돌봄에 대한 수요가 가장 높은 곳은 영유아가 있는 가정입니다. 부모가 육아휴직을 사용하지 못하거나 조부모 등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온종일 아이를 봐줄 다른 보호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면 필요한 돌봄 유형도 바뀝니다. 13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빠 우현수(35)씨가 그런 경우입니다. 지금은 아이돌봄 매칭 플랫폼을 통해 구한 종일형 이모님을 쓰고 있는데,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등하원 도우미로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씨는 “어린이집도, 등하원 이모님도 경쟁이 치열해 무기한 대기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양육자들은 “종일형 이모님보다 등하원 도우미가 구하기 어렵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입을 모으는데, 정작 가장 공급이 부족한 부분은 메워지지 않는 셈입니다. 어렵게 육아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기도 합니다. 30개월 아이를 키우고 있는 윤서진(36)씨는 출산휴가와 육아 휴직 후 복직하며 어린이집과 하원 도우미 이모님을 쓰고 있었는데요, 이모님이 갑자기 그만두면서 돌봄 공백이 생겼습니다. 윤씨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입니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윤씨는 “남편의 육아휴직 후 아이와 아빠의 관계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역시 아이 곁에는 가족이 있어야 하는구나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복직이 코앞인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연장반에 보내자니 아이를 10시간 넘게 어린이집에 두는 게 마음에 걸리고, 육아기 단축근무를 신청하자니 월급이 25% 정도 줄어드는 게 걸립니다. 그렇다고 하루 4시간 주 5회 이모님 월급 120만원을 드리는 것도 선뜻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단축 근무를 해서 주는 돈이나 이모님 드리는 돈이나 엇비슷하기 때문입니다. Q3. 2주에 한 번만 써도 되나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 육아보다 가사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커집니다. 아이가 집보다 학원 등 다른 기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키우는 이정현(39)씨는 3년 전 주 2~3회 요리와 청소만 도와주는 이모님을 썼지만, 지금은 쓰지 않습니다. 이모님이 종일형 일자리를 구하면서 그만뒀기 때문입니다. 이씨는 “이모님은 종일제 일자리를 원하지만 양육자는 시간제 도우미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가격경쟁력만 있다면 외국인 가사 서비스는 써볼 의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육아 전담 이모님을 쓰고 있는 윤서진씨도 “비용이 부담돼 청소 서비스는 2주에 한 번 이용한다”며 “같은 분이 주기적으로 오면 좋겠지만 이용 횟수가 적고 아이가 어린 집은 다들 기피하는지 매칭도 잘 안 된다”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홈서비스 플랫폼이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을 반기는 이유는 이 같은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이봉재 홈스토리생활 부대표는 “‘대리주부’ 앱을 다운로드한 회원은 45만 명인 반면, 가사근로자는 2만5000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중에서 한 번이라도 일한 사람은 20~30% 수준입니다. 이 부대표는 “아무래도 50~60대 중장년층이 많다 보니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를 하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20~30대 젊은 외국인이 들어오면 전일제 공급도 늘어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연현주 생활연구소 대표는 “‘청소연구소’ 이용 패턴을 보면 주 1회 4시간 등 시간제 방식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며 “고객이 필요한 시간에만 합리적인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보다 다양한 옵션을 제공해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Part 2. 외국인, 믿을 수 있나요? : 검증은 했어요 52.4%. 이달 발표된 오픈서베이 ‘육아 트렌드 리포트 2023’에서 36개월 미만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현재 우리 사회는 아이를 낳고 키우기 좋은 환경인가’라는 질문에 ‘좋지 않다’(35.2%)와 ‘매우 좋지 않다’(17.2%)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입니다. 반면에 ‘매우 좋다’(1.2%)와 ‘좋다’(10.6%)고 답한 사람은 11.8%에 그쳤습니다. 자녀 돌봄을 위해 어린이집(34.5%)은 물론 아내 부모님(33.2%), 본인 또는 배우자의 형제·자매(27.6%), 남편 부모님(18.6%) 등 다양한 가족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베이비시터(8.4%)와 등하원·놀이 도우미(5.9%) 등은 아이가 어릴수록 더 높은 이용률을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외국인 가사근로자는 자녀 돌봄의 조력자로서 유의미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Q4. 어떤 정보를 확인하나요? 이모님 채용은 A부터 Z까지 양육자의 손을 거칩니다. 아는 사람을 소개받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주로 ‘맘시터’ ‘시터넷’ 등 매칭 서비스나 지역 맘카페를 통해 정보를 찾습니다. 플랫폼에서 기본적인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지만, 시터 선택부터 면접, 고용, 임금 지불에 이르기까지 양육자가 직접 진행하며 믿을 만한 사람인지 검증해야 합니다. 특히 영유아의 경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집에 CCTV를 설치하는 경우도 많죠. 이에 고용부는 외국인 가사근로자의 경력 및 범죄 이력을 확인하고, 실무 투입 전 아동학대를 비롯해 가사·육아·위생·안전 관련 교육을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양육자의 마음을 안심시키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이용자가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정보 자체가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윤서진씨는 “시터 고용 시 주민등록등본과 보건증은 기본적으로 확인한다. 예전에 일했던 집이나 가족 연락처도 물어본다”고 말했습니다. “직접 전화해 본 적은 없지만 문제가 없다면 거리낌없이 알려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또 다른 인증 절차를 만들어둔 셈입니다. 그는 “여러 플랫폼을 이용해 봤지만 ‘당근마켓’이나 지역 맘카페를 통해 구한 분이 제일 오래 있었다. 아무래도 동네 주민이다 보니 서로 믿을 수 있고 돌발 상황에 대처하기도 용이한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Q5. 다른 나라 분이 오면 어쩌죠? 현재 한국에서 합법적 가사근로자로 활동할 수 있는 외국인은 거주(F-2)·재외동포(F-4)·영주(F-5)·결혼이민(F-6)·방문취업(H-2) 체류자격 소지자입니다. 법무부가 발표한 지난해 국내 외국인 체류 현황을 살펴보면 전체 224만5912명 중 중국이 84만9804명(37.8%)으로 가장 많고, 베트남·태국·미국·우즈베키스탄 순입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비전문 취업(E-9) 비자 소지자는 22만5307명으로 네팔·캄보디아·인도네시아·베트남·미얀마 순입니다. 현재 E-9 비자는 제조업·농축산업·어업·건설업 등 일손이 부족한 업종에 개방되어 있어요. 이 비자가 가사근로자로 확대되면 필리핀뿐 아니라 다른 국가 이모님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단 얘기입니다. 같은 아시아라 해도 국가별 언어나 문화는 판이합니다. 이를테면 네팔은 힌두교 국가고,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는 사회주의 권역입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상대로 한국 언어와 문화 교육을 한다고 해도 이해하는 토대가 다를 수밖에 없죠. 이정현씨는 “된장찌개 하나를 끓여도 집마다 레시피가 다르고 입맛이 다른데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에게 세부적인 사항을 요구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습니다. “집안일이라는 게 표준화된 방식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부터 열까지 원하는 사항을 일일이 알려주며 호흡을 맞춰 가야 하는데 외국인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중국동포(조선족)는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갈등을 빚는 경우도 종종 있죠. Q6. 영어 학습 효과 있을까요? 필리핀 이모님을 보는 시각은 보다 복잡합니다. 다섯 살에 영어유치원을 보내려면 네 살부터 레벨테스트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영어권 국가에서 온 시터에게 돌봄을 맡기고 싶어하는 수요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자란다’ ‘째깍악어’ 같은 돌봄과 교육을 결합한 서비스들도 이번 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학습 효과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박진희(38)씨는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노출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영어교육을 전공하지 않은 이상 그 이상을 기대하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이미 일상 회화가 가능하다면 더 체계적인 교육이 필요하겠죠.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인력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익명을 요구한 가사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은 아예 등록할 수 없는 플랫폼이 있는가 하면, 휴대전화 인증번호만으로 바로 활동이 가능한 곳도 있다. 장기적으로 신뢰를 쌓기 위해서라도 인증 절차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 인증 기관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도 과제입니다. 지난해 6월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된 지 1년이 지났지만 정부 인증을 받은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은 50곳, 등록 가사근로자는 460명에 불과합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가사근로자(11만4000명)의 1%도 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돌봄업계 관계자는 “이용자와 근로자 간의 상호 기대치가 충족되려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매칭 기술이 고도화되어야 하는데 현재 상태에서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의구심을 표했습니다. ━ Part 3. 비용, 더 싸지긴 하나요? : 기대만큼은 아니에요 월 38만~76만원. 지난해 9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무회의에서 외국인 육아도우미 도입을 건의하면서 언급한 금액입니다. “한국에서는 월 200만~300만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에서는 5분의 1 가격이면 가능하다”는 취지였죠. 하지만 고용부에서 제시한 금액은 현재 시세와 비교했을 때, 그 차이가 싱가포르만큼 크진 않습니다. 최저시급 9620원을 적용해 주 40시간 근무하면 월 153만9200원, 주 52시간 근무하면 월 200만960원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사근로자 시급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1만~2만원 수준입니다. 2021년 서울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평균 가사서비스 지출 비용은 ‘20만~50만원’이 38.9%로 가장 많았으니, 비용 절감에 대한 기대감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Q7. 최근에 더 비싸진 이유가 뭔가요? 지난 3년간 코로나는 가사근로 서비스 시장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안전 문제로 어린이집 등 기관에 보내지 않고 가정 돌봄을 하는 집이 늘어나는가 하면, 같은 이유로 타인과 같은 공간에서 있는 것을 꺼리는 집도 많아졌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사근로자 수는 2019년 15만6000명에서 지난해 11만4000명으로 3년 새 27%가량 줄어들었습니다. 이봉재 홈스토리생활 부대표는 “그동안 꾸준히 유입되던 조선족이 코로나19 기간 동안 중국으로 돌아가면서 공급이 급격히 줄었다. 엔데믹 이후에도 캐나다 등 근무조건이 더 좋은 국가로 옮겨간 경우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그 결과 “입주형 도우미의 경우 한국인은 월 400만~450만원, 조선족은 300만~350만원까지 올랐다”는 설명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허지윤(34)씨는 “2020년에 주 5일 일하는 조선족 입주 이모님을 구했을 때는 월 200만원이면 됐는데 지난해 다시 구해 보니 월 280만원이더라”며 “소개소 수수료도 월급의 10%에서 20%로 뛰었다”고 말했습니다. 출장이 잦은 남편 때문에 복직을 앞두고 출퇴근 이모님에서 입주로 바꾸게 된 그는 “한국인은 비용이 50만~100만원가량 비싸기도 하지만 입주를 원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습니다. 갑을관계가 뒤바뀐 고용주와 근로자 관계도 조선족 이모님에게 정착하게 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는 “한국인 이모님이 나이 어린 양육자를 무시하며 가르치는 듯한 태도가 견디기 힘들었다”며 “아무래도 동남아 시터는 더 젊고 비용도 저렴할 테니 아이들이 좀 더 크면 고려해 볼 의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Q8. 홍콩·싱가포르는 왜 싼가요? 홍콩과 싱가포르가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를 도입한 것은 각각 1974년, 1978년입니다. 최저임금이 없는 두 나라는 내국인보다 낮은 임금을 적용해 가사와 양육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노렸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박은선(39)씨는 “2016년 미얀마 헬퍼를 월 450달러(약 44만원)에 고용했는데, 현재는 월 750달러(약 74만원)로 올려줬다”고 말했습니다. “영어가 가능한 필리핀·인도네시아 출신이 더 구하기 쉽지만, 시급도 높고 요구사항도 많은 편이어서 일을 빨리 배우고 근속기간이 긴 미얀마 출신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육아와 가사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어 만족도는 높지만, 사실 제도적 함정도 있습니다. 싱가포르는 육아휴직 없이 출산휴가만 16주가 있고, 한국 어린이집에 해당하는 ‘인펀트 케어’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서비스보다 2배가량 비싸거든요. 이를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외국인 노동자에게만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에 위배됩니다. 2013년 발효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상 차별 금지 규정에도 맞지 않고요. 김도균 제주 한라대 특임교수는 “50년 전과는 상황이 달라서 외국인 근로자라는 이유로 더 낮은 임금을 주면 국가 이미지도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비난을 감수하고 시행할 만한 실익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주택 구조도 다릅니다.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처음부터 가사근로자를 위한 작은방이 설계된 집이 많지만, 한국에서는 방 하나를 통째로 내주기가 쉽지 않죠. 조기 정착을 위해 서울시에서 숙박·교통·통역 등 초기 비용을 부담하기로 했지만, 시범사업이 끝나면 이용자에게 부담이 전가돼 비용이 올라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Q9. 가사근로자의 공급이 느는 건 확실한가요? 고용부는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이유로 가사근로자 수 감소와 고령화를 꼽았습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로, 가사근로자의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거예요. 반드시 그런 건 아닐 수 있습니다. 송미령 가사·돌봄유니온 사무국장은 “직무교육을 받고 현장에 나간 가사관리사 10명 중 9명이 한 달 만에 그만둘 정도로 노동환경과 처우가 여전히 열악하다”며 “언제든 값싼 노동력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인력 수급은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숙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사노동이 저평가되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외국 인력이 들어와도 무단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합니다. E-9 비자가 도입된 농업과 제조업에서도 외국인 근로자 무단이탈은 이미 오래된 문제입니다. “A공장은 200만원인데 B공장은 300만원 준다더라” “C공장은 불법체류자도 받아준다더라” 등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에 따라 움직이는 게 다반사죠. 조 연구위원은 “가사·돌봄 서비스에서의 인력 이탈은 아이의 안전, 가족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경고했습니다. ━ Part 4. 양육자, 뭘 원하는지 알고 있나요? : 그러게요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 8명의 의견을 종합하면 “외국인 가사근로자에 대한 기대감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릅니다. 양육자들이 실제 아이를 낳고 키울 때 고민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차치하고, 변죽만 울리고 있으니까요. 정부가 지난 16년간 280조원의 저출생 대응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8명에 불과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0년 연속 꼴찌죠.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육자들이 진짜로 원하는 건 뭘까요? Q10. 공공 서비스를 늘려줄 수 있나요? 양육자들은 무턱대고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기보다는 기존 정책 효과를 제고해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지난해 기준 18.7%에 불과한 국·공립 어린이집 비중을 늘리고,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아이돌봄서비스’를 확장하는 식으로요. 하루가 멀다 하고 아동학대 관련 기사가 나오고 있는 터라 양육자들의 공공서비스에 대한 신뢰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가부에 따르면 지난해 서비스 이용 가구는 7만8212가구로 매년 1만 가구 이상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아이돌봄사 수는 2만6675명으로 이용자 수의 3분의 1 수준입니다. 여섯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황유나(39)씨는 “아이돌봄사는 민간 서비스보다 교육 이수 시간도 많고 양육 경험이 있는 사람을 우선 채용해 더 신뢰하는 편”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등하원 시간 등은 경쟁이 치열해 매칭이 쉽지 않고, 결국 기다리다 지쳐 급하면 민간 서비스를 이용한다”며 “기왕 예산을 쓸 거라면 양육자들이 효용 가치를 느끼는 곳에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Q11. 지원금 소득 기준 완화되나요? 소득 수준에 대한 지원 기준을 완화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우현수씨는 “아이돌봄 서비스는 맞벌이 부부에게 더 필요한 서비스인데 정작 소득 기준 때문에 지원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소득 기준이 중위소득 75% 이하면 시간당 서비스 비용 1만1080원 중 정부 지원이 9418원이고, 150% 초과면 본인 부담 100% 등 차등 지원이 이뤄지고 있어요.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무상보육이 이뤄지는 어린이집처럼 돌봄 서비스에도 지원이 확대된다면 영아수당 등 현금보다 와닿는 혜택이 될 거란 얘기입니다. 보건복지부에서는 중위소득 150% 이하 가정에 한해 산후관리사 비용을 지원하고 있지만, 서울시는 다음 달부터 서울시에 6개월 이상 거주한 모든 산모에게 산후조리 경비를 100만원씩 지원하는 등 보편적 혜택을 확대해 나가고 있습니다. Q12. 근무시간 정말 줄여도 되나요? 궁극적으로 양육자들이 원하는 건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입니다. 이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시간’입니다. 맞벌이를 하는 우현수씨는 “둘 다 회사에 육아휴직 제도는 있지만 이후 받게 될 불이익 때문에 쓰지 못했다. 아내도 출산 3개월 만에 복직했는데 걱정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6월 육아휴직 기간을 최대 1년6개월로 늘리고, 이 중 6개월은 의무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육아기 단축근무 제도 활성화에 대한 바람도 있습니다. 윤서진씨는 “우리 회사는 여성 비중이 높아 단축 근무나 탄력근무를 활용하는 사람이 제법 있다. 근무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갈 때나 급한 일이 있을 때 요긴하다”고 말했습니다. 양육자들은 "내 손으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했다. 사진 픽사베이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와 전문가들은 “결국 가사·돌봄은 공적 문제로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조혁진 연구위원은 “2012년 무상보육을 시작한 어린이집의 경우 이용 비율이 90%가 넘는다”며 “합계 출산율 0.78명인 상황에서 민간 시장에 맡기는 건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의미”라고 지적했습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사돌봄 문제 해결만으로 저출생이 해결될 것이라는 근시안적인 사고도 바꿔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출생의 원인을 오로지 가사·돌봄의 문제로만 돌리니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만 해결책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 해결책마저도 부처마다 제각각이고요. 윤 교수는 “저출생은 당장 양육자들이 겪는 실생활 문제와 교육·산업·성평등과 같은 사회구조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투 트랙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같은 대통령 직속 기구에 각 부처의 정책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권한을 주어 단기적·장기적 대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관련기사 월 200만원 챙긴 ‘왕의 DNA’…교육부 5급 부모는 왜 속았나 “초1 교실은 동물의 왕국, 담임되면 사리함 준비한다” ① 80년대생 양육자가 온다…“난 부모와 달라” 11명의 고백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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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0만원 챙긴 ‘왕의 DNA’…교육부 5급 부모는 왜 속았나 유료 전용
