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전용

“우리는 왜 서른, 마흔에 가방 하나 메고 산티아고 가게 됐을까?"

중앙일보

입력 2022.08.08 06:00

업데이트 2022.08.08 12:19

혹시 뭔가를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러지 말고, 아이의 생각을 꺼내려고 해보세요. 그렇게 하면 그림책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지난 1일 만난 이현아 교사는 “어떻게 하면 아이가 그림책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이 이렇게 답했다. 2015년부터 그림책을 가지고 수업을 해온 베테랑 교사다. 그림책 수업 노하우를 담아 책(『그림책 한 권의 힘』)을 쓰기도 했고, 2017년부터는 교사를 대상으로 그림책 수업 연수도 진행 중이다.

이현아 교사는 “가르치는 건 이미 기존 수업 시간을 통해 충분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학교에서 부족한 건 지식을 넣는 게 아니라 생각을 꺼내는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그런데 막상 아이에게 생각을 말해보라고 하면 잘 안 한다”면서 “그럴 때 그림책을 활용하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그림책 수업 베테랑인 이현아 교사는 "아이의 생각을 꺼내는 데 그림책을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아이가 자연스레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진영 기자

그림책 수업 베테랑인 이현아 교사는 "아이의 생각을 꺼내는 데 그림책을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 아이가 자연스레 그림책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다. 장진영 기자

생각 꺼내기, 포스트잇 한장이면 된다

‘집어넣지 말고 생각을 꺼내야 한다’는 말, 너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생각을 물어보면,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림책) 어땠냐”는 질문에, 열에 아홉은 “좋았다”고 답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뭐가 좋았냐”고 한 번 더 물어보자. 그래도 상황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 좋았다”는 답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매개로 생각을 꺼내는 게 쉽지 않아요. 어땠느냐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대부분 ‘좋았다’고 단답형으로 말하지 않나요?
정말 그렇죠. 그래서 질문이 중요해요. 구체적으로 묻는 겁니다. 제가 그림책을 읽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방법이 있어요. 먼저 가장 인상적인 장면, 좋았던 장면을 고르게 합니다.
그런 뒤엔요?
그리고 4가지를 물어요. 경험, 오감, 생각 그리고 질문에 관한 질문이죠. 경험은 인상적인 장면을 보고 떠오른 경험이 있는지 묻는 겁니다. 오감은 그 장면에서 떠오르는 색깔이나 촉감, 냄새에 관해 이야기해달라고 하는 거고요. 생각은 그 장면에서 어떤 생각이나 기분이 들었는지를, 질문은 그 장면에서 친구들과 나누고 싶은 질문을 한 가지만 떠올려서 말해달라고 하는 거죠.
그 4가지 질문을 모두 다 하나요?
상황에 따라서요. 고학년을 가르칠 땐 다 하지만, 저학년은 그중에서 한두 개만 합니다.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지고요.
질문하고 답을 듣고 끝인가요?
질문을 던지고 아이에게 포스트잇을 주세요. 거기에 질문에 대한 답을 쓰게 하고, 답을 쓴 포스트잇을 아이가 인상적이라고 말한 그 장면에 붙이는 거죠. 여러 명이 이 장면 저 장면에 붙이거든요.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 그 답을 쓴 친구가 이야기합니다. 저마다 마음을 움직인 장면이 다 다르고, 같은 장면을 보고도 떠오르는 경험이나 생각이 다 다릅니다. 아이들이 이 활동을 좋아하는 이유죠.
책에 따라 활동지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그런 부담이 줄겠어요.
교사 연수 때 만난 선생님이나 강연에서 만난 양육자분들도 그런 말씀을 하세요. 어떤 그림책을 읽어도 아이와 활동할 수 있다고요. 그림책을 미리 정할 필요도 없죠. 책장 앞에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가장 인상적이었던 그림책을 고르는 거예요. 그리고 그 책을 가지고 경험과 오감, 생각, 그리고 질문에 관해 묻고 포스트잇 활동을 해보세요. 저는 이런 그림책 독후 활동법을 ‘통(通) 그림책 감상법’이라고 불러요. 나랑 통했던 그림책, 통했던 장면을 가지고 생각을 확장하는 거죠. 
이현아 교사는 그림책을 가지고 아이들과 수업한 이야기를 모아 책을 썼다. 책에는 그의 그림책 수업 노하우도 담겼다. 장진영 기자

