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딩을 짠다? 글 쓰는 겁니다…구글 검색에 숨은 ‘거대 세계’

    코딩을 짠다? 글 쓰는 겁니다…구글 검색에 숨은 ‘거대 세계’ 유료 전용

    코딩의 본질은 글쓰기예요. 독자가 컴퓨터일 뿐이죠. 컴퓨터는 코드를 읽고 시키는 대로 일합니다. 읽기 쉬워야 잘 쓴 코드예요.   코딩은 대체 뭘까? 개발자 출신인 박준석 변리사는 “코드를 짜는 건 글 쓰는 것과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독자가 읽기 쉽게 명료하고 논리적인 글이 좋은 글인 것과 마찬가지로, 코드도 그렇다는 것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개발자 출신인 그는 개발자들이 만든 아이디어를 특허로 만들고, 해당 기업에 투자하는 일을 하고 있다. 코딩의 부가가치를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하는 셈이다. 그는 변리사로 일하며 “코딩할 줄 아는 능력보다 코딩의 의미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가 일반인과 어린이를 위한 코딩 입문서 『세상을 만드는 글자, 코딩』 『코딩하기 전 코딩 책』을 쓴 이유다.   반도체에서 인공지능(AI)까지,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한다. 컴퓨터를 다룰 줄 아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필수 역량이 됐다. 내년부터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의무화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체 코딩을 어떻게 이해시키고,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지난 4일 박준석 변리사를 찾아가 직접 물었다.     ■  「 Intro 코딩, 대체 뭐지? Part 1 코딩은 논리적 글쓰기다 Part 2 코드, 세계를 만드는 설계도 Part 3 코딩보다 중요한 것 」   ━  💻Part 1 코딩은 논리적 글쓰기다   지금 이 순간 지구 위엔 글을 읽고 있는 ‘사람’보다 글을 읽고 있는 ‘컴퓨터’가 더 많다. 사람들이 특정한 앱이나 웹 서비스를 사용하는 동안 수많은 스마트폰과 PC가 그 뒤의 숨은 코드를 읽고, 코드가 명령하는 바를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에서 간단한 검색을 하는 동안에도 우리의 스마트폰은 20억 줄이 넘는 코드에서 필요한 부분을 찾아 읽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스마트폰과 PC 안에서 돌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스마트폰과 PC가 읽을 수 있는 코드, 즉 글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박준석 변리사는 “컴퓨터가 발명된 이후 인류는 무엇인가를 만들기 위해 망치질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코드가 글이고 코딩은 글쓰기라니, 신선한 접근입니다. 비유나 수사가 아닙니다. 실제로 코드를 짜는 건 프로그래밍 언어를 활용해 글을 쓰는 겁니다. 다만 그 프로그래밍 언어를 컴퓨터가 그대로 읽는 건 아니에요.   컴퓨터가 읽으라고 쓰는 글이 코드인데, 컴퓨터가 읽지 못한다고요? 컴퓨터는 0과 1밖에 모릅니다. 오직 이 두 숫자만 읽고 처리하고 저장하죠. 그래서 컴퓨터에 어떤 일을 시키려면, 0과 1만을 사용해서 명령해야 해요. 실제로 초창기 개발자는 0과 1만을 써서 코딩했습니다. 처음엔 키보드나 모니터도 없어서, 천공(穿孔, punched) 카드에 구멍을 뚫어 코딩했죠. 개발자가 OMR(Optical Mark Recognition) 카드 같은 것에 0과 1을 펜으로 표시하면, 대신 구멍을 뚫어주는 펀처(puncher)라는 직업도 있었어요.   그럼 지금 개발자가 쓰는 프로그래밍 언어는 어떻게 생겼나요? C언어, 자바, 파이선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들 언어는 고급언어라고 불러요. 인간의 언어와 가깝다는 의미에서요. 인간의 언어와 완전히 같을 순 없지만, 인간과 컴퓨터가 동시에 이해할 수 있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인공언어죠. 대부분 영어를 기반으로 합니다.   영어 같은 언어로 쓰여진 코드를 컴퓨터가 어떻게 읽나요? 컴퓨터는 0과 1밖에 못 읽는데 말이죠. ‘번역기’라는 프로그램이 존재합니다. 최초의 고급언어인 C언어가 만들어질 때 번역기도 함께 개발됐어요. 번역기 덕분에 개발자들은 0과 1만 사용해서 코드를 짜지 않아도 됐죠.   프로그래밍 언어는 종류가 얼마나 되나요? 공식적인 통계는 찾기 어렵지만, 700개가 넘는 프로그래밍 언어가 있다고 해요. 하지만 모든 언어가 고르게 사용되는 건 아닙니다. 인간의 언어 역시 7000개가 넘지만, 이 중 5000만 명 이상이 모국어로 쓰는 언어는 23개에 불과하잖아요. 프로그래밍 언어도 마찬가지예요. 국제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에 따르면 C언어, 자바, 파이선, C++, R, C# 등이 널리 쓰이죠.   인간의 언어는 여러 개를 한번에 구사하기 쉽지 않은데요, 프로그래밍 언어도 그런가요? 특정 언어에 익숙한 개발자가 다른 언어를 익히는 건 절대 쉽지 않아요. 물론 한국인이 영어나 중국어를 배우는 것보다는 쉽지만요. 프로그래밍 언어 자체가 인공적으로 설계된 언어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데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개별 언어를 뛰어넘는 코딩의 핵심은 뭔가요? 코드를 짜는 데엔 대단한 수학 지식이나 과학 지식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1960년대 이전만 해도 코딩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학문에 끼이지도 못했어요. 현장에서 배우는 실전 기술 같은 거였죠. 코딩은 그저 컴퓨터에 업무를 지시하기 위한 ‘논리적 글쓰기’일 뿐입니다. 컴퓨터가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해선 어떤 순서로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지, 해당 업무를 처리할 때는 어떤 계산식을 써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적는 게 중요합니다.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코딩은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배워야 한다고요. 코딩의 핵심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박준석 변리사는 "코딩은 결국 글쓰기"라고 말했다. 독자가 컴퓨터인 글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간결하고 논리적인 글이 좋은 글이듯 코드도 마찬가지다. 김현동 기자  ━  💻Part 2 코드, 세계를 만드는 설계도   박준석 변리사는 “코딩은 과학과 같은 층위에서 배워야 하는 과목이자 학문”이라고 말했다. 초·중·고 12년간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을 배우는 건 자연 현상과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과학자가 되지 않더라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해야 다양한 기회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딩은 인간이 스스로 세계를 만드는 방법이고, 코드는 그 설계도다. 그는 “코딩을 이해한다는 건 인간이 만든 인공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대인의 삶은 실재하는 자연 세계뿐 아니라 거대한 인공 세계로 구성돼 있다. 24시간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이 그 증거다. 박 변리사는 “과학만 공부하고 코딩을 공부하지 않는 건 우리가 사는 세계의 절반만 이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드가 인간이 만든 세계의 설계도라고요? 구글 검색 페이지를 띄우고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소스 보기’나 ‘개발자 도구’가 떠요. 이걸 클릭하면 그 페이지의 코드를 볼 수 있어요. 해당 화면을 보여주기 위해 개발자가 쓴 코드죠. 이걸 번역기를 통해 0과 1로 번역한 뒤 컴퓨터가 실행해 모니터에 출력한 화면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본 코드는 ‘구글’이라는 이름의 검색 세계를 만들기 위해 개발자들이 쓴 글이자 설계도인 셈이죠. 웹 페이지에서 개발자 도구나 코드 보기 기능을 이용하면, 해당 페이지의 코드를 볼 수 있다. 화면은 구글의 첫 검색 화면과 그 코드. 검색 화면 하나를 보여주는 데도 코드가 상당히 길어요. 구글이란 서비스가 몇 줄의 코드로 이뤄져 있는지 아세요? 20억 줄이 넘는다고 해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는 1200만 줄, 윈도7은 4000만 줄, 페이스북은 6200만 줄의 코드로 만들어져 있어요. 이렇게 긴 글을 한 사람이 결코 쓸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개발자는 논리적으로 글을 잘 써야 해요. 컴퓨터만 읽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개발자)도 읽어야 하니까요. 다른 사람이 이어서 코드를 쓰기도 하고, 수정하기도 해야 하니 말이죠.   개발자가 코딩으로 창조하는 건 구글 같은 소프트웨어가 만드는 웹과 앱의 세계인가요? 최근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죠. 개발자가 쓴 코드에, 개발자가 만든 감각 데이터를 합해서 가상현실(메타버스)을 만들려고 하니까요. 가상현실 기기를 쓰고, 2D로 보던 화면과 영상을 3D로 보는 것처럼요. 이런 감각 데이터도 사실은 0과 1을 가지고 만들어낸 것이죠.   메타버스가 한때는 유행했는데, 요즘은 시들합니다. 인공지능(AI)이 핫키워드죠. AI 역시 개발자가 코드로 만든 새로운 세계입니다. 인간만이 가진 지능을 인공적으로 만들었으니까요. 다만 AI는 개발자가 그간 코드로 만들던 세계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만들었어요.   어떻게 다른가요? 코딩을 통해 컴퓨터에 특정한 업무를 맡기려면, 그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을 이해하고 있어야 해요. 그 업무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떤 걸 해내야 하는지, 그걸 위해선 어떤 순서로 해야 하는지 컴퓨터에게 알려줘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했죠. 개 사진을 보고 개인지 맞히는 게 대표적이에요. 이걸 컴퓨터에게 시키려면, 사진을 보고 개인지 알아내는 계산식을 짜줘야 하죠. 그런데 도무지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다리가 네 개 있고 털이 있고 꼬리가 하나 있으면 개인가요? 고양이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그 문제를 어떻게 풀었나요? 개 사진을 엄청나게 많이 주면서 일일이 개라고 알려줍니다. 그럼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을 통해 사진을 보고 개인지 알아내는 계산식을 찾아내요. 마치 인간이 개가 뭔지 학습하듯 말이죠. 아이에게 개의 정의를 알려주고, 개를 구별하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저 개를 많이 보여주면, 어느 순간 개라는 걸 알게 되죠.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풀기 때문에 AI를 개발하는 덴 데이터, 그것도 빅데이터가 필요해요.   AI를 만드는 개발자에겐 글쓰기를 잘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네요? 그보다 더 좋은 학습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걸 활용해 AI를 잘 학습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유방암 초음파 사진을 판독해 주는 AI를 만든다고 해볼게요. 우선 유방암 초음파 사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미지 처리에 적합한 AI를 가져다가 학습시켜야 하죠. 얼마나 많은 데이터를 가지고, 얼마나 큰 AI를 가져다 제품을 만들지 결정해야 합니다. 학습시키는 방법도 결정해야 하고요. 코드를 짜는 걸 넘어 제품을 만드는 전 과정에 대한 이해와 관리 역량이 필요한 셈입니다. 박준석 변리사는 "코딩은 인간이 인공의 세계를 만드는 행위고, 코드는 그 세계의 설계도"라고 말했다. 메타버스와 인공지능(AI)은 코드가 만든 더 깊고, 더 새로운 세계다. 김현동 기자  ━  💻Part 3 코딩보다 중요한 것   변리사는 특정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특허로서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고, 특허권을 얻어내는 기술 감별사다. 기술과 그 기술이 만들어 낼 시장 가치를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인 셈이다. 그런 그 역시 중학교 2학년 아들을 코딩학원에 보낸 적이 있다. 학원에서 아들은 특정한 문제를 푸는 프로그램을 만들며 코드를 짰다. 그럼 선생님들이 코드를 보고 피드백을 하는 식으로 수업이 이뤄졌다. 그는 “이런 식의 코딩 교육을 좋다고 말하긴 어렵다”며 “코드를 쓸 줄 알아야 하지만 코드 쓰는 행위에 매몰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개발자는 코드를 잘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론입니다. 단순하고 간결하게, 논리적으로 코드를 쓸 줄 알아야 하죠. 하지만 코드를 쓰는 일은 이미 상당 부분 외주화돼 있어요. 국내 개발자가 설계하면, 설계에 따라 실제 코드를 쓰는 건 베트남 등지의 개발자가 하는 경우도 많고요. 최근엔 AI에 코드를 짜게 하기도 해요. AI가 가장 잘하는 게 코드를 쓰는 일이라고 할 정도로 잘하거든요. 다른 누군가 혹은 AI가 쓴 코드를 해석하고 고칠 수 있는 능력 정도만 있으면 충분해요.   그럼 개발자는 뭘 해야 하나요? 결국 코드나 AI를 이용해 무엇을 만들 것인지가 중요해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상상하고 구현해 내야 하죠.   너무 뜬구름 잡는 얘기처럼 들려요.  애플이 가진 특허 중에 화면을 밀어서 잠금을 해제하는 기능이 있어요. 애플의 특허이기 때문에 삼성은 쓸 수 없죠. 삼성이 패턴으로 화면 잠금을 해제하는 이유입니다. 스마트폰에서 화면을 아래로 쭉 내리다가 끝나면 마지막에 화면이 한 번 튀는 기능, 아시죠? 스크롤 바운스백이라는 기능인데, 이것도 애플의 특허입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삶을 작게나마 개선하는 건 바로 이런 거예요. AI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픈AI처럼 거대언어모델(LLM)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걸 활용해 삶의 크고 작은 영역을 개선하는 애플 같은 아이디어가 필요해요.   코드를 짜고, 기술을 개발하는 일보다 삶의 장면을 바꾸는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는 건가요? 변리사로 일하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미국의 법원은 애플의 저런 디자인 특허를 침해하는 건 더 강하게 처벌합니다. 왜냐하면 저런 기능 없이도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데 베끼니 더 나쁘게 보는 겁니다. 반면에 통신기술 특허 같은 건 해당 기술이 없으면 스마트폰 자체를 만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런 특허는 오히려 보호하기 어렵습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가 더 강한 건 이런 기술 중심의 특허죠.   기술을 알고, 코드를 잘 쓰는 것만큼이나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스티브 잡스는 개발자가 아니었어요.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저커버그는 하버드대에서 심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는데, 중퇴했죠. 오픈AI 창업가 샘 올트먼도 스탠퍼드대 컴퓨터공학과를 중퇴했어요. 시장을 바꾼 창업자들이 개발밖에 모르는 개발자가 아니란 얘깁니다. 코드를 짜는 데 매몰된 교육을 할 이유가 없죠.   박준석 변리사는 "코드를 짜는 데 매몰된 교육은 좋은 코딩 교육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보다 중요한 건 코드가 만드는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김현동 기자 이제 컴퓨터에 업무를 지시하기 위해 컴퓨터 언어를 할 필요도 없어진 시대가 AI 시대다. 챗GPT 같은 LLM이 나오면서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있는 까닭이다. 박준석 변리사는 “그럴수록 코딩을 넘어 코딩이 만드는 세계와 그 원리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간이 만들어 낸 세계의 영향이 커질수록 그 세계에서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되려고 과학을 배우는 게 아니듯 코딩도 마찬가지예요. 인간이 만든 세계를 모르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어요. 그게 바로 코딩을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관련기사 AI가 만든 ‘연봉 4억’ 직업…질문하는 창의성 시대 왔다 “사촌이 땅 사게 도와줘라” 뇌과학자가 본 ‘미래 리더’ "대치동 엄마 욕하지 마라" 서울대 경제교수 뜻밖 팩폭

    2024.04.17 15:14

  • 사과도 안하고 “밥 먹었어?” 부부싸움 뒤 이 말에 숨은 뜻

    사과도 안하고 “밥 먹었어?” 부부싸움 뒤 이 말에 숨은 뜻 유료 전용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한 부부는 총 19만3700쌍. 이 중 절반에 가까운 9만2000쌍이 이혼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과 한 가족이 된다는 게 쉽지 않다는 증거다. 행복하려고 결혼했는데, 행복하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위기의 부부에게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 전문가를 잇달아 만났다. 가장 먼저 부부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소개한다.   박정민 디자이너 무엇을 해야 할까보다, 무엇을 안 해야 할까를 고민하세요.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 이것이 갈등 해결의 실마리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부부와 헤어지는 부부, 어떤 차이가 있을까? 9년 차 부부상담전문가 정다원 부부상담센터 대표는 “부부 관계의 열쇠는 상대에 대한 좋은 감정을 관리하는 데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서운함·억울함·실망감 등 상대에 대한 불만을 쌓아두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이혼하고 싶은 그녀들의 진짜 속마음』을 쓴 정 대표는 “갈등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 시작된다”고 말한다. 8000여 명의 커플을 상담하고 내린 결론이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가 생기고, 오해는 상처를 남긴다. 이 갈등의 메커니즘을 끊어야 비로소 문제가 해결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정 대표는 “성숙한 결혼 생활은 상대의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된다”며 “배려심을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상대방을 어떻게 배려해야 할까? 그렇게 하면 상처를 치유하고, 어긋난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지난달 20일 정 대표를 만나 물어봤다.   ■  「 Intro 갈등의 시작은 이해의 부재 Part 1 사랑: 싫어하는 건 하지 않는다 Part 2 집안일: 계획적으로 나눠라 Part 3 부모와 거리 두기: 독립하기 」     ━  👩🏻‍❤️‍👨🏻 사랑: 싫어하는 건 하지 않는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결혼하면 왜 사랑을 안 할까?’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 나오는 대사다. 정 대표를 찾아온 부부들도 같은 말을 한다. 눈만 마주쳐도 웃던 두 사람이 눈만 마주치면 날 선 말을 쏟아내는 식이다. 이들은 사랑이 식어서 싸우는 걸까? 싸워서 사랑이 식은 걸까? 정 대표는 “연인과 부부의 사랑을 같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연애를 끝내고 결혼을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연인과 부부의 사랑, 어떻게 다른가요? 연애는 서로에게 호감을 사는 걸 목표로 합니다. 내 마음을 받아들일지는 상대의 권한이고,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죠. 이게 연인의 사랑입니다. 하지만 결혼은 달라요. 사랑에 책임이 따릅니다. 생판 남이던 두 사람이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로 부부가 됐으니까요. 결혼 생활을 잘 유지하려면 서로 좋은 감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그게 부부의 사랑이에요.   노력 안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상대방이 그걸 알아주지 않아 서운한 거죠.  ‘나도 노력할 만큼 했다.’ 갈등을 겪는 부부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입니다. 여기에 함정이 있어요. 노력의 대상이 잘못됐다는 겁니다. 취미 생활을 예로 들어볼게요. A씨는 퇴근 후 스포츠센터에서 운동하는 습관이 있어요. 그러다 보면 자정을 넘기는 날이 많죠. 대신 주말에 다른 약속을 잡지 않고 배우자 옆에 꼭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배우자는 늘 불만이에요. 항상 귀가 시간을 묻고, 늦어지면 전화를 합니다. A씨는 그때마다 ‘내가 애냐. 통제하지 마라’고 화를 내고요. 두 사람은 뭐가 문제인 걸까요?   배우자는 A씨의 늦은 귀가가 불안한 것 같은데요. 노력해야 할 포인트가 그겁니다.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A씨의 배우자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싫어합니다. 그렇다면 운동 시간, 귀가 시간을 정확히 말해주는 게 중요해요. “끝나봐야 알지” “알아서 갈게” 이렇게 말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배우자의 질문을 구속과 통제라고 보면 안 됩니다. 배우자도 A씨의 취미를 존중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결혼은 서로를 불안하게 하지 않을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싫어하는 일이라면 자제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취향이 있습니다.  내 생활을 포기하라는 게 아닙니다. 균형을 맞추라는 거죠. 나와 배우자의 생활을 벤다이어그램으로 그려 보는 것을 추천해요. 이상적인 그림은 ‘우리’의 생활이 70~80%, ‘나’의 생활이 20~30%를 차지하는 거예요. 또 각각 무엇을 담을지 찾는 게 중요하죠. 자신이 포기할 수 있는 것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의 기준을 찾아야 합니다. 박정민 디자이너   어떻게요? 자신과 상대에 대해 이해하는 게 우선입니다. 무료 성격 유형 검사인 자연심리검사(WNPM·World natural people mind)를 받아보는 것도 방법이에요. 사람의 성격을 사막형(회장님), 지중해형(따뜻한 친구), 소금산형(교사), 활화산형(카리스마) 등 8가지로 나눕니다. 각 유형마다 세상을 대하는 방식과 가치관에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해를 청할 때 호수형은 “미안해”라고 하지만, 활화산형은 “밥 먹었어?”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합니다. 상대방의 유형을 알면 그 말의 뜻을 이해할 수 있고, 오해를 줄일 수 있어요. 상대는 나와 다른 생각과 반응을 한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감정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정다원 부부상담센터 대표는 "결혼 후 사랑은 배우자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자신의 취향도 내려놓을 줄 알아야 사랑을 유지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  👩🏻‍❤️‍👨🏻 집안일: 계획적으로 나눠라   가사분담은 부부 갈등의 단골 소재다. 보통 남편은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아내는 늘 억울하다. 꼭 혼자 다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할 만큼 한다”고 생각하는 남편도 억울하긴 마찬가지. 그렇게 출구 없는 난제의 서막이 열린다. 집안일을 공평하게 나눌 순 없는 걸까? 정 대표는 “집안일을 종류와 시간에 따라 반반 나누는 건 소용없다”며 “공평의 정의를 바꾸라”고 했다.   반반 분담이 가장 공평한 거 아닌가요?   집안일을 양으로 나누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완성의 기준이 다르니까요. 예컨대 나는 설거지할 때 음식물 쓰레기까지 처리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반면에 배우자는 그릇에 이물질만 닦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내 입장에선 배우자의 설거지는 미완성입니다. 결국 ‘설거지를 다시 하네 마네’를 두고 싸울 수밖에 없고요. 서로 원하는 수준이 다르니 갈등이 생기는 게 당연하죠.   어떻게 나눠야 하나요?   가사일 분담에는 대원칙이 있습니다. 민감한 사람이 먼저 하는 거예요. 시각·후각이 예민한 사람은 설거짓거리가 쌓여 있고, 약간의 냄새만 나도 못 견딥니다. 그 문제를 즉시 해결해야 스트레스가 사라져요. 결국 먼저 움직여야 합니다.   그럼 민감한 사람이 늘 독박을 쓸 것 같은데요. 혼자 다 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집안일을 세분화한 뒤 분담하세요. 이때 각자 잘하는 일을 선택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람마다 요리·설거지·세탁·청소 중에 더 잘하는 일이 있거든요. ‘나는 요리보다 설거지를 더 잘한다’면 설거지를 담당하세요. 설거지의 모든 걸 다하라는 게 아닙니다. 일을 단계별로 나눠 분배하는 거죠. 설거지는 크게 4단계로 나뉩니다. 사용한 그릇을 모으고, 남은 음식물을 버리고, 싱크대에 옮기고, 본격적으로 닦는 거죠. 이때 난도가 쉬운 1, 2단계는 배우자에게 맡깁니다. 일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이죠. 이때도 주의할 게 있어요. 일을 부탁할 때 ‘충조평판’하지 않는 거죠.   충조평판이요?   충고·조언·평가·판단의 줄임말입니다. 집안일도 실력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심리는 자신이 우월할수록 상대에게 명령을 내리려고 해요. “정리한 거 맞아?” “이게 왜 여기에 있어? 서랍에 넣으라고 했잖아”하는 식으로요. 상대방은 최선을 다한 건데, 이런 말 들으면 ‘나를 믿지 못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끝내 “그럼 당신이 해”라며 손을 떼게 되고요. 특히 육아에서는 이를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왜죠? 아빠의 육아 참여를 가로막거든요. 아이를 열 달 동안 품었던 엄마는 아빠보다 먼저 아이와 관계를 맺습니다. 이런 생물학적 배경은 ‘육아는 아무래도 내가 낫다’는 무의식을 갖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출산 후 육아의 주도권을 엄마가 쥡니다. 기저귀 가는 것부터 분유 먹이기, 학원 선택까지 먼저 결정한 뒤 통보하죠. 아빠보단 맘카페 의견을 믿고, 아이 맡기는 걸 못 미더워하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런 엄마의 태도가 오히려 아빠를 육아에서 멀어지게 하더군요. 결국 독박 육아를 자초한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빠의 육아가 서툴러도 믿고 맡기세요. 아빠의 육아 참여도를 높이려면 엄마가 한 걸음 물러서야 해요. 아빠가 하는 게 성에 안 찰 수 있습니다. 기저귀를 서툴게 채워서 소변이 새어 나올 수도 있죠. 그럴 땐 “그냥 내가 할게” 대신 “나도 처음엔 그랬어”라고 격려하세요. 그렇게 함께 도우며 부모가 되는 겁니다. 부부 간 집안일 분담은 세대를 초월한 난제로 꼽힌다. 정 대표는 "집안일은 각자 잘하는 것을 전담하고, 단계적으로 나눠 분담하라"고 조언했다. 김경록 기자  ━  👩🏻‍❤️‍👨🏻부모와 거리 두기: 독립하라   ‘명절 이혼’. 설 직후인 2~3월과 추석 직후인 10~11월 이혼 신청 건수가 증가하는 현상을 말한다. 시가나 처가와의 갈등이 부부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피를 나눈 가족도 내 마음 같지 않은데, 사랑 하나로 엮인 가족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어려운 게 당연하다. 그렇다고 자식 된 도리를 안 할 수도 없다. 결혼 후 시가·처가와의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 대표는 “양가(兩家) 부모에게 독립 인사를 반드시 하라”고 했다.    독립 인사가 뭔가요?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겁니다. 결혼하기 전에 작은 이벤트 형식으로 하면 좋습니다. 그동안 키워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잘 살겠다는 다짐을 전하는 거죠. 결혼 후 직계가족과의 갈등이 반복되면 늦게라도 독립 인사를 하기를 추천합니다.   독립 인사가 부부 갈등을 해결하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나요? 심리적 독립을 선언하는 일종의 의식(意識)이기 때문이죠.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했다고 선언하는 거니까요. 결혼하면 심리적·물리적·경제적 독립을 해야 합니다. 물리적·경제적 독립은 신혼집을 마련하면서 어느 정도 이뤄집니다. 하지만 심리적 독립은 시간이 필요해요. 알게 모르게 부모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죠. 이때 독립 인사를 하면 의식적으로 원(原) 가족에 대한 마음의 선이 그어집니다. 심리적 독립이 훨씬 수월해지죠.    부모·자식 간 선 긋기가 하루아침에는 안 될 것 같아요. 3년 정도 시간이 필요해요. 이때 부모와 자식은 일상생활에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합니다. 귀가 시간이나 주말 일정 등에 대해 습관적으로 묻고 답하던 걸 멈춰야 해요. 일상을 공유하다 보면 해선 안 되는 말이 오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배우자와 부모 간에 상처가 생기고, 갈등이 증폭될 수 있죠. 급기야 부모가 신혼집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가 물리적 경계선마저 무너지는 경우도 있고요.   부모와 배우자 사이에 낀 아내나 남편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원 가족과 새 가족의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합니다. 두 가족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게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하죠. 그러려면 두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첫 번째는 부모님의 생신이나 제사, 결혼식 같은 가족 행사 정보를 배우자와 공유하는 겁니다. 가족 행사는 가족의 역사를 공유하는 자리예요. 배우자의 직계가족과 친밀감을 높일 기회죠. 중재자는 정보를 전달할 때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실과 의견의 구분이요? 쉽게 말해 상대방 말을 그대로 옮기지 말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결혼하는 네 사촌이 비싼 옷을 선물로 보냈더라”는 말에는 부모의 의견이 담겨 있습니다. ‘비싼 옷’이라는 단어는 듣는 사람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자칫하면 말의 의미가 왜곡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때는 “다음 주에 사촌 동생의 결혼식이 있다”는 사실만 전하세요.     중재자의 두 번째 원칙은 뭔가요? 가족 대소사 참여 결정은 부부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겁니다. 부모님은 자식의 도리를 앞세워 되도록 참석하길 원합니다. 하지만 결정권자는 부부여야 해요. 부부가 서로 의견을 나누며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때도 주의할 게 있어요. 전달자가 아닌 질문자가 되는 겁니다. “우리 부모님 생각은~”이 아니라 “당신 생각은 어때?”로 대화를 이끌어 가는 거죠. 내 의견을 말할 땐 충조평판을 경계하고, ‘아이 메시지(I message)’를 활용하는 게 좋습니다. “당신 의견에 대해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어”라고 말하는 거죠. 부부의 입장 차이는 이렇게 좁혀가는 겁니다. 그래야 신뢰가 쌓이고, 사랑은 더 굳건해집니다. 결혼은 두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배우자의 직계가족까지 확장하며 관계는 더 복잡해진다. 하지만 관계가 넓어질수록 외부 환경에 휘둘리지 말고, 부부 중심으로 일상을 공유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정 대표는 말했다. 김경록 기자 정 대표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갈등을 다루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갈등이 불거졌을 때 일단 멈추는 것”이라고 했다. 갈등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상처가 덧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서로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고,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는다. 이런 상태에서의 대화는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면, 대화를 멈추세요. 그리고 내 감정부터 돌보세요. 내가 좋은 마음을 갖고, 좋은 사람이 될 때, 내가 선택한 배우자도 좋은 사람이 됩니다. 서로 성장하는 관계, 그게 부부가 나눌 수 있는 최고의 사랑입니다. 관련기사 “일단 이 행동 몰래 하세요” 위기의 부부 바꾼 어느 숙제 아이 앞에서 부부싸움 했다면? 당장 이것부터 설명해줘라 “당신들은 무조건 헤어진다” 이혼할 부부 96% 맞힌 교수

    2024.04.14 14:47

  • 4월에 물어봐야 허탕 친다, 교사 상담 신청은 이때 하라

    4월에 물어봐야 허탕 친다, 교사 상담 신청은 이때 하라 유료 전용

    교사와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너무 멀어도, 너무 가까워도 안 되죠.   “학부모가 교사와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송은주 언주초(서울 강남) 교사는 이렇게 답했다. 교사는 아이 인생에 있어서 부모 다음으로 자주 만나는 어른이다. 아이 성장에 있어서 부모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교육의 3주체가 교사·학부모·학생인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교권 침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교사도, 학부모도 서로를 어려워한다. 올해로 14년 차 교사인 송 교사는 “교사와 가까워질 필요는 없지만, 너무 멀어도 안 된다”고 말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2011년 교단에 선 그는 학교의 현실을 알리는 데 힘써 왔다. 2020년 밀레니얼 교사들의 속마음을 담은 『나는 87년생 초등교사입니다』를 낸 데 이어, 이달 초에는 『다시 일어서는 교실』을 출간했다. 교사·학부모·학생 등 110명이 말하는 학교의 현실과 해결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초2 아들을 키우는 엄마이기도 한 그는 학교를 둘러싼 갈등의 양쪽 모두를 경험했다. 신학기가 무르익은 4월은 교사와 학부모가 만나는 상담 시즌이다. 교사를 만나기 전 뭘 준비해야 할까? 1년간 문제 없이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4일 송 교사를 만나 물었다.   ■  「 Intro 교사와 관계 맺는 법 Part 1 상담, 시기별 활용법 다르다 Part 2 민원 전, 3단계로 확인하라 Part 3 관계 중심에 ‘아이’를 둬라 」   ━  🏫교사 상담, 시기별 활용법 다르다   학교에선 매학기 초 특정 기간을 지정해 교사와 학부모가 의무적으로 만나는 학부모 상담 주간을 운영한다. 공개수업·학부모총회와 함께 학교 3대 연례행사 중 하나로 꼽힌다. 하지만 학교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면서 학부모도, 교사도 서로를 마주하는 게 껄끄럽다. 올해부턴 상담 주간을 폐지한 곳도 많다. 수시로 상담하겠다는 것이다. 특정 기간 상담 업무가 집중되면서 교사의 업무 부담이 커지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도 숨어 있다.    수시 상담이라면, 꼭 필요한 학부모 외에는 참여를 주저하게 될 것 같아요. 가정통신문에 ‘부득이한 사정이 아니면 가급적 상담 신청을 자제해 달라’는 문구를 넣은 학교도 있다고 하더군요. 아이를 성장시키는 공동체라는 점에서 학부모와 교사 간의 소통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꼭 대면 상담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서 쓰는 메신저 서비스 같은 소통 채널도 있고요.   언제 상담신청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상담 내용에 따라 시기가 달라집니다. 아이에 대해 교사에게 알려야 할 내용이 있을 때는 가급적 3월 말이나 4월 초를 선택하세요. 다만, 이때는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깊은 얘기를 나누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교사나 아이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한 달은 아이를 제대로 파악하기에 부족한 시간일 수 있으니까요. 아이의 학교생활이 궁금할 때는 1학기 초인 3월이나 4월보다는 6월이나 9월에 방문하는 게 나아요.   상담 때 반드시 알려야 할 게 있을까요? 아이가 학교를 다니면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사안은 미리 알리는 게 좋습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나 틱장애, 자폐스펙트럼 같은 게 대표적이죠. 이런 상황을 공유하지 않으면 교사가 불필요한 오해를 할 가능성이 큽니다. ADHD라서 수업시간에 자리에 한시도 앉지 않는 아이가 있다고 해볼게요. 교사가 아이의 상황을 모르면 반항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죠. 아이의 성격이나 기질에 대해 오해할 수도 있고요. 수업 시간의 대부분을 그 아이를 자리에 앉히기 위해 허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 아이는 교사를 힘들게 하는 존재로 인식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에 아이가 ADHD라는 사실을 안다면 교사는 적절한 조치를 통해 수업 참여를 도울 수 있죠.   아이의 단점을 알렸다가 선입견을 가질까 봐 우려하는 학부모가 많아요. 대부분의 교사는 아이를 잘 성장시킬 수 있도록 훈련받은 전문가입니다. 교사로서 사명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분도 많고요. 믿고 맡기세요.   상담 전에 또 준비할 게 있을까요? 아이에 대해 공유하거나 물어볼 내용을 미리 정리해 보면 좋아요. 구체적으로 질문해야 구체적인 답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참고하시고요. “우리 애 학교생활 어떤가요?”처럼 추상적으로 물어보면 교사도 어디서부터 대답해야 할지 난감합니다. “낯가림이 심해서 친구를 잘 못 사귀는 게 걱정인데,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누군가요?”라거나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과 싸운 적은 없나요?”처럼 구체적으로 묻는 게 좋죠. 상담 전에 학습·친구관계·태도·습관 중에 가장 궁금한 주제를 고른 뒤, 질문을 미리 써보는 것도 좋습니다. 시간이 15~20분 내외로 길지 않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게 필요합니다. 송은주 언주초 교사는 "지난해부터 수시 상담을 진행하는 학교가 늘었다"며 "상담 목적에 따라 시기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  🏫민원 전, 3단계로 확인하라   학부모는 교사를 가장 힘들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지난해 7월 실시된 한국교총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가 가장 스트레스를 느끼는 대상은 학생(25.3%)도 교장·교감(2.9%)도 아닌 학부모(66.1%)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 역시 교사에게 뭔가를 문의하거나 요구하기 어렵다. 혹여나 ‘악성 민원인’ ‘괴물부모’로 비칠까 주저하는 것이다. 송 교사는 “민원을 제기하기 전에 스스로 질문을 해보라”고 조언했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요? 정당한 민원인지 스스로 체크해 보는 겁니다. 정보 확인을 위한 단순 문의인지,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인지 파악하는 게 우선입니다. 정보 확인을 위한 건 굳이 학교를 통하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요. ‘방과 후 시간표 어떻게 되나요?’ ‘5교시는 몇 시에 끝나나요?’ 같은 질문이죠. 이런 정보는 학교나 교사에게 묻기 전에 가정통신문이나 e알리미 공지, 클래스 앱부터 확인하는 게 필요합니다. 사전에 알려준 내용을 다시 묻는 학부모가 정말 많거든요. 지인이나 같은 반 학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방법이고요.   개선을 요구하는 민원일 때는 어떻게 할까요? 학교에 반드시 요구해야 하는 일인지 생각해 보세요.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닌데, 기분이 상해서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화가 났을 때는 학교나 교사에게 연락하지 마세요.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지고, 거친 말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혼자서 결론을 내리지 말고, 주변에 의견을 구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만약 학교나 교사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어도 한 번 더 살펴볼 게 있어요.   그게 뭔가요? 아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지 확인하는 거죠. ‘퇴근이 늦어서 교과서를 못 챙겨줬다’거나 ‘내일 준비물인 리코더 못 가져간다’ 같은 건 교사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 아이 스스로 해결하는 게 맞아요. 교과서와 리코더를 챙겨야 하는 주체는 아이입니다. 챙기지 못했다면 아이가 상황을 해결해야 하죠. 교사는 이런 상황에서 교육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어요.    교사에게 문의하기 전에 체크할 다른 건 없나요? 또 교권을 침해하는 민원이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교사의 수업이나 평가와 관련해 과도한 요구를 하는 건 아닌지요. ‘혼내지 말아 주세요’ ‘우리 아이가 끝자리에 앉는데, 바꿔 주세요’ 같은 게 대표적입니다. 또 교사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지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해요. ‘당분간 임신하지 마세요’ ‘남자친구와 찍은 카톡 프로필 사진 좀 바꿔 주세요’ 같은 요구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학부모 여러분도 이런 요구를 받는다면, 기분이 썩 좋진 않으실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원을 제기할 때의 태도나 말투도 중요합니다.   어떤 태도를 가지면 될까요? 상식적인 선에서 예절을 지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연락할 일이 있으면 평일 낮 근무시간을 이용하는 게 기본이죠. 대화할 때 “안녕하세요. OO 엄마입니다”처럼 인사와 자기소개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이런 과정 없이 본인 궁금한 내용만 물어보는 분들도 있거든요. “우리 애가 오늘 친구한테 맞았다는데, 선생님도 교실에 계셨나요?” 하는 식으로 다짜고짜 따지는 분들도 있고요. 이런 연락을 받으면 누구나 기분이 상할 겁니다. 교사도 예외는 아니에요. 아무리 정당한 요구라고 해도, 좋은 마음으로 학부모·학생을 대하는 게 어려워집니다. 송은주 언주초 교사는 "학교나 교사에게 민원을 제기하기 전에 3단계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며 "아이의 성장을 방해하거나 교권을 침해하지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  🏫관계 중심에 ‘아이’를 둬라   학부모와 교사는 아이를 매개로 한 관계다. 아이를 잘 기른다는 공동의 목표도 있다. 자녀 수가 줄면서 아이와 밀착해 키우는 부모가 많다. 아이 혼자 할 수 있거나 해야 하는 일도 도와주다 보면 학교와 교사의 영역까지 개입하는 일도 생긴다. 송 교사는 “교사와 관계를 잘 맺으려면 아이와도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이와 거리를 유지하라고요? 아이를 방치하라는 게 아닙니다. 아이를 독립된 인격체로 보자는 거죠. 교사에게 뭔가를 문의하거나 요구할 때 아이를 건너뛰는 경우가 많거든요. 아이들이 미성숙한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생각조차 없는 건 아니에요.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물으면 충분히 의견을 낼 수 있죠. 학부모가 교사와 갈등이 생겼을 때도 아이를 중심에 두면 답이 나옵니다. 어떻게 하는 게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될까 물으면 쉽게 답이 나와요.   구체적으로 알려 주세요. 지난해 화제가 됐던 ‘진상 학부모 단골 멘트’로 예를 들어 볼게요. “작년엔 괜찮았는데” “집에선 안 그러는데”가 있었어요. 제 지인 중에도 상담에서 이 말을 해도 되는지 묻는 분이 많았어요. “작년엔 괜찮았는데”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해요. ‘작년엔 괜찮았던 애가 교사가 바뀌더니 이상해졌다’ 혹은 ‘작년엔 괜찮았던 애가 요즘 왜 그런지 모르겠다’죠. 전자는 문제의 원인을 교사에게, 후자는 아이에게 두고 있습니다. 원인에 따라 해결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텐데요, 아이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건 후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해와 다른 성향의 교사를 만나서 아이가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죠. 그래도 결국은 아이가 적응해야 합니다. 교사를 탓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까요. 현실적으로 교사를 아이에게 맞추는 건 불가능합니다. 한 반에 교사는 한 명이고, 아이는 20~30명이나 되니까요. 학부모 입장에서는 “지난해 교사는 좋았는데, 올해 교사는 이상하다”고 느낄 수 있죠. 하지만 아이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자신과 잘 맞지 않는 교사에게 적응하는 그 자체가 의미가 있어요. 아이는 앞으로도 계속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면서 살아가야 하니까요. 이게 바로 사회성 교육이기도 해요.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란 점에서요.   ‘아이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문제의 다른 측면이 보이겠네요.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 상황에 대한 아이 의견도 물을 수 있어요. 같은 반에 아이를 괴롭히는 친구가 있다고 해보죠. 부모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바로 교사에게 연락해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게 당연합니다. 상대방 아이와 부모에게 사과를 받는 식으로요. 하지만 아이의 감정이나 상태를 확인하는 게 우선입니다. 아이가 문제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길 원하는지도요. 아이는 별거 아니라고 느끼는데, 부모가 나서면 문제만 키울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의견을 묻고, 대처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해요. 24시간 아이와 함께할 수 없으니, 아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와야죠.   만약 자질 없는 교사를 만났더라도, 아이의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 걸까요? 아이의 학습권이 지속해서 침해당하는 상황이라면 학교 측에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해야 합니다. 교사가 학대 수준의 비교육적인 행동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학교는 기초 소양과 학력을 기르는 곳이고, 교사는 잘 가르칠 의무가 있습니다. 제가 만난 학부모 중에 안타까운 일을 겪은 분이 있었어요. 아이의 담임교사가 아이들이 놀자고 하면 수업을 안 한 거죠. 자유를 중시한다는 이유로요. 애들을 놀게 한 뒤 교사는 주식투자 책을 읽었다고 해요. 결국 그 학부모는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하시더군요.   송은주 교사는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려면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안 된다”고 했다. 교사는 전문성과 열정을 갖고 학생은 가르쳐야 하고, 학생은 교사의 말을 따라야 한다. 학부모 역시 필요한 순간에 적절히 협력해야 한다. 그래야 그의 책 제목처럼 교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교사 그리고 아이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아이가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송은주 언주초 교사는 "학부모와 교사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아이는 성장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관련기사 “엄마들 모임은 동물의 왕국” 정신과 의사가 본 서열의 비밀 “엄마, 친구들이 나 싫어해” 아이 이럴 때 부모 3가지 임무 "학교는 공부하는 곳 아니다"…학부모·교사 17명의 충격 증언 [hello! Parents]