박정민 디자이너 약물 없이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발달장애‧언어장애를 치료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주장하는 사설연구소가 있습니다. 이 사설연구소가 주목받게 된 건 교육부 5급 사무관이 “자녀에게 ‘왕의 DNA’가 있다”며 교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사건이 드러나면서죠. 이 연구소는 ADHD 성향을 보이는 아이들을 우뇌만 극도로 발달한 ‘극우뇌’로 분류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극우뇌 아이에게 맞는 교육법이라는 게 다소 황당합니다. 아이를 왕처럼 대접하고, 아이가 원하는 대로 생활하게 내버려 두면 스스로 행동을 고친다는 겁니다. 예컨대 게임을 실컷 하게 하고, 동생을 괴롭혀도 내버려 두고, 빵·과자‧피자‧라면 같이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만 먹이라고 하는 식입니다. ADHD 치료비용은 2019년 기준으로 미취학 아동은 월 180만원,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은 월 210만원 수준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2013년 논란이 됐던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의 주장과 비슷합니다. 이 연구소가 ‘뇌 버전 안아키’ ‘왕아키’(왕의 DNA+안아키)로 불리는 이유죠. 온라인 커뮤니티였던 안아키에서는 영유아 필수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등 극단적인 자연치유 육아법을 전파해 아동학대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결국 안아키를 운영한 한의사는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실제로 ADHD를 치료하는 소아정신과 의사들은 이 연구소의 주장을 어떻게 볼까요? hello! Parents는 연구소 주장처럼 극우뇌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약물 없이 ADHD를 완치하는 게 가능한지, 양육자들이 이런 비(非)의학적 치료에 빠지는 이유가 뭔지 정신과 전문의 3명에게 물었습니다.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반건호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답을 했습니다. 김은주·김효원 교수는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소속으로 『공부하는 뇌, 성장하는 마음』이라는 책을 냈고, 반건호 교수는 한국형 ADHD 검사·평가·교육 도구를 개발한 이 분야 전문가입니다. ■ 목차 「 1. 사설연구소 주장, 팩트체크 ①극우뇌, 실제로 존재하나 ②약물없이 ADHD 완치 가능한가 ③ADHD, 왕 대접 해주면 행동 교정되나 2. ‘안아키식’ 치료에 빠지는 세 가지 이유 」 ━ 1. 사설연구소 주장 팩트체크 ①‘극우뇌’ 실제로 존재하나? ■ 「 연구소는 아이의 두뇌타입을 좌‧우뇌 발달 정도에 따라 크게 7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극우뇌‧강우뇌‧약우뇌‧균형발달‧약좌뇌‧강좌뇌‧극좌뇌입니다. 이중 ‘천재과’라고 불리는 극우뇌는 좌‧우뇌 발달량의 합을 100으로 놓고 봤을 때 우뇌가 90% 이상 발달한 것을 의미합니다. 좌‧우뇌 발달 비율이 0:100, 5:95, 10:90이라는 겁니다. 극우뇌 아이는 한국 출생아의 4%정도를 차지하고, 80%가 ADHD 진단을 받는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 모차르트, 고흐, 나폴레옹, 아인슈타인도 모두 극우뇌인이라고 하고요. ADHD 아이들도 연구소에서 알려준 방법대로 교육시키면 이런 위인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극우뇌, 진짜 있는 걸까요? 」 답: 없다. ‘극우뇌’라는 말이 낯선 분들도 ‘좌뇌형’ ‘우뇌형’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성격유형검사(MBTI)처럼 한때 사람의 특성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활용됐죠. 좌뇌‧우뇌 구분은 성격을 16가지로 나누는 MBTI보다 단순합니다. 좌뇌형은 논리적‧분석적이고, 우뇌형은 창의적‧예술적이라는 거예요. 쉽게 말해 수학을 좋아하면 좌뇌형, 음악‧미술을 좋아하면 우뇌형이죠. 인터넷에서도 좌뇌‧우뇌형인지 확인하는 테스트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좌뇌‧우뇌를 균형 있게 발달시키는 방법을 담은 책도 적지 않고요. 연구소의 주장대로면 좌‧우뇌의 불균형이 ADHD의 원인입니다. 우뇌가 극도로 발달한 아이를 대상으로 연구소에서 ‘좌뇌보강’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기도 하죠. 과연 사람을 좌뇌형‧우뇌형으로 구분하는 게 가능할까요? 연구소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뇌만 극도로 발달한 아이들이 ADHD 증상을 보이는 게 사실일까요? 전문가들은 인간의 뇌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에 의학적‧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합니다. 연구소에서 얘기하는 7가지 두뇌 타입도 마찬가지고요.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과거에 뇌를 좌뇌‧우뇌로 나눠 분석하는 이론들이 유행했던 것은 사실이고, 최근에도 일부 한의원이나 학원 등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최근 뇌 영상 연구와 신경과학의 발달로 좌·우뇌 기능을 따로 구분하기보다는 각 부위의 기능적 연결성이 강조되는 추세”라며 일축했죠. 김효원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뇌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영역들로 구성돼 있다”며 “이런 영역은 서로 연결돼 신경회로를 만들고, 특정 유형의 정보를 처리하는 데 특화된 모듈을 형성한다”고 설명했습니다. ADHD는 대뇌의 전전두엽이 또래보다 2~5년 늦게 발달해 집중력과 자기 조절이 안 되는 질환입니다. 주의집중을 유지하는 능력, 행동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능력, 작업기억력 등과 관련된 뇌 신경회로의 발달 양상이 다르기 때문에 ADHD가 생긴다는 겁니다. 따라서 ADHD의 원인이 좌‧우뇌의 불균형 때문이라는 건 의학적으로 잘못된 말이라는 거죠. 반건호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습니다. 그는 “사람의 뇌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100조 개가 넘는 네트워크를 이뤄 작동되는 구조”라며 “뇌과학이 발전했어도 뇌의 구조와 기능을 단순히 좌‧우뇌로 나눠 치료할 단계는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반 교수에 따르면 2022년 전세계 ADHD관련 학자들이 기존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뇌의 크기‧부피‧기능‧피질두께 등을 분석했지만, ADHD 뇌의 일관된 특성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연구소에서 의학적‧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내용으로 양육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얘기죠. ②약물 없이 ‘ADHD’ 완치 가능한가 ■ 「 이 연구소는 약물 없이 ADHD‧발달장애‧언어장애를 완치할 수 있다고 홍보하고, 약을 먹이는 것은 차선책이라고 주장합니다.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가면 오른쪽 2개 메달 안에 ‘자폐 무약물치료’ ‘언어+지적장애 무약물치료’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또 연구소를 운영하는 소장 김모씨가 쓴 저서에는 ‘이런 아이들(극우뇌)을 제대로 치료해주는 곳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종합병원에서 ADHD 판정을 내린 후 투약을 권하는 것, 몇몇 놀이치료 기관에서 애를 쓰는 정도뿐인 것으로 안다.(중략) 필자는 2년 전부터 이런 아이들의 뇌를 보강해주고 있다. 물론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다. 3~4개월이면 행동에 별 문제가 없고, 숨었던 재능이 살아날 만큼 새사람으로 변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과연 약물 없이 ADHD를 완치하는 게 가능할까요? 」 답: 불가능하다. 정신과 교수들은 ADHD를 완치하는 건 쉽지 않고, 약물치료가 가장 기본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사실 약물치료에 대해 오해하는 양육자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약물치료는 비약물치료가 효과가 없을 때 쓰는 마지막 관문으로 여긴다는 거죠. 하지만 ADHD 증상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면 가장 먼저 약물치료를 고려해야 합니다. ADHD는 크게 ‘과잉행동형’, ‘주의력결핍형’과 두 가지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복합형’으로 나뉩니다. 과잉행동형은 쉽게 말해 산만한 걸 말합니다. 학교 수업시간에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지 못하고 돌아다닌다거나, 선생님이나 친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하고, 다른 사람의 활동을 방해하거나 간섭하는 식이죠. 반면 ‘조용한 ADHD’라 불리는 주의력결핍형은 겉으로는 문제행동이 드러나지 않지만, 해야 할 일을 제때 끝내지 못하고 집중력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걸 의미합니다. 어떤 형태의 ADHD든 약물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김효원 교수는 “약물치료를 받은 80% 정도가 분명한 호전을 보이고, 집중력‧기억력‧학습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된다”며 “과제에 대한 흥미와 동기가 강화돼 수행능력도 좋아진다”고 말했습니다. 약을 먹은 것만으로 주의 산만함이나 과잉행동·충동성이 줄고, 아이가 양육자와 교사의 지시에 집중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얘깁니다. 연구소는 프로그램 적용 후 3~4개월이면 행동이 달라진다고 주장하지만, 의사들이 말하는 약물치료는 적어도 2~3년 이상 계속해야 합니다. 현재 사용되는 약물은 곧바로 ADHD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기간 사용 시 신경 경로 활성화와 신경 발달을 촉진해 주의 집중을 담당하는 뇌 부위 기능을 발달시킵니다. 물론 가정환경과 개인차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약물치료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반 교수는 “ADHD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양육법을 알려주는 부모교육, 아이의 충동성을 감소시키고 조절 능력을 향상시키는 사회기술훈련, 또래관계 개선을 위한 놀이치료 등 아이의 문제 유형에 따른 훈련을 병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③ADHD, 왕 대접해 주면 행동이 교정되나 ■ 「 연구소의 치료법이 알려진 건 교육부 5급 사무관이 자녀의 초등학교 담임에게 쓴 편지 때문입니다. 편지에는 총 9개의 행동지침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마” “안돼” “그만” 같이 제지하는 말은 절대 하지 않고, 싫다는 음식을 억지로 먹지 않게 하며, 또래와 갈등이 생겼을 때는 철저히 편을 들어주라는 식의 내용입니다. 또 ‘왕의 DNA를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돌려 말해달라’ ‘뇌세포가 활성화될 때까지 쓰기와 수학 등 학습을 강요하는 것은 자제해 달라’는 세부설명도 포함돼 있습니다. 이는 연구소의 치료법인 ‘좌뇌보강’ 내용과 일치합니다. 아이가 ‘갑’의 입지를 느껴야 뇌에서 유익한 신경전달물질이 생산되므로 아이를 왕 대접 해주면 행동이 바뀐다는 겁니다. 또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카페와 유튜브 등에는 하루 종일 게임만 하게 두고, 동생이나 동물을 학대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습니다. 극우뇌나 강우뇌 아이를 강압적으로 대하지 말고, 영웅심을 충족해주면 잠재된 천재성을 발휘한다는 주장입니다. 정말 왕 대접을 해주면 아이 행동이 교정될까요? 」 답: 안 된다. 정신과 교수들은 “잘못된 양육법이 오히려 아이를 망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양육자가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고, 아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실제로 자신의 감정을 존중받으며 자란 아이가 자존감과 회복탄력성(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이 높다고 알려지면서 아이 마음에 공감하는 양육법이 인기를 끌기도 했죠. 하지만 남을 때리거나 피해를 주는 충동적인 행동을 허용하고, 아이가 원하는 것만 시키는 것은 ADHD 증상을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김은주 교수는 “ADHD 치료는 약물치료와 함께 자기 조절력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자기 방이나 책상을 정리하거나, 등‧하교 같은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숙제 같이 하기 싫은 일도 참고 해내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지면 학업능력이나 또래관계도 개선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만 하게 두는 게 자존감을 키워주는 방법이 아니라는 얘기죠. 김효원 교수도 “좌뇌보강 프로그램은 의학적으로 효과가 증명되지 않은, 근거가 없는 치료”라고 지적했습니다. 반 교수는 “긍정심리학으로 접근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ADHD 아이에게 적용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긍정심리학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마틴 셀리그먼이 창시한 개념입니다. 심리학에서 불안과 우울‧스트레스 같은 부정적 감정보다 개인의 강점과 미덕 등 긍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말하죠. 연구소 방법대로 하다가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것도 문제입니다. ADHD는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죠. 김효원 교수는 “약물치료 자체가 전전두엽을 포함해 ADHD 발병과 관련한 신경회로들의 발달을 도와준다”며 “부작용에 대한 오해와 편견때문에 약물치료를 하지 않으면 뇌 발달 지연이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은주 교수는 “치료 시기를 놓치면 ADHD의 3대 증상인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충동성이 심해지고, 감정조절력과 작업기억력도 저하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청소년기는 물론 성인이 된 후에도 학습이나 업무 수행, 대인관계 등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요. 반 교수는 “감기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뇌수막염이나 폐렴 같은 합병증에 걸리는 것처럼 ADHD도 치료 시기를 놓치면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합병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전문가들은 "ADHD는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약물치료 자체가 전전두엽을 포함해 ADHD 발병과 관련한 신경회로들의 발달을 도와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 2. ‘안아키식’ 치료에 빠지는 이유 이 연구소는 2009년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 300여명의 아이를 치료했다고 합니다. 아이를 왕 대접해 주고, 온종일 게임을 하게 내버려 두는 치료법을 통해서 말이죠.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여기에 의존하는 양육자가 적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정책을 수립‧시행하고 관리‧감독하는 교육부 5급 사무관이 연구소를 찾았을 정도니까요. 4000명에 불과했던 공식 카페 회원 수는 논란이 된 후 1만3000명으로 늘었습니다. 과거 문제가 됐던 ‘안아키’도 5만 명의 회원을 보유했었죠. 양육자들이 이런 비(非)의학적인 치료에 빠지는 이유는 뭘까요? 정신과 교수들은 크게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①아이의 질환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가 ADHD 진단을 받으면, 양육자는 어떤 기분이 들까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을 테고, 아이의 상태를 인정하기 어려울 겁니다. 스위스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쓴 『인생수업』에 따르면, 상실을 받아들이는 첫 번째 단계가 바로 ‘부정’인데요. ADHD 진단을 받아 든 양육자가 상황을 부정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런 양육자 입장에서는 병원보다 문제의 사설연구소의 말이 더 믿고 싶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증상은 극우뇌의 특징일 뿐이고, 이 아이들은 천재의 잠재력을 지녔다’는 말에 혹하지 않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김효원 교수는 “상황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양육자들의 마음을 연구소에서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나마 ADHD는 약물도 있고 치료 효과가 좋지만, 심한 자폐스펙트럼장애나 지적장애 같은 발달장애는 아직 현대의학에서 난치의 영역입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도 양육자가 원하는 수준의, 눈에 띄는 변화는 없는 게 현실이죠. 또 비용이 비싸거나 치료 대기가 긴 것도 사실이고요. 실제로 병원에서 실시하는 재활치료 중에는 짧으면 1년, 길면 4~5년 대기해야 하는 것도 많습니다. 김은주 교수는 “난치성 질환에 대한 대체의학이 성행하는 것처럼 의학적 치료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리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②정신과 진료가 아이의 미래를 망칠까 두렵다 정신과 진료에 대한 거부감과 불안도 양육자를 ‘안아키식’ 사이비 치료에 빠지게 합니다. 예전보다 문턱이 낮아졌다고 해도 대부분 양육자는 여전히 아이 손을 잡고 정신과에 가는 걸 꺼립니다. 혹시나 아이의 미래에 오점을 남길까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이죠. 반 교수는 “아직도 정신과 진료나 치료받은 기록 때문에 군대를 못 가거나 취업에 지장이 갈까 우려하는 양육자들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현행 의료법상 의무기록 열람은 엄격히 제한돼 있습니다. 환자와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그 누구도 개인의 의무기록을 볼 수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ADHD 치료제는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과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사용을 허가한 약물로 안전성을 인정받았다. 식욕부진이나 수면장애 등의 부작용이 있지만 장기간 투약해도 내성이 생기거나 중독되지 않는다. AP=연합뉴스 ③약물 부작용이 걱정된다 아이가 문제행동을 해도 병원 가기를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가 약물의 부작용일 겁니다. 하지만 정신과 약물에서만 부작용이 발생하는 건 아닙니다. 감기약을 지을 때도 “약을 먹으면 졸릴 수 있다”는 얘기 한 번쯤 들어보셨을 텐데요. 대부분 감기약에 들어있는 항히스타민제 성분이 졸음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은 ‘졸음’이라는 부작용을 감수하고 감기약을 먹죠. ADHD 치료제의 대표적인 부작용은 식욕부진과 수면장애예요. 하지만 식욕이 일시적으로 줄기는 해도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등·하교 시간 등 하루 일과와 약물 지속 시간을 고려해 투약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요. 또 대부분 부작용은 약물을 중단하면 하루 만에 사라집니다. 이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ADHD 아이들에게 주로 처방하는 약은 메틸페니데이트 성분으로 된 페니드‧메디키넷‧콘서타입니다. 이런 약들은 1930년대부터 사용돼 온 것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안정성이 입증됐습니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고,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사용을 허가한 약물이기도 하고요. 김효원 교수는 “장기간 투약해도 중독되거나 내성이 생기지 않고, 오히려 뇌 발달을 도와준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아이에게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향정신성의약품인 만큼 오용하거나 남용할 경우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야 합니다. 관련기사 공부 잘하던 아들이 변했다, 대치동 엄마 ‘결정적 실수’ “습관 만들려면 이사 가라” 스탠퍼드 교수의 강력 한 방 설명 말고 “그냥 해” 하세요…30년 육아고수의 반전 훈육 술독 빠진 가난한 용접공…대학교수 만들어 준 책 1권 “그냥 한 번 사는 건 싫더라” 72세 노학자가 늙어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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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로 비싼 책상부터 질렀다…회사 나와 연봉 2배 뛴 비결 유료 전용
