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만원으로 65일 유럽캠핑…그 뒤 4인 가족에 벌어진 일

    2000만원으로 65일 유럽캠핑…그 뒤 4인 가족에 벌어진 일 유료 전용

    처음엔 망설였어요. 유럽도 낯선데, 캠핑이라니…. 그런데 다녀와 보니 알겠더라고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는 사실을요.   지난해 여름 65일간 초등학생 두 아이와 함께 네 가족이 유럽으로 캠핑을 다녀온 최종경 작가는 유럽 캠핑의 장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가 말한 두 마리 토끼는 ‘가성비’와 ‘디지털 디톡스’(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와 거리 두기)다. 4인 가족이 저렴하게 유럽을 두 달이나 여행할 수 있는 데다, 아이들이 스마트폰과 멀어졌다는 것이다.   캠핑 경험이 전무한 그가 유럽 여행을 계획하며 캠핑을 선택한 건 경제적 이유가 컸다. 네 식구가 유럽 여행을 가자니, 열흘만 가도 2000만원이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걱정하며 비행기에 올랐지만, 막상 가보니 또 가고 싶을 정도로 즐거웠단다. 맞벌이를 하는 부부는 육아휴직을 내고 아이들의 여름방학과 체험학습을 이용해 스위스·프랑스·이탈리아 등 10개국의 캠핑장에서 먹고 자며 유럽을 여행했다. 유럽이란 낯선 대륙을, 그것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캠핑이란 방법으로, 심지어 초등학생 두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는 게 가능할까? 힘들진 않을까? 여행의 노하우를 담아 책 『아이와 함께 유럽, 때때로 텐트 속』을 낸 최 작가를 지난 3일 만났다. 박정민 디자이너   ■  「 Intro. 유럽 여행, 이왕이면 캠핑 어때 Part1. 2000만원대로 65일 유럽, 가능할까 Part2. 스마트폰 대신 일기를 쓰다 Part3. ‘이것’만큼은 고급으로 준비하자 」   ━  🏕️2000만원으로 65일 유럽, 가능할까   4인 가족이 유럽에 가려면 얼마가 필요할까? 여행사 서유럽 패키지 상품은 보통 열흘에 2000만원(1인당 550만원)이 넘는다. 하지만 숙소를 호텔에서 캠핑장으로 바꾸면 같은 비용으로 두 달 여행을 다녀올 수 있다. 최 작가는 “캠핑을 주로 했지만 힘들면 에어비앤비 숙소를 활용하면서 여행했다”고 전했다.  그래도 60일 넘게 캠핑이라니 힘들었을 것 같아요. 처음부터 캠핑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호텔에서 자려면 방을 2개는 잡아야 하더라고요. 하루 밤에 숙박비만 수십만원을 써야 했죠. 아예 여행 자체를 포기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혹시나 싶어 캠핑장을 찾아봤더니 하루에 10만원 안팎이면 되겠더라고요. 게다가 주요 도시 인근에 캠핑장이 많아서 관광도 어렵지 않았죠. 그래서 캠핑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그런데 정작 캠핑을 한 번도 안 해봤다고요? 주변에 주말이면 캠핑 다니는 가족이 많거든요. 그래서 ‘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했어요. 출발 두 달 전쯤 서울·경기도 캠핑장에서 네 번 정도 캠핑을 했어요. 텐트를 펴자마자 ‘이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죠. 그런데 막상 하다 보니 익숙해지더라고요. 만약 유럽 캠핑 여행을 고려한다면 반드시 연습해야 합니다.   캠핑 장비는 어떻게 꾸리셨나요? 캠핑 장비 사는 것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버리고 올 생각으로 중국 쇼핑 앱에서 샀어요. 의자·조명·전기냄비·전기장판 등을 다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중고 물품을 사기도 하고요. 가장 중요한 장비는 텐트인데요. 이건 파리 현지에 있는 데카트론이란 곳에서 30만원 정도에 샀습니다. 데카트론은 아웃도어 용품을 파는 이케아 같은 곳이에요. 이것저것 하면 캠핑 장비를 사는 데만 100만원 정도 쓴 거 같아요. 박정민 디자이너 캠핑장은 어떻게 찾으셨나요? 우선 아이들에게 가고 싶은 나라와 도시를 고르라고 했어요. 전쟁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들(11세)은 박물관에, 그리스·로마 신화에 빠져 있던 딸(9세)은 신화 속 도시에 가고 싶어 했죠. 그래서 런던·파리·로마 같은 대도시를 여행하도록 일정을 짰어요. 그리고 구글 지도에서 주변 캠핑장을 검색해 평점과 리뷰를 보면서 골랐죠.   하나하나 리뷰를 보는 것도 힘들었겠어요. ‘유럽 캠핑’으로 검색하면 엄청나게 많은 웹사이트가 나와요. 거기서 포기하고 싶을 정도죠. 게다가 전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거잖아요. 가능하면 좀 더 나은 캠핑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바꿨어요. ‘최악의 캠핑장만 피하자.’ 여행 경로에서 멀지 않으면서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는, 평점 3~4점대 캠핑장을 골랐어요. 수영장을 원할 땐 검색에서 ‘풀(pool)’을 추가로 넣고 평점만 봤죠.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긴 느낌이에요. 최대한 절약했어요. 왕복 항공권은 1인당 88만원에 샀어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를 경유해서 거의 하루가 걸려 도착했죠. 자동차는 하루에 7만원 정도에 빌렸고요. 힘들 땐 에어비앤비에서 숙소를 구했어요. 호텔보다 싼 숙소를 구할 수 있거든요. 음식은 대부분 현지 마트에서 장을 봐서 요리해 먹었고요. 하지만 주요 박물관·미술관·테마파크 등은 거의 다 갔어요. 영국에서 노르웨이로 떠나는 7박8일 크루즈 여행도 했고요. 65일 동안 약 2800만원의 경비를 썼는데, 크루즈 여행을 빼면 2000만원 정도 쓴 셈이에요. 박정민 디자이너  ━  📱 스마트폰 대신 일기를 쓰다    최 작가는 유럽 여행의 주도권을 아이들에게 주었다. 가고 싶은 나라와 관광지를 직접 선택한 아이들은 시키지 않아도 관련 책을 찾아 읽고 영어를 공부했다. 무엇보다 그가 놀란 건 아이들이 여행 기간 내내 스마트폰이나 게임을 거의 하지 않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여행 관련 책을 찾아봤다고요? 여행하려는 국가와 관련한 학습 만화를 열심히 보더라고요. 그리고 어느 나라에 가면 뭘 볼 건지 굉장히 적극적으로 얘기하고요. 아이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그리고 주체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구나 싶었을 정도예요.   영어 공부도 하던가요? 사실 유럽에 가기 전엔 아이들이 영어 공부를 찾아 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여행 다녀온 뒤론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요. 유럽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는 영어로 의사소통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일인데요. 아이가 3유로짜리 장난감을 갖고 싶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2유로로 깎으면 사준다고 했죠. 그랬더니 짧은 영어 실력으로 흥정하더라고요. 그런 경험을 하면서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또 영어가 왜 필요한지도 스스로 이해한 것 같아요.   일기는 아이들이 정말 하기 싫어하는 숙제잖아요. 그런데 매일 썼다고요? 일기 쓰기는 제가 하라고 했어요. 여행 기간 동안 자기 경험을 돌아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했거든요. 처음엔 아이들이 정말 싫어했어요. 그래서 서너 줄만 쓰자고 설득했죠. 그런데 막상 쓰라고 하니 한 페이지를 순식간에 쓰더라고요. 쓸 얘기가 그만큼 많으니까요. 아주 피곤한 날을 빼면 거의 매일 썼어요. 일부는 책에도 넣었는데, 아이들이 뿌듯해하더라고요.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첫째 아들이 이탈리아 캠핑지에 쓴 일기. 사진 최종경 작가 아이들이 휴식 시간에는 휴대폰으로 게임도 하고 동영상도 보지 않았나요? 휴대폰을 아예 안 들고 갔어요. 당연히 반발했죠. 저도 이렇게 항변했어요. 학교도, 학원도 안 가는데 휴대폰은 양보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게임을 좋아하는 아들이 처음엔 좀 힘들어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캠핑장 안에서 놀 만한 것들을 찾아 잘 놀더라고요. 게다가 하루 종일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서 휴대폰 들여다 볼 짬도 없었어요. 일찍 자기도 했고, 눕자마자 잠들었으니까요. 덕분에 유럽 여행 하는 내내 밤 9~10시면 잠들고 아침 7~8시면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했죠.   아이들과 여행을 가면 아무래도 음식이나 잠자리가 신경 쓰이잖아요. 유럽에선 한식당이 비싸기도 하거니와 찾기도 어렵잖아요. 그래서 거의 가지 않았어요. 대신 한국에서 참기름·고추장·라면 같은 걸 챙겨 갔죠. 쌀을 사서 밥을 하고, 소시지나 고기 등을 구워서 같이 먹었어요. 한번은 김치가 먹고 싶어서 마트에서 무를 사서 한국에서 가져온 시판용 깍두기 양념을 부어 담근 적도 있어요. 한국에 비해 빵이 저렴하고 맛있어서 많이 먹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변비 때문에 고생을 좀 했어요.   아이와 해외여행 갈 때 가장 큰 걱정이 바로 아픈 거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했나요? 크로아티아를 여행할 때 아이들이 열이 크게 났어요. 낮에 뜨거운 햇볕 아래 오래 있었거든요. 다행히 한국에서 가져온 해열제로 넘어갈 수 있었죠. 아이들은 괜찮았는데 제가 감기에 심하게 걸린 적이 있어요. 중간에 전기장판 하나가 고장 나서 저만 냉골에서 잤거든요. 그때 아이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아이들은 여행하면서 큰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때 알았죠.   최종경 작가가 지난해 8월 스위스 베른고원의 라우터브루넨에 위치한 융프라우 캠핑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차려 먹고 있다. 사진 최종경 작가  ━  🔦‘이것’만큼은 고급으로 준비하자   65일의 유럽 여행을 돌아보면서 그가 아쉬웠던 한 가지는 바로 캠핑 장비였다. 저렴한 것 위주로 준비하다 보니 불편을 겪은 것들이 있다. 특히 잠자리를 좌우하는 에어매트나 전기장판 같은 것들은 좀 비싸더라도 고장 없이 편하게 쓸 수 있는 걸 살 걸 하고 후회했다. 최 작가는 “다시 간다면 수면에 필요한 장비는 값이 나가더라도 질 좋은 것으로 준비할 것 같다”고 했다.   수면에 필요한 장비라면 어떤 것들인가요? 에어매트가 정말 중요해요. 두꺼운 걸로 사세요. 잠을 잘 자야 다음 날 일정을 소화하기 쉽거든요. 잘 못 자면 몸도 힘들고 그러다 보면 서로에게 짜증을 낼 수밖에 없거든요. 전기장판도 튼튼한 걸로 준비하고요. 여름이어도 밤엔 서늘하거든요. 장판을 깔고 자면 한결 낫습니다. 낚시 의자도 반드시 챙기세요. 콜로세움 같은 관광지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거나 박물관에서 긴 시간 설명을 들을 때 낚시 의자가 정말 유용하거든요. 다른 여행객들이 다들 부러워했을 정도죠.    가장 인상 깊었던 캠핑장은 어딘가요? 아이들은 스위스 ‘배거시 캠핑장(Campingplatz Baggersee)’을 꼽았어요. 원래는 오스트리아의 캠핑장에 가려고 했는데 자리가 없다고 해서 급하게 갔던 곳이죠. 깨끗한 호수에 트램펄린과 카약 같은 놀거리도 많았어요. 한국인은 처음이라며 직원들도 정말 친절하게 대해줬고요. 밤에 거름 냄새가 좀 나는 것만 빼면 정말 나무랄 데 없는 곳이었죠. 스위스 융프라우 캠핑장(Camping jungfrau)과 이탈리아 바디아치아 캠핑장(Badiaccia Camping Village)도 좋았어요.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거든요.  아이들이 가장 좋았던 캠핑장으로 꼽은 스위스 배거시 캠핑장. 이곳 호수에는 트램펄린(사진), 미끄럼틀, 카누, 카약 등이 있어 신나게 놀 수 있다. 사진 최종경 작가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면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더 불안하잖아요. 유럽 캠핑장은 일주일 이상 머물지 않으면 예약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한 캠핑장에서 이틀 혹은 사흘 자는 일정이어서 예약할 수가 없었어요. 늦게 가면 자리가 없는 거죠. 그래서 아침에 눈을 뜨면 일단 캠핑장으로 가서 짐을 풀고 관광했어요. 그렇게 일찍 갔는데도 자리가 없으면 당황스럽죠. 그런데 결국 해결은 되더라고요. 다른 캠핑장에 가면 되니까요. 그것도 안 되면 에어비앤비에서 숙소를 구하면 되고요. 정말 대안이 없으면 차에서 잔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도 저나 남편이 초조해하면 안 되겠더라고요. 그럼 아이들은 더 불안해하니까요.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웃으면서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어요. “다른 데 찾아보자!”라고요.   아이가 몇 살 정도면 유럽 캠핑 여행이 가능할까요? 초등학교 3~6학년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요. 올해 5학년인 첫째는 여행을 하나하나 기억하더라고요. 다녀와선 영어와 세계사 공부도 열심히 하고요. 2학년인 둘째는 그 정도는 아니에요. 유럽 캠핑 여행을 고려한다면, 아이가 너무 어릴 때보다는 어느 정도 큰 뒤에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캠핑 여행을 한다면, 겨울보다 여름이 낫겠죠? 아무래도 겨울은 추우니까요. 알프스산맥이나 북유럽처럼 서늘한 지역이라면 여름이 좋을 것 같고, 이탈리아·프랑스 같이 한여름에 뜨거운 지역은 봄·가을이 낫겠죠. 무엇보다 여름엔 옷이 얇아서 짐을 줄이기 좋아요. 어지간한 캠핑장엔 코인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어서 많이 싸갈 필요도 없고요. 체험학습을 활용해 극성수기인 7~8월을 피해 6~7월에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박정민 디자이너 최종경 작가가 지난 3일 서울 강동구에서 두 아이와 다녀온 유럽 캠핑 이야기가 담긴『아이와 함께 유럽, 때때로 텐트 속』책을 들고 있다. 그는 "캠핑장에 한국인이 없어 인종차별을 걱정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있으니 오히려 무척 친절했다"고 전했다. 장진영 기자 최 작가는 “유럽 캠핑 이후 아이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힘이 생겼다”고 했다. 여행 초반에만 해도 공용 화장실이나 공용 샤워실을 불편해했지만, 점차 적응하면서 ‘좀 불편하지만 재미있는 놀이’처럼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몫을 해내려고 한다는 게 큰 소득이다.    자기 주도적인 아이로 크길 바라잖아요. 그건 잔소리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여행 기간 내내 좀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자기 주도성을 기른 것 같아요. 그래서 전 2000만원이 아깝지 않아요. 관련기사 방학만 되면 이 가족 떠난다…3박 숙소비로 한 달 사는 꿀팁 애들 학원 왜 보내? 그 돈 아껴 해외여행…10년 놀아본 이 가족 “의대 보내려면 오지 마세요” 캐나다 2년살이 엄마의 단언

    2024.07.14 15:55

  • 뱃속 아이는 소리 못 듣는다…“태교는 사기” 갓종관 일침

    뱃속 아이는 소리 못 듣는다…“태교는 사기” 갓종관 일침 유료 전용

    엄마 때문에 태아가 잘못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고 싶은 거 다 하세요. 태교도 안 해도 됩니다.   전종관 이대목동병원 교수는 “임신과 출산에 관한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태아만큼 중요한 게 엄마의 삶”이라는 것이다. 전 교수는 특히 “유산은 엄마의 잘못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유산될 태아였기에 그렇게 된 것일 뿐”이라는 얘기다.  박정민 디자이너 전 교수는 고위험 임산부, 다태아 분만의 최고 권위자다. 1989년 전공의 생활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2만 명이 넘는 신생아와 4000명이 넘는 쌍둥이, 500명이 넘는 삼생아를 받았다. 그는 엄마의 마음을 잘 아는 의사로도 유명하다. 임신하면 뒷전으로 밀리는 여성의 권리를 우선에 두기 때문이다. 임신부나 양육자 사이에서 ‘갓종관’ ‘전느님’이란 별명으로 불릴 정도다.   그런 그가 “임신·출산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싶다”고 했다. 그것만 해도 임신 기간 여성들이 한층 편해질 수 있다면서 말이다. 우리가 임신·출산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건 대체 뭘까? 지난달 초 이대목동병원에서 전 교수를 만나 직접 물었다. 1989년부터 몸담았던 서울대병원을 떠나서 지난 3월부터 새롭게 자리 잡은 곳이다.   ■  「 Intro 임신·출산 오해와 진실 오해① 태교 잘하면 지능 높아진다? 오해② 12주까지 안정 취해야 한다? 오해③ 약 먹으면 기형아 낳는다? 」   ━  오해① 태교 잘하면 지능 높아진다?   “좋은 것만 보고, 좋은 것만 들어라.” 임신한 여성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태교(胎敎)를 잘하라는 의미다. 이를 위해 엄마들은 태아와 대화를 나누거나 책을 읽어주고,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는가 하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수학 잘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수학의 정석’을 푸는 엄마들도 있을 정도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전 교수는 “태교는 실체가 없다”고 일침을 놨다.   태교가 실체가 없다고요? 의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태교를 통해 아이의 인지 능력이 발달하고 정서가 안정된다는 주장인데요,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연구 결과가 아직 없어요. 특히 한국엔 태교 관련 기초연구나 임상연구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무엇보다 배 속의 아이는 부모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태아가 소리를 못 듣는다고요? 물론 소리는 들을 수 있죠. 하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진 못해요. “우리 아기 잘 있었니?” 하고 물어도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겁니다. 외부 소리가 자궁 안에서는 ‘웅웅웅’ 정도로만 들리거든요. 비행기 소리도 자궁 안에서는 작게 들리고요. 그러니 엄마·아빠의 말소리나 책 읽어주는 소리, 클래식 음악 소리가 들릴 리 없죠. 만약 자궁 안에서 밖의 소리가 다 들린다면 그게 오히려 문제일 겁니다. 태아에게 큰 스트레스가 될 테니까요.   태아가 소리를 못 듣는다니 놀랍네요. 태명을 지을 때 거센소리나 된소리로 지으라고, 그래야 태아가 잘 듣는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이것도 잘못된 얘기군요? 태아가 알아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더구나 신생아도 사람 말을 못 알아듣는데, 태아가 어떻게 알아듣죠? 태교는 엄마·아빠의 애정과 바람을 이용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교가 중요하다’는 사람들이 명확한 과학적 근거를 좀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비록 알아듣지 못해도 배 속의 아이와 정서적 교감을 하는 건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딱히 권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해도 엄마들은 잘 안 믿어요. ‘이 말은 이런 의미가 아닐까’ ‘저 말은 저런 의미가 아닐까’ 하면서 나름대로 해석을 하죠. 뭔가 숨겨진 뜻이 있는 게 아닙니다. 말 그대로예요. 정말 태교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태교를 중요시하면 생기는 문제가 또 있어요. 사실 이게 더 큰 문제죠.   그게 뭔가요? 엄마에게 죄책감을 심어주는 겁니다. 마음 아픈 일이죠. 아이가 유산되거나 장애를 안고 태어나면 엄마들이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제가 혹시 태교 잘못해서 이렇게 된 건가요?” 하고 물어요. 전체 신생아의 2~3%는 심각한 장애를 갖고 태어납니다. 자라면서 발달장애로 진단받는 아이들도 있고요. 그러면 주변에서 엄마 탓을 해요. 엄마도 자책하고요. 임신 6개월에 태아의 구순열(윗입술의 한쪽 또는 양쪽이 갈라져 태어나는 장애)을 진단받은 엄마가 있었는데, “임신하고도 운전을 계속해서 그런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런 거 아닙니다. 전문의로서 제가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요. 태교 잘못해서 아이가 잘못되는 거 아닙니다. 자책하지 마세요. 전종관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태교의 긍정적 효과에 대한 근거는 없다"며 "태교를 제대로 못 한 임신부들이 괜히 죄책감 가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  오해② 12주까지는 안정을 취해야 한다?   보통 임신 12주 이후를 ‘안정기’라고 부른다. 유산의 80%가 12주 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임신부들이 12주까지 몸가짐을 조심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하지만 전 교수는 “그것 역시 임신·출산에 관한 오해”라고 했다. ‘안정기’라는 건 12주 이후 유산 확률이 감소한다는 의미지, 이때까지 안정을 취하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임신 이후에도 임신 전과 똑같이 생활하는 게 좋다”고 했다.   임신해도 임신 전과 똑같이 생활하라고요? 임신 전과 후의 삶이 달라질 이유가 전혀 없어요. 일하던 분은 일하고, 운동하던 분은 운동하면 됩니다. 안정기까지 일을 쉬거나 운동을 피한다? 의미 없습니다. 평소에 하던 거라면 무엇이든 가능하죠.   무리해서 일하면 스트레스 때문에라도 태아에게 안 좋지 않을까요? 저는 쌍둥이를 임신했었는데, 임신 34주 차에 조산했어요.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던 것 같거든요. 특히 둘째의 경우 마지막 3주 동안 몸무게가 늘지 않아 1.36kg에 태어났어요. 임신부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태아에게 전해지는 혈류를 방해한다는 얘기가 있긴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의학적으로 확인된 바 없어요. 태아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나약하지 않습니다. 과도하게 몸에 부담을 주는 게 아니라면 태아의 건강에 해로운 건 거의 없어요. 전자파나 환경호르몬, 미세플라스틱 같은 것들을 걱정하는 엄마도 많은데, 이 중에 태아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진 건 없습니다. 운동도 마찬가지예요. 유산소 운동을 하면 자궁으로 가야 할 혈액이 근육으로 가서 태아 곤란증(호흡·순환 기능이 저하된 상태)을 유발한다고 하는데, 건강한 임산부에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하루 30분 정도는 운동하는 게 좋아요.   하지만 임신 이후 일이나 운동을 쉬는 분이 많아요. 외부 활동을 안 하고 집 안에서 온종일 누워서 생활하기도 하고요. 유산 혹은 조산을 경험하거나 어렵게 임신한 분들이 그렇죠. 하지만 임신부가 조심하지 않아서 유산이나 조산을 하는 게 아니에요. 자연유산의 80%는 임신 12주 이내에 발생하는데, 태아 자체 문제로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50% 정도가 태아의 염색체 이상이 원인이거든요. 발달 단계에서 꼭 필요한 유전자가 결핍된 태아가 특정 단계를 넘지 못하는 겁니다. 엄마가 뭘 잘못한 게 아니라 애당초 문제가 있는 태아였다는 얘깁니다. 조산 역시 자궁 내 감염처럼 임신부의 활동과 관계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럼 안정을 취할 필요가 없는 건가요? 활동 안 하고 누워만 있다고 유산이나 조산이 줄어든다는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80년대에 결론 난 얘기예요. 온종일 누워 있는 사람과 평소대로 생활한 사람을 비교했는데, 유의미한 차이를 발견하지 못했죠. 과도하게 안정을 취하는 건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왜죠? 한두 달만 누워 있어도 임신부의 체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안정기가 되어 일상생활로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가요. 근육량이 감소해서 잘 걷지도 못하거든요. 기운이 없어서 활동량이 줄어들고, 활동량이 줄면 근육량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죠. 결국 안정을 취하는 게 임신부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과도한 체중 증가로 이어집니다. 임신 중 생활이 불편해지는 것은 물론 분만 과정이나 출산 이후에도 애를 먹을 수 있죠. 혈관 내 피가 응고돼 혈액의 흐름을 방해하는 혈전증의 위험도 커지고요. 전종관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12주 이후를 안정기라고 부르는 건 유산 위험이 줄어들기 때문"이라며 "임신부들한테 이때까지 안정을 취하라는 의미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전민규 기자  ━  오해③ 약 먹으면 장애아 낳는다?   임신·출산에 관한 또 다른 오해는 먹는 것과 관련이 있다. ‘약 먹으면 장애아를 낳는다’는 게 대표적이다. 그러다 보니 입덧이 심하거나 감기에 걸려도 끙끙대며 참는 임신부가 많다. 전 교수는 “안전이 검증된 약이 많은데 ‘무조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고백하자면 저도 임신 중에 타이레놀 딱 한 번 먹었어요. 입덧, 임신중독증, 임신성 비염, 임신성 역류성 식도염 등으로 고생을 했는데도요. 주치의 처방을 받은 약이어도 먹기 찝찝하더라고요. 약 때문에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은 1% 미만이에요. 가능하면 약을 쓰지 않는 게 좋지만 ‘약은 절대 먹지 않겠다’는 것도 잘못된 태도예요. 약물을 적절히 사용하면 태아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임신 기간을 훨씬 더 편하게 보낼 수 있거든요. 임신 초기에 나타나는 입덧 같은 건 약의 도움을 받으면 훨씬 좋죠.   입덧도 그냥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입덧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얼마나 괴로운지요. 그래서 전 남편에게도 꼭 얘기해요. 온종일 배를 탄 것처럼 속이 울렁대니까 최대한 편하게 해주라고요. 물론 입덧을 할 때 음식물 섭취를 조절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세 번 먹을 걸 열 번에 나눠 먹고, 물도 한 번에 마실 걸 서너 번에 나눠 마시고요. 입에 당기고, 속이 편한 음식이 있으면 가리지 말고 먹으면 됩니다. 열량이 높고 수분이 많은 과일이나 아이스크림을 추천해요. 하지만 먹는 거로도 해결이 안 되면 그때는 약을 쓰는 게 좋아요. 입덧 약은 1980년대에 개발돼서 40년 넘게 써왔어요. 그만큼 안정성이 입증됐죠.   다른 데 쓰는 약들도 안전한가요? 임신 초반과 후반에 나타나는 속쓰림이나 변비 등에도 안전한 약이 있어요. 허리통증이나 알레르기성 비염도 마찬가지고요. 항생제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습니다. 주치의와 상담을 통해 증상에 맞는 적절한 약을 처방받았다면 문제없습니다. 약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영양제도 안 먹는 분들이 있는데, 엽산과 철분제는 꼭 드셔야 합니다. 특히 엽산은 임신을 준비할 때부터 먹어야 하죠.   철분제는 보건소에서 주는 것 대신 특정 제품을 해외 직구로 따로 사서 먹기도 하는데요, 그게 더 좋은 걸까요? 보건소에서 무료로 주는 거 드시면 됩니다. 보건소에서 주는 건 일반의약품이에요. 해외 직구 등으로 구매하는 건 건강기능식품인 경우가 많고요.   둘의 차이가 뭔가요? 쉽게 말하면 약과 음식의 차이예요. 일반의약품은 안정성과 효과가 입증된 약이죠. 일반의약품이 허가를 받으려면 서류가 바닥에서 허리까지 필요해요. 건강기능식품은 손가락 높이 정도만 있어도 되고요. 많은 사람이 효과 좋은 무료 약을 두고, 값비싸고 효과 없는 식품을 먹고 있다는 거죠. 어떤 분들은 철분제를 해외 직구해서 사 먹었더니 ‘변비 같은 부작용이 없었다’는데, 철분 함량이 적어서 그런 겁니다.   전 교수는 “이 외에도 사람들이 임신·출산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게 많다”고 했다. ‘임신했을 때 매운 거 먹으면 안 된다’ ‘잘 때 왼쪽으로 누워 자라’ 같은 것들이다. 그는 이것들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매운 건 맛이 아니고 통각이라서 엄마가 통증을 느낀다고 아이한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했고, “왼쪽으로 누워 자면 태반에 연결된 탯줄에 혈액순환이 원활해져 태아가 건강해진다는 건데, 근거가 없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오해가 결국 엄마에게 죄책감을 주고, 임신에 대한 기억을 안 좋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부모는 유전자를 물려주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 한 거예요. 아이를 위해 희생하지 말고, 임신부의 인생을 당당히 즐기세요. 전종관 이대목동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임신했을 때 약을 먹으면 기형아 낳는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데, 안전한 약도 많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 hello! Parents -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0970“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1784“일단 이 행동 몰래 하세요” 위기의 부부 바꾼 어느 숙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8299“대치동 갈 바엔 저축한다” 서울대 고집 않는 잠실엄마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7762ADHD 아니라 자폐였다? 산만함에 숨은 ‘핵심 신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9394 」 

    2024.07.10 15:45

  • 전교 1등 첫째, IQ 70 둘째…너무 다른 아이 키우는 법

    전교 1등 첫째, IQ 70 둘째…너무 다른 아이 키우는 법 유료 전용

    아이가 크게 잘못하는 것도 없는데, 뭔가 잘못된 것 같죠? 사실 잘하고 있는데도, 뭔가 부족해 보이죠? 다 그렇습니다.   왜 엄마는, 양육자는 늘 불안한 걸까? ‘자녀 교육 멘토’로 불리는 초등 교사 출신 이은경 작가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유별나고 극성맞은 엄마가 아니라도, 누구나 불안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그는 “최고의 순간만을 기록하는 SNS 때문에 육아와 교육에도 속도 경쟁이 붙었다”며 “불안은 그 결과”라고 말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이 작가는 매일 불안한 엄마들과 마주한다. 14만 구독자를 거느린 자신의 유튜브 채널(‘슬기로운 초등 생활’)에서, 그리고 전국의 강연장에서 말이다. 그럴 때마다 똑 부러진 조언을 내놓는 그가 뜻밖의 고백을 했다. “나야말로 누구보다 불안하고, 아등바등 사는 엄마”라는 것이다. 사실 그에겐 너무 다른 연년생 두 아들(고1, 중3)이 있다. 첫째는 전교권 성적을 놓쳐본 적 없는 모범생, 둘째는 지능지수(IQ)가 70이 채 안 되는 느린 학습자다. 너무 다른 두 아들 사이에서 그는 고민했다. ‘대체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하지?’   그가 찾은 답은 ‘다정한 관찰자’다. 아이가 스스로 해보도록 따뜻한 눈길로 지켜보는 엄마가 되기로 한 것이다. “빠른 첫째에게도, 느린 둘째에게도 그게 최선”이라는 걸 흔들릴 대로 흔들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지난달 나온 에세이 『나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기로 했다』에 이 답을 찾기까지의 과정을 솔직하게 담았다. “불안한 엄마들을 위로하고, 더는 흔들리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는 그를 지난 1일 만났다. 과연 우리는 불안에 휩쓸리지 않는 단단한 내가, 그리고 든든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  「 Intro. 불안에 대처하는 단단한 엄마의 자세 Part1. 관찰자는 말이 없다 Part2. 관계가 좋으면 기회는 또 온다 Part3. 너무 잘하려다 지친다   」   ━  📝관찰자는 말이 없다   엄마의 불안을 이은경 작가만큼 속속들이 아는 이도 없을 것이다. 강연이 끝나고 달려 나오는 엄마들, 유튜브 영상 밑에 달린 댓글 등을 통해 그는 양육자들의 걱정과 불안을 가늠하곤 한다. 그중 무엇보다 큰 건 바로 학습 고민이다. 그런데 그는 “최근 엄마들의 질문이 달라지고 있다”고 했다.    질문이 달라진다고요? 무슨 얘긴가요? 두 가지가 달라진 것 같아요. 먼저 속도에 대한 불안감이 굉장히 커졌어요. 예전엔 고민 주제가 ‘수준’ ‘레벨’이었어요. 아이가 공부를 곧잘 하면 상대적으로 덜 불안해했죠. 그런데 최근엔 ‘속도’를 고민해요. 잘하건 못하건 제 학년보다 앞서 공부하면 덜 불안해합니다. 반면에 아이는 충분히 잘해도 앞서 공부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해요.   또 다른 하나는 뭔가요? 사교육과 관련된 질문을 할 때 예전엔 “시켜야 할까요?”라고 묻는 분이 많았어요. ‘여차하면 안 시키겠다’는 마음이 있는 거죠.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물어요. “안 시켜도 되나요?” ‘시키려니 힘들 것 같고 안 시키려니 불안한데, 그래도 시켜야겠죠?’ 하고 묻는 거예요. 사고력 수학이니, 독서·논술이니, 한자 같은 걸 다들 하다 보니 안 하는 선택을 하려면 큰 결심이 필요해요. ‘영어유치원’(영유)만 해도 그렇죠. 워낙 많이들 보내니까, 보내지 않으면 ‘왜 그렇게 아이를 놀게 하냐’는 얘길 들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엄마는 다들 극성’이라는 말도 많아요. 유난이니 극성이니 하는 것들이 사실 들여다보면 사랑이죠. 엄마가 아니라면 누가 한 아이에게 그토록 간절하겠어요? 아이가 나보다는 더 나은 기회를 가졌으면, 고생을 조금이라도 덜했으면 하는 마음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겠죠. 문제는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겁니다. 아이는 매일 성장하는데, 부족하지 않을 수 있나요? 부족하니까 성장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과몰입하면 아이의 부족함이 곧 나의 부족함이자 잘못이라 여기게 돼요. 받아들일 수 없는 거죠. 불안할수록 거리 두기가 필요합니다. 해결사가 아니라, 관찰자가 되어야 해요.   관찰자는 뭐가 다른가요?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시간과 기회를 주는 거죠. 숙제나 수행평가도 부모가 마음먹고 도와주면 더 빨리, 더 잘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때뿐 결국 수험장에 따라 들어갈 수는 없잖아요. 결국엔 공부도 아이 스스로 혼자 해야 합니다. 틀려도 보고 점수도 깎여 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왜 그랬는지 깨닫고 고치죠. 그게 진정한 공부고, 그렇게 해야 진짜 실력이 됩니다.     관찰자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관찰하려면 입을 다물고 눈만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잖아요. 잔소리를 삼킬 줄 알아야 합니다. 아이를 향한 나의 오디오가 비어야 하죠. 처음엔 힘들고 어색해요. 하지만 그렇게 빈틈이 생기면 아이는 두 가지를 합니다. 하나는 할까 말까 망설였던 말을 해요. 또 다른 하나는 생각입니다. 지시와 명령, 간섭이 사라졌잖아요. 그러니 자기 생각을 한 단계 더 깊이 발전시킬 수 있죠. 가급적 입을 닫고,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세요.  초등 교사 출신의 자녀 교육 전문가인 이은경 작가는 "부모가 불안할수록 아이와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  📝관계가 좋으면 기회는 또 온다   이은경 작가는 정말 다양한 질문을 받는다. ‘앉아서 진득하게 뭔가를 하는 법이 없다’ ‘글씨가 엉망이다’ ‘간단한 것도 실수한다’ ‘문제를 안 읽는다’ 등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하지만 본질은 하나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는 되묻는다. “기다리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지금 당장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아도 그것 때문에 아이 인생이 결정되거나 바뀌진 않아요.”   마냥 기다리기 힘들어요. 그러다 아이가 영영 안 하면 어쩌나요? 누구나 저마다의 속도가 있어요. 제가 빠른 아이, 느린 아이 다 키워봤잖아요. 6살에 구구단을 이해하는 아이도 있지만, 3학년이 되도록 도통 모르겠다고 하는 아이도 있죠. 그런데 요즘엔 옆집 아이가 7살에 구구단 뗐다고,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곱셈 못 한다고 불안해해요. 곱셈은 초등학교 2학년은 돼야 배우는 건데 말이죠. 아이를 기다리기 힘들다면,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문제일 수 있어요. 아이가 부족한 게 아니라 엄마의 기대가 높은 거죠.   누구는 초1이 결정적 시기라고 하고, 또 누구는 초3이 결정적 시기래요.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부추기는 것 같아요. 초등 시기엔 ‘반드시’가 적용되는 게 별로 없어요. 아이가 맞춤법 틀리고, 계산 실수하는 게 큰일처럼 여겨질 겁니다. 하지만 지나 보니 알겠더라고요. 기회는 계속 옵니다. 지금 아이가 받아 오는 레벨이나 성적에 인생이 결정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걸 못 견뎌서 아이를 밀어붙이다 정작 중요한 걸 그르치고 맙니다. 아이와의 관계를 말이죠.   아이를 가르치려다 보면 화를 내게 되는 것 같아요. ‘넌 이걸 왜 이해 못 하니?’하고 소리 지른 적 있으시죠? 아이가 이해를 안 하고 싶은 게 아니거든요. 아이들은 다 잘하고 싶어 해요.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일 뿐인데, 그래서 혼이 나는 거죠. 아이 입장에선 억울하죠. 공부 정서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감정마저 상할 수 있어요. 아이의 실수와 부족함을 너그러이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요, 그래야 다정한 관찰자가 될 수 있어요.       다정한 관찰자요? 다정하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이가 기대만큼 못해도 기다려주는 거죠. 아이는 자라면서 계속 실수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어요. 이런 상황에서 엄마가 창피해하거나 아이를 혼내지 않아야 아이는 도전할 수 있어요.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이라고 아이가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해요. 아이가 이렇게 저렇게 해봐도 안 되면, 뒤에 있던 엄마가 도와줄 거란 그런 믿음이요.   아이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은데, 아이가 어느 날 의대에 가겠대요. 그래도 “네 성적은 알고 말하는 거냐”고 따져 묻지 마세요. 대신 이렇게 말해 주는 거죠. “정형외과? 안과? 전공을 뭐로 할 건데?” ‘네가 한다고 하면 하는 거야. 엄마는 믿어’ 이렇게 표현하는 거죠. 아이의 꿈이 이루어질 거라고 믿는 것, 그건 오직 엄마만 해줄 수 있는 일 같아요. 아이가 바라는 건 현실적인 분석이 아니잖아요. 그건 선생님이나 컨설턴트가 해주는 거죠. 아이가 엄마에게 바라는 건 믿음과 격려, 아닐까요?   이은경 작가는 "아이가 양육자에게 바라는 건 믿음과 격려, 지지"라며 "엄마는 확실한 내 편이라는 마음을 아이에게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  📝너무 잘하려다 지친다   엄마의 불안은 사실 엄마에게서 기인한다. 더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 조금만 도와주면 더 잘할 거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은경 작가는 “너무 잘하려 애쓰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헐렁하게 사는 편이 엄마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좋다”고 했다.   엄마가 아이를 위해 헌신하는 게 문제는 아니잖아요? 너무 잘하려다 보면 엄마도 지칩니다. 지속할 수가 없죠. 엄마도 사람이에요. 너무 애를 쓰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 보상받길 바라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 더위에 삼계탕까지 끓여가며 챙겨줬는데, 시험 못 보면 원망스러운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죠. 아이를 위해 뭔가를 했다면, 그 자체로 만족해야 해요. 그걸 아이의 성취와 연결 지어선 안 됩니다. 물론 아이가 시험 잘 보면 기쁘고 고맙죠. 하지만 설령 아니어도 내가 끓인 삼계탕이 헛된 게 아니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해요.     엄마가 그렇게 마음먹으면 아이에겐 뭐가 좋은가요? 엄마가 허술하면, 아이에게도 빈틈없는 완벽함을 바라진 않겠죠. 저도 냉장고 정리 제대로 못하는데, 아들 방 지저분하다고 어떻게 큰소리를 치겠어요. 빈틈없는 엄마보다 실패해 본 엄마가 아이를 더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도 툭하면 원고 마감 못 지키고요. 어깨 빠져라 열심히 쓴 책이 잘 안 팔려서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춘 적도 많아요. 열심히 한다고 다 잘하는 것도, 잘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걸 아니까 아이도 열심히 공부했어도 성적이 꼭 잘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죠.   그렇게 초연한 마음을 가지는 게 쉽지는 않아요. 오해하지 마세요. 아이 성적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말은 아니니까요. 대충 헐렁하게 살면서 잔소리하려는 저 자신을 다스리고, 잘했으면 싶은 제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일 뿐이죠.   사춘기 두 아들을 키우고 계신데요. 사춘기 아이는 어떻게 대해야 하나요?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게 뭔지 아세요? 아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왜 저러나?’ 싶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어차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희 부부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내 아들은 아마존 원시 부족이라고요. 원시 부족을 볼 때 어떻게 하세요? ‘아, 저렇게도 사는구나. 신기하다.’ 이러잖아요. 굳이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바꾸려고 하지 않잖아요. 저는 아이들을 그렇게 봐요. 사실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가 틀린 행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냥 내버려 두면 다시 돌아올 거거든요.   이은경 작가는 다정한 관찰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단다. 바로 아이들이야말로 엄마·아빠의 다정한 관찰자라는 사실이다. 두 아들은 형편없는 엄마의 요리 실력에도 불만 없이 잘 먹는다. 큰 집에서 살고 싶다거나 큰 차를 타고 싶다고 하지도 않는다. 이 작가는 “그런 다정한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이유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뱉어낸 건 아닌지,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엄마라고 부족한 게 왜 없겠어요. 그런데도 아이는 엄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늘 따뜻하게 저를 바라보고 응원하고 있더라고요. 이제 우리가 아이의 다정한 관찰자가 되어줄 차례 아닐까요? 이은경 작가는 "아이들이 실은 부모의 다정한 관찰자"라고 말했다. 아이들도 부족하고 서툰 양육자의 모습을 따듯하게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종호 기자 관련기사 “욕망에 충실한 엄마가 낫다” 정신과 의사 상식파괴 육아팁 “너 눈을 왜 그렇게 치켜떠?” 사춘기 엄마의 치명적 실수 아이에게 집안일만 가르쳤다…부족 같은 이 가족이 사는 법