    2024.04.10 15:12

  • 완벽주의자라서 힘들다고? 성공한 사람 이렇게 관리했다

    완벽주의자라서 힘들다고? 성공한 사람 이렇게 관리했다 유료 전용

    슬프면 울고, 화나면 분출하고, 불안하면 멈추세요. 불편한 감정은 참지 말고 해소해야 합니다. 완벽주의자라면 더욱 더요.     완벽에 대한 강박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윤동욱 YD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감정만 잘 다룬다면 완벽주의는 축복”이라고 말했다. 완벽해지려는 마음을 억누르기보다 완벽주의로 인해 생긴 감정을 잘 조절해 성장 기반으로 활용하라는 얘기다.   박정민 디자이너 완벽주의자는 실수도, 예외도 용납하지 않는다. 뭘 해도 남보다 우수한 성과를 내는 이유다. 그런데 늘 결정적 순간에 무너진다. 실전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거나 작은 실수 하나에 주저앉는다. 누구보다 강력한 능력을 쥐었는데, 왜 그 능력을 다 펼치지 못하는 걸까? 윤 원장은 “불안, 분노, 우울 등 불편한 감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나는 왜 남들 앞에서만 서면 떨릴까?』 『오늘도 시작하지 못하는 당신을 위해』에 이어『90일 감정 노트』를 쓴 건 그래서다.   윤 원장은 “완벽을 추구할수록 불안, 수치심, 분노 등이 함께 따라오는 건 지극히 정상”이라며 “그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다루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완벽주의는 왜 감정 조절이 힘든 걸까?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16일부터 ‘완벽주의를 성공으로 이끄는 5가지 전략’이라는 주제로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에 칼럼을 연재하는 윤 원장을 만나 물었다.    ■  「 Intro  감정, 완벽주의자의 성공 비결   Part 1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다 Part 2 인정 중독을 끊어라 Part 3 기록해야 변한다  」   ━  😰 세상에 나쁜 감정은 없다   윤 원장을 찾는 사람은 전교 1등 모범생부터 대기업 임원, 월드 챔피언까지 다양하다. 완벽함을 무기로 정상에 오른 이들이다. 언제나 당당했고, 쾌활했고,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상담해 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주변의 시선으로 인한 불안,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 실패할까 봐 두려워하다 찾아온 우울에 젖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윤 원장은 “감정에 관한 오해가 두 얼굴의 완벽주의자를 만들었다”고 했다.   감정을 어떻게 오해하는 건가요?   감정을 좋고 나쁜 걸로만 나눕니다. 기쁨·성취감 등은 좋은 감정, 불안·분노·우울 등은 나쁜 감정으로만 받아들이는 거예요.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완벽주의자에게 나쁜 감정은 수치입니다. 그래서 좋은 감정만 느끼려고 합니다. 감정적 완벽주의라고 부르는데요, 나쁜 감정이 느껴지면 정신력을 탓하며 자신을 다그칩니다. 그러고는 이 감정은 외면하고, 좋은 감정만 드러냅니다. 그래서 뒤통수를 맞아도 웃어요. “난 멘털갑” 이러면서요.   긍정적인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순서가 바뀐 게 문제예요. 불편한 감정을 느꼈으면 그걸 해소하는 게 먼저예요. 뒤통수를 맞으면 화내는 게 정상입니다. 슬프면 울고, 화나면 표출하고, 불안하면 일단 멈춰야 해요. 그래야 성장합니다. 감정은 좋고 나쁜 게 없어요. 각 감정마다 각자의 역할이 있죠. 불안해야 위험을 감지하고, 부끄러워야 성숙합니다. 그런데 이 감정을 억압하면 탈이 납니다. 대인기피증, 무대공포증, 번아웃…. 다 불편한 감정을 외면한 결과예요.   속병이군요. 사실 완벽주의자는 기질적으로 예민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민해서 감정을 느끼는 능력이 뛰어나죠. 그런데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이 능력을 자꾸만 막아요. 완벽하려면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하거든요. 논리적·객관적인 능력이 일처리에 유용하니까요. MBTI를 해보면 학습된 이성형(T, Thinking)이 많아요. 예민한 기질인데, 그걸 억누르려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건 그래서예요.   감정을 다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 감정을 인지하고, 마주하는 것부터 해야 합니다. 감정을 분류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감정이란 게 하나가 아닙니다. 여러 비슷한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그걸 분류해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거예요. 등교를 거부하는 아이는 학교가 두렵다고 할 거예요. ‘두려움’ 하면 공포나 불안을 떠올리는데, 경외나 당황, 신뢰 같은 것도 두려운 감정의 일부예요. 친구와 다퉈서 신뢰가 깨졌을 때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거든요. 이런 경우라면 친구와 화해할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두렵다고 생각하면 뭘 해야 할지 막막해요. 하지만 감정을 쪼개 보면 그렇지 않죠. 감정을 분류할 땐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플루치크가 개발한 감정 바퀴 모델을 활용해 보세요.   감정을 알아차린다 해도 처리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감정이 일어난 원인을 파악해, 바꿔야 합니다. 감정은 생각에서 나와요. 이때 생각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예민하면 생각의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커요. 대표적인 게 당위성, 흑백논리, 지나친 일반화, 재앙화죠. 불편한 감정이 느껴지면, 혹시 생각의 오류에 빠진 건 아닌지 체크해야 해요. ‘반드시’라는 조건을 단 건 아닌지, 상황을 이분법으로 나눈 건 아닌지, 상황이 반복될 거라 믿는 건 아닌지, ‘만일’이나 ‘혹시’를 덧붙여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 건 아닌지 말이죠. 이 오류에서만 벗어나도 불편한 감정은 작아집니다. 인지행동치료전문가 윤동욱 YD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완벽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감정 조절법을 배워야 한다"며 "감정을 피하지말고 인지하고 분류해 보라"고 말했다. 부산=송봉근 기자  ━  😰 인정 중독을 끊어라     완벽주의자는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 1등은 1등대로, 꼴찌는 꼴찌대로 노력에 노력을 거듭한다. 윤 원장은 여기에 브레이크를 건다. 과도한 노력은 번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완벽하려 할수록 맹목적으로 노력한다”며 “노력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를 점검하라”고 했다.   노력이 문제라고요? 노력은 권장할 일이죠. 문제는 그 기준이 내가 아닌 타인일 때예요. 타인의 기준에 맞추려는 노력 이면엔 “날 좀 봐 달라”는 인정 욕구가 숨어 있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인정받을 때까지 노력하죠. 이걸 인정 중독이라 부릅니다.    인정 중독요?   인정 중독에 빠지면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야만 자신감도 생기고, 자존감도 높아집니다.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죠. 부와 권력, 아름다움, 최고에 집착하고요. 문제는 인정을 받아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인정의 기준이 내가 아닌 타인이었으니까요. 목표를 달성해도 공허합니다. 그러니 또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또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인정 중독의 경우, 평가에 아주 민감해요. 특히 아이들은 평가할 때 조심해야 해요. 자칫하면 칭찬이 독이 될 수 있거든요.    칭찬이 독이 된다고요? 인정을 받고 싶은 건 자연스러운 겁니다. 그래야 자기애가 형성되거든요. 건강한 자기애가 있어야 타인을 존중하고, 세상을 균형 있게 볼 수 있고요. 그래서 칭찬에 인색하면 안 돼요. 다만, 기준이 일관돼야 해요. 양육자의 기분에 따라, 외부 시선에 따라 오락가락하면 왜곡된 자기애가 생깁니다. 이러면 ‘모두가 날 좋아해야 해’ ‘나는 완벽해’ ‘나는 특별해’ 하는 식의 극단적인 자기중심성을 보여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칭찬하기 전에 해야 할 게 있어요.   그게 뭔가요? 확신을 주세요. 인정 중독은 정체성에 관한 확신이 약할 때 생기거든요. 내 기준이 없으니 타인의 기준에 기대는 거죠.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려면 두 가지가 필요해요. 먼저 감정을 인지하고 해소할 줄 알아야 해요. 100점 맞던 아이가 50점을 받아왔어요. 속상할 겁니다. 충격적일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괜찮아. 다음에 더 노력하면 되지”라고 위로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아이 귀엔 안 들립니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요? 아이의 마음 상태를 물어보세요. “기분이 어때?”라고요. “창피해”라고 답한다면 그 감정을 인정해 주세요. “부끄러울 수 있어. 엄마·아빠도 실수하면 부끄러워”라고요. 그리고 대처법을 알려 주세요. “어떻게 해야 기분이 풀릴까?”라고 물을 수 있죠. 감정을 인지하고, 이해하고, 해소법을 찾아보는 거예요. 감정을 다룰 수 있어야 인정 욕구가 성장의 발판이 됩니다.    두 번째로 필요한 건 뭔가요? 내 기준에 대한 확신입니다. 인정 중독은 타인이 기준입니다. 그래서 늘 비현실적이고 추상적이에요. 요즘 ‘갓생 살기’(신처럼 완벽하게 산다는 의미의 인터넷 용어)가 유행이잖아요. 새벽 4시부터 빡빡하게 하루 계획을 잡는 아이가 많아요. 하지만 이런 일정을 소화할 수 없잖아요. 실패하면 좌절감, 자책감에 괴로워하면서 또 계획을 세워요. 그렇게 번아웃의 길로 접어듭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실천할 수 있는 목표부터 세워야 해요.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야죠. 기억하세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성공 경험에서 나옵니다. 남이 아닌 내 인생을 살아야 성공할 수 있어요. 윤 원장은 "완벽주의를 성과주의가 만든 결과물"로 진단한다. 그는 "1등만을 인정하는 사회의 기준에 맞춰 인정중독에 빠진 건 아닌지, 점검해 보라"고 했다. 부산= 송봉근 기자  ━  😰 기록해야 바뀐다   윤 원장은 인지행동치료 전문가다. 생각이 바뀌면 감정이 바뀌고, 행동도 바뀐다고 본다. 완벽주의를 잘 활용하려면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하지만 생각과 감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실체가 없는 생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윤 원장은 ‘쓰기 치료’를 권한다.     쓰기가 감정을 조절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되나요? 감정은 실체가 없어요. 그래서 쉽게 사라지고, 왜곡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십 가지 생각이 동시에 머릿속에 떠다니죠. 그러다가 잊어버리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죠. 쓰기는 내 감정과 생각을 문자라는 실체로 바꿔줍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유발한 생각의 흐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해주죠. 한마디로 감정을 시각화하고, 구조화해 줍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하나요? 그날 겪은 사건과 감정을 떠올리고, 그 기분을 최대한 문자나 그림으로 기록하세요. 네 단계로 나눌 수 있어요. 먼저 오늘 하루의 ①감정을 떠올리고 ②분류하고 ③분석하고 ④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일종의 구조화된 감정 일기를 쓰는 거예요.    1단계부터 막막해요. 무슨 감정인지, 잘 모르겠거든요.   내 신체 반응 또는 행동을 관찰해 보세요. 감정은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기 마련이거든요. 등교 거부 상황을 예로 들어 보죠. 불안하거나 두려울 땐 손에 땀이 나거나 다리를 떨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식의 반복 행동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내가 어떤 행동을 반복하고 있는지 발견해야 해요. 그 순간의 감정을 떠올려 보세요. 이때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 보면 좋습니다. 앞서 소개한 감정 바퀴 모델에선 기본 감정을 기쁨, 신뢰, 공포, 놀람, 슬픔, 혐오, 분노, 기대 여덟 가지로 정의합니다. 이 감정을 축으로 세밀하게 자기만의 감정 이름표를 붙여 분류하죠. 이 작업이 2단계입니다.    감정 분석은 뭔가요? 감정이 올라온 그 순간의 생각을 써보는 거예요. 감정은 생각에서 기인합니다. 뇌는 외부 자극과 사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신체적 반응, 행동, 그리고 감정으로 나오게 설계돼 있거든요. 이것이 인지모델입니다. 상황을 해석하는 패턴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생각은 각자의 경험에 기반해 떠오르거든요. 경험을 바탕으로 사고 패턴이 만들어지고, 그 패턴이 뇌에 저장돼 있다가 어떤 상황을 마주했을 때 기존과 비슷한 생각과 유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죠. 감정을 분석한다는 건 고착화된 사고 패턴을 찾는 걸 말합니다. 여기서 그치면 안 돼요. 부정적 감정을 유발하는 사고 회로를 바꿔야 해요.   생각을 어떻게 바꾸나요? 내 생각이 비합리적이었다는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소크라테스 문답법이 도움이 됩니다.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와 반대되는 증거를 찾는 겁니다. 예를 들어 두려움 뒤에는 ‘갈등은 나쁘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어요. 그 생각의 증거를 찾아보는 겁니다. 과거 친구와 싸우고 벌을 받았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친구에게 오해를 받아 따돌림을 당했을 수도 있어요. 이제 반대 증거를 찾아봅니다. 과연 갈등이 나쁘기만 한 걸까? 각자의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더 돈독해질 수 있고, 각자의 시간을 가지며 오히려 소중함을 깨닫게 될 수도 있죠. 갈등의 긍정적 기능입니다. 이렇게 객관적으로 살펴보면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불편한 감정은 해소되고요. 인지행동치료는 쓰기치료라고도 불린다. 윤 원장은 "실체가 없는 감정과 생각은 문자나 그림 등으로 기록하고 사고의 패턴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다. 사진=송봉근 기자 윤 원장은 “감정 일기는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쓰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했다. 같은 사건을 놓고 각자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하고, 서로 교환해 읽어보라는 게 그의 주문이다. 생각과 감정이 서로 다르다는 걸 직접 확인해야 비로소 차이를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통제하거나 강요하지 마세요. 다양한 감정에 응원의 박수를 보내세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힘이 됩니다. 관련기사 “아이 바꾸려고 하지 마라” 예민한 아이와 대화하는 법 “열심히 했네” 이 말이 독이다…정신과 의사가 경고한 아이 스티브 잡스와 머스크의 공통점은? 예민한 엄마를 위한 조언

    2024.04.07 15:45

  • “중2병 걸려도 이건 꼭 했다” 서울대생이 선행 대신 한 것

    “중2병 걸려도 이건 꼭 했다” 서울대생이 선행 대신 한 것 유료 전용

    3년 선행이 대세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서울대 1학년들의 공통점은 선행학습이 아니었어요. 독서였죠.   서울대생은 초·중·고 12년간 어떻게 공부했을까? 나민애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서울대생의 공통점은 단연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기초 교양 교육을 전담하고 있는 기초교육원에서 18년째 1학년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박정민 디자이너 나 교수는 고등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두 자녀를 둔 양육자기도 하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인 그는 아이들을 키우며 “나 때와 너무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공부할 것도 많고, 난도 역시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가 7년 전부터 매년 가르치는 20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작한 이유다. 양육자로서 ‘요즘 서울대생은 어떻게 공부했을지’ 궁금했다.   결론은 다소 뻔했다. 서울대생은 초등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고, 중·고등 시절에도 책을 놓지 않았다. 반면에 선행학습은 도드라져 보이지 않았다. 그는 “한 학기에서 1년 정도 선행하는 게 보통이었다”고 했다. 3년을 초과해 선행한 경우는 보지 못했고, 3년 선행한 학생은 딱 한 명 봤다. 부모님이 대치동 학원장인 학생이었다. ‘책 읽는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는 불문율을 확인한 그는 내친김에 『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다』를 썼다. 서울대생을 가르치며 얻은 독서 전략은 뭘까? 지난달 20일 그를 만나 직접 물었다.   ■  「 Intro 서울대생, 선행보다 ‘이것’ 챙겼다 Part 1 고등학생 때도 65% “책 읽었다” Part 2 서울대 교수가 추천하는 15년 독서 로드맵 Part 3 책 안 읽는 아이, 이렇게 하라  」   ━  📖 Part 1 고등학생 때도 65% “책 읽었다”   나 교수는 3년간 자신이 가르친 600명의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독서 실태를 조사했다. 그중에서도 학생들의 고등학생 시절의 독서량에 주목했다. 요즘 고등학생은 3년 내내 입시 모드다. 정시인 수능뿐 아니라 수시인 학생부 전형까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내신 시험도 허투루 볼 수 없고, 챙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도 응답자의 65%는 ‘책을 읽었다’고 했다. 중학교로 내려가면 그 비율은 80%까지 올라간다. 초등학교 때는 70%가량이 책을, 그것도 ‘많이 읽었다’고 했다. 나 교수는 “기준이 높아 웬만하면 많이 했다고 안 하는 서울대생의 특징을 감안하면, 다독한 학생이 많았을 것”이라며 “초등 때부터 많이 읽었기 때문에 중·고등 시절에도 책을 놓지 않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울대생들이 초등 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뭔가요? 저도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이유가 뭔지요. 가장 많은 응답은 ‘재미있어서’(34%)였어요. ‘만화책으로 시작했다’거나 ‘추리소설만 읽었다’ ‘소설만 왕창 봤다’는 학생도 있었죠. 아이가 책을 읽는다면, 뭘 읽고 있던 걱정하기보다 격려하세요.   하지만 ‘책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아이가 많진 않아요. ‘왜 많이 읽었느냐’는 질문에 두 번째로 많은 학생은 이렇게 말했어요. ‘부모님 덕분’(25%)이라고요. ‘부모님이 책을 많이 읽어주셨다’ ‘부모님과 도서관에 자주 갔다’는 겁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아는 법이죠. 초기 독서 습관 형성엔 환경이 정말 중요해요.   그렇게 챙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맞벌이 부부도 많고요. 기타로 많이 나온 답을 알려드릴게요. 많은 학생이 ‘휴대전화·TV가 없으니 심심해서’ ‘다른 할 일이 없어서’ 책을 읽었다고 답했어요. 영상은 집중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몰입할 수 있어요. 그만큼 다양한 신호와 자극을 주니까요. 책은 다릅니다. 심심하지 않으면 읽지 않아요. 스마트폰은 최대한 늦게 사주고, 데이터는 꽉 잠그세요. TV는 없어도 괜찮아요. 어른들도 크게 불편하지 않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 학습량이 늘잖아요. 그 무섭다는 ‘중2병’도 있고요. 그런데도 80%가 책을 읽었네요. 안 읽던 아이가 갑자기 읽었을 리 없습니다. 부모의 말이 통하지 않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이때 읽었다는 건 정말 자발적으로 읽었다는 의미예요. 양육자가 개입할 수 있는 건 초등학생 때까지입니다. 초등 시절의 습관과 경험이 고등학교 때는 물론, 인생 내내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어요.   중학교 이후엔 시간도 없는데, 아무 책이나 읽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설문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중학생 후배에게 독서에 관해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지’ 물었어요. ‘무조건 많이 읽어라’ ‘종류 상관없이 읽고 싶은 책 많이 읽어라’는 조언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이유도 선명했어요. ‘수능 준비할 때 도움이 된다’ ‘국어 실력의 근간이 된다’ 등이었죠. 독서가 성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겁니다.   고등학생은 정말 시간이 없잖아요. 그런데도 65%나 읽었다고 답했어요. 사실 학생들도 고등학생 후배에겐 ‘책 읽지 말고 수능이랑 내신 챙겨라’고 조언하고 싶대요. 안타까운 현실이죠. 하지만 독서를 권하진 않으면서도, 자기들은 많건 적건 ‘읽었다’고 답했어요. 짬이 나면 책을 집어든 거죠. 책 읽는 습관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나민애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200명씩 7년간 설문한 데이터의 결론은 다소 뻔했다"면서 "책 읽는 아이들이 공부 잘한다는 말은 정말 맞았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  📖 Part 2 서울대 교수가 추천하는 15년 독서 로드맵   ‘초등학생 때 책에 흥미를 갖게 하고, 읽는 습관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건 다들 안다. 하지만 방법을 모른다. 어떻게 해야 아이의 독서 습관을 잡아줄 수 있을까? 초등 6년을 넘어 중·고등 시절까지 유효한 독서 전략은 없을까? 나 교수의 주전공은 읽고 쓰기다. 학교에선 대학생을 가르치고, 집에선 두 아이를 키우는 그에게 구체적인 노하우가 없을 리 없다. 『국어 잘하는 아이가 이깁니다』에선 미취학 아동부터 고교생까지 적용 가능한 독서 로드맵을 제시했다.   독서는 언제 시작해야 하나요?  취학 전이 독서 인생에 있어 가장 운명적인 시기예요. ‘책과 친해지느냐, 아니냐’가 이때 결정되거든요. 이 시기엔 ‘잘하기’가 아니라 ‘좋아하기’가 목표입니다. 재미있으면 좋아하고, 좋아하면 자꾸 읽고, 자꾸 읽으면 잘하게 돼 있어요. 좋아하게 하려면, 읽기만 해선 안 됩니다. 책으로 할 수 있는 건 다 하세요. 책을 겹쳐서 병풍도 만들고, 징검다리도 만들어 보고, 집도 짓고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본격적인 읽기를 시작해야 하나요? 글밥을 늘려서요. 저학년 땐 학교에 적응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적어도 1학년까지는요. 무리하게 그림이 적은 문고본으로 진입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림책이면 충분합니다. 다만 얇은 양장본이나 팝업북 등의 비중은 줄이고, 글밥이 더 많은 그림책으로 차차 옮겨가게 하세요. 이런 책이 쉽게 느껴지는 아이라면, 저학년 문고본을 추천해요. 비룡소의 ‘난 책읽기가 좋아’, 시공주니어 문고 시리즈의 낮은 레벨 책이 좋아요. 사계절의 저학년 문고 시리즈나, 푸른책들 ‘작은 도서관’ 시리즈도요.   본격적으로 두꺼운 책을 읽어야 할 시기는 언제인가요? 초등 3,4학년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시기엔 150쪽 전후의 책을 반드시 읽어내야 합니다. 이 산을 넘지 못하면, 앞으로 독서가 계속 힘들게 느껴질 겁니다. 상대적으로 읽기 쉬운 『세상에서 제일 달고나』(112쪽), 『샬롯의 거미줄』(264쪽)을 추천해요. 내용은 길지만 쭉쭉 읽을 수 있는 『잘못 뽑은 반장』(217쪽), 재미있는 스토리로 유명한 『아디닭스 치킨집』(124쪽) 같은 책도 활용해 보세요.     글밥을 늘리는 시기에 특별히 신경써야 할 게 있나요? 아이의 취향을 저격하는 책, 재미있는 책, 입소문 난 책을 잘 골라서 제안해 주세요. 무엇보다 같이 읽으면 좋습니다. 앞부분을 아이와 함께 소리 내서 번갈아 읽는 거죠. 그다음 두세 장은 같이 앉아서 소리 내지 않고 각자 읽어요. 그 뒤부터는 아이 혼자 읽게 하고요. 이 3단계를 중심으로, 상황에 따라 각 단계의 비중을 달리하면서 아이의 읽기를 뒤에서 밀어주세요.    글밥을 늘린 뒤엔 어떻게 읽게 하면 좋은가요?  이제 진지하고 묵직한 사회적 이슈를 접해볼 차례예요. 정치·인권·복지·환경·경제 등을 다룬 책을 읽는 거죠. 이 시기는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일 텐데요. 책 전체의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해요. 책을 다 읽고 한 문단, 나아가 한 문장으로 정리하는 훈련을 하면 좋아요. 책을 더 분석적으로 읽을 수 있거든요.     중학교만 가도 공부하느라 책 읽기 쉽지 않은데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학교 1학년까지는 책의 힘을 믿고, 무조건 읽혀야 합니다. 특별히 성과가 나오지 않아도, 무조건요. 이후엔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이 시기엔 특히 속독 능력 향상에 신경써야 해요. 수능에서 국어 영역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거든요. 속독을 익히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장르 문학 읽기예요. 공상과학(SF)소설, 환상소설, 추리소설, 무협지, 로맨스 소설, 공포 소설 다 좋습니다.     고등학생을 위한 독서법은 따로 없겠죠?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그저 짬 날 때 읽는 것 외에는요. 짬을 내서 읽어야 하는 만큼 효율적으로 읽어야겠죠. 전공이나 진로 관련 추천 도서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책을 2:1 비율로 읽는 게 좋아요. 읽고 까먹으면 활용하지 못하니, 책의 주요 정보와 중요한 내용은 발췌해 두는 걸 추천합니다. 나민애 교수는 학교에선 서울대생들을 가르치고, 집에선 다섯 살 터울의 두 아이를 키우는 경험을 토대로 독서 로드맵을 제시했다. 미취학 아동부터 고등학생까지 이르는 15년 남짓을 아우르는 로드맵이다. 장진영 기자  ━  📖 Part 3 책 안 읽는 아이, 이렇게 하라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별 걱정이 없다. 좋아하는 책 사이사이 읽어야 하는 책을 적절히 제안하는 정도만 신경쓰면 되니 말이다. 문제는 도무지 책을 읽지 않는 아이다. 이런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 교수는 “안 읽는 아이는 적게 읽더라도 최대한 쌓이는 독서, 효과적인 독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게 읽더라도 효과적인 독서법이 있나요? 최대한 골고루 읽는 게 핵심입니다. 밥 먹기와 비슷해요. 아이가 안 먹으면 그냥 내버려 두나요? 안 먹으면 아프고 안 큽니다. 그러니 조금 먹더라도 최대한 각종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게 해야죠. 책 읽기도 마찬가지예요. 빈약한 독서량을 극복하려면 골고루 읽는 수밖에 없어요.   골고루 읽기의 필수 요소가 있나요? 세 가지를 꼽고 싶어요. 첫 번째는 ‘고전 문화를 다루는 책’입니다. 지식은 그 특성상 과거의 이야기예요. 과거의 것일수록 낯설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고전 문화 책을 읽는 게 필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요? 5단계로 책을 제안하세요. 1단계는 전래동화와 전설입니다. 옛날 이야기책이죠. 2단계로 바리데기나 설문대할망 같은 옛 신화를 읽고, 3단계엔 홍길동전·전우치전 같은 가상 위인전을 읽게 합니다. 4단계는 역사 동화책인데요, 미래엔아이세움에서 나온 ‘이선비 시리즈’를 추천해요. 마지막 5단계는 실제 역사책입니다.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한국사 편지’ 같은 책이 좋아요.   이런 책을 읽으면 뭐가 좋은가요? 신분제 사회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어요. 양반·노비·왕족·평민·유배·귀양 같은 단어는 낯설 수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이런 단어를 알아야 시대를 이해할 수 있죠. 또 그 시절 문화와 생활상, 말투나 단어에도 익숙해질 수 있어요. ‘짐은 생각한다’는 문장이 있다고 해볼게요. 아이들은 ‘짐’이 왕 자신을 뜻하는 말일 거라고 상상도 못 해요. 미국 사람 이름인 ‘Jim’인 줄 알죠. 이런 게 바로 문해력의 차이예요.   골고루 독서의 두 번째 필수 요소는 뭔가요? 조선시대 이전만큼 낯선 시대는 할머니가 살았던 시기예요. 한국전쟁 전후 1950~70년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을 반드시 읽게 하세요. 이때 역시 농경문화가 중요했지만, 조선시대 이전과 또 다릅니다. 신분제나 토지제도 바뀌었고, 산업화라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으니까요. 특히 이 시기는 생활상을 중심으로 이해해야 해요. 중요한 시험의 출제자들은 이 시기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에 ‘현재’로 인식하거든요. 시험에 자주 나오는 데 반해, 아이들은 잘 모르는 시기가 바로 이 시대입니다.   이 시기를 이해하려면 어떤 책을 읽으면 되죠? 근·현대 단편소설이 좋습니다. 김유정의 「봄봄」 「동백꽃」, 김승옥의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같은 소설요. 중학생이라면 권정생의 『몽실언니』,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같은 장편소설도 추천합니다.   골고루 읽기의 마지막 필수 요소는 뭔가요? 지식책요. 책은 크게 이야기책과 지식책으로 나뉘어요. 이야기책이 나와 너에게 집중하고 내면을 성장시키는 책이라면, 지식책은 지식을 전달하고 학습을 돕는 책이죠. 지식책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옆에서 도와줘야 해요.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요? 개념어를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보통 책 한 권에 1~2개의 개념어가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제목과 목차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개념어죠. 이 단어의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는지 확인하세요. 아이가 어려워하면 같이 검색하거나 설명해 주는 것도 좋습니다. 마지막으로 다 읽으라고 강요하지 마세요. 핵심 개념어 중심으로 일부분만 읽어도 충분해요. 나민애 교수는 "독서의 힘을 의심하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그 역시 양육자로서 흔들리고 불안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는 "매일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보면 독서는 정말 힘이 세다는 걸 새삼 느낀다"고 했다. 장진영 기자 요즘은 독서도 학원에서 한다. 대치동에선 초등학교 입학 1년 전에 독서 학원에 가서 본격적으로 책을 읽는 게 대세다. 서울대생들도 학원에서 책을 읽었을까? 나민애 교수는 “초등 시절 독서뿐 아니라 중·고등 시절 국어도 혼자 공부했다는 학생이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초등 시절 독서 습관만 잘 잡아두면, 국어는 혼자 공부할 수 있는 과목이라는 얘기다.   독서는 반드시 초등 때 시작해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요. 이 시기에 ‘재미있다’ ‘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나중에 두고두고 고생합니다.   ■ 더중앙플러스- 더 많은 정보를 보려면 아래 기사를 클릭하세요. 「 ADHD 아니라 자폐였다? 산만함에 숨은 ‘핵심 신호’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9394    머리 좋은데 공부는 안 한다? 십중팔구 이 말이 문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7520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1784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0970    “SKY 가려면 초1 ‘이것’ 해라” 서울대 스타 강사의 공부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6733          」 

    2024.04.03 15:10

  • “과외로 영유 붙어봐야 헛수고” ‘합격률 100%’ 레테쌤의 고백

    “과외로 영유 붙어봐야 헛수고” ‘합격률 100%’ 레테쌤의 고백 유료 전용

    유명 영어유치원(영유)에 들어가려고 과외를 하는 것도 모자라 숙제 선생님을 따로 구하기도 해요. 그렇게 하면, 영어 잘할 수 있을까요? 입학만 하면 되는 걸까요?   “어릴 때부터 영어 실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15년 차 영어 강사 문효정씨는 이렇게 되물었다. 과외를 전문으로 하는 그는 유아·초등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레테)를 준비하는 양육자들 사이에서 합격률 100%를 자랑하는 ‘대치동 헤더샘’으로 유명했지만, 6년 전 독서로 방향을 틀었다. “아이를 원하는 학원에 합격시킬 순 있지만, 그 후 영어 실력까지 책임질 순 없다”는 자책감 때문이다. 지난해 출간한 『영어 질문 독서법』은 이 같은 고민이 낳은 결과물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합격을 위한 교육에서 읽기 중심 교육으로 지향점은 바뀌었지만, 여전히 수업 대기만 1~2년에 달하는 인기 강사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북클럽과 영어 교육 컨설팅 문의도 끊이지 않는다. 학군지에서 나고 자란 ‘대치동 키즈’도 아니고, 아이비리그나 SKY 출신도 아닌 그가 사교육 1번지에 자리 잡은 비결은 무엇일까? 무슨 책을 어떻게 읽어야 영유 다니는 것보다 나은 학습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가 지난달 19일 그를 만나 물었다.   ■  「 Intro. 레테 붙어봐야 소용없는 이유Part 1. 기본기 쌓으려면 구멍부터 찾아라Part 2. 영어책 고를 때 세 가지 확인해라Part 3. 책 덮고 나면 이렇게 물어봐라 」   ━  📗기본기 쌓으려면 구멍부터 찾아라   문효정 강사는 “기본기를 제대로 쌓지 않으면 언젠가 허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레테는 학원별로 유형이 정해져 있어서 과외로 대비가 가능하지만, 매주 진행되는 학원 수업을 따라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취약한 부분을 알아야 이를 체계적으로 보강할 수 있다”며 “아이도, 부모도, 교사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아이가 취약한 부분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레테를 몇 번씩 떨어지는 아이들을 보면 저마다 이유가 달라요. 말하기 시험을 볼 때 극도로 긴장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읽기 시험을 볼 때 자꾸만 문장을 건너뛰며 읽는 아이도 있죠.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문제 몇 개 더 풀게 하는 것보다 이런 습관을 잡아주는 게 더 중요해요. 아직 실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으니 ‘누가 실수를 하지 않는가’가 중요한 거죠.   그래도 100% 합격이 쉽진 않을 텐데요. 고3 수험생만 컨디션 관리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아이가 어릴수록 그날의 컨디션이 시험에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배탈 같은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떨어지니까요. 그래서 학습 외적인 부분도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시험 때도 평소 먹는 간식을 챙긴다거나 수업 전에 1시간은 자유 놀이 시간을 갖는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방해가 될 만한 요인을 찾아서 미리 제거하는 거죠.   양육자가 아닌데도 아이의 특성에 대해 잘 아시네요. 따로 공부하셨나요? 그게 제 약점이었거든요. 원래는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미네소타대에서 생물학을 공부했어요. 방학 때 잠깐 한국에 와서 집(경기 안양) 근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요. 사장님이 자기 아들 한 번 가르쳐보면 어떻겠냐 해서 시작했다가 입소문이 나면서 눌러앉았죠. 중·고등학생까진 가르칠 만했는데 유·초등생으로 내려가니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나이도 어리고 결혼도 하지 않은 터라 어머니들께서 다들 아이를 돌본 경험이 있냐고 물어보셨죠. 그래서 최대한 많은 아이를 만나보자 싶었어요. 교육학이나 아동학 수업도 찾아 듣고요.   어떤 게 가장 도움이 되던가요? 부모님과 하는 상담이요.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부모님이잖아요. 과외 선생님은 기껏해야 일주일에 2~3시간 만나고요. 수업 외 시간을 잘 활용해야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더라고요. 특히 독서 수업은 책을 읽고 와야 진도를 나갈 수 있으니 부모님과 손발을 잘 맞춰야 해요.   교사가 방문하기 전부터 수업이 시작되는 셈이네요.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는 양육자 같아요. 아이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존재니까요. 사실 수업 대기가 길어지니 교사를 양성해 봤는데 저마다 스타일이 달라서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님을 제 파트너로 삼기로 했죠.   양육자마다 양육 스타일이 다르잖아요. ‘아이 과제를 함께 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분류했어요. 과제량에 따라 수업 진도도 달라지거든요. 학부모의 참여 정도에 따라 과제량이 달라지고요. 물론 진도가 느리다고 해서 문제는 아니에요. 목표에 도달하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니까요.   책만 읽으면 다른 영역을 놓치기 쉽지 않나요? 독서는 읽기뿐 아니라 말하기·듣기·쓰기를 모두 아우를 수 있어요. 오디오북이나 CD가 있는 경우도 많고요. 어휘 학습도 저절로 됩니다. 예를 들어 ‘Name your price’라는 문장이 있어요. 단어를 따로 외운 아이는 각각의 단어를 알아도 무슨 뜻인지 몰라요. ‘이름, 너의, 가격’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책으로 읽은 아이는 앞뒤 문맥을 파악해서 ‘원하는 값을 말해봐’라고 의미를 유추할 수 있죠. 문효정 영어 강사는 “아이와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취향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책을 한두 권씩 빌려 보고 집에서도 계속해서 찾으면 그때 시리즈로 구매하는 것도 방법”이란 얘기다. 김경록 기자  ━  📗영어책 고를 때 세 가지 확인해라   문효정 강사는 “영어책에 대한 몇 가지 개념만 알면 ‘엄마표’로도 원서를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20~30년 전만 해도 영어 관련 정보를 찾기 쉽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커뮤니티나 유튜브 등 참고할 만한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동네마다 영어도서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도 많고, 당근마켓이나 중고서점 등에서 원서 거래도 활발한 편이다.   영어 독서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 한국어 독서와 똑같아요.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그림책부터 읽어주잖아요. 점점 글밥이 많은 책으로 옮겨가고요. 영어책은 크게 픽처북(Picture Book)-리더스(Readers)-챕터북(Chapter Book)-노블(Novel) 등 4단계로 나눌 수 있어요. 픽처북은 그림과 글의 비중이 90 대 10이라면, 리더스는 70 대 30, 챕터북은 10 대 90까지 역전돼요. 영어 실력이 어느 정도 돼야 읽을 수 있나요? 픽처북 단계에서는 영어를 전혀 몰라도 괜찮아요. 양육자가 읽어주면 되니까요. 이 세상에는 한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개념이죠. 만 2세면 모국어와 외국어를 구분할 수 있거든요. 이때는 많이 듣는 게 중요해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익히는 것처럼 영어도 마찬가지예요.   단계는 언제 넘어가면 되나요? 리더스 단계로 가려면 알파벳과 파닉스 정도는 알아야 해요. 철자를 보고 어떻게 소리 나는지 조합에 따른 규칙을 이해해야 하니까요. 챕터북을 읽으려면 글자를 봤을 때 1~2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바로 읽을 수 있어야 해요. 영어 공부를 시작한 지 2~3년 정도 됐으니 읽기 독립도 70~80%가량 이뤄지는 시기죠. 아이가 혼자 읽는 것을 힘들어 한다면 챕터북까진 같이 읽어주는 게 좋아요. 한 줄씩 번갈아 가면서 읽다가 한 문단, 한 쪽씩 늘려 나가는 거죠.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들도 많아요. 정해진 순서는 없지만, 가장 먼저 아이 수준을 파악해야 해요. 스콜라틱스의 ‘SR(Star Reading)’이나 르네상스 러닝의 ‘AR(Accelerated Reader)’, 메타 메트릭스의 ‘렉사일(Lexile)’ 같은 미국 출판사나 교육기관에서 만든 지수를 알아두는 것도 도움이 돼요. 예를 들어 AR이 2.4라면 미국 초등학교 2학년 4개월 차 수준이란 뜻이에요. 지수별로 추천 도서 목록이 있어요. 절대적이진 않지만, 책을 고를 때 참고할 수 있죠.   지수를 어떻게 참고하면 되나요? 가끔 지수를 올리는 데 급급한 분도 계신데요. 독서는 장기전이잖아요. 아이의 흥미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너무 어렵거나 쉬우면 재미를 잃죠. 저는 보통 일주일에 한 권, 한 달이면 네 권을 읽게 하는데요. 약-중-약-강으로 난이도를 조절해요. 읽을 만하다 싶으면 좀 더 어려운 걸 주고, 지칠 것 같다 싶을 때 다시 쉬운 걸 주는 거죠. 계속 같은 레벨의 책만 읽으면 발전이 없어요.   수업에서는 주로 어떤 책을 읽나요? 아이의 수준 못지않게 연령이나 취향도 중요해요. 예를 들어 네 살부터 영유를 다녀서 일곱 살에 AR 4점대인 아이가 있어요. 그렇지만 그 레벨의 책을 읽기 어려운 경우도 많아요.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아이의 정신연령이 초4 수준까지 올라온 건 아니니까요. 등장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면 책이 아니라 글자를 읽는 거죠.   취향은 어떻게 영향을 미치나요? 성별이나 기질에 따라 아이들이 선호하는 책도 달라져요. 이를테면 여자아이들에게는 AR 2점대 챕터북 중 『주니 비 존스(Junie B. Jones)』 시리즈가 인기가 많은데요. 말괄량이 소녀와 공감대를 형성한 아이라면 3점대에서는 『하이디 헤클백(Heidi Heckelbeck)』 시리즈를 좋아할 거예요. 반면에 남자아이들은 대부분 관심이 없죠. 악동이 주인공인 『호리드 헨리(Horrid Henry)』나 탐정을 내세운 『네이트 더 그레이트(Nate the Great)』를 좋아해요. 문효정 강사는 “다섯 살 때 처음 만나 중학생이 되어서도 계속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꾸준히 독서를 제대로 한 친구들은 기본기가 탄탄하기 때문에 중간ㆍ기말고사에서도 좋은 성적을 낸다”고 했다. 김경록 기자  ━  📗책 덮고 나면 이렇게 물어봐라   문효정 강사는 “목적 없이 독서를 하다 보면 정체기가 오기 쉽다”고 말했다. 학원에서는 시험을 보고 점수가 나오지만, 독서는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질문을 통해 아이가 책을 잘 읽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함으로써 메타인지 능력과 논리적 사고력까지 함께 키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책을 읽고 난 뒤 어떤 질문을 해야 하나요?   질문은 크게 내용 질문과 생각 질문으로 나뉘어요. 내용 질문은 책의 소재나 주제 같은 걸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질문인데요. 너무 사소한 걸 물어보면 아이가 큰 흐름을 파악하는 데 방해가 돼요. 책을 읽을 때도 작은 부분에 집착하게 되거든요. 그보다는 왜 이 사건이 시작됐는지, 주인공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인과관계에 관해 물어보는 게 좋죠.   생각 질문은 뭔가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이요. 이를테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고 노예제도에 대한 생각을 묻는 거예요. 답을 찾으려면 책 내용도 알아야 하지만 책 밖의 세상과 연결할 수 있어야 하죠.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근거를 찾아야 하니 논리적 사고력도 생기고요. ‘Do you’보다는 ‘Why’로 묻는 게 좋아요. 전자는 ‘Yes’ 혹은 ‘No’처럼 단답형으로 끝나지만, 후자는 그럴 수 없으니까요.   생각 질문을 할 때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질문도 독서처럼 나이나 수준에 맞춰 단계별 연습이 필요해요. 아이가 아직 유치원생이라면 ‘나’를 중심으로 물어봐야 해요. 친구와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그때 기분이 어땠는지 등 나에 관해서 물어야 답할 수 있죠. 초등 저학년이면 ‘너’, 타인으로 시선을 옮길 수 있어요. 처음 본 친구를 위해 내가 뭘 해줄 수 있는지 하는 식으로요. 고학년이 되면 ‘우리’로 확장이 가능하죠. 친구를 왜 사귀어야 하는지처럼요.   작문 주제 같네요. 생각 주머니를 키우면 쓰기도 어렵지 않아요. 생각한 걸 그대로 옮기면 되니까요. 요즘은 영어학원 레테에서 에세이를 보니까 너무 빨리 쓰기를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형식을 익힐 순 있지만 내용은 초등 1학년이나 3학년이나 비슷해요. 고학년은 돼야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해 나갈 수 있거든요. 생각을 장독대에 잘 묵혀 뒀다가 좀 익으면 쓰는 거죠.   사실 한국어로 다섯 문단씩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죠. 그래서 전 영어책 읽기 전에 한국어책부터 읽길 권해요. 모국어로 먼저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야 외국어로 하는 힘든 과정도 견딜 수 있거든요. 생각을 키워 나가는 과정도 모국어로 하는 게 편하잖아요.   그럼 질문을 한국어로 해도 되나요? 영어로 하면 더 좋겠지만, 양육자에게 부담이 된다면 한국어도 괜찮아요. 아이가 질문에 답하기 어려워 하면 부모가 먼저 의견을 말해도 되고요. 질문도 많이 할 필요 없어요. 좋은 질문 하나로 책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도 있으니까요. 마찬가지로 매일 질문하기가 어렵다면 일주일에 한 번만 해도 됩니다. 책마다 하는 게 힘들면 시리즈별로 한 권만 뽑아서 해도 되고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게 있다면요? 꾸준함이요. 영어 공부를 유치원 때부터 시작하다 보니 초등 3학년이면 수학에 집중하기 위해 영어 비중을 줄이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보다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적은 양이라도 꾸준히 하는 게 나아요. 중학생이 되면 확실히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잖아요.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쉬우니 매일 시간과 장소를 정해 두고 하는 게 좋습니다. 문효정 강사는 “영어 영상을 보여주면 귀는 트일 수 있다. 하지만 올라갈 수 있는 레벨의 한계가 있다. 그 이상을 원한다면 결국 독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록 기자 문효정 강사는 “영어 실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구멍을 찾아서 메우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가 책을 읽는 것보다 오디오로 듣는 것을 좋아한다면 소리 내 읽는 음독으로, 눈으로 읽는 것만 좋아한다면 영상을 영어 자막 없이 보는 식으로 보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아이가 본인에게 편한 감각만 쓰다 보면 학습도 편향될 수밖에 없다. 의도적으로 부족한 부분의 노출을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쉽게 배우면 쉽게 까먹게 돼요. 어렵게 배우면 잊기도 어렵죠. 언어는 평생 쓰는 거잖아요. 시험이 끝나도 남는 공부를 해야죠. 관련기사 수학은 동네 학원 보내라…단, 영어는 대치동뿐이다? ④ 책 열고 “안 돼!” 이러면 뜬다? 3000만부 판 그 작가의 비밀 처음 말한 영어가 문장이었다, 36개월 아이서 찾아낸 비결