노 팀장은 버티면 임원 달 거야. 여성 할당 있잖아. 연봉이나 복리후생, 어느 것 하나 밀리지 않았던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 프리랜서로 산 지 만 2년, 노가영씨에게 “왜 그 좋다는 회사를 나왔느냐”고 물었다. 노씨는 그 무렵 동료와 상사가 자주 했다는 말을 들려줬다. 더 다닌다면 길어봐야 10년, 상무나 전무쯤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 위해 쏟아야 할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하면, 과연 합리적인 선택일 지 의심스러웠다. 50대에 맨주먹으로 시장에 나오느니 40대가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잘만 하면 평생 직업을 찾을 수도 있을 터였다. 박정민 디자이너 누구나, 언젠가는 프리랜서가 된다. 2020년 800만을 넘어선 비임금 근로자의 숫자가 증명한다. 100세 시대지만, 회사는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다. 운이 나쁘면 희망퇴직을 권고받을 테고, 운이 좋으면 ‘임시직원’이라는 임원을 한두 해 한 뒤 회사를 떠날 것이다. 하지만 회사원만큼 독립하기 어려운 직업이 없다. 전문직도 아니거니와 개발자나 디자이너처럼 뾰족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다. ‘퇴사 후 치킨집’이란 공식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여성이라면 더 그렇다. 노가영씨를 만난 건 그래서다. 산업심리학을 전공한 문과생으로 여러 대기업을 거치며 만 18년을 일한 그는, 2년 전 회사를 나와 전업 작가이자 강연자로 직전 연봉의 2배 넘는 소득을 올리고 있다. 지난 10일, 그를 만나 프리랜서로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전환한 비결을 물었다. 노가영씨는 대기업에서 만 18년을 일했다. 상영관에 영화를 배치하는 업무부터 IPTV와 OTT 론칭 등 다양한 일을 했지만, 밖에서 보면 '회사원'이다. 독립이 가장 어려운 회사원 출신으로, 그는 대기업 재직 시절 2배가 넘는 연봉을 벌고 있다. 장진영 기자 ━ ✏️책 한 권 A4 80장, 3개월이면 쓴다 그의 주 소득원은 강연이다. 다양한 기업과 대학에서 그에게 강연을 요청한다. 주제는 ‘디지털 콘텐트 마케팅 전략’ ‘콘텐트 산업과 이종 산업과의 결합’ 등 디지털 콘텐트 산업을 망라한다. 그도 그럴 것이 2003년 멀티플렉스 영화관(CJ CGV)을 시작으로, 인터넷TV인 IPTV(KT)를 거쳐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OTT(SK텔레콤)까지, 그의 커리어는 디지털 콘텐트가 소비돼 온 모든 스크린을 거쳐왔다. 그가 CGV에서 상영작을 각 지역 상영관에 배치하는 일종의 편성 업무를 하던 때는 멀티플렉스의 등장으로 1000만 관객 영화가 생겨나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살인의 추억’ ‘괴물’ 같은 작품이 나오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때기도 하다. 미국의 유선망 사업자들이 콘텐트 전문가를 영입하던 걸 보고 2006년 KT로 이직했다. 그곳에서 그는 미디어 전략 업무를 주로 맡으며 10년가량 IPTV 시대와 함께했다. 2015년엔 모바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는 걸 보고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겼다. ‘옥수수’란 이름의 OTT 서비스를 론칭했다. 노가영씨는 정확한 판단력으로 적확한 타이밍에 회사를 옮기며 디지털 콘텐트 역사의 산증인이 됐다. “결단력이 있다거나, 용기가 있다고 해주시는 분도 많아요. 이직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처음부터 증명해야 하니까요. 하지만 대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옮기는 일이잖아요. 리스크가 큰 결정은 아니었어요. 운이 좋았습니다. 적기에 시장 변화에 올라탄 셈이니까요.” 하지만 콘텐트의 역사 한가운데에서 엄청난 전문성을 쌓았다고 해도, 그걸 사람들이 알아주는 건 다른 문제다. 18년 경력을 가진 회사원은 많다. 그처럼 적절한 때 이직하며 시대를 풍미한 회사원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모두 강연 요청을 받는 건 아니다. “후배들이 커리어와 관련한 조언을 구하면 저는 이 말부터 합니다. 우리는 데이터 전문가도, 개발자도 아니라고요. 평범한 사무직의 한계를 인지하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써야 한다고 말합니다. 2016년 『유튜브 온리』를 시작으로, 끊임없이 썼어요. 2019년 동료 3명과 함께 쓴 『콘텐츠가 전부다』는 2023년까지 매년 나왔고요. 책을 쓰면서 강연 기회가 생겼죠. 글을 쓰는 게 어려우면 말을 하라고 해요. 핸드폰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면 되니까요. 그것도 어렵다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짧은 글을 매일 올려도 좋아요. 자기 콘텐트가 있어야 시장에서 전문성을 인정받고, 자기 브랜드도 생겨요.” 말이 쉽지, 블로그도 아니고 책을 쓰는 일이다. 결코 간단할 리 없다. 그는 “책 한 권을 쓰려면 어느 정도의 글이 필요한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글자 크기 10포인트, A4 80장. 노가영씨는 “회사원이라면 자신이 작업한 문서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보라”며 “몇백 장은 될 그 문서를 80장으로 추린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그는 “결국 내 업무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며 “하루에 A4 한 장씩만 정리하면 3~4개월이면 쓸 수 있다”고도 말했다. 170cm가 넘는 장신의 그는 커다란 백팩을 메고 다닌다. 백팩 안에는 노트북과 태블릿PC, 필통과 읽고 있는 책 등이 들어 있다. 장진영 기자 ━ ✏️일단 지르면, 물러설 수 없다 쓰는 건 어려운 일이다. 양육자라면 더욱 그렇다. 서둘러 퇴근하면 육아가 시작이다. 겨우 아이를 재우고 나면 밀린 가사도 한 트럭이다.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다. 2013년 태어난 아들을 키우고 있는 노가영씨라고 다르지 않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책을 썼을까? “첫 책을 쓸 때 가장 처음 한 일이 비싼 책상을 지르는 거였어요. 대기업 월급에도 엄두가 안 날 만큼 비싼 책상을 샀습니다. 최대한 긴 할부로요. 매달 카드값이 나가는 걸 보면 포기할 수 없을 거잖아요. 오늘 하루만 쉬어야지 싶다가도, 책상을 보면 그 생각이 달아날 테니까요.(웃음)” 김미경 MKYU 대표도 “식탁 말고 내 책상부터 마련하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그래야 ‘공부하는 사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아직도 아이가 잠들고 나면 그 책상에 앉아, 매일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4시간씩 뭔가를 쓴다. 첫 책 『유튜브 온리』부터 가장 최근 나온 『새로운 인류 알파세대』까지, 모두 그 책상에서 나왔다. 책은 엉덩이로 쓴다지만 뭘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는 엉덩이가 알려주지 않는다. 그는 그걸 어떻게 찾을까? “시장에 나오면 회사원이 가장 경쟁력이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대기업에서 18년간 가장 많이 한 일이 보고서 쓰는 거였어요. 바쁜 상사에게, 딱 한 장의 장표로 하고 싶은 말을 담아내는 것, 그것만큼은 자신 있었어요. 저는 그게 기획력이라고 생각해요. 회사원이 가장 잘하는 거죠.” 지난 7월 나온 『새로운 인류 알파세대』도 기획의 결과물이다. 그의 전문 분야인 디지털 콘텐트, 특히 동영상 콘텐트를 가장 많이 시청하는 세대가 바로 알파세대였다.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기간 2013년생 아들을 키우며, 아이가 살 미래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의 『메가 트렌드』를 읽다가 ‘하이테크 하이터치’란 단어에 꽂혀 아들이 속한 세대를 다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1년 넘게 공부한 끝에 그는 ‘디지털 콘텐트’라는 자신의 전문 영역을 그걸 소비하는 세대로 확장해냈다. 회사원 출신 프리랜서의 강점은 또 있다. 바로 규칙적인 생활이다. 출근도, 퇴근도 없다 보니 프리랜서의 삶은 불규칙적이기 쉽다. 하지만 노가영씨는 그렇지 않다. 거의 매일, 예외 없이 아침 7시 전후에 기상해 9시 전후 업무를 시작한다. 오후 운동을 마치고 하교한 아이를 챙긴 뒤 아이가 잠들고 나면 다시 업무를 시작하는 식이다. “9시에 출근하고 12시에 밥 먹고 6시에 퇴근하는 삶을 18년을 살았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는 규칙적인 일과가 어렵지 않았어요.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라서 더 그럴 수밖에 없었고요. 저는 출근할 곳이 없어도 아이는 9시까지 학교에 가야 하잖아요.” 그의 가방 속에서 나온 물건들. 『초인류』는 그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에서 함께 읽는 책이다. 그는 "프리랜서는 회사원보다 3배는 더 시장 변화에 민감해야 한다"고 했다. 그가 책을 놓지 않는 이유다. 장진영 기자 ━ ✏️14년째 업계 모임 지속하는 이유 프리랜서가 된 그에게 이런저런 강연이나 콘텐트 제작을 제안하는 건 현업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일하면 누구나 전체가 아닌 부분을 업무로 맡을 수밖에 없다. 현업에서 만들 수 있는 네트워크도 그만큼 제한적이다. 서류 업무가 많은 직무면 제한적인 네트워크마저 어려울 수 있다. 노가영씨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업계 모임을 만들었다. 2009년 일이다. “저는 당시 KT에 있었는데요. 콘텐트를 만드는 프로듀서나 투자자를 만나 어울릴 일이 자주 없더라고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직업 모임을 만들었어요. 4명이 시작했는데, 20명까지 커졌죠. 한 달에 한 번 모였는데, 제가 날짜며 장소도 잡고, 공지하고, 정산하는 총무 역할을 했어요. 이 모임은 아직까지 해요. 단체카톡방도 있고요. 지금 보면, 그게 바로 커뮤니티였어요. 커리어를 키워드로 뭉친 커뮤니티요.” 20명 정도 되니, 이곳을 거치면 어지간한 산업엔 다 고리를 만들 수 있었다. 미국 등으로 연수나 파견을 간 멤버가 생기면서 해외 비즈니스 정보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졌다. 노가영씨는 “멤버들이 다 아기 엄마, 아빠가 돼 예전처럼 오프라인에선 만나지 못하지만, 여전히 업계 시장 조사를 할 때나 현업의 의견이 필요할 때 가장 큰 도움을 받는 모임”이라고 말했다. 프리랜서가 되고 나선 업계나 시장 변화에 더 예민해졌다. 그래서 최근 새로운 커뮤니티도 만들었다. 영화 산업과 콘텐트 업계뿐 아니라 뇌과학, 인지심리, 블록체인 업계를 망라한 모임이다. 한 달에 한 번 모여 돌아가며 자신의 업계 트렌드를 발제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회사를 떠나고 나서 그가 깨달은 게 있다. 현업에 있을 땐 미처 알지 못했던 ‘후배의 소중함’이다. 프리랜서 3년 차, 그와 함께 회사에 있던 선배들은 적잖이 회사를 떠났는데 후배들은 팀장이 돼 그를 찾는 것이다. 그는 “얌체 같은 말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현업에 있는 분들께 후배들을 잘 챙기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웃었다. 그는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말을 인터뷰 내내 여러 번 반복했다. 시스템으로 돌아갈 것 같은 대기업도 결국 일을 하는 건 사람이고, 사람의 성격과 성향에 따라 일이 전개되는 양상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소위 ‘일잘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말을 자주 들어요. 저는 나와 일하는 사람을 파악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회사원이라면 보스가 어떤 스타일인지, 프리랜서라면 내게 일을 맡은 상대가 어떤 스타일인지를 알아야죠. 중간중간 소통하면서 과정을 공유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론만 선명하게 공유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걸 파악해서 맞게 대응해야 ‘일 잘한다’는 말을 들어요.” 노가영씨는 "회사는 회사원의 가장 큰 자산이지만, 그렇다고 회사에 올인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남는 건 회사가 아니라 나의 커리어기 때문이다. 장진영 기자 사실 그 역시 사표를 쓰기 전 1년간의 준비 시간을 가졌다. 특별히 뭔가를 준비한 건 아니었다. 다만 정말 회사를 나가 홀로 설 생각인지, 혼자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1년 동안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서야 사표를 썼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회사를 떠난 걸 후회한 적이 없었다. “회사가 내 커리어의 큰 자산이자 비빌 언덕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회사에서의 전문성을 레버러지 삼아야 나만의 콘텐츠도, 브랜드도 생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회사에 올인하지는 마세요. 결국에 남는 건 회사가 아니라 내 커리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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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에 “진해” 이름 부른다, 반말의 성공 조건 유료 전용
말의 틀을 깨야 해요. 그래야 새로운 생각이 나옵니다. “반말로 수업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김진해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김 교수의 수업에선 학생도, 교수도 서로에게 반말을 쓴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했는데, 옆 학교 학생이 청강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스무 살 신입생도 쉰넷 교수에게도 말을 놓는 이상한 수업을 하는 이유, 변화가 생겨야 생각이 바뀌기 때문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김 교수는 20년 넘게 언어, 말, 글쓰기를 연구한 국어학자다. 학교에서는 글쓰기 수업을 비롯해 말의 의미를 생각해보는 교양 수업을 맡고 있다. 그의 수업에선 언어에 담긴 인간의 심리와 사회 이념 등을 공부한다. 일상에서 오가는 말의 힘에 대한 생각을 모아『말끝이 당신이다』도 썼다. 김 교수는 “자기 마음에 쌓여 있는 문장이 곧 당신”이라고 말한다. 어떤 말을 쓰고, 듣느냐가 생각과 태도를 결정한다는 얘기다. 그가 반말 수업을 기획한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부모가 아닌 연장자에게 반말을 쓰기란 쉽지 않다. 우려하는 주변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는 꿋꿋이 반말 수업을 하고 있다. 7일 그를 만나 반말의 효용, 그리고 반말로도 품격있게 훈육 하는 법을 들었다. ━ 📢 말이 생각을 바꾼다 김 교수는 자신이 수업에서 사용하는 반말을 ‘예의 있는 반말’, 평어(平語)라고 부른다. 교실 안에선 모두가 동등하다는 의미다. 다만, 반말이 상대를 낮춰부르는 의미가 있기에 새로운 원칙을 하나 정했다. 서로를 부를 땐 이름만 부르는 거다. “진해야” 대신 “진해”라고 부르는 식이다. “야” “너”도 안 된다. 김 교수는 “평어는 기존의 반말과는 다른 새로운 언어체계”라며 “낯선 장치를 통해 내가 쓰는 말이 평어라는 걸 의식하게 한다”고 했다. 의미는 알겠는데, 저는 차마 입이 안 떨어지네요. 그런데 존댓말을 쓸 수도 있잖아요. 왜 굳이 반말을 쓰는 건가요? 쉽지 않으실 겁니다(웃음). 학생들도 처음엔 어려워해요. 그런데, 저도 궁금해요. 왜 저에게 존댓말을 쓰시나요? 그게 예의 아닐까요? 그게 바로 반말 수업을 기획한 계기예요. 예의, 규범에 맞춰 관습적으로 쓰던 말 습관을 의식적으로 바꾸려고요. 우리가 쓰는 언어 체계는 스스로 깨우친 게 아니에요. 한국어 시스템에서 자라며 무의식적으로 학습한 거죠. 저는 그걸 깨고 싶었어요.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해 기존의 것을 되돌아보는 거죠. 그래도 학생들에게 반말 들으면 기분 나쁘지 않으세요? 저는 오히려 기분이 좋아요. 그만큼 가까워진 것 같아서요. 존댓말은 상대방과 일정한 거리를 갖게 하는데, 반말은 그렇지 않죠. 평어를 통해 교수와 학생이 지식을 주고받는 비즈니스 관계가 아니라, 친밀해지길 원합니다. 또 하나, 평어는 교수와 학생을 상하관계가 아닌 평평한 관계에 서게 합니다. 제가 원했던 건 바로 이거예요. 평평하고 친밀한 관계요. 학생들 반응은 어떤가요? “언어 체계가 붕괴됐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리고 궁금지더래요. 부모와 교수가 같은 연배인데, 왜 부모에겐 반말을 하고 교수에겐 존댓말을 썼던 건지요. 그리고 자신이 정말 교수를 존경하긴 했나 싶어지고요. 행동도 바뀌었어요. “안녕” 하면서 허리를 숙여 인사하면 이상하잖아요. 그럼 교수한테 손을 흔들어야 하는지, 목례를 해야 하는지 고민합니다. 문자를 주고받을 땐 ‘응’ 대신 ‘ㅇㅇ’ 같은 줄임말을 써도 되는지도 고민하고요. 교실의 위계관계와 질서가 완전히 뒤흔들리는 겁니다. 무엇보다 가장 반가운 건 수업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 거예요. 수업 참여도가 높아졌어요. 수업이 편해진 걸까요? 흥미가 생겼다는 얘기입니다. 존댓말하는 분위기에서는 생각을 할 기회가 없습니다. 교수는 가르치고, 학생은 받아적고 외워야 한다고만 생각해요. 늘 그렇게 배워왔죠. 그런데 반말 수업에선 동등한 위치에 있으니 교수의 말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이 깨져요. 교수 말에 의문을 품습니다. 학생이 자기 생각을 갖게 되고, 스스럼 없이 말도 합니다. ‘나도 내 말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요. 그래서 수업에서 저보다 학생들이 말을 더 합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수업이 끝나도 주저없이 질문합니다. 할 말이 많으니 글쓰기 과제의 분량도 많아졌어요. 출석률도 높아졌고요. 자유롭게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창의적인 생각도 나옵니다. 반말 문화가 일상에서도 가능할까요? 꼭 반말이 아니더라도 이미 기업 등에서 직책을 빼고 부른다거나 영어 이름을 쓰는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요. 긍정적으로 봐요. 하지만 평어든, 영어 이름이든 구성원의 동의와 합의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관계 개선, 창의적 환경이라는 명목 아래 누군가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이뤄지면 존댓말 체계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언어 체계를 구축할 땐 구성원이 함께 원칙을 만들어보길 권합니다. 저희가 호칭으로 이름을 선택한 것처럼요. 이름만 부를 건지, 직책도 부를 건지, 외부인이 올 때도 규칙을 적용할 건지 등 함께 질서를 만들어야 해요. 이 과정에서 생각을 교환하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나올 겁니다. 김진해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반말 수업 후 학생들의 수업 참여도가 월등히 높아졌다"며 "말에 따라 생각과 태도가 변한다는 걸 학생들이 몸소 체험했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 📢 우월감을 내려놔야 반말도 통한다 보통 높임말과 반말의 대상은 나이로 가른다. 예외가 적용되는 곳이 하나 있다. 바로 가정이다. 상당수 가족은 서로 반말을 쓴다. 그만큼 심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의미지만, 양육자 입장에선 고민도 있다. 친구 같은 부모 되려다 친구 취급 받은 건 아닐까 싶어서다. 김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반말이 문제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도덕적 우월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우월감이요?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생각이요. 원래 훈육을 위한 말하기가 가르치고, 규정하려 드는 성격이 있죠. 그래서 훈육할 땐 반말이라도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목소리를 깔면서 “이리 와봐. 우리 얘기 좀 하자” 하잖아요. 아무리 부드럽게 말해도, 아이의 행동을 지적하고, 바꾸려는 명령의 의미가 담겨 있죠. 아이들은 그걸 감지합니다. 내 생각이 부정당한다고 느끼니 더 격한 말을 하거나 아예 말문을 닫죠. 우월감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건 그래서예요. 다만, 우월감이 나쁜 게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타인보다 조금 더 낫다는 생각을 갖는 게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우월감에만 가득 차 나의 빈틈을 보지 못하는 게 문제죠. 구체적으로 어떤 예가 있을까요? 책상 정리를 예로 들어보죠. 책상 위가 엉망이면, 왜 이렇게 깔끔하지 못하냐고 핀잔을 줍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날 때부터 청소했던 거 아니거든요. 또 피곤하면 미루기도 하고, 보고도 못 본 척도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차별적이고, 이중적인 모습을 갖고 있다는 얘깁니다. 우월감을 내려놓으려면,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나도 빈틈이 있다는 걸 깨달으면 상대에게 관대해집니다. 서로 낫고 못한 게 없다는 걸 깨달으면 명령도 할 수가 없습니다. 양육자나 아이나 우월한 것 없이 그저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을 뿐이죠. 머리로는 알겠는데, 받아들이기 쉽지 않습니다. 노력이 필요합니다. 팁을 드리자면, 배우는 걸 멈추지 마세요. 아는 만큼 보이니까요. 제 취미가 합기도인데요. 같이 수련하는 분 중엔 경력이 수십 년에 달하는 60~70대 분들도 많습니다. 더 배울 게 있을까 싶지만, 같은 기술을 반복해 연습합니다. 상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미세한 감각의 차이를 깨우치려고요. 그걸 깨달을 때 비로소 상대를 힘으로 누르지 않고도 쓰러뜨리는 고수가 되죠. 말도 똑같아요. 상대가 다치지 않게,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걸 얻는 방법을 터득하려면 말하는 것에 예민해져야 해요. 그러려면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아이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촉각을 세워보세요. 생각이 유연해지면, 아이의 말과 행동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볼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잘못된 걸 그냥 넘어갈 순 없습니다. 훈육이 필요한 순간도 있어요. 오해하지 마세요. 방임하라는 게 아닙니다. 책임에 대해서는 명확히 선을 그어줘야 합니다. 예를 들어 과제와 시험, 수업 방법 등 배움의 과정에 필요한 활동은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해”로 일관합니다. 다만 그전에 아이들이 원치 않는 상황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길러줘야 합니다. 저는 예측 불가능한 경험을 늘려주었으면 합니다. 예측 불가능한 경험이요? 배움은 원래 부끄러움을 동반합니다. 스케이트 배울 때 넘어져서 아파도 보고, 창피함도 느끼잖아요. 그 순간을 견디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육은 넘어지는 걸 용납하지 않습니다. 최소 투자, 최대 산출을 위해 계획하고, 정제한 것들만 쥐여주죠. 그러니 아이들이 불편하고, 힘든 걸 못 견딥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생각지 못한 문제가 널려 있어요. 직접 풀어보고, 틀려도 다시 해봐야 한 단계 성장합니다.예측불가능한 상황에 자주 노출시키라는 건 그래서예요. 문제에 부딪쳐 보게 하는 거죠. 저는 수업 계획을 예고하지 않습니다. 수업 자료도 임박해서 줍니다. 처음엔 다들 당황하지만, 곧 각자의 방식으로 적응합니다. 이런 경험이 내 말이 됩니다. 경험이 쌓여야 말도 풍성해진다는 거예요. 김진해 교수는 "말을 주고받는 폭은 각자의 경험치에 따라 다르다"며 "양육자는 경험을 멈추지 말고, 아이들은 예측불가능한 경험을 늘려가라"고 조언했다. 김성룡 기자 ━ 📢 포로수용소에 ‘빵’ 대신 ‘립스틱’을 보낸 까닭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것인가,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을 할 것인가.’ 말할 때 마주하는 현실적인 고민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면 독단적이 되고, 상대가 듣고 싶은 말만 하면 비굴해진다. 중도를 찾는다는 게 여간 쉽지 않다.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상대가 듣고 싶은 말로 하면 된다”며 “호랑이 조련사가 되라”고 했다. 호랑이 조련사요? 조련사는 호랑이의 성향을 파악해서 거기에 맞게 조련합니다. 말하기도 똑같아요. 열쇠는 상대에게 있습니다. 상대를 잘 파악해서 그에 맞게 말해야 하죠. 말할 때 상대방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조련사는 호랑이가 어떨 때 화를 내는지, 어디를 만지면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줄 때 움직이는지 등을 먼저 파악합니다. 그래야 호랑이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움직이게 만들 수 있죠. 말하기도 그래요. 내 앞의 상대를 끊임없이 의식하고 파악해야 해요. 어떤 포인트에서 웃는지, 어떤 단어를 많이 쓰는지, 민감하게 반응하는 단어는 무엇인지 등을 세심하게 관찰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상대를 의식해야 하나요? 말이 갖는 특성 때문입니다. 말은 반드시 화자와 청자가 있어야 성립합니다. 독백도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죠. 문제는 내 말의 뜻이 상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말이 가진 이중성과 경계를 지우는 특성 때문인데요. 이중성은 말이 드러내는 동시에 감추는 걸 말해요. 예를 들어 ‘김밥’이라는 단어가 그래요. 김과 밥은 드러내지만, 그 속에 담긴 시금치, 당근 등 재료들은 감추잖아요. 경계 지우기는 말이 개별 존재의 차이를 무시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각자 고유한 특성을 가진 개개인인데, ‘사람’이라는 단어 하나로 묶이는 것처럼요. 그래서 저는 ‘말의 감수성’을 키우라고 합니다. 드러나지 않는 걸 보려고 애쓰고, 흐릿한 것들을 선명하게 드러내려 애쓰라는 거죠. 말할 때 상대를 중심에 두는 것도 그중 하나예요. 말의 감수성도 연습하면 늘까요? 물론입니다. 상대와 주변을 관찰하고, 표현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우선 말에 담기지 않은 걸 찾아보고, 관찰하세요. 예를 들어 저는 김밥이란 말 대신 ‘노란무당근소시지시금치어묵김밥’이라고 부릅니다. 김밥 뒤에 감춰진 걸 보는 거죠. 양육자와 아이가 서로의 표정을 살펴보면서 대화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서로에게 해석을 맡기는 거예요. “아빠, 단답식으로 말하는 거 보니 기분이 안 좋나 보네요”라는 식으로요. 거기에 제 생각을 밝히면서 대화를 해나가는 식이죠. 거창하지 않습니다. 식사 중에, TV 시청 중에 서로의 행동을, 어조를, 목소리를 감지하며 서로가 서로를 해석해보는 건데요. 중요한 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해보는 겁니다. 어떻게요? 미묘한 차이를 구체적으로 말해보는 거예요. 특히 일반적인 표현에서 벗어나 다른 표현을 써보세요. 예를 들어 책에 나온 ‘꿀꿀꿀’ ‘꼬끼오’ 같은 동물 울음소리를 직접 들어보고 아이의 말과 글로 바꿔보는 거예요. 또 수박의 ‘달다’와 포도의 ‘달다’는 엄연히 달라요. 각 과일의 달다를 더 구체적으로 말하거나 써보게 해봅니다. 소리, 향기, 촉감 등 말 이전의 세계를 경험해 보는 게 말의 감수성과 표현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김 교수는 인터뷰를 끝내며 질문을 하나 던졌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포로수용소로 전달된 첫 번째 구호물품이 무엇인지 아느냐는 질문이었다. 흔히 음식, 물, 옷 등을 떠올리지만, 모두 아니라고 했다. 답은 립스틱이었다. 그는 “상대 입장에서 생각했기 때문에 립스틱을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는 상황에 처한 포로들에겐 음식이나 옷이 아니라 사람다움을 느끼게 할 립스틱이 더 절실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결국 상대에 대한 진심을 잘 전달하려면 상대 입장에 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해 교수는 '형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아무리 좋은 마음도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의미 없다"며 "귀한 손님 대접하듯, 내 진심을 어떻게 전달할까를 고민하라"고 했다. 김성룡 기자 선물을 할 땐 상대를 생각하잖아요. 뭘 좋아하는지, 필요한 건 뭔지요. 말도 그래요. 상대방 입장에서 말하세요. 그래야 진심이 전해집니다. ■ 김진해 교수가 말하는 품격있는 반말의 조건 「 ①말이 생각을 바꾼다=말의 형식이 생각과 태도를 결정합니다. 반말을 쓰면 존댓말을 쓸 때의 사고 체계, 고정관념 등이 깨지며 생각이 전환됩니다. 더 친밀하게 느껴 자유롭게 말할 수도 있고요. 다만 말을 바꿀 때는 상호 합의와 원칙이 필요합니다. ②우월감을 내려놔야 반말도 통한다=아이와 반말 대화하려면 가르치려는 마음, 어른의 우월감을 내려놔야 합니다. 인간의 양면성을 인정하세요. 어른도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아이가 예측 불가능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러면 폭넓고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③상대를 중심에 둬라=말은 상대가 있어야만 의미가 생깁니다. 말할 땐 상대를 중심에 두세요. 상대를 관찰하고, 진심을 전달하기 위한 표현 방법도 고민해 보세요. 」 관련기사 화 좀 그만 내고 싶다고요? 이 말 한마디면 됩니다 방이 돼지우리니? 이 말 나올 상황에 부모가 대신 해야할 말 "더하라고요? 덜 배워야 합니다" 큰별쌤 최태성의 역사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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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수천만원 적자도 괜찮아…‘암투병’ 그녀의 특별한 그곳 유료 전용