    2024.07.07 15:15

  • 남자가 여자보다 똑똑하다? 이렇게 하면 뇌가 바뀐다

    남자가 여자보다 똑똑하다? 이렇게 하면 뇌가 바뀐다 유료 전용

    남녀의 뇌가 다르다는 것은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이 둘의 차이를 설명하는 주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지 않아요.   지난 5월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 인스타그램 계정을 태그해서 올라온 글이다. 스튜디오B 두뇌발달 연구소를 운영하는 김보경 박사가 『아들의 뇌』를 쓴 곽윤정 세종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의 “아들과 딸의 뇌는 다르다”는 주장을 반박한 것. 그는 “성별에 따른 두뇌 차이가 입증하려면 생식 기능처럼 명확한 차이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남녀 간 차이보다 같은 성별 내에서 차이가 더 크다”고 말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의사결정 신경과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실리콘밸리의 컨설팅 회사에서 일한다. 자기 조절부터 중독 해결 방법까지 다양한 의사결정 과정을 연구하고 컨설팅한다. 아이의 두뇌 발달에 주목하게 된 건 두 아이를 키우며 주변에 잘못된 사실을 신화처럼 믿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다. 그는 “뇌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고 베일에 싸여 있는 부분이 많다”며 “신경과학자로서 그런 오해를 바로잡고 보다 나은 의사결정을 하도록 돕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스스로 해내는 아이의 비밀』, 『0~5세 골든 브레인 육아법』 등을 쓴 이유기도 하다. 지난달 26일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뇌에 관한 오해를 차근차근 짚어봤다.   ■  「 Intro. 뇌 발달을 둘러싼 오해 Part 1. 머리는 타고나는 걸까? Part 2. 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Part 3. 뇌를 공부할 때만 쓰는 걸까? 」   ━  🧠머리는 타고나는 걸까?    뇌에 관한 가장 큰 오해는 ‘머리는 타고난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김보경 박사는 “뇌는 유전과 환경이 조합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뇌의 역량이 정해진 채 태어난다는 견해가 우세했지만, 과학이 발달할수록 뇌는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타고난 뇌 못지않게 만들어지는 뇌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전과 환경 중 조금이라도 우세한 쪽이 있나요? 어느 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어요. 두 요인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경우의 수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도 그것이 발현될 환경을 만나지 못하면 영영 재능을 꽃피우지 못할 수도 있어요. 음악을 들어본 적도, 악기를 연주해본 적도 없다면 갑자기 재능이 튀어나올 순 없을 테니까요.     환경이 중요한 건가요?   그 역시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달라요. 여러 연구에 따르면 지능에 있어 유전보다 환경의 힘이 셉니다. 수학이나 과학 같은 특정 영역에 대한 흥미도 환경에 의해 결정되고요. 우리는 아이에게 유전자를 물려준다고 생각하지만, 환경도 함께 물려주거든요. 항상 클래식 음악을 틀어두는 집과 틈만 나면 책을 펼쳐 읽는 집의 분위기는 다를 수밖에 없죠. 아이의 관심사도 양육자를 따라가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조기 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나 봐요. ‘세 살이면 뇌의 80%가 완성된다’는 얘기도 많잖아요. 사교육 업계에서 ‘세 살 이전에 뭘 시켜야 한다’는 식으로 양육자의 불안을 자극하기도 하고요. 뇌의 발달 속도가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빠른 것은 맞아요. 신생아의 뇌는 성인 뇌 크기의 25% 정도인데 세 살 무렵이면 약 80% 크기로 자라거든요. 팔다리는 그만큼 자라지 않았으니 머리가 상대적으로 크죠. 하지만 그건 부피의 성장일 뿐 발달이 끝난 건 아니에요.   그럼 뇌는 언제까지 발달하나요? 정해진 시점은 없어요. 성인이 돼서도 계속 발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청소년기에도 기본 기능이 약해질 수 있으니까요. 뇌가 발달한다는 건 뇌 안에 있는 신경세포 중 일부인 뉴런이 계속 생겨나고 자라나는 걸 뜻하는데요. 약 860억 개의 뉴런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일하다 보면 뉴런 간 연결인 시냅스가 증가해요. 시냅스가 많아지면 보다 효율적으로 작업할 수 있죠. 반대로 과잉 생산된 뉴런과 시냅스를 솎아내기도 합니다. 일종의 가지치기를 하는 거예요.   애써 연결한 신경세포를 왜 끊는 거죠? 뇌가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써서요. 성인 기준 뇌의 무게는 몸무게의 2%에 불과하지만, 신체 에너지의 20%를 사용해요. 아이는 전체 에너지의 절반을 뇌가 쓰죠. 뇌 입장에서 불필요한 걸 제거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싶은 겁니다. 그렇다고 뉴런과 시냅스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어릴 때 배운 자전거를 10~20년 만에 타도 곧잘 탈 수 있는 것처럼요. 필요에 따라 다시 연결되기도 하죠. 어릴 때 발달하는 속도를 따라갈 순 없지만요.   머리가 크면 똑똑하다는 속설도 있잖아요. 사실인가요? 머리가 크면 똑똑하다고 믿던 시절도 있었죠. 남자가 여자보다 똑똑하다거나 인종 별로 지능이 다르다고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게 믿지 않죠. 남자의 경우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신경섬유 다발인 뇌량이 좁고 가늘어서 양쪽 정보 교환이 느리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이것도 사실이 아니에요. 뇌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뇌량이 작아 보일 순 있지만, 반대되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뇌량이 남녀의 공감 능력 차이를 만들진 않아요.   좌뇌는 이성, 우뇌는 감성을 담당한다고도 하잖아요. 이건 어떤가요? 뇌의 반쪽만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굳이 따지자면 언어 기능은 좌뇌가 더 많이 관여해요. 말하는 활동은 브로카 영역, 듣고 이해하는 활동은 베르니케 영역에서 담당하는데, 각각 좌뇌의 전두엽과 측두엽에 주로 위치해 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기능은 대칭적이고 정보처리 과정은 양쪽 교차로 이뤄져요. 왼손의 움직임은 우뇌, 오른손 움직임은 좌뇌에서 조절하는 식이죠. 이렇게 구조적인 부분은 정해진 거고 바뀌지 않아요. 뇌에 관해 떠도는 속설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게 대부분이에요. 김보경 스튜디오B 두뇌발달 연구소 박사가 뇌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의사결정 신경과학 전공으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  🧠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유전과 환경은 뇌 발달에 있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인자다. 하지만 이 둘은 확연히 다르다. 전자는 바꿀 수 없지만, 후자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김보경 박사는 “환경을 바꾸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습관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루아침에 바꿀 순 없지만 같은 행동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뇌 역시 서서히 바뀐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물길을 따라 졸졸 흐르던 물이 어느새 콸콸 흘러가는 것처럼 말이다.   습관이 뇌 속에 지름길을 만드는 건가요? 뇌는 효율화를 추구하거든요. 행동을 자동화하면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고요. 웬디 우드 서던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교수에 따르면 우리가 하는 행동의 43%는 습관에 의한 겁니다. 특히 일상 행동에선 습관의 비중이 80%가 넘어요. 습관이 없다면 매일 200개가 넘는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뭘 선택할지 고민해야 한다면 뇌는 과부하에 걸리고 말 거예요.   예를 좀 들어주실래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뭘 하나요? 별다른 생각 없이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에 가서 세수와 양치를 한다면 그건 습관이에요. 뭘 해야겠다는 의지 없이 자동으로 나오는 거니까요. 반면 양치질과 세수 중 어떤 걸 먼저 할까 고민한다면, 그건 완전한 습관이라고 할 순 없어요. 상황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요. 그만큼 에너지도 소비되겠죠.   아이들은 습관을 들이지 못해 에너지를 더 많이 쓰는군요. 맞아요. 그래서 원하는 게 있다면 습관을 설계하면 됩니다. 습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 ‘신호-행동-보상-반복’을 거치는데요. 새로운 습관을 만들 때는 순서를 바꾸는 게 좋아요. 어떤 행동을 할지 고르고 나서 앞뒤로 신호와 보상을 배치하는 거죠. 아침에 일어나면 양치하는 습관을 원한다면 “안녕히 주무셨어요?” 인사를 신호로 설정해요. 다음에 욕실에 들어가기 등 행동을 세분화해보세요. 양치질은 싫어해도 욕실까지 아빠와 달리기 시합을 하고, 이긴 사람이 치약 짜기 등 재밌는 요소를 추가하면 좀 더 쉽게 행동에 옮길 수 있어요. 끝나면 “이가 반짝반짝하다!”라고 감탄하며 하이파이브로 축하해주는 게 보상이 되는 거죠.   신호만으로 습관을 만들 수 있나요? 신호는 행동이 발사되는 지점을 알려주는 거예요. 엄마가 “양치질하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지시나 명령보다는 학교 종이 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신호가 안 통하면 신호를 바꾸는 것도 방법입니다. 건강한 아이가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지, 양치질이 목표가 될 순 없으니까요.   목표를 설정하면 어떤 효과가 있나요?  보다 쉽고 빠르게 습관을 만들 수 있어요. 건강한 아이가 목표면 ‘매일 한 시간 운동’이라는 행동에 집착할 필요가 없거든요. 매일이 아니라 주 3회만 해도 되고, 한 시간이 아니라 30분만 해도 되죠. 태권도가 안 맞으면 춤을 출 수도 있고요. 목표 지점으로 가는 게 중요한 거니까요. 잊지 말아야 할 건 반복이에요. 10분이라도 반복해서 몸에 익어야 20분, 30분으로 늘려나갈 수 있죠. 습관이란 게 시작도 쉽지 않지만, 지속하는 건 더 어려워요.   습관을 만드는 좋은 방법은 없나요? 습관 여러 개를 붙여서 루틴으로 만들면 편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과 세수를 하는 습관이 자리 잡았다면 거기에 옷 입기를 하나 더 붙이는 식으로요. 앞의 행동이 신호가 돼 다음 행동을 불러오는 효과가 있죠. 습관이나 루틴에 이름을 붙이는 방법도 좋아요. 저는 아이들이 아침에 등교를 준비하는 전 과정(양치질-옷 입기-머리 빗기)을 ‘모닝 체크 체크’라고 부르는데요. 일일이 쫓아다니며 양치질해라, 옷 입어라, 머리 빗어라 하는 대신 구호 한 번 외치고 끝낼 수 있어요.(웃음)   방학엔 애써 만든 습관도 무너지잖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방학 습관을 만들어 보세요. 저는 10세, 8세 남매를 키우고 있는데요. 방학 중인 이번 달엔 ‘물리적 거리 두기’를 강조해요. 서로 붙어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잦아졌거든요. 자신의 감정이 격해졌다는 신호를 느끼면 한 발짝씩 물러나 거리를 두는 거죠. 그렇게 떨어진 채로 끝날 때도 있고, 진정되면 대화로 풀 때도 있는데요. ‘싸우지 마’ ‘네가 양보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효과적이에요. 스스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으니까요. 김보경 박사는 “사람의 행동을 연구하는 과정이 흥미로워서 심리학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왜 이러한 의사결정을 하는지, 보다 나은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종호 기자  ━  🧠뇌를 공부할 때만 쓰는 걸까?   뇌는 지능뿐 아니라 신체 및 정서 발달과도 관련이 있다. 뇌는 신경계 전체와 연결돼 있고, 신경계는 몸 전체로 뻗어 나가기 때문이다. 김보경 박사는 “뇌는 몸 전체를 아우르는 신경계에서 정보를 받아 처리하고, 다시 신경의 끝으로 돌려보내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며 “머릿속에 홀로 떨어진 신비한 존재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뇌를 신경계 전체에 연결된 기관으로 이해하는 게 왜 중요하죠? 뇌는 생각하고 감정을 처리하고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에만 관련된 기관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고 잠들고 깨어나는 모든 것에 다 관련돼 있죠. 이 모든 활동이 뇌에 영향을 미치고, 또 뇌는 다시 이 활동에 관여해요. 그래서 잘 자고, 잘 먹고, 잘 노는 게 건강한 뇌를 만드는 데 중요합니다.   그중 성장기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이 있나요? 모두 중요하지만, 우선순위를 꼽자면 수면이에요. 하루 24시간 중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게 수면이잖아요. 그만큼 영향력 또한 크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2020)에 따르면 한국 학생은 평균 7시간18분 잔다고 해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8시간22분)보다 1시간가량 적죠. 한국 아이들은 적게 잘뿐더러 늦게 자요. 평균적으로 미국에서는 오후 8시25분에 잠자리에 드는데 한국에선 10시8분에야 잠이 들어요. 수면의 양과 질, 모두 좋지 않은 거죠.   수면이 부족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요? 뇌 활동 측면에서 보면 잠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노폐물을 없애는 거고, 두 번째는 기억을 강화하는 거예요. 불필요한 기억은 지우고, 필요한 기억만 남긴다는 얘긴데요. 그래서 잠이 부족하면 집중력뿐 아니라 기억력도 문제가 생겨요. 운동 부족도 수면과 관련이 있어요. 낮 동안 야외에서 충분히 신체 활동을 해야 밤에 잠을 잘 잘 텐데 주로 실내에 머물면서 움직이지 않으니 수면 압력이 쌓이지 않는 거죠. 충분히 못 자면 다음 날 신체 에너지 레벨이 낮아 운동을 하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요.   한국 아이들의 운동 부족은 어느 정도인가요? 국립환경과학원 조사(2016)에 따르면 10세 미만 한국 어린이 평균 야외 활동 시간은 34분이에요. 미국 아이들이 평균 2시간 야외 활동을 하는 것과 대조적이죠. 미국은 학교에서도 야외 활동을 장려해요. 저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역시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으로 나가게 해요. 15분이라도 뛰어놀라고요. 고학년이 되면 아침마다 운동장을 돌고요. 나이가 들수록 멜라토닌 분비가 늦어지기 때문에 빛으로 조절하는 거죠.   미국에서 야외 신체 활동을 더 강조하는 이유는 뭔가요? 미국에서도 체육 시간과 쉬는 시간을 줄인 이후 아동 비만 문제가 더 심각해졌거든요. 오바마 대통령 시절 영부인 미셸이 앞장서서 아동 비만 퇴치를 위해 ‘렛츠 무브’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고요. 공부 못지않게 운동도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죠. 운동이 뇌 성장을 돕는 단백질을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운동할 때 생성되는 뇌유래신경영양인자(BDNF)가 새로운 뉴런을 생성할뿐더러 기존 뉴런의 기능 향상 및 연결을 돕는다는 겁니다. 보통 운동을 하면 신체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는데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영역도 좋아졌어요.   인지 기능 향상에 특별히 좋은 운동이 있나요? 걷기나 달리기가 좋아요. 걸을 때마다 발바닥이 땅에 부딪히며 생기는 울림이 몸에 압력의 파동을 형성하고 그 결과 뇌로 흐르는 혈류량이 증가하거든요. 반면에 같은 유산소 운동이지만 땅에 발을 딛지 않는 자전거는 이런 효과가 없습니다. 김보경 박사는 “남녀 간 뇌 기능 차이가 존재한다면 시간이 흘러도 그 격차가 좁혀지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이공계에 진출하는 여성이 점차 많아지는 것을 보면 유전적 요인이 아닌 환경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란 설명이다. 김종호 기자 김보경 박사는 “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아이마다 성장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 육아가 한결 쉬워진다”고 말했다. 세 살부터 아이의 두뇌를 증명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보고 뛰어가는 시합에 출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양육자가 해야 할 일은 아이 스스로 뇌를 키워나갈 수 있는 습관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습관을 만드는 것은 도토리 한 알을 심는 것과 같아요. 지금은 작고 보잘것없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멋진 상수리나무가 되겠죠. 잘 만든 습관 하나가 아이 인생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을 거예요. 관련기사 [오밥뉴스]“아들 키우기 힘들어요” 엄마가 힘든 까닭, '뇌'에 있었다 3살부터 ‘공부머리’ 된다, 부모가 꺼낸 이 말의 마법 다이어트 왜 맨날 실패하지? 행동 전문가의 초간단 해결법

    2024.07.03 15:45

  • 영어는 기세, 귀 뚫려야 자신감…영알못 엄마가 영유보다 낫다

    영어는 기세, 귀 뚫려야 자신감…영알못 엄마가 영유보다 낫다 유료 전용

    영어는 기세예요. 자신감이 있어야 말이 나와요. 그러려면 귀가 뚫려야 합니다. 들려야 자신감도 생기죠.   ‘엄마표 영어’라는 말을 만들어낸 남수진 작가는 “일정량 이상 듣고 읽지 않으면 절대 말문은 트이지 않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단어를 암기하는 식으로 영어를 공부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는 “영어는 수학 공부하듯 파닉스 원리를 익히고, 단어를 외우고, 문제를 푸는 식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며 “모국어를 배울 때처럼 날마다 일정 분량을 듣고, 읽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새벽달’. 아이 영어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들어봤을 이 이름의 주인공이 바로 남수진 작가다. 중국어를 전공한 그는 자신이 배운 ‘3세 전후 아이의 언어 습득 방식’을 두 아들에게 실천해 보고 싶었다. 모국어와 영어, 중국어까지 3중 언어를 습득시키는 게 목표였다. 영어는 한마디도 못했던 그가 ‘엄마표 영어’에 뛰어든 이유다. 그는 두 아들에게 수학 가르치듯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영어에 노출되도록 환경을 만들었을 뿐이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원어민이 보고 듣는 것만큼’ 노출한다는 게 그것이었다. 그 결과 20대인 두 아들은 별다른 사교육 없이도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췄다.    자신의 노하우를 담아『엄마표 영어 20년 보고서』 『엄마표 영어 17년 실전노트』 등을 쓰기도 한 그는 “엄마표 영어를 할 수 있는 시기는 10세까지”라며 “딱 10년만 고생하면 손 뗄 수 있다”고 말한다. 대체 어떻게 영어에 노출하면, 그게 가능한 걸까? 지난달 7일 남 작가를 만나 물었다.      ■  「 Intro 영어유치원 다녀도 말문 안 트인 까닭 Part 1 듣기: 원어민만큼 들어야 말도 한다 Part 2 읽기: 모르는 단어는 유추하라 Part 3 말하기: 모국어부터 유창하게 」   ━  🔤 듣기: 원어민만큼 들어라   ‘어떤 언어든 많이 노출될수록 더 잘한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아이를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 이하 영유)에 보내고, 해외 연수를 보내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남 작가는 “영유에서 듣는 양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며 “특히 노출되는 주제가 얼마나 다양한지를 따져야 한다”고 했다.   영유에선 모든 소통을 영어로만 하잖아요. 그런데도 많지 않다고요? 주고받는 대화의 양도 적지만, 무엇보다 그 주제가 제한적이라는 게 문제예요. 학습이 목표라 그렇죠. 일정 기간 안에 끝내야 할 학습 분량이 있다 보니 베테랑 원어민 강사라도 같은 단어와 문장, 그리고 표현을 반복해서 쓸 수밖에 없어요. 더군다나 영어를 쓸 때 아이는 편안한 상태가 아니에요. 원어민 선생님도 낯선데, 영어로만 대화해야 하니 긴장될 수밖에요.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에서 영어가 귀에 들어올까요? 제가 집에서 영어를 가르친 건 그래서예요. 가장 편한 장소에서, 가장 편한 상태로 영어를 접하게 하고 싶었거든요.   집에서 영어를 어떻게 접하게 하면 될까요?    재미가 가장 중요합니다. 몸으로 놀면서 영어와 친해지면 좋죠. 두 가지 방법을 추천합니다. 하나는 엄마가 아이 말을 통역하는 겁니다.   아이가 한국어로 말하면, 영어로 바꿔주라는 건가요? 맞아요. 아이가 “물” 하고 말하면, “Water?”라고 되묻는 거죠.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익히면 ‘수용 언어’가 풍부해져요. 들으면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죠. 수용 언어가 충분히 쌓여야 말문이 터지거든요. 이때 재미를 더하면 효과가 커집니다. 특히 리듬에 민감한 생후 30개월 이전엔 반복적인 어구를 활용하면 좋아요. ‘코코코코 눈, 코코코코 입’ 하는 것처럼 ‘yummy yummy water, yummy yummy apple’ 하는 거죠.   하지만 모든 엄마가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니에요.   영어 동요와 영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세요. 3세 이전은 영어 동요가, 3세 이후는 영상물이 좋습니다. 특히 영상을 활용하면, 단어의 소리뿐 아니라 의미까지 유추할 수 있어서 매우 유용하죠. 다만 내용이 재밌어야 합니다. 그래야 알아듣지 못해도 관심을 갖고 끝까지 보거든요.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알아야 해요. 아이가 좋아하는 내용의 영상이라면 보고 또 보려고 할 겁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보고 듣다 보면 어느새 노래나 대사를 따라 할 겁니다.   아이가 영어 말고 한국어로 보여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와 함께 영상 시청 규칙을 정하고 지키게 하세요. 가장 중요한 건 시청 시간을 정하는 겁니다. 한 번 시청할 때 한 시간이 넘지 않게 제한하는 게 좋습니다. 영어 영상 한 편이 보통 20분 정도니까, 한 번 볼 때 최대 세 편 정도만 보게 합니다. 아이에게 장기간 영상을 시청할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알려주고, 약속 시간이 되면 스스로 끄도록 하세요. 또 영상은 영어로만 본다는 규칙도 필요합니다. 한국어 영상에 익숙해지면 영어 영상은 절대 안 봅니다. 만약 뒤늦게 영어 영상을 보기 시작한다면, 한국어와 영어를 똑같이 보다가 점차 한국어 시청 시간을 줄이세요. 중요한 건 날마다 일정한 양을 보고 듣는 겁니다. 거르면 안 됩니다. 6개월만 매일 보고 들으면 어느새 아이는 의미를 유추하게 돼요. 드디어 귀가 뚫린 겁니다. '새벽달'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는 남수진 작가는 '엄마표 영어' 창시자로 불린다. 그가 말하는 엄마표 영어란 영어 학습이 아니다. 날마다 일정 분량을 놀이처럼 꾸준히 듣고 읽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걸 말한다. 전민규 기자.  ━  🔤 읽기: 모르는 단어도 유추하게 하라     들리기 시작하면 읽고 싶어 한다. 영어뿐 아니라 모든 언어가 그렇다. 양육자들이 이 순간 찾는 게 파닉스다. 파닉스를 읽기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 작가는 “파닉스를 익힌다고 읽는 게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파닉스는 알파벳 기호와 소리값을 연결 짓는 원리다. 파닉스를 익히면, 글자를 보고 소리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소리를 낼 수 있다고 그 글자의 의미를 아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단어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게 진짜 읽기라는 얘기다. 남 작가는 “모국어에서 문해력이 중요하듯 영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파닉스를 알아야 읽을 수 있잖아요.   파닉스는 10세 전후면 자연스럽게 깨우칠 수 있어요. 그 무렵 자음과 모음을 구별하는 음소 인식력이 생기거든요. car[카]의 c를 b로 바꾸면 bar[바]로 소리가 바뀐다는 건 배우지 않아도 때가 되면 알 수 있죠. 읽기에 있어선 파닉스보다 중요한 게 있어요. 단어의 소리와 뜻을 연결하는 겁니다. car의 발음을 아는 것보다 의미(자동차)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의미를 익히려면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읽기보다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며 읽는 게 좋죠.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건가요? 이야기에 빠져들어야 해요. 그러려면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선정해야 합니다. 너무 쉬워도, 너무 어려워도 흥미가 떨어지거든요. 시작은 그림책이 좋습니다. 한 페이지에 단어 하나, 짧은 문장 하나만 있는 ‘리더스북’을 추천합니다. 리더스북은 문장 패턴이 반복됩니다. ‘I can run’ ‘I can swim’ ‘I can dance’처럼요. 아이는 run, swim, dance의 의미를 옆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이해합니다. 중요한 건 양육자가 직접 책을 읽어줘야 한다는 겁니다. 아이들은 청각이 예민하기 때문에 소리로 글자를 익힐 때 더 강렬하게 기억하거든요. 엄마의 목소리로 들으니 이야기에 더 몰입하고요.   책 읽어주는 거 중요하죠. 하지만 수준이 높아지면 읽어주기 부담스러워요. 아이가 글자를 읽을 수 있다면, 오디오북을 활용하세요. 청독(聽讀)이라고 하는데요. 귀로 들으면서 눈으로 글자를 따라가는 겁니다. 청독은 긴 글을 읽을 때 유용합니다. 리더스북을 떼고 나면 10여 개의 짧은 단편이 이어지는 ‘챕터북’으로, 또 장편소설·비문학 등 긴 서사가 담긴 책으로 수준을 계속 높여야 하는데요. 글이 길어질수록 끝까지 읽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챕터북부터는 오디오북의 도움을 받으세요. 수준 높은 책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을 수 있습니다.      영어 책 자체를 거부할 땐 어쩌죠?  아이의 관심사를 공략하세요. 평소 아이가 어떤 주제에 반응하는지 잘 살폈다가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의 책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양육자가 노력해도 아이가 영어 책을 거부하는 시기가 있습니다. 모국어가 완성되는 5~6세 무렵인데요. 이때는 과감히 영어 책을 덮으세요. 대신 한국어 책을 원없이 읽어주세요. 그러다가 슬쩍 한국어 책 사이에 영어 책을 끼워놓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책을 펼칠 겁니다. 이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절대 강제로 책을 읽히거나 내용을 확인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과감하게 영어 책을 덮으라니, 영어와 영영 멀어지면 어떡하나요? 강제로 하면 아이는 영어에 질립니다. 특히 고도의 지적 활동이 필요한 책 읽기는 슬럼프가 수시로 옵니다. 그때는 책을 잠시 덮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단, 듣기는 매일 해야 합니다. 영어책을 영상으로 만든 콘텐트는 유튜브에 많습니다. 하루 15~20분 귀로 책을 읽는다 생각하고 꾸준히 틀어주세요. 들으며 상상의 나래를 편 아이가 알아서 책을 찾아 읽는 날이 분명히 옵니다.  남 작가는 "읽기의 시작을 파닉스로 보는데, 그러면 문자만 읽을 줄 알지 해석을 못 한다"며 "내용을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하는 영어 문해력을 키우라"고 했다. 전민규 기자  ━  🔤 말하기: 모국어부터 유창하게     남 작가는 “듣기와 읽기가 충분히 이뤄졌다면, 말하기는 자신감에 달렸다”고 했다. 발음이 틀려도, 표현이 서툴러도 주눅 들지 않는 배짱이 있어야 말문을 연다는 거다. 그러려면 언제 어디서든 주저 없이 말해 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 남 작가가 “영어 말하기 이전에 모국어부터 유창하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말을 잘하는 아이가, 영어도 잘한다는 건가요?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 능숙하니까요. 언어는 결국 소통을 위한 도구예요. 한국어로 말하느냐, 영어로 말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결국 말문을 열려면 ‘말하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생각이 들까요? 어릴 때부터 엄마·아빠와 대화를 많이 한 아이는 말하고 싶어져요. 말을 하면 정서적 공감이 생긴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말하는 데 두려움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평소 가족 간에 대화를 해야 해요. 그래야 아이는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말해 볼 기회를 얻습니다.   아이와 대화할 때도 전략이 필요할까요? 논리적으로 말하려고 해보세요. 그러려면 평소 대화 거리를 모아두는 게 좋습니다. 저는 신문, 라디오, 다큐멘터리 등을 활용했어요. 뉴스를 스크랩하고, 제가 할 말을 정리했죠. 대화 주제는 아이 눈높이에서 고르세요. 그래야 할 말이 많습니다. “너희 반에도 엎드려 자는 친구 많니?”라고 물으면 아이는 신나서 얘기를 할 겁니다. 발언권을 얻은 셈이니까요. 여기에다 양육자의 생각을 보태다 보면 의견차를 알게 되고, 자기 생각을 다듬는 훈련을 할 수 있어요. 밥 먹으면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틈날 때마다 말을 꺼내세요. 수다쟁이가 되어야 말하는 게 편해집니다.   아무리 말을 잘해도, 영어로 말하는 건 달라요. 영어 표현도 알아야 하고요.  표현력은 일종의 기술이에요. 매일 일정량의 영어를 들으면 표현력을 기를 수 있어요. 물론 듣는 것만으론 부족합니다. 평소 말하기 연습을 해야 해요. 글을 소리 내어 따라 읽으며 문장 구조와 표현을 익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낭독이라고 하죠. 우리 뇌는 주어진 문장을 소리 내어 읽기만 해도 내가 말을 했다고 착각합니다. 연설문처럼 정돈된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 스스로 생각해서 말한다고 인지하죠.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그 문장이 입에 붙고, 그럼 생각을 표현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어요.   표현력을 키울 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시퀀스텔링 기법을 추천해요. 시퀀스텔링은 장면 하나하나를 이야기로 풀어 설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낭독을 통해 표현을 익혀도 어떤 상황을 영어로 3분 이상 묘사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럴 땐 장면을 쪼개서 연습하면 좋아요. 라면을 끓이는 상황을 예로 들어 볼게요. 냄비에 물을 붓고, 불을 켜는 등 8가지 장면으로 나누고, 각 장면을 영어로 만들어 외웁니다. 이렇게 하면 흐름이 있기 때문에 더 쉽게 익숙해집니다. 저는 시퀀스텔링 기법을 활용해 손씻기, 설거지 등 일상에서 자주 하는 10가지 상황을 풀어 문장으로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든 문장을 아이와 손을 씻을 때마다, 설거지를 할 때마다 반복해서 말했죠. 익숙해지면 문장을 더해 길이를 늘렸고요. 이렇게 하다 보면 자기 생각도 거침없이 영어로 말하는 순간이 옵니다.   남 작가에 따르면 말하기의 완성은 '자신감'에서 나온다. 평소 가족 간에 스스럼없이 대화하며 자기 생각을정리해 본 경험이 많을수록 영어 말하기도 능숙하다. 전민규 기자. 양육자의 뜻대로 순순히 따라오는 아이는 없다. 남 작가는 “아이가 하지 않으려고 할 때마다 화를 내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며 “아이가 싫어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아니라 양육자가 포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이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아이를 관찰하고 기록해 보세요. 아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눈에 보입니다. 게다가 그 기록은 내가 꽤 괜찮은 양육자라는 증거가 됩니다. 그럼 엄마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렇게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겁니다. 관련기사 영어 유치원 다니는데도…영어 안 느는 아이의 공통점 4자녀 ‘영어 영재’ 만든 비법 “모르는 단어 뜻 찾지마라” 4살 아이가 레벨 테스트 본다, 의대보다 비싼 ‘영유’의 세계

    2024.06.30 15:22

  • 당신 자식이 하위 20% 된다…‘대치동 영끌’ 반대하는 이유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⑦]

    당신 자식이 하위 20% 된다…‘대치동 영끌’ 반대하는 이유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⑦] 유료 전용

    학군지 간다고 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가는 거 아닙니다. 가서 성공할 수 있을지부터 따져보세요.   “학군지로 가기 전에 뭘 준비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심정섭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강남 대치동에도 하위 20%의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내 아이가 바로 그 하위 20%가 될 수도 있다. 그는 “양육자가 투자한 만큼 아이가 해낼 수 있을지 반드시 따져봐야 한다”며 “남들 가니까 불안한 마음에 가선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심 작가는 사실 대치동 영어강사 출신이다. 여러 지역에서 학부모 강의를 할 때마다 “학군지에 언제 가야 하느냐”는 질문을 하도 받아 아예 책을 낸 게 『대한민국 학군지도』였다. 이 책이 부동산 투자자 사이에서 화제가 되면서 ‘학군 전문가’가 됐지만, 사실 그는 『공부머리의 발견』 『우리 아이를 위한 입시지도』 같은 학습과 진학에 관한 책을 주로 썼다. 그래서 학군 전문가이면서도 “학군지에 반드시 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이사하고 싶다면, 먼저 세 가지를 체크하라”고 말한다. 그 세 가지가 대체 뭘까? 지난 11일 충북 증평에 사는 심 작가를 만나 직접 물었다.   ■  「 Intro 학군지 이사 전 체크할 세 가지 체크 포인트① 아이의 공부머리 체크 포인트② 아이의 회복탄력성 체크 포인트③ 부모의 경제력 」   ━  👩🏻‍🎓체크 포인트① 아이의 공부머리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공부머리다. 공부머리가 없으면 대치동에 가도, 매달 300만~400만원을 학원비로 써도 원하는 대학에 가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양육자의 대부분은 아이에게 공부머리가 있는지 모른다. 초등학교에서 시험이 없어지면서 아이의 객관적인 실력을 확인할 방법이 사실상 없어진 탓이다. 심 작가는 “이사하려는 학군지 학교의 시험지를 구해 풀게 하라”고 했다.   이사하려는 지역 학교의 시험 문제는 왜요? 이 방법의 포인트는 아이 학년보다 한두 학년 위의 시험 문제를 풀게 하는 겁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권하는 방법이에요. 만약 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라면, 이사하려는 학군지 중학교 1학년 시험문제를 풀게 하세요. 과목은 국어가 좋아요. 선행학습을 하지 않았어도 공부머리가 있다면 한두 학년 위의 국어 교과는 이해할 수 있거든요. 만약 선행학습을 했다면, 수학이나 영어 과목도 가능합니다. 시험을 볼 땐 두 번 치러야 해요.   같은 시험지를 두 번 풀게 하라는 건가요? 맞습니다. 처음에는 실제 시험처럼 정해진 시간 안에 풀게 하세요. 시험이 끝나면 채점은 하지 말고 아이를 충분히 쉬게 하세요. 그리고 같은 시험지로 두 번째 시험을 봅니다. 이번엔 시간 제약 없이 오픈북 시험 형태로요. 교재나 참고서·인터넷 같은 걸 찾아가면서 문제를 풀게 하는 거죠. 첫 번째 시험 점수가 현재 아이의 실력이라면, 두 번째 시험 점수는 아이가 공부해서 끌어올릴 수 있는 점수예요. 두 번째 시험에서 80점 이상을 받았다면, 이사해도 괜찮아요. 공부머리가 있는 아이거든요.    오픈북 시험인데, 어지간하면 80점을 넘지 않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대치동 편입학원에서 일할 때 이렇게 테스트를 했었어요. 아이가 가고 싶은 대학의 편입 기출문제를 가지고요. 그런데 오픈북 시험에서도 60점, 70점을 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개념에 대한 이해나 문제 응용력이 없는 겁니다. 공부머리죠. 이런 학생은 아무리 오랜 시간 노력해도 결국 편입에 성공하지 못하더군요.   이 방법은 학군지로 갈지, 말지를 결정할 때 외에도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 요즘은 고등학교를 선택해서 지원하잖아요. 이때도 해보세요.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고등학교의 1학년 중간고사 시험지를 가지고요. 테스트 결과 얻은 두 개의 점수를 보고, 아이가 이 학교에 가서 어느 정도 내신을 받을지 가늠해 보는 겁니다. 두 학교를 놓고 고민 중이라면, 이 테스트에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온 학교를 선택하는 게 좋아요. 적어도 상위 20~30%에는 들 수 있는 학교에 가야 해요. 특목·자사고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야 고등학교 때 큰 좌절 없이 공부할 수 있어요. 그런데 사실 이 테스트를 하자고 했을 때 아이가 어떤 반응을 하는지만 봐도 공부머리가 있는지 알 수 있긴 해요.   어떻게요? 자기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 눈을 반짝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배우지도 않은 걸 갖고, 두 번이나 시험을 봐야 하느냐”고 따져 묻는 아이도 있어요. 전자라면 공부머리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아이가 후자라면, 무리해서 학군지로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학군지에 가서 쓰게 될 주거비와 학원비를 아꼈다가 나중에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지원하는 게 낫죠. 심정섭 작가는 "학군지에 가기 전에 아이에게 공부머리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공부머리가 없는 애들은 학군지에 일찍 들어가도 안 되고, 공부머리가 있는 애들은 늦게 출발해도 충분히 만회할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  🧘🏻‍♂체크 포인트② 아이의 회복탄력성   공부머리를 확인했다면, 이번엔 아이가 얼마나 강한 ‘멘털’을 가졌는지 확인할 차례다. 학군지 양육자들이 장점으로 꼽는 “면학 분위기가 좋다”는 말은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잘하는 아이가 많은 동네가 학군지다. 고등학교는 내신이 상대평가라 좋은 성적 받기가 더 어렵다. 심 작가가 “아이의 회복탄력성을 반드시 점검하라”고 말하는 이유다.   회복탄력성요?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이 회복탄력성입니다. 감정과 충동을 잘 통제하는 자기조절력, 주변 사람과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대인관계력, 긍정적 정서를 유발하는 긍정성으로 구성돼 있죠. 고등학생쯤 되면 학군지엔 날고 기는 학생들이 모입니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어요. 비(非)학군지에서 내신 1~2등급 받을 수 있는 아이도 학군지에서는 3~4등급 받기도 쉽지 않습니다. 1점 차이로 등급이 바뀌기도 하니까요. 공부를 제법 잘하던 아이는 이런 상황에서 더 큰 좌절감을 느껴요. 이 좌절감을 딛고 일어나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너진 채로 모든 것을 놔버린다면요? 잘하려고 학군지에 갔는데, 오히려 학군지에 가서 실패한 사례가 되고 말겠죠.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의 기질과 성향을 잘 살펴야 해요. 자신감 넘치는 성향이 아니거나 경쟁을 즐기지 않는다면 신중해야 합니다. 만약 아이 성향을 잘 모르겠다면 회복탄력성 검사를 해보세요. 김주환 연세대 교수가 개발한 한국형 회복탄력성지수 검사(KRQ-53)를 추천합니다. 김 교수의 책 『회복탄력성』에도 수록돼 있어요. 총 53개 문항으로, 265점이 만점입니다. 대한민국 평균은 195점이에요. 201점 이상이면 상위 20%, 171점 이하면 하위 20%죠. 점수가 높을수록 회복탄력성이 높은 겁니다. 아이가 직접 검사하기 어렵다면, 부모가 관찰한 내용을 기반으로 검사해도 됩니다. 가능하면 매년 한두 번 정도 검사해 보시고요.   1년에 한두 번씩요? 회복탄력성이 어떻게 향상되는지 살펴보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으니까요. 회복탄력성도 노력하면 기를 수 있거든요. 사실 학군지에 사는 부모들의 회복탄력성은 대한민국 평균 이상인데, 아이들은 평균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아요. 학군지엔 워낙 잘하는 아이가 많고, 학교·학원에서 점수로 비교 당하니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 거죠. 개인적으로 아이가 공부를 잘하더라도 학군지에 너무 일찍 들어가는 건 별로 권하고 싶지 않아요. 비학군지에서 1등도 해 보고, ‘공부 자존감’을 갖춘 뒤에 진입해도 늦지 않거든요. 박정민 디자이너 회복탄력성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의외의 답변이겠지만, 충분한 수면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감정을 주관하는 편도체가 안정되고, 자기조절력을 관장하는 전전두엽이 활성화되거든요. 세계적인 수면과학자이자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를 쓴 매슈 워커가 실험으로 증명했어요. 수면 부족 그룹이 충분히 잔 그룹보다 학습능력은 40% 떨어지고, 편도체는 60% 이상 활성화됐거든요.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지역에선 등교 시간을 1시간 늦췄더니 상위 10% 학생들의 미국 수학능력시험(SAT) 점수가 200점 이상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수면의 질을 높이기 위해 잠자기 4시간 전에는 음식물 섭취를 줄이고, 2시간 전에는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해야 합니다. 가공식품은 가능하면 먹지 않고, 30분 이상 빠르게 걷는 식으로 꾸준히 운동해야 하고요.   이 외에 아이의 성향을 알 수 있는 검사가 있을까요? 다중지능 검사와 DISC 검사도 추천합니다. 다중지능 검사는 교육부 커리어넷에 있는 중·고등학생용 진로심리 검사를 활용하세요. 신체운동, 공간지각력, 창의력, 언어능력, 수리·논리력 등 11가지 능력 중에 어디에 강점이 있는지 살펴볼 수 있죠. DISC 검사는 사람의 성격과 행동유형에 따라 네 가지로 나뉩니다. D(Dominant, 주도형), I(Influential, 사교형), S(Steady, 안정형), C(Conscientious, 신중형)죠. 이 중 D(주도) 성향이 높으면 승부욕이 강하기 때문에 학군지에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어요. 하지만 I(사교)나 S(안정) 성향이 높은 학생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눈치를 보느라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죠. 또 S(안정)나 C(신중) 성향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좀 부족합니다. 학군지에 가거나 경쟁이 치열한 학교로 진학할 경우 선행학습을 충분히 해 두는 게 필요해요. 심정섭 작가는 "대치나 목동처럼 우수한 학생이 많이 모이는 학군지는 경쟁이 치열하다"며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을 키워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  💸체크 포인트③ 부모의 경제력   학군지에 갈 때 고려할 마지막 요소는 부모의 경제력이다. 학군지는 어디나 집값이 만만치 않다. 대치동 아파트는 전셋값이 최소 6억원 정도 한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지만 그 돈으로 갈 수 있는 아파트는 지하주차장이 없고 녹물도 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가 아이의 학령기에 맞춰 학군지로 이주한다. “기왕 갈 거라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을 해서 매매하라”고 조언하는 사람도 많다. 타지역에 비해 집값이 더 많이 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심 작가는 “그렇게까지 무리하는 건 가족 모두 불행해지는 지름길”이라고 경고했다.   가족 모두 불행해진다니, 그렇게까지 표현할 일인가요? 답하기 전에 제가 질문 하나 할게요. 가장 좋은 학군지가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명실상부 전국 1등 학군은 대치동이긴 하죠. 그럼 다시 물어볼게요. 자산이 2억원밖에 안 돼도 무리해서 대치동에 가야 할까요? 4억원 정도를 대출받아서요?   아이가 공부머리가 있다면, 그 정도 투자는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통계청에 따르면 남성의 월평균 소득은 412만원, 여성은 268만원(2022년)이에요. 이를 토대로 부부 합산 소득이 700만원 정도 된다고 해보죠. 4억원을 전세대출 받으면 매달 135만원씩을 이자로 내야 해요. 아이가 중·고등학생이라면 한 명 당 매월 학원비가 150만~200만원이 들어가요. 학군지 아이들은 대부분 국·영·수를 기본으로 과학 같은 과목을 추가로 배우니까요. 아이가 둘이면 300만~400만원 정도가 들어가겠죠. 여기에 생활비가 또 200만~300만원 듭니다. 매달 800만원 넘게 쓴다는 계산이 나와요. 마이너스죠. 아이가 대학에 잘 가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요? 부부는 노후 준비도 못하는 상황이겠죠. 모두가 불행해질 수밖에 없어요. 이게 맞는 걸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학군지엔 그 지역 주거비와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을 때 가는 겁니다. 아이가 공부머리가 있고 회복탄력성도 좋은데 부모 역시 학군지에 살면서 쓰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다면 가도 됩니다. 제가 기준도 확실하게 알려드릴게요. 주거비와 생활비·학원비를 다 쓰고도 월 200만~300만원 정도 남는지가 기준입니다. 부부의 노후자금과 대학 진학 후 자녀 지원금 정도는 저축할 수 있어야 해요.   노후자금은 이해가 가요. 그런데 대학 진학 후 자녀 지원금은 왜 필요하죠? 대학이 끝이 아니니까요. 대학 하나 잘 보내려고 학군지 가고, 없는 돈 아껴서 학원 보내는 거 아니잖아요. 결국 최종 목표는 취업 아닌가요? 유학 가면 구글 같은 기업에 취업할 수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하실 건가요? “대학 보내느라 돈 다 썼으니, 네가 알아서 해라” 하실 건가요? 길게 봐야 해요.   심 작가는 “친구 따라 강남 가듯 학군지에 갈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공부머리가 없다면 학군지에 일찍 가도 의미가 없고, 공부머리가 있다면 늦게 가도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비학군지에도 길은 많다”고도 했다. 비학군지 일반고에서 전교 1등을 해서 지역균형선발로 서울대에 진학할 수도 있고, 의대 지역인재전형을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학군지만이 유일한 답이 아닙니다. 아이 공부 역량과 부모의 경제력이 적절히 맞아 떨어지는 곳이 가장 좋은 학군지라는 걸 잊지 마세요. 심정섭 작가는 "아이의 상황이나 가정환경에 대한 구체적인 판단 없이 학군지에 가는 것은 위험하다"며 "주거비용이나 사교육비를 쓰고도 200만원 정도 남을 때 학군지 이사를 고려하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 서울 5대 학군 대해부 시리즈 「 ①“대치권에서만 서울대 233명 갔다” 그들이 ‘5대 학군’ 사는 이유 ②“담배 피워도 학원은 간다” 서울대 진학 1위 대치의 비밀 ③평당 1억 반포 학군 뚫었다, 그 엄마가 쓴 ‘변두리’ 전략 ④“대치동 갈 바엔 저축한다” 서울대 고집 않는 잠실엄마 ⑤“뒷단지·비단지 갈아타라” 목동 엄마 될 마지막 기회 ⑥왕복 3시간 교통지옥 택했다, 그 엄마 유혹한 ‘중계동 은사’ ⑦당신 자식이 하위 20% 된다…‘대치동 영끌’ 반대하는 이유 」 관련기사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① 초등생이 ‘고교 수학’ 끝낸다…입학시험에 5000명 몰린 학원 ②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③ 수학은 동네 학원 보내라…단, 영어는 대치동뿐이다? ④ ‘봉준호 아바타’ 여기 다녔다…원어민 뺨치는 영어실력 비법 ⑤ “국어는 집 팔아도 안된다” 대치동에 이런 말 도는 이유 ⑥ “집 안 팔고 국어 키울 수 있다”…‘1년 대기’ 논술화랑이 푼 비밀 ⑦

    2024.06.26 15:40

  • 왕복 3시간 교통지옥 택했다, 그 엄마 유혹한 ‘중계동 은사’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⑥]

    왕복 3시간 교통지옥 택했다, 그 엄마 유혹한 ‘중계동 은사’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⑥] 유료 전용