    2024.03.31 14:59

  • 영하 19도에도 5살과 산 탔다, 사서 고생시키는 아빠의 속내

    영하 19도에도 5살과 산 탔다, 사서 고생시키는 아빠의 속내 유료 전용

    사서 고생하는 거 맞아요. 두 시간이면 되는 길을 네 시간, 여섯 시간씩 가야 하죠. 그런데 신기하게 다녀오면 정말 뿌듯합니다. 저도, 아이도요. 억만금을 줘도 못 사는 경험이죠.   아이와 4년째 산에 오르는 아빠가 있다. 다섯 살에 아빠와 단둘이 첫 산행에 나선 아이는 어느새 의젓한 초등학생이다. 『오늘도 아이와 산으로 갑니다』를 쓴 박준형(44) 작가 얘기다. “혼자 가도 힘든 산행을 굳이 아이와 가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생을 자처할 만큼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그는 한여름을 제외하면 매달 최소 한 번, 많게는 세 번도 산에 오른다. 물론 아들(8)과 함께다. 동네 뒷산을 시작으로 해발고도 1200m가 넘는 산까지 정복했다. 최근엔 경남 창원 장복산의 5봉을 일곱 시간에 걸쳐 등정했다. 박 작가와 아이가 각각 20kg, 4kg짜리 배낭을 짊어진 채 말이다. 부자(父子)는 영하 19도의 혹한에도 산에 오른다. 휴대전화 신호조차 잡히지 않는 깊은 곳까지 거침이 없다. 둘이 간 산행만 80여 번, 캠핑 장비를 짊어지고 올라 야영까지 하는 백패킹도 40여 번 했다.    산악인의 피가 흐르는 걸까? 대체 뭐 때문에 이 부자는 고된 산행을 계속하는 걸까? 아이와의 산행을 꿈꾼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가 지난 18일 박 작가를 만났다.     ■ ⛰️아빠는 아들과 왜 산으로 갔을까 「 Part 1 시작은 오늘 한 걸음부터 Part 2 다섯 살 아이를 끝까지 걷게 한 대화의 힘   Part 3 산이 부자(父子)에게 열어준 세상 」   ━  ⛰️ Part 1 시작은 오늘 한 걸음부터   박준형 작가는 산과 인연이 깊다. 10대 땐 산악자전거를 즐겼고, 아내도 10년 전 한라산에서 만났다. 그가 아이와 산행하는 아빠가 된 건 지극히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하지만 키즈 카페가 익숙한 평범한 양육자에게 산행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무엇보다 ‘산은 재미없다’는 아이의 마음부터 돌려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박 작가는 “일단 한 번만 가보라”고 했다. 그리고 “가서는 모든 걸 아이와 함께하며 아이에게만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다섯 살 아들과 단둘이 산행을 간 이유도, 지금까지 계속하는 비결도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아이와 둘만의 시간을 보내려고 산행을 시작했다는 건가요? 사실 세 가족이 산에 자주 갔어요. 첫째 서진이가 생후 200일 무렵부터 캐리어 배낭에 아이를 업고요. 서진이와 단둘이 산행을 가기 시작한 건 3년 전이었어요. 둘째가 태어난 지 60일쯤 됐을 때였죠. ‘어린이날 선물로 뭘 받고 싶냐’고 물었더니 ‘캠핑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동생 태어나기 전에 캠핑을 갔던 게 즐거웠다면서요. 둘째가 태어나고 소외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첫째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동생을 봐야 하니, 아빠랑 가자고 했죠. 그런데 아이가 싫다는 거예요.     엄마는 안 가니까 싫다는 거였나요? 이유가 또 있었어요. ‘아빠는 가서 계속 일만 할 거잖아’라고 하더군요. 맞는 말이죠. 저는 텐트 치고, 짐 정리하고, 저녁 준비하느라 계속 움직일 테니까요. 아이 생각엔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방치될 것 같았겠죠. 그래서 ‘그럼 같이 하자!’고 했어요. 짐 나르고, 의자 펴고, 텐트 치고, 요리하는 것까지 다요. 실제로 약속을 지켰습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눠줬어요. 아이도 제 몫을 했다는 생각에 뿌듯해했어요. 그리고 신나게 놀았습니다. 돌멩이로 성벽 쌓고 나뭇가지로 칼싸움도 하면서요.   또 가자고 하던가요? 첫 캠핑이 끝나고 집에 와서 자려는데 그러더라고요. ‘아빠랑 또 캠핑 가고 싶다’고. 아빠의 시간을 고스란히 차지했다는 데서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자연만큼 아이에게 집중하기 좋은 곳이 없습니다. 박준형 작가는 "아이와 산에 가면 아이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선물하라"고 말했다. 2022년 5월 박준형 작가와 아들 서진이는 강원도 평창 선자령에 백패킹을 가서 찍은 사진. 사진 박준형. 등산과 백패킹은 캠핑하곤 완전히 다르잖아요. 아이와 함께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아이와 처음 백패킹을 갔던 산은 세종시 전월산이었는데요. 평소 아이와 자주 가던 산이었어요. 등산로도 익숙했고 산행 시간도 예상 가능했어요. 배낭을 메고 산에 가서 잠을 잤다는 데 의의를 둔 거죠.   등산은 힘들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아이도 많아요.   전 아이와 산에 가면 사계절을 느낄 수 있는 활동과 놀이를 많이 해요. 배 타고 인천 굴업도에도 가보고, 강원도 홍천강에서 카누를 타기도 하고요. 여름엔 계곡을 트레킹하고, 겨울엔 꽁꽁 언 얼음 계곡 위에서 텐트 치고 잤어요. 특히 케이블카는 아이의 흥미를 자극하고 성취감도 줄 수 있는 치트키죠. 영남 알프스로 꼽히는 천황산을 오를 땐 밀양에서 얼음골 케이블카 타고 중턱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했어요. 문명의 힘을 빌리긴 했지만, 다섯 살이던 아이는 높은 산 정상에 올랐다는 사실 자체로 자부심을 느꼈어요.   몇 살이면 산에 같이 갈 수 있을까요? 백패킹이 아니라면 아이가 두 발로 잘 걷는 시기부터 문제가 없어요. 물론 아이가 조금 걷다가 ‘힘들다. 안아 달라’고 하면 ‘왜 왔나’ 싶을 겁니다. 사실 그래서 산에 가기 무섭죠. 그럴 땐 마음을 좀 내려놓으세요. 처음부터 정상까지 가려 들면 아이도, 부모도 지칩니다. 같은 산을 자주 가면서 걷는 거리를 점점 늘려가세요. 오늘 한 걸음 걸었던 게 내일은 두 걸음, 세 걸음이 되니까요. 그럼 아이도 성취감을 느낍니다. 지난번보다 멀리 갔으니까요. 그 기분에 또 산에 가자고 하고요. 그러다 보면 정상까지 갈 수 있어요. 가까운 공원이나 동네 산책길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함께 걷는 시간부터 늘려 보세요. 박준형 작가의 아들 서진이가 2021년 영남 알프스 중 하나인 천황산 정상에 올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박 작가 부자의 네 번째 백패킹 날이었다. 사진 박준형.  ━  ⛰️Part 2 다섯 살 아이를 걷게 한 힘, 대화     산에 오르던 아이가 이런 말을 하면 고비다. ‘언제 다 가?’ ‘얼마나 남았어?’ 아이가 지쳤다는 신호다. 이럴 때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은 ‘조금만 더 가면 돼’다. 하지만 박준형 작가는 “거리가 제법 남았다면 절대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아이를 끝까지 걷게 하려면 솔직해져야 한다.   ‘거의 다 왔다’고 해야 좀 더 걷지 않을까요?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큰 법이잖아요. 제 딴에는 제법 걸었는데도 목적지에 닿지 않으면 아이는 한순간에 무너져버려요. 그때부터는 ‘정말 거의 다 왔다’고 해도 안 믿겠죠.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건 물론 절망적이죠. 그렇더라도 얼마만큼 더 가야 하는지 상황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해요.   어린 아이는 시간이나 거리 개념이 없잖아요. 어떻게 설명했나요?   아이 눈높이에 맞춰서 말해주려 했어요. 다섯 살 무렵 서진이는 10까지 셀 수 있었어요. 그래서 ‘10까지 가야 하는데, 지금 6까지 왔어. 앞으로 4만큼 더 가야 해’라고 설명해 줬죠. 등정의 난이도는 간식 개수로 말했고요. 산에서 아이와 젤리를 간식으로 먹었는데, ‘에너지’라고 불렀거든요. 산행 전 아이에게 ‘오늘 산은 좀 힘들어. 에너지 5개짜리야’ 하는 식으로 가늠할 수 있게 표현해 줬어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요.   산에서 아이가 말을 안 듣고 고집부리면 정말 난감할 것 같아요.   산에서는 안전 문제 때문에라도 아이가 부모의 지시를 잘 따라야 해요. 서진이도 늘 제 말을 잘 듣는 건 아니에요. 다행스러운 건 산에서만큼은 아빠를 ‘선생님’으로 인정하고 잘 따라 주는 편입니다. 저도 아이에게 그런 믿음을 주려고 노력하기도 했고요. 2022년 12월 박준형 작가의 아들 서진이가 눈 덮인 전북 고창 방장산을 걷고 있다. 사진 박준형. 어떻게 하셨나요? 신뢰라는 게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잖아요. 평소 아이와 한 약속은 지키려고 했어요.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 않았죠. 산행지가 정해지면 그 지역과 산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코스, 난이도, 약수터 같은 것에서부터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까지요. 아이의 사소한 질문에 다 답할 수 있도록요. 아이가 물었는데 잘 모르면 솔직하게 모른다고 했어요. 그리고 찾아보고 알려줬죠. 돌다리도 여러 번 두드리는 모습을 봐선지 아이가 저를 믿고 따른 것 같아요. 그리고 무조건 강요하지 않았어요. 산행을 갈 지 말지, 어느 산으로 갈지, 어느 길로 갈지 같은 것에서요. 위험하지만 않다면 아이에게 선택권을 줬어요.   아이가 잘못되거나 무리한 선택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런 경우도 많죠. 하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배우는 것도 많습니다. 대전 계족산에 백패킹을 갔을 때 일인데요, 정상까지 가는 길이 두 가지 있어요. 완만하고 쉬운 황톳길, 그리고 가로질러 빨리 갈 수 있는 가파른 계단길요. 아이가 계단길로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둘 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어서 힘들 게 뻔했죠. 쉬운 길로 가자고 했는데도 아이가 주장을 굽히지 않더라고요. 아이 의견을 따랐죠. 중간쯤 아이가 ‘너무 힘들다. 아까 나 좀 말리지 그랬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선택한 길이니, 끝까지 가야 한다’고요. 그랬더니 끝까지 올라가더라고요. 그 뒤로 아이는 무언가 선택해야 할 때 나름대로 고민하고 판단하려고 하더군요. 스스로 선택하면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하려고도 하고요.  박준형 작가는 아들에게 산행길에 대한 선택권을 준다고 했다. 자기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와 끝까지 산길을 갈 수 있는 비결이라고 했다. 강정현 기자  ━  ⛰️Part 3 산이 부자(父子)에게 열어준 세상   박준형 작가는 “아들이 산을 오르며 자연을 즐길 수 있길 바랐다”고 했다. 바람대로 아이는 온몸으로 사계절을 만끽했고, 산 그림자와 운무가 만든 절경도 누렸다. 산이 내어준 선물은 또 있었다. 박 작가는 “산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법까지 배웠다”고 했다. 아이뿐이 아니다. 아빠도 마찬가지였다.   산을 통해 세상을 배웠다고요? 서진이는 그간 다녔던 산을 기준으로 국내 지리를 익혔어요. 강원도 하면 백패킹했던 도롱이 연못 있는 곳, 집(세종) 기준으로 옆에 있는 곳으로 익히는 거죠. 산에 다녀오면 국내 명산 지도에 스티커도 붙입니다. 등산하는 날 맑았다면 빨간 스티커, 비 오거나 흐렸다면 파란 스티커로요. 자기만의 기준을 만든 거죠. 최근엔 한자에 관심이 많은데요, 제가 한자 지역명을 풀어주기도 해요. 거제에 트레킹하기 좋은 화도(花島)라는 섬이 있거든요. 이렇게 설명해 줬어요. ‘꽃 화(花) 알지? 이순신 장군이 항해하다 그 섬에 꽃이 많은 걸 보고 화도라고 부르자고 했대. 그런데 위아래 두 섬이 있으니 위에 있는 걸 윗 상(上), 상화도, 아래 있는 걸 아래 하(下), 하화도라고 했대.’ 지난해1월 박준형 작가와 아들 서진이가 충북 민주지산 정상에 올랐다. 사진 박준형 산에 다니면서 아는 것도 많아졌겠네요. 또 있어요. 아이가 내성적인 편이거든요. 어릴 땐 이웃을 만나면 엄마 뒤로 숨기 바빴죠. 그런데 지금은 산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요. 산에서 만나는 어른들이 다 아이에게 ‘대단하다’고 칭찬해 주시고, ‘힘내라’며 간식도 나눠주시거든요. ‘큰 사람이 돼라’고 덕담도 해주시고요. 도시의 일상에선 아이가 그런 응원과 칭찬을 받을 일이 없잖아요. 그것도 오늘 처음 본 사람에게요. 산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받고 어울리는 법도 배운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도 변화가 있었나요?  아이와 백패킹 다녀오면 항상 온라인 커뮤니티에 후기를 올렸어요. 제 글에 공감하고 응원해 주는 댓글이 많이 달렸어요. 그런 댓글이 아이와 산행을 이어가고, 또 기록으로 남기는 데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커뮤니티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백패킹을 가기도 했고요. 산행이 새 인연을 만들어준 거죠. 덕분에 이렇게 책도 썼고요. 아이와 산에 가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죠.   아이와의 산행을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가 있나요? 아이는 언젠가 사춘기가 올 테고, 힘든 일도 겪을 겁니다. 그때 저와 산에 갔던 기억이, 그때 주고받았던 대화가 시련을 극복하는 힘이 됐으면 해요. 그 기억을 더 오래 남게 하려면, 들춰보게 하려면 기록을 해야겠더라고요. 첫째와 그리고 아직 어린 둘째가 아빠의 산행기를 읽으면서 기억을 떠올릴 수 있으려면요. 그럼 나중에 제가 같이 산에 가자고 할 때 흔쾌히 따라와 주지 않을까요?   박준형 작가는 최근 산행길에서 아이가 부쩍 컸다는 걸 실감했다. 그는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길 바랄까? “자기만의 속도로 목표를 향해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는 산에서 배우는 것 같아요. 정상에 빨리 가려고, 남보다 먼저 가려고 애쓰는 게 산을 오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요. 전 아이가 너무 지치거나 처지지 않도록 힘닿는 데까지 같이 걷고 싶어요. 박준형 작가는 “아이가 자기만의 속도로 목표를 향해 꾸준히 걸어가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관련기사 방학만 되면 이 가족 떠난다…3박 숙소비로 한 달 사는 꿀팁 박물관 한 번만 가지 마세요…‘공간 전문가’ 엄마의 팁 “애랑 오늘 2000원 썼지롱” 이걸로 매출 15억 만든 아빠

    2024.03.27 15:19

  • “1억 써도 90%는 SKY 못간다” EBS 일타가 때린 ‘루저 교육’

    “1억 써도 90%는 SKY 못간다” EBS 일타가 때린 ‘루저 교육’ 유료 전용

    대입을 준비하는 모든 학생이 열심히 공부합니다. 의대나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대표되는 명문대에 들어가려고요. 하지만 모두가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왜 사교육을 줄여야 하느냐”는 질문에 EBS 영어강사 정승익씨는 이렇게 되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소위 의대나 명문대에 합격하는 학생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는 “‘옆의 애가 뛰니까, 불안한 마음에 나도 뛰는’ 군중심리가 사교육 공화국을 만들었다”며 “왜 뛰는지, 어디로 뛰는지, 무엇을 위해 뛰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그가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가 있다. 사교육비는 지난 3년 연속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는 27조원으로 전년도(2022년)보다 1조2000억원 증가했다. 1년 사이 학생 수는 7만 명(528만 명→521만 명)이나 줄었는데, 사교육비 총액은 외려 늘었다. 그는 “사교육 증가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며 “더는 이런 상황을 두고 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책 『어머니,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는 출간 6개월 만에 1만 부가 넘게 팔렸다. 2022년 유튜브에 올린 영상을 토대로 쓴 책이다. 해당 영상에는 공감 댓글이 수백 개가 달렸고, 학부모 사이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후 학습법에 초점을 맞춘 『진짜 공부 vs 가짜 공부』도 출간했다. 17년 차 전직 교사 출신으로 10년 넘게 EBS와 강남구청 인터넷 수능 방송에서 강의하고 있는 그가 사교육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뭘까? 그가 말하는 ‘진짜 공부’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지난 8일 정씨를 만나 물었다.   ■  「 Intro. 사교육을 줄여야 하는 이유 Part1. 1억 써도 90%는 명문대 못간다 Part2. 사교육이 ‘진짜 공부’ 방해한다 Part3. AI 시대,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   ━  📒1억 써도 90%는 10위권 大 못 가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 참여율은 78.5%. 학생 10명 중 8명이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받는다는 얘기다. 사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지 오래다. 너도나도 사교육을 받는 이유는 뭘까? 한국교육개발원 조사(2022년)에 따르면 ‘남들이 하니까 심리적으로 불안해서’가 가장 큰 이유였다. 정씨는 “현실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현실 말인가요? 사교육을 아무리 받아도 90%는 소위 명문대 못 갑니다. 의대랑 서울 상위 11개 대학의 선발 인원을 다 합해도 전체 수험생의 7%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현재 의대 선발 인원은 3058명입니다. 지난해 서울대·연세대·고려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이화여대의 선발 인원은 3만4884명이고요. 2024학년도 수능 원서 접수자(50만4588명)의 7.5%죠. 아이가 100명 중에 7등을 해야 이들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는 얘기예요. 의대에 합격하려면 0.6%, SKY에 합격하려면 2%에 들어야 하죠. 이게 과연 쉬울까요?   하지만 학부모들이 전부 의대나 서울 11개 대학을 목표로 아이에게 사교육을 시키는 건 아니에요. 아이가 중위권 대학에 합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교육을 시키는 양육자가 많을까요? 별로 없을 거예요. 만약 중위권 대학이 목표라면 더더욱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학령인구가 줄면서 입학 정원이 미달하는 대학이 속출하고 있거든요. 올해 기준으로 정원을 채우지 못한 대학이 전체(195곳)의 87%나 됐어요. 게다가 사교육에 의존하다 결국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면 생기는 문제가 또 있습니다.   뭔가요? 학생 스스로 진로나 꿈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겁니다. 대학 간판이 유의미한 건 상위 7% 정도거든요. 나머지 93% 학생에게는 진로와 대학 전공이 중요합니다. 모두가 SKY에 합격할 수는 없지만, 자신에게 맞는 꿈을 찾는 건 가능하죠.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학원에 의지한 채 목적도 의미도 없이 공부한 아이들이 자기 적성을 알 턱이 없어요. 결국 원하는 대학에 가는 것도, 흥미를 가진 전공을 선택하는 것도 실패하죠.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직 한창인 아이들 대부분을 패배자로 만들고 있어요, 우리가요. 그래서 되겠습니까? 사교육을 줄여야 하는 이유는 또 있어요. 바로 돈이죠.   돈이요? 사교육 받으려면 돈이 드니까요. 사교육 받는 학생들은 지난해 초등학생은 월 46만2000원, 중학생은 월 59만6000원, 고등학생은 월 74만원을 썼어요. 평균 60만원 잡고, 초·중·고 12년 동안 쓴다고 계산해 볼까요? 학원비만 총 8640만원을 쓴다는 계산이 나와요. 여기에 먹이고 입히는 생활비까지 합하면 한 명당 3억 정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대학에 합격하면 끝인가요?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 결혼자금 등을 지원하려면 또 몇억이 필요하겠죠? 그런데 학부모 노후는요? 100세 시대라는데, 사교육에 발목 잡혀서 정작 노후 준비를 못 하는 분이 정말 많습니다.   그렇다고 사교육을 안 시킬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요? 지금 당장, 100% 완전히 끊으라는 게 아닙니다. 사교육이 필요한 학생도 분명 있습니다. 불안감 때문에 주변에 휩쓸려서 하지는 말자는 겁니다. 사교육을 시키더라도 ‘진짜 공부’를 할 수 있게 돕고요.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해도, 아이 스스로 삶을 설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게 더 중요하다는 얘깁니다. 정승익 EBS 강사는 "초중고 12년 간 1억을 들여 사교육을 시켜도 아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가능성은 적다"며 "사교육을 줄이고 교육의 본질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  📒사교육, ‘진짜 공부’ 방해한다   그가 사교육을 줄이자고 주장하는 이유는 또 있다. 사교육이 ‘진짜 공부’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진짜 공부는 스스로 하는 공부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학원에 다닌 아이들은 자기 의지가 아니라 양육자의 뜻에 따라 공부를 시작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지 못하고, 학원 가는 게 공부라고 착각한다. 공부는 하는데, 머릿속에 남는 건 없고 성적은 떨어지는 딜레마에 빠진다. 이게 정씨가 말하는 ‘가짜 공부’다. 그는 “중학교 때까지는 가짜 공부로도 좋은 성적 받을 수 있지만, 고등학교에선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왜 그런가요? 중학교는 절대평가잖아요. 보통 중학교에서는 20~40%가 A등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고교에서는 전교 4%에 들어야 1등급을 받을 수 있어요. 상대평가니까요. 게다가 학습하는 내용도 어려워지고, 학습량도 늘어나죠. 학원에서 시키는 공부만 하는 학생들은 절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학습 동기와 공부하는 습관을 가진 학생이 최상위권을 차지하죠.   학습 동기와 습관이 왜 중한가요? 솔직히 공부가 게임만큼 재미있진 않잖아요. 학창 시절에 공부가 재밌어서 열심히 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거의 없을 겁니다. 재미없는 공부를 대입까지 끌고 가는 힘은 뭘까요?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공부를 왜 해야 하느냐’예요.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기 전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할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고등학생 같은 경우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면 버틸 수 있을까요? 중간에 고꾸라질 수밖에 없죠.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신문을 통해 세상에 관심을 갖게 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려 주는 게 방법입니다. 롤 모델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또 아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관심을 가지세요. 아이가 좋아하는 게 목표나 꿈이 될 테니까요. 학습 동기를 찾았다면 글로 적어서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매일 보면서 각오를 다지게 하면 좋습니다.   삼형제를 서울대에 보낸 분을 취재한 적이 있는데, 습관의 힘을 강조하셨어요. 인간이 하는 행동의 45%는 습관입니다. 공부도 결국 습관에서 결판이 나고요. 우선 아이의 습관을 점검해 보세요. 매일 반복해서 하는 일을 적어보게 하는 거죠. 그런 다음 공부에 도움 되는 습관은 강화하거나 새로 만들고, 방해하는 습관은 제거하세요. 새로운 습관을 만들 때는 매일 하는 행동에 새로운 행동을 결합하면 도움이 됩니다. 예컨대 집에 오자마자 학습지 3장 풀기, 자기 전에 영어 단어 10개 외우기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하나 더, 실패를 겪어보는 것도 중요해요.   실패요? 공부를 잘하려면 메타인지 능력이 필요하다는 얘기, 들어보셨을 거예요. 뭘 알고, 뭘 모르는지 알아야 한다는 건데요. 그러려면 틀려 봐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지식의 양과 질을 파악하는 거죠. 초등학교 때까지는 부모가 옆에서 도와줄 수 있어요.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 옆에서 대신 챙겨줄 수가 없습니다. 할 게 너무 많거든요. 뭐가 중요한지, 뭘 먼저 해야 하는지 등을 스스로 결정해야 하죠. 이런 걸 고등학생 때 잘하려면, 초·중등 때 실패를 해봐야 합니다.    하지만 실패는 다들 두려워하잖아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이가 실패할 때마다 축하해 주세요. 실패했다는 건 도전했다는 거잖아요. 도전한 걸 축하하고,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담은 카드와 작은 선물을 주는 겁니다. 그럼 아이는 실패를 성장할 기회로 삼게 되죠. 정승익 EBS 강사는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혼자 공부하는 힘을 기르지 못한다"며 "고교 때 힘을 발휘하는 진짜 공부를 하려면 사교육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  📒AI 시대,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다   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다. 바로 이것 역시 그가 사교육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 10위 기업을 들여다보면 20년 전엔 리스트 안에 없던 기업이 대부분이다. 구글·메타·아마존·애플·테슬라 등이 그 주인공이다.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기업도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장 이후 시장이 그만큼 격변한 것이다. AI 이후 시장은 어떨까? 그는 “그 어떤 전문가도 10년 후 산업과 시장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며 “그런 상황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시대가 달라졌다는 데엔 크게 공감합니다. 예전에는 무작정 공부만 열심히 하면 먹고사는 데 큰 지장이 없었습니다. 소위 명문대에 진학해 대기업에 들어가면 평생 일할 수 있었죠. 하지만 지금도 그런가요? 평생직장의 개념이 사라진 지 오래예요. 정규직 되기가 하늘의 별 따기죠. 2016년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65%는 지금은 없는 직업을 가지게 될 거라고 해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너무 어려운 질문이에요. 많은 양육자가 그 질문에 답을 찾고 싶어 합니다.  변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수밖에 없어요. 기술이 그만큼 빠르게 발전하니까요. 결국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끊임없는 변화에 적응하는 게 평생의 과제가 될 겁니다. 여기에 대비하려면 경험과 독서, 대화가 중요합니다.   하나씩 얘기해 볼까요? 경험부터요. 변화에 적응하려면,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필요해요. 아이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주말에 외출할 생각이라면 아이에게 어디 가고 싶은지, 가서 뭘 할지 일정을 계획해 보라고 하는 거죠. 여행 계획도 짜라고 하고요. 그럼 아이는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하며 문제를 풀어볼 겁니다. 예산 계획까지 맡기면 경제 관념도 생기겠죠.   독서가 중요한 건 간접경험이기 때문인가요? 디지털 기기의 발달로 독서의 중요성은 더 커졌습니다. 독서는 문해력을 키우는 도구잖아요. 문자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문해력)은 권력이 될 겁니다. 매일 책을 보는 사람은 없어도, 매일 유튜브 보는 사람은 많은 시대니까요.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아이들이 뭘 가장 많이 묻는지 아세요? 문제 자체의 뜻을 물어요. ‘6단어 내외로 답을 작성하라’고 서술형 문제를 내면, “내외가 뭐냐”고 묻는 식이죠. 독서의 중요성을 모르는 양육자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초등 고학년만 돼도 독서량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학원에 다니느라 시간이 없어서겠죠? 맞아요. 하지만 학원 가서 진도를 1~2년 앞서 공부하는 것보다 책 읽는 게 훨씬 중요합니다. 독서는 단지 수능 잘 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유튜브로 자극적인 영상만 찾아보는 사람과 독서를 통해 지식을 익히는 사람의 미래가 같을까요?   대화는 왜 중요한가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어요.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다는 겁니다. 특히 사춘기가 시작되면, 여러모로 불안하거든요. 인간은 새롭거나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놓이거나, 자신이 위협 받는다고 느낄 때, 그리고 통제력이 없을 때 불안을 느낀다고 합니다. 10대는 이 네 가지에 모두 해당하죠. 이때 부모와 대화하면 불안감이 줄어들어요. 대화할 때는 두 가지만 기억하세요. 들어주기, 공감해 주기.   사교육을 줄이는 일은 공교육을 살리는 일이기도 하다.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가짜 공부’를 하느라 정작 학교 수업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씨는 “가짜 공부를 막지 않으면 이런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며 “변화의 시작점은 학부모와 학생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명문대 합격이 양육의 목표가 될 수 없어요.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목표죠. 이 목표를 생각한다면 사교육은 결코 답이 될 수 없습니다. 정승익 EBS강사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며 "경험과 독서, 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장진영 기자 관련기사 원장님 믿어요? 큰일 납니다…前학원장의 ‘호구 안되는 법’ “SKY 가려면 초1 ‘이것’ 해라” 서울대 스타 강사의 공부법 방과후 학원만 꽉 채우지 말라, ‘서울대 쌍둥이’ 원장의 팁

    2024.03.24 15:02

  • 원장님 믿어요? 큰일 납니다…前학원장의 ‘호구 안되는 법’

    원장님 믿어요? 큰일 납니다…前학원장의 ‘호구 안되는 법’ 유료 전용

    학원 상담 가서 ‘원장님만 믿는다’고 하셨나요? 학원만 믿으시면 큰일 납니다.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것’이고 ‘3년 선행은 정속(定速)’이라는데, “학원을 너무 믿지 말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입시 정책을 분석하고 공부법을 가르치는 교집합교육연구소 주단 대표와 권태형 소장이다. 이들은 “공부는 결코 학원이 대신해 줄 수 없고, 결국 아이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부부이기도 한 주 대표와 권 소장은 사교육업계에서 각각 15년, 18년 경력을 가졌다. 경력의 절반가량은 각각 수학·영어 강사와 학원장으로 일했고, 나머지 절반은 학원장을 대상으로 커리큘럼과 교안을 제안하는 일을 했다. 학원가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들이 정작 “학원에 주도권을 빼앗겨선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전적으로 맡기지 말고, 필요할 때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사교육 시장이 세분화·전문화되면서 전문가의 힘이 세졌다. 그럴수록 양육자의 정보력도 중요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학원 없이도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을까? 그러려면 뭘 해야 할까? 지난달 27일 제주에서 두 사람을 직접 만났다.   ■  「 Intro 학원, 너무 믿지 말라? Part 1 학원만 믿으면 안 되는 이유 Part 2 초등 때 챙겨야 할 세 가지 Part 3 자기주도학습, 5단계를 기억하라 」   ━  Part 1 학원만 믿으면 안 되는 이유   어떤 분야든 시장이 커지면 세분화·전문화되기 마련이다. 사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영어는 말하기·듣기·읽기·쓰기 중 어디에 방점을 찍느냐에 따라 분화되고, 수학도 사고력·심화 등으로 전문화된다. 국어는 독서와 독해, 토론과 쓰기로 나뉜다. 복잡해질수록 학원의 힘도 세진다. 하지만 주 대표와 권 소장은 “그럴수록 모든 걸 학원에 맡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럴수록 아이에게 더 잘 맞는 학원을 찾아 보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세분화·전문화될수록 학원은 특정 과목, 특정 역량을 강조할 수밖에 없어요. 특정 과목을 넘어 그 과목의 특정 부분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하죠. 오래 붙잡고 있고, 숙제도 많이 내는 식으로요. 하지만 아이의 시간은 24시간뿐이에요. 잠도 자야 하고, 학교도 가야 하고요.   학원에만 맡기면, 일부분에 쏠릴 수밖에 없다는 건가요? 예컨대 ‘영어 유치원’(유아 대상 영어학원) 졸업하고 강남 대치동의 ‘빅3’ 영어학원에 입학해요. 그 학원에서 대입까지 해결해 줄까요? 대입은 초·중·고 12년이 이어지는 긴 여정이에요. 초등 시기에 다니는 학원은 결코 입시까지 책임지지 않습니다. 영어학원에서 읽기 역량이 부족하다며 영어책을 더 읽으라고 해요. 그럼 영어책을 더 읽혀야 할까요? 아닙니다. 연령에 맞게 우리말 책은 잘 읽는지 여부를 체크해야 해요.   하지만 영어학원에서 그것까지 챙겨주진 않죠. 학원을 너무 믿지 말라는 게 그래서예요. 학원 입장에선 가르치는 그 과목만 잘하면 됩니다.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도 그런가요? 아이는 전 과목을 두루 잘해야죠. 어떤 과목이 부족한지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시간을 배분해야 하고요. 개별 과목 학원은 이를 결코 해줄 수 없습니다.   학원 다니면 특정 과목은 해결할 수 있지 않나요? 그것도 환상입니다. 아이가 클수록 학원은 줄여야 해요. 고등학생 땐 학원에 다니지 않거나, 다니더라도 최소한으로 유지하는 게 좋아요. 수업을 듣는 건 공부가 아닙니다. 학원 가도 그 과목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학원 가는 대신 자기 공부를 해야 하죠.   고등학교 때 공부 시간 만들어 주려고, 초등 시절부터 학원에 보내 미리 진도를 빼는 게 요즘 트렌드예요.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는 연령도 점점 어려지고 있죠. 문제는 과하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겁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너무 공부에 몰입하게 하면 공부 정서가 망가지거든요.   공부 정서요? 아이가 공부에 대해 갖는 감정이에요. 공부를 좋아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하지만 이게 쉽지 않잖아요. 싫어하지 않는 마음이면 충분해요. 그런데 어릴 때부터 너무 공부만 하면, 공부 자체를 싫어하게 됩니다. 그냥 싫어하는 게 아니라 꼴도 보기 싫어해요. 정작 본격적으로 레이스를 시작하기도 전에 손을 놓아버리고 말죠. 교집합교육연구소 주단 대표와 권태형 소장은 "학원에만 모든 걸 맡겨선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학습의 주도권을 학원에 넘겨줬다간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주=김종호 기자  ━  Part 2 초등 때 챙겨야 할 세 가지   주 대표와 권 소장은 초등학생 시절 반드시 챙겨야 할 세 가지로 공부 정서와 자기주도력, 그리고 문해력을 꼽았다. 이것만 갖추고 있으면 언제든 마음먹었을 때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초등 때 아무리 선행학습을 많이 했어도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성공적으로 완주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초등 시절, 선행학습은 필요 없다는 얘긴가요? 진도는 중요하지 않아요. 공부한 내용을 얼마나 잘 아는지가 중요하죠. 하지만 초등 시절엔 그걸 가늠할 방법이 없습니다. 학교에선 정규 시험을 보지 않고, 보더라도 쉬운 단원 평가 정도니까요. 그래서 학원에 몰리는 건데, 학원 시험이라는 게 그 학원에서 공부하면 잘 나오게 출제합니다. 학원 테스트 잘 본다고, 제대로 아는 건 아니란 얘기죠.   하지만 요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아요. ‘3년 선행이 정속’이라고 할 정도예요. 대치동만 벗어나면 다릅니다. 저희도 선행을 결사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선행이 필요한 아이도 있어요. 전체 약 5% 정도에 해당하는 최상위권 학생, 그리고 잘하고 싶은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하위 30% 정도 학생요. 후자의 경우 중학교 이후엔 교과서조차 이해하지 못해요. 교과서를 외계어라고 느끼지 않게 미리 공부해 두면 포기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죠.    어느 정도 선행해야 하죠? 1년 정도면 충분합니다. 진도를 더 나가 봐야 기억을 못 하고, 안다는 생각에 집중도 안 합니다. 몇 년 전 고등학교 1학년 아이가 찾아온 적이 있어요. 이미 고등학교 수학 과정 전체를 다섯 번이나 반복한 아이였죠. 그런데도 그 어떤 학원도 아이를 받아주지 않아서 저희를 찾아왔더군요. 데리고 두어 시간 공부해 보니,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다섯 번 반복했으니 어지간한 문제집은 다 풉니다. 거의 다 풀어봤으니까요. 하지만 정작 새로운 유형을 만나면 손도 못 대요. 다 안다는 생각에 수업에 집중도 안 하고요. 보통 선행을 강조하는 사람은 긍정적인 효과만 말할 겁니다. 하지만 부정적 효과도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두 사람은 “초등 때는 특정 과목의 진도를 빼는 데 주력해선 안 된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공부의 토대를 닦는 일”이라는 것이다.   핵심은 공부를 싫어하지 않는 마음인가요? 단언컨대 이것보다 중요한 건 없습니다. 학령기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는 다 비슷한 고민을 합니다. 학군지로 이사할지, 선행학습을 얼마나 시킬지, 심화학습을 어느 정도로 시킬지 말이죠. 이렇게 질문해 보세요. ‘그렇게 하면 아이가 공부를 싫어하게 될까?’라고요. ‘그렇다’는 답이 나온다면 해선 안 됩니다.   공부 정서가 좋아지려면, 성공 경험이 필요하잖아요. 공부해야 성공도 하지 않나요? 성공 경험을 반드시 공부로 쌓을 필요는 없어요. 예체능을 활용해도 됩니다. 피아노 학원 연주회에서 무대에 서봤던 경험, 물을 무서워했는데 어느 순간 수영 강습을 기다리는 경험을 통해서요. 아이가 크면 국·영·수 공부하느라 예체능 학원을 다들 빼시는데요,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더 하라고 독려해 주세요. 성취 경험뿐 아니라 스트레스를 푸는 숨구멍이 될 수 있거든요.   공부 정서가 좋다고, 다 공부를 잘하는 건 아니에요. 매일 반복하는 습관 같은 걸 만들어 보세요. 소위 ‘루틴(routine)’을 활용하라는 거죠. 자기 전에 책을 읽는다거나, 저녁 먹기 전 30분간 수학 문제를 푸는 식으로요. 학습을 루틴으로 만들면,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합니다. 당연하다는 듯이요.   두 분은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던 분들인데, 문해력을 강조하는 게 특이합니다. 모국어를 읽고, 이해하고, 쓰는 역량은 모든 학습의 기초예요. 이거 못하면서 공부 잘할 수는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무리 영어 몰입 교육을 해도, 영어 문해력이 결코 국어 문해력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수학도 마찬가지예요. 문제를 읽고 주어진 조건을 파악해야 답도 낼 수 있잖아요. 초등 때 영어·수학 공부하느라 문해력을 놓치는 것이야말로 패착입니다. 초등 때는 표가 안 날 거예요. 하지만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문해력이 발목을 잡고 있는 아이들이 드러나죠. 주 대표와 권 소장은 "초등 시절엔 학원에 가서 선행학습을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꼽은 세 가지는 공부 정서, 자기주도력, 그리고 문해력이었다. 제주=김종호 기자  ━  Part 3 자기주도력, 5단계를 기억하라   그들은 또 “학원은 쭉 보내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목적을 갖고 일정 기간 다닌 뒤 목적을 달성하면 그만둬야 한다”는 것이다. 일정 기간을 다녀도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면 역시 그만두는 게 낫다. 결국 “학습의 주도권을 학원에 내줘선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아이가 학습의 주체가 돼야 한다. 양육자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 말이다. 하지만 자기주도학습 하는 아이는 ‘유니콘’ 같은 존재다. 들어는 봤지만, 본 적이 없는 존재 말이다.    자기주도학습은 어른도 하기 힘든데요, 아이가 가능할까요? 초등학교 5학년은 돼야 할 수 있어요. 최적의 시기죠.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 번째는 이 시기는 돼야 자기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알아챌 수 있어요. 메타인지라고 하죠. 이게 돼야 목표도, 계획도 세울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학습량이 많아지고, 내용도 어려워져요. 초등생만 다니던 학원에서 중·고등 과정을 가르치는 학원으로 옮기거나, 엄마표로 아이를 가르치던 분들이 학원에 보내기 시작하는 시기죠. 마지막으로 이 시기 학습 습관이 고등학교 때까지 갑니다. 그런데 이 시기를 놓치면, 아이는 엄마·아빠 말을 안 들어요. 자기주도학습은 초5 때 시작해 중2 때 하산시켜야 합니다. 초5 땐 양육자가 끌어주다 중2 무렵에 손을 떼라는 건가요? 중2쯤 되면, 어느 집 아이건 엄마·아빠 말을 듣지 않습니다. 개입이 안 돼요. 학원도 친구 따라가고요. 하산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그걸 전제로 초5 무렵부터 습관을 잡아줘야 해요.   어떻게 해야 자기주도학습을 할 수 있나요? 자기주도학습, 정말 좋은 말이죠. 하지만 절대 쉽지 않습니다. 5단계로 나눠서 해보세요. 1단계는 아이의 상태를 진단하는 겁니다. 핵심은 시간을 정해 놓고, 시험 보듯 문제를 푸는 겁니다. 문제집 단원마다 제일 뒤에 ‘단원평가’가 있잖아요. 그걸 시험지로 활용하세요. 아이가 영어 단어 5개 외우고, 수학 문제집 2장 푸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도 파악하시고요.   그 뒤엔 어떻게 해야 하죠?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목표는 구체적일수록 좋아요. ‘운동하기’보다 ‘매일 30분 운동장 5바퀴 돌기’라고 목표를 잡는 게 실천하기 쉽잖아요. 영어 단어 매일 3개 외우기, 문제집 2장 풀기처럼 구체적으로 잡으세요. 학습 시간도 함께 정하는 걸 권합니다.   목표를 얼마나 높게 잡아야 할까요? ‘높게’에 방점을 찍어선 안 됩니다. ‘할 만하다’고 느껴야 하거든요. 아이 역량의 80% 수준에서 잡으세요. 매일 달성할 수 있도록 말이죠. 공부를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면, 50% 수준으로 낮추시고요. 절대 높게 잡아선 안 됩니다.   목표를 세웠으면, 계획을 짜야겠네요. 계획의 핵심은 시간 관리죠. 아이의 일주일 일과를 모두 적어 보세요. 가능하면 시간까지 정확하게요. 그럼 어떤 시간에 공부해야 할지 보일 겁니다. 그 시간에 뭘 할지는 중요도와 긴급도를 기준으로 정하세요. 그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을 겁니다. 초반에는 양육자가 이끌면서 함께 해주세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 혼자 하게 됩니다.    이제 실행하면 되겠네요? 실행할 때 공부법을 귀띔해 주세요. 어른들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도 아이들은 모르거든요. 목차를 활용해 학습 내용의 큰 줄기를 이해하는 법, 형광펜(강조)과 연필(보충)을 가지고 교과서에 필기하는 법 등을 알려 주세요. 여러 번 공부할 때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처음엔 천천히 모든 내용을 학습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볼 땐 모르는 것, 중요한 것 위주로 보라는 식으로요.   마지막 단계는 뭔가요? 피드백, 그러니까 오답 풀이입니다. 특히 수학은 오답을 풀면서 진짜 공부가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소 뒷걸음질치다 맞은 문제도 반드시 다시 풀어봐야 해요. 여러 번 하면 더 좋습니다. 1차는 채점 직후, 2차는 문제 푼 다음 날, 3차는 5일 안에 다시 한번 풀어보는 거죠. 주 대표와 권 소장은 "엄마, 아빠의 불안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이된다"며 "아이와의 거리감을 유지하라"고 조언했다. 제주=김종호 기자 주 대표와 권 소장은 “학원에 휘둘리는 가장 큰 이유는 불안”이라며 “엄마, 아빠의 불안은 아이의 공부 정서를 망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은 없을까? 두 사람은 “남의 집 아이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애정과 관심이 있으니까,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겁니다. 하지만 크고 작은 결과에 하나하나 반응하면 아이는 더 불안해집니다. 그러니 남의 집 아이라고 생각하세요. 아이를 위해서요. 관련기사 “학교는 공부하는 곳 아니다” 학부모·교사 17명 충격 증언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① “경제력도 정보력도 아니다” 서울대 보낸 엄마들의 비밀 ① “SKY 가려면 초1 ‘이것’ 해라” 서울대 스타 강사의 공부법

    2024.03.20 15:23

  • 머스크에 60억 받은 한국인 질문 “AI 시대, 공부해 뭐 먹고살래?”