아파 보면 알아요. 지금 자기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을 때 뭘 해야 하는지, 우선순위가 명확해지거든요. 저한텐 그게 책방 일이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오히려 힘이 빠졌어요. 부산 어린이 전문서점 ‘책과아이들’의 김영수·강정아 공동대표. 강 대표는 “부부가 같이 일하면 많이 싸운다는데 우리는 각각 1층 서점과 2층 나눔방에서 주로 근무해서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며 웃었다. 송봉근 기자 지난달 31일 부산에서 만난 강정아(58) ‘책과아이들’ 공동대표는 투병생활 중에도 책방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2019년 9월 유방암 4기 진단을 받고 가장 먼저 든 생각도 ‘어, 아직 읽을 책이 많이 남았는데’였다고. 남편 김영수(60) 공동대표는 침대에 누워서도 손에서 책은 물론 업무를 놓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독서대와 거치대부터 찾아서 설치해줬다. 강 대표는 “다들 병상일지니, 명언집이니, 삶과 죽음을 다룬 책을 선물해 주는데 그런 건 하나도 공감이 안 된다”며 “다음 전시 준비를 위해 읽고 있는 SF소설이 훨씬 재미있다”며 웃었다. 책과아이들은 이들 부부뿐 아니라 부산시민들에게도 특별한 공간이다. 1997년 부산진구 양정동에서 처음 문을 열고, 2001년 연제구 거제동으로 이전 후 2009년 지금의 부산교대 앞에 이르기까지 위치는 두 차례 바뀌었지만, 26년간 한결같이 어린이 전문서점으로서 자리를 지켜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점 독서 프로그램을 거쳐 간 아이들만 수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그 오랜 시간 동안 어린이 서점을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서점에서 전시를 열고 연극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책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던 아이도 이곳에 한번 발을 딛게 되면 몇 년씩 발길을 이어가는 걸까? hello! Parents가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와 함께 가 볼 만한 책방 두 곳을 선정, 지난주 ‘데카르트 수학책방’에 이어 책과아이들을 찾았다. ━ Part1. 유방암 4기, 여전히 꿈꾸는 서점지기 「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건 꿈이 이루어지는 거야.” 」 독일 작가 미하엘 엔데의 소설 『모모』에 나오는 이야기다. 관광안내원에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기기는 “나는 더 이상 꿈꿀 게 없다”며 “이 세상 모든 것에 신물이 났다”고 숨 돌릴 틈도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강정아 대표는 “꿈은 또 다른 꿈을 생산해야 건강하다”며 “꿈이 끝이 돼버리면 안 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바라던 마당이 있는 서점을 운영하게 된 그의 새로운 꿈은 아이들을 위한 소극장을 짓는 것이다. “마당이 있는 서점을 원했지만, 그게 제 꿈은 아니었어요. 처음에 아파트 상가에 있는 12평짜리 공간에서 시작했는데, 너무 좁아서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까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죠. 서점에 왔다고 꼭 책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엄마·아빠한테 억지로 끌려 왔어도 친구들과 나가서 뛰어놀 수 있으면 좋잖아요. 마당이 있으면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니 놀러 오는 재미도 있고요.” 강정아 대표는 “오랜만에 서점을 찾는 아이들 중 마당에 들어와 동백나무를 보고 ‘여기 어렸을 때 와본 곳’이라고 떠올리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기억 한편에 자리 잡은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봉근 기자 지금의 5층짜리 서점도 필요에 따라 새로운 공간을 마련하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마당으로 들어서 1층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건물에 들어서면 왼편에는 서점, 오른편에는 책사랑방(도서관)이 자리한다. 책을 파는 곳이든, 빌려주는 곳이든 어디고 편하게 앉아서 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깔고 난방을 넣었다. 덕분에 다락방 같은 복층 공간에 엎드려서 책을 보는 아이들도 많다. 아이들이 보다 책방을 친숙하게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책사랑방은 ‘구름빵’, 2층 나눔방은 ‘삐삐방’ ‘몽실언니방’ 등 작품 속 주인공 이름을 따서 지었다. “원래는 2층까지만 책방으로 쓰고, 나머지는 가정집이었어요. 주택으로 쓰던 건물을 대출을 끼고 샀으니 자금이 모자라 3층은 저희가 들어가서 살고, 4층과 5층은 전세를 줬죠. 그런데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공간이 부족해지더라고요. 결국 4층은 워크숍 룸, 5층은 갤러리로 만들었어요. 공간이 생기니까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지더라고요. 아이들 1박2일 캠프도 하고, 초청 작가 북스테이도 하다 보니, 다른 독서 모임 대관 문의도 늘어나고요.” 다양한 프로그램은 아이들이 지속적으로 서점을 찾는 이유가 되어줬다. 서점 초기부터 진행해 온 ‘부모와 함께 그림책 교실’이 대표적인 예다. 시와 노래로 시작해 그림책을 음악과 함께 감상하고, 타악기 연주를 곁들이는 이색적인 프로그램으로, 매주 토요일 오전 3~7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연령별로 나뉘어 10회 과정으로 진행된다. 봄·여름·가을·겨울 과정을 4년 내내 듣는 아이들도 많다. 20여 년 전 본 앤서니 브라운 전시에서 영감을 얻어 강 대표가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엄마·아빠 손 잡고 놀러 온 책방이 재밌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가만히 보니 부모와 함께 올 수 없는 아이들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함께 오는 ‘한반 나들이’ 프로그램도 만들었는데 20년 넘게 매달 오는 유치원도 있어요. 유아교육과 교수님이 대학생들을 실습 삼아 보내기도 하고요. 유아기 때 꾸준히 보고 듣는 경험은 집중력과 심미안을 키워줘요. 6~7살 정도 되면 할머니가 들려주는 옛이야기를 한 시간 내내 들을 수 있을 정도니까요.” 1층 책사랑방에서 연극을 마친 단원들이 인사하는 모습. 2014년 시작해 지난해 연말 15기가 공연을 마쳤다. 아이들은 물론 동네 어르신까지 참여하는 연례 행사가 됐다. 사진 책과아이들 소극장을 마음에 품게 된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 2014년부터 매년 극단 ‘두근두근 당당하게’ 단원을 모집해 연극을 올리다 보니, 제대로 갖춰진 무대에서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그림책에 들어간 원화를 눈으로 보면서 아이들이 직접 그림책을 만들게 하고 싶은 마음에 갤러리까지 만든 터였다. 이곳에서 동화 쓰기를 공부한 작가들이 모여서 쓴 『자꾸자꾸 책방』, 지난 25년의 기록을 담은 인터뷰집 『서점은 내가 할게』 등 동네 사람들이 의기투합해 펴낸 책도 여러 권이다. 24시간 열려 있는 소극장이라고 못할 이유가 있을까? 소극장이 생기면 또 다른 작당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싹텄다. “어릴 적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이 동네에 살았는데, 초등학교에 제법 큰 극장이 있었어요. 교대생들과 함께 1년에 한 번씩 연극을 올리면서 중·고등학교 때보다 더 많은 걸 배웠어요. 살면서 정말 알아야 할 것들은 다 연극에서 배운 것 같아요. 권정생 선생님 동화로 옴니버스 연극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럼 책을 읽는 건 물론이고 토론도 해야 했어요. 대사도 외워야 하고요. 작품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달라질 수밖에 없죠.” 김영수 대표는 “우리는 오디션을 따로 안 본다. 처음엔 연기를 잘 못해도, 두세 달 정도 연습하고 나면 다들 잘하더라”고 거들었다. 연극의 매력에 빠져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에 진학해 배우로 데뷔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친구 따라 연극 보러 왔다가 서점 직원으로 들어온 경우도 있다고. “이제 18살인 어린 친구가 과연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결국 성실함이 미숙함을 이기더라고요. 군대 가면서 제대하면 돌아올 거라고 자기 자리 남겨두라고 신신당부하더군요. 지금 책방지기는 초등학교 때 독서 프로그램을 하던 친구인데, 소극장이 생기고 규모가 커지면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기지 않을까요?” ━ Part2. 엄마가 나를 찾으면, 아이도 찾는다 「 “넌 시인이구나.” “나도 알아.” 」 네덜란드 작가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 『프레드릭』에 나오는 구절이다. 프레드릭은 추운 겨울이 오기 전 햇빛, 색깔, 이야기를 차곡차곡 모은다. 친구들은 먹이를 모으느라 여념이 없는데 말이다. 책을 읽는데 강정아 대표의 눈물이 툭 떨어졌다. 프레드릭에게서 자신이 보였던 것. 첫 아이를 돌보느라 그런 자신을 잊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잃지 않아야 한다고. 네 아이의 엄마인 강 대표가 자녀들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은 것이기도 하다. 책과아이들은 책을 제목 순이 아닌 작가와 출판사별로 모아뒀다. 마음에 드는 작가를 발견하면 더 많은 작품을 만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1~3세, 4~5세 등 연령별 추천 그림책도 준비돼 있다. 송봉근 기자 “막내가 유치원을 다닐 때 엄마의 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가져온 적이 있어요. 대학교 4학년 때 친구가 ‘넌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었던 게 떠오르더군요. ‘독서가와 음악감상가’라고 답했었죠. 졸업이 코앞인데, 대책 없이 낭만적이죠? 역사를 좋아해서 사학과에 갔는데 전공 책 읽기에 바빠서 정작 읽고 싶은 책 볼 시간은 없었거든요. 오히려 졸업 후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진정한 독서를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저한테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고요.” 결혼 후 고향인 부산을 떠나 남편 직장이 있던 경기도 수원에 살던 시절, 독서는 강 대표에게 유일한 피난처이자 해방구였다. 첫 딸을 낳고 독박 육아에 지쳤을 때 찾았던 곳은 도서관이었고, 낯선 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방법을 몰라 헤맬 때 나침반이 돼준 건 책이었다. 정작 비싼 돈 주고 들인 전집이 서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요약본에 아이 눈높이에도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제대로 된 단행본을 찾아 집에서 두 시간 반 거리 어린이 전문서점 ‘초방’까지 가는 수고도 마다치 않았다. 베르너 홀츠바르트의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 레이먼드 브릭스의 『눈사람 아저씨』 같은 책을 발견할 때마다 ‘이 좋은 걸 나만 알면 안 되는데’ 하는 마음이 움텄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동네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책을 읽어주는 ‘잠잠이 책사랑방’을 열었고, 동화 읽는 어른 모임 ‘해님 달님’을 중심으로 강연회를 열고 연극을 만들고 전시를 꾸렸다. 남편이 부산으로 발령을 받으며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기뻤지만, 애써 꾸린 독서 모임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결국 부산에서도 새로운 모임을 꾸리고 필요한 책을 찾아 나서다가 서점까지 차리게 됐다. “부산에도 어린이 전문서점이 두세 곳 있다고 들었는데 찾아가 보니 모두 문을 닫았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동아대 앞 ‘향학서점’에 도서 구매를 부탁했는데, 어느 날 가 보니 책꽂이가 하나 따로 만들어졌더라고요. 제가 주문한 책이 좋다며 한 권씩 더 주문해서 꽂아둔 거예요. 그렇게 다른 사람들이 그 책을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책과아이들도 처음엔 제가 고른 책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은 회원들이 주문한 책도 많아요. 단골의 다중지성으로 채워지는 서가를 만들고 싶어요.” 2층 나눔방에서 ‘옛이야기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모습. 1997년 서점을 시작할 당시 우리나라 그림책이 별로 없는 아쉬움을 달래고자 강정아 대표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어머니에게 부탁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사진 책과아이들 책과아이들은 온 가족이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일곱 살 때 강 대표의 구상을 듣고 “딱 책과 아이들이구만” 하고 책방 이름을 붙여준 첫째 딸 기영(32)씨는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책방을 찾아 음악과 함께 듣는 그림책 교실 수업을 진행한다. 한예종에서 음악을 전공한 이력을 살려 데이비드 위스너의 『아트와 맥스』를 읽어주며 노란색 물감을 집어 던지는 장면이 나오면 노란색 핸드벨을 아이들과 함께 연주하는 식이다. 연극 포스터며 무대 배경 작업을 도맡아 하던 넷째 딸 예영(21)씨는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 중이다. “넷 다 대안학교를 선택해서 입시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저희 부부도 공부는 학교에서 하고, 집에서는 일을 도우라는 주의였거든요. 그래선지 책방을 하겠다는 친구는 아무도 없는데, 다들 여길 염두에 두긴 하더라고요. 셋째 아들 성빈(24)이는 건축 공부를 하는데, 꼭 이 공간을 활용해서 설계도를 그려요. 소극장 설계도도 한번 그려보라고 했어요. 마당 있는 지금의 서점 자리를 찾은 것처럼, 좋은 기회가 생기면 빨리 잡을 수 있도록 말이죠.” ━ Part3. 독서, 책 고르기로 시작 책 고르기로 끝나 「 “당신은 어디 살아?” “양계장.” 」 2000년 출간된 황선미 작가의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강정아 대표와 김영수 대표가 나눈 대화다. 강정아 대표는 “남편이 양계장에 산다고 느끼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당장 때려치우라”고 했다. 김 대표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할 상황에 처하자 이듬해 회사를 그만두고 서점 운영에 합류했다. 김 대표는 퇴사 후 아이들과 책을 읽으며 진짜 자기 삶을 찾았다. 강 대표는 “남편은 자기 삶에 대한 서사가 만들어지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이제는 윤기현 작가의 『보리타작 하는 날』를 읽다 보리밭을 거닐며 보리내음을 음미하던 유년 시절을 떠올리는 이야기꾼이 됐다. “아내 덕에 뒤늦게 책에서 제 삶을 찾았어요. 그런데 그때 보니 우리 아이들도 그렇더라고요. 특별히 사교육을 시키거나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거든요. 해준 건 딱 하나, 책 읽어주기 뿐이었어요. 그런데 다들 자기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서, 뚜벅뚜벅 가고 있더라고요. 둘째 아들 성근(27)이는 대안학교에서 농사랑 인문학만 배웠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맥주 공부를 하겠다고 유학을 결심하더니 독일어를 익히고, 양조설비에 관한 열역학 원리까지 깨치더라고요.” 5층 갤러리에서 ‘부산 경남지역 도서관과 학교의 실물수서를 위한 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모습. 책을 직접 보고 도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25개 출판사가 참여했다. 송봉근 기자 서점의 주요 프로그램도 아이들로부터 시작했다. 첫째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면서 ‘친구와 함께 책 읽기’ 모임을 꾸리고, 게임에 몰두하는 셋째를 보면서 ‘청소년, 가족과 함께 인문학을 읽다’ 모임을 만들었다. ‘옛이야기 할머니’란 프로그램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은퇴한 친정어머니로부터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이 2000회가 됐을 때 ‘1박2일 독서캠프’를 기획했는데, 반응이 너무 뜨거워 정례화했다. 내친김에 겨울방학 동안 매일 오전 4시간씩 모여서 책을 읽는 ‘세이레 방학캠프’도 열었다. 서점은 이런 식으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치며 커왔다. “역사 공부는 시대 구분에서 시작해서 시대 구분으로 끝난다고 하거든요. 독서 지도는 책 고르기에서 시작해서 책 고르기로 끝나는 것 같아요. 일단 책을 고르고 나면 책이 다 해주거든요. 지금 당장 아이들에게 필요한 게 가장 좋은 책이죠. 기장 원전 이슈가 있으면 핵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잖아요. 인문학 프로그램은 전반 6개월 커리큘럼은 제가 짜지만, 후반 6개월은 아이들이 직접 짜요. 주제를 정하고, 책을 고르고, 강사를 섭외하고, 강연을 진행하려면 공부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어요. 읽은 자와 안 읽은 자는 사용하는 단어부터 다르니까요.” 모든 프로그램의 명맥이 유지되는 건 아니다. 강 대표의 투병 생활과 코로나19가 맞물리면서 중단된 프로그램도 여럿이다. 강 대표는 “독서도 트렌드가 있어서 한 프로그램이 꾸준히 유지되긴 쉽지 않다”며 “다행히 하나가 주춤하면 새로운 프로그램이 치고 올라온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나마 회비를 내는 유료 프로그램이 많고, 월세 걱정 없이 자가로 운영하니까 유지는 하죠. 우리가 부자도 아니고, 연간 수천만원 적자지만, 나중에 이 건물 팔아서 한방에 갚으면 된다 하면서요(웃음).” 어린이 서점을 시작하고 10년간은 “계속하실 거죠?”란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다. 10년이 넘어가자, 이제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계속할 수 있어요?” “월세 걱정 없는 덕”이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책에, 아이들에게 갖는 애정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이들의 다음 고민은 ‘어떻게 하면 젊은 세대로 이어갈 수 있을까’다. 이곳에 오던 친구들이 결혼하고 자식 손을 잡고 오는 모습을 보고 싶거든요. 그러려면 아직도 할 일이 많아요. 관련기사 책 보면 불러도 모르는 아이…근데 공부는 왜 못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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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터지면 ‘갑질 학부모’ 돌변…아이 싸움 때 가장 먼저 할 일 ③ 유료 전용