이현아 교사는 그림책을 가지고 아이들과 수업한 이야기를 모아 책을 썼다. 책에는 그의 그림책 수업 노하우도 담겼다. 장진영 기자

다 큰 어른, 왜 산티아고까지 갈까

자신만의 그림책 활동법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그림책 수업에 열정을 가진 그도 사실 ‘교사가 내게 맞는 걸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5년 차 교사였던 2014년, 아이들과 매일 같이 있는데, 아이들과 있는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아이들이 영혼을 집에 두고 오는 것 같았다. 울림 없는 교실에서, 그 역시 ‘교사로 평생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들른 학교 도서관에서 제시 클라우스마이어 작가가 쓰고 이수지 작가가 그린 『이 작은 책을 펼쳐 봐』을 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언 듯 한참을 서 있었다.

『이 작은 책을 펼쳐 봐』가 어떤 책이었길래요?
이 책 안엔 작은 책 여러 권이 있어요. 책을 펼치면 좀 더 작은 책이, 그 책을 펼치면 더 작은 책이 나와요. 그런데 가장 작은 책을 거인이 펼쳐야 해요. 손이 너무 커서 펼칠 수도, 넘길 수가 없죠. 거인은 어떻게 했을까요? 책을 결국 못 봤을까요? 아뇨. 그렇지 않아요. 친구들이 대신 펼쳐줬거든요.
그 책이 왜 통했을까요?
교사인 제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할 수 없는 일이 있어요. 거인이 작은 책을 펼칠 수 없듯이요. 아이들이 반드시 해야 하는, 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는 거죠. 교실에서도요. 그걸 깨닫고 나니 부담을 내려놓을 수 있겠더라고요. 이 책이 너무 좋아서 교실 책장에 꽂아두고 아이들과 읽었어요. 그런데 책보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더 좋았죠. 그렇게 말을 하라고 해도 말을 안 하던 아이들이 말을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말을 하라고 하면 잘 안 하나요?
생각할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친구들이 자길 너무 진지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것도 싫고, 선생님이 쓸데없는 얘기나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싫고요. 아이들이 좀 크면 알아요. 어떻게 대답해야 빨리 끝나는지를요. 그래서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생각과 느낌을 나누는 게 생각만큼 쉽지가 않아요.
그림책을 가지고 하면 다른가요?
누구나 자기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다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 말할 계기가 없을 뿐이에요. 그림책을 읽는 행위가 그걸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공부하는 긴장감 없이 편안하게 책을 읽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니까요.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왜 중요한가요?
아이는 학교에서 12년을 보내요. 그 12년간 들숨만 쉰다고 생각해보세요. 넣기만 하지, 꺼내는 걸 하지 않는다고요. 들숨과 날숨을 함께 해야 숨을 쉴 수 있어요. 건강하게 잘 자라려면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해요. 들숨만 쉬다가 사회에 나온 어른들이 어떻게 사나요? 다 커서 산티아고에 가죠. 나이 서른, 마흔에 '나'를 찾겠다고요. 
자기 이야기를 하게 하는 여러 매개체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데 왜 그림책인가요?
그림책은 유연한 매체인 것 같아요. 그림도 있고, 이야기도 있고, 그 둘이 함께 만들어내는 호흡도 있고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요. 그리고 할 수 있는 활동도 많죠.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글을 쓸 수도 있고요. 연극이나 음악 감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죠. 이야기 치료라고, 치료의 매개체로 사용하기도 하고요. 
이현아 교사는 "책을 좋아하려면 좋아하는 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홈런북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홈런북을 찾게 하고, 읽게 하는 게 그가 아이들과 책을 읽는 노하우다. 장진영 기자

이현아 교사는 "책을 좋아하려면 좋아하는 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홈런북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홈런북을 찾게 하고, 읽게 하는 게 그가 아이들과 책을 읽는 노하우다. 장진영 기자

홈런북을 찾아라 

그림책에 관한 양육자들의 궁금증은 대체로 이 두 가지로 모아진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그리고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림책 수업 베테랑 교사는 아이들과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까?