    머스크에 60억 받은 한국인 질문 “AI 시대, 공부해 뭐 먹고살래?” 유료 전용

    일곱 살 둘째가 그림 그리는 걸 보면 여러 생각이 들어요. ‘그래, 너도 열심히 하면 엄마만큼 그릴 순 있겠다. 그런데 미대 나와서 뭐 먹고 살래? 인공지능(AI)이 너보다 더 빠르게, 더 잘 그릴 텐데….’   글로벌 에듀테크 기업 에누마를 이끄는 이수인 대표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요즘 이런 생각 안 해 본 분은 없을 것”이라며 자신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엔씨소프트에서 게임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즈음이면 지금의 교육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박정민 디자이너 토도수학을 시작으로 토도영어·토도한글 등을 론칭해 전 세계 20여 개국 앱스토어(어린이·교육 부문)에서 1위에 오른 에누마가 AI 디지털교과서 제작에 뛰어든 것도 그 때문이다. 2012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남편 이건호 최고기술책임자와 함께 만든 에누마는 다양한 국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모색해 왔다.   이 대표는 “학교와 사회에는 일종의 단절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학교 밖에서는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데, 학교는 부작용을 우려해 사용을 막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졸업 후 그 간극을 좁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일찌감치 제대로 사용법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AI 시대 교육은 어떻게 변할까?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격변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을까? AI는 현재 교육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지난달 23일 서울 성수동 사무실에서 이 대표를 만나 물었다.   ■  「 Intro. 에누마가 AI 교육에 뛰어든 이유Part 1. 시대에 맞는 교육 철학이 필요하다Part 2. 공교육과 손잡아야 바꿀 수 있다Part 3. 교육 격차는 지금도 커지고 있다 」   ━  👩‍💻시대에 맞는 교육 철학이 필요하다   에누마는 YBM과 손잡고 초등 영어·수학, 중·고등 영어 AI 디지털교과서를 개발 중이다. AI 디지털교과서는 AI 기술을 접목해 학생별 맞춤 교육이 가능하도록 한 교육 콘텐트다. 이수인 대표는 “AI 디지털교과서가 제대로 만들어진다면 전 세계 디지털 교육에 롤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 도입과 더불어 무엇을 어떻게 담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10년 전에도 디지털교과서를 만들었지만 효용이 크진 않았어요. 그때는 종이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컴퓨터로 옮기는 방식이었어요. 매체가 달라졌을 뿐 학습 방식은 바뀌지 않았죠. 하지만 AI 디지털교과서는 1:1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요. 개인별 데이터가 쌓이면 수준에 맞는 문제를 제공해줄 수 있어요. ‘L’과 ‘R’을 구분하지 못하는 아이라면 발음을 교정해줄 수도 있고, 습관처럼 자주 하는 문법 실수를 잡아줄 수도 있죠.   AI 디지털교과서를 활용하면 아이들마다 각기 다른 진도로 공부하는 게 가능한가요? AI를 활용해 아이의 학습 계획을 짜줄 수 있습니다. 아이가 영어 말하기는 잘하는데 쓰기가 약하다면, 쓰기를 보강할 수 있게 하는 거죠. 하지만 학습 속도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에요. 공부를 못 하는 아이에게 현재 수준보다 낮은 단계의 문제를 주는 것은 괜찮지만, 공부를 잘 하는 아이에게 높은 단계의 문제를 주는 건 현행법상 불가능해요. 선행학습 금지법에 따라 정규 교과과정을 미리 가르치면 안 되거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뜬구름 잡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교육 철학부터 세워야 해요. 결국 ‘AI를 교육에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공부란 무엇인가’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과 모두 연결돼 있거든요.   공부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저 역시 장애가 있는 아이가 태어나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고, 당시 유학 중이던 남편을 따라 미국에 살게 되면서 생각이 계속 바뀌고 있거든요. 처음 토도수학을 만들 땐, 장애가 있는 저희 집 첫째처럼 학습이 느린 아이도 재미있게 수학을 배우길 바랐어요. 대학 동아리에서 만나 함께 게임을 만들던 우리 부부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올해 열여섯 살이 된 아이는 또래보다 낮은 단계의 문제를 풀지만 본인이 수학을 잘 하고, 또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공부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있는 거죠.   아이에게 부족한 부분을 발견하고 채워주는 거네요. 모든 아이가 전 과목에서 100점을 받게 하는 게 교육의 목표는 아니니까요. 결과 중심에서 과정 중심으로 생각을 바꿔 보면 많은 것이 달라져요. 기말고사에서 수학 100점을 받는 것이 목표라면 굳이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아도 돼요. 학원에서 공부해도 되니까요. 하지만 지금 내 아이가 확률·통계 부분이 취약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보완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매일의 학습 과정이 유의미해지는 거죠.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도 중요한 문제겠어요. 결국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일제고사는 사라지지 않을까요? 연산은 컴퓨터가 해주고, 지식은 검색으로 찾고, 원하는 모든 것을 AI로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는 정답이 큰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럼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할까요? 세계교육포럼 등 많은 기관에서 21세기 교육에서 필요한 기술은 의사소통 능력(Communication), 협업 능력(Collaboration), 창의성(Creativity),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이라고 말해왔어요. 저도 처음 들었을 땐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챗GPT 같은 생성 AI를 보니 그제야 실감이 나더라고요. 기계는 하지 못하지만 사람은 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이수인 에누마 대표는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 AI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되면 더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  👩‍💻공교육과 손잡아야 바꿀 수 있다   이수인 대표가 공교육과 학교로 눈을 돌리게 된 건 나날이 커지는 교육 격차 때문이다. 장애 아동과 일반 아동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교육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서비스는 그가 의도한 대로 사용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실제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사용하던가요? 나라마다 쓰임새가 조금씩 달랐어요. 미국에선 기초학력 부진 아동이 많이 썼어요. 덕분에 비단 장애가 있지 않아도 경제적 이유로 가정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에게도 필요한 서비스라는 걸 알게 됐죠. 반면에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은 선행학습에 주로 사용하더라고요.   선행학습이요? 앱스토어 1위에 오르니 실제 사용 후기가 쏟아지더라고요. 유아부터 초등 저학년 대상으로 만들어진 앱인데 토도수학을 3~4세에 시작해 전 과정을 1년 만에 끝냈다 하는 식으로요. 토도영어는 영어 유치원에 가기 전에 레벨 테스트 준비용으로 쓰기도 하고요. 소비자 대상(B2C) 교육 서비스를 파는 순간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럼 어디에 팔아야 할까요? 교육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정부 대상(B2G)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공부를 못하는 아이에게도 돈을 쓰는 것은 공교육이 유일할 테니까요.   공교육에서는 어떻게 사용할 수 있나요? 미국은 주 단위로 교육 과정도 다르고 학교나 교사 재량도 큰 편이에요. 교사가 직접 교육 프로그램을 써 보고 선택할 수 있거든요. 토도수학이 기초학습이 부진한 아이에게 적합하다고 판단하면 계정을 만들어서 아이들에게 공유합니다. 실제 1만여 학급에서 사용하고 있어요. 학생 1인당 이러한 프로그램 계정을 평균 87개 정도 가지고 있다는 통계도 있고요.   엄청 많네요. 아이들이 그 프로그램을 모두 사용하나요? 불행히도 그렇진 않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이 있는지 관심조차 없는 아이도 많을 테니까요. 학습에 대한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죠. 미국은 팬데믹 기간에 태블릿 보급률이 100%를 달성했는데요. 집에서도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으니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박정민 디자이너 가정 학습이 중요하군요. 팬데믹 때 여실히 드러났죠. 학교를 가지 않아도 그 시간에 사교육으로 학습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학교에 가지 않으면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 아이도 있었으니까요. 코로나 3년 동안 전 세계 기초학습 부진 학생이 57%에서 70%로 증가했어요. 공부를 못 하는 아이가 늘어난 것은 물론 못 하는 아이는 더 못 하고, 잘하는 아이는 더 잘 하는 식으로 양극화가 심해졌습니다.   AI 디지털교과서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양육자나 교사의 역할을 완전히 대신할 순 없겠지만, 더 많은 보조교사와 함께 공부하는 효과는 있겠죠. 아이의 학습 상황을 보여주는 데이터가 훨씬 많아질 테니까요.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교수법에 있어서도 교사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교사의 역할도 달라질까요? AI를 활용하면 교사는 시간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AI에게 행정 업무나 채점 같은 걸 맡기면 사회성 교육 같은 것에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교사가 사라지진 않을 거예요. 과거엔 온라인 수업이 가능해지면 학교에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팬데믹 기간을 거치며 학교의 기능을 깨달았듯이 교사도 그렇겠죠. 이수인 대표는 “한국은 부진 학생 비율이 10% 안팎으로 낮은 편이지만, 학교를 12년씩 다니는데 70%가 기초교육에 실패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현동 기자  ━  👩‍💻교육 격차, 지금도 커지고 있다   이수인 대표는 2019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우승하면서 분기점을 맞았다. 2014년부터 5년간 아동 문맹 퇴치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만들며 시야가 넓어진 덕분이다. 탄자니아 등 개발도상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그는 주저앉는 대신 벽 너머에 있는 문제를 바라봤다.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토도 시리즈는 태블릿 등 기기를 가지고 하는 학습 프로그램이잖아요. 일론 머스크와 유네스코가 개발도상국의 문맹 아동이 태블릿을 이용해 스스로 읽기·쓰기·셈하기를 익힐 수 있도록 하면 총 상금 1500만 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80억원)를 주겠다는데 눈이 번쩍 뜨였죠. 기초학습은 에누마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했고요. 에누마는 2019년 ‘글로벌 러닝 엑스프라이즈’에서 공동 우승을 차지해 500만 달러(당시 기준 약 60억원)의 상금을 받았다. 왼쪽에서 둘째가 이건호 최고기술책임자, 넷째가 이수인 대표. 사진 에누마 프로젝트를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시작할 때만 해도 모두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으면 정보 격차가 해소될 것이라는 환상이 있었어요. 누구나 인터넷에 접속해서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탄자니아에 가보니 스마트폰은커녕 휴대전화를 처음 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더라고요. 휴대전화를 충전하려면 전기도 있어야 하고, 인터넷에 접속하려면 통신망도 있어야 하는데 이를 사용할 수 없는 환경이었던 거죠.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나요?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킷킷스쿨)을 만들었어요. 인터넷 요금이 전기보다 비싸니 비용이 덜 드는 쪽을 선택한 거죠. 미국식 디지털 교육을 다른 국가에 도입하기 어려운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드니까요. 안타깝게도 AI는 이러한 격차를 더 키울 거예요. 한 달에 20달러(약 2만7000원)를 내고 챗GPT를 유료로 사용하는 사람과 무료로 사용하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생산성 차이가 발생하잖아요. 그조차도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은 따라잡기 힘들겠죠.   다른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사실 엑스프라이즈에서 공동 우승하고 상금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받은 뒤 러브콜이 쏟아질 줄 알았어요. 학교에 다니지 않는 문맹 아이들이 태블릿 학습만으로 기초 학습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고요. 국가마다 상황이 판이하니 계속 고객을 찾아다녔죠. 에누마는 인도네시아 정부 교육문화부 개발협력파트너로 선정돼 다양한 디지털 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에누마 어떤 국가에서 관심을 갖던가요? 킷킷스쿨을 발전시킨 임팩트 서비스 ‘에누마 스쿨’을 만들었는데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말레이시아·방글라데시·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에서 관심이 많더라고요. 다양한 민족·언어·종교가 섞여있고 지역마다 인프라 차이가 큰 편이거든요.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은 곳도 많았죠. 당시 교육 관련 예산을 줄인 나라도 많았어요. 보건 등 더욱 시급한 문제가 많으니 교육은 후순위로 밀린 거죠.   동남아에서는 어떤 식으로 사용되나요? 현지 상황에 맞춰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 메단 및 람풍 지역에서는 코로나로 학습이 어려운 아이 600명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했어요. 이후 공립학교 238곳에서 디지털 교육 확산 사업을 하며 규모를 키워나갔죠. 현재는 인도네시아 교육문화부 개발협력파트너로 선정돼 보다 광범위하게 협업하고 있어요.   한국에서도 공교육과 협업한 경험이 있나요? ‘글방’이 코로나 기간 동안 학습 취약계층 아동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제품이에요. 이주 아동이나 느린 학습자 등 다양한 아이들이 사용하면서 토도한글로 발전시키게 됐죠.   개인과 학교, 국가와 사회가 가진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풀어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한국에 계속 살았더라면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을 거예요. 사업 초기에는 ‘교육 관련 학위가 있는 백인 남성이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지만, 한국에서 온 영어를 잘 못하는 동양 여성이자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 눈에만 보이는 문제가 있잖아요. 교육에서 벌어지는 많은 문제가, 똑똑하고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그들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걸지도 몰라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일하는 이수인 대표는 “재택 등 유연 근무제를 운영하고 있어서 어디에서 일하나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이수인 대표는 “AI로 패러다임이 전환하고 있는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교육 격차는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교육이 잘 안 되면 에듀테크 회사가 손해를 보는 게 아니에요. 다음 세대의 국가경쟁력 전체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결국 다음은 데이터 싸움이 될 테니까요. AI 디지털교과서는 첫 번째 수단일 뿐이에요. 바다에 빠질까 봐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는 것보단 헤엄치는 법을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요? 관련기사 AI 똑똑하게 쓰는 사람들, 이렇게 질문한다 벌레 백과사전 줄줄 읊은 6살 “영재? 이 말 못하면 병원 가라” ‘봉준호 아바타’ 여기 다녔다…원어민 뺨치는 영어실력 비법 ⑤

    2024.03.17 15:10

  • “부모가 TV 볼거면 따라 마라” 의사 아빠네 ‘거실 공부’ 비결

    “부모가 TV 볼거면 따라 마라” 의사 아빠네 ‘거실 공부’ 비결 유료 전용

    방 말고 거실에서 공부시켜 볼까? 그러면 더 잘할까? 새 학기, 양육자는 아이에게 최적의 공부 환경을 찾아주기 위해 고심한다. 정석은 따로 공부방을 내어주고 책상도 장만하는 것. 하지만 요즘엔 정반대로 ‘거실 공부’가 떠오르고 있다. 아이의 책상을 거실로 꺼내거나 거실에 커다란 테이블을 놓고 가족이 함께 공부하는 것이다. 거실 공부가 자녀의 학습 습관, 가족 간 유대감 형성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거실 공부법을 자녀 4명을 모두 도쿄대 의대에 보낸 일본 엄마의 비결로 소개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문제는 거실 공부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거실에 가족이 모여 있으면 시끄러워 오히려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게 대표적인 이유다. TV, 깔끔한 인테리어처럼 포기해야 할 것도 많고, 다른 가족이나 아이의 저항에 부닥치기도 한다. 시작도 못하고 주저하거나, 중도 포기하는 이가 많은 배경이다.    헬로페어런츠(hello!Parents)가 거실 공부에 대한 궁금증과 의구심을 풀어본다. 짧게는 1년여, 길게는 10년 이상 두 자녀 혹은 세 자녀와 거실 공부를 실천한 양육자 6명의 거실 생활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들이 겪은 시행착오와 노하우를 들어보고 전문가 의견도 참조했다. 쉽지 않은 거실 공부, 어떻게 하면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성공하는 거실 공부의 비결과 효과를 정리해 봤다.    ■ 목차 「 Part 1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를 만든 비결 Part 2 공부보다 신경써야 할 거실의 온기 Part 3 거실 공부 훼방꾼에 대처하는 법  」  박정민 디자이너  ━  Part 1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를 만드는 비결   첫째가 중학교 1학년 때 자기 방에서 공부하고 싶다더라고요. 그러라고 했죠. 그런데 얼마 못 가 다시 거실로 나왔어요. 방에선 자꾸 딴짓을 하게 돼서 공부가 안 된다는 거예요. 두 아들(19세, 17세)과 10년 넘게 거실 공부를 해 온 김석씨가 들려준 일화다. 아이가 공부를 더 잘하기 위해 제 발로 거실로 나왔다는 얘기다. “거실에서 공부가 더 잘 된다”는 건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 6명 모두가 동의하는 지점이었다. ‘거실은 산만해 학습 장소로는 적합하지 않다. 자기 방에서 혼자 공부해야 집중해서 잘할 수 있다’는 통념과는 배치되는 얘기다. 양육자들은 나아가 “아이가 알아서 공부한다”고도 했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일차적으로 거실에서는 아이가 공부하는 모습이 잘 보이기 때문이다. 개방된 거실에서는 함께 있는 부모나 형제·자매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방과 비교하면 더 집중해 공부하게 되는 환경인 셈이다. 초등 교사인 이진혁씨도 그런 이유로 두 아들(14세,13세) 공부 장소로 거실을 선택했다. 그는 “초등학생 아이는 주의집중력, 자기 절제력이 부족하고 챙겨줄 것도 많기 때문에 부모가 곁에서 있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초등 5학년 때까지 공부하는 학원에는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거실에서 공부 습관을 잡아주는 게 중요했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거실에서 딴짓을 못 한다고 해서 아이가 알아서 공부하는 건 아니다. 아이를 책상에 앉히는 일부터 실랑이를 해야 하고, 책상 앞에 앉은 아이가 몸을 배배 꼬며 시간만 끌면 속이 끓는다. 거실 공부 실천자들은 무엇이 달랐던 걸까?   첫째, 매일 반복하는 일종의 관례, 소위 ‘루틴(routine)’이 존재했다. 양육자 6인에게는 가족 모두 매일 저녁을 먹고 1~2시간씩 공부하거나 책 읽는 일상을 보낸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김연수씨네가 대표적이다. 그의 세 자녀는 초등학생 당시 매일 저녁 비슷한 시간에 거실 좌식 테이블이나 주방 식탁에서 각자 숙제나 공부를 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매일 밥을 먹듯 공부도 당연히 하는 걸로 여겼다”고 했다. 공부를 당연히 해야 하는 일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김씨는 “공부하는 언니와 오빠의 모습을 보고 커서인지, 막내도 따로 시키지 않아도 학교 다녀오면 책을 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매일 자기가 계획한 공부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맛보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충분한 자유와 휴식을 누린 게 스스로 공부하게 만든 비결”이라고 했다.   둘째, 아이가 혼자 공부하며 외로움이나 억울함을 느낄 여지가 없었다. 초등 교사인 하유정씨는 “엄마, 아빠는 TV를 보는데 아이 혼자 공부하려면 하기 싫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그가 13세, 11세 두 딸이 공부를 마칠 때까지 함께 공부하며 자리를 지키는 것도 그래서다. 하씨는 독서실, 스터디카페를 예로 들며 거실 공부의 효과를 설명했다. “다 같이 집중하는 분위기에 덩달아 공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비결은 자유시간이다. 두 딸(14세, 12세)과 10년째 거실 공부 중인 정지영씨는 “아이들이 거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쉴 때는 하고 싶은 걸 하도록 두고 간섭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유 시간은 아이에게 학습 동기를 부여했다. 연년생 딸(14세), 아들(13세)과 2년 전부터 거실 공부 중인 이혜원씨는 “아이들도 하고 싶은 걸 하려면 공부를 빨리 마치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다 보니 공부할 때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활용하는 능력도 생겼다”고도 했다.    가족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하유정씨 두 딸은 ‘공부할 때 휴대전화를 보지 않는다’ ‘할 말이 있을 때는 귓속말을 한다’는 규칙을 스스로 만들었다. 김석씨 역시 자녀들과 컴퓨터 게임 시간, 지켜야 할 약속 등을 계약서 형태로 적어놓고 거실 벽에 붙여 놓았다. 규칙은 아이들뿐 아니라 가족 모두 지켜야 한다.   EBS 영어 강사 정승익은 자신의 저서『어머니, 사교육을 줄이셔야 합니다』에서 “공부에 필요한 환경, 동기, 능력이라는 세 요소를 고려하면 거실 공부는 언제나 모법 답안”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다 같이 공부하고 책을 읽는다면 자녀가 공부하기에 적합한 데다, 동기를 이끌어내기도 쉽다는 것이다. 이런 환경이면 “공부하는 능력은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김연수씨의 남편과 세 아이들이 어렸을 적 거실에 모여 보드 게임을 하고 있다. 사진 김연수  ━  Part 2 공부보다 신경써야 할 거실의 온기   거실 공부가 아이의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데 이견은 없었다. 하지만 공부보다 먼저 신경써야 할 건 아이와의 관계, 그리고 소통이었다. 실제로 6명의 양육자 모두 “아이 학습만 보고 거실 공부를 시작한 건 아니다”고 말했다. “가족끼리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거실 공부의 본래 취지”라는 것이다. 자녀가 크면서 공부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가족이 함께 거실에서 공부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아이는 공부를 알아서 하게 됐다는 얘기다.   여섯 가정 모두 하루아침에 갑자기 거실 공부를 시작한 게 아니었다. 정지영씨는 “딸들이 서너 살도 안 됐을 때부터 거실에 작은 탁자를 놓고 그림 그리기, 요리, 만들기를 하며 놀았다”고 말했다. 책을 읽어주거나 교구 활동을 할 때도 놀이처럼 재미있게 했다. 정씨는 “거실 공부를 할 때 ‘감시당하는 것 같냐’고 딸들에게 물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해서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핵심은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라고 김석씨는 강조했다. 거실은 말 없이 공부만 하는 삭막한 곳이 아니라, 대화를 주고 받고 관계를 맺는 곳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씨는 “거실에서 공부하다 물 심부름도 하고, 누군가 책상에 다리를 부딪치면 걱정하고 웃기도 하면서 정이 든다”고 했다. 그는 두 아들과 어울리기 위해 컴퓨터 게임도 거실에서 함께 한다.  김석씨 거실에는 큰 공부 책상 두 개가 나란히 붙어 있다. 김석씨 가족은 거실에서 함께 공부하고 책을 읽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사진 김석 다만 “자녀의 공부와 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양육자들은 당부했다. 김석씨는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자녀들의 최소한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 한다”고 했고, 이혜원씨는 “아이에 대한 과한 기대는 내려놓아야 한다”고 했다. 김연수씨는 “엄마가 감독관이 되거나 잔소리를 하면 아이는 결국 방에 들어가고 만다는 걸 잊지 말라”고 말했다.“특히 형제·자매가 같이 거실에서 공부하는 상황이라면 절대 비교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거실 공부의 진가는 아이 사춘기 때 빛을 발한다. 아이와의 관계가 대면대면해지는 시기에 거실 공부 덕에 관계가 소원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혜원씨는 “2년 전 거실 공부를 처음 제안한 것도 남편이었고, 가장 만족스러워하는 사람도 남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학생 된 딸이 방에 들어가면 나오질 않아 아쉬워하던 남편은 딸 책상 옆에 자기 책상을 두고 공부한다. 부녀 사이가 가까워진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이씨 자신도 “거실에서 아이의 얘기를 듣다 보니 관심사도 보이고 말도 잘 통하게 됐다”고 했다.    이진혁씨는 “거실에 함께 머무른 시간 덕에 아이를 이해하고 기다릴 수 있었다”면서 지난해 첫째가 슬럼프에 빠져 방황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아이가 만약 방에 박혀 나오지 않았다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에 아이를 몰아세웠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평소 거실에서 대화를 많이 나누다 보니 아이의 생각이나 고민을 알 수 있었고, 적절한 조언을 하면서 아이를 기다려 줄 수 있었다. 그의 첫째는 몇 달 만에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수년째 거실 공부를 실천한 양육자들에겐 자녀 연령에 따라 거실 공부 형태를 바꾼 공통점이 있었다. 자녀가 영유아기로 어릴 때는 낮은 좌식 책상에서 종이접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었다. 아이가 유치원생, 초등학생 저학년이 되면 테이블에 마주 보고 앉아 책을 읽고 공부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학습시간과 공부량이 많아지는 초등 고학년 시기 이후에는 개별 공부 책상을 벽에 붙여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  Part 3 거실 공부 훼방꾼에 대처하는 법   거실 공부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다. TV·컴퓨터·스마트폰 같은 미디어와 형제·자매, 소음 등이 대표적이다. 거실 공부 양육자들은 이런 난관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혜원씨는 거실 공부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거실에 있던 TV를 안방으로 옮겼다. 공부 공간에 TV를 두지 않는 건 6명의 양육자들 모두 지킨 원칙이다. 다만 컴퓨터나 패드는 거실에 두고 사용했다.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며 방에 들어가 게임을 하거나 유해한 콘텐트를 접할 기회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석씨는 “이미 아이 방에 컴퓨터가 있다면, 아이와 협상을 시도하라”고 조언했다. 거실로 컴퓨터를 꺼내면 더 좋은 컴퓨터로 교체하는 등의 조건을 걸면서 말이다.    공부 중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한 것도 양육자들의 공통점이다. 이진혁씨 자녀들은 학원 끝나고 집에 오면 거실장 안에 스마트폰을 둔다. 이씨는 “50분 정도 공부하고 10분 정도 쉬는 시간에 잠깐 카톡 대화를 확인하는 정도만 허락한다”고 말했다.     거실 공부의 또 다른 적은 소음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생활하다 자연스레 소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백색 소음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지만, 정지영씨는 “거실 공부 시간에는 온 가족이 최대한 조용히 하는 게 기본”이라고 했다. 이진혁씨도 “설거지, 청소, 빨래 같은 집안일은 미리 끝내 둔다”고 말했다.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하는 시험 기간에는 거실 공부를 고집하지 않았다. 대부분 자녀 방에도 책상이 따로 있기 때문에 각자 방에 들어가 공부하기도 했다. 스터디카페나 독서실 등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형제·자매는 거실 공부의 난이도를 높이는 존재다. 한 아이가 열중해서 공부하고 있는데 다른 아이가 시끄럽게 굴거나 잡담하면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6명의 양육자들은 자리 배치를 조정하는 방법으로 대처했다. 이진혁씨는 “서로가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큰 테이블에 앉을 때는 이씨가 아이 둘 사이에 앉았고, 좀 더 커서는 아이들 책상을 각각 다른 거실 벽면에 붙여서 서로 등지게 했다. 김석씨는 “한 아이가 컴퓨터를 하면 다른 아이가 방해받지 않도록 큰 파티션을 친다”고 했다.    하지만 시야를 차단하고 거리를 두는 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 거실 공부의 고수들은 어떻게 했을까? 하유정씨는 “자기 할 일이 먼저 끝났더라도 다른 사람이 공부 중이면 떠들거나 자극하지 말고, 조용히 쉬라고 수없이 가르쳤다”고 했다. 김연수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다른 가족을 배척하고 피하는 것보다는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것, 자기 행동을 절제하도록 가르치는 게 교육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고 했다.    형제·자매가 훼방꾼이 아니라 조력자라는 의견도 있었다. 정지영씨는 “첫째는 동생이 물어본 걸 설명해 주면서 자기가 뭘 알고 모르는지 파악할 수 있고, 동생도 첫째를 보며 어깨 너머 배우는 게 많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거나 나이 차이가 많다면 거실 공부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양육자들의 경우에도 김연수씨를 제외하면 5명 모두 자녀들이 한두 살 터울이었다.   정지영씨의 두 딸이 거실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다. 정씨는 거실 공부법이 자매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진 정지영 6명의 양육자들은 “거실 공부의 최대 장애물은 엄마·아빠 자신”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유정씨는 “거실 공부가 성공하려면 퇴근한 엄마, 아빠가 거실 소파에서 TV를 보며 늘어지고 싶은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혁씨도 “만약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고, 잔소리를 참지 못할 것 같다면 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했다.   그럼에도 “거실 공부 덕에 부모 역시 성장한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김석씨는 “아이가 공부할 때 책을 읽다 보니 다독가가 됐다”고 말했다. 이혜원씨는 “남편이 평소 공부를 즐기지 않았는데 아이들과 같이 거실 공부를 하더니 달라졌다”고 했다. 공부해서 업무 관련 자격증을 따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거실 공부가 능사는 아니다. 양육자들도 각자의 경험담과 노하우를 꺼내 놓았지만, 결국 “실제로 부닥치며 각 가정에 맞는 공부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의 공부방을 없애라』를 쓴 일본의 건축가 모로쿠즈 마사야도 “자녀를 현명한 아이로 키우는 방법을 논할 때는 개인 공부방을 만들어 줘야 한다거나 거실이 아니면 안 된다는 단순한 논리로 이야기를 끝낼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강조한다.    아이가 공부하는 공간을 포함해 생활습관, 가족들과의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 등 다각도의 관점에서 공부 환경을 어떻게 정비할지 고민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공부 공간이 어떤 생각과 발상과 습관을 만들어 줄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관련기사 성공한 사람들 능력의 비밀, 매일 밤 9시에 자면 됩니다 박물관 한 번만 가지 마세요…‘공간 전문가’ 엄마의 팁 책 많이 읽어주면 좋다고? ‘세 딸 명문대’ 엄마는 달랐다

    2024.03.13 15:14

  • 벌레 백과사전 줄줄 읊은 6살 “영재? 이 말 못하면 병원 가라”

    벌레 백과사전 줄줄 읊은 6살 “영재? 이 말 못하면 병원 가라” 유료 전용

    코로나19 때문이에요. 단순히 마스크 때문에 입 모양을 못 봐서가 아닙니다. 다양한 활동이 차단되고, 그 자리를 미디어가 채운 게 더 큰 문제죠.   “말 늦은 아이가 늘어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장재진 솔언어청각연구소장은 이렇게 답했다. 최근 2년 사이 언어 장애를 겪는 아이들이 급증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 언어 장애 학생 수는 2021년 1만9102명에서 지난해 2만7021명으로 41.5% 늘었다. 장 소장은 코로나19와 미디어 노출 증가를 원인으로 꼽았다. 박정민 디자이너 장 소장은 2003년까지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해 태어난 첫째 아이가 청각장애 진단을 받으면서 그의 인생도 바뀌었다. 일하느라 친정집에 맡겼던 아이는 잘 울지도, 보채지도 않는 순한 아이였다. 프라이팬이 떨어져도 반응이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긴 그의 어머니가 검사를 권했고, 난청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선 “옆에서 비행기가 떠도 모른다”고 했다. 2018년 신생아 청각 선별 검사가 의무화되기 전의 일이다.   돌 무렵 인공와우(달팽이관) 수술을 했지만, 아이의 언어 발달은 또래보다 훨씬 뒤처졌다. 다른 아이들이 문장으로 말할 36개월 즈음, 그의 아들은 ‘오우아’(복숭아), ‘아아’(사과)도 겨우 말했다. 관련 책이나 논문을 찾아봤지만 평범한 엄마에겐 너무 어려웠다. 유명하다는 언어치료센터는 다 찾아다녔지만 “(치료하기) 쉽지 않다”는 얘기만 돌아왔다. 직접 언어치료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일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다 2011년 본격적으로 언어치료사 일을 시작했다. 『아이의 언어능력』 『엄마의 언어자극』 『초등아이 언어능력』 『하루 5분 언어 자극 놀이 120』 등 관련 책도 여럿 썼다. 말 늦은 아이는 어떻게 키워야 할까? 양육자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지난달 8일 그를 만나 물었다.   ■  「 Intro. 말 늦은 아이 증가한 이유 Part1. 언어 발달단계 파악하라 Part2. 자극은 조금 어렵게 줘라 Part3. 강요·지시는 금물이다 」   ━  📢언어 발달 단계를 파악하라   아이를 낳으면 모든 게 새롭고 두렵다. 발달의 정도를 체감할 수 있는 언어는 더 예민할 수밖에 없다. 우리 애는 단어 하나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데, 또래가 문장을 술술 말하는 걸 보면 조바심이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 소장은 “아이마다 속도가 다르다”며 “옆집 아이를 기준으로 삼지 말라”고 조언했다. 표준 발달 단계와 내 아이의 언어 수준만 파악하면 된다는 것이다.   발달 단계를 알아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아이가 단순히 말이 늦은 건지, 아니면 치료가 필요한 수준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아이의 언어 수준을 정확히 알아야 그에 맞는 자극을 줄 수 있고요. 아이들의 발달은 천차만별입니다. 생후 9개월에 첫 낱말을 말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12개월 지나서도 안 하는 아이도 있죠. 돌 지나서 첫 낱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언어 장애로 볼 수는 없어요. 보통 15개월까지는 지켜봐도 됩니다. 하지만 이런 걸 모르면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습니다.   단순히 말이 느린 것과 치료가 필요한 언어 장애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정상적인 발현 시기와 비교해 두 배 이상 지연되면 검사를 권해요. 생후 6개월에 옹알이, 12개월에 첫 단어 발화, 24개월 전에 두 단어 연결이 나타납니다. 만약 12개월이 됐는데도 옹알이를 안 하면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죠. 24개월인데 한 단어 말하기가 안 되고, 30개월에 두 단어 연결이 안 되면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보통 만 3세 전후를 언어 치료의 골든타임이라고 합니다.   만 3세요? 언어 관련 뇌가 가장 많이 발달하는 시기거든요. 뇌에서 언어를 담당하는 부분은 좌뇌의 베르니케 영역과 브로카 영역이에요. 베르니케 영역은 단어의 뜻과 이해를, 브로카 영역은 말하기 같은 표현을 담당하죠. 연구에 의하면 베르니케 영역의 시냅스 발달은 8~20개월에 최고조에 이릅니다. 브로카 영역은 15~24개월이고요. 이해 능력이 표현 능력보다 먼저 발달하는 거죠. 또 만 3세부터는 또래들과 어울리는 일이 늘잖아요. 이때 언어가 뒤처지면 소외될 수밖에 없어요. 사회성에 악영향을 끼치는 거죠. 하지만 말을 잘한다고 안심해선 안 됩니다.   왜죠? 언어를 배우는 목적은 의사소통입니다. 언어는 관계를 맺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이자, 학습의 기초예요. 말을 아무리 잘해도 의사소통이 안 되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상담했던 아이 중에 그런 경우가 있었어요. 6세 정도 된 아이였죠. 치료실에 들어와서는 무당벌레 인형을 집더니 “무당벌레는 육식성으로 주로 진딧물을 먹는다. 홍테무당벌레‧홍점박이무당벌레‧남생이무당벌레 등 90여 종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오디오 백과사전처럼 정확한 문장과 발음이었어요. 이 아이를 보면 보통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굉장히 똑똑한 아이 같은데요? 저도 처음에 신기했어요. 어휘력 검사를 했다면 자기 나이보다 2~3년은 높게 나왔을 거예요. ‘이런 애를 상담센터에 왜 데리고 왔나’ 싶었죠. 하지만 금방 이유를 알았어요. 백과사전 같은 내용을 줄줄 읊는 애가 “이름이 뭐야? 몇 살이야?”라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하더라고요. 말은 잘하는데, 의사소통은 안 되는 거죠.   이런 경우도 치료가 필요한가요? 문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습니다. 언어 장애는 다른 장애와 동반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자폐스펙트럼장애,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등도 언어 장애가 같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박정민 디자이너  ━  📢자극은 ‘아이 수준+1’만큼    생후 3년은 언어 발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다. 실제로 청각 장애를 가진 아이가 이 시기를 놓치면 이후에 인공와우(달팽이관) 이식 수술을 받는다 해도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긴 쉽지 않다고 한다. 소리는 들을 수 있어도 의미를 이해하긴 힘들기 때문이다. 장 소장은 “이 시기 양육자가 적절한 자극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절한 자극이 뭔가요? 언어 발달 단계상 6개월 정도 앞선 자극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쉽게 말하면 아이의 언어 수준에서 어절을 하나 추가하는 식이죠. ‘밥’이라고 말하는 아이한테는 ‘밥 먹을래?’ ‘밥 줄까?’처럼 두 어절, ‘어린이집 가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는 ‘오늘 어린이집 가요’ ‘엄마랑 어린이집 가요’ 같이 세 어절로 된 문장을 다시 들려주면 됩니다. 이때도 중요한 건 소통이에요. 언어 실력을 키운다고 양육자 혼자 쉬지 않고 말해선 안 된다는 겁니다.   아이가 말을 잘 못 할 때는 어쩔 수 없지 않나요? 갓난아기도 양육자의 말이나 행동에 반응합니다. 이런 반응을 무시한 채 한 방향으로 자극을 줘선 안 됩니다. 아이의 호기심과 흥미에 맞는 자극이어야 언어 발달에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양육자가 6개월 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어요. 아이가 갑자기 옹알이하면서 방안의 무언가를 가리킵니다. 이때 양육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을 계속 읽어줘야 할까요, 아이가 가리키는 게 뭔지 확인해야 할까요? 답은 후자입니다. 아이의 호기심과 관심을 충족시켜주는 자극이 더 적절한 자극이에요.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 자동차 관련 책을 읽어주고 있는데, 아이는 뽀로로에만 관심을 보여요. 이때는 뽀로로를 활용해 언어 자극을 주는 게 효과적입니다. 뽀로로 인형을 의자에 앉히거나 침대에 눕히면서 ‘앉다’ ‘눕다’라는 동사를 알려줄 수 있을 겁니다. 뽀로로 책을 읽으면서 순서대로 얘기를 배치해볼 수도 있고, 책 속 인물과 사물 이름을 찾아볼 수도 있어요. 뽀로로의 기분을 상상해 보며 대화를 나누거나, 뽀로로 노래를 부르면서 발음 연습도 할 수 있죠.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자동차를 활용하고요. 이외에도 양육자가 조금만 신경 쓰면 일상에서 자극을 줄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또 어떤 게 있을까요? 연령대별로 다양합니다. 말을 잘 못 하는 아이와 대화할 때는 지시대명사를 사용하지 않는 게 좋아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일상에서 이것‧그것‧저것 같은 말을 많이 쓰거든요. 아이가 손으로 인형을 가리키면 “이거 줄까?” 대신에 “토끼 인형 줄까?”처럼 명확한 단어를 쓰는 거죠. 여기에 ‘깡충깡충’ 같은 의성어‧의태어를 추가해 말하면 더 좋고요. 24개월 전후에는 ‘노래 이어 부르기’를 추천해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곰 세 마리’ 노래를 부르다가 중간에 멈추는 거죠. ‘곰 세 마리가 한집에 있어’까지 부른 뒤 ‘아빠 곰’ 부분은 아이가 이어서 부르게 유도하는 거예요. 36개월부터는 끝말잇기 같은 게임도 할 수 있어요. 한글을 읽기 시작할 무렵엔 길거리 간판을 읽어보는 것도 좋고요. 장재진 솔언어청각연구소장은 "언어자극은 아이의 수준보다 조금 어렵게 줘야 한다"며 "아이가 한 단어를 말하면 양육자는 두 단어, 아이가 두 단어로 말하면 양육자는 세 단어로 말하라"고 조언했다. 김성룡 기자  ━  📢말 늦은 아이, 강요는 금물이다   언어 자극을 줄 때도 주의할 게 있다. 아이가 잘 못 한다고 혼내거나, 강요‧지시를 해선 안 된다. 아이가 스스로 ‘잘못했다’고 느낄 수 있어서다. 양육자가 이런 태도를 보이면 아이는 더 위축돼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린다. 장 소장은 “사과를 ‘아과’라고 발음하는 아이에게 양육자가 ‘아과 아니지, 사과 해봐. 사과’라고 강요하는 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에게 정확한 발음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제대로 된 발음은 들려줘야죠. 하지만 그 방법이 ‘네가 틀렸다’는 식이어서는 안 됩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발음과 문장으로 말하는 아이가 있나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처음엔 부정확하게 발음하고, 틀리게 말하는 게 당연해요. 그때마다 양육자가 잘못된 부분을 지적한다면 아이가 말을 하고 싶을까요? 양육자가 영어를 배울 때를 생각해 보세요. 말할 때마다 발음을 지적하면 말하고 싶을까요? 이렇게 하다가 실제로 문제가 생긴 경우도 있었어요.   어떤 문제요? 상담한 아이 중에 다른 건 괜찮은데, 특정 단어 몇 개를 전혀 말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스크림은 ‘차갑고 달달한 거’, 사과는 ‘빨갛고, 동그란 거’ 이런 식으로 말했죠. 바지‧장난감‧동화책 이런 건 아무 문제 없이 말하는데요. 20분 정도 대화를 나누면서 시옷(ㅅ)이 들어가는 단어 말하기를 회피한다는 걸 알아차렸죠.   왜 그런 건가요? 시옷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서 말할 때마다 엄마한테 혼났다고 하더군요. ‘아이으크림’이라고 하면 엄마가 “아이으크림이 뭐야? 따라 해봐.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이런 식으로 발음이 제대로 될 때까지 시킨 거죠. 아이는 시옷이 들어간 단어를 말할 때마다 혼나니까 아예 그 단어를 피한 거고요. 음소도 발달 단계가 있습니다. 피읖(ㅍ), 미음(ㅁ), 이응(ㅇ)이 가장 먼저 발달하고, 시옷(ㅅ)이 가장 나중에 발달해요. 또 단어를 말할 때는 정확하게 발음했어도 문장 안에 들어가면 정확도가 떨어지기도 하고요. 능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수정‧지시하는 게 아니면 어떤 식으로 알려줘야 하나요? 정확하게 들려주되, 이 과정이 자연스러워야 해요. 24개월 전후 아이가 “엄마, 아과 줘”라고 하면 “아~우리 OO이 사과 먹고 싶구나? 엄마가 사과 줄게” 하고 말하는 식으로요. 그럼 아이는 자연스럽게 ‘사과’라는 단어를 습득합니다. 굳이 ‘사과’라고 제대로 발음할 때까지 시킬 필요는 없어요. 만약 4~5세가 됐는데도 발음에 문제가 있다면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아요. 입술‧혀 같은 발음기관이나 청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거든요.   주의해야 할 건 또 뭐가 있을까요? 질문만 많이 하는 것도 지양해야 합니다. 아이가 취조당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어떤 양육자들은 책을 보면서 “이건 뭐야?” “저건 뭐야?” 하고 질문만 계속해요. 그럼 안 됩니다. 대화해야 해요. 또 아이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이가 말이 트인 뒤에는 더욱 그렇죠. 아이가 식탁에서 밥 먹다가 포크를 떨어뜨렸을 때, 바로 주워주지 말라는 거예요. 조금 기다려 주세요. 아이가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거죠. 어떤 양육자는 아이가 원하는 걸 0.1초 만에 해줍니다. 그러면 아이는 말할 필요를 못 느껴요. 언어 발달도 더딜 수밖에 없고요.   청각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의 아들은 올해 대학교에 입학했다. 장 소장의 언어치료사 경력도 벌써 13년 차다. 그의 노력 덕분에 만 3세 때 24개월 수준의 언어도 구사할 줄 몰랐던 아이는 별문제 없이 초‧중‧고교를 마쳤다. 그가 “언어 발달에 있어서 양육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 어떤 교구나 장난감도 양육자보다 좋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0~7세 때 언어 능력은 성인이 될 때까지 아이의 성장‧학습‧사회성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칩니다. 언어에 있어서 양육자만큼 좋은 선생님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장재진 소장은 "말이 늦은 아이가 발음이 나쁘다고 혼내거나 다그쳐서는 안 된다"며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언어를 익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관련기사 ADHD 아니라 자폐였다? 자폐아 85% 구별한 '인형실험' 이것 시키자 1등급 됐다, SKY도 보낸 ADHD 치료법 9살에게 카드 준다, 특수교사 아빠가 ‘느린 아이’ 키우는 법