서이초 사건을 집중 해부하는 hello! Parents 리포트. 지난 1화에서는 한 명의 교사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간 초등학교 교실의 현실을, 2화에서는 사건의 한복판에서 대립하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를 들여다봤습니다. 이번 화에서는 서이초 사건의 발단이 된 ‘연필 사건’ 같은 문제가 전개되는 양상을 살펴보고, 학부모는 이런 일이 터졌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목차 「 [3화] 아이의 사건, 어떻게 대처할까 1 아이 사건, 이렇게 전개된다 ①사건 터지면 돌변하는 학부모 ②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인터뷰] “대부분 사소한 언행에서 시작” 학교폭력 전담 교사의 조언 2 누구를 위한 민원인가 ①과도한 민원, 피해는 아이 몫 」 박정민 디자이너 ━ 1 아이 사건, 이렇게 전개된다 ①아이 사건 터지면 돌변하는 학부모 평소 별문제 없어 보이던 교사와 학부모 관계는 ‘연필 사건’ 같은 일이 발생하면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사건은 대부분 아이들 사이에 말싸움이나 몸싸움이 발생하는 겁니다. 지난 2화에서 살펴봤듯 1980년대생 학부모들은 아이의 안전에 예민하고, 학교폭력 문제로 늘 불안해합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당황스럽고, 속상하고, 억울한 동시에 “내 아이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죠. 이렇게 날이 선 학부모들은 감정의 화살을 종종 교사에게 돌립니다. 경력 14년 차 박윤희(가명) 교사는 “평소 협조적이던 학부모도 자녀를 둘러싼 사건이 터지면 한순간에 갑질 학부모로 변한다”고 말했습니다. 피해 학생의 부모는 “선생님은 뭐했냐”며 관리·감독 책임을 따져 묻고, 가해 학생의 부모는 “왜 그 아이 편만 드냐”며 교사를 몰아세우는 식이죠. 교사들은 무력감을 호소합니다. 생활지도에 대한 명확한 지침이나 가이드라인이 없는 데다 자칫 잘못 개입했다가는 민원이나 각종 신고에 시달릴까 두렵다는 겁니다.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이민정(가명) 교사는 “양쪽 학부모를 중재해 화해를 끌어내려다 오히려 오해와 원성을 사는 일이 적지 않았다”면서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이젠 ‘원하시면 (학교폭력 신고 등) 절차를 안내하겠다’고만 말한다”고 했습니다. ②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는 일은 요즘 초등학교에선 너무 흔합니다. 어찌 됐든 내 아이는 지켜야겠다는 학부모들의 신경전과 감정싸움은 결국 학교폭력 신고를 넘어 상대에 대한 고소·고발로까지 이어지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교사를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일이 커지면 아이와 학부모·교사 모두 고통스러워진다는 것이죠. 사건이 터진 그 당시엔 이런 사실을 깨닫기 쉽지 않지만 말입니다. 8년 동안 학교폭력을 담당한 이상우 경기 금암초 교사는 “경험상 학교폭력으로 분류되는 사건의 90% 이상이 경미한 사안이고, 50% 정도는 쌍방 모두에게 책임이 있었다”며 “아이가 다른 아이의 뒤통수를 몇 번 친 일, 두어 차례 욕을 한 일이 학교폭력 사안으로 가는 게 요즘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학교폭력 전담 변호사의 증가도 애들 싸움을 어른 싸움으로 만드는 데 한몫하고 있습니다. 학폭 전담 변호사는 2012년 학폭예방법이 강화된 이후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징계에 불복하는 행정소송·행정심판이 급증했거든요.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학폭위 결정에 반발해 제기된 행정소송·행정심판은 1614건이었습니다. 2020년(767건)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한 수치죠. 학교폭력이 변호사들 사이에서 하나의 ‘시장’을 형성하게 되면서 별것 아닌 일도 ‘사건’으로 키우는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전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생활지도부장을 맡고 있는 김지훈(가명) 교사는 “피해·가해 학생·학부모가 원만하게 합의하고 마무리한 사안도 브로커와 학폭 전담 변호사가 붙어 문제를 키우는 일이 적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문제는 초등학교 교실에선 교사가 있건 없건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는다는 겁니다. 20명이 넘는 아이들이 모여 공부하고 생활하는 공간이니까요. 내 아이가 학교폭력으로 비화할 수 있는 사건의 피해자나 가해자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사건이 터지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막막한 데다 교사와 학교에 어디까지 기대할 수 있는지도 갈피를 잡기 어렵죠. 상대 아이의 학부모가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점도 변수입니다. 아이와 학부모·교사 모두가 상처받지 않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요? ■ [인터뷰] “사건에 휘말렸다면, 평점심을 가져라” 「 15년 교직 생활 중 8년을 학교폭력 전담 교사로 일한 이상우 교사(경기 금암초)는 “학교 폭력 중엔 대단한 폭력 사건은 별로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게 사소한 오해와 언행에서 시작된 게 학교 폭력으로 커진다는 겁니다. 그는 “사건이 터지면 당황하거나 흥분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상우 교사 이상우 교사가 이렇게 말하는 건 경기도교육청 학교폭력예방 현장지원단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사건·사고에 휘말린 아이와 학부모·교사를 수없이 만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 최근 몇 년 간 부모 교육과 교사 연수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교사는 어떻게 학부모를 상담하는가』,『학교폭력으로부터 학교를 구하라(공저)』 등의 책도 썼습니다. 소위 연필 사건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이후 상황은 어떻게 전개되나요?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 간에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건 전후 관계와 사실관계를 파악합니다. 당사자인 아이들에게만 묻는 게 아니라 목격자에 해당하는 주변 아이들에게도 상황을 묻죠. 그리고 나면 간단히 지도하거나 아이들끼리 사과하게 하고 화해를 시킵니다. 아이가 다친 정도가 심하지 않거나 심각한 사안이 아니라면 하교 후 학부모에게 전화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안내합니다. 가정에서도 이런 점을 살펴봐 주십사 하고 요청하는 겁니다. 교사가 심각하지 않다고 판단해 학부모에게 별다른 안내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그럼 학부모는 아이를 통해 사건을 전해 듣게 되죠. 아이가 사건에 휘말렸을 때 학부모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정심을 갖는 겁니다. 내가 지금 불안한 상태라는 걸 알아차려야 해요. 쉽지 않겠지만 차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정확한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어요. 이게 문제 해결의 첫 단계거든요.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선 당시 상황을 아이에게 물을 수밖에 없는데요. 이때 아이가 육하원칙에 따라 객관적으로 상황을 전달할 수 있도록 지도하세요. 엄마가 한숨을 쉬거나 신세 한탄을 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를 추궁하거나 비난해서도 안 되고요. 아이가 혼나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거나 사건을 왜곡할 수 있거든요. 아이 말을 경청하고, 속상해하는 마음에 공감해주되 사건의 전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전에는 내 아이 말이 모두 맞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사에게는 무엇을 물어봐야 할까요? 사건의 전후 사정뿐 아니라, 사건의 상대 아이와 자녀와의 평소 관계가 어땠는지도 확인하세요. 좀 더 넓게 아이의 평소 교우 관계와 학교생활에 대해서도 물어보시고요. 교사가 보기에 아이의 단점은 무엇이고, 이를 보완하려면 집에선 어떻게 도와주면 좋은지도 묻는 게 좋습니다. 평소 아이를 관찰하고 지도하는 교사와 이런 대화를 나누고 조처를 해야 비슷한 일이 재발하지 않거든요. 교사와 이야기를 나눌 때는 전화보다 대면 상담을 권합니다. 전화로 이야기 하다 보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어요. 예를 갖추고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을 보인다면 상담을 거절할 교사는 없습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뭘까요? 사건이 발생한 직후 당사자인 학부모들끼리 직접 연락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개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납니다. 담임교사의 중재를 거친 후 대화하거나 만나는 게 좋습니다. 양쪽 학부모가 만나거나 대화하는 건 어느 정도 사실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고, 양쪽의 요구 사항이 일치한 이후에 진행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래야 불필요한 오해로 사건이 커지는 걸 막을 수 있어요. 특히 자녀를 괴롭힌 아이에게 경고하겠다는 생각에 피해 학생의 부모가 가해 학생을 만나는 건 절대 해선 안 됩니다. 아이에게 큰 소리를 내거나 경고하는 과정에서 혹여 아이가 울거나 하면 역으로 아동학대 혐의로 신고를 당할 수 있어요. 이렇게 피해 학생의 부모가 형사 기소되면, 아이는 자기 때문에 엄마·아빠가 처벌을 받게 됐다고 생각해 더 괴로워합니다. 학교 폭력으로 신고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학부모가 학교 폭력 신고를 하면 교내 전담 기구 회의가 열리고 본격적으로 조사가 시작됩니다. 교내 전담기구는 교감, 전문 상담 교사, 학교폭력 담당교사, 학부모 등으로 구성되고요. 여기서 사안을 조사하고, 그 정도에 따라 학교장이 서면 사과, 교내 봉사, 수업 배제 등 자체적인 조치를 시행한 뒤 사안을 종결할 수 있습니다. 경미한 사안은 보통 이렇게 학교장 선에서 마무리되죠. 심각한 사안은 어떤 과정을 거쳐 해결되나요? 사안이 심각하거나 해당 학부모·학생이 학교장 자체 종결을 원치 않을 경우, 교육청의 학폭위로 넘어가요. 학교가 아니라 교육청 차원에서 사안을 조사하고 심의해 징계 조처를 내리죠. 경미한 사건은 사과 편지를 쓰는 경우로 끝나는 경우가 많아요. 피해 학생에 대한 접촉·협박·보복 금지나 교내 사회봉사 활동 등의 처분이 내려지기도 하고요. 심각한 경우 학급 교체나 강제 전학 조처가 내려집니다. 사실 학폭위가 열리면, 담임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건의 당사자인 학부모들은 결과가 성에 차지 않거나 억울하다는 이유로 담임 교사를 괴롭히는 악성 민원인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교권 회복과 보호 방안 마련을 위한 학부모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스1 ━ 2 누구를 위한 민원인가 ①과도한 민원, 피해는 아이 몫 무력감·자괴감을 느끼는 교사들이 교직을 떠나는 일이 늘고 있습니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1년(2022년 3월~2023년 4월)간 퇴직한 국공립 초·중·고 교사는 1만2003명. 역대 최고 수준입니다. 특히 5년 미만 경력의 젊은 교사들의 퇴직이 589명으로 예년에 비해 크게 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교사가 311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선생님이 사라진 교실의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아이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학기 중에 문제가 생겼다면 정상적인 교육 활동이 이어지기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학교폭력 사안이 생기면 교사가 처리하고 신경 쓸 일도 많아집니다. 그만큼 수업 준비나 다른 활동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도 줄어들 수밖에 없죠. 이지혜 교사는 학부모와의 갈등으로 담임이 교체된 학급에 임시 담임으로 긴급 투입된 적이 두 번 있습니다. 그는 자녀가 1학년이던 당시 담임 교사가 아동학대 신고를 당해 교체되는 일을 겪기도 했죠. 담임 교사 교체로까지 이어지는 사건이 절대 적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정유진(가명) 교사는 “교사 대부분이 방어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수업 활동을 짤 때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가르칠까 고민하기보단 어떻게 해야 최대한 학부모 민원을 덜 받을까를 고민합니다.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민원을 넣은 것이지만, 그 피해는 아이에게 고스란히 돌아갑니다. 민원을 제기하거나 민원의 소지가 있는 아이를 교사가 멀리하려 들기 때문이죠. 대놓고 그렇게 하진 못하겠지만, 조심하는 건 사실입니다. 비단 교사만이 아닙니다. 반 친구들 역시 그런 아이와 가깝게 지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결국 아이는 교실에서 점점 고립되는 상황에 부닥치고 맙니다. 초등교사 출신으로 자녀 교육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이은경씨는 지인인 초등학교 교사로부터 전해 들은 일화를 들려줬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친구에게 “우리 담임 너무 짜증 나는데, 엄마한테 말해서 바꿀까?”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는 겁니다. 교사들은 아이들 사이의 갈등을 배움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연필 사건’ 같은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에게 사소한 장난으로 누군가가 다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반성하고 사과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달 2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에 극단 선택으로 숨진 교사를 추모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다. 뉴스1 서이초 사건은 ‘강남’이어서 일어난 사건도, ‘2년 차 신규 교사’여서 일어난 사건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초등학교라면 전국 어디에서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주 넘게 취재를 하며,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건 교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hello! Parents를 만들고 있고, hello! Parents를 보고 있는 우리, 바로 양육자가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11년 차 박소정 교사의 말을 전하며 시리즈를 마무리합니다. 학부모님들은 아이가 문제에 휘말리면 서로 ‘네 탓’이라고 주장하며 잘잘못만 따지려고 합니다. 그럼 아이는 결국 남 탓하는 것밖에 배울 수 없다는 걸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 hello! Parents 리포트 : 서이초 사건 집중 해부 「 [1화] 서이초 사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 1 지금 초등 1학년 교실에선 무슨 일이? ①초등 1학년 교실은 ‘동물의 왕국’ ②교사에겐 통제 수단이 없다 ③기피 1순위 ‘극한직업’ 초1 담임 [2화] 교사 vs 학부모, 그들의 속사정 1 교사의 역할, 어디까지인가 ①교사의 최대 스트레스:학부모 그리고 생활지도 ②돌봄과 교육 그 어딘가 ③교사 편은 아무도 없다 2 요즘 학부모, 어떻길래 ①80년대생 학부모의 등장 ②밀착 보육에 길들여진 탓? [인터뷰] “이런 것까지 요구 받아봤다” 교사 10인의 목소리 [3화] 아이의 사건, 어떻게 대처할까 1 아이 사건, 이렇게 전개된다 ①사건 터지면 돌변하는 학부모 ②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인터뷰] “대부분 사소한 언행에서 시작” 학교폭력 전담 교사의 조언 2 누구를 위한 민원인가 ①과도한 민원, 피해는 아이 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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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재워달라” 밤 9시 전화…부모와 교사 생각이 달랐다 ② 유료 전용
서이초 사건을 집중 해부하는 hello! Parents 리포트. 지난 1화에서는 한 명의 교사를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간 현재 초등학교 교실의 현실을 다뤘어요. 2화에서는 사건의 한복판에서 대립하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를 들여다보겠습니다. ■ 목차 「 [2화] 교사 vs 학부모, 그들의 속사정 1 교사의 역할, 어디까지인가 ① 교사의 최대 스트레스: 학부모 그리고 생활지도 ② 돌봄과 교육 그 사이 어딘가 ③ 교사 편은 아무도 없다 2 요즘 학부모, 어떻길래 ① 80년대생 학부모의 등장 ② 밀착 보육에 길들여진 탓? [인터뷰] “이런 것까지 요구받아 봤다” 교사 10인의 목소리 」 박정민 디자이너 ━ 1 선생님의 역할은 어디까지? ■ 「 연필사건의 피해 학부모는 서이초 사망 교사에게 “도대체 애들 케어 어떻게 하는 거냐” “교사 자격이 없다”고 따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① 교사의 최대 스트레스, 학부모 그리고 생활지도 초등 자녀를 둔 학부모들에게 ‘초등 교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능력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생활지도’가 42.9%로 1위를 차지했습니다. 학습지도(18.1%), 학생‧학부모 소통(15.7%) 등이 그 뒤를 이었죠. 초등학교에서 가장 신경써야 할 사항과 더 강화돼야 할 교육 내용에 대해서도 기본 생활습관(23.7%)과 인성교육(35.4%)을 꼽은 학부모가 가장 많았습니다(한국교육개발원, 2022 교육여론조사). 박정민 디자이너 하지만 학부모의 이런 요구가 교사에게는 가장 큰 스트레스로 나타났습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가 지난달 25~26일 유‧초‧중‧고 교사 3만29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교사가 가장 스트레스를 느끼는 대상은 학부모(66.1%)였습니다. 2위를 차지한 학생(25.3%)의 두 배가 훌쩍 넘는 비율이죠.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업무도 생활지도(46.5%)였습니다. 초등 학부모들은 교사에게 생활지도 역량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는데, 교사들은 여기에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겁니다. 교직에 대한 교사들의 만족도는 2006년 67.8%에서 올해 23.6%로 떨어져 조사 이후 최저를 기록했죠. 박정민 디자이너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2012)의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학부모가 학생지도에 얼마나 잘 협력하는지’ 묻는 질문에 교사와 학부모의 대답이 사뭇 달랐습니다. ‘그렇다’고 답한 학부모는 76.8%에 달했지만, 같은 대답을 한 교사는 59.1%에 불과했죠. 학부모는 스스로 교사를 잘 돕는다고 생각하지만, 교사는 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는 얘깁니다. 온도차가 더 큰 건 ‘학생이 어려움을 겪을 때 교사가 개입해 적절히 잘 지도하는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교사의 86.6%가 ‘그렇다’고 했지만, 같은 대답을 내놓은 학부모는 39%에 불과했어요. ‘교사가 학부모와 잘 의논하고 학부모 의견을 존중한다’는 질문에 대해서도 교사와 학부모는 상반된 답변을 내놨습니다. 교사의 82.6%는 ‘그렇다’고 했지만, 같은 대답을 한 학부모는 43.6%로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교사는 학생을 잘 지도하고 학부모와 잘 소통한다고 생각하지만, 학부모로부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죠. 박정민 디자이너 ② 돌봄과 교육 사이 그 어딘가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도 학부모와 교사의 의견이 엇갈립니다. 교사들은 스스로를 아이가 정신적·신체적으로 바르게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교육 전문가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교사가 아이를 돌보는 역할에 좀 더 힘을 쏟아주길 바랍니다. 이지혜 교사는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 전에 참여했던 엄마 모임에서 이를 체감할 수 있는 얘길 들었습니다. 한 엄마가 교사인 이씨에게 “초1 때부터는 완전 방치라던데, 사실이냐”고 물은 겁니다. 그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 해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며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돕는 게 왜 학부모들에게 방치로 여겨지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학부모들에게도 변은 있습니다. 교사와 아이는 일대다(一對多)의 관계입니다. 게다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달리 학교는 평가가 이뤄지는 공간이고요. 학부모는 행여 아이가 친구들과 싸우지 않을지,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을지, 교사의 눈 밖에 나지는 않을지 하나부터 열까지 불안합니다. ③ 교사 편은 아무도 없다 교사는 학생이 때려도, 학부모가 무리한 요구를 해도 대항하거나 거절하기 어렵습니다. 관리자인 교장‧교감이나 교육당국도 교사들의 편에 서주지 않기 때문이죠. 올해로 20년 차인 대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교장‧교감 귀에 들어가면 무능한 교사로 낙인이 찍힌다”며 “애 관리 못 하는 교사, 권위가 부족한 교사로 여겨져 미운털만 박힌다”고 말했습니다. 학생‧학부모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도 교장‧교감 귀에 들어갈까 봐 교사들끼리 쉬쉬하고 침묵하는 이유죠. 교사들은 교육당국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읍니다. 교사의 권한을 지지하고 인정하기보다 학부모 민원을 해결하는 데만 급급하다는 겁니다. 세종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부모 기분상해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소하거나 정당한 훈육으로도 교육청에까지 민원을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교육당국에서 적절한 교육활동이라고 판단될 때는 교사를 보호하고 학부모를 설득해야 하는데, 뭐든 교사에게만 고치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교사를 보호하는 법‧제도 마련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그래서입니다. 한국교총은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로부터 학생의 학습권과 교원의 교권을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교권을 침해한 학부모를 고발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교원지위법을 개정하고, 민원창구를 단일화해 교사가 민원에 시달리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는 내용이죠. 정당한 생활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전국교사모임 주최로 열린 서초 서이초 교사 추모식 및 교사생존권을 위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 2 요즘 학부모 어떻길래? ① 80년대생 학부모의 등장 교육계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80년대생 학부모가 대세가 된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학부모의 대다수는 1980년대생들이죠. 경제 성장기에 태어난 이들 세대는 비교적 풍요로운 여건에서 사교육 등 부모의 교육적 지원을 누렸습니다. 결혼한 후엔 저출산 기조로, 자녀를 한두 명만 낳았죠. 교육계 종사자들은 이런 80년대생 학부모들이 다른 세대와 두드러지는 특성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15년 경력 초등 교사 출신의 이은경 저자는 최근 80년대생 학부모 1800여 명을 온라인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기반으로 『80년대생 학부모,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책을 냈습니다. 이에 따르면 80년대생 학부모가 자녀의 학교생활에서 가장 얻기를 원하는 것은 사회성과 친구 관계(44.9%)였습니다. 학교 수업을 통해 성적을 올리길 바라는 부모는 소수(1.7%)에 불과했습니다. ‘아이의 담임이 반드시 갖췄으면 하는 덕목’도 물었는데요, ‘아이를 존중하는 태도’(63.1%)가 1위로 꼽혔습니다. ‘너그럽고 따뜻한 성품’(27.6%)이 뒤를 이었고요. 한마디로 ‘따뜻한 마음으로 내 아이를 존중해 달라’는 겁니다. 이은경 저자는 “거꾸로 뒤집어 보면 내 아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는 교사는 자질을 의심받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hello! Parents가 만난 교사들도 “요즘 학부모들은 특히 아이의 안전이 걸린 문제나 아이가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선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성향을 보인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1980년대생은 ‘사랑의 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체벌이 만연하던 시기에 초‧중‧고를 다녔습니다. 이은경 저자는 “당시에는 학부모가 교사를 찾아와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어 주십시오’라는 말을 거리낌없이 했다”며 “2011년 3월에 체벌금지법이 제정됐으니 80년대생은 학창시절 내내 맞은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사와 학교에 대한 불신이 싹텄을 수 있다는 의미죠. 이 세대의 이런 특징은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는 최근의 양육 분위기와도 궤를 같이합니다. 2005년 우리나라에 소개된 감정코칭 이론이 대표적입니다. 자신의 감정을 존중받으며 자란 아이가 자존감과 회복 탄력성(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이 높다고 알려지면서 양육자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거든요. 초1 아들을 키우는 박소연(가명‧38‧서울 강북)씨도 “교사는 아이가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아이 마음을 잘 어루만졌으면 좋겠다”며 “아이가 상처받지 않고 초등학교에서 첫해를 잘 보낼 수 있도록 돕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교사가 아이를 존중해 주기를 바라고, 안전이 걸린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여한 학부모들이 자녀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② 밀착 보육에 길들여진 탓? 교사의 역할을 놓고 학부모와 교사 사이에 인식 차이가 선명한데요, 보육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생긴 현상이라는 의견도 나옵니다. 현재 초등학교 저학년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들은 대부분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 길렀습니다. 어린이집을 졸업한 뒤에는 유치원에 보냈고요. 초등학교 입학 전 이미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7년 가까이 보육 서비스를 경험한 셈입니다. 