책이 정말 많아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책 고르는 선생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좀 알려주세요.
홈런북, 그러니까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을 찾아보세요. 저는 2시간 정도의 시간을 확보해서 아이들과 학교 도서관에 가요. 1시간은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보면서 자기만의 홈런북을 찾아요. 원래 좋아하던 책을 가져오는 친구도 있고, 그날 그 자리에서 맘에 드는 책을 골라오는 아이도 있어요. 나머지 1시간은 둘러앉아서 자기가 찾은 홈런북을 소개하는 겁니다. 앞서 알려드렸던 바로 그 방법, 포스트잇 활용법을 써서요.
아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책을 읽게 하고, 활동도 그걸 가지고 하는 거군요?
해보시면 책을 정해주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아이와 함께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직접 책을 고르게 해보세요.
아이가 직접 좋아하는 책, 홈런북을 고르다 보면 책을 좋아하게 될 것 같아요.
아이가 책을 많이 읽길 바라시잖아요. 그러려면 좋아해야 해요. 아이가 책을 좋아하려면, 자기 취향에 맞는 책을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읽나요? 선생님이 읽어주시나요?
교실에서 수업할 때는 책이 한 권, 많아도 두 세권 밖에 없으니까요. 보통 제가 책을 아이들을 향해 펼쳐서 보여주면서 소리 내 읽습니다. 첫 번째 읽을 때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그냥 읽습니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아요. 두 번째는 나만의 한 장면을 찾아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읽어요. 그리고 나서는 책을 돌려요. 아이들이 직접 책장을 넘겨보면서 읽게 하는 거죠. 그리고 나면 포스트잇을 꺼내게 하고, 그 장면이 왜 좋았는지, 경험과 오감, 생각, 질문을 주제로 쓰게 해요.
선생님 교실에 있는 책은 포스트잇 때문에 금세 뚱뚱해지겠네요. (웃음)
빵을 구우면 반죽이 부풀잖아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으면, 빵 굽듯 책이 부풀어요. 저는 그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아이들과 책을 읽을 때 특별히 유념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많이 읽으라고 하지 않아요. 저는 가능하면 천천히 여러 번 읽으라고 해요. 책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찾으라고 하고, 그 장면에 멈춰서 생각하도록 하는 것도 천천히 읽는 방법의 하나에요.
포스트잇 쓰기를 하다 보면, 아이들의 글쓰기 실력도 늘 것 같아요.
막상 생각을 글로 써보면, 생각처럼 잘 안 됩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포스트잇 활동을 꾸준히 하다 보면 확실히 학기 초보다 쓰는 실력이 좋아져요. 생각하는 힘도 그만큼 커졌다는 뜻일 겁니다. 

이현아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아이들 속에 있는 ‘문장’과 ‘이야기’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기 시작한 이유다. 그는 아이들의 그림책을 혼자 보는 게 아까워 온라인 그림책 도서관 ‘통로’를 만들기도 했다.

“작품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가 완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을 가지고 아이들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건 궁극적으로 원작을 더 풍성하게 가치 있게 만드는 일이에요. 양육자나 교사뿐 아니라 그림책을 둘러싼 많은 어른이 어린이를 좀 더 존중했으면 좋겠어요.”

바쁜 당신을 위한 세 줄 요약
① 그림책을 읽고 뭔가를 가르치려고 하지 마세요. 그림책을 가지고 아이의 생각과 이야기를 끄집어내세요. 그래야 아이가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② “책 어땠니?”, “뭐가 좋았니”라고 묻지 마세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고르게 하고, 그 장면에서 떠오른 아이의 경험과 생각(느낌), 오감을 물어보세요. 그리고 어떤 질문을 하고 싶은지 묻는 것도 좋습니다.
③ 책을 골라주지 마세요. 아이에게 시간을 주고 책을 둘러보게 하고, 그중 마음에 드는 책을 직접 고르게 하세요. 그래야 더 적극적으로 읽고, 활동합니다.

관련기사

Innovation 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