    2024.03.10 15:07

  • “집 안 팔고 국어 키울 수 있다”…‘1년 대기’ 논술화랑이 푼 비밀 ⑦

    “집 안 팔고 국어 키울 수 있다”…‘1년 대기’ 논술화랑이 푼 비밀 ⑦ 유료 전용

    강남 대치동에서 시작한 국어 학원 ‘논술화랑’은 초등 저학년 시장을 개척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실제로 국어 학원은 초등학교 고학년은 돼야 다닌다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논술화랑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들어가려면 1년 이상 대기해야 한다. 논술화랑이 초등학교 저학년을 사교육 시장으로 불러낸 핵심 키워드는 바로 독서다. 박정민 디자이너 한 예중 입시에서 정물화 4점을 놓고 그중 하나를 그리게 했대요. ‘이젤과 배경은 제외하고 그릴 것’이란 조건이 달렸고요. 요구대로 그린 아이가 몇 명이었을까요? 거의 없었다고 해요. 이젤을 모르는 아이, 제외를 모르는 아이, 난리였대요.   “현장에서 느끼는 아이들의 문해력 수준이 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논술화랑을 운영하는 김수미 독서문화연구원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일상에서 쓰는 어렵지 않은 단어조차 제대로 모르는 아이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책을 읽을 시간은 물론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다”며 “이런 상황이 스마트폰 보급과 맞물리면서 문해력 저하는 심각한 수준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이런 미래를 예측하고 독서 교육에 뛰어든 건 아니다. 사실 논술화랑은 2009년 무렵 ‘내신 국어’로 이름을 날린 학원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독서야말로 논술화랑이 가장 잘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교육이었다”고 말했다. 2011년 인기 절정의 내신 관련 수업을 폐지하고 독서에 집중하기로 한 이유다. 이후 본격적으로 초등학교 저학년과 미취학 연령을 공략했다. 그 뒤 10년, 논술화랑은 대치동에서 초등 저학년 학부모가 가장 선호하는 국어 학원 중 하나가 됐다.   김 대표는 “독서는 모든 학습의 근간인 동시에 인생 전체에 걸쳐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강조했다. 논술화랑에 들어가려면 1년 이상 대기해야 하는 걸 보면, 그의 생각에 동의하는 학부모가 적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만 돼도 공부에 밀려 독서는 뒷전이 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의 문해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달 6일 그를 만나 직접 물었다.   ■  「 Intro. 이젤과 제외를 모르는 아이들 Part1. 국어보다 독서가 중요한 이유 Part2. 깊이 읽으려면 써야 한다 Part3. 읽고 쓰는 아이로 기르는 법 」   ━  Part1. 국어보다 독서가 중요한 이유    논술화랑은 대치동에서 초등학교 고학년 대상 독서 수업을 하던 곳이었다. 그러던 중 2009년 김 대표가 가르치던 아이들이 대원국제중에 다수 합격하면서 유명해졌다. 그 아이들은 입학 후 첫 중간고사를 치르고 다시 김 대표를 찾아왔다. 40점짜리 국어 시험지를 들고 말이다. 계획에 없던 내신 국어 수업이 시작됐고, 만 3년 만에 논술화랑은 ‘내신 국어’로 자리 잡았다. 돈도 잘 벌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그 수업을 폐지하기로 한다. 2011년 8월 일이다.   잘나가던 내신 국어 수업을 왜 폐지한 건가요? 둘 다 잘할 순 없으니까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교육은 내신 국어가 아니라 독서였어요. 독서를 통해 키운 문해력은 학습의 근간이 되기도 하지만, 인생 전반에 걸쳐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인생의 어려운 고비마다 책에서 답을 찾았던 사람으로서 독서 교육에 역량을 집중하고 싶었어요. 회사 이름을 ‘독서문화연구원’이라고 지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하지만 대치동에서 독서는 초등 고학년만 돼도 뒷전으로 밀립니다. 그런 시장에서 독서로 의미 있는 규모의 사업을 할 수 있다고 봤나요? 대입에서 논술 전형이 축소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박근혜 정권 때 일이었죠. 그 후 시장이 작아진 건 사실이에요. 독서와 논술은 주요 과목이 아니라 예체능 같은 과목이 됐죠. 그때 주목한 게 바로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어요. 다른 학원들이 내신 국어로 방향을 틀 때 논술화랑은 그렇게 하지 않았죠. 이 시장에서 잘 버티고 있으면, 다시 독서와 논술이 중요해지는 때가 올 거라고 믿었어요. 그때 기회를 잡자고요.   처음엔 등록하는 아이들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 교재를 10권씩 인쇄해 절반은 버리면서 4년을 버텼더니, 입학을 위해 대기하는 아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는 “스마트폰 보급으로 문해력 저하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 데다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영어 학원)이 일반화되면서 초등학교 저학년 중심으로 독서 수요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저학년을 가르치는 건 고학년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를 것 같은데요. 논술화랑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대치동에서 가장 큰 학습 트렌드는 단연 선행 학습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선행 학습에 부정적입니다. 독서에서 선행 학습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의미가 없어요. 독서는 영어처럼 언어를 습득하는 공부가 아닙니다. 이해하고 사고하는 힘, 문해력을 키우는 게 핵심이죠. 모든 능력이 그렇지만, 문해력은 직선으로 성장하지 않아요. 계단식으로 성장하죠. 특정한 시기에 일정 기간 머물러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어요. 특히 7, 8세 무렵 아이들이 문자와 친해지고 이야기 속에서 정보를 파악하고, 능숙하게 읽는 데엔 넉넉잡고 2년이 걸립니다. 그래서 저희는 서두르지 않아요.   학부모 사이에서 ‘논술화랑 선정 도서는 어렵지 않다’ ‘아이들이 책을 좋아하게 된다’는 평가가 나온 건 그래선가요? 책을 읽는 행위는 절대 쉽지 않아요. 인간의 뇌는 신호에 반응하는 반응형 집중력이 높은 쪽으로 진화했거든요. 그래야 맹수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니까요. 자력으로 뭔가에 몰입하는 초점성 집중력은 취약한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독서는 바로 그 초점성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행위예요. 그래서 어릴수록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책을 읽는 게 중요합니다. 그렇게 일정 기간 읽어야 스스로 책을 집어 드는 단계에 이를 수 있어요. 김수미 독서문화연구원 대표는 "독서를 통해 키운 문해력은 학습의 근간이자 인생 전반에 걸쳐 강력한 무기"라고 말했다. '내신 국어'로 한창 이름을 날리던 시기, 관련 수업을 폐지하고 독서에 집중하기로 결정한 것도 그래서다. 우상조 기자  ━  Part2. 깊이 읽으려면 써야 한다   논술화랑은 초등학교 저학년이 주로 다니지만 아이들에게 원고지에 직접 글을 쓰게 한다. 쓰기를 숙제로 내주는 학원도 많지만, 논술화랑에선 수업 시간에 소화하는 것도 특징이다. 쓰기를 그만큼 중요한 활동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읽기만큼 쓰기가 중요하다”며 “써야 비로소 생각하고, 보다 깊이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쓰기 활동을 왜 그렇게까지 강조하나요? 책을 읽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얻고 싶은 건 결국 이해하고 사고하는 힘이에요.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끄집어내서 보여주는 방법이 바로 쓰기입니다. 다들 아이가 깊이 사고하길 원할 겁니다. 아이들의 생각은 짧고 얕을 수밖에 없어요. 써야 내 생각을 볼 수 있고, 또 깊이 사고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쓰기를 중요시했나요? 가르치는 것에서 손을 놓고 경영에 집중한 지 10년이 넘었는데요. 제가 직접 가르친 아이들은 매시간 2000자씩 쓰게 했습니다. 저희가 국제중 입시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이유도 쓰기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당시 제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어지간한 강도의 수업도 거뜬히 버텼어요. 앉아서 글을 쓰며 완전히 몰입해 본 경험 덕분이죠.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완성도 높은 글을 쓰기란 쉽지 않습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글도 많고요. 주제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글을 쓰는 건 초등학교 고학년이 돼야 가능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생각을 사진처럼 찍는 글을 씁니다. 어른의 시선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글처럼 보이죠. 하지만 머릿속에 생겼다 사라지는 생각을 붙잡아서 눈에 보이는 글로 옮겼다는 사실 자체를 칭찬해야 합니다.     그럼 논술화랑에선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의 글은 첨삭하지 않나요? 그렇진 않아요. 자체 첨삭 센터를 따로 운영할 정도로 신경을 씁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릴수록 첨삭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 가치를 두죠. 초등학교 고학년은 돼야 첨삭이 효과가 있습니다. 아이가 자기 글을 퇴고하는 것도 이 시기에 비로소 의미가 있고요.   읽기도 어렵지만, 쓰는 건 더 어렵습니다. 어른도 쓰는 게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더 그렇지 않나요? 왜 쓰기 싫어할까요? 못한다고 생각하고, 창피해서 그래요. 잘한다고 생각하면 좋아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가 글을 쓰면 평가하기보다 칭찬해야 해요. 그렇게 쓰다 보면 결국 잘 씁니다. 김수미 대표는 "깊이 읽고 사고하려면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술화랑에서 매 수업 아이들에게 시간을 따로 주고 직접 원고지에 글을 쓰게 하는 이유다. 우상조 기자  ━  Part3. 읽고 쓰는 아이로 기르는 법   양육자라면 누구나 아이가 책을 좋아하길, 많이 읽길 바란다. 하지만 그게 생각처럼 쉽지 않다. 세상엔 책보다 재미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번 집어 들면 한 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드는 스마트폰을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볼 것이 넘쳐나는 시대, 읽는 아이, 쓰는 아이로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대표는 “독서 자체를 즐기게 만들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시간을 들여서 읽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책을 좋아하던 아이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책에서 멀어지는 것 같아요. 제 경험상 초등학교 4학년까지가 마지노선이에요. 이전엔 몸으로 사고하거든요. 이때부터 사고를 통해 사고하죠. 그래서 이 시기에 독서 습관이 잡힌 아이들은 정말 빠르게 사고력이 성장해요. 반면에 그렇지 못하면 격차가 더 벌어지고요.   초등학교 4학년 전에 독서 습관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즐거워야 해요. 그럼 잔소리를 안 해도 읽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건 초점성 집중력을 써야 하잖아요. 자연스럽게 되는 게 아니란 얘깁니다. 시간을 들여서 공들여 읽는 훈련을 해야 해요. 그러려면 재미있는 책을 쥐여 줘야겠죠.   이미 그 시기가 지났다면 어떻게 하죠?  내 아이의 수준에 맞는 책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고학년이라곤 하지만 아직 초등학생이잖아요. 늦은 때란 없습니다.     재미있는 책을 쥐여 주고 읽으라고 시간을 줘도, 잘 안 읽는 아이도 있어요. 모든 교육이 그렇지만 문해력은 특히 가르치기보다 배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중요합니다. 활자에 집중하는 힘을 길러주고 싶다면 소리 내서 읽게 하세요. 좋아하지 않는 건 잘하지 못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요. 그럴수록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합니다. 엄마의 칭찬만큼 강한 동기부여는 없어요.     그렇다고 마냥 재미있고 쉬운 책만 읽을 순 없잖아요. 읽는 책의 난도를 높이고 싶을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이가 양말을 처음 혼자 신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처음엔 못해요. 그럼 옆에서 살짝 도와주죠. 발을 넣을 수 있게 모양도 잡아주고, 양말 끝을 끌어당겨도 주면서요. 그렇게 두세 번만 하면 스스로 신습니다. 책의 난도를 높이고 싶을 때도 그렇게 하세요. 아이가 좋아하는 주제와 관련된 책을 권하거나 같이 읽는 식으로요. 김수미 대표는 "문해력을 기르려면 시간을 두고 아이와 교사, 양육자가 함께 공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교사들에게 이 점을 강조하며, 양육자와의 소통에 시간을 쓰도록 요구한다. 우상조 기자 김수미 대표는 “문해력은 단시간에 승부를 낼 수 있는 역량이 아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학원에 있는 2시간만으로 좋아질 수 없다”고도 했다. 학원에 아무리 오래 다녀도 가정에서 습관을 잡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와 강사, 양육자가 함께 뛰느냐 아니냐에서 성패가 갈린다”고 강조했다.   ‘국어는 집 팔아도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어요. 고등학생 때 끌어올리려고 하면 쉽지 않죠. 집에서 어려서부터 시작하면 집을 팔지 않아도 할 수 있습니다.   ■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 「 ①“초등 학원도 대입이 좌우” 국‧영‧수 시장 들여다보니(2월26일 발행) ②“사고력 찍고 황소 간다” 수학학원 대해부(2월27일 발행) ③“어렵게 공부해야 잘한다” 이정헌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2월29일 발행) ④“수능 영어, 초등학교 때 끝낸다?” 영어학원 대해부(3월4일 발행) ⑤“사고력 좋아야 영어 잘한다” 김용 PEAI어학원 부원장 인터뷰(3월5일 발행) ⑥“다독 잡고 정독으로” 국어학원 대해부(3월7일 발행) ⑦“읽기? 쓰기가 문해력 핵심” 김수미 논술화랑 대표 인터뷰(3월8일 발행)  」 관련기사 이걸로 범죄자 수 알 수 있다…미국서 초3이 하는 테스트 “편수냄비를 아시나요?” 일타강사, 한자 교육에 꽂힌 이유 “문해력 키우려면 학원 끊어!” 12년 대치동 논술강사 일침 ③ 강의 30%도 안하고 “글 써라”…서울대 교수의 이상한 수업 ④ 8세까지가 문해력 골든타임…“냉장고서 단어카드 떼세요” ②

    2024.03.07 14:38

  • “국어는 집 팔아도 안된다” 대치동에 이런 말 도는 이유 ⑥

    “국어는 집 팔아도 안된다” 대치동에 이런 말 도는 이유 ⑥ 유료 전용

    국어 성적은 강남 집 팔아도 안 올라요   “국어는 어떻게 공부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무리 노력해도 국어 성적을 올리기 쉽지 않은 상황에 대한 푸념이 섞인 말이다. 대치동을 중심으로 초등 사교육 시장을 취재하며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만난 12명의 학부모는 한결같이 “국어는 결코 만만한 과목이 아니다”고 했다.   사실 국어는 주요 과목 중 가장 뒷전으로 밀리던 과목이다. 모국어다 보니 특별히 따로 공부해야 한다는 인식이 크지 않았고, 공부법이나 로드맵도 딱히 없었다. 학원가에서도 수학·영어에 밀려 가장 먼저 관두는 과목으로 통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통계청의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2022)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사교육비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과목은 단연 국어(26.8%)였다. 수학(13.1%), 영어(9.7%) 사교육비 증가율을 크게 앞섰다. 박정민 디자이너 국어의 위상이 높아진 건 수능 때문이다. 수능에서 국어는 2018년 이후 매해 난도를 높이며 변별력을 가르는 과목이 됐다. 이미 어려울 만큼 어려운 수학과 절대평가 대상이 된 영어를 대신해 최상위권을 변별하는 과목으로 부상한 것이다. 대치동 학원가에선 국어를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현실을 가감 없이 담기 위해 양육자 이름은 모두 가명 처리하고, 학원가에서 통용되는 용어는 그대로 표기했다.   ■  「 Intro.지금 대치동은 불국어 전쟁 중 Part1. 독해력, 유아기부터 챙긴다 Part2. 성공하는 대입의 치트키, 독서 Part3. 초5, 내신이냐 논술이냐   」   ━  📚 Part1. 독해력, 유아기부터 챙긴다   대치동에서는 4세 무렵 한글을 떼고, 곧바로 국어 공부에 돌입한다. 핵심은 독해로, 처음엔 정확하게 읽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동원되는 건 학습지.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오는 방문학습지나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독해 문제집을 푼다. 『완자 공부력 독해 시작하기』 『똑똑 유아 독해』 『초능력 유아 독해』 『하루한장 독해 시리즈』가 빅4로 손꼽힌다. 짧은 지문을 읽고 괄호 채우기, 선 긋기, 스티커 붙이기 같은 문제를 풀며 제대로 읽었는지 확인하는 식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학원을 찾는다. 기파랑 문해원·MSC논술·C&A논술·지니국어논술학원·천개의 고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 학원들은 모두 정독(精讀)을 지향한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지시어가 가리키는 개념어를 찾고, 글의 구조를 파악하는 걸 중요하게 여긴다. 요약하기와 주제 찾기도 학습 포인트다. 학원마다 학습법이 약간씩 다르지만, 독해력 향상을 목표로 한다는 점만큼은 같다. 초6 딸을 기파랑 문해원에 보내고 있는 이민영(40·서초구 서초동)씨는 “책을 분석해 읽고, 쓰고, 확인 문제까지 풀어야 해 매일 한 시간은 공부한다”며 “처음엔 힘들어했는데 점차 글을 읽는 속도도 빨라지고 주제도 잘 찾는다”고 말했다.  수능 비문학 영역이 어려워지면서 독해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유아를 대상으로한 독해력 문제집도 호황을 맞았다. 박정민 디자이너 독해의 정점에는 ‘비문학’이 있다. 수능 국어는 공통 과목인 문학과 독서(비문학), 선택 과목인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네 영역으로 나뉜다. 이 중 난이도를 좌우하는 건 비문학이다. 실제 2022학년도 수능에서 정답률이 가장 낮은 5개 문항 모두 비문학이었다. 비문학으로 최상위권이 변별되는 셈이다.    비문학은 지문이 낯설고 어렵다. 게다가 인문·사회에서 과학이나 예술에 이르기까지 출제 범위가 넓다 보니 선행 학습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낯선 개념이나 전문 지식이 포함돼 있어 읽는 것 자체도 까다롭다. 문제는 이렇게 어려운 글을 몇 분 안에 읽고 문제까지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국어 1등급 고득점자의 비밀』의 저자이자 교사인 김지영씨는 “수능 비문학 지문은 학생들에게 외계어나 다름없다”며 “어려운 글을 읽어내려면 독해력이 필수”라고 말했다. 초등학생 때 일찌감치 독해 훈련을 시작하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판 시장에선 초등학생을 위한 비문학 독해 문제집이 인기다. 초등 교재를 개발하는 비상교육 안태경 연구원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독해 문제집을 푸는 게 트렌드”라며 “스마트폰 등의 영향으로 읽기 실력은 떨어지는데 수능은 어려워지다 보니 일찌감치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능 비문학의 난도가 어려워지면서 유아동부터 초등까지 독해력 문제집 시장도 넓어졌다. 민경원 기자  ━  📚 Part2. 성공하는 대입의 치트키, 독서   독해와 함께 국어 사교육 시장을 지배하는 키워드는 바로 독서다. “아이를 낳자마자 (독서 학원에) 입학 대기를 걸어야 한다”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다. 다만 조건이 하나 붙는다. 학습보다 재미가 우선이라는 점이다. 초3 아들을 논술화랑에 보내는 김재희(40·강남구 대치동)씨는 “학년이 높아질수록 동영상·게임 같은 놀거리가 많아져 책과 멀어지는 게 안타까웠다”며 “책을 재미있게 읽으면 커서도 꾸준히 읽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학원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초등 저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논술화랑·문예원·지혜의숲 등이 인기가 높았다. 1988년 대치동에서 시작한 문예원은 이 시장 터줏대감으로 불린다. 4세부터 다닐 수 있는데, 연령별 발달 수준을 고려해 선정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논술화랑과 지혜의숲은 역사와 예술 등 다양한 주제를 폭넓게 다룬다. 독서를 매개로 쓰고, 말하고, 발표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는 걸로 유명하다. 특히 이들 학원은 독서를 통한 전인 교육을 추구한다. 논술화랑을 운영하는 독서문화연구원 김수미 대표는 “읽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쓰고 말해야 깊이 사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서 학원은 2000년대 초반 특수목적고 인기와 맞물린다. 수능 대비를 위한 문제풀이 학원이 대세던 시절, 대치동 내에서도 소수만이 다니던 비주류로 등장했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대입에서 논술전형이 축소되면서 독서·논술 사교육 시장은 이른바 ‘예체능 학원’ 신세가 됐다. 그런데 이들 학원 재원생들이 특목고 입시에서 두드러지면서 위상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독서 습관을 잘 길러 놓으면 결국 대입에서 진가를 발휘한다”는 믿음이 자리 잡은 것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실제로 대치동 학원가에서 독서를 입시 성공을 위한 필수 과제로 꼽는 분위기다. C&A논술·MSC논술과 같이 독서에 방점을 찍은 학원은 물론이고 기파랑 문해원·지니국어논술학원·천개의 고원처럼 내신과 수능에 무게를 둔 학원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2주에 책 한 권을 읽고, 간단한 문제를 풀어 책을 읽었는지 확인한다. 책을 안 읽어 오면 수업을 듣지 못하게 하는 학원도 있다. 여성오 C&A논술 원장은 “대치동에서 오래 명맥을 유지하는 학원은 예외 없이 읽기 수업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초등 고학년이 되면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대입을 위한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학습량이 늘기 때문이다. 중3 아들을 키우는 박지혜(47 서초구 방배동)씨는 “수학·영어 숙제를 하느라 잠잘 시간도 부족한 상황에서 책까지 읽는 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책에서 손을 완전히 뗄 수도 없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세부 특이사항, 수행평가, 면접 등에 독서를 통해 습득한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부모 사이에선 “무작정 많이 읽히는 게 능사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입시를 겨냥한 책을 전략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얘기다. 윤진성 지니국어논술학원 원장도 “배경지식을 쌓겠다며 다양한 책을 폭넓게 읽는 건 비효율적”이라며 “연령과 학습 내용을 고려해 책을 선택하고, 신문 등을 통해 생각을 확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전략적 독서가 주목 받으며 각 학원이 수강생을 위해 선정하는 책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초6, 초2 남매를 키우는 이민영씨는 “다양한 책을 맥락 없이 읽는 것보다 체계적으로 선정된 책을 읽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찮다. 특히 독해력 수준이 높은 최상위반에선 『총, 균, 쇠』 같은 수준 높은 책을 읽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초5 딸을 키우는 한유미(42·서초구 반포동)씨는 “너무 어려운 책을 읽다 오히려 독서에 흥미를 잃진 않을지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독서는 국어 실력을 높이는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단, 학년이 오를수록 무조건 많이 읽기보다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연합뉴스  ━  📚 Part3. 초5, 내신이냐 논술이냐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면 국어 학원도 물갈이가 시작된다. “대입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할 때”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 시기 국어 학원은 내신과 논술, 두 갈래로 나뉜다.   내신파는 중학교 이후 내신과 멀리는 수능 등 ‘시험’에서 답을 맞히는 데 방점을 찍는다. 그러자면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을 꼼꼼하게 충실히 공부하는 게 우선이다. 다만, 교과서 작품 외 낯선 지문을 읽기 위한 독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독서를 꾸준히 하며 내신 시험 준비도 함께 해야하는데, 쉽지 않다. 학원들도 이런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초등 고학년을 주로 상대하는 기파랑 문해원·지니국어논술학원 등이 교과 연계형 독서 수업 후 내신·수능형 문제로 읽은 걸 확인하는 이유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국어 영역 문제지. 수능 국어 영역은 변별력의 지표가 되며 매해 역대급 불국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에 논술파는 독서 후 토론과 쓰기에 집중한다. C&A논술·MSC논술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학원에서도 도서를 선정할 때 비문학 독해력 향상을 염두에 둔다. 다만 읽은 뒤 내 생각을 글로 쓰고, 말로 표현하는 훈련을 통해 논·서술형 시험에 대비한다. 어느 쪽에 방점을 찍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도록 포석을 까는 셈이다. 천개의 고원처럼 독서와 내신·논술을 다 하겠다고 표방하고 나선 학원도 있다. 실제로 천개의 고원은 대치동에서 입학까지 가장 오랜 시간을 대기해야 하는 국어 학원으로 떠올랐다.   내신파든, 논술파든 공통적으로 보이는 양상이 있다. 본격적으로 대입을 고려한 공부가 시작되는 시기가 빨라진다는 것이다. 개원 초기 중·고등 전문 학원으로 이름을 알린 곳들이 최근 1년여 사이 초등 5~6학년 수업을 개설하는 이유다. ‘2028 대입 개편안’이 계기가 됐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개편안에 따르면, 고교 내신에서 논·서술형 시험이 대폭 확대될 예정이다. 게다가 심화 수학이 빠지는 등 수능 자체의 난도가 낮아지면서, 결국 변별력 확보를 위해 국어 출제 난도가 높아질 것이란 전망도 여전하다. 이준기 기파랑 문해원 대치원 원장은 “독해력이나 논리력은 어려서부터 꾸준히 갈고 닦아야 하는 역량”이라며 “뇌 발달상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고, 내신의 압박이 없는 초 5~6학년이 국어 학습의 골든타임으로 부상했다”고 설명했다.   비문학을 풀기 위한 독해력과 논리력·사고력,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초등 국어,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 다음 편에서는 논술화랑을 운영하는 독서문화연구원 김수미 대표를 직접 만나 그 답을 들어본다.   ■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 「 ①“초등 학원도 대입이 좌우” 국‧영‧수 시장 들여다보니(2월26일 발행) ②“사고력 찍고 황소 간다” 수학학원 대해부(2월27일 발행) ③“어렵게 공부해야 잘한다” 이정헌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2월29일 발행) ④“수능 영어, 초등학교 때 끝낸다?” 영어학원 대해부(3월4일 발행) ⑤“사고력 좋아야 영어 잘한다” 김용 PEAI어학원 부원장 인터뷰(3월5일 발행) ⑥“다독 잡고 정독으로” 국어학원 대해부(3월7일 발행) ⑦“읽기? 쓰기가 문해력 핵심” 김수미 논술화랑 대표 인터뷰(3월8일 발행)  」 관련기사 요즘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문해력 부진, 범인 밝혀졌다 ① 어휘력 키우려면 이곳 가라…‘국어 교과서’ 집필자의 비결 ‘아버지가 통닭을 사 오셨다’ 이 문장에 문해력 힌트 있다

    2024.03.06 15:02

  • ‘봉준호 아바타’ 여기 다녔다…원어민 뺨치는 영어실력 비법 ⑤

    ‘봉준호 아바타’ 여기 다녔다…원어민 뺨치는 영어실력 비법 ⑤ 유료 전용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감독상 등 4관왕을 휩쓴 2020년, 봉준호 감독의 통역을 맡았던 샤론 최(본명 최성재)가 스타로 떠올랐다. 농담까지 완벽하게 통역해 ‘봉바타’(봉준호 아바타)라는 별명까지 얻은 그는 놀랍게도 미국 교포가 아니라 한국에서 초‧중‧고를 졸업한 한국인이었다. 그가 유년 시절 다닌 학원이 바로 대치동 ‘빅3’ 중 한 곳인 PEAI어학원(이하 PEAI)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영어는 학습하는 게 아니라 습득하는 겁니다. “영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김용 PEAI 부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문법을 배우고, 단어를 매일 30개씩 외우기보다 자연스럽게 영어를 익히는 게 중요하다는 의미다. 1세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초·중·고와 대학을 졸업한 그는 2007년부터 한국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폴리·페디아·폴라나어학원을 거쳐 2017년부터 PEAI에서 일하고 있다. 강사 경력만 20여 년이다.   영어를 언어로서 익히게 돕는 것, 이것은 PEAI가 문을 연 이유와도 통한다. PEAI는 이종순 대표가 자신의 딸을 위해 만든 학원이다. 5세 때 집 근처에 사는 외국인 친구를 사귄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미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구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대치동에는 언어로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았다. 언어로서 영어를 가르치고 싶었던 이 대표는 결국 학원을 차렸다.   2006년 대치동에 문을 연 지 약 20년, PEAI는 학부모가 가장 보내고 싶은 학원 중 한 곳이 됐다. 이 학원에 들어가려고 레벨테스트를 두 번, 세 번, 네 번씩 보기도 한다. PEAI는 다른 학원과 다를까? PEAI가 추천하는 영어 학습법은 뭘까? 지난 1월 31일 김 부원장을 만나 물었다.   ■  「 Intro. 영어, 학습 말고 습득하라 Part 1. 어렵게 할 필요 없다 Part 2.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Part 3. 학원 레벨 신경 쓰지 마라 」   ━  📢영어, 어렵게 할 필요 없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2022년 영어 사교육에 쓴 돈은 3조5000억원이었다. 국‧영‧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수학(2조3000억원)의 1.5배, 국어(7000억원)의 다섯 배다. 보통 5세 때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영어학원, 영유)으로 사교육에 발을 들이는데, 이전부터 방문학습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 김 부원장은 “사교육의 도움을 받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고 꼬집었다. 집에서도 충분히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얘기다. 그가 알려준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쉽고, 재밌고, 꾸준하게다.   ‘배고프면 밥 먹으라’는 말처럼 너무 뻔한 얘기 같아요. 하지만 그 뻔한 걸 하는 아이가 얼마나 될까요? PEAI에 다니는 아이들은 영유 출신이 많지만, 일반유치원을 나오고도 비슷한 수준을 가진 아이들도 꽤 됩니다. 해외에 한 번도 안 가봤지만, 영어권 국가에서 2~3년 살다 온 아이만큼 영어를 잘하는 경우도 있고요. 그런 아이들의 공통점이 바로 영어를 쉽고, 재밌고, 꾸준하게 한 거예요.   해외 거주 경험 없이 영어를 잘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했나요?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년 동안 매일 30분씩 듣기 연습을 하고, 영어일기를 썼대요. 또 다른 아이는 4년 동안 이틀에 한 번씩 아빠와 함께 신문 사설을 보고, 영어로 정리했고요. 중요한 건 학습이 아니라 습관과 놀이로 접근하는 거예요. 아이가 흥미를 느낄 만한 지점을 찾아서 확장해 줘야 하죠. 영어는 수학만큼 어려운 과목이 아니잖아요. 영어를 열심히 했는데 실력이 늘지 않았다면, 꾸준하게 하지 않아섭니다.   꾸준히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쉽고, 재밌어야 해요. PEAI가 왜 인기 있다고 보시나요?   제가 해야 할 질문을 저한테 던지시네요.(웃음) 저는 학부모들이 PEAI를 좋아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확실히 알아요. 재밌기 때문이죠. 학생들이 학원을 ‘오아시스’라고 할 정도거든요. 대치동은 초등학교 저학년만 돼도 교과학원을 네다섯 군데씩 다니잖아요. 국어‧수학학원에서 딱딱하고 지루한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여기 오면 활기가 넘치죠. 맘카페나 학원 커뮤니티 같은 데도 ‘수학 때문에 PEAI를 그만두고 싶은데, 아이가 너무 좋아해서 고민’이라는 글이 많이 올라와요. PEAI어학원은 학생들이 영어를 매개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돕는다. 학생들이 '친절함'에 대해 배운 뒤 이를 주제로 친구에게 쓴 편지들. 사진 PEAI어학원 아이들이 재밌어 하는 이유가 뭔가요? 영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영어를 매개로 다양한 경험을 하니까요. 수업에서 ‘친절함의 힘’에 대한 글을 읽었다고 해볼게요. 보통 학원에선 줄거리와 단어·문법을 익히는 데 주안점을 둡니다. PEAI에선 ‘친절함’이라는 개념을 익히는 데 집중해요. 각자 경험한 ‘친구의 친절’에 대해 그림도 그리고 글도 써보는 거죠. 단어는 몇 년 지나면 까먹겠지만, 이런 경험은 오래갑니다.   집에서도 이런 경험을 하게 도울 수 있나요? 부모가 가장 좋은 교사입니다. 다만 아이의 흥미를 무시하고 무턱대고 학습적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아이의 관심을 파악한 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죠. 이종순 대표의 자녀 교육법이 좋은 예가 될 것 같아요. 포켓몬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관련된 영어책을 전부 사주셨다더라고요. 포켓몬을 좋아하는 아이는 그 책을 읽고, 또 읽었고요. 적절하게 질문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컨대 아이가 『해리포터』를 읽었을 때, ‘해리가 왜 그런 거야?’ ‘네가 해리라면 어떻게 해결했을까?’하고 묻는 거죠.   독서가 중요한 건 알겠는데,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르기가 쉽지 않아요. 아이가 좋아하는 책부터 보면 됩니다. 오디오북이 있으면 같이 듣게 하고요. 재밌는 경험으로 연결해 주는 것도 필요해요. 아이에게 “소리 내서 읽어 달라”고 한 뒤 녹음해서 같이 듣는 것도 방법이죠. 직접 해리포터의 등장인물이 돼 보는 것도 좋고요. 책의 수준을 높일 때도 모르는 단어가 10%를 넘지 않는 것을 골라야 합니다. 아는 단어를 통해 모르는 단어 뜻을 유추하면서 읽어야 하니까요. 김용 PEAI어학원 부원장은 "학생들이 PEAI어학원을 좋아하는 건 재밌는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라며 "단어 한두 개 더 외우는 것보다 이런 경험이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  📢영어는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다   PEAI의 커리큘럼은 4C를 키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4C는 비판적 사고력(Critical Thinking), 의사소통역량(Communication), 협업역량(Collaboration), 창의력(Creativity)의 앞글자를 딴 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핵심역량으로 꼽히는 것들이다. 영어학원에서 이런 역량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김 부원장은 “영어 교육의 목표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목표를 바꾸라는 게 무슨 뜻인가요? 영어를 위한 영어 교육을 하지 말자는 거죠. 한국에서 일찍부터 영어를 공부하는 이유가 뭔가요? 내신 시험과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인가요? 단지 이 이유만은 아닐 거라고 봅니다. 성적 잘 받는 게 목표라면 강사가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수업 듣고, 단어를 외우는 걸로 충분할 수 있어요. 하지만 학부모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초등 저학년 때는 특히 더 그렇죠.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영어를 익히길 바라거든요. 대입을 넘어 그 이후에 사회생활하면서 영어가 성공의 걸림돌이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죠. 영어와 수학의 가장 큰 차이점이에요.   영어와 수학이 뭐가 다르죠? 수능 끝난 다음 날 수학 공부하는 사람 있나요?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영어는 어떤가요? 수능시험 끝난 이후 회화나 토익‧토플 같은 영어인증시험 대비 학원에 등록하는 사람이 많아요. 영어는 대입 치렀다고 끝이 아니란 얘깁니다. 다시 시작이죠.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해야 해요.   마라톤이요? 지금 당장 단어 하나 더 외운 게 10년, 20년 뒤에 의미가 있을까요?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 사회‧문화‧역사를 배우면서 4C 역량을 기르는 게 더 도움이 되죠.   학원에서 4C 역량을 어떻게 기를 수 있나요? 볼펜에 대해 배운다고 해볼게요. 1단계는 볼펜의 특성을 외형적‧기능적‧경험적 측면으로 정리해 보는 거예요. 주제에 대한 기본정보뿐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는 게 중요하죠. 그러면 애들은 ‘볼펜 갖고 놀다 친구 눈을 찔러서 혼난 적이 있다’라거나 ‘엄마가 마음에 드는 펜을 안 사줘서 속상했다’는 내용의 글을 쓰겠죠.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수업과 큰 차이가 없어요. 중요한 건 이 다음입니다.   뭔가요? 현재뿐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넘나듭니다. ‘300년 전에는 어떤 필기구를 썼을까?’ ‘300년 뒤에 펜을 대체하는 물건은 뭘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거죠. 아이들 스스로 역사가나 과학자가 돼보는 시간이에요. 미래 필기구에 대한 글을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면서 창의력이 향상됩니다. 이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또 실현 가능성에 대해 친구들과 토론하면서 비판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죠. 팀을 짜서 프로젝트를 하면 협업 역량과 의사소통 역량을 기르는 게 가능하고요. 학원에서 프로젝트 수업을 많이 하는 것도 그래서죠. 입학 테스트 중 지필 평가 다음에 치르는 인터뷰도 4C를 확인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인터뷰에서 이걸 확인하는 게 가능한가요? 하나의 게임처럼 만들었거든요. ‘미국 서부의 한 마을에 가서 보안관이 된다’는 설정을 하는 식이죠. ‘마을까지 가는 길에 사막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할 때 가장 필요한 물건은 뭘까?’에 대한 답을 통해 논리력‧순발력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막 묘사를 통해서는 표현력, 마을의 강도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논리력, 비판적 사고력을 살펴보는 게 가능하고요. 보안관 부임 축하파티를 기획하면서 창의력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모든 학생은 1대 보안관으로 부임해 별표 배지를 받아요. 애들 대부분이 인터뷰 과정을 즐기고 ‘합격했다’고 생각하고 교실을 떠나죠. 아이들에게 성취감을 주는 게 시험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김 부원장은 "영어를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배워야 한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재의 조건인 비판적 사고력, 창의력, 협업역량, 소통역량을 기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  📢학원 레벨 신경 쓰지 마라   “PEAI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학원 커뮤니티나 맘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글이다. 학부모들은 PEAI를 포함한 ‘빅3’에 아이를 합격시키기 위해 과외를 받게 하거나 다른 학원에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빅3에 들어간다고 끝이 아니다. 합격한 뒤에는 ‘톱반’에 가기 위한 고군분투가 또 시작된다. 김 부원장은 “바로 그게 영어 사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뭐가 문제라는 건가요? 학원이 대학처럼 서열화 돼 있다는 거요. 대치동에는 빅3‧빅5‧빅10까지 있다고 들었어요. ‘SKY 가려면 빅3 다녀야 한다’는 말도 있다고 하고요. 예전에는 수능형‧내신형처럼 학원별 강점이 있었고, 학부모는 자신의 아이에게 필요한 학원에 보냈습니다. A학원이 아닌 B학원에 다니는 게 우위에 있거나 뒤처진 게 아니었죠. 하지만 이제는 상위 레벨의 학원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인식이 공고해졌어요. 학부모 중에 상위 레벨 학원 보내려고 혈안이 된 분들이 있어요. 그게 진짜 아이를 위한 건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렇죠? PEAI 합격시키려고 학원‧과외‧컨설팅으로 억지로 점수를 만드니까요. 학원에는 합격할지 몰라도 아이 영어 실력 향상에는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득보다 실이 많죠.   수준 높은 학원에서 배우면 실력도 올라가는 거 아닌가요? 영어에서 4C보다 더 중요한 C가 있습니다. 바로 자신감(Confidence)이에요. 아이 수준에 안 맞는 학원을 억지로 다니면, 아이는 어떻게 될까요? 위축되고 자신감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하면 그동안 갖고 있던 영어에 대한 흥미조차 잃을 수 있죠.   그럼 어떤 학원을 선택하는 게 좋을까요? 아이에게 맞는 학원에 보내면 됩니다. 레벨보다 중요한 건 몰입이에요. 아이가 학원을 얼마나 즐겁게 다니는지를 살펴보세요. 아이가 학원에 가는 걸 좋아하고, 즐겁게 배우면 굳이 다른 학원으로 옮길 필요가 없습니다. 학원 명성은 중요하지 않아요.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려면 아이가 리더 역할을 할 수 있는 학원이 좋습니다.   대치동에서는 이르면 30개월부터 영유를 다니기 시작해, 만 3~5세에 미국 교과서 1~2학년 과정을 끝낸다. 보통 초등학교 1학년 때 미국 초등학교 3학년 과정을 배운다. 대치동 빅3·빅5·빅10으로 꼽히는 학원들이 대표적이다. 매년 10월이면 이들 학원에 들어가기 위한 레벨 테스트 전쟁이 벌어진다. PEAI의 경우 1년에 2400명이 시험을 치르는데, 합격률은 낮은 편이다. PEAI에 떨어지는 아이들은 그다음 레벨, 그다음 레벨의 학원에 간다. 하지만 그곳에 만족하지 못하고, PEAI 테스트에 반복적으로 도전한다. 이들 학원 생태계 정점에 있는 PEAI 부원장인 그는 정작 “이런 학원이 모든 학생에게 정답은 아니다”며 “내 아이에게 맞는 학원이 최고의 학원”이라고 말했다.   부모의 기준으로 ‘부족하다’고 단정 짓지 마세요. 언어능력은 ‘0’에서 시작해 매일 ‘플러스(+)’됩니다. 아이의 영어 실력은 학원 레벨과 상관없이 매일 향상되고 있습니다. 김 부원장은 "대치동 영어학워 서열화 문제가 심각하다"며 "무조건 레벨이 높은 학원보다 아이 수준에 맞는 학원을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동 기자   ■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 「 ①“초등 학원도 대입이 좌우” 국‧영‧수 시장 들여다보니(2월 26일 발행) ②“사고력 찍고 황소 간다” 수학학원 대해부(2월 27일 발행) ③“어렵게 공부해야 잘한다” 이정헌 생각하는 황소 대표 인터뷰(2월 29일 발행) ④“수능 영어, 초등학교 때 끝낸다?” 영어학원 대해부(3월 4일 발행) ⑤“사고력 좋아야 영어 잘한다” 김용 PEAI어학원 부원장 인터뷰(3월 5일 발행) ⑥“다독 잡고 정독으로” 국어학원 대해부(3월 7일 발행) ⑦“읽기? 쓰기가 문해력 핵심” 김수미 논술화랑 대표 인터뷰(3월 8일 발행) 」 관련기사 “1등도 꼴찌도 학원 올 수밖에” 대치동 영어 학원장의 일침 “원어민 과외? 챗GPT 써라” 30년 영어강사 추천 활용법 4자녀 ‘영어 영재’ 만든 비법 “모르는 단어 뜻 찾지마라”