    박정민 디자이너 대치동·목동 못 가면 중계동밖에 없죠. 지난 12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에서 만난 김미주 마들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내 집 갖고 아이 교육 하는 데 이만 한 가성비 나오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중계동에서 초·중·고교를 나온 그 역시 결혼 후 다른 곳에서 살다 두 아이를 낳고 돌아왔다. 그는 “특히 은행사거리 학원가에 한번 발을 들이면 못 나간다”고 했다.   중계동은 ‘강북의 대치동’ ‘소(小)치동’이라고 불린다. 중계동 내 학원·교습소는 530개로, 서울 5대 학군지 중 대치·목동 다음으로 많다. 서울대 진학 100위권 고교도 3~5곳 있다. 이런 이유로 중계동은 성북·강북·동대문구 등 인근 강북권뿐 아니라 의정부·구리·별내 경기 북부의 교육 수요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오직 학군 프리미엄으로 서울 북동쪽 외곽 입지와 불편한 교통을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중계동의 위상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는 이 지역 양육자와 부동산 중개인, 학원 관계자 11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들이 말하는 중계동만의 매력과 강점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명성이 예전만 하지 못한 것은 왜일까?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자 양육자 전원, 일부 중개인과 학원 관계자 이름은 가명으로 처리했다.   ■  「 Intro 가성비 학군지, 중계 학군 Part 1 강북 중산층의 유일한 학군 대안 Part 2 ‘학교, 학원 걸어서 5분’의 학주근접 Part 3 노원구에 없는 이것, 최상위권이 빠진다 」   ━  🏠 강북 중산층의 학군 대안     강북 중산층의 유일한 학군지 대안이다. 『대한민국 학군 지도』를 쓴 심정섭 작가는 중계동을 이렇게 말했다. 서울 5대 학군지 가운데 30평대 아파트에 자가로 살면서 자녀의 입시 성과도 기대해 볼 만한 곳은 중계동뿐이라는 얘기다.     대입 실적을 보면 강남3구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강북에선 중계동만이 나홀로 선전하고 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서울대 합격생을 많이 배출한 전국 일반고·광역 자사고 100위권에 중계동 일반고가 매해 이름을 올렸다. 해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진고·서라벌고·재현고·대진여고·영신여고 등이 매해 각각 4~10명의 합격생을 배출했다. 심 작가는“강북에선 이 정도 입시 결과를 꾸준히 내는 명문고가 몰려 있는 동네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타 학군지와 비교하면 내 집 마련 비용이 가장 저렴하기도 하다. 학원가에 인접한 중계1동 청구3차·건영3차 등의 집값(전용면적 84 m²)은 9억~11억원대다. 대치·반포·잠실 학군 같은 면적 아파트가 20억원을 넘고, 목동에서도 가장 저렴한 11단지 전용면적 75m² 아파트가 13억원대다. 다른 학군지에 비해 집값이 싼 데엔 이유가 있다. 중계동 양육자들이 꼽는 가장 큰 단점은 입지와 교통이다. 중구 을지로로 출퇴근하는 워킹맘 전지연(40)씨는 “서울 주요 업무지구 어디든 기본 1시간은 넘게 걸린다”고 했다. 게다가 중계동 내 선호 지역인 학원가 주변은 인근 지하철역까지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다. 매일 최소 왕복 2~3시간의 장거리 출퇴근은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동네 면학 분위기와 학원 인프라는 직주근접(職住近接)을 포기할 만큼 만족스럽다고 양육자들은 입을 모았다.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 자녀를 둔 배선주(44)씨는 8년 전 종로구 혜화동에서 이사했다. “대치와 비슷한 학원가,면학 분위기를 누리면서도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그는 30평대 아파트에 자가로 살면서 두 아이 모두 사립초등학교(상명초)에 보내고, 학원비로 매달 180만원을 쓰고 있다. 그는 “애초 중계로 올 때 입지와 교통은 포기했다”며 “집값이 오를 거란 기대도 별로 없었다”고 덧붙였다. 3년 전 중랑구에서 이사 온 정민석(42)씨는 평일엔 주 3회 경기도 분당까지 출퇴근한다. 왕복 3시간 넘는 거리다. 40평대 자가 아파트에서 전업주부 아내, 초등학생 두 자녀와 사는 그는 “나만 좀 고생하면 모두가 만족하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일상생활이나 학습적인 면에서 부모의 관리를 받는 아이들이 많은 것 같고, 중학교도 주변 어딜 가도 괜찮더라”는 것이다.   집값이 크게 뛰지 않는 건 교통 때문만은 아니다. 중계동 아파트의 평균 연식은 27년으로, 재건축 추진 가능 연한(30년 이상)에 못 미친다. 재건축 기대감이 집값을 끌어올릴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자기 집을 가지고 전세로 중계동에 자리 잡는 이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6학년, 3학년 두 아이를 키우는 임수경(45)씨가 그런 경우다. 강동구 고덕동에 자기 집이 있는 그는 “재테크 관점에서 중계동은 좋은 선택지는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그는 친정이 있는 노원구 공릉동에 살다 4개월 전 전세로 중계동에 왔다. 첫째의 중학교 배정을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공릉동에 살 때도 아이들은 중계동으로 학교(사립초)와 학원에 다녔다”며 “중계동으로 오면 출근 시간이 20분 늘어나지만 결국 이사를 결정했다”고 했다. 중계동 학원가 주변의 전세가는 6억~7억원대에 형성돼 있다. 지하철 7호선 중계역 인근(중계2·3동)이나 4호선 상계역 부근(중계4동), 불암산과 가까운 중계 본동 지역은 5억원을 넘지 않는다.   중계동의 대장 아파트로 꼽히는 청구3차 아파트의 전경. 학교(을지초, 을지중), 학원가와 접해 있어 인기가 많다. 김종호 기자  ━  🎒학교도, 학원도 걸어서 5분   양육자들이 꼽는 중계동의 가장 큰 장점은 ‘은행사거리’로 불리는 학원가다. 주변 곳곳에 은행이 들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치와 목동 학원가가 여러 곳에 분산돼 있다면, 중계 학원가는 은행사거리에 밀집해 있다는 게 강점이다. 사거리를 중심으로 반경 300여m에 즐비한 8층 규모 상가 건물 28개에 학원, 스터디 카페가 빼곡하다.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우는 김준희(45)씨는 “국·영·수 학원이 한 건물에 다 있고, 학원을 옮겨도 옆 건물”이라며 “대치동 유명 학원부터 중계동 토착 학원, 소규모 공부방까지 없는 게 없다”고 했다. 중계동의 대표 학원가인 은행 사거리의 전경. 상가 건물 대부분이 학원이다. 김종호 기자 종합학원으로는 세일학원, 토피아어학원, 학림학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국어학원은 학림, 국풍2000 등이, 영어학원은 심슨어학원, DYB최선어학원 등이 유명하다. 수학은 알로곤, GMS, 조재필수학학원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입시 컨설턴트이기도 한 신진상 작가는 “중계동은 전통적으로 외고를 지향하는 문과 상위권 학생이 많아 영어와 국어 학원이 강세”라며 “수학 역시 중계동 자체 브랜드 학원이 인기”라고 말했다. 은행사거리 학원가는 인근 강북권과 경기 북부 사교육 수요도 끌어들인다. 중계동에서 공인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종민 대표는 “지하철역으로 가는 버스는 학원 끝나고 집으로 가는 학생들이 많아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말했다.     은행사거리 학원가가 빛을 발하는 건 바로 뒤편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와 학교 덕분이다. 학원가 반경 800m 안에 있는 초·중·고교만 총 13곳, 학원가 바로 뒤에 길 하나를 두고 자리 잡은 아파트가 총 5000여 세대다. 주거지와 학교, 학원이 다 붙어 있는 학주근접(學住近接)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영어학원 스코어퍼펙트 전찬홍 원장은 “문제집 안 가져오면 아이가 집에 잠깐 다녀온다”며 “걸어서 5분도 안 걸리니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학교가 밀집해 있다 보니 학교 보건법이 제한하는 유해 시설 역시 거의 없다. 양육자들은 “공부 스트레스 쌓이면 PC방 가고 코인 노래방 가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은행사거리 주변엔 이런 이유로 30·40대 학부모들이 몰린다. 학원가가 속한 중계 1동의 평균 연령은 39.7세로, 노원구(평균 45.2세) 내에서 가장 젊다. 아파트값도 노원구에서 가장 비싸다. 특히 초등학생 저학년 자녀를 둔 맞벌이 가정의 만족도가 크다. 초등학교 3학년, 다섯 살 자녀를 둔 공무원 유지영(39)씨는 “걸어서 등하교와 등하원이 가능해 워킹맘에겐 최적의 동네”라며 “중계동엔 학원이 많아 선택의 폭이 넓고 유해 시설도 없어 초등학생이 혼자 다녀도 안심할 수 있다”고 했다. 변호사인 전지연씨도 “워킹맘이 도우미 없이 아이 키울 수 있는 조건”이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전씨의 첫째는 하교 후 지역아이키움센터를 이용하면서 학원을 혼자서 걸어 다닌다.   중계동 양육자 중에서도 초등학생 저학년 자녀를 둔 워킹맘들의 만족도가 크다. 학교, 학원 모두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다. 김종호 기자 중계동에선 학교도 학원가와 가까운 곳이 인기다. 초등학교는 을지초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1학년은 7개 반이지만, 5학년은 10개 반(총 262명), 6학년은 14개 반(총 364명)에 달한다. 고학년이 되면 중학교 배정을 염두에 둔 전학생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을지초 학부모인 유지영씨는 “아이 친구 부모 중에 의사나 변호사, 회계사 같은 전문직뿐 아니라 교수, 대기업 직장인이 꽤 많아서 놀랐다”며 “영재교육원 준비를 하는 아이도 여럿일 정도로 부모의 교육열이나 학력 수준이 높다”고 말했다.     중학교는 을지중·상명중·불암중 등이 선호 학교로 꼽힌다. 이들 학교는 모두 은행사거리 기준으로 도보 10분여 거리에 위치해 있는 데다 특목·자사고로 진학 하는 학생 비율도 높다. 졸업생 중 과학고·영재학교·외고·국제고·자사고에 진학한 비율이 을지중은 20%, 상명중은 18.1%다. 첫째가 초등학교 6학년인 임수경씨는 “주변 중학교 모두 면학 분위기가 좋아서 착실히 공부하면 목표로 하는 고교 진학을 준비하기에 좋다”고 말했다. 노원구 중계동 을지초등학교의 전경. 아파트 단지와 접해 있고, 은행 사거리 학원가와도 가까워 학부모들의 선호도가 높다. 김종호 기자  ━  🏠 ‘이것’ 없어 최상위권 빠진다   중계동 학군의 저력은 일반고, 그중에서도 남고에 있다는 게 정설이다. 대진고·서라벌고·재현고가 특히 유명하다. 이들 학교는 서울대를 많이 보내는 전국 100위권 고교 명단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서울대 등록자가 대진고에서는 2018년 11명, 서라벌고에서는 2016년 10명 나왔다. 재현고도 2015년과 2018년 각각 8명을 배출했다. 하지만 최근 이들 학교의 입시 성과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실제 10년 전엔 서울대 등록자 기준 전국 100위권 고교에 세 학교 모두 이름을 올렸고, 총 합격자수도 23명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엔 서라벌고(5명)만 순위권에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중계동 일대 학원 관계자와 입시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한 원인은 바로 자사고의 부재다. 노원구에 자사고가 없다 보니 최상위권 학생들이 인근 도봉구에 위치한 자사고(선덕고)로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중계동에서 6년간 입시컨설팅 학원을 운영 중인 이병수 원장은 “노원구 최상위권 남학생은 선덕고를 1순위로 지망한다”며 “인재가 선덕고로 몰리다 보니 일반고의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일반고 입결이 위축된 것과 대조적으로 선덕고는 괄목할 만한 입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는 선덕고에서만 23명의 서울대 등록생이 나왔다. 세화고, 휘문고 등 강남권 자사고들에 이어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서울대를 많이 보냈다. 의대·치대·한의대·약대 계열 합격생도 20명이 넘었다.   중계동에선 최상위권 학생들이 도봉구에 있는 자사고인 선덕고로 많이 진학하는 추세다. 사진은 중계동에서 학원 건물 안에서 학원에 가기 위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모습. 김종호 기자 여학생이 갈 만한 일반고가 많지 않다는 것도 중계 학군의 약점이다. 지난해 서울대에 10명을 보낸 대진여고 외엔 마땅한 학교가 없기 때문이다. 입시 컨설턴트인 김정년 상상발전소 평가이사는 “여학생은 남학생에 비해 갈 만한 자사고가 없는 건 어느 동네나 마찬가지”라면서도 “강남에는 숙명·은광·진선여고 같은 명문 여고가 꽤 있지만 중계동엔 존재감 있는 여고가 별로 없다”고 했다. 게다가 대일외고(성북구), 서울외고(도봉구)가 멀지 않다 보니 외고로 진학하는 여학생이 많다. 실제 2022년 노원구에서 외고나 국제고에 진학한 학생은 172명으로,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가운데 가장 많았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양육자들은 “중계동 학원가가 최상위권 학생을 수용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특히 수학이나 과학, 논술에 강점인 학원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전찬홍 원장은 “최상위반을 운영하려면 강사에 투자해야 하는데, 중계동엔 최상위권이 그만큼 두텁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코앞에 학원가를 두고 1시간 넘는 대치동 학원가로 가는 건 그래서다. 배선주씨는 “중2인 첫째 친구가 과학고·영재고를 지망하는데, 영어·수학·과학·논술 등 사실상 모든 과목을 대치동 학원에 가서 배운다”고 했다. 유지영씨는 “서울 강북, 경기 북부 최상위권은 중계 학원가로 모인다면, 중계의 최상위권은 대치로 간다”고 말했다.    이런 약점 때문에 다른 학군지를 고려하는 양육자들은 없을까? 임수경씨는 “경제적 여건이 되거나 아이가 정말 뛰어나다면 대치동도 고민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중계동이 낫다”고 했다. 그는 “중계동에 만족한다”고 덧붙였다.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김준희씨도 “고등학생이 갈 만한 학원이 적다지만, 아직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않는다”며 “중계만 한 거주 여건을 가진 동네는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인 이종민 대표는 “중계동에서 한 10년 착실히 교육 받으면 상위 10개 대학 가는 데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이곳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중계동 학원가 은행 사거리에서 학생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저출산, 코로나19 등이 겹치며 중계동 학원가도 타격을 입은 분위기다. 김종호 기자 hello! Parents는 지금까지 서울 5대 학군지를 집중 분석했다. 대치·반포·잠실·목동·중계의 지역별 장점과 특색, 한계를 들어봤다. 그렇다면 이들 학군지에 진입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답을 듣기 위해 학군 전문가로 유명한 『대한민국 학군 지도』저자 심정섭 작가를 찾아갔다.   ■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시리즈 「 ①“대치권에서만 서울대 233명 갔다” 그들이 ‘5대 학군’ 사는 이유 ②“담배 피워도 학원은 간다” 서울대 진학 1위 대치의 비밀   ③평당 1억 반포 학군 뚫었다, 그 엄마가 쓴 ‘변두리’ 전략 ④“대치동 갈 바엔 저축한다” 서울대 고집 않는 잠실엄마 ⑤“뒷단지·비단지 갈아타라” 목동 엄마 될 마지막 기회   ⑥왕복 3시간 교통지옥 택했다, 그 엄마 유혹한 ‘중계동 은사’   ⑦“학군지 가면 SKY 간다? 이것 없으면 꽝” 이사 전 체크리스크        」 관련기사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① 초등생이 ‘고교 수학’ 끝낸다…입학시험에 5000명 몰린 학원 ②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③ 수학은 동네 학원 보내라…단, 영어는 대치동뿐이다? ④ ‘봉준호 아바타’ 여기 다녔다…원어민 뺨치는 영어실력 비법 ⑤ “국어는 집 팔아도 안된다” 대치동에 이런 말 도는 이유 ⑥ “집 안 팔고 국어 키울 수 있다”…‘1년 대기’ 논술화랑이 푼 비밀 ⑦

    2024.06.24 15:21

  • “뒷단지·비단지 갈아타라” 목동 엄마 될 마지막 기회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⑤]

    “뒷단지·비단지 갈아타라” 목동 엄마 될 마지막 기회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⑤] 유료 전용

    박정민 디자이너 아이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오는 게 낫죠.   서울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11단지에 사는 배가영(45)씨는 “목동 거주를 추천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 때 ‘막차’ 타듯 이사한 그는 이사 후 ‘왜 이제야 왔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아이가 어릴수록 누릴 수 있는 것이 많은데, 재건축을 앞두고 있어 시간이 흐를수록 집값은 오르기” 때문이다.   서울 서부권에 사는 양육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목동행’을 고민한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강남)까지 갈 엄두는 나지 않지만, 목동이라면 가능할 것 같은 마음에서다. 하지만 정작 이사를 하려면, 셈법이 꽤 복잡하다. 1980년대 입주한 대규모 아파트의 단지별 특성이 제각각인 데다 아이의 연령·성별·기질에 따라 최적의 거주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목동에 가야 할까? 언제 어디로 가야 효과적일까? 정말 대치동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걸까?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는 이런 궁금증에 답하기 위해 이 지역에 사는 양육자와 부동산 및 학원 관계자 13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은 거주지, 학군지, 투자지로서 장단점을 세세하게 들려줬다.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담고자 양육자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  「 Intro. 서부의 자존심, 목동 학군 Part 1. 아직 투자할 기회 남아 있다 Part 2. 주상복합이 바꾼 명문 학군 Part 3. 도보 가능 학원가만 3곳 」   ━  🏘️Part1. 아직 투자할 기회 남아 있다   목동 아파트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단지’다. 1985~88년 입주한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1~14단지가 무려 2만6600여 세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행정구역상 1~7단지는 목동, 8~14단지는 신정동이지만 같은 목동 생활권으로 묶인다. 목동에선 1~7단지는 앞단지로, 8~14단지를 뒷단지로 불린다. 목동에서 21년째 부동산을 운영하고 있는 성희연 대표는 “앞단지가 뒷단지에 비해 중·대형 평수도 많고 가격도 더 높게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현재 ‘대장’으로 꼽히는 7단지는 최근 전용면적 53m²(22평)가 14억9500만원에 팔린 반면 11단지는 10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단지에 따라 4억원 넘게 차이 나는 것이다.   목동의 대장 아파트는 재건축 상황에 따라 바뀐다. 지난 2월 11단지를 마지막으로 14개 단지 모두 안전진단을 통과하면서, 재건축 뉴스가 생길 때마다 집값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전통 강호는 5단지였다. 용적률이 낮아서 사업성이 높아서다. 5단지에 사는 임지선(53)씨는 “용적률은 투자 가치뿐 아니라 실거주 측면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하주차장이 없어서 주차난이 심각하지만, 5단지는 여유 공간이 있어서 그나마 낫다”는 것이다. 재건축 속도가 가장 빠른 6단지도 신흥 강자다. 지난해 8월 신속통합기획이 확정돼 이르면 다음 달 정비구역 지정 관련 서울시 심의가 열릴 예정이다. 집값이 비싼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가 ‘닫힌 학군’이라면, 목동은 아직은 진입해 볼 만한 ‘열린’ 학군이다. 10억원대로 매매할 수 있는 아파트가 있기 때문이다. 1~3단지는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묶여 있어 재건축 사업성이 낮았지만, 올 초 3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상향돼 허용 용적률이 최대 300%까지 높아졌다. 자금이 부족하면 전략적으로 뒷단지를 찾기도 한다. 재건축 속도는 더뎌도 추가 상승 여력은 충분하니 말이다. 이화부동산 신현우 대표는 “7단지나 5단지 등 대장 단지 가격이 먼저 움직이지만 결국 주변부로 퍼진다”고 말했다.   우선 가능한 단지나 아파트로 첫발을 들여놓고 다음 단계를 도모하는 경우도 많다. 5단지에 사는 백윤정(51)씨는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30평대로 들어와서 5년 후 40평대로 옮겼다. 그는 “남편 직장과의 거리,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 딱 두 가지만 보고 들어왔는데 집값도 많이 올랐다”고 했다. 전세로 눈을 돌리면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진다. 이달 거래된 11단지 51m²(22평) 전세 거래 6건은 2억4500만원~3억8000만원 수준이다. 11단지에 사는 박영지(46)씨는 “구로구에 살다가 작은 평수로 옮겨와 처음엔 불편했지만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다”고 했다. 그는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이사 와 7년째 같은 집에 살고 있는데 주변에 장기 전세로 사는 사람이 꽤 된다”고 했다.   목동에선 모든 것이 단지 중심으로 움직이지만, 일명 ‘비(非)단지’로 불리는 단지 외 주거 옵션도 있다. 비단지는 1~14단지와 학군 및 학원가를 공유하는 소규모 아파트를 뜻한다. 5호선 오목교역 주변만 해도 200단지 안팎의 현대 1차, 금호 1차, 진도 2차 등 소규모 아파트가 즐비하다. 초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는 차민서(39)씨는 “소규모 비단지일수록 배정 학교 등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3살 때 집 컨디션만 보고 신축 비단지로 들어갔는데 임대 아파트와 같이 초등학교가 배정되는 곳이었다. 결국 입학을 앞두고 단지로 옮겼다”고 털어놨다. 재건축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 목동 아파트 단지.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1~14단지를 합치면 2만6629세대에 달한다. 재건축이 끝나면 5만3000여 세대의 미니 신도시가 탄생할 것으로 보인다. 장진영 기자  ━  🏫Part2. 주상복합이 바꾼 명문 학군   2000년대 초반 주상복합이 들어서면서 목동 학군의 지형도가 바뀌었다. 현대하이페리온(2003년), 트라팰리스(2009년) 등 신축 아파트 거주 아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세워진 학교가 신흥 명문으로 부상한 것. 그 주인공은 2009년 개교한 목운초·중교다. 대단지 아파트란 특성상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목동에 상대적으로 더 소득이 높은 계층이 유입된 결과다.    이후 인접 단지인 7단지가 대장 아파트로 거듭났다. 같은 학교 배정 단지로 수혜를 입은 것이다. 7단지 36평(101㎡)은 지난달 23억원에 팔려 하이페리온II 42평(119㎡) 24억2500만원과 비슷한 수준에서 거래됐다. 신현우 대표는 “과거에는 앞단지에 있는 월촌초나 영도초를 선호했다면 지금은 목운초가 훨씬 인기”라며 “7단지 중에서도 목운초로 배정되는 701~715동을 찾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덕분에 목운초 재학생은 1612명으로 양천구 초등학교 30곳 중 가장 많다. 학급당 학생 수도 31.6명에 달한다. 강남 대도초(32.9명), 대치초(31.8명)에 이어 서울 내 세 번째 과밀학급이다. 1학년은 7개반이지만, 6학년은 11개반에 달하는 것도 특징이다. 그만큼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이사를 오는 학생이 많다는 얘기다. 초등학교 6학년 딸을 키우는 권이수(40)씨는 “작년 8월 이사 후 목운초 배정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뒀다. 실제 거주하는지 조사를 하고 나서야 반 배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에서 이사 온 그는 “와서 살아보니 학원뿐 아니라 학교의 방과후 수업도 다양하더라”라며 “더 일찍 올 걸 싶었다”고 했다.   특히 목동은 중학교 학군이 강한 걸로 유명하다. 학급당 학생 수를 살펴보면 목운중(29.9명)을 필두로 월촌중(29명), 목동중(29명), 목일중(28.8명) 순이다. 중학교 배정이 이뤄지는 10월을 앞두고 이삿짐차가 줄을 잇는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상향평준화돼 있다 보니 일부러 과밀 학교를 피하기도 한다. 엄마인강에서 ‘목동 유초등 교육의 정석’ 강의를 진행한 블로거 디테일의 여왕은 “목운중은 시험 문제가 어렵기로 유명하다. A등급이 타 학교 절반인 20%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목고를 준비한다면 잘하는 아이들과 경쟁할 수 있는 목운중·월촌중을 추천하지만, 정서적 안정이 더 중요한 아이들에겐 권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이 성별에 따라 선호하는 학교가 달라지기도 한다. 고등학교 3학년과 1학년 형제를 키우는 백윤정씨는 “남중을 갈 수 있는 5~6단지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남자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발달이 늦된데 일찍부터 여자아이들과 경쟁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이유다. 중학교 3학년, 초등학교 6학년 자매를 키우는 박영지씨는 “11단지는 인근 중·고교가 모두 여학교여서 딸 키우기 좋다”며 “하지만 여학교는 내신 받기 힘들어 공학을 보낼 수 있는 단지로 이사하는 집도 있다”고 말했다. 5호선 오목교역 인근에 위치한 목운초와 목운중. 학급당 학생 수가 각각 31.6명, 29.9명으로 과밀 학교다. 목운중은 증축을 거듭해 현재 9층까지 올라갔다. 장진영 기자 고등학교는 더 많은 것을 따져봐야 한다. 2009년 고교선택제가 도입되면서 근거리가 아니어도 원하는 학교를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천구 내 고등학교 15곳 중 광역단위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는 양정고 1곳밖에 없다. 한가람고는 2021년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환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다른 지역에 있는 전국단위 자율형 사립고(전자사)나 특수목적고, 영재학교 등에 지원하는 경우도 많다. 중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는 김연주(47)씨는 “아이가 더 잘하는 친구들과 같이 공부해 보고 싶다고 해서 전자사를 준비 중이지만, 목동에선 일반고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 전자사 못지않은 대입 결과를 자랑하는 일반고도 많다. 2023년 서울대 진학 기준 100위권에 포함된 일반·광역자사고만 6곳(합격생 57명)이다. 강서고(12명), 양정고(11명), 목동고·한가람고(10명) 등은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강남(14곳, 233명)이나 서초(7곳, 112명)에는 밀리지만, 여전히 탄탄한 성과다. 특히 강서고는 지난해 의대 진학자만 51명에 달한다. 백윤정씨는 “첫째가 양정고 추첨에서 떨어져서 강서고에 보냈는데 철저한 학생 관리에 만족해서 둘째도 같은 학교에 보냈다”고 말했다. “학년별로 시험 성적에 따라 도서관 좌석이 배정되는데 경쟁 효과도 있고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자투리 시간도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  🚶‍♂️Part 3. 도보 가능 학원가만 3곳   학군지로서 목동의 가장 큰 강점은 광활한 학원가다. 지난달 기준 목동 1040곳, 신정동 857곳으로 합치면 대치동 1637곳보다 많다. 광장빌딩을 중심으로 한 앞단지, 센트럴 프라자를 중심으로 한 뒷단지, 오목교역 인근까지 학원가가 3군데 넓게 펼쳐져 있다. 양육자들이 가장 만족하는 부분도 걸어서 학원에 다닐 수 있다는 점이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을 키우는 배가영씨는 “이사 오기 전에는 구로에서 목동까지 라이딩을 했는데 보통 30~40분은 걸렸다. 지금은 자전거로 10분이면 도착한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최근에는 오목교 학원가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초·중까지는 집에서 가까운 학원가를 이용하다가 고등학생이 되면 오목교로 모이는 것. 2년 연속 수능 만점자를 배출한 종합학원 시대인재가 2019년 목동에 첫 지점을 내면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백윤정씨는 “고등학교 2학년까진 주요 과목 학원을 2군데씩 다니는 아이들이 많다. 내신을 챙겨주는 수시형 학원과 수능 위주 정시형 학원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면 고등학교 3학년 땐 내신을 포기하는 아이들이 많아져 수능 중심의 대형 학원으로 모인다”고 덧붙였다. 목동 앞단지 학원가는 광장빌딩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건물마다 크고 작은 학원들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장진영 기자 목동을 거점으로 성장한 학원도 많다. 대치동 미래탐구와 목동 하이스트 등이 합병한 타임교육이 대표적이다. 사과나무(종합), 씨앤씨(영어·수학), 정이조(영어), 백인대장(수학), 갈무리·김종길(국어) 등 서부권에 지점을 두고 있는 학원도 여럿이다. 24년째 씨앤씨학원을 운영 중인 신원식 대표는 “현재 재원생은 1만3800명”이라고 밝혔다. 서울 양천·강서·구로·영등포·동작, 경기 광명·부천 등으로 운영 중인 셔틀버스만 110대에 달한다. 신 대표는 “커리큘럼을 모두 강사 재량에 맡기고 학생 당 수업료를 70%까지 가져갈 수 있게 하면서 좋은 강사가 모였고, 그 결과 특목고 입시에 강한 학원으로 입소문이 났다”고 말했다.   목동엔 오피스텔을 거점으로 교습소, 공부방, 그룹 과외, 스터디카페 등 다양한 형태의 학원 및 배후 시설이 들어서 있다. 교습소나 공부방으로 입소문이 나면 학원으로 확장하기도 하고, 자체 독서실을 제공하는 곳도 많다. 2007년 교습소로 시작해 강서·마포관까지 만든 김종길국어논술학원은 재원생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스터디카페, 북카페, 카페까지 있다. 학원 관계자는 “언제든 오고 싶은 학원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클리닉에 출석하면 포인트를 제공해 학용품이나 우산 등 필요한 물건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소형 학원이 워낙 많다 보니 정보를 얻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것도 목동 학원가의 특징이다. 임지선씨는 “목동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면 한 달 정도는 매주 주말마다 와서 학원도 살펴보고 주차난도 직접 겪어보길 권한다. 이사 와서 학교나 학원을 정하려고 하면 늦다”고 말했다.   이렇게 학원가가 탄탄하지만 결국 학원 때문에 대치를 찾기도 한다. 전국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모이는 대치에 비해 수도권 서부권 수요가 모이는 목동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최상위권 학원이 약하기 때문이다. 10단지에 사는 차민서씨는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아이가 갈 수 있는 수준의 학원은 몇 군데 없다. 앞단지 학원가로 라이딩하고 있는데 지금이라도 대치로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임지선씨는 “목동에서도 재수생은 대치동으로 학원을 다닌다”며 “대치동에 작은 방을 마련해 두고 주말이나 방학 때 그곳 학원가를 이용하는 집도 있다”고 귀띔했다. 목동은 학원가 건물마다 자전거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만 되어도 자전거를 이용해 학원을 다니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장진영 기자 hello! Parents 특별기획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다음 편에선 중계 학군의 특징을 살펴본다. ‘강북의 대치동’으로 중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중계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 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시리즈 「 ①“대치권에서만 서울대 233명 갔다” 그들이 ‘5대 학군’ 사는 이유 ②“담배 피워도 학원은 간다” 서울대 진학 1위 대치의 비밀   ③평당 1억 반포 학군 뚫었다, 그 엄마가 쓴 ‘변두리’ 전략 ④“대치동 갈 바엔 저축한다” 서울대 고집 않는 잠실엄마 ⑤“뒷단지·비단지 갈아타라” 목동 엄마 될 마지막 기회 ⑥왕복 3시간 교통지옥 택했다, 그 엄마 유혹한 ‘중계동 은사’   ⑦“학군지 가면 SKY 간다? 이것 없으면 꽝” 이사 전 체크리스크 」 관련기사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① 초등생이 ‘고교 수학’ 끝낸다…입학시험에 5000명 몰린 학원 ②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③ 수학은 동네 학원 보내라…단, 영어는 대치동뿐이다? ④ ‘봉준호 아바타’ 여기 다녔다…원어민 뺨치는 영어실력 비법 ⑤ “국어는 집 팔아도 안된다” 대치동에 이런 말 도는 이유 ⑥ “집 안 팔고 국어 키울 수 있다”…‘1년 대기’ 논술화랑이 푼 비밀 ⑦

    2024.06.23 15:55

  • “대치동 갈 바엔 저축한다” 서울대 고집 않는 잠실엄마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④]

    “대치동 갈 바엔 저축한다” 서울대 고집 않는 잠실엄마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④] 유료 전용

    박정민 디자이너 학군지라 하기엔 좀 부족하지 않나요?   잠실 학군에 사는 양육자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서울의 타 학군과 비교하면 대입 결과가 좋은 소위 명문고도 많지 않고, 학원 역시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송파구에 위치한 잠실 학군은 소위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속하긴 하지만 ‘2% 아쉬운 학군’으로 평가받는다. 대치(강남)·반포(서초) 학군엔 2023년 서울대 진학 100위 고교(일반고·지역자사고 기준)가 각각 14곳, 7곳이 있지만, 잠실 학군엔 5곳뿐이다. 이들 고교에서 서울대에 간 학생 숫자는 더 큰 차이가 난다. 대치와 반포에서 각각 233명, 112명이 서울대에 진학했지만, 잠실의 경우 53명에 불과했다. 학원(284곳) 역시 대치(1637곳)나 반포(419곳)와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잠실은 학군지가 아니다’고 할 수는 없다. 대치나 반포 학군에 비해 작아 보일 뿐 잠실 역시 고교 진학 성적이나 학원가 규모로 보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2% 아쉬운 학군’인 셈이다.   그렇다면 잠실 학군 양육자들은 왜 ‘2% 아쉬운 학군’을 선택했을까? 잠실 학군이 다른 학군과 비교해 가지는 장점은 뭘까? 잠실 학군을 고려 중이라면, 어떤 것들을 체크해야 할까?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는 이 지역 양육자와 부동산 중개인, 학원 관계자 등 1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자 양육자와 부동산 관계자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  「 Intro 서울대 가야만 성공일까? Part 1 재건축 후 10년, 학군 지형이 변했다 Part 2 굳이 대치로? 그러느니 저축한다 Part 3 잠실 노린다면, 송파동에 주목하라  」   ━  🏫Part 1 재건축 후 10년, 학군 지형이 변했다   송파·잠실 학군은 지난 10년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2008년 이후 신축 아파트가 대거 들어서면서 지역 내 학군 지형도 역시 바뀌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강자였던 올림픽선수기자촌·아시아선수촌·훼미리아파트 인근 학교가 지고 잠실의 대장주 ‘엘리트’(엘스·리센츠·트리지움) 중심으로 신(新)학군이 형성된 것이다.   엘리트 모두 ‘초품아’(초등학교를 품고 있는 아파트)다. 잠실엘스엔 잠일초, 리센츠엔 잠신초, 트리지움엔 버들초가 있다. 세 학교 모두 한 반에 28명 이상인 과밀학급이 많다. 하지만 이들 학교는 재건축 전까지만 해도 선호 학교가 아니었다. 당시 대장주인 올림픽선수기자촌·아시아선수촌·훼미리아파트 인근 초교가 인기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최근에는 헬리오시티(2019년 입주) 안에 있는 가락초와 해누리초도 인기다. 입주 초기만 해도 기피 학교였지만, 두 학교 졸업생이 진학하는 해누리중의 특목·자사고 진학생이 늘면서 이들 학교도 선호 학교가 됐다. 새로운 학군의 인기는 집값 상승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신축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력을 가진 이가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집값이 거주하는 사람들을 바꿔버린 셈이다. 17년째 잠실에서 부동산을 운영해 온 한영희씨는 “집값이 오르면서 입주 초기보다 확실히 고소득·고학력 거주자가 많아졌다”고 했다. 그는 “차로 20~30분 거리에 서울아산병원과 문정동 법조타운이 있고, 대기업 통근버스도 다니다 보니 의사·법조인, 그리고 대기업 임직원이 많이 산다”고 말했다.   게다가 초품아가 많은 잠실의 특성상 한 학교에 같은 아파트 아이들만 배정받다 보니 소위 ‘튀는 아이’가 거의 없다. 아이를 잠신초에 보내기 위해 리센츠로 이사한 강희진(49)씨는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아이들이 두루두루 잘 지낸다”며 “또래 관계가 안정적이니, 수업 분위기도 좋다”고 했다.   고교의 대입 실적에서도 신축 효과가 엿보인다. 실제로 리센츠와 헬리오시티 인근 잠신고와 잠실여고의 서울대와 의대 진학생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10년 전 서울대 진학생이 3명에 불과했던 잠신고는 지난해 11명의 합격자를 배출했고, 잠실여고의 경우 지난 3년간 49명(2022년 20명, 2023년 14명, 2024년 15명)의 학생이 의대에 합격했다. 윤영린 잠실여고 3학년 부장은 “주변의 교육환경이 좋아지며 공부 잘하는 학생이 늘었고, 아이들의 학습 태도가 좋아졌다”며 “잘하는 학교라는 소문이 나자 인근 지역 최상위권 학생들의 본교 지원도 늘었다”고 말했다.   입시 컨설턴트로 『대한민국 명문학군 입지지도』를 쓴 신진상 작가는 “신축 아파트가 생길 때마다 학군이 바뀐다는 건 그만큼 탄탄한 명문고가 부족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잠실 학군의 약점이 드러나는 대목이란 얘기다. 하지만 그는 “잠실 학군 학교들은 전반적으로 면학 분위기와 학업 성취도 수준이 높은 편이라 어느 학교에서든 승산이 있다”며 “학교의 진학 실적만 보지 말고, 각자의 대입 전략에 유리한 고등학교를 찾으라”고 조언했다. 잠실 리센츠 아파트단지 중앙에 위치한 서울 잠신초. 잠실 학군은 엘리트(엘스, 리센츠, 트리지움)아파트 내 자리한 초등학교가 주도한다. 김경록 기자  ━  🎒Part 2 굳이 대치로? 그러느니 저축한다   잠실 학군은 대치 학군에 붙어 있다. 잠실 대표 아파트 엘리트에서 대치 학원가까지 차로 15분이면 갈 수 있다. 다른 학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잠실 학원가가 발달하지 못한 것도 그래서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다수 양육자들은 대치 학원가를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치로 이사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아이 교육과 부동산 투자에 관심은 있지만, “신축 아파트와 교통 같은 주거 환경을 포기하면서까지 대치로 가고 싶진 않다”는 것이다. “반드시 명문대에 보내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한 양육자도 많지 않았다.   잠실에서 고등학교 2학년 자녀를 키우는 최현주(50)씨는 “전국에서 대치로 모인다지만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대치에 가자고 강요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학교 2학년인 그의 첫째도 잠실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고, 학원 역시 잠실에서만 다녔다. 그는 “서울대를 고집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치에 연연하지 않았다”며 “대치동은 서울대나 의대 외엔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지만 잠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강희진씨 역시 중학교 3학년 아들이 공부를 곧잘 하지만 대치로 이사할 계획은 없다. 그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 아이의 적성에 맞는 진학 로드맵을 짜고 있다”며 “서울대에 가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원하는 걸 할 수 있도록 다양한 경우의 수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잠실 학군의 사교육 관계자들도 양육자들의 이런 변화를 느낀다고 했다. 일대에서 20여 년간 고등학교 국어를 가르친 진혜정 기파랑 문해원 송파방이점 원장은 “‘반드시 서울대 가야한다’ 분위기는 확실히 크지 않다”며 “그래서인지 공부만 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다”고 했다. 아이가 어릴수록 K팝 댄스나 연기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부와 병행한다는 것이다. 중·고등 학원들이 밀집한 잠실학원사거리 상가. 송파구에는 잠실새내역, 방이역, 올림픽선수기자촌을 중심으로 대형 학원가가 형성되어 있다. 김경록 기자 잠실 학군 양육자들은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걸까? 부동산 중개인 한영희씨는 “반드시 서울대에 보낼 사람이라면 주거 환경을 포기하고 대치로 넘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소득·고학력 양육자 중에 상대적으로 자녀의 학업 성취도에 덜 민감한 이들이 잠실에 남았다는 얘기다. 그래서일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양육자 상당수가 “공부가 중요하지만 아이를 공부에만 매달리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아이를 키우는 정은주(47)씨는 “주변 학부모 대부분이 석·박사 이상의 고학력자”라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사회 생활을 하며 오히려 공부가 다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아이 교육에 무관심한 건 아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정보를 모으고, 전략을 짜고 있었다. 다만 “아이보다 먼저 나서지 않는다”고 했다. 초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는 조혜진(38)씨는 “잠실의 양육자들은 대치로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간 것”이라며 “어릴 때 교육에 투자할 돈을 모았다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지원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뒤 투자’라는 말을 했다. 잠실의 양육자들은 아이가 크고 나서 본격적으로 교육비를 쓴다는 의미다.   양육자들의 이런 성향 때문인지 잠실 학원가에 대한 만족도 역시 크게 낮진 않았다. 특히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높았다. 아파트마다 상가를 중심으로 국·영·수뿐 아니라 다양한 예체능 학원이 있고, 웬만한 중대형 프렌차이즈 학원도 다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강희진씨는 “학원 수업은 물론이고, 한 끼 식사부터 간식까지 상가 안에서 모든 게 해결할 수 있다”며 “학교에서 학원까지 단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등학생 키우기에 잠실만 한 곳은 없다”고 했다. 잠실엘스 아파트와 단지 상가. 엘리트 아파트 단지마다 붙어 있는 상가에는 초등학생 대상 학원이 들어차 있다. 학원부터 식사까지 상가 내에서 해결이 가능해 양육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김경록 기자  ━  🏠Part 3 잠실 노린다면, 송파동에 주목하라   잠실 양육자들은 잠실의 가장 큰 장점으로 교통을 꼽았다. 지하철 2·8호선이 지나가고, 광역버스환승센터도 있기 때문이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동부간선도로, 수도권 제1순환고속도로 같은 광역 도로망이 잘 갖춰져 있어 서울 외곽에 있는 대기업의 통근버스가 반드시 정차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조혜진씨는 “남편 통근버스 노선을 따라 정착했는데, 살아 보니 고속도로나 간선도로 근접성이 뛰어나 만족스럽다”며 “서울 근교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방문하는 것도 어렵지 않아 아이와 다양한 활동을 하기 좋다”고 말했다.   교통과 학군, 백화점이나 놀이공원 같은 편의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보니 잠실 학군의 집값은 비쌀 수밖에 없다. 일대 대장주 아파트인 엘리트의 최근 거래 가격은 23억원(전용면적 84㎡)에 달한다. ‘강남3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잠실엔 신축 아파트만 있는 건 아니다. 재건축을 기다리는 구축 아파트를 노리면 진입할 방법은 있다. 재건축이 추진 중인 잠실주공5단지와 장미아파트1·2차는 모두 합해 7000세대가 넘는 대단지다. 두 아파트는 각각 신천초와 잠동초를 품고 있는 초품아인 데다 특목·자사고 합격률이 높은 잠신중과 잠실중으로 배정된다. 재건축 호재가 있어 매매 가격은 20억원(84㎡)이 훌쩍 넘지만, 구축이다 보니 전세가는 5억~6억원 수준이다. 잠실 학군 입성의 징검다리로 불리는 이유다. 장미아파트에 거주하며 12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한수희씨는 “‘맹모삼천지교’ ‘몸테크’라고들 하지만 구축에 거주하는 게 절대 쉽지 않다”며 “그런 불편을 감내하고 모인 이들이 사는 지역인 만큼 잠실 안에서 가장 욕망이 들끓는 곳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파동으로 눈을 돌리면, 좀 더 낮은 가격에 잠실 학군의 인프라를 누릴 수 있다. 송파동에서 재건축 속도가 가장 빠른 가락삼익의 경우 14억원(84㎡) 정도면 매매할 수 있고, 4억원가량이면 전세를 구할 수 있다. 송파동에서 10년째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김혜은씨는 “잠실 엘스 59㎡ 규모 매매가(19억원)보다 더 싼 가격에 큰 평수를 살 수 있다”며 “잠실에 진입하긴 어렵지만 잠실 학군 인프라를 누리려는 젊은 양육자들이 이 동네로 모이는 건 그래서”라고 말했다. 송파동에서 초등학교 1학년 자녀를 키우는 채민지(41)씨는“잠실보다 번화하지 않아 아이를 키우기 좋다”며 “방이역 학원가가 도보 10분 거리에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송파동의 약점은 학군이다. 배정 학교인 중대초는 15분 걸어야 갈 수 있고, 배정받을 수 있는 중·고등학교도 몇 안 된다. 대치동까지 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것도 약점이다. 김혜은씨는 “송파동은 집값 측면에서 가성비가 좋지만 잠실에 비해 주요 상권과 대치 학원가에서 멀다”고 했다. 잠실 신축 아파트인 리센츠 아파트(왼쪽)와 구축 아파트인 잠실주공5단지 아파트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잠실주공5단지는 마지막 남은 대규모 단지로 전용면적 84㎡ 규모가 29억원에 거래된다. 김경록 기자 hello! Parents 특별기획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다음 편에선 목동 학군의 특징을 살펴본다. 목동은 2만6000세대 대단지가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 마지막 남은 대규모 투자처’란 별명에 걸맞게, 목동엔 재건축 기대감이 도처에서 느껴졌다. 목동 학군에 진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음 회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시리즈 「 ①“대치권에서만 서울대 233명 갔다” 그들이 ‘5대 학군’ 사는 이유 ②“담배 피워도 학원은 간다” 서울대 진학 1위 대치의 비밀 ③평당 1억 반포 학군 뚫었다, 그 엄마가 쓴 ‘변두리’ 전략 ④“대치동 갈 바엔 저축한다” 서울대 고집 않는 잠실엄마 ⑤“뒷단지·비단지 갈아타라” 목동 엄마 될 마지막 기회   ⑥왕복 3시간 교통지옥 택했다, 그 엄마 유혹한 ‘중계동 은사’   ⑦“학군지 가면 SKY 간다? 이것 없으면 꽝” 이사 전 체크리스크 」   ■ 페어런츠 -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대치권에서만 서울대 233명 갔다…그들이 ‘5대 학군’ 사는 이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6636“뒷단지·비단지 갈아타라” 목동 엄마 될 마지막 기회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8292평당 1억 반포 학군 뚫었다…그 엄마가 쓴 ‘변두리’ 전략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7483당신 자식이 하위 20% 된다…‘대치동 영끌’ 반대하는 이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91795년 만에 반포자이 갈아탔다, 80년생 중소기업맘 투자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56137 」 

    2024.06.20 15:27

  • 평당 1억 반포 학군 뚫었다…그 엄마가 쓴 ‘변두리’ 전략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③]

    평당 1억 반포 학군 뚫었다…그 엄마가 쓴 ‘변두리’ 전략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③] 유료 전용

