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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일본보다 한국 신생아가 더 행복하다니 나도 행복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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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지인이 카카오톡으로 보내 준 ‘현실감 있는 요즘 속담’을 읽으며 웃다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했다. 몇 가지 소개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늦은 거다’ ‘가는 말이 고우면 얕보인다’ ‘참을 인(忍)자 세 번이면 호구 된다’ ‘일찍 일어난 벌레가 일찍 잡아먹힌다’ ‘내일 할 일을 오늘로 당기지 마라’ ‘티끌 모아봐야 티끌’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역경을 딛고 쓰러진다’ ‘개천에서 용 난 놈 사귀면 개천으로 빨려 들어간다’ ‘요즘 효도는 셀프(self)’…. 정통·주류 담론을 한순간에 뒤집어버리는 날카로운 패러디다. 세상사에 작용하는 진실의 일단(一端)을 품고 있어 그냥 웃어넘기기 어렵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고들 한다. 이것도 틀렸다. 경험칙으로는 성적이 좋았던 사람이 나중에 행복할 확률이 아무래도 더 높다. 우리는 냉정한 현실과 그랬으면 하는 희망·당위의 세상을 종종 헷갈린다. 아니, 헷갈리고 싶어 한다. 주관적 현실이 워낙 팍팍해서일 것이다.

 나라별 행복도(度) 순위에 관심을 쏟는 배경에도 ‘행복과 물질적 부(富)는 별개’라고 믿고 싶은 심리가 깔려 있는 건 아닐까. 지난주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우간다를 여행하면서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 충족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22일 발행한 연말 특집 『2013년의 세계』에 ‘내년에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야 더 행복할까’라는 제목의 재미있는 조사 결과가 실렸다. 영어로 ‘The Lottery of Life’, 즉 모국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 로또’ 측정이다.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도, 국민소득·날씨·범죄율 등의 지표, 그리고 내년에 태어날 신생아가 17세가 되는 2030년에 예상되는 각국의 경제·사회적 상황을 수치화해 점수를 뽑았다. 조사 결과 스위스가 1위, 한국은 19위였다(본지 11월 26일자 12면). 일본·프랑스·영국보다 나으니 준수한 편 아닌가.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힐링에 목말라 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같은 통계수치를 반복해 들먹인다. 다른 기관이 측정한 국가별 행복도 조사에서 1, 2위를 다투는 방글라데시·부탄을 쳐다보라고 한다. 영국의 신경제재단(nef)이 올해 내놓은 행복지수(HPI)에 따르면 한국은 143개국 중 68위에 불과하다. 그러나 HPI는 기대수명·만족도와 함께 환경을 고려한 ‘생태발자국’ 지수가 포함되기 때문에 우리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방글라데시가 행복하다고? 사흘 전 안전기준·노동조건이 열악한 의류공장 건물에서 불이 나 117명 이상이 떼죽음당한 나라가 바로 방글라데시다. 대한민국 국민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적어도 행복의 객관적 조건은 갖추었다. 나머지는 각자의 ‘내면의 힘’ 몫이다.

글=노재현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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