영·유아를 돌보는 어린이집에서는 아이의 대·소변 뒤처리를 도와주고, 밥과 약을 먹여주는 일이 기본이죠. 양육자들은 영아수첩이나 키즈노트 등을 통해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달받습니다. 어린이집을 예로 들면 ‘아이가 밥을 먹다 흘려서 옷을 갈아입혔다’ ‘오늘은 색연필로 사과를 그리는데 흥미를 보였다’ ‘산책하다 넘어져서 무릎에 약을 발라줬다’ ‘대변은 몇 시에 봤는데, 묽었다. 장염일 수 있으니 신경써 달라’같이 내용도 아주 상세합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의 일과를 꼼꼼히 전달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와 달리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말도 할 줄 알고 자신의 의사도 표현합니다. 학교에서 이런 세세한 것까지 학부모에게 알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런 보육서비스를 경험한 학부모들은 학교를 돌봄 기관의 연장선으로 생각합니다. 초1 아들을 키우는 이진희(가명·38·서울 강남)씨가 “내가 먼저 요구하지 않으면 학교에서 오는 게 아무것도 없다. 소통창구가 없어서 답답하다”고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죠. 학교를 돌봄 기관으로 인식하면서 학부모들은 교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합니다. ‘시금치를 싫어하는데 급식 때 먹게 도와 달라’거나 ‘약을 먹여 달라’ ‘설사를 할 수 있으니 신경써 달라’ 같은 요청을 서슴없이 하는 거죠. 교사들은 “초등학교 1학년은 미숙하긴 해도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고, 몇 번 가르쳐주면 대부분 스스로 해낼 수 있다”며 “그런데도 가정교육의 영역을 학교와 교사에게 떠넘기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고 말합니다.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데는 어린이집과 같은 보육서비스가 확대된 영향이라는 의견도 있다. 세종시의 한 어린이집 원아들이 체험학습에 참여한 모습.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 [인터뷰] “밤 9시에 전화해 재워달라” 학부모 요구, 어디까지 「 초등 교사들은 학부모로부터 어떤 요구를 받을까요? hello! Parents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10명의 교사 목소리를 재구성했습니다. 학부모로부터 받았던 요구 중 가장 황당했던 건 뭔가요? 아이를 재워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어요. 2학년 학생이었는데요, 아이는 엄마가 돌이 되기 전에 집을 나가 할머니 손에 크고 있었어요. 아이가 1학년 때부터 민원을 많이 넣기로 유명한 할머니였죠. 어느 날 전화를 하시더니 ‘며느리가 바람을 피워서 돌쟁이 두고 집을 나갔다’고 1시간 동안 욕을 하시더군요. ‘우리 애가 젊은 여자 살결을 그리워하니까 스킨십을 많이 해주라’고도 하셨고요. 가장 황당했던 건 ‘아이가 밤에 잠을 못 잘 때가 많으니 저녁 9시에 전화해서 아이를 재워 달라’는 거였어요.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저도 세 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어렵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1학년 때 담임은 해줬는데, 왜 안 해주느냐’고 따지셨죠. 아이에 대한 애정이 없다고요. 결국 별별 트집을 다 잡아서 교무실에 민원을 넣으시더군요. 어떤 민원을 제기했나요? 아이가 받아쓰기 시험에서 ‘밖으로 나갔어요’를 ‘바끄로 나갔어요’라고 썼길래, 틀렸다고 했죠. 그랬더니 할머니께서 ‘집에서는 항상 100점을 맞는데,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미워해서 받아쓰기 점수가 잘 안 나온다’고 민원을 넣으셨어요. 알고 보니 집에서는 ‘가갸거겨’ 이런 걸 하고 있었더라고요. 그러니 100점을 맞을 수밖에 없죠. 또 현장학습을 갈 때마다 사진을 찍었는데, 왜 자기 손주를 항상 뒷줄에 세우느냐고 민원을 넣으신 적도 있어요. 이 외 학부모들이 또 어떤 요구를 하나요? ‘약 먹여 달라’ ‘김치 먹게 도와 달라’ ‘우유 먹여 달라’ 같은 민원은 진짜 많습니다. 특히 약은 아이 건강과 직결된 문제라서 그런지,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교사는 20명이 넘는 아이를 돌봐야 하기 때문에 약까지 챙길 수는 없어요. 초등학생이 됐으면 약 정도는 스스로 먹을 수 있게 가르치는 게 맞고요. 물 뚜껑을 못 따서 도와달라고 오는 아이들도 많은데요, 그럴 때 따주지 않고 방법을 알려주거든요. ‘세 번 더 해보고 그때도 안 되면 도와주겠다’고 하죠. 그런데 ‘그냥 따주면 되지, 애들 앞에서 창피줬다’고 민원 넣는 분도 있었어요. 아이들 옆에서 평생 챙겨줄 수는 없습니다. 아이 스스로 하는 방법을 익혀야 해요. 」 서이초 사건을 집중 해부하는 hello! Parents 리포트 2화에서는 이번 사건의 한복판에서 대립하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의 속사정을 들여다봤습니다. 3화에서는 서이초 사건에서 문제의 발단이 된 ‘연필사건’과 같은 일이 터지면 어떻게 전개되는지, 그런 사건에 대처하는 방법은 뭔지 살펴보겠습니다. ■ 「 [3화] 아이의 사건, 어떻게 대처할까 1 아이 사건, 이렇게 전개된다 ① 사건 터지면 돌변하는 학부모 ②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인터뷰] “대부분 사소한 언행에서 시작” 학교폭력 전담 교사의 조언 2 누구를 위한 민원인가 ① 과도한 민원, 피해는 아이 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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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1 교실은 동물의 왕국, 담임되면 사리함 준비한다” ① 유료 전용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에서 2년 차 교사 A씨(23)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한 뒤, 교사와 학부모의 반응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강득구 의원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가 지난달 24~26일 교사‧학부모 13만2359명을 조사한 결과도 그렇습니다. “서이초 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다른 학교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97.6%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교육부·서울시교육청 합동조사단이 지난 4일 발표한 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건의 전모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서이초 1학년 담임을 맡은 2년 차 교사 A씨는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연필사건’을 계기로 해당 학부모의 민원에 불안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했죠. 연필사건은 A씨가 사망하기 약 1주일 전 벌어진 사건입니다. 한 학생이 연필로 다른 학생의 가방을 찌르자 이 학생이 그만하라며 연필을 빼앗으려다 이마에 상처가 생겼습니다. 사건 이후 수차례 상담을 받기도 했지만, A씨는 법과 제도로부터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교사라면 누구나 비슷한 사건에 휘말려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립니다. 학부모는 내 아이에게도 ‘연필사건’ 같은 일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하고요. 서이초 사건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얘깁니다. 서이초 사건을 집중 해부하는 hello! Parents 리포트는 바로 이 부분에 집중했습니다. 현재 초등학교 교실의 현실은 어떤지, 그 민낯이 궁금했습니다. 교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요구는 어떤 수준인지, 교사는 어디까지 아이를 도와줘야 하는지, 그리고 교실에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학교와 시스템으로부터 어떤 식의 도움을 받고 있는지도요. 나아가 내 아이가 문제 상황에 휘말렸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짚어봤습니다. 총 3편에 걸쳐 집중 보도합니다. ■ 목차 「 [1화] 서이초 사건, 내게도 일어날 수 있다 1 지금 초등 1학년 교실에선 무슨 일이? ① 초등 1학년 교실은 ‘동물의 왕국’ ② 교사에겐 통제 수단이 없다 ③ 기피 1순위 ‘극한직업’ 초1 담임 」 박정민 디자이너 ━ 1 지금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선 무슨 일이? ■ 「 “사망한 서이초 교사는 ‘연필 사건’에 연관된 학생 2명 외에도 또 다른 학생 2명의 문제 행동으로 학기 초부터 힘들어 했다. 한 학생은 가위질을 하다가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거나 울부짖는 소리를 내며 불안해 했다. 연필 사건은 교사가 사망하기 약 일주일 전, 오전수업 중 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가방을 연필로 찌르자 이 학생이 그만하라며 연필을 빼앗으려다 이마에 상처가 난 사건이다.” -지난 4일 교육부 서이초 사건 브리핑 중- 」 ① 초등 1학년 교실은 ‘동물의 왕국’ 초등 1학년 교실은 ‘동물의 왕국’이에요. 대화가 안 통하고 통제가 불가능하거든요. 충남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14년 차 이지혜(가명) 교사는 초등 1학년 교실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수업 중 이해를 돕기 위해 이씨가 “선생님이 제주도에 갔는데…”라고 얘기를 꺼내면 반은 순식간에 제주도를 주제로 한 토크쇼 현장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들의 경험을 얘기하기 때문이죠. “선생님, 저 작년에 제주도 가서 말 탔어요.” “저는 제주도에서 동생이랑 싸워서 엄마한테 혼났어요.” “저희 할머니 제주도 살아요.” 이씨가 “조용히 하고 선생님 설명부터 듣자”고 아무리 말해도 자기 얘기에 심취한 아이들에게 들릴 리 없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다니는 학생도 부지기수입니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11년 차 박소정(가명) 교사는 “수업 중에 학생 한 명이 교과서를 보고 ‘하하하, 이 그림 웃기다’고 하면 5~6명의 학생이 우르르 그 아이 자리로 모여든다”며 “교실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한다”고 전했습니다. 이런 일은 수업시간마다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쉬는 시간에 갑자기 말도 안 하고 집에 가버리는 학생도 있습니다. 이지혜 교사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가 많아서 그런지 친구랑 놀다 싸우거나 살짝 다쳤다고 중간에 집에 가는 애가 많다”며 “그러면 그 학생을 찾으러 다니느라 수업은 중단되고 학교는 발칵 뒤집힌다”고 전했습니다. 화장실이나 학교 외진 곳에 숨어버리는 아이도 있습니다. 어렵게 학생을 찾아냈는데, 학부모에게 이런 말을 듣기도 합니다. 애가 없어진 걸 왜 모르셨나요? 선생님은 뭐하고 계셨던 거죠? 대소변 실수, 초등학교 1학년에게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학생이 먼저 교사에게 “실수했다”고 하면 차라리 다행입니다. 수업 중 누군가가 “선생님, 어디서 똥냄새 나요” 하면 교사는 비상이 걸립니다. 다른 학생들이 알아채지 못하도록, 해당 학생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변 처리를 도와줘야 합니다. 집에서 준비해 준 여벌 옷이 없을 경우 여기저기 알아봐서 입힐 만한 옷도 찾아내야 하죠. 평온해 보이는 초등학교, 교사들은 "교실은 동물의 왕국"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② 교사에겐 통제 수단이 없다 아이들이 교실을 뛰어다니며 수업을 방해할 때, 가위를 휘두르고 다닐 때 교사가 할 수 있는 건 뭘까요?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만하고 자리에 앉으세요”라고 말하는 것, 이것 외엔 별 수가 없습니다. 현재 휴직 중인 경력 15년의 성미정(가명) 초등 교사는 “과거엔 아이 물건을 억지로 뺏기도 했지만, 요즘엔 아이들이 거세게 반발하기도 하고 그러다 아이 몸에 상처가 나거나 뒤탈이 생기면 부모들이 크게 항의하기 때문에 조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조용히 하라”고 언성을 높이거나 출석부로 교탁을 탁 쳐서 학생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아동 학대로 학부모에게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교사들이 “손발이 묶여 있다”고 하소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친구를 때리는 아이를 교실 뒤에 세워 놓거나, 선생님 옆자리로 자리를 옮기게 하는 것, 반성문을 쓰게 하거나 친구한테 사과시키는 것, 선생님이 무섭게 쳐다보는 것조차 모두 정서 학대에 해당하기 때문이죠.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김민정(가명) 교사는 “아이나 학부모의 기분을 나쁘게 한 게 잘못이라는 ‘기분상해죄’로 교사가 고소·고발당하는 일이 너무 잦다”며 “교육청 교사 연수에서도 아동학대 신고 사례를 알려주고 조심하라고 안내한다”고 전했습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지난해 9월 전국 유·초·중·고·특수학교 교사 62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2.9%가 “아이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아동학대로 의심받아 신고당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고 답했습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건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뿐입니다. 초등학교는 사실상 정규시험이 없고, 벌점제도도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학생부에 부정적인 내용을 적으면 학부모가 ‘성적 이의신청 기간’에 “우리 애가 그랬다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민원을 제기하고 법정 소송까지도 불사하기 때문이죠. 김민정 교사는 “아이가 졸업한 후에도 고소가 가능하기 때문에 교육청에서도 부정적인 내용은 쓰지 말라고 안내한다”며 “다른 애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아이의 학생부를 번지르르하게 포장해 쓸 때마다 ‘거짓말하려고 교사 됐나’ 싶어 자괴감이 든다”고 털어놨습니다. 박소정 교사도 “초등학교는 평가 기능을 완전히 상실했다”며 “학생부는 평가가 아니라 ‘아이 칭찬 파티’ 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서이초 앞에 마련된 교사 추모 공간.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는 2년 차 신규 교사였다. 뉴스1 ③ 기피 1순위… ‘극한 직업’ 초1 담임 교사들 사이에는 “1학년을 맡으면 ‘사리함’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1학년 담임은 몸에서 ‘사리(舍利·불교에서 참된 수행의 결과로 생긴다는 구슬 모양의 유골)’가 나올 정도로 인내심을 요하는 일이라는 의미죠. 특히나 ‘금쪽이’(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나 악성 민원을 넣는 학부모를 경험한 선배 교사들은 더더욱 1학년 담임을 기피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신규 교사나 경력이 짧은 교사가 1학년 담임을 하는 경우가 많죠. 고인이 된 서이초 교사도 교단에 선 지 1년 만에 1학년 담임을 맡았습니다. “본인 희망대로 학년 담임을 배정했다”는 학교 측 입장문에 “1학년 담임은 4지망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됐어요. 교육부‧서울시교육청 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1학년 담임을 1순위로 희망한 것은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임용한 지 얼마 안 된 초임교사가 진짜 희망을 밝히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죠. 교사들이 1학년 담임을 두려워하는 건 예측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입생에 대한 정보가 제대로 파악이 안 돼 있어 한 반에 금쪽이가 몰릴 수 있거든요. 이지혜 교사는 “금쪽이가 없는 반에 걸리면 수업도 일찍 끝나고 편안한 한 해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금쪽이가 4, 5명 몰려 있으면 애들 싸움 말리느라, 학부모 민원 응대하느라 지옥 같은 한 해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보통 2학년 때부터는 문제 학생을 각 반으로 골고루 배정하기 때문에 한 반에 여러 명이 몰리는 일은 적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초등학교 교실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교사들의 목소리를 통해 들여다봤어요. 2화에서는 이번 사건의 한복판에서 대립하고 있는 교사와 학부모에 대해 들여다보겠습니다. 2년차 신규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뉴시스 ■ 「 [2화] 교사 vs 학부모, 그들의 속사정 1 교사의 역할, 어디까지인가 ① 교사의 최대 스트레스:학부모 그리고 생활지도 ② 돌봄과 교육 그 어딘가 ③ 교사 편은 아무도 없다 2 요즘 학부모, 어떻길래 ① 80년대생 학부모의 등장 ② 밀착 보육에 길들여진 탓? [인터뷰] “이런 것까지 요구받아 봤다” 교사 10인의 목소리 [3화] 아이의 사건, 어떻게 대처할까 1 아이 사건, 이렇게 전개된다 ① 사건 터지면 돌변하는 학부모 ②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 [인터뷰] “대부분 사소한 언행에서 시작” 학교폭력 전담 교사의 조언 2 누구를 위한 민원인가 ① 과도한 민원, 피해는 아이 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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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가면 알아서 책 펼친다…‘수학 극혐’ 아이 바꾼 공간 유료 전용
좋아하면 싸워도 쉽게 화해하죠. 수학도 그래요. 호감이 있어야 해요. 좋아하면 그만둔다는 말 못합니다. 끝까지 하면 점수도 오르고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 안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강미선·정유숙 ‘데카르트 수학책방’ 공동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수포자는 수학을 ‘못해서’가 아니라 ‘미워해서’ 생긴다는 거다. 두 사람은 “수학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을 돌리려면 화(火)부터 풀어야 한다”고 했다. 국내 최초 수학 전문 책방인 '데카르트 수학책방'의 강미선·정유숙 공동대표. 두 사람이 꾸민 책방은 수학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깨는 공간이 됐다. 김현동 기자 강미선·정유숙 대표는 공교육과 사교육을 넘나드는 수학 교육 전문가다. 두 사람의 경력만 도합 50년이다. 고등학교 수학교사였던 강 대표는 『강쌤의 수학 상담소』『분수 비법』시리즈 등을 쓴 30년 차 수학책 전문 작가로, 25년 간 수학 학원을 운영한 베테랑 수학 선생님인 정 대표는 ‘엄마표 수학’을 알려주는 유튜브 ‘쑥샘 TV’로 유명하다.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 중인 두 사람이 지난해 11월 ‘데카르트 수학책방’을 열었다. 오로지 수학을 주제로 한 책만 모아 놓은 국내 최초의 수학 전문 서점이다. 서울 서대문구 불광천길116 2층. 이곳에 가면 수학과 관련된 그림책부터 교양서, 개념서, 역사·철학서까지 없는 책이 없다. 딱 하나, 수학 문제집만 없다. 처음 수학책만 모아 책방을 연다고 했을 때 주변 반응은 싸늘했다. 다들 “그게 되겠냐”며 걱정부터 했다. “그러지 말고 학군지에 수학 학원을 차리라”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두 사람 생각은 달랐다. 수학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나 많은 대한민국에, 수학 책방 하나 없다는 게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책방이 “수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줄 거라 믿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수학이 싫다던 아이가 책방에 다녀간 후 수학에 흥미를 느꼈고, 수학 교재를 보러 온 양육자는 수학사에 빠졌다. 입소문이 나면서 수학 동아리부터 수학책 독서 모임, 제주도에서까지 찾아온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곳에 가면 정말 수포자도 수학을 좋아하게 될까? hello!Parents가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와 함께 가 볼 만한 책방 두 곳을 소개하며, 데카르트 수학책방을 찾았다. ━ 📢 수학 싫어하는 아이, 수학에 빠지게 한 비결 이곳을 찾는 손님은 크게 두 부류다. 수학을 좋아하거나, 수학을 싫어하거나다. 수학 싫어하는 아이들은 대게 그냥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다. “혐오한다”며 치를 떠는 수준이다. 그런데 이곳을 다녀가면 수학이 좋다고 말한다. 책방 벽면 하나를 가득 채운 방명록엔 간증이 넘쳐난다. 어떻게 수학 싫어하는 아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걸까? 수학 싫어하는 마음을 어떻게 한순간에 돌릴 수 있나요? 강미선(이하 강) 강요하지 않으면 됩니다. 우리는 수학에 대한 나쁜 감정이 풀릴 때까지 내버려둡니다. 여기는 학원이 아니에요. 수학을 가르치지도 않고, 문제풀이나 책 읽기를 강요하지도 않습니다. 관심이 생길 때까지 기다릴 뿐이에요. 우리는 그 시간을 기분 좋게 느끼도록 공간을 제공할 뿐이죠. 벽에 그림을 걸고, 알록달록한 소파와 의자들, 교구들을 배치한 건 그래서예요. 놀이터에서처럼 편하게 웃고 떠들라고요. ‘수학’ 하면 떠오르던 긴장감은 잊고, 수학책에 둘러싸여도 편안하다는 걸 경험해 보는 거예요. 이곳이 안전지대라 생각되면 아이들도 수학에 대한 경계심을 풉니다. 하지만 책을 펼치는 건 의지의 문제예요. (강) 경계가 풀리면 시키지 않아도 책을 집어 듭니다. 사방이 책이잖아요. 집에서 보던 책인데도 공간이 바뀌면 달라 보여요. 시중에서 볼 수 없는 책도 많고요. 신기해서 들춰보고, 한두장 읽습니다. 이때 책을 재밌게 읽으면 흥미와 관심이 오래 가요. 그래서 정유숙 선생님이 이야기꾼이 됩니다. 책을 읽어주며 소통하죠. 데카르트 수학책방을 다녀간 아이들이 남긴 방명록. 수학이 싫다던 아이도, 어렵다던 아이도 이곳에선 모두 수학의 매력에 빠져 돌아간다. 김현동 기자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정유숙(이하 숙) 수학책 이야기를 중심으로 대화합니다. 무겁고, 심각한 얘기가 아니에요. 그저 아이들이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걸 물어보죠. 예를 들어 숫자 4와 관련된 책을 본다면 “이 페이지에는 몇 가지 색이 담겼을까?” “사계절 그림을 보여주는 이유는 뭘까?” 등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말해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부분을 숨은그림찾기 하듯 찾아보도록요. 수학책 읽기에 익숙해지면 질문의 방향을 우리 주변으로 넓힙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 중 숫자 4로 표현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라는 식이죠. 일상에서 보지 못했던 수학 요소를 찾아보는 게 목적이에요. 주변에 숨어 있던 수학을 찾으면 그다음부턴 아이들이 먼저 찾습니다. 종이컵에서 회전체를, 음료수에서 농도를, 집 주소에서 숫자의 규칙성을 찾아요. 안 보이던 게 보이면 재미있겠네요. (숙) 바로 그거예요. 수학이 그저 문제만 푸는 어렵고 지루한 공부가 아니라 실생활과 가장 가까운 공부라는 걸 알려주는 거요. 편안한 분위기에서, 그 어떤 강요도 없이, 새로운 시각으로 수학을 찾은 경험. 이게 바로 수학 싫어하던 아이의 마음을 돌린 비결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서 다시 수학을 싫어하게 되는 아이들이 왕왕 있어요. 이유가 뭔가요? (강) 양육자가 수학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해서예요. 수학에 대한 감정 역시 양육자로부터 대물림되거든요. 아이들은 별다른 감정이 없는데 “수학은 어려워” “수학 머리 없어서 어쩌니” “수학이 입시를 좌우해” 같은 말을 듣고 공포심과 불안감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양육자 분들에게 당부합니다. 수학을 소개할 땐 “별거 아니야” “수학은 쓸모가 많아”같이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해달라고요. 좋은 감정이 지속해야 계속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강미선, 정유숙 대표는 "수학을 밝고, 긍정적인 학문으로 소개하기 위해 인테리어도 자연 친화적이고 밝은 분위기로 연출했다"며 "덕분에 수학 싫다던 아이도 이곳에만 오면 수학이 좋다고 말한다"고 했다. 