    2024.03.04 15:56

  • 수학은 동네 학원 보내라…단, 영어는 대치동뿐이다? ④

    수학은 동네 학원 보내라…단, 영어는 대치동뿐이다? ④ 유료 전용

    왜 수능·내신 영어를 따로 공부해야 하죠? 영어 배우는 데 미국식, 한국식이 따로 있나요? 지난 1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서 만난 위우섭 ILE어학원 원장은 이렇게 물었다. 대치동을 대표하는 영어학원 중 한 곳을 운영하는 그가 이런 의문을 품은 덴 이유가 있다. 이곳 아이들은 보통 5세에 유아 대상 영어학원(이하 영유)에 입학해 초등 저학년까지 듣기·말하기·읽기·쓰기 등 4대 영역을 고루 배우다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 중·고등학교 내신과 수능을 위해 문법과 독해로 태세를 전환한다. 언어로서 영어를 배우는 ‘미국식’ 학습에서 시험 잘보기 위한 ‘한국식’ 학습으로 바뀌는 것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공교육에서 영어 수업이 시작되는 초등 3학년은 일종의 변곡점이다. 이때 알파벳을 처음 배우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해리포터』를 원서로 읽는 아이도 있다. 후자는 그해 수능 1등급 완성을 목표로 한다. 2018년부터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90점만 넘으면 모두 1등급을 받게 된 덕분이다. 영어를 일찍 끝낼수록 수능에서 변별력이 큰 수학을 공부할 시간이 늘어난다는 계산도 한몫했다. 헬로 페어런츠(hello! Parents)가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를 진행하며 수학에 이어 영어를 살펴보는 이유다. 현실을 가감 없이 담기 위해 양육자 이름은 모두 가명 처리했고, 학원가에서 통용되는 용어도 그대로 썼다.   ■  「 Intro. 미국식 vs 한국식 영어교육 Part 1 대세는 ‘미교’, 영유서 시작한다 Part 2 수학은 동네, 영어는 대치동 간다 Part 3 초4면 뺀다? 그때부터 진짜다 」   ━  🔠Part 1 대세는 ‘미교’, 영유서 시작   대치동 초등 영어학원가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빅(Big)3’다. 사람마다 빅3를 꼽는 기준은 조금씩 다르지만 통상 2001년 문을 연 렉스김어학원을 필두로 각각 2005년, 2006년 설립된 ILE어학원, PEAI어학원 등을 일컫는다. 모두 대치동에서 20년 가까이 명맥을 유지해 온 터줏대감이다. 에디센어학원(2014년), IN어학원(2016년) 등 신흥 강자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빅5’ ‘빅10’란 말도 생겨났다. JLS정상어학원 출신 원장이 ILE를 세우고, ILE 출신이 나와서 PEAI를 만들고, PEAI와 트윈클 출신이 모여 띵킹어학원을 세우는 등 이합집산도 활발한 편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이들 학원은 대부분 ‘미국 교과서’(미교)를 사용한다. ILE는 ‘인투 리딩(Into Reading)’, PEAI는 ‘리딩 스트리트(Reading Street)’를 기반으로 각 학원에서 만든 문법이나 단어 교재를 추가하는 식이다. 위우섭 ILE 원장은 “어설픈 교재를 쓰느니 미교를 사용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 2006년부터 도입했다”고 밝혔다. 체계적인 학습과 다양한 활동에 대한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초5 아들을 PEAI에 보내고 있는 정주혜(42·강남구 개포동)씨는 “프로젝트 기반 수업이 장점”이라며 “영어를 책으로만 배우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언어로 접하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들 학원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이 지나치게 과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인분당선 한티역을 시작으로 은마아파트 입구 사거리를 지나 영동대로 인근까지 넓게 펼쳐져 있는 초등 영어 학원가는 매년 가을이면 주말마다 ‘레벨테스트’(레테)를 치르는 예비 초1과 양육자들로 북적인다. 초2부터 볼 수 있는 PEAI 레테는 더욱 치열하다. ‘대치동 헤더샘’으로 유명한 영어 강사 문효정씨는 “빅10 중에서도 매년 인기 있는 학원이 조금씩 달라진다. PEAI 합격생 배출 숫자로 다시 줄을 세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PEAI어학원 4학년 레벨테스트 예시 문항. 리딩 지문을 읽고 알츠하이머에 대해 알 수 있는 내용을 묻고 있다. 라이팅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 누구라고 생각하는지와 독서가 TV보다 상상력과 언어 능력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지 두 가지 주제 중 하나를 선택해 3~4문단으로 써야 한다. 박정민 디자이너 PEAI의 레테는 3개월 이내 재응시할 수 없다. 보다 많은 학생이 시험을 보게 하려고 만든 규정이지만, 되려 3개월마다 한 번씩 영어 실력을 가늠하는 지표가 됐다. 정주혜씨는 “PEAI는 1차 지필고사에서 리딩(Reading)과 라이팅(Writing) 시험을 통과해야 2차 인터뷰(Interview)를 볼 수 있다. 아이가 리딩, 라이팅, 인터뷰를 한 번에 하나씩 순차적으로 통과하는 바람에 레테만 네 번을 봤다”고 말했다. 김용 PEAI 부원장은 “1차 시험 합격선이 70점이라고 했을 때 30% 정도 2차 인터뷰를 보고 그중 10%만 합격한다”고 밝혔다.   이렇게까지 입학 조건이 까다로워진 것은 영유부터 선행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영유 수는 847곳으로 10년 전 332곳보다 2.5배 늘어났다. hello! Parents가 만난 양육자 12명의 자녀 18명 중 12명이 영유를 다녔을 정도로 보편화된 것이다. 보통 5~7세 반을 운영하던 영유들이 앞다퉈서 4세 반, 3세 반을 신설하며 시작 연령대가 낮아졌다. 유아 영어학습 기간이 길어지자 초등 영어학원 입학 수준이 덩달아 높아졌다. 초5, 초1 형제를 키우는 정주혜씨는 “첫째가 다닌 영유는 놀이식이었는데 졸업 후 학습식으로 바뀌었다. 둘째가 다닌 영유는 첫째 때 제일 빡센 곳으로 유명했는데, 이제 제일 널널한 곳이 되었다”고 말했다.   영유의 학습 강도가 초등 영어학원 합격률로 직결되면서 미교를 도입한 영유도 늘어났다. 초1 때 영어학원에서 미국 초3 교과서로 배우니 1~2학년 과정은 영유에서 떼고 와야 하고, 초등 영어학원 입학 점수가 높아지니 난도가 더 높아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양육자 사이에 떠도는 “빅5에 보내려면 ‘SR(Star Reading)’ 지수가 3.1(3학년 1개월 차)은 돼야 한다”는 불문율도 여기서 나왔다. 초5, 초1 남매를 키우는 최미희(40·강남구 대치동)씨는 “남편의 유학으로 아이들이 2년간 미국에 살다 왔는데도 웬만한 영어학원 레테는 다 떨어졌다”며 “미국 초1보다 한국 초1 영어 수준이 더 높은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서점에 마련된 어린이 영어 코너. 브릭스 등 유·초등 아이들이 많이 보는 영어 교재가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민경원 기자  ━  🔠Part 2 수학은 동네, 영어는 대치동   같은 초등 학원가라 해도 수학과 영어에서 대치동이 갖는 의미는 다르다. 초등 수학의 대표 주자인 ‘생각하는 황소’나 ‘소마 사고력 수학’ 모두 대치동에서 출발했지만 각각 61곳, 168곳의 직영점이나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전국 어디서든 동일한 커리큘럼으로 공부할 수 있단 얘기다.   반면에 영어학원은 대치동 일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PEAI와 ILE는 대치 본점 외에 각각 서초와 압구정에 지점이 있지만, 렉스김은 대치 1곳뿐이다. 홈페이지도 없어서 유선으로 연락처를 남겨두면 향후 문자로 일정을 알려주고, 설명회 참석자만 레테를 볼 수 있을 정도로 폐쇄적이다. 빅10으로 꼽히는 영어학원 중 대치를 벗어나 지점을 운영하는 곳은 에디센(분당), 트윈클(분당·목동·송도·일산·마포), M·I(서초·분당·목동·센텀·광교·송파·일산) 정도다.   대치동 영어학원이 전국구로 퍼져나가기 어려운 이유는 강사 수급 때문이다. 한국인 강사 외에도 영어권 국가 출신 원어민이나 교포 강사가 수업을 하는데, 수도권을 벗어나면 강사를 구하기 어려운 탓이다. 과학 등 특화 과목이 있는 경우에는 더 찾기 힘들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원 관계자는 “대치동에서 잘나가다가 프랜차이즈로 바꾸면서 관리가 안 되는 경우를 여럿 봤다”며 “그렇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 순 있겠지만 오래 가긴 힘들다”고 말했다.   코로나 3년은 대치동의 위상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14년 차 영어 강사 문효정씨는 “코로나 전만 해도 빅3, 빅5는 대치동이나 강남권에서 경쟁이었는데 이제는 서울을 넘어 수도권까지 합세하면서 판이 커졌다”고 짚었다. 학교 수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집이나 학원에서 공부할 방법을 찾는 양육자가 많아지고, 오프라인에서 지인들끼리 알음알음 주고받던 정보가 온라인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온라인 강의 플랫폼 엄마인강에서도 초등 영어학원과 영유 레테 준비 강의가 가장 큰 인기를 끌 정도다. 서울 전체 학원 수 2만4284개 중 강남구 대치동에 가장 많은 학원(1609개)이 몰려 있다. 박정민 디자이너 덕분에 수학은 동네에서 해도 영어는 대치동으로 보내는 양육자도 많아졌다. 초6, 초3 남매를 ILE에 보내고 있는 김민지(40·광진구 광장동)씨는 “두 아이 모두 3년간 영유를 다니고 1년간 캐나다로 연수를 다녀왔다”며 “동네에선 영유 3년 차나 해외 거주 경험이 있는 ‘리터니(Returnee)’가 다닐 만한 학원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학원 환경이 외국에서 공부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아이들이 친구들과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을 때도 항상 영어로 이야기하고, 서로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비슷한 수준의 ‘피어(Peer)’가 있어서 실력이 더욱 향상됐다”는 것이다. 그는 “첫째 때만 해도 고학년이 되면서 대치로 옮겨가는 분위기였는데 둘째 친구들은 초1부터 바로 가는 경우가 늘었다”고 덧붙였다.   학군지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초2 딸을 키우는 안희경(36·양천구 목동)씨는 “목동만 해도 학원 선택 폭이 넓지 않다”고 말했다. SR 3점대가 갈 수 있는 곳은 폴리 영유와 연계된 매그넷이나 트윈클, M·I 정도다. 그는 “대치동 학원 3곳에서 레테를 봤지만, 학기 중엔 오갈 엄두가 나지 않아 방학 특강만 보내고 있다”고 했다. 신도시 학군지에 살다 2년 전 대치동으로 이사온 박해인(41)씨는 “전 동네에선 괜찮은 학원은 집에서 차로 10~20분은 가야 했다”며 “운전할 수 있는 이모님을 구하지 못해 (학원) 선택의 폭이 좁았다”고 말했다. 반면에 대치동은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갈 수 있는 학원이 촘촘하게 있고, 어딜 가든 도보 등하원이 가능하다.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의 모습. 유명 영어 학원 중에는 셔틀버스를 운영하지 않는 곳이 많아 자동차나 대중교통으로 아이를 데리러 온 양육자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민경원 기자  ━  🔠Part 3 초4면 뺀다? 그때부터 진짜   교육부가 밝힌 2022년 초등학생 영어 월평균 사교육비는 20만4000원이었지만, 양육자가 실제 지불하는 비용은 40만~50만원 선이었다. 박정민 디자이너 학원 갈아타기를 고민하는 시점도 바로 영어와 수학의 중요도가 역전되는 순간이다. 최미희씨는 “대치동에선 초4쯤 되면 영어는 하산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초3까지 미교 기준으로 초등 과정을 마치고, 초4면 내신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초4 딸을 키우는 임수진(40·강남구 청담동)씨는 “ILE 1년, 에디센을 2년 정도 다녔는데 올해나 내년에는 내신 학원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는 매달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관련 소설을 읽고 영화 보고, 프로젝트를 발표하는 지금 학원을 너무 좋아하지만, 슬슬 잦은 문법 실수가 마음에 걸리는” 탓이다.   초4를 기점으로 영어학원 지형도가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초4 아들을 키우는 박해인씨는 “빅3는 말하는 사람의 상황과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예를 들어 초등 저학년이라면 스피킹에 강한 알파·띵킹어학원이 빅3가 될 수도 있고, 고학년이라면 문법과 단어 비중이 높은 해빛나인·이안어학원이 포함될 수도 있다. 이과 성향이 강한 아이라면 과학 수업을 병행하는 ILE·해빛나인어학원도 선호한다. 박씨는 “고학년이 되면 수학 과제량이 늘어나고 국어나 과학 학원이 추가되는 등 과목별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해진다”고 했다. 아예 학원 소개에 ‘타 과목과 개인 개발을 방해하지 않는 수준의 과제량’을 내세우기도 한다.   아이를 대치동 중‧고등학교에 보낼 계획이라면 양육자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상향 평준화돼 내신 챙기기가 더 어려운 탓이다. 대치동에서 18년째 영어학원을 운영 중인 문경희 원장은 “초등학교까진 시험이 없지만 중학교는 절대평가, 고등학교는 상대평가다. 위로 올라갈수록 작은 실수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고1 때 첫 전국 모의고사를 보면 3분의 1이 영어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고, 3분의 2가 1등급인 상황에서 내신 등수를 매기려면 중간·기말 고사 문제가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2018년 수능부터 영어는 절대평가로 진행되면서 1등급 비율이 크게 늘었다. 국어와 수학은 매년 4% 안팎인 반면, 영어는 2021년 12.66%까지 증가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하지만 이때야말로 그동안 쌓아 온 영어 공부의 진가가 발휘되는 시기라는 주장도 있다. 『영어 질문 독서법』의 저자 문효정씨는 “영유나 영어 학원 레테 준비 과외를 오래 했지만, 결국 기초가 없으면 학원에 들어가서도 잘 적응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다양하고 즐겁게 읽는 습관을 들여야 커서도 그 위에 사고력이 더해질 수 있는데 남이 짜놓은 로드맵을 따라가는 데 급급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위우섭 ILE 원장은 “수능과 내신은 결국 독해다. 독해를 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휘가 부족하다는 뜻인데 평소 많이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연습을 제대로 했다면 저절로 채워지게 돼 있다”고 말했다. 이종순 PEAI 대표 역시 “애초에 회화와 문법은 별개가 아니다. 이를 나눠서 공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능이 끝나면 대부분 수학 공부는 그날로 끝이지만, 영어는 그날부터 다시 한다. 대입 이후 미래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보다 멀리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서점에 마련된 미국 교과서 섹션.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보통 초등학교 1학년 때 미국 3학년 과정 교과서를 교재로 사용한다. 민경원 기자 그렇다면 현재 대치동 초등 영어 트렌드를 이끄는 학원이 생각하는 효과적인 영어학습법은 무엇일까? 다음 편에서는 PEAI 김용 부원장을 직접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 「 ① “초등 학원도 대입이 좌우” 국‧영‧수 시장 들여다보니(2월 26일 발행)② “사고력 찍고 황소 간다” 수학학원 대해부(2월 27일 발행) ③ “어렵게 공부해야 잘한다” 이정헌 생각하는 황소 대표 인터뷰(2월 29일 발행)④ “수능 영어, 초등학교 때 끝낸다?” 영어학원 대해부(3월 4일 발행) ⑤ “사고력 좋아야 영어 잘한다” 김용 PEAI어학원 부원장 인터뷰(3월 5일 발행)⑥ “다독 잡고 정독으로” 국어학원 대해부(3월 7일 발행)⑦ “읽기? 쓰기가 문해력 핵심” 김수미 논술화랑 대표 인터뷰(3월 8일 발행) 」 관련기사 “1등도 꼴찌도 학원 올 수밖에” 대치동 영어 학원장의 일침 4살 아이가 레벨 테스트 본다, 의대보다 비싼 ‘영유’의 세계 “SKY 가려면 초1 ‘이것’ 해라” 서울대 스타 강사의 공부법

    2024.03.03 14:51

  •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③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③ 유료 전용

    강남 대치동에서 시작한 수학학원 ‘생각하는 황소’(이하 황소)의 입학시험은 ‘황소 고시’ ‘초등 수능’으로 불린다. 실제 지난해 11월 치러진 입학시험(12월 개강반)엔 전국에서 8000명 가량의 초등학생이 몰렸다. 지난 4일 있었던 입학시험(3월 개강반)은 약 5000명이 치렀다. 황소 입학시험을 대비한 수업이나 특강이 열릴 정도니, 양육자들이 이 시험을 수능이나 고시에 비유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박정민 디자이너 수능까지 ‘수학의 정석’을 세 번 이상 봐야 한다고들 합니다. 왜 그래야 하죠? 대충 봐서 그래요. 제대로 한 번을 보는 게 낫습니다. 대치동을 지배하는 절대 명제는 ‘선행과 반복’이다. 그래야 대입에서 유리하다는 것이다. 반복을 위해 선행을 하고, 선행을 하니 반복이 가능하다. 그런데 대치동에서 가장 입학하기 어려운 황소의 이정헌 대표는 “지금의 선행 속도가 우려스럽다”며 이렇게 말했다. 진도를 빼는 데 급급해 정작 제대로 공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황소 역시 선행 학습을 유행시키는 데 일조했다. 황소는 초등 4학년부터 다닐 수 있는데 보통 12개월, 길어도 18개월 안에 6학년 과정까지 마친다. 4학년 3월에 입학하면 늦어도 5학년 9월이면 초등 과정을 마치고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기 시작하는 셈이다. 이 대표는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를 목표로 짠 커리큘럼”이라며 “모든 학생이 이 속도로 공부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나를 포함한 황소 직원 자녀가 다 황소에 다니지도 않거니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도 했다.     이 대표는 “모두가 황소의 속도와 정도로 공부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하지만, 한 해 1만 명이 넘는 학생이 입학 테스트를 볼 정도로 많은 학생이 황소에 다니고 싶어 한다. 황소의 공부법은 뭐가 다른지, 황소 대표가 추천하는 수학 공부법은 뭔지 지난달 26일 그를 찾아가 직접 물었다.   ■  「 Intro. 선행 속도, 우려스러운 이유 Part1. 어렵게 공부해야 실력 는다 Part2. 엄격하다? 잘하게 하려는 전략이다 Part3. 우리 목표는 수학자 아닌 입시 」   ━  Part1. 어렵게 공부해야 실력 는다   이정헌 대표는 “선행보다 심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모든 학생이 황소 수준의 심화 학습을 할 필요는 없지만, 각자에게 맞는 심화 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학원의 목표는 잘 가르치는 게 아니라 (학생이) 수학을 잘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잘 가르치면, 잘하게 되는 거 아닌가요?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잘 가르친다고 아이들이 다 잘하는 게 아닙니다. 만약 그렇다면, 일타강사에게서 배우면 다 잘해야 하잖아요. 하지만 어디 그런가요?   그럼 잘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운동에 비유해 볼게요. 어떤 종목이든 잘하려면 근력이 필요하잖아요. 잘 가르치기로 유명한 퍼스널트레이너한테 배우면, 근력이 생기나요? 아닙니다. 결국 스스로 운동을 해야 해요.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배우는 것보다 스스로 수학 문제를 해결해 보는 경험이 필요해요.   수학을 잘하는 데 필요한 ‘근력’은 뭔가요? 오랜 기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개념, 수학적 경험, 그리고 수학적 사고력이죠. 개념은 말 그대로 특정 수학 개념입니다. 수학적 경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유사 문제를 풀어본 경험과 문제를 풀면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경험입니다. 후자가 더 높은 수준의 경험이죠. 마지막은 바로 수학적 사고력이에요. 개념을 알고, 경험이 있어도 풀지 못하는 문제가 있어요. 그런 문제를 풀려면 사고력이 필요합니다.   수학적 사고력이 뭔지 명확하게 와닿지 않습니다. 핵심은 논리적 추론 능력입니다. 문제를 풀려면, 주어진 조건과 구하고자 하는 답 사이의 간극을 논리적으로 연결하고 메워야 하니까요.    수학적 사고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근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운동해야 할까요?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약간 더 힘들게 운동해야 해요. 쉽게 운동하면, 아무리 해도 근력이 생기지 않아요. 수학적 사고력도 그렇습니다. 쉬운 문제를 반복해서 푸는 것보다 자신의 수준보다 약간 더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게 좋아요.   황소가 심화 학습을 강조하는 이유인가요? 모든 학생이 황소 수준의 심화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자기 수준에 맞는 심화 학습은 반드시 해야 하죠.   초등 수준에선 굳이 심화 학습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어요. 어려운 문제를 억지로 풀다가 오히려 수학을 포기하게 된다는 겁니다. 심화 학습이라는 건 절대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같은 문제라도 어떤 학생에겐 기본 문제일 수 있고, 또 다른 학생에겐 심화 문제일 수 있어요. 제가 강조하는 심화 학습은 ‘내 수준보다 좀 더 어려운 걸 공부한다’는 의미예요. 자신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지나치게 어려운 걸 공부하는 건 득보다 실이 많죠. 생각하는 황소 이정헌 대표는 "좀 힘들게 운동해야 근력이 생기듯 어렵게 공부해야 수학적 사고력이 길러진다"며 심화 학습을 강조했다. 김종호 기자  ━  Part2. 엄격하다? 잘하게 하려는 전략이다    황소는 ‘엄격한 관리’로도 유명하다. 수업이 끝난 후 자습실에서 110분 동안 12개의 ‘미션 문제’를 의무적으로 풀게 하는 제도가 대표적이다. 12개의 미션 문제 중 하나만 틀려도 미션은 완수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자습실에 강사가 있지만, 자유롭게 질문할 수는 없다. 수업 중 부여받은 질문권을 사용하면 되지만, 사용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지금은 미션 문제를 다 풀지 못해도 시간이 되면 귀가할 수 있지만, 과거엔 다 풀어야만 집에 갈 수 있도록 해 악명이 높았다. 이정헌 대표는 “엄격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필요한 관리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이런 관리가 왜 필요한가요? 황소의 시스템은 “수학을 잘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저의 생각을 규정으로 만들어 놓은 겁니다.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하나씩 필요한 것들을 추가하면서 지금의 시스템이 완성됐어요. 학부모 만족도가 높은 이유가 “엉덩이 힘이 확실히 길러진다”는 겁니다. 어려운 문제라고 별표 치고 넘어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풀어보려고 이렇게 저렇게 고민하니까요. 그렇게 해야 수학적 사고력이 길러지죠.   질문을 받지 않는 것도 그래서인가요? 보통 학원에선 개념을 설명하고, 예제를 풀어준 뒤 숙제를 내주고 어려운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황소에는 바로 이 ‘질문’이 없다는 게 큰 차이죠. 저는 스스로 질문하는 걸 권해요. 스스로 질문하며, 주어진 조건과 구하려는 답 사이의 간극을 메워보려고 애를 써야 수학적 사고력이 큽니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넘어가면서 푸는 건 진짜 푸는 게 아닙니다.   어려운 문제를 마냥 붙잡고 있다고 풀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럴 때 작은 힌트나 단서를 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자기 수준에 맞는 심화 학습을 한다면, 모르는 문제라고 해도 전혀 모르는 상태는 아닙니다. 일부는 알고, 일부는 모르죠.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게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어요. 아는 영역을 탐색하면서, 모르는 영역까지 아는 영역으로 넓힐 수 있거든요. 힌트를 주면, 그 순간엔 풀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비슷한 문제를 다시 만나면 못 풀죠. 사고력을 활용해 스스로 풀어본 경험, 그게 바로 고차원적인 수학적 경험입니다. 이 경험이 많이 쌓여야 수학을 잘하죠.   황소는 입학하기도 어렵지만, 입학 후 다니는 것도 간단치 않다. 적지 않은 양의 숙제를 감당해야 하기도 하지만, 평가를 통해 주기적으로 반을 조정한다.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퇴원 조치를 하기도 한다. 아이를 황소에 보냈다가 그만둔 양육자들이 “친절하지 않고, 경쟁적인 분위기”라며 혀를 내두르는 이유다.   평가를 통해 반을 승급하거나 강등하는 이유가 있나요? 개원 당시 중등 과정을 KMO 수준까지 학습한 후 영재학교·과학고에 입학하려는 학생이 대부분이었어요. 거기에 맞춰서 지금의 커리큘럼이 개발된 셈이죠. 하지만 이런 커리큘럼이 모든 학생에게 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황소 커리큘럼을 감당하기 힘든데 계속 수업을 듣는 건 학생에게도 손해고, 학원 입장에서도 어려운 일이죠.   황소가 최상위권 학생만 받아서 좋은 성과를 낸다는 비판도 있어요. 현재 황소의 초등 과정은 4개 레벨로 이뤄져 있는데요. 가장 높은 반부터 조금씩 확장해 왔습니다. 세 번째 레벨을 만들 때부터 보다 많은 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왔습니다. 입학시험을 따로 보지 않고 학생을 받아서 가르쳐 보려고도 했죠. 하지만 쉽지 않더군요. 2005년 개원 이후 만들어온 황소의 교재와 속도, 수업 운영 방식은 상위권 학생에게 적합했어요. 중위권 학생에겐 다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황소 안에서 레벨 늘리는 걸 포기한 건 그래서죠. 황소의 엄격한 관리 시스템은 이정헌 대표가 수학을 잘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규정으로 만들면서 생겨났다. 이 대표는 "황소에 보내면 엉덩이 힘은 확실히 길러진다고 학부모들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  Part3. 우리의 목표는 수학자 아닌 입시   황소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눈길을 끈 건 두 가지다. 하나는 문제로만 구성된 교재였다. 교재엔 개념탐구 문제와 예제, 그리고 미션 문제, 확인 학습 문제가 수록돼 있다. 개념탐구 문제와 예제는 수업 시간에 강사와 함께 풀고, 미션 문제는 수업이 끝난 후 자습실에서, 확인 학습 문제는 집에서 숙제로 풀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강사가 개념탐구 문제를 풀면서 칠판에 쓴 내용을 아이가 그대로 노트에 옮겨 적는 모습이었다. 필기할 때 내용을 빠뜨리면 벌점이 부여되기도 했다. 이렇게 운영하는 이유가 뭘까?     일반적으로 수학 교재엔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특이하게 황소 교재엔 그게 없더군요. 황소가 문제 풀이 기계를 만든다는 오해가 거기서 시작된 것 같습니다. 개념은 수업 시간에 강사가 충분히 설명합니다. 수업의 60% 이상을 개념 설명에 할애하죠. 개념탐구 문제가 바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엄선한 문제예요. 강사가 개념을 설명하기 전에 아이가 먼저 문제를 풀게 합니다. 특정 개념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닫게 하려는 취지입니다. 그 뒤 개념을 설명하고, 문제에 적용해 보는 것이죠.   엄선했다고 하지만, 문제 하나로 개념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개념탐구 문제에 4개의 예제가 수록됩니다. 개념탐구 문제를 통해 배운 개념을 문제에 적용하면서, 해당 개념을 익히고 활용할 수 있게 돕죠. 예제 역시 ‘티칭 포인트’가 설계되어 있습니다. 예제를 통해 단순히 정답을 구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그 문제를 통해 습득해야 할 수학적 사고력을 익히는 게 목적이에요.   개념탐구 문제와 예제를 푸는 과정을 강사가 칠판에 적고, 아이들은 그걸 노트에 적는 건가요? 개념 설명이 교재에 없을 뿐 수업 시간에 설명과 판서를 통해 이뤄집니다. 아이가 선생님의 판서를 노트에 필기하며 교재의 빈 부분을 완성하는 거죠. 혼자 문제를 풀다가 막히면, 직접 필기한 노트를 들추며 개념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요.   정답은 하나일지 몰라도 그 답에 이르는 과정은 다양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수업 시간에 교사가 알려준 풀이법을 그대로 필기하고, 그 방법을 따라 풀도록 하는 게 맞을까요? 두 가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하나는 황소 교재는 시험이 아니라 수업을 위해 설계됐다는 겁니다. 모든 문제엔 티칭 포인트가 있어요. 어떤 문제를 통해 학생이 알아야 할 수학적 사고력을 습득하는 게 목적이죠. 그래서 강사의 풀이법을 따라 쓰게 하는 겁니다.   또 다른 이유는 뭔가요? 효율적인 해법이 존재하는 문제도 있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풀 수 있는 문제도 있습니다. 완전히 창의적인 방법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도 있고요. 문제를 내는 의도, 시험의 수준에 따라 다릅니다. 수능 같은 시험은 출제자가 문제 해결의 경로까지 설계합니다. 교육 과정 중 특정 개념을 연결하고 추론하면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죠. 이런 문제를 풀 때 출제자의 의도와 다른 경로를 이용하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석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죠.     수학을 잘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잘 푸는 게 황소의 교육 목표인가요? 황소의 목표가 수학자를 양성하는 건 아닙니다. 입시의 도구로서 수학을 가르치는 기관이죠. 그렇다고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기계를 만들겠다는 건 아닙니다. 황소에선 문제를 쉽게 푸는 기술이나 편법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기본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문제에 적용해 풀 수 있도록 교육하죠. 이정헌 대표는 "수능 정도의 시험은 출제자가 문제를 낼 때 해결 경로까지 설계한다"며 "이런 시험에선 의도한 풀이법이 아닌 방법으로 푸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황소의 엄격한 시스템은 올림픽 선수촌을 떠올리게 한다. 제한된 시간 안에, 그것도 상당한 난도의 문제를, 질문조차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끙끙대며 풀게 한 뒤 하나라도 틀리면 과제를 완수했다고 인정하지 않으니 말이다. 만 10세 안팎의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수학을 공부해야 하는 걸까? 취재하는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질문에 대한 이 대표의 답은 이랬다.   죽어도 못 풀 것 같은 문제인데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 될 거 같아요. 시도를 해보겠죠. 그러면 ‘어, 되네?’ 하는 순간을 만납니다. 이걸 경험하면 달라져요.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않죠. 황소는 이런 성공 경험을 만들어주는 겁니다.   ■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 「 ①“초등 학원도 대입이 좌우” 국‧영‧수 시장 들여다보니(2월 26일 발행) ②“사고력 찍고 황소 간다” 수학학원 대해부(2월 27일 발행) ③“어렵게 공부해야 잘한다” 이정헌 생각하는 황소 대표 인터뷰(2월 29일 발행) ④“수능 영어, 초등학교 때 끝낸다?” 영어학원 대해부(3월 4일 발행) ⑤“사고력 좋아야 영어 잘한다” 김용 PEAI어학원 부원장 인터뷰(3월 5일 발행) ⑥“다독 잡고 정독으로” 국어학원 대해부(3월 7일 발행) ⑦“읽기? 쓰기가 문해력 핵심” 김수미 논술화랑 대표 인터뷰(3월 8일 발행) 」 

    2024.02.28 15:09

  • 초등생이 ‘고교 수학’ 끝낸다…입학시험에 5000명 몰린 학원 ②

    초등생이 ‘고교 수학’ 끝낸다…입학시험에 5000명 몰린 학원 ② 유료 전용

    입시 정책이 바뀌어도 결론은 수학을 잘하면 된다는 겁니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압구정의 한 영화 상영관. 대치동에서 시작한 사고력 수학학원 ‘필즈더클래식’의 강신흥 대표는 대형 스크린에 ‘2028년 대입 수능 수학 개편안’ 자료를 띄워놓고 이렇게 말했다. 이달 실시하는 이 학원 입학시험을 앞두고 열린 학원 설명회 자리에서다. 160석을 가득 채운 학부모 대다수의 자녀는 ‘7세’였다. 강 대표는 “7세도 사실 조금 늦었다”고 했다. “초등 3, 4학년부터 선행에 들어가면 쉴 틈이 없다”는 이유였다. 그는 “일찍 개입해 심화 학습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고 말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이날 현장은 대치동 ‘닥수(닥치고 수학)’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말은 ‘수학이 제일 중요하다’는 의미로, 양육자 사이에서 널리 쓰인다. 그만큼 수학이 입시 성패를 좌우하는 주요 변수라는 얘기다. 이과 쏠림, 의대 열풍에 힘입어 수학은 일찍 시작해 오래 공들여야 하는 중요 과목이 됐다. ‘수학에 올인하기 위해선 영어를 초3 때까지 끝내야 한다’거나, ‘수학 문제를 풀려면 문해력을 키워야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를 진행하며 가장 먼저 수학을 들여다본 이유이기도 하다.      ■  「 Intro. 지금 대치동 초등은 ‘닥수(닥치고 수학)’ Part1. 시작은 사고력 수학부터 Part2. 3~5년 빨리, 빨라진 선행 시간표 Part3. 초등도 심화 전성시대 」   ━  Part1. 시작은 사고력 수학부터   대치동에선 6세엔 수학학원에 입문한다. 5세에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5세부터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영어학원)에 다니는 아이가 늘어난 터라 수학도 그즈음 시작하는 것이다. 5세 말 치르는 6세반 수학학원 입학시험에서 영유 친구들을 다 만난다는 말도 나온다. 수학학원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한글을 미리 떼기도 한다.      수학학원의 시작은 ‘사고력 수학’이다. 사고력 수학은 연산이나 교과 수학과 달리 문제를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보면서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고력 수학 교재를 가지고 학습하는 게 보통이다. 교구 활동, 놀이, 게임 등을 하거나 탐구 일지나 수학 일기를 쓰기도 한다. 자연스레 수 개념, 도형, 공간 지각력, 논리 추론 등을 높이려는 취지다. 박정민 디자이너. 소마 사고력 수학·CMS영재교육센터·시매쓰·필즈더클래식 등이 대표 학원으로 꼽힌다. 대부분 대치동에서 시작해 전국에 직영 혹은 가맹 학원을 보유하고 있는 곳들이다. 소마는 6세부터 다닐 수 있다. 최상위반인 소마 프리미어, 일명 ‘소프’가 이 학원의 꽃으로 불린다. 7세 말부터 시작하는 이 반에서는 경시대회를 준비한다. 시매쓰는 사고력 수학학원의 선두주자로 알려져 있다. 교구를 활용하는 수업이 많고, 교과 과정도 함께 다룬다. CMS는 연산이나 교과 수학은 거의 하지 않는 ‘정통 사고력’ 학원으로 유명하다. 2017년 말 개원한 필즈는 심화 학습을 강조하는 학원으로, 선행과 심화에 특화되어 있다.   사고력 수학의 탄생은 200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외국어고등학교나 영재교육원 입학 시험 등에서 출제되던 까다로운 수학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후 대형 학원에서 관련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만들면서 본격화된 뒤 미취학·초등 저학년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다.     박정민 디자이너 사고력 수학이 유·초등 필수 코스가 된 건 ‘수학 머리를 만들어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임수진(40·강남구 청담동)씨는 그런 이유로 초4인 딸에게 1학년 때부터 사고력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여러 단계에 거쳐 다방면으로 생각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를 풀려면 수학 머리가 필요한데, 그걸 기르려면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5인 아들을 5년간 사고력 수학학원에 보내고 있는 김영지(41·서초구 잠원동)씨도 “공부를 할 때도, 일할 때도 결국 논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학적 사고력’이 필요하더라”며 “연산보다는 사고력 수학이 수학적 사고력을 길러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사고력 수학을 하면 수학을 잘한다’는 믿음도 깔려 있다. 여기엔 학원이 내세우는 각종 실적이 강력한 근거로 작용한다. 각 학원에서 경시대회나 영재교육원 대비반을 운영하면서 입상이나 합격생 실적을 홍보하기 때문이다. “수학 잘하는 아이들은 어렸을 때 사고력 수학학원에 다녔다더라”는 입소문이 “사고력 수학을 하면 수학을 잘하더라”는 인식을 만든 것이다.     사고력 수학을 심화 수학을 위한 전 과정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뚜렷했다. 대치동 초등 수학학원 생태계 정점에 있는 ‘생각하는 황소’(이하 황소)의 입학시험에서 사고력 수학 유형의 문제가 주로 출제되기 때문이다. 초4 과정부터 시작하는 황소는, 대표적인 교과 심화 학원이다. 이정헌 황소 대표는 “아이의 수학적 사고력을 엿볼 수 있는 문제가 출제되다 보니 사고력 수학을 해야 유리하다는 인식이 생겼다”면서 “하지만 사고력 수학을 공부한다고 더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효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올해 초1이 되는 둘째를 소마에 보내고 있는 최미희(40· 강남구 대치동)씨는 “첫째는 사고력 수학을 시키지 않았는데 후회한다”며 “사고력 수학만 하는 게 아니라 교과 과정도 챙겨줘서 자연스럽게 선행과 심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수진씨는 “사고력 수학만 하면 교과와 연산에 구멍이 생기더라”고 했다. 그의 딸(초4)은 사고력 수학 외에도 교과 수학을 따로 다닌다. 안희경(36·양천구 목동)씨는 딸이 7세 되던 해부터 보내던 사고력 수학학원을 초1 때 그만뒀다. “7세 반에서 곱셈을 해야 따라갈 수 있을 만한 문제를 다뤘기” 때문이다. 학년이 올라가니 뒷받침해 줘야 하는 선행 속도는 더 빨라졌다. 결국 그는 사고력 수학학원 대신 교과 수학에 방점을 찍는 학원으로 옮겼다. 서울의 한 초등 사고력 수학학원에서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Part2. 3~5년 먼저, 더 빨라진 선행 시간표   대치동 상위권 아이들은 제 학년보다 3~5년 앞선 과정을 배운다. 황소의 경우 초4 과정부터 시작한 학생이 고1 내용까지 마치는 데 최상위 반은 2년6개월, 가장 낮은 반은 3년6개월 걸린다. 최근엔 “황소는 진도가 느린 편”이란 평가가 나온다. 초2에 초등 전 과정을 마무리하고, 이듬해 중등 교과를 시작해 이르면 초5~초6에 고등 과정을 시작하는 게 일반화된 탓이다. 이정헌 황소 대표는 “입학시험에 붙었지만 등록하지 않거나 중간에 그만두는 아이들이 생겨났다”며 “대부분 더 진도가 빠른 학원에 간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황소 역시 선행에 일조한 측면이 있지만, 지금의 선행 속도는 우려스럽다”고 했다.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는 것이다.    선행 학습이 상위권 학생들만의 얘기는 아니었다. 중위권 아이들 역시 1~2년 선행은 일반적이었다. 그 정도 선행하지 않으면 갈 수 있는 학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SKY 로드맵』의 저자인 이병훈교육연구소 이병훈 소장은 “학군지 학원가에서 1~2년 선행은 ‘예의’”라며 “그러지 않으면 갈 수 있는 학원의 선택지 자체가 줄어든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양육자들은 “사고력 수학학원 7세반 입학시험에 등록했다가 ‘두 자릿수 덧셈과 뺄셈까지 준비해 달라’는 문자를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두 자릿수 덧셈·뺄셈은 초2 과정에 나오는 개념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뒤늦게 학원에 보내면 진도 격차를 따라잡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일찌감치 학원 보내는 게 이득”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어릴수록 입학시험 문제가 쉽게 출제되고, 높은 반을 배정받을 수 있는 가능성도 크기 때문이다.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초등 5, 6학년이면 고등 과정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서점에 고등 수학 문제집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선행 속도가 이렇게까지 빨리지는 이유는 뭘까? 학원의 공포 마케팅이나 양육자의 불안, 경쟁 심리 탓만은 아니다. 초등 교사이면서 초5·초1 두 아들을 키우는 정주혜(42·강남구 개포동)씨는 “고등 교사들이 초등 때 선행 학습을 하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수시와 수능을 모두 챙겨야 하는 입시 구조 때문에, 고등학생이 되면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현재 서울권 주요 대학은 입학생의 60%를 수시(학생부교과, 학생부종합전형 등)로 뽑는다. 수능을 주로 보는 정시보다 비중이 크다 보니 학생들은 내신 성적을 중요하게 관리한다. 내신에서 반영 과목 비중이 가장 큰 건 고등학교 1학년 성적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이 주요 전형으로 등장하면서, 수행평가, 각종 활동 등 챙겨야 할 것도 많아진다. 선행 학습이 필수가 된 이유다. 『수학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공부합니다』의 저자이자 일산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하는 류승재 원장은 “학기 중엔 할 게 너무 많아 현행 문제집 한 권을 풀기도 빠듯하다”며 “선행이 된 학생들이 누적으로 3권을 풀었다면, 1권 푼 학생이 이들보다 고득점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대치동 수학학원 원장은 “고등학교 때 고등 수학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중학교 때 고등 과정을, 초등학교 때 중등 과정을, 유치원 때 초등 과정을 해야만 한다. 『대치동 초등 로드맵』의 저자인 손아름 에스온수리영재아카데미원장은 “내신이든 수능이든 시험 범위는 정해졌고, 목표에 따라 몇 등급을 받아야 하는지 결과도 정해져 있는 구조”라면서 “먼저 시작하고, 제대로 선행을 밟는다면 유리한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작년 7월 강원 춘천 시내 한 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2023 강원학생성장진단평가'를 치르고 있다. 도교육청이 도내 학생들의 학업 수준을 파악하고자 도내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진단평가다. 연합뉴스  ━  Part3. 초등 심화 전성시대   선행과 함께 초등 수학 사교육 시장을 떠받치는 또 다른 기둥은 심화였다. 심화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력은 주로 중·고등학생이나 최상위권 학생에게 요구되던 역량이었다. 하지만 이제 초등학생도 갖춰야 할 능력이 됐다. 1990년대 ‘하이레벨’은 극소수를 위한 문제집이었지만, 2020년대 ‘최상위수학’은 아이들 대부분이 기본과 응용을 마치면 푸는 문제집이다.   심화에 대한 관심은 황소의 인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황소는 교과 심화 학원으로, 입학시험과 수업 내용이 어렵기로 정평이 난 학원이다. 그런데도 매년 전국에서 수천 명의 초등학생이 입학시험을 본다. 지난 4일 시행한 입학시험엔 전국에서 초2, 초3 학생 약 5000명이 응시했다. 이 시험의 평균 점수는 16점, 전국 1등 성적도 62점에 불과했다.      경시대회 인기도 뜨겁다. 양육자 사이에 ‘성대 경시’로 불리는 전국 영어·수학 학력 경시대회는 어려운 축에 속한다. 일 년에 2번 실시되는데, 분기마다 학년별로 1500~2000명이 참여한다. 시험을 주최하는 글로벌영재학회에 따르면, 초등 저학년(초1~초3)의 참여가 늘어나는 추세다. 대치동에서 초5, 초1 두 아이를 키우는 최미희씨는 “대치초의 경우 성대 경시 날과 그 전날엔 한 반의 절반이 체험학습을 쓴다”고 했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시험 당일뿐 아니라 전날도 학교를 쉰다는 것이다.   초등 때부터 심화 학습에 열중하는 건 대입 때문이기도 하다. 수능에서 수학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을 풀 수 있는지가 변별력을 가르는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손아름 에스온수리영재아카데미원장은 “수능 수학의 범위가 ‘선택제’로 줄었는데, 한정된 범위 내에서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려운 문제가 늘어난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고등에 가서 단기간 심화 문제 해결력이 생기기 어려우니, 초등부터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원인도 있다. 바로 선행이다. 학원가에서는 선행은 기본이고, 현행이나 후행으로 심화를 덧대는 구조로 수업하는 경우가 많다. 손 원장은 “선행 진도를 빠르게 빼면서 기본 개념만 겉핥기로 배우면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행 학습으로 생긴 구멍의 해결사로 심화 학습이 떠올랐다는 얘기다. 선행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심화를 강조하는 이유기도 하다. 대치동 수학학원 올마이티캠퍼스의 여호원·호용 대표는 “선행 학습이 의미가 있으려면 현행에서 개념을 충분히 깊이 있게 이해해야 한다”며 “심화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전혀 보지 않는 게 심화 학습을 부추긴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에선 2011년, 전국 단위에선 2017년부터 초등학교에서 지필 평가가 사라졌다. 류승재 원장은 “초등학교에서 어렵지 않은 문제로 구성된 단원 평가만 보다 보니 수학을 잘한다고 착각하고 있다가 중·고등학교 가서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학교에선 확인할 수도, 공부할 수도 없으니, 학원의 심화 강조 분위기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취재 과정에서 만난 양육자들은 “아이의 실력을 확인하려고 학원 입학시험을 본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초등 교사인 정주혜씨는 “아이를 수학학원에 보내지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제대로 안 해서 보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고력으로 시작해 선행과 심화를 달리는 초등 수학, 이를 주도하는 대치동 학원의 생각은 어떨까? hello! Parents는 다음 편에서 황소 이정헌 대표를 직접 만나 그의 생각을 들어봤다. 서울의 한 학원가에 수학학원 과정을 알리는 홍보물이 걸려 있다. 뉴스1   ■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 「 ①“초등 학원도 대입이 좌우” 국‧영‧수 시장 들여다보니(2월26일 발행) ②“사고력 찍고 황소 간다” 수학학원 대해부(2월27일 발행) ③“어렵게 공부해야 잘한다” 이정헌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2월29일 발행) ④“수능 영어, 초등학교 때 끝낸다?” 영어학원 대해부(3월4일 발행) ⑤“사고력 좋아야 영어 잘한다” 김용 PEAI어학원 부원장 인터뷰(3월5일 발행) ⑥“다독 잡고 정독으로” 국어학원 대해부(3월7일 발행) ⑦“읽기? 쓰기가 문해력 핵심” 김수미 논술화랑 대표 인터뷰(3월8일 발행) 」 

