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 지방 칩거… 캠프엔 “사퇴 취소하라” 전화 빗발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지방에 가서 조금 쉬다 오겠습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전격 사퇴 다음 날인 24일 아침 조광희 비서실장 등 캠프 측근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다. 캠프가 공유하는 스마트폰 무료통화·문자 애플리케이션인 바이버(Viber)를 통해서다. 자세한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안 후보가 자리를 비운 이날 서울 종로구 공평동의 캠프 사무실은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박선숙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은 캠프 전체 조회에서 “여러분이 계셔서 여기까지 왔다. 12월 19일까지 가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고 말했다. 캠프 곳곳에선 하루 종일 관계자들이 눈물을 훔치거나 서로 부둥켜안는 모습이 보였다. 여기저기에서 “고생 많았다”는 목멘 인사말이 들렸다.

캠프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들은 대부분 출근해 공평빌딩 4~6층에 꾸려진 사무실을 정리했다. 132억원(21일 기준) 넘게 모금된 안철수 펀드와 후원금은 25일부터 계좌이체 방식을 통해 돌려주기로 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철수와 함께’ ‘동행’ ‘혁신’ 등의 문구가 찍힌 벽보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취재진으로 북적거렸던 4층 기자실은 10명이 채 안 되는 기자들이 자리를 지켰다. 안 후보의 사퇴 관련 신문기사를 보며 눈물을 훔치는 캠프 관계자도 있었다.
향후 행보를 묻자 캠프 관계자들은 답을 피했다. 조광희 비서실장은 “일단 시간을 갖고 숨고르기를 할 것”이라며 “당분간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송호창 공동선대본부장 주재로 열린 실장·팀장급 회의에서도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하지만 당분간 논의를 하지 않기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대다수 캠프 관계자들은 25일까지 출근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바로 캠프 사무실을 닫지는 않는다고 한다. 캠프 관계자는 “해단식 일정도 미정으로 놔둔 상태”라며 “현재로서 정해진 것은 없다”고 했다.

캠프엔 사퇴 결정을 철회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캠프 5층 민원상담실엔 “사퇴를 취소해 달라”는 전화가 계속됐다. 캠프 관계자는 “많은 분이 울먹이며 전화를 주셨다”고 말했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건물 밖엔 침묵 시위도 있었다. 지수영(36·서울 종로구)씨는 “사퇴란 용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며 정치쇄신은 역시 안 후보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달려왔다”며 ‘국민후보 안철수의 후보 사퇴를 반대합니다’라고 적은 A4용지를 들고 침묵 시위를 벌였다. 김대영(42·인천)씨는 “국민이 불러서 나온 후보인데 끝까지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시위에 합류했다. 200여 명의 안 후보 지지 시민 모임 관계자들은 캠프를 방문해 후보 사퇴 취소를 요구했다.

안 후보의 전격 사퇴 배경에 대해선 캠프 관계자들조차 궁금해 하는 표정이었다. 유민영 대변인은 “(단일화 논의를) 이틀 더 미루는 건 국민에게 죄를 짓는 일이란 생각에 그런 결정을 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23일) 회견 직전 후보가 사퇴 결심을 알려줄 때까진 몰랐다”고 전했다.
안 후보의 향후 행보를 놓고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 공동선대위원장단은 이날 총사퇴를 결의했다. 안 후보 측 인사들이 참여하는 공동선대위 구성 이야기가 흘러나왔지만 안 후보 캠프에선 썰렁한 반응이었다. 안 후보 측의 한 인사는 “(공동선대위 구성은) 지극히 민주당적 발상”이라며 “우리 쪽에서 현재 그런 논의는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안 후보가 문 후보 캠프에서 직책을 맡아 선거를 지원할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서도 아예 고개를 저으며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민주당은 이날 조심스러웠다. 외부 일정을 잡지 않은 문 후보는 하루 종일 자택에 머물렀다. 야권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투신자살한 고(故) 유병수씨의 영결식이 치러진 데 대해 트위터에 애도를 표하는 글을 올렸을 뿐이다. 그는 트위터에 “참으로 어깨가 무겁다”고 적었다.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단 총사퇴에 대해서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박광온 선대위 대변인은 선대위원장단 총사퇴 배경에 대해 “문 후보와 안 후보의 후보 단일화 합의정신과 새정치공동선언을 바탕으로 한 국민연대 방식의 새로운 선대위 구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함께했다”고 전했다. 이낙연 공동선대위원장은 이날 오전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회의에서 “안 후보가 매우 어려운 결단을 내려 괴로운 심정”이라며 “새로운 정치를 이행해야 한다는 숙제가 오롯이 우리에게 안겨진 만큼 책임도 더 커졌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국민의 충격을 보듬어 안는 자세가 필요한 단계”라며 “현재로선 우리만의 목적을 위해 일방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안 후보 지지자의 흡수를 놓고선 새누리당과 날 선 신경전을 벌였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안 후보 사퇴에 대해 “문 후보와 민주당의 구태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발언하자 발끈했다. 선대위 박 대변인은 “박 후보와 새누리당은 문 후보와 안 후보 지지자의 틈 벌리기로 선거를 치르려는 부끄러운 자세를 버리기 바란다”며 “문 후보와 민주당은 안 후보와 안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의 열망을 모아 반드시 정권을 교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현 당 대변인은 “박 후보가 연일 공격적 발언을 하는 것을 보니 지금 상황이 당혹스럽긴 한 모양”이라며 “구태는 새누리당을 두고 해야 할 말로, 지금 박 후보가 해야 할 일은 새누리당의 구태정치를 반성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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