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이 있는 공간산책] 인천 '닉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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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숲에서 한 무리의 나비가 날아와 인천 구월동 '닉바'에 가득 내려앉았다. 벽면을 메우고 있는 나비의 표본들은 섬뜩하면서도 기묘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나비 중에서도 화려하고 섬세한 문양을 가진 것만 골라 유리상자 안에 나란히 가두어 두었다. 상자는 안에서 조명이 뿜어져 나오게 되어 있는 데다 상자 밑에서는 또 다른 조명이 천천히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하면서 요기스러운 분위기를 돋운다. 나비 표본이란 예쁜 접시처럼 진열되는 것인 줄만 알았는데 뜻밖이다.

당신에게 나비는 무엇인가. 내가 나비의 꿈을 꾸었던 건지, 나비 꿈 속에 내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장자의 나비인가. 오페라 나비부인 혹은 동양의 노랑나비 이승희를 떠올리는가. 영화 '나비'에서처럼 산성비가 내리는 음울한 도시에서 희망을 안내하는 매개자의 이미지인가. 구월동 닉바의 나비는 유혹이요, 도발이다.

바에 들어서면 현란한 나비떼와 함께 벽면에 모자이크된 도발적인 여인들의 시선과 마주친다. 관능적인 분위기의 여인들이 클로즈업된 흑백사진을 벽면 가득 붙여 놓았다. 당당하며 농염한 눈빛과 함께 부분적으로 덧입혀진 붉은 색의 에너지는 순진한 남자라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다.

약간은 고조된 기분을 가라앉히고 바에 앉아 나비떼를 마주한다. 나비의 날개가 그토록 아름답고 오묘한 색채와 섬세한 곡선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줄 예전에 미처 몰랐다. 한참을 나비 날개에 심취해 있을 때 쉬익하고 지나가는 찬공기를 느끼게 된다.

이상한 바 테이블이다. 현란하기로 따지면 건너편 흑백사진과 모니터가 쉼없이 보여주는 영상이미지가 더할테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종류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앉아 있는 의자를 들여다보니 커다란 파충류의 껍질을 연상케 하는 번들거리는 인조가죽으로 씌워져 있다. 내 앞의 나비는 천적 앞에 고스란히 몸을 드러내 굳어버린 아름다움이다.

그렇게 나비는 천적 앞에 굳어 있고, 나는 나비의 아름다움에 굳어 있다. 그제서야 닉바의 나비들이 그렇게 도발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를 알아차리게 됐다.

뭔가 자신에게 특별한 심미안, 혹은 다른 세계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고 싶을 때 인천의 닉바를 찾아가라. 나비떼들이 당신을 도발적인 환영(幻影)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김주원 ㈜엔케이디자인소장 <jwkim@enkeidesign.com>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닉바는 맥주.와인.위스키 등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병맥주 한 병에 4천~1만원선이며 파스타.낙지덮밥 등의 식사류는 6천~9천원이다. 오후 4시부터 새벽 4시까지 문을 연다. 032-421-3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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