    박정민 디자이너 아유, 반포는 학군지 아니에요. 상급지지. 지난달 29일, 서초구 반포의 한 부동산 중개소를 찾아 “학군 보고 이사 오는 사람들이 많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중개인은 “학군 생각하는 사람은 학원가 가까운 서초동이나 중학교 고입 결과가 좋은 잠원동으로 간다”며 “반포는 젊은 엄마들이 학군 보고 오기엔 너무 비싼 동네”라고 말했다.   반포는 서울 5대 학군 중 대치에 이어 두 번째로 학업 성취도가 높은 동네다. 2023년 서울대 진학 100위권 고등학교(일반고·광역단위 자사고)가 7곳이나 있고, 이들 학교 출신 합격생이 112명에 달한다. 3위인 목동(6곳, 합격생 57명)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상당하다. 하지만 살고 싶다고 이사할 수 있는 동네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집값이 평당 1억원을 호가하기 때문이다.   반포에 사는 사람들은 누굴까? 반포 학군에 진입할 방법은 정녕 없는 걸까? 다른 학군에 비해 반포 학군만이 갖는 장점과 단점은 뭘까?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는 이 지역 양육자와 부동산 중개인 등 12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자 양육자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  「 Intro 학군지? 상급지 된 반포 Part 1 평당 1억원 동네, 누가 살까 Part 2 이사한다면, 서초·잠원·방배 Part 3 반포 학군, 최대 약점은 학원가 」   ━  👨🏻‍⚕️Part 1 평당 1억원 동네, 누가 살까    반포의 주요 아파트 가격은 부동산 중개인의 말대로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전용면적 84㎡, 30평대 아파트가 30억원이 훌쩍 넘었다. 평당 1억원을 호가하는 셈이다. 이유가 있다. 반포의 주요 아파트는 래미안퍼스티지와 반포자이(2009년 입주)를 제외하면 모두 2010년 중반 이후 지어진 신축이다. 재건축으로 완전히 멸실된 상태인 반포주공1단지 등이 들어서면 반포 일대엔 구축 아파트가 사실상 사라지는 셈이다. 여기에 2010년 중반 부동산 상승기를 거치며 집값은 더 올랐다. 부동산 중개인이 “반포는 학군지가 아니라 상급지”라고 말한 이유다. 반포에 사는 양육자들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양육자들의 공통점은 부동산 상승 전인 2010년 초반에 이사했다는 것이었다. 서희정(53)씨는 대학교 2학년인 첫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던 2001년 안양 평촌에서 이사를 왔다. 9억7000만원에 매매한 그의 아파트는 최근 24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그는 “매매를 하면서 혹시 집값이 내려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예상치 못한 수준으로 올랐다”며 “지금이었다면 이사 올 수 있었을까 싶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3학년과 36개월 두 딸을 키우는 박연지(35)씨 역시 “10년 전 결혼할 당시 시댁에서 집을 마련해 주셨는데, 요즘 같았으면 쉽지 않았을 것 같다”고 했다. 2014년 12억원가량 하던 그의 집은 지금은 30억원이 넘는다.   평당 1억원을 호가하는 반포엔 대체 누가 살까? 반포에서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 중인 신선애 대표는 “의사 같은 전문직과 사업가가 확실히 많다”고 말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양육자 중엔 본인이 의사이거나 배우자가 의사인 경우가 확실히 많았다. 초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는 초등 교사 이수지(36)씨는 “휴직 전 송파구 외곽 초등학교에서 근무했는데, 당시와 비교하면 확실히 동네에 의사나 변호사·회계사 같은 전문직 부모가 많다”고 했다. 그 역시 남편이 의사다. 서희정씨와 박연지씨 역시 “여러 전문직이 고루 많지만, 의사와 사업가가 유독 많은 것 같다”고 했다. 박씨의 남편은 가업인 금속 가공업체를 운영 중이고, 서씨의 경우 본인은 중학교 교사, 남편은 회계사다.   반포 학군 양육자들은 학교·학원보다 자산 증식과 동네 분위기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대치나 목동·중계 학군 양육자들이 학원이나 학교 같은 학군지로서의 특징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반포의 주요 학원가인 삼호가든사거리 인근에서 초등학교 3학년 쌍둥이 아들을 키우는 최경진(44)씨는 “집을 살 당시 가장 크게 고려한 건 자산증식이었다”며 “이사 후 살면서 가장 만족한 것도 그 부분”이라고 말했다. 7억원에 산 그의 아파트의 지난달 거래가는 18억원이었다. 근처에서 역시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는 이민아(46)씨는 “법조인이 많이 사는 동네라는 게 이사를 한 가장 큰 이유였고, 살아 보니 상식 밖의 이웃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확실히 든다”고 말했다. 서희정씨는 “근무 지역 학생들과 비교하면 반포 아이들이 확실히 순하다”고 말했다. “전문직 부모가 많고, 너나 없이 잘 살다 보니 아이들이 외려 겸손한 것 같다”는 것이다. 반포2동은 2010년 중반 이후 입주한 신축 아파트가 즐비하다. 왼쪽은 래미안원베일리, 오른쪽은 아크로리버파크아파트, 가운데 멀리 보이는 게 래미안퍼스티지다.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반포본동이 재건축이 마무리되면, 반포 일대에선 구축 아파트가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장진영 기자  ━  🏚️Part 2 서초·잠원·방배 주목하라   집값이 비싸긴 하지만 반포는 학군으로서의 매력도가 확실한 동네다. 학업 성취도가 높은 중·고교와 학원이 밀집한 학원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서울대 진학 100위권 고교(일반고·광역단위 자사고) 중에서도 5개 학교가 30위 안에 포함돼 있다. 최상위권 명문고가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반포 학군을 탐내는 젊은 양육자들이 비싼 반포 대신 인접 동네로 이주하는 건 그래서다. 반포 학군 배후지으로 꼽히는 동네는 서초4동과 잠원동·방배동이다. 이들 지역은 구축 아파트와 빌라가 있어 반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집값과 전세가가 낮다.   반포1동과 맞대고 있는 서초4동은 반포 내 가장 큰 학원가인 삼호가든사거리에 인접해 있다. 특히 삼호가든사거리 학원가는 유아와 초·중등 학원이 밀집해 있어 이 연령대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가 많이 산다. 서초4동은 길 건너에 서울중앙지법과 서울고등검찰청 등 법조타운이 위치해 법조인이 많이 사는 동네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아크로비스타)도 이 동네에 있다.   서초4동에서 중학교 1학년 딸을 키우는 최희경(45)씨는 아이가 일곱 살 때 안양 평촌에서 이 지역으로 이사했다. 남부터미널 인근 서초3동에 집을 갖고 있지만, 아이를 키우기 더 적합해 보이는 서초4동에 살고 있다. 그는 “학원가가 가까이 있어 걸어갈 수도 있고, 학원 셔틀버스를 타고 긴 시간 이동하지 않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워킹맘인 그는 “하교 후 아이가 혼자서도 학원에 다닐 수 있다는 게 만족스럽다”고 했다. 최경진씨 역시 “예체능에서 주요 과목까지 웬만한 학원은 다 있고, 서일중이나 상문고·서울고 등 명문 중·고도 많다”며 “대치로 이사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반포2동과 맞대고 있는 잠원동은 중학교의 고입 결과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잠원동에 위치한 신동중과 경원중의 경우 2023년 졸업생의 40%가량이 자사고에 진학했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3학년 두 아들을 키우는 김진영(43)씨가 2022년 잠원동으로 이사한 것도 중학교 때문이었다. 시내에 있는 사립초에 다니던 첫째가 5학년 때였다. 김씨는 “잠원동은 중학교의 자사고 진학률이 높다”며 “중학교 졸업 후 세화고나 현대고 같은 인근 자사고에 진학하면 좋을 것 같아서 이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반포나 서초의 경우 고속버스터미널·강남역 등과 가까운 데 비해 잠원동은 번화가로부터 거리가 있어 유해시설이 전혀 없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자료: 학교알리미 반포2·4동과 맞대고 있는 방배본동도 학군 수요가 모이는 지역이다. 방배동의 경우 구축 아파트뿐 아니라 빌라도 많다는 게 특징이다. 이 지역 양육자들은 반포2동에 있는 신반포중이나 세화여중에 배정받을 수 있다는 걸 장점으로 꼽는다. 반포에 있는 광역 자사고인 세화고와 세화여고뿐 아니라 방배 지역에 있는 상문고·서울고·서문여고 등 서울대 진학 100위권 고교에 자주 이름을 올리는 명문고도 많다. 방배본동에서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 딸을 키우는 이진희(42)씨는 “학업 성취도가 뛰어난 중·고교가 가까울 뿐만 아니라 삼호가든사거리 학원가 셔틀버스 권역에 있어 아이를 키우기 좋다”고 말했다. 입시 컨설턴트로『대한민국 명문학군 입지지도』를 쓴 신진상 작가는 “반포 학군 일대에서 빌라나 다세대 주택이 있는 동네는 방배가 유일하다”며 “방배5·6구역과 13구역 등은 재건축이 활발히 추진 중이라 향후 집값이 오를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  🎒Part 3 반포 학군 최대 약점은 학원가   반포 학군의 약점은 학원가다. “갈 학원이 없는 건 아닌데, 100% 만족하고 보내지는 못한다”는 게 양육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아이의 수준이나 스케줄에 딱 맞는 곳을 찾는 게 그만큼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학원 수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반포동에 위치한 학원은 419곳. 대치동(1637곳)이나 목동·신정동(1897), 중계동(530곳)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학원가가 두텁게 형성되지 못하는 건 임대료가 비싼 탓이다. 신선애 대표는 “대형 프렌차이즈 학원 외엔 반포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다”며 “소규모 학원이 다양하고 촘촘하게 들어서지 못하니 대치로 학원 다니는 아이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김진영씨는 “중학생 첫째는 삼호가든사거리 학원가로 부족해 압구정으로도 학원을 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과학 같은 과목은 대치로 가지 않으면 보낼 만한 학원을 찾기 어렵다”고도 했다. 역시 같은 동네에서 초1 딸을 키우는 이수지(36)씨는 아이를 압구정에 있는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 이하 영유)에 보냈다. 삼호가든사거리 학원가엔 그가 원하는 놀이식 영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금은 삼호가든사거리 학원가에 있는 프랜차이즈 영어학원에 다니는데, 마음에 들진 않지만 대안이 없어 보내고 있다”고 했다. 아이가 다닌 영유와 비슷한 방식으로 수업하는 피아이어학원을 보내고 싶었지만, 입학 경쟁이 너무 치열했다. 그는 “대치동 같았으면 피아이를 못 가도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영어학원을 찾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대상 학원이 많지 않다는 것도 반포의 단점이다. 삼호가든사거리 학원가는 영유와 초등 대상 국어·영어·수학학원, 중등 내신 대비 학원 등이 밀집해 있다. 고등학생이 주로 찾는 학원은 고속버스터미널 맞은편 반포쇼핑타운에 있는데, 상가 규모가 작아 학원도 많지 않다. 대입 학원으로 유명한 시대인재도 이 근처에 있다. 하지만 반포에 거주하는 양육자들은 “시대인재 내 일타강사들은 반포관으로 수업을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포 학군의 고등학생들이 결국 대치동 학원에 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희정씨는 “고2까지는 이렇게 저렇게 반포 학원가에서 버틸 수 있지만, 고3은 결국 일타강사 따라 대치동에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자녀들은 주말이면 대치동 학원에 다녔거나, 현재 다니고 있다. 그는 “학원이 부족하다 보니 알음알음 소개받아 과외도 많이 한다”고 했다.     고등학생 학부모 사이에서 뱅뱅사거리 인근 아파트(서초2동)가 인기인 것도 대치 학원가로 다니는 버스가 많기 때문이다. 최경진씨는 “아이들이 크면 상문고나 서울고에 진학시키고 뱅뱅사거리 쪽으로 이사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학교 가기도, 대치동으로 학원 다니기도 나쁘지 않은 위치인 데다 신축 아파트가 많기 때문이다. 반포 학군 내 가장 큰 학원가인 삼호가든사거리 학원가의 모습. 주로 유·초·중등 대상 학원이 밀집해 있고, 대형 프렌차이즈 학원 분점이 많다. 임대료가 비싸 소규모 학원이 다양하게 들어서기 어려운 탓이다. 반포에 사는 양육자들이 "보낼 학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막상 보내보면 2% 아쉽다"고 말하는 건 그래서다. 장진영 기자 hello! Parents 특별기획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다음 편에선 잠실 학군의 특징을 살펴본다. 잠실 학군은 강남3구로 꼽히는 송파구에 있지만, 대치 학군이나 반포 학군과는 완전히 다른 특징이 있었다. 잠실 학군엔 어떤 사람들이 모일까? 이 학군의 학교와 학원은 어떻게 분포하고 있을까? 이사한다면, 어느 지역을 노리면 좋을까?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시리즈 「 ①“대치권에서만 서울대 233명 갔다” 그들이 ‘5대 학군’ 사는 이유 ②“담배 피워도 학원은 간다” 서울대 진학 1위 대치의 비밀   ③평당 1억 반포 학군 뚫었다, 그 엄마가 쓴 ‘변두리’ 전략 ④“대치동 갈 바엔 저축한다” 서울대 고집 않는 잠실엄마 ⑤“뒷단지·비단지 갈아타라” 목동 엄마 될 마지막 기회   ⑥왕복 3시간 교통지옥 택했다, 그 엄마 유혹한 ‘중계동 은사’   ⑦“학군지 가면 SKY 간다? 이것 없으면 꽝” 이사 전 체크리스크 」 관련기사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① 초등생이 ‘고교 수학’ 끝낸다…입학시험에 5000명 몰린 학원 ②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③ 수학은 동네 학원 보내라…단, 영어는 대치동뿐이다? ④ ‘봉준호 아바타’ 여기 다녔다…원어민 뺨치는 영어실력 비법 ⑤ “국어는 집 팔아도 안된다” 대치동에 이런 말 도는 이유 ⑥ “집 안 팔고 국어 키울 수 있다”…‘1년 대기’ 논술화랑이 푼 비밀 ⑦

    2024.06.19 15:49

  • “담배 피워도 학원은 간다” 서울대 진학 1위 대치의 비밀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②]

    “담배 피워도 학원은 간다” 서울대 진학 1위 대치의 비밀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②] 유료 전용

    박정민 디자이너 대치에 가야 할까? 학군지로 이사한다고 고민이 끝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거기서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대치로 갈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은 대입에 가까워질수록 더 커진다. 결국 대치로 학원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대치동 양육자들이 대치의 가장 큰 장점으로 “더는 이사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을 꼽는 이유다.   ‘사교육 1번지’, ‘학원 공화국’이라는 별명을 가진 대치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1등 학군지다.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 ‘서울 5대 학군 대해부 시리즈’ 2회에서는 대치 학군을 들여다봤다. 이를 위해 이 지역 양육자와 부동산 중개인 등 1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대치는 다른 학군지와 대체 뭐가 다를까?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자 양육자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  「 Intro. 결국은 강남 대치 학군으로 Part1. 촘촘하게 세분화된 학원공화국 Part2. 재수생이 만든 명문고 Part3. 아직 6억원이면 갈 수 있다 」  박정민 디자이너  ━  🎒Part1.촘촘하게 세분화된 학원공화국   대치동을 1등 학군지로 만든 건 학원이에요. 다른 학군 학원가가 동네 서점이면, 대치는 ‘교보문고’예요. 학군 전문가인 윤미리 인사이드대치 대표는 대치와 다른 학군지의 차이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치동 학원가는 학원의 숫자 뿐 아니라 다양성과 전문성에서 타 지역을 압도한다는 것이다. 지난달 기준 대치동에 있는 학원은 1637곳으로, 단일 동으로는 서울 1위다. 양천구 목동(1040곳)·신정동(857곳)이나 노원구 중계동(530곳) 등 타지역을 압도한다. 숫자만 많은 게 아니다. 일반적인 대입(수능·학생부·논술)뿐 아니라 의대나 특례입학 같이 세분화된 영역은 물론 ‘미국 수능’ SAT에서 웹툰까지, 없는 학원이 없다. 대치 양육자들이 “우스갯소리로 ‘자녀 교육에 관한 모든 학원이 다 있다’고 한다”는 말이 사실이다. 윤미리 대표는 “입시 미술학원은 목동이나 중계에도 있지만, 조소학원이나 웹툰학원, 한국화학원처럼 세분화된 학원은 대치 외 지역에서는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치에 사는 양육자들이 가장 만족한 점 역시 단연 학원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위해 2021년 경기도 광교에서 이사한 이지은(44)씨는 “목동이나 반포가 아닌 대치로 온 건 학원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광교에도 학원이 적진 않았다. 생각하는황소나 CMS 같이 웬만한 대형 학원도 다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숫자에 비해 학원이 적어 입학 경쟁이 치열했다. 무엇보다 아이 수준이나 일정에 꼭 맞는 학원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이씨는 “널린 게 학원인 대치에선 아이 수준뿐 아니라 성향·스케줄에 맞는 학원을 찾기가 훨씬 쉽다”고 했다.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같은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최상위권 학원부터 선행 학습은커녕 현행 학습도 제대로 못 따라가는 아이를 위한 학원까지, 다 있다. 대치 학원가는 전교 1등부터 꼴등까지 다 수용할 수 있단 얘기다. 대치동에서 고등학교 1학년 아들과 중학교 1학년 딸을 키우는 이지안(45)씨는 2020년 용산에서 대치로 이주했다. 이씨는 “차로 학원에 데려주지 않아도 되는 게 대치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밤 10시면 차로 꽉 막히는 학원가 주변 도로를 볼 때마다 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지난 14일 밤 10시 대치동 학원가 모습. 학원을 마친 아이들이 인도를 가득 채웠고, 아이를 데리러 온 양육자들의 차로 차도가 꽉 막혔다. 대치 학원가는 대치에 거주하는 학생 뿐 아니라 다른 지역 학생들도 많이 이용한다. 대치 양육자들이 "학원 라이딩을 안 해도 되는 게 장점"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김경록 기자 대치 학원가의 전문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과목은 과학이다. 올해부터 폐지됐지만, 서울대 정시에서 자연계열 지원 시 필수 응시과목이었던 과학탐구Ⅱ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학원은 대치 외에는 거의 없다. 현장 수업을 개설하려면 수강생 규모가 어느 정도 돼야 하는데, 자연계열 중 과학탐구Ⅱ 응시를 의무화한 대학이 서울대뿐이기 때문이다. 결국 서울대 자연계열을 목표로 하는 이과 최상위권 학생은 대치로 학원을 다닐 수밖에 없다. 영재학교·과학고 준비 학원이 다른 학군지에 많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다. 학원 수로는 대치에 버금가는 목동에서도 “과학 때문에 대치 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입에 가까워질수록 대치 학원가의 경쟁력은 빛을 발한다. 과목 별로 세분화돼 있던 학원이 과목 내 단원 별로, 대입 전형 별로 쪼개지기 때문이다. 역삼동에서 대학교 2학년 아들과 중학교 1학년 딸을 키운 박소정(48)씨는 “고등학생들은 수능 대비 학원을 하나 다니면서 부족한 개념이나 단원을 잡아주는 학원을 한두 개씩 따로 다닌다”고 말했다. 예컨대 수능 생명과학 과목 중에 유전을 다루는 단원이 약하면 이 부분만 따로 수업을 듣는 식이다. 이런 곳을 ‘클리닉 학원’이라고 부르는데, 4, 5명 규모로 팀 수업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대치동 일타강사가 이런 강의를 맡아 하기도 한다. 박씨는 “수업 별로 다르지만 한 팀이 보통 300만원을 내는데, 팀을 짜지 못하면 전체 수업료를 혼자 내고 1:1로 듣기도 한다”고 했다. 일타강사에게 개인 과외를 받는 게 대치동에선 가능하다는 얘기다.   아이들이 숨 쉬듯 당연히 학원에 가는 것도 양육자들이 꼽는 대치동의 장점이다. 고등학교 1학년 아들을 키우는 김민지(42)씨는 “동네 아이들을 보면 학원에 가는 게 DNA에 새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고 말했다. 친구를 만나 놀든 게임을 하든 학원 갈 시간 만큼은 칼같이 지키기 때문이다. 김씨가 아들 초등학교 2학년 때 대치로 온 것 역시 이런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들은 이사 전 영어 학원 한 곳에 다니면서도 학원 가기 싫다고 떼를 쓸 때가 많았다. 하지만 대치로 전학한 첫날 짝꿍이 학원 11곳에 다니는 걸 안 뒤로는 ‘학원 안 가겠다’는 말이 쏙 들어갔다. 이지안씨도 비슷한 얘기를 전했다. “화장을 하거나 담배를 필지언정 학원은 빼 먹지 않는 게 대치동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대치동 학원가 간판 사이로 웹툰학원이 눈에 띈다. 다른 학군지에도 미대를 준비하는 미술학원이 있지만, 대치동은 조소·웹툰·한국화 학원으로 세분화·전문화돼 있는 게 특징이다. 김경록 기자  ━  🏫Part2.재수생이 만든 명문고   영재학교나 특목고에 꼭 안 가도 됩니다. 갈만한 괜찮은 일반고가 정말 많거든요. 대치 양육자들이 두 번째로 만족하는 건 학교다. 소위 대입 실적이 좋은 ‘명문고’가 많다는 얘기다. 2023년 서울대 합격생을 많이 배출한 전국 일반고 100곳 중 11곳이 강남구에 있었다. 성적을 기준으로 삼지 않고 추첨과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광역단위 자율형사립고(광역 자사고)까지 포함하면 총 14곳으로 늘어난다. 대표적인 학교는 휘문고(1위·43명), 중동고(3위·28명), 숙명여고(5위·23명), 단대부고(7위·22명), 경기고(9위·20명) 등이다. 학교 기준으로는 전국 서울대 진학 100위 일반고의 14%지만, 학생 비중은 22%(233명)에 달한다. 반포 학군(8곳, 112명)이나 목동 학군(6곳, 57명), 잠실 학군(5곳, 53명), 노원 학군(3곳, 21명)과 비교해도 탁월한 성과다.   대치 학군이 타학군을 압도하는 입시 성과를 낸 배경은 뭘까? 전문가들은 주요 대학들이 정시를 강화한 게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수능이란 시험이 사교육을 통해 반복 학습을 많이 할수록 유리한 게 사실”이라며 “2023년부터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포함한 주요 대학 16곳의 정시 40% 선발이 사실상 의무화 되면서 강남 출신이 약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100위 안에 든 강남 학교 14곳의 정시 합격 인원(178명)은 수시 합격 인원(55명)의 3배가 넘었다.   대치에서 정시로 대학에 가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시로 가야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못 가는 게 아니라 안 간다는 얘기다. 내신 성적을 80% 정도 반영하는 수시 학생부종합전형의 경우, SKY를 노린다면 내신에서 1~2등급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대치 권역 고등학교는 최상위권이 워낙 두터워 높은 내신 등급을 받는 게 어렵다. 김민지씨는 “모의고사에서 전 영역 1,2등급을 받아도 내신에선 3~4등급 받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며 “수행평가나 점수 1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지안씨도 “수학 모의고사 1등급 받는 아이가 한 반에 40% 정도 된다”며 “모두가 열심히 하기 때문에 내신에서 등급을 올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양육자들은 이런 성과가 학교라는 공교육이 아니라 개인의 노력에 기인한다고 생각했다. 수능을 2번 이상 보는 소위 ‘N수생’이 많은 게 그 방증이다. 학교알리미의 기타(졸업자 중 미진학자·미취업자) 인원을 토대로 추정했을 때, 서울대 많이 보낸 일반고 중 재수 비율이 50%를 넘는 학교가 7곳이나 됐다. 고3의 절반이 졸업 후 재수를 한다는 얘기다. 단대부고(59.5%)·영동고(59.2%)·중동고(58.2%)·현대고(54.8%)·숙명여고(53.5%)가 특히 높았다. 대학을 다니면서 수능을 준비하거나 세 번 이상 수능을 보는 것까지 고려하면 이 수치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치에서 재수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이다. 박소정씨는 “대치에서는 고교 과정이 4년이라는 말이 있다”며 “소위 명문대나 의대에 합격하는 애들이 워낙 많기 때문에 기준도 높고, 학부모들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상대적으로 최상위권이 두터운 대치동이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영재학교나 과학고 같은 특목고를 선호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었다. 오히려 동네에 있는 일반고나 집에서 다닐 수 있는 광역단위 자사고를 선택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명문학군 입지지도』의 저자 신진상 작가는 “과학고나 영재학교는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해 학원에 다니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이들 학교에서 사실상 의대 진학을 금지한 것도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  🏠Part3. 아직 6억원이면 갈 수 있다   대전족(대치에서 전세 사는 사람) 되면 됩니다. 6억원 정도면 가능해요. 이주를 고민한다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파트 가격이다. 대치에 거주하는 양육자들은 “무리를 하면 올 수는 있다”고 말했다. 매매는 언감생심일지 몰라도, 집을 사겠다는 생각만 버리면 전세든 월세든 거주하는 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이것도 ‘아직은’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대치동엔 신축 아파트뿐 아니라 구축 아파트와 빌라촌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건축으로 구축 아파트와 빌라촌이 사라지기 전까지’란 의미인 셈이다.   대치동 대표 신축 아파트로는 래미안대치팰리스(2015)·대치르엘(2021)·대치푸르지오써밋(2023) 등이 있다. 이 중 대장주로 꼽히는 래미안대치팰리스의 경우 지난달 전용면적 84㎡(34평)가 34억원에 거래되면서 신고가를 경신했다. 대치동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가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최고가를 찍은 것이다. 대치동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래미안대치팰리스는 신축인데다 핵심 학원가에서 가깝고, 관내에서도 선호도 높은 학교에 배정되는 아파트라 특히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아파트에 살면 선경아파트 내에 있는 대치초와 ‘명문중’으로 손꼽히는 단대부중·대청중·숙명여중에 배정된다. 대치 대장 아파트로 꼽히는 래미안대치팰리스 전경. 메인 학원가에서 가깝고, 학군이 좋아 인기다. 대치는 신축과 구축, 빌라촌이 모두 있어 5~6억원으로 진입 가능하다는 게 양육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경록 기자 구축 아파트 중 대장주는 은마아파트와 우선미(우성·선경·미도아파트)가 꼽힌다. 4곳 모두 재건축을 추진 중인데, 다 합하면 9000세대가 넘는다. 이들 아파트에선 대치 학원가를 도보로 이용할 수 있고, 선호도 높은 학교에 배정된다. 선경아파트와 미도아파트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 단지)로 단지 내에 각각 대치초·대곡초가 있고, 우성아파트는 대청중을 끼고 있다. 선경아파트에 사는 이지은씨는 “지하주차장이 없고 녹물도 나와 불편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아이가 걸어서 5분 안에 학교와 학원에 갈 수 있다”며 “재건축 이후 집값이 오를 거란 생각으로 무리해서 매매했다”고 말했다.   이씨의 말처럼 재건축 기대감으로 구축 아파트(전용면적 84㎡)도 25억원에서 32억원 사이에 거래된다. 반면 전세가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은마아파트의 경우 전용면적 76㎡ 규모 아파트를 5억원 후반에서 7억원 선이면 전세로 구할 수 있다. 84㎡ 기준으로 미도아파트는 9억원대, 우성·선경아파트는 10억~11억원 수준이다. 대치동 학부모 커뮤니티 디스쿨을 운영하는 김현정 대표는 “사교육 하나만 본다면 다른 아파트에 비해 전세가가 낮고, 학원이 가까운 은마아파트가 훌륭한 입지”라고 귀띔했다.   주거지 기준을 빌라로 낮추면 전세가 4억~5억원에도 진입할 수 있다. 대치4동에 적지 않은 규모의 빌라촌이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주로 배정되는 도곡초·도곡중은 대치 내에선 비선호 학교로 분류된다. 초등학교 5학년 딸과 1학년 아들을 키우는 박혜나(40)씨는 “도곡초를 보내다가 학교를 옮기고 싶어 대치 내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며 “도곡초·도곡중은 대치 내에서도 아이들이 덜 순하다고 알려져 선호도가 낮다”고 말했다.   아직은 마음 먹기에 따라 진입이 가능하지만, 구축 아파트 4개 단지가 재건축을 완료한 이후에는 전세로도 진입하기 어려운 지역이 될 수밖에 없다. 서울 아파트 대장주로 아크로리버파크나 원베일리가 있는 반포에 버금가는 부촌이 될 것이란 얘기다. 서초 반포 학군의 경우 신축이 들어서면서 평당 1억원을 호가하는 곳이 많고, 신축이다 보니 전세가 역시 높다. 반포 대장 아파트로 불리는 원베일리의 경우 전용면적 84㎡의 전세가는 17억~19억원에 달한다. 그에 비하면 대치의 구축 아파트는 그 절반에 못 미치는 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윤미리 대표는 “대치 지역 재건축이 완료되면 부와 학군 지형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며 “대치행(行) 막차를 탈 기회도 앞으로 10~15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했다. 대치에서 재건축을 추진 중인 아파트 중 한 곳인 선경아파트 전경. 선경아파트는 우성·미도아파트와 함께 '우선미'로 불린다. 아파트 단지 내에 대치초가 있는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라 양육자 사이에서 인기다.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매매가는 30억원대로 높지만, 전세는 10억원대 수준이다. 김경록 기자 hello! Parents 특별기획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3회는 서초 반포 학군지다. 대치의 뒤를 잇는 서울 2대 학군지인 서초 반포 학군지의 특징은 뭘까? 2010년 이후 재건축으로 신축 아파트가 계속 들어서고 있는데, 진입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 서울 5대 학군 대해부 시리즈 「 ①“대치권에서만 서울대 233명 갔다” 그들이 ‘5대 학군’ 사는 이유 ②“담배 피워도 학원은 간다” 서울대 진학 1위 대치의 비밀   ③평당 1억 반포 학군 뚫었다, 그 엄마가 쓴 ‘변두리’ 전략 ④“대치동 갈 바엔 저축한다” 서울대 고집 않는 잠실엄마 ⑤“뒷단지·비단지 갈아타라” 목동 엄마 될 마지막 기회   ⑥왕복 3시간 교통지옥 택했다, 그 엄마 유혹한 ‘중계동 은사’   ⑦“학군지 가면 SKY 간다? 이것 없으면 꽝” 이사 전 체크리스크 」 관련기사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① 초등생이 ‘고교 수학’ 끝낸다…입학시험에 5000명 몰린 학원 ②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③ 수학은 동네 학원 보내라…단, 영어는 대치동뿐이다? ④ ‘봉준호 아바타’ 여기 다녔다…원어민 뺨치는 영어실력 비법 ⑤ “국어는 집 팔아도 안된다” 대치동에 이런 말 도는 이유 ⑥ “집 안 팔고 국어 키울 수 있다”…‘1년 대기’ 논술화랑이 푼 비밀 ⑦

    2024.06.17 16:41

  • 대치권에서만 서울대 233명 갔다…그들이 ‘5대 학군’ 사는 이유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①]

    대치권에서만 서울대 233명 갔다…그들이 ‘5대 학군’ 사는 이유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 ①] 유료 전용

    박정민 디자이너 학군지, 가야 할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시작되는 이 고민은 초·중·고 12년 내내 따라다닌다. 아니, 아이가 클수록 고민의 강도는 더 세진다. 다양한 교육 수요가 생기는 탓이다. 하지만 누구도 또렷한 답을 주지 못한다. 집값을 두고 상승론자와 하락론자가 나뉘듯, 학군지를 놓고도 의견이 갈리기 때문이다. “교육뿐 아니라 자산 증식까지 고려하면 가는 게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섣불리 갔다가 낭패를 본다”며 경고하는 사람도 있다. 대체 누구 말이 맞을까?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는 학군지에서 실제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로 했다. 해당 지역 부동산 관계자와 학교·학원 등 교육 관계자도 만났다. 서울 3대 학군지로 꼽히는 대치·목동·중계 지역에, 서울대 진학 100위권 일반고가 다수 포함된 반포·잠실까지 총 5개 학군지를 대상으로 했다. 지난 한 달간 60여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 학군지 어떻게 선정했나? 「 ‘학군지는 어디인가’를 놓고도 의견이 갈린다. 어떤 사람은 “대치·목동·중계가 학군지”라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반포랑 잠실은 왜 빼놓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hello! Parents는 2023년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한 전국의 100위 일반고와 그 학교에서 합격한 학생 수를 비교했다. 성적이 아닌 추첨·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광역단위 자율형사립고(자사고)도 포함시켰다. 서울 강남구(대치)와 서초구(반포)·양천구(목동)·송파구(잠실)·노원구(중계)가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 지역을 서울 5대 학군지로 보기로 한 이유다.   서울 5대 학군지 내 위치한 서울대 합격 100위 일반고와 그 학교에서 합격한 학생 숫자를 전국과 비교해보기도 했다. 학생의 경우 이들 5개 지역 출신이 전국의 44.3%를 차지했고, 학교 비중은 35%였다. 」  취재 결과 서울 5대 학군지엔 세 가지 특징이 뚜렷하게 보였다. 학군지 갈지를 고민할 때, 어느 지역으로 갈지를 결정할 때 도움이 될만한 것들이었다. 보다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자 학부모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  「 Intro. 서울 5대 학군지를 보다 Part1. 학군지 내에서도 대치로 쏠린다 Part2. 교육? 부동산 가치도 고려했다 Part3. 아이들이 순하다 」   ━  🏫Part1. 학군지 내에서도 대치로 쏠린다   결국 대치로 가게 되더라고요. 대치 학군을 제외한 나머지 4개 학군 양육자들이 공통적으로 한 이야기다. 다른 지역에서도 대치 학원에 다니거나, 아이를 실어 나르다 지쳐 이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 학군지에도 학원이 적지 않은데, 왜 대치로 쏠리는 걸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다른 지역 학군지에도 학원이 많지만, 대치 학군만큼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치동엔 총 1637개의 학원이 있다. 단일 동 기준 전국에서 가장 학원이 많다. 2위(목동, 1040곳)나 3위(신정동, 857곳)에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중계(530곳)나 반포(419곳), 잠실(284곳)에 비하면, 압도적인 수준이다.   절대적인 숫자가 많다 보니, 그만큼 다양하고 세분화되어 있었다. 특히 양육자들은 “최상위권일수록 대치 외엔 보낼 학원이 없다”고 했다. 목동에서 초등학교 1학년 딸을 키우고 있는 중학교 교사 차민서(39)씨 역시 그런 경우다. 차씨의 딸은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 이하 영유)을 나와 또래 중에선 영어를 상당히 잘한다. 그런데 목동에선 아이가 다닐만한 학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함께 영유를 다닌 아이 4명 중 2명이 지난해 하반기 대치로 이사했다”며 “우리도 늦기 전에 가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차씨는 “목동에서 오래 살았던 동료 교사들이 다들 후회한다더라”며 “기왕 (대치로)갈 거면 초등학교 2~3학년 때 서둘러 가라고 권한다”고도 했다. 잠실에서 중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는 강희진(49)씨는“잠실에서 상위권이 전체 20%면, 대치는 50%”라며 “그렇다 보니 잠실엔 몇 개 없는 최상위권 대상 학원이나 수업이 대치엔 상당히 다양하고 많다”고 전했다. 역시 잠실에서 대학교 2학년, 고등학교 2학년 두 자녀를 기르는 최현주(50)씨도 “영재고·과학고를 지망하는 똘똘한 아이들은 초등학교 3, 4학년이면 다 대치로 이사한다”고 말했다. 그런 아이들이 갈만한 학원이 대치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잠실이나 반포 학군은 이사하지 않고 대치 학원가를 이용했지만, 목동이나 중계처럼 물리적 거리가 있는 학군은 아예 대치로 이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공통된 이야기였다. 중계에서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두 딸을 키우는 임수경(45)씨는 “3학년 2학기부터 4학년 사이에 대치로 가는 아이들이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대학교 2학년 아들을 목동에서 키운 임지선(53)씨는 “동네 사람 중에 주말이나 방학 때 대치동 학원가를 이용하려고 대치동에 작은 방을 하나 마련해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대입에 가까울수록 대치로 몰리는 추세 역시 뚜렷했다. 목동에 사는 임지선씨는 “목동에서도 재수생은 대치 학원에 다니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대치동에 있는 여러 재수학원이 함께 셔틀버스를 운영해 목동 아이들을 실어 나른다는 것이다. 대학교 1학년 아들과 고등학교 3학년 딸을 반포에서 키우고 있는 서희정(53)씨 역시 “반포 고3은 주말이면 대치로 간다”고 말했다. 고속버스터미널 인근에 고등 대상 학원이 있지만, 소위 일타강사들은 대치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대치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포에서 부동산을 운영 중인 신선애씨는 “반포는 임대료가 비싸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학원이 들어서기 어렵다”며 “대형 학원 위주다 보니 양육자 입장에선 다양한 학원이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4일 밤 10시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학원을 마친 아이들을 데리러 온 차들로 길이 꽉 막혔다. 대치동 아이들은 대부분 도보로 학원에 다닌다. 길에 이렇게 차가 많다는 건 대치 외 지역에서 온 아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걸 뜻한다. 김경록 기자 잠실 양육자들은 학원이 아니라 학교 때문에 대치로 이주하기도 했다. 잠실 내에 소위 ‘명문고’라 불릴 만큼 대입 실적이 좋은 고등학교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3년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한 100위권 고교 중 강남구에 있는 일반고는 14곳이지만, 송파 지역엔 5곳에 불과하다. 잠실에 사는 강희진씨도 현재 대치로 이사를 고려 중이다. “고교선택제에 따라 지망한 고등학교에 배정받지 못하면 강제배정되는데, 이렇게 배정받아 가는 학교 중에 괜찮은 곳이 별로 없다”는 이유다. 그의 아들은 경기고나 영동고 진학을 희망한다. 강씨는 “대입 전형이 복잡해지면서 진학 전략에 따른 고등학교 선택이 중요한데, 잠실엔 선택지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명문학군 입지지도』를 쓴 신진상 작가는 “대치와 반포엔 상위권 고교가 다수 있어 학군 전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비해 잠실엔 자사고인 보인고 외엔 도드라지는 학교가 없다”고 평가했다. 서울대 진학 100위 고교의 학생 숫자를 비교해봤다. 강남(대치)와 서초(반포), 양천(목동)과 송파(잠실), 노원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선두 그룹 내에서도 대치와 반포의 경쟁력은 2배 이상 차이 났다. 이 데이터는 학생들이 대치로 쏠린 결과인 동시에 대치로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정민 디자이너  ━  🏘️Part2. 교육? 부동산 가치도 고려했다   교육도 교육이지만,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나 만족감도 커요. 서울 5대 학군지 양육자들은 대부분 “집값이 적잖이 올랐다”며 만족해 했고, “앞으로도 더 오를 것 같다”고 기대했다. “가능하면 전세보다 매매로 진입하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대치(강남구)와 반포(서초구) 양육자들이 그랬다. 대치와 반포는 2010년 중반기 부동산 상승기에 집값이 크게 오른 지역이기도 하다. 반포2동에서 초등학교 3학년과 36개월 두 딸을 키우고 있는 박연지(34)씨는 “동네 분위기도 좋지만 부동산 가치 측면에서 크게 만족한다”고 했다. 10년 전 13억원 정도 하던 박씨의 아파트는 현재 30억원이 넘는다. 박씨는 “시댁에서 집을 마련해줄 때만 해도 이 정도로 비싸진 않았다”며 “요즘 같았으면 쉽게 못 샀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초4동에서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키우는 최경진(44)씨는 “2012년 집을 살 당시 가장 크게 고려한 건 집값의 상승 가능성이었다”고 말했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지난달 18억원에 거래됐는데, 최씨는 같은 아파트를 7억원에 샀다. 10여 년 사이 10억원 넘게 오른 셈이다. 잠원동에서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3학년 두 아들을 키우는 김진영(43)씨 역시 “첫째의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이사했지만 가장 크게 고려한 건 부동산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동작구와 중구에 갖고 있던 아파트 2채를 팔아 재건축을 추진 중인 잠원동 아파트를 샀다. 김씨는 “팔았던 아파트들은 최근 가격이 내렸는데, 잠원동 아파트는 오르고 있다”고 했다.   반포 학군의 경우 최근 10여 년 사이 재건축이 잇달아 진행되면서 일대 스카이라인이 변하고 있었다. 래미안퍼스티지(2009년)가 위치한 반포2동엔 아크로리버파크(2016년), 원베일리(2023년), 원펜타스(2024년) 등이 잇달아 입주했고, 반포자이(2009년)가 있는 반포1동 역시 반포리체(2011년), 반포래미안아이파크(2018년), 디에이치라클라스(2021년) 같은 신축이 즐비하다. 신축이 들어서면서 집값도 큰 폭으로 상승해, 평당 1억원을 호가하는 곳이 많다.   대치 양육자 역시 집값 상승에 대한 만족감과 기대감을 보였다. 대치동에서 초등학교 5학년 딸과 1학년 아들을 키우는 박혜나(40)씨는 “2017년 송파구 문정동 아파트를 팔고 대치동 아파트를 샀다”며 “돌이켜 보면 대치로 갈아탄 게 신의 한 수였다”고 했다. 그가 소유한 아파트 매매가는 7년 만에 2배로 뛰었다. 대치동에서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키우고 있는 이지은(44)씨는 2021년 경기도 광교에서 이주하며 선경아파트를 매입했다. 그는 “분당으로 이사할까 고민하다 대치가 나을 것 같아 방향을 틀었다”며 “집값이 한창 비쌀 때 샀지만, 재건축이 되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목동 양육자들은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1980년대 지어진 2만6000세대 아파트가 밀집한 목동은 단지마다 속도는 다르지만 재건축이 한창 추진 중이다. 지어진 지 40년 가량 되는 오래된 아파트임에도, 전용면적 84㎡(34평) 아파트가 20억원을 호가한다. 목동 5단지 아파트를 2000년대 초반 매수한 임지선씨는 “지난달 같은 평형대 아파트가 23억원에 팔렸다”며 “20년 사이 3배 넘게 올랐다”고 전했다. 목동에서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을 키우고 있는 이진희(42)씨도 “매매로 목동에 이주한 이들은 대부분 재건축 이후 집값 상승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했다. 목동에 있는 신연우 이화부동산 대표는 “재건축을 노리고 투자 목적으로 열악한 주거 환경을 견디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강남3구로 꼽히는 송파구 잠실 학군 양육자들은 부동산 상승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신축 아파트에 사는 양육자들이 이런 양상이 또렷했다. 송파동에서 초등학교 2학년 딸을 키우는 조혜진(38)씨는 “부동산 투자에 대한 욕심이 있었다면 무리해서라도 강남에 갔을 것”이라며 “송파엔 주거·양육 환경이 좋은 곳에서 실거주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부동산 트렌드 2024』에서 “송파 지역 부동산 가격 흐름은 강남구나 서초구보다 강동구와 유사하다”며 “과거 강남구로 묶였던 지역(강남·서초·송파·강동)이 그 안에서 분화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잠실 학군 양육자들은 이런 부동산 변화를 이미 실감하는지도 모른다.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반포 일대 모습. 대한민국 대장주라 불리는 원베일리, 아크로리버파크, 래미안퍼스티지가 보인다. 2010년 이후 재건축된 아파트가 잇달아 들어서면서 반포 지역은 스카이라인이 바뀌었다. 반포 학군 양육자들이 부동산 상승에 대한 만족과 기대감을 보인 이유다. 장진영 기자  ━  👨‍👩‍👧‍👦Part3. 아이들이 순하다   아이들이 순해요. hello! Parents가 만난 서울 5대 학군지 양육자 대부분이 학군지의 장점을 꼽으며 이렇게 말했다. ‘순하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양육자들에게 그 의미를 되물었을 때 가장 많이 돌아온 답은 부모의 교육 수준과 직업에 관한 것이었다.   중학교 1학년 딸이 7살 때 안양 평촌에서 반포 지역으로 이사 온 최희경(45)씨는 “평촌보다 확실히 전문직 부모가 많다”고 했다. 그가 사는 서초4동은 반포1동과 맞대고 있을 뿐 아니라 길 건너에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검찰청 등 법조타운이 위치해 있다. 그만큼 법조인이 많이 사는 동네다. 윤석열 대통령의 사저(아크로비스타)도 이 동네에 있다. 최씨는 “아이 친구 부모를 보면 법조인·의사·한의사 아니면 교사”라며 “대기업 다니는 부모도 찾기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부모도, 아이도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평촌에 사는 엄마들과 종종 만나는데, 두 지역 아이들을 비교하면 반포 아이들이 확실히 부모 말에 순응적”이라고 했다. 아이 학업에 큰 기대가 없는 그가 이 지역에 사는 이유는 바로 이런 분위기 때문이다.   반포에서 두 자녀를 키운 중학교 교사 서희정씨 역시 비슷한 얘길 전했다. 그는 “반포에선 한 반에 절반 가량이 전문직 부모고, 너나 없이 잘 살다 보니 아이들이 외려 겸손하다”며 “반면 다른 지역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거나 잘사는 집 아이들이 더 되바라지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 동네에선 공부 잘하고, 잘 사는 아이가 특별한 대접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는 것이다.   대치에서 고등학교 1학년 아들과 중하교 1학년 딸을 키우는 이지안(45)씨 역시 “대치 부모들은 학력도 높고 전문직도 많다 보니 아이들이 ‘부모님 만큼은 해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공부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모여 열심히 공부하니 아이들끼리도 서로 자극을 받아 덩달아 공부하는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강원도 원주에서 아이들을 키우다 중계동에 자리 잡고 두 딸(2015년생, 2020년생)을 키우는 유지영(39)씨도 “원주와 비교하면 의사·변호사 같은 전문직 부모가 확실히 많고 아이 학습에 관심도 많더라”며 “교육열이 높다는 게 확실히 느껴진다”고 말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임종헌 연구위원은 강남의 한 중학교 학부모와 학생들을 심층 면접해 쓴 논문 「강남 고소득층 학생의 삶에 관한 연구」에서 “아이들이 부모 등 가족의 뜻에 순종하고 따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부모의 사회·경제적 성취가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분석했다. 부모가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겪으면 자녀는 부모의 뜻을 따르지 않지만, 부모의 사회·경제적 성취 수준이 높으면 자녀는 ‘부모가 옳다’는 생각이 강해져 순종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결국 학군지로 이사하면 고학력·고소득 부모가 많고, 그런 부모와 함께 자라 그 뜻을 거스르지 않는 아이들 속에서 아이를 키우게 된다는 의미다. 학군 컨설팅을 하는 윤미리 인사이드대치 대표는 “학군지는 어딜 가나 튀는 아이가 별로 없고 비슷하다”며 “그래서 탈선 하더라도 일정한 선을 넘지 않고 설령 선을 넘어도 공부마저 놓진 않는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 대치동 학원가 풍경. 명절에도 공부하러 나온 학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hello! Parents가 만난 서울 5대 학군지 양육자들은 "가정 환경 뿐 아니라 동네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한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연합뉴스 hello! Parents 특별기획 ‘서울 5대 학군지 대해부’에선 앞으로 대치·반포·잠실·목동·중계 학군의 특징을 하나씩 살펴본다. 학군지라는 공통점은 있었지만, 지역마다 서로 다른 특징이 또렷하게 보였다. 실제 각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각자가 가진 학군지 고민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서울 5대 학군 대해부 시리즈 「 ①“대치권에서만 서울대 233명 갔다” 그들이 ‘5대 학군’ 사는 이유 ②“담배 피워도 학원은 간다” 서울대 진학 1위 대치의 비밀   ③평당 1억 반포 학군 뚫었다, 그 엄마가 쓴 ‘변두리’ 전략 ④“대치동 갈 바엔 저축한다” 서울대 고집 않는 잠실엄마 ⑤“뒷단지·비단지 갈아타라” 목동 엄마 될 마지막 기회   ⑥왕복 3시간 교통지옥 택했다, 그 엄마 유혹한 ‘중계동 은사’   ⑦“학군지 가면 SKY 간다? 이것 없으면 꽝” 이사 전 체크리스크 」 관련기사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① 초등생이 ‘고교 수학’ 끝낸다…입학시험에 5000명 몰린 학원 ②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③ 수학은 동네 학원 보내라…단, 영어는 대치동뿐이다? ④ ‘봉준호 아바타’ 여기 다녔다…원어민 뺨치는 영어실력 비법 ⑤ “국어는 집 팔아도 안된다” 대치동에 이런 말 도는 이유 ⑥ “집 안 팔고 국어 키울 수 있다”…‘1년 대기’ 논술화랑이 푼 비밀 ⑦