    2024.02.26 15:19

  •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①

    국영수 1등 이 학원 다녔다…엄마들 쉬쉬한 ‘대치동 학원’ ① 유료 전용

    그 집 애, 어느 학원 다닐까?   궁금하지만, 내놓고 묻기도 어려운 질문이다. 대입 성공의 중요 요소로 꼽히는 ‘엄마 정보력’도 결국은 학원 정보가 핵심이다. 학원에 대한 관심이 이토록 높은 건 공교육이 제 역할을 못 하기 때문이다.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 특별기획 ‘학습이 사라진 학교’에서 확인했듯, 아이들은 학교가 아니라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박정민 디자이너 한국의 학부모가 1년간 쓰는 사교육비는 26조원(2022년)에 달한다. 그런데 정작 학원 정보를 얻는 건 쉽지 않다. 홈페이지조차 없는 학원이 있는가 하면, 맘카페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 정보는 신뢰하기 어렵다. 알짜 정보는 학부모 사이에서만 알음알음 전해진다. hello! Parents가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를 기획한 건 그래서다. 사실상 학습 기능을 전담하고 있는 사교육 시장의 지형을 7회에 걸쳐 파헤친다.   이를 위해 한 달 넘게 대치동 학원 관계자 15명과 학부모 12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아이들이 언제부터, 어떤 학원에 다니고 있는지, 왜 그 학원을 선택했는지 물었다. 그렇게 확인한 초등 사교육 시장의 트렌드는 크게 3가지였다.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는 연령은 더 어려졌고, 선행의 속도는 더 빨라졌다. 이 모든 건 대입 정책의 영향이었다. 대입 경쟁이 사실상 초등에서 시작된다는 얘기다. 보다 솔직한 속이야기를 듣고자 학부모 이름은 모두 가명으로 처리했다.   ■  「 Intro. 대치동 초등 사교육 들여다본 이유 Part1. 사교육 시작 연령, 점점 빨라진다 Part2. 선행과 반복, 선택 아니라 필수다 Part3. 학원가 ‘보이지 않는 손’은 대입이다 」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입시 업계가 들썩이는 분위기를 보이는 가운데, 지난 13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이 세워져 있다. 뉴스1  ━  ✍️사교육 시작 연령, 점점 빨라진다   대치동 아이들은 5세면 영어, 6세엔 수학, 7세가 되면 국어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사교육 입문 과목은 영어였다. 일찍 배워야 모국어처럼 습득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영어유치원(유아 대상 영어학원, 이하 영유)이 일반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2014년 332곳이었던 영유는 지난해 6월 기준 847곳으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아이가 어릴수록 영어가 중요했다. 이때 배우는 영어는 ‘미국 교과서’가 기준이었다. 영유를 졸업한 뒤 보내는 학원 대부분이 미국 교과서를 교재로 사용해 듣기‧말하기‧읽기‧쓰기 4가지 영역을 골고루 가르치고 있었다. 대치동 ‘빅3’로 꼽히는 PEAI·ILE·렉스김어학원이 대표적이다. 이들 학원 중 어디에 몇 명을 합격시켰는지에 따라 영유 서열이 나뉘기도 했다.   특히 영어는 또래 집단이 학원 선택에 영향을 미쳤다. 멀리서까지 대치동으로 아이를 실어 나르는 학부모도 적잖았다. 초6 아들과 초3 딸을 키우는 김민지(40‧광진구 광장동)씨는 “잘하는 친구들과 대화하며 자극을 받았으면 해서 아이를 대치동까지 데리고 다닌다”고 말했다. 그는 “1학년 때부터 대치동으로 영어학원을 다니는 아이의 친구도 많다”고 했다.   수학은 6세에 ‘사고력 수학’으로 시작한다. 사고력 수학은 정규 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과정(교과 수학)은 아니다. 교과 수학과의 차이는 개념을 다루는 방법이다. 손아름 에스온수리영재아카데미 대표는 『대치동 초등 로드맵』에서 “교과 수학이 일방적으로 (개념을) 설명하고 문제를 풀게 한다면, 사고력 수학은 주제를 던져주고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해 규칙을 찾게 돕는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논리적 추론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매쓰‧CMS‧소마사고력수학‧필즈더클래식 등이 대표적이다. 초4 딸을 키우는 임수진(40‧강남구 청담동)씨는 “아이가 유치원 다닐 때만 해도 수학학원 다니는 애가 거의 없었는데, 요즘은 유치원 때 사고력 수학이 필수인 분위기”라고 말했다. 그는 “6세에 시작해 쉬지 않고 달려, 초등 고학년쯤 되면 고교 과정까지 끝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서울 강남 대치동에서는 5세면 영어학원, 6세 땐 수학학원, 7세가 되면 국어학원에 다닌다. 한 학생이 걸어가면서 책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7세가 되면 독서‧토론‧논술 학원에 다닌다. 논술화랑‧문예원‧C&A논술‧지혜의숲‧MSC 등이 대표 주자다. 1년 이상 대기를 해야 하는 학원도 있다. 이들 학원은 과거엔 초3 무렵에 보냈지만, 최근엔 7세로 내려왔다. 논술화랑을 운영하는 독서문화연구원 김수미 대표는 영유와 문해력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5세부터 영유에 다니다 보니, 영어는 잘하는데 한국어를 못하는 아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초등학교 입학 전에 한국어로 지식을 습득하는 역량을 키우기 위해 7세에 학원을 찾는 아이들이 많다”고 전했다. 스마트폰 보급으로 문해력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도 배경이다.   초등 4학년을 기준으로 학원 지형도는 크게 달라진다. 본격적인 대입 레이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사고력 수학은 교과 수학으로, 미국식 영어는 내신과 수능을 위한 문법·독해 중심의 한국식 영어로, 독서‧토론‧논술은 독해 중심의 국어로 학습의 축이 이동한다. 수학공부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영어‧국어 학원 시간을 줄이는 것도 이 때다. 이 시기 학부모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학학원은 단연 ‘생각하는 황소(황소)’였다. 이 학원 입학 테스트를 통과하기 위해 과외를 받거나 다른 학원에 다니는 아이도 많았다. 초5 딸과 초1 아들을 키우는 최미희(40‧강남구 대치동)씨는 “황소가 대치동 수학학원 생태계 정점에 있다”며 “여기 레벨테스트에서 떨어지면 그다음에 가는 학원, 그다음에 가는 학원이 다 있고 이들 학원의 교육 목표는 황소 입학”이라고 말했다.   영어와 국어는 내신과 수능 준비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다. 영어는 문법과 독해 위주 학원이, 국어 역시 비문학 지문 독해 중심 학원이 부상한다. 이 시기 아이들이 많이 가는 학원은 영어의 경우 이맥스·이안·KNS·해빛나인어학원, 국어는 기파랑·지니국어·천개의고원 등이었다. 국제학교나 특목‧자사고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빅3 영어학원을 유지하면서 문법수업을 따로 듣기도 했다. 대치동 학원 정보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김현정 디스쿨 대표는 “사교육 시작 연령이 점점 빨라지면서 초4부터 수능 준비를 하는 게 일반적이 됐다”며 “초등 6년 과정이 ‘유치원 3년+초등 3년’으로 재편됐다”고 말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  ✍️선행과 반복, 선택 아니라 필수다   사교육 시작 연령이 낮아지면서, 선행 학습과 반복 학습은 필수가 됐다. 반복을 위해 선행을 하고, 선행을 하니 반복이 가능해지는 구조다. 이 구조의 핵심은 수학이다. 대치동에서는 3~4년 선행이 일반화돼 있었다. 초등 5~6학년 무렵이면 중등 과정을 마치고 고교 과정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hello! Parents가 취재한 학부모 12명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선행 학습을 시키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SKY 로드맵』을 쓴 이병훈교육연구소 이병훈 소장은 “빠른 경우에는 초등학교 저학년이 고등학교 수학을 공부하는 경우도 봤다”고 했다.   영어도 예외는 아니다. 보통 만3세인 영유 1년 차에 미국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을 배우기 때문이다. 14년 차 영어 강사인 ‘대치동 헤더샘’ 문효정씨는 “대치동 빅3 같은 미국식 영어학원의 레벨테스트에 합격하려면 초1 때 미국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이어야 한다”고 했다. 영어권 국가에서 살았다 해도 합격이 보장된 건 아니다. 대치동에서 영유를 졸업한 아이보다 영어를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다. 최미희씨는 “딸이 6살 때부터 2년간 미국에 살았는데, 대치동 애들보다 영어를 못한다”며 “대치동에서 유명한 학원 레벨테스트도 다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그는 “딸이 친구들에게 미국에서 살다 왔다는 얘길 아예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은 사실상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대입 경쟁에 뛰어들고 있었다. ‘애 잡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하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다. 수능은 시험 범위가 정해진 객관식 시험이다. 일찍 시작해 여러 번 반복하면 유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최상위권을 변별하기 위해 출제되는 ‘킬러 문항’이 선행 시기를 더 앞당기게 만들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치동에선 아이들마저 선행 학습을 당연하게 여긴다. 초5 딸을 황소에 보내고 있는 이민수(44‧강남구 개포동)씨는 “아이가 대성통곡할 정도로 힘들어하는데도 그만두려 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친구들이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걸 보면서 버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의 딸은 “초등학교 과정 하는 애는 나밖에 없다”며 “난 언제 중학교 수학 해?”하고 묻곤 한다. 박정민 디자이너 선행 학습은 고등학교 때 공부할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수능으로 대학 가던 시절이 끝났기 때문이다. 요즘엔 수시로 대학에 가는 학생이 더 많다. 내신도 챙기면서, 수능까지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학생종합부전형(학종)이 도입되면서, 수행평가도 크게 늘고 동아리 같은 다양한 활동의 중요성도 커졌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보니, 미리 공부를 해두자는 전략이다. 초5‧초1 아들을 키우는 정주혜(42‧강남구 개포동)씨는 “고등학교 때 정작 공부할 시간이 없다 보니 내신과 수능을 위한 공부를 미리 해두는 게 유리하다”며 “학종 때문에 해야 할 활동은 늘었는데, 수능의 영향력도 줄지 않은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학습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선행 학습이지만, 효과적이기만 한 건 아니다. 질보다 양에 집착하다 보니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고등학교 과정을 공부하는 아이가 정작 제 학년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이 구멍을 메우기 위한 방법은 반복 학습이다. 초4·초1 아들을 키우는 이혁진(44·강남구 대치동)씨는 “대치동에선 반복 학습이 절대적인 명제”라고 전했다. 경기도 일산에서 수학학원을 운영하는『수학 잘하는 아이는 이렇게 공부합니다』 저자 류승재씨도 “대치동엔 선행 학습의 구멍을 메워주는 개별첨삭 학원이나 맞춤형 학원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1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학교에서 열린 서울특별시교육청 주최 '2024 대입 정시모집 대비 대입 설명회'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설명회를 듣고 있다. 뉴스1  ━  ✍️초등 학원도 대입이 결정한다   사교육 진입 시기가 어려지고, 선행 속도가 빨라지는 건 대입 때문이다. 2018학년도부터 적용된 수능 영어 절대평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어는 90점만 넘어도 1등급을 받기 때문에 최상위권을 변별하는 데 수학이 중요해졌다. 문제는 수학이 어려운 과목이라는 것이다. 고등학생 3명 중 1명이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일 정도다. 그렇다 보니 학부모 입장에선 수학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대치동에선 초등 고학년 이후 수학에 ‘올인’하기 위해 그 전에 영어를 끝내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초4 아들을 키우는 박해인(41·강남구 대치동)씨는 “초3만 돼도 영어는 하산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보통 대치동 빅3 영어학원 수준으로 공부하면 원어민과 의사소통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여기에 부족한 문법만 보충해 주면, 수능 1등급 수준은 도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임수진씨도 “영어는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돼 있고 수능도 절대평가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 빨리 끝내고 수학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2022년 실시된 문‧이과 통합 수능도 수학에 올인하는 분위기에 일조했다. 대입에서 자연계열 학생들이 우위를 점하면서 이과 선호 현상이 뚜렷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치러진 수능에서 수학 1등급을 받은 수험생의 96.5%는 이과였다. 전년도(81.4%)보다 증가한 수치다. 실제로 이과생들이 주로 응시하는 미적분 표준점수 최고점은 148점, 문과생들이 응시하는 확률과통계는 137점으로, 무려 11점이나 차이가 났다. 결국 이과생들이 문과 전공으로 교차 지원해 합격하는 ‘문과 침공’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혁진씨는 “의대나 이공계 등 대부분 분야에서 이과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며 “일찍부터 수학 선행을 시키는 것도 이과 쪽으로 진학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어학원이 부상하는 것도 대입 때문이다. 국어 비문학 지문이 어렵게 출제되면서 변별력을 가진 과목이 됐기 때문이다. 정주혜씨는 “‘국어는 다시 태어나야 잘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했다. 올해부터 논‧서술형 문항만으로 내신 평가가 가능해지는 것도 업계에선 호재로 보고 있었다. 여성오 C&A논술 원장은 “수능이 아직은 객관식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서술형으로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며 “내신의 변화만으로도 독서‧토론‧논술을 공부하는 연령은 더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hello! Parents 특별 기획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는 앞으로 과목별 학원 지형도를 들여다본다. 학부모들이 가장 보내고 싶어 하는 학원 대표를 직접 만나 학습법도 추천받았다.  학생들의 사교육 진입 시기가 어려지고, 선행 속도가 빨라지는 건 대입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이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 대치동으로 본 초등 사교육 대해부 「 ①“초등 학원도 대입이 좌우” 국‧영‧수 시장 들여다보니(2월26일 발행) ②“사고력 찍고 황소 간다” 수학학원 대해부(2월27일 발행) ③“어렵게 공부해야 잘한다” 이정헌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2월29일 발행) ④“수능 영어, 초등학교 때 끝낸다?” 영어학원 대해부(3월4일 발행) ⑤“사고력 좋아야 영어 잘한다” 김용 PEAI어학원 부원장 인터뷰(3월5일 발행) ⑥“다독 잡고 정독으로” 국어학원 대해부(3월7일 발행) ⑦“읽기? 쓰기가 문해력 핵심” 김수미 논술화랑 대표 인터뷰(3월8일 발행) 」   ■ 더중앙플러스- 더 많은 정보를 보려면 아래 기사를 클릭하세요. 「 초등생이 ‘고교 수학’ 끝낸다…입학시험에 5000명 몰린 학원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1216    “수학의 정석, 왜 3번씩 보나” ‘생각하는황소’ 대표 인터뷰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1784    수학은 동네 학원 보내라…단, 영어는 대치동뿐이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2517    ‘봉준호 아바타’ 여기 다녔다…원어민 뺨치는 영어실력 비법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2764    “국어는 집 팔아도 안된다” 대치동에 이런 말 도는 이유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3293    “집 안 팔고 국어 키울 수 있다”…‘1년 대기’ 논술화랑이 푼 비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33545    」 

    2024.02.25 15:21

  • 감기에 ‘좋은 열, 나쁜 열’ 있다…“이때는 해열제 먹이지 마라”

    감기에 ‘좋은 열, 나쁜 열’ 있다…“이때는 해열제 먹이지 마라” 유료 전용

    팬데믹 이후 감기 환자가 끊이질 않아요. 원래는 일교차가 심한 봄가을에 감기 환자가 늘어났다가 여름이면 줄어들었는데, 이젠 1년 내내 찾아옵니다. 백정현 우리아이들병원 병원장은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병원 풍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22년 9월 16일 발령된 인플루엔자(독감) 유행 주의보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통상 봄이 되면 이전 절기(2022~2023) 주의보가 해제되고, 가을에 새로운 절기(2023~2024) 주의보가 발령되기 마련인데 올 8월까지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2000년 국가 인플루엔자 표본 감시체계가 구축된 이후 역대 최장 기록이다.   우리아이들병원은 더욱 분주해졌다. 전국 유일 소아청소년 전문병원으로 하루에도 수백 명의 환자가 찾는 탓이다. 서울 구로·성북구에서 각각 20여 명의 전문의가 평일 오전·오후는 물론 야간, 주말·공휴일까지 돌아가며 진료하고 있지만, 병원은 항상 발 디딜 틈 없다. 소아과 부족으로 새벽 5시부터 줄 서는 ‘오픈런’이 계속되자 지난해 5월부터는 모바일 예약 시스템을 도입했다. 하루 세 차례 시간대별로 나눠서 예약을 받지만 1분이면 마감된다. 박정민 디자이너 백정현 병원장은 병원 내에서도 예약하기 어려운 의사로 꼽힌다. 어떻게 하면 환절기마다 병원을 찾는 신세를 면할 수 있을까? 언제쯤이면 감기를 달고 살지 않아도 되는 걸까?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는 지난 13일 백 병원장을 만나 직접 물었다.   ■  「 Intro. 코로나 끝나자 연중행사 된 감기Part 1. 감기도 구분이 필요한 이유Part 2. 골든타임 놓치면 안 되는 이유Part 3. 어릴수록 주치의 필요한 이유 」   ━  🤧또 걸렸어? 다 같은 감기 아니다     양육자에게 감기는 가장 흔하지만, 골치 아픈 질환이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 찾아오고, 걸릴 때마다 증상이 달라 알다가도 모르겠는 탓이다. 아이를 돌보다 쉽게 옮기도 하고, 기관에 가지 못하면 가족의 생활 패턴이 깨지기도 한다. 백정현 병원장은 “몇 가지 개념만 알면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감기엔 어떤 종류가 있나요? 사실 감기 종류는 엄청나게 많아요. 그런데 인간도 크게 황인종·백인종·흑인종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처럼 감기도 크게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어요. 가장 많은 건 흔히 ‘코감기’라고 부르는 라이노바이러스예요. 감기로 병원을 찾는 환자의 60~70%가 여기에 해당하죠. 그다음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있죠. 코로나19 전에도 있던 바이러스예요. 코로나바이러스가 낙타를 거쳐 생긴 것이 메르스고, 다른 동물을 거쳐 코로나19가 되는 식이죠. 그 외에 아데노바이러스,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 파라인플루엔자바이러스 등도 많이 나타나는 편입니다.   라이노바이러스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콧물이 가장 대표적인데, 소아과에서는 보통 콧물·기침·발열·구토·설사를 하나로 봐요. 모두 바이러스 감염으로 발생하는 증상이거든요. 아이들이 소아과를 가장 많이 찾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라이노바이러스는 아형(亞型, subtype)이 100가지가 넘어요. 황인종 안에도 한국인·일본인·중국인 등 여러 국가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종류가 다양해요. 한 번 걸렸다고 해서 안 걸리는 게 아니라 다른 게 또 걸릴 수도 있고요.   어떤 바이러스에 걸렸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유전자 증폭(PCR) 검사로 코로나에 걸렸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폐렴 원인균 호흡기 바이러스 PCR 검사로 확인할 수 있어요. 콧구멍에 면봉을 넣어 콧물을 채취해 검사하면 아데노바이러스인지, A형 독감인지 알 수 있죠. 보통 감기는 콧물이나 기침으로 시작하고, 독감은 고열이 동반되는 등 조금씩 증상 차이는 있지만 보다 정확하게 원인을 파악하는 방법이에요.   PCR은 추가 비용이 발생해 부담을 느끼는 환자도 있는 것 같아요. 막상 검사해 보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고요.   검사의 주요 목적은 환자가 아픈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지만, 원인이 없는 것을 확인하는 작업도 중요해요. 그래야 그에 맞는 치료법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특히 지금처럼 독감·마이코플라스마 폐렴 등 여러 가지가 동시에 유행하고 있는 경우에는 더 효과적이죠. 감기는 대부분 바이러스성이라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 증상이 사라지지만, 마이코플라스마는 세균이기 때문에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계속 심해집니다. 성인보다 유소아 발병률이 높기도 하고요.   왜 유소아 발병률이 더 높은가요? 성인은 무증상으로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비단 마이코플라스마뿐 아니라 대부분의 호흡기 질환이 콧물이나 기침 등 비말로 전파되잖아요. 아이들은 어린이집·유치원·학교 등 기관에서 장시간 단체 생활을 하다 보니 전염될 가능성이 높죠. 잠복기도 평균 12~14일로 긴 편이어서 언제 어디서 걸렸는지 정확하게 알기 어려워요.   코로나 이후 유행하는 호흡기 질환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멀티데믹 시대가 온 걸까요? 2020~2021년에는 독감 유행 주의보가 발령되지 않았어요. 코로나19가 한창이니 아이도, 어른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열심히 손을 닦았잖아요. 그런데 지난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되고 예방 수칙도 느슨해지면서 각종 바이러스와 세균이 전파되기 쉬운 환경이 된 거죠. 기본은 같습니다. 손만 잘 닦는 게 아니라 세수도 열심히 해야 해요. 코와 입을 잘 헹궈야 예방 효과를 높일 수 있어요. 백정현 우리아이들병원 병원장이 환자 기록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아이들병원은 전국 유일 소아청소년 전문 병원으로 하루에도 수백 명의 환자가 찾는다. 2013년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7명으로 시작해 소아청소년 영상의학과·정신의학과·치과 등 22명으로 늘어났다. 김경록 기자  ━  😷왜 안 낫지? 이때를 조심해라     아이가 감기에 걸린 지 1주일이 넘어가기 시작하면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다. 3~4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가도 병세가 악화되면 마음이 급해진다. 백정현 병원장은 “감기가 길어지면 합병증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며 “질환이 만성화되지 않도록 적절한 치료와 함께 생활 습관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기로 인한 합병증은 어떤 것이 있나요? 바이러스는 사람이나 동물 등 숙주가 없으면 살지 못해요. 그런데 감기에 걸리면 그만큼 면역력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특히 좋아하죠. 그래서 감기가 나을 만하면 또 다른 감기에 걸리기도 하고, 약해진 부위에 문제가 생기기도 해요. 코가 막히거나 목 뒤로 넘어가는 부비동염, 염증이 귀로 번지면서 생기는 중이염처럼요. 기침이나 가래가 계속되면 모세기관지염이나 폐렴이 되기도 합니다.   양육자가 주의해서 봐야 할 증상이 있나요? 가장 눈여겨봐야 할 건 발열이에요. 39도 이상 고열이 오르고 아이가 힘들어서 끙끙 대면 몸 어딘가에 염증이 있다는 신호예요. 이땐 반드시 병원을 방문해서 치료받아야 해요. 열이 있어도 아이가 힘들어하지 않고 잘 논다면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이러스나 세균은 숙주가 시원한 상태를 좋아해요. 그래서 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스스로 몸을 뜨끈뜨끈하게 만들어서 증식하지 못하게 막는 거죠. 이럴 땐 굳이 해열제를 먹어서 열을 낮출 필요가 없어요. 몸에 나쁜 열이 아닌 좋은 열이니까요.   그럼 약을 반드시 먹어야 할 때는 언제인가요? 보통 감기는 바이러스로 시작하는데 세균 감염이 확실해지면 항생제를 처방합니다. 간혹 처음부터 항생제를 요구하거나 항생제 복용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있는데 둘 다 오남용 소지가 있어요. 항생제를 너무 자주 먹다 보면 내성이 생겨서 듣지 않을 수도 있고, 무작정 피하다 보면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으니까요.   항생제 사용 가이드라인이 있나요? 질병관리청에서 성인과 소아를 나눠서 항생제 사용지침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어요. 특히 소아는 연령별로 사용할 수 있는 항생제 종류와 용량 등 제한이 많은 편입니다. 감염 부위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코에서 목까지 이어지는 상기도와 기관지에 해당하는 하기도로 나뉘어 지침이 마련돼 있어요. 바이러스 감염일 때는 항생제 처방을 권장하지 않아요.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항생제를 많이 사용하는 편이어서 점차 줄여나가는 추세예요.   조제약을 먹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나요? 약은 크게 치료제와 증상 조절제로 나뉩니다. 대표적인 치료제가 항생제죠. 항생제는 임의로 먹으면 안 돼요. 병원에서 처방된 항생제가 바뀌면 그대로 따라야 해요. 콧물이나 기침 같은 증상을 조절하는 약은 증상에 따라 좀 더 먹거나 덜 먹어도 괜찮아요. 보통 조제약은 14일이 지나면 폐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가 먹기 힘들어하면 우유나 주스에 타서 먹여도 되고요.   조제약은 약국에서 판매되는 감기약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시판 감기약에 가장 많이 포함된 성분은 아세트아미노펜이에요. 해열제와 진통제 역할을 하죠. 기침이나 콧물이 주요 증상이라면 해당 약을 처방받아 먹는 게 낫겠죠. 만 2세 미만 영·유아에게 시판 약을 권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아직 간이나 신장 기능이 미숙해서 약을 받아들이는 것도, 배설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6세 미만이라면 조제약을 권합니다.   자주 아픈 아이가 챙겨 먹으면 좋은 영양제가 있나요? 사람마다 필요한 영양제는 다르겠지만, 비타민 D는 챙겨 먹는 것이 좋습니다. 미국소아과학회에서는 매일 400IU의 비타민 D를 섭취하도록 권고하고 있는데요. 아이가 태어나면 신생아실에서부터 하루 한 방울씩 먹입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야외 활동이 줄어들면서 직접 햇볕을 쬘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신생아부터 노인까지 모든 사람이 보충해 주는 게 좋아요. 가정요법으로 알려진 지침 중 바뀐 내용도 많다. 백정현 병원장은 “아이가 열이 날 때 미온수로 닦아주는 것보다 직접 물을 마시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신체 대사 속도가 빨라지면 탈수 위험이 높아지므로 수분을 수시로 보충해 주는 것이 좋다. 김경록 기자  ━  🤒잘 크고 있는 걸까? 주치의 정해라   한 달에도 몇 번씩 아이를 들쳐 업고 소아과로 달려가는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렇게 자주 감기에 걸리는 걸 보면 체질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발달이나 성장에 지장은 없는 걸까? 사소해 보이는 감기지만 양육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본 걱정이다. 백정현 병원장은 “12~48개월 사이 아이들이 가장 많이 소아과를 찾는다. 이 시기가 지나면 한숨 돌려도 된다”고 말했다.   48개월이 되면 어떤 점이 달라지나요? 성인은 1년에 평균 2~4회 정도 감기에 걸려요. 증상은 1주일 정도 나타나고요. 반면에 소아는 1년에 6~8회씩 걸리고, 한번 걸리면 2주일 정도 지속되죠. 만 2세 전에는 8~10회에 달하니 양육자 입장에서는 감기를 달고 산다고 느끼는 거죠. 하지만 새로운 바이러스를 돌아가면서 한 번씩 만나고 나면 어느 정도 면역력을 획득하게 되면 감기에 걸리는 빈도가 조금씩 줄어들게 됩니다.   이후에는 주로 어떤 이유로 소아과를 찾나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여전히 감기입니다. 하지만 양상이 좀 더 다양해져요. 이를테면 세균 감염이 아닌 알레르기성 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생기죠. 비염도 감기랑 기본 증상은 비슷합니다. 코에 염증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코가 막히는데 눈이 붓거나 간지럽고 다크서클이 심해진다면 알레르기성 비염일 가능성이 높아요. 체질적으로 타고나는 유전적 요인이 크지만, 꽃가루가 날리는 시기처럼 계절적 요인이나 진드기 같은 환경적 요인도 있고요.   알레르기성 질환은 어떻게 예방할 수 있나요? 약물치료가 꼭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기본 예방 수칙은 같아요.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다면 외출 시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 후 손과 얼굴을 잘 씻고, 실내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거죠. 아이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어릴수록 이 병원, 저 병원 옮겨 다니기보다는 한 곳에 주치의를 정해두고 꾸준히 다니길 권합니다.   주치의를 정하라고요? 소아과는 환자가 어리기 때문에 모든 질환이 발달과 연결돼 있어요. 폐 기능이 점차 발달하는 5세가 되면 소아 폐렴 발병률이 확 줄어드는 것처럼요. 한 아이를 꾸준히 진료하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데이터가 쌓입니다. 어떤 약에 이상 반응을 보이면 그 약을 빼고 다른 약을 찾아서 쓰는데, 처음 방문한 병원에선 알 수가 없죠. 보통 24개월이 지나면 진료실에서 자지러지게 울지 않고 의사가 묻는 말에 대답도 곧잘 하는데요. 시기에 맞는 상호작용이 이뤄지지 않으면 추가로 발달 상황을 확인해볼 수도 있고요.   발달 상황은 어떻게 확인하나요? 가장 좋은 방법은 영유아 검진을 제때 받는 것입니다. 생후 14~35일 신생아부터 만 6세까지 총 8차에 걸쳐 진행되는데요. 생각보다 자주 돌아와서 아이가 어렸을 땐 꼬박꼬박 받다가 점차 흐지부지해지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백정현 병원장은 “사람마다 필요한 영양제는 다르겠지만 비타민 D는 신생아부터 노인까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야외 활동이 줄어들면서 직접 햇볕을 쐴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보충해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경록 기자 코로나19 이후 소아과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독감 환자뿐일까? 백정현 병원장은 “한창 밖에서 뛰어놀아야 할 아이들이 실내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면역력이 저하됐다. 이로 인해 다양한 문제가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활동량이 부족하니 소아 비만 문제가 대두되고, 마스크 착용으로 입 모양을 볼 수 없어 언어 지연 문제가 나타나는 식이다.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진 만큼 미디어 사용도 덩달아 늘어나고 야외 활동은 줄어드는 악순환도 계속되고 있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어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가장 기본적인 것이 지켜져야 몸도, 마음도 건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어요.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세요. 관련기사 오은영 육아 솔루션 틀렸다…‘삐뽀삐뽀 119’ 저자의 일침 안 먹는 아이, 밥 먹다 뱉는 이유는? 직접 먹어보세요 ADHD 아니라 자폐였다? 산만함에 숨은 ‘핵심 신호’

    2024.02.21 15:01

  • ADHD 아니라 자폐였다? 산만함에 숨은 ‘핵심 신호’

    ADHD 아니라 자폐였다? 산만함에 숨은 ‘핵심 신호’ 유료 전용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는 다섯 살이 돼서야 말이 트였다. 그의 아빠가 아이의 자폐를 알아챈 것도 다섯 살이었다. 만약 아빠가 영우의 언어 지연을 이상하게 여겼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발견했다면 자폐를 막을 수 있었을까?   소아·청소년 자폐 권위자로 꼽히는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는 “자폐스펙트럼장애는 미리 예방하기 어려운 질환”이라고 잘라 말했다. 하지만 그는 “조기 발견해 적절히 대처하고, 치료하면 예후가 좋아질 수 있는 장애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자폐는 사회성 발달 장애의 하나다. 사회성을 담당하는 뇌 영역과 신경회로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질환인데,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원인을 모르니 예방도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증상이 다양하다. 경미한 고기능 자폐부터 지능이 낮고 사회적 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된 중증 자폐까지 천차만별이다. 뚜렷한 증상도, 예방법도 없으니 양육자는 답답하다.   천 교수에겐 전국의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아와 양육자들이 찾아온다. 그에게 진료를 받으려면 5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다. 그런 그가 양육자들에게 당부하는 건 바로 “핵심 신호를 찾으라”는 것이다. 자폐의 핵심 신호는 대체 뭘까? 만약 신호를 포착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헬로 페어런츠(hello!Parents)는 지난달 30일 천 교수를 만나 직접 물었다.   ■  「 Intro. 자폐, 증상 하나만으로는 모른다 Part1. 자폐와 ADHD, 여기서 갈린다 Part2. 언어 지연보다 어휘 반복 살펴라  Part3. 초기 대응, 집에서 시작해라 」   ━  🩹 자폐와 ADHD, 여기서 갈린다   그를 찾아온 양육자들은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불안을 호소한다. 말이 늦어서, 불러도 반응이 없어서, 너무 순해서, 너무 산만해서 등등 끝이 없다. 하지만 천 교수는 보여지는 행동의 원인에 집중한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문제 행동 뒤에는 ‘예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원칙이 숨어 있다”고 했다.    예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게 무슨 말인가요?   융통성이 없다는 겁니다. 자폐증은 전두엽 등 사회성을 관장하는 뇌 영역의 기능 저하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전두엽의 중요한 기능이 실행기능과 유연성인데, 자폐스펙트럼 환자들은 유연성이 저하돼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정해진 규칙은 절대 불변의 진리가 되고, 하나에 꽂혀 그것만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좁아요. 자기만의 규칙에서 벗어나면 스트레스를 받아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하죠. 문제는 자폐에서 비롯된 이런 행동을 ‘산만하다’고 해석하기 쉽다는 거예요. 이 경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로 진단될 수도 있으니 주의가 필요합니다.   자폐로 인한 문제 행동은 ADHD에서 보여진 산만함과는 뭐가 다른가요?  정확하게 말하면 산만한 게 아니라 부적절한 겁니다. 예를 들어 볼게요. 수업 시간에 산만한 아이는 가만히 있으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됩니다. 그래서 팔다리를 흔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죠. 반면 자폐스펙트럼 아이는 가만히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릅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몰라요. 즉, ‘사회적 인식’이 떨어져요. 그래서 상황에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하곤 합니다. 진료실에서 갑자기 제 무릎에 앉거나 위험한 물건을 못 만지게 하면 “싫어. 나빠”라며 소리를 지르는 식으로요. 겉으로 보기에 둘 다 산만해 보이지만 행동의 원인이 다릅니다.   당황스럽네요. 부적절한 행동이란 결국 관습에서 벗어난 행동입니다. 자폐를 사회성 발달 장애로 보는 이유죠. 이런 행동은 거부감을 줄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는 자기 관점에서 정해진 규칙을 지키려고 한 것뿐이에요. 규칙을 지키려는데 규칙을 어기라니 저항할 수밖에요. 특히 초등학교 입학 전 유아에게 산만성이 보일 때, 잘 살펴야 해요. 단순히 ADHD라고 생각 말고, 영아 때 상호작용은 잘했는지, 한 가지 특이한 거에만 꽂혔던 적은 없는지 등을 떠올려봐야 합니다.    두 행동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나요? 영유아 때 아이가 사회적 참조가 잘 됐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사회적 참조란 주 양육자의 표정과 주변 정보를 참조해 상황을 이해하고, 분별하는 겁니다. 쉽게 말해 분위기 봐 가며 행동하는 거예요. 걷기 시작한 아이는 처음 보는 물건을 만지려다가도 엄마 표정을 살피죠. 이때 엄마가 괜찮다는 표정이면 만지고, 찡그리면 멈춥니다. 그런데 자폐스펙트럼 아이는 엄마의 표정을 살피지도 않고 그냥 시도합니다. 엄마가 “안돼!”라고 주의를 줘도 멈추지 않죠. 단체 생활에서는 분위기 파악 못 한다는 평가를 받거나 농담을 오해해 과도하게 화를 내는 경우도 많습니다.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요? 사회성을 배울 환경을 만들어 주면 좋은데요. 그러려면 우선 시기별로 사회성이 잘 발달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몇 가지 지표가 있어요. 생후 2~3개월엔 친밀한 양육자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짓고, 6개월엔 낯가림과 분리불안, 18개월 전후로는 이름을 부르면 쳐다봐야 합니다.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생기면 발달시기별 행동이 현저히 떨어지기 쉽습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게 순한 기질과 다르다는 거예요. 순한 아이는 먹고 자고 싸는 등의 바이오리듬이 규칙적이고, 반응이 예측 가능해요. 반면, 자폐는 반응을 종잡을 수가 없어요. 잘 놀다가 갑자기 울어요. 키우기 까다롭죠. 혼자 잘 노는 아이 옆에 다가갔을 때 눈 맞추며 잘 어울리면 순한 기질입니다. 반면 경계도 반기지도 않는다면, 다른 사회성 발달 지표도 세심히 살펴야 합니다.   천근아 교수는 "자폐와 ADHD의 행동은 미묘한 차이가 있다"며 "아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를 살피면 그 차이가 보인다"고 했다. 김현동 기자  ━  🩹 언어 지연보다 어휘 반복 살펴라   천 교수는 “한두 개의 증상만을 보인다고 해서 자폐라고 볼 수 없다”는 걸 강조한다. 그는 “자폐스펙트럼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결여’ 및 ‘반복적이고 제한적인 관심사 및 행동’을 반영하는 증상들이 동시에 최소 몇 달씩 지속하는 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쉽게 말해, 언어적·비언어적인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행동과 관심사가 제한적이고 반복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두 가지가 함께 나타날 경우 자폐 진단이 내려진다. 천 교수는 “두 증상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며 “특히 말의 내용을 잘 들어야 한다”고 했다.   말의 내용이요? 말은 제때 트이는지 여부가 중요한 거 아닌가요? 말이 늦다고 다 자폐는 아닙니다. 제때 말이 트였어도 자폐인 경우도 많고요. 중요한 건 말의 내용입니다. 자폐는 제한된 주제를 반복해서 말하는 경향이 선명해요. 반향어라고 하는데요. 상대방의 말을 듣고 바로 따라 하는 즉각 반향어와 시간이 지난 뒤에 나타나는 지연 반향어로 나뉘어요. “여기 뭐 타고 왔어?”라고 물었을 때 “타고 왔어?”라고 하면 즉각적 반향어, 같은 질문에 “뽀로로가 미끄럼틀 탔어”라고 식으로 과거 들은 내용으로 답하는 건 지연 반향어입니다. 상황과 상관없는 말을 반복하기도 해요. 똑같은 걸 여러 번 묻거나, 책 내용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워서 읊는 등이죠.   머리가 좋아서 그럴 수도 있잖아요. 오로지 한 주제에만 꽂힌다는 게 가장 큰 차이예요. 예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오직 하나만 머리에 입력하니 관심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죠. 아이와 대화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수학 얘기를 하는데, 뜬금없이 역사 얘기를 꺼내는 식이죠.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에만 꽂혀서요. 그러니 대화가 끊기고 소통이 힘듭니다. 이유가 하나 더 있어요.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능력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공감과 이해를 못 해서 소통이 잘 안 된다는 건가요? 맞아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즉 입장 바꿔 생각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면, 상대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복해 말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공감은 사회성의 핵심 능력인데요. 이 능력을 측정하는 테스트가 하나 있어요. A, B 두 사람이 한 방에 있어요. A가 인형을 바구니에 넣고 자리를 뜹니다. 그사이 B가 인형을 바구니에서 상자로 옮겨요. 이후 A가 돌아옵니다. A는 어디에서 인형을 찾으려고 할까요?     바구니겠죠? 자기가 거기 뒀으니까요. 7세 이상의 정상 발달 아동이라면 대부분 그렇게 말합니다. A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자폐스펙트럼 아동의 85% 이상은 ‘상자’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목격한 대로라면 인형은 상자에 있으니까요. 인형이 상자로 옮겨진 걸 A가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 하는 거죠.   상대의 마음을 가르칠 순 없을까요? 지능지수(IQ)가 85 이상이고 언어 구사력이 높다면 사회적 기술을 훈련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농담과 진담을 구분해 보고, 질문 의도를 파악해 보고, 친구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등이요. 사람들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보편적인 상식을 가르치는 거예요. 증상이 경미하다면 집에서도 가능합니다. 책이나 영화를 보며 “주인공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라고 묻고 답을 반복해 알려줘도 효과가 있어요. 언어 지연은 자폐의 대표 신호로 꼽힌다. 하지만 천 교수는 "말이 트였다고 다가 아니다"며 "아이가 제한된 관심사로 반복해서 말한다면 다른 사회 발달 지표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고 했다. 김현동 기자  ━  🩹 초기 대응, 집에서 시작해라   30년 전 1만 명당 한 명에 불과했던 소아 자폐 유병률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2024년 현재 50명당 한 명으로 추산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느 병원에 가든 소아정신과에서 진료를 보려면 평균 2~3년 대기는 기본이다. 불안한 양육자는 소아정신과가 아닌 곳을 찾아 검사를 받고 치료 계획을 세운다. 천 교수는 “시기를 놓칠까 불안한 마음은 백번 이해하지만 섣부른 진단이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검사를 받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공인된 자폐 진단 검사 도구로 검사를 받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 하지만 검사 결과는 참고 자료일 뿐입니다. 항목별 점수가 높다고 자폐고, 낮다고 자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없죠. 정확한 진단은 아이가 과거 앓은 질병, 경험 등을 말하는 발달력, 양육자와의 관계 등의 정보를 듣고 검사 결과를 참고해 전문의가 종합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니 검사 결과만 보고 좌절 마세요. 양육자가 연령별 사회성 발달 지표를 관찰하고, 의사에게 정확하게 보고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치료 센터를 다니는 건 어떨까요? 자폐 진단을 받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는 생후 18~24개월입니다. 다만 치료 센터를 반드시 가야 하는 건 아닙니다. 증상마다 필요한 치료가 다르거든요. 특히 행동치료의 경우 너무 어린아이에겐 무리입니다. 36개월이 안 된 아이는 양육자와 분리돼 치료실에 들어가면 극심하게 불안해져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치료 센터는 36개월 이후 적극적으로 다니라고 권해요. 그 전까지는 집에서 양육자로부터 사회적 자극을 받고 일상에서 행동교정을 받는 게 더 효과적입니다.   집에서 양육자가 뭘 해줄 수 있나요? 놀면서 아이와 눈을 맞추고, 웃어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게 사회적 자극입니다. 증상이 심하면 행동치료 중 하나인 응용행동분석(ABA)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ABA는 아이가 좋아하는 걸 이용해 문제행동은 줄이고 사회적인 행동은 늘리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젤리를 줄 때 소리를 지르며 떼쓰면 안 줍니다. “젤리 주세요”라고 말하거나, 의사 표현을 할 때까지 기다립니다. 문제 행동을 하면 이득을 얻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도록요. ABA는 종류와 적용 방식이 다양합니다. 잘만 배우면 양육자도 상황에 따라 충분히 시도할 수 있습니다. 실제 저에게 일대일로 ABA 교육을 받고, 가정에서 잘 적용하는 양육자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떼를 쓰면 원하는 걸 들어주게 됩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행동 교정은 일관적이고 단호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은근슬쩍 해달라는 대로 하면 문제 행동은 오히려 늘어나죠.     완치가 가능할까요? 안타깝지만, 자폐에 완치란 없습니다. 최대한 증상을 완화하는 게 목표예요. 이때 치료법도 중요하지만, 양육자와 질 높은 상호작용이 중요합니다. 정서적 교감과 행동수정기법의 균형이 중요 합니다. 눈을 안 보는 아이에게는 눈을 맞추게 하고, 적절한 반응을 알려주고, 잘못된 행동은 바로잡아주는 거죠. 어릴 때부터 집에서 양육자가 사회적 자극을 충분히 주면 증상이 상당히 완화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IQ85 이상의 정상 지능 자폐스펙트럼의 경우 독립 생활도 가능하고요. 꾸준한 치료 덕에 디자이너, 요리사가 된 아이도 있습니다. 자폐라도 아이의 재능을 발견해 키워주면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그러니 당장 눈에 보이는 효과가 없다고 좌절하지 마세요. 천 교수는 양육자들에게 "절대 자책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양육자의 죄책감은 아이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마음은 아프지만 덤덤하게, 하지만 희망을 갖고 아이에게 먼저 손을 내밀라"고 했다. 김현동 기자 두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한 그는 “자폐라고 진단하는 순간 양육자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는 게 여전히 너무 고통스럽다”고 했다. 태교를 잘못했다고, 많이 안아주지 못했다며 자책하는 양육자를 보면 그 역시 가슴이 미어진다. 하지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 천 교수는 “양육자의 죄책감은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절대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모든 삶은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자폐라고 다르지 않아요. 아이의 여정에 함께해 주세요. 그 마음이 닿으면 아이는 반드시 마음을 엽니다. 관련기사 이것 시키자 1등급 됐다, SKY도 보낸 ADHD 치료법 '왕의 DNA'는 위험한 접근법…골든타임 놓쳐 아이 병 키운다 아이들이 ADHD 검색 시작했다…'코로나 2년' 충격의 뇌폭동