김현동 기자 ━ 📢 수학, 기질에 따라 다르게 공부해야 한다 수학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모두 수학을 잘하는 건 아니다. 잘하려면 전략이 필요하다. 수학은 지식을 습득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게 목표다. 그래서 아이의 성향과 기질을 고려해 더 학습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게 두 사람의 생각이다. 두 사람은 수학적 개념에 접근하는 스타일에 따라 ‘이해형’과 ‘암기형’ 두 부류로 나눈다. 강 대표는 “옆집 아이 따라 학원 보낼 게 아니라 아이 성향에 맞는 학습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형과 암기형, 어떤 차이가 있나요? (강) 개념이나 공식에 대해 끊임없이 ‘왜’를 묻는다면 ‘이해형’입니다. 이 유형은 비례식 문제를 풀 때 이런 질문을 하죠. ‘왜 내항의 곱은 외항의 곱이랑 같아?’ 이 아이들은 과정을 이해해야만 개념을 받아들입니다. 반면에 암기형 아이는 “이건 규칙이야” 하고 받아들입니다. 영어 문법 받아들이듯 수학 공식을 받아들이고, 바로 적용해 문제를 풀죠. 두 유형 중 더 좋은 건 없어요. 그저 차이일 뿐입니다. 개인마다 정도의 차이도 있고요. 다만 아이의 성향을 파악하면 학습 전략을 짜는 데 유용합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계속 “왜요?”라고 묻는 아이들이 있어요. 처음 한두 번은 설명해 주지면, 질문이 계속되면 결국 포기하고 ‘그냥 외워’ 하게 되고요. 이런 아이들은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요? (숙) 질문하는 걸 다그치지 마세요. 그러면 호기심이 꺾입니다. 인내심을 갖고 충분히 설명해 줘야 해요. 이해형은 추상화가 어렵기 때문에 교구를 이용해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게 좋습니다. 나눗셈을 예로 들어 볼게요. ‘20÷4’라는 계산식을 설명할 땐 나무토막 20개를 4개씩 묶어서 덜어내는 걸 보여주세요. 그렇게 5묶음이 나오고 최종적으로 0개를 만드는 게 나눗셈 계산 원리라고 설명하면 납득합니다. 이런 아이들은 개념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은 걸리지만, 한번 알면 여러 개념으로 확장하기 쉽습니다. 나눗셈을 약수와 배수로 연결하는 식으로요. 암기형 아이는요? (강) 아이가 수학 공식이나 문제를 외워 푸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다면 걱정 없습니다. 하지만 공식을 잘못 외우거나 외운 공식을 잘못 적용해 틀리는 경우가 있어요. 문제 풀이 과정을 자세히 관찰하고, 오답의 원인을 꼼꼼히 분석해야 하는 이유죠. 또 암기형이라고 개념과 공식의 원리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문제가 틀릴 때마다 개념 정의를 상기시켜 주세요. 고등학교 수학교사 출신인 강미선 공동대표는 "수학 학습은 아이의 성향에 따라 스타일이 천차만별"이라며 "수학 학습 계획을 짜려면 내 아이의 성향부터 파악하라"고 했다. 김현동 기자 개념을 알아도 문제와 연결하는 걸 어려워 하는 아이도 있어요. (강) 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필요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분류하는 법이 달라요. 저는 이걸 ‘환경 의존형’과 ‘환경 독립형’으로 부릅니다. 어떻게 다른가요? (강) 환경 의존형은 정보를 종합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문장제 문제에서 구해야 할 것과 주어진 정보를 구분하는 데 애먹습니다.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거죠. 예를 들어 20㎝짜리 용수철에 10g짜리 추를 매달 때마다 3㎝씩 늘어나는 경우의 관계식을 구하라는 문제를 볼 때 의존형 아이들은 20, 10, 3이라는 숫자에만 집착합니다.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다 끝나죠. 이런 아이에겐 문제에 숨어 있는 정보를 하나씩 짚어 줘야 합니다. 용수철에 추를 한 개, 두 개 달았을 때 결과값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차례대로 써보게 하세요. 문제 속 정보를 쪼개서 보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환경 독립형은요? (강) 환경 독립형은 분석적이고 구조적입니다. 그래서 문제 속 정보를 빠르게 캐치해 구분합니다. 문장제 문제에서는 의존형보다 더 유리하지만, 한 가지 방법으로만 풀려고 해 창의성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해석의 여지가 많은 문제를 주고, 스스로 문제를 구체화하는 연습을 해야 해요. ‘사과 52개에서 10개를 먹으면, 몇 개가 남을까?’라고 물어보는 대신 ‘사과 50여개에서 10개를 먹었다면, 몇 개가 남을까?’라고 물어보는 거죠. 후자는 열린 질문이잖아요. 아이가 50여 개를 구체적으로 정의하고, 풀어보게 하는 겁니다. 20년간 수학 학원을 운영한 정유숙 공동대표는 "초등학교 수학은 교과서만 충실히 풀어도 충분하다"며 "단,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교과서 안내에 따라 꼼꼼히 따져보며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동 기자 ━ 📢 사고력 수학? 수학적 사고가 중요하다 수학에 관한 양육자의 고민 중 하나가 ‘사고력 수학’이다. ‘사고력 수학을 따로 공부해야 하느냐’를 놓고 말이 많은데, 막상 사고력 수학이 뭔지에 대한 똑부러진 정의는 없다. 도대체 사고력 수학이 뭘까? 꼭 해야 할까? 강미선·정유숙 대표는 “애당초 수학 교육에서 사고력 수학이라는 말은 없다”며 “사고력 수학이 아니라 수학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고 했다. 사고력 수학이란 말이 없다고요? (강) 수학 자체가 사고력을 키우는 과목인데, 사고력 수학이라뇨. 동어 반복이죠. 사고력 수학은 소비자의 불안과 과시욕을 자극하는 상술이라는 게 저희의 생각입니다. 시중에서 말하는 사고력 수학은 복잡한 문제가 상당수예요. 어려운 문제를 풀면 똑똑하게 보인다고 착각해요. 그런데 어려운 문제를 푼다고 수학을 다 잘하는 건 아니거든요. 문제의 난이도보다 중요한 건 ‘수학적 사고를 하면서 푸느냐’ 하는 겁니다. 수학적 사고는 뭔가요? (강) 귀납적 사고와 연역적 사고, 반성적 사고(메타인지), 유추 등이 다 수학적 사고예요. 각각의 사고가 모두 중요하지만, 초등학생 때는 주로 주어진 문제를 풀다 보니 연역적 사고, 즉 논리적 사고를 많이 써요. 문제를 읽고 구하려는 것과 주어진 조건을 구분하고, 수학 개념을 엮어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논리력이 발달하죠. 이렇게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다 보면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 역시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길러집니다. 다만 주어진 문제를 푸는 능력은 그냥 길러지는 게 아닙니다. ‘문제 이해→해결 전략 찾기→실행하기(계산)→반성하기(다른 방법 찾아보기 등)’ 순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숙) 양육자가 옆에서 순서대로 질문을 던져 방향을 잡아줘야 합니다. ‘문제에서 구하려는 게 뭐지?’ ‘문제에서 알 수 있는 정보와 조건은 뭘까?’ ‘문제를 풀려면 어떤 수학적 개념을 끌어와야 할까’ 같은 걸 차례로 물어보는 겁니다.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에는 문제 해결 과정을 순서대로 알려주는 부분이 있어요. 특히 분석과 추론을 배우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3학년 수학 교과서에는 단원마다 ‘생각 수학’이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 부분을 그냥 넘기지 마세요. 사고하는 과정을 순서대로 익히는 훈련이거든요. 꼼꼼히 풀어보고, 다른 문제에도 적용해 보길 권합니다. 그래야 논리적으로 문제를 푸는 습관이 길러집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 풀면, 문제를 많이 못 풉니다. 특히나 연산은 반복 연습이 중요하다고들 하잖아요. (숙) 연산도 원리 이해가 우선입니다. 예를 들어 ‘2+3=5’를 처음 배울 때 손가락을 세거나 물건을 헤아리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덧셈의 원리를 이해하는 거죠. 점차 이렇게 생각하는 시간이 압축돼 계산이 빨라지는 거고요. 원리는 생각하지 않고 연산의 답을 외우는 식으로 공부하면 쉽게 무너집니다. 연산이 조금만 복잡해지면 헷갈리죠. 연산 문제를 많이 풀면 된다고 생각하면, 더하기를 빼기로 보거나, 괄호를 보지 못하는 식의 실수를 합니다. 연산 문제의 경우 10개 중 8개 정도 맞으면 충분해요. 단, 정답과 오답의 차이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오답 노트를 쓰라는 얘긴가요? (강) 오답노트를 쓰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아요. 근거를 명확히 밝히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는 거예요. 수학적 사고는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옳은 대답이든, 그른 대답이든 자신의 시각을 갖는 게 우선이에요. 맞았든, 틀렸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꼭 물어봐야 하는 이유죠. 이 과정에서 개념은 제대로 아는지, 왜 실수가 생기는지를 찾을 수 있거든요. 문제 풀이는 증명의 과정입니다. 어렴풋해선 안 돼요. 자신의 답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고 회로가 습관이 되고, 다른 개념과 엮어 생각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강미선, 정유숙 공동대표는 "우리 삶 자체가 수학"이라며 "작은 것 하나도 아이 스스로 사고하고 결정하게 해보는 연습이 결국 수학적 사고를 기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김현동 기자 강미선·정유숙 대표는 요즘 수학 교육을 ‘피리 부는 사나이’에 비유했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른 채 그저 앞집, 옆집 친구만 쫓아간다는 얘기다. 아이들 스스로 근거 찾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다. 무조건 ‘싫다’ ‘좋다’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더 나아지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때 수학적 사고도 발전한다고 했다. 매순간 아이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세요.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 결과에 책임져 보는 것. 그게 바로 수학적 사고예요. 수학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라는 걸 알면 수학과 더 가까워집니다. ■ 30년차 수학교육전문가가 말하는 수포자 예방법 「 ① 수포자도 수학에 빠지게 만드는 비결=데카르트 수학책방에 오면 수포자도 수학에 호감을 갖습니다. 그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고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비결이죠. 집에서도 “수학 머리가 없다”는 식의 부정적인 말보다 “별거 아니야” 같은 긍정적인 말을 해주세요. 그래야 수학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사라집니다. 수학에 호감을 가지면 포기하지 않습니다. ② 수학 학습법, 기질 따라 달라야=아이의 성향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공부해야 효과적입니다. 개념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이해형’과 ‘암기형’으로, 문제를 푸는 방식에 따라 ‘환경 의존형’과 ‘환경 독립형’으로 나눌 수 있어요. 아이를 잘 관찰해 성향을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학습 전략을 세워 주세요. ③ 사고력 수학 No, 수학적 사고 Yes=수학적 사고는 논리력입니다. ‘문제 이해→해결 전략 찾기→실행하기→반성하기’를 순서대로 익히고, 답의 근거를 찾게 해주세요. ‘사고력 수학’이란 건 없으니 상술에 속지 마세요. 」 관련기사 "구구단 외우면 바보 된다, 그려라" 깨봉수학 만든 조봉한 대표 “수포자에게도 급이 있다, 한국이 미·영보다 뛰어나” 애들 학원 왜 보내? 그 돈 아껴 해외여행…10년 놀아본 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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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보면 불러도 모르는 아이…근데 공부는 왜 못하는 거죠? 유료 전용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에 관한 이야기는 많아요. 그런데 주의력이 부족한 보통 아이에 관한 이야긴 없어요. 주의력 부족은 아이들 대부분이 겪는 문젠데 말이죠. “왜 주의력에 주목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이임숙 맑은숲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은 이렇게 답했다. 그는 2021년 출간돼 11만 부나 팔린 『4~7세보다 중요한 시기는 없습니다』의 저자로, 육아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던 4~7세 시기를 주목받게 만들었다. 그는 책에서 지식과 주의력, 자기조절력을 균형 있게 발달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특히 주의력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지난 3월 심화편 격인 『내 아이를 위한 주의력 수업』을 펴낸 이유다. 『내 아이를 위한 주의력 수업』이 두 달 만에 3쇄를 찍을 만큼 주의력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이 소장은 “주의력에 대해 생각조차 못 했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지식이나 자기조절력에 비해 주의력이 덜 알려져 있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주의력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키워주면 좋을까? 지난 17일 그를 만나 물었다. 이임숙 맑은숲아동청소년상담센터 소장은 25년간 아동심리치료사로 활동하며 20여 권의 부모 교육서를 썼다.『엄마의 말공부』는 18만 부, 『4~7세보다 중요한 시기는 없습니다』는 11만 부가 팔렸다. 장진영 기자 ━ 📢주의력과 집중력은 다르다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주의력과 집중력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이임숙 소장은 “주의력이 어떤 일에 의식적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능력이라면, 집중력은 모든 힘을 쏟아붓는 능력”이라고 설명했다. 좋아하는 일에 몰입한다면 집중력이 좋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느라 해야 할 일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주의력은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아이가 주의력이 부족한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ADHD처럼 과잉행동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일명 ‘조용한 ADHD’라고 불리는 주의력결핍장애(ADD)처럼 겉으로 봐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경우도 많아요. 양육자나 교사가 얘기할 때 눈도 맞추고 고개도 열심히 끄덕이지만 정작 지금 무슨 얘기를 했냐고 물어보면 모르는 아이가 생각보다 많죠. 내용을 이해했는지는 다음 문제고, 애초에 듣지 않았던 겁니다.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중간중간 질문하면서 아이의 주의력을 세심하게 살펴야 해요. 주의력 부족을 눈치채기 어려운 이유가 뭔가요? 주의력은 종류도 많고, 세분화돼 있거든요. 한두 가지 주의력이 부족해도 다른 주의력은 좋은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알아채기 어려워요. 예를 들어볼게요. 주의력을 구성하는 3가지 요소가 있어요. 대상에 적절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주의 선택’, 몰두한 상태를 유지하는 ‘주의 상태’, 마지막으로 주의를 원하는 대상으로 변경할 수 있는 ‘주의 조절’인데요. 이 중 어느 하나만 부족할 수도 있죠. 종류도 많은데요. 대표적인 것만 꼽아도 다섯 가지(초점·선택·전환·지속·분할주의력)나 됩니다. 가장 기본은 ‘초점주의력’이에요. 자극이나 정보가 주어질 때 바로 그 대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능력이죠. 만약 여기 문제가 있으면 학습을 시작할 수조차 없어요. 선생님이 “여기 보세요”하고 칠판을 가리키면 그걸 봐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요. 종류별로 능력 차이가 나기도 하나요? 그럼요. 각각의 주의력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발달 속도나 정도도 다를 수 있어요. 집중력은 좋은데 ‘전환주의력’이 부족한 아이도 의외로 많죠. 좋아하는 책이나 영상을 볼 때 푹 빠져서 엄마가 불러도 못 듣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해요. 보통 4세이면 재밌게 하던 놀이라도 필요할 때 끝내고 다른 자극으로 주의를 이동시키는 능력을 갖추거든요. 그런데 전환주의력이 부족하면 이걸 잘 못 하는 겁니다. 상담을 온 양육자들에게 ‘주의력 부족’이라고 말하면 많이들 놀라세요. 눈치챌 만한 징후가 없어서 생각해 보지 못했다는 겁니다. 주의력 문제가 정서 문제로도 이어지나요? 전환주의력이 부족한 아이들 중 융통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상황 변화를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죠. 친구가 자기와 다른 의견일 때 그걸 수용하지 못하고 고집을 부리다 갈등을 겪기도 하고요. 심하면 친구와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놀기도 해요. 주의력이 사회성까지 영향을 미치는 셈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어요.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혹은 친구 관계 같은 정서 문제로 상담을 왔는데, 결국 주의력 문제, 공부 문제로 귀결되기도 하죠. 사실 모든 문제는 다 연결돼 있다고 봐야 해요. 이임숙 소장은 “양육자들이 0~3세 애착 육아는 굉장히 잘하는데 4세가 되고 학습을 시작하면서 헤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공부가 싫어도 참고 해야 하는 것이 되면 공들여 쌓은 애착도 무너진다. 공부도 재미있는 놀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모든 문제가 다 연결돼 있다고요? 수학을 잘 못 하는 아이들을 잘 보면 문제를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수리력이 아니라 문해력이 문제인 거죠. 제가 상담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런 아이들 때문이었어요. 학원에서 초등 수학을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성적이 오르면 학원을 그만두고 떨어지면 다시 오기를 반복하더라고요. 성적이 유지되지 않은 아이들의 공통점을 분석해 보니, 하나같이 책을 안 읽더군요. 그래서 수학을 가르치면서 독서 지도를 병행했어요. 책 읽기를 가르치려다 보니 궁금한 게 많았고, 자료를 찾다 보니 나이 마흔에 대학원까지 가게 됐죠. 아동심리를 배우려고요. 덕분에 인지와 정서 문제 모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 📢훼방꾼부터 찾아 없애라 주의력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도 천차만별이다. 어떤 양육자는 “어릴 적부터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며 기질적 특성을 이야기한다. “영재교육원을 준비 중이라 잠자는 시간도 모자랄 지경”이라고 환경을 강조하는 양육자가 있는가 하면, “툭하면 짜증을 내고 신경질을 부린다”며 정서 문제를 언급하는 양육자도 있다. 같은 문제를 두고도 각각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다. 주의력 부족, 가장 큰 원인은 뭔가요? 기질적 특성, 양육 환경, 정서 문제와 다 관련 있어요. 기질적 특성은 타고난 것이라 바꾸기 어렵지만, 양육 환경은 바꿀 여지가 많죠. 가장 먼저 할 일은 아이의 마음 상태를 살펴보는 거예요. 인간의 뇌는 불안, 두려움, 공포, 분노, 우울 같은 부정적 감정을 최우선으로 처리합니다. 아이가 불편한 정서에 압도당하면 인지 과정에 자원을 쓸 수가 없어요.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가 생존 모드에 돌입하면 전두엽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좁아지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거든요. 양육 환경은 어떻게 바꿀 수 있나요? 물리적 환경이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커요. 아이가 숙제하려고 기껏 책상 앞에 앉았는데 장난감이 눈에 띈다거나 TV 소리가 들리면 집중할 수 없겠죠? 특히 초점주의력이 약한 아이들은 시청각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자극을 제거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대상을 강조하는 것도 좋은 해결책입니다. 빨간색 직사각형을 찾아야 한다면 주황색이나 정사각형같이 비슷한 특성을 가진 대상과의 차이를 짚어주면서 찾아야 할 빨간 직사각형을 각인하게 하는 거죠. ‘오늘 할 숙제’ ‘이번 주까지 할 숙제’ ‘완성한 숙제’처럼 이름표를 만드는 것도 좋습니다. 숙제를 마치고 이름표를 바꿔 달면서 성취감도 느낄 수 있고요. 우선순위를 정해주는 거네요. 선택주의력이 부족한 아이에게도 효과가 있어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 중 어떤 것이 더 중요한지 판단하도록 도와주니까요. 아이들이 직접 우선순위를 정하면 더 좋습니다. TV 보기, 놀이터 가기, 그림책 읽기 등 아이가 좋아하는 일에 별점을 매기고 순서를 정해보세요. 그럼 지켜야겠다는 책임감도 커집니다. 이임숙 소장은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면 성격이나 정서 상태가 다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는 “질 것 같으면 게임을 중단하거나 회피하는 경우도 많은데 패배를 받아들이고 다음 판을 위한 전략을 짜는 것도 모두 공부가 된다”고 덧붙였다. 장진영 기자 주의 상태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지속주의력은 과제 난이도와 관련 있어요. 과제가 수준에 맞지 않으면 아이는 흥미를 잃죠. 10문제 중 7개는 풀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야 해요. 그래야 도전할 의욕이 생기거든요. 조금만 어려워도 포기하는 아이라면 10개 중 9개는 쉬운 문제로 채워야 해요. 성공 경험이 쌓여야 어려운 문제가 나와도 물러서지 않거든요. 일부러 상담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게 하기도 해요. 푸는 데 걸린 시간을 재보고 시간이 줄면 칭찬해 줍니다. 학습 태도와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요. 문제 푼 결과를 직접 눈으로 보면 성취감도 더 느끼고, 스스로 자신의 변화를 비교해 체감할 수도 있죠. 코로나19 이후 주의력 문제를 호소하는 아이가 늘어난 것 같아요. 비대면 수업은 대면 수업보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교사가 화면을 통해 볼 수 있는 게 제한적이잖아요. 그만큼 아이들이 딴짓하기 쉬워요. 수업 내용을 영상으로 봐야 하니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같은 전자기기 사용도 늘 수밖에 없고요. 스마트폰을 사용할 때는 사용 계약서를 쓰는 식으로 규칙을 정해야 합니다. 이때 양육자가 ‘일주일에 1시간’ 이런 식으로 규칙을 정해주는 건 좋지 않아요. 아이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세워야 지킬 수 있거든요. ━ 📢전통놀이를 적극 활용해라 이임숙 소장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력을 키우려면 놀이가 곧 학습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우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고 느껴야 지속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스스로 놀이 계획을 세우고 규칙을 만들어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주의력 향상과 맞물려 있다. 이런 과정을 구조화라고 부른다. 놀이를 통해 만들어진 구조화 습관은 학습으로도 이어진다. 학습 내용이 어려워졌을 때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내용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는 얘기다. 놀이를 어떻게 구조화할 수 있나요? 심리 상담에서 구조화 작업은 과제를 하는 순서와 방법을 정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실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놀이를 하는 방법과 순서, 규칙을 정하고 그대로 하는 거예요. 이때 어떤 놀이를 할지는 아이들이 직접 정하는 게 좋은데요. 주의력이 부족한 아이는 선택 단계부터 고민이 많아지죠. 