    2024.06.16 15:21

  • “의대 보내려면 오지 마세요” 캐나다 2년살이 엄마의 단언

    “의대 보내려면 오지 마세요” 캐나다 2년살이 엄마의 단언 유료 전용

    갈 때만 해도 영어 실력을 기대하고 갔어요. 그런데 다녀와 보니 아이의 자존감이 가장 큰 수확이더군요. 아이와 함께 2년간 캐나다에서 산 경험을 담아 『아이와 간다면, 캐나다』를 쓴 박은정 작가에게 “캐나다 연수, 어떤 점이 가장 좋았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영어를 잘 못해 어리숙해 보이던 아이가 언어 장벽을 극복하면서 더 씩씩하고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캐나다는 국내 초등학생이 가장 많이 유학을 떠나는 나라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해외 유학을 떠난 초등학생(3124명)의 35%(1106명)가 캐나다로 향했다. 미국(591명), 영국(61명), 호주(155명), 필리핀(142명), 말레이시아(265명) 등과 비교해 압도적이다. 아이와 함께 유학을 떠나는 부모가 비자를 받는 게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공교육 시스템도 우수하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우호적인 사회 분위기, 천혜의 자연환경, 미국과 인접한 위치도 매력 요인으로 꼽힌다. 박정민 디자이너 박 작가도 같은 이유로 8년 전 초등학생 4학년 아들과 같은 나이의 조카를 데리고 캐나다로 떠났다. 아이가 영어를 잘하길 바라는 욕심도 있었지만, 더 큰 세상을 경험하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1년을 목표로 밴쿠버 남쪽 델타시에서 시작한 캐나다 생활은 한 해 더 늘어 2년을 꽉 채웠다. 캐나다에서 돌아온 지 6년, 아이들은 고3 수험생이 됐다. 그는 “이제 와 돌이켜봐도 캐나다 연수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코로나19로 사실상 끊겼던 해외 유학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지난달 30일 박 작가를 만난 이유다. 해외 연수를 고려 중이라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박 작가에게 캐나다에서 후회 없는 2년을 보낸 비결을 물었다.    ━  🍁10살이 적기인 이유   박 작가는 대학에서 영어 교육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TESOL(Teaching English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 테솔) 교육 석사 학위를 받은 영어 교육 전문가다. 경기도 판교에서 영어 유치원을 6년간 운영하기도 했다. 영어 교육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을 법한 그가 해외 연수를 떠난 데엔 이유가 있었다. 성적을 내기 위한 영어가 아니라 세계를 무대로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영어를 하길 바랐다. 그런 영어를 익혀야 더 넓은 세상에 나아갈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영어가 늘길 바라는 마음에 연수를 가는 분이 많잖아요. 그래서 궁금해요. 아이 영어는 얼마나 많이 느나요? 캐나다에서 살면 무조건 영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긴 어려워요. 아이마다 처한 환경이 다르고, 또 언어를 익히는 속도 역시 천차만별이니까요. 하지만 캐나다 살이 전후의 영어 실력은 확실히 차이가 나요. 특히 듣기와 말하기 영역에서는요. 저희 아들의 경우 캐나다 가기 전에도 읽기나 쓰기는 어느 정도 했어요. 제가 운영하던 놀이식 영어 유치원에 다녔거든요. 하지만 말하기나 듣기는 잘하지 못했죠. 그래서 캐나다행을 결심했어요. 아이가 의사소통 수단으로 영어를 제대로 배우길 바랐거든요. 결과적으로 지금은 원어민과 비슷한 수준으로 영어를 하는 것 같아요. 영어 때문에 걱정할 문제는 전혀 없어요.   책의 부제가 ‘영어학원 12년 대신 캐나다 1년 어학연수’인데요. 한국에서도 충분히 영어를 잘할 수 있지 않나요?  영어 과목 시험에서 고득점 하는 게 목표라면 한국에서 영어 학원 성실히 다니면 충분히 잘할 수 있어요. 학원 안 다니고 엄마표 영어로 꾸준히 노출 잘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는 것도 맞고요. 하지만 영어가 아이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평생의 자산이 되길 원한다면 얘기가 달라지죠. 요즘엔 말하기·듣기·읽기·쓰기뿐 아니라 해당 언어권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문화를 이해해야 언어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문화나 언어적 감수성을 책이나 학원에서 배우는 데엔 한계가 있잖아요. 현지에서 생활하는 게 유리하죠.   일 년 혹은 그 이상 머무른다면 아이가 몇 살 때 가는 게 좋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적기는 열 살 무렵입니다. 그 나이쯤 돼야 현지에서 아이가 혼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많기 때문이에요. 현지 친구들과 어울리며 영어로 말할 기회도 많고요. 한 예로 캐나다에서 인기 있는 여름 캠프는 만 8세가 넘어야 신청 가능합니다. 너무 어릴 때 가는 건 추천하지 않아요. 엄마가 아이에게 매여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고, 개입해야 하는 순간도 많으니까요. 돌아와서 영어를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들여야 하는 노력도 적지 않고요. 또 너무 늦어지면 현지 친구를 사귀고 어울리는 데 어려울 수 있어요. 그만큼 영어를 빠르게 흡수하기 어렵기도 하고요.   아이가 영어를 잘 못해도 괜찮을까요?  영어 못하면 현지에서 친구도 못 사귀고 학교 수업 못 따라갈까 봐 걱정되시죠?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막상 가 보니 그런 고민은 기우더군요. 영어 실력과 상관없이 두어 달 정도면 현지 생활에 거의 적응을 하거든요. 친구도 사귀고 학교생활에도 익숙해지면 영어는 정말 빠르게 늘어요. 학교에서도 다방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요. 어학연수 간다고 미리 영어 과외공부를 하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얘깁니다.     아이가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라면 낯선 외국 생활을 힘들어할 것 같아요. 내성적이라면, 그래서 친구를 잘 사귀지 못한다면 처음에 힘들어할 수 있어요. 초반에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양육자도 노력할 필요가 있고요. 친구야말로 적응과 영어 실력에서 중요한 존재거든요. 저도 아들과 조카에게 단짝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나름 애를 썼습니다. 일단 아들이나 조카 친구의 부모와 친해지려고 노력했어요. 부모가 먼저 친해져야 아이들도 서로 어울릴 기회가 늘어나니까요. 학교 행사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자원했고요. 그렇게 만나면서 친해진 엄마들에겐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돌리기도 하고, 마카롱이나 컵케이크 같은 간식도 만들어 나눠주기도 했죠. 현지인 엄마와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하기도 하고요. 친구들이 놀러 오면 게임이나 각종 놀거리를 준비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신경 썼어요. 우리 아이의 영어가 서툴러도 함께 노는 시간이 즐거우면 다음에 또 놀자고 할 테니까요. 박은정 작가는 "아이 영어와 적응에서 현지 친구를 사귀는 건 정말 중요하다"며 "초반에는 엄마가 아이 친구 만들기에 신경을 써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전민규 기자  ━  🍁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상에 앉지 마라   한국의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간다. 학원에서 돌아오면 숙제를 하느라 밤 늦도록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캐나다에는 한국과 같은 학원은 없다. 박 작가는“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는 한국 가면 싫증나게 할 테니 캐나다에서만큼은 거기서만 할 수 있는 활동을 하게 했다”고 말했다.   방과 후에는 주로 뭘 했나요? 캐나다 초등학교는 보통 오후 3시에 끝나는데요. 방과 후엔 예체능 클럽 활동을 하면서 뛰어놀아요. 동네마다 축구장이나 야구장·골프장·아이스링크 같은 시설이 잘 갖춰져 있거든요. 커뮤니티센터·레크레이션센터 등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저렴하게 운영하기도 하고요. 한국에선 엄두를 내지 못하던 활동을 이것저것 해보기에 정말 좋은 환경이죠. 제 아들은 캐나다에서 안 해본 스포츠가 없어요. 야구·축구·수영에서부터 골프·스키·승마까지 말이죠. 그때 배운 운동이 아이의 자신감을 길러준 것 같아요. 운동을 하면서 스스로 잘한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친구들에게 인정도 받았으니까요. 박은정씨는 "아들은 캐나다에서 안 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야구 선수가 꿈이었던 그의 아들은 야구 클럽 활동도 즐겼다. 사진 박은정. 결국 한국으로 돌아올 텐데, 캐나다에서 너무 놀기만 한 거 아닌가요?   만약 한국식 학습에서 뒤처질까 걱정된다면, 한국 문제집을 풀거나 온라인 학습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됩니다. 하지만 저는 초등학생은 엉덩이 붙이고 앉아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매일 저녁 30분씩 문제집을 풀거나 공부하도록 했죠. 하지만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책상에 앉혀 공부를 시키진 않았어요. 그건 한국 가면 질리도록 할 테니까요. 대신 캐나다에서만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하려고 했죠.    아이들과 여행을 많이 다닌 것도 그래서군요? 캐나다엔 세계적 명소가 많고, 지리적으로도 미국과 가까우니까요. 비행기값만 봐도 한국에서 가는 것과 비교할 수가 없게 저렴하죠. 나이아가라 폭포나 로키산맥,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 등 캐나다와 미국 곳곳을 다녔어요. 특히 아이들이 뭔가를 배우는 여행이 되길 바랐어요. 한번은 한국에서 온 부모님과 동생, 조카들과 함께 알래스카 크루즈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요. 여행을 가기 전에 현지 대학생을 불러 빙하의 생성 과정,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해 아이들에게 좀 알려달라고 했죠. 그리고 실제 여행을 가서 아이들이 빙하가 녹아 줄어든 광경을 직접 보게 했어요. 비단 여행뿐이 아니었어요. 캐나다에서 사는 2년 내내 일상이 여행이고, 여행이 배움이라는 생각으로 지냈습니다. 아들에게도 교육 여행 왔다고 생각하자고 했어요.   교육 여행요? 연수 왔다고 생각하면 영어에서 아이가 특정 수준 이상의 성취를 이루길 바라는 욕심이 생기잖아요. 1년 후엔 원어민처럼 영어를 잘했으면 싶은 기대도 생기고요. 그러면 엄마도 불안하고,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생각을 바꿨죠. 연수가 아니라 긴 여행을 왔다고요.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영어 실력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더라고요. 캐나다 스키장에서 박 작가와 아들 ·조카가 스키를 타고 있다. 사진 박은정.  ━  🍁 캐나다 탓만 하지 마라   캐나다가 장점이 많은 유학지라고 하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특히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면, 연고도 없는 낯선 외국 땅에서 보호자로 사는 게 쉬울 리 없다. 박 작가도 그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선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나요? 매일 아이들 도시락을 싸는 게 고역이긴 했어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캐나다에 온 걸 후회할 정도로 힘든 일은 없었어요. 큰 사건 사고도 없었고, 아이들도 잘 적응했으니까요.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닙니다. 캐나다에서 아이가 왕따를 당하거나 다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런 사건 사고는 한국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인생에서 언제든, 누구에게든 생길 수 있는 그런 일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그런 일이 생기면 ‘이게 다 캐나다 와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그러지 않았어요. 일단 왔잖아요. 그러니 최선을 다해야죠.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어려운 일이 생겨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어디 살건 긍정적인 태도가 중요하군요.   캐나다에 다녀오신 분 중엔 연수 경험을 좋지 않게 말하는 분들도 많아요. “캐나다 갔다가 오히려 망했다”거나 “귀국 후에 국어를 못 한다” “수학이 처져서 고생한다”고요. 사실 아이가 귀국 후 한국식 학습을 따라잡으려고 고생하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세상에 좋기만 한 일이 어디 있나요? 모든 걸 다 가질 순 없잖아요. 영어가 늘었다면, 그만큼 잃은 것도 있는 법이죠. 이미 다녀온 걸 돌이킬 수도 고요.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모자란 공부를 채우려고 더 노력하고요. 그래서 저는 연수를 가기 전에 먼저 자녀 교육의 목표와 방향부터 분명히 하라고 조언해요.   어째서죠? 만약 대학 입시가 중요하다면, 의대나 명문대에 들어가는 게 목표라면 캐나다 연수는 가지 않는 게 나아요. 한국에서 공부해도 시험 영어는 충분히 잘할 수 있고요. 무엇보다 현지에서 영어를 익히는 것보다 한국에서 국어나 수학을 공부하는 게 더 효과적이죠. 목표가 이렇다면, 영어를 위해 연수를 가더라도 지내는 내내 불안할 거예요. 돌아와서 후회할 수도 있고요.     박은정 작가는 “어느날 문득 캐나다행을 선택한 건 엄마인데, 정작 아이들이 타국에서 고생만 하는 건 아닐까 걱정된 적이 있었다”고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캐나다에 와서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길게 보면 외국에서의 경험이 아이에겐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낯선 환경과 언어 장벽을 극복해본 경험을 가진 아이들이잖아요. 그 경험이 성장에 밑거름이 되지 않을까요? 박은정 작가는 "캐나다에서 얻은 경험과 영어는 아이 인생에서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전민규 기자 관련기사 방학만 되면 이 가족 떠난다…3박 숙소비로 한 달 사는 꿀팁 박물관 한 번만 가지 마세요…‘공간 전문가’ 엄마의 팁 애들 학원 왜 보내? 그 돈 아껴 해외여행…10년 놀아본 이 가족

    2024.06.12 15:38

  • 아이와 놀아주는 게 어렵다? 부모가 ‘축구 캐스터’ 돼라

    아이와 놀아주는 게 어렵다? 부모가 ‘축구 캐스터’ 돼라 유료 전용

    아무것도 없어도 놀이를 만들어내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장난감이 아무리 많아도 뭘 하고 놀지 몰라 엄마만 쳐다보는 아이가 있어요. 놀이 지능(PQ·Play Quotient)의 차이예요.   장서연 토닥플레이 대표는 ‘놀이 지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놀이는 지능과 달리 높고 낮음이 없는 개념이지만, 놀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발달하는 능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그가 놀이 지능으로 꼽는 것은 창의적 사고력, 의사소통 능력, 협동 능력, 비판적 사고력, 자기 조절력, 자신감, 미디어 조절력 등 7가지다. ‘지능 지수(IQ·Intelligence Quotient)’처럼 널리 통용되는 개념은 아니지만, 놀이뿐 아니라 학습에도 꼭 필요한 능력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장 대표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놀이 전문가다.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연세대 어린이생활연구원에서 14년간 근무했다. 영유아 지도와 부모·자녀 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그는 지난해 육아·놀이 코칭 전문기업 토닥플레이를 세웠다. 『변화에 강한 아이는 놀이 지능이 다릅니다』 『토닥토닥맘 놀이 육아 바이블』 등 놀이 관련 책도 펴냈다. 아이의 놀이 지능을 키워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5일 장 대표를 만나 물었다.   ■  「 Intro. 놀이 지능이 필요한 이유 Part 1.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를 구분하라 Part 2. 스포츠 캐스터처럼 행동 중계하라 Part 3. 관심사에 딱 한 가지만 더해 줘라 」   ━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를 구분하라   장서연 대표는 “영유아 교육 시기가 빨라지면서 아이들이 ‘가짜 놀이’에 노출돼 있다”고 말했다. 생후 12개월 전후로 어린이집에 가기 시작하고, 만 3세면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에 가거나 학습 패드로 한글·수학을 공부하면서 학습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해진 탓이다. 그는 “기관이나 학원에 가지 않는 진짜 놀이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점검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짜 놀이와 가짜 놀이는 뭐가 다른가요? 진짜 놀이는 정해진 목표나 규칙이 없어요. 놀이라면 아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자유롭게 흘러갈 수 있어야 하는데, 가짜 놀이는 닫혀 있어요. 게임을 하는 것 같지만 여러 가지 보기에서 맞는 답을 찾아야 하고,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단어를 외워야 하니까요. 미술이나 축구 학원도 마찬가지예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한다면 놀이가 되지만, 정해진 주제나 방법을 따라야 한다면 학습이 됩니다.   놀면서 배우면 좋은 거 아닌가요? 그럼요. 더할 나위 없이 좋죠. 하지만 많은 분이 오해하는 게 있어요. ‘놀면서 배운다’는 건 스스로 배우는 것을 뜻해요. 아이스크림 장사 놀이를 하면서 숫자를 익히는 것처럼요. ‘아이스크림 얼마예요?’ ‘800원이요’ ‘그럼 3개 주세요. 여기 3000원이요’ ‘거스름돈 600원입니다’ 하다 보면 덧셈·뺄셈·곱셈·나눗셈이 다 나오잖아요. 그런데 엄마들을 보면 놀이는 뒷전이고 ‘8X3=24’를 가르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어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 놀이로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압박감부터 내려놓으세요. 학습지로 배운 아이나 놀면서 익힌 아이나 한글 떼는 시기는 결국 비슷해요. 초등학교 입학하면 누구나 할 수 있게 되니까요. 3~7세에는 학습보다 경험이 중요해요. 이 시기 아이의 뇌는 학습 정보를 주입식으로 받아들이고 기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든요. 구체적 사물을 통해 경험한 것을 기억하는 뇌가 더 활성화된 상태죠.   모든 걸 경험으로 배우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일상에 있는 사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보세요. 예를 들어 원의 특징을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동그란 물체를 만져보는 게 효과적이에요. 엄마와 함께 부엌에서 사과, 귤, 포도 등 서로 다른 형태의 과일을 만져보고 먹어본 장면으로 기억할 테니까요. 도형 모양을 활용한 교구도 많지만, 직접 만들어보는 것이 더 좋아요. 종이에 도형을 그리고 자르고 붙이고 합치다 보면 원리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거든요. 삼각형 두 개가 모이면 사각형이 되고, 찢고 남은 모양을 합치면 퍼즐처럼 맞춰지니까요.   결국 노는 게 아니라 가르치는 거 아닌가요? 누가 주도하느냐의 문제죠. 무엇을 어떻게 가지고 놀 것인가에 대한 선택권은 아이에게 있어야 해요. 양육자가 원하는 교구를 꺼내서 ‘오늘은 이거 하고 놀까?’ 묻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먼저 ‘오늘은 뭐 하고 놀까?’를 묻는 거죠. 부모가 놀잇감을 찾기 위해 애쓸 필요 없이 아이의 눈을 보세요. 그 시선을 따라가 보면 거기에 답이 있습니다. 아이가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는 것부터가 놀이의 시작이에요.     놀잇감을 선택할 때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나요? 코칭을 위해 가정 내 놀이 환경을 살펴보면 비슷한 놀잇감이 많아요. 보통 책이랑 교구는 잔뜩 있는데 만들기 도구는 하나도 없고요. 놀잇감을 고르는 건 아이지만, 다양한 선택지를 구비하는 건 양육자의 몫이에요. 색종이·풀·가위도 눈에 보이는 곳에 있어야 더 자주 꺼내서 가지고 놀 수 있어요. 너무 많아도 선택하기 어려우니 종류별로 한두 가지씩만 꺼내놓는 게 좋습니다. 관심도나 발달 단계에 맞춰 바꿔주는 것도 필요하고요. 장서연 토닥플레이 대표는 “남매를 키우며 기록을 위해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놀이 때문에 고민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보다 체계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놀이 코칭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경록 기자  ━  🚗스포츠 캐스터처럼 행동 중계하라   장서연 대표는 “놀이 지능을 키워주기 위한 양육자의 역할은 환경 정비사, 중계자, 파트너, 확장자 등 크게 4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안전하고 깨끗한 놀이 환경을 만드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놀이방을 만들어 두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것은 그다음부터다. 아이는 절대 혼자 놀지 않고 항상 누군가와 같이 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중계자 역할만 잘해도 놀이 활동의 80%는 완수한 것”이라며 “놀이가 쉬워지는 비결”이라고 강조했다.   중계자 역할이 뭔가요? 말 그대로 아이의 행동을 소리 내서 읽어주는 거예요. 아이가 책장에서 책을 꺼내면 “책을 꺼냈구나”, 컵을 들면 “컵을 들었구나” 하고 얘기해 주는 거죠. 마치 축구 경기에서 어떤 선수가 공을 차면 캐스터가 “누가 어느 방향으로 공을 찼다”고 말해 주는 것처럼요. 행동에 대한 가치 판단을 하기보다 그냥 있는 그대로 상황을 읊어주는 겁니다.     그게 어떤 효과가 있나요?   우선 아이의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아이는 모방을 통해 언어를 학습하는 데 보다 많은 어휘와 표현을 접할 수 있게 되죠.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효과도 있어요. 아이는 양육자가 자신의 행동을 지지해 준다고 생각해 자신감을 얻게 돼요. 양육자가 자꾸 “안 돼” “하지 마” 하고 행동을 저지하면, 아이는 눈치를 볼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하는 행동마다 인정을 받으니 다음 행동에도 거리낌이 없게 되는 거죠. 놀이에 집중하는 시간도 길어지고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군요.   영유아 시기에는 모두가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해요. 점점 자라면서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죠. 무언가 도전해 성공한 경험이 많으면 자신감 있는 아이로 자라지만, 실패한 경험이 많으면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가 되고요. 성공 경험을 쌓기 가장 좋은 게 놀이에요. 어떤 것에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숙달되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자신감이 다른 능력보다 먼저 발달하는 건가요?   7가지 놀이 지능에서 선후 관계나 우선순위가 있는 건 아니에요. 놀이를 하면서 여러 가지 능력이 동시다발적으로 길러지고 상호보완 작용이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 자신감은 의사소통 능력이나 협동 능력과도 관련이 있어요. 의사소통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잖아요. 아이들이 서로 같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은 상황을 가정해 볼까요. 자신감이 있는 아이는 ‘나, 이 장난감 하고 싶어. 너는?’이라고 물어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는 침묵하거나 회피하겠죠. 장난감을 뺏거나 집어던져 버릴 수도 있고요.     각각의 능력을 개발하기에 적합한 놀이도 있나요? 의사소통 능력을 키우는 데 가장 좋은 건 역할 놀이예요. 가게 놀이, 병원 놀이 등 하루에도 몇 번씩 이뤄지잖아요. 다양한 갈등 상황을 가정에서 미리 경험해 보면 또래 관계에서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도 잘 대처할 수 있어요. 신체 감각을 활용한 놀이는 협동 능력을 키우기에 좋죠. 풍선 옮기기나 이인삼각 달리기 같은 건 두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하니까요. 단, 아이 수준보다 너무 어려운 놀이는 피하는 것이 좋아요.     어려운 놀이도 해야 발달하는 것 아닌가요? 어려운 과제를 줬을 때 도전하는 아이도 있지만, 포기하는 아이도 적지 않아요. 아이는 색연필로 사과를 그리고 있는데 양육자는 옆에서 정물화를 그리는 수준이면 좌절감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그려볼게’가 아니라 ‘엄마가 그려줘’가 되는 거죠. 놀이의 목표는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 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죠. ‘어제보다 선을 더 길게 그렸네’ 등 아주 작은 것이라도 구체적으로 칭찬해 줘야 자신감이 쌓입니다. 『변화에 강한 아이는 놀이 지능이 다릅니다』에서는 7가지 놀이 지능과 이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놀이를 요일별로 소개한다. 월요일은 창의적 사고력과 미술 놀이, 화요일은 의사소통 능력과 역할 놀이 같은 식이다. 다양한 영역을 고르게 발달시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김경록 기자  ━  🚗관심사에 딱 한 가지만 더해 줘라    장서연 대표는 “놀이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확장자 역할”이라고 말했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의 수준보다 앞서가서 흥미를 잃게 하거나 아이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쪽으로 놀이가 전개될 수 있는 탓이다. 그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교사도 매일 고민하는 부분이다. 양육자도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지금보다 딱 한 가지만 더해 준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놀이를 어떻게 확장하나요?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를 기반으로 보다 다양한 영역을 경험할 수 있도록 관심사를 조금씩 넓혀 나가는 거예요. 예를 들어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가 있으면 자동차 이름도 써보고, 무슨 뜻인지 찾아보고, 어느 나라에서 만들었는지 살펴보는 거죠. 자연스럽게 그 나라의 위치나 국기, 언어 등으로 연결되고요. 자동차 번호판으로 한글과 숫자를 익히는 아이도 있고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니 더 많이 알고 싶어 하고, 학습 동기가 크니 학습 속도도 빨라지게 되죠.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자동차를 활용해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다. 자동차를 서로 다른 각도의 경사로에 굴려보는 모습. 사진 장서연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는 공룡으로 시작하면 되겠군요.   공룡 좋아하는 아이가 갑자기 자동차를 좋아할 순 없어요. 관심사가 전혀 다르니까요. 똑같이 공룡의 이름을 쓰더라도 공룡이 살았던 시대를 살펴보고 역사나 지구 환경, 기후 문제로 관심사가 뻗어 나가겠죠. 모든 아이가 공룡이나 자동차를 좋아할 필요도 없고요. 아이가 스스로 놀잇감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도 그래섭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놀이 자체가 재미없는 것이 될 테니까요.     그래도 아이에게 주도권을 주면 항상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 같아요. 그럴 땐 같은 자동차로 다르게 노는 방법도 있어요. 자동차는 좋아하는데 그리기엔 영 흥미가 없는 아이라면, 자동차 바퀴에 물감을 묻혀서 도화지 위에 굴려보게 하는 거예요. 미술 놀이는 창의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돼요. 자동차를 다양한 경사로에 굴려볼 수도 있죠. 시멘트나 나무 바닥, 잔디밭에서 굴러가는 속도가 다를 테니까요. 이러한 수·과학 놀이는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는 데도 좋습니다.   사고력을 키우는 데 어떤 도움이 되나요? 왜 이런 모양이 나왔는지, 왜 속도가 다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다른 자동차를 굴리면 어떻게 달라질까? 기울기를 바꾸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죠. 아이의 대답이 사실과 다르다 해도 굳이 바로잡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은 정답을 아는 것보다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자기 생각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요.   놀이 지능과 미디어 조절력은 어떻게 연결되나요? 아이들의 놀이 속에 이미 다양한 미디어가 들어와 있어요. 실생활과 밀접한 마트 놀이나 카페 놀이를 하다 보면 시대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데요. 카드 결제를 넘어 모바일 결제도 종종 등장해요. ‘현금을 안 가지고 왔어요. 휴대폰으로 결제해 주세요’ ‘저는 사이렌 오더로 주문할게요’라고 하는 거죠.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니까요. 이미 여러 번 봐서 익숙해진 장면이기도 하고요.   디지털 놀이와 접목도 필요하겠네요. 새로운 미디어를 활용하는 것도 놀이를 확장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에요. 마트 전단을 오려서 메뉴판을 만들고, 여기에 QR코드를 넣어서 휴대폰으로 스캔하는 것도 가능해요. 아이 사진이나 목소리를 넣은 동화책을 만들 수도 있고요. 다만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으니 이를 소중히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알려줘야 해요. 디지털 기기를 무작정 못 쓰게 하기보단 어떻게 하면 보다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봐야 하는 시점이 온 거죠.   좋은 놀잇감의 기준을 묻자 장서연 대표는 “정답이 없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블럭은 다양한 모양으로 쌓을 수 있고, 빈 통은 여러 가지 재료를 담을 수 있지만, 변신 로봇은 순서와 방법이 모두 정해져 있어서 사용이 한정적”이라고 설명했다. 김경록 기자 장서연 대표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놀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학습으로 배울 수 있는 지식은 기계로 대신할 수 있지만, 놀이로 얻을 수 있는 능력은 사람만 향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창 놀아야 할 유아기부터 학원을 전전하는 아이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지금보다 더 크고 빠른 변화에 대처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양육자와 놀아본 경험이 없는 아이는 커서도 혼자 놀 수 없어요. 부족한 능력을 채우려면 몇 곱절의 시간이 필요하겠죠. 글자와 숫자는 학교에서도 배울 수 있어요. 그럼 지금 이 시기에만 기를 수 있는 역량에 집중하는 게 더 효율적인 방법 아닐까요? 관련기사 자동차만 집착하는 아이, 말문 틔워 줄 6가지 놀이법 아이랑 놀 땐 그냥 누워라? 옆에 앉으면 안 되는 이유 내 자식 ‘수학 인생’ 바뀐다, 엄마가 밤 10시에 접속한 곳

    2024.06.09 15:06

  • “너 눈을 왜 그렇게 치켜떠?” 사춘기 엄마의 치명적 실수

    “너 눈을 왜 그렇게 치켜떠?” 사춘기 엄마의 치명적 실수 유료 전용

    사춘기 아이가 있는 집은 매일이 살얼음판이다. 사소한 일에도 버럭 화를 내는가 하면, 툭 하면 방문을 걸어 잠그고 말끝마다 대꾸를 한다. 보여도 안 보고 들려도 안 들어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끝내 아이와 부딪히고 만다.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기려고 하지 마세요. 그렇다고 져주지도 말고요. 밀고 당기면서 서서히 멀어지세요. 그래야 아이가 홀로 섭니다.   ‘사춘기 전문가’로 불리는 16년 차 김선호 교사(서울 유석초)는 “사춘기 아이와는 싸울 수밖에 없다”며 “결판을 내지 말고 무승부로 끝내라”고 조언했다. 승부가 나지 않아야 아이에게도, 부모에게도 상처가 덜 남는다는 것이다. 그는 “그래야 아이와 부모 모두 사춘기를 원만하게 보낼 수 있다”고도 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김 교사는 작은 형제회 가톨릭 수사(修士·수도회에서 순종·무소유·정결을 서약하는 수도자) 출신이다. 교사가 되기 전 12년 동안 수도회에서 수도자·사제가 되기 위해 수련했다. 감정이 널뛰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사이다 쌤의 비밀상담소』 『엄마를 이기는 아이가 세상을 이긴다』 등 사춘기를 주제로 한 책도 연이어 썼다.    그는 “믿고 지켜봐 주는 친절한 어른이 딱 한 사람만 있다면 아무리 방황하더라도 결국 아이는 돌아온다”고 믿는다. 숱하게 고학년 담임을 맡고, 3000건이 넘는 아이들의 사춘기 고민을 상담하며 내린 결론이다. 아이 곁에 ‘친절한 어른’으로 서 있다는 건 어떤 걸까? 아이가 사춘기를 잘 넘을 수 있으려면 부모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달 24일 그를 만나 물었다.   ■  「 Intro. 사춘기 싸움, 비겨야 끝난다 Part1.자존감: 자아존중감보다 자아존재감 먼저 Part2.안전거리: 감정처리는 각자 스스로  Part3.직관: 잠시 멈춰라   」   ━  😵자존감: 존중보다 존재감 먼저   “싫어요.” 사춘기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사춘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모든 것을 부정한다. 부정의 끝은 결국 자기를 향한다. ‘공주’이고 ‘왕자’였던 아이는, 자신이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아이는 불편한 감정을 말대답으로, 침묵시위로 드러낸다. 그런 모습을 보자면 부모 역시 마음이 좋지 않다. 화를 내려다가도 행여 엇나갈까 칭찬으로 돌아선다. 자존감을 높여주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다. 하지만 김 교사는 “자칫 허무한 칭찬이 삐뚤어진 자아상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체 사춘기가 뭐길래 이렇게 속을 썩이나요? 한자를 풀어보면 생각 사(思), 봄 춘(春), 봄(春)을 생각하는 시기잖아요. 이성(異性)에 대한 관심을 봄에 비유한 거죠. 사춘기에는 2차 성징이 나타나면서 신체가 성숙한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문제는 신체가 발달하는 속도를 정신이 못 따라간다는 겁니다. 정신적으로 신체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다 보니, 아이들은 혼란스럽습니다. 게다가 정서 조절 능력도 미숙해요. 그러니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거죠. 아이에게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으면 좀 낫지 않을까요? 자존감이요. 자존감은 ‘내가 여기 있음’을 자각하는 자아 존재감 위에 ‘형편없는 순간에도 나는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는 자아 존중감이 세워질 때 형성됩니다. 존재감 없이는 존중감도 자라기 어려워요. 그런데 상당수가 자아 존중감만을 자존감으로 여깁니다. “네가 최고”라는 식의 섣부른 칭찬을 많이들 하는데, 자아 존재감이 없다면 이런 칭찬은 효과가 낮습니다. 칭찬받을 존재가 없는데 칭찬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오히려 불안과 불신만 키우죠. 그래서 자아 존재감이 먼저라는 겁니다.   자아 존재감을 어떻게 심어 줘야 하나요?  바라보고 지켜보세요. 자아 존재감은 타인의 반응으로 인지되기 때문입니다. 영유아기엔 자주 시선을 맞추며 조건 없이 반응을 해줘야 존재감을 느낍니다. 10대에는 누군가가 바라봐 줄 때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느낍니다. 제 경우 매일 아침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줍니다. 타인의 눈길과 목소리가 닿을 때마다 아이는 자기 존재를 깨닫죠. 그런데 이때 주의점이 있습니다. 판단없이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판단하지 말라니 무슨 말인가요? 해석하지 말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말대꾸하며 부모를 쳐다봤어요. 아마 부모는 “왜 눈을 그렇게 떠?”라고 말할 겁니다. 아이가 쳐다보는 걸 문제 행동으로 단정 짓는 거죠. 아이는 그저 눈을 맞췄을 뿐인데 부정적으로 해석한 겁니다. 판단을 멈춰야 해요. 그저 ‘아이가 날 쳐다봤다’는 사실만 봐야 합니다. 대신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리진 않았는지, 목소리 톤은 어땠는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닌지 주변 상황까지 총체적으로 바라보세요. 있는 그대로 보는 시간이 누적되면 아이의 마음이 이해되는 순간이 옵니다. 저는 이 순간을 알아차림이라고 부르는데요. 아이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직감적으로 압니다. 지금 잔소리를 해야 할지, 칭찬해야 할지요. 아이도 압니다. 엄마·아빠가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걸요. 그럼 아이는 마음을 열어요. 부모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됐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이의 잘못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에 대한 경계선은 분명히 그어줘야 합니다. 아직 가치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에게 경계 없는 자유는 불안만 높입니다. 경계선이 생기면 안정감이 생겨요. 예를 들어 물건을 던지거나 친구를 때리는 폭력적 행동은 단호하게 제재해야 합니다. 다만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선택지를 주세요. ‘화가 난다고 물건을 던져선 안 돼’라고 말했다면, 화가 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택지를 주는 거죠. 산책을 한다거나 노래를 부르는 식으로요. 선택지가 일종의 경계선이 되거든요. 교사가 되기 전 12년간 가톨릭 수도회 생활을 한 김선호 교사는 "내가 여기 있다는 존재감만으로도 사춘기의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종호 기자  ━  😵안전거리: 감정처리는 스스로   아이가 “싫어요”라고 말하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렸다.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아이에게 화를 내며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김 교사는 “그래선 안 된다”고 했다. 아이의 방문을 벌컥 여는 대신 안방으로 들어가 ‘지금 나는 어떤 감정인지’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이다. 그는 “아이를 이기려고 하면 안 된다”며 “항상 일대일, 동점을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걸 보면 참는 게 쉽지 않아요.   승패에 집착하지 않으면 할 수 있어요. 사춘기 아이와의 싸움은 결론이 나지 않아요. 부모도 화가 날 겁니다. 또 아이와 대화로 풀고 싶은 마음도 있겠죠. 하지만 아이 방문을 계속 두드릴수록 관계만 더 나빠집니다. 어차피 아이에게 엄마·아빠 말은 안 들립니다. 자기를 부정하느라 바쁘거든요.   자기부정이요?   자신에게 주어졌던 모든 것을 거부해 보는 거죠. 사춘기는 관계가 확장되고, 생각에 균열이 생기는 시기예요. 또래 관계를 통해 우리 집 담장 너머, 다른 문화를 접하거든요. 게임을 하루 30분밖에 못하는 우리 집과 1시간 하는 친구 집을 비교하는 식이죠. 말끝마다 “왜 그래야 하느냐”고 묻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답은 어른이 줄 수 없습니다. 아이 스스로 찾아야 해요. 내가 원하는 것과 사회가 요구한 역할을 맞춰가는 건 각자의 몫이니까요. 자기 부정을 통해 내 길을 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가 말대꾸하면 대응하지 말고 자리를 피하라고 말합니다. 자기부정 중인 아이 옆에 있어 봤자 나만 상처받거든요.   그건 회피 아닌가요?   적절한 거리를 두는 건 부모 자신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부모도 스스로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특히 40대와 50대 역시 녹록지 않은 시기죠. 노화가 시작되고, 사회적 위치와 가치관에도 변화가 생기니까요. 그런데 아이를 키우느라 정작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지 못합니다. 엄마·아빠도 자기 존재를 지켜야 합니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아이와 떨어져 나를 돌볼 때입니다. 엄마·아빠도 인생 2막을 준비해야 해요. 건강도 챙기고 마음도 다스리면서요.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나요? 부모에겐 아이에게 휘둘리지 않을 힘이 필요합니다. 두 가지를 점검해야 해요. 먼저 사과의 기준이 필요해요. 아이가 짜증 내면 “엄마가 미안해” 하고 마무리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싸우고 싶지 않아서요. 이러면 부모는 아이의 감정 쓰레기통이 됩니다. 부모도 자존감을 지켜야 해요. 아이가 화를 내는 원인부터 파악하세요. 원인이 부모에게 있다면 사과해야겠지만, 친구에게 화가 났는데 부모에게 푸는 거라면 사과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화가 난 모양이구나” 공감만 하고 각자 시간을 가지는 게 낫습니다. 그래야 아이도 부모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감당하는 힘도 생기고요.   두 번째로 점검할 건 뭔가요? 아이에 대한 내 애착이 집착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춘기는 홀로서기를 하는 시기예요. 부모의 관심이 아이에겐 집착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항도 하는 거고요. 그런데 부모는 아이의 반항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윽박 지릅니다. 그래도 계속 반항하면 울며 감정에 호소도 하고요. 하지만 아무리 속이상해도, 아이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건 자제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수치심과 죄책감을 주거든요. 그럼 아이는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홀로서기를 포기합니다. 평생 부모 곁을 떠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이와 적절한 거리를 두는 팁이 있을까요? 공간을 분리하세요. 엄마만, 아빠만 앉는 작은 의자 하나면 됩니다. 분리된 공간에서 아이에 대한 내 마음을 점검해 보세요. 내 사랑이 애착인지, 집착인지를요. 그렇게 사랑하는 법도 바꿔가는 겁니다.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 시기, 40~50대에 접어든 양육자도 많은 변화를 겪는다. 김 교사가 "사춘기 아이의 감정을 다 받아주기보다 적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각자 자기를 돌보라"고 말하는 이유다. 김종호 기자.  ━  😵직관: 잠시 멈춰라     사춘기 고민의 8할은 관계다. 또래 관계부터 이성 문제까지. 마음을 어떻게 주고받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하지만 관계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관계가 좋아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아이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전전긍긍한다.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개입할 수도 없다.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김 교사는 “직관을 무기로 만들어 주라”고 했다.    직관이 뭔가요? 이성적 판단이나 감상적 느낌을 통하지 않고 사물과 상황을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죠. 직관은 경험으로 쌓인 데이터를 무의식중에 활용하는 겁니다. 말을 배우는 것도 사실 직관적인 과정이죠. 눈으로는 본 표정과 몸짓, 귀로 들은 소리를 기반으로 직관적으로 익혀요. 같은 ‘안녕하세요’라도 반가울 땐 톤이 높고, 슬플 땐 낮구나 알아채죠.    직관이 관계에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짜증 나”예요. 모든 감정을 이 하나로 표현하죠. 그런데 직관이 발달한 아이들은 그렇지 않아요. 자기감정이 뭔지 알아채고 그 안의 욕구를 간파해요. 자신을 꿰뚫어 보는 거죠. 이런 아이는 친구랑 놀다가 기분이 상할 때, 슬픈 건지, 부끄러운 건지, 억울한 건지 압니다. 자기감정을 정확하게 알면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도 판단이 서죠. 직관을 통해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럼 관계에서 생기는 문제를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나갈 수 있어요. 또 나를 잘 이해하면 그만큼 상대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요.   직관을 어떻게 길러주나요?   1단계는 데이터를 쌓는 겁니다. 책을 읽든 경험을 하든,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데이터를 쌓아야 하죠. 2단계는 문제를 풀어보는 겁니다. 내 수준보다 한 단계 어려운 문제를 풀면 더 좋아요. 또래 관계를 예로 들어볼게요. 초등 저학년 때는 모두가 친구예요. 싸워도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금세 다시 놀죠. 그렇게 친구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합니다. 아이가 크면 상황이 좀 달라져요, 마음이 맞지 않는 친구와 있을 때 불편하다는 걸 깨닫거든요. 갈등의 골도 깊어집니다. 문제에 마주한 거죠. 이 친구와 관계를 유지할지 말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과거 경험에 비춰서요. 하지만 관계가 무 자르듯 끝나지 않잖아요. 이렇게 풀리지 않는 문제에 봉착하면 멈춰야 합니다. 이게 3단계예요.   문제를 풀다가 멈추라고요? 마음이 안 맞는 친구와 억지로 관계를 유지하느라 힘들었다면 잠시 만나지 않는 거죠. 공부도 마찬가지예요. 안 풀리는 문제 붙들고 있다고 답이 떠오르지 않잖아요. 잠시 산책하며 쉬면 번뜩 답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이게 바로 직관입니다. 잠시 멈추고, 숨 고르기를 할 때 직관이 발동하며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거죠.   에너지 넘치는 아이에게 멈추는 건 말처럼 쉽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아이들과 매일 3~5분 명상을 해요. 생각과 판단을 멈추고 내 숨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거죠. 명상할 때 아이들이 더 잘 몰입합니다. 1분이라도 좋아요. 생각을 멈추는 훈련은 감정을 조절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 걸음 물러서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거든요. 직관이 발휘되는 순간, 아이는 한 뼘 더 성장하고요. 내 몸을 웅크릴 수 있는 공간은 안정감을 준다. 김 교사가 교실에 텐트를 세우는 건 그래서다. 텐트에서 엎드려 책도 읽고 게임도 하며 아이들은 잠시 멈춰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김종호 기자 김 교사의 교실은 여느 교실과는 조금 다른 풍경이다. 아이들의 책상 옆엔 텐트가, 교실 뒤엔 어항이, 교실 벽엔 낙서판이 있다. 아이들이 잠시 멈출 수 있게 마련한 공간들이다. 아이들은 각자가 원하는 공간에서 생각을 멈추고 온전히 나의 존재를 느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꽃이 되었다고 하잖아요.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잠시 멈춰서 아이를 바라봐 주세요. 1분이면 충분합니다. 이 1분이 아이가 홀로 서는 힘이 되거든요. 그렇게 자라면 아이도 누군가의 친절한 어른이 될 테고요. 관련기사 “절대 개입하지 말라, 그래야 멘탈갑 된다” 방이 돼지우리니? 이 말 나올 상황에 부모가 대신 해야할 말 부드럽지만 한번에 먹힌다…행복한 사람의 세 가지 말버릇