    2024.02.18 16:00

  • “1등도 꼴찌도 학원 올 수밖에” 대치동 영어 학원장의 일침

    “1등도 꼴찌도 학원 올 수밖에” 대치동 영어 학원장의 일침 유료 전용

    입시가 달라져야 합니다.   “영어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치동 ‘빅3’로 꼽히는 ILE어학원 위우섭 원장은 다소 엉뚱한 대답을 내놨다. 영어 잘하는 것과 입시가 무슨 상관일까.    그는 “초‧중‧고에서 10년 넘게 영어를 배우는데도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문법 위주의 중‧고교 내신 시험과 독해 중심의 수능이 주범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입시용 영어’가 아닌 진짜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 원장은 “지금 상황에서는 공교육만으로 영어 실력을 기를 수 없다”며 “결국 사교육 혜택을 받는 학생만 영어를 잘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도 했다. 박정민 디자이너 위 원장은 방송 PD 출신으로 우연히 사교육에 발을 들였다.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지만 학원을 운영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른 방송사로 이직을 준비하던 중 잠깐 영어 강사 일을 한 게 평생의 업(業)이 됐다. 강사로서는 뜻대로 수업하기 어려웠다. 2005년 대치동 한가운데 ‘I LOVE ENGLISH(나는 영어를 사랑한다)’의 이니셜을 딴 ILE어학원을 개원했다.   20년 후 ILE어학원은 대치동뿐 아니라 강남 일대 양육자들이 가장 보내고 싶어 하는 영어 학원 중 한 곳이 됐다. 강사 4명으로 시작한 학원은 70명의 강사‧직원이 일할 정도로 커졌다. 200명이었던 월 수강생도 2500명이 됐다. 대치동에는 1600개가 넘는 학원이 있고, 영어학원 수도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ILE어학원이 ‘빅3’로 불리는 이유는 뭘까? 영어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달 23일 위 원장을 만났다.   ■  「 Intro. 대치동 ‘빅3’ 학원장이 말하는 영어교육 문제점 Part1. ‘진짜’ 영어 배우려면 입시가 바뀌어야 한다 Part2. 모르는 단어뿐 아니라 예문까지 외워라 Part3. 생방송 큐시트에 ILE어학원 성공 비결 있다 」   ━  📢진짜 영어 실력? 입시부터 바뀌어야 한다   영문법. 그가 ‘독’(毒)이라고 생각하는 요소다.  한국말 할 때와 비교해 보면 이해가 쉽다. ‘나’는 주어, ‘밥’은 목적어, ‘먹었다’는 ‘먹다’라는 동사의 과거형이라는 걸 알고 “나는 밥을 먹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3~4세만 돼도 이 정도 말은 할 수 있다. 문법을 아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위 원장은 “영어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왜 그런가요? 지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선언적 지식, 절차적 지식, 조건적 지식이죠. 런던이 영국의 수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선언적 지식입니다. 쉽게 말해 말로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이죠. 자전거 타기나 악기 연주 같은 건 절차적 지식이에요. 경험을 통해 몸으로 익힌 거죠. 조건적 지식은 선언적 지식과 절차적 지식을 언제‧어떻게‧왜 사용해야 할지에 대한 걸 의미합니다. 질문 하나 해볼게요. 영어는 이 중 어디에 해당할까요?   배워서 말하는 거니까 선언적 지식인가요? 영어 학습의 요소에 따라 다릅니다. 문법은 선언적 지식에 해당해요. 말하기는 절차적 지식이죠. 행동으로 나타낼 수는 있지만 학습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기 어렵거든요. 자전거 타는 법이나 피아노 연주하는 법을 말로 설명할 수 있나요? 쉽지 않죠. 우리가 한국말을 할 때 ‘왜 그렇게 말하는지’ 설명할 수 있나요?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말하잖아요. 하지만 문법이 중요해지는 순간 영어는 절차적 지식이 아니라 선언적 지식이 됩니다. 제가 영문법이 문제라고 말하는 이유죠.   정확히 뭐가 문제인가요? 문법은 언어가 운영되는 규칙이나 패턴을 의미합니다. “나, 밥, 먹다”와 같은 단어 배열은 말이나 문장이라고 할 수 없죠. 물론 기본적인 문법은 알아야 할 겁니다. 하지만 말을 할 때마다 문법을 신경쓰다 보면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어요. 결국 문법 지식은 머릿속에 넘쳐나도 외국인과 대화를 못 합니다. 대입 시험은 모든 시험의 정점에 있어요. 사실 초등학교 때는 원서를 이용해 수업하는 영어학원이 많아요. 영어를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활용하는 거죠. 이상적인 영어교육이에요. 하지만 이르면 초등학교 고학년, 늦어도 중 2~3학년 때는 대다수 학생이 이런 학원을 그만둡니다. 문법 중심의 학원에 다니기 위해서죠. 학교 내신시험 대비하려고요.   수능이 어떻게 바뀌어야 한다고 보시나요? 토플처럼 영어의 네 가지 영역인 듣기·말하기·읽기·쓰기를 골고루 평가해야 합니다. 수능이 달라지면 학교 교육도 바뀔 거고요. 학생들은 지금보다 조금 더 실용적인 영어를 배우겠죠. 하지만 쉽지 않을 거예요. 수능을 토플로 대체하는 순간 관련 사교육이 성행할 테니까요. 예전에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National English Ability Test)을 추진하다 무산된 것처럼 말이죠.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했던 시험 얘긴가요? 독해 중심의 수능 영어 대신 듣기·말하기·읽기·쓰기를 평가하겠다는 취지였죠. 토플이나 토익 같은 해외 시험의 의존도를 낮추고, 학생들의 실용 영어 실력을 키우는 게 목적이었어요. 하지만 시험 자체의 문제도 많았고, 시행 전부터 사교육 열풍이 불자 백지화됐어요. 이런저런 문제를 보완해 도입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아이들이 지금보다는 영어를 잘하지 않았을까요? 자유롭게 의사소통이 가능한 진짜 영어 실력을 키울 수 있었겠죠.   학원 원장님이 교육정책을 비판하는 게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교육업계에 있으니까 얘기할 수 있는 겁니다. 아이들에게 진짜 필요한 게 뭔지, 학부모가 원하는 게 뭔지 더 민감하게 반응하잖아요. 입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학교에서 수준별 수업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선 영어교육에 미래는 없다고 봅니다. 학생들의 실력 차가 천차만별이니까요. 원어민 수준으로 말하는 아이와 알파벳도 모르는 아이를 한 교실에서 가르치는 게 말이 되나요? 교사가 평균에 맞춰 수업하다 보면 상위권과 하위권이 모두 학원에 다녀야 해요. 학원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위우섭 ILE어학원 원장은 "학생들의 실용영어 실력을 키우려면 문법과 독해 위주의 시험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  📢단어만 암기? 예문까지 외워라   영어 잘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면 된다. 하지만 아이 혼자 힘으로 영어에 흥미를 갖긴 쉽지 않다. 부모가 영어에 자주 노출해 주고, 흥미를 유발하게 돕는 게 필요하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영어 동요를 틀어주는 식이 ‘엄마표 영어’가 유행하는 이유다. 양육자들 사이엔 “만 3세 이전에 노출하면 외국어도 모국어처럼 습득한다”는 말이 정설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위 원장은 “근거 없는 얘기”라고 일축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 말이 맞는다면 0~3세 때 미국에서 살았던 아이는 영어를 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외국 생활을 한 아이 대부분이 그 나라 언어를 하지 못해요. 영어를 언제부터 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한 건 사실이에요. 일찍부터 해야 효과가 큰 것도 맞고요. 하지만 ‘일찍’이라는 게 한국말도 못 하는 시기는 아닙니다. 한 4~5살은 돼야 합니다.   어떤 식으로 시작하면 좋을까요? 책만큼 좋은 도구는 없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은 방법은 독서예요. 하지만 아이 혼자 영어책을 읽기는 쉽지 않죠.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가 옆에서 읽어주는 게 좋아요. 발음이 좀 나빠도 괜찮습니다. 함께 영어책을 읽는다는 경험이 더 중요하니까요. 그보다 앞서 시중에 나와 있는 플래시 카드를 활용해 기본 단어를 익힐 수 있게 도와주면 좋고요.   책은 어떤 식으로 읽히면 될까요? 처음에는 쉬운 책을 고르는 게 좋아요. 점차 아이에게 맞춰 수준을 높여야 합니다. 미국 초등학교의 권장도서를 참고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정확한 어휘의 발음을 익히기 위해 동영상도 어느 정도 활용하고요. 부모가 균형을 잘 잡아줘야 하죠. 학년이 높아질수록 책이 차지하는 비율을 늘려야 합니다. 아이의 영어 실력이 향상돼 부모가 책을 읽어주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와도 책을 매개로 대화는 계속 나눠야 해요. 질문을 통해 잘못 이해한 부분은 없는지 확인하는 거죠.   동영상은 어떻게 보여주는 게 효과적일까요?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나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하면 좋습니다. 저도 처음에 수업할 때 팝송을 활용했어요.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듣던 시절이죠. 고속복사기까지 구매해 공테이프에 노래를 녹음해 학생들에게 나눠줬습니다. 노래에 익숙해지면 뮤직비디오도 구해 보여주고요. 예컨대 아이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OST를 좋아한다고 해볼게요. 요즘은 인터넷에서 노래 가사도 쉽게 구할 수 있잖아요. 이를 활용해 가사의 일부를 가린 다음 아이에게 단어를 적어넣게 할 수 있겠죠. 이 과정에서 모르는 단어를 익힐 수도 있고요.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어 단어를 무작정 외우는 건 생각만큼 도움이 안 됩니다. 예문까지 외우는 걸 추천해요. 단어를 외우면서 맥락까지 이해하는 거죠. 그렇게 외운 단어는 오래 갑니다. 말하기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발표하는 훈련도 중요합니다. ILE어학원에서 실시하는 ‘나는 리포터다(I am a reporter)’가 좋은 예입니다.   ‘나는 리포터다’가 뭔가요? 초등 5, 6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수업이에요. 영어신문을 읽은 뒤 내용을 요약하는 겁니다. 3~5분 정도 말할 수 있는 분량으로요. 이후 요약본은 외워서 다른 사람 앞에서 발표하죠. 사실 이 수업을 힘들어하는 학생이 많아요. 그런데도 계속하는 건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이에요. 읽기‧쓰기·어휘력·발표력‧자신감 등을 향상시킬 수 있으니까요. 위우섭 원장은 "모르는 단어가 나왔을 때는 단어뿐 아니라 예문까지 암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  📢생방송 큐시트에 인기 비결 있다   ILE어학원의 수업은 속도감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초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도 2시간 30분 수업이 이뤄지는데, 지루할 틈이 없다. 읽기와 단어, 소설, 발표, 노래 따라 부르기 등의 코너가 10~40분씩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위 원장은 “생방송 큐시트(방송이나 공연의 연출 과정을 상세하게 적어 놓은 일정표) 짜듯 수업을 구성했다”고 말했다.   생방송 큐시트요? 라디오와 스포츠 같은 생방송 PD 경력만 8년이었거든요. 처음에 학원에서 일하게 됐을 때,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재밌게 수업할까 고민했죠. 방송도 사람들이 지루할 때쯤 채널을 돌리지 않게 하는 요소를 집어넣거든요. 이 방법을 수업에 접목했어요. 아이들이 지루할 때쯤 노래를 부른다거나 영화를 보는 식으로요. 이전에 그렇게 수업하는 학원이 없어서인지 반응이 좋았어요. 중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했는데, 학부모 요청으로 초등부와 고등부로 확장했죠. 초등부에서는 2006년 대치동 최초로 미국 교과서로 수업했고요.   대치동에 미국 교과서 열풍이 분 게 ILE어학원 때문이군요? 열풍까지는 모르겠지만, 이후로 미국 교과서 쓰는 학원들이 늘어난 건 맞아요. 초등학생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쳐야 하는데, 어떤 교재를 써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학교 수업의 기본이 교과서잖아요. 어설픈 교재를 쓰느니 미국 교과서를 사용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ILE에 다니고 싶다고 다닐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레벨테스트를 통과해야 하니까요. 우수한 학생만 선발해 가르치니까 성과가 좋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처음에 시작할 때 우수한 학생들로 시작했으니까요. 그에 맞춰서 교재나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보니 최상위권 대상 학원이 됐죠.   레벨은 어떻게 나뉘어 있나요? 초등은 1~3레벨이 있습니다. 1레벨이 가장 수준 높은 반이에요. 이외에 A클래스가 있어요. 레벨테스트에 통과하지는 못한 학생들을 구제해 주는 기회죠. 예컨대 지필 점수 합격점이 80점인데, 75점을 받으면 떨어지잖아요. 그런 학생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줍니다. 그렇다고 학원을 계속 다닐 수 있는 건 아니에요. 8개월 안에 레벨을 올리지 못하면 그만둬야 하죠.   이해가 안 되네요. 학원 입장에선 학생이 많은 게 좋은 거 아닌가요? 제가 학원을 운영하는 목적은 글로벌 리더를 키우는 겁니다. 돈 벌려고 했으면 프랜차이즈 사업을 했겠죠. 지점 하나당 몇억원씩 준다는 제안을 많이 받았거든요. 하지만 교육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수업의 질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대표적인 게 예비 강사 제도예요. 강사 채용 뒤에도 바로 수업을 시키질 않아요. 짧게는 두세 달, 길게는 1년 가까이 준비기간을 갖죠. 다른 강사가 수업을 못 하는 돌발 상황이 생겼을 때 투입하려는 목적이에요. 규모가 커지면 이런 게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최근 삼성이 선보인 갤럭시S24는 통화 중 ‘실시간 통역’ 기능이 탑재돼 화제가 됐었다. 영어뿐 아니라 13개국 언어 통역서비스가 가능해진 것이다. 실시간 통역은 인터넷 연결 없이도 사용할 수 있고, 문자와 메신저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이런 시대에서 영어를 공부해야 할까? 이에 대한 위우섭 원장의 답변은 이랬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로봇이 대화의 뉘앙스나 정서까지 통역하지는 못합니다. 우리가 계속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죠. 위우섭 원장은 "생방송 PD경험을 살려 생방송 큐시트 짜듯 수업을 구성한 게 인기를 끌었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관련기사 4자녀 ‘영어 영재’ 만든 비법 “모르는 단어 뜻 찾지마라” 처음 말한 영어가 문장이었다, 36개월 아이서 찾아낸 비결 모국어처럼 영어 트이려면? 힙합 하듯이 이걸 들려주세요

    2024.02.14 15:09

  • 머리 좋은데 공부는 안 한다? 십중팔구 이 말이 문제다

    머리 좋은데 공부는 안 한다? 십중팔구 이 말이 문제다 유료 전용

    결국 해내는 아이는 남과 다른 한 끗이 있어요. 끈기, 정서적 안정, 경쟁심, 인내심 등이 좋죠. 그런데 그런 것들은 모두 ‘겸손’과 연관이 있어요.   “학업성취를 이룬 상위 0.001% 아이들의 공부법은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에 송용진(수학과) 인하대 교수는 “30년간 수학·과학 분야 영재를 발굴하고, 지도하며 발견한 공통점”이라며 이렇게 답했다. 이 한 끗 없이는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자기가 원하는 걸 성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박정민 디자이너 송 교수는 1995년부터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 한국 대표단을 이끈 단장으로 유명하다. 1988년부터 매년 IMO에 출전해 온 한국은 송 교수가 대표팀을 이끌던 2012년 첫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후 2017년 또 한 번 1위에 올라서며 수학 강국의 입지를 다졌다. 송 교수는 최상위 수학 영재들을 지도해 왔다. 그에게 지도받은 학생 상당수는 현재 수학자,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송 교수가 지도한 학생들은 모두 재능과 학업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다. 하지만 모두가 최상위 성적을 받은 건 아니다. 영재라고 해서 다 재능을 꽃피우며 상위 0.001%로 성장하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결국 해내는 최고 영재들의 공통점을 정리한 『영재의 법칙』을 쓴 것도 그래서다. 송 교수는 “최고 영재들에게 좋은 지능은 꼭 필요하지만 그들 중에서 더 잘하려면 더 이상 IQ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결국 성패를 가르는 건 태도”라는 것이다. 송 교수가 말하는 태도란 무엇일까? 그 태도는 어떻게 해야 길러지는 걸까? 지난달 24일 송 교수를 만나 물었다.      ■  「 Intro. 결국 해내는 아이는 한끗이 다르다 Part1. 겸손 : 자신을 낮춘다 Part2. 반복 : 창의력을 뇌에 새긴다 Part3. 정서적 안정감: 엄마가 침착했다 」   ━  💡 겸손: 자신을 낮춘다   흔히 영재라고 하면 탁월한 지능을 떠올린다. 24개월 아이가 가르쳐 준 적도 없는 한글을 읽거나, 고난이도의 수학 문제를 푸는 식이다. 하지만 높은 지능만으론 안된다. 공부를 잘하려면 학습 태도부터 갖춰야 한다. 송 교수는 좋은 학습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겸손한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영재 하면 한 가지만 몰두하는 괴짜가 떠오릅니다. 겸손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여요.   미디어가 그린 영재의 모습이죠. 현실 속 영재는 다릅니다. 영재들도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실수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뒤처지기도 하고요. 영재도 실패를 피할 순 없어요. 영재 중에서도 끝까지 해내는 아이들은 실패에 쉽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살펴보니 모두 겸손하다는 공통점이 있더군요. 흔히 머리 좋은 아이들은 완벽주의를 추구해서 계획대로 안 되면 쉽게 좌절하기 쉬워요. 그런데 겸손한 아이들은 그것을 딛고 일어서는 힘이 있지요.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학습 동기는 경쟁심인데 그것이 건전한 경쟁심이어야 해요. 남들이 자기보다 더 나은 것을 인정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경쟁심 말입니다. 그런 아이들이 결국 승리합니다. 관련기사 "대치동 엄마 욕하지 마라" 서울대 경제교수 뜻밖 팩폭 “고교생 30% 수포자 이유 있다” 세계적 수학자의 일침 실패 축하해주면 공부 잘한다? 회복탄력성 전문가의 조언   겸손은 마음가짐이잖아요.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요? 태도는 몸에 배야 합니다. 그래서 훈육이 필요해요. 아이들은 본능에 따라 행동합니다. 이건 지능과 관련이 없어요. 예의범절 알고 태어나는 아이는 없으니까요. 훈육은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는 겁니다. 특히 특출난 재능을 가진 아이일수록 훈육이 중요합니다. 우쭐한 마음에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거든요. 이러면 공부만 잘할 뿐 함께 사는 법을 모르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저는 훈육을 크게 칭찬하기, 선 긋기, 야단치기로 나누는데요. 적절한 칭찬과 엄격한 선긋기는 야단치기보다 더 중요하고 어렵습니다. 과다한 칭찬은 독이 될 수도 있어요.   과다한 칭찬이 독이 된다고요?   칭찬은 자주 할수록 좋겠지요. 자의식 강하고 감정이 예민한 아이일 수록 더욱더요. 다만 타고난 본성을 칭찬하면 안 됩니다. “넌 천재야” “머리가 좋으니까 뭐든 잘해”라는 식의 칭찬은 피하는 게 좋아요. ‘나는 뭐든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길 수 있어요. 그러면 남들보다 못할 때 다른 핑계를 대거나 피하게 됩니다. 아이가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하는 것 같다면, 평소 어떻게 칭찬하는지를 돌아보세요. 아이에게 과도한 기대감을 안겨줬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어떻게 칭찬해야 하나요?  노력을, 구체적인 행동을 칭찬하세요. ‘오늘도 제 시간에 책상 앞에 앉았네’ ‘약속을 끝까지 지켰네’ 하는 식으로요.   선긋기와 야단치기도 방법이 따로 있나요? 선긋기는 남들에게 결레가 되거나 피해를 주는 행동을 바로 잡아주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겸손한 태도와 남과 어울려 살기 위한 사회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야단칠 때엔 원칙이 필요해요. 첫 번째 원칙은 방법의 일관성입니다. 야단치기 전에는 반드시 두 번 경고한다거나, 야단치는 방법을 일정하게 하는 것이죠. 두 번째는 화내지 않는 것입니다. 훈육할 때 화를 내거나 막말을 하면 훈육의 효과가 떨어집니다. 화내지 말고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만 집중하세요. 마지막은 짧고 강하게 말하세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과 말은 몸에 밴 습관과 같은 것입니다. 붙들고 길게 설명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여기서 그만”처럼 아이가 고쳐야 할 행동을 강한 한마디로 짧게 지시하세요. 송 교수는 "결국 나를 낮추고, 타인을 존중하는 겸손한 마음이 배움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며 "똑똑한 아이일수록 자기중심성을 교정하기 위해 훈육으로 겸손을 가르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룡 기자  ━  💡 반복: 창의력을 뇌에 새긴다   영재들은 창의력도 남다르다. 어려운 문제도 생각지 못한 새로운 방법으로 풀어낸다. 남들은 이해하기도 어려운 문제를 쉽게 해결하는 걸 보며 사람들은 “역시 머리가 좋으니 다르네”라고 칭찬한다. 마치 날 때부터 창의적이었다는 듯 말이다. 하지만 송 교수는 “영재도 부단히 노력한다”며 “창의력은 반복학습에서 나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수학 공부를 권했다.     창의력이 반복학습으로 길러진다고요?    창의력은 기존에 없던 생각을 해내는 힘을 말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창의적 사고력이죠. 그런데 새로운 걸 생각해 내려면 기존 지식이 있어야 해요. 새로운 생각은 기존 지식을 익히고, 해석하고, 내 생각을 더하는 과정에서 탄생합니다. 우리는 이걸 ‘수학적 사고력’ ‘문제 해결력’이라고 부릅니다. 창의력을 기르려면 수학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죠. 수학 문제를 풀 때 문해력, 판단력, 활용력 등 다양한 사고력을 복합적으로 사용하거든요. 여러 생각을 조합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뇌가 논리적으로 생각해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이 생겨요.   영재들은 수학을 어떻게 공부하나요?     단순 반복과 암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게 특징입니다. 다양한 기초 지식 습득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데요. 예를 들어 개념의 정의를 꼼꼼하게 읽어보고, 강의 내용을 적고, 반복해서 읽는 식입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아이가 아는 지식은 수학자의 지식에 비해 미약합니다. 그걸 아는 아이들은 기초 개념과 원리 이해에 시간을 씁니다. 또 다양한 문제를 반복해서 풉니다. 문제를 풀어봐야 내가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알 수 있거든요. 단순 연산부터 응용, 심화까지 가리지 않고 풉니다.    최근에는 사고력 수학 학원이 성행인데요. 도움이 될까요? 학원을 다니느냐, 어떤 학원을 다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내 손으로 직접 문제를 풀었느냐가 중요하죠. 학원에서는 문제를 많이 풀게 합니다. 그래서 사교육 효과가 없다고는 말 못해요. 다만 문제를 내 방식대로 풀었느냐, 풀이법을 외워서 풀었느냐가 중요해요. 이게 바로 0.1%를 다르게 만드는 한 끗이죠. 수학 문제는 내가 이해한 만큼만 풀 수 있어요. 처음에는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개념이 적용된 문제를 풀며 다각도에서 개념을 분석할 수 있습니다. 이걸 반복하며 개념을 이해하는 거예요. 그래야 내 말로 개념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내 손으로 풀어야 하는 건 그래서예요.   선행 학습은 어떤가요?   아이의 지적 능력이나 학습 의지에 따라 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선행에 몰두하다 보면 생각을 포기할 수 있어요. 학습량이 많으니 생각할 시간이 부족한 거죠. 어려운 문제는 건너뛰고 쉬운 문제만 풀려고 합니다. 이러면 수학적 사고력은커녕 개념도 제대로 못 배웁니다. 창의력 키우려면 배움의 속도를 낮추세요. 진득하게 앉아 개념의 원리를 따져보고, 심화 문제까지 풀어봐야 합니다. 문제가 어렵다면 주어진 조건과 가정을 찾는 연습부터 해보세요. 조건 속에 관련 개념이 숨어 있거든요. 거기 실마리가 있어요.   수학을 싫어하면 안 되겠네요.    어릴 때부터 수학과 친숙해지면 좋습니다. 학업성취를 이룬 상위 0.1% 영재들이 언제부터 수학을 접했나 조사한 적이 있어요. 신기하게도 거의 예외 없이 유아 때 방문교사가 오는 학습지를 했더라고요. 이런 학습지는 단순 연산을 몇 달에 걸쳐서 풀고 또 풀잖아요. 단순 반복의 효과는 큽니다. 수와 친숙해질 기회를 주고, 계산 실수를 줄여주고요. 무엇보다 자신감을 갖게 하죠. 송 교수는 "창의성 교육은 중요하지만, 창의력에 갇혀 단순 반복과 암기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며 "수학 문제를 통해 논리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뇌에 새겨라"라고 했다. 김성룡 기자  ━  💡 정서적 안정감: 엄마가 침착했다   아이 키우다 보면 불안해지고, 불안하면 조급해지기 마련이다. 혹여 아이가 재능을 보이면 잘 키워주고 싶어진다. 아이의 재능을 알아채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송 교수는 “불안과 조급함이 오히려 아이의 재능을 망친다”고 했다. 아이의 재능이 얼마나 꽃피는가는 부모의 절제력에 달렸다는 것이다.   혹여 아이의 재능을 알아채지 못하면 어쩌나요? 우리 아이가 영재성이 뛰어난데 덜 가르쳐 좋은 머리 썩히면 어쩌나 불안한 분들 많습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정말 타고났다면 1~2년 늦다고, 혹은 빠르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제발 침착하세요. 조급함을 버리고 침착한 마음으로 지도하는 게 더 좋습니다.   침착하라고요?(웃음)   멀리 내다보라는 겁니다. 아이가 성공한 성인으로 크는 데에는 기나긴 과정이 필요합니다. 학습 영재는 어릴 때 발현된 능력이 다가 아닙니다. 영재성을 잘 길렀다면 보통 20대 후반에 가서야 빛을 발해요.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활약하는 시기죠. 영재성을 잘 길렀다는 건 선행 교육을 했다는 게 아닙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는 걸 말해요. 열정을 유지하려면 입시나 점수 등 눈 앞의 성과보다 정서적 안정이 더 중요합니다.   아이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뭘 해야 하죠?   특별한 건 없습니다. 그저 아이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 돼요. 적성과 성향에 맞는 공부법을 존중하는 건데요. 제가 그랬어요.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관뒀습니다. 학교를 왜 다녀야 하나 싶었죠. 저희 어머니는 교육열이 높은 편이었는데도, 허락하셨어요. 틀에 박힌 걸 싫어하고 싫증을 잘 내는 저를 간파하신 거예요. 넉 달을 놀고 나니 지치더라고요. 제 발로 학교로 돌아갔어요. 만약 어머니가 제 성향을 무시하고 공부를 강요했다면 엇나갔을 겁니다. 이런 사례는 영재들 사이에서 차고 넘칩니다. 이런 순간에 삐뚤어지지 않고 끝까지 배움을 이어간 영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적성을 명확히 알고 열의를 쏟아요.   적성, 중요하죠. 하지만 딱히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없는 아이들도 있어요. 다양한 관심사를 길러주는 게 중요합니다. 흔히 영재라고 하면 한 가지 분야에만 특출나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다방면에 관심을 갖고 키워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수준급의 바이올린 실력을 갖춘 걸로 유명하죠. 관심이 생기면 덩달아 호기심도 커집니다. 호기심은 강한 몰입감과 배우려는 강한 학습 에너지를 만들고요. 끝까지 해내는 아이는 자기 관심사를 찾아 파고듭니다. 그래서 다양한 경험이 중요해요. 이때 주의할 점이 하나 있어요. 적성을 찾겠다며 각종 테스트를 보고 점수에 연연해선 안 된다는 거죠. 대표적인 게 IQ 검사예요.    지능을 알려면 IQ 검사도 필요하지 않나요?   아이의 지능 정도를 꼭 알고 싶으시다면 6~8세 정도에 IQ 검사를 받아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다만 영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IQ 검사는 의미가 있는지 의심이 됩니다. 실은 내 아이가 영재인 걸 안다 한들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IQ 점수는 결과가 높든 낮든 조급함만 생깁니다. 차라리 그냥 내 아이가 상위 0.1%라고 믿으세요. 믿는 만큼 아이는 성장하기 마련이니까요.  송 교수는 최근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IQ 검사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자칫 양육자의 조급함을 자극해 아이를 과잉 학습, 과잉 경쟁으로 아이를 내몰 수 있기 때문이다. 김성룡 기자 송 교수가 지도했던 영재들은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됐다.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어떤 학생은 송 교수의 뒤를 이어 수학자가 됐고, 또 다른 학생은 양육자의 뜻에 따라 의사가 됐다. 자신의 꿈을 쫓아 사업가가 된 학생도 있다. 송 교수는 이 아이들을 모두 ‘성공한 영재’라고 부른다. 언제 어디서든 배움의 자세로, 남과 어울려 사는 행복한 어른이 됐기 때문이다.    누구나 각자의 재능이 있습니다. 그 재능은 성인이 됐을 때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기 위한 자산입니다. 아이의 재능을 키우지 말고, 지켜주세요. 느긋하게 즐기며 배우면 가능합니다. 그러면 누구나 성공한 영재가 될 수 있어요.

    2024.02.07 15:26

  • “SKY 가려면 초1 ‘이것’ 해라” 서울대 스타 강사의 공부법

    “SKY 가려면 초1 ‘이것’ 해라” 서울대 스타 강사의 공부법 유료 전용

    초등학교에서 키워야 할 공부 능력은 세 가지예요. 공부 정서, 공부 습관, 공부 독립. 이것만 갖추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이병훈교육연구소 이병훈 소장은 “초등 6년이 초·중·고 12년 대입 레이스의 성패를 좌우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 살 버릇이 여든 가는 것처럼 초1 공부가 대입까지 간단 얘기다. 2011년 서울을 시작으로 초등학교에서 시험이 사라지면서 학습 기능은 점차 약화됐지만, 이때 기본기를 제대로 다지지 않으면 중·고등학교로 올라갈수록 학습 격차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박정민 디자이너 이 소장은 20년간 교육 현장에서 학생과 양육자를 만나온 공부법 전문가다. 서울과학고와 서울대 기계항공학부를 졸업하고, 2004년 동문들과 함께 자기주도학습 전문 기관 에듀플렉스를 설립했다. 이듬해 출간한 『공부 잘하고 싶으면 학원부터 그만둬라』가 20만 부 넘게 팔려 나가면서 공부법 스타 강사로 떠올랐다. 2015년 이병훈교육연구소에 이어 2020년 이병훈에듀청담컨시어지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지난 연말 출간한 신작 『SKY 로드맵』은 두 달 만에 11쇄를 찍었다. 최상위권을 위한 공부법을 표방하고 있지만, 중하위권 학생은 물론 양육자에게 유용한 조언도 많다. 초등 6년 학습 로드맵은 어떻게 짜야 할까? 애써 구상한 로드맵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헬로페어런츠(hello! Parents)가 지난달 19일 이 소장을 만나 물었다.   ■  「 Intro. 초등 6년 학습 로드맵 필요성Step 1. 입학 전 공부 정서 만드는 법Step 2. 하루 30분 공부 습관 들이는 법Step 3. MBTI 맞춤형 공부법 찾는 법 」   ━  ✍️1학년, 공부 정서부터 갖춰라    이병훈 소장은 “초등 1~2학년 때는 공부에 흥미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공부가 재미있어야 자꾸 하고, 자주 접해야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공부에도 ‘이유기(離乳期)’가 있다”고 했다. “젖을 떼고 처음 이유식을 시작할 때처럼 다양한 재료를 맛보게 하면서 아이가 입맛을 다시는 재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재료를 어떻게 찾을 수 있나요? 학습은 이미 유아기에 시작됩니다. 그림책을 읽고, 숫자를 세고, 영어 노래를 부르는 것도 모두 공부니까요. 이 시기에는 피아노·미술·태권도 등 예체능도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해주는 게 좋아요. 일단 경험을 해봐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좋아하는 재료를 찾은 다음엔요? 여러 조리법을 테스트해 봐야죠. 똑같이 영어를 좋아해도 말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있고, 읽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있어요. 아이의 성향과 수용 능력을 파악해서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해요.   요즘은 유아 대상 영어학원, 소위 영어유치원(이하 영유)에 보내는 경우도 많은데요. 영유에 반드시 보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영유는 모든 활동을 영어로 진행하기 때문에 영어 노출을 극대화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방식이 유치원에서 끝난다는 게 문제예요. 학교에서는 3학년이 돼야 영어를 배우잖아요. 영유가 됐든, 엄마표 영어가 됐든 영어에 대한 흥미를 계속 유지해 주는 것이 중요해요.   영어 공부를 초등학교 입학 전에 미리 할 필요는 없단 건가요? 영어, 한글, 연산은 어느 정도 익히고 입학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학습 격차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시기는 고등 3학년이 아니라 초등 1학년이에요. 한글을 읽고 쓸 줄 아는 아이와 전혀 모르는 아이가 섞여 있잖아요. 수업 내용을 받아들이는 것도 천양지차죠. 출발선부터 뒤처지면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을 수 있어요. 이를 막기 위해선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요.   초등도 선행(先行) 학습이 필요하단 얘기처럼 들립니다. 선행의 정도는 아이마다 다릅니다. 보통의 아이들은 한 학기 선행이면 충분해요. 여기서 보통은 중하위권 학생을 뜻해요. 수학은 잘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게 보통이잖아요.   하위권 학생이 현행(現行) 학습이 아니라 선행 학습을 해야 한다고요? 현행으로 학습 결손을 찾는 것도 중요하죠. 하지만 미리 공부를 시작해야 반복할 시간이 생깁니다. 중·고등학교로 학년이 올라갈수록요. 물론 선행이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위권 학생이라면 속진(速進)을 해야죠. 속도감 있게 선행 학습을 해도 소화할 수 있으니까요. 그만큼 (반복 학습할)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선행 과목에도 우선순위가 있나요? 초등 입학 전이라면 한글이 먼저죠. 읽지 못하면 수학 문제도 풀 수 없잖아요. 간혹 초등 1학년인데 중등 1학년 문제집을 풀 정도로 수학을 선행한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아이는 정작 기차가 왕복할 때 속도를 구하는 문제를 풀면서 ‘왕복’이 뭐냐고 물어요. 이 아이는 수학 공부할 때가 아니에요. 국어 공부를 해야죠.   사고력 수학이 유행하면서 문제가 요구하는 문해력은 높아지는데 정작 국어 실력도 갖추지 못한 채 수학을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아진 것 같아요. 수학 학원에 다니는 연령대는 점차 낮아지고요. 사고력 수학의 접근 방식 자체는 좋다고 봐요. 단순히 공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다각도로 풀이 방법을 고민하면서 흥미를 유발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몇 살엔 뭘 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위험합니다. 아이는 아직 한국어도 잘 못 하는데, 다섯 살이면 영유를 가야 한다거나 여섯 살엔 사고력 수학을 해야 한다고 하면 거부감만 커질 수 있어요. 아이 속도에 맞춰야 해요. 이병훈 소장은 “학창 시절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창업 후 아이들 학습 관리를 하면서 깨닫게 된 공부법이 훨씬 많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는 학원이든 1시간 수업을 들었으면 3시간은 혼자 공부해야 진짜 자기 것이 되더라”며 자기주도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  ✍️3학년, 90분 엉덩이 붙여라   이병훈 소장은 “초등 3~4학년 때는 공부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1부터 하루 30분이라도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고3은 물론 평생 그 습관을 이어갈 수 있다는 지론이다. 초3은 학습이 본격화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그는 “1~2학년 때까지 바르고 슬기롭게 즐거운 생활을 하던 시간표가 3학년이 되면 영어·과학·사회 등으로 채워진다”며 “이때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공부와 점점 멀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학년마다 적정 공부 시간이 있나요? 자기주도학습을 하려면 일단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어야 해요. 적정 시간은 자기 학년에 30분을 곱하는 것입니다. 1학년은 30분, 3학년은 90분은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아요. 주말은 제외하고 주 5일이라도요.   꼭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해야 하나요? 습관을 만들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습니다. 매일 저녁 7시에 30분씩 공부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어떤 날은 친구 집에 놀러 가서 못 하고, 어떤 날은 외식해서 못 한다면, 아이도 스스로 핑곗거리를 찾죠. 오늘은 화가 나는 일이 있었으니까, 컨디션이 안 좋으니까 등 온갖 이유로 공부하지 않는 거죠.   어른도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러니 더더욱 습관을 들여야죠. 시간을 정하기가 어렵다면 루틴을 만들어도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영어 단어 1페이지 외우고, 학교 다녀와서 수학 문제집 2장 풀고 하는 식으로요. 핵심은 아이가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지키는 거예요. 양육자가 도와줄 순 있지만, 일방적으로 정해서 강요하면 안 돼요.   방학 때 하기 좋은 공부법도 있나요? 방학 때는 시간이 많으니까 늘어지기 쉽죠. 그럴 땐 한 과목만 몇 시간씩 공부하는 것보다 과목별로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는 게 효율적이에요. 국어 지문 3개, 수학 문제 5개, 영어 지문 2개 풀고 다시 반복하는 식으로요. 자신의 학습 리듬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방학을 이용해 평소 부족한 과목을 보충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초등 3~4학년은 아직 뇌 가소성이 살아 있어서 학습 환경을 재정비하면 탄력을 받을 수 있어요. 저는 학습 플래너 사용을 추천합니다. 부족한 부분이 뭔지 알아채기 좋거든요.   학습 플래너는 어떻게 써야 하나요? 보통 오늘 할 일 목록을 적어두잖아요. 그러면 학습 계획은 있지만, 실행 결과는 알 수 없어요. 그래서 왼쪽에 공부할 목록을 적었다면, 오른쪽엔 공부한 내용을 적으라고 해요.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그날 공부한 내용을 써 내려 갈 수 있어야 완벽하게 이해했다고 볼 수 있죠. 수학 문제집을 몇 장 풀었느냐가 아니라 개념을 정확히 아는 게 중요하니까요.   초등학생에게 백지 테스트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수학은 아직 어려울 수 있지만, 국어나 영어는 충분히 가능합니다. 책을 읽고 난 뒤 독후 활동도 백지에 하는 것이 좋아요. 양식이 있으면 그 틀 안에 갇히게 돼요. 양식이 없어야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죠.   아이 성적 수준에 따라 공부법도 달라지나요? 상위권 학생은 백지 테스트가 효과적이지만, 하위권 학생에겐 어려워요. 차라리 커닝 페이퍼를 만들어보는 게 낫습니다. 이 종이 한 장을 들고 시험을 볼 수 있다면 뭘 적어야 할까 고민하고 주요 내용을 옮겨 쓰게 되니까요. 다 만들고 나면 종이 크기를 반으로 줄여서 다시 만들어보라고 하세요. 그러면 더 중요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됩니다. 이병훈 소장은 “학습 동기는 긍정보다 부정적인 것이 훨씬 힘이 세다”고 말했다. 하위권 학생이 상위권으로 올라가고자 하는 욕구보다 상위권 학생이 밑으로 떨어지고 싶지 않은 욕구가 더 크단 얘기다. “일단 상위권을 한 번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장진영 기자  ━  ✍️5학년, 맞춤형 공부법 찾아라   이병훈 소장은 “초등 5~6학년 때는 공부 독립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아정체성이 생겨나고 사춘기가 시작되면 더는 엄마 주도 학습으로 끌고 갈 수 없는 시점이 온 것이다. 그는 “엄마의 주관적 평가가 아닌 객관적 평가가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이어 “학교에서 시험을 보지 않으니 MBTI 같은 성격 유형 검사나 웩슬러 지능 검사를 받는 것도 맞춤형 공부법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MBTI가 공부법 찾는 데 어떤 도움이 되나요? 성격은 커서도 바뀌니 이 검사가 절대적인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격을 알면 학습 효과를 높일 순 있어요. 올해 열다섯 살이 된 저희 아들은 ESFP(외향·감각·감정·인식)인데요. 천진난만하고 유희를 좋아하죠. 열차 그림 그리는 게 취미인데 그 시간을 보장해 줘야 공부를 해요. 이런 아이들은 먼저 논 다음 공부하는 경우가 많은데 놀기 전에 먼저 공부하게 바꿔야 해요. 안 그러면 무한정 놀 수 있거든요. 특별히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는 MBTI 유형도 있나요? 일반화할 순 없지만, 최상위권 학생 중에는 ISTJ(내향·감각·사고·판단)가 가장 많습니다. 계획표가 곧 동기가 되는 스타일이거든요. 신중하고 꼼꼼한 대신 순발력과 창의성은 부족해요.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보면 당황해서 아는 문제를 풀 시간까지 부족해질 수 있죠. 반면에 ENFP(외향·직관·감정·인식)는 관심사가 다양해서 공부에 불리한 편이에요. 이런 아이는 공부를 강요하는 기숙학교에 보내면 안 됩니다. 영어캠프나 실험교실 같은 곳이 낫죠.   웩슬러 지능검사는 어떤 도움이 되나요? 언어이해, 시공간, 유동 추론, 작업기억, 처리속도 등 지적 능력을 다각도로 측정하고 분석해서 이를 토대로 학습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어요. 최고 160, 최하 40으로 설계돼 있는데 유·아동은 130 이상이면 영재급으로 판단합니다. 보통 초등 입학 전후,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초등 5~6학년, 사춘기 고비를 넘긴 중학교 2학년 전후에 받는 것을 추천합니다. 딱 한 번만 받는다면 초등 5~6학년 때가 좋아요.   왜 초등 5~6학년인가요? 문·이과 성향이 분화되는 시기이기 때문에 향후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됩니다. 초등 저학년까지는 언어이해 영역이 좀 더 빨리 발달하고, 수리력을 보는 유동 추론 영역은 좀 더 늦게 발달하거든요.   초등학교 때 문·이과를 결정하는 것은 너무 빠르지 않나요? 성격은 바뀌지만, 기질은 바뀌지 않으니까요. 특히 이과 성향이 명확히 드러난다면 빨리 정하는 게 좋아요. 과학고나 영재고에 진학하려면 경시대회 등 미리 준비할 게 많거든요. 문과 성향이 강해서 외고나 국제고를 생각한다면 좀 더 천천히 시작해도 되지만요. 이 시기 진로가 확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죠.   컨설팅을 위해 어떤 검사를 하나요? 아이는 웩슬러 지능검사, 자기조절 학습능력 검사, 진로탐색검사, 그림검사를 받습니다. 초등 저학년은 TCI 기질검사를 하고, 고학년은 MBTI 성격유형 검사를 하고요. 부모도 부모 양육 태도 검사, 부모 동기 유형 검사를 받아요. 사실 지능검사 질문 내용은 동일하니 어디서 받든 상관없습니다.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가 중요하죠.   부모 검사를 함께 하는 이유는 뭔가요? 양육자가 아이 학습에 미치는 영향도 크니까요. 양육자가 조부모형이면 아이를 무조건 칭찬하겠지만, 교도관형이라면 칭찬 없이 목표만 제시하겠죠. 아이는 ISTJ인데 양육자는 ENFJ(외향·직관·감정·판단)라면 서로 상극이에요. 부모는 자녀가 조언을 따르길 바라고, 아이는 부모가 참견한다고 여기죠. 각자 시간을 두고 지켜보는 완충지대가 필요합니다. 이병훈 소장의 MBTI는 뭘까. 그는 “원래 ISTP(내향·감각·사고·인식)였는데 일을 하면서 ISTJ(판단)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타고난 대로 살면 회사가 뻥뻥 구멍이 날 것 같아 새롭게 생긴 자아”라며 웃었다. 장진영 기자 학습에 대한 기준과 목표는 저마다 다르다. 한쪽에서는 초등 입학 전부터 선행 경쟁이 치열한가 하면, 진도와 무관하게 학교 밖 홈스쿨링을 택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지향점이 다양해지면서 스펙트럼도 넓어진 것이다. 이병훈 소장은 “교육과정이나 방식이 바뀌어도 기본은 같다. 초등 시기엔 공부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학교 공부의 목적지는 입시입니다. 학생은 수험생이지, 학자는 아니니까요. 걸어가면 더디게 도착할 겁니다. 빨리 가려고 뛰어가거나 자동차를 탈 순 있지만 전적으로 아이에게 달렸어요. 기껏 자동차에 태워줬는데 아이가 운전은 안 하고 가만히 있다면 걷는 것만도 못할 테니까요. 관련기사 “초등땐 놀려라, 한달만 빼고”…‘서울대 삼형제’ 엄마의 비결 ② ADHD 아니라 자폐였다? 산만함에 숨은 ‘핵심 신호’ “1등도 꼴찌도 학원 올 수밖에” 대치동 영어 학원장의 일침 “빚내서라도 보내라” “8명 중 3명 틱장애” 영유 엇갈린 시선 “한글 다 안떼도 된다”던 교사, 첫째는 입학 전 가르친 이유

    2024.02.04 1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