이럴 경우엔 선택에 제한을 두는 것도 방법입니다. ‘하고 싶은 놀이 3가지를 골라봐’ ‘10초 안에 놀이 순서를 정해봐’ 하는 식으로요. 고민할 시간이 없으니 후다닥 정하거든요. ‘한번 시작한 놀이는 끝까지 하기’ ‘중간에 규칙을 바꾸고 싶으면 한판이 끝난 다음 정하기’ 같은 규칙을 하나씩 늘리며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됩니다. 주의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인 놀이가 있나요?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건 ‘거꾸로 말하기’예요. 양육자가 말한 단어나 숫자를 듣고 그대로 따라 하기는 쉽지만 거꾸로 말하긴 쉽지 않은데요. 들은 걸 기억하고 재배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죠. ‘산토끼’ 같은 간단한 동요를 거꾸로 부르는 것도 좋아요. 어릴 때 즐겨 하던 전통놀이 중에 주의력 키우기 좋은 놀이가 많아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그대로 멈춰라’는 모두 술래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잖아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 보면 저절로 배울 수 있던 것들인데, 지금은 그럴 수 없어 아쉬워요. 아이가 클수록 놀이로 배우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아이가 초등학생은 돼야 할 수 있는 놀이도 많아요. 한글이나 알파벳 문자를 순서대로 숫자로 바꿔서 계산하거나 문자별로 암호를 설정해 비밀편지를 쓰는 게 대표적이에요. 이런 놀이는 특정 규칙을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어야 할 수 있잖아요. ‘369 게임’도 전환주의력과 분할주의력을 키우는 데 효과적이에요. 3, 6, 9가 포함된 숫자를 인지하고 자기 순서에 맞춰 손뼉을 쳐야 하니까요. 두 가지 이상 과제에 동시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어야 게임을 할 수 있죠. 최소한 둘 중 한 가지엔 자동으로 반응할 수 있을 만큼 숙달돼 있어야 하고요. 일종의 멀티태스킹이네요. 뇌의 작업기억 용량을 키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정보를 기억하고 이해하고 조작하려면 뇌의 작업 공간도 그만큼 더 필요하거든요. 단기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장기기억으로 옮겨두면 쓸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납니다.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옮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방법이 있어요. 기억할 내용을 그림이나 이야기로 만들거나 연관성이 있는 것끼리 묶는 겁니다. 그럼 더 쉽게,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어요. 놀이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요. 아이에게 맞는 대화가 병행돼야 해요. ‘나는 원래 공부 못해’라고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 아이라면, 긍정적인 내용을 먼저 말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자꾸만 놀이를 중단하고 규칙을 바꾸고 싶어 한다면 ‘멈추고, 생각하고, 선택하기’도 효과적이에요. 이게 뭔가 싶으시죠? 아이의 문제 행동을 발견하면 일단 멈추게 하는 겁니다. 그다음 스스로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생각해서 말하게 하세요. 지금 하고 싶은 일 말고 원래 하려던 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마음은 따뜻하게 다독이되 경계는 단단하게 세워주는 ‘따단 대화’도 필요해요.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겁니다. 이임숙 소장은 “코로나 이후 외부 활동이 줄어들면서 아이의 놀이도 부모가 가르쳐줘야 하는 영역이 됐다”며 “다시 밖으로 나가 친구들과 마음껏 뛸어놀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이임숙 소장은 “뒤늦게 상담센터를 찾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문제를 일찍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법을 제때 제안했다면 얼마나 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가 4~7세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그래서다. 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시기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그만큼 자주 했기 때문이다. 4~7세를 잘 넘긴 아이도 초등학교 3학년쯤 되면 다시 한번 갈림길에 섭니다. 별문제 없던 아이가 학업을 포기하고 일탈을 시작하기도 하고요. 이 시기쯤 종합심리검사를 한번 받아보세요. 몸에 문제가 없어도 종합검진을 받는 것처럼 마음도 들여다보는 거죠. 부족한 것과 채워줘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일 거예요. ■ 💡 아동심리전문가가 말하는 주의력 높이는 법 「 ① 주의력과 집중력을 구분하라 주의력과 집중력은 다릅니다. 좋아하는 일에는 모든 힘을 쏟아부어 집중하는 아이들 중 정작 해야 하는 일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초점·선택·전환·지속·분할 주의력 중 어떤 것이 부족한지 확인해야 합니다. ② 훼방꾼부터 찾아서 없애라 주의력 부족은 기질적 특성, 양육 환경, 정서 문제와 연관이 있습니다. 뇌는 부정적 감정을 최우선으로 처리하니 아이의 마음 상태부터 살펴봐 주세요. 시청각 자극을 제거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등 주의력 종류별 접근법이 필요합니다. ③ 전통놀이를 적극 활용해라 아이에게는 놀이가 곧 배움이 되어야 합니다. 스스로 놀이 계획을 세우고 규칙을 만들어 실행에 옮기는 구조화를 통해 주의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전통놀이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 관련기사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다’ 이 말이 간과한 사실 하나 수영황제 펠프스도 ADHD…산만한 아이 잠재울 운동 셋 “월급 주고 세금 걷는다” 초등 재테크 교육 3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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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에 “아이 낳을 거지?”…그들을 바꾼 佛 상사의 질문 유료 전용
결혼한 지 4년 된 부부라면 ‘아이는 안 낳느냐’는 질문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 부부는 ‘왜 낳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네요. 이상하지 않나요? 지난 21일 만난 김규진(31)씨는 “아이를 갖기로 결심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맞다. 합계출산율 0.78명, 아이 한 명 한 명이 귀한 대한민국에서 만삭의 임부에게 할 질문은 아니다. 그런데도 질문을 한 데엔 이유가 있다. 그가 ‘아내’와 함께 사는 동성부부이기 때문이다. 9월 초 출산을 앞둔 김규진씨. 그의 임신 사실이 화제가 된 건 그가 동성부부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부부에겐 '왜 아이를 안 낳느냐'고 묻는데, 저희 부부는 '왜 낳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며 "이상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김현동 기자 김규진씨는 2019년 11월 동성의 연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늘 정보에 목말랐다. 동성 결혼에 대한 정보는 어디에도 없었던 까닭이다. 결혼 과정을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고, 그 덕에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도 했다. 온갖 악플이 쏟아졌지만 괘념치 않았다. 그렇게 요란하게 결혼을 한 그는, 4년 뒤인 지난 7월 퀴어 퍼레이드를 앞두고 임신 사실을 공개했다. 결혼보다 더 큰 화제가 됐다. 지난해 혼인 건수(19만2000건)는 역대 최저 기록을 갈아 치웠다.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가운데 10년째 꼴찌다. 결혼과 출산이 흔치 않아진 시대, 동성부부가 애써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려는 이유는 뭘까? ━ Part1. 한국과 프랑스, 이것이 달랐다 김규진씨 부부가 아이를 갖기 위해선 정자 기증이 필수다. 한국에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정자를 기증받을 수 없다. 그는 법적으로는 미혼이다. 그가 벨기에에서 정자를 기증받은 건 그래서다. 김현동 기자 편견과 악플에 맞서며 요란스럽게 결혼한 그지만, 임신은 남의 일이었다. 김규진씨 부부는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하는 신혼 생활이 충분히 행복했다. 그의 생각이 달라지게 한 건 프랑스인 상사가 던진 질문이었다. 다국적 기업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김규진씨는 프랑스 본사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2021년 프랑스로 갔다. 출근 첫날, 결혼한 레즈비언이라는 그의 소개에 상사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이렇게 물었다. “아이는 낳을 거지?” “처음엔 ‘이렇게 사적인 걸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묻다니 뭐지?’ 했어요. 그리고 나선 이런 생각이 들었죠. ‘나 레즈비언인데, 아이를 낳으라고?’ 그날 저녁 당시 한국에 있던 아내와 통화하면서 ‘진짜 웃기지 않아?’라고 했죠. 그런데 그때부터였어요. ‘정말 키울 수 있을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한 건요.” 김규진씨에게 자녀 계획을 물었던 그 상사는 딸 둘을 키우는 30대 중반의 여성이었다. 그는 “똑똑하고, 커리어도 잘 일궈 나가는 여성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라고 하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고 했다. 알고 지내는 레즈비언 부부들에게 자녀 계획을 묻기도 했다. 다들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아이를 가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오히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선택지에 넣지 않았던 사실이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프랑스 파견 1년 후 한국에 있던 아내가 프랑스로 왔다.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건 아니었지만 ‘혹시 모르니 병원이나 가볼까?’ 싶어 파리의 한 난임병원을 찾았다. 김규진씨 부부가 임신하려면 정자 기증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이상 기다려야만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었다. 2021년 말 프랑스에서 비혼 여성과 레즈비언 여성의 시험관 시술이 합법화되면서 병원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남은 파견 기간은 1년. 임신하기로 선택한다면 그 안에 해야 했다. 김규진씨 부부는 바로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는 주변국 벨기에 병원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정자를 기증받는 것도 생각해 봤어요. 모국어로 증상을 설명하고 치료받는 것과 외국어로 하는 건 완전히 다르잖아요. 의료보험 혜택도 다르고요. 하지만 미혼인 여성은 정자 기증을 받을 수 없었어요. 저는 법적으론 미혼이고요. 아는 사람의 정자를 기증받는 건 원치 않았어요. 저는 정자기증자가 아이의 아빠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주변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태어날 아이는 저와 제 아내의 아이잖아요.” “정말 낳아도 될까?” “행복하게 잘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안 했던 건 아니다. 어쩌다 임신하는 건 불가능한 부부다. 임신은 오롯이 두 사람의 주체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그 어떤 부부보다 오래 얘기하고 깊이 고민했다. 하지만 늘 결론은 “우리가 이렇게 행복한데, 아이도 그렇지 않을까?”였다. 동성부부 가정이라서 어려움에 처하는 상황보다 욕심 많은 엄마가 두 명이나 되는 게 걱정인 상황만 그려졌다. 아이와 함께하는 단란한 가정은 이성부부에게만 허락된 행복이 아니다. 그가 임신 사실을 공개한 뒤 관련 기사엔 이런 댓글이 달렸다. ‘부부 두 사람은 행복할지 모르지만, 아이도 그럴까요?’ 김규진씨는 어떻게 생각할까? “바로 그 댓글을 쓰신 분이 우리 아이의 행복을 만들 수 있어요. 저와 제 아내는 우리 아이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예요. 제가 이렇게 인터뷰하고 강연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고요. 그분도 힘을 더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임신 8개월과 7개월 때 찍은 만삭 사진이다. 전자는 황예지 작가가, 후자는 밀럽프로젝트에서 촬영했다. 아이를 기다리는 예비 엄마의 설렘과 행복이 느껴진다. 사진 김규진 ━ Part2. 엄마는 두 명, 육아휴직은 한 번 임상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다시 로크먼은 자신의 저서 『은밀하고도 달콤한 성차별』에서 이런 주장을 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가정에서 육아, 가사 역할 분담을 둘러싸고 가정 내 은밀한 성차별 구도가 만들어진다’고. 보통 부담을 더 많이 짊어지고, 커리어·자유 시간 등에서 희생하는 사람은 엄마인 경우가 많다. 이런 구도는 여성들이 임신·출산을 꺼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성부부로 구성된 가정만의 얘기가 아니다. 남성만으로 이뤄진 게이 부부 사이에서도 비슷한 차별 구도는 존재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가장 평등한 건 여성만으로 이뤄진 레즈비언 부부였다. 왜일까? 김규진씨에게 들은 답변은 이랬다. “이성부부의 경우 여성이 임신과 출산을 담당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둘 다 출산할 수 있잖아요. 그 부담을 제가 짊어진 거고요. 그래서 아내가 제게 고마워하기도 하고 미안해하기도 해요. 제가 출산 휴가 중이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도, 일하는 아내가 가사를 더 많이 할 정도예요.” 김규진씨가 아내 대신 임신과 출산을 하기로 한 데엔 이유가 있다. 아내가 고생하는 것보다 자신이 하는 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다. 그가 아내보다 체격이 크고, 가족력이 없는 것도 고려했다. 다행히 첫 시술에 임신에 성공해 시험관 시술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크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아내는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을 전하곤 한다. 김규진씨 부부는 최근 귀국해 한국에서 지내고 있다. 출산 후엔 3주간 산후조리원에 머무를 예정이다. 이후엔 8주간 산후도우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두 사람이 법적 부부가 아니라 그의 아내는 육아휴직은 물론 배우자 출산 휴가조차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형편도 아니다. 김규진씨 부모님은 해외에 거주 중이고, 아내의 부모님은 결혼 이후 연락을 잘 하지 않는 사이가 돼버렸다. “보통의 부부는 두 사람의 시간을 끌어다 육아에 쓰잖아요. 그게 가능하게 제도가 뒷받침하고요. 저희 부부는 그게 불가능하니, 외부의 자원을 쓸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저렇게 계산해 보니 정말 눈이 휘둥그레지더라고요. 내년 초엔 복직할 계획인데, 그때부터는 ‘이모님’을 써야겠죠. 제 월급은 오롯이 육아에 쓰겠더라고요.” 출산 이후의 지출과 육아 부담이 걱정되는 건 김씨 부부라고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이런저런 걱정을 하기보단 아이를 기다리는 기대와 설렘, 그리고 행복에 집중하고 싶다.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한국 친구와 프랑스 친구의 반응이 너무 달랐어요. 한국 친구들은 출산 준비물과 육아 용품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엑셀 파일을 줬죠. 반면에 프랑스 친구들은 ‘앞으로 더 행복할 거야! 그 행복을 누려!’라면서 축하해 주더라고요. 이 차이가 두 사회의 출산율을 가르게 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김규진씨 부부는 법적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출산과 육아를 지원하는 다양한 복지제도를 다 누리지 못한다. 당장 그의 아내는 배우자 출산 휴가도, 육아휴직도 쓸 수 없다. 김현동 기자 ━ Part3. 사실 결혼은 ‘야망’이었다 출산을 한 달여 앞둔 예비맘이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에게 결혼은 ‘야망’이었다. 할 가능성보다 하지 못할 가능성이 훨씬 커 보였다. 그러다 결혼을 하기로 마음이 서자, 제대로 하고 싶었다. 2019년 봄, 법적 부부가 되기 위해 미국까지 날아가 혼인신고를 했고, 여름엔 살림을 합쳤다. 그리고 늦가을, 서울 중심의 한 대형 호텔을 빌려 친구와 동료, 일가친척까지 모두 초대해 결혼식을 올렸다. 왜 그렇게 유난하게 ‘신고’하고 ‘식’을 올리려고 했을까? “사람들이 잘 몰라요. 결혼을 통해 얼마나 많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지요. 저는 제 아내가 아플 때 법적 보호자가 돼주고 싶어요.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제 재산이 아내의 것이 되길 바라고요. 그땐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아이의 친권 역시 아내가 가져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결혼을 통하지 않으면 획득하기 정말 어려운 ‘권리’라는 걸 당연하게 얻은 분들은 알 턱이 없죠.” 당연하게 주어진 건, 그 가치를 제대로 알기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금지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제야 그 의미를 깨닫고, 간절히 바라기 시작한다. 김규진씨가, 그리고 수많은 동성 부부가 동성결혼 합법화를 요구하는 이유다. 김규진씨 역시 “할 수 없기 때문에 결혼이 야망이라고 말할 정도로 간절히 원했다”고 했다. 결혼식의 가장 큰 난관은 양가 부모님이었다. 김규진씨 결혼식엔 혼주석이 없었다. 직장 동료도, 친구도, 친척도 아내와 결혼하는 그를 받아들이고 축하했지만 부모님만큼은 그러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원망하진 않는다. 김규진씨는 “엄마가 결혼식에 참석한 이모만큼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리 없다”며 “이모보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모님이 김규진씨와 절연한 건 아니다. 김규진씨가 임신했단 소식에 “잘 먹어야 한다”며 과일을 바리바리 보낸 건 그의 엄마였다. “결혼을 앞두고 아빠께서 저와 아내에게 저녁을 사주셨어요. 아빠가 그러시더라고요. 엄마와 아빠가 사실 동성동본이라고요. 외할아버지 반대가 심해서 본관도 다르게 말씀하셨대요.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누가 동성동본 얘길 하나요? 동성결혼도 30년 뒤엔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누군가에겐 원하면 할 수 있는 게 결혼이지만, 그에겐 아니었다. 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의미를 곱씹었고, 그래서 간절히 원했다. 그가 미국까지 가 혼인신고를 하고, 호텔에서 가장 한국적이고 전형적인 결혼식을 올린 이유다. 김현동 기자 ━ Part4. 내 존재는 누구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다 김규진씨가 처음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을 주변에 알렸던 건 아니다. 대학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땐 “우리 조 남자애 중 누가 제일 맘에 들어?”란 질문을 받고 그중 무던하고 똑똑해 보이는 남자 친구 이름을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사소한 거짓말이 그를 힘들게 했다. 들통나지 않으려 계속해서 거짓말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학 생활 내내 그는 조금씩 커밍아웃을 했다. “커밍아웃은 자기소개예요. 누구의 승인이 필요한 일이 아닙니다. 나를 받아들라는 의미가 아니라 나는 이런 사람이라는 정보 전달에 가깝죠. 그래서 밝은 조명 아래 맑은 정신으로 해야 하죠. 어두운 공간에서 술의 힘을 빌려서 털어놓으면 안 돼요. 기분이 좋으면 어떤 얘길 들어도 긍정적으로 반응하잖아요.” 김규진씨는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는 건 이성애자한테도 마찬가지 아니냐”고도 했다. 그 누구에게도 다른 이의 존재를 부정할 권리는 없다. 설령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을지언정 말이다. 김규진씨는 이 당연한 말을 뒤집어 하고 있었다. 설령 누군가 그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김규진씨는 오늘 여기 존재한다. 나를 부정하는 이가 내 삶에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더욱 신경을 쓸 이유가 없다. 중요한 사람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들이 아니어도 그에겐 아내가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와 동료가 있다. 그리고 곧 태어날 아이도 있다. 그가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공개한 과정을 공공연히 말하고 다니는 건 성소수자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경쾌한 그지만, 그 역시 10대 시절엔 자신의 정체성을 가족에게 밝히지 못했다. 부모님의 직장 때문에 중국 상하이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는 집 외엔 의지할 데가 없었다. 그가 성인이 된 후 커밍아웃을 한 건 그래서다. 설령 부모님이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더라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저는 운 좋게 국제학교라는 다양성이 폭넓게 인정되는 공간에서 10대 시절을 보냈어요. 그래서 큰 어려움 없이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고요. 한국이었다면 그렇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 기사를 보게 될 양육자분들께 당부하고 싶어요. 아이가 성소수자라고 해도 낙담하지 마세요. 그래도 아이는 내 아이잖아요. 성인과 달리 10대는 가정에서 부정당하면 정말로 갈 곳이 없어요.” 김규진씨는 남과 다른 성 정체성을 가졌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커리어를 쌓으며 살아가는 평범한 개인이다. 그는 충분히 행복하다. 그래서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는 아이도 자신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김현동 기자 그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것이다. 결혼식을 앞두고 한 방송사의 9시 뉴스에 출연하기로 했을 땐 아빠마저 그렇게 말했다. 삶을 공개하는 건 여러모로 불편하고, 때로는 위험하기도 하다. 그런데도 그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고, 결혼식을 공개하고, 임신 사실까지 공개하는 이유는 뭘까? 누구나 각자가 원하는 대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면서 살잖아요. 저도 그래요. 다만 저는 그 과정에서 이름과 얼굴을 가지고 나섰을 때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았을 뿐이에요. 그러면 더 제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거든요. 그가 임신 사실을 공개한 것도 그래서다. 세상이 무서워서 아이를 낳지 않기보다, 아이가 편견에 부닥쳐 좌절하지 않게 세상을 바꿔볼 생각이다. 그와 그의 아내가 성소수자로서 행복하게 살고 있듯 조금 다른 보호자를 가진 아이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관련기사 아이에게 집안일만 가르쳤다…부족 같은 이 가족이 사는 법 9살에게 카드 준다, 특수교사 아빠가 ‘느린 아이’ 키우는 법 "천재여야 살 가치 있는 건가요" '우영우' 신드롬이 불편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