    2024.06.02 15:32

  • “부부관계 다음날 오세요” 난임 명의 시험관 성공 팁

    “부부관계 다음날 오세요” 난임 명의 시험관 성공 팁 유료 전용

    난임 치료는 부부가 함께하는 이인삼각(二人三脚) 경기입니다. 이걸 꼭 기억하셨으면 해요. 하나 더하자면 100m 달리기가 아니라 장거리 마라톤이라는 겁니다.   “임신에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학천 잠실 차병원 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가 부부의 사랑으로 태어나는 건 난임 치료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한두 번의 시술로 임신이 되기는 쉽지 않다. 부부가 서로 지지하고 응원하지 않으면 치료를 이어가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학천 원장은 1999년 강남 차병원에서 난임 연구와 진료를 시작해 지금까지 총 3만 건 이상의 난임 시술을 시행한 자타공인 난임 전문가다. 특히 고령·고위험 난임 분야에서 유명하다. 그가 원장을 맡은 잠실 차병원엔 국내 최초로 미성숙 난자의 체외배양(IVM)을 연구하는 센터가 들어선다. IVM은 난자 생성 전 어린 난포를 채취해 체외 배양하는 걸 일컫는다. 호르몬 이상으로 인한 다낭성 난소증후군이나 과배란 주사 부작용을 겪는 환자의 임신 가능성을 높여 주는 기술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난임은 더는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2022년 난임 시술 건수는 20만1412건으로, 혼인 건수(19만1700건)보다 많았다. 같은 해 난임 시술 출생아는 2만3000명으로, 그해 태어난 출생아(24만9186명)의 9.2%를 차지한다. 출생아 10명 중 1명은 시험관 시술이나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것이다.   1년 이상 노력했는데도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난임으로 분류한다. 여성 나이가 만 35세 이상일 때는 임신 시도 기간이 6개월을 넘어서면 난임이다. 지난해 여성의 초혼 연령은 31.5세, 첫 출산 연령은 33세였다. 난임 시술 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데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어떻게 해야 임신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까? 지난 23일 이 원장을 만나 물었다.   ■  「 Intro 난임 치료는 이인삼각 마라톤 Part 1 키맨은 아내 아닌 남편 Part 2 술·담배 아예 끊어라?  Part 3 임신, 나이가 절대적이다 」   ━  👨‍⚕️난임 치료, 키맨은 남편   병원에 간다고 바로 체외수정(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는 건 아니다. 초음파를 통해 정확한 배란 일정에 맞춰 자연임신을 시도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도 안 되면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으로 넘어간다. 인공수정은 난자 배란을 인위적으로 늘린 후 정자를 자궁에 주입하고, 체외수정은 난자와 정자를 실험실에서 수정해 키운 배아를 자궁에 이식한다. 최근엔 인공수정을 건너뛰고 바로 체외수정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2018년부터 5년간 체외수정은 70% 가까이 늘었지만(9만9603건→16만7611건), 인공수정은 소폭 줄었다(3만6783건→3만3801건).   인공수정이 체외수정에 비해 간단해 보이는데, 왜 줄었나요? 보통 인공수정을 3회 정도 시도한 뒤 체외수정을 합니다. 하지만 최근엔 바로 체외수정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요. 결혼이 늦어지면서 나이가 많은 부부가 늘었기 때문이죠. 환자가 요구하기도 하고, 주치의가 결정하기도 합니다. 난임 치료 중에 시험관 아기 시술이 가장 성공률이 높거든요. 일반적으로 인공수정은 15%, 체외수정은 50% 정도의 성공률을 보입니다.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을 좀 더 자세히 비교해 주세요. 두 시술 모두 난자의 과배란을 유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보통 매달 1개의 난자가 배란되잖아요. 이 개수를 늘려 임신 가능성을 높이는 거죠. 생리 2~3일째부터 약을 먹거나 주사를 투약해 난포를 성장시킵니다. 이후 초음파를 통해 난자가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해요. 그다음 남성의 정액을 채취해 운동성 좋은 정자만 선별, 자궁 내에 주입하는 게 인공수정입니다. 체외수정은 정자와 난자를 채취해서 실험실에서 수정시켜 배아를 만듭니다. 이 배아를 3일 혹은 5일간 키운 뒤 다시 자궁 내에 이식하고요. 얼마간 배양했느냐에 따라 3일 배양 배아, 5일 배양 배아로 구분합니다.   배양 기간에 따른 차이가 뭔가요? 3일 배양한 배아는 6~8개의 세포분열이 일어난 상태입니다. 자궁 내에서 스스로 발육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반면에 5일 배양을 거친 배아는 세포분열 수가 70~200개로 많습니다. 착상만 성공하면 되기 때문에 임신 성공률이 훨씬 높죠. 요즘에는 착상 전 유전자검사(PGT)를 실시해 상태가 좋은 것을 선별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수정란에도 등급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게 무슨 얘긴가요? 수정란의 모양과 세포의 촘촘함 등을 토대로 각각 A·B·C등급을 매깁니다. 보통 B·B등급 이상이면 상급, B·C등급이 중급, C·C면 하급으로 봅니다. 수정란 등급은 착상률에 영향을 끼칩니다. 차병원 기준으로 하급(C·C) 배아를 2개 이식했을 때 임신율은 30% 정도입니다. 반면에 상급(B·B) 배아를 두 개 이식했을 때 임신율은 80%를 넘죠.   난임 시술로 태어난 쌍둥이가 많은 게 임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개의 배아를 이식해서군요? 수정란을 무조건 많이 이식할 수는 없습니다. 법적 제한이 있어요. 여성의 나이가 35세 미만일 때는 5일 배양 1개, 3일 배양은 2개 이식할 수 있습니다. 35세 이상은 1개씩 늘어나요. 5일 배양 2개, 3일 배양 3개 이식하는 게 가능하죠.   왜 제한을 둔 건가요? 세계적으로 쌍둥이 임신을 줄이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유산이나 선천성기형의 위험이 더 증가하니까요. 유럽은 여성의 나이와 관계없이 수정란을 한 개만 이식할 수 있어요. 요즘 차병원도 상급 배아가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1개 이식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수정·이식·임신까지 한 번에 끝내자는 분위기죠.   착상이 잘되게 하는 방법은 따로 없나요? 저는 이식하는 전날 부부관계를 하고 오라고 말씀드려요. 대다수 의사가 이식 전에 성관계를 갖는 건 부정적으로 본다고 하더라고요. 감염 위험 때문에 꺼리는 건데, 의학적 근거가 없는 얘깁니다. 오히려 남성 정액에 포함된 물질이 자궁 내막에 자극을 줘 착상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설명을 듣다 보니 난임 시술 과정에서 여성이 감당해야 할 몫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맞습니다. 시험관 시술만 해도 과배란 주사 투약, 난자 채취, 수정란 이식이 모두 여성의 몫이죠. 신체적으로 힘들어요. 그래서 남편이 치료의 전 과정을 함께하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과배란 주사를 놓는 건 남편이 하는 게 좋아요. 자기 배를 찔러서 주사를 놓는 게 쉽지 않거든요. 가능하면 병원도 같이 가시고요. 20년 넘게 지켜보니 그런 부부가 확실히 임신도 잘됩니다. 이학천 잠실차병원장이 "난임 치료는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부부가 이인삼각으로 달리는 마라톤"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부부가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게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종호 기자  ━  👨‍⚕️술·담배 아예 끊어라? 적당히 즐겨라   포도즙·추어탕·부추·두유·대추차…. 착상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진 음식들이다. 이식이 끝난 난임 환자는 이런 음식을 찾아 먹느라 바쁘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한의원을 찾는 경우도 많다. 몸을 따뜻하게 하는 한약을 먹으면 임신 성공률이 높아진다는 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음식이나 한약이 착상에 도움이 된다는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저도 난임 시술을 받아 아이를 낳았어요. 첫 진료 때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 뭔지 물었던 기억이 나요. 이식한 뒤엔 남들처럼 포도즙·추어탕·부추도 열심히 먹었고요. 어떤 마음인지 압니다. 그래서 저도 다 드시라고 합니다. 특히 시부모님이 지어주신 한약은 꼭 드시라고 해요. 괜히 갈등을 만들 필요가 없으니까요(웃음). 마음이 편해야 하거든요. 무엇을 먹는지보다 훨씬 중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술·담배도 아예 끊으라고는 얘기 안 합니다.   금연·금주는 필수 아닌가요? 술·담배 안 하는 게 당연히 좋습니다. 특히 흡연은 임신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커요. 하지만 아예 끊는 게 엄청나게 큰 스트레스라면요? 난임 치료가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남편과 흡연 문제를 두고 싸우는 분이 많은데,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금지하는 게 많을수록 스트레스만 커져요. 치명적인 문제가 아니라면 적당한 선에서 즐기는 게 나을 수 있어요. 그렇다고 술·담배가 괜찮다는 건 아니니 오해하면 안 됩니다. 반드시 끊어야 하는 시점엔 끊으셔야 하고요.   그게 언제인가요? 난자·정자 채취 기준으로 술은 한 달, 담배는 3개월 전부터 끊어야 합니다.    시술한 다음에는 아무래도 안정을 취하는 게 좋겠죠? 평소 하던 대로 하면 됩니다. 예전에는 이식하고 나서 무조건 입원을 했어요. 통계적으로 그래야 임신이 잘 된다고 해서요. 하지만 요즘엔 그렇지 않죠. 시술 후 일상생활을 하는 게 착상에 더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어요. 특별히 문제가 있는 경우가 아니라면 평소대로 생활하세요. 일도 하고, 운동도 하고요. 개인적으로는 독서나 영화 감상처럼 마음의 안정을 얻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으시길 바라요. 임신이 실패로 끝나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럴 때 상실감을 좀 상쇄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두는 게 필요하죠.   어느 병원에 갈지, 어떤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지 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요, 기준이 있을까요? 모든 건 상대적이에요. 사람들이 명의라고 추천하는 의사가 나에게도 맞으란 법은 없으니까요. 적극적으로 시술하고, 세세하게 설명해 주는 젊은 의사를 선호하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경험이 풍부하고 연륜이 있는 의사랑 잘 맞는 환자도 있죠. 요즘에는 난임카페에서 다양한 정보가 공유되니 그런 걸 참고해서 자신에게 맞는 의사를 찾으면 됩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주치의에 대한 신뢰예요. 한번 결정했으면 적어도 3회 정도 이식할 때까지는 믿고 따르는 게 좋습니다. 이학천 잠실차병원장은 "난임에 좋다는 음식 중에 의학적 근거가 밝혀진 것은 없다"며 "이식 이후에도 평소처럼 생활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  👨‍⚕️임신, 나이가 절대적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분만 예정일 기준으로 만 35세 이상을 고령 임신으로 규정한다. 이때는 자연 임신이 어렵고, 임신에 성공해도 유산·조산 비율이 높다. 임신성 고혈압, 임신성 당뇨, 저체중아 출산, 전치태반 같은 임신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도 커진다. 이 원장은 “오늘이 가장 임신 가능성이 높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만큼 임신에서 나이가 중요하다는 건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렇습니다. 나이보다 중요한 요인은 없어요. 우리 몸이 그렇게 세팅돼 있습니다. 여성은 태어날 때 100만~200만 개의 난자를 갖고 태어납니다. 초경을 시작하면 이 중 절반이 줄어들어서 50만~100만 개가 되죠. 인간의 신체 상태는 20대 초·중반에 정점을 찍고, 20대 후반부터 노화가 시작됩니다. 노화의 속도가 가장 급격히 이뤄지는 게 35세 전후예요.   그럼 30대 후반만 돼도 자연임신이 어려운 건가요? 미국 산부인과의사협회에 따르면 20~30대 초반에는 임신 가능성이 25%지만 40세에는 10%로 줄고, 45세가 되면 자연임신 가능성은 없어진다고 합니다. 실제로 40대가 넘어가면 난자 수는 더 줄어서 1만 개 정도가 남아요. 정상 난자 수도 초경 때 90% 이상에서 40대 이후에는 10% 전후로 줄어들고요.   남자도 나이가 중요한가요? 당연합니다. 남성 난임은 전체 난임의 30~40%를 차지하고, 점점 증가 추세예요. 강남차병원에서 35세 미만의 남성과 45세 이상 남성의 정액과 협증 생식호르몬을 비교 분석했어요. 45세 이상에서 정액량과 정자 운동성 감소 등이 발견됐죠.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정자 수가 난자보다 월등히 많기 때문에 치명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뿐이죠.   결혼 연령이 늦어지면서 난자 냉동에 대한 관심도 커지는 것 같아요. 30대 중반인 여성이라면, 임신 계획이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검사받고 계획을 세우셨으면 좋겠어요. 현재 정부에서도 부부를 대상으로 임신 사전 건강관리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난소 나이 검사’로 불리는 난소 기능검사와 초음파 검사 시 최대 13만원, 남성은 정액 검사 시 최대 5만원을 지원해요. 일단 검사부터 받고 난자 냉동 같은 방법을 고민해도 됩니다. 최근엔 둘째를 낳고 싶지만 당장은 계획이 없는 부부가 수정란을 냉동하기도 해요. 임신을 생각하면 하루가 아쉬워요. 40대가 돼서 ‘더 빨리 시작할 걸’ 하고 후회하는 분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강남 차병원에서는 50세 여성이 얼리지 않은 자기 난자로 시험관 시술을 받고 2021년 출산에 성공하는 일이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드문 케이스였지만, 엄마의 바람이 간절했고 의료진 역시 최선을 다했다. 이 원장은 “40세가 넘어 임신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임신, 포기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모든 난임 부부들이 희망을 놓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이학천 잠실차병원장이 "2021년 50세 여성이 임신에 성공하는 일도 있었다"며 "포기하지 않으면 임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관련기사 헉, 살 안 빠지는 이유가…‘느린 안락사’ 그 범인은 누구 제멋대로 뒀더니 멋지게 컸다, 서울대 엄마가 가르친 딱 하나 “당신 애 그러다 노예 된다” 참사 불러오는 엄마의 습관

    2024.05.29 16:31

  • 제멋대로 뒀더니 멋지게 컸다, 서울대 엄마가 가르친 딱 하나

    제멋대로 뒀더니 멋지게 컸다, 서울대 엄마가 가르친 딱 하나 유료 전용

      ■  「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지난달 만난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은 “아이에게 올인하는 완벽한 엄마보다 자기 삶을 사느라 조금 빈틈 있는 엄마가 낫다”고 했다. 그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빌려 이들 엄마를 ‘초자아 엄마’와 ‘이드 엄마’라 칭했다. 초자아는 완벽하고 도덕적인 것을 추구한다면, 이드는 욕망에 충실한 자기중심적 성향이다. 자기 인생을 즐기는 ‘이드 엄마’로 살아도 아이는 정말 잘 클 수 있을까? 『부모는 관객이다』라는 생각으로, 아이들과 함께 미국 시골에서 『숲속의 자본주의자』로 살아가는 박혜윤(49)씨를 줌으로 다시 만난 이유다. 」  박정민 디자이너 엄마가 제멋대로 살아도 아이가 잘 클 수 있을까? 이 질문의 답을 박혜윤씨에게서 찾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아이가 잘 컸다’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 박씨는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거니와 잘 컸다는 기준도 모호하다”며 거부감을 표했지만, 그의 첫째는 미국 명문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워싱턴대에 진학했다. 이 역시 박씨는 “명문대로 보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했지만, 이 대학을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준비해 합격한 게 포인트다. 그렇다면 ‘엄마 박혜윤’은 ‘제멋대로 엄마’일까?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으니, 그렇죠. 그런데 우리 집에선 다 그래요. 남편도, 아이들도 생긴 대로 살죠. 그게 우리 집 원칙이거든요. 저나 남편은 아이들을 바꾸려 하지 않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다. 아이를 둘이나 키우지만, 부부에겐 직장이랄 게 없다. 한국에서 기자였던 박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박사 학위까지 땄지만, 교수가 되지 않기로 했다. 박씨와 같은 회사에서 기자로 일했던 남편도 5년 뒤 “가족과 함께 살겠다”며 사표를 쓰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남편은 현재 수영장에서 안전요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글을 써 돈을 번다. 박씨가 교수가 되지 않기로 결정한 것도 단순한 이유다. 지극히 사적이고 사소한 일상을 관찰하기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 보기에 그럴듯한 것 대신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사는 부부가 아이들에게 그런 삶을 요구할 리 없다. 이 집 아이들에겐 공부를 잘해야 할 의무가 없다. 부부 역시 뭔가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제때 먹이고, 입히고, 안전을 책임질 뿐이다. 이 독특한 가족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그리고 이 독특한 부부는 어떻게 아이들을 키울까?     ━  Part1. ‘제멋대로 엄마’의 탄생    박혜윤씨는 이 독특한 가족의 뿌리이자 중심이다. 그 역시 “내가 우리 가족이 존재하는 세계의 수호자”라고 말한다. ‘제멋대로 박혜윤’이 ‘제멋대로 엄마’가 되고, ‘제멋대로 엄마’가 ‘제멋대로 가정’을 만든 셈이다.     박씨는 ‘제멋대로’ 산 것 같지 않은 이력을 가졌다. 서울대를 나와 주요 일간지 기자를 거쳐 미국 워싱턴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교수 역시 못 했다고 할 수 없다. 시도했는데 안 된 게 아니라, 하지 않기로 했으니 말이다. 교수 대신 무직자를 선택한 그는 천장을 쳐다보며 멍 때리다 낮잠을 자고, 하교한 아이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산다. 남들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말이다.   “그렇다고 제가 나를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자신에게 천착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남에게 관심이 많죠. 저는 늘 관찰해 왔어요. 부모님을, 선생님과 친구를, 애인을 관찰했죠. 엄마가 된 후론 아이를 관찰해요. 타인을 관찰하면서 나를 인식하고, 만들어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네요.”   그의 집요한 관찰의 근원엔 불안이 있었다. 그를 불안하게 한 건 바로 부모였다. 아빠는 성실한 가장이었고, 엄마는 헌신적인 아내였다. 도박이나 폭력, 음주나 외도 같은 문제도 없었다. 다만, 화목하지 못했다.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고, 아이였던 그가 견디기 힘든 강도로 싸우기도 했다. 엄마·아빠가 언제 싸울지,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던 아이는 기록하기 시작했다. 싸움이 어떻게 시작됐고 전개됐는지, 그 끝은 어땠는지 세세하게 적었다. 그러기 위해 집요하게 관찰했다.   타인으로 시작한 관찰은 청소년기가 되자 자신에게로 이어졌다. 문제는 자신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계산하면 할수록, 사는 것보단 죽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죽으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결국 죽진 못했다. 너무 배가 고파서, 너무 잠이 와서 일단 먹었고, 일단 잤다. 죽음을 고민하면서도 공부도 제법 성실하게 했다. 문제를 일으켜 피곤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다. ‘왜 나는 이토록 위선적일까’ 고민하며 이런저런 책을 탐독한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 ‘이기적 유전자의 성실한 숙주인 나는 죽을 순 없겠구나.’ 이걸 받아들이니, 그럼 내키는 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시절 내내 막살았어요. 클럽에 다니고 술을 마시고 연애를 했죠. 그런데 어느 날 클럽에서 노는데 너무 졸린 거예요. 재미는커녕 괴로울 정도로요. 그래서 서둘러 집에 와 침대에 누웠는데, 그 순간 쾌감이 느껴졌어요. 집이 너무 싫고, 그래서 막살려고 집을 나와 클럽에 갔는데 정작 집이 천국인 거죠. ‘막사는 게 대체 뭐지?’ 싶었어요. 나한테 막사는 건, 클럽에서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졸릴 때 침대에 눕는 거더라고요. 그 뒤로 내가 쾌감을 느끼고 만족해하는 것들을 찾아다녔죠.”   그는 자신의 삶을 ‘실험’이라고 표현했다. ‘극강의 만족감을 느끼는 삶은 어떤 삶인지’ 찾는 실험 말이다. 그 실험의 과정에서 남편을 만났고,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제멋대로 엄마' 박혜윤씨를 만든 건 집요한 관찰이었다. 타인으로 시작된 관찰은 자신과 아이에게로 이어졌다. 사진은 2022년 『도시인의 월든』출간 직후 한국을 찾았을 때 모습이다. 권혁재 기자  ━  Part2. 아무것도 안 했다? 하나는 확실히 했다    중학교 2학년인 그의 둘째가 최근 수영대회에 나갔다. 박혜윤씨 부부는 아이를 경기장까지 데려다줬지만, 경기 내내 자리를 지키진 않았다. 그건 첫째가 조정대회에 나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경기가 끝나고 다시 만난 둘째는 기분이 좋았다. 기록이 좋아 여러 주(州)의 아이들이 모여 경합하는 대회에 나갈 것 같단다. 아이는 “가기로 되어 있는 친구의 엄마가 데려다줄 수 있다”며 “비행기 표만 사 달라”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공식 기록은 주 대회 참가 기준에 0.03초 못 미쳤다. 박씨 부부는 “괜찮아. 나중에 더 잘해서 가면 돼”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기분 진짜 안 좋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뭐. 너 먹고 싶다던 스타벅스 음료 먹으러 갈래?”   박씨의 육아는 이렇다. 원하지 않는데 먼저 해주는 건 없다. 뭘 해보라고 권하지도 않거니와 성취를 요구하지도 않는다. 아이가 원한다고 다 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부부가 할 수 있고, 해주고 싶은 만큼 지원한다. 할 수 있는 범위 밖이면 담백하게 거절한다. 그 어떤 것도 아이의 당연한 권리이자 부모의 의무가 아니듯, 성취 역시 아이의 의무도, 부모의 권리도 아니다. 그래서 아이도 원하는 걸 말할 땐 충분히 고민한다. 어느 만큼 요구하고, 또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말이다. 박씨가 아이에게 가르치고 싶은 건 바로 이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얻으려면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을 살면서 꼭 갖춰야 할 역량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그 외의 나머지 것들은 모르겠어요. 공부 잘하면 돈 많이 벌 수 있을까요? 코딩 공부를 꼭 해야 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박씨가 아이의 준비물도, 숙제도 챙기지 않는 건 그래서다. 첫째는 초등학교 입학 1년 뒤 이렇게 선언했다. “나 이제 숙제하는 사람이 될래.” 첫째는 숙제도, 준비물도 스스로 잘 챙겼다. 그런 걸 빠뜨리면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걸 입학 첫해 깨달은 거다. 대학 진학도 스스로 챙겼다. 성적 관리, 서류 준비, 전공 선택 등 모든 걸 혼자 했다. 반면에 둘째는 달랐다. 몰입해서 숙제하지만, 챙겨 가는 덴 별 관심이 없었다. 준비물을 빠뜨리면, 없는 대로 넘어갔다. 여행을 가도 필요한 걸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는 첫째와 달리 둘째는 빠뜨리면 절대 안 되는 것마저 챙기지 않곤 한다. 박씨는 꼼꼼한 첫째가 너그러워지길 바라지도, 무심한 둘째가 꼼꼼해지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채고, 받아들이고, 대처하길 바랐을 뿐이다.   아이에게 모든 걸 바치는 헌신적인 엄마에 비하면 박씨는 ‘불량한 엄마’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실 박씨도 한 가지 한 게 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어려운 일이다. 바로 참고, 견디고, 버티는 것. 사실 서툴고 거친 아이를 지켜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 이유식을 먹여본 양육자는 안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밥그릇을 끼고 앉아, 반은 흘리고 반은 먹는 아이를 보고 있느니 후다닥 먹여주고 마는 게 편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박씨는 그걸 보고 있었다. 이유식 시작하고 반년을 버텼다. 그랬더니 아이가 스스로 먹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온 가족이 함께 밥을 먹었다. 수영 강습 초반 아이가 수건을 빠뜨리고 가 휴지를 온 머리에 덕지덕지 붙이고 온 일도 있다. 그는 화내는 대신 크게 웃었다.   아이에게 도무지 열정이라곤 없는 것 같은 엄마에게 아이들은 불만이 없을까? 박씨는 큰아이와의 일화를 들려줬다.   “한번은 제가 자녀 교육서를 읽고 있는데, 고등학생이던 첫째가 그러더라고요. 엄마도 자녀 교육서를 써야 한다고요. 자기도, 동생도 성공했다는 거예요. 자기는 자기 삶을 너무 좋아하고, 매일이 기대가 되니 성공한 거래요. 예민한 동생도 자주 울긴 하지만 자기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고 또 훌훌 털고 웃을 줄 아니 성공했고요. 그래서 제가 말했죠. 엄마는 한 게 없는 것 같다고요. 그랬더니 이러더군요. 엄마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 같지만 모든 걸 다 했다고요. 말로 설명은 못 하겠는데, 자기들이 잘 자란 게 엄마 덕분이라는 거예요.”   아마 아이는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으리라. 엄마가 참고, 견디고, 버티며 그 자리에 있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아이가 울며 돌아왔을 때 “너 먹고 싶다던 스타벅스 음료 먹으러 갈래?” 하고 물어봤다는 걸 말이다.  박혜윤씨는 두 딸을 관찰했다. 그저 옆에서 바라봐주는 것 외엔 별달리 한 게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들 스스로 원하는 걸 알아채고, 찾아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사진은 두 딸의 어린 시절 모습. 사진 속 어린이들은 이제 중학교 2학년, 대학교 2학년이 됐다. 사진 박혜윤  ━  Part3. 제멋대로 엄마가 만든 느슨한 세계    박혜윤씨의 남편은 때로 화를 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대놓고 반항하진 못하지만, 은근히 깐죽거리는 첫째가 아빠의 말끝에 “아빠가 그렇지, 뭐” 하고 토를 단다. 그였다면 “맞아. 엄마가 좀 그렇지?” 하곤 깔깔 웃었을 것이다. 아이가 박씨의 게으름이나 부주의함·무신경함을 지적하면, 그렇게 반응한다. 그는 오히려 ‘난 이런 사람이니까, 아이도 이걸 아니까, 앞으로 계속 이렇게 해도 되겠군’ 하는 마음이 들어 자유로운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남편은 다르다. 아빠를 무시했다는 생각에 화를 낸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엄마 대부분은 아빠에게 버릇없이 굴었다고 아이를 다그칠 테다. 하지만 박씨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빠가 왜 화를 내는지 네가 다 이해할 필요는 없어. 아빠는 그냥 화가 나는 거야. 그렇다고 네 잘못도 아니야. 네가 잘못했는지 아닌지는 아빠가 화를 내든 안 내든 상관없이, 너 스스로 판단하는 거니까.”   박씨는 “남편이 화를 내지 않거나 줄여야 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인정하면 고쳐야 하는 고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변화란 두려운 법이다. 남편이 화를 낼 때 그저 다른 가족은 ‘아, 아빠가 화가 났구나. 그냥 그대로 두자. 그게 아빠니까’ 하면 된다. 그게 아빠의 단점이지만, 고치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 그건 아빠의 일이다. 가족의 몫은 그런 아빠를 인정하고, 내버려두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냉정한 가족이에요. 가족이라서 꼭 함께해야 하는 일도 없고, 가족이라서 모든 걸 이해하고 수용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크리스마스라고 제가 내키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을 기분 좋게 해주려고 하지 않아요. 아이들도 어버이날이라고 자기들이 내키는 것 이상으로 뭔가를 하지 않고요. 그러지 않아도, 그저 그 사람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 냉정함이 결코 나쁜 게 아니라는 건 둘째가 증명한다. 둘째는 기질 자체가 떼쟁이에 울보로 태어나 걸핏하면 울었다. 다 울고 나면 아이는 말했다. “이유는 모르겠어. 그냥 눈물이 나와.” 그는 아이가 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때까지 울도록 둔다. 그렇다고 방치하는 건 아니다. 너무 시끄럽지만, 힘껏 참으며 그저 곁을 지킨다. 그만 울라고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 않는다.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아이는 더 빨리 울음을 그쳤다. 이제 둘째는 첫째의 말대로 ‘잘 울지만 그렇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나면 훌훌 털고 잘 웃는 아이’가 됐다.   박씨는 서로에게 무엇을 바라거나 구하지 않고, 더 나아지거나 채우려 하지 않는 그런 느슨한 가족을 만들었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생긴 대로 바라봐주는 그런 가족 말이다. 그런 가족 안에서 엄마와 아빠, 아이는 각자 자기 생긴 대로, 마음껏 산다. 이것이 제멋대로 엄마가 만든 이 가족의 유일한 원칙이다. 박혜윤씨(왼쪽)와 그의 남편 김선우씨. 부부는 각자 생긴 대로 마음껏 살며, 모든 구성원이 그렇게 사는 느슨한 세계를 만들었다. SNS가 점령한 시대, 타인의 욕망을 좇으며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들 같은 느슨한 가족 아닐까? 사진 박혜윤 몬테소리. 양육자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이탈리아 정신과 의사였던 그는 아이를 어른의 지시를 받고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미숙한 존재로 보지 않았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성장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 봤다. 그래서 그는 모든 일을 아이 스스로 반복해서 하도록 돕는 교육을 주창했다. 포인트는 서툴고 성에 차지 않아도 도와주지 않는 것이다.     인터뷰를 시작할 때 눈앞엔 자기 욕망에 충실한 ‘제멋대로 엄마’가 앉아 있었다. 하지만 2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가 끝날 무렵 눈앞에 앉아 있는 건 ‘몬테소리’였다. ‘제멋대로 엄마’ 박혜윤씨가 만든 느슨한 세계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탐색하며 성장했다. 준비물 한 번 안 챙겨준 첫째가 명문대에 입학한 건 뉴스가 되기엔 너무 당연한 일이 아닐까? 관련기사 아이에게 집안일만 가르쳤다…부족 같은 이 가족이 사는 법 “당신 애 그러다 노예 된다” 참사 불러오는 엄마의 습관 “욕망에 충실한 엄마가 낫다” 정신과 의사 상식파괴 육아팁

    2024.05.26 14:40

  • 내 자식 ‘수학 인생’ 바뀐다, 엄마가 밤 10시에 접속한 곳

    내 자식 ‘수학 인생’ 바뀐다, 엄마가 밤 10시에 접속한 곳 유료 전용

    ‘5 다음은 6’ ‘3+8=11’. 어른에겐 너무 당연한 명제다. 하지만 이 개념을 4~7세 아이가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이 첫 수학 공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는 내용보다 방법을 더 많이 고민해야 합니다.   유아·초등 수학 전문가인 최경희 달콤수학 대표는 “아이가 더 쉽고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공을 들여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어릴 때부터 간단한 수 개념이나 연산이라도 원리를 이해하고 스스로 답을 찾아 보아야 수학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학원 수업, 문제집을 통해서만 수학을 접해선 안 된다. 최 대표는 “개념·유형을 외워서 문제만 푸는 수학 학습에 길들여지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가 될 수밖에 없다”며 “유아 수학에선 일상 대화와 보고 만지는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그는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4년 전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다. 수강생은 아이가 아닌 엄마다. 오후 10시가 넘은 밤, 아이를 재운 양육자들에게 유아·초등 수학을 가르친다. 사고력 수학, 도형, 연산 등 수학 영역별로 어떤 교구를 갖고 무슨 활동을 어떻게 할지 알려준다. 지금까지 3만3000여 명이 그의 엄마표 수학 강의를 들었다. 수업 때마다 쏟아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담아 최근 『보고 만지는 수학은 이렇게 가르칩니다』라는 책도 펴냈다. 그는 “엄마가 수학을 공부하면 아이의 수학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엄마표로 아이 수학 머리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지난 13일 서울 송파구 사무실에서 최 대표를 만나 물었다.     ■  「 Intro 양육자가 초등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 Part 1 사고력 수학 학원 보내면 끝? Part 2 문제집 풀이만? 보고 만지며 배워라 Part 3 양육자의 질문부터 바꿔라  」   ━  🔢사고력 수학 학원 보내면 끝?   요즘 학군지에선 빠르면 5세부터 사고력 수학 학원에 다닌다. 유명 학원의 입학시험, 레벨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미리 한글을 떼고 연산 선행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경희 대표는 “이 시기엔 수학을 잘하기 위한 학원이나 문제 풀이는 필요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수학을 잘하는 데 필요한,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학 선행이 대세이다 보니 유아 수학 학습 시기도 앞당겨진 것 같아요. 아이 수학은 몇 살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몇 살부터 해야 한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어요. 아이는 이미 영·유아기 때부터 자연스럽게 수학을 배우고 있거든요. 주변을 돌아보면 수학이 아닌 게 없잖아요. 아이는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면서 무게 개념을 익힙니다. 공을 차면서 원의 특성을 깨닫고요. 과자·사탕 같은 간식을 가족·친구들에게 나눠주면서 가르기·뺄셈도 해보죠. 학습적으로 접근하면 수학 동화를 읽고 보드게임을 하는 것도 다 수학 활동이에요. 이런 일상의 경험이나 대화가 수학 개념의 밑거름이 됩니다. 그런데 요즘 양육자들은 각 잡고 문제 풀고, 학원 다니는 것만 수학 공부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안타깝습니다.   학원에서 체계적으로 배우면 수학 실력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요? 대부분의 양육자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면 수학 실력이 향상될 거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어요. 학원 보낸다고 집에서 수학에 손 놓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보통 유아 사고력 학원에선 일주일에 한두 번, 50~90분 수업합니다. 체험학습에 가깝다고 봐야 해요. 교구 몇 번 만져보는 정도로 도형 감각이나 공간 지각 능력이 좋아질까요?   결국 집에서 하는 활동이 중요하단 거군요. 수학을 능숙하게 잘하려면 충분한 연습과 시간이 필요해요. 백지 상태에 가까운 아이가 새로 배운 개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면 여러 번 반복해야 합니다. 엄마가 생각하는 ‘여러 번’과 아이가 필요로 하는 ‘여러 번’은 달라요. 또 옆집 아이와도 다릅니다. 옆집 아이는 10번 반복해 해당 개념을 이해했어도, 우리 아이는 20~50번 걸릴 수 있습니다. 하루 10분이라도 꾸준히 집에서 수학 활동을 해야 하는 이유죠.   초등학교 입학이 다가올수록 양육자는 조급해집니다. 유아 때 어느 정도까지 배우는 게 좋을까요? 1학년 때 나오는 사고력·심화 문제를 풀 수 있는 수준까지는 학습하길 권합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초등학교 가서 처음 개념을 접하게 되면, 능숙해질 시간이 없습니다. 수업 내용 중에 이해가 안 되는 게 많아지면 자신감이 줄어듭니다. 특히 이때는 ‘나는 잘한다’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효능감이 중요한 시기잖아요. 수학에 자신감이 생겨야 수학 시간이 더 즐거워지죠. 유아기 수학의 궁극적인 목표와도 연결됩니다.   유아기 수학의 궁극적인 목표는 뭔가요? 수학에 대한 긍정적 정서와 태도를 만들어 주는 겁니다. 수학을 잘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수학을 좋아하고 재밌게 느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좋아하면 자꾸 하고 싶잖아요. 어려워 보이는 문제에도 도전해 보고, 다양한 방법으로 풀려고 노력하죠. 너무 어렸을 때부터 많은 문제집을 풀거나 ‘학원 뺑뺑이’를 시키지 말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그러면 수학을 어렵게 느낄 가능성이 크거든요. 본격적으로 수학 공부를 시작하기 전부터 ‘수학 싫어한다’ ‘수학 못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죠.   최경희 달콤수학 대표는 "유아 시기에는 수학에 대한 긍정적인 정서와 태도를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학을 좋아하고, 해볼 만하다고 느껴야 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김경록 기자  ━  🔢 문제집 풀이만? 보고 만지며 배워라   ‘엄마표 수학’이라고 하면 흔히 학원 보내지 않고 엄마가 아이를 끼고 문제집 푸는 방식을 떠올린다. 최경희 대표는 “문제집만 풀어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수학은 추상적 학문인데, 2~7세 아이의 뇌는 이를 이해할 만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달심리학자 장 피아제에 따르면 이 시기 아이들은 논리보다 감각·직관에 의존하고, 구체적 사물을 직접 보고 만지면서 개념·지식을 익힌다. 최 대표가 “구체물·교구를 보고 만지는 경험이 유아 수학 공부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아이가 수학 교구나 보드게임만 하면 노는 것 같아요. 문제집도 풀어야 하지 않나요? 초등 저학년 수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연산을 예로 들어 볼게요. 연산을 잘하려면 연습을 통해 속도와 정확도를 높여야 합니다. 문제 하나를 다양한 상황에 대입해 여러 방법으로 풀어보는 경험이 필요하죠. 현실적으로 문제집도 풀어야 하는 건 맞아요. 다만 보고 만지는 활동을 통해 개념·원리를 이해하는 게 우선입니다. 문제집은 해당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보조 수단으로 활용해야죠. 그런데 대부분의 양육자는 이런 점을 간과하고 있어요. 아이 입장에선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어렵게 가도록 만드는 셈이에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연산 문제집에서 틀린 문제가 많거나 진도가 잘 안 나가면 어떻게 하나요? 문제집을 더 많이 풀게 합니다. 이럴 때는 문제집에 나온 문제를 교구나 구체물을 이용해 풀어보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모으기·가르기 문제에서 사탕을 그릇에 나눠 보게 하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죠. 계산할 때 손가락 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문제 풀 때 손가락으로 세면 혼내는 양육자가 많은데, 그러면 안 됩니다. 손가락만큼 좋은 교구는 없거든요. 손가락 쓰는 게 번거롭게 느껴질 때까지 충분히 활용하는 게 좋죠. 유아 때는 직접 손으로 만지면서 하는 활동이 문제집 여러 장 푸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에요.   요즘엔 좋다는 교구들이 넘쳐나서, 뭘 사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엄마표 수학 활동을 하려면 꼭 들여야 할 여섯 가지 교구가 있습니다. 수 카드, 연결 큐브, 수 배열판, 칠교, 쌓기 나무, 입체 도형 모형이에요. 자주 보고 만지면서 수와 연산, 도형 감각을 키우는 데 적합하죠.   교구를 사 놓고,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양육자도 많아요. 교구의 목적은 명확합니다. 교구 없이 수학 개념을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거예요. 쌓기 나무로 역할놀이만 하는 건 수학적 놀이가 아니죠. 교구의 학습 목표에 맞는 경험을 제공해 줘야 합니다. 칠교를 예로 들어 볼게요. 4학년 때 배우는 ‘평면도형의 이동’에서 도형 밀기·뒤집기·돌리기 같은 과제가 나옵니다. 칠교를 관련 활동을 미리 해보는 거죠. 관련 용어에 익숙해질 수 있게 ‘뒤집어 볼까?’ ‘돌려보는 건 어때?’ 같은 어휘도 사용하고요.   아이가 교구 활동을 싫어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교구 활용에도 기술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교구를 잘 보이는 곳에 놓고, 아이 주도로 탐색할 시간을 주세요. 자유롭게 갖고 놀며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며칠 지나서 시큰둥해졌을 때 엄마가 전략적으로 노출하면 됩니다. 교구와 함께 온 가이드를 살펴보고 준비했던 활동을 진행하는 거죠. 게임처럼 접근하면 더 좋습니다. 예를 들어 수 배열판 위에 아이가 좋아하는 젤리·과자를 무작위로 놓습니다. 주사위를 굴려서 나온 수만큼 이동을 하다가 간식이 놓여 있는 칸에 다다르면 그걸 먹을 수 있게 하는 거죠. 놀면서 수 연산 개념을 익히는 방법입니다. 최경희 대표는 "유아가 수학 개념을 배울 때는 보고 만지는 수학 활동이 중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집은 그 개념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보조 역할로 활용하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  🔢질문을 바꿔라   최경희 대표는 “엄마표 수학을 할 때 양육자는 선생님이 아니라 가이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일일이 내용을 설명하고 가르치지 말고, 방향만 제시해 줘야 한다는 얘기다. 엄마표 수학의 목적은 아이 혼자 힘으로 수학을 배울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기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좋은 가이드가 되려면 엄마의 질문부터 달라져야 한다.   어떻게 질문해야 하나요? 보통 정해진 답을 확인하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5+4가 뭐지?’, ‘알겠어? 이해했어?’ 같은 거요. 그보다 아이 스스로 답을 찾고, 개념을 깨닫게 돕는 질문을 해야 해요. ‘5+4가 뭐지?’보다 ‘두 숫자를 더해서 9가 되는 건 뭐지?’라고 묻는 게 좋죠. 도형을 설명할 때 ‘선이 3개면 삼각형, 4개면 사각형이야. 5개면 뭐지?’ 대신에 이렇게 접근해 보세요. 색종이를 여러 모양으로 자르거나 도형 교구를 활용해 ‘같은 모양끼리 모아 보자’, ‘이거랑 이거는 뭐가 달라?’라고 물어보는 거죠. 아이가 관찰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아보게요.   아이가 틀린 답을 말하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면 어떡하죠? ‘아니야’, ‘틀렸어’라고 말하진 마세요. 이러면 아이는 자신감을 잃고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어려워합니다. 양육자 눈치를 보고요. 이런 상황에선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물어보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세요. 틀린 답을 말했다면, 다시 한번 물어보면 됩니다. ‘엄마는 이렇게 해봤는데, 네가 한 거랑 뭐가 다르지?’, ‘네가 다시 한번 해볼래?’, ‘다른 방법은 없을까?’처럼 질문하세요.   그래도 아이가 ‘모르겠다’고 하면요? 아이가 문제를 너무 어려워하면 힌트를 주세요. 이때 주의해야 할 게 있어요.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해야 하는 부분까지 양육자가 나서면 곤란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점점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되거든요. 특히 문제집 풀 때 이런 실수를 하는 양육자가 많아요. 질문 하나 해볼게요. 아이가 ‘지시문이 이해가 안 된다. 모르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나요?   지시문에 있는 숫자나 핵심어를 크게 강조해서 읽어주거나 동그라미쳐 줍니다. 아이가 이해하기 쉽도록요. 대부분의 양육자가 그렇게 합니다. 아이를 도우려는 마음에서요. 하지만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면 아이는 스스로 핵심어를 파악하는 능력을 키우지 못합니다. 나중에 어려운 문제가 나왔을 때도 혼자 힘으로 풀려고 하지 않죠. 선생님에게 ‘힌트를 달라’고 하거나 쉽게 해답지를 봅니다. 아이와 같이 문제를 풀 때 지시문은 건조하게 읽어 주세요. 아이가 잘 모르겠다고 하면 ‘네가 보기에 어떤 상황인지 말해 줄래?’라고 하면 됩니다.   간단한 개념·원리 문제는 답만 구하면 되는 게 아닐까요? 지금 엄마·아빠가 학생일 때는 답만 구하면 되는 수학을 배웠습니다. 요즘 아이들이 배우는 수학은 또 다릅니다.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평가해요. 연산 문제도 ‘앞에 있는 숫자 가르기’, ‘뒤에 있는 숫자 가르기’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보게 하죠. 게임할 때도 전략이나 아이템이 많으면 유리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결국 인생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면서 논리력을 키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양육자 입장에서는 아이에게 정해진 개념과 답을 알려주는 게 더 편하고 쉽다. 교구를 활용해 아이가 답을 찾도록 질문하거나, 꾸준히 수학 활동을 하는 게 더 힘들고 어렵다. 최 대표도 이 점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엄마표 수학을 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고 했다.   나중엔 양육자가 도와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게 아이 수학입니다. 지금 양육자가 조금 고생하면 앞으로 아이가 수학을 즐겁고 재밌게 배울 수 있어요. 힘들더라도 노력해 볼 만한 가치, 있지 않나요? 최경희 대표는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해야 하는 부분까지 양육자가 나서서 도와주고 설명해 주지 말라"고 말했다. 아이 혼자 수학을 해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다는 것이다. 김경록 기자 관련기사 “수학 머리도 키울 수 있다”…2살부터 이렇게 대화하라 초등생이 ‘고교 수학’ 끝낸다…입학시험에 5000명 몰린 학원 ② 방과후 학원만 꽉 채우지 말라, ‘서울대 쌍둥이’ 원장의 팁

