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벗긴 '우리 기억문화'

중앙일보

입력

IMF사태의 혹독한 시련을 거치고도 지금 우리 경제는 왜 다시 휘청거리고 있는가.

한 엔지니어의 우리 기업문화 비판서 『한국 기업엔 쓸데없는 일이 왜 그리 많습니까□』는 읽는 이 모두 그 문제에 대해 뼈아픈 성찰을 하게 만든다.

일시적인 성과에만 집착해 원칙없이 이뤄진 구조조정의 허상과 그 결과, 스스로 만든 시스템을 감당치도 못하고 구시대적 작태들도 떨어내지 못한 모습은 민.관 어디서든 쉽사리 발견된다.

저자는 1989년에 S그룹에 입사해 10년간 주로 해외공사를 수행했던 김한성씨. 발전설비사업 일원화(빅딜) 조치로 2000년 H사 소속으로 전배되자 곧 퇴사, 지금은 미국 GE 파워시스템의 유럽지역 파견근무자로 일하고 있다.

신입 사원 시절 한창 '술상무' 노릇을 할 때는 외국 손님들 접대 명목으로 비싼 룸살롱도 출입해봤고, 중간 관리자가 돼서는 임금협상철이 다가오면 생산직 근로자들을 도닥이기 위한 연수프로그램에 같이 들어가 보기도 했다고 한다. 또 안전사고로 숨진 근로자의 유가족들에게 몰매도 맞아봤던 그다.

스스로 '반성하는 심정' 으로 썼다는 이 책은 그같은 생생한 경험을 토대로 '실천' 의 문제를 강조한다.

예를 들어 기업마다 유행처럼 생겼다 사라졌던 '개선사례 발표회' '품질 청문회' '제안왕뽑기' 등의 행사들이라든지, 낙하산 인사로 잠시 스쳐갔던 임원들이 부서를 엉망으로 만들고 간 사례 등을 지적하면서 "중요한 건 '어떤 제도냐' 가 아니라 '어떻게 시행하느냐' 지만 그것이 제대로 이뤄지는 건 보지 못했다" 고 비판한다.

또 임금협상은 으레 부풀리고 후려치며 시작해야 하는 것으로 아는 노사 양측에 대해서도 저자는 날카롭게 꼬집는다.

하지만 이런 비판의 의도는 궁극적으로 경쟁력을 회복해 경제를 살리자는 데 있다. 한국인 특유의 강한 추진력과 우수한 인력이 아깝다는 것이다.

뻔한 소리 같지만, 우리 기업의 '쓸데없는 일' 들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펼치는 저자의 논리가 쏙쏙 머리에 박힌다. 기업인이나 정치인들은 꼭 한번 읽어 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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