    2024.05.22 15:16

  • “친구 같은 아빠 되고 싶다” 그런 남자가 더 외로운 까닭

    “친구 같은 아빠 되고 싶다” 그런 남자가 더 외로운 까닭 유료 전용

    아이가 생일 선물로 4만9000원짜리 신발을 사달라고 했는데, 아빠는 15만원짜리 유명 브랜드 신발을 사 옵니다. 이 아빠는 아이와 친할까요?   “아이와 친한 아빠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목사이자 상담학자인 조영진 서울장신대 교수는 이렇게 되물었다. 아이를 위해 쇼핑을 가고, 유명 브랜드를 살 정도로 마음을 쓰는 아빠라면 아이와 친하지 않을까? 하지만 조 교수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정작 아이는 입고 싶은 옷을 받지 못했는데, 좋아하겠느냐”는 것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아빠 반성문』의 저자이기도 한 조 교수는 아빠를 주로 상담하는 상담가다. 그를 찾아오는 아빠는 바로 이런 아빠들이다. 아이가 원하는 4만9000원짜리 대신 15만원짜리 브랜드 옷을 사주는 아빠 말이다. 그래서 억울하다. “할 만큼 하는데, 내 마음을 몰라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를 찾아온 아빠들은 헌신적이었다. 밤낮으로 일하면서도, 가사와 육아에 성심껏 참여했다. 그런데 정작 가족들은 냉랭했다. 그는 “문제는 일방향적인 소통 방식”이라고 말했다. 소통이 아니라 불통(不通)이라는 얘기다.    아빠들이 가족과 소통하지 못하고, 일방향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이유는 뭘까?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3일 조 교수를 만나 물었다.   ■  「 Intro. 정말 좋은 아빠일까? Part1. 불통(不通) 아빠의 비밀 Part2. 버럭 하는 아빠를 들여다보다 Part3. 아빠의 침묵은 폭력이다 」   ━  🦸‍♂️ 불통(不通) 아빠의 비밀   조 교수는 “이 시대 상당수 아빠들이 소통에 문제를 겪는 건 가부장제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아버지가 강력한 주도권을 갖는 가정에서 자라 무조건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요구에 상관없이 정작 자기 생각대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건 그래서다. 그는 “아이의 생각과 의견을 존중하고, 그런 존중을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요즘 아빠들은 과거의 아버지와는 달라요. 아이 의견을 존중하죠.  아이의 말을 듣기는 합니다. 그런데 정작 수용하진 않아요. 그런 예는 비일비재합니다. 외식을 갔어요. 아이에게 메뉴 선택권을 줍니다. 아이가 햄버거를 골라요. 그러자 아빠의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그리고 이렇게 묻죠. “날도 더운데, 냉면은 어때?” 답을 정해놓고 아이의 의견을 물은 겁니다. 아이의 생각을 들어주는 척하지만 결국 자기 생각을 강요합니다. 문제는 아이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소통이 단절된다는 겁니다.   더 소통이 단절된다고요? 아이의 반응을 왜곡하거든요. 옷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아빠가 사온 10만원짜리 브랜드 옷을 보고 아이가 떨떠름해합니다. 그럼 아빠는 이렇게 말해요. “이게 얼마짜린데, 그러냐” “아빠 성의를 무시하는 거냐” “아빠가 이렇게까지 신경 썼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냐”고요. 아이는 억울합니다. 원하는 게 뭐냐고 해서 말했는데 엉뚱한 걸 선물로 받았고, 그래서 섭섭해하니 아빠는 화를 내니까요. 게다가 아빠는 섭섭한 마음마저 통제하려 드니 답답하죠. 입을 다물 수밖에요.    아빠들은 왜 그러는 거죠?  아이들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저를 찾아온 아빠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어요. 아이가 뭘 모른다고요. 햄버거가 몸에 안 좋다는 걸, 비쌀수록 더 가치 있다는 걸 모른다는 겁니다. 그러니 아이 마음대로 하게 둘 수 없는 거예요. 이런 아빠들은 아이만 못 믿는 게 아닙니다. 들어보면 친구도, 회사 동료도 못 믿죠. 세상을 못 믿어요. 불신의 색안경을 끼고 있는 겁니다. 믿을 사람도 없고, 믿을 만한 세상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왜 그렇게 모든 걸 못 믿게 된 거죠? 불신의 근원을 찾아가다 보면 결국 어린 시절 부모가 적절히 채워주지 못한 욕구를 마주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엔 자신의 욕구를 스스로 채우지 못해요. 부모가 적절히 채워줘야만 하죠. 영아기엔 생존과 안전의 욕구가, 아동·청소년기엔 존중과 자아실현 욕구가 충분히 채워져야 해요. 그래야만 자신과 타인을 신뢰할 수 있죠. 이 신뢰가 있어야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고요. 그런데 가부장제 아래에선 아이의 이런 욕구가 충분히 채워지지 못합니다. 아이가 의견을 피력하면 “애가 뭘 안다고 나서느냐”는 핀잔을 받기 일쑤죠. 특히 부모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는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어요. ‘부모마저 나를 못 믿는데, 세상 누가 나를 믿겠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이런 불신의 색안경은 아이에게도 대물림된다는 게 가장 무서운 대목이죠.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피하지 말고 경험해야 합니다. 아버지에게 핀잔을 받았던 아빠는 스스로를 믿지 못해 어디에서든 의견을 내는 데 소극적이었을 겁니다. 친구들도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핀잔을 줄 거라 생각할 테니까요. 하지만 사람의 반응은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사람, 상황과 마주해야 해요. 여러 경험이 쌓여야 사람들 생각을 천편일률적으로 재단했던 내 생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색안경을 벗으면 내 아버지와는 다르게 내 아이를 대할 수 있습니다. 내 아이는 나처럼 불신의 색안경을 쓰지 않을 테고요.   조영진 서울장신대 교수는 아빠들의 관계문제를 사회문화적 현상으로 진단한다. 가부장적 가정이 꺾은 아이의 욕구가 세상에 대한 불신을 만들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장진영 기자.  ━  🦸‍♂️ 버럭하는 아빠를 들여다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은 정말일까? 같은 자식인데, 유독 예쁜 아이가 있는가 하면 유독 불편한 아이도 있는 게 현실이다. 불편한 아이에겐 다가가기 쉽지 않다. 사소한 일로 화를 내기도 한다. 이유가 뭘까? 조 교수는 “내 아이를 통해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이가 아니라 자신에게 화를 낸다는 얘기다. 그가 “화가 나거든 나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하는 이유다.   아이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나를 돌아보라고요? 아이한테 화가 난 게 아니거든요. 아이의 어떤 행동이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과 닮아서 화가 난 거죠. 이걸 ‘내면 아이’라고 합니다. 내면 아이는 어린 시절 받은 상처나 트라우마를 치유하지 못해 생긴 나예요.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다가 치유하지 못한 상처가 떠오르는 순간 불쑥 튀어나오죠. 아이에게 버럭 화를 내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자신 없고, 우물쭈물하는 아이를 못마땅해하는 아빠가 많습니다. “왜 이렇게 자신이 없느냐”며 아이를 다그치죠. 이런 아빠는 어릴 적 우유부단하다고 혼났을 가능성이 커요.   다 큰 성인이 자기 안의 상처 때문에 아이에게 화를 냈다는 건 핑계 아닌가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상처나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특히 아빠들의 경우 내면 아이에 더 취약합니다. 강인한 남자가 되라고 강요를 받다 보니 내면의 상처를 감춰 왔거든요. 울면 “사내 녀석은 우는 거 아니야”라며 핀잔을 받았으니까요. 이런 말은 ‘슬픈 감정을 느끼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억지로 눈물을 삼키고, 속상한 감정은 외면하게 되죠. 감정을 제때 해소하지 못하면 쌓이는 법입니다. 감정이 쌓이고 쌓여 상처가 되고요.   그렇다면 아이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어야 하잖아요. 왜 화가 나는 건가요? 상처는 아픔이자, 약점이거든요.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은 거죠. 그래서 우리는 내면 아이를 무의식 아래에 감춰놓고, 상처받지 않았던 것처럼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힘들게 숨겨놓은 내 약점을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드러내요. 당황스럽죠. 빨리 그 자리를 피하고 싶을 거예요. 그래서 나오는 방어기제가 ‘투사(投射)’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상대에게 덧씌우고 비난해서 선긋기 하는 거예요. 그럼 자신을 속일 수 있거든요. ‘나는 아이와 다르다’고요. 아이에게 버럭 하는 걸 멈추려면 내 안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위로해야 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스스로 질문하세요. ‘아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꼭 지적해야 할까?’ ‘나는 아이의 그런 모습이 왜 이렇게 싫을까?’ ‘내 아이의 어떤 모습이 나를 이렇게 불편하게 만들까?’ ‘나는 자신감이 있나?’ 하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요. 그렇게 질문을 하면 무의식에 꼭꼭 숨겨둔 내 상처와 마주할 수 있어요. 부모의 재촉에 불안하고, 혼이 나서 부끄럽고, 기회를 놓쳐 아쉬워하는 다섯 살의 나를 말이죠. 어린 나를 만났다면 이렇게 말해주세요. “불안하고, 부끄럽고, 아쉬운 마음이 들어도 괜찮아”라고요.   그렇게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아요. 낯간지럽기도 하고요. 맞아요. 낯간지럽고, 어렵죠. 감정에 서툰 사람이라면 더욱더요. 그래서 전 상담을 권합니다. 상담은 과거에 빠져 부모를 원망하는 일이라고들 오해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질문을 주고받으며 무의식에 감춰진 내면 아이를 만나는 과정이죠. 내 상처를 깨닫고 인정해야 아이와 나를 분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물쭈물한 아이를 봐도 흔들리지 않고 아이의 숨겨진 마음을 보는 힘이 생겨요. 조 교수는 "아빠에게도 상처받은 어린 시절이 있기 마련"이라며 "내 상처를 부끄러워 하지 말고 마주하고 치유해줘야 아이와의 관계도 좋아진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  🦸‍♂️ 아빠의 침묵은 폭력이다     양육자에게 떼쓰는 아이는 만국 공통의 난제다.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악을 쓰고 울면 양육자는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 원하는 대로 해주거나, 혼을 내거나, 침묵한다. 세 반응 모두 바람직하지 않지만, 조 교수는 “침묵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말했다. “침묵은 양육자의 바람을 강요하는 정서적 폭력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침묵하는 게 폭력이라고요?   침묵한다는 건 아이의 욕구를 좌절시키는 걸 넘어 아이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외면하는 겁니다. ‘너를 없는 사람 취급하겠다’는 무언의 메시지는 상대를 제압하는 효과가 있죠. 하지만 자기조절능력이 부족한 아이에겐 효과가 없어요. 아이는 그저 내가 원하는 걸 알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그런데 존재 자체를 거부당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이는 버려졌을 때 느끼는 수준의 강렬한 불안을 느낍니다. 아이가 울고 떼쓸 땐 침묵할 게 아니라 설명을 해야 해요.   하지만 아이가 악을 쓰고 울면 머릿속이 하얘집니다.  이해합니다. 어떻게 해도 상황이 나아지질 않으니 난처하고, 무기력한 기분까지 들죠. 그래서 그 상황을 회피하려고 침묵하는 건데요. 이건 방치예요. 도움을 달라는 아이의 손을 뿌리치는 셈이니까요. 그런데 무기력한 마음에 침묵하는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침묵하는 게 더 위험합니다. 아이와 기 싸움을 벌이는 거니까요.    기 싸움이요? 아이가 울고불고 떼를 쓰면 아빠가 나서는 경우가 많아요. 엄마는 결국 아이 뜻을 따라준다는 생각에 말이죠. 엄마 대신 나선 아빠는 아이를 제압하려 합니다. 무서운 표정을 지으며 노려보거나, 낮은 목소리로 아이를 불러 험악한 분위기를 만들죠. 그래야 아이의 고집을 꺾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아이도 분위기를 감지하고 일단은 수그러듭니다. 그런데 일시적 소강상태에 접어든 거지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닙니다. 아이는 아빠가 왜 무섭게 쳐다보는지 전혀 이해를 못 하거든요. 아이는 아직 기 싸움이 뭔지, 낮은 목소리가 뭘 의미하는지 모릅니다. 그저 아빠가 화낼 때 느꼈던 두려움과 공포만 마음속에 간직합니다. 이 감정이 아빠에 대한 분노를 만들고요.   그럼 떼쓰는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상황을 설명해 주세요. 감정을 중심으로요. 감정은 아직 미숙한 아이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네가 떼를 쓰니까 아빠가 당황스러워. 옆 사람에게 피해가 갈까 봐 걱정돼” 하고 말해주세요. 아마 아빠들은 감정을 말하는 게 쉽지 않을 겁니다. 감정은 별거 아니라고, 감정에 휘둘리는 건 쪼잔한 거라고 배웠을 테니까요. 그런데 별거 아닌 감정은 없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게 감정이고요. 아빠가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야 아이도 감정을 다룰 줄 합니다. 이때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면 좋은데요. 쇼핑하던 아이가 떼를 쓴다면 이렇게 말하는 거죠. “네가 갖고 싶은 걸 안 사줘서 서운했구나”라고요. 단, 아이가 떼쓰는 행동 자체를 수용하라는 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감정을 읽고 이해하는 건 필요합니다. 하지만 피곤하다고 떼를 쓰는 게 정당한 건 아니에요. 해도 되는 행동과 해선 안 되는 행동을 명확히 알려줘야 하죠. 그게 양육자의 역할입니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겠다며 아이의 감정과 행동을 다 받아주면 아이는 자기조절력을 기르지 못합니다. 아이가 아빠에게 기대하는 건 친구가 아닙니다. 모르는 건 알려주고, 잘못된 건 바로잡아주는 어른을 원합니다. 아빠가 넉넉한 울타리가 되어주길 바라는 거죠. 친구는 아빠 말고도 있습니다. 친구 말고 아빠가 되세요.  조 교수는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건 좋지만 친구 같은 아빠는 경계하라"고 경고했다. "아이는 모든 허용해주는 아빠보다, 잘못된 건 바로잡아주고, 방향을 제시하는 아빠를 원한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조 교수는 인터뷰를 마치며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 이야기를 꺼냈다. 덕수는 가족을 위한 투철한 책임감으로 평생을 살아온 ‘아버지’였지만 가족과 살갑게 이야기하는 ‘아빠’는 되지 못했다. 가족을 위해 헌신했지만, 외로웠다. 조 교수는 “덕수의 외로움은 시대적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좋은 아빠’가 되려다 스스로 만든 고립에 빠진 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외롭지 않으려면 ‘좋은 아빠’라는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좋은 아빠 말고, 그냥 아빠가 되세요. 힘들면 힘들다고, 걱정되면 걱정된다고 말해도 됩니다. 나를 지켜야, 아이도 지킬 수 있어요. 그래야 외롭지 않습니다. 관련기사 “남자가 왜 이리 약해 빠졌냐” 아들 혼내는 아빠의 숨은 뜻 “욕망에 충실한 엄마가 낫다” 정신과 의사 상식파괴 육아팁 “일단 이 행동 몰래 하세요” 위기의 부부 바꾼 어느 숙제

    2024.05.19 15:10

  • “욕망에 충실한 엄마가 낫다” 정신과 의사 상식파괴 육아팁

    “욕망에 충실한 엄마가 낫다” 정신과 의사 상식파괴 육아팁 유료 전용

    두 엄마가 있습니다. 한 명은 새벽마다 아이 반찬을 만들고, 유치원 마치면 아이를 여러 기관에 데리고 다니며 이거 저거 가르쳐요. 다른 한 명은 반찬은 사서 먹이고 친구 만나느라 하원 시간도 종종 까먹고요. 누가 더 좋은 엄마 같은가요?   “좋은 엄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윤우상 밝은마음병원(전남 나주) 원장은 이렇게 되물었다. 누가 봐도 전자의 엄마가 더 좋은 엄마로 보인다. 하지만 윤 원장의 답은 달랐다. 그는 “완벽하고 도덕적인 엄마가 오히려 아이를 망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아이를 위해 과도하게 애쓰는 엄마는 무의식에 불안감·열등감·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윤 원장은 “아이를 잘 키우려면 엄마의 무의식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30년 차 정신과 의사인 그는 우연한 기회에 엄마들의 심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15년 전 일반인을 대상으로 정신분석 이론을 강의하다 자녀교육에 도움이 될 만한 이론을 추려 ‘엄마 심리학’ 강좌를 연 게 시작이었다. 강의 내용을 토대로 『엄마 심리 수업』 시리즈와  『강강술래학교』 같은 책도 냈다. 좋은 엄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달 23일 강연차 서울을 찾은 그를 직접 만났다.   ■  「 Intro. 엄마 무의식을 살펴야 하는 이유 Part 1. 아이는 엄마의 무의식을 먹고 자란다 Part 2. 완벽한 엄마보다 부족한 엄마가 낫다 Part 3. 훈육, 아이에게 초자아 심어주는 것 」   ━  👨‍👩‍👧아이는 엄마의 무의식을 먹고 자란다   무의식은 ‘내가 모르고 있는 내 생각’이다. 누구나 자기 의지와 관계없이 무의식의 영향을 받는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민하고 계획해서 키운다지만, 양육자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이 아이를 키우는 데 영향을 미친다. 윤 원장은 “무의식이 아이를 키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까지 했다.     무의식이 대체 뭔가요? 정신분석학의 아버지 프로이트가 처음 제시한 이론이에요. 인간의 정신은 의식·전(前)의식·무의식으로 돼 있어요. 의식은 지금 내가 보고 있고, 알고 있는 걸 의미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기사, 이 문장을 읽고 있는 게 의식이죠. 전의식은 어제 먹은 저녁 메뉴처럼 지금 의식하고 있지 않지만 애써 노력하면 떠오르는 것이에요. 반면에 무의식은 애를 써도 떠오르지 않고, 혼자 노력해서 찾아내기도 어렵죠. 전의식과 무의식을 합쳐 잠재의식이라고 합니다.   무의식이 왜 중요한가요? 친구를 사귀고, 직업을 선택하고, 결혼을 하는 것도 모두 무의식의 영향을 받은 결과거든요. 엄마의 무의식은 아이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엄마의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 온도 차가 있는 경우도 적지 않고요. 제가 질문 하나 해볼게요.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으신가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음…. 책임감 있고, 밝고, 건강하게 컸으면 좋겠습니다. 매 강의에 하는 질문이에요. 대부분 비슷하게 대답하죠. 긍정적인 아이, 자신감 충만한 아이, 자기 밥벌이하는 아이, 남과 더불어 사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요. ‘성격 좀 안 좋아도 공부 잘했으면 좋겠다’거나 ‘설혹 남을 짓밟더라도 성공하길 바란다’는 식의 답은 나온 적이 없어요. 아이가 대단한 직업이나 엄청난 돈을 갖길 바라기보다 자기 삶을 즐기길 바랍니다. 하지만 정작 무의식중에 잘난 아이를 원하는 엄마들이 적지 않아요.   원장님이 그걸 어떻게 알죠? 무의식은 정작 자기도 모르는 생각인데. 행복하게 자라길 바란다면서 입만 열면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고, 더불어 살길 원한다면서 아무하고나 놀지 않길 바라니까요. 무의식이 드러나는 거죠. 그런 무의식을 찾아서 바로 잡아야 해요. 저는 이런 무의식을 ‘엄마 냄새’와 ‘엄마 색안경’으로 나눕니다. 이 두 가지가 아이를 키우는 방식의 90%를 좌우합니다.   엄마 냄새가 대체 뭔가요? 엄마 냄새는 엄마의 마음이에요. ‘냄새’라고 부르는 건 이유가 있어요. 보이진 않지만 몸에 배어 쉽사리 없어지지 않으니까요. 엄마가 아이를 귀여워하면 아이에게 귀여운 냄새가 배요. 아이는 어딜 가나 귀여운 냄새를 풍기고 사람들도 아이를 귀여워합니다. 반대로 엄마가 아이를 못난 시선으로 바라보면 아이는 못난 냄새를 풍깁니다. 사람들은 아이를 못난 아이 취급하게 되고요.   엄마 색안경은 뭐죠?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이요. 엄마가 살아온 경험·성격·가치관이 섞여서 만들어집니다. 어떤 분이 맘 카페에 글을 올렸어요. 유치원 등원 첫날 친구들과 인사도 하지 않고 뒤로 숨는 아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요. 본인이 소심하고 대인관계를 못하는데, 그대로 닮은 것 같아 걱정이라고요. 담임 교사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하고, 집에서도 친구에게 먼저 인사하는 연습을 시켰어요. 하기 싫다는 아이에게 “그러다 외톨이 된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했죠. 스피치·태권도 학원을 알아보기도 하고요. 이 엄마, 뭐가 문제일까요?   글쎄요. 아이의 문제를 풀려고 한 건데 문제랄 게 있나요?   아무 문제 없는 아이를 문제아 취급한 게 문제죠. 5세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낯을 가리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엄마는 ‘소심한 건 나쁘다’는 색안경을 끼고 있어요. 아이에게 ‘소심한 문제아’라는 프레임을 씌웠죠. 아이가 스피치·태권도 학원을 싫다고 하면 갈등이 생길 겁니다. 아이도 엄마가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걸 느낄 거고요. 아이는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한 아이가 돼버리고 말죠. 아이를 위하려는 엄마의 마음이 되려 아이를 망치는 겁니다.   그럼 소심한 아이를 그냥 둬야 하나요? 다양한 기회를 주는 건 좋아요. 중요한 건 엄마의 마음가짐입니다. ‘소심한 성격을 고치겠다’는 생각은 안 됩니다. ‘한번 해보고 안 맞으면 말지, 뭐”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해요. 기질은 바꿀 수 없어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라면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보완하는 건 아이 몫입니다.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은 "아이는 엄마의 무의식을 먹고 자란다"며 "엄마의 무의식을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  👨‍👩‍👧도덕적 엄마? 욕망에 충실하라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이 초자아·자아·이드로 구성돼 있다고 봤다. 초자아는 착함과 올바름을 추구한다. 반면에 이드는 원초적 욕망인 동시에 자기중심적인 성향이다. 자아는 초자아와 이드 사이에서 갈등한다. 윤 원장은 “양육도 초자아와 이드 간 싸움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양육이 초자아와 이드의 싸움이라고요? 아이가 사탕을 달라고 조릅니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달래죠. 하지만 아이가 길바닥에 드러누워 울고불고 합니다. 결국 엄마도 “그만 좀 하라”고 소리 지르면서 엉덩이를 한 대 때립니다. 이드 엄마의 등장입니다. 그러다 화가 좀 가라앉으면 다시 초자아 엄마가 나타납니다. “네가 그러고도 엄마냐”며 자책의 벌을 주죠. ‘내일은 혼내지 말아야지’ 하고 초자아 엄마는 다짐하지만, 다음 날 어김없이 소리 지르는 이드 엄마가 나타나고요.   제 얘기 같아요. 35개월 쌍둥이에게 소리를 지르곤 죄책감에 시달리거든요. 매일요.   아이를 키우며 화 안 내고 소리 안 지르는 건 불가능해요.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요. 화 좀 내고, 소리 좀 지른다고 아이가 잘못되지 않습니다. 특히 서너 살 아이라면 더욱요. 오히려 강한 초자아 엄마보다는 약한 이드 엄마가 낫습니다.   강한 초자아 엄마는 도덕적이고 완벽할텐데, 이런 엄마보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엄마가 낫다는 말씀인가요? 완벽한 엄마, 가혹한 엄마, 체면 엄마 등이 초자아 엄마에 포함됩니다. 완벽한 엄마는 기준이 높고 도덕과 원칙을 중요시해요. 아이가 뭘 해도 성에 차지 않고요. 이런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는 열등감에 빠지기 쉽습니다. 스스로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완벽한 엄마가 강화되면 가혹한 엄마가 됩니다. 조그만 잘못도 용납하지 못합니다. 체면 엄마는 늘 주변 사람 시선을 의식하면서 불안해 합니다. 이런 엄마를 둔 아이는 늘 긴장하고 움츠러들어 있죠.   강한 초자아 엄마가 나쁘다고 이드 엄마가 좋다고 할 수 있나요? 그건 아닙니다.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도 이드 엄마에 포함되거든요. 이런 엄마를 좋다고 할 수는 없죠.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너무 강한 초자아 엄마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예요. 그것보다는 아이에게 올인하지 않고 적절하게 엄마의 삶을 사는 게 필요하다는 거죠. 약한 이드 엄마가 좋은 건 아이에게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자기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엄마도 행복하고, 아이도 행복하죠. 사실 초자아와 이드를 무 자르듯 ‘좋다’, ‘나쁘다’ 구분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초자아 엄마인지, 이드 엄마인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간단히 체크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음 질문에 답해보세요. 그리고 4점 척도를 활용해서 점수를 계산해 보세요. 점수를 다 더해서 5점 이하면 초자아 성향, 10점 이상이면 이드 성향입니다. 5점 이하라면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분발할 필요가 있어요. 엄마가 아이에게 집착하면 아이도 엄마에게 집착합니다. 둘 다 좋을 게 없어요.   ■  「 1. 가고 싶은 모임이나 하고 싶은 일을 아이가 걸려서 포기한다. (아이가 아픈 것도 아닌데, 신경이 쓰여서) 매우 그렇다(1점), 그런 편이다(2점), 그러지 않는 편이다(3점), 매우 그렇지 않다(4점)   2. 모임이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을 때 집에 있는 아이가 걸려서 죄책감이 들거나 아이 생각에 빠져 집중을 못 한다. 매우 그렇다(1점), 그런 편이다(2점), 그러지 않는 편이다(3점), 매우 그렇지 않다(4점)   3. 아이보다 나의 재미와 의미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서 나를 위해 시간이나 돈을 투자한다. 매우 그렇다(4점), 그런 편이다(3점), 그러지 않는 편이다(2점), 매우 그렇지 않다(1점)  」  초자아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간단한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아이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을 할 때, 한쪽 눈을 감고 못 본 것으로 하세요. 실제로 한쪽 눈을 감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세요. 화가 난 이유가 뭔지 살펴보는 거죠. 잔소리하고 싶을 때 혀를 깨무는 것도 방법이에요. 짧게 메모를 해보는 것도 좋죠. 그럼 아이의 어떤 부분을 못마땅해하는지 알 수 있거든요.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은 "완벽을 추구하는 엄마보다 조금 부족한 엄마가 낫다"며 "아이가 마음에 안드는 행동을 할 때는 못 본 척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  👨‍👩‍👧훈육, 아이의 초자아 만드는 과정   엄마와 아빠는 자기 욕망에 솔직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아이는 그래선 안 된다. 아이는 이미 본능·욕망에 충실한 이드 덩어리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초자아다.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선생님이 네 살짜리 아이에게 마시멜로를 한 개 준다. 먹지 않고 15분간 참으면 1개를 더 준다고 하고 방을 나간다. 실험에 참여한 아이의 3분의 1이 15분을 참고 마시멜로를 하나 더 받았다. 15년 후 이 아이들은 학교에 더 잘 적응했고, 대학입학시험(SAT)에서도 더 좋은 성적을 받았다. 조절력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윤 원장은 “조절력을 키워주는 게 바로 훈육”이라고 말했다.     훈육과 혼내는 것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는 양육자가 많아요. ‘하지 말라’고 야단치는 게 훈육은 아닙니다. 초자아·자아·이드를 떠올려 보세요. 마음대로 하는 게 이드고, 통제하는 게 초자아죠. 훈육은 초자아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아이가 사탕을 사달라고 계속 졸라요. “안 돼. 충치 생겨” 하고 야단을 치겠죠. 아이는 울고불고 떼를 쓰지만 더 혼나기만 하죠. 아이는 좌절을 경험합니다.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 안 된다는 사실도 깨닫고요. 이제 사탕을 먹고 싶은 자기 자신의 욕망과 싸워야 하죠. “안 된다”는 양육자의 말이 아이의 초자아를 만드는 셈이에요. 양육자의 말이 곧 훈육입니다. 훈육엔 두 가지가 있어요.   훈육에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요?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게 하는 건 저차원 훈육이에요.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자아 이상’을 강조하는 건 고차원 훈육이고요. 아이가 친구 집에서 놀다가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몰래 가져왔어요. 아빠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건 나쁜 짓이야” 하고 때립니다. 그럼 아이는 비슷한 상황에서 ‘아빠한테 또 맞을 거야’ 하면서 장난감에 뻗은 손을 거두겠죠. 아이에게 외적인 두려움이 심어진 겁니다. 여기에 긍정적인 가치를 더해주는 게 고차원 훈육이에요.   어떻게요? 이렇게 설명하는 거예요. “네가 친구 장난감을 가져오면 친구는 속상할 거야. 친구를 속상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속상해하는 친구를 위로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돼야 해”라고요. 선한 가치관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겁니다.   고차원 훈육이 필요한 이유가 뭔가요? 두려움을 심어주는 방식은 처벌하는 사람이 없으면 효과가 없거든요. 아빠가 없으면 몰래 물건을 훔치고, 엄마가 없으면 몰래 게임을 하는 식으로요. 반면에 사랑과 칭찬의 훈육을 하면 아빠·엄마가 없어도 문제 행동을 하지 않죠. 훈육 방식이 중요합니다. ‘인사 안 하면 사람들이 널 싫어해’ 대신 ‘인사 잘하면 사람들의 기분이 좋아지고 널 좋은 애로 생각할 거야’라고 말해주세요.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고 싶지 않은 양육자는 없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육아서를 찾아 읽고, 교육 정보를 뒤진다. 하지만 윤 원장은 “육아 정보를 무조건 따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양육자의 열등감이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자녀의 기질에 맞지 않아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무엇을 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안 할지 고민하라”고 강조했다.   엄마도, 아이도 이미 그 자체로 완전합니다. 뭘 더 해주려고 애쓰지 마세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 그것 자체로 충분하니까요.  윤우상 밝은마음병원 원장은 "훈육은 아이의 마음에 초자아를 심어주는 것"이라며 "잘못했을 때 혼을 내는 것보다 긍정적인 가치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 헬로페어런츠 -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엄마들 모임은 동물의 왕국” 정신과 의사가 본 ‘서열 비밀’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1949“만약” “혹시” 당장 끊어라…재앙 부를 당신의 말버릇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8943“틱 증상, 모른척하면 낫는다” 만성 장애 만든 부모의 실수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4813 “중2병 걸려도 이건 꼭 했다” 서울대생이 선행 대신 한 것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0025 ADHD 아니라 자폐였다? 산만함에 숨은 ‘핵심 신호’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9394 」 

    2024.05.15 15:18

  • 1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했다, 목포 일반고서 의대 간 전략

    1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했다, 목포 일반고서 의대 간 전략 유료 전용

      ■  「 'The JoongAng Plus(더중앙플러스)'는 중앙일보의 역량을 모아 마련한 지식 구독 서비스입니다. 더중앙 독자에게 오늘 하루만 무료로 전문을 공개합니다. 더중앙플러스(https://www.joongang.co.kr/plus) 구독 후 더 다양한 콘텐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  비수도권 출신의 고3 현역 신입생. 의대에선 도통 찾기 힘든 존재다. 실제로 올해 의대 정시 합격생 중 이들의 비중은 5.4%에 불과했다. 반면 수능을 2번 이상 본 ‘N수생’은 80%, 수도권 출신은 60%가 넘는다. 중앙대 의대 본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임민찬씨를 만난 건 그래서였다. 그는 전라남도 목포에 있는 일반고(영흥고)를 나와 한 번에 서울 소재 의대에 합격했다.   남들 하니까 덩달아 하는 건 안 됩니다. 그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나만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게 낫죠. 박정민 디자이너 비수도권 일반고 출신으로, 재수도 하지 않고 서울 소재 의대에 입학한 비결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그는 “과학고에 진학하지 않은 것도 그래서”라고 했다. 자신에게 잘 맞는, 그리고 유리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의대 합격 고득점의 비밀』을 쓴 그는 지난 1월 『어머님, 의대생은 초등 6년을 이렇게 보냅니다』를 출간했다. 정보도, 모델로 삼을 만한 선배도 없는 지역의 학생들에게 자신의 공부 노하우를 들려주고 싶어서다. 학군지에서 공부하지 않거나, 재수·삼수하지 않고도 의대 갈 만큼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2일 경기도 용인 새빛초 학부모 연수에서 강연을 한 그를 직접 만났다.   ■  「 Intro. 목포 일반고 출신 현역 의대생 Part1. 전남과학고 대신 일반고 간 이유 Part2. 나만의 학습 치트키는 루틴 Part3. 선행 필수? 선행이 발목 잡더라 」   ━  Part1. 과학고 대신 일반고 간 이유   대학 진학 후 가장 선명한 기억은 입학 동기들을 만났던 자리다. 형·누나가 대부분이었는데, 다들 ‘시대인재 O기’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시대인재는 올해 수능 만점자를 배출한 재수종합학원이다. 교수가 본인이 나온 고등학교 출신 학생을 따로 불러 밥을 사는 것도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 특목·자사고, 서울 명문고였다. 의대 공부만으로도 여유가 없는 그가 시간을 쪼개 학습법에 관한 책을 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광역시 아닌 지역 출신 의대 친구는 거의 없다”며 “나처럼 공부하는 학생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졸업한 고교엔 지역 인재 전형으로 전남 지역 의대를 가거나 지역 균형 전형으로 서울대 의대를 간 경우는 있지만, 그 외 전형으로 서울 소재 의대에 진학한 건 임씨가 처음이었다.   목포 출신이긴 하지만,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이 의사나 교수 아닌가요? 어머니는 전업주부고, 아버지는 석상이나 비석·납골당 같은 걸 만드는 석재 사업을 하세요. 할아버지는 목포시청 공무원이셨고요. 쌍둥이 형은 저랑 같은 해 고려대에 진학해 지금 4학년이에요.   대학의 다른 동기들처럼 특목고에 진학할 생각은 없었나요? 중학교 때도 공부를 곧잘 해서 전남과학고에 진학하려고 했었어요. 실제로 갈 수 있는 성적이었고요. 하지만 고민 끝에 가지 않았죠.   다들 특목고에 가고 싶어 하는데, 왜 가지 않았나요? 생각해 보니 수학이나 과학을 유달리 잘하는 편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들보다 더 큰 흥미를 느끼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과학고에 가면 그런 친구들이 많을 텐데 말이죠. ‘과연 거기서도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해 봤는데, ‘그렇다’는 답이 잘 안 나오더라고요. 반면 저는 영어나 국어까지 고르게 잘했어요. 특별히 뛰어난 과목도 없었지만, 특별히 처지는 과목도 없었죠. 과학고보다 일반고에서 더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부모님도 같은 생각이셨어요.   특목고의 면학 분위기가 탐나진 않았나요? 분위기에 휩쓸리는 스타일은 아니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는 지필평가가 있었는데, 6학년 중간고사·기말고사에서 정말 좋은 성적을 받았어요. 그때 받았던 관심과 시선을 놓치고 싶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중학생 시절에도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잘할지 고민하면서 공부했어요. 차별화하고 싶었죠.   중학생이 차별화할 방법을 고민하면서 공부를 했다니, 좀 놀랍네요. 그렇게 생각한 계기가 있어요. 중학교는 초등학교랑 분위기가 너무 다르더라고요. 학습량은 늘고 내용은 어려웠죠. 친구들은 다들 열심히 하고요. 공부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게 전보다 어렵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남들이 시험 준비 한 달 하면 저는 6주 하는 식으로, 다르게 하려고 했죠.   스스로 동기부여하며 공부하는 스타일은 일반고에서도 잘할 것 같아요. 하지만 주변 분위기에 영향을 받는 학생도 있어요. 만약 그런 학생이라면, 특목고가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특목고를 가느냐 마느냐가 아니에요. 자기에게 맞는 학교,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명문대, 의대 합격생 대부분이 특목고와 학군지 출신이라고 무작정 따라 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어요.   예상대로 고등학교에서도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했나요? 전교 1등으로 졸업했어요. 물론 쉽진 않았죠. 특히 내신 성적을 차별화하는 게 힘들었어요. 다들 열심히 하니까요. 저는 수행평가에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썼어요. 읽기와 쓰기를 곧잘 했거든요. 수행평가에서 차별화하는 전략이 잘 맞았죠. 실제로 저랑 내신 성적이 같았던 여학생이 있었는데, 제가 수행평가 점수가 1점 높아서 등급이 갈린 적도 있어요.   의대에 지원할 때도 유리한 전형을 잘 골랐을 것 같아요. 제가 나온 고등학교에선 지역 인재 전형으로 전남대나 조선대 의대를 가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하지만 그러기엔 제 내신 성적이 좀 모자랐어요. 내신 성적으로는 전남 지역 군 단위 소재 고등학교 출신이 저보다 유리했죠. 수능으로 승부를 내기엔 특목·자사고나 서울 학군지 출신보다 부족했고요. 그래서 각 대학 전형을 꼼꼼히 살폈죠. 그러다 중앙대 의대 다빈치 전형을 찾아냈어요. 학업·탐구·통합역량과 발전 가능성, 인성을 20%씩 보는 전형이라서, 성적 외에도 중요하게 보는 요소들이 많았어요. 회장도 여러 번 하고, 의료 봉사도 꾸준히 했던 터라 제가 경쟁력이 있겠다 싶었죠. 임민찬씨는 광주광역시에 있는 전남과학고 대신 고향 목포에 있는 일반고를 선택했다. "과학고에선 잘할 것 같지 않았는데, 일반고에선 남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남보다 더 잘하려면, 차별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공부했다"고 했다. 김종호 기자 관련기사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③ “고교생 30% 수포자 이유 있다” 세계적 수학자의 일침 “대한민국 좋은 학군은 여기” 대치동 전문가가 콕 집었다  ━  Part2. 나만의 학습 치트키는 루틴   임민찬씨는 중·고등학교 6년 내내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스스로 설정한 목표에 도달하려고 노력했다. 핵심은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간 것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원에 꾸준히 다녔지만, 매일 그날 공부할 분량을 플래너에 적어가며 스스로 공부한 기억이 더 많다.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자기주도학습으로 공부하는 힘을 길러 왔다는 인상이 또렷해졌다.   어릴 때부터 자기주도학습을 하던 똘똘한 학생 같아 보여요. 저도 그런 줄 알았어요. 부모님이 특별히 공부로 스트레스를 주신 적이 없기도 하거니와 학원이나 문제집도 제가 골라서 공부했거든요. 그런데 아니라는 걸 커서 알았어요. 어머니께서 제가 그렇게 느낄 수 있도록 신경을 쓰신 거였어요.   무슨 얘긴가요? 어머니께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저희 형제 학습에 신경을 쓰셨대요. 담임 선생님께서 ‘신경 써서 공부를 시키면 잘할 것 같다’고 하셨다더라고요. 하지만 공부를 강요하진 않으셨어요. 꼭 필요한 거라도 결정 과정에서 늘 선택권을 주셨죠. 서점에 데려가서 문제집 두세 권을 추천해 주시고 같이 보면서 한 권을 고르게 하셨고, 학원도 두세 군데 함께 상담을 다녀온 뒤 직접 고르라고 하셨죠. 그래서 알아서 공부했다고 느꼈던 거 같아요. 하지만 정작 선택지를 몇 개로 추려 주신 건 어머니였죠.   책에서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라고 강조한 이유가 있군요? 전 초등 시기에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 학습은 없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하면 좋지만, 안 해도 큰 문제 없는 것들이죠. 하지만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건 필수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직접 선택해야 성적이 오를 때 성취감도 느낄 수 있거든요. 아이의 공부 정서를 길러주고 싶다면 학습에 관한 선택을 직접 하게 하세요.   그것 외에 초등 시기에 잡아두면 좋은 학습 습관은 없을까요? 추천하고 싶은 습관이 두 개 있어요. 전 중학교 진학 이후 몸에 익힌 것들인데, 돌아간다면 초등학생 때부터 하고 싶거든요. 둘 다 결국 학습 루틴을 만드는 전략이에요.   어떤 전략인가요? 첫 번째는 학습 플래너를 쓰는 겁니다. 매일 밤 자기 전에 10분간 다음 날 할 것들을 적어보는 거죠. 학원 가는 일정, 해야 할 공부 등요. 공부 계획을 적을 땐 최대한 구체적으로 쓰는 게 좋아요. ‘수학 공부’라고 적기보다 ‘수학 문제집 2장 풀기’라고 쓰는 게 낫죠. 다음 날 그 계획을 달성하면 하나씩 지우고요. 그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거든요.   플래너를 쓰면 공부하는 습관이 잡히겠네요. 여러 과목을 균형 있게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중학교만 가도 공부해야 할 과목이 크게 늘거든요. 플래너를 쓰면, 특정 과목에 쏠리지 않고 고르게 공부할 수 있어요. 시험 준비할 때 특히 좋죠.   학습 루틴을 만드는 두 번째 전략은 뭔가요? 일주일에 하루 ‘복습의 날’을 만드는 겁니다. 학교나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 건 12회 분량 드라마를 10분짜리 영상으로 보는 것과 같아요. 줄거리나 흐름을 넘어 세세한 것들까지 이해하고 기억하려면 반드시 복습해야 해요. 저는 중·고등학생 시절 매주 일요일엔 그 주에 배운 걸 복습했어요. 과목당 30분~1시간씩 할애해서요. 이 습관은 중·고등 6년 시절 내내 제 성적의 치트키였죠. 임민찬씨는 "초등 시기엔 학습 습관을 잡는 게 중요하다"며 "무엇보다 학습에 관한 선택이나 결정을 직접 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종호 기자  ━  Part3. 선행 필수? 선행이 발목 잡더라   ‘의대생’ 하면, 국어나 영어보단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는 이과생이 떠오른다. 임민찬씨에게 수학 공부법을 물은 것도 그래서다. 남다른 학습 노하우가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선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수학은 강점 과목이기보다 불안한 과목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임씨는 “그래서 말해 주고 싶은 공부 노하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의대생이 수학이 불안한 과목이었다니, 의외네요. 중학교 2, 3학년 때가 문제였던 것 같아요. 그때 공부를 잘못해서 고등학교 3년 내내 불안한 과목이 된 거죠.   어떻게 공부했길래요?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진도만 빼는 선행학습을 했거든요. 그것도 2년이나요. 고등학교 2학년이 배우는 수학 미·적분까지 공부했으니, 상당히 진도를 나갔죠. 그런데 정작 내용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도 왜 그렇게 선행학습에 몰두했나요? 저도 알았어요. 제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걸요. 그런데도 그만두지 못했죠. 남들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는 기분에 취했던 것 같아요. 다들 “와, 미·적분을 해?” 하는 것도 좋았고, “나 미·적분해” 이렇게 말을 하는 것도 좋았고요.   2~3년 선행하는 게 정속(正速)이라고 말할 정도로 선행학습이 일반적이에요. 선행학습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특히 특목·자사고 진학을 고려 중이라면 선행학습을 하는 걸 권해요. 선행학습을 하고 온 친구들과 경쟁해야 하니까요. 문제는 저처럼 이해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진도만 나가는 식으로 공부하는 거죠.     그런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결국 고등학교에 가서 다시 공부했어요. 정작 중학교 심화 학습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하느라 애를 먹었죠. 선행보다 심화 문제집을 풀면서 한 문제를 놓고 깊이 고민하는 게 문제 해결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심화학습을 하는 노하우는 없나요? 학원에서 공부하는 것과 별개로 집에서 심화 문제집 한 권을 풀게 하세요. 하루에 2, 3문제 정도만 푸는 게 포인트입니다. 양이 많지 않아야 문제 하나를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할 수 있거든요. 한 권을 반드시 다 풀 필요도 없어요. 진도를 나가거나 할당량을 채우는 게 목표가 아니니까요. 어려운 문제를 끙끙대며 풀면서 수학적 사고력을 키우는 게 목표죠.   선행학습을 따라가고 있는지는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요? 선행을 하면 보통 개념서 한 권을 하고 다음 진도를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이 정도로는 제대로 공부한 게 아닙니다. 최소한 개념서 한 권과 유형서 한 권, 총 2권을 풀 수 있을 정도는 해야 선행이 의미가 있어요.   초등 시절 수학 공부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다면 뭔가요? 연산이요. 중·고등 수학 시험에서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바로 계산 실수거든요. 게다가 연산은 초등 시절 외엔 따로 연습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연산을 잘하더라도 연산 문제집을 꼭 풀었으면 좋겠어요. 임민찬씨는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진도만 나가는 선행학습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장본인"이라며 "무리한 선행학습보다 심화학습이 훨씬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임민찬씨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제법 잘했지만, 교육 전문가는 아니다. 그런 그가 초등 학습법에 관한 책을 낸 데는 이유가 있다. 과외를 하면서 중·고등학생을 직접 가르쳐 보니, 초등 시절 습관이 제대로 안 잡혀 어려움을 겪는 아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또 관련 도서를 조사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몇 학년 때 반드시 뭘 해야 한다’는 식의 책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가 초등 학습법에 관한 책을 꼭 써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이유다.   초등 때 시작하거나 끝내지 않으면 안 되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그보다 중요한 건 습관이죠. 이게 안 잡히면 중·고등 시절 내내 효율이 안 나와 고생합니다.   ■ 헬로페어런츠 -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만약” “혹시” 당장 끊어라…재앙 부를 당신의 말버릇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8943사과도 안하고 “밥 먹었어?” 부부싸움 뒤 이 말에 숨은 뜻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2416“중2병 걸려도 이건 꼭 했다” 서울대생이 선행 대신 한 것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0025“국어는 집 팔아도 안된다” 대치동에 이런 말 도는 이유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3293 집안일 안 해도 이건 꼭 했다, 세 딸 하버드 보낸 ‘母의 비밀’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59051 」 

    2024.05.12 14:52

  • “온몸에 불 붙은거 같았어?” 내향형 아이 대화법 따로있다

    “온몸에 불 붙은거 같았어?” 내향형 아이 대화법 따로있다 유료 전용

    아이가 내성적이면 걱정을 많이 해요. 특히 자존감이 낮은 것 같다고요. 그런데 자존감이 높아도 내향적인 아이는 여전히 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습니다. 내향적인 기질은 바뀌지 않아요.     “내향적인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정화 한국아동심리코칭센터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아이를 외향적으로 바꾸려 애쓰지 말란 얘기다. “내·외향성은 각기 다른 성향일 뿐 우월을 따질 수 없고, 바뀌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내향적인 아이를 키우는 건 녹록지 않다. 내성적일수록 예민한 경우가 많고, 속마음도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22년 경력의 아동 심리상담가인 이 소장에게도 내향적인 아이 고민을 들고 찾아온 이가 많았다. 아이는 이해받지 못해서 억울해하고, 양육자는 아이 마음을 알 수 없어 답답해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이 소장이 이들에게 제시한 해결책은 명료하다. “내향성 자체엔 문제가 없다. 거기에 맞는 양육법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이가 자기 본 모습을 편안하게 받아들여야 자존감도 높아지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담아 『내성적 아이의 힘』『아이의 그릇』 등의 책도 펴냈다. 내향적인 아이를 대하는 양육자의 말과 태도는 어떻게 달라야 할까?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가 지난달 26일 이 소장을 만났다.       ■  「 Intro 내향 아이에게 맞는 양육법은 따로 있다 Part 1 의도를 콕 집어 칭찬하라 Part 2 친구 관계, 꼬치꼬치 캐묻지 마라 Part 3 감정을 읽으면 강점이 보인다 」   ━  📌의도를 콕 집어 칭찬하라   내향적 아이는 조용하고 생각이 많다. 새로운 자극에 곧장 달려드는 외향인과 달리, 자극과 그걸 둘러싼 환경을 탐색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쓴다. 준비되지 않았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에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으려 든다. 내향 아이에게 ‘느리다’ ‘소심하다’ ‘고집이 세다’는 평가가 따라붙는 이유다. 내향형 아이의 마음을 움직여 행동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소장은 “칭찬법과 보상법을 바꾸라”고 말했다.   내향인에게 통하는 칭찬법이 따로 있다는 건가요? 내향적인 아이는 사람들 앞에서 떠들썩하게 갑자기 큰 박수를 받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주목받는 걸 부끄러워하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어요. 그러니 내향인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칭찬해 주면 더 효과적이죠. 내향형 아이에게 통하는 칭찬을 하려면 내용에 더욱 신경쓰셔야 해요.     칭찬의 내용요? 아이가 그림을 그렸다고 해보죠. ‘정말 잘 그렸네! 화가가 그린 그림 같구나’ 하면 와닿지 않습니다. 별 의미 없이 하는 칭찬은 반기지 않죠. 아이의 의도를 파악해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서 칭찬해 줘야 해요. 그래야 비로소 만족감을 느끼거든요. 내향적인 아이는 일의 의도와 의미, 근거 같은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지난번 그림에 비해 사람 눈을 자세하게 그려서 깜짝 놀랐어. 많이 노력했구나!’라고 말해야 하죠. 그래야 노력을 인정받았다고 느끼고 더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요.     보상하는 방식은 어떻게 달라야 하나요? 보통은 아이가 원하는 걸 내걸잖아요. “숙제하면 장난감 사줄게’ ‘시험 성적 오르면 용돈 올려줄게’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이런 방식은 내향적인 아이에겐 잘 안 먹혀요. 외향형 아이는 탐색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다니죠. 반면에 내향형 아이는 자기가 싫어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한 방향으로 에너지를 써요. 한마디로 외향형 아이는 목표 지향적, 내향형 아이는 회피 지향적이라고 말할 수 있죠. 이런 특성을 고려하면 내향 아이에게 당근을 내거는 방식은 큰 효과가 없을 수 있다는 겁니다. 공부를 하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이나 어떤 일을 해야 하는 현실적·객관적 상황을 일깨워주는 게 더 나아요. ‘지금 숙제를 하지 않으면 내일은 밀린 숙제까지 다 해야 해서 자유시간이 없을 거야’ 하는 식으로요.    덮어놓고 ‘싫다’ ‘안 하겠다’고 하는 아이가 이제 좀 이해가 가네요.  내향적 아이에겐 경험 데이터가 중요해요. 언제나 상황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하죠. 한 번도 안 해 본 일, 익숙하지 않은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 해요. 실수나 실패, 그로 인한 비난이나 비판에 민감하기 때문인데요, 잘 못하거나 실패했을 때의 낭패감, 비난을 받는 불쾌한 경험을 애초에 차단하고 싶어 하는 거죠. 내성적 아이 중에 완벽주의적 성향이 많은 것도 그래서예요.   아이가 성장하려면 새로운 일에도 도전할 줄 알아야 할 텐데요,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요?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게 중요합니다. ‘일단 해보라’거나 ‘부딪쳐 보면 다 하게 된다’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아이를 움츠러들게 만들 수 있어요. 게다가 그렇게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그 기억을 바꾸기 쉽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가 첫 시도에 성공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그 성공 기억을 발판으로 경험치를 확장할 수 있죠. 처음엔 아이가 비교적 잘할 수 있는 일, 해 볼 말한 일로 시작하게 하세요. 이후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과제의 양과 난이도를 적절히 조절해 주고요. 아이 안에 성공 경험이 쌓여야 도전하려는 마음도 생겨납니다.    내향적인 성격 때문에 뒤처질까 걱정되기도 해요. 내향 아이라고, 회피 지향적이라고 해서 하고 싶거나 이루고 싶은 일이 없는 건 아니에요. 외향형 아이만큼 하고 싶은 게 많지 않고, 또 자주 변하지 않을 뿐이죠. 내향적인 아이도 안정적인 환경에선 자기 맡은 바를 책임감 있게 잘 해냅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타입이죠. 준비성이 철저해서 꼼꼼하게 일을 수행하고요. 내향인만의 강점입니다. 이정화 한국아동심리코칭센터 소장은 "내향 아이는 성공 경험이 쌓여야 도전 의지와 힘도 생긴다"며 "첫 단추를 잘 꿰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록 기자  ━  📌친구 관계, 꼬치꼬치 캐묻지 마라   내성적인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또래 관계다. 말수가 적고, 낯가림도 심하다 보니 친구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겉돌거나 혼자 노는 경우가 많아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직접 나서서 친구를 사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할까? 이정화 소장은 “멍석을 깔아주되, 그 이상 관심은 보이지 말라”고 말했다.   아이가 ‘혼자 노는 게 더 좋다’고 말해요. 괜찮은 걸까요? 내향인이 혼자인 상황을 더 편안하게 여기는 건 사실입니다. 내향인은 자기 내면에서 에너지를 얻거든요. 외향인이 다른 사람과의 만남, 새로운 일 같은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면 말이죠. 내향인은 그런 상황에서 에너지를 쓰고요. 내향 아이가 블록을 맞추고 그림을 그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선호하는 이유죠. 하지만 아이를 마냥 혼자 두면 곤란합니다. 어릴수록 또래와 상호 작용하는 법도 경험하고 배워야 하니까요. 게다가 혼자가 좋다는 건 아이의 진심이 아닐 수도 있어요. 친구에게 다가가기 어려워서 한 말이지, 사실은 누군가 자신에게 다가와 주길 바라고 있을 수 있거든요. 이런 경우엔 적절한 멍석을 깔아줄 필요가 있어요.     멍석은 어떻게 깔아주면 좋을까요? 생일 파티, 캠프같이 여러 친구가 있는 곳에서 부대끼면 사회성이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하는데요, 역효과가 날 수 있어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사람을 상대하는 건 힘든 일이니까요. 처음엔 친구 한두 명과 가까워지게 도와주세요. 놀이터 친구나 태권도 친구처럼요. 내향적인 아이는 믿을 수 있는 친구, 익숙한 친구와의 관계에서 더 안정감을 느낍니다. 거기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친구면 더욱 좋겠죠. 대화를 시작하고 이어나가기 수월하도록요. 또 한 가지, 밖에서 친구와 만나는 것보다 집에 친구를 초대하는 게 더 좋아요. 홈그라운드에선 아이가 자신을 더 편하게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내향적인 아이는 친구가 많지 않잖아요. 단짝 친구와 틀어지면 상처도 더 크게 받아요.   시행착오 없는 인생이 어디 있나요? 친구와 좋을 때가 있으면 싸울 때도 있는 것이죠. 그런 경험도 아이에겐 필요해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법도 알 수 없으니까요. 갈등이 생기지 않게 하거나 해결해 주는 게 부모 역할이 아닙니다. 아이가 갈등 상황을 건강하게 해석하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하지만 속마음을 도통 말하지 않으니, 혼자 끙끙 앓을까 봐 걱정됩니다. 아이에게 친구 관계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어선 절대 안 됩니다. 또래 관계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과도한 관심을 표현하지 말라는 겁니다. 정작 아이는 별다른 생각이 없는데 양육자가 심각한 모습을 보이면, 그때부턴 정말 문제가 되거든요. 아이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고요. 친구는 필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친구 사귀는 데 조바심이나 경쟁심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 말해 주세요. 학교에서도 친구 관계가 아닌 다른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잘하는 걸 찾아 주세요. 체육이나 동아리 활동, 공부 같은 거요.     내향적인 아이는 자기 표현을 잘 못 하잖아요. 친구에게 휘둘리거나 괴롭힘을 당하진 않을까요?     내향 아이는 걱정이 많아요. 혹시 친구가 더는 나랑 놀지 않을까 봐, 선생님에게 혼날까 봐…. 문제가 커져서 주목받는 상황도 최대한 피하려 하죠. 그래서 자기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에 입을 닫습니다. 만약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걸 알게 됐다면,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 이유부터 물어 보세요. ‘뭐가 걱정됐어?’라고요. 그리고 아이가 우려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세요. 아이가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을 직접 내뱉도록 돕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때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어떻게 말하고 싶었어?’라고 물어 주세요. 내향적일수록 평소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를 많이 만들어줘야 해요. 부모와의 대화 훈련을 통해서요.  이정화 소장은 "내향 자녀를 키우는 양육자는 아이 친구 관계에 지나치게 관심을 보이거나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  📌감정을 읽으면 강점이 보인다   내향적 아이는 자기 생각과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다. 속상해도 조용히 삭이는 쪽을 택한다. ‘아이의 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답답한 마음에 아이를 다그쳐도 보지만,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     ‘네 생각을 말해 달라’고 해도 아이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벽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에요.    내향적인 아이는 복잡한 심경을 한마디로 표현하길 어려워합니다. 내 말에 상대가 어떻게 반응할지까지 고려해 말해야 하니까요. 게다가 완벽하게 준비가 되지 않으면 말도 꺼내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런 아이를 보고 있자면 답답할 수밖에요. 하지만 아이는 말하지 않아도 자기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고 있어요. 만약 뭐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대답하지 않으면 그냥 넘어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싫다’는 의사를 표현한 것일 수 있거든요.   평소 자기 마음을 드러내지 않던 아이가 한순간 크게 화를 내고 떼를 쓰기도 해요. 도통 종잡을 수가 없어요. 내향적인 아이는 예민한 기질인 경우가 많은 데다 감수성도 뛰어납니다. 자기감정에 휩싸이기 쉽죠. 그런데 내향적 아이에겐 자기를 표현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잖아요. 자기감정이나 주장을 내보이기도 전에 상황이 종료된 경험도 많을 테고요. 내향적인 아이들이 상담 중에 가장 많이 토로했던 감정이 뭔지 아세요? 억울함이었어요. 자기가 온전히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요. 그게 쌓여서 폭발하는 거예요.   아이 스스로 감정을 잘 다룰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기다려 주세요. 내향적인 아이는 감정을 빠르게 전환하지 못합니다. 혼자 감정을 정리할 시간을 충분히 주세요. 감정이 가라앉은 뒤에 느낌이 어땠는지, 상황이 어떻게 되길 바랐는지 물어 보시고요. 이때 직접 질문하기보단 상징적, 은유적 표현을 쓰면서 대화를 시작하는 게 좋아요. 아이가 대화를 피하지 않고 자기 감정을 우회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아까 왜 그렇게 화가 난 거야?’라고 묻기보단 ‘화났을 때 느낌이 어때? 온몸에 불이 붙은 거 같았어?’ 하고 운을 떼는 거죠. 언어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면, 그림 그리기나 펀치백 때리기 같은 활동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아이가 안전하게, 마음껏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자신을 안정시키고 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자기를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거든요.    이정화 소장은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 아이는 낯 가리는 고집 세고 느린 아이일까요, 세심하고 꼼꼼한 강단 있는 아이일까요?” 결국 보는 관점에 달렸다는 것이다. 그는 “내향적일수록 잠재력을 발휘하는 데 엄마·아빠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아이를 보는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향적인 아이는 드러내지 않을 뿐 신중하고 꼼꼼하게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그런 아이의 강점을, 보이지 않는 노력을 알아 주세요. 내향적인 아이야말로 기다리고 믿어 주는 만큼 큽니다.  이정화 소장은 "내향 아이에겐 자기 감정을 안전하게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관련기사 완벽주의자라서 힘들다고? 성공한 사람 이렇게 관리했다 “아이가 수줍음이 많아요” 부모의 이 생각은 틀렸다 스티브 잡스와 머스크의 공통점은? 예민한 엄마를 위한 조언

    2024.05.08 15:17

  • 타일러가 국어유치원 다녔나…영유 필수? 그게 착각인 이유

    타일러가 국어유치원 다녔나…영유 필수? 그게 착각인 이유 유료 전용

    어렸을 때 미국에서 3년간 유치원을 다녔던 고등학생과 한국에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한 중학생, 둘 중에 누가 더 영어를 잘할까요?   “영어, 조기교육이 필수냐”는 질문에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이렇게 되물었다. 어릴수록 외국어 습득에 유리하다는 건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유아 대상 영어학원(영어유치원, 이하 영유)이 성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릴 때 미국에서 3년간 살았던 학생이 영어를 더 잘할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이 교수의 답은 달랐다. 조기 영어 교육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인터뷰했더니, 후자의 영어 실력이 더 뛰어났다는 것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두 학생의 실력을 가른 건 지속성이었다. 전자의 경우 한국에 돌아온 후 영어 학습에 소홀했지만, 후자의 학생은 꾸준히 공부했다는 게 달랐다. 결국 영유도 꾸준한 학습이 이어지지 않으면 돈 낭비가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이 교수는 외국어로서 영어 학습을 연구해 왔다. 초·중·고 영어 교과서 대표 저자로도 참여했고, 관련 책도 여러 권 썼다. 2014년 출간한 『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에선 한국인들이 그렇게 공부하고도 정작 영어를 못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지난해 나온 『서울대 석학이 알려주는 자녀교육법: 영어』엔 영어 교육 고민에 대한 솔루션을 담았다. 그가 생각하는 조기 영어 교육의 효과와 부작용은 뭘까? 어떻게 해야 영어 잘하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까? 지난달 25일 그를 만나 물었다.   ■  「 Intro  시기보다 중요한 건 시간이다 Part 1 1만1680시간의 법칙 있다 Part 2 파닉스, 집착할 필요 없다 Part 3 원서, 온몸으로 읽어줘라 」   ━  🔠1만1680시간의 법칙 있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지난해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1만1000명에게 물은 결과, 100명 중 16명(15.9%)은 만 4세 전에 영어 사교육을 시작했다. 이 시기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과목 역시 영어였다. 그 중심엔 단연 영유가 있을 것이다. 영어는 일찍 배울수록 효과적이란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빠를수록 유리하다는 것이야말로 영어 교육에 관한 가장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런 오해가 왜 생긴 건가요? 말을 배우는 데 결정적인 시기가 있다는 이론이 있어요. ‘결정적 시기 가설’이죠. 하지만 이 가설은 이중언어 몰입환경일 때만 맞습니다. 이민이 대표적이죠. 실제로 미국에선 이민자들의 영어 습득에 관한 연구가 활발합니다. 어릴 때 이민 온 사람일수록 영어 능력이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요. 문제는 이런 연구가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는 거죠. 이민자 대상 연구가 마치 한국에서 교육받는 아이들에게도 통할 것처럼 알려지면서 조기교육 열풍을 불러일으켰어요.   하지만 영유 출신 아이들이 영어를 잘하는 건 사실이에요.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경우도 있고요. 영유를 보내면 이후에도 영어 사교육을 꾸준히 시키니까요. 영어권 국가로 1~2년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하고요. 결국 영유 출신 아이들이 영어를 잘하는 건 영어에 노출된 절대적인 시간이 많은 덕분이죠. 영어를 어릴 때부터 배워서가 아니라요. 영어를 처음 접한 나이에 따라 실력이 달라진다는 건 증명된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성인이 유아보다 외국어를 잘 배웁니다.   성인이 유아보다 외국어를 잘 배운다고요? 육아정책연구소에서 몇 년 전에 유치원생, 초등학교 3학년 학생, 대학생을 대상으로 중국어를 가르쳤는데, 대학생이 가장 잘 배웠어요. 해외에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5~6세, 15세, 2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외국어 학습 효율을 비교했는데, 20세 이상이 가장 잘 배운다는 결론에 이르렀죠. TV만 봐도 그래요. 타일러 라쉬처럼 한국에서 방송 활동을 하는 외국인이 많잖아요. 대부분 성인이 된 뒤 한국에 와서 말을 배웠지만,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시기가 아니라 학습량과 노출량이란 얘깁니다.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하려면 시간 투자를 얼마나 해야 할까요? 제가 딱 알려드릴게요. 1만1680시간 이상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시간이 딱 떨어지게 나오나요? 사실 모국어를 익히는 데 그 정도 걸려요. 아이는 보통 하루 8시간 깨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1만1680시간은 1460일인 셈입니다. 48개월, 만 4세이죠. 그 정도면 못하는 말이 없잖아요. 노출 시간을 하루 4시간으로 줄이면 8년, 1시간으로 줄이면 32년이 필요한 셈이죠.   흠, 너무 긴데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국에서 공부해서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익히는 건 쉽지 않습니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죠. 영어에 노출될 기회가 지극히 적은 환경이거든요. 영어 한마디 안 해도 먹고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국가 중 한 곳이니까요. 학교에서 10년간 영어를 배웠지만, 실제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은 700~1000시간에 불과해요. 외국인 만나서 영어 한마디 못 할 만한 거죠.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영어 조기교육이 효과가 있다는 건 '이민'처럼 이중언어 몰입환경일 때 얘기"라며 "어렸을 때 시작하는 것보다 꾸준히 노출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  🔠파닉스, 집착할 필요 없다   파닉스가 영어 교육의 첫 단추가 된 지 오래다. 영어 글자를 보고 발음하는 법을 익히는 게 파닉스다. ‘apple(사과)’이란 글자를 보고 ‘애플’ 하고 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미국·캐나다에서도 유치원부터 초등 저학년에 걸쳐 파닉스를 가르친다. 한국에서도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파닉스 교육이 성행이다. 이 교수는 “파닉스를 단기간에 급하게 배우면 실(失)이 크다”고 지적했다.     조기 영어교육에서 파닉스는 필수 같아요. 파닉스를 영어 발화의 기초 단계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파닉스는 말하기를 가르치는 방법이 아니에요. 글을 읽는 훈련을 할 때 배우죠. 미국에선 말하기가 유창해지는 만 5~6세 무렵 글 읽는 걸 배웁니다. 이때 필요한 게 파닉스예요.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상황에서 파닉스 교육의 효과는 미미합니다.   미국 아이들에겐 파닉스가 왜 필요한가요? 모국어 듣기와 말하기를 완벽하게 습득한 아이는 파닉스 규칙에 따라 문자를 보고, 소리를 내는 훈련을 합니다. ‘cat(고양이)’을 소리로는 알고 있는 상황에서 글자를 보고 ‘캣’이라고 읽는 법을 배우는 거죠. 그럼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고요. 영어와 한국어 모두 표음문자지만, 특징이 달라요. 한국어는 글자 하나가 하나의 소리가 나요. 그래서 글자를 보고 쉽게 읽을 수 있고요. 하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아요. 철자와 소리의 관계가 굉장히 불규칙하죠.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한글 모음은 한 가지 소리로 발음합니다. ‘ㅣ’는 ‘이’,‘ㅓ’는 ‘어’로 소리 나죠. 하지만 영어 모음은 여러 가지 소리를 냅니다. ‘ea’가 ’bean’에서는 ‘이’지만, ‘bear’에서는 ‘에어’로 발음하는 식이죠. 그래서 배우기 어려워요. 제대로 익히지 않으면 잘못 소리 낼 가능성이 크고요. 파닉스를 규칙이나 법칙으로 익히면 ‘search(찾다, ‘서치’로 발음한다)’를 ‘시치’, ‘ready(준비, ‘레디’로 발음한다)’를 ‘리디’로 발음합니다. ‘ea’는 ‘이’ 소리가 난다고 배운 거죠. 실제로 서울대 영어교육과 학생 중에도 영어 단어를 잘못 발음하는 애들이 늘었어요.   어떻게 잘못 발음하나요? ‘material(재료, ‘머테리얼’로 발음한다)’을 ‘마테리얼’, ‘examine(조사하다, ‘이그제민’으로 발음한다)’을 ‘이그제마인’으로 읽는 학생이 있어요. 철자를 보고 대충 파닉스 규칙을 적용해 발음하는 거죠. 자신이 알고 있는 파닉스 규칙이 틀리다는 것을 모르고요. 파닉스 교육의 부작용입니다.    그래도 파닉스를 알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영어를 잘 몰라도 파닉스를 배우면 ‘apple’을 보고 ‘애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읽는 게 아니라 소리 내는 것에 불과해요. 앵무새가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처럼요. 파닉스를 배운 아이가 영어를 소리 내 말 한다고 ‘읽는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글자를 보고 소리를 내는 것과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다릅니다. 뜻도 모른 채 글자를 보고 소리만 내는 건 의미가 없어요.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파닉스는 미국 아이들이 모국어를 익힌 뒤 글을 읽을 때 필요한 교육"이라며 "영어를 제대로 익히지 않은 상태에서 급하게 배우는 건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  🔠원서, 온몸으로 읽어줘라   언제 시작하는지도, 발음 규칙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면, 영어는 대체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이 교수는 “책을 활용하는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영어책을 잘만 읽어 주면 영유를 보내는 것보다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영유에선 보통 강사 한 명이 10명의 아이를 가르친다. 하지만 양육자와 아이는 1대1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언어를 배우는 데 어른과 아이가 1대1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호작용이 왜 중요한가요? 요즘 아이에게 영어 동영상을 보여주는 양육자가 많습니다. 잘 활용하면 좋죠. 하지만 미디어에서 나오는 소리를 일방적으로 듣는 건 한계가 있어요. 언어 발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변 사람과의 소통이거든요. 부모가 청각 장애가 있는 아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부모를 통해 음성 언어에 노출되지 못한 아이는 주로 TV를 보며 언어를 접했어요. 그러다 보니 또래와 비교해 언어 발달이 느렸고요.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려 놀게 하자 언어 발달 수준이 정상으로 돌아왔죠.   책 읽기가 중요한 건 다들 알아요. 하지만 막상 읽어 주자니 발음이 좋지 않아 망설이는 양육자가 많습니다.   발음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아이는 양육자와 같이 영어책을 읽는 경험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니까요. 아이가 영어로 된 책을 읽거나 들을 때 책에 쓰인 묘사나 표현만으로 내용을 이해하는 건 아니에요.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아이는 주변 사람과의 정서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정서적 소통과 상황에 대한 이해를 통해 언어를 간접적으로 이해하고 익히고요. 온몸으로 책을 읽어주라는 건 그래서죠.   온몸으로 책을 읽어주라고요? 아이가 책의 내용과 표현을 이해할 수 있도록 신체적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한글 책을 읽어주는 것과 비슷합니다. ‘토끼가 깡충깡충 뛰었다’는 문장을 어떻게 읽어주나요? 양손을 머리 위로 가져가 토끼 귀를 만들기도 하고, 실제로 깡충깡충 뛰는 흉내를 내기도 하죠. 영어책도 마찬가지예요. 책에 나온 내용을 최대한 다양한 감각을 활용해 읽어주세요. ‘Tom is running(톰이 달리고 있다)’이라는 문장을 읽는다면, 뛰는 흉내를 내는 식으로요. 인형에 ‘Tom’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뛰는 것처럼 보여줘도 좋고요. 이런 경험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합니다. 글밥이 좀 되는 챕터북을 혼자 읽을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게 관건이거든요.   원서를 혼자 읽힐 때는 어떤 책을 골라야 할까요? 책 한쪽에 아는 단어가 98% 이상이어야 적절한 수준입니다. 전체 단어 수가 100개라고 했을 때 모르는 단어가 2개 정도 되는 책을 골라야 하죠. 그보다 쉬워도 됩니다. 아이 스스로 책을 고를 수 있게 도우면 더 좋고요.      책을 읽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는 단어가 98%인 책을 읽으면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앞뒤 문맥을 통해 뜻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는 단어가 10%를 넘어가면, 뜻을 유추하는 데 한계가 있죠. 학교에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유추해 보라는 식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모르는 단어는 어떻게 익히는 게 좋을까요? 영어 단어는 단순히 ‘안다’ ‘모른다’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한 단어를 어느 정도 수준으로 알고 있는지 구분하는 기준을 ‘어휘 지식 척도’라고 합니다. 다섯 단계예요. 이전에 해당 단어를 본 적 없으면 1점, 문장에서 사용할 수 있으면 5점이에요. 영어를 잘하려면 이전에 본 적 없는 1점짜리 단어를 문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5점짜리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글 속에서 단어가 사용되는 다양한 사례와 의미를 경험하고 익혀야 하죠. 한 단어를 우연히 여섯 번 정도 듣거나 읽으면 기억에 남는다고 해요. 약간의 시차를 두고 여섯 번 정도 단어를 접하게 하세요. 그런 경험이 늘면 책에서 단어를 보면 자연스럽게 뜻이 떠오를 테니까요. 독서를 통해 이런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이의 영어 실력 키우는 비법을 이 교수에게 묻는다. 하지만 정작 “하루에 영어에 얼마나 노출시키느냐”는 질문에는 대부분이 묵묵부답이다. 그는 “매일, 꾸준히 하는 것 외엔 비법이 없다”고 말했다.   저도 출퇴근길 두 시간 동안 영어방송을 듣습니다. 미국에서 7년간 유학하고, 영어 교육을 가르치는 교수인데도 말입니다. 영어는 노력하면 누구나 잘할 수 있지만, 하루아침에 잘할 수는 없습니다. 이병민 서울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영어 노출은 원서를 활용하는 게 가장 좋다"며 "양육자와 상호작용하면서 읽는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종호 기자 관련기사 “과외로 영유 붙어봐야 헛수고” ‘합격률 100%’ 레테쌤의 고백 ‘봉준호 아바타’ 여기 다녔다…원어민 뺨치는 영어실력 비법 ⑤ “1등도 꼴찌도 학원 올 수밖에” 대치동 영어 학원장의 일침

    2024.05.01 15:01

  • “학원비 누가 내는지 말해줘라” 이혼 전 아이에 설명할 것들

    “학원비 누가 내는지 말해줘라” 이혼 전 아이에 설명할 것들 유료 전용

    이혼할 결심이 그리 쉽게 서는 건 아니다. 그래서 한번 결심이 서면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하지만 이혼의 과정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어려운 건 바로 아이다. 부부관계는 끝나도, 부모로서의 관계는 남기 때문이다.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가 준비한 위기의 부부를 위한 솔루션, 마지막 회는 이혼한 부모의 양육법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내겐 이제 남이지만, 내 아이에겐 하나뿐인 부모입니다. 아이에게서 엄마를, 아빠를 지우지 마세요. 부부가 아닌 부모의 마음으로 함께 아이를 지키십시오.   “이혼 후 아이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송현종 서울가정법원 가사조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이혼 과정에서 으레 친권과 양육권 분쟁이 중심에 놓이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부모의 이혼으로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될 아이라는 얘기다.   가사조사관은 이혼, 입양, 아동학대 등 가족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법원 공무원이다. 가사조사관 중에서도 심리학, 사회복지학 등을 전공하고, 임상 경험까지 갖춘 전문조사관은 국내 197명. 송 조사관은 국내 1호 전문조사관이다.   송 조사관은 “아이는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며 살아갈 힘이 있다”고 했다. 지난 23년간 다양한 가족 문제를 관찰하고 상담하며 얻은 결론이다. 다만 그 힘의 원천은 부모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부모의 이혼은 아이에게 분명 큰 사건이다. 하지만 부모가 어떻게 돌보느냐에 따라 아이는 잘 적응하고 자랄 수 있다. 송 조사관은 “결혼을 계획하듯, 이혼 후 양육도 계획이 필요하다”며 “그 계획을 위해 부모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했다. 이혼한 부모가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지난 19일 서울가정법원에서 그를 만나 물었다.   ■  「 Intro 부모의 이혼, 적응유연성이 필요하다 Part 1 이혼고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까? Part 2 편견: 정상가족신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Part 3 공동양육: 어떻게 함께 키울 것인가?  」     ━  👩‍👦‍👦이혼 고지: 언제 무엇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송 조사관에 따르면 아이가 부모의 이혼을 받아들이기까지 평균 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기간 아이들은 ‘부인→분노→협상→우울→수용’에 이르는 다섯 가지 감정을 단계적으로 겪는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환자가 겪는 감정과 다르지 않다. 부모의 이혼이 죽음만큼 큰 충격이라는 얘기다. 송 조사관은 “충격을 피할 순 없다”면서도 “자신에게 닥친 현실을 이해하면 그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고 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암환자와 같은 심리 상태라니, 마음이 아프네요. 안쓰럽죠. 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인간은 어려움 속에서도 안정을 찾아가려는 적응유연성이 있거든요. 새로운 상황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스스로 조절하며 적응하는 힘이 있다는 겁니다. 이 힘은 아이의 감정에 부모가 적절히 반응할 때 길러지는데요, 특히 부모의 이혼처럼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올라와 감정이 널뛸 땐 더 세심히 살펴야 합니다. 아이는 내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와 원인을 잘 몰라 답답하거든요. 불안이 높을수록 감정 기복은 더 심해지고요. 부모가 그 불안을 낮춰줘야 해요.    어떻게요?  이혼이 진행되는 상황을 가감없이 설명하세요. 흔히 ‘애들이 충격받을까’ 두려워 이혼 과정에 대해 함구합니다. 그러다가 이혼 절차가 끝난 뒤에야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다”고 통보하거나 “출장 간다”며 말 없이 짐을 싸서 나가죠. 이때 아이가 받는 충격은 가족을 잃은 것에 버금갑니다. 아이에게도 시간을 줘야 해요. 만 3세가 넘은 아이라면 이혼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하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그래서 계획이 필요합니다. 무엇을, 언제, 어떻게 얘기할지 부부가 미리 합의해야 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건 이혼 절차가 시작될 때 또는 별거하기 최소 일주일 전에 부모가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꺼내는 겁니다. 이혼 상황을 설명할 땐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구분지어 말합니다. 이때 아이들이 궁금해 하는 건 ‘이혼 후 나는 어떻게 되는가’입니다. 누구와 어디서 살게 되는지, 전학을 가는지, 생활비·학원비는 누가 내는지 등 이혼 후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 예측가능성을 높여주세요. 아이의 질문도 쉽게 넘기지 마시고요. 다만 이때 절대 해선 안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이혼을 하게 된 원인이나 배우자를 탓하는 말이 대표적이에요. 이런 말은 부모를 편가르기 해 아이에게 충성 갈등을 유발합니다. 아이는 문제의 책임이 있다고 여기는 부모와는 관계를 단절하려고 하죠. 부모와 자녀는 천륜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관계가 끊어지면 아이는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해요. 아이에게 “누구랑 살래?” 하고 묻는 것도 좋지 않아요. 그보다 “누구 편에 설 필요 없어. 엄마와 아빠가 헤어져도 여전히 너와 한 편이고, 네 곁을 지킬 거야”라고 말하세요.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하는 말도 있어요.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이죠.   “네 탓이 아니야”, 무슨 의미인가요? 죄책감을 갖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아이들은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자기중심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부모 문제도 내가 잘못해서 벌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라며 자기 존재를 부인하기도 하고요. 이런 생각은 우울감으로 이어집니다. 이 생각을 멈추려면 아이의 존재를 인정하는 말로 신뢰를 줘야 합니다. “너는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축복 받고 태어난 아이야. 그런데 사랑은 상황에 따라 식을 수도 있어. 그건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 중 하나야. 네 탓이 아니야”라고요. 이 말은 이혼 후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수시로, 반복해서 해주세요. 국내 1호 전문가사조사관인 송현종 조사관은 "이혼은 숨기면 숨길수록 문제가 눈덩이처럼 커진다"며 "이혼을 결심했다면, 아이에게 솔직하게 상황을 전달하라"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  👩‍👦‍👦편견: 정상가족신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이혼 가정에는 알게 모르게 ‘문제 가정’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송 조사관은 “이혼 가정에 붙는 꼬리표는 정상가족 신화가 만든 편견”이라고 일갈한다. 결혼으로 부부가 된 남녀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로 이뤄진 핵가족만을 이상적인 가족 형태로 여기는 사회에선 그외의 모든 형태의 가정은 비정상일 수밖에 없다. 비정상이라는 낙인은 가족 모두에게 상처다. 이혼 사실을 숨기려는 건 그래서다. 송 조사관은 “감추면 감출 수록 상처는 눈덩이처럼 커진다”며 ”부모부터 정상가족 신화를 깨고 나오라”고 강조했다.    사회적 편견을 개인의 힘으로 깨는 건 쉽지 않아요.  사회를 바꾸라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그런 편견에 휘둘리지 말라는 겁니다. 정상가족 신화를 받아들인다면, 부모 역시 이혼한 자신을 실패자로 여길 수밖에 없어요. 문제는 이런 시각을 아이도 배운다는 겁니다. 부모가 이혼 사실을 감추고 자기 연민에 빠지니 아이도 불안할 수밖에요. 게다가 이럴수록 고통받는 자신을 돌보느라 아이의 어려움은 뒷전이 됩니다. 물론 이혼이 마냥 좋은 건 아닙니다. 고통스럽고 힘들죠. 하지만 죄를 지은 건 아닙니다. 이혼도 그저 삶에서 만나는 여러 사건 중 하나일 뿐이에요.   ‘정상가족’이란 게 신화일 뿐이라는 건 다들 알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거기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죠. 이혼을 가족의 해체로 생각하지 말고, 가족의 재구성이라고 바라보세요. 아이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의 위치와 역할을 재배치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우선 이혼의 방식부터 바꿔야 합니다. 싸우는 이혼이 아닌 협력적인 이혼으로요.   서로에 대한 감정인 나쁠 대로 나빠진 상황인데, 협력이 가능할까요? 정서적 이혼을 하면 가능합니다. 상대에 대한 나쁜 감정을 흘려보내고, 서로를 떠나보내는 애도의 시간을 갖는 겁니다. 우리는 ‘이혼’ 하면 법적 이혼만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서류 정리가 끝이 아닙니다. 가족·친구 등 결혼을 통해 맺었던 관계와 부모 역할을 정리하고 함께 사용하던 가전·가구 같은 것을 처리하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정서적으로 이혼하지 못한 상태라면 상대에게 나쁜 감정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럼 정리를 위해 만날 때마다 싸웁니다. 풀리지 않은 응어리는 이후 인생에서도 불행의 씨앗이 되고요. 이혼을 하고도 싸우는 부모를 보면 아이에겐 절망만 남습니다.    정서적 이혼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감정을 털어놔야 합니다. 저는 변호사를 찾기 전에 전문 상담사를 찾아가라고 권합니다. 믿을 수 있는 친구나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고요. 약점이 될 거라는 생각에 이혼 사실을 꽁꽁 숨기는 분이 있어요.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고 위로와 지지를 받으세요. 감정을 잘 정리했다면, 자기 정체성도 새롭게 세워야 합니다. 이혼은 일상의 중심을 ‘우리’에서 ‘나’로 옮겨오는 겁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나를 점검하며 냉철하게 바라보세요. 이혼 후 아이와 함께 성장할 방법을 계획하고요. 그래야 사회적 편견에 맞서 아이를 지킬 힘이 생깁니다.    부모가 아무리 잘해도 아이가 받는 상처를 막을 순 없습니다. 아이가 상황을, 상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세요. “힘들 수 있어. 자연스러운 일이야”라는 식으로요. 상처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밝히는 것도 좋아요. “사회에는 가족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이 있고, 나와 다른 생각을 듣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하는 겁니다. 아이나 이혼한 부모의 잘못이 아니라고도 말해 주세요. 아이와 이혼한 부모를 바라보는 사회적인 시선이 문제라고요. 힘든 감정을 좋은 감정으로 바꿀 순 없어요. 하지만 아이와 한 팀이 되면 극복할 수 있습니다. 송현종 조사관은 "사회문화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정상가족 신화가 이혼 가정에 대한 편견을 만든다"며 "이혼에 대한 관점을 가족 해체가 아닌 가족 재구성으로 바꾸라"고 했다. 장진영 기자  ━  👩‍👦‍👦공동양육: 어떻게 함께 키울 것인가?      친권·양육권 문제는 이혼 과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그래서 분쟁이 많은 지점이다. 송 조사관은 “이때 부모들이 실수를 많이 저지른다”고 했다. 부모로서의 권리 찾느라 정작 아이는 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를 누가 키울지보다 어떻게 키울지를 협의하는 게 먼저”라고 했다.   친권이나 양육권 자체가 문제인 걸까요? 부모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은 문제가 아닙니다. 부모에게 승자와 패자 이미지가 씌워지는 게 문제죠. 법은 기본적으로 분쟁 구조입니다. 이혼도 마찬가지고요. 재판부는 혼인 파탄의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가리는 걸 우선순위에 둡니다. 친권·양육권도 승패를 가늠하는 단서가 되고요. 친권과 양육권을 확보한 부모는 승자, 상대는 패자로 여깁니다. 이 상황이 아이는 혼란스럽습니다. 아이에겐 양쪽 모두 똑같이 사랑하는 존재인데, 법원의 결정에 따라 부모의 우위가 결정되니까요. 아이의 행복을 생각한다면, 친권·양육권 분쟁에 열중하기보다 어떻게 키울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가정 법원에서도 이혼 과정에 있는 부부에게 부모 교육을 하는데요. 이걸 공동 양육 계획이라고 부릅니다.    공동 양육요? 부부는 아니지만, 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역할을 재조정하는 겁니다. 이혼 후 생활 환경에 맞춰서요. 양육권을 확보한 쪽에선 ‘솔로 육아’를 선언하곤 하는데요. 이건 양육자의 욕심입니다. 아이에겐 엄마와 아빠 모두 대체불가능한 존재입니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배우자라도 아이에게는 하나뿐인 부모예요. 그 자리를 빼앗아선 안 됩니다. 공동 양육을 통해 아이가 한쪽 부모의 빈자리를 느끼지 않게 해주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계획해야 할까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아이 일상과 관련된 것, 각 부모와 보내는 시간에 관한 것, 의견이 다를 때 조율하는 법이죠. 먼저 아이 일상과 관련해서는 책임자를 분명히 하는 게 좋습니다. 교육, 건강 등이 대표적인데요, 예를 들어 학부모 모임에는 누가 참석할지, 위급 상황에 누가 통보받을 것인지, 아이 휴대전화 명의는 누구로 할지, 학원비와 의료보험료는 누가 낼 것인지 등입니다. 책임자는 아이의 상황을 전 배우자에게 꼼꼼히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하세요. 팁을 드리자면 정보전달 및 상황 이해를 돕기 위해 양육 수첩을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아이가 각 부모의 집을 오가면 신경 쓸 게 많습니다. 면접교섭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다만 법에 구애받기보다 아이가 각 부모와 충분히 시간을 나누고 정서적 안정을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계획하세요. 그러려면 정기적으로 오가는 장소, 시간, 거주 시간을 비롯해 생일, 명절, 방학에는 누구와 어디서 보낼지 등에 대한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합의된 내용은 반드시 지키고, 비밀은 없어야 한다는 겁니다. 간혹 법적으로 불리해질까 싶어 문제를 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면 새로운 갈등이 시작되고, 아이와 한쪽 부모는 더 멀어집니다.   의견이 다를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두 가지 원칙을 세우세요. 첫째, 일상의 루틴을 유지한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만드세요. 아이가 어디에 있든 기상·취침 시간, 식단, 학원 시간, 취미 생활 등 일상은 똑같은 루틴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가족만의 규칙을 정하는 게 좋습니다. 식사 후에는 산책을 가는 식으로요. 다만 양육법은 유연해야겠죠. 예를 들어 게임 시간을 두고 한쪽 부모는 30분, 한쪽은 1시간을 허용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루틴을 깨지 않는다면, 상대 부모의 양육법을 인정하세요. 양육법에는 옳고 그름이 없으니까요.  이혼으로 부부의 관계는 끝났지만, 부모의 역할은 남았다. 송 조사관은 "이혼 후 부모로서 비즈니스 파트너가 될 때 따로 또 같이 아이를 함께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송 조사관은 인터뷰 내내 협력적인 이혼을 강조했다. 아이를 위해서다. 하지만 싸우다 지쳐 헤어지는 관계에서 그게 가능할까? 송 조사관은 “아이의 행복을 공동 목표로 둔 비즈니스 파트너라면 가능하다”고 했다.     상대가 아이에게 최고의 부모가 될 수 있게 서로 동맹을 맺으세요. 아이 덕분에 이혼의 상처를 딛고 웃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새 출발이 시작됩니다.  관련기사 사과도 안하고 “밥 먹었어?” 부부싸움 뒤 이 말에 숨은 뜻 “이혼하자” 말보다 먼저 해라…빈털터리로 헤어지지 않는 법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 했다면? 당장 이것부터 설명해줘라

    